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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생 생겼다는 소식에 ‘격한 감동’ 보이는 9세 소년 (영상)

    동생 생겼다는 소식에 ‘격한 감동’ 보이는 9세 소년 (영상)

    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한 소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많은 네티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영국 글래스고에 사는 조지 브라운이라는 남성이 공개한 영상에는 크리스마스 당일, 부모로부터 카드 한 장을 받은 소년 신 브라운(9)이 등장한다. 지난 25일 아침, 소년의 엄마는 아이에게 작은 왕관과 함께 산타클로스 양말에 담아 카드 한 장을 건넨다. 카드를 받은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카드를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와 아빠가 네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어. 네가 곧 형(오빠)이 될거야”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년은 “내가?”라고 반문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 엄마의 품에서 행복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소년의 할아버지인 조지 브라운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영상과 함께 “몇 년 전부터 손자가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해 왔는데, 크리스마스에 소원이 이뤄진 것”이라면서 “당시 그 방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동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손자 한 명 뿐이었다”고 전했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동생을 바라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받았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형이 될 것 같다” 등 축복어린 멘트를 쏟아냈다. 이 영상은 조회수 10만회를 훌쩍 넘어서며 연말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송중기, 줄리엔 강과 반전 친분 ‘헬스장 같이 다니는 사이’

    송중기, 줄리엔 강과 반전 친분 ‘헬스장 같이 다니는 사이’

    줄리엔 강과 송중기의 훈훈한 인증샷이 화제다. 줄리엔 강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With my bro 송중기 동생”이라는 글과 사진을 게재했다. 줄리엔 강은 ‘My bro’라는 표현으로 송중기와 각별한 사이임을 드러냈다. 이어 공개된 사진에는 줄리엔 강과 송중기가 헬스장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편안한 복장에 메이크업 없이도 훈훈한 두 남자의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형주 세상 속 수학] 가상과 실물이 만나다

    [박형주 세상 속 수학] 가상과 실물이 만나다

    이 엄중한 때, 세계사에서도 흔치 않은 격랑의 와중에서도 언론사마다 송년 특집이나 신년 특집에서 앞다투어 4차 산업혁명과 교육 및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중이다. 어쨌든 우리는 먹고살아야 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산업의 급격한 변화 양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분명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와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담론은 형성되고 있다. 증기기관이나 전기의 도입이라는 기술적 혁신은 노동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로 이어지며 1차 및 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변화를 낳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 낸 가상 세계의 혁신은 인간의 삶의 방식과 일자리의 양상을 크게 바꾸어 디지털 혁명 또는 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린다. 여기에 몇 번의 빙하기를 겪은 인공지능기술이 마침내 혁신에 성공하며 가상 세계는 새로운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런 가상 세계가 로봇이나 자동차 같은 실물 세계와 연결되자 이전에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생산성 증대가 일어나는 중이다. 가상 세계와 실물 세계의 결합이라는 이 추세는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린다. 과격한 수준의 일자리 변화를 동반할 것으로 예측돼 우려도 크지만, 그래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결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에는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많다. 문제의 성격과 필요에 따라 순수 수학의 전 영역을 활용하는데 산업수학이라 부른다. 이러한 방식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미국 스타트업 아야스디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비슷한 생체 데이터를 가진 환자들인데도 추가 암 검진이 필요한지를 구별해 낸다. 기본적인 생체 데이터로부터 당뇨병 유무와 유형까지 자동으로 알아낸다. 위상수학이라고 하는 수학 이론으로 이런 결과를 냈다. 산업수학은 사회 문제 해결의 주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로이드 섀플리의 알고리즘을 공립학교 배정에 적용한 뉴욕시에서는 원하지 않는 학교에 배정된 학생이 적응하지 못해 중간에 전학을 가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산업과 과학기술 영역에서 빅데이터 등의 이슈가 쏟아지지만, 이미 개발된 수학적 도구를 기업이 활용하는 게 쉽지는 않다. 결국 협업이 답이다. 다행히 시작이 늦은 우리나라도 빨리 따라잡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나오는 많은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수학자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런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도 빠른 속도로 마련되고 있다. 딥러닝 방식을 에너지 관리에 적용해 건물의 전기 비용을 크게 줄인 국내 스타트업이 출현했고 위상수학 빅데이터를 사용해 조류독감의 감염 경로를 알아낸 기업도 나왔다. 의료 및 영상 처리를 위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기업과 수학자들의 협업이 진행되는 중이고, 대형 병원과 함께 심장 문제를 연구하는 수학자도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가지려면, 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학계뿐 아니라 산업계에 진출해 기업의 난관을 수학적 방식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과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배워서 어디 쓰는지를 몰라서 관심도 떨어지고 싫어하게 됐다는 경우가 잦다. 모든 학생에게 수학의 우아함과 언어적 측면을 이해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와 산업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학생들이 함께 접한다면 수학 학습의 새로운 동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 식품업계 오너家 3세들의 경영수업

    식품업계 오너家 3세들의 경영수업

    대상그룹 장·차녀 전무로 승진… 마케팅·전략담당 중역에 임명 SPC, 차남 허희수 부사장으로… 한달새 햄버거 체인 1·2호점 내 식품업계에 오너가(家) 3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30대에서 40대 초반인 이들이 ‘젊은피’를 앞세워 식품업계의 판도 변화를 이끌지 주목된다. ●정식품 정연호 부사장 새해 경영 일선에 27일 업계에 따르면 대상은 최근 조직 개편과 내부 직원 인사를 완료하고 식품BU(비즈니스유닛)와 소재BU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지난 1일자로 조직 개편을 실시한 대상은 지난달 인사를 통해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40), 차녀 임상민(36) 상무를 나란히 전무로 승진시켰다. 임세령 전무는 식품BU 마케팅담당중역에, 임상민 전무는 소재BU 전략담당중역에 임명했다. 2014년 청정원 브랜드 리뉴얼을 이끌었던 임세령 전무는 식품 분야 마케팅을 강화해 시장 영향력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대상의 글로벌 진출 등의 업무를 해 왔던 임상민 전무는 이번 인사와 함께 귀국해 국내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은 조직 개편과 함께 각 사업 부문에 50대인 이상철(59·식품BU), 정홍언(58·소재BU) 사장을 임명하는 세대 교체를 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대상이 이를 통해 본격적인 오너 3세 경영 준비 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고 있는 국내 1위 제빵업체 SPC도 지난달 허영인 SPC 회장의 차남 허희수(38)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임명했다. 허 부사장은 지난 7월 강남역 부근에 오픈한 미국의 명물 햄버거 체인인 ‘쉐이크쉑’ 1호점에 이어 이달 초 청담동에 2호점을 여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허 부사장은 쉐이크쉑을 SPC가 독점적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을 주도하는 등 외식사업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허 회장의 장남 허진수 부사장은 동생보다 1년 앞선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 글로벌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의 정성수 회장 장남 정연호(39) 부사장도 지난 22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화장품 업체인 계열사 오쎄에서 정식품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식품의 창업주인 정재원 명예회장의 장손인 정 부사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정식품의 부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선다. ●국순당 배상민 상무는 영업 총괄 맡아 전통주 업체인 국순당도 최근 인사를 통해 배상민(35) 상무를 영업총괄본부장으로 임명하며 경영의 전면에 내세웠다. 배 상무는 국순당의 창업주인 고(故) 배상면 회장의 손자이자 배중호 국순당 대표의 아들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新전원일기] 청정하도다(淸情荷道多)

    [新전원일기] 청정하도다(淸情荷道多)

