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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훈클럽 ‘가짜뉴스 범람…’ 오늘 세미나

    관훈클럽(총무 이기홍 동아일보 대기자)은 14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가짜뉴스 범람 속 뉴스 콘텐츠의 가치’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세미나에서는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과 김진욱(한국IT법학연구소장) 변호사가 주제발표를 한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과 유성운 중앙일보 문화부 미디어담당 기자가 토론자로 나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부산한 비탈길 골목길 하늘길…테스형 경규형 맛있는 이바구

    서울신문은 13일부터 ‘이우석의 미시(微視)여행’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국내 여행지를 매우 좁게 설정해 현미경처럼 샅샅이 훑어보자는 취지의 코너입니다. 연재를 담당할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여행전문가입니다. 글 곳곳에 심어 놓은 저자 특유의 ‘유머 코드’에 즐겁고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부산에 초량동이 있다. 부산역 바로 앞이다. 서울로 따지면 서울역 앞 청파동, 아니 산비탈로 올라서야 하니 후암동쯤 되겠다. 가파른 건 비슷하다. 생각해 보니 목포역 앞에도 유달산이 있다.(왜 역 앞엔 늘 산이 있을까.) 아무튼 초량에 올라가면 부산 역사를 볼 수 있다. 부산역 역사(驛舍)도 보인다. 지명에 산(山)자가 들어가는 부산의 속살이 초량이다. 목포가 항구라면, 부산은 산이다. 부산은 도시 곳곳이 바다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는 그 산(山)의 배(腹)를 가른다.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이랄까. 고개를 들고 엉덩이는 빼고 하늘을 향한 계단을 딛고 하염없이 걸어야만 오를 수 있던 동네에 차로 오르내릴 하늘길이 생겨났다. 산복도로는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을 휘휘 감으며 마을을 가르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있다. 약 반세기 전 생겨난 부산의 허리띠 산복도로, 그중에서도 초량의 이야기다. ●왜구 침입 잦던 목초지서 19세기말 개항도시 초량은 부산의 원도심이다. 근대도시 부산이란 곳이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국제도시로 위용을 당당히 과시하고 있지만 부산은 확실히 조선시대까지는 변방이었다. ‘가마메’란 이름의 부산이 조선 성종 때 부산(釜山)이란 이름으로 문헌에 처음 등장했고 동래(동래, 해운대, 수영 등)와 동평(지금의 부산 도심), 기장현으로 나뉜, 그야말로 촌구석 취급을 당했다. ‘왜구’랬을까? 잦은 왜구의 침입 탓이었다. 16세기 동래도호부로서 경상좌수영과 왜관이 부산포에 설치된 다음에야 부산(사실은 동래)은 뭔가 그럴싸한 도시 기능을 하게 됐다. 조선 후기 들어 조정은 사중면 초량에 왜관과 객사를 세웠고 이곳에서 왜와 외교를 했다. 초량은 그저 교통이 좋은 목초지대일 뿐이었지만 19세기 말 갑자기 주목받았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장에 속했던 까닭이다. 일제(메이드 인 재팬이 아니다)와 청(효녀 아니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량은 국제도시의 이미지를 줄곧 지켜오고 있다. 팽창을 노렸던 일제는 철도와 선박편으로 한반도, 대륙과 연결하기 위해 부산을 주목했고 교통 주거 인프라 등 도시개발을 서둘렀다. 간척을 통해 넓어진 초량 일대는 항만(북항)과 철도를 연결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가 됐다. 청 역시 중앙부두와 철도 건설로 생겨난 일자리를 찾아온 자국민 ‘쿨리’(苦力)를 위해 청관을 세웠다. 지금도 초량 부산역 앞에는 차이나타운이 남아 과거 조계지 시절의 근대사를 엿볼 수 있다. 처음엔 ‘남의 문화유산답사기’였지만 지금은 우리 역사가 됐다. 한국전쟁은 부산에 인구가 대거 유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10만여명에 불과하던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무려 140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임시수도가 되니 당장 거주지가 태부족이었다. 산기슭밖에 없었다. 너도 나도 산에 올라가 판잣집을 지었다. 물론 초량 뒷산에도 올라갔다. 하늘까지 층층 이어진 달동네가 생겨나게 된 사건이다.●백제병원·남선창고… 사람·돈 돌던 이바구길 높이 올라가면 그 역사가 자세히 보일까 싶어 초량을 올랐다. 해발 0m 근처인 부산항, 부산역에서부터 400m 남짓한 구봉산으로 오르는 길. 그 옆이 초량(草粱)이다.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부산의 옛 ‘이바구’(이야기의 사투리)를 들으며 시티투어를 하는 관광 코스로 지정했다. 재미나고 놀라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지금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득실한 해운대와 비교하자면 낡은 원도심 마을이겠지만 애초 초량은 사람도 돈도 돌던 곳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함흥과 원산 바다에서 내려온 배가 초량(그때는 이 일대가 바다였다) 앞에 대고 명태며 고등어를 쏟아냈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수산물 창고를 북선(北船) 창고라 불렀다. 선창 일거리만 해도 넘쳐났다. 전국에서 생선 장수들이 몰려들고 청요릿집엔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전쟁 후 북선 창고는 남선 창고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수산물 유통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상륙하면서 ‘빠’니 ‘비어-홀’이라고 부르는 술집들이 가득한 ‘텍사스촌’이 초량에 생겨났다. 말하자면 서울 이태원 격이다. 이곳을 통해 나온 달러와 군수물자가 부산 국제시장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이바구길’은 초량 외국인 골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아래로 러시아 키릴문자와 필리핀 간판이 가득한 유흥가를 그냥 지나치려고(정말이다) 했지만 이곳에 ‘이바구’가 숨어 있다. 1927년 최용해가 지은 첫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 제645호)이 초량 외국인 거리에 있다. 김해 출신인 최용해는 일본에서 의대를 나와 일본인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건너왔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당시 부산에서 최고 높은 5층 벽돌건물을 짓고 백제병원(그런데 왜 신라병원이 아닐까?)을 열었다. 처음엔 병원이 잘됐지만 돌연 사건이 터졌다. 관리들이 데려온 행려병자 시체를 병원 4층에 보관했던 것이 들통났다. ‘돈 없는 환자가 가서 죽으면 시체를 병원에 두고 표본으로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겁을 먹은 환자들이 외면하며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졌다. 결국 최용해는 일본으로 야반도주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대형 청요릿집과 예식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여지껏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현재는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건물은 일부 허물어진 역사의 잔흔 그대로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커피향만큼은 세련되고 파릇하다. 부산시는 백제병원을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남선 창고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명태처럼 온데간데없지만 상업과 물류의 지력(地歷)만큼은 여전하다. 우연인지 그 자리엔 현재 할인마트가 생겼는데 옛 창고의 담벼락 일부만 남았다. 1900년대 생겨난 국내 최초의 근대 물류 창고였던 남선창고는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한자동맹 중심지)처럼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물류조합을 운영하며 명성을 떨쳤다. 전국에 명태를 공급하던 곳이지만 직접 명태를 서울로 공급하는 경원선이 개통되고, 초량 앞바다가 매립된 후 해운 물류 중심이 부산항으로 옮겨가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누가 알았으랴, 바다가 사라질 줄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반대가 되니 좋은 뜻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까지만 평지다. 이제 산길을 올라야 한다. 초량초등학교 담벼락에는 옛 마을의 서정성을 노래한 이야기들이 그려져 있다. 초량초교는 전통이 오랜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우’인 가수 나훈아와 코미디언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이 이 학교를 다녔다. 아, 나훈아의 ‘테스형’은 다른 곳을 나왔다. 아테네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공부했다. 