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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시시콜콜] “사기 인터뷰로 다이애나빈 망쳐” BBC 26년 만에 사과

    [임병선의 시시콜콜] “사기 인터뷰로 다이애나빈 망쳐” BBC 26년 만에 사과

    “마틴 바시르, 거짓말과 가짜 서류로 인터뷰 성사시켜” 남동생 스펜서 백작 지적에 성의 없는 조사 “잘못 없다” 이혼 후 파파라치들에 늘 쫓긴 다이애나빈 애통한 죽음 지난해부터 22억원 들여 재조사 “사기로 인터뷰” 결론 유족에 사과 편지, 받은 상 반납하는 등 한참 늦은 반성 해리 왕자 “어머니 목숨 잃었지만 언론은 바뀐 것 없다”영국 BBC는 지난 1995년 1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고통스럽게 남편의 불륜을 처음 털어놓는 인터뷰 동영상을 20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대법관 출신 존 다이슨 경이 주도한 독립 조사 결과 인터뷰를 성사시키려고 BBC 직원 마틴 바시르(58)가 사기에 가까운 행동을 했음을 인정한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유족들이 보고 싶지 않아 할 동영상을 올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 윌리엄 왕세손은 성명을 내 “다시는 문제의 동영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 언론사들이 게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뒤 홈페이지에서 1분 30초 분량의 인터뷰 동영상은 사라졌고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 침착하게 성명을 읽는 동영상이 게재됐다. 바시르는 다이애나빈의 남동생 얼 스펜서 백작에게 누나와의 인터뷰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위조된 은행 서류를 제시하며 왕실 직원들이 돈을 받고 다이애나빈 부부에 관한 정보를 흘렸다고 말해 이들 남매를 화나게 만들었다. 또 다이애나빈의 개인 편지를 누가 훔쳐봤다거나, 그녀의 차가 추적당하고 전화가 도청됐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마도 바시르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니 당사자가 솔직히 인정하고 심경을 토로하는 것이 좋겠다고 남동생을 압박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시르의 거짓말에 속은 스펜서 백작은 인터뷰를 마련했고 다이애나빈은 별거한 지 3년이 됐으며 남편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 파커 볼스(현재 부인)와 불륜 관계임을 털어놓아 영국 사회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2000만명 가까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남긴 말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 복잡했다.(Well, there were three of us in this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는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부부는 이듬해 파경을 맞았고 파파라치들에 내몰린 왕세자빈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비운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던 두 아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에게 이 인터뷰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음은 물론이다. 스펜서 백작은 인터뷰 다음해에 속은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사는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바시르에게 잘못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BBC가 인터뷰 25주년을 기념한답시고 동영상을 방영하는 등 상처를 다시 건드리자 스펜서 백작은 다시 공개 폭로에 나섰다. 이번에는 바시르가 위조한 은행 서류를 제시하는 등 물증을 동원했다. 자신이 위조된 서류를 안 봤더라면 바시르를 누나에게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재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이슨 경은 140만 파운드(약 22억 4000만원)를 들여 6개월에 걸친 조사를 마무리한 보고서를 통해 스펜서 백작의 주장이 맞았다고 인정했다. BBC의 1996년 조사도 스펜서 백작을 만나지도 않는 등 “참담하게 비효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바시르가 부적절하게 행동했고 BBC의 편집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평가했다. 또 바시르가 BBC 관리자들에게 위조 서류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등 적어도 세 차례 거짓말을 했으며, 바시르의 설명 상당 부분이 “믿을 수 없고, 신뢰가 가지 않으며, 일부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BBC 방송도 “자사의 특징인 높은 윤리와 투명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윌리엄 왕세손은 성명을 내 “기만적인 인터뷰 방식이 어머니 발언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본다”며 “해당 인터뷰는 부모님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이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를 아프게 해왔다”고 비난했다. 그는 “BBC의 잘못이 어머니의 두려움과 편집증, 고립에 상당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알아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면서 “BBC가 (처음 문제가 제기된 이듬해)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어머니도 자신이 속았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슬프다”고 밝혔다. 이어 “가짜뉴스의 시대여서 공영방송과 자유언론이 지금보다 중요한 적이 없었다”면서 “(BBC의) 잘못은 내 어머니와 가족뿐 아니라 대중도 실망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인터뷰가 담긴 파노라마 프로그램이 다시 방영돼서는 안된다고도 주장했다.해리 왕자는 형보다 훨씬 어조가 강했다. 그는 ”악용의 악습과 비윤리적 관행의 파급효과가 결국 어머니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며 ”이러한 관행이 더 심해져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비윤리적 관행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바뀐 것이 없다”면서 “우리는 어머니의 유산을 보호함으로써 모두를 지키고 어머니의 삶과 함께한 존엄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분께는 감사하다”면서 “정의와 진실로 나아가는 첫 발“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건 없는 사과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두 아들은 물론 찰스 왕세자, 스펜서 백작 모두에 사과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방송은 아울러 이듬해 영국아카데미(Bafta) TV 상 등 이 인터뷰로 받은 모든 상을 반납했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주 방영하려다 연기됐던 조사 결과 내용을 방영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BBC 의장을 지낸 그레이드경은 바시르의 행동보다 방송사의 “은폐”가 더 나쁘다고 꼬집었다. 바시르는 은행 서류를 위조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면서도 그것이 다이애나비가 인터뷰에 응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유지했다. 무명이었던 바시르는 이 인터뷰로 유명세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클 잭슨과 인터뷰를 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징계를 받는 등 물의도 많이 일으켰다. 잭슨의 전 매니저는 2003년 바시르와 인터뷰한 것이 6년 뒤 잭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보조 수단이던 약물이 그날 이후 필수품이 됐다는 것이다. 바시르는 2016년 BBC로 돌아와 종교 담당 에디터로 있다가 지난주 보고서가 제출되기 몇 시간 전 건강 문제를 이유로 퇴사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삶이 짓밟혔다… 형제복지원, 국가 상대 80억 손배소

