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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청년 성소수자 “군대·개신교·국민의힘 ‘비우호적’”…심상정>이재명>윤석열 순 지지

    [단독]청년 성소수자 “군대·개신교·국민의힘 ‘비우호적’”…심상정>이재명>윤석열 순 지지

    청년 성소수자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대표적인 집단으로 군대, 개신교, 국민의힘을 꼽았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악화됐고, 이는 종교단체의 조직적인 반대 탓이 크다는 답이 나왔다. 청년 성소수자들은 내년 대선 후보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33.6%)를 가장 선호했고,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60.3%)이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서울신문은 청년 인권 단체 ‘다움’(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이 서울시 청년청 지원을 받아 올 8월 실시한 ‘2021년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를 통해 이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다움은 지난 10년간 주로 한국에 거주한 만 19~34세 성소수자 3911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청년 성소수자의 91.4%는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집단으로 군대를 지목했다. 10명 중 9명꼴이다. 지난해 성 확정 수술 뒤 강제 전역 당한 고 변희수 전 하사 사건이나 2017년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개신교와 국민의힘도 비우호적인 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청년 성소수자가 가장 선호하는 정당은 정의당(33.6%)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주요 대선 후보별 선호도 조사에서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30.3%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7.5%,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2.2%,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0.9% 순으로 지지율이 높았고, 뽑을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36.6%였다. 한국사회가 성소수자로 살아가기가 ‘매우 안좋다’고 인식한 청년 성소수자 비율은 56.1%였다. ‘다소 안좋다’(41.0%)는 응답까지 합하면 97.1%가 우리 사회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 청년 성소수자의 35.7%는 지난 5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종교 단체의 조직적인 반대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 증가, 정치인 및 정당의 모욕적인 언행, 성소수자 차별적인 교육 등도 부정적 인식이 증가한 이유로 언급됐다. 다움의 심기용 활동가는 “청년 성소수자 집단에서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다른 정당이나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점을 눈여겨 봐야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트랜스 남성’ 성 정체성 찾은 희원이 학교에 도움 요청했지만 자퇴 종용중고생 학업 중단율 대비 27배 높아 희원(17·가명)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에게 늘 믿음직스러운 맏딸이자 동생에게는 하나뿐인 언니였지만 희원이는 스스로 남자라고 느꼈다. 집 화장실에서는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 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과호흡으로 쓰러진 희원이는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자퇴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트랜스 남성’ 성 정체성 찾은 희원이학교에 도움 요청했지만 자퇴 종용중고생 학업 중단율 대비 27배 높아“사내아이는 우는 거 아니야. 얼른 눈물 뚝 그쳐.” 10년 전 유치원 선생님은 울며불며 떼쓰는 남자 아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일곱 살 희원(17·가명)이는 선생님에게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집에선 맏딸, 유치원에선 여자 아이였던 희원이는 그러나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집에선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 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과호흡으로 쓰러진 희원이는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자퇴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지정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 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 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 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숏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 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이 존중한다는 게 아니라 ‘너가 트랜스젠더인데 뭐 어쩌라고?’라는 뜻이었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웃팅(43.8%) 피해가 컸다. 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는 ‘0’…기댈곳 없어 학교 스스로 관둬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트집을 잡았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씨는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씨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안 된다. 그중에서도 조례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정도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학생인권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했다”면서도 “성소수자 권리구제 신청을 하는 순간 정체성이 원치 않게 공개되기 때문에 여전히 학생들은 상담기관을 찾을 뿐 직접 구제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도윤씨는 잘 살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자퇴를 택했지만, 지금도 졸업식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검정고시로 졸업했는데 왜 학교에 있지’라고 의구심을 품다가 ‘꿈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납득한다. “남들은 초·중·고는 그냥 졸업하잖아요. 자퇴한 데 아쉬움이 남나봐요.” 등 돌린 부모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됐다. 부모님의 지지를 바랐던 우현씨는 다시 용기를 냈다. “학교에 다니며 성별을 바꾸기 위한 의료적 조치(트랜지션)를 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7살 터울인 동생이 잠든 뒤에야 부모님은 우현씨를 불렀다. 그때 들은 말 대부분을 애써 기억에서 지웠지만, 아버지의 한 마디는 잊을 수 없다. “애초에 너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말해도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네가 커서 알아서 해라.”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우현씨는 오랫동안 부모를 설득한 끝에 고2 때 학교를 그만두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두어달이 지나자 수염도 났다. 신체에 대한 성별 불일치감은 줄었지만 부모님은 멀어졌다. 어머니는 느닷없이 수도원으로 떠났다. “제가 변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거 같아요. 한달 뒤에 엄마가 돌아오고 저는 집에서 쫓겨났어요. 집에 전화했는데, 지금 들어가면 맞아죽겠다 싶었죠. 아는 사람 집을 1주일씩 전전하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인 ‘띵동’에 도와달라고 했죠.” 폭력에 전환치료 시도까지…가출은 이들의 생존법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요. 낳아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살려면 독립하기 전에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까스를 사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 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살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고, 가정 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정신과 상담이나 진단에 대한 부모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탈가정한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생계형 노동자가 된 아이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에서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 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씨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렌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라’고 말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 낙인 찍은 학교 떠났다