초량초교 동문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1947년생, 60년생, 67년생이니 시대는 달랐지만 초량의 변화 속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꿈과 재능을 키웠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초량에는 ‘명태 눈깔을 빼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선 창고가 있던 곳이니 예능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 부르는 미래의 가수를 위해 누군가는 눈깔이 없는 명태를 먹었다.●168계단 줄기 삼아 작은 골목 가지처럼 연결 길가에는 1893년 지어진 초량교회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 반대를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주기철 목사가 있었던 교회로 개신교에선 뜻깊은 장소로 알려졌다.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무려 130년 가까이 됐다. 초량은 얼마나 신식 문물이 빨리 들어온 곳이었나. 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이따금씩 부는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제주 올레길처럼 이바구길에는 곳곳에 쉼터가 있다. 쉼터 역시 옛 분위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딱 추억 속 ‘점빵’ 풍경이다. ‘이바구 정거장’에선 국수나 음료를 팔고 ‘168 도시락국’에선 시락국밥과 추억의 도시락을 판다. 쉬어 가며 감성도 충전할 수 있다. 168이란 숫자의 의미는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하늘까지 뻗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높은 계단길이 쉼터 앞에 펼쳐진다. 고개를 끄덕여야 할 만큼 눈에 꽉 들어찬다. 우물가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진 계단이 아찔하다. 168개의 계단이다. 페루 마추픽추의 계단과 닮았다.계단을 큰 줄기 삼아 양옆으로 작은 골목이 가지처럼 이어진다. 초량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168계단은 초량 마을을 이어 주는 동맥이며 소통의 통로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생겨나 ‘도가니’에게 미안하지 않다. 기계 레일 탓에 정취는 덜하지만 인정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어김없이 인사를 나눈다. 관광객들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색할 만큼 모노레일 캐빈 속 공간은 따스하다. 소통이란 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168빵카페가 있다. 고소한 빵과 커피 향에 이끌려 저절로 내리게 된다. 일명 ‘홍신애빵집’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차렸다. 홍씨는 초량 여행을 많이 다닌 듯하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갓 구워 낸 빵 조각을 씹는 그 순간이 초량 이바구길 여행의 딱 중간쯤 된다. 영락없는 전망 휴게소 역할이다. 옆길로 새면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린 이름이다. 그는 이 집에 살았다. 전망대는 실로 근사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빛을 띠는 바다를 두고 아래에 다닥다닥 이어진 작은 집들의 지붕을 통해 ‘부싼 싸람’의 진면목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저 바다를 그리며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고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했을 것이다.●블록 쌓아 올리듯… 만화같은 산동네 지붕들 옥상마다 놓인 파란색 물탱크, 허공을 가르는 목욕탕 기둥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난 계단, 블록을 쌓아 올린 듯 차곡차곡 이어진 집들이 만화 같은 산동네 풍경을 이루고 있다. 우리 집 지붕이 남의 집 마당이 되고 또 우리 마당은 아랫집 지붕으로 이어진 길이 되는 반도체처럼 집약된 집 더미. 전란을 피해 내려와 산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 반세기가 지나니 말씨도 마음씨도 진짜 부산 사람이 되었다. 높이 오르니 부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좀더 오르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수직적인 길로 이뤄진 산동네를 모두 수평으로 꿰는 넓은 신작로. 비행기처럼 높은 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뚱뒤뚱거리며 부산의 허리를 연결한다. 산복도로 곳곳에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경치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바다와 항구, 마을과 철도, 교량과 배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란 것은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여기다 ‘유치환의 우체통’ 등 곳곳에 깃든 이야깃거리는 서정성과 낭만까지 곁들여 있다. “여봐요, 백신은 맞았나요?” 1년 후 나의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과거 추억이 서린 풍경을 바라보며 현실 속 걱정을 함께 적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며. 좀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마음속 무엇이 현실에 투영돼 겹쳐 보인다. 산복도로에서 보는 세상은 초고층 마천루 호텔방에서 담는 ‘근사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체통 앞에선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펴진다. 늘 힘들게 오르내리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을 어느 이름 모를 초량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어떤 감상을 마음속에 쌓아 가며 자랐을까. 부산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무슨 영화 속 이야기일지라도 상관없다. 연인과, 가족과 함께 이곳 이바구길을 함께 걸으며 초량이 지켜온 반세기의 이야기들을 듣고 살며시 뭔가를 상상해 본다면? 그 포근한 이야기란 차가운 유리투성이 도시의 것보다는 썩 좋을 듯하다. 바다로 열린 청마의 우체통에선 많은 상상들이 미래로 전송되고 있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초량 여행 체크리스트 뭘 먹지? 50년 부산 중심지 초량엔 먹거리가 많다. 부산에 사는 이도 부산을 오가는 이도 초량을 찾아 대선 소주잔을 기울여 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산복도로에서 더 올라가면 360도 전망의 구봉산 초량공원, 길을 따라 내려오면 돼지불고기를 파는 기사식당 거리와 만난다. 일명 ‘불백거리’인데 값싸고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택시 기사뿐 아니라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좀더 내려오면 이름난 초량 돼지갈비 골목도 있다.은근히 잘하는 고깃집이 많은 곳도 부산이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듯) 부산 사람은 아침에 회를 먹고 점심에 생선구이, 저녁에 곰장어 등 생선만 먹고 살진 않는다. “집이 부산이세요? 그럼 집에 배 있겠네요?” 식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매우 어이없어 한다. 구석구석에는 돼지국밥집, 시락국밥집, 유명한 밀면집도 있다. 전국 민물 양식장에서 ‘부산 갈메기’들을 죄다 쓸어 왔는지 문전성시를 이루는 메기탕집도 있다.168빵카페=부산 동구 영초길 191번길 8-1. (010)9330-8544. 168도시락국=부산 동구 영초길 191. (051)714-2619 소문난불백=부산 동구 초량로 36. (051)464-0846 초량밀면=부산 동구 중앙대로 225. (051)462-1575. 은하갈비=부산 동구 초량중로 86 (051)467-4303. 우리돼지국밥=부산 동구 초량로 27-1번길 (051)468-5623. 초량메기탕=부산 동구 초량로 15. (051)464-3398. 어딜 가지? 초량은 범일동, 보수동, 중앙동 등과 이어진다. 영화 ‘아저씨’ 촬영지로 유명한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된다. 격렬하게 매운 떡볶이와 조방낙지로 유명한 곳도 범일동이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지인 중앙로는 부산역 쪽으로 건너면 나온다. 어쩐지 익숙하다 할 거다. 맞은편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등장한 보수동 계단이 있다. 헌책방 거리와 자그마한 카페들이 있어 요모조모 둘러볼 것이 많다. 여행상품은? 반값 할인을 뜻하는 ‘반할부산’은 열차와 연계한 다양한 부산여행상품 ‘진짜부산트레킹’을 판매한다. 원도심투어를 비롯해 흰여울마을과 달맞이고개, 황령산 등 다양한 지역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899-2550. 초량 이바구길 투어는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당일(반나절) 버스투어 상품으로 판매한다. 일정은 오전 9시 50분 부산역 이바구버스 정류소 앞 집결 후 증산전망대, 유치환의 우체통, 초량 168계단&모노레일 탑승, 초량 1941, 초량전통시장(불백골목) 경유 낮 12시 30분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2만원. (051)469-4113.
  • 체육기자연맹 회장에 양종구 논설위원