    ‘나 돌아갈래.’ 11년 전인 2005년 대학을 졸업한 김미선(31) 지리산 피아골 식품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전주를 떠나 고향인 지리산 피아골로 돌아갔다. 고향의 산냄새와 흙냄새, 계곡의 냄새가 너무 그리워 일주일에 한 차례 다니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여자가 시골로 돌아간다니 대부분 냉소적이었다. “능력이 없어서 시골로 가는 거지.” 고향 마을 사람들도 처음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살피곤 했다고 한다. “젊은 것이 오죽이나 할 게 없으면 산골 오지로 돌아올까.” 김 대표는 여동생만 둘인데 부모님은 세 딸이 미래에는 좋아하는 일 하기를 바랐다. 김 대표는 전주에서 대학을 다닐 땐 애완동물에 매료돼 전공도 애완동물학과를 택했다. 보통이라면 도시 어느 건물에 세를 얻어 애견숍이나 애완견 훈련센터 같은 걸 해야 제대로 길을 걸어가는 것일 텐데, 김 대표는 고향 마을을 도무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섯 살 때부터 산에서 고로쇠 물 받으며 자라” 해발 600m, 연곡사 스님들이 식량을 대신할 목적으로 ‘피’(벼과의 한해살이풀)를 심어 피밭골로 불린 ‘피아골’. 그 피아골의 원조 마을이 바로 김 대표가 나고 자란 ‘직전(稷田) 마을’이다. 그녀의 고향은 피로 쌀을 대신해야 할 정도로 척박한 곳이었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없다면 호구 해결이 어려운 동네였다. 그래도 김 대표는 고향인 피아골로 돌아왔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피아골 초입의 직전 마을. 길 양편으로 빽빽한 숲과 나무들, 야생 동물들. 계절마다 분명하게 옷을 갈아입는 산이 있고 밤이면 도시에선 구경할 수도 없는 ‘소금 뿌려 놓은 듯’ 천지에 별이 있고 고요함이 어느 곳보다 깊게 물든 피아골은 그 자체가 문화이고 자산이었다. 김 대표가 도시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2005년은 그녀의 나이 21살이었다. “여긴 딱히 지을 농사가 없어요. 그러니 관광객을 상대로 식당을 하거나 민박집을 운영하죠. 가을까진 산에 올라가 나물 채취하고 겨울엔 고로쇠수액을 받아 팔고요.” 그녀는 겨울이 싫었다고 했다. 겨울이면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러 산을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나무에서 관을 연결해 아래에서 받아 내지만 그 시절에는 한겨울 산으로 올라가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는 했다. 그 역시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자갈밭을 손톱으로 긁다시피 하며 일을 했어요. 그게 놀이인 줄 알고 자란 거죠. 겨울이면 고로쇠 물 받으러 산으로 올라갈 때면 엄마는 내 튼 손을 보고 울고 나는 엄마 손에 든 옹이를 보고 울고 그랬죠.” 부모님이 바빠 김 대표는 물론 그녀의 두 여동생이자 현재 같이 일하는 지혜(27)씨나 애영(22)씨 역시 어린 시절에는 알뜰살뜰하게 돌봄을 받지 못했다. 뒷집 할머니가 아이들을 대신 돌봐 주어야만 했다고 한다. “유치원 다닐 만한 나이였는데, 하루는 이가 너무 아픈 거예요. 엄마랑 아빠를 깨우는 데도 못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할매 집이 바로 뒤에 있었는데 할매를 찾아가 이 아프다 말하고 겨우 할매 등에 업혀 잠들었던 기억도 있어요.” 시골이나 산골이나 제 앞가림 할 줄 알면 그때부터 일꾼이 된다. 게다가 집안의 맏이라면 앞뒤 재볼 겨를도 없이 집안일을 돕는 게 우리들의 시골 정서였다. 그녀도 고향을 떠나기 전인 고등학생 시절까지 무던히도 집안일을 해내야만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돼 고향을 떠났다. 시골에 사는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식들만큼은 도시로 나가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성공은 아니더라도 시골로 다시 돌아와 노동일 넘치는 삶을 영위하고 살기를 바라진 않을 터였다. 애완동물학과를 졸업했으니 마땅한 직업 찾기도 수월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피아골에 김 대표와 같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없어요. 저랑 제 동생 둘이랑 그리고 우리랑 같이 일하고 있는 막내 친구인 박은선이라는 친구가 전부예요.” 피아골에 청년이라곤 그렇게 달랑 4명이란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한 지혜씨와 농업경제를 전공한 애영씨도 김 대표를 롤모델 삼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즘 들어 많은 청년들이 고향으로 시골로 귀농이나 귀촌을 택한다지만 청춘들에게 시골은 아직도 낡고 발전 가능성 적고 답답하고 무료하며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돌아온 고향은 바빴다. 외환위기 이후 이후 부모님께서 빚보증을 잘못 섰는데 이게 산더미처럼 불어나 빚은 여전했다. 김 대표는 엄마를 돕고 아버지를 도우며 식당과 민박을 꾸려 갔다. 그리고 짬을 내 전국의 식품 명인들을 찾아다녔다. 장아찌를 배우고 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불쑥 찾아와 음식을 배우겠다는 어린 여자를 명인들은 반겼다. 나중에 한 명인이 그런 말을 했다. “이 년아, 네가 벌써 나를 뛰어넘었구나!” #“하면 될 거라는 배짱과 손맛에 자신 있었기에” 김 대표가 만든 전통식품들의 맛을 본 손님들은 구입을 했고 판매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고로쇠수액을 이용한 전통장, 장아찌와 꿀, 나물 등을 판매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지리산의 여건을 활용해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직접 맛보게 하고 생산 환경을 보여 주면서 신뢰를 쌓는 마케팅으로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부모님이 시작한 식당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이 좋아 지리산 피아골에 살고 싶었던 김 대표는 이곳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전통장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처음에 장류 사업을 진행하면서 크게 눈에 띄는 마케팅을 시작하기보다 찾아오는 관광객과 식당을 찾은 손님들의 입맛을 먼저 사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당을 거치지 않는 고객들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일종의 유인 장치로 카페를 차렸다. #고객에게 손편지·덤으로 채소… ‘감동 마케팅’ 등산로에 마련된 카페는 1차적으로 음료를 마실 수 있지만 한쪽에 시식 코너가 마련돼 있어 마음껏 지리산피아골식품을 맛볼 수 있다. 냄새나지 않는 청국장까지 끓여서 시식할 수 있게 만들어 카페라기보단 시식장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지금은 연매출 5억원에 이르는 전통식품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김 대표의 꿈은 35살이 되기 전에 지역 청년 농부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5억원의 매출로는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보고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생산량을 늘려 나가고 있다. 청년들이 두려움 없이 시골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세운 프로젝트였다. 그러다 보니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마케팅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있는데 그녀는 온라인 접촉보다는 오프라인 접촉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택배 고객에게 손편지를 쓰거나 텃밭이나 주변에서 나는 계절 채소를 서비스로 동봉해 주는 마케팅 등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지역 직거래장터나 백화점 행사 등을 자주 활용하는 것도 고객과 더 가까이 만나 제품을 알리고픈 생각에서다. 최대한 밖으로 제품을 가지고 나가 맛을 보여 주고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보면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 나간다는 데 여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마인드다. #“내 물건 직접 가지고 나가서 직접 부딪쳐야” “내 물건을 직접 가지고 나가서 직접 부딪치는 것이 가장 좋은 마케팅이에요. 그래야 판매율도 높고 재구매율도 높거든요. 이렇게 늘린 고객이 진짜 내 고객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인터넷을 활용한 마케팅은 유지를 하지만 치중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빠른 인터넷을 활용한 화려한 마케팅이 아닌 감성으로 다가가는 ‘느린 마케팅’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기복 없이 고객을 확보하면서 꾸준히 매출을 올리는 김 대표의 감동 마케팅이 오히려 이 시대에 필요한 마케팅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얼마 전에는 농업중앙회와 계약을 맺어 그녀의 물건이 전국적으로 판매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면 될 거라는 배짱하고 손맛에 정말 자신이 있었어요.” 그녀의 그런 배짱과 손맛이 없었다면 그런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께 문화적 혜택 드리고 싶어” 32가구가 사는 직전 마을. 김 대표는 마을 사람들의 강력한 추대를 받아 2012년 6월 직전 마을의 이장이 됐다. 전국 최연소 마을 이장이었다. 이후 임기 2년짜리 이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장이 된 그해 초에는 한 달에 한 두 차례 있는 이장님들의 회의에 참석하곤 했는데, ‘아버지 대신 왔느냐’는 게 보통의 인사였다. 이젠 아버지뻘 이장님들에게서 깍듯하게 ‘이장님’ 소리를 듣는 베테랑 이장이 됐다. 전등을 갈아 끼워 드리고, 편지를 부쳐 드리고, 반찬을 사다 드리고, 은행 심부름을 해드리고, TV를 고치러 이모네, 할머니네로 스쿠터를 몰고 다닌단다. 지난해는 군청의 예산을 얻어 내 마을의 가로등도 설치했다. “어르신들마다 꽃꽂이, 영화 감상, 약초 같은 문화적 취향이 다 있더라고요. 이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주고 가난했던 삶을 치유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을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웃 간에 경쟁이 심해지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났어요. 너무 안타까워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바꿔 보자’는 마음으로 마을 이장직을 받아들인 거예요.” 배짱이 두둑하니 마을 이장직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어떤 삶이 성공한 삶이고,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요즘 능력이 없어 시골로 내려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던 그녀의 친구들이 어떡하면 시골로 내려가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성공이나 행복의 잣대는 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지 주변 환경으로 가늠하는 건 아닐 것이다. 손맛은 둘째치고 배짱만 있다면 고향으로 혹은 시골로 내려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도시에만 미래가 있는 게 아니라 시골에도 미래는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걸 그녀는 물론 시골에서 터를 잡은 많은 청춘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내고 있다. 답답하고 각박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 ‘하이킥’ 한번 날려 보는 건 어떨까. 젊다는 게 한 밑천이라는 배짱으로 말이다. ■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 [자치단체장 25시] 노랑 보면 장성 떠오르게… 뚝심 군수, 色다른 부자농촌의 꿈