    [단독]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 낙인 찍은 학교 떠났다

    “사내 아이는 우는 거 아니야. 얼른 눈물 뚝 그쳐.” 유치원 선생님은 울며불며 떼 쓰는 남자 아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일곱살 희원이(17·가명)는 선생님에게서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희원이는 맏딸이자 여자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원이는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해본 기억이 없다. 집에서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가입했다.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학교도 날 지켜주지 않을 줄은 몰랐어요.” 희원이의 불안 증세는 심해졌다. 어느 날엔 수업 중 호흡이 가빠져 숨이 안쉬어졌다. 선생님이 성확정 수술 후 강제 전역 조치된 트랜스 여성 고 변희수 전 하사를 ‘남자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언급한 게 뇌관이었다. “제가 죽으면 저를 여자로 기억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희원이는 결국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자퇴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어떻게 취재했나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학교생활, 가족 관계, 노동, 성별정정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17일까지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조사에는 224명이 참여했다. 15~18세 응답자는 전체의 29.5%인 66명, 19~24세 응답자는 70.5%인 158명이었다. 출생 시 성별이 여성인 응답자는 67.9%인 152명, 남성은 32.1%인 72명으로 집계됐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여성이라는 응답은 21.8%인 47명, 남성은 27.7%인 62명이었다. 남녀 어느 쪽으로도 규정하지 않는다는 ‘논바이너리’는 51.3%인 12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 중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일부는 약 4개월 간격을 두고 2차 인터뷰를 가졌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성소수자부모모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해방전선 등의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흑인이며 게이라 맞았다” 자작극 배우 스몰렛에 유죄 평결

    “흑인이며 게이라 맞았다” 자작극 배우 스몰렛에 유죄 평결

    지난 2019년 인종차별과 동성애자 혐오 공격을 당했다고 경찰에 거짓 신고를 했던 미국 배우 주시 스몰렛(39)이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다. TV 드라마 ‘엠파이어’에 출연했던 스몰렛은 9일(이하 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레이턴 형사법원에서 진행된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지만 배심원단은 여섯 가지 혐의 가운데 다섯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검찰은 그가 시카고 경찰에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관련 “압도적인 증거들”이 있다며 엄벌할 것을 요청했다. 아직 형량은 선고되지 않았는데 각 혐의마다 최고 징역 3년형이 선고될 수 있어 15년형이 언도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전과가 없어 더 가벼운 양형에다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배심원들은 6명의 남성과 6명의 여성으로 이뤄졌으며 9시간 숙의 끝에 유 죄 합의에 이르렀다. 3년 전 1월 29일 스몰렛은 “새벽에 길을 가던 중 남성 2명에게 폭행을 당하고 표백제나 성분을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을 뿌리고 밧줄로 목을 감았다”고 말해 큰 논란이 됐다. 가해자들이 동성애자를 공격하는 욕설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그가 ‘엠파이어’에서 가수이자 작곡가 게이로 등장했고, 실제로 동성애자이며 흑인이란 점 때문에 인종차별에다 동성애 혐오 범죄에 희생당했다며 동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엠파이어’에 단역으로 출연해 스몰렛과 안면이 있던 흑인 남성과 그 형제가 진실을 털어놓았다. 스몰렛이 3500 달러(당시 약 400만원)을 주면서 폭행 자작극을 사주했다는 것이었다. 단번에 차별과 혐오 공격은 “비열한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아빔볼라와 올라빈조 오순다이로 형제는 재판에 나와 같은 얘기를 증언했는데 스몰렛은 법정에서도 “수표는 아빔볼라의 음식과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지급한 것이며 한푼도 그에게 거짓말 대가를 준 것이 아니었다”고 버텼다. 아울러 아빔볼라와 성적인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그 결과 폭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스몰렛이 폭행 자작극을 사주하겠느냐는 것이다. 당국은 엠파이어 출연으로 명성과 얼굴을 알렸지만 그가 “임금이 적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려고 자작극을 꾸몄다고 봤다. 힙합 왕조를 묘사해 큰 인기를 끌어 다섯 시즌까지 제작된 이 드라마에서 그의 회당 출연료는 10만 달러(약 1억 1770만원)였다고 진술했는데 이 액수를 적다고 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또 3년 전 수사 초기 단계에서 5주 동안 이 사건을 수사했고 수사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스몰렛에게 청구하겠다고 공언했던 시카고 검찰이 기소를 중단한다고 밝혀 당시 람 이마누엘 시카고 시장과 경찰서장 등이 격분하는 등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 성별을 뒤집다 세상을 뒤집다