    삶이 짓밟혔다… 형제복지원, 국가 상대 80억 손배소

    “우울 등 후유증 시달려… 국가는 왜 외면하는가”감금·강제노역·성폭행 등 인권 유린… 513명 사망폭로 34년 지났지만 조사도 보상도 갈 길 멀어진화위 조사로 피해 입증할 자료 규명이 관건“형제복지원에서 보낸 유년기 시절을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죽으려 한 적도 많아요. 국가는 왜 이런 고통을 외면하는 겁니까?”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20일 국가를 상대로 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13명은 “대한민국은 짓밟힌 우리 인생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며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소송에는 형제복지원 입소·퇴소를 증명할 증빙자료가 준비된 피해자 13명만 먼저 참여했고, 향후 참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안창근 변호사는 “이 사건은 국가권력이 부랑자 단속을 명분으로 무고한 시민을 강제 수용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라며 “이번 소송에서 국가 책임이 인정돼 다른 피해자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1975~1987년 내무부 훈령 410호에 따라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매년 20억원씩 국가 지원을 받아 시민을 감금하고 폭행, 강제노역, 성폭행을 일삼았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만 현재까지 513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 A씨는 법원에 낸 진술서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 경찰에게 잡혀갔다”면서 “구타는 기본 일상이고 소대장한테 성폭행을 수차례 당해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호소했다. 7살 때 동생과 함께 입소한 피해자 B씨는 “하루는 도망가다 붙잡힌 남자를 사람들이 포대 자루에 말더니 5~6명이 한참을 때리다가 ‘애 죽었다, 치워라’며 질질 끌고 가더라”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고 증언했다. 2018년에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1989년 무죄가 확정된 고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에 대한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으로 규명된 진실에 따라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로 접수받아 검토 중이다. 피해 회복이 조속히 이뤄지려면 위원회 조사를 통해 피해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향직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많은 피해자들이 생을 마감했거나 어렵게 살고 있어 끝없이 삐걱대는 위원회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만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형제복지원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악몽이라 진술서를 끝내 쓰지 못한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사기 인터뷰로 어머니 다이애나빈 죽음 몰아” 왕세손들 BBC 작심 비판

