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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규직 소송’ 포스코 협력사 노조간부 자살

    포스코 협력업체 노조 간부가 ‘정규직화 소송 등에 승리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일 오전 7시 50분쯤 전남 광양시 마동 한 야산에서 포스코 사내 하청지회 EG테크 분회장인 양모(48)씨가 목을 매 의식을 잃은 것을 양씨의 아내가 발견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응급처치를 했지만 양씨는 숨졌다. 양씨는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서 정규직화 소송, 해고자 문제 꼭 승리하십시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금속노조는 전했다. 양씨는 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에게 “인간다운, 기업가다운 경영인이 돼 주십시오”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EG테크에 입사한 양씨는 2011년 4월 15일 해고당한 뒤 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차 해고를 당하고 다시 소송 끝에 지난해 5월 복직 통보를 받았지만, 광양제철소 밖에 있는 사무실 책상 앞에 대기하며 지난 1일 2차 정직 처분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금속노조는 주장했다. 경찰은 유가족과 동료 노조원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명문대생·금융맨으로”… 인생 성형의 덫

    “명문대생·금융맨으로”… 인생 성형의 덫

    부산에 사는 지체장애인 A(30)씨는 지난해 6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광고글을 발견했다. 이모(29·무직)씨가 올린 글에는 졸업증명서는 물론 각종 공문서를 감쪽같이 꾸며줄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A씨는 갈등에 휩싸였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의 장애인 특별전형에 지원하려던 터였지만 실업계고(특성화고) 출신이라 내심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A씨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교 생활기록부를 위조해 주는 대가로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은 뒤 성별과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과 함께 동생의 인문계 고교 생활기록부를 이메일로 건넸다. A씨는 위조 서류를 회사에 제출, 지난해 7월 입사에 성공했다. 경기 하남의 주부 김모(54)씨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이른바 ‘가방끈’이 짧은 학력 콤플렉스를 떨쳐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심지어 계모임에서조차 은연중 학력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2월 중순쯤 김씨는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이씨가 올린 글을 보게 됐다. 급기야 20만원을 입금하고 전북에 있는 한 여고의 졸업증명서 위조를 요청했다. 학력이나 성적, 자격증 등 ‘스펙’이 부족해 취직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믿는 ‘평판사회’의 신봉자들은 물론 예비군 훈련 연기용 진단서나 은행대출 서류 등이 필요한 이들에게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공·사문서를 위조해 준 20대 남성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김유랑 판사는 취업이나 은행대출 등에 필요한 각종 문서를 위조, 판매한 혐의(공문서 위조 등)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주겠다는 글을 올린 뒤 집에 있는 컬러프린터를 통해 지난해 1월부터 약 1년 동안 건당 30만~70만원을 받고 각종 공·사문서 80장을 위조해 약 2500만원을 챙겼다. 이씨가 위조한 서류는 다양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국내 명문대학 졸업증명서를 비롯해 재학증명서, 진단서, 납세증명서, 검정고시 합격증명서, 사망진단서,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병적증명서, 사업자등록증뿐만 아니라 맥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같은 유명 외국계 기업의 재직증명서도 위조했다. 이씨로부터 배우자 내용이 삭제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아 간 사람도 있었고 성적이 나쁘게 나오자 가족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성적증명서를 위조한 한국해양대 학생도 있었다. 이씨는 인력파견 업체를 운영하다가 사업이 실패해 3000만원가량의 빚 독촉에 시달리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에게 문서 위조를 의뢰한 A씨 등 8명도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과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명인·명물을 찾아서] 수십번 담금질마다 서린 장인 손끝 ‘세월의 온기’