    성별을 뒤집다 세상을 뒤집다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여성들이 세계 정치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게이·레즈비언 등 동성애자 정치인의 활약은 선진국에선 이제 낯설지만은 않게 됐지만, 그보다 소수인 트랜스젠더가 정치권 요직에 오른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유리 천장’을 뚫고 각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의 모습은 앞으로 더 많은 성소수자(LGBT)가 동등하게 활약할 세상의 청사진이 되고 있다. ①전직 교장서 스웨덴 교육장관 된 킬블롬 스웨덴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신임 총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새 정부 내각 구성을 발표하면서 사회민주당 소속의 리나 악셀손 킬블롬(51)을 초중등학교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 교육 담당 장관에 임명했다. 스웨덴에서 트랜스젠더가 장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직 교장이자 변호사인 그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1995년 성전환 수술을 했다. 악셀손 킬블롬은 임명 후 스웨덴 공영라디오 인터뷰에서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은 맞지만, 이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다”라며 “조금이나마 롤모델이나 선구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②벨기에 부총리 더쉬테르, 성소수자 보호 앞서 유럽 첫 트랜스젠더 내각 구성원은 지난해 10월 벨기에에서 탄생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부총리 7명 중 한 명으로 임명된 페트라 더쉬테르(58)가 주인공이다. 난모세포 유전학을 연구한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의 더쉬테르는 2014년 정계 입문 후 대리모에 대한 규정, 제약 산업에서의 임상 연구, 성소수자 권리 보호 등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 ③대만 ‘천재해커’ 탕펑, 마스크 대란 막아 대만에서는 2016년 세계 최초의 트랜스젠더 각료가 탄생했다. 2016년 대만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은 ‘천재 해커’ 탕펑(唐鳳·40)을 장관급인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에 임명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마스크 지도와 온라인 구매 시스템을 만들어 마스크 대란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탕펑은 오는 9~10일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차이 총통 대신 대만 대표로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예정이다. ④美 최초 ‘트랜스젠더 4성 장군’ 된 레빈 미국에서는 지난 3월 레이철 레빈(64)이 미 보건부 차관보로 임명되며 미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고위직이 됐다. 레빈은 지난 10월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으로 취임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 4성 장군에 오르기도 했다.
  • 촉법소년? 자살 부르는 학교폭력 징역 10년…칼 뽑은 프랑스

    촉법소년? 자살 부르는 학교폭력 징역 10년…칼 뽑은 프랑스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며 커밍 아웃을 했던 14살 프랑스 소녀 디나가 두달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잇단 학교폭력 사건에 프랑스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디나는 10월 5일 프랑스 동부 오랭주 뮐루즈시 킹게르스하임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소녀는 동성애자 고백 후 동급생들의 끊임없는 괴롭힘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과 자살 조장 등 폭력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2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소녀가 기댈 곳은 없었다. 학교에서 한 차례 상담이 진행됐지만, 피해 사실은 과소 평가됐다. 디나의 죽음 이후 프랑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3월 파리 센강에서 14살 소녀 알리샤가 시신으로 발견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충격은 더 컸다. 알리샤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 두 명에게 살해됐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가해 학생들은 범행 전 알리샤 SNS 계정을 해킹해 속옷 차림의 사진을 유포하기도 했다. 잇단 학교폭력 사건에 르몽드 등 현지언론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교육부 자료를 인용, 학생 10명 중 1명꼴인 70만 명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여론이 들끓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학교폭력 근절을 지시했다. 지난달 18일 마크롱 대통령은 ‘3018 신고전화’를 시작하고, 청소년 전담 상담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학교폭력 신고 절차를 간소화하고, 즉각적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학교폭력 처벌 강화 논의를 본격화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1일(현지시간) 프랑스의회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실형으로 다스리는 법안 초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그간 폭력 혐의로 처벌하던 따돌림과 괴롭힘 등 학교폭력은 범죄로 규정되고 처벌도 법제화된다. 법안은 가해 학생 연령과 폭력 경중에 따라 최고 3년의 징역형과 4만 5000유로(약 6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피해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을 때는 가해 학생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과 15만 유로(약 2억원)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다.장미셸 블랑케르 교육부 장관은 이미 법안에 지지를 표했으며,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여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과 전통 우파 정당인 공화당도 법안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을 발의한 중도성향 민주운동당(MoDem) 에르완 발란트 의원은 해당 법안이 교육적 가치를 가지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반면 좌파 진영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불복하는 프랑스’(LFI) 사빈 루빈 의원은 해당 법안이 “모호하고 선동적인 과잉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전통 좌파 정당인 사회당(PS) 미셸 빅토리 의원은 “미성년자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프랑스는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받지 않는 촉법소년 나이를 만 13세로 정하고 있다. 
  • “내가 국민 지갑 채우겠다”… 텃밭 호남서 민생론 펼친 이재명