    “사기 인터뷰로 어머니 다이애나빈 죽음 몰아” 왕세손들 BBC 작심 비판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1997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BBC 방송 직원에게 속아 1995년 11월 인터뷰에 응한 것이란 독립 조사 결과가 20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되자 강한 어조로 BBC를 비판했다.  BBC 파노라마로 방영된 문제의 인터뷰는 다이애나빈이 남편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 파커 볼스(현재 부인)와 불륜 관계임을 처음 털어놓아 영국 사회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2000만명 가까이가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남긴 말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 복잡했다.(Well, there were three of us in this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는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윌리엄 왕세손은 성명을 내 “기만적인 인터뷰 방식이 어머니 발언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본다”며 “해당 인터뷰는 부모님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이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를 아프게 해왔다”고 비난했다. 그는 “BBC의 잘못이 어머니의 두려움과 편집증, 고립에 상당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알아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면서 “BBC가 (처음 문제가 제기된 이듬해)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어머니도 자신이 속았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슬프다”고 밝혔다. 이어 “가짜뉴스의 시대여서 공영방송과 자유언론이 지금보다 중요한 적이 없었다”면서 “(BBC의) 잘못은 내 어머니와 가족뿐 아니라 대중도 실망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인터뷰가 담긴 파노라마 프로그램이 다시 방영돼서는 안된다고도 주장했다.  해리 왕자는 형보다 훨씬 어조가 강했다. 그는 ”악용의 악습과 비윤리적 관행의 파급효과가 결국 어머니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며 ”이러한 관행이 더 심해져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비윤리적 관행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바뀐 것이 없다”면서 “우리는 어머니의 유산을 보호함으로써 모두를 지키고 어머니의 삶과 함께한 존엄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분께는 감사하다”면서 “정의와 진실로 나아가는 첫 발“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다이애나빈 인터뷰 성사 배경을 두고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지난해 대법관을 지낸 존 다이슨 경에게 독립적인 조사를 의뢰했는데 다이슨 경은 140만 파운드(약 22억 4000만원)를 들여 6개월에 걸친 조사를 마무리한 보고서를 통해 BBC 직원 마틴 바시르(58)가 다이애나빈의 동생 찰스 스펜서 백작에게 위조된 은행 서류를 제시하며 왕실 직원들이 돈을 받고 다이애나빈과 관련된 정보를 흘렸다고 말하는 등 거짓말로 인터뷰를 주선하도록 만들었다는 스펜서 백작의 주장을 인정했다. 바시르에게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던 BBC의 1996년 조사도 스펜서 백작을 만나지도 않는 등 “참담하게 비효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바시르가 부적절하게 행동했고 BBC의 편집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평가했다. 또 바시르가 BBC 관리자들에게 위조 서류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등 적어도 세 차례 거짓말을 했으며, 바시르의 설명 상당 부분이 “믿을 수 없고, 신뢰가 가지 않으며, 일부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BBC 방송도 “자사의 특징인 높은 윤리와 투명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스펜서 백작은 바시르가 거짓말과 위조된 은행 입출금 내역 등을 내밀며 자신에게 인터뷰를 주선하게 했다고 주장해 왔으며, 인터뷰 방영 25주년을 맞은 지난해 공개 폭로했다. 그는 바시르가 위조된 은행 서류를 제시하며 왕실 직원들이 돈을 받고 다이애나비 정보를 흘렸다고 말해 두 남매를 화나게 만들어 인터뷰에 응하게 했다며, 그 서류를 안 봤다면 바시르를 누나에게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시르는 또 다이애나비의 개인 편지를 누가 훔쳐봤다거나, 그녀의 차가 추적당하고 전화가 도청됐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스펜서 백작은 전했다.  BBC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건 없는 사과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두 아들은 물론 찰스 왕세자, 스펜서 백작 모두에 사과 편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방송은 아울러 이듬해 영국아카데미(Bafta) TV 상 등 이 인터뷰로 받은 모든 상을 반납했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주 방영하려다 연기됐던 조사 결과 내용을 방영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BBC 의장을 지낸 그레이드경은 바시르의 행동보다 방송사의 “은폐”가 더 나쁘다고 꼬집었다.  바시르는 은행 서류를 위조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면서도 그것이 다이애나비가 인터뷰에 응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유지했다. 무명이었던 바시르는 이 인터뷰로 유명세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클 잭슨과 인터뷰를 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징계를 받는 등 물의도 많이 일으켰다. 잭슨의 전 매니저는 2003년 바시르와 잭슨의 인터뷰가 6년 뒤 잭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보조 수단이던 약물이 그날 이후 필수품이 됐다는 것이다. 바시르는 2016년 BBC로 돌아와 종교 담당 에디터로 있다가 지난주 보고서가 제출되기 몇 시간 전 건강 문제를 이유로 퇴사했다.  1961년생인 다이애나비는 1981년 찰스 왕세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으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인터뷰할 때는 별거 3년째였으며 인터뷰 이듬해인 1996년 이혼했고 1997년 8월 31일에 사귀던 이집트 재벌 2세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파리 알마 터널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터널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바람에 숨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집 한 채 마련이 적폐냐”…‘쓴소리 경청’ 간담회 열려[이슈픽]