    우리 선조들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대장간이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마다 한곳 이상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 영농이 보편화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한강·임진강·한탄강 등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산재한 한수 이북(경기 북부)에도 풀무질을 해가며 직접 손으로 두드려 낫·호미를 만드는 대장간이 고을마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근수(70)씨의 ‘파주대장간’이 유일하다. 파주 광탄시장 부근에 있다. 대장간 안은 매우 좁다. 겨우 38㎡(약 12평) 한쪽에 화덕이 있고 그 옆으로 모루와 각종 집게 등 작업도구들이 걸려 있다. 호미·낫·쇠스랑 등도 시렁에 쭉 걸려 있다. 마치 옛 농기구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한씨는 평생 해온 대장장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게 한 ‘곽산대장간’ 시절을 잊지 못한다. 요즘 만드는 물건에도 곽산대장간을 의미하는 ‘山’(산)자를 새겨 그 정신과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옛날 대장간의 모습과 지금 대장간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낫 한 자루를 만들려면 철근을 잘라 화덕에 수십 번 담금질하고 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기계가 두들김질을 대신하죠.” 이로 인해 낫 한 자루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린다. 화덕에 담금질을 12번 정도 하고 마지막에 물에 담가 강도를 높이면 완성된다. 한수 이북 마지막 대장간의 문을 차마 닫지 못하고 야장(冶匠)의 맥을 지키는 한씨는 1945년 파주 장단의 진동면 초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1·4 후퇴 때 누이, 남동생, 여동생 등 4남매와 정든 고향을 떠나 금촌 수용소 마을(현 금촌초등학교 근처)에 정착했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남동생이 죽고 뒤를 이어 여동생마저 굶주림으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금촌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 문래동에 사는 큰 아버지 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의 소개로 인근 영일동 곽산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평생을 ‘업’으로 여기며 살게 된 대장장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자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곽산대장간은 주로 건축에 필요한 꺾쇠 등을 만들었다. 20여명의 직원들 속에서 가장 어렸던 한씨에게 주어진 일은 풍구질. 화덕에 불을 지피며 눈치껏 다른 일들을 배워 나갔다. “한 10년 하니까, 대장장이가 갖춰야 할 웬만한 기술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곽산대장간 주인 김지명씨는 고향인 평안도 곽산을 대장간 이름으로 썼다. 곽산대장간에서 만든 물건에는 모두 ‘山’을 새겼는데 당시 서울에서는 꽤 소문나 있었다. 한씨의 대장장이 기술은 김지명씨로부터 전수받았다. 이 때문에 한씨는 지금도 ‘山’이란 로고를 쓰고 있다. 한씨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이가 혼인해 파주 용주골에 정착하자 197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파주 법원리에 있는 ‘법원리대장간’으로 일터를 옮겼다. 당시 25살 청년의 눈에 비친 법원리대장간은 서울의 곽산대장간 분위기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시골이라 농기구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이었으나 눈치껏 일을 배워 나갔다. 첫 월급은 22㎏짜리 밀가루 4포를 살 수 있는 3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의 눈에 동료들이 낫자루 끝을 마무리하는 낫 당개미(나무로 된 낫 손잡이가 쪼개지지 않도록 자루 끝에 끼우는 고리 모양의 쇠붙이)를 몹시 어렵게 많은 시간을 허비해가며 만드는 것을 보게 됐다. 한씨는 당개미의 재료인 두꺼운 쇠판을 오릴 수 있는 가위를 만들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낫 당개미 전용 가위를 만들자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고 낫을 생산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졌다. 대장간 주인은 월급을 1만 5000원으로 5배 올려줬다. 그로부터 5년 후 한씨는 인접 마을인 광탄면 신산리 ‘파주대장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3년이 지나자 이곳의 주인이 됐다. 1970년대 중반 당시 파주에도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셌다.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 수요 역시 급증했다. 닷새마다 열리는 광탄 장날은 대목 중 대목이었다. 장날 하루에만 호미를 2만개나 팔았다.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직원 5명을 두고 일을 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구입하다 팔기까지 했다. 낫도 연간 1만개가량 팔려나갔으며 당시 인근 군부대에 도끼를 비롯한 여러 도구를 납품하기도 했다. “그때가 가장 호황을 누렸지요. 자녀 다섯을 대장간에서 번 돈으로 공부시켰으니까.” 그러나 호황도 잠시.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제초제)이 보급되면서 호미·낫을 비롯한 농기구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큰 기업들이 기계로 찍어 내더니 5년여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어 오면서 8000원짜리 호미는 연간 20개, 1만 5000원 하는 낫은 200개 정도만이 팔리고 있다. “중국산 호미가 3000원, 낫이 5000~7000원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호미와 낫을 5배, 2배씩 더 주고 사겠어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릴 수도 없죠.” 요즘도 대장간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30~40년 전과 달리 한가롭기만 하다. 워낙 수입이 없어 기계로 만든 다른 철물들도 구색을 갖춰놓고 팔고는 있으나 한 달 수입이 고작 100만원도 안된다. 현실은 이래도 한씨는 한 번도 대장간 문을 닫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불을 지폈던 화덕은 이제 주문이 있거나 광탄 장날에만 가끔 불을 지피곤 한다. “나까지 돈 안된다고 문을 닫으면 한수 이북에 대장간은 아예 씨가 마르게 되는 거예요.” 글 사진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학생 父, 생일이자 어버이날 숨져

    세월호 희생자 학생 父, 생일이자 어버이날 숨져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어버이날인 8일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도 안산 단원경찰서는 이날 오후 12시 40분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의 한 단독주택 2층 원룸에서 단원고 희생학생 아버지인 권모(58)씨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밝혔다. 권씨 동생(56)은 이날 생일을 맞은 권씨와 식사를 함께 하려고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자 집을 찾았다가 부엌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권씨를 발견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권씨는 10여년 전 아내와 이혼해 홀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단원고 학생이었던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경찰 관계자는 “권씨 유족으로부터 권씨가 숨진 아들의 여행자보험금을 놓고 전처와 갈등을 빚었다는 진술을 받았다”며 “숨진 아들과는 자주 왕래하던 사이는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한 외상이나 외부 침입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권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검사와 상의해 부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권씨는 유족 대책위원회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16 가족협의회 한 유족은 “숨진 학생의 어머니는 유족 활동을 통해 알지만, 아버지는 전혀 모르겠다”며 “어버이날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별다른 조화 장식 없이 제단에는 고인의 영정사진과 위패만 놓여 있어 쓸쓸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을 키운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에 젖어드는 5월8일 어버이날은 권씨의 생일이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플러스-사회] 세월호 희생학생 부친 숨진 채 발견

    어버이날인 8일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안산단원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40분쯤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의 한 단독주택 원룸에서 권모(58)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동생(56)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권씨는 10여년 전 이혼해 혼자 살고 있었다. 경찰은 “조카 보상금 문제로 형과 형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동생의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부고]