    체육기자연맹 회장에 양종구 논설위원

    양종구(52)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제15대 한국체육기자연맹 회장에 당선됐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19일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한 대의원 투표에서 양종구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15대 회장으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 체육기자연맹 사무차장, 사무총장 대행 등을 역임한 신임 양 회장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체육기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부고] 김덕두씨 장인상, 조성철씨 부친상, 문희경씨 별세

    ■ 김덕두(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씨 장인상 △ 배무술씨 별세, 배정진(농업)·배수진(전 가야면사무소 부면장)·배순옥·배소옥·배월옥씨 부친상, 김덕두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김규완(남양금속 근무)씨 장인상, 18일 오전 4시30분, 고령영생병원 장례식장 특실, 발인 20일 오전 8시, 장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청현리 선영. 054-956-4455 ■ 조성철(한국교총 대변인)씨 부친상 △ 조범행씨 별세, 이희순씨 남편상, 조성현·조성철(한국교총 대변인)씨 부친상, 18일 오전 1시, 포천 우리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20일 오전 8시, 장지 포천시 가산면 선영. 031-542-0444 ■ 문희경(전 한국소비자교육원 이사)씨 별세 △ 문희경(전 한국소비자교육원 이사)씨 별세, 남기섭(전 수출입은행 전무이사)씨 부인상, 남수진(한국외대 교수)씨 모친상, 이혁재(인스코비 이사)씨 장모상, 17일 오후 11시45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20일 오전 8시30분, 장지 용인공원묘원. 02-2258-5953
  • [부고]

    ●문희경(전 한국소비자교육원 이사)씨 별세 남기섭(전 수출입은행 전무이사)씨 부인상 남수진(한국외대 교수)씨 모친상 이혁재(인스코비 이사)씨 장모상 1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53 ●조옥희씨 별세 안병철(한양대 언론정보대학 명예교수)·병찬(전 한국은행 국제국장)·병률(자영업)·병길(전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수금씨 모친상 김한국씨 장모상 18일 부산 시민장례식장, 발인 20일 (051)636-4444 ●배무술씨 별세 배정진(농업)·수진(전 가야면사무소 부면장)·순옥·소옥·월옥씨 부친상 김덕두(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김규완(남양금속 근무)씨 장인상 18일 고령영생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54)956-4455 ●조범행씨 별세 이희순씨 남편상 조성현·성철(한국교총 대변인)씨 부친상 18일 포천 우리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31)542-0444 ●정윤영씨 별세 이향순씨 남편상 정재춘(가톨릭평화방송 부장)·정상춘(육군 중령)씨 부친상 18일 삼육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5시 (02)2210-3412
  •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누구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윤호중 신임 원내대표는 누구

    86그룹이자 이해찬계 친노·친문 핵심의 4선 의원전략·기획·협상통으로 21대 법사위원장 역임야당에 “쓰레기”, “지라시” 막말 논란도 당직자에서 원내 사령탑까지.  16일 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로 선출된 윤호중 의원은 평민당의 당직자로 정치를 시작했다. 1963년생으로 서울대 철학과 재학 당시 학생운동을 한 86그룹이자 이해찬계 친노·친문 핵심의 4선 의원이다. 친문 2선 후퇴론에도 불구하고 169표 가운데 104표를 획득하며 결선투표 없이 바로 당선됐다.  초선 시절 원내대표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역임했고, 재선 시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2년 당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24년만에 당직 말단에서 최고위직까지 올라갔다. 20대 국회에서 당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21대 국회에서는 비법조인 출신으로 법사위원장에 선출돼 공수처법 개정안 등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입법에 앞장섰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고 정책위의장을 거친 이력으로 인해 ‘정책통’으로 꼽힌다.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정책위의장으로서 민주당의 경제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정책본부장으로 대선 정책도 총괄했다. 현재는 검찰개혁TF의 위원장도 맡고 있다. 21대 총선 당시 공천관리위원장,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아 180석의 대승을 견인하며 ‘전략통’이라는 극찬도 받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구리시장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당시 윤 의원은 구리시 지역위원장이었다. 2015년 안철수 의원의 탈당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디지털소통본부장을 역임하며 온라인 입당시스템을 만들었고, 당시 민주당의 권리당원이 150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2020년에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협의체에 여당 대표로 참여해 준연동형비례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막말 논란으로 수차례 입방아에 올랐다. 원구성 협상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윤 의원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의석수에 따라 나누는 관행에 대해 “그릇된 관행”이라며 강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펼쳤다. 윤 의원은 “지금은 절대적 안정적 다수인데, 13~20대 국회 운영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동물·식물국회가 되는 그릇된 관행을 뿌리뽑지 못 한다”고 주장했다. ‘12대 국회 이전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아니냐’는 질문에 “이승만·윤보선·장면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관행은 여소야대 국회 또는 여당이 단순 과반일 때의 관행이지, 절대 다수당이 존재하는 상황의 관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으로서 회의 진행 방식도 논란이 됐다. 법사위 회의 중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다”고 비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당시에는 국민의힘이 윤 위원장에게 독재라고 항의하자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와서, 상대 정당을 독재로 몰아가는 이런 행태야말로 정말 독선적인 행태”라고 정색하고 비판했다.  4.7 재보궐선거 운동기간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유세 중 “4월 7일 쓰레기를 잘 분리수거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내곡동 땅이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 자기가 개발계획 승인해놓고 ‘내가 안 했다’고 거짓말하는 후보, 쓰레기입니까, 아닙니까”라며 “쓰레기입니다”라고 주장했다.  통상 야당 몫으로 배정되는 법사위원장에 대한 강한 애착도 보였다. 전날 상대후보인 박완주 의원과 토론회에서 관련해 “국민의힘이 지금 법사위원장 자리를 포함한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달라고 하고 있는데, 그것에 반대하신다면, 절대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저에게 몰표를 보내주시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30년 전의 일간지가 그립다