    “내가 국민 지갑 채우겠다”… 텃밭 호남서 민생론 펼친 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9일 “이 순간부터 저의 목표는 오직 경제 대통령, 민생 대통령이다. 국민의 지갑을 채우고, 나라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선 D-100 전 국민 선대위 회의 연설에서 “그 어떤 것도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선 투표일 100일을 앞둔 이날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민생론을 편 것이다. 이 후보로서는 아직 전폭적인 지지를 유보하고 있는 호남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지지율을 역전시키는 골든크로스를 이룰 것으로 판단, 지난 주말부터 이날까지 3박 4일간 광주·전남을 누빈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두 개, 세 개, 네 개를 양보해서라도 당장의 국민 삶을 한 개라도, 두 개라도 개선하겠다”며 윤 후보의 소상공인 50조원 지원 공약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온전히 우리 윤 후보님의 성과로 제가 인정하고 본인이 주장하신 것을 저희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테니 즉시 집행할 수 있도록 논의에 착수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가 모여든 데 고무된 듯 이 후보는 이날 “제 예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열정적으로 환영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로 큰 힘이 됐다”며 “자신감도 많이 생겨난 것 같다”고 말했다. 호남 지역구의 한 의원도 “호남의 지지율과 수도권에 사는 호남민들의 지지율은 한 번에 움직인다”며 다음주 여론조사에서 골든크로스를 조심스레 예상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잔여 추징금 문제와 관련해 “추징금도 공적 채무로 보고, 전씨의 상속 재산이 발견되면 국가에 (채무를)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며 “입법을 하되 재산에 부과된 책임을 상속하는 것으로 하면 소급입법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해야 될 일이라 추진해야 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곡해와 오해가 상당히 존재한다. 충분한 논쟁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충분히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지난 8일 기독교계를 만나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신중론을 펼친 것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제가 이해하기로는 원래 있는 것이다. 성적 취향도 타고나는 것인데 그것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광주·전남 일정 마지막 행선지는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고향인 영광이었다. 이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 후보는 영광 터미널시장에서 ‘이낙연’을 세 차례나 언급했다. 이 후보는 “호남이 낳은 대한민국의 정치 거물, 이 전 대표님을 제가 잘 모시고 더 유능한 민주당으로, 더 새로운 정부로, 더 나아진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의 1호 외부영입 인사는 군 출신의 우주산업 전문가 조동연(39) 서경대 교수로 알려졌다.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조 교수는 워킹맘으로 청년층을 겨냥한 인선으로 평가된다.
  • 이재명 “성적 지향 타고나는 것…차별금지법 입법해야”

    이재명 “성적 지향 타고나는 것…차별금지법 입법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9일 “동성애는 누가 일부러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원래 있는 것이다. 있는 건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지역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 입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유무, 나이, 출신 국가, 성적 지향, 학력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이 후보는 “현실적으로 곡해와 오해가 상당히 존재한다”며 “충분한 논쟁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충분히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예를 들어 혹시 내가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으면 처벌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며 “그런 우려를 걷어내고 필요하면 보완 장치를 두는 과정 등을 거쳐서 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대체적인 공감을 말하는 것이지, 모두 동의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한 학생이 동성애자의 입양 허용 여부 이슈를 거론하자 “현재 차별금지법은 추가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차별하지 말라는 것까지”라며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혼자 사는데 입양은 안 된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하는 것은 더 이상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해서는 “선택할 수 있느냐, 원래 있던 것이냐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갈등의 원천”이라며 “제가 이해하기로는 원래 있는 것이다. 성적 지향도 타고나는 것인데 그것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후보는 성별 할당제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적다 보니 청년들이 남녀로 나뉘어 ‘오징어게임’처럼 편을 먹기 시작한 것”이라며 “저는 경기도 공무원을 임용해봐서 안다. 남성들이 할당제 혜택을 많이 본다. 30%에 미달해서 강제로 남성에 할당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사회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현재도 매우 심각해서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승진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 가사노동 분담까지, 같은 일을 해도 보수 차이가 나고 채용에도 불리함이 있다”고 진단했다.
  • 이재명 “‘전두환 추징금’도 상속받도록 법 만들자”