    [자치단체장 25시] 노랑 보면 장성 떠오르게… 뚝심 군수, 色다른 부자농촌의 꿈

    유두석(66) 전남 장성군수 부부는 모두 군수 출신이라는 이례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유 군수는 2006년 군수에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만에 낙마했다. 하지만 보궐선거에서 남편의 뒤를 이어 중학교 교감 출신의 부인 이청(59)씨가 당선됐다. 이 부부는 민주당 아성인 호남 텃밭에서 모두 무소속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2010년 부인이 무난히 재선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민주당 지원을 받은 후보에 밀려 낙선하고 4년 뒤 치른 지방선거에서 유 군수가 다시 군수로 복귀했다. 건설교통부 이사관 출신으로 도시 디자인 전문가로 불리는 유 군수는 지난 4월 사단법인 도전한국인운동협회가 주최하는 ‘2016 도전 한국인 대상’에서 신지식인상, 지난 15일 HDI인간개발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2016 HDI 인간경영대상’ 시상식에서 ‘사회소통부문’ 대상을 받았다. 유 군수는 전국 최초의 컬러 마케팅 브랜드 사업을 펼쳐 ‘향기 나는 옐로우시티’로 가꿔 활기 넘치는 부자 농촌으로 성장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0 장성 발전 로드맵’을 실천하고 있는 유 군수의 하루를 지난 20일 동행 취재했다. 1950년 장성군 황룡강변 오두막 토담집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유 군수는 나물죽이나 뭇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다.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행상으로 술빵을 파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생활 전선에 뛰어든 유 군수는 신문팔이와 땔감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일부 지역만 신문이 배달되고 나머지 지역은 우편으로 발송돼 이틀 후 접하는 것을 보고 수십리 길을 새벽 3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매일 직접 돌려 부수를 10배 이상 늘리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배고픔을 벗어나는 길은 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으로 판단한 유 군수는 남들보다 2년 늦게 중학교로 들어간 후 호남의 명문 광주고를 졸업했다. 유 군수는 초등학교 때 홍수로 집이 떠내려간 후 담임 교사가 옷을 한 벌 사준 기억이 “당당하게 성공해 나처럼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준 선생님의 은혜를 사회에 꼭 돌려드리겠다”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기가 됐다고 한다.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시 대신 전남대 4년 재학 중 7급 공채에 합격한 후 30여년을 건교부에서 근무했던 유 군수에게 노모 김묘순(93)씨는 인생의 큰 지침 역할을 했다. 장관을 비롯한 선후배 동료들의 사퇴 만류를 뒤로한 채 고향 발전을 위해 내려왔던 이유도 “니가 서울에서 큰 벼슬하고 호의호식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 고향 사람들이 부르면 빨리 내려올 것이지, 니가 언제는 호강하고 살았냐”는 어머니의 호통을 듣고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의 출세길을 접었다. ●“고향이 부르면 와야지” 어머니 호통에 낙향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친화력이 좋은 유 군수는 생일을 맞은 직원 700여명에게 일일이 축하 전화로 덕담을 건네기도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공무원을 하고 싶은 사람이 공직에 있어야 한다’며 따끔한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유 군수는 “민원인 입장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작은 변화가 우리 사회를 크게 바꾸는 힘인 만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가져 달라”고 항상 당부한다. 이날 첫 공식 일정으로 참석한 장성무지개학교 학부모 연찬회는 유 군수가 어렸을 때 겪었던 배움의 목마름을 많은 사람이 누리도록 하겠다고 생각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 군수는 방과후 활동과 원어민영어교육을 지자체가 지원하면 교부세를 감액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농촌 특성을 모르는 일이라며 내년에 17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학부모들의 박수를 받았다. 진원면 출신의 재경향우회장인 이정수 두성도시건설㈜ 대표가 1000여만원을 들여 지역 주민 300여명을 초청해 점심을 마련한 자리에 참석해 고마움을 전한 뒤 유 군수는 황룡강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유 군수는 홍길동의 고장, 선비의 고장으로만 머무른 장성을 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친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황룡강 르네상스’를 추진하고 있다. 황룡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한 황룡강을 용머리, 앞발, 몸통, 뒷발, 꼬리 등의 5개 구간으로 나눠 테마별 특색 공간을 구축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10월 황룡강에서 열린 가을 노란꽃잔치에 황화코스모스, 해바라기, 백일홍 등을 보기 위해 72만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끈 덕에 자신감이 생겨 더 탄력 있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옐로우시티’ 이름 특허를 받은 장성군은 여느 농촌처럼 침체한 지역을 노란색 위주의 꽃과 나무를 심어 자연, 환경, 예술, 관광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황금색의 생동감 있는 도농복합도시로의 도약을 실현하고 있다. 건교부 시절 신도시건설기획단 업무를 맡으면서 지금의 분당, 일산, 평촌 등을 탄생시킨 신도시 건설 전문가로 명성을 날린 유 군수는 추진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판단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사업들을 다시 검토하고 연구해 성과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장성군 북이면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낡은 신광철도박스 개·보수 사업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반복된 거부 답변에도 공무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2월 ‘노후시설 개선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도록 했다. 지난해 100억원 규모로 국토교통부가 전국 최초로 현대식 공공실버주택을 짓는다는 사업도 노하우를 살려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전국 9개 사업대상지에 광주·전남 최초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군민 염원 공설운동장·철도박스 개보수 성과 장성군민들의 염원인 공설운동장 건립도 유 군수의 뚝심과 추진력, 도시 디자인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잘 설명해 준다. 수천년 동안 기형적으로 흐르던 황룡강 취암천을 직강하시키는 등 물길을 바꾸고, 강 일부를 메워 3만 8000㎡를 확보해 공설운동장을 만들게 됐다. 현재 실시설계에 들어가 2020년 6만 5000㎡ 규모의 공설운동장이 완공된다. 건물 한 채 짓지 못했던 땅이 황금 부지로 부활했다. 오후 3시 군청 상황실에서 열린 상무평화공원 및 수양호 조성계획 용역 보고회는 건설 분야 전문가인 유 군수의 예리함과 평상시 직원들을 대하는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38억원이 들어가는 상무평화공원과 민자 65억원 등 총 349억원의 수양호 마스터플랜 사업 보고회에는 부군수와 실과장 등 42명이 참석했다. 기본계획을 보면서 “농장 옆에 친환경 농장을 조성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재원조달 계획을 꼼꼼히 묻는 등 용역회사 관계자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특히 지역 특성을 아는 직원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면 아직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오게 되고, 결국 이런 안건들이 검토돼 큰 도움이 된다며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게끔 했다. 유 군수는 공무원들이 편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배려 차원에서 몇 차례 억지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열린 행정이자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여기는 자세였다. 군은 올해 귀농·귀촌인 유치 평가에서 전남도 최우수상 등 13개 부서 32개 분야에서 각종 상을 받는 등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유 군수는 “황룡의 전설에서 노란색을 찾아 옐로우시티 장성이 누구나 살고 싶은 부자 도시가 되도록 군민들과 힘써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일시: 2016년 12월 27일 오후 2시~오후 4시 30분  *장소: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    태영호 전 공사: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기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외교 대결 최전선에서 뛰어온 태영호다. 북한에서도 잘 살던 저희 가족이 왜 귀순했는지 여러가지 추정하며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학하고, 평양 국제국제학교에서 외교관 양성교육을 받았다. 영국, 덴마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해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북한 정권은 미래가 없다는 걸 점차 알게됐으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에 대한 연좌제 두려워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유학을 오래한 김정은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아니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내려줄 거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시간 흐를수록 고모부 장성택, 측근들도 무자비 처형하는 행태를 보며 절망감 빠져들었다. 지난 5월 7차 당대회를 계기로 한·미 대선 등 정치적 변환기를 이용해 핵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하는 광신적 정책 채택하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빨리 남한으로 가서 무엇이든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 지금 김정은 체제는 겉으로는 공고한 거처럼 보이지 안은 썩어 들여가 대내외 심각한 위기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쓰고 한국 영화 보는 게 현실이다. 김정은 삼수갑산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게 해달라며 간부들 일거수일투족를 감시하고 공포 정치를 한다. 이런 미친광이 행태를 보면서 태양과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는 기회주의적 생각을 한다. 노예 생활이 40, 50년 증손자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저는 제 가족들에게 이 순간 내가 노예 사슬을 끊어주니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말했다. 진작 오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했다. 김정은 정권을 누가 무너뜨러주지 않을까 살아온 과거가 부끄럽다. 김일성 김정일 때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 천만한 핵질주의 마지막 직선주로에 들었다. 손에 핵무기가 주어지면 우리는 영원히 핵의 인질이 될 것이다. 이 한몸 숨길 곳 없는 자그마한 영토는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북한에 계신 여러분, 쭈뼛거리지 말고 들고 일어날 때 김정은 물먹은 벽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김정은을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삽시다. 해외에서 고생하는 북한 주민 여러분, 이미 수만명이 남한으로 왔습니다. 탈북 면허증이 주어져 있는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대한민국으로 오시라. 외교관 여러분, 자식들을 인질로 잡아둔 김정은을 순한 양처럼 따르지 말고 다같이 들고 일어납시다. 자식에게 노예 사슬을 끊어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 여러분은 통일 선봉이다. 통일되는 날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마을 사람들에게 통일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 받을 것이다. 통일 앞장설 때 김정은 연좌제 허물어 질 것이다. 3만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망배단에서 울려 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밝아올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온 간단한 소회? 자녀 하나는 평양에 두는데 온 가족이 다 올 수 있었던 이유?  -언급한 거처럼 김정은 정권은 부모 자식간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에 나간 주재원의 자식 한명을 인질로 잡아둔다. 그러나 저는 천망다행스럽게 제 자식들을 다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제가 어떤 경로, 과정 거쳐서 제 자식들 데려 올 수 있는지 문제는 현재 북한에 계시는 여러분들 생명하고 관련된 문제라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2017년말 핵 완성 관련 설명 부탁한다. 또 영국에서 하던 업무 뭐였나?  -2017년까지 핵개발 완성 대해서는, 김일성, 김정일 때도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단 김정일 때까지만 해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 쓰고 핵개발을 은밀한 방법으로 해왔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채택했다. 여기서는 경제는 세계와 주민 기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7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은 가장 빠른 시일내 핵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명했다. 왜 2017년말을 완성 시간표로 정했느냐는 문제다. 북한이 핵개발 적기로 보는 거는 한국 대선 진행되고 미 대선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2017년말을 가장 적기로 봤다. 왜냐면 정치적 국내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 핵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못할 거라는 타산이 깔려있다. 북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2가지 단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미국, 한국에서 보수든 진보가 집권하면 새 정권은 반드시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 두번째는 정권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타산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 팀이 꾸려진다면 필경 북한과 새로운 정책 시도할 것으로 간주한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개발 완성해서 새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미가 유지해온 선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새로 집권하는 한미 정부와 북한이 핵동결 대 제재 해제, 한미 합동 군사 해제 등 북한 요구 사항 들이대 핵보유 인정받는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 있을 때 북영 간 쌍무 관계 위주로 담당했다. 북한의 주요 대외정책, 김정은 우상화 핵 정책 관련 입장을 영국에 알리는 일이다. 공관원들이 업무 관련 없는 행동 하지 않느냐고 했는데 옳다. 자기 업무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외화벌이에 동원된다.    6,7차 핵실험 관련 공문 받았다고 했는데, 과거에도 받았나, 구체적 방침은? 외화벌이 구체적 활동은 뭐냐?  -국회 정보위에서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제 의도와는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한다고 공문 내보내지 않는다. 단 저는 정보위에서 핵개발 관련된 정책적 측면을 얘기한 것이다.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내용을 공문에 쓰지 않는다. 당 정책을 설명한 거다. 언제 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 공관에는 다양한 부서 사람이 나온다. 외무성도 있고 무역성 등 다른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있다. 매 기관에서 나온 사람 따라서 부과된 ´외화벌이 과제´는 다 다르다. 