    ●윤동배(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담당 매니저)형배(프로야구 케이티 위즈 코치)씨 모친상 8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30분 (051)610-9677 ●공봉식(전 경남신문 편집국장)씨 별세 철병(현대산업개발 대리)강아(머저마켓그룹 기자)인아(보그걸 에디터)씨 부친상 양석철(현대중공업 과장)씨 장인상 8일 경남 창원시립상복공원, 발인 11일 오전 7시 30분 (055)712-0900 ●최병기(충북도 공보관실 미디어홍보팀장)씨 모친상 8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43)298-9200 ●박용래(사업)경래(동화티엔에스 대표)성래(동화티엔에스 부장)씨 모친상 김용웅(문화일보 광고국 부장)씨 장모상 8일 인천 신세계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032)568-4000 ●김남철(미래창조과학부 공보팀장)씨 부친상 7일 전북 부안 호남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063)581-1004 ●주창호(LG CNS 부장)씨 별세 창룡(대한항공 기장)창환(육군 소장)씨 동생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010-2237 ●박영진(여자프로농구 구리 KDB생명 코치)씨 모친상 8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0일 오전 (053)957-4407 ●문지영(대한골프협회 상비군 코치)씨 부친상 이준영(한국프로골프협회 전무이사)씨 장인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02)3010-2293 ●박종복(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장)씨 모친상 8일 청주 충북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43)269-6969
  • 죽음보다 고통스런 이별… 실종자 가족의 슬픔

    죽음보다 고통스런 이별… 실종자 가족의 슬픔

    실종사건은 한 해 줄잡아 5만여건에 이른다. 남은 가족에게는 죽음으로 인한 이별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러나 실종사건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인식은 아직 미미하다. 7일과 8일 밤 10시 방송되는 KBS 1TV 다큐 1 ‘실종’ 2부작은 이별의 아픔을 오롯이 짊어지고 있는 가족들의 슬픔을 들여다본다. 1부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조명한다. 15년 전 17살이었던 딸 송혜희양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을 트럭 하나로 누비며 딸을 찾는 전단지와 현수막을 걸고 다닌다. 아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는 트럭으로 호떡 행상을 하며 번 돈을 모조리 딸을 찾는 데 쏟아붓고 있다. 1997년 4월, 4살 나이에 사라진 아들 하늘이는 이제는 군대에 갈 나이가 됐다. 어머니는 군인만 보면 아들이 아닐까 싶어 눈물이 난다. 어머니의 몸은 쇠약해졌지만, 잠깐 잠든 사이 아들을 잃었다는 죄책감으로 낮에는 잠시도 눕지 못한다. 부부는 이혼했고 두 동생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 2006년 사라진 11살 동은이의 방은 시간이 멈춘 곳이 됐다. 사라지기 전 동은의 편지엔 ‘엄마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적혀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2003년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갔다 실종된 영광(당시 4세)의 어머니 박혜숙씨는 우리나라의 실종 관련 제도가 얼마나 미비한지 알게 됐고, 직접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실종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에 몰두했고 강연 등을 하며 실종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방황하던 청춘, 고뇌하는 가장,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네

    방황하던 청춘, 고뇌하는 가장, 그도 평범한 인간이었네

    지난달 13일 세상을 등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왼쪽)와 자전적 소설 ‘암실 이야기’(오른쪽)가 민음사에서 나란히 번역 출간됐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는 작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작품이다. 온갖 풍파로 가득했던 2차 세계 대전 시기와 전후 격변기를 견디며 ‘양철북’이라는 위대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기까지 작가의 삶이 솔직하고 대담하게 드러나 있다.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과거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수치스러운 과거까지 낱낱이 고백했다. “나는 그때 왜 몰랐던가?”, “왜 묻지 않았던가?”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도 던졌다. 특히 열일곱 살 때 히틀러의 나치 무장 친위대에 징집당해 복무한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2006년 출간 당시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나 행동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밤새 춤을 즐기고 재즈 음악에 심취하고 요리에도 매진한다.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에 대한 회한을 털어놓기도 한다. ‘암실 이야기’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낸 뒤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가족들에 대한 회한을 담은 작품이다. 예술가의 삶에 치중하느라 가족, 특히 자식들을 챙기지 못한 작가의 뉘우침이 진하게 묻어 있다. 작가는 생전에 글, 그림, 음악, 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하느라 정작 가족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작가의 10~30대 모습을 만날 수 있다면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에선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작가의 중년과 노년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민음사는 ‘독일판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1945년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을 다룬 그라스의 논쟁적인 소설 ‘게걸음으로’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독일 피란민 9000여명을 태우고 항해하던 구스틀로프호는 러시아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1000명 남짓.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MBC 밤 11시 15분)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 함께 출연하는 정웅인, 최원영, 서현철, 그리고 이들의 절친 장현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간 연기파 배우 정웅인과 최원영은 출연 중인 연극 속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연극배우 서현철은 군대, 연극 에피소드부터 이색 경험들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재기 발랄한 이야기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성범죄수사대:SVU 16(OCN 밤 12시) 추악한 성범죄자를 쫓아 사건을 해결하는 특별수사단의 활약을 그린 수사 시리즈. 시카고 경찰 린지는 10년 전 가출한 동생이 뉴욕에 있다는 단서를 포착한다. 린지는 미스터리 클럽과 연관된 미성년 인신매매단의 실체를 파악해 어렵게 동생을 찾아내지만, 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 유명 스포츠 스타 에이제이가 아내를 폭행한 동영상이 유출되고 마는데…. ■시카고 파이어 2(FOX 밤 8시) 시카고 소방서 사람들의 구조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소방 대원들은 열차 탈선 사고 현장에 투입되지만, 감축으로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가운데 고전을 하게 된다. 세버라이드는 아버지와 만난 젊은 여인을 정부로 의심하고 따지러 갔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보든과 밀스는 구조 작업 도중 자재 더미에 깔린 채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 해병 삼부자 ‘헌혈 경쟁’