    이재명 “‘전두환 추징금’도 상속받도록 법 만들자”

    “전씨 상속 재산 발견되면 채무 이행해야”“추징금 상속 안 되니 이게 정의롭냐”“소급입법 문제 없을 것”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9일 전두환 전 대통령 잔여 추징금 문제에 대해 “추징금도 공적 채무로 보고, 전씨의 상속 재산이 발견되면 국가에 (채무를)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지역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입법을 하되 재산에 부과된 책임을 상속하는 것으로 하면 소급입법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1억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추징금 5000만원을 내지 않고 죽었는데 추징금은 상속이 안 되니 자손들이 1억원을 그대로 상속받았다고 하면 이게 정의롭냐”며 “추징금은 형사처벌이라 상속되지 않는데 그러면 아예 추징금을 상속받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고 했다. 이 후보는 “일각에서는 소급할 수 없다, 전두환 문제도 해당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는 것 같다”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늘이 정해준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사실 군사반란 처벌법도 형사법상 소급금지 원칙에 반해 소급해 처벌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합헌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추징금 상속 문제도) 국민이 동의하면 된다. 헌법이라는 게 별거겠느냐. 지금이라도 집행할 수 있다. 실제로 소급 적용해도 헌법 위배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입법이 필요하다. 입법해야 한다는 게 정리된 입장”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이 법을 둘러싼) 곡해와 오해가 상당히 존재해 충분한 논쟁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혹시 내가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으면 처벌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 그런 우려를 걷어내야 한다”며 “필요한 보완 장치를 두는 과정 등을 거쳐서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김연아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작곡한 손드하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김연아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작곡한 손드하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거장 스티브 손드하임이 26일(현지시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와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친구이자 법률 대리인인 F 리처드 파파스 변호사가 손드하임이 코네티컷주 록스베리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매니지먼트 회사 DKC-O&M의 릭 미라몬테스도 손드하임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고인은 전날까지만 해도 친지들과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손드하임은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어쌔신’, ‘스위니 토드’, ‘컴퍼니’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작곡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는 프랭크 시내트라, 주디 콜린스 등 전설적인 가수들에 의해 수백 번이나 녹음됐다. 이 곡은 특히 ‘피겨 여왕’ 김연아가 은퇴 무대인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 배경음악으로 활용해 팬들에게도 친숙한 곡이다.그는 가사까지 함께 직접 쓰는 몇 안 되는 메이저 뮤지컬 작곡가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동시대에 맞게 옮긴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함께 작업한 번스타인은 생전에 고인처럼 뮤지컬 노래와 가사를 매끄럽게 조화시키는 이를 보기 어려웠다고 상찬했다. 1930년 3월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처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매력에 빠져 열 살 때 ‘왕과 나’ ‘오클라호마!’로 유명세를 떨치던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NYT는 고인이 “20세기 후반기 가장 존경받는, 영향력 있는 작곡·작사가였으며,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쇼를 만들어낸 무대 뒤 원동력”이라며 “미국 뮤지컬의 기준을 수립했다”고 평가했다.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도 매우 다양했다. 뮤지컬 ‘소야곡’(Little Night Songs)에서는 스웨덴의 예술영화 감독 에른스트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을 다뤘고, ‘태평양 서곡’(Pacific Overtures)에서는 일본의 개항을,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의 일생을 담았다. 오랜 세월 뮤지컬 업계에 종사하면서 손드하임은 그래미상 8개, 토니상 8개, 아카데미상 1개를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2015년에는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동성애자로도 유명하다. 유족으로 남편 제프리 스콧 롬리를 남겼는데 2017년 결혼한 두 사람의 나이 차는 거의 50년이었다. 고인은 그 해 인생을 돌아보면서 “여러분을 분명하지 않게 만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어떤 일을 계속해야 한다. 여러분이 가는 길의 끝을 안다면 여러분은 이미 저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어느 시가 그랬듯 그런 게 죽음”이라고 말했다.
  • 뉴욕 마천루는 어떻게 ‘금고’가 되었나

