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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배신하지만, 반려견은 다르죠” 팝아티스트 낸시랭

    “사람은 배신하지만, 반려견은 다르죠” 팝아티스트 낸시랭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면서 살 수도 있고 가족끼리도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강아지는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설령 주인이 화가 나서 때리더라도 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는, 그냥 그렇게 주인만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는 생명체잖아요. 근데 그런 존재를 버린다는 건 살인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지난 2006년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암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병원비를 힘들게 모으며 생활하는 감동적인 모습과 함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혼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던 팝아티스트 낸시랭씨(39·본명 박혜령). 그런 그녀가 여러 의혹을 한 몸에 지닌 한 남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켰고 결혼을 통해 그 사랑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에게 다시 돌아온 그녀가 결혼 10개월 만에 남편과의 불화로 최근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7년 전, 본 기자는 낸시랭씨에게 팝아티스트로서의 ‘예술관’을 취재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적 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바쁜 일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3일 ‘반려동물’이란 주제로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그녀 조차 기억 속에 없는 7년 전 ‘인터뷰 고사 사건’에 대한 본 기자의 ‘협박(?)’을 빌미로 결국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인터뷰 요청은 생각보다 쉽게 성사된 듯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다음날 낸시랭은 남편 왕진진과의 부부싸움 도중 남편이 방문을 부수는 등 폭력을 행사 했다는 이유로 남편을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이 사건기사를 접한 데스크가 “낸시랭 인터뷰 건, 쉽지 않을 거 같다”라고 했고 낸시랭 본인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낸시랭씨에게 카톡을 보내 직접 통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내일(5일) 낮에 연락드리겠다’는 답신이 왔다. 하루를 기다려 오후가 되어도 연락이 없자 일정관련 통화를 요청하는 카톡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보냈고 ‘오늘 안으로 전화를 드려도 괜찮을까요’란 메시지가 왔다. 당시 남편 경찰신고 건과 관련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낸시랭씨의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인터뷰에만 집착한 것이 미안했다.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않기로 맘 먹고 기다렸다. 결국 그날 저녁 10시가 넘어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고 최종 일정조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내용의 인터뷰도 아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려견에 대한 인터뷰였기에 남편과의 상황과는 별개로 미루거나 중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자신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일산 킨텍스 KAFA 대한민국축전 국제아트페어 전시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남편과 관련된 것을 제외한 그녀의 반려동물(관), 작품(일)에 대한 질문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Q. 낸시랭씨에 반려견은 어떤 존재인지?하니, 리키는 그냥 제 가족이에요. 그냥 제 남동생들죠. 십 수 년 간 함께 했던 반려견 폴이 오래 전에 죽었지만 폴 이상으로 또 다른 나의 가족이 생긴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옷을 입고 싶다든가 혹은 좋은 가방을 들고 여행을 가고 싶어도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존재예요. (남편보다 소중한가요?) 당연하죠. Q. 반려견 하니와 리키는 어떤 강아지인지?현재 5살이고 애기 때부터 함께 해서 그런지 정말 말을 잘 들어요. 둘 다 우리나라 4대 지랄견이라고 하는 종류에 들어가거든요. 한 마리는 화이트 슈나우저고 다른 한 마리는 코카스파니엘 버프예요. 남들은 굉장히 힘든 이 두 녀석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걱정하시는데, 둘 다 성품이 너무 좋아서 특별히 힘들게 하는 건 없었어요. 특별히 교육 받은 것도 없는데도 제 옆에 딱 붙어서 보행도 잘 하구요. Q. 평소 반려견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는지?제가 다니는 집 앞 동물병원에서 항상 체크를 해요. 애들 병원수첩 보고 예방접종이라든지 뭔가 이상한 증세가 보이면 바로바로 병원 가서 체크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매일 산책 시키는 게 중요한 데 하루 한 시간씩은 못하더라도 하루 10분이라도 꼭 해야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제가 바빠서 매일매일 못 지킨 게 굉장히 미안하죠. 강아지는 주인이 보여주는 세상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라도 단지 내가 강아지들을 예뻐해 하는 것보다 그들을 데리고 함께 산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근래에 깨달았어요. 근래에 좀 힘든 일들이 있어서 하니, 리키를 산책 못 시켜 준 게 괜히 좀 죄책감으로 오기도 해요. Q. 2012년엔 8월엔 반려견 폴이 죽은 모습을 셀카로 찍어 공개해 논란됐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 준다면?폴은... 하아(깊은 한숨). 저희 엄마가 17년 동안 암투병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외동딸이라 저랑 15년을 같이한 반려견 폴은 진짜 제 남동생 같은 그런 존재였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저희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폴도 죽게 됐거든요. 그래서 폴에 대한 아픔 또한 너무 컸어요. 폴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맡겨 놨는데 죽게 된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오열을 했고 지쳐서 눈물이 그쳤을 때 폴과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있는 모습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제가 항상 기록하는 것들을 좋아하고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해서 모든 걸 찍어놓거든요. 이미지 인식이 텍스트보다 좀 더 빠르고 오래가는 편이라서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폴을 기억하고 싶어서 당시 찍었던 거죠.Q. 함께 살고 있는 하니, 리키가 한남동 반려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는데...제가 사는 한남동에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들을 산책 시키는데, 화이트 슈나우저는 한남동에 리키 한 마리 밖에 없어요. 슈나우저는 많은데 대체적으로 블랙이나 그레이만 있어요. 그래서인지 리키를 데리고 지나가면, “아니, 화이트 슈나우저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신기해 해요. 하니, 리키가 둘 다 수컷이에요. 그래서 종자는 달라도 함께 커 왔기 때문에 그냥 형제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둘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겨서 산책을 시키러 나가면 많은 외국인들이 지나가면서 너무 예쁘다고 활짝 웃고 그래요. 우리 하니, 리키가 사람들한테 저렇게 웃음을 줄 수 있다라는 게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행복한 순간을 준 거 잖아요. Q. 낸시랭 하면 ‘어깨 위 고양이(샤넬 코코)’가 상징처럼 떠오르는데, 그 이유와 혹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함께 키운 적이 있는지...코코사넬과는 평상시 대화도 나누고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죠. 육체가 살아있는 제 애완견들은 어떻게 보면 저랑 해외여행을 못 다녔잖아요. 하지만 전시회든, 어딜 놀라가는 간에 코코샤넬은 항상 데리고 다닐 수 있죠. 지금도 제 차안에 있어요. 똥오줌 안 싸고 밥도 안 먹으니깐 사랑만 주면 되죠.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신 이후부터는 진짜 살아있는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었지만 뭔가 코코샤넬한테 배신하는 느낌도 들고, 이해하실 수 없는 저의 예술가로서 정립된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반려견 폴을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폴이 죽고 나선 하니, 리키로 만족해서 일단은 반려견만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Q. 반려동물을 쉽게 유기하는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들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에요. 내가 내 가족을 휴게소나 산 속 어느 곳에 버리는 거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달리 강아지는 좀 특별한 게 있잖아요.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면서 살 수도 있고 가족끼리도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할 수도 있지만 강아지는 그렇지 않잖아요. 강아지는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하물며 주인이 화가 나서 때리더라도 주인이 나가면 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는, 그냥 그렇게 주인만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는 생명체잖아요. 근데 그런 존재를 버린다는 살인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Q. 유기견을 입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유기견이라고 하면 왠지 고아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단지 동정심이나 불쌍해서 키운다라는 식의 마음으로 입양하면 절대 안 될 거 같아요. 또 입양하더라 물고 난리치고 정신빠지게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할 거예요. 자신이 직접 키운 개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유기견을 입양했을 때, 내가 알 수 없는 모든 리스크들을 신중히 생각하고 그래도 내가 끝까지 얘들을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된 후 키워야 하는 거예요. Q. 올 한 해 많은 일들을 겪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제 지도교수님이셨던 (고)이두식 교수님의 철학이 있었어요. ‘아티스트는 매년 개인전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그 분 말씀대로 대학원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지난 3년 동안은 제가 사기를 당한 것도 있고 힘든 일들을 많이 겪어 개인전을 못해서 많이 속상했어요. 어쨌든 올해 12월 7일에 낸시랭의 개인전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작가로서 열작(熱作)하고 있으니깐 많이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반려동물들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여든에 40대 아들 뒷바라지… 노인 빈곤 부르는 청년 빈곤