    [박철현의 이방사회] 30년 전의 일간지가 그립다

    두 개의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다. 집에서는 종이로 된 ‘아사히신문’, 인터넷으론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받아 본다. 아사히신문은 정기구독한 지 벌써 만 5년이 지났다. 직접적 계기는 이 신문사에 다니는 지인이 부탁해 왔기 때문이지만, 원래부터 리버럴 성향이 강한 편집 방침과 기풍을 좋아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즐겨 본다. 소학생신문까지 세트로 구독한 이유도 있지만, 주말판이나 문화면에 한국 관련 뉴스가 매우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은 한국영화, 케이팝 아이돌, 한국어 서적 관련 뉴스는 물론 최근에는 복잡한 한일간의 정세까지 읽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 사고의 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즉 백지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이 혐오의 감정을 때때로 내뱉는 산케이신문을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 차별과 혐오를 배격하는 아사히신문을 읽느냐를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후자에 손이 간다. 하얀 종이에 뭐든 마구잡이로 입력된다면 산케이의 편협보다 아사히의 사해동포주의가 훨씬 낫다.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간 큰딸은 얼마 전 구입한 휴대폰을 사용해 때때로 정치적 사안에 관한 질문을 해 오기도 한다. 나도 일본 정치를 잘 모르긴 하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문답을 주고받는데, 간혹 그가 “아! 어제 신문에서 봤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엔 고(故) 이학래 선생에 대해 물어왔다. ‘전범이 된 조선청년’이란 회고록을 펴낸 그분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자 그렇단다. “아니, 네가 이학래 선생을 어떻게 알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신문에 나왔던데?”라고 답한다. 집으로 귀가하자마자 바로 신문을 펴 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기사가 없길래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한 장을 넘긴 후 손가락을 가리킨다. 기사가 아니라 사설로 제목은 ‘이학래 선생 사거(死去)-일본의 정의, 묻고 또 물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징병돼 일본군 군속으로 일했던 선생이 전쟁 후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1956년에 출소한 이후 일본 정부와 벌여 온 투쟁을 나열했다. 물론 선생이 한국에서 받은 푸대접과 차별도 기술했다. 사설은 선생의 요구와 투쟁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이 나라를 소중히 생각하기에 일본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이들이 남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끝맺었다. 선생도 선생이지만,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미화시키려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해 가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정부와 60년간 투쟁해 온 재일한국인의 부고를 무려 사설로 추념한 아사히신문의 품격과 배짱에 감복했다. 그러고 보니 아사히신문은 에티오피아 내전 특집을 1면 톱기사(4월 4일자)에 싣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내전이 왜 발생했고, 현재 에티오피아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심층분석이 돋보이는 르포기사였다. 잠시 한국 일간지, 특히 보수언론으로 포장돼 유통되는 몇몇 일간지들을 떠올려 본다. 정파성이 뚜렷한 ‘국내용’ 기사들이 1면 헤드라인과 사설을 장식한다. 사풍으로 대변되는 올곧은 신념과 품격까진 바라지도 않고, 또 굳이 일본신문을 배우자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역시 정통 일간지나 읽을 만하지 낮 시간대 버라이어티 뉴스 방송으로 넘어가면 도긴개긴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정부광고비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발행부수를 부풀린 행위나 인쇄하자마자 바로 폐지공장으로 직송돼 계란판용 종이로 재판매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며칠 전 딸아이의 신문기사 스크랩북을 훑어 봤다. 새롭게 고 이학래 선생의 사설과 에티오피아 1면 톱기사를 가위로 오려 A4 용지에 붙여 파일링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번 기사는 왜 넣어 놓은 거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아빠랑 라인 메시지로 대화한 건 다 붙여놔. 나중에 다시 보면 아빠와 나눈 대화가 기억날 것 같아서.” 문득 삼십여 년 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집에서 정기구독했던 동아일보를 통해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글쓰는 법과 체계적 논리를 배우고 여러 사회문제를 알아갔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은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섬이 우는 듯 4월의 사이렌 … ‘순이삼촌’ 곁 붉은 위로 피었구나

    섬이 우는 듯 4월의 사이렌 … ‘순이삼촌’ 곁 붉은 위로 피었구나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중략) 우리는 한밤중의 그 지긋지긋한 곡소리가 딱 질색이었다. 자정 넘어 제사 시간을 기다리며 듣던 소각 당시의 그 비참한 이야기도 싫었다.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이야기. 왜 어른들은 아직 아이인 우리에게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들려주었을까?”(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 중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4월 3일 10시, 제주 전역에 1분 동안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에게는 73년 전으로 돌아가게 하는 신호탄이며 또 다른 누구에게는 그날의 산 지옥이 먼저 펼쳐질 날의 소리들이다. 자신의 귓전에만 울려대는 사이렌을 어찌해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일생을 그 소리에 함몰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귓속 사이렌이, 이젠 시대가 바뀌어 섬 전체에 크게 울린다. 섬이 우는 것 같다. 지천으로 떨어진 끝 무렵의 동백꽃들도 파편처럼 흩어진 채로 그 소리를 듣는다. 이날만큼은 섬이 아니라 죽은 이의 원통한 소리를 담는 커다란 귀가 되는 자리, 제주다.1940년대 말 남측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제주 인구 27만명 중 3만명가량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적혀 있다. 많은 곳에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간 까닭에 그때 제주의 곳곳에 사람이 죽지 않은 자리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가 돼 버렸다.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 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순이삼촌’ 중에서) 이념과 사상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이 지은 죄 없이 죽임을 당했는데도 엄혹한 시대엔 이를 언급하는 건 금기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입에 올리기 꺼리던 그 일을, 소설로 쓴 사람이 있다. 바로 제주 출신의 소설가 현기영이다.그는 1941년 지금의 제주시 노형동 함박이굴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오현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후에 서울사대부고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소설가가 됐다. 1979년 첫 소설집 ‘순이삼촌’에서 제주 4·3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죄목으로 1979년 10월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한다. 금기를 깬 대가였다. 4·3항쟁을 온몸으로 겪은, 제주 출신 작가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 아니었을까. 선생의 용기 덕에 드디어 4·3항쟁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사람들은 제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순이삼촌’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들에서도 4·3사건들이 다뤄졌는데 그 일은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순이삼촌’ 이야기를 해 보자면 선생은 소설에서 이렇게 되물었다. “도대체 비무장공비란 것이 뭐우꽈? 무장도 안 한 사람을 공비라고 할 수 이서 마씸? 그 사람들은 중산간 부락 소각으로 갈 곳 잃어 한라산 밑 여기저기 동굴에 숨어 살던 피난민이우다.”(‘순이삼촌’ 중에서)어떤 작품은 문장과 서사 그리고 비유와 상징을 넘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이 된다. 사관의 붓이며 판결문의 자리에 선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순이삼촌’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그리하여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의 뇌리에 스치는 ‘순이삼촌’ 속의 문장들과 현기영이라는 기표, 그리고 그 속에서 기의들이 펄펄 끓는다. 제주 북촌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에는 현기영 소설가의 저서들이 전시돼 있고, 그 옆 옴팡밭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북촌이 어떤 곳인가. 한날한시에 양민 400여명이 군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장소가 아니던가. 그 어느 곳보다 더 처참하게, 끌려간 거의 모두가 죽은 곳이 아니던가. 무덤도 세우지 못하고 모두 모아 묻어버린 곳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던가. 소설 속의 순이삼촌은 도피한 남편 때문에 입산자 가족으로 분류되어 모진 고문 끝에 집단 학살의 현장으로 끌려갔다. 창졸간에 남매를 잃고도 살고, 옴팡밭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들어내어 그 자리에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도 살았던 사람이다. 순이삼촌은 30년이 지난 후에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옴팡밭으로 들어가 목숨을 끊는다. 소설 바깥의 현기영은 4·3사건으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후에 소설로 그 사건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의 문장들이 끌어올린 사건 덕분에 이제는 모두가 4·3의 실상을 알았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 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 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삼십 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순이삼촌’ 중에서)순이삼촌비 곁의 붉은 화산송이는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피를 상징하고,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돌비는 제대로 안장하지 못한 관들이다. 애기무덤에 올려둔 동백꽃이 여기저기 놓인 옴팡밭과 돌비 사이에 옹송그리고 순이삼촌이 누워 있다.이것은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니 4·3사건을 겪은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이는 소설을 넘어선 그때의 그 현장이다. 소설이 소설이 아니고, 과거가 더이상 과거가 아닌 현재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애기무덤들 위에 놓인 동백꽃이 유독 선연히 빛나는 장소다. 인기척처럼 다가든 파도가 그들을 위무하는 공간이며 사원이 된 곳이다. 제주 토박이이자 제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김동현 박사가 4·3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행불인묘역까지의 길을 안내해 줬다. 그는 ‘순이삼촌’에 대해 “1978년이라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커다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문학이 4·3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 아닐까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 박사는 외지인들이 4·3사건과 제주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제주의 아픈 역사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전해 왔다. 이것은 비단 제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해방정국임을 감안했을 때 한반도 어느 지역이라도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또 비극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사실들이 존재하는 역사라서 4·3사건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사건이나 진실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닌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사건이라는 말이었다. 그 거울은 계속해서 닦아 주어야 한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누구다 잘 들여다볼 수 있게. 일흔세 해가 지난 4·3사건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것들투성이다. 가장 큰 예로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한 행방불명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4·3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행불인묘역이 있다. 그때 사라졌다고 짐작만 할 뿐, 어디서 어떻게 언제 죽었는지조차 몰라서 그들의 몰시는 아직 묘비에 쓰여 있지 않다. 유족들 또한 제삿날을 알지 못해 각자 정한 대로 제사를 지내러 온다.그러는 동안에도 북촌의 애기무덤은 해마다 새로운 동백꽃을 머리에 이고, ‘순이삼촌’의 문장들은 또 누군가에게 4·3사건을 새롭게 일러주고 있을 따름이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제주 전체가 그들의 아픔을 덮거나 도려내려 하지 않고 함께 앓고 보듬어 주려는 노력을 끊임없기 계속했기에 그 섬이 금기의 사월을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제주의 4월은 동백꽃으로도 유명하다. 문학은 떨어지는 동백꽃만큼도 힘이 없을 때가 있지만 때로 그 꽃 아니 문장은 떨어지는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의 힘으로 사람들이, 제주가 산다. 옴팡밭의 애기무덤 위로 동백꽃들이 매년 떨어져 내리고 오름마다 새겨진 원통한 마음들에도 꽃은 떨어지겠지만 멀리서나마 제주의 모든 ‘순이삼촌’들에게 붉은 마음의 구절 하나 남긴다. “밑바닥 터진 젯상에 진설할 거라고는/ 봄을 일으켜 세운/ 꽃밥밖에 없어서/ 언 마음 녹이시라고 동백꽃 송이 올립니다.”(홍경희의 시 ‘동백 밥상’) 4월의 사이렌이 동백꽃 속에서 울리는 제주다.소설가 이은선
  • 영욕의 세월 건너 한계 다다른 동아·조선…‘동아평전·조선평전‘ 출간