경제부서에서 나온 분들은 구체적인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집행하지 못할 때는 상부에서 추궁이 제기된다. 그러나 외무성 외교관한테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과제를 주지는 않는다. 가령 이번달에 10만 달러 받쳐라 그런 식으로 안준다. 단 매달 사후 총화를 통해서 어느 공관이 어느 정도 외화를 벌어서 평양에 바쳤나를 총화한다. 외교관들이 지닌 과제와 부담은 다르다. 경제부서 분들은 부담이 높고, 그거 못 벌어 바쳐서 상당한 심리적 압박 받는다.    구체적인 액수?  -공관별 할당 액수는 없다. 단 개별적인 할당량이 있다. 그거는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 언제, 경로는? 빨치산 후손 맞나?  -도착 시기, 경로 관련해서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보도한 많은 부분은 사실 아니다. 여름에 와서 첫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가족이야기인데, 저는 태가이지만 북한 대장이던 태병렬과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아내는 오백룡 가문이 맞다. 아내 가족이 다 북한에 있는 상황에 가족 얘기 하기가 곤란하다.    귀순 시기가 7월? 8월?  -구체적 시기는 곤란하다. 여름으로 이해해 달라.    미국으로 안가고 한국온 거는 미국에서는 가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시기, 경로 대해서 언론 보도된 거는 대부분 사실과 맞지 않다. 대부분 내용이 사실 아니다.    공개 활동 결심한 배경은? 신변 걱정 안하나?  -서두 발언에서 언급했지만 저는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뭘 할지 고민했다. 저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공개활동을 진행해서 김정은 정권 빨리 붕괴 시키고 우리 민족을 핵참화에서 구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첫 순간부터 공개 활동 하기로 맘 먹었다. 물론 북애 두고온 가족과 피해 입은 동료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이나 흘리고 해서 도움될 거 없다. 제가 싸울 때만이 통일의 아침을 불러올 수 있다.    망명지 한국 외 다른 곳 선택할 생각?  -비록 우리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여년 지났지만 하루 빨리 제 세대에 나라 통일하는 걸 평생 숙원으로 생각한다. 빨리 통일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제일 가깝고 같은 민족이고 언어, 피가 통하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 벌이는 게 나라 통일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김정은 하나만 어떻게 하면 체제 무너질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단마디로 말하기는 복잡한 문제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거는 김정은 대까지 김씨 일가가 3대에 왔다. 공산정권 수립이 70년 됐다. 물론 인류 사회 발전 역사를 볼 때 새 제도가 수립되면 한동안 무질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 제도가 수립되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포정치와 처형으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예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론에 플러스, 조신시대의 지도자에 충효 강조하는 사상에 유지되는 사회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집권 5년이 되는 이때까지도 북한 주민들에게 자기가 집권하게 돼 명분과 정체성을 명백히 밝히고 있지 못하다. 김정은이 마지막이라는 건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고위 엘리트들도 운명공동체 의식 없어졌나?  -그렇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속 봐왔을텐데 이런 정책이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나?  -한국 와서 언론을 보면 현 대북 정책에 대해 상당히 논쟁 많은 걸 봤다. 한 부류는 계속 대북 제재 정책을 계속해서 얻을 게 뭐냐, 핵질주로 계속 가지 않냐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과, 일부는 지금의 정책을 계속 강경 모드 유지해서 김정은을 고립, 위기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봤다. 저는 현재 김정은의 핵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 문제는 어떤 인센티브의 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김정은이 있는한 절대로 북한은 핵무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조달러, 10조달러 준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개발 현재는 어디까지 왔나?  -저는 북한 핵개발 정책적 측면 말했다. 저는 핵 전문가가 아니다. 현재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저는 잘 모른다.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 아니라 더 높은 분들도 핵개발이 어느 수준인지 모른다.    탈북의 결정적 계기? 김정철 동선 노출과 관련해서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는 보도 있었는데?  -저는 오래전부터 북한 체제는 미래 없다는 거 알고 있었지만 선뜻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북한 정권 단죄하고 핵참화에서 구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한다. 김정철도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 신상 관련 정보는 제가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인권유린하고 민족에 해를 끼쳤다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형이라는 이유로 욕하거나 개인 신상 공개하면 연좌제 실시하는 김정은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 탈북 관련해 북한이 말하는 것들은 다 사실이 아니다.    해외에서 주로 어떤 사람 만나 선전활동했나? 그들 반응은?  -저를 포함해 북한에서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으며 저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 외치고 저녁에서 이불 쓰고 한국 영화 본다고 말했다. 저 역시 북한 정권 몸 담고 있을 때 겉으로 김정은 만세 외칠 수밖에 없었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거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다기(다양)한 견해 가진 사람들과 북한 체제 홍보할 때면 제 앞에서 북 체제 비난하고 어떻게 그런 체제를 홍보할 수 있냐고 말했다. 저는 직무상 옹호해야 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이해하면 된다.    북한이 중국 어떻게 보고 있나? 전략적 인내에 대해 북한 입장은?  -북한이 상당히 중국에 대해 자주적인 거처럼 보인다. 중국은 전혀 북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자주적인 거는 사실이다. 북한이 어떻게 자주적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가.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다. 중국 앞에서 북한이라는 동생이 형 앞에서 배짱 부려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동북아의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있다. 북한이 어떤 짓을 해도 중국은 이 죤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은 결심만 하면 북한 정권 끝내는 건 일도 아니다. 아직 중국은 압록강,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군이라는 물리적 전진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호해주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북한 핵개발을 다그칠 수 있는 면죄부로 지금까지 간주해왔다.    외교관 이력은? 마지막으로 평양 떠난 온 거 언제?  -근무기간 밝히는 건 그렇고, 90년대 말에는 덴마크,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 마지막 다녀온 거는 2014년이다.    북한의 경제 모델은?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 정책 결정 방법 다른가?  -북한이 직면한 아킬레스건 하나는 올바른 경제 정책을 주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정신과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사회다. 이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떠나서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한다. 김일성, 김정일이 내놓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이론에 기초했지만 실정은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상부구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상부구조, 하부구조 마찰이 큰 아킬레스건의 하나다. 왜 공식적인 정책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나. 북한은 수령 신격화에 기초한 사회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이며 모든 주민들의 의식주 문제는 수령이 보장해 주어야 한다. 북한 노동당이 시장 경제 정책 받아들여서 수요, 공급에 의해 좌우되는 경제 정책 만들면 김정은이 서 있을 위치가 어디에 있겠나. 이 문제 때문에 아직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이론은 주민들로 하여금 북한 등돌리게 한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당한 질문이 북한이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 기구, 컨트롤 타워는 어디 있느냐고 여럿 물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국방위인지 국무위인지,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 물어봤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종속 관계에 집중돼 있다. 가운데에서 나라 컨트롤하는 타워라는 건 북한에 없다, 오직 김정은이라는 신, 수령과, 정책 집행 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영국에 있을 때 대북 제재 효과 체감 했나?  -대내외적 심각한 위기 몰렸다. 이중에는 대북 제재로 인해 김정은 정권이 상당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걸 저는 말하고 싶다. 현재 대북 제재 효과 얼마나 내고 있는가 판단할 때 절대 경제적 형편이나 숫자 가지고 제재 효과성 여부를 판단하면 안된다. 제재 효과 판단은 2가지다. 북한 주민 심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그리고 김정은 정책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봐서 판단해야한다. 올 3월 김정은이 제재 나오자 전체 간부 모아놓고 려명거리 건설을 지시했다. 10월 10일 전까지 완성하여 대북 제재가 물거품이라는 거 보여주라고 호통쳤다. 여명거리는 10월10일까지 완성하고 입주했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제재 심화되는 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느끼고 있다. 나선 지대처럼, 북한 변두리 지역에 내놨던 경제특구를 북한 종심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경제특구 개발 정책 내놓고, 원산지구를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수많은 자본 투하. 이런 정책이 대북 제재 속에서 실현 가능할까? 김정은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놨다.    인권 압박 효과는?  -북한 가장 위축시키는 게 인권 문제다. 핵은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말한다. 많은 나라들이 내심으로는 북한이 어떤 방법으로 핵을 개박하고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가는가, 우리도 혹시 북한 예를 따를 수 없는가 북한에 물어본다. 그러나 인권 문제 대해서는 북한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인권 애기 나오면 외국인들 첫 질문이 뭔지 아냐(미소) 북한에서 만민이 법앞에 평등하냐고 물어보나고 하면 저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고 하면. 그럼 김정은 어떻게 병원 애육원에서도 담배를 피우느냐. 이게 법앞에 만민이 평등한 사회냐. 인권 문제 논쟁 벌이면 벌일수록 어려움 빠졌다. 3월 제네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이 공식 표 대결을 포기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인권 공세의 커다란 승리다. 북한은 인권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결의안에 리더십이라고 한 거 아쉬운 문제다. 앞으로 김정은 이름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는 게 중요하다. 북 주민들은 이게 먼지 모른다. 단 무슨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퍼진다고 생각해보라. 북한 아이들도 재판 나간다는 건 범죄자가 잘못해서 끌려간다는 걸 안다, 이건 곧 김정은이 범죄자이며 북한의 미래가 없다는 걸 뜻한다. 북한은 김정은 세글자가 유엔 결의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언론 접촉한 적 있나?  -주성하 기자가 한국에서 쓴 기사 100% 다 보고 큰 힘 얻었다. 인터넷에 쓴 서울에서 쓰는 편지보고 눈물 흘린 거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도 같이봤다. 저는 주성하 기자가 쓴 글 보면서 주성하씨도 한국 가서 노력해서 그야말로 한국에서 알려진 분이 됐는데 우리도 한국 가서 하바닥에서 한층한층 노력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왔다. 제가 한국 온 거는 선생님 도움이 컸다. (웃음)  최고의 영광을 제가 주셨다.(웃음)  -딱 보니까 인터넷에서 본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보다 낫다. (웃음) 북한 외교관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컴퓨터를 켜고 보는 게 뭔지 아느냐. 연합뉴스다. 북한란을 보면 그날 하루동안 한국, 해외 언론이 북한에 대해 뭘 썼다는 걸 다 안다. 대외 활동 할려면 사전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연합뉴스 앱을 설치해 다 본다. 제가 오늘 말하는 것도 거의 그대로 북한 외교관,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즉시 다 본다. 제가 가장 북한에 있을 때 한국 오기로 결심하고 힘을 준 게 뭐냐면 이미 저보다 먼저 한국와서 활동하고 계시는 탈북민 활동이다. 고영한 전략연구원 부원장이나, 주성하 기자, 강철환 등이 쓴 글 다 본다. 한국 TV에서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클럽. 몰라수다 북한수다. 탈북민들이 활동하는 건 100% 다 본다. 가서 어떻게 사는가. 탈북민 생활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북한에서 1순위다. 불어라 미풍아 mbc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본다. 제가 이걸 보면서 딱 우리 가족의 지난 날을 본 거 같은 느낌이다. 덴마크 생활할 때 한 학급에 저희 큰애와 한국애가 같은 학급에 있었다. 카톨릭 영어 학교. 하루는 우리 큰 애가 집에 와서 가방을 바닥에 던지면서 아버지 이순신이 누구냐고 물었다. 북한은 역사 교육을 잘 안한다. 역사를 알면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제가 깜짝 놀라서 이순신을 어떻게 알지 했는데. 이순신 앞에 위대한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선생이 매 나라마다 자기 민족에 제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써내고 왜 위대하냐고 이유를 써냈다. 우리 아이는 김일성이 위대하다고 말했다. 나라를 해방시키고 일본을 내몰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애는 이순신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내몰았으니까. 선생님이 같은 일본을 내몬 것인데 왜 한쪽은 김일성이고 한쪽은 이순신이냐고 했다. 애들은 임진왜란이고 그런 거 모르니 그렇게만 한 거다. 근데 아이한테 제가 이걸 잘못 말하면 애가 잘못될 수 있다. 그때 제가 그건 복잡한 문제인데 크면 말해줄게라고 했다. 불어라미풍아 보며 생각했다. 이념 문제는 어릴 때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어린 나이가 이순신이 위대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거, 드라마를 해외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면 그런 생각했다. 불어라 미풍아 마지막 장면이 미풍이가 통일을 위해 망배단으로 촛불을 들고 가는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 (웃음)    외부 정보 유입되는 경로?  -북한 사회는 외부로부터 정보 유입이 차단된 조건에서만 존재가 가능한 사회다. 북한에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날 북한은 스스로 허물어진다. 수령에 대한 신격화에 기초해서 유지되는 사회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여러 여인 중 하나에서 난 아이다. 