    해병대사령부는 5일 해병대 1사단 21대대 본부중대 유재상(22) 상병과 동생 유준상(20) 일병, 강원도 강릉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해병대 예비역 병장 출신 아버지 유승국(46)씨 등 삼부자가 무려 115차례의 헌혈을 기록해 봉사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부자는 지난해 8월 함께 모은 헌혈증 100장을 백혈병 환자를 위해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에 기증하기도 했다. 부친 유씨는 지금까지 52차례나 헌혈을 했고 2013년 3월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적십자 헌혈 유공 금장을 받았다. 유 상병과 유 일병도 각각 32회, 31회의 헌혈을 통해 지난해 5월과 10월 적십자 헌혈 유공 은장을 받았다. 유씨 가족의 헌혈 사랑은 1989년 유씨가 경기도 김포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입대 후 신병교육을 받던 유씨는 수혈을 위한 혈액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헌혈을 시작했다. 유 일병은 “헌혈뿐 아니라 국민에 보탬이 되는 해병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후아유 김소현, 1인2역 완벽 소화… 남주혁과 등굣길 데이트 ‘볼 꼬집자 표정이?’ 달달

    후아유 김소현, 1인2역 완벽 소화… 남주혁과 등굣길 데이트 ‘볼 꼬집자 표정이?’ 달달

    후아유 김소현, 쌍둥이 자매의 비밀 풀렸다… 남주혁과 등굣길 데이트 ‘훈훈’ ‘후아유 김소현’ ‘후아유’ 김소현이 1인2역 열연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김소현의 비밀이 밝혀져 눈길을 끈다. 지난 5일 방송된 KBS2 ‘후아유-학교2015’에서는 한순간의 사고로 통영 누리고 왕따 이은비(김소현)의 삶에서 강남 세강고 퀸카 고은별(김소현)의 삶을 살게 된 은비가 기억을 되찾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미경(전미선 분)이 과거 보육원에서 고은별(김소현 분)을 이은비(김소현 분) 대신 입양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은별이는 동생 은비가 있는 사랑의 집에 후원을 하면서 동생의 소식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동생 은비는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다 강물에 몸을 던졌다. 이를 목격한 은별이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었다. 이에 은별이의 엄마는 은비에게 은별의 삶을 제안했고, 은비는 고민 끝에 은별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이후 고은별의 삶을 살게 된 이은비는 학교에 가기 전 거울을 보며 쌍둥이 언니 고은별을 떠올렸다. 이은비는 “언니. 항상 언니가 같이 있다고 믿을게. 언니 이름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게”라고 말했다. 이어 버스에 고은별이 타 있는 모습을 본 한이안(남주혁)은 버스에 탑승 후 고은별 뒷자리에 앉아 문자로 대화를 걸었다. 고은별이 땡땡이쳤다는 말에 한이안은 “너 고은별 맞냐”고 장난으로 물었지만, 고은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한이안은 고은별의 머리를 톡톡 치며 장난을 걸었고, 고은별이 수줍어 하자 한이안은 고은별이 귀여운 듯 볼을 꼬집으며 장난을 쳤다. 사진= KBS2 후아유 방송캡처(후아유 김소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민석 특파원 한·네팔 친선병원 르포] 끊어진 인대 열흘 버텼다 한국 수술팀 오기 전까진