    영욕의 세월 건너 한계 다다른 동아·조선…‘동아평전·조선평전‘ 출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결성 46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100년 역사를 비판하는 책이 출간됐다. 자유언론실천재단과 동아투위, ‘조선 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은 1일 한국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동아평전’·‘조선평전’ 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평전’은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에 대한 평전이다.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창간한 초창기 동아일보에 얽힌 이야기, 일제 강점기 언론으로서의 영욕을 앞 부분에서 다룬다. 이어 해방 공간 시기 한국민주당(한민당) 대변지에 가까웠던 동아일보, 이승만 정권 시기와 유신 시기, 1980년대 5공 정권까지 대한민국 대표 권위지 시기의 명암을 평한다. 후반부에는 한국 최고의 신문이었던 동아일보의 쇠퇴와 언론자유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사주 일가의 문제와 한계를 동아일보가 쓴 기사들로 설명한다. 함께 나온 ‘조선평전’은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의 역사를 창간부터 일제 강점기, 이승만 정권 시기, 유신 시기, 5공 정권, 문민정부 등 시기별로 다룬다. 평전을 쓴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동아투위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에서 책을 쓰게 됐다”며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지지 않은 것은 문재인 정권의 문제도 있지만, 언론이 의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또 정부의 언론개혁 방향을 비판하며, 기자 개인보다 신문사와 민영방송이 사주와 대주주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지금 언론은 정치권력에서 벗어나 완벽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자본권력 홀로 누리는 자유일 뿐”이라며 “독자와 시청자를 도외시한 채 기득권층과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파,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동아, 조선의 오욕에 찬 역사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쉼 없이 계속돼야 한다”며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에 범 언론단체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작심’ 이낙연, 윤석열 앞날에 “그리 순탄한 길 아닐 것”

    ‘작심’ 이낙연, 윤석열 앞날에 “그리 순탄한 길 아닐 것”

    尹 “재보선, 상식·정의 찾는 출발점” 발언에“尹, 김학의 성비위 유야무야 지휘한 장본인”윤석열 지지율 40% 육박…리얼미터 조사李, 한 자릿수대 지지율도…9~11%선전날 LH발 부동산 정책 실패 대국민 사과“청년 등에 LTV, DTI 획기적 완화할 것”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1일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향후 정치 행로에 대해 “그렇게 순탄한 길만도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 대표를 맡기 전만해도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선명성을 내세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여권의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를 비판하며 총장직을 사퇴한 윤 전 총장에게 차례로 밀리며 현재 두 사람과 지지율 격차가 많이 벌어진 3위를 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 위원장의 지지율은 10%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李 “윤석열, 너무 쉽게 생각 마” 이 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이미 어떤 길에 들어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차기 대권 지지율이 높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그 길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이 최근 한 언론에 이번 4·7 재보궐선거의 의미를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라고 표현한 것과 관련, 이 위원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性)비위 문제를 유야무야한 검찰을 지휘한 장본인이 할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의 대선 출마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은 제가 그것을 밝힌 적은 없다”면서 “재보궐이 끝나면 여러 논의가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 함께 지혜를 모아가겠다”고 언급했다.윤석역 대선지지율 38.2%이재명 21.5%, 이낙연 11.1%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리서치앤리서치 尹 31.2%, 이낙연 9.3% 이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은 모두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선두권을 유지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은 4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30∼31일 서울 유권자 806명에게 조사한 결과, 차기 대권주자로 윤 전 총장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38.2%였다. 이 지사는 21.5%, 이 위원장은 11.1%로 나타났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동아일보 의뢰로 지난달 28∼29일 전국 유권자 1017명에게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윤 전 총장은 31.2%로 집계됐다. 이 지사는 25.7%로 오차범위 내 2위였고 이 위원장은 9.3%로 한 자릿수대로 떨어졌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 전문회사가 지난달 29~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응답자 25%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 전 총장을 꼽았다. 이 지사라고 답한 비율은 24%, 이 위원장은 10%다. 윤 전 총장과 이 지사는 전주 조사보다 2% 포인트씩 상승했지만 이 위원장은 변동이 없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여론조사와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리얼미터는 95%에 ±3.5%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李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정부와 교감”“LH 사태 무한 책임 사죄드린다” 사과 한편 이 위원장은 자신이 전날 제안한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와 관련, “모기지가 미국이나 일본에서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본인 부담이 확연히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본적 교감을 하고 난 뒤 발표했다. 가능하겠다는 정도의 응답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청년이나 생애 첫 주택 구입자들에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를 획기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지가 인상률을 최고 10%로 제한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협의의 여지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앞서 이 위원장은 전날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악용한 대규모 땅투기 사태를 언급하며 “정부·여당이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공식 사과했다. 이 위원장은 “LH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느끼시는 분노와 실망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아프도록 잘 안다. 국민 여러분의 분노가 LH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 집을 장만하려는 분께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그 처지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크게 확대하며 주택청약에서도 우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특히 청년과 신혼 세대가 안심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하고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를 추진하겠다”고 공개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양강’ 윤석열 25%·이재명 24% 나란히 올랐다…이낙연은 10% 정체