그런 정보가 내부에 들어가면 수령 신격화가 유지 되겠나. 유지될 수 없다. 어떻게든 외부 정보 차단하기 위해 별이별 조치 다 취한다. 인터넷 열어놓지 못하는게 허구성 밝혀지는 날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다. 어떻게 외부 세계 생각과 정보, 김씨 가문 허구성 알려줄 수 있겠는가. 저같이 외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북한에 들어가서 말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살다 들어왔다면 자동적으로 보위부 파견 감시요원 붙인다. 외부에 나갔던 사람들은 그 실상을 다 알지만 그 정권 밑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단기 출장 와서 들었다는 사람들도 자기 동료들, 친구들한테 그런 말 안한다.    고영희가 김정은 생모 맞나?  -간단히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 구도 과정은 다르다. 김정일 구도는 상향식 후계 구도다. 김정일은 자기가 공식 후계자 될 때까지 10여년 동안 탄탄한 대로 다졌다. 삼촌 쳐냈고, 김성애 형제들, 이복 동생들 하나하나 걸림돌 쳐내면서 후계자까지 갔다. 북한은 공산주의+유교 사회. 명분과 정체성 중시해. 김정일이 후계자 될 명분은 뭐냐. 김정일은 후계자 되기 전까지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명분이다. 정체성은 아버지는 빨치산 대장, 어머니는 항일 영웅. 피가 좋다. 김정일 보다 좋은 정체성 가진 사람 내놓을 수 없다. 유교 사회의 장자 세습 원칙. 김정은은 백두혈통 강조하는데, 집권 5년차인 오늘날까지도 생모 이름 주민들에게 공개못하고 있다. 김정은 어머니를 선군조선의 어머니라고만 공개. 이름이 뭔지는 내놓지 못했다. 늙은 아버지 동료들이 옆에 있는데 거기 앞에서 자기 어머니가 공식적인 김정일 부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활동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신변에 대한 두려움 없나?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통일이란 건 어떤 개인이나 집단 희생 없이는 되지 않는다. 통일의 재단에 바친 몸인데 그 길로 가다가 테러로 죽는다면 그것이 곧 통일을 위한 기폭제가 돼서 더 많은 동료들이 저와 같은 길에 들어서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해외 나가면 다 인터넷 볼 수 있나?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다. 해외 주재원들과 애들은 다 스마트폰 쓴다. 버젓이 인터넷 켜고 연합뉴스 보는 건 업무상 유리한 점도 있지만,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 보는 건 어려운 일 아니다. 보위원들이 다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는 없다. 고영숙 인터뷰가 났을 때 절대 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인터넷 접근하는 사람 통제하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고 김정은도 알고 있다.    평양 엘리트층이 해외 정보 어느 정도 아나? 김정철 정신이 불안한 상태라는데?  -북한은 외부 정보의 유입이 철저히 차단된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다. 이런 원칙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중앙단 부부장 과장 정치위원 이런 분들이 제 목을 쥐고 있다고 해도 당에서 제공해주는 정보만 본다. 나머지 정보에는 접근할 수 없다. 반면에 외무성이나 대남 부서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는 정책 짤 수 없으니 제한된 사람들에게 정보를 열어준다.  -김정철은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과 관련된 사안은 밝히기 부적절하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 한국 드라마 뭐 봤나?  -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다.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냐. 대사관은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한다.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 번다.  -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대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고 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다.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살려주십쇼 하면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다.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다. 마약과 한류다.    공포정치 사례는? 감시 지령 받은 적 있나?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그 어느때라도 숙청이 중단된 적이 없다. 공산주의는 계급투쟁, 상호 비판 통한 불순분자는 밖으로, 수용소든, 배출하는 과정 통해서 북한 체제는 존재한다. 신진대사 과정 통해서 이단자 부단히 숙청하는 과정 통해서만 북한 사회는 존재한다. 김정은은 공포 심리를 앞장서 조성해서 일반 대중이 들고 일어날 꿈도 못 꾸게 한다. 공포 선행 통치. 김정일 만세 행사 한다고 하면 그때는 보안요원들이 넥타이 메고 나와 공손히 검열했다. 지금은 군복 입고 총을 차고 신분증 검열하고 들여보내는데, 거기에 기관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총구가 제 가슴을 통과한다고 생각해보라. 저 군인이 아차 실수해서 방아쇠 당기는 죽을 수도 있으니 이상한 행동 조금이라도 하면 안되겠다. 이게 공포 선행 통치다.  -북한의 감시 체계는 말단까지 다 미치고 있다. 북한 주민이 100명 이상일 때, 반대로 영국 유럽처럼 현지에 나간 인원이 10명도 안되는데는 당비서나 안전요원이 안 나와 있다. 그런 데서는 대사가 있고 두번째 외교관이 당비서겸 안전보위 업무를 한다. 감시해서 상부 보고 기능 수행한다. 다 인간 세상이기 때문에 매일 보는 동료를 감시해서 보고한다는 거 힘들다. 적당히 눈감아준다고 보면 된다. 북한의 모든 사람들은 기회 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하나의 세트장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된다.    대외 정책 결정 체제?  -원리적으로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영도하는 사회다. 외무성에서 작성에서 당 국제부에 보고하고 국제부에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북한은 특수한 체제다. 결국 당 국제부와 외무성은 전혀 별개의 기관. 두 기관은 서로 개입 안한다. 당 국제부는 조선 노동당과 다른 나라 정당 관계만 관할한다.    박근혜 탄핵 목도 했는데 소회는?  -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꼈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이민탈북 얘기 많이 나온다. 대화 나눌 때 생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한국 바라보는 시선은 모순된 심정 하나는 한국은 정말 30, 40년간 압축적인 성장과 짧은 시일내 민주화 이뤄낸 대단한 나라구나 그러나 또 역시 한국 드라마 문화 콘텐츠 보면 한국은 대단히 경쟁력 심한 사회다 경쟁 없는 북한 사회서 살다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많이 하게 된다. 생계형 탈북과 이민형 탈북문제 이야기했다. 엘리트층 견주에서 보면 한국 온다 갈까 생각할 때 제일 첫번째 생각하는 게 본인이 가진 사회적 지위 한국에 가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지 않느냐. 북한에서 양반 지위 살았는데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에서 살다가 한국가면 천민으로 떨어질지 이런 심리적 부담 내가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가정 내에서 애들도 아버지가 누구도 받을 수 없는 교육 시키고 가장으로서 지위 높았는데 한국 사회가면 지위 떨어지고 심리적인 담벽 어떻게 넘겠는가 이문제 많이 고심해. 한국 드라마 영화 보면 아이들때부터 배낭매고 학원다니며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교육 굉장한데 북한도 물론 돈있는 집 중점학교 넣고 공부는 시켜. 제 아들도 한국 가서 대학 가 수십년 머리 싸매고 공부한 애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겠나 이런 부담감 많이 갖고 있다. 이민 온 탈북민 어떻게 사는가 많이 봐 연구원 자료 홈피 등. 물론 한국에 와 잘 정착하는 분들도 있지만 탈북민 평균 소득 146~7만원 한국 근로자 절반도 안된다 등 한국에 와서 실제 생활하며 보니 제가 생각했던 거와 많이 달랐다. 제가 사회 배출되면 한국에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지만 자본주의 사회 경쟁 기초로하고 있고 생존 치열하지만 북한 주민과 사람들에게 한국에 와서 본인만 열심히 살면 여러 가능성 열려 있고 이미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 위해 어떤 시스템 있는지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 한국 사회를 동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바라봤나?  -개성공단은 북에 있어 맨 처음 시작할 때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 고충이 상당히 컸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제일 처음 공단 시작할 때 북은 공단 통해 중공업과 화학공업 등 덩치큰 공업 들어올 거라 생각 들어오면 한강 기적처럼 순리 밟지 않을까 탄산해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중화학공업 안들어오고 소비재공업만 들어와 우리가 한국에 당한 거 아니냐 내적 논리 생겼다. 개성공단 북한 사회 미치는 여파 줄일 수 이겠느냐가 관점이었는데 다행히 개성공단 휴전선 지대 있어 다른 말로 북한 주민 일반 주민들 개성시에 갈 수 없어 개성시 주민 맘대로 다른 지역 갈 수 없어 전연지대 특별 통행증 발급받아야 개성시까지 올 수 있다. 해?는데 결국 북한 모기장 치니 모기 들어오는 거 막을 수 있었다. 이게 북의 판단이다. 이 모기장에서 모기가 새어나가지 않았나 개성공단 가면 많은 경우 노동자들에게 물자를 준다. 기름, 초코파이를 준다. 우대물자가 많은 경우 평양 비롯한 외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초코파이 시장 인기 상품 잘사는 사람들 등산갈 때 초코파이 사갖고 가야 잘 사는 애에 속한다. 대놓고 팔면 걸리니 장마당 밑에 놓고 판다. 여자들 다가가면 돈 있는 거 알아 그럼 초코파이 몇개 살래 물어봐 개성공단은 북한의 남한발전 실상 일리는 데 커다란 역할 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 어떻게 하나 개인적으로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폐쇄했는데 만일 북한 핵질주 멈추기 위해 남한 정부서부터 폐쇄 선전 조치 안 취했다면 다른 나라가 제재 따라왔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공사 직무는 북한에서 어떤 직급?  -부국장급 사이 국장급보다 높지 않다    탄핵 정국 탄핵 이후 대선으로 이어져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처음으로 공개활동 시작해 국회 정보위 분들하고 만나고 보도 나온 거 보니 일부 티비서 왜 지금 이 시점이냐, 보수계에서 쓰는 마지막 수 아니냐 , 또 현 정국 물타기 위한 국정원 작전이라고 티비 나오는 거 봤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전 통일하러 왔다. 한국 정치 개입할 의사 없고 한국 정치 잘 모른다. 한국 도착 순간부터 함께 다니는 분들한테 내가 언제 나가 공개활동 할 수 있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느냐 물어보니 그분들이 한국은 법치국가 모든 거 법과 규정 원칙대로 한다, 현재 우리가 가진 원칙에 의해 태 공사 11월 말 사회에 배출될 거 같다, 저 애들 생각할 때 애들 매일 인터넷하고 맘대로 다니는 애들 답답한데 정확한 원칙 규정에 복종해야 한다, 이건 국가가 세운 규정이니 누구도 어길 수 없다. 규정 시일에 맞춰 이 시점 여러분들과 기자간담회 한다.    사회배출 시점 언제 설명 들었나  -제가 한국 도착해 첫 질문이 내가 언제 배출되나, 활동하냐. 절차 쭉 설명했다. 단언하는 건 새해 전 설 전 나갈 수 있다고.    여름에 그 얘기 들었나  -네    대북제재 효과?  -직접 느낀 팩트만 얘기하겠다. 영국에 있으면서 보험 영국 조선국영보험 회사 지점 있어 북한 보험 95% 자금이 런던 보험시장서 들어간다. 세계서 제일 큰 보험 시장이 런던이다. 수십년간 북한 런던 재보험시장서 엄청난 돈 빨아들어가 이번 대북제재로 이유 유럽동냉 영국 정부 보험 런던재보험 시장 추출 결정하고 북한 보험 쫓겨났다. 하내 수천만불 빨려들어간 북한 보험 줄 막혔다. 국제기구 대사관 2명 외무성 파견 아닌 국가해사안보청 해운업 하는 부서에서 나와 외교관으로 imo에서 근무했다. 이분들 재정사정 외무성하고 달라 배 움직이니 외화 많다 대상 안되는 넉넉한 생활하는데 올해 초부터 이분들에 대한 유지비 생활 돈 나오지 않아 집주인으로부터 집 내놔라 전화 끊겠다 재정적 어려움 겪는 거 보면서 한국에 와 북한 가장 큰 외화벌이 원천 보험 해운업 제가 일하는 동료들 직접당한 고통이다. 대북제재 현주소 설명해줬다.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은 5년간 시진핑 못만나 체제 끄는 김정은 외교력은?  -미국 양당제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 법은 공화당과 민주당 완전히 달랐다. 북한이 미국 행정부와 처음 핵문제 합의한 것도 클린턴 민주당 때 일 그 이후 북한은 민주당 여러 인사와 대화채널 갖고 민주당과 계속 거래 대화 진행해왔다. 반대로 미 공화당 기본 대북 팀은 일반적으로 강경파 네오콘으로 꾸려졌다. 네오콘 가장 높은 분 존볼튼은 북한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다. 일반적 미 공화당 본능적으로 거부감 가졌다. 94년 제네바 합의 나왔을 때 미 공화당 즉시 입장 발표 정권 잡으면 제네바 합의 휴지조각 만들겠다고 했고 부시 올라가 다 뒤집어 엎었다. 북한 본능적으로 공화당에 거부적 인식이 상당하다. 앞으로 트럼프의 대북제재 라인 국무성 라인 어떻게 꾸려질지 봐야하지만 공화당 속성을부터 대북팀 강경파 네오콘 세력 다시 차지할 것이다. 중국 시진핑 관계에 대해 김정은로선 중국 하루라도 빨리 방문하지 못해 몸살 날 것이다. 김정일 김정은 후계자 내세우기 위해 중국 찾아가 그런데 김정은은 핵 개발 하겠다는 거 공개적으로 선언해 결국 지금까지 조선반도 비핵화 은폐된 구호를 들고 핵무기 개발하던 북한이 중국에 대해고 핵무기 갖겠다고 공개 선언했고 이건 중국 뺨친거 랑 같다. 시진핑 위치에서 만일 김정은 중국 초청한다면 가장 기본적 문제 답 달라 할 것 핵무기 포기 선언해라, 김정은 중국에 가서 내가 핵무기 포기할게 이런 약속 현재 못한다. 근본적으로 핵무기 걸림돌 앞에 김정은 중국 방문 성사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양건은 어떻게 죽었나?  -김양건 어떻게 죽었나 북한 내부에서도 상당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단지 주민들 속에서 돌아가는 말은 김양건이가 저녁에 김정은한테 가 술먹고 술 완전히 깨지 않은 음주상태서 차 몰다가 다른 차 사고로 새벽에 죽었다. 일반 주민들 속에서 도는 얘기 사실인진 모른다. 북한 대남 관련, 북한은 한국 대선 미국에서 정권 인수 과정 진행될 때 복잡한 정치 일정 맞물린 2017년 핵개발 계획표 정했다. 전술적으로 북한 어떻게 이 목표 다가설까 전술적으로 북한은 대북제재 무용론 확산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도발과 핵실험 해서 한국언론 미국이 북한에는 정말 약이 없다. 이방법 안된다 해서 대북제재 무용론 기울어지게 만들어 한국정부 미국 정부 계속 괴롭히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 방향으로 기조 바뀔 것이다. 한국 수출 위주 국가로 경제 불안하면 작동 못해 새로 올라간 정부 정세 안정관리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 북 바라는 핵동결 핵보유국 지위 얻을 수 있다. 대북제재 무용론 확대가 북의 전술이다.    장성택 처형 관련 왜 죽었는지?  -중요한 건데 목격하지 않았으니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장성택 처형 문제는 북한 사회에 큰 충격 준 사건이다. 지금까지 김씨 가문 내 권력 투쟁 계속 있었다. 김정일 때도 김정일과 삼촌 김성혜 김평일 곁가지 치는 가문내 싸움 있었지만 절대 북은 공개 안한다. 다 외적으로 처리했다. 북한에서 예를 들면 김정은 올라갈때 김성혜 칠 때 곁가지 치는 거 뭘보고 곁가지라고 할까 가문 내 권력...장성택 일사천리로 회의해 처리하고 처형했다. 김정은이가 이렇게 한 게 거수인가 아닌가 두고봐야 할 일이지만 대단히 충격적 사건이다. 조용한 방법 아닌 공개적 방법으로 했을까 제 생각엔 장성택 사회 미친 영향과 권력 범위가 너무 컸다. 당 회의에서 공개하고 전 사회 운동으로 단시간에 처리 안했으면 큰 반발 있었을 것이다. 당내 정파 많이 제거했지만 당 한개부서 정파 집단 몰아 없앤 역사 없었다.    해외 공관 인권문제 진행돼 곤란하다고 했는데 탈북자 감시 공관 지시 내려왔나?  -북한은 일반적으로 탈북자와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국에 온 뒤 언론서 탈북자 만나고 이렇게 보도 나왔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단 최근 탈북자 정책에서 북한이 하나 취했다가 취소한 결정 탈북해온 분들 셰계 도처에서 인권 청문회 유엔 각나라 국회서 영국도 하고 탈북민 단체가 청문회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은 탈북민 위주 인권청문회 외교관 주동적 참가해 인권 정책 설명하는 청문회 북한 표현으로 수라장으로 만들라 이게 북 정책이다. 몇 곳에서 해봤다. 북한 외교관 발언권 주지 않으니 연설문 읽고 탈북민 퇴장하고, 영국도 많은 해외가 그렇다. 해외 나온 외교관 제기했다. 이거 국제사회 나가 국가 대표하는 북 외교관들이 탈북민들과 1대1로 공개장소에서 싸우니 출연하는 탈북민들이 망명정부 북한 대표하는 망명정부처럼 보여지고 북한 취약성 국제사회 더 보여준다. 탈북민 주최 행사 외교관이 나가서 1대1 싸우는 거 바람직하지 않다. 건의해 승인됐다. 지금은 탈북민들 국제인권청문회 내부 행사 북한 외교관 참가해 수라장 만드는 건 찾아볼 수 없다. 탈북민이 얻은 큰 승리로 평가한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일문일답] 태영호 “北, 핵질주 마지막 직선 주로 들어섰다”

