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아일보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청년 불안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30대 구속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김영종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민주평화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87
  • [인사]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과장급△탄소중립거버넌스기획과장 이진원△교통정책과장 양지연△중소벤처기업부 정책평가과장 파견 한레지나 ■고용노동부 ◇국장급 승진△충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도형△인천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임영미 ■소방청 ◇소방정감 승진△소방청 차장 이흥교△서울소방재난본부장 최태영△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 이상규 ■해양경찰청 ◇치안감 전보△본청 기획조정관 윤성현△본청 경비국장 김용진△해경교육원장 김종욱△서해지방해경청장 정봉훈△남해지방해경청장 서승진 ■중앙일보 ◇편집국△국제외교안보디렉터 채병건△EYE디렉터 염태정△경제·산업디렉터 서경호△경제·산업 부디렉터 최지영△정책디렉터 최현철△정치팀장 서승욱△정치국제기획팀장 원정환△국제팀장 조민근△외교안보팀장 유지혜△투데이&피플팀장 전수진△경제정책팀장 손해용△금융팀장 하현옥△부동산팀장 함종선△산업1팀장 장정훈△산업2팀장 이상재△라이프스타일팀장 이소아△EYE팀장 홍주희△사회1팀장 정효식△사회2팀장 김승현△복지팀장 이에스더△교육팀장 남윤서△내셔널팀장 최경호△포토팀장 강정현△S팀장 한애란 ◇뉴스제작국△제작1팀장 이진수△제작2팀장 김주영△제작3팀장 김진일△서비스3팀장 박수련 ◇뉴스플랫폼담당△디자인팀장(중앙홀딩스 브랜드UX팀장) 류진아 ◇비즈솔루션본부△Innovation Lab장 이경희△솔루션개발팀장 이상원△애드테크팀장 최세원△비즈혁신팀장 김형준 ◇신문제작총괄△칼럼니스트 이현상 남정호 양성희△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김수정△정치담당 콘텐트제작에디터 신용호 최민우 김형구△국제외교담당 콘텐트제작에디터 채인택 차세현△경제담당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김태윤△사회담당 콘텐트제작에디터 문병주△논설위원 겸 중국연구소장 예영준△논설위원 조강수 고정애 이가영△디자인개발팀장 김호준 ◇광고사업본부△내셔널비즈팀장 정기조△IMC팀장 이정환△광고부국장 이동현 ■동아일보·채널A ◇동아일보△출판편집인 상무 김정훈△콘텐츠기획본부장 국장급 박성원△출판국장 부국장급 서정보△논설위원실 논설위원 부국장급 이은우 ◇채널A△편성전략본부장 윤정화△콘텐츠플러스센터장 홍석민△전략기획본부장 신치영△경영지원본부장 나은주△보도본부 뉴스A에디터 이종훈
  •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강점기의 복합쇼핑몰, ‘종로권상장’/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일제강점기의 복합쇼핑몰, ‘종로권상장’/손성진 논설고문

    1922년 서울 종로에 ‘종로권상장(勸商場)’이라는 서양식 2층 건물이 들어섰다. 위치는 지금의 종로4가 교차로에서 원남동으로 들어가는 창경궁로 입구 왼쪽, 혜화경찰서 맞은편이다. 현재 귀금속 상가들이 입점한 세운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1922년 3월 10일 자 입찰 광고를 보면 종로권상장은 대욕장, 영화관, 오락실과 한식, 일식, 양식, 중식을 비롯한 각종 음식점, 상점 등을 갖추었다. 백화점, 영화관, 음식점, 오락실, 찜질방 등을 갖춘 요즘의 복합쇼핑몰과 흡사하다. 점포 수만 130개이며 전깃불이 4만촉으로 불야성을 이룬다고 선전하고 있다. 정직· 염가의 정찰제를 실시하며 광고 제목에 경성의 낙천지(樂天地), 즉 파라다이스라고 적었다. 부지 면적은 780평이며 1층은 점포, 2층은 영화관과 전시관 등의 무료 여흥장으로 활용한다고 홍보했다. 권상장은 1922년 6월 29일 영업을 시작했다. 1930년 문을 연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보다 8년 앞섰다. 권상장이라는 복합 용도 건물의 모델은 일본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권공장(勸工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권공장은 통로 양쪽에 진열판매대를 놓고 작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정원이나 찻집 외에도 부가쿠(舞樂)나 노가쿠(能樂)와 같은 공연을 하는 공간도 있는 도시 유원지 같았다고 한다(백두산, ‘식민지 조선의 상업·오락 공간, 종로 권상장 연구’). 권공장 건물 가운데에는 종탑이 있었는데 종로권상장도 동일하다. 1920년대 극장 입장료는 10~30전 정도였는데 서민에게는 비싼 가격이었다. 종로권상장은 무료를 표방했다. 물론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료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2층 공연장을 흥행단체에 대여했거나 특별한 전시를 했을 때는 관람료를 징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2년 11월 광고에는 ‘종로권상장 오락관’이라는 명칭하에 조선청년단의 신파극과 함께 ‘약산운경(若山耕雲) 선생의 대선술(大仙術)’을 홍보한다. 대선술은 열철긴악술(熱鐵緊握術), 육체침자술(肉體針刺術), 인신점화술(人身點火術) 등의 부가 설명으로 볼 때 차력 시범으로 보인다. 조선청년단은 짤막한 코미디나 신파극의 한 대목을 공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동아일보 1922년 11월 16일 자). 말하자면 종로권상장의 공연과 전시는 수준이 높지 않았고 찾는 이의 시선과 흥미를 끌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28년부터 권상장은 광무대 공연장으로 바뀌어 구극을 공연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확장 공사를 통해 극장, 댄스홀, 카페 9곳이 늘어선 미인가(美人街) 등이 들어섰다.
  • [동정]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신임 소장에 이강윤 전 국민TV 이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는 지난 10일 신임 소장에 이강윤(57) 전 국민TV 이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신임 소장은 중앙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 기자(1988∼2004), 산업자원부 정책홍보담당관(2005), 국민TV 이사(2015)를 거쳐 정치평론가로 활동해왔다.
  • 한국아동문학상 동시 최영재 ‘우리 엄마’, 동화 이경순 ‘똘복이가 돌아왔다’

    한국아동문학상 동시 최영재 ‘우리 엄마’, 동화 이경순 ‘똘복이가 돌아왔다’