    뉴욕 마천루는 어떻게 ‘금고’가 되었나

    당신이 사랑하는 도시는 어떤 얼굴로 기억되는가. 흔히 높은 마천루, 유서 깊은 관광지, 음식과 문화가 도시 이미지를 결정하곤 한다. 하지만 그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도시 외관에 다양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면 도시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리처드 윌리엄스 영국 에든버러대 시각문화학과 교수는 자본, 정치 권력, 성적 욕망, 노동, 전쟁, 문화 여섯가지 요소가 도시 경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윌리엄스 교수는 저서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에서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인 공간이며, 도시 계획가나 건축가의 의도가 아닌 상호작용하는 여러 프로세스가 빚어낸 결과”라고 정의한다. 이 중 도시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자본이다. 저자는 우리가 도시에서 마주하는 건축물들의 상당수가 자본의 증식, 즉 부동산 투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마천루를 뽐내는 미국 뉴욕 맨해튼은 전 세계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곳이지만 높은 공실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고층 빌딩들은 고액 자산가들이 돈을 묻어 두는 ‘개인 금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영국 런던의 랜드마크인 일명 ‘워키토키 빌딩’(20 펜처치 스트리트 빌딩)은 자본의 속성이 건축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무전기를 닮은 독특한 외관의 이 건축물은 아래층이 제일 좁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넓어지도록 설계됐다. 임대료가 높은 고층의 더 ‘비싼 층’을 많이 임대하기 위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띠게 됐다. 이 때문에 빌딩은 “21세기에 지어진 마천루 가운데 최악의 건물”이라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는 “집중된 자본의 이미지가 환영을 만드는 것은 현재 세계 도시들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분석한다.정치 권력도 도시 외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권력의 권위는 건축물의 거대함, 기하학적 구조, 질서를 통해 표현된다. 미국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과 내셔널몰,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런던 시청사와 독일 국회의사당은 투명한 유리 구조로 권력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현대 도시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노골적인 형태가 아니라 은밀한 방식으로 권력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성적 욕망도 도시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 뉴욕의 첼시 부둣가는 1960년대까지 해상 운송의 중심지였지만 쇠퇴를 거듭하며 남성 동성애자의 만남의 장소가 됐고 예술가들은 이 지역을 주목했다. 이곳에 휘트니미술관이 들어서며 세계 미술계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저자는 도시 형태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요소로 노동도 꼽는다. 도시에서는 노동이 사람과 사물의 특정한 흐름을 만들고, 하루의 리듬을 만들며 이미지와 정체성을 제공한다. 20세기 미국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포드의 도시로 작은 도시 하나 크기였던 포드의 공장들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도시를 지배했고,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대학 캠퍼스형으로 일터를 조성해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기도 했다.이 밖에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수산업 중심지로 떠오른 미국 로스앤젤레스처럼 전쟁은 한 도시를 완전히 바꿔 놓기도 하고, 문화는 산업과 연결되며 도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버려진 창고와 공장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화력 발전소를 고쳐 만든 런던의 테이트모던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정유 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철골을 건물 외벽에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문화는 곧 산업이라고 선언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는 도시의 모습은 계획하고 설계하지 않은 요소들이 결합해 나타난 결과이며 미술, 영화, 대중문화 그리고 사람들이 직접 찍고 공유하는 사진들과 더 긴밀한 관계가 있다”며 책을 맺는다. 아울러 도시를 비현실적인 미적 기준에 따라 볼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이쯤 되니 서울은 세계인에게 어떤 도시로 기억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 “민주당, 평등 지연에 큰 책임… 차별금지법 입장 알 수 없어”

    “민주당, 평등 지연에 큰 책임… 차별금지법 입장 알 수 없어”

    “저는 올해 44세 남성 동성애자 게이입니다. 오늘처럼 모욕적인 순간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14년 전에 차별금지법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막중한 책임이 있는 정당입니다. 우리 사회 평등을 지연시킨 데 가장 큰 책임이 있고요. 이 토론회의 심각한 문제는 차별금지법에 관한 민주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고요. 찬성과 반대 동수로 토론자를 구성했는데, 반대 패널 분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악의적 비방, 차별과 혐오, 전환 치료 명목으로 반인권적인 얘기를 해오셨던 분들입니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첫 평등법(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열렸다. 전날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처음으로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차별과 혐오를 전시하는 평등법 토론회 패널구성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의 패널은 찬·반 각각 5명씩이었다. 찬성 측에는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팀장, 조혜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지몽 스님,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자캐오 성공회 신부, 박종운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 등이 나섰다. 반대 측은 탈동성애인권센터 홀리라이프 이요나 목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 성산생명윤리연구소 류현모 교수, 이상원 새로남교회 목사, 윤용근 법무법인 엘플러스 변호사다. 찬성 측 토론자들은 차별금지법 논의가 시작되고 지난 14년 간 민주당이 논의를 방치했다며 비판했다. 조혜인 희망을만드는법법 변호사는 “10년 넘게 성소수자 인권이 진전되기는 커녕 지체되고 후퇴한 것은 민주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모든 공공부문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차별이 일어나고 있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당의 공적인 책임”이라고 말했다. 반대 패널들은 “차별개념이 명료하지 않으며, 차별금지사유로 말하는 성별·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등에는 사회적 논란이 많다”(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 등의 논거를 댔다. 앞서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며 “그러나 현행법은 대상이 연령, 장애, 고용 분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실질적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논의를 시작으로 기준을 만들고 깊이 있는 논의를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등법 발의자 중 한 명인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오늘 오전 공개발언 통해 야당 (법사위) 간사에게 일방 통과 어려우면 여야 동수로 특별소위를 만들어서 논의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했다. 네 번째 평등법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참석한 모든 분들께 혐오와 차별 언어가 나오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부탁한 것을 두고, 참석자 중 한 명이 “평등법 반대하는 우리의 입에 ‘자크’(지퍼)를 매자는 것”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 문 대통령 “차별금지기본법, 인권선진국 되려면 반드시…”