    여든에 40대 아들 뒷바라지… 노인 빈곤 부르는 청년 빈곤

    # “한 달에 많이 벌 때는 300만원도 벌었지.” 서울 강북에서 둘째 아들과 함께 사는 유모(80)씨는 수도 배관공으로 일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금세 풀이 죽은 표정으로 “이놈의 몸뚱아리가 요새는 말을 안 들어”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4년 전 뇌졸중 진단을 받은 뒤로 마비 증세가 오면서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푸념이다. 아내는 17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46)은 어릴 때 똑똑하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까지 했는데도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의욕을 많이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아들은 끝내 배우자를 구하지 못했다. 그렇게 집에 눌러앉았다. 유씨는 14일 “매달 나오는 노인연금과 큰아들이 보내주는 용돈 10만원 가지고 근근이 버틴다”면서 “용돈을 더 받으면 좋겠지만 큰아들도 손주들 공부시킨다고 빠듯한데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 일찍이 남편과 사별한 박모(69·여)씨는 두 아들을 힘겹게 키웠다. 평생 공사장에서 고된 일을 해 허리가 90도 가까이 꺾였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경기 의정부에 전용면적 84㎡(약 25평) 규모의 아파트도 샀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을 했지만 안정된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큰아들(42)이 뒤늦게 장가를 가면서 박씨는 둘째 아들(39)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오다시피 했다. 며느리가 “어머니, 시동생과 한 집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둘째 아들과 함께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 나간다. 일감이 없는 날에는 파출부 일을 한다. 박씨는 “자식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한 죽을 때까지 일만 할 팔자”라고 하소연했다.취업에 실패하고 부모의 품에 사는 ‘캥거루족’이 고령화되면서 부모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청년 빈곤이 부모 세대의 빈곤을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청년빈곤의 다차원적 특성과 정책대응 방안’(2017)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가처분소득 기준, 농·어가 제외)은 46.7%인 반면, 청년(19~34세)의 빈곤율은 7.6%로 나타났다. 노인 빈곤율은 전체 빈곤율(13.8%)에 비해 32.9% 포인트 높은 반면, 청년 빈곤율은 6.2% 포인트 낮았다. 빈곤율은 중위소득의 절반(빈곤선)을 밑도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이 수치에 따르면 노인 빈곤율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상대적으로 청년 빈곤율은 아직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이 많을수록 청년 빈곤율이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맹점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부모 동거 여부에 따라 청년 빈곤율을 계산한 결과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빈곤율(2016)은 5.7%인 반면, 따로 떨어져 사는 청년 빈곤율은 10.1%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은 부모 소득을 공유하면서 빈곤율이 낮게 나온 것이다. 김문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 빈곤이 지표상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부모한테 주거, 경제력을 의존하는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부모들도 덩달아 노후 빈곤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이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지난달 10일부터 14일까지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14명(단기계약직, 취업준비생, 취업포기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학자금 등 채무가 있나’라는 질문에 42.3%(64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채 규모는 ‘100만~500만원 미만’이 12.4%(187명)로 가장 많았지만, ‘2000만원 이상’이라는 응답자도 6.3%(96명)나 됐다. ‘부모의 노후 대비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소일거리는 해야 한다”는 답변이 35.9%(544명)로 가장 높았다. “부모 건강 등의 이유로 자녀가 부양해야 한다”는 답변도 8.0%(121명) 나왔다. ‘취업 후 부모에게 용돈을 드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월 20만~30만원을 드릴 계획”이라는 답변(23.7%, 358명)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될 시기에도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가정이 적지 않다. 최모(78·여)씨는 서울 용산 미군 부대에서 건설 잡부로 일하다 기지 이전으로 경기 평택으로 가게 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함께 평택에 갔다. 며느리는 두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에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최씨가 아들을 따라간 것이다. 최씨는 평택 변두리의 다가구 주택에서 세 들어 살며 아들이 출근하면 인근 양계장에 가서 허드렛일을 한다. 최씨는 “다른 친구들은 모여서 등산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는데 나는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자녀의 부모 의존이 심해지면 가족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취업을 못 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가족 간 갈등을 꼽은 답변(23.2%, 351명)이 불안·압박감 등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집에 있는 모습을 싫어하셔서 아침 일찍 집을 나와야 한다”면서 “갈수록 잔소리가 늘어간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너한테 들어간 돈이 지금까지 얼마인 줄 아느냐”, “너 독립해서 단 둘이 살면 관리비, 생활비 적게 드는 좁은 집으로 옮길 수 있다”면서 빨리 취직하라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젊은층의 취업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으니 부모님 세대도 부담이 될 것 같다”면서 “부모님 세대가 안쓰럽다”고 했다. 다만 그는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이유로 결혼 전까지 독립할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청년 빈곤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는 부모 세대의 빈곤으로 옮아 가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아들과 재수 학원에 다니는 딸을 둔 이모(54)씨는 자녀한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500만원 넘게 들자 결국 적금을 해지했다. 20년 된 가전제품도 망가지기 전까지는 버리지 않고, 외식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허리띠 졸라 모아 둔 적금을 자녀의 앞날을 위해 깬 것이다. 이씨는 “자녀들이 독립하면 손 떼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식이 힘들어 보이면 또 도와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에 속한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노후는 건사할 수 있었는데 자녀들의 대학, 취업 지원에 노후 자산을 쏟아부으면서 힘들어졌다”며 “빈곤 노인층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복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하나뿐인 내편’ 유이, 최수종 앞에서 오열 “전 엄마가 싫어요”

    ‘하나뿐인 내편’ 유이, 최수종 앞에서 오열 “전 엄마가 싫어요”