    사단법인 한국아동문학인협회(이사장 이창건)는 제30회 한국아동문학상으로 동시 부문에 최영재 시인의 ‘우리 엄마’, 동화 부문에 이경순 작가의 ‘똘복이가 돌아왔다’를 선정하고 새해 1월 30일 시상식을 갖는다. 코로나19 단계가 격상될 경우 온라인 시상식으로 변경될 수 있다.최영재 시인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쳇바퀴와 다람쥐’ 당선을 시작으로 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동화 창작도 하고 있다. 이번 수상작 ‘우리 엄마’는 한국 역사에서 미증유의 최대 비극인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가족을 잃은 뼈아픈 체험을 다루고 있으며 그만큼 개별성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이경순 동화작가는 1997년 첫 장편동화 ‘찾아라, 고구려 고분 벽화’가 삼성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동화작가가 됐다. 수상작 ‘똘복이가 돌아왔다’는 작가가 직접 겪은 펫로스 증후군을 바탕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상실감이 생생하게 표현됐으며, 주인공의 처지에 이입되며 꾸며낸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아동문학상 동시 부문을 수상한 최영재 시인은 “한국아동문학상은 동업자들이 주는 상인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상이라 더욱 깊이 감사드린다”며 “돌아가신 뒤에도 매 순간 나를 보살펴주시는 그리운 어머니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고 전했다. 이어 동화 부문 수상자 이경순 작가는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힘들어 할 아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라며 쓴 작품이 수상의 영광까지 안게 되어 가슴 벅차도록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는 이날 시상식에 이어 2021년도 정기총회를 갖고 30년사 발간 축하, 협회와 한국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새해를 맞아 아동문학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다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사] 국토교통부, 동아미디어그룹, 법제처, 법무부

    ■ 국토교통부 ◇ 과장급 전보 △ 모빌리티정책과장 김동현 △ 수원국토관리사무소장 한동훈 ■ 동아미디어그룹 ◇동아일보 △ 대기자 국장급 이기홍 △ 논설위원실장 국장급 천광암 △ 편집국장 이명건 ◇채널A △ 보도본부장 국장급 강수진 ■ 법제처 ◇ 국장급 전보 △ 법령해석국장 안상현 ■ 법무부 △ 국제법무과장 박정현
  • [인사]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박정현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장영진△통상교섭실장 김정회 ■국토교통부 ◇과장급 전보△모빌리티정책과장 김동현△수원국토관리사무소장 한동훈 ■법제처 △법령해석국장 안상현 ■동아미디어그룹 ◇동아일보△대기자 국장급 이기홍△논설위원실장 국장급 천광암△편집국장 이명건 ◇채널A△보도본부장 국장급 강수진 ■조선일보 △편집국장 주용중△경영기획본부장 박두식 ■TV조선 △보도본부장 신동욱△보도본부 부본부장 겸 시사제작국장 윤정호 ■중앙그룹 ◇중앙홀딩스△총무팀장 이상훈△부동산팀장 성현목△전략2팀장 박철한△재무팀장 겸 제이콘텐트리 재무팀장 홍순철 ◇중앙일보△경영기획팀장 하승진△총무팀장 류승현 ◇JTBC스튜디오△콘텐트사업부문 콘텐트사업4팀장 이아름△콘텐트사업3팀장 윤태진△콘텐트사업2팀장 현향단△콘텐트사업1팀장 임지은△전략·디지털본부 신성장팀장 이태호△전략팀장 주현태△스튜디오제작팀장 김학준△비지니스솔루션팀장 박정재 ■헤럴드 ◇헤럴드△마케팅본부 마케팅기획담당 심재익△코리아헤럴드 마케팅국장 김진수△헤럴드에듀 대표 겸 신사업국장 이정환△CS센터장 송태광 ◇헤럴드경제△정책부장 이해준△전국부장 겸 서울시팀장 이진용△사회부장 박도제 ◇코리아헤럴드△국장석 부장 이주희△경제산업부장 이선영△정치사회부장 최희석 ■SBSCNBC ◇보도국△경제부장 황인표△생활경제부장 윤진섭△보도제작부장 김날해△뉴미디어부장 최서우 ◇제작파트△김형민 경제기획제작팀장△백종우 경제편성팀장△김대훈 플랫폼Biz팀장 ■삼성전자 <세트부문 승진자>◇부사장△고승환 김경환 김이태 김학상 성일경 윤장현 이강협 이기수 이병준 이준희 장성재 정현준 주창훈 최방섭 최승범 홍두희 Joseph Stinziano(스틴지아노) ◇전무△고대곤 김강태 김경훈 김기훈 김병도 김상우 김세호 김수진 김인식 김정식 김창업 문승도 박성호 배광진 안재우 오치오 원종현 유미영 윤종덕 윤준오 이광렬 이기호 이시영 이원준 이학민 이헌 장문석 정재신 정호진 조인하 한상숙 황태환 Menno Van Den Berg(메노) ◇상무△공병진 권기덕 권기덕 권영재 권태훈 권호범 김륭 김문수 김민우 김상윤 김성구 김용훈 김은하 김재홍 김찬무 김찬호 김태훈 김현종 노수혁 라병주 박민규 박성제 박장용박재현 박준영 박충신 박행철 박형민 배희선 손석준 신규범 안대현 양시준 염강수 오창호 유한종 이경준 이대성 이동진 이상수 이성원 이승철 이승호 이윤경 이윤수 이정원 이준 이지훈 이현우 임아영 장우영 장준희 전소영 전승수 전진규 정희재 조유성 조익현 조철형 조희권 주형빈 최경수 최병철 최병희 최영일 최재혁 최종무 한종호 허진욱 허훈 현대은 Dmitry Kartashev(드미트리) ◇마스터△문한길 정석재 최항석 함명주 ◇전문위원△전무급 김용재 박철우 정서형△상무급 권춘기 김재진 윤여완 최호규 <ds부문 승진자=“”>◇부사장△권상덕 김민구 김상규 심은수 윤태양 이석준 이성수 이종열 최길현 최완우 한인택 한진만 홍형선 황기현 ◇전무△고관협 박성준 박진영 신성우 안상호 안정착 엄재훈오종훈 이근호 이상재 이은철 이재열 이진엽 조상연 조필주 지현기 최기환 최승걸 최용원 최윤준 최창규 피재걸 ◇상무△고주현 고택균 구봉진 권오겸 김경태 김명오 김봉수김석희 김시우 김용상 김윤재 김태정 노강호 노승남 박동욱 박봉일 선동석 손동우 송기재 신민호 신인철 이강규 이윤성 이호 임재우 장순복 전대호 전진완 정승진 정용덕 정재용 조욱래 진인식 천기철 최삼종 최윤석 최현호 홍준식 Seishu Arai(아라이) ◇펠로우△윤보언 ◇마스터△김상준 김익수 문성욱 배근희 성석강 손영훈 우동수 이민우 임현욱 전찬희 조정현 최윤석 ◇전문위원△전무급 오경석 임석환 주혁△상무급 이병진 황호송 ■제일기획 △부사장 윤석준△전무 진우영△상무 기민수 김태경 김형구 박찬규 이화준 정유석 ■에스원 △전무 정창문△상무 강항식 김경산 송대곤 ■삼성전기 △부사장 안정수△전무 김응수 이운경 장정환 조강용 최재열△상무 곽준호 김동진 김성민 김성훈 김태영 김현우 서정욱 이충은 장훈근△마스터 안영규 ■삼성SDI △부사장 김윤창 심의경△전무 김익현 박정준 박효상 이재영△상무 강용해 김진욱 김태안 나재호 방선희 오 영 오인석 유아름 윤장호 이경근 이종화 장운석△마스터 윤석준 ■삼성SDS △부사장 강석립△전무 금기호 김동관 김종필 백동훈 안대중△상무 김영권 김익상 김정민 김학길 박정미 양재영 윤효진 이지환 정영훈 조상원 최규만 한상원 ■SK하이닉스 △신규 연구위원(Fellow) 김백만 이민규 이상호 이세호 이주엽 ■동국제강 △이사 정순욱 남돈우△상무 이대식 장선익 권오윤 ■세아그룹 △전무 홍만기 홍상범 성지경△상무 변영길 서한석 이기웅△이사 조희현 윤찬식 박건훈 김용현△이사보 조현용 김기현 김호경 권세일 장창범 ■서울아산병원·아산사회복지재단 ◇서울아산병원△진료부원장 이제환△관리부원장 임종진△기획조정실장 박수성△경영지원실장 박철완△홍보부실장 강석규 ◇아산사회복지재단△경영지원실장 김유성 ■한국폴리텍대학 △한국폴리텍Ⅳ대학 학장 박봉순
  •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심훈은 1930년에 ‘필경’(筆耕)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당시 일제에 짓밟혔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원고지에 붓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후에 심훈이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지은 집 ‘필경사’의 당호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 치하의 농민들의 현실을 필경하듯 지은 소설 ‘상록수’를 창작한다. 그는 어찌하여 시도 집도 모두 ‘필경’이라 칭했던 것일까. 게다가 또 무슨 이유로 당대의 인기 소설가이자 시인, 연극과 영화배우이면서 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 신문사의 기자이기도 했던 팔방미남이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썼던 것인가. 그 이유를 찾아 충남 당진에 있는 심훈의 필경사로 가 보았다.1901년 경기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1926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필명인 ‘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흔히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하고, 법원에선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그 당시 복역한 지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출소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선에 돌아와 최초의 영화소설을 썼고, 영화 ‘장한몽’의 이수일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기세를 이어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심훈이 제작한 영화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와 신문 연재소설을 쓰며 영화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 냈는데 이 역시도 일제에 의해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하게 된다. 다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이유였다. 연이어 1930년 3·1운동을 기념하고자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해 시집으로 출간하려던 계획 역시도 출간금지에 처하면서 무산됐다. 이때 출간하지 못한 시집은 심훈의 사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시집 ‘그날이 오면’의 이야기다.“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사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마를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시집 ‘그날이 오면’의 머리말 중에서) 3·1운동 이듬해 경성방송국 문예담당 기자로도 입사했지만 사상 문제로 퇴직한 심훈은 아버지와 친척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던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다. 장조카인 심재영의 집에서 2년여간 기거하면서 필경사의 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 이후 필경사에서 쓴 소설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돼 그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소설가 심훈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언제나 푸르른 나무의 눈, 계몽 소설 ‘상록수’는 당진 부곡리에서 심재영이 벌이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토대로 경기도 반월면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심재영은 박동혁으로,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등장했다. 소설은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측에서 벌인 문자보급운동을 소설의 첫머리에 두고 시작한다. 일제가 추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교육이 금지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훈은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계몽운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의 러브 라인만 심훈의 상상이고 그 외의 모든 정황들은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소설 ‘상록수’ 중에서) 심훈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의 선각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불어넣어 농촌계몽소설을 썼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동아일보의 판매 부수가 늘었고, 신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소설가 심훈의 인기와 계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방증한다. 심훈은 동아일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상록학원에 기증해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 1936년 상록수의 단행본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마친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과 호외 당진에서 잠시 상경했던 심훈은 때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호외를 접하게 된다. 너무도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의 뒤쪽에 썼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 작품은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손기정의 우승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중에서)●바다 옆에 놓인 심훈기념관 심훈이 일생 동안 부르짖었던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가치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인 당진의 필경사 주변으로는 심재영 고택과 심훈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이 오면’ 기념비와 심훈의 동상도 오롯하게 서 있는 곳이다. 심훈의 생전에는 필경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개간된 이후로는 바다가 조금 멀어졌다고 한다. 필경사의 창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데, 그 안에 심훈이 썼던 책상이 보존돼 있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기념관 내부로 책상을 옮겼다.한때 교회로 이용되기도 했던 필경사는 유족들과 심훈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다시 본연의 필경사로 돌아왔다. 서른다섯 해를 살다간 그의 사후에 서른여섯 해의 두 배가 훌쩍 넘도록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다양한 활동만을 이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녔던 민족성에 대한 고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농촌계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일들과 그의 시와 소설이 만난 자리의 깊은 울림이 아닐까. 상록학원은 현재 상록초등학교가 돼 여전히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배움터로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록수이자 심훈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한 글자씩 배운 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읽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그리고 심훈.바닷가 옆 필경사의 자리는 심훈만의 터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든 손길들이 주인인 곳이다. 누구든 와서 무엇이든 깨우치고 가는 자리, 그리하여 다시 이 자리는 이파리가 푸른 나무 밑에 앉아 어쩌면 아직도 오지 않은 ‘그날’을 헤아리며 하늘의 뜻을 받아 적는 자리인 당진 심훈기념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윤호중 “윤석열, 정말 도 넘는 수사해 와…추미애 결단할 때”(종합)