    [김민석 특파원 한·네팔 친선병원 르포] 끊어진 인대 열흘 버텼다 한국 수술팀 오기 전까진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56분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동쪽 사노 티미 지역에 사는 라제소리 수레스타(29·여)는 어머니(60)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땅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순간,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그것들은 모녀를 삼켜버렸다. 몇 시간 뒤 이웃들이 모녀를 건물 잔해에서 발견했다. 어머니는 왼쪽 팔이 부러지고 라제소리는 쇄골과 견갑골을 잇는 인대가 두 군데나 끊어졌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모녀는 집 근처 한국·네팔 친선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2009년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지어진 사노 티미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어머니는 깁스를 했다. 하지만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야 하는 라제소리가 문제였다. 네팔에서는 병원도 개인약사에게 약품과 주사기 등 의료용품을 사서 수술 및 치료를 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다면 응급처치 외에 복잡한 수술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진 직후 정부는 피해자 치료비 지원을 약속했지만, 카트만두의 대부분 병원에서는 정부 약속을 믿지 못해 생명이 걸린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수술을 미뤘다. 라제소리 가족은 어머니와 여동생 등 5명인데 온 가족이 공장에 다니는 남동생 라젠드라(25)의 월급 7000루피(약 7만 3900원)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최소 1만 5000루피 이상이 필요한 인대접합수술은 언감생심. 때문에 라제소리는 진통제로 열흘을 버텼다. 진통제 값 2000루피마저 버거웠다. 하지만 지난 1일 한국·네팔 친선병원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의료진이 도착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김동준 정형외과 전문의 등 KDRT 의료진은 라제소리의 끊어진 인대를 제대로 맞춰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5일 오전 회복실에서 만난 라제소리는 그간의 고통에 지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동생 라젠드라는 “병원에 수수료 명목으로 내는 돈 300루피 외에 모든 비용을 한국 의료진이 부담해준 덕에 수술을 받았다”며 활짝 웃었다. 진료 시작은 오전 10시부터이지만 한국·네팔 친선병원은 9시부터 북적거렸다. 50병상 규모의 기존 시설로는 부족해 전날 공수된 2차 물자로 이동식 병원 천막을 설치했다. 지진 발생 11일째라 생사를 다투는 환자는 없었지만, 여러 군데 깁스를 하거나 찢어진 상처가 감염돼 걷지 못할 정도로 염증이 악화된 환자도 눈에 띄었다. 현지에 파견된 KDRT 의료진은 국립중앙의료원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소속 응급의학과·정형외과·감염내과 전문의 등 5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박태진(40) 의료팀장은 “현재 급박한 재난 상황은 벗어났다”면서 “곧 다가올 전염성 질병에 대비하는 한편 아직 병원에 올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을 치료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의료팀이 도착한 뒤 하루 평균 100여명이 외래진료를 받았다. 골절상을 입었지만 신속하게 치료받지 못해 뼈가 어긋난 채 조직 재생이 이뤄져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았다. 한국의료진은 이미 10여건의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했다. 박 팀장은 “KDRT가 해외 재난현장에서 수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외긴급구호대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설명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 7명은 접수대와 외래진료실, 응급실 등에서 부지런히 통역을 했다. 접수대에서 환자의 혈압과 체온 등을 확인하고 문진을 한 뒤 플라스틱 진료카드에 환자정보를 써 넣었다. 송지수(33·여) 간호사는 “국내 병원처럼 환자 기록을 저장할 차트를 일일이 가져올 수 없다. 2013년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 당시의 경험으로 이번에 플라스틱 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의료진과 코이카 단원들은 모두 이곳에 자원해서 왔다. “오고 싶다고 아무나 오는 게 아니에요. 봉사하고 싶어 평소 없는 시간 쪼개서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송 간호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김형주(26) 코이카 단원은 “단원들 모두 네팔 곳곳에서 일하다가 재난 발생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겠느냐’는 본부의 의사 타진에 ‘남겠다’고 쿨하게 답한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shiho@seoul.co.kr
  • [포토묶음] “뒤태가 드러나는 시스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포토묶음] “뒤태가 드러나는 시스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미국의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45,Jennifer Lopez)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55, Donatella Versace)가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서 열린 ‘중국: 거울나라의 앨리스(China: Through The Looking Glass)’의 오프닝을 기념하는 의상연구소 갈라쇼(Costume Institute Benefit Gala)에 참석, 레드 카펫에 섰다. 모두 시스루 드레스 차림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베르사체 설립자 지아니 베르사체의 여동생이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SNS’ 죽음의 땅 네팔 상처를 보듬다