    지난 7월 귀순한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공개 간담회를 하고 “김정은은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갔다”면서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함께 자신의 망명 이유와 김정은 체제의 실상도 밝혔다. 태 전 공사는 “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면서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모두발언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남북 외교대결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태영호다. 해외에서 자유민주 체제의 우월성을 실감하면서,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진화하는 민주화 과정을 목격하면서 북한 정권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북한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 친척들이 연좌제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다. 김정은이 해외에서 공부해 북한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고모부(장성택)는 물론 측근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행태를 보고 점점 절망감에 빠졌다. 특히 김정은이 제7차 당 대회를 기점으로 한국과 미국 대통령 선거의 정치적 교란기를 이용해 핵 개발을 2017년 말까지 무조건 완성한다는 정책을 채택하고 핵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빨리 한국으로 가서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원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지금 김정은 체제는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다.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쓰고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은은 주민과 간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공포통치를 하고 있다. 저는 북한 대사관을 벗어나는 순간 (가족에게) 내가 너희의 노예 사슬을 끊어 준다고 말했다. 통일을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을 위한 새로운 도약 기회이기에 앞서 저와 여러분의 생사 전반이 달려 있는 중대한 문제다. 지금 김정은은 핵개발 완성 시간표까지 정해놓고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 주로에 들어섰다. 김정은의 손에 핵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영원히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그마한 영토는 잿더미로 변해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다.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을 가볍게 쳐내고 통일된 나라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이미 수만 명의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으로 왔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어서 대한민국으로 와라. 통일이 되면 탈북민은 통일의 선봉 투사,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3만 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울려퍼질 때 통일의 아침은 반드시 밝아 올 것이다. ▲질의응답-북한이 보통 해외에 파견하는 간부들은 자녀 1명은 평양에 두도록 하는 것으로 아는데 예외였나.→김정은 정권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가장 숭고한 사랑마저 악용해 해외 상주 직원은 자녀 중 1명을 북한에 인질로 잡아놓고 있다. 저는 천만다행으로 자식을 모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북한이 2017년 말까지 핵 개발을 완료한다고 했는데 더 설명해달라.→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도 한 번도 핵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다만 김정일 당시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라는 거짓 외피를 뒤집어쓰고 은밀히 핵 개발을 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당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 경제는 세계와 주민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핵 최우선 정책이다. 김정은은 핵 개발을 가장 빠른 시간에 완성할 것을 당 정책으로 규정했다.북한은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인수가 진행되는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를 핵 개발의 적기로 본다. 이 기간에 국내 정치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는 물리적, 군사적인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계산)이 깔렸다. 북한은 한국에서 대선이 끝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북 정책팀이 꾸려지면 북한과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럴 때 북한은 빨리 핵 개발을 완성해서 새로 집권한 미국, 한국 정부와 북한이 도달한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유지한 ‘비핵화 후 대화’ 도식을 깨고 제재 해제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내세워 핵 보유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이다. -언제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니 구체적으로 대응하라는 방침이 (재외공관에) 있었나.→국회 정보위에서 (제가) 언급했다는 공문 문제는 의도와 다르게 보도됐다. 북한은 해외 공관에 언제 핵실험을 한다는 등 구체적인 국가 기밀에 속하는 것을 공문으로 보내지 않는다. 국회 정보위에 나가서는 북한의 현재 핵 개발과 관련한 정책적 측면을 얘기했다. -한국에 도착한 시기와 경로는. 빨치산 가문 출신인가.→여름에 한국에 와서 (지금이) 첫 겨울이다.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과는 어떤 혈연적 관계가 없다. (부인) 오혜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과 혈연관계다.탈북 시기나 경로와 관련해서 언론에 보도된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언론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공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북한 내 가족의 신변은 걱정되지 않았나.→우리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제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고 우리 민족을 다가오는 핵 참화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저 때문에 피해를 본 동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제가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려도 소용이 없다. 김정은 정권과 싸울 때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미국은 망명지로 생각하지 않았나.→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하루빨리 저의 대(代)에 나라를 통일하는 것을 평생의 숙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한민국에 와서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북한이 붕괴한다고 말한 이유는.→북한에서 공산정권 수립 70년이 됐다. 사회제도가 수립돼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공포정치와 처형으로 유지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북한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공산주의 이념에 더해 지도자에게 충(忠)과 효(孝)를 강조하는 조선 시대 ‘선비학’에 기초해 유지됐다. 정체성과 명분을 중시한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북한은 지금까지 유지되던 명분과 정체성을 잃었다. 김정은까지 겪고 본 북한 주민은 물론 엘리트층도 북한 세습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저는 김정은이 마지막이라고 확고히 이야기할 수 있다. -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전문가 사이에서 현 대북정책에 대해 논쟁이 많은 것을 한국에 와서 언론을 통해 봤다.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대북정책을 강경 모드로 유지해서 김정은 정권을 고립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김정은의 현재 핵 개발 정책을 포기시키느냐 마느냐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곧 핵무기다.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현재 북한의 핵 개발이 어떤 상태까지 왔다고 보나.→핵 개발의 정책적 측면을 말씀드린 것이다. 핵 개발의 수준이 어느 지점에 왔는지는 잘 모른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외무상이나 더 높은 사람도 핵 개발이 어느 수준에 왔는지 모른다. -영국에서 체제 선전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북한의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엘리트층도 기회주의적으로 살고 있다. 저도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기회주의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영국에서 각이(各異)한 계층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그런 북한 체제를 홍보할 수 있느냐고 얘기한다. 직무상 북한 체제를 옹호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외무성에서 일했는데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정은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북한이 중국에 자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동생’이 배짱을 부려도 중국은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어떤 일을 해도 중국은 ‘버퍼 존’(완충지대·buffer zone)을 유지하기 위해 끌려갈 수밖에 없다.중국이 결심만 한다면 북한 정권을 끝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막기 위해 아직도 김정은 정권을 비호하고 있고,김정은 정권은 이를 잘 알고 있다.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핵 개발에 대한 ‘면죄부’로 생각하고 있다. -외교관 경력과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난 시기는.→1990년대 말에는 덴마크와 스웨덴, 2000년대에는 영국에서 근무했다.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해외 근무를) 간 것은 2014년 초다. -북한 당국이 경제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면.→북한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올바른 경제정책을 주민에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은 점차 시장에 의거한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원시적 자본주의인데 정책은 사회주의 계획정책이다. 북한이 현실을 인정하고 경제정책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경제에 의한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순리다.김정은과 노동당은 왜 정책을 바꾸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북한이라는 사회는 수령의 신격화에 기초해서 움직인다. 수령은 신과 같은 존재고 모든 의식주는 수령이 보장해 줘야 한다. 경제정책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게 하면 북한 사회에서 점차 김정은의 존재는 없어진다. 그래서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주민이 세뇌 교육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핵실험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점은.→북한의 의사결정에서 가장 핵심기구, ‘컨트롤 타워’가 어디냐고 모든 사람이 물어봤다. 정책을 통합·조정해서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컨트롤 타워라는 것은 북한에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라는 신(神)과 모든 정책부서가 종적으로 연결된 사회다. -한달 월급 얼마였나?→차마 월급을 공개하기는 여러분들 앞에서 그렇다. 한국분들이 들으면 생존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마다 다른데 대사는 900~1100불, 참사, 공사는 700~800불. 1000불도 안 되는 돈으로 영국에서 어찌 살 수 있나 의문 제기되는데, 북한은 말하자면 사회 자체가 수용소고 병영이다. 대사관은 그 축소판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대사관 안에서 집체 생활을 한다. 전기세, 물세 등 국가가 부담하고 월급은 본인 식생활, 옷만 하면 돼 생존이 가능하다. 또 가능한 한 모든 수단 방법 동원해 돈을 번다. -한국 드라마는 뭘 보나?→한국 드라마는 사람, 계층마다 다르다. 북한 사람치고 한국 영화, 드라마 못 본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공부한 사람들은 역사물 좋아한다.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일반 주민들은 겨울 연가, 가을 동화, 풀 하우스 등등, 이를 차단하는 조치가 간단치 않다. 지하철 공공버스 이런데 109 소속이 나가서 수시로 검열한다. 북한 애들은 너무 남한 드라마 많이 봐서 말투도 바뀌었다. 자기야 오빠야, 할꼬야? ㅋㅋㅋ, 이런 거 북한에는 전혀 없던 표현들이다. 선전원이 잡아서 텍스트 딱 보고 한국 말투 있으면 바로 ‘가자’한다. 근데 이게 또 돈벌이가 됐어. 전화 뺏기면 20~30달러 주면서 살려주십쇼 하면 된다. 보위부원들이 다 지우라고 해서 돌려준다. 새로운 거 보려고 하고 없는 것 추구하려는 속성은 막을 수 없어. 북한이 주민 통제 하다하다 막지 못하는 건 2가지. 마약과 한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목도했는데?→사람이 살아가고 나라 운영하는 데서 시스템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구나라는 건 한국 정치 정세 보면서 느낀다. TV 보면 당장 나라가 끝날 거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아무 일 없는 거처럼 사회가 가동된다.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모였다 흩어질 때 경찰 연행이 없고, 시위 후 청소하는 장면 보고 대단한 감명 받았다. 한국이 세계 민주화 과정을 새로운 단계로 선도해서 끌고 나가고 있지 않느냐, 한국이 민주화 선두로 바뀌는 과정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글, ‘홀로코스트는 거짓’ 극우사이트 검색창 영구 삭제