    윤호중 “윤석열, 정말 도 넘는 수사해 와…추미애 결단할 때”(종합)

    尹, 조국 가족·월성 원전 중단 수사 겨냥 해석“대통령 개입할 일 아냐, 야당 정치공세”“秋·尹국조는 같이 해야…단, 尹수사 뒤에” ‘야당 간사 사보임’ 발언에 “사과할 일 아냐”국회 법사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직무배제와 징계 처분 청구 후 법무부 징계위 결정을 앞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이 그동안 해온 수사는 정말 도를 넘는 수사였다”고 비난했다. 윤 의원은 일선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치가 법치주의를 훼손한 위법 부당한 행위라며 추 장관의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해 선을 그으며 “지금이 결단해야 할 때”라고 추 장관을 옹호했다. “추미애 책임론? 정의로운 검찰 정착 위해 어려움에도 끌고 나간 것” 윤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여권을 겨눈 수사를 하다가 찍어내기 당한다는 지적’에 대해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안 했나, 지금도 하고 있고 계속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여당은 월성 원전 조기 가동 중단에 정부가 조작·개입했다 감사원 발표에 따라 대전지검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원전수사를 착수하자 윤 총장을 맹비난해왔다. 윤 총장은 지난해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투기 의혹 등이 제기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일가 수사를 지휘하면서 여당의 뭇매를 맞았다.문 대통령이 직접 현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법무부의 징계절차”라며 “대통령을 자꾸 끌어들이려는 것은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책임론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검찰과 사법체계가 정착되려면 지금이 결단해야 할 때”라며 “그런 일을 추 장관이 어려운 가운데서 끌고 나간 것”이라고 옹호했다. 윤 의원은 야권의 국정조사 공세에 대해선 “윤 총장과 추 장관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국조를 하면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윤 총장은 징계위 심사 중이고, 일부 사안은 수사의뢰됐다. 이런 게 일단락돼야 국조가 가능하다”고 했다. 법사위에서 ‘야당 간사 사보임’을 언급한 일로 사과 요구를 받는 데 대해 “사과할 일 없다. 막말을 한 것도 아니다”라고 받아쳤다.윤호중, “윤석열 국회로 출발”하자“누구 멋대로” 법사위 즉각 산회 김도읍, 尹직무정지에 추·윤 국회출석 요청윤, 김 의원 보좌관 겨냥 “제대로 보필해” 법사위원장인 윤 의원은 지난달 26일 윤 총장의 출석을 요구하는 야당을 향해 ‘간사 사보임’을 거론했다가 반발을 샀다. 그는 국회서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에 대해 “사전 협의조차 안 하고 일방적으로 간사 활동을 해 불쾌감을 느꼈다”면서 “국민의힘 원내대표께서 김도읍 간사를 사보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공식 요청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의 보좌관에 대해 “좀 제대로 보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미국 의회에는 입법보좌관 자격시험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김 의원 측 보좌관 자질을 깎아내렸다. 윤 위원장은 이어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김 의원에게 “협의를 전혀 하지 않는 자세로는 간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이에 김도읍 의원은 “이제 법사위원장이 야당 간사 직무도 정지시키려 하느냐”며 “왜 남의 당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항의했다. 자신의 보좌관을 두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우리 방 식구들도 인권이 있고 인격이 있다”며 “그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김 의원은 25일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및 징계 처분 조치에 대한 현안 질의를 위해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국회 법사위 출석을 요청했다. 김 의원이 “윤 총장이 국회로 출발했으니 기다려달라”고 하자 위원장인 윤 의원은 “위원회가 요구한 적도 없고, 의사일정이 합의된 것도 아니다”라면서 “누구하고 이야기를 해서 검찰총장이 멋대로 들어오겠다는 것이냐”며 즉각 산회를 선포했다. 윤, 조수진에 “찌라시 만들 때 버릇 유감” 윤 위원장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두고도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찌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 것 같아 유감스럽다”며 “회사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웃었다. 조 의원이 동아일보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사과를 촉구하며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동아일보 출신이라고 꼬집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고] 정은영씨 부친상, 김제덕씨 별세, 강윤주씨 모친상