    ‘양강’ 윤석열 25%·이재명 24% 나란히 올랐다…이낙연은 10% 정체

    안철수 5%, 홍준표 4%, 오세훈 3% 순보수층서 尹 지지율, 사퇴 이후 줄상승세“지지후보 없다” 응답도 꾸준히 감소윤석열, 리얼미터 등 타조사선 30% 다 넘겨차기 대권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나란히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며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반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10%로 지지율 정체를 이어갔다. 윤 전 총장은 1일 공개된 다른 2곳의 여론조사에서는 3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선두권을 유지했다. 윤 전 총장은 2일 오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 전문회사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발표한 3월 5주차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에 따르면 응답자의 25%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 전 총장을 꼽았다. 이 지사라고 답한 비율은 24%, 이 위원장은 10%다. 윤 전 총장과 이 지사는 지난 3월 4주차 조사 대비 2% 포인트씩 상승했고, 이 위원장은 변동이 없었다. 이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5%, 홍준표 무소속 의원 4%,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3%, 정세균 국무총리 2% 순이었다. 지지 인물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19%, 모름·무응답은 6%다. 윤 전 총장의 검찰총장 사퇴 이후 보수진영에서는 ‘지지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꾸준히 내려가는 추세다.진보층서 이재명 33% vs 이낙연 13%보수층서 윤석열 28% vs 홍준표 10% 진보진영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이 지사가 33%, 이 위원장이 13%, 정 총리가 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지사는 지난 한 달간 30% 초중반 지지율을, 이 위원장은 10% 초중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지 인물이 ‘없다’거나 ‘모른다’, ‘무응답‘한 전체 비율은 44%로, 같은 기간 추이를 보면 큰 변동이 없다. 보수진영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윤 전 총장이 28%, 홍 의원이 10%, 안 대표가 8%의 지지를 받았다. 10% 초반의 지지율을 보이던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사퇴 직후 23%로 치솟은 후 25%(3월 3주차), 28%(3월 5주차)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지지 인물이 없다거나 ‘모름’, ‘무응답’의 전체비율은 하락 추세다. 지난 2월 3주차 조사에서 이 비율은 51%였으나 꾸준히 하락해 이번 조사에서는 40%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29.3%였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다.윤석열 31.1% vs 이재명 25.7%“현 정권 교체돼야” 53.3%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윤석열, 국힘에서 정치해야” 31.1% 한편 이날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도 윤 전 총장은 차기 대권 지지율 30%대로 선두를 달렸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동아일보 의뢰로 지난달 28∼29일 전국 유권자 1017명에게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은 31.2%로 집계됐다. 이 지사는 25.7%로 오차범위 내 2위였다. 윤 전 총장은 60대 이상(47.3%), 대구·경북(38.9%), 중도층(33.6%)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서울에서도 36.2%를 기록하며 이 지사(22.4%)에 앞섰다. 이 지사는 40대(39.8%), 인천·경기(33.9%) 등에서 1위였다. 이 위원장 9.3%, 안철수 대표 4.7%, 홍준표 의원 3.7%,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2.7%, 정세균 총리 2.5%, 심상정 정의당 의원 2.4% 순이었다. 윤 전 총장 거취와 관련,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31.1%로 집계됐다. ‘제3지대 신당’ 의견은 24.9%였고 ‘잘 모르겠다’는 40%였다. 차기 대선 결과와 관련,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응답은 53.3%, ‘현 정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은 29.8%로 각각 나타났다. 윤 전 총장 측은 이날 언론에 “윤 전 총장이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를 모시고 2일 오전 서대문구 남가좌동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윤석열 38.2% vs 이재명 21.5% 리얼미터 여론조사 또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30∼31일 서울 유권자 806명에게 조사한 결과, 차기 대권주자로 윤 전 총장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38.2%였다. 이 지사는 21.5%, 이 위원장은 11.1%로 나타났다. 이번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다. 리얼미터는 95%에 ±3.5%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고]

    ●박형규(10대 국회의원·전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씨 별세 김서한씨 남편상 박명숙·순옥·혜영·은주·정욱(삼성디스플레이 부장)씨 부친상 2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9일 오전 10시 (02)2258-5940 ●박영선씨 별세 김영자씨 남편상 박성규(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상무)·성희·은숙씨 부친상 정순욱(호텔롯데 조리과장)·장용준(미국P&G QC 디렉터)씨 장인상 최현숙씨 시부상 26일 아산제일장례식장, 발인 29일 오전 9시 (041)545-4444 ●백장현씨 별세 백승철(치과원장)씨 부친상 금춘수(한화 부회장)씨 장인상 28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30일 (053)940-7494 ●김일수(전 동아일보 홍콩특파원·편집부국장)씨 별세 정정숙씨 남편상 김서영·지영·서정씨 부친상 김성신(미국 위스콘신대 교수)·이헌상(현대산업개발 차장)씨 장인상 27일 서울삼성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30분 (02)3410-6915
  • 성흠제·김진수 서울시의원, ‘기술기반 도시 인프라 미래 서울 정책 포럼’ 개최

    성흠제·김진수 서울시의원, ‘기술기반 도시 인프라 미래 서울 정책 포럼’ 개최

    서울특별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성흠제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은평1)과 김진수 의원(국민의힘, 강남 5)이 서울기술연구원과 공동주관하는 「기술기반 도시 인프라 미래 서울 정책 포럼」이 오는 23일 서울시의회 제2대회실에서 청중 없이 온라인 방식으로 개최된다. 이날 포럼은 ▲김홍범 부대표(㈜비욘드알앤아이)의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한 도시 미래 정책과제 도출’ ▲김정환 연구위원(서울기술연구원)의 ‘서울미래2030 기술로 미래를 바꾸다’ ▲최창호 센터장(건설기술연구원 건설자동화연구센터)의 ‘서울의 안전하고 스마트한 도시인프라를 위한 주요과제’발표가 이루어질 예정이며, 주제발표 이후에는 권완택 서울시 도로계획과장, 권지혜 국토안전관리원 기반시설관리실 실장, 박창규 동아일보 기자, 윤광원 서울기술연구원 도시인프라실장, 장인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실장이 참여해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서울의 정책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본 포럼을 공동 주관하는 성 위원장은 ‘코로나와 같은 신종 감염병 재난과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래 도시문제 대비와 신기술 개발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서울의 미래를 위해 신기술 도입을 통한 삶의 효율성과 혁신성을 제고해 나가야 할 시기라고 피력하면서, 서울시의회는 포럼을 통해 서울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도시 인프라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고 서울기술연구원과 적극 협력하여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기술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 의원은 노후화된 도시 인프라의 선제적인 유지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도시의 구현과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라며 그린에너지, 빅데이터, 자율주행, 스마트 헬스케어, 친환경자동차, 스마트워터그리드, 사물인터넷 등의 첨단기술이 녹아있는 미래 도시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발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이번 포럼을 통해 기술로 변화되는 미래 서울의 모습 즉, 서울시민의 삶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해지는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서울시 미래 도시 인프라 기술정책 발굴을 위한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포럼 개최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포럼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무청중으로 진행되며, 유튜브를 통해 23일 10시부터 생중계될 예정이다. 유튜브 검색창에 “서울특별시의회 토론회 공청회 생중계“를 입력하거나 (https://url.kr/R8adyO)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사업 광폭 행보’ 정기선 올해 사장되나