    ‘하나뿐인 내편’ 유이가 최수종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14일 오후 방송된 KBS2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는 김도란(유이 분)이 소양자(임예진 분)의 뻔뻔한 태도에 울분을 터뜨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도란은 소양자가 자신의 집에 쳐들어오자 집밖을 뛰어나왔고 이를 본 강수일(최수종 분)은 김도란에게 달려갔다. 도란은 “전 엄마가 싫어요. 미워요. 엄마가 저한테 했던 것처럼 저도 엄마 쫓아낼 거예요”라며 울부짖었다. 이어 “엄마가 저 친딸 아니라고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라면서 그렇게 저 무일푼으로 쫓아내놓고 사기 당해서 집까지 날려먹고 오갈 데 없으니까 저한테 왔어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찾아올 수 있는지 그러면서 엄마랑 동생 먹여 살리래요”라고 말했다. 도란은 “근데 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 제가 나쁜 거예요?”라고 묻자, 강수일은 “아니다. 저도 김비서님 마음이랑 똑같았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김비서님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해서 그냥 어머니 새로운 곳 생길 때까지만 해도 지내게 하는 건 어떠냐“며 ”죄송하다. 제가 괜한 얘기를 했다. 당장 밉고 보기 싫다고 어머님 내보내고 김비서님 나중에 더 속상하고 후회할 일 생길까봐 그런다“고 말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 최고 지도부 일가의 재테크 방법은?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 최고 지도부 일가의 재테크 방법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전·현직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가족들이 홍콩에 고급주택을 포함해 다량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10일 홍콩 빈과일보(蘋果日報)에 따르면 시 주석의 큰누나 치차오차오(齊橋橋)와 이복 생질녀 장옌난(張燕南)은 1990년대부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별도의 부동산 회사를 세워 홍콩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이들이 투자한 부동산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 홍콩의 고급주택 지역인 리펄스베이(Repulse Bay·淺水灣)에 있는 4층짜리 단독주택이다. 2009년 1억 5000만 홍콩달러(약 217억원)에 사들인 이 주택은 홍콩 부동산가격 급등에 힘입어 100%나 치솟아 시가가 3억 홍콩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분에 9년 만에 무려 1억 5000만 홍콩달러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풍광이 수려하고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고급주택은 시 주석 일가가 홍콩에 들를 때마다 머무르곤 한다고 빈과일보가 전했다. 시 주석 일가가 여러 부동산 회사의 명의를 사용해 사들인 홍콩의 부동산은 리펄스 베이 고급주택을 비롯해 모두 여덟채에 이른다. 이 여덟채의 시가를 합치면 모두 6억 4400만 홍콩달러로 추산된다. 치차오차오와 장옌난 일가는 한때 홍콩에 거주했다가 현재 호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당총서기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1월 블룸버그통신이 치차오차오와 덩자구이(鄧家貴) 부부의 재산이 엄청나다는 폭로가 나오자 반부패를 주도해온 시 주석은 큰 정치적 부담감을 느꼈다. 이에 시 주석의 어머니 치신(齊心)은 가족회의를 열고 “시 주석과의 관계를 이용해 어떠한 사업 활동이나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치차오차오 부부는 시 주석이 당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2007년부터 막대한 재산을 긁어 모았다. 블룸버그는 치차오차오 부부가 희토류와 휴대전화 사업 분야에서 3억 7600만 달러(약 43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4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폭로한 조세 회피자 리스트인 ‘파나마 페이퍼’에는 덩자구이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후 치차오차오 부부는 시 주석의 권력가도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산을 급하게 처분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부동산과 광산을 중심으로 10개 회사에 투자했던 자산을 내다판 것으로 전해졌다. 빈과일보는 “중국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의 월급은 1만 위안(약 164만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영향력이 가족을 위해 가져온 ‘치부(致富) 효과’는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부동산 투자는 시 주석 일가에 그치지 않는다. 빈과일보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딸 리첸신(栗潛心)도 2013년 1억 1000만 홍콩달러의 고급주택을 홍콩에서 사들여 남편 차이화보(蔡華波)와 함께 살고 있다. 공산당 서열 4위의 왕양(汪洋)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정협) 주석의 딸 왕시사(汪溪沙)도 2010년 3600만 홍콩달러에 이르는 홍콩 주택 2채를 사들였다. 홍콩 거주증을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2년 뒤 그중 한 채를 처분해 222만 홍콩달러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주석의 오촌조카인 후이스(胡翼時)는 일찍 재테크에 눈 떠 홍콩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홍콩 거주증을 취득하는 그는 2009년 홍콩의 고급주택 등을 4640만 홍콩달러에 사들였다. 현재 그 시세가 7600만 홍콩달러에 달해 64%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후이스가 주주로 있는 부동산 회사는 2013년 은행 대출을 받아 홍콩 도심의 호텔을 4억 8800만 홍콩달러에 사들였다가 올해 8억 1000만 홍콩달러에 되팔았다. 5년 만에 무려 3억 2200만 홍콩달러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정규대학을 다니지 않고 상하이시 국제관광직업기술학교를 졸업한 후이스는 2001년 상하이훙이(鴻翼)광고공사를 설립한 뒤 이듬해 양광(陽光)위성방송과 광고계약을 따내 그해 자산을 600여만 위안으로 불려 종잣돈을 마련했다. 단순히 학력만을 놓고 보면 그가 광고업계에 발붙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빈과일보가 지적했다. 자칭린(賈慶林) 전 정협 주석의 일가는 홍콩 부동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그의 아내 린여우팡(林幼芳)과 딸 자장(賈薔)은 일찍부터 ‘린칭’(林靑)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93년 385만 홍콩달러에 사들인 고급주택을 2001년 되팔아 153만 홍콩달러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10여년이 지난 2016년에도 주택 3778만 홍콩달러를 주고 사들인 주택이 현재 5860만 위안을 호가하고 있어 55%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자칭린 전 정협 주석의 외손녀 리쯔단(李紫丹)은 홍콩 부동산업계의 ‘큰 손’으로 불린다. 2015년 당시 나이 24살이던 그녀는 무려 3억 8700만 홍콩달러짜리 홍콩의 고급주택을 사들였다. 이 주택 구매 당시 담보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전해져 홍콩 부동산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장가오리(張高麗) 전 부총리의 딸 장샤오옌(張曉燕)은 홍콩 기업가 리셴이(李賢義) 신이(信義)유리 회장의 아들 리성발(李聖潑)과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홍콩과 중국 본토 두 곳에서 사업을 벌인 이들 부부와 그 일가는 홍콩에서 무려 20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해 이들 주택의 평가액이 8억 5700만 홍콩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민 총리’로 불려온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일가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2년 10월 기업 공시와 감독 당국의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1992~2012년 20년 동안 그의 어머니, 아들과 딸, 동생, 처남 등의 명의로 등록된 자산이 최소 27억 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원 전 총리가 권력 핵심에 있던 이 기간에 그의 일가 재산이 크게 늘었다며 투자처는 은행과 귀금속, 리조트, 통신회사, 인프라 프로젝트, 부동산 등 실로 다양하게 걸쳐 있다고 NYT가 전했다. 그는 1992년부터 공산당중앙서기처 서기, 국무원 부총리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총리로 재직했다. 원 전 총리는 당시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채운 적이 없다”는 공개 편지를 보내 NYT의 부정축재 보도를 부인했지만 결국 사위와 아들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 전 총리의 딸 원루춘(溫如春)이 2006~2008년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에서 컨설팅비로 받은 180만 달러의 입금처가 남편 류춘항(劉春航의 페이퍼컴퍼니인 풀마크 컨설턴트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영국 케임브리지대 금융학박사 출신인 류춘항은 중국은행보험업관리감독위원회 통계부 주임과 연구국장으로 재직하며 인민은행장 물망에도 오른 금융계 거물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 가족의 홍콩 부동산 투자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 강화로 ‘홍콩의 중국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시사평론가 류샤오(劉紹)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홍콩의 중국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더는 홍콩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지 않게 됐다”며 “지금은 투자 방향을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회삿돈 23억 횡령하고 위장 폐업한 조선업 하청 대표 징역 4년

    법원이 회삿돈 23억원을 횡령하고, 근로자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회사를 위장 폐업한 사업주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울산지법 형사12부(부장 이동식)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58)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또 사기와 임금채권보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B(46)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2006년부터 울산 한 조선소에서 선박 도장을 하는 하청업체를 운영하면서 총무로 고용한 사촌 동생인 B(46)씨에게 회계와 인력관리 등 회사 운영 전반을 맡겼다. A씨는 원청업체에서 받은 기성금 일부를 가로채고자 2007년 7월 B씨를 시켜 500만원을 개인 계좌로 송금하게 하는 등 2012년까지 73회에 걸쳐 총 23억 7000만원 상당을 횡령했다. A씨 회사는 조선업 경기 침체와 A씨의 방만한 경영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이에 A씨와 B씨는 위장 폐업으로 근로자 임금과 퇴직금 등 지급채무를 정리한 뒤 명의를 바꿔 선박 도장업체를 다시 운영하기로 했다. A씨 등은 2016년 5월쯤 회사를 폐업하는 절차를 밟는 동시에 B씨를 사업주로 하는 또 다른 회사를 설립했다. 새로 설립한 업체는 폐업한 업체에 있던 근로자 대부분을 계속 고용하고, 사무실·집기·자동차와 전화번호까지 폐업 업체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사실상 똑같은 회사인 셈이다. 그런데도 A씨 등은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별도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회사를 폐업했다’고 허위 보고한 뒤 근로자 39명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체당금 3억원가량을 받도록 했다. 체당금은 도산업체 근로자가 사업주로부터 임금과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할 때 국가가 대신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A씨는 이밖에 퇴직 근로자 2명의 임금과 퇴직금 총 42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도 기소됐다. A씨는 재판에서 “회사를 위장 폐업한 적이 없고, 체당금 지급 신청 과정에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적이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동일한 주소를 사업장으로 등록하고 집기와 전화번호 등을 인계해 사용한 점, 고용이 승계된 35명 근로자 근속연수가 그대로 인정된 점, 조선소에서 하도급받은 일을 단절 없이 승계해 작업한 점, B씨는 명목상 대표에 불과하고 A씨가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점 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외형상 회사를 폐업 처리했을 뿐 실제로는 개인사업체 형태로 계속 사업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 폐업과 설립 등 일련의 과정은 근로자들 체불임금을 해결하기 위한 불법적인 수단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한해 101번 무대 오르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끔 자유시간 있었으면 하죠”