    구글, ‘홀로코스트는 거짓’ 극우사이트 검색창 영구 삭제

    구글 검색창에 '홀로코스트는 진짜 일어났나요?'(Did the Holocaust happen?)라는 문구는 자동생성될 정도로 빈번하게 묻는 검색 내용 중 하나다. 이것을 치면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사이트로 연결된다. 서구사회에서 구글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온 대목이다. 현지 디지털 전문매체인 디지털트렌드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최근 구글이 검색엔진의 새로운 알고리듬을 만들어 유대인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사이트를 지웠다고 보도했다. 자동완성 기능을 통해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는 사이트로 이동하는 구글의 기능은 최근 들어 급격히 비판을 초래해왔다. 실제 위와 같은 검색을 하면 '홀로코스트가 실제 일어나지 않는 이유 10가지' 등 관련 극우나치주의자들의 관련 글이 주루룩 연결돼서 노출된다. 이밖에도 '유대인은 사악한가?(are jews evil), '여성들은 사악한가?'(are women evil), '무슬림들은 못되먹은 이들인가?'(are muslims bad) 등 질문이 구글 검색창에서 자동완성되면서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사례들이다. 구글 대변인은 디지털트렌드와 인터뷰에서 "구글의 알고리듬은 검색 질문에 대해 가장 권위 있으면서도 질 높은 답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돼있다"면서도 "어떤 웹페이지가 가장 올바른 답인지는 우리 앞에 늘 놓여있는 과제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바르지 않거나 권위가 없는 답이 상위에 노출될 때 그것을 수동으로 하나씩 지우기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낫다"면서 "최근 한층 더 진보한 구글의 알고리듬처럼 숙명과도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구언론은 구글의 조치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가디언은 '구글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권위 때문에 구글에서 찾은 정보는 쉽게 사실로 받아들여져 빠르게 퍼진다'면서 '일부 문제가 제기된 부분만 바뀌었을 뿐 유대인, 무슬림 등 여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정보들이 권위있는 내용인양 확인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비디오스타’ 정진운♥예은, 3년간 비밀연애가 가능했던 이유

    ‘비디오스타’ 정진운♥예은, 3년간 비밀연애가 가능했던 이유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정진운, 임슬옹이 절친 케미를 선보인다. 27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25회가 ‘빈’s F4‘ 특집으로 꾸며지는 가운데 국내 최고의 래퍼 빈지노를 비롯해 빈지노의 절친들, 시미 트와이스, 임슬옹, 정진운이 뭉쳤다. 이날 방송에서 정진운은 과거 비디오스타 출연 당시 MC들이 열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열애를 지켜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정진운은 예은과 공개 열애 후 첫 토크쇼로 ’비디오스타‘를 선택하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또한 이날 방송에서 정진운은 과거 전효성에게 “여자친구인 예은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며 예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고백했던 것이 밝혀져 스튜디오를 들썩이게 했다. 임슬옹은 정진운 예은 커플의 공개 열애 전 ’실드 담당‘이었다고 고백했다. 정진운은 예은과 데이트 당시 임슬옹과 함께 만났던 횟수가 100번은 넘을 것이라며 임슬옹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임슬옹은 “정진운을 동생으로 아끼는 마음에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빈지노, 시미 트와이스, 임슬옹, 정진운, 네 남자의 뜨거운 우정이 펼쳐지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빈’s F4‘ 특집은 오는 27일 화요일 오후 8시 3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화랑 이광수, 죽음 이후에도 강렬 존재감 ‘뭉클’

    화랑 이광수, 죽음 이후에도 강렬 존재감 ‘뭉클’

    ‘화랑’ 이광수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26일 방송된 KBS2TV ‘화랑(花郞)’ 3회에서 막문 역으로 특별출연한 이광수가 짧은 등장에도 안방극장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절친한 벗 무명(박서준 분)의 회상과 환영 속 장면에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한 것. 앞서 막문은 무명의 품에 안겨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무명은 막문의 친부 안지공(최원영)의 집에서 지내던 중 무명이 그리워하던 여동생 아로(고아라)를 바라보았다. 무명은 막문이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대화를 나누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막문은 “키가 딱 이쯤이었는데. 진짜 작았어, 예쁘고. 지금쯤 많이 컸겠지? 한 이만큼 컸을까?”라며 “미치게 보고 싶다.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을까?”라고 했었고 이를 떠올린 무명은 가슴 아파했다. 무명은 안지공의 제안으로 세상을 떠난 벗 막문의 인생을 살게 되었고, 막문의 방에 앉아 그의 환영을 보았다. 막문은 “미안하냐? 내 방에서 자려니까, 미안하냐고”라며 무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막문은 “내 누이 예쁘지? 되게 착하지?”라며 피식 웃었고 “약속했다, 너. 지켜준댔다” 라고 말했다. 이에 무명은 “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보고 싶냐”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극중 이광수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시청자들에게 아련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특히 그는 동생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벗 박서준을 향해 슬픔이 서려있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 가슴 아픈 장면을 더욱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한편 이광수가 특별출연한 ‘화랑’은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신라시대 화랑을 본격적으로 그리는 작품으로 1500년 전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누비던 꽃 같은 사내 화랑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 눈부신 성장을 그리는 본격 청춘 사극이다. 매주 월,화요일 오후 10시 방송.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근령, 크리스마스 카드 들고 청와대 찾아”

    “박근령, 크리스마스 카드 들고 청와대 찾아”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근령 씨가 26일 크리스마스 카드와 화분을 들고 청와대를 찾았다. 이날 채널A에 따르면 박근령 씨는 최근 박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보고 고심 끝에 청와대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채널A에 “크리스마스라 포인세티아 화분과 함께 연하장을 써서 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찾은 박근령 씨를 만나지 않았다. 그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청와대 부속실 직원을 만나 편지를 전달했다. 별도로 면담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박지만 씨도 최근 지인들에게 누나가 최순실에게 속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동생 박근령 씨와는 80년대 후반 육영재단 분규를 겪으며 멀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명단공개’ 공유·이동욱, 과거 남다른 인연? 군대 선후임 사이 ‘눈길’

    ‘명단공개’ 공유·이동욱, 과거 남다른 인연? 군대 선후임 사이 ‘눈길’

    배우 공유와 이동욱의 남다른 과거 인연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26일 방송된 tvN ‘명단공개’에서는 최근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에 함께 출연 중인 배우 공유와 이동욱의 남다른 인연이 언급됐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 열린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손을 잡고 에스코트를 해주는 등 남다른 애정을 선보였다. 실제 두 사람은 촬영 장에서도 틈만 나면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등 촬영 현장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찰떡궁합 브로맨스 케미를 보이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바로 군대였다. 이동욱은 공유의 군대 후임으로, 공유 제대 두 달 전 함께 훈련을 받았다. 이 외에도 이동욱과 공유는 같은 미용실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친분이 있던 형과 동생의 사이인 만큼 드라마 속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에 대해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편, tvN 드라마 ‘도깨비’는 매주 금, 토 오후 8시에 방송된다. 사진=tvN ‘명단공개’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11개월 동안 출산 2번-아이 4명 출산한 女

    11개월 사이에 무려 4명의 아이를 순차적으로 출산한 여성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5일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영국 스완지에 사는 베키 존스(30). 그녀는 지난해 2월 딸 마이아를 출산했는데, 불과 11개월 후인 올 1월, 무려 세쌍둥이를 출산하면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기적’은 마이아를 출산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세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시작됐다. 존스는 “마이아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큰 딸인 카일라는 9살이기 때문에, 둘째 딸 마이아에게 또래의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은 그저 한 명의 아이를 더 가지려 했던 건데, 임신한 뒤에야 세쌍둥이가 뱃속에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출산 뒤 모유수유를 하는 기간에는 월경이 멈추고 수정될 확률이 매우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현지 의학계는 존스가 매우 희귀한 케이스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수정이 아닌 자연임신으로 세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해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월 제왕절개를 통해 34주 만에 세상에 나온 세쌍둥이는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며, 다음 달 첫 생일을 앞두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1개월 동안 출산 2번-아이 4명 출산한 女

    11개월 사이에 무려 4명의 아이를 순차적으로 출산한 여성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5일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영국 스완지에 사는 베키 존스(30). 그녀는 지난해 2월 딸 마이아를 출산했는데, 불과 11개월 후인 올 1월, 무려 세쌍둥이를 출산하면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기적’은 마이아를 출산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세쌍둥이를 임신하면서 시작됐다. 존스는 “마이아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큰 딸인 카일라는 9살이기 때문에, 둘째 딸 마이아에게 또래의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은 그저 한 명의 아이를 더 가지려 했던 건데, 임신한 뒤에야 세쌍둥이가 뱃속에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출산 뒤 모유수유를 하는 기간에는 월경이 멈추고 수정될 확률이 매우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현지 의학계는 존스가 매우 희귀한 케이스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공수정이 아닌 자연임신으로 세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100만 분의 1에 불과해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월 제왕절개를 통해 34주 만에 세상에 나온 세쌍둥이는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며, 다음 달 첫 생일을 앞두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2016 SBS 연예대상’ 신동엽 대상 “SBS와 동시 데뷔했는데 26년 만에..”

    ‘2016 SBS 연예대상’ 신동엽 대상 “SBS와 동시 데뷔했는데 26년 만에..”