    ■ 정은영(HSBC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 정진구씨 별세, 정은영(HSBC코리아 대표)씨 부친상, 29일 오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 1일 오후 1시, 장지 자하연 일산. 02-3410-3151 ■ 김제덕(영남일보 기자)씨 별세 △ 김제덕(영남일보 기자)씨 별세, 29일 오후 3시 30분, 경북 영주기독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2월 1일 오전 9시. 010-9485-6361 ■ 강윤주(한국일보 기자)씨 모친상 △ 박정임씨 별세, 강장희씨 부인상, 경신(강서구립 등빛도서관 팀장)·윤주(한국일보 기자)씨 모친상, 신영희씨 시모상, 정윤철(동아일보 기자)씨 빙모상, 29일 오후 1시44분,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 VIP실, 발인 12월 1일 오후 1시. 02-2152-1349
  • 이낙연의 ‘저돌적 尹 때리기’ 왜

    이낙연의 ‘저돌적 尹 때리기’ 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 정리에 팔을 걷어붙였다. 절제된 표현과 엄중한 의사 결정이 강점인 이 대표가 이례적으로 저돌적 승부를 걸었다. 윤 총장 거취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가르고, 이는 곧 이 대표의 차기 대권 레이스와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윤 총장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야당의 역공에 휘둘리고 있다. 법사위 매파로 분류되는 박주민·김종민 의원조차도 국정조사에 선을 긋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야당의 집중 표적이 됐다. 동아일보 후배인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윤석열 국정조사를 꺼냈다가 ‘진문(진실한 친문) 기류’만 실감하고 있다”며 “이 대표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비꼬았다. 해프닝으로 끝나고 있는 국정조사 논란은 이 대표가 윤 총장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 잘 드러난다. 이 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것을 두고 흔들리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친문의 반(反)윤석열 정서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현직 광역단체장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세균 국무총리가 윤 총장 거취에 입을 떼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보장해야 하고 법무부 징계위 결과 없이 윤 총장을 해임하기 어려운 법적·정치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이 대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총장 문제가 정치적으로 잘 해결되면 문 대통령의 보조 역할로 지지율을 키워 온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일 시작되는 윤 총장 직무배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재판에서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 주면 이 대표의 스텝도 꼬이게 된다. 이 대표가 윤 총장 공격의 핵심으로 ‘판사 사찰’ 의혹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 판단이 다르게 나온다고 해서 사법부를 공격하긴 어렵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윤석열 정리’ 팔 걷어붙인 이낙연의 승부수

    ‘윤석열 정리’ 팔 걷어붙인 이낙연의 승부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 정리에 팔을 걷어붙였다. 절제된 표현과 엄중한 의사 결정이 강점인 이 대표가 이례적으로 저돌적 승부를 걸었다. 윤 총장 거취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가르고, 이는 곧 이 대표의 차기 대권 레이스와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윤 총장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야당의 역공에 휘둘리고 있다. 법사위 매파로 분류되는 박주민·김종민 의원조차도 국정조사에 선을 긋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야당의 집중 표적이 됐다. 동아일보 후배인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윤석열 국정조사를 꺼냈다가 ‘진문(진실한 친문) 기류’만 실감하고 있다”며 “이 대표의 신세가 처량하다”고 비꼬았다. 해프닝으로 끝나고 있는 국정조사 논란은 이 대표가 윤 총장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 잘 드러난다. 이 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것을 두고 흔들리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친문의 반(反)윤석열 정서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현직 광역단체장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세균 국무총리가 윤 총장 거취에 입을 떼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보장해야 하고 법무부 징계위 결과 없이 윤 총장을 해임하기 어려운 법적·정치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이 대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총장 문제가 정치적으로 잘 해결되면 문 대통령의 보조 역할로 지지율을 키워 온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일 시작되는 윤 총장 직무배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재판에서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 주면 이 대표의 스텝도 꼬이게 된다. 이 대표가 윤 총장 공격의 핵심으로 ‘판사 사찰’ 의혹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 판단이 다르게 나온다고 해서 사법부를 공격하긴 어렵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이 대표의 측근을 4월 총선 당시 불거진 ‘옵티머스 복합기 임대료 대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도 악재다. 이 측근은 자원봉사자 신분이었기에 이 대표까지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은 작지만, 야당의 정치적 공세는 거세질 전망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만선’ 쓴 소설가 겸 극작가 천승세 별세… 81세

    ‘만선’ 쓴 소설가 겸 극작가 천승세 별세… 81세

    희곡 ‘만선’을 쓴 소설가 겸 극작가 천승세 작가가 27일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소설가 박화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 등을 지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와 국립극장 현상문예에 희곡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에는 북태평양 어선에 승선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 어민사를 정리한 대하소설 ‘빙등’을 연재했으나 안기부의 압력으로 연재 중단이라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소설집 ‘황구의 비명’(1975), ‘신궁’(1977), ‘감루연습’(1978)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깡돌이의 서울’(1973), ‘낙과를 줍는 기린’(1978) 외에 다수의 콩트집과 수필집을 출간했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만해문학상, 성옥문화상 대상, 자유문학상 본상 등을 받았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을 지냈다. 빈소는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9일 오전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민주 “제 식구 불법 감싸기” 檢 집단행동 비판