    [글로벌 인사이트] ‘SNS’ 죽음의 땅 네팔 상처를 보듬다

    지난달 25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인근 포카라 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1만여명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 동산이 자리하고, 노자가 죽기 전 홀로 푸른 소를 타고 향했다는 히말라야 만년설의 나라인 네팔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지진 피해를 담은 처참한 현장 사진이 속속 올라왔고 곳곳의 파괴된 유적과 불안에 떠는 이재민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고스란히 전 세계로 전해졌다. 이는 관심과 도움의 손길로 되돌아왔다. #1 지난달 25일 네팔의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 이곳을 덮친 강진을 바깥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건 SNS였다. 규모 7.8의 지진으로 세 차례에 걸친 눈사태가 잇따라 캠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자 이곳에 머물던 루마니아 산악인 알렉스 거번은 자신의 트위터에 “푸모리봉으로부터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났다. 살기 위해 텐트에서 도망쳤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산에 머물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순식간에 전 세계 2400여명의 트위터 사용자들이 글을 읽었고 600여건이 리트윗됐다. 20여분 뒤 에베레스트를 6번 등정한 아드리안 볼링거 등 베테랑 산악인들도 “에베레스트 북쪽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트위터에 구조요청을 올리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주요 외신들은 SNS에 올라온 현장의 글과 사진을 인용해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2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사는 캐럴 피네다 박사와 남편인 마이클 맥도널드가 휴가차 네팔을 찾았다가 소식이 끊긴 건 대지진 직후였다. 피네다 박사의 오빠인 제임스 피네다는 여행을 떠나기 전 동생이 남긴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현지 여행사 등에 수소문했지만 헛일이었다. 결국 지진 발생 이튿날 동생의 보스턴 집에서 네팔의 트레킹 회사 연락처를 알아냈으나 전화가 닿지 않았다. 가까스로 이메일을 보냈고 트레킹 회사로부터 동생 부부가 무사하다는 형식적인 답장만 돌아왔다. 애가 닳은 제임스는 트위터 등 SNS에 동생 부부의 안부를 묻는 글을 잇따라 올렸다. 동행한 여행객들로부터 “부부가 안전하고 우리와 함께 있다”는 답글과 사진을 받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전 세계가 네팔을 향해 구호의 손길을 뻗는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은 재해 복구와 원조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외신들은 구호 물품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의 빈틈을 적십자사나 세이브더칠드런 등 국제 구호단체 외에 정보통신기술이 메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2013년 필리핀 태풍 등 대형 천재지변 때마다 등장했던 다양한 디지털 도구들이 이번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ICT 기업들은 네팔 난민을 돕는 구호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었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은 지진 발생 다음날인 26일 아이튠스 사용자들이 미국 적십자사에 기부금을 낼 수 있는 특별 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페이지에선 적게는 5달러, 많게는 200달러를 클릭 한 번으로 적십자사에 익명으로 기부할 수 있다. 기존 신용정보를 활용해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7일 직접 트위터에 글을 올려 동참을 호소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은 아예 직접 구호 현장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27일 국제의료구호대(IMC)를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상황을 구호대에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같이 하고 있다. 또 200만 달러(약 21억 6100만원)까지 일대일로 매칭해 모금한 성금을 지역별 구호단체에 직접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재난 지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페이스북 ‘세이프티 체크 서비스’는 지난달 25일 활성화됐다. 사용자들의 프로필과 위치 정보를 파악해 생존자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가족이나 친지 등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리도록 했다. 구글은 자사 임원인 댄 프레딘버그가 지진이 발생한 히말라야 인근에서 트레킹 도중 사망하면서 ‘퍼슨 파인더’라는 사람 찾기 서비스를 곧바로 가동했다. 현지 구조 당국이나 지인이 문자메시지(SMS)를 통해 생존자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면 구글이 수집해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저장하는 서비스다. 네팔과 인도, 미국에서 ‘search ○○○’라는 형태의 SMS를 특정번호로 휴대전화를 통해 보내면 지인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지진 발생 이틀 만에 5000여명의 생존 정보가 이곳에 담겼다. 이밖에 트위터는 공식 계정을 열어 네팔 내 응급실 연락처와 재난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ICT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네팔의 비영리 단체들도 크라우드소싱, 크라우드펀딩, 오픈소스 매핑 등을 활용해 구호단체들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라우드소싱과 크라우드펀딩은 각각 대중과 외부자원 활용, 개인의 소액 후원의 합성어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공부한 네팔인 나마 라이 부드하토키(45)가 이끄는 비영리단체 ‘네팔 리빙 랩스’는 오픈소스 매핑의 대표기관이다. 위성사진과 개인이 촬영한 사진 등을 활용해 위키피디아식으로 새롭게 지도를 만들어 공유한다. 지도에는 끊어진 다리와 무너진 건물 등이 표시되며 접근 방법까지 알려준다. 지진 발생 직후 이틀간 무려 2000여명의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300만 건의 온라인 지도를 업데이트하면서 국제적십자사 등의 구호활동에 도움을 줬다고 NYT는 보도했다. 지금도 자원봉사자 3400여명이 네팔의 도로 연결 상태와 피해 정도를 확인하고 난민들이 천막을 칠 적당한 장소를 알려주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부드하토키는 아이티 대지진 때 미국에서 유학하다 네팔에서도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3년 전 귀국해 이 같은 기반을 닦았다. 그는 “지진 직전까지 이번 피해지역의 80%가량을 지도로 완성했다”면서 “카트만두의 사무실 벽에 금이 가 지금은 마당에서 직원들과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예일대 MBA 출신인 네팔 기업가 로케시 토디(28)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를 만들었다. 이 사이트는 지진 엿새 만에 1445명에게서 무려 11만 6000달러(약 1억 2500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지진 피해 지역의 생생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인도의 가정에서 내놓은 구호품을 우버택시와 인디아항공 편으로 카트만두 공항까지 실어오는 독특한 구호시스템도 갖췄다. 라비 쿠마르(27)는 크라우드소싱 페이지인 ‘코드 포 네팔’을 조직해 자원봉사 인력과 피해 지역을 엮어 주고 있다. 미 컬럼비아대에서 디지털미디어를 공부한 쿠마르는 SNS에 올라오는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네팔 현지의 자원봉사자 50여명에게 연결시킨다. 건당 7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미 버지니아주의 한 여성이 카트만두 외곽 건물에 고립된 이재민의 SNS 구조요청을 전해 귀중한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크라우드 소싱 활동은 아이티 지진 때 첫선을 보였다. 네팔에선 ICT에 기반한 소형 무인기인 드론도 맹활약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소셜미디어 매체 스토리풀이 공개한 드론 영상은 네팔의 참사 현장을 생생하게 세계에 알리고 있다. 또 수백 명의 수색팀을 파견한 인도는 2대의 드론을 활용해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생존자들을 속속 찾아냈다. 광범위하고 빠르게 현장을 점검할 수 있는 드론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 파견한 헬기 40여대는 효과적인 구조 활동에 직접 투입될 수 있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어린 동생들 챙기며 할머니 병간호까지…어린이날 더 빛난 동심