    ‘신사업 광폭 행보’ 정기선 올해 사장되나

    현대가(家) 오너 3세 정기선(39)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그룹 영역 확장을 위한 광폭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정 부사장은 최근 현대중공업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수소,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이다. 정유(현대오일뱅크)·조선(한국조선해양) 등 그룹 핵심 사업의 전방위 영역에서 체질 전환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아람코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사우디 왕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정 부사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프로젝트 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주사 경영지원실장 직함을 달고 있는 정 부사장은 지난해 로봇, 인공지능(AI) 등 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발족한 ‘미래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하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앞서 2018년부터는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정비, 수리 등 선박 관련 서비스 회사)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당초 지난해 11월 그룹 정기인사 때 정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승진이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지난해 업황이 나빠 사업 실적이 좋지 않았고, 여러 인수합병(M&A) 등 벌여놓은 사업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부터 조선업 수주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도 올해 안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 부사장의 사장 승진도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실질적 오너인 정몽준(70) 아산재단 이사장의 2남 2녀 중 장남인 정 부사장은 유력한 차기 총수다.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후 현대중공업에 잠시 일한 뒤 동아일보,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을 거쳐 2013년 현대중공업에 재입사했다. 2015년 상무, 2016년 전무를 거쳐 2017년 부사장에 올랐다. 다른 형제들은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룹은 정 이사장의 최측근인 전문경영인 권오갑(70) 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재계블로그]‘신사업 광폭행보’ 현대重 정기선, 올해 사장되나

    [재계블로그]‘신사업 광폭행보’ 현대重 정기선, 올해 사장되나

    현대가(家) 오너 3세 정기선(사진·39)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그룹 영역 확장을 위한 광폭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정 부사장은 최근 현대중공업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와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수소,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이다. 정유(현대오일뱅크)·조선(한국조선해양) 등 그룹 핵심 사업의 전방위 영역에서 체질 전환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아람코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사우디 왕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정 부사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프로젝트 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주사 경영지원실장 직함을 달고 있는 정 부사장은 지난해 로봇, 인공지능(AI) 등 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발족한 ‘미래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하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앞서 2018년부터는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정비, 수리 등 선박 관련 서비스 회사)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당초 지난해 11월 그룹 정기인사 때 정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승진이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지난해 업황이 나빠 사업 실적이 좋지 않았고, 여러 인수합병(M&A) 등 벌여놓은 사업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부터 조선업 수주 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며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도 올해 안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 부사장의 사장 승진도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룹 실질적 오너인 정몽준(70) 아산재단 이사장의 2남 2녀 중 장남인 정 부사장은 유력한 차기 총수다.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후 현대중공업에 잠시 일한 뒤 동아일보,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을 거쳐 2013년 현대중공업에 재입사했다. 2015년 상무, 2016년 전무를 거쳐 2017년 부사장에 올랐다. 다른 형제들은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룹은 정 이사장의 최측근인 전문경영인 권오갑(70) 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북한은 기념일이 많은 나라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명절’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첫 번째 뜻으로 ‘나라와 민족에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축,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3·1운동을 기념하는 ‘반일인민봉기일’이나 1947년 8월 20일 김일성이 북한 역사상 최초의 비행대를 창설한 것을 기념하는 ‘공군절’ 같은 기념일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민족적 기념일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도입된 국제기념일도 있다. 보통 사회주의 명절이라 하면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5·1 노동절이지만 한 가지 더 대표적인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의 날, 일명 ‘3·8국제부녀절’이다. ‘여성의 날’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일이었던 1909년 2월 28일, 미국 사회당이 여성의 날을 처음 선포하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여성의 날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퍼졌으며 국제적인 기념일로 승격됐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당시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3월 8일(구력 2월 23일) 러시아 2월 혁명의 배경까지 됐다. 하지만 2월 혁명이 러시아 국민의 염원에 응답하지 못하자 10월 혁명이 일어나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사상 최초 노농정권인 레닌 정부는 1919년 이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국제 근로여성의 날’이라 명명했다. 여성의 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을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모체였던 염군사가 1924년 3월 8일 종로 청년회관에서 ‘국제 부인 데이 기념강연’의 개최를 시도했으나 일제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국제부인절을 계속 기념해 나갔다. 해방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공식화하려던 지식인들의 노력이 남한에서 미군정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북한에서는 반대로 소련군의 지지와 지원을 얻었다. 1946년 3월 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기관지인 ‘정로’에서 국제부녀절을 기념하는 일련의 기사가 발표되고 일부 지역에서 각종 행사도 진행됐다. 공산당 기관지이지만, 김일성이나 당을 찬양하는 내용이 극히 적었다. 재미있게도 북한에서 명절의 국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기념일이 유럽에서 등장한 1911년을 원년으로 해서 해마다 ‘3·8국제부녀절 ○○돐’이라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에서 국제부녀절의 의미도 변화했다. 1920년대 한반도에 들어온 국제부녀절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봉건적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1945~1948년 건국 시기의 북한은 민족의 통일과 ‘민주국가 건설에 민족영웅’이 돼야 한다는 뜻이 강조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 국제부녀절 행사에서는 북한 여성들도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선전이 비교적 강했다. 북한이 기념하는 국제부녀절의 특징이 한국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초 국내·소련·연안파가 숙청되고 김일성의 우상화가 진행된다. 1960년대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면서 여성의 날은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혁명활동과 관련된다. 이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여성 해방이 김일성의 송가로 바뀐다. 이러한 추세는 나날이 강화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돼 왔다. 2020년 3월 8일 노동신문이 북한의 여성을 ‘영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지니고 일편단심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참된 혁명가’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 ‘한국 연극의 인큐베이터’ 30주년 맞은 신춘문예 단막극전