    민주 “제 식구 불법 감싸기” 檢 집단행동 비판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에 반발한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제 식구 불법행위 감싸기’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찰을 불법행위 옹호 세력으로 낙인찍으며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불법 사찰은 정당한 검찰 업무가 아니며, 법치주의를 훼손한 것은 바로 검찰”이라면서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일은 검찰 내부에 만연한 불법 불감증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종민 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우리 검사님들은 윤 총장이 정치적으로 되게 멋있다, 살아 있는 권력과 싸운다고 이렇게 볼지 모르지만 정말 많은 국민이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고 맹폭했다. 그러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해당되는 목소리만 낸다. 국민들한테 지지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민주당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판사 정보 수집을 ‘불법 사찰’로 규정하고 이를 앞세워 윤 총장과 검찰을 강도 높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법안심사소위 도중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법사위에서는 윤 총장의 국회 출석 문제를 두고 이틀째 이어진 여야의 감정싸움이 폭발했다.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찌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발단은 조 의원이 윤 위원장을 항의 방문한 뒤 기자들에게 “이낙연 대표의 ‘윤석열 국정조사’ 주장에 대해 윤 위원장이 ‘이 대표가 격리 중이라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고 면담 내용을 전하면서다. 그러자 윤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격리 중이라 아직 지시를 못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지시를 못 받았다’는 부분을 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의원이 몸담았던 동아일보를 ‘찌라시’라고 깎아내렸다. 이에 국민의힘 법사위원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이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소통수석을 거쳐 당선된 윤영찬 의원이 찌라시 출신인지, 신문 매체 자체가 찌라시라는 것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윤 의원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또 윤 위원장이 국민의힘 간사인 김도읍 의원의 사보임을 요구하고, 김 의원 보좌진의 자격을 운운한 발언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왜 느닷없이 자신의 싸움판에 보좌진 자격을 들먹이면서 총질을 해 대는지 기가 찰 노릇”이라며 법적 대응을 경고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윤호중 “찌라시 만들 때 버릇” “김도읍 교체하라”…野 반발

    윤호중 “찌라시 만들 때 버릇” “김도읍 교체하라”…野 반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윤석열 검찰총장 출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과 정면충돌했다. 윤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에 대해 “사전 협의조차 안 하고 일방적으로 간사 활동을 해 불쾌감을 느꼈다”며 “국민의힘 원내대표께서 김도읍 간사를 사보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공식 요청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은 오전 10시 전체회의 개의에 앞서 윤 위원장을 항의방문했다. 특히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윤 위원장이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전체회의 개의 요구서를 통보하지 못하도록 법사위 행정실에 지시했다”며 “윤 총장이 출석할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윤 위원장이 국민의힘 간사 교체(사보임)를 요구한 것이다. 그는 심지어 김 의원 보좌관과 관련해서는 “좀 제대로 보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미국 의회에는 입법보좌관 자격시험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을 도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비꼬기도 했다.윤 위원장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선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찌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 것 같아 유감스럽다”며 “회사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조 의원이 동아일보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윤 위원장은 이어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김 의원을 향해 “협의를 전혀 하지 않는 자세로는 간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 의원은 “이제 법사위원장이 야당 간사 직무도 정지시키려 하느냐”며 “왜 남의 당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또 자신의 보좌관을 두고 한 발언에 대해 “우리 방 식구들도 인권이 있고 인격이 있다”며 “그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윤 위원장은 해당 발언이 사실이라면서도 “사과할 일은 아니다. 보좌관 선배로서 한 얘기다. 제가 보좌관 선배 모임의 회장”이라고 반박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文대통령, 주일대사에 ‘일본통’ 강창일 내정…“미래지향적 관계로”

    文대통령, 주일대사에 ‘일본통’ 강창일 내정…“미래지향적 관계로”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새 주일대사에 ‘일본통’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강창일(68) 전 의원을 내정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여권내 대표적 일본통 강 전 의원을 내정한 것은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둘러싸고 경색된 한일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일본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을 맞아 대일 전문성과 경험, 오랜기간 쌓아온 고위급 네트워크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 오현고 출신인 강 전 의원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에서 각각 동양사학과 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객원교수를 지냈다. 제주를 지역구로 17대부터 내리 4선을 지낸 그는 국회의원 재직 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과 수석부회장,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동갑내기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시절부터 연을 맺었으며 한일의원연맹 활동을 함께 하고, 현재도 이 대표를 돕고 있다. 오영훈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강 내정자의 보좌관 출신이다. 강 내정자는 여권 인사로는 드물게 일본 자민당 내 네트워크도 탄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스가 체제의 출범을 뒷받침한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일본의 새로운 내각 출범에 따라 한일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강 내정자는 오랫동안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갖고, 한일 의원연맹 회장 등으로 고위급 네트워크를 쌓아왔다. (현 국면에서) 정통 외교관 보다는 정치인 출신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일대사 교체는 남관표 현 주일대사의 지난해 5월 부임 이후 1년 반 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관표 대사는 아베 내각에서 1년 6개월 재직했고, 한일 관계 개선 노력해 왔는데 1년 6개월 박 정부 이후로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 재임”이라고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초특급 특보단’ 꾸린 이낙연 vs 경기권 독자세력 키우는 이재명

    ‘초특급 특보단’ 꾸린 이낙연 vs 경기권 독자세력 키우는 이재명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경쟁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 구도로 형성된 가운데 이들을 둘러싼 핵심 인물들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4·15 총선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후원회장을 시작으로 전당대회와 주요 당직 인선을 통해 지지 기반을 다져 온 이 대표는 최근 지역·세대·직능을 광범위하게 아우른 24명의 초특급 특보단을 구성해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반면 중앙 정치 무대가 아닌 경기권을 중심으로 독자 세력을 키워 온 이 지사의 경우 ‘기본 시리즈’로 대표되는 이재명표 정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용을 꾸리고 있다. 이 대표의 특보단장으로 임명된 이개호 의원(3선)은 대표적인 이낙연계 인사다. 2014년 이 대표의 전남지사 출마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공동 단장을 맡은 전혜숙·김철민·박완주 의원은 8·29 전당대회 때 이 대표의 주축 라인이 됐다. 5선 설훈 의원 역시 이 대표가 동아일보 기자로 동교동계에 출입하던 때부터 알고 지낸 연이 깊다. 최장수 국무총리 역임 후 당권을 잡아 순차적으로 대선가도를 닦고 있는 이 대표의 경우 호남을 기반으로 친문(친문재인)·청와대·부산경남(PK) 출신 등을 두루 포섭하며 지지세력을 확장한 게 특징이다. 8·29 전대 이후 당직 인선을 통해 친문 핵심인 박광온 의원(3선)을 사무총장에 앉혔고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의 김영배(초선) 정무실장,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의 오영훈(재선) 비서실장, PK 출신 최인호(재선) 수석대변인을 임명했다. 여의도 밖에서는 이 대표가 국무총리일 때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이 실무를 도맡고 있다.이 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는 김재용 경기도 정책공약수석과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이 꼽힌다. 지난 7월 임명된 김 수석은 1993년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초대 의장 출신으로,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고 한국매니페스토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낸 선거 정책 및 공약 전문가다. 이 원장은 2016년 이 지사와 함께 다니엘 라벤토스의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했고 조세재정연구원과의 지역화폐 논쟁 때 반박 자료를 내는 등 이 지사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지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인물로는 이재강 평화부지사와 정진상 비서실 정책실장, 그리고 현재 킨텍스 사장으로 재직 중인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김용 전 대변인 등이 꼽힌다. 최근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에 임명된 제윤경 전 의원 역시 이 지사와 ‘주빌리은행’(채무취약계층의 채무 조정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학연이나 계파 중심의 세력이 없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내에서는 소수이긴 해도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성호(4선) 의원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김영진(재선) 의원, 정무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병욱(재선) 의원, 이규민(초선) 의원 등 경기권 의원들이 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특보단으로 외연 확장하는 이낙연 vs 독자 세력 키우는 이재명

