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특집/ 대륙별 짝짓기… 통상지도 바뀐다
세계경제에 자유무역협정(FTA)바람이 거세다.이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다자주의와 함께 거스를 수 없는 세계 통상정책의 대세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세계 통상질서는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와 유럽연합(EU),아시아 경제블록 등 3자 체제로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각국은 3자 체제를 근간으로 국가간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양자협정으로 자국 경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짝짓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FTA 열풍
2001년 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신고된 지역무역협정은 250건이다.이중 절반인 125건이 지난 95년 WTO 출범 이후에 신고된 것이다.WTO가 다자무역의 공동체로 출범했음에도 불구,지역무역협정은 역설적으로 증가세가 심화되고 있다. 신고된 지역무역협정 250건중 95%이상이 FTA이다.동일한 대외관세정책을 취해야 하는 관세동맹보다 개별 국가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고 신속한 협상과 다양한 범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지역무역협정은 결속력과 추진력이 강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WTO출범 이후 신고된 125건중 94%인 117건이 현재 발효중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WTO 출범 전에는 발효율이 41%에 불과했다.
FTA는 관세·수량제한 철폐,내국인 대우,무역규범 등 필수적 요소 이외에 투자보장협정,조세조약,경제협력,상호인증,경쟁법 조화 등 체결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또 여러 개의 FTA를 동시 추진하는 것도 특징이다.현재 세계에는 미국과 캐나다·멕시코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EU,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중부유럽자유무역협정(CEFTA),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안데안 경제공동체 등의 지역경제블록이 구축돼있다.
미국은 2005년 1월 출범을 목표로 미주 대륙 34개국을 아우르는 FTAA를 추진중이다.
◆왜 FTA인가
세계 각국이 앞다퉈 FTA를 체결하고 있는 것은 FTA를 통해 지역주의 확산에 대응하고,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밖에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고 해외거점 확보,통상마찰 최소화 등 경제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朴繁淳) 수석연구원은 “개발도상국가들에게 FTA는 무역·투자 확대뿐 아니라 경제구조 고도화,산업구조조정 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세에 밀려 국가이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다자체제와는 달리 협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점도 각국의 FTA러시 이유로 꼽힌다.이밖에 북미지역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출범한 메르코수르처럼 다른 경제블록에 대한 견제용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인교(鄭仁敎) FTA팀장은 “FTA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이 한창이던 90년대 중반까지는 UR의 실패를 우려한 각국의 ‘보험 정책’개념으로 여겨졌지만 WTO출범 이후에도 100여개의 협정이 이뤄진 것을 보면 ‘보험’보다는 통상정책의 전환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뜨거운 감자,농업협상
FTA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국가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농업분야의 원만한 협상이다.한국과 칠레간 FTA에서처럼 농업부문에 대한 협상을 유예하는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체결 당사국에 따라 상이한 협정내용도 문제다.미국은 앞으로 일정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럴 경우 해당 국가들이 WTO 다자협의에서 재협상을 거부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난제에도 불구,전문가들은 당분간 FTA를 체결하는 나라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본다.하지만 머지않아 웬만한 나라들이 거의 FTA를 체결,수적 증가추세는 주춤해지고 대신 경제협력내용이 경제통합 형태로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균미기자 kmkim@
■자유무역협정(FTA) 은
둘 이상의 국가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팔 때 관세·비관세 장벽을 제거함으로서 시장 접근을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FTA를 맺은 나라끼리는 자기 나라처럼 상품 등을 사고 팔 수 있게 된다.최근에는 서비스와 투자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협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과 FTA - 싱가포르·멕시코·日과 우선협상
우리나라는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FTA의 물꼬를 튼데 이어 앞으로는 FTA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그만큼 FTA 체결에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다음주중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FTA 추진종합전략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회의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싱가포르·멕시코·일본과 FTA협상을 벌이는데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과 추진한다는 일정을 세울 계획이다.