    한해 101번 무대 오르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끔 자유시간 있었으면 하죠”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파보 예르비(56)는 올 한해 전 세계 포디움에 총 몇번을 오를까. 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올 한해 공연 일정은 10월중순 이후 27개 일정을 포함해 모두 101회다. 3.5일에 한번 이상 무대에 올랐으니 식상한 비유이지만 ‘살인적인’ 일정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그는 베토벤 사이클 등을 완성하며 호평을 받았던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에서는 2004년부터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고, 프랑크프루트 방송교향악단 명예 지휘자, 신시내티 심포니 명예 음악감독, NHK 심포니 수석 지휘자까지 겸하고 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는 2019~2020시즌부터 활동한다. 한해 100회 이상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너무 큰 무리는 아닐까. 예르비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가끔 자유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음악을 놓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연마다 각 악단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을 선별한다”며 각 오케스트라의 색깔과 특징을 정확히 꿰뚫고 있음도 드러냈다.그는 올해 한국을 두차례 찾는다. 먼저 11월 3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과 내한하는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말러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을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협연곡과 메인 프로그램 모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다. 그가 생각하는 말러 5번에 대한 답변에서 당일 무대의 분위기를 미리 예상해볼 수도 있겠다. 부인 알마에 대한 사랑고백이면서도 일부 추모 공연 등에서 추도곡으로도 쓰인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에 대해 그는 “대부분 굉장히 낭만적이고 느리게 연주하곤 하지만 최근에는 알마에게 전하는 러브레터로 인식되면서 보다 감정적이고 부드러운 해석이 많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말러가 원래 작곡한 의도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이어 12월 19일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내한하는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협연하고 메인 프로그램으로 슈베르트 9번 교향곡 ‘그레이트’를 연주한다. 그는 이번 공연을 포함해 올해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총 39회 공연을 한다. 올해 두차례 내한에서는 스타 여성 솔리스트들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 힐러리 한에 대해 “둘 다 음악이 살아있도록 만드는 해석에 능수능란한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예르비는 거장 지휘자 반열에 오른 아버지 네메 예르비와 남동생 크리스티안과 함께 고국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집안 출신이다. 가문의 이름을 건 음악축제는 에스토니아의 대표적 여름 페스티벌로도 꼽힌다. 그는 “아버지에게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면서 “그는 제가 음악가로 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네메 예르비는 올해 그라모폰어워드 공로상을 수상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21) 종합건축자재기업에서 실리콘 등 영역확장에 나선 정몽진 KCC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21) 종합건축자재기업에서 실리콘 등 영역확장에 나선 정몽진 KCC회장

    창업주, 슬레이트 공장에서 오늘의 KCC그룹 일궈정몽진 회장, 친화력 좋고 주식투자에 귀재정몽익·몽열 사장도 KCC와 건설에서 특화경영 정상영(82)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정 명예회장은 형제들과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다. 크고 작은 기업체를 물려받은 가족이나 친지들과는 달리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지금의 KCC를 일궈 냈다. 창업 당시 정주영 회장은 막내동생인 정 명예회장에게 “기왕 사업을 시작하려면 국가에도 도움이 되면서 장차 크게 성장할 사업을 해 보라”며 본인 회사에서 쓰던 자재 창고를 내줬다. 창고 건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정 명예회장은 슬레이트(지붕에 사용되는 시멘트판)를 만들어 팔기로 결심했다. 동생의 사업 구상에 큰형인 정주영 회장이 흔쾌히 동의해 KCC 역사가 시작됐다. 용산고를 졸업한 뒤 동국대 법대를 다니다 창업을 결심한 ‘22세의 대학생’ 정상영씨는 직접 자재를 나르고 슬레이트를 찍어내며 온몸으로 회사를 키워냈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설립해 유기 도료 사업에 진출한 이후 석고보드, 단열재, 유리, 창호 등 유무기 화학을 아우르며 국내 최고의 종합 건축자재 기업으로 키웠다.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경리팀에서 근무하던 조은주(82)씨와 결혼해 아들 셋을 뒀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3형제에게 사업을 맡겼다. 실제로 KCC그룹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아들 3형제에게 사실상 2세 승계 작업이 완료됐다.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인 KCC와 관련해 이들 4부자가 모두 37.35%의 주식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10월 1일 현재 정 명예회장은 5.05%, 정몽진 회장 18.22%, 정몽익 사장 8.80%, 정몽열 사장 5.28%를 보유 중이다.  장남인 정몽진(58) 회장은 고려화학 입사 후 9년 만인 2000년부터 회장을 맡아 본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 국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뒤 1991년부터 고려화학 이사로 재직했다.  KCC의 사업영역은 크게 건자재부문과 도료부문으로 나뉜다. 건자재부문에서는 내외장재와 판유리, 보온단열재, 폴리염화비닐(PVC) 창호재·바닥재 등을 생산하고, 도료부문은 자동차와 선박 등에 쓰이는 도료를 만든다. KCC는 한때 전방산업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주춤했지만 지난해 3조 4264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최근 4년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정 회장은 KCC를 국내 1위의 건자재기업으로 일궈냈지만 국내에서 성장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해외법인 신규 설립을 확대하고, 현지화 노력을 통해 해외로 시장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중국 충칭(重慶) 공장을 완공, 중국에 4번째 생산 거점을 만들었다. 해외법인 수로 따지면 KCC의 국외 거점은 10곳에 달한다. 지난해 7월 발표된 코팅스 월드(Coatings World) 자료에 따르면 KCC는 2016년 기준 세계 도료 업체 15위에 올라 있다.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 대부분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2곳과 인도 1곳에 이어 4위다.  정 회장은 KCC의 새 먹거리로 실리콘에 사활을 걸고 있다. KCC는 지난 9월 13일 미 글로벌 실리콘 제조업체 모멘티브 퍼포먼스 머티리얼즈(이하 모멘티브)와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금액은 30억 달러(약 3조 5000억원)에 달한다. KCC컨소시엄의 모멘티브 인수는 역대 한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거래 중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 달러),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49억 달러)에 이어 세번째로 큰 거래다. 모멘티브 인수가 완료되면 KCC는 글로벌 2위 실리콘 제조업체로 우뚝 서며 미국의 다우듀폰, 독일의 바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다.  정 회장은 고려대 재학 시절 ‘막걸리 시범 조교’로 활약할 정도로 친화력이 좋다. 주식투자 고수로 폭넓은 투자분야 인맥을 잘 활용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투자실력은 ‘한국의 워런버핏’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제일모직(삼성물산)과 만도 지분에 투자해 수천억원의 이득을 봤다. 2015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통합 삼성물산 출범을 하는데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라는 변수로 난관에 봉착하자 정 회장에게 ‘백기사’ 요청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정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899여만주를 6700여억 원에 매입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에 큰 역할을 했다.  현대가의 ‘몽’자 돌림 사촌들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 등과 3개월마다 돌아가며 점심을 사는 정기모임을 하며 우애를 다진다. 모두 책을 들고 와서 서로에게 선물한다.  홍은진(50)씨와 음악을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평소 음악을 즐기던 정 회장은 사촌형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씨를 만났다. 홍씨는 빙그레의 전신 옛 대일유업 사장의 딸이다. 정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뒀다. 차남인 정몽익(56) 사장도 형 못지않은 인텔리다. 용산고를 나온 뒤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했으며 조지워싱턴대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당시 ㈜금강에 입사해 ㈜금강고려화학 부사장과 KCC 총괄 부사장을 거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06년 2월부터 KCC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정 사장은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의 확장을 펼치고 있다. 2011년 ‘홈씨씨인테리어’라는 브랜드로 홈인테리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설계부터 시공, A/S까지 KCC가 직접 책임지는 토털 인테리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 사장은 최은정(55)씨와 결혼했지만 지금은 별거중이다. 자녀는 3남 2녀. 3남인 정몽열(54) KCC건설 사장은 경복고와 미국 FDU대를 졸업한 뒤 1989년 26세의 나이에 고려화학에 입사했다. 2003년 사장으로 승진한 정 사장은 주택사업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KCC건설은 건설업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 지난해 2010년대 최고인 매출 1조 3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정 사장은 중소기업 사장의 딸인 이수잔(48)씨와 혼인해 1남 1녀를 뒀다. 큰 동서와 마찬가지로 이씨도 서울대에서 예술가(미술 전공)의 꿈을 키웠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나 혼자 산다’ 기안84X김충재 건강검진, 긴장+초조 검진 결과는...