    특보단으로 외연 확장하는 이낙연 vs 독자 세력 키우는 이재명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경쟁이 현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 구도로 형성되면서 두 사람을 둘러싼 핵심 인물들에도 관심이 쏠린다.24명 초특급 특보단...지역·세대 넓히는 이낙연 특보단장 이개호·동교동계 설훈·친문핵심 박광온 지난 4·15 총선에서 공동선대위원장과 후원회장을 시작으로 전당대회와 주요 당직 인선을 통해 지지 기반을 다져온 이 대표는 최근 지역·세대·직능을 광범위하게 아우른 24명의 초특급 특보단을 구성해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특보단 임명식에서 “역대 어느 대표 시절에도 특보는 늘 있었다. 저만 특별히 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역대급 규모의 특보단은 사실상 이 대표의 캠프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보단장으로 임명된 이개호 의원(3선)은 대표적인 이낙연계로 꼽힌다. 2014년 이 대표의 전남지사 출마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공동 단장을 맡은 전혜숙·김철민·박완주 의원 역시 8·29 전대 때 이 대표의 주축 라인이 됐다. 5선 설훈 의원 역시 이 대표가 동아일보 기자로 동교동계에 출입하던 때부터 알고 지낸 연이 깊다. 최장수 국무총리 역임 후 당권을 잡아 순차적으로 대선가도를 닦고 있는 이 대표의 경우 호남을 기반으로 친문·청와대·PK 출신 등을 두루 포섭하며 지지세력을 확장한 게 특징이다. 8·29 전대 이후 당직 인선을 통해 친문 핵심인 박광온 의원(3선)을 사무총장에 앉혔고,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의 김영배(초선) 정무실장,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의 오영훈(재선) 비서실장, PK 출신 최인호(재선) 수석대변인을 임명했다. 여의도 밖에서는 이 대표가 국무총리일 때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이 실무를 도맡고 있다. 이재명 “성과낼 수 있어야”...경기권 독자세력 구축 경기연구원 이한주·평화부지사 이재강·예결위원장 정성호 반면 중앙 정치무대가 아닌 경기권을 중심으로 독자 세력을 키워온 이 지사의 경우 ‘기본 시리즈’로 대표되는 이재명표 정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들로 진용을 꾸리고 있다. 이 지사의 정책 브레인으로는 김재용 경기도 정책공약수석과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이 꼽힌다. 지난 7월 임명된 김 수석은 1993년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초대 의장 출신으로,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하고 한국매니페스토정책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선거 정책 및 공약 전문가다. 이 원장은 2016년 이 지사와 함께 다니엘 라벤토스의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했고, 조세재정연구원과의 지역 화폐 논쟁 때 반박 자료를 내는 등 이 지사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지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핵심 인물로는 이재강 평화부지사와 정진상 비서실 정책실장, 그리고 현재 킨텍스 사장으로 재직중인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 김용 전 대변인 등이 꼽힌다. 최근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에 임명된 제윤경 전 의원 역시 이 지사와 ‘주빌리은행’(채무취약계층의 채무 조정을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학연이나 계파 중심의 세력이 없기 때문에 같이 일을 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내에서는 소수이긴 해도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성호(4선)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김영진(재선) 의원, 정무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병욱(재선) 의원, 이규민(초선) 의원 등 경기권 의원들이 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한 권의 책은 예술이자 삶… 오늘도 또 다른 운명을 펼친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서울 중구 한길사 ‘순화동천’에서 그를 만났다. 새삼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이번에 신작 ‘그해 봄날’이 나왔기 때문이다.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에는 한국 현대사의 최전선에 섰던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가 담겼다. 그 책에 관한 이야기, 걸어온 책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물론 김언호는 세상이 다 아는 우리나라 대표 출판인이다. 그는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그 이듬해에 한길사를 창립한 이래 45년 동안 우리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중요한 책들을 최량의 품격으로 펴낸 출판인이자 스스로 중요한 책을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그동안 ‘책의 공화국에서’,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계보를 잇는 ‘그해 봄날’은 그의 정신적 수원(水源)이 돼 준 당대 현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현대 지성사라고 불릴 만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그해 봄날’의 현인들을 찾아 ‘그해 봄날’은 1980년 ‘서울의 봄’을 함축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봄이자 김언호 개인에게는 이 책 속 주인공들과 만나게 된 봄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어진 거인들을 그때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시대는 암담해져 갔지만 이분들과 새로운 미래를 구상했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감사하기만 하다. 코로나19와 함께 꼬박 1년여의 시간을 바친 이 책에서 그는 이분들에 대한 해설이나 논평을 가급적 삼가고 “해석을 앞세우지 않고 현인들 육성을 충실히 받아 적는 기록자”이고자 했다. 누군가의 치열한 생애는 다른 누군가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역사가 된다. 이 책에 기록된 열여섯 분의 삶과 언어는 김언호의 시선을 통해 한 시대의 증언과 사표와 지도가 됐다. 그해 봄날부터 이분들이 건넨 정신사의 울림과 떨림이 아직도 깊고 융융하기만 하다. 그는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현대사의 인물지(誌)를 낱낱의 충실성과 정성스런 헌정으로 완성함으로써 스스로 ‘한 권의 책’이 됐다. 김 대표는 그분들과의 만남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공공재이고, 흘러간 옛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현재형임을 알려 준 것이다.“험난한 시절 저는 이 현인들을 만나고 책을 만들면서 불굴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길을 배웠습니다. 이 땅 젊은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현인들의 생각과 실천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목록은 함석헌, 김대중, 송건호, 리영희, 윤이상, 강원용, 안병무, 신영복, 이우성, 김진균, 이이화, 최영준, 이오덕, 이광주, 박태순, 최명희 선생들이다. 정치인, 사상가, 예술가, 언론인, 학자가 망라됐다. 그 가운데 그는 함석헌을 맨 앞에 수록했다. “인생의 스승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함석헌 선생을 꼽는다”는 그는 “선생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며 “지금도 우리에게 탕진되지 않는 감동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1980년대 지성사를 가로질렀던 함 선생은 걸출한 사상가이자 평화주의 종교인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특별히 내 기억에는 ‘수평선 너머’라는 시집을 남긴 시인으로 남아 있는 함 선생의 육성이 잠시 떠올랐다.●책과 함께하고 책을 확장해 간 삶 김 대표의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그는 거기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 밑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일과 책 만드는 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 손이 조금이라도 더 가면 반듯해지고 풍부해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책이 없었고 당연히 서점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 책방을 통해 책의 세계를 발견한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그야말로 황홀한 책의 난장이자 유토피아였다. 그곳에서 ‘사상계’를 만났다. 서울에서 대학 시절 동대문에 줄지어 서 있던 헌책방을 열심히 찾아 민족사적 해석과 전망을 내놓은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그때 인문, 사회, 역사, 철학이 한 몸이라는 걸 배웠다. 그가 창립한 출판사 ‘한길’은 우리말로 ‘큰길’, ‘하나의 길’ 혹은 ‘마당’이나 ‘광장’을 함의한다. 어쩌면 그 ‘한길’로 김 대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엄혹한 시절을 걸어갔을 것이다. “너무도 어려웠지만 오히려 그 시대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혹했던 시대가 더 치열한 사유와 고민과 전망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김 대표는 그러한 사유와 고민을 ‘책’이라는 전망으로 담아냈다. 책을 만드는 시간은 그에게 둘도 없이 귀한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시대정신이 사람들을 발견하게 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통찰하게 해 주었다. “1980년대를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때를 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시대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길사가 1979년 출간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당대의 금기를 깨면서 한국사의 실증과 해석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움직인 책인데 어쩌면 시대가 그 책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술회한다. 김 대표는 책을 만드는 일을 넘어 여러 출판 관련 일에 나선다. 그는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기 위원을 지냈고, 2005년부터는 한국·중국·일본·타이완·홍콩·오키나와의 출판인들과 동아시아출판인회를 조직해 출판운동에 나섰다. 1980년 후반엔 파주출판도시 건설, 1990년대 중반에는 예술인마을 헤이리를 설계에 큰 역할을 하면서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임했다. 출판 관련 운동을 확장하면서 그는 출판인들과 함께 출판문화를 발전시키려는 지속적인 실천을 해 왔다. 이 점, 김 대표를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축일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도, 예술인마을 헤이리도 모두 혼자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한 시대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운동으로만 가능했지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혼자 열 걸음 걷는 것보다 손잡고 함께 한 걸음 걷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책’이라는 단어에 꽂힌 사람이다. 원래 ‘冊’(책)이란 죽간을 끈으로 엮어 놓은 모양을 본뜬 일종의 상형문자가 아니었던가. 최근 책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디지털이라는 무형의 문화가 발전했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책향’(冊香)과 함께 살아가는 ‘책’의 사제다. “책은 세계에 눈뜨게 해 주는 유일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그는 “책을 통해서만이 삶의 가치를 알아가고 개인과 사회를 설계해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대표는 그러한 믿음을 반세기 동안 책을 만들면서 굳히게 됐다고 고백한다. ‘책’이라는 경이로운 발명품을 통해 인류는 진화해 왔고 한국 사회도 이만한 발전을 해온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디지털의 힘은 정보의 집적에 있고 종이책은 그야말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그의 움직일 수 없는 지론이었다. 책을 읽고 만들고 써온 그의 일생도 이러한 믿음 위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예술로서의 ‘한 권의 책’ 연전에 그는 출판인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통해 책에 바치는 헌사를 완성한 바 있다. 그는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서점에서 만났고 시간을 죽였으며 거기서 좋은 책을 발견하고 기뻐하지 않았던가. 옆구리에는 책을 끼고 가방에는 세계의 가능성을 담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렇게 한 시대의 빛으로 가득한 서점의 광휘를 아름답게 담은 결실이 ‘세계서점기행’이었다. 이제 그는 어떤 책을 읽고 내고 써 갈까? 그는 “고전 문제작을 읽음으로써 사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며 고전을 강조했다. 특별히 감염병과 관련해 재난의 근원과 진단과 처방에 관련한 인문학적 비전을 담은 책들을 생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책 만들기와 책 읽기 없이는 창조적이고 품격 있는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는 ‘한 권의 책’이 한 시대의 생각과 말씀을 담아낸다는 정신으로 쉬지 않고 책을 펴낼 것이다. 그는 국가가 개입해 도서관을 풍요롭게 구축해 가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역설했다.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 선진국들은 도시 곳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좋은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요. 책이라는 희망을 아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도서관 정책이 긴요합니다.” 김 대표는 ‘한 권의 책’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글이 아름답듯이 그것을 담아내는 책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영국 아티스트 윌리엄 모리스를 통해 ‘아름다운 책’을 배웠다는 그는 모리스가 말한 “인간의 예술품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 건축이고 그다음이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을 거듭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운명입니다. 운명을 걸고 책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그 고민은 제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의의이기도 합니다.” 책 만드는 운명을 사랑하는 ‘작가 김언호’의 생각과 실천이 ‘그해 봄날’처럼 쏟아지는 늦가을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씨줄날줄] 종합편성채널/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종합편성채널/전경하 논설위원