    “집 한 채 마련이 적폐냐”…‘쓴소리 경청’ 간담회 열려[이슈픽]

    “왜 집을 갖고 난리를 치나”與에 분노 쏟은 30대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한 3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초선 모임 ‘더민초’가 20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한 ‘쓴소리 경청’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여과없이 표현했다. “의원들은 시간 나면 경제학원론을 보라” 화상으로 접속한 주부 김모씨는 “집을 장만하고 넓혀가는 과정에서 이 정부에 실망을 많이 했다”며 “세금은 다 뜯어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다 막아놨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집 하나 마련하는 것을 적폐라고 얘기하나.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도박 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집을 갖고 난리를 치나”라며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데, 왜 정부는 살고 싶지 않은 임대주택을 장려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 없고 돈 없는 사람들 잘 살게 해주겠다고 떵떵거렸는데, 지금 그 사람들이 제일 희생당하고 있다”며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던 김현미 장관 말을 듣고 안 샀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의원들은 시간 나면 경제학원론을 보라”고 힐난했다. 자신을 32세 직장인으로 소개한 미혼 남성은 “30대가 과연 집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주택을 마련하고 기반이 있어야 결혼도 할 수 있지 않나”라며 “지금 사는 안산에 청약을 넣고 있는데, 당첨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푸념했다. 또 그는 최근 재개발 지역 부동산을 사뒀다가 성공한 지인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저는 꿈을 접어야 하고, 그 동생이 맞았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비정상의 극대화가 됐다” 공기업에 다니는 한 남성은 “갑자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인천공항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로 기업 내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힘들게 싸우게 됐다”며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비정상의 극대화가 됐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모든 것을 적폐로 모든 것이 안타깝다”며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기존에 곪아있는 것부터 찾아내달라”고 당부했다.“언론개혁 못해서 선거 졌다” 한 여성 참석자는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나. 협치를 할 것이었으면 180석을 뽑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에 진 것이 아니다. 언론개혁을 못 해서 조중동에 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조국 얘기를 하면서 모든 문제를 그쪽으로 돌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통령 레임덕을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나서서 만드는 것 같다”며 “착각하는 것 같은데, 본인들이 잘해서 뽑아준 것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이에 송영길 대표는 “당이 부족해서 4·7 재보선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며 “여러분들이 주신 말씀을 하나하나 귀하게 새겨 변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내 집 갖게 해달라” 청원도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집값을 정상화 시켜달라는 국민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한 청원인은 “촛불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으로 급격하게 오른 집값을 정상화해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당시 집값을 내리고 실수요자 위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표방했지만 이 약속을 저버리고 주택 임대 사업자에게 더욱 혜택을 확대했고 그 결과 유주택자들이 주택을 추가로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집값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5월보다 2∼3배 더 올랐다”고 주장했다.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값은 작년 12월 이후 5개월째 1%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원인은 집값 안정을 위해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폐지, 실질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주택, 농사나 사업 등으로 이용하지 않는 토지에 대해 시가의 3% 이상의 보유세 부과, 공공주택 비중을 10∼20% 확대, 공공 분양 원가 공개 및 분양 원가와 연동한 분양가상한제 시행, 외국인의 부동산 보유 관련 취득세 및 재산세 강화 등을 요구했다. 이에 부동산 업계는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투기 수요에 대한 규제와 3기 신도시 등 공급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되,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남성혐오’ 논란 재재, 공중파 출연 금지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남성혐오’ 논란 재재, 공중파 출연 금지해달라 청와대 국민청원