    문 대통령 “차별금지기본법, 인권선진국 되려면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 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했다. ‘인권위법’이라는 기구법안에 인권규범을 담아 한계가 있었다”면서 “인권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정치권은 물론 사회단체, 종교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차별금지법의 입법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위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드는 일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지난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폐기된 후 14년 동안 발의와 폐기가 반복돼왔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약속을 유보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수많은 이의 헌신과 희생이 일군 성과이며 우리 존엄과 권리는 우리가 소홀하게 여기는 순간 뺏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가 있는 명동성당은 독재에 맞서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외친 곳이자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협받던 시절 저항의 목소리를 낸 곳”이라며 “모두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길이다. 항상 인권을 위해 눈뜨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문 대통령은 “인권존중 사회를 향한 여정에 끝이 없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경험했다”며 “다른 사람의 인권이 보장될 때 나의 인권도 보장된다”고 밝혔다. 또한 “인권위가 설립된 20년 전 평화적 정권교체로 정치적 자유가 크게 신장됐지만 인권국가라고 말하기엔 갈 길이 멀다”며 “특히 사회경제적 인권 보장에 부족함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끝나자 일부 참석자가 “대통령님, 성소수자에게 사과하십시오.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차별금지법 즉각 추진하십시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성추행 피해를 알린 뒤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가 행사장 앞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중 문 대통령을 만나 요구사항이 담긴 입장문을 직접 전달했다. 현장에 있었던 군인권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중사 아버지는 “국방부 부실 수사로 책임자들이 전부 풀려났다. 특검으로 다시 들여다봐달라”고 했고, 문 대통령은 “보고받아서 잘 알고 있다. 잘 살펴보겠다”는 취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인도 첫 동성애자 고등법원 판사 탄생… “LGBTQ 투쟁의 역사적 전환점”

    인도 첫 동성애자 고등법원 판사 탄생… “LGBTQ 투쟁의 역사적 전환점”

    인도에서 동성애를 비범죄화한 ‘나브테지 싱 조하르’ 사건 변호인이 인도 첫 동성애자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된다. 16일 힌두스탄타임스, 더힌두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 인사추천협의회는 스리 사우라브 키르팔(49)을 델리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하는 델리 고등법원의 제안을 승인했다. 현지 언론은 “헌법과 상법에 정통한 그가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받기 위한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 투쟁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2017년 10월 델리 고등법원 판사들은 만장일치로 키르팔을 델리 고등법원 판사 임명을 추천했다. 그러나 키르팔에 대한 배경 조사를 맡은 정보국은 2018년과 2019년 보고서에서 그의 외국인 파트너가 안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이에 대법원 인사추천협의회는 지난해 8월까지 3차례에 걸쳐 결정을 연기했다. 키르팔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인사에 불이익을 받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명해왔다. 샤라드 아르빈드 보브데 전 대법원장은 올해 초 인도 정부에 키르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줄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키르팔의 파트너가 스위스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NGO)에서 일했었다며 안보 우려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열린 대법원 인사추천협의회가 키르팔의 델리 고등법원 판사 임명 권고와 함께 이에 대한 정부의 예비 반대를 거부하면서 인도 첫 동성애자 고등법원 판사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정부는 키르팔에 대한 임명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키르팔은 동성애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 377조에 대한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나브테지 싱 조하르 사건 변호인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앞서 2016년 인도의 유명 안무가 겸 작곡가 조하르 등 5명이 형법 377조의 합헌성을 묻는 청원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2018년 9월 대법원은 동성애를 포함한 사적으로 합의된 성인 간의 모든 성행위는 합법이라고 선언하면서 형법 377조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렸다.
  • 혼외정사 나눈 이란 남녀, 간통죄로 사형 선고 논란