    종합편성채널(종편)은 2009년 7월 22일 ‘미디어3법’(신문법·방송법·인터넷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출범이 가능해진 방송이다. 이른바 미디어3법 통과로 대기업과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은 10%, 종편과 보도전문채널은 각각 30%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이듬해인 2010년 12월 31일 조선일보(TV조선)·중앙일보(JTBC)·동아일보(채널A)·매일경제(MBN)를 종편사업자로, 연합뉴스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로 선정했다. 올해가 종편 도입 10주년이다. 종편은 보도, 교양, 예능, 드라마 등 지상파에서 방송하고 있는 모든 장르를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이다. 단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서만 방송한다.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3~4년 단위로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를 받는다. 방통위가 정한 점수(1000점 만점에 650점)를 받지 못하면 조건부 재승인, 재승인 거부 결정이 내려진다. 재승인 심사 시기가 되면 방송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난다. 10년 전에도, 재승인 심사가 진행된 2014년과 2017년에도 그랬다. 미디어3법이 날치기 통과된 직후 당시 야당은 헌법재판소에 “국회의원의 표결 심의권을 침해했고, 법도 무효”라며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다. 헌재는 “법은 유효하지만 통과 절차는 문제”라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국회의장이 미디어3법을 재표결에 부치지 않자 야당은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다시 소송을 냈지만 헌재는 5대4로 기각했다. 입법부인 국회가 자율적으로 절차적 하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올해는 TV조선, 채널A, 연합뉴스가 방통위로부터 재승인을 받았고 JTBC와 MBN의 재승인 심사가 남아 있다. 방통위가 10월 30일 내린 MBN에 대한 영업정지 6개월은 재승인과 무관한, 출범 당시의 문제다. MBN은 종편 승인 과정에서 자본금 3000억원을 채우기 위해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올 7월 관련 임직원이 유죄를 받았다. 2014년과 2017년 두 차례 재승인 과정에서도 이를 숨긴 채 재승인을 받았다. 6개월 영업정지 처분에 ‘과도한 징계로 시청권이 침해됐다’는 입장과 ‘승인 취소 사안인데도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법안을 날치기하다 보면 법 조문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통과에만 집착하느라 이후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국회의 입법활동 평가를 발의나 통과된 법안 건수로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악법을 통과시켰는지, 그 악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행령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다면 관련 논쟁에서 진영 논리가 매번 부딪치는 일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lark3@seoul.co.kr
  • [단독 인터뷰] “기억 흐려져 단어 찾는 데 5분… 바로 쓸 말 찾는 건 축복”

    [단독 인터뷰] “기억 흐려져 단어 찾는 데 5분… 바로 쓸 말 찾는 건 축복”