    ‘나 혼자 산다’ 기안84X김충재 건강검진, 긴장+초조 검진 결과는...

    ‘나 혼자 산다’ 기안84가 오장육부를 검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는 12일 방송되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는 기안84가 건강검진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 기안84는 미대 동생 김충재와 병원을 찾아 초음파부터 대장내시경 등 검진을 받았다. 그는 아침부터 대장내시경 약을 먹고 화장실을 여러 차례 다녀온 탓에 초췌한 몰골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또 기안84와 김충재는 본격적인 건강검진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신체검사부터 경쟁의식을 불태워 웃음을 자아냈다. 키부터 몸무게, 급기야 폐 기능까지 서로의 결과의 날을 세우는 두 사람은 듣도 보도 못한 ‘건강배틀’을 성사시켜 시청자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전할 예정이다. 기안84는 이날 한 단계 한 단계 검진을 진행할수록 자신의 평소 생활습관을 되돌아보며 폭풍 걱정을 해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무신경의 아이콘’ 기안84의 마음마저도 졸이게 만든 건강검진의 결과는 오는 12일 밤 11시 15분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공개된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천재시인 이상의 삶 뒤편, 민족주의자 이상을 만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천재시인 이상의 삶 뒤편, 민족주의자 이상을 만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3회 서울의 문학2(이상의 날개) 편이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를 강타한 지난 6일 빗속에서 진행됐다. 전날 밤새 비가 내린 데다 당일 오전 내내 만만찮은 강수량이 예보된 상태여서 행사 취소 여부를 묻는 문의가 쇄도했다. 이 와중에 “고&고!”를 외친 데는 세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첫째 서울신문사 측의 과감한 투자로 도입한 고가의 오디오가이드시스템이 효자 역할을 해줄 것이고, 둘째 지난해 25회와 올해 22회까지 47회를 진행했지만 단 한 번도 날씨가 말썽을 피운 적이 없다는 ‘근거 있는’ 믿음이 작용했다. 셋째 만약의 경우에 대비, 통의동 보안여관과 지난달 문을연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등 실내에서 비를 피한다는 나름대로의 대비책도 세워놨다.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40여명이 궂은 날씨에 아랑곳없이 모여들었다. ‘가을비 우산 속에’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흔적과 작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오히려 즐겼다. 이날 오전 10시 사직동 주민센터 정자 앞을 출발한 투어단은 사직동 이상의 출생지~통인동 이상의 집~통의동 보안여관~경복궁 조선총독부 터~이상이 다녔던 수송동 옛 보성고등학교 터~오감도가 실린 옛 조선중앙일보 터~동헌필방~옛 화신백화점 터~소공동 옛 낙랑파라 터~날개에 등장하는 옛 미쓰코시백화점 터를 순례했다. 강영진 해설사의 노련한 해설이 돋보였다. 형형색색의 우산과 비옷차림으로 시작한 답사는 맑게 갠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산뜻하게 마무리됐다. 시인 김지하는 “이상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상은 허상이다. 이상은 단순한 경성의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다. 난해한 작품과 여성편력, 괴짜 행동을 통해 본색을 감췄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상(李箱)이라는 이상(異常)한 필명 뒤에 숨은 김해경이 품은 민족의식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이상은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은 1910년 8월 29일 서울 사직동 165번지에서 태어나 식민통치가 절정을 이룬 1937년 4월 17일 일본 도쿄의 병원에서 27살의 짧은 여정을 마감했다. 그의 삶 궤적은 식민지 서막에서 시작돼 한복판에서 끝났지만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자각이 강했다. 부인 변동림(화가 김환기와 재혼 후 김향안으로 개명)에 따르면 이상은 일제에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했으며, 한복을 즐겨 입었다. 이상을 중심으로 ‘좌본웅 우태원’이라고 할만한 ‘절친’ 소설가 박태원이 남긴 ‘이상의 편모’라는 회상기에서도 이상은 한복차림으로 나온다. 변동림은 자신과 첫 만남에 이상이 밤색 두루마기를 입고 나왔다고 회상했다. 혜화동에서 살던 시절 한복을 입으면 일경에 불심검문당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불편해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봉두난발이나 파이프를 입에 문 데카당스한 모습과는 다르다. 기이한 행적이나 극단적 일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유학 중이던 이상은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구인회 멤버이자 납북시인 김기림에 따르면 이상의 하숙집 책상 위에 불온 책자가 놓여 있었고, 이상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사용했고, 노트에 불온한 내용을 적어놨다는 게 좌익사상범으로 몰린 이유였다. 풀려난 지 한 달여 만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폐결핵 환자에게 감방의 냉기는 결정적 사인이었다.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이상 또한 민족주의자로서 최후를 맞았다. 이상은 단순한 불령선인(불량한 조선인)이 아니라 민족 저항 작가였다. 이상은 건축가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졸업,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면서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당선되기도 했다. 1926년 경성고공에 입학, 1933년 총독부를 그만둘 때까지 7년 동안 촉망받는 건축가로 살았다. ‘이상한 가역반응’, ‘조감도’,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시의 제목이나 내용은 건축가의 삶과 경험이 묻어 있다. 돌연변이의 이단아로 살아가기 전까지 세상이 부러워하는 멀쩡한 건축가였다. 그러나 건축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상의 대안이었다. “난 말야,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 어릴 때부터 그림에 미쳐 있었으니까.” 이상의 경성고공 입학기에는 그림에 대한 갈망이 나타나 있다. 보성고등학교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할 당시 미술교사가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었다. 서촌 자락 고희동의 집과 이상의 집은 지척에 있었다. 이상이 남긴 건축물은 없다. 실명이 거의 쓰이지 않는 이상의 대표작 ‘날개’에 등장하는 단 2개의 고유지명은 경성역(서울역)과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이다. 이 중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은 날개의 무대로 쓰였다. 연애담이나 퇴폐적인 일상이 아니라 자신을 옥죄는 일제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의 몸부림이 담겼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날개야 다시 돋아라./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라고 썼다. 이상은 표면적으로는 1920~30년대 경성 모더니즘의 절정을 누린 전형적인 ‘아스팔트 키드’였다. 여러 편의 문제작 중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종생기’에서 “나는 벼를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건축가 출신답게 경성이라는 도시 공간 속 건축물을 작품소재로 삼았다. 그가 전성기를 보낸 1920~30년대 경성은 조선총독부, 경성역, 조선은행(한국은행), 경성부청(서울시청) 같은 근대건축의 아성이었다. 철골과 시멘트 화강암으로 이뤄진 현대성의 거대한 상징물이 건축물이었다. 인간 이상을 이야기할 때 화가 구본웅과 소설가 박태원을 빠뜨릴 수 없다. 세 사람의 관계항이 이상의 인생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다. 세 사람은 동행했다. 사직동에서 태어나 통인동에서 자란 이상과 필운동에서 나고 자란 구본웅은 필생의 동반자였다. ‘꼽추 화가’와 ‘폐병쟁이 괴짜 시인’으로 유명했다. 이상이라는 필명은 구본웅이 선물한 그림도구가 든 상자에서 비롯됐다. 이상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아호에 ‘상자 상(箱)’자를 넣겠다고 약속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은 “이(李)씨 성을 붙이면 나름대로 묘한 여운도 있어 좋겠다”라는 두 사람의 의견일치에 따라 탄생했다. 기생 금홍이를 만난 것도, 다방 제비를 연 것도, 이상에게 창문사 직장을 알선한 것도, 파이프를 문 이상의 초상화 ‘우인의 초상’을 그려준 사람도 모두 구본웅이었다. 이상의 최후를 지킨 부인 변동림도 구본웅 계모의 동생이었다. 나이 어린 이모를 4살 아래 친구에게 소개한 것이다. 이상이 남긴 ‘차(且)8씨의 출발’은 구본웅에게 바친 헌시였다. “사실 차8씨는 자발적으로 발광하였다.”에서 차8은 구본웅의 성씨 구(具)자를 파자한 것이다. 구보 박태원과도 붙어살다시피 했다. 구보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됐을 때, 이상은 하융이라는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다. 다방과 술집을 전전하면서 인생과 문학예술을 논했다. 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이때 완성됐다. 이상은 구보의 결혼피로연 방명록 첫 장에 ‘면회거절 절대반대’라는 호소문을 남겼다. 언론인이자 작가 조용만은 ‘구인회 만들 무렵’에서 “이상과 구보는 짝패였다”고 기록했다. 살아생전의 이상을 “우리가 가진 가장 뛰어난 근대파 시인”이라 평했고, 사후에는 “우리가 가졌던 황홀한 천재”라고 극찬했던 시인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으로 한국문학이 50년 후퇴했다고 아쉬워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일정:강동(광나루길) ●일시:10월 13일(토) 오전 10~12시 ●집결장소: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 앞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살림하는 남자들2’ 김승현 동생, 요가선생님에 반했나? ‘요가 삼매경’