    혼외정사 나눈 이란 남녀, 간통죄로 사형 선고 논란

    혼외정사를 나눈 이란 남녀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8일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이란(이란이슬람공화국) 사법부는 간통죄로 기소된 20, 30대 남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애초 영국 데일리메일과 프랑스 AFP통신은 남성 동성애자 2명이 교수형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이름을 혼동하여 생긴 오보로 밝혀졌다. 반체제 성향의 이란 유명 언론인 마시 알리네자드(45)는 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혼외 성관계를 가진 27세 유부남과 33세 여성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란 최고법원이 사형을 확정했다. 형 집행 직전”이라면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목소리를 내달라. 국제 사회가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란 사법부는 유부남의 휴대전화를 통해 혼외 성관계 사실을 밝혀냈다. 아내가 남편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고소 취하를 검토했지만, 장인이 반대하면서 사형이 선고됐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장인은 딸의 간청에도 사법부에 사위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알리네자드는 “이란 형법상 간통죄는 신에 대한 모독”이라면서 “미혼남녀는 태형 100대로 처벌하나, 기혼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란 사법부는 2010년 간통혐의로 기소된 여성 사키네 모하마디 아시티아니(43)에게 돌팔매질 사형을 선고해 국제적 비난을 산 바 있다.당시 이란 당국은 아시티아니에게 이슬람식 두건을 쓰지 않았다는 누명까지 씌워 태형 99대를 추가로 선고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아들이 직접 구명운동에 나서는 등 논란이 확대되자 수감 9년 만인 2014년 아시티아니를 석방했다. 그러나 간통죄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이란 당국의 반인륜적 법집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쿠르디스탄24 보도에 따르면 이란 법원은 2018년 간통 혐의로 기소된 쿠르드족 여성 2명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이란계 미국인 인권운동가 로단 바자르간은 “21세기에 이란은 간통죄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한다. 이슬람 정권의 법은 인권보단 징벌과 보복을 중요시한다. 눈에는 눈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월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가 발표한 ‘2020 사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는 483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이 중 88%는 이란과 이집트,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4개 국가에서 이뤄졌다. 이란은 최소 246건의 사형 집행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최다 사형 집행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사형수 가운데는 18세 미만일 때 범죄를 저지른 3명도 포함됐는데, 이는 국제인도법 위반이다. 
  • 성소수자 자녀에 부모도 공격당해… 서로 기댈 곳 되길

    성소수자 자녀에 부모도 공격당해… 서로 기댈 곳 되길

    자녀 지지하며 혐오 맞선 부모 이야기“‘아이 잘못 키웠다’ 사회적 편견 탓 마찰어떻게 의지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죠”코로나19가 번지기 전에는 퀴어문화축제에 가면 ‘프리허그’(포옹) 캠페인을 하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 아들의 어머니 나비(활동명)와 동성애자 아들의 어머니 비비안(활동명)도 그들 중 하나다. 다른 성소수자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처음부터 온전히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이들이 자녀를 지지하고 혐오와 맞서는 과정을 그려 냈다.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7일 만난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변규리(32) 감독은 “성소수자 부모와 당사자가 마찰하게 되는 이유는 두 사람이 미숙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혐오나 편견 때문”이라면서 “성소수자 당사자와 부모나 예비 부모에게 어떻게 건강하게 서로 의지할 수 있을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변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어머니는 ‘태교를 잘못했다’거나 ‘아이를 잘못 양육했다’는 식의 그릇된 폭력에 노출된다”고 짚었다. 비비안도 “아들 예준에게 위로랍시고 불행한 인생 살게 낳아 준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성소수자에게 부모는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드러내기 가장 어려운 존재다. 그러나 예준의 애인 성준은 용기를 내 어머니에게 예준을 소개한다. 변 감독은 “성준은 예준과 비비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축하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성준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성애자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지만 점차 아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비와 아들 한결은 법적 성별을 남성으로 정정하기 위해 두 차례 법원에 간다. 첫 번째로 만난 판사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취업보다 알바를 한다”는 한결에게 ‘남성 성기 재건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한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판사는 “우리 사회가 아직은 성적인 소수자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지 못한 사회지만 너무 상처받지 마시고 당당하게 사세요”라고 한결을 응원한다. 판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공개한 이유에 대해 변 감독은 “자신의 판단이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판사들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성소수자 부모들의 동행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2일 변 감독은 부산시청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도보 행진을 함께했다. 부산에서 시작한 행진 일행은 오는 10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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