    어린 동생들 챙기며 할머니 병간호까지…어린이날 더 빛난 동심

    할머니 병간호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김새람 학생이 ‘서울시민상’ 어린이 대상을 받는다. 서울시는 어린이·청소년·청년 등 부문별 서울시민상 수상자 115명을 선정해 4일 발표했다. 시상식은 5일 서울시청 본관 8층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서대문구 홍은초등학교 6학년 김새람 학생은 2남 3녀 중 셋째로 투병 중인 할머니에게 자신의 방을 내주고 엄마와 함께 병간호를 하고 있다. 동생들의 준비물을 챙기고 목욕을 시키는 등 엄마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친구의 교과서 준비, 휠체어 밀어주기 등 선행을 베풀어 학교 생활기록부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소년상 대상에는 반포고 2학년 김서경양이 선정됐다. 외교관이 꿈인 김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노인요양원, 보육원,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청년상 최우수상은 백지영(그리스도대학교)씨, 청소년지도상 개인 부문 최우수상은 최원근 방원중 교사, 청소년지도상 단체 부문 최우수상은 사랑의 빛 4개의 촛불에 돌아갔다. 1979년부터 시작해 36회째를 맞는 서울시민상은 지난 1년간 효행예절, 봉사협동, 어려운 환경 극복, 창의과학예술, 글로벌 리더십 등 5개 부문에서 우수한 공적이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 청년, 청년지도자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다. 한국영 시 평생교육정책관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활동을 한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과 청소년지도자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것”이라며 “청소년들의 사고와 활동을 넓혀 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이트진로그룹] 창업주 박경복 회장은 누구

    박경복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은 2007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일본 오사카 공업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소주의 원료인 주정을 만드는 대선발효에 입사하면서 주류 업계와 연을 맺은 그는 입사 18년 만인 1964년 사장에 올랐다.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68년. 조선 맥주를 운영하던 남동생 박경규씨가 고혈압으로 사망하면서부터다. 박 명예회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인 2001년까지 회사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그는 “밖으로 드러내는 허세가 기업의 최대 악덕”이라며 내실 경영과 현장 경영을 특히 강조했다. 현역 시절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생산 현장을 돌아보며 직접 제품 생산과 출고 현황을 챙겼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주일에 3일은 전북 전주, 강원 홍천, 경남 마산의 공장을 찾았을 정도였다. 김수희(88) 여사와 결혼해 2남 1녀를 뒀다. 장녀 순혜(70)씨는 미국에 거주하며 LA에서 스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이트진로그룹] 임직원 양복보다 점퍼 차림 많아…‘현장 중시’ 경영철학 반영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이트진로그룹] 임직원 양복보다 점퍼 차림 많아…‘현장 중시’ 경영철학 반영

    하이트진로 본사나 영업점에선 파란색 점퍼 차림의 직원들과 쉽게 마주친다. 생산현장도 아닌 영업 현장도 아닌 사무실에서 업무용 점퍼를 입는 직원들이 유독 많은 이유는 하이트진로만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다. 평소 박문덕(65) 하이트진로 회장의 소탈한 경영스타일과도 무관치 않다. 박 회장은 1968년 배재고, 1976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에 입사했다. 당시 박 회장은 본사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고 박경복 하이트진로 명예회장의 ‘현장 중시’ 철학 때문이었다. 박 회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업현장에서 직접 맥주를 판매하는 일부터 했다. 영업 현장 판촉을 주로 다니다 보니 옷차림도 양복보다 점퍼 차림일 때가 많았다. 대표가 출퇴근뿐만 아니라 지방 출장 때도 점퍼를 즐겨 입다 보니 경영진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도 회사 점퍼를 입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 박 회장은 타고난 ‘승부사’다. 아버지의 뜻을 존중했지만 필요하면 본인의 목소리도 냈다. 1991년 사장 취임 후 박 회장은 마케팅보다 생산현장을 중시했던 아버지와 노선을 달리했다. 사장에 취임한 그는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케팅과 홍보부서를 신설했다. 아버지 몰래 신문 양면광고, 시음행사, 스포츠 마케팅을 펼쳤다가 질책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 회장은 1993년 기존의 대표 브랜드 크라운 맥주를 대신해 ‘천연 암반수’를 콘셉트로 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취임 5년 만에 하이트진로를 맥주 1위 브랜드로 올려놨다.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2005년 진로 인수전에서도 발휘됐다. 당시 10개의 쟁쟁한 컨소시엄과 경쟁하고 있었으나 박 회장은 치밀한 분석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수가로 당시 최대 인수·합병(M&A) 매물이었던 진로를 인수해 지금의 그룹을 완성했다. 처음부터 박 회장이 조선맥주의 후계자였던 건 아니었다. 박 회장은 박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형 박문효(68)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은 동생에 앞서 조선맥주에 입사해 이사, 전무, 부사장을 거쳐 40세인 1987년 사장에 올랐고, 1989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 회장이 1991년 사장에 오르며 박 명예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아 최대 주주로 올라서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박문효 회장은 동생에게 경영권이 넘어가자 보유하고 있던 조선맥주 지분 1.98%를 모두 정리하고 하이트진로산업의 등기임원직만 유지한 채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하이트진로산업은 1975년 설립된 계열사로 맥주 생산에 필요한 맥주병을 공급했다. 지금은 ‘하이트’, ‘참이슬’ 등 하이트진로가 만드는 각종 주류의 유리병이나 컵, 잔, 상표라벨, 포장상자 등을 공급한다. 한편 박문덕 회장은 부인 김미정(61)씨와 중매 결혼해 태영(37), 재홍(33)씨 등 2남을 뒀다. 김미정씨는 농기구 제조업체 대동공업가의 김성민씨 딸이다. 김성민씨는 창업주 김삼만의 형제다. 부부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이트진로그룹]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은