    ‘살림하는 남자들2’ 김승현 동생, 요가선생님에 반했나? ‘요가 삼매경’

    ‘살림하는 남자들2’ 김승현 동생이 난데없는 요가 삼매경에 빠졌다. 10일 방송되는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에서는 김승현의 동생인 김승환이 요가학원을 찾아 어머니 또래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모습이 방송된다. 앞서 김승환은 요가를 다닌다는 어머니에게 “요가가 무슨 운동이 되냐”면서 얄밉게 핀잔을 날렸지만 정작 요가 학원을 다녀온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어머니의 보디가드 겸 같이 요가를 배우겠다고 조르는가 하면 후줄근한 평소 모습과 달리 멀쑥한 옷차림에 청결한 자기관리까지 완벽하게 ‘깔끔남’으로 변신하는 등 외모에 바짝 신경쓰는 모습을 엿보였던 것. 이미 어려운 요가동작도 척척 해내는 모범수강생 김승환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어쩌다가 갑자기 요가삼매경에 빠진 것인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처럼 확 달라진 둘째 아들의 변화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리라는 촉이 발동했다. 노총각 형제 중 하나라도 장가 보낼 생각에 미리부터 들뜬 아버지가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해 과연 아버지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또 김승현의 동생이 요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그녀는 누구일지 또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KBS2 ‘살림하는 남자들2’는 10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담비 “남태현과 열애설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어”

    손담비 “남태현과 열애설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어”

    ‘비디오스타’ 손담비가 남태현과의 열애설에 대해 해명했다. 지난 9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는 영화 ‘배반의 장미’에 출연하는 배우 정상훈, 김인권, 손담비, 김성철이 출연했으며 스페셜 MC에는 남태현이 출연했다. 이날 손담비는 과거 남태현과의 열애설을 언급하며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다. 얘(남태현)가 연락을 잘 안 하더라”고 말했다. 이에 남태현은 “잘못됐다. 누나가 항상 ‘곧 봐’하고 절대 안 본다”고 반박했다. 손담비는 “남태현과 여전히 누나 동생 사이냐”는 질문에 “너무 누나 동생이다. 그 열애설은 장난으로 이루어진 에피소드”라고 해명했다. 사진=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완선 친구인 김혜림의 엄마, 나애심은 누구...네티즌 관심 폭발

    김완선 친구인 김혜림의 엄마, 나애심은 누구...네티즌 관심 폭발

    이국적 외모에 허스키한 목소리 50~60년대 은막의 스타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준’ 새 친구로 등장한 김혜림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김혜림이 원로가수 고(故) 나애심(1930~2017)의 딸이라는 소식에 10일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다.이 프로에 새로운 친구로 가수 김완선의 절친인 김혜림이 출연했다. 김혜림은 1988년 ‘젊음의 행진’ 전속 아이돌 그룹 ‘통크나이’로 데뷔한 뒤 이듬해인 1989년 솔로 앨범 ‘디디디(DDD)‘를 발표하면 큰 인기를 끌었었다. ‘이젠 떠나가 볼까’ ‘날 위한 이별’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김혜림은 1950년~6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나애심의 딸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과거 방송에서 김혜림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존재를 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혜림’으로 지어주셨다는 말만 전해들었다”고 한 김혜림은 “어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살던 어느 날 어머니 방에서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지금도 아버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었다.김혜림은 모친 나애심 외에도 연예인 집안으로 유명세를 탔다. 나애심의 동생인 전봉옥은 가수로, 오빠 전오승은 작곡가로 활동했었다. 또한 조카 전영선은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역을 맡았었다. 한편 ‘밤의 탱고’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으로 인기를 누린 원로가수 나애심은 지난해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나애심(본명은 전봉선)은 이북 출신 예술인으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해 무대활동을 시작했다. 이국적인 외모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다. 300여 곡을 발표하고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노래하는 은막의 스타‘로 불리며 전설적인 인기를 끌었다. 1956년 3월 초 명동의 한 대폿집에서, 박인환이 막걸리를 마시며 함께 자리한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 한 곡을 부탁했다. 나애심이 “마땅한 노래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자 박인환이 즉석에서 쓱쓱 시를 써내려 갔고 여기에 동행한 이진섭이 즉흥으로 곡을 붙였다. ‘명동 샹송’으로 불린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했다고 전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네 // 사랑은 가고 / 옛날은 남는 것”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불면 집유, 버티면 징역”… 없는 죄도 만들어 불었습니다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불면 집유, 버티면 징역”… 없는 죄도 만들어 불었습니다