    ‘한국 연극의 인큐베이터’ 30주년 맞은 신춘문예 단막극전

    사단법인 한국연출가협회는 17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신춘문예 단막극전을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지난 1월 신문사들이 발표한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총 8개 작품이 두 작품당 한 편으로 엮어 공연된다. 서울신문을 비롯해 경상일보, 동아일보, 부산일보, 매일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와 사단법인 한국극작가협회에서 당선된 희곡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17~18일 ‘다이브’와 ‘상자소년’, 20~21일 ‘노을이 너무 예뻐서’와 ‘사탄동맹’, 24~25일 ‘한낮의 유령’과 ‘블랙(about the dark)’, 27~28일 ‘삼대’와 ‘어쩔 수 없이’가 각각 관객들과 만난다. 올해로 30회를 맞는 신춘문예 단막극전은 지난 1990년 연출가들이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신춘문예 당선 희곡들을 모아 작품을 완성하며 공연이 이뤄졌다. 극작가들의 데뷔 무대이자 연출가들과 함께 연결되는 무대이자 이 공연을 계기로 연극계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중견 작가나 연출가들이 많아 한국 연극계 인큐베이터로 톡톡히 역할을 해왔다. 다른 공연예술제보다 앞선 매년 3월 단막극전을 개최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8개 작품에는 최용훈, 박정석, 박혜선, 손대원, 이광복 등 중견 연출가들이 참여해 노하우를 쏟아냈고, 재치 있는 작품으로 사랑받은 김윤주, 박연주, 양종윤 등 젊은 연출가들도 활약한다. 이들은 올 초 당선작들을 읽으며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를 써서 연출로 지원했고 심사를 통해 선발됐다. 각 작품은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 협조로 작품별로 드라마트루그도 참여해 작품 해석과 표현방식을 더했다. 많은 배우들도 작은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신춘문예 단막극전 취지에 동참해 열의를 보였다. 3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도 열린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아쉽게 취소된 신춘문예 단막극전에 오르지 못한 세 작품을 기획초청작으로 30~31일 낭독 공연을 갖는다. 또 1990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강신무’를 재공연한다. 초연 당시 호흡을 맞췄던 장일홍 작가와 심재찬 연출이 다시 작업해 30주년의 뜻을 밝힌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사의설 파다’ 윤석열, 오전반차…대검 “오늘 일정 예정대로”

    ‘사의설 파다’ 윤석열, 오전반차…대검 “오늘 일정 예정대로”

    여권이 추진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사의설이 적잖이 흘러나오고 있다. 윤석열 총장은 4일 오전 반차를 내고 대검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전날 대구고검·지검 직원들을 만나 만찬을 가진 뒤 오후 8시쯤 서울로 출발했다. 윤석열 총장은 이전에도 지방 출장을 갔다가 늦게 오면 다음 날 늦게 출근하거나 오전 휴가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날 윤석열 총장의 휴가는 최근 강경 발언과 맞물려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이날 동아일보는 윤석열 총장과 가까운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윤석열 총장이 이날 사의를 표명하겠다고 주변에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윤석열 총장이 실제로 임기 전 사의를 표명한다면 이는 향후 정치 행보를 위한 사의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는 전날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계 진출 의향을 묻는 말에는 확답을 피해 정치 행보 논란이 불거졌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간담회 발언도 묘한 파장을 낳았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이번 주 중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주 중 사퇴하지 않더라도 4월 보궐선ㄴ거 이전에 사의를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검 측은 사의설과 관련해 “추측에 관해서는 확인해 드릴 게 없다”며 윤석열 총장의 예정된 일정에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총장은 이날 오후 4시 대검 청사에서 이종엽 대한변협 회장을 접견한다. 5일에는 김형두 신임 법원행정처 차장 면담이 예정돼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본지 ‘2020 부동산 대해부’ 씨티 언론인상 대상

    본지 ‘2020 부동산 대해부’ 씨티 언론인상 대상

    본지 기획물인 ‘2020 부동산 대해부-계급이 된 집’ 시리즈가 한국씨티은행이 주관하는 ‘2020 씨티 대한민국 언론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서민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부동산 문제를 심층적으로 대해부하며 언론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한 해 동안 경제·금융 부문에서 활동한 기자들이 응모한 기사를 대상으로 수상작 4팀을 최종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학계와 언론계의 경제금융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사전 응모된 23편의 기사를 경제전반, 금융시장, 소비자금융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1·2차에 걸쳐 심사했다. 경제전반 부문 으뜸상에는 한국경제의 ‘대한민국 세금 대해부’ 시리즈, 금융시장 부문 으뜸상에는 동아일보의 ‘리빌딩 K파이낸스-한국 금융 달라져야 산다’ 시리즈, 소비자금융 부문 으뜸상에는 조선비즈의 ‘금융교육 10살부터’ 시리즈가 각각 뽑혔다. 심사위원단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제 전반의 위축과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한 기사가 많았다”면서 “특히 부동산, 세금, 중산층, 신용대출, 금융 투자 등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을 통찰력 있는 문제의식과 분석력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이끌어 낸 수준 높은 기사가 많았다”고 총평했다. 모든 수상팀에는 각 500만원 상당의 순금 기념패가 수여된다. 대상 수상팀의 대표 1인에게는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의 연수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백기완 선생이 병상에서 문재인 정부에 남긴 말

    백기완 선생이 병상에서 문재인 정부에 남긴 말

    “민중의 자존심을 갖고 소신대로 해보시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현대사를 90년 가까운 삶에 아로새긴 그의 시선은 늘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을 향했다. 병상에서 백기완 선생은 “나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진 않겠지만 그저 병실에서 한마디 남깁니다”라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당부의 말을 남겼다. 백기완 선생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 다가서는 그 태도, 방법. 다 환영하고 싶습니다. 생각대로 잘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마디 보태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 리본을 단 백기완 선생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주체적인 줄기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주도했던 한반도 평화운동의 그 맥락위에 서있다는 깨우침을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백기완 선생은 “지난 촛불혁명은 우리 한반도의 참된 평화요, 민주요, 자주통일.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통일이었습니다. 그 맥락위에 서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민중적인 자부심과 민중적인 배짱을 갖고 소신대로 한번 해보시오!”라고 힘을 실어주었다.고문으로 몸이 반쪽이 될지라도 백기완 선생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사, 사회운동가인 동시에 새내기, 동아리, 달동네 등 수많은 한글어를 만들어낸 우리말 운동가, 소설 <버선발 이야기>,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등을 펴낸 문필가였다. 그는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백태주는 천석꾼의 부자로 장련면의 유지로 있으면서 3.1 운동 당시 수천장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민족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 백홍렬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재직했고, 청년운동에도 나섰다. 두 부자는 각각 1923년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 수해와 지진피해가 있었을 때와 1934년 삼남지방 수재 당시에 의연금을 기부하고 구휼에 힘쓰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지만 조부 백태주가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어주다가 발각돼 고문 끝에 옥사당한 이후 가계가 급격히 몰락했다.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남북이 분단되며 가족도 나뉘어 살게 됐다. 백 선생은 이때 부산제5육군병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전쟁 통에 징용된 작은 형이 죽기도 했다. 이같은 가족사는 이후 백 선생이 통일운동에 매진하는 계기가 됐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용산구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몽둥이로 두드려 맞고 무릎을 앞으로 꺾이고 손톱을 뽑히는 등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건장하던 몸은 반쪽이 됐다. 두 번째 옥고도 치렀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마지막 원고엔 “김진숙 힘내라”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가장 최근 행보는 지난해 12월 ‘연내 중대재해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는 사회원로 기자회견’에 이름을 올린 것이었다. 당일 백 소장은 몸이 불편한 탓에 하루 온종일을 들여 쓴 육필 원고를 보내왔다. 그의 원고에는 “김진숙 힘내라”는 여섯 글자가 담겨있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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