    박문효(68) 회장은 배재고와 한양대 기계과, 미국 노터데임대 기계경영학과를 나왔다. 귀국 후 하이트 진로그룹의 뿌리인 조선맥주에 입사해 이사, 전무, 부사장을 거쳤다. 1987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그는 1989년 부회장으로 승진했으나 1991년 동생 박문덕 현 하이트진로 그룹 회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하이트진로산업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문효 회장은 부인 조미랑(65)씨 와 슬하에 세진(38), 세용(32) 두 아들을 뒀다. 박 회장은 두 아들이 사업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음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아들은 하이트진로의 방계기업인 연암과 송정의 실질적인 오너다. 장남 세진씨는 연암의 최대 주주다. 충남 천안에 본사를 둔 연암은 식품, 세제 등 생활용품을 포장하는 데 쓰는 연포장 제작과 하이트맥주 등 각종 주류 용기에 붙이는 상표 라벨과 포장 상자를 만든다. 2009년 이후 매년 10억원대의 이익을 내고 있는 연암은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세진씨는 소유 지분만 99%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삼진화학(현 한화폴리드리머)을 거쳐 연암 전무를 지낸 뒤 2008년 연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송정의 사업구조도 비슷하다. 차남 세용씨가 송정 지분의 99%를 소유한 최대 주주다. 송정은 인쇄용 그라비아용지와 라벨지를 생산한다. 송정은 최근 5년간 매출이 연평균 100억원이 채 안되는 미니 기업이지만 2005년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알짜 회사다. 세용씨는 아직 경영 전반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부친의 배려 아래 사업가로서의 변신은 시간 문제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영국 왕세손 부부 딸 출산…단숨에 왕위계승 서열 4위로

    영국 왕세손 부부 딸 출산…단숨에 왕위계승 서열 4위로

    영국 왕실에 25년 만에 태어난 공주가 왕위계승 서열을 뒤흔들며 영국 전역을 축제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윌리엄(33) 왕세손의 아내 케이트 미들턴(34) 왕세손빈은 2일(현지시간) 오전 8시 34분쯤 런던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3시간의 진통 끝에 3.71㎏의 딸을 순산했다. 미들턴 빈과 아기는 모두 건강하며, 미들턴 빈은 출산 10시간 만에 하이힐을 신고 쌩쌩한 모습으로 자택인 켄싱턴 궁으로 돌아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기는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와 1997년 작고한 다이애나 비의 손녀이다. 아기는 아버지인 윌리엄 왕세손, 오빠인 조지 왕자에 이어 단박에 왕위계승 서열 4위에 올랐다. 여성으로선 서열이 가장 높으며, 태어나자마자 공주가 이 같은 순위에 오른 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유일한 딸인 앤 공주 출생(1950년) 이후 65년 만이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 영국 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오전 11시쯤 병원 앞에서 영국 전통복장 차림의 왕실 관계자가 장수와 축복을 비는 벨을 울렸고, 윌리엄 왕세손은 관례를 깨고 트위터로 출산 소식을 먼저 알리는 파격을 연출했다. 일주일 전부터 거리에서 밤샘을 하던 수백명의 시민은 아이를 안고 병원 문을 나서는 왕세손 부부를 향해 환호를 터뜨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출산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아기의 이름으로 샬럿, 앨리스, 빅토리아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미들턴 빈이 아기를 출산한 세인트 메리 병원은 다이애나 비가 윌리엄 왕세손과 동생 해리(31) 왕자를 출산한 곳이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첫 아들인 조지 왕자도 2013년 7월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페이스북 COO 남편 해외여행 중 급사…마크 저커버그 “애도”

    페이스북 COO 남편 해외여행 중 급사…마크 저커버그 “애도”

    페이스북 COO 남편 해외여행 중 급사…마크 저커버그 “애도” 페이스북 COO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 셰릴 샌드버그, 마크 저커버그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남편인 데이브 골드버그(47) 서베이몽키 최고경영자(CEO)가 급사했다. 고인의 형 로버트 골드버그는 2일(현지시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나의 놀라운 동생이며 셰릴 샌드버그의 사랑받는 남편이며, 멋진 두 어린이의 아버지이며, 폴라 골드버그의 아들인 데이브 골드버그가 간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데이브 골드버그는 부인 샌드버그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던 중 전날 저녁 숨졌으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샌드버그는 2일 오전 항공편으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골드버그의 사망을 알리면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셰릴(샌드버그)은 매우 강한 사람이고 우리가 모두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그는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회사 사람들과 만날) 준비가 되면 알려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숨진 골드버그는 하버드대에서 역사학과 행정학을 공부하고 1989년 졸업한 후 컨설팅업체 베인 앤드 컴퍼니와 캐피톨 레코드(미국의 옛 EMI 계열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3년 CD롬으로 배포되는 ‘론치 미디어’라는 디지털 음악 잡지를 차렸다. 그는 론치 미디어를 2001년 야후에 매각했으며, 야후 뮤직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당시 야후의 온라인 광고 영업 부사장이던 샌드버그와 결혼했다. 이후 샌드버그는 2008년 페이스북 COO가 됐으며 골드버그는 2007년 벤치마크 캐피털로 이직했다가 2009년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 서베이몽키로 옮겼다. 골드버그는 임직원이 12명밖에 되지 않던 서베이몽키를 450명이 넘는 큰 조직으로 키웠으며, 이 회사는 작년 말 기업가치를 20억 달러로 평가받아 2억 5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는 또 직장 내 양성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부인 샌드버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왔으며, 매우 가정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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