    #1. 2007년 5월 경기 수원에서 십대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듬해 범인으로 지목된 가출 청소년 5명이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상고심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5명이 ‘자백하면 선처하겠다’는 경찰의 회유에 따라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자백을 입증할 물증이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준영 변호사가 국선변호인으로 변론했던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이다.#2. 충남 보령에서 2007년 5월 여중생 A양이 집 근처에서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해 20여일 동안 감금됐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동안 A양의 형제자매들은 ‘큰언니가 A를 숨지게 했고, 부모가 시신을 숨겼다’는 자술서를 냈다. 큰언니마저 ‘동생들과 다르게 말하면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자신이 A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가족들 간 깊은 상처를 남긴 ‘보령 여중생 피랍 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최소한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은 사라졌다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다. 그런데도 수사·재판 과정에서 ‘허위자백’으로 인한 왜곡·오류 사례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물증보다는 자백으로 범행의 사실관계를 규정하는 데 익숙한 수사 관행, 검찰 수사 단계에서의 자백을 비판 의식 없이 주요 증거로 채택하는 형사재판 관행 때문이다. 1990년 이후 주요 허위자백 사례 46건을 선별해 분석한 이기수 전남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1990년대엔 고문과 폭행 등 물리력 행사가 허위자백 원인의 절반을 차지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협박, 기망, 회유, 장시간 조사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선별한 46건 중 14건을 심층분석해 2012년 ‘형사절차상 허위자백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연구’란 박사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허위자백의 이론과 실제’란 책으로 발간됐다. 논문에서 분석한 허위자백 사례 백태를 보면 미성년자뿐 아니라 그냥 우연히 범행 현장을 지나던 평범한 시민, 나아가 수사 전문가인 경찰 간부마저 허위자백의 덫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났다.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과 ‘보령 여중생 피랍 사건’에서 허위자백을 한 이들은 미성년자였다. 허위자백 당시 이들은 변호사는커녕 보호자와도 함께 조사를 받지 못했다.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이 형사재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법적 지식이 없고, 수사받는 상황 자체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한 미성년자이기에 허위자백을 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지점이다. 하지만 일단 수사기관에서 수사관이 원하는 답을 내준 뒤 법원에서 항변하면 될 것이란 사고체계를 수사 전문가가 작동시킬 때도 있다. ‘옥천경찰서장 뇌물 사건’과 ‘김 순경 살인누명 사건’에서 허위자백을 한 이들은 모두 경찰이었다. #3. 2001년 B 옥천경찰서장은 관내 오락실 업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부하직원 C씨를 통해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를 부인하던 B서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2심 공판 중 혐의를 시인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후 증거를 보강 제출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C씨가 밤샘조사 등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끝에 B서장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허위자백했고, 재판 중엔 검찰이 C씨 측에 “추징금을 줄여 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한 녹취를 제출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B서장 역시 항소심 재판 중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위해 허위자백을 한 셈인데, 이는 “일단 실형을 피해 보자”는 변호인의 권유에 따라 이뤄졌다. #4. 서울 지역 파출소에 근무하던 김모 순경은 1992년 함께 여관에 투숙했던 여고생이 사망하자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김 순경은 새벽 근무 때문에 여관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여고생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김 순경이 여관에 있던 시점을 사망 시간으로 추정했다. 김 순경은 5차례 피의자 신문에서 모두 자백했고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는데, 2심이 진행되던 중 진범이 검거되면서 무죄로 풀려났다. 이후 엿새 동안 잠을 안 재운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정황이 폭로된 데다 수사와 1심 재판 과정에서 사망 시간 감정 외 김 순경과 혈액형이 다른 머리카락, 김 순경과 다른 제3의 족적 등의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무시됐음이 드러났다. 경찰과 같은 수사 전문가들은 최소한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이 이후 처벌에 미치는 효력이나 자신이 허위자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법에 대한 지식이 적은 일반 시민들의 사례에선 일단 허위자백을 해두면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해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점,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신문조서가 자백 형식으로 쓰여지고 있는 점 등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5. 경남 합천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D씨는 2006년 묘지 앞 석상을 기중기로 들어 E씨의 차량에 실어준 특수절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D씨는 범행을 돕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둘은 아예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E씨의 범행 무렵 둘의 차량이 나란히 교차로를 지난 것을 확인한 경찰이 D씨를 공범으로 의심, 교차로를 지난 뒤 묘지가 아닌 주변 다방으로 갔다는 D씨의 항변을 무시한 채 7시간 반복질문한 끝에 허위자백을 받은 것이다. D씨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자필로 범행을 부인하는 취지의 글을 썼지만, 이미 전체적인 조서 내용은 자백(혐의 인정)한 것으로 작성돼 있었다. #6. 2009년 5월 경기 안성의 한 원룸 주차장에서 전신을 구타당한 뒤 숨진 남성이 사망 전에 모르는 20~30대 남성 3명에게 폭행당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담배꽁초 4개를 입수, 근처 우범자들의 유전자와 대조해 고등학생 3명의 자백을 받았다. 이들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허위자백이었다고 호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실제 3명 중 한 명은 범행 추정 시간에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조사 중 서로 ‘억울하다’는 문자를 교환하기도 했다. 3명 중 1명이 ‘범행을 부인하면 감옥에서 평생 썩을 것’이란 경찰관 말에 허위자백을 했고, 다른 2명도 자신만 혐의를 부인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연쇄적으로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 다음 회에는 최근 있었던 자백 의존적 수사 사례를 탐색하고, 해외에선 허위자백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알아봅니다.
  • [포토] ‘평양 방문’ 폼페이오에게 사진 건네는 김여정

    [포토] ‘평양 방문’ 폼페이오에게 사진 건네는 김여정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부터 사진을 전달받고 있다. 2018.10.8 미국 국무부 사진=연합뉴스
  • 여동생 잔소리에…캐나다 남성, 15억 당첨 복권 발견

    여동생 잔소리에…캐나다 남성, 15억 당첨 복권 발견

    여동생의 잔소리로 옷장을 정리하던 중 재킷 안주머니에서 지난해 말 샀던 복권 1장을 발견한 캐나다 남성이 우리 돈으로 무려 15억 원이 넘는 거액 복권에 당첨됐다.6일(현지시간) 캐나다 CBC방송 등 현지언론은 몬트리올에 사는 그레고리오 데상티스가 175만 캐나다달러(약 15억 3000만 원)에 당첨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데상티스는 '정리좀 하라'는 여동생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옷장 속을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복권은 지난해 12월 구매한 것으로 만일 올해 12월이 지난 뒤에 발견했으면 당첨금을 한 푼도 받지 못 할 뻔했다. 1970년대부터 복권을 구매해왔다는 그는 지금까지 최고 당첨 금액이 2000년대 전반에 맞춘 4000캐나다달러(약 350만 원)였다. 데상티스는 "처음에는 당첨 금액이 1750캐나다달러(약 153만원)로 생각했기에 실제 당첨 금액을 알았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면서 "당첨금으로 노후 자금을 충당하는 것 외에 조카를 데리고 아이스하키 경기를 관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언론은 데상티스가 옷장을 정리하라고 잔소리한 여동생에 관한 언급은 하지않았다고 전했다. 사진=퀘벡복권협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아는 형님’ 박주미 서장훈, 남편으로 이어진 친분 “20년 전 첫만남”

    ‘아는 형님’ 박주미 서장훈, 남편으로 이어진 친분 “20년 전 첫만남”

    배우 박주미와 서장훈의 깊은 인연이 눈길을 끈다.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는 박주미와 박성광이 게스트로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이날 서장훈은 박주미의 등장에 “나랑 제일 친한 형의 아내다. 주미 누나를 안 지 20년 됐다. 그 형이랑 주미 누나랑 처음 만난 소개 자리에 같이 앉아있었다”고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박주미는 “장훈이를 처음 봤을 때 ‘진짜 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첫인상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서장훈은 또 박주미가 ‘내가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많이 했던 말’이라는 문제를 내자 “‘너는 아빠 닮지 말아라’다”고 말해 박주미 남편과 친밀한 사이임을 과시했다. 강호동이 박주미의 남편에 대해 “지금까지 사회생활 하며 만난 사람 중 제일 멋진 신사다”고 말하자 서장훈은 “아니다. 잘못 보셨다”고 친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멘트를 했다. 이에 박주미는 서장훈에 대해 “진짜 좋은 동생은 아니다. 장훈이가 진짜 유하고 착했는데 방송을 하고 많이 변한 것 같다. 내가 알던 동생이 아니다”라고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박주미의 남편 이장원 씨는 한국외대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모 피혁회사 이장택 회장의 외아들이다. 두 사람은 2001년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거미 “조정석 결혼, 아직 실감 안 나” 유희열 “축가 부탁할까 고민”

    거미 “조정석 결혼, 아직 실감 안 나” 유희열 “축가 부탁할까 고민”