    ‘2016 SBS 연예대상’에서 신동엽이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25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SBS ‘2016 SAF 연예대상’에서는 신동엽 유재석 김병만 김구라 김국진이 대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신동엽이 대상으로 호명됐다. 신동엽은 “많은 수상자들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저 역시 그렇다. 사실 하나도 기대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인 것 같다. 내심 기대를 하다가도 방송을 선보인지 기간이 짧아서 기대를 접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대상을 안겨준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어머님들이 함께 나왔으면 했는데 어머님들이 한사코 ‘내가 프로그램 하는 이유가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데 혹시라도 초점이 아들 아닌 당신들에게 맞춰질 것을 계속 걱정하시면서 끝까지 고사하셨다”며 “이 트로피와 영광 고스란히 잘 전해드리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신동엽은 “연말 시상식 때 MC석이 익숙하고 편하다. 여러 방송 왔다갔다 하면서 시상식 갔었다”며 “친구, 동생, 형이 상을 받는 모습도 보면서 마음 속으로 ‘대상 받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매년 저 자리에서 사회 보는 것도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을 받으니 저 자리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가 좋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안겼다. 특히 신동엽은 “SBS 개국함과 동시에 데뷔를 했다. SBS가 마치 아빠 같은 마음이 든다”며 “26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칭찬 받은 것 같아서 기쁘고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미운 우리 새끼’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서 좋다. 어머님들과 함께하는 순간 순간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다”고 뜻깊은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제 어머니는 1995년도에 너무나도 일찍, 쉰일곱이라는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저는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으면서도 어떤 헛헛함과 갈증이 있었다”며 “그게 바로 어머니에 대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 때 어머니가 계셨으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늘 어머니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근데 ‘미운 우리 새끼’ 녹화하면서 그 갈증을 굉장히 많이 해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동엽이 서장훈, 한혜진과 함께 MC로 활약 중인 ‘미운 우리 새끼’는 혼기를 놓친 스타들의 일상을 관찰카메라로 들여다보는 형식에 그들의 어머니의 코멘트를 더해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 낸 프로그램이다. 이날 ‘2016 SBS 연예대상’에서 올해의 프로그램상 등 총 7개 부문을 석권하며 대세 예능을 입증했다. 사진=2016 SBS 연예대상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슈퍼맨이 돌아왔다’ 설현 등장..쌍둥이보다 더 좋아한 아빠

    ‘슈퍼맨이 돌아왔다’ 설현 등장..쌍둥이보다 더 좋아한 아빠

    설현이 서언 서준를 위한 산타로 변신했다. 25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AOA 설현은 서언 서준의 일일 산타가 돼 이휘재 집에 방문했다. 설현은 서언 서준 몰래 방에 잠입했고, 산타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서언 서준을 불렀다. 서언 서준은 설현을 알아보지 못한 채 선물에 먼저 반응했지만 곧 설현의 예쁜 외모와 친근한 성격에 반해 금세 친해졌다. 쌍둥이보다 더 좋아한 인물은 바로 이휘재였다. 이휘재는 “어떡해 어떡해”라며 좋아했고 설현과 쌍둥이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웃음을 자아냈다. 이휘재는 아는 동생에게 전화까지 해 “우리 집에 설현왔어. 애들이랑 놀고 있어”라고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카스트로까지…올 해 세상 떠난 명사들

    어김없이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많은 해외명사들이 숨을 거둔 해이기도 하다. 정치, 문학, 예술, 학술, 스포츠계에 길이 남을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생애를 돌아봤다. 1. 데이비드 보위(1947.1.8 ~ 2016.1.10) 본명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 1947년 영국 남부 브릭스톤에서 태어나 1963년부터 가수, 작곡가 겸 배우로 활동했다. 50년 넘게 혁신적 예술가로 추앙됐으며 70년대의 작품들로 특히 인정받았다. 특유의 독창적 음악세계와 무대연출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생전에 1억 4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말년에 세간에 알리지 않은 채 간암으로 투병했으며 1월 10일 마지막 앨범인 ‘블랙스타’가 출시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2. 알란 릭먼(1946.2.21 ~ 2016.1.14) 영국의 배우. 활동 초기엔 왕립연극학교를 나와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고전극과 현대극을 연기했다. 영화 활동으로는 ‘다이 하드’(1988)의 악역 ‘한스 그루버’로 유명세에 올랐고, 노년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역으로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영화 ‘라스푸틴’에서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을 연기해 골든글로브 상을 받았다. 2015년 4월, 19세 때부터 50년간 교제해왔던 영국 노동당 당원인 리마 호튼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나 이듬해 1월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3. 위르켄 힌츠페터(1937.7.6 ~ 2016.1.25)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1963년 처음 공영방송 영상 기자로 경력을 시작해 1967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당시 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취재, 광주의 비극을 외부 세계에 알리면서‘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게 된다. 같은 해 9월엔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판결에 항의하며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19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일시적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면서 “국립 5·18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1월 25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둔 이후 생전 밝힌 뜻에 따라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됐다. 4. 움베르토 에코 (1932.1.5 ~ 2016.2.19)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1956년 논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적 문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문학비평계와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래 현대미학과 문학비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학계 총아로 떠올랐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와 ‘기호학 이론’등 저서로 세계적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기호학·철학·미학·역사학 등 여러 학술 분야에 더불어 9개 국어에 능통한 천재로 알려져 있으며 제임스 조이스 학회 명예 이사, 예일대 방문교수, 볼로냐 대학 교수, 이탈리아 인문학 연구소 소장 등 여러 직위를 역임했다. 또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명문에서도 강의했다. 출판계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980년 최초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이래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 작품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올해 2월 19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5. 앨빈 토플러 (1928.10.3 ~ 2016.6.27)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을 예견한 미국의 미래학자겸 작가. 젊은 시절 생산직 노동자, 백악관 출입기자, 포춘지 노동관계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경영·첨단기술에 대한 지식과 관심사를 넓혀 관련 저술을 시작했다. 뉴욕대학교·마이애미대학교 등 5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IBM등 대형 기업들의 의뢰로 첨단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정부 및 비영리민간단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와 강연을 진행했다. 본인과 같이 작가 겸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결혼해 연구와 저술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월 27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세상을 떠났다. 6. 무하마드 알리 (1942.1.17.~2016.6.3.)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복싱계의 전설. 12세였던 1954년에 아마추어 복서 활동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약 20년 간 활약하며 총 19회에 걸쳐 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으며 통산전적 55승 5패를 기록했다.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기소됐으나 오랜 법정싸움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때문에 3년 5개월의 경력 공백이 발생했지만 곧 재기에 성공, 198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권투뿐만 아니라 흑인민권운동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노년에는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6월 3일 합병증인 호흡기 질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7. 피델 카스트로 (1926.8.13 ~ 2016.11.25) 쿠바 해방을 이끈 혁명가인 동시에 쿠바를 장기간 지배한 독재자. 스페인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입당하며 사회주의자가 됐다.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에 저항,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수감되면서 혁명가로서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2년 뒤 사면돼 멕시코로 망명해 체 게바라 등 중남미 해방운동가를 흡수한 뒤 1956년부터 쿠바에서 전쟁을 재개한 끝에 1959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 내각 책임제의 국무총리로 취임하면서 혁명에 성공한다. 혁명으로 군부정권을 타도했으나 정작 본인도 쿠바를 장기간 독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1965년에는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국가로 만들고 스스로 쿠바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으며 1976년에는 각료 회의 의장 및 국가평의회 의장, 쿠바군 최고 사령관 등을 겸직하며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2006년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권력을 이양하고 2011년 정계에서 공식 은퇴했으며 지난달 25일에 사망이 공식 발표됐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실시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소련 해체 이후 중남미의 사회주의 노선을 이끌면서 사회주의의 대부로 높이 평가 받은 바 있으나 강력한 언론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비난 역시 면할 수 없었다. 카스트로 사망 소식을 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주변의 세상과 인물들에 남긴 거대한 족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 몫일 것”이라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8. 조지 마이클 (1963.6.25 ~2016.12.25) ‘Last Christmas’로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그룹 왬!(Wham!)의 멤버 조지 마이클이 12월 25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 오후에 53년의 짧은 일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조지 마이클은 왬!으로 활동하던 1970년대 ‘Last Christmas’이외에도 ‘Club Tropicana’ 등 히트곡을 냈으며 왬!활동 막바지부터 이후 솔로로 활동하며 ‘Careless Whisper’, ‘Outside’와 같은 곡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약 40년의 활동기간 동안 마이클이 판매한 음반은 1억장 이상에 이르며 지난 1990년 발표된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을 곧 재발매할 예정이었다.고인은 25일 오후 1시 42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죽음을 둘러싼 수상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 2011년에도 폐렴으로 위독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의 홍보담당자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유족들의 사생활이 침해돼선 안 될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는 추가로 발표할 사안이 없다”고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메리 크리스마스” 세상 떠난 아들에게 ‘산타’ 선물한 엄마

    산타클로스가 한 손에는 갓난아기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아이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들고 있다. 산타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흔하고 익숙하기 짝이 없지만, 액자를 안고 있는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액자 속 사진의 주인공은 영국 리버풀에 살았던 루이스라는 이름의 소년이다. 루이스는 세 살이었던 2014년 11월,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원인이 불명확한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루이스의 엄마인 제인 로빈슨(24)은 루이스와 루이스의 쌍둥이인 에단을 위해 생일선물 및 크리스마스 선물을 잔뜩 사다놓았었지만, 결국 루이스는 선물을 받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다. 제인은 “루이스가 떠난 뒤 맞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내게 매우 힘든 날이었다. 아들에게 전하지 못한 장난감 선물들을 보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난 최근, 제인은 루이스를 위해 사 두었던 선물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선물을 받는 다른 아이 역시 루이스처럼 기뻐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스의 쌍둥이인 에단(현재 5세)과 여동생인 이슬라(생후 14개월)와 함께 산타클로스를 찾아갔다. 제인은 산타에게 먼저 떠난 아들을 함께 안아달라고 부탁했고, 산타는 흔쾌히 루이스의 사진을 안고 기념촬영에 응했다. 제인은 “에단 역시 루이스의 사진과 함께 기념촬영 하는 아이디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면서 “루이스가 살아있었다면 산타의 품에 안겨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즐거워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루이스는 웃는 모습이 매우 밝고 예쁜 아이였다. 아이의 환한 미소가 매우 그립다”고 덧붙였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어릴 때 헤어진 형제, 13년 만에 ‘자매’로 재회하다

    어릴 때 헤어졌던 말레이시아 형제가 13년 만에 ‘자매’로 재회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말레이시아키니 등 현지 언론의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니샤 아유브(37)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어릴 때 헤어진 동생 사릴리안트라(34)와 13년 만에 만나는데 성공했다. 니샤와 남동생은 1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각기 다른 친척집에 맡겨졌고, 이후 형제는 연락이 끊겨 만나지 못했다. 13년 만에 재회한 두 형제는 달라진 서로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니샤는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결국 여성으로 성을 전환했는데, 13년 만에 만난 남동생 역시 같은 고민으로 여성이 돼 있었던 것. 니샤는 “동생과 나는 서로 만남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직접 만나고 나서야 서로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트랜스젠더가 되려고 꿈 꾼 것도 아닐 뿐, 그저 그렇게 태어나는 것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니샤는 자신과 동생의 사례처럼, 트랜스젠더는 양육 환경과 무관한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니샤와 동생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슬람 법규인 ‘샤리아’에 따라 최근까지 여성복장을 한 무슬림 남성에게 최장 1년의 실형을 선고해왔다. 하지만 니샤는 트랜스젠더 권익을 위한 운동을 주도해왔고,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2014년 위 법안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그녀는 미국 국무부로부터 올해 초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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