    68세 신장암 수술한 이후 3~4년간 투병최근 치매 경고받아 명사 찾기가 힘들어한 달에 300매 썼는데 최근엔 절반으로개념→용어 사전 없어 딸 도움 받아 집필행복한 노년의 삶은 나도 어찌할 바 몰라다만 나를 다스리며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문열(李文烈), 이름(글월 문, 매울 열)부터 문학적으로 압도한다. 문필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대학 시절, 그의 책들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키웠다. 위로를 받았고, 글이 주는 기쁨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젊은 날의 초상’은 젊은 날의 방황을 어루만졌고, ‘사람의 아들’은 인문학의 깊이를 더했다. ‘시인’은 최고의 문장과 완벽한 구성으로 독서의 참맛을 알게 했다. ‘이문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윤색됐다. 대학 졸업 후 20여년이 흐른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을 찾았다. 고희를 훌쩍 넘긴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교정을 많이 해요. 내 평생에 다시 교정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마지막 교정이라 생각하고 신경 써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 봐도 쓴 글을 다시 고치는 게 쉽진 않던데요. “최근 ‘사람의 아들’ 서문을 다시 썼는데, 쓰는 데 20일 걸렸어요. ‘초한지’ 재판 서문은 원고지 10매 분량의 짧은 글인데도 한 일주일 시달린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예순여덟에 신장암 수술을 하고 3~4년 앓고 헤맸고, 요즘 치매 경고도 받고….” -충격적인데요. 작가님과 치매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기억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특히 명사가 심각해요. 별것도 아닌 명사들이 떠오르질 않아요. 그게 막히면 글도 못 쓰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참고서든 기계든 용어에서 개념으로 가는 건 많은데, 개념에서 용어로 가는 건 없어요. 인터넷에 우울을 치면 우울의 뜻이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해는 지려 하고 날씨도 그렇고 서글프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 우울을 알려주는 기계가 없어요. 그 단어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죠. 개념화하고 부풀려가는 사고 과정도 전만 같지 않아요. 예전엔 자연적으로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기억하고 있던 인용들도 마음대로 인용하지 못하고. 집사람은 사람들에게 치매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들키면 사람들한테 치매 취급당한다고. 들키나 안 들키나 사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단어가 막힐 땐 어떻게 하세요. “그 말을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요. 주로 딸에게 전화하는데, 그 말을 알게 되기까지 빨라야 5분 걸려요. 글을 쓸 때면 보통 1시간에 그런 일이 4~5번 반복되는데, 30분 정도가 그냥 날아갑니다. 그때그때 즉각 떠오르는 건 정말 큰 축복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시는군요. “읽고 쓰는 게 업이나 보니…. 몇 살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세상사 비춰 보니 한 1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80년대엔 매달 평균 원고지 300매 정도를 발표했습니다. 1년에 3000매 정도 되죠. 두툼한 소설 두 권 분량인데, 그렇게 지금까지 60권의 책을 냈습니다. 근데 최근 6년 완고 목표로 연재물을 시작했을 때 한 달에 150매로 계약했습니다. 과거 300매에서 절반으로 확 줄였는데도 1년 반 만에 접었습니다. 중도하차 때까지 매달 150매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최대로 쓴 게 147매였고, 72매를 겨우 쓴 적도 있죠. 능력이 예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젠 원고 집필 시간도 배로 계산해야 하는데, 그것도 지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내년이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이런 변화가 사람을 자꾸 억누르니까 아주 울적합니다.” 치매 얘기로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 듯했다. 그의 작품으로 화제를 돌렸다. 대학 때 ‘시인’을 읽고, 사람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인’을 좋다고 한 독자는 정말 드물게 만났다”며 좋아했다. “‘시인’은 자부심을 갖고 쓴 글인데, 생각보단 국내에서 호응을 받지 못했어요. 판매도 보잘 것 없고, 평론도 정식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근데, 외국 번역판은 ‘시인’이 굉장히 많아요. 스웨덴,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17개국에서 번역돼 나왔습니다.” -다른 안타까운 작품들도 있나요. “내가 다시는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냈던 작품들 중 빛을 못 본 게 ‘시인’과 ‘아가’, ‘호모 엑세쿠탄스’예요. ‘아가’도 상당히 자부심 갖고 냈는데, 평론조차 하나 없습니다. ‘호모 엑세쿠탄스’도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작품이 될 수 있고, 그런 걸 상상하고 구상해서 쓰는 사람을 못 봤는데…. 근간 인용문 중 원고지 300매 분량을 덜어내고 새로 내려 합니다.” -작가님과 같은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 각오로 노력해야 할까요. “어떤 것들은 노력해서 되는 게 있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학습이나 단련과 무관하게 종합적인 계기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감흥과 내 기억과 내 정서가 맞아떨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글이 쭉 이어져 나온다고 할까요.” -예를 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시인’을 쓸 때 시경이나 한시, 중국 시론 같은 걸 엮어 놨는데, 그건 내가 공부한 게 아닙니다. 예전 어디선가 읽었는데, 그게 박혀 있다가 글을 쓰는 순간 튀어나와 줄줄이 연결됐습니다. 죽은 김현 선생이 아주 좋아한 ‘황제를 위하여’나 ‘금시조’에 담긴 시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그 시들을 외웠는지 모르겠는데, 필요할 때마다 인용해서 쓸 수 있게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글의 인연이나 기억의 인연인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것들은 지나쳐 들었는데도 굉장히 강하게 박혀 있다가 필요할 때 탁탁 튀어나왔습니다. 반면, ‘사람의 아들’은 노력의 산물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최초 단편에서 자라나는 책입니다. 시간을 갖고 되풀이해서 만지고, 보완도 여러 번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가서 참고가 될 만한 책도 사오고 했습니다.” -작가님께선 어떠한 삶이 노년의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쎄, 그걸 모르겠어요. 다 잘 아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노년의 행복한 삶을 물으니 묵직하게 다가오는데, 나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으니…. 다만 학문적인 감상 중에 ‘비추’(悲秋)라는 게 있어요. 요즘은 그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아요. 이 가을하고, 내 인생의 가을하고 연관되면서. 근래 3, 4년은 생의 마감을 생각했어요. 인생 칠십, 고래희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매양 죽음은 나와 관계없다, 나는 안 죽을 사람처럼 말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부터 어떤 인연으로 죽든지 간에 불행한 사고로 죽진 않을 거고, 억울한 마음도 없을 거라고 나를 다스리며 죽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중천의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정원으로 나왔다. 이 작가는 인근 산을 가리키며 “매일 저 산을 오르며 만보를 걷는다”고 했다. 먼 산 주위로 노을이 짙어져 갔다. 그는 비추의 감상에 젖은 듯했다. “내게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분한 기대 같아요. 말의 효과가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 시대는 말이 이상하게 망해 버렸습니다. 평생 말을 다루고 말의 효용과 활용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이런 시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말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논리도 뒤집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움이 못 돼 미안할 뿐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이문열(李文烈) ▲1948년생. 안동고 중퇴.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변경’, ‘시인’, ‘호모 엑세쿠탄스’ 등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1세기문학상, 호암예술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동리문학상 수상.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은관문화훈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