    가수 거미가 배우 조정석과 결혼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5일 방송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보컬의 정석’ 거미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거미는 약 4개월간의 전국투어 공연을 앞둔 근황을 밝히며 “요즘 계속 바쁘게 지내고 있다. 늘 공연하고 있다”고 밝혔다. MC 유희열은 “얼마 전에 거미 씨한테 좋은 소식이 들렸다”고 조정석과의 결혼을 언급하며 “진짜 오랫동안 지켜봐온 동생의 결혼이라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실감이 안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거미 역시 “나도 아직 실감이 안 난다”라며 “지난 번 출연 당시 새해 계획을 물어보셔서 아무 생각 없이 ‘신부수업’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자료화면으로 많이 나가더라”고 밝혀 웃음을 안겼다. 유희열이 “축가를 나한테 부탁하면 어쩌나 고민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자 거미는 “그 귀한 축가를 어떻게 내가 부탁 드리겠냐”고 받아쳐 웃음을 안겼다. 한편 거미는 지난 2013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배우 조정석과 열애를 시작, 오는 가을 5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린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공휘 정지민 임신, 초음파 사진 공개 “나 둘째엄마 됐어”

    공휘 정지민 임신, 초음파 사진 공개 “나 둘째엄마 됐어”

    공휘 정지민 부부가 둘째 임신을 알렸다. 2016년 4월 결혼식을 올린 개그우먼 정지민과 가수 공휘 부부가 둘째 임신 소식을 전했다. 정지민은 5일 인스타그램에 “안녕하세요 공기쁨 입니다(성별은 아직 몰라요) 유민이 동생이 생겼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태아 초음파 사진을 공개했다. 또 공휘는 “기쁨이가 우리에게 와서 감사하고 고마워. 유민이와 기쁨이에게 멋진 아빠가 되려 노력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글로 아빠로서의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정지민은 얼마전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 에서 대타DJ를 맡으며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에너지를 가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공휘 정지민 부부는 아들 유민을 위한 “유민 Everything to me”를 발매해 사랑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했다. 공휘 정지민 부부의 출산은 내년 4월로 예정돼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9) 디벨로퍼로 변화를 선도하는 HDC그룹 정몽규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19) 디벨로퍼로 변화를 선도하는 HDC그룹 정몽규 회장

    자동차에서 건설 경영인으로 변신 대성공HDC그룹,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 이끌어FIFA평의회 위원으로 국제축구계에도 우뚝  정몽규(56) HDC그룹 회장의 부친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1974년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이자 그의 애칭이 된 ‘포니(PONY)’를 개발하고 1976년 수출에 나선 정 명예회장은 한국 자동차 신화의 주인공이다. 보성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 명예회장은 1967년 미국 포드사와의 합작을 이끌어 내며 현대자동차의 초대 사장에 취임한 뒤 32년 동안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써 나갔다. 그의 장남이자 외아들인 정 회장은 1996년 당시 34살의 세계 최연소 나이로 완성차업체(현대자동차)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자동차에 올인했던 부자는 1999년 현대차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큰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장자인 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현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자동차 기업을 넘겨 주기 위해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자동차에서 손을 떼라고 통보했다. 형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한마디 반박도 하지않고 아들 정몽규 회장과 함께 낯선 건설 분야인 현대산업개발로 넘어왔다.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들이 건설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1999년 4월 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본사와 150곳의 현장을 일일이 발로 뛰며 실태 파악에 나섰다. 70% 이상인 주택사업을 50%선으로 낮추는 대신 토목, 플랜트, 사회간접자본(SOC) 등 신규 사업을 확대했다. 단순 시공 수준이 아닌 어려운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어 활로를 모색하며 현대산업개발을 건설업계 ‘톱5’ 반열에 올려놨다. 현대산업개발의 고급 브랜드로 꼽히는 2004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는 정 회장의 첫 작품이다. 정 회장은 2001년 현대아파트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며 현대그룹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 잘나가던 회사에 위기도 찾아왔다. 2013년 현대산업개발은 장기적으로 이어진 건설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1479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정 회장은 “실적악화에 대한 엄중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보수를 회사에 반납하겠다”며 ‘무보수 경영’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는 신규사업용지를 매입하고 우수한 사업을 수주하는 등 우량자산에 재투자해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현대산업개발은 실적 갱신을 이어 오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5조원대 매출과 2년 연속 매출액(5조 3590억원·전년대비 12.8%증가)과 영업이익(6460억원·전년대비 24.9% 증가) 모두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이는 2016년 기록한 역대 최고 실적을 다시 갈아치운 수치다. 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 사업 진출, 사업 다각화 등 신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정 회장은 2015년 1월 용산역 현대아이파크몰을 통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선 건설업만 해오던 현대산업개발이 과연 자력으로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현대가’의 영원한 라이벌인 ‘삼성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손 잡고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해 면세점 사업권을 따냈다. HDC신라면세점은 지난해 1월 신규면세점중 최초로 영업이익을 올린 후 5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액 4조 115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매출액 2조 3004억원과 영업이익 1137억원을 거두는 등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월 지주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의 분할을 거치는 지주사체제로 전환을 마무리해 HDC그룹으로 정식 출범했다. 지주사인 HDC는 투자사업 및 부동산임대사업부문을 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건설사업부문, PC콘크리트사업부문, 호텔 및 콘도사업부문을 맡는다. HDC그룹을 부동산 개발과 기획·시공·운영까지 아우르는 종합부동산·인프라그룹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게 정 회장의 목표다. 정 회장은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다가 1993년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울산 현대 사택에서 살았던 시절 이웃이었던 차범근 전 울산현대 축구단 감독과 인연을 시작으로 축구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4년 울산현대 축구단의 구단주로 시작해 전북 현대 다이노스 구단주(1997년~1999년)를 거쳐 2000년 1월 부산 아이파크의 구단주를 맡는 등 프로축구단 현역 최장수 구단주다. 2011년 1월부터는 곽정환 전 프로축구연맹 총재의 뒤를 이어 연맹 수장을 맡았으며 2013년에 제 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전 집행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당선돼 집행부에 입성했다. 국제축구연맹 평의회는 세계 축구계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조직이다. 지난 7월 축구 발전을 위해 40억 원을 지원했으며 이는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 감독을 영입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현대가의 사람인데다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의 사촌이기 때문에 축구판을 현대가에서 독식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정 회장은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박영자씨의 1남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성두 전 대한화재보험 사장의 딸인 김나영(53)씨와 결혼해 슬하에 3남을 뒀다. 정 회장의 큰 누나 정숙영(60)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노경수(65)씨와 혼인했다. 노씨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출신으로 국제정치 전문가다. 정 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49)씨는 섬유생산업체 김석성 전 전방 회장의 1남 4녀중 막내인 김종엽(50)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학교에 다녀올게요. 여권은?” 국경 넘는 멕시코 어린이들

    “학교에 다녀올게요. 여권은?” 국경 넘는 멕시코 어린이들

    “엄마, 학교에 다녀올게요. 참, 여권을 어디에 뒀더라?” 이런 풍경이 거의 매일 아침 펼쳐지는 곳이 있다. 멕시코 푸에르토 팔로마스란 작은 마을에 사는 420명 가까운 어린이들은 미국 뉴멕시코주 콜럼버스 초등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여권을 챙겨야 한다고 영국 BBC가 4일 전했다. 멜라니 피궤로아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등교할 준비를 마치고 엄마, 여동생과 입을 맞추고 문을 나서기 전 반드시 여권을 지참했는지 점검한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학교에 가려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 재학생은 600명인데 이 마을에서만 420명이 미국 학교에 다니기 위해 어려운 등하교 길을 감수하는 것이다. 아빠 브라이언이 승용차에 태워 검문소 주차장에 다다른 뒤 함께 출국 심사대를 통과해 학교 버스 타는 곳까지 매일 데려다준다. 이렇게 하면 멜라니가 여권을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가방에 여권을 넣고 다니는데 그만큼 분실 위험도 높아지고 위험해 그렇게 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나마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는 멜라니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달리 긴 줄을 서지 않고 빨리 통과해 아침 7시 30분부터 8시까지 운행하는 학교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아빠는 돌아오고, 하교 때는 반대의 과정을 밟아 집에 돌아온다. 멜라니는 “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니 힘들고 지루하다. 발품도 많이 든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아빠 브라이언은 “어렸을 때 영어를 익히면 커서도 잘 잊어먹지 않고, 미국 학교에 다니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 조국 멕시코를 많이 사랑하고 아이도 많이 힘들지만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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