현정택(玄定澤)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FTA 체결을 통해 관세·비관세 장벽을 허물어 통상마찰을 근본적으로 없앨 필요가 있다.”면서 농업에 대한 우려가 적은 싱가포르·멕시코·일본 등과 FTA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는 내년 1월에 FTA 체결을 위한 공동연구회를 발족하기로 합의했다.싱가포르와 FTA 체결은 부정적인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협상은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와 협상은 내년중 공동연구를 벌인뒤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우리나라가 멕시코에서수입하는 농산물 비중도 지난 95년 10%에서 2000년 4%로 낮아졌다.FTA를 체결하더라도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정부는 단기간내 FTA 체결 대상국에 일본을 포함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일본과의 협상은 상당히 복잡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鄭仁敎) FTA팀장은 “일본과의 FTA협상은 경제적·비경제적인 득실에다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동북아 및 동아시아 경제통합 전략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추진전략을 세워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개별국가간 FTA체결뿐 아니라 다자간 협상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예를들면 한·중·일 또는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한·EU간 FTA협상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정현기자 jhpark@
■””세계자유무역 저해”” FTA 비판론 대두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화의 걸림돌인가,디딤돌인가?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소장 등 FTA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FTA가 다자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세계화로 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자주의의 걸림돌이라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으로 추천됐던 자그디쉬 바그와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FTA가 역외국에 배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다자주의로 발전하기 보다는 지역주의를 공고히 하고 범세계적 자유무역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양자 협상이 시장을 왜곡하고,관료주의와 이에 따른 비용을 양산하며 지역경제 블록간에 경쟁을 심화시켜 세계시장을 불필요하게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수파차이 파니티팍디(55) WTO 사무총장은 최근 ‘지역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회원국들에게 “제3국을 차별하고 무역체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같은 협정들은 세계통상체제에 체계적인 위험을 안겨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국가들이 앞다퉈 양자 협의를 좇는 사이 진정한 의미의 개방적인 국제경제체제가 창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국가들이 무역과 투자확대를 FTA를 추진하는 주된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국가들이 무역협정을 경제적 고려에서가 아니라 외교관계를 다지고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하며 경쟁국을 견제하는 등 여러 지정학적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이미 국내 시장의 대부분이 개방됐고 농업의 비중이 미미해 FTA 체결로 추가적인 경제적 이득이 별로 없는데도 이에 적극적인 것은 무역협정을 통해 안보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FTA 첫 체결국으로 싱가포르를 택한 것도 2차대전 당사국으로서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는 동남아 지역에 일본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분위기가 조성돼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이유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된 직후 갑자기 할 일이 줄어든 각국의 무역정책 담당자들이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FTA에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보다 현실적 분석도 있다.
다자협상은 결과가 가시화하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비해 양자협상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이 정책당국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FTA가 만능은 아니라고 경고한다.자유무역 지지 기업단체인 미국 무역을 위한 비상위원회의 칼맨 코언위원장은 “FTA 양자협상은 칼의 양날과 같다.”면서 “FTA는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는 측면도 있지만 나라에 따라 협정의 내용이 상이할 경우 무역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개의 상이한 협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스파게티 효과’라 불리는데 이 경우 오히려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FTA 열풍은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제한된 협상 인력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지난해 출범한 도하개발어젠다(DDA)의 타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김균미기자
■동아시아 경제블록/ 달리는 中 - 뒤쫓는 日
한국과 중국,일본의 경쟁구도는 한마디로 ‘앞선 중국,뒤쫓는 일본,머뭇거리는 한국’으로 요약된다.
동남아를 휩쓰는 자유무역 붐에는 아세안 국가들의 비교적 안정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와 낮은 제조업 비용으로 인해수출 중심의 투자 활성화가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회원국간 불신이 여전하고 환율제도가 매끄럽게 조율되지 않은데다 일부 산업에 대한 보호 정책이 존속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중국은 지난 4일 아세안과 FTA 창설을 위한 기본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역내인구 17억명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교역공동체를 2013년까지 출범시키기로 했다.이 구상이 실현되면 역내 국내총생산(GDP) 2조달러,교역액 1조 2000억달러로 유럽경제공동체와 2005년 출현할 범미주 FTA에 버금가는 경제블록이 형성된다.
중국은 2010년까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선발 6개국과 교역 자유화를 마무리하고 2015년에는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후발 4개국과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중국은 캄보디아 라오스 등 세계무역기구(WTO) 미가입국들에 이미 최혜국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회원국의 경제 격차가 워낙 크고 유럽처럼 단일한 사회·정치·종교체제로 통합되지 않은 점이 걸림돌로 지적된다.중국에 시장만 내주었다는 비판론에 직면할 위험도 있다.지난 1월 싱가포르와 협정을 맺어 첫발을 뗐다가 중국에 추월당한 일본은 아세안 선발국들을 집중공략,중국에 뺏긴 이니셔티브를 되찾는다는 전략이다.일본은 또 한국처럼 농업분야가 취약한 점을 감안,10년안에 주요 국가들과 FTA를 맺되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등 농산물 생산국과는 중장기적 협상을 벌인다는 구상이다.싱가포르를 낙점한 것도 농업이 없다시피한 특성을 겨냥한 것이다.일본은 지난 18일 중남미 거점인 멕시코와 정부간 협상에 들어갔다.
일본과 아세안이 FTA를 맺게 되면 10년안에 최소 4조 9000억달러 규모의 경제공동체가 출범할 것으로 분석된다.오는 2020년까지 아세안의 대(對)일본수출은 50% 증가하고 반대의 경우도 2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임병선기자 bsn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