    방송인 재재의 공중파 출연을 금지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일 제기됐다. SBS 웹예능 ‘문명특급’ PD와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재재(본명 이은재·31)는 최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보여준 손 모양으로 ‘남성혐오’ 논란을 낳았다. 재재는 레드카펫에서 사진촬영에 임하면서 초콜릿을 꺼내 먹었는데 이때 손가락 모양이 극렬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였던 메갈리아의 상징과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메갈리아에서는 한국 남성들의 성기 크기가 전 세계 평균보다 작다란 의미를 담아 엄지와 검지를 집는 손 동작을 사용하면서 남성혐오의 상징이 됐다. 문명특급 측은 해당 논란에 대해 스타일리스트와 다양한 시상식용 의상을 입어보던 중, 간식을 옷 주머니에서 꺼내 먹는 색다른 레드카펫 퍼포먼스를 해보자고 의견이 모여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청와대 청원은 2018년 재재가 성범죄 피해사실을 보도하면서 언론의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선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5월 ‘스브스뉴스’ 탐사보도를 통해 한 여성 유튜버의 성범죄 피해 호소 주장을 전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로 지목됐던 스튜디오 실장이 카카오톡 대화 복구 내용을 공개해 성범죄 피해사실은 상당수가 허구임이 드러났다고 청원은 주장했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스튜디오 실장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였고, 재재는 유튜버의 선동이 공론화될 수 있도록 크게 일조한 장본인이라고 청원은 강조했다. 또 사망한 스튜디오 실장의 친동생이 2018년 11월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당시 실장에게 접촉하여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던 스브스뉴스가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었던 카카오톡 대화본을 알고 있었음에도 보도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청원자는 “재재는 당시 사건의 내막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나 스튜디오 실장을 가해자 몰이하기 위해 이를 묵과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사망한 스튜디오 실장의 억울함이 해소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과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청원자는 “남성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시상식에서 취해 큰 논란이 일고 있는데, 평소 여성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스브스뉴스의 여성 문제 콘텐츠를 주도적으로 제작해온 그녀가 이를 몰랐을리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재가 공중파에 출연하고, 심지어 최근 맥도날드의 광고모델로까지 선정돼 승승장구하는 현 대한민국의 실정에 참담한 심정일 뿐이라고도 했다. 재재가 진행하는 ‘문명특급’은 최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 전 윤여정 배우와의 인터뷰를 했다. 윤 배우는 ‘문명특급’에 대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출연자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칭찬을 남겼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부동산 투기 의혹 구리시 비서실장 교체

    부동산 투기 의혹 구리시 비서실장 교체

    경기 구리시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 부패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비서실장 A씨를 전격 교체했다. 시는 20일 긴급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시와 조직에 부담을 주기 싫다”는 비서실장의 뜻을 받아들여 A씨의 업무를 변경,총무과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사노동 E-커머스 물류단지 개발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부동산 차명 투기에 이용한 혐의로 지난 14일 구리시청 비서실장 A씨의 자택과 시청 관련부서를 6시간여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자금조달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한 동생의 사정이 안타까워 처갓집의 여유자금을 단기로 수차례 융통해준 것일 뿐, 개발정보를 사전에 빼내 차명으로 투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해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적극적으로 소명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리시 관계자는 “이번 일로 많이 놀라셨을 시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해당 사건과 관련해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경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리시는 후임 비서실장으로 소통공보담당관실 한명순씨를 발령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체포영장 발부하라”…‘대북전단’ 박상학 압수수색 불만, 조사 거부

    “체포영장 발부하라”…‘대북전단’ 박상학 압수수색 불만, 조사 거부

    최근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한 탈북민 출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경찰의 2차 소환조사를 거부했다. 20일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2차 소환된 박 대표는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찰이 76세 된 어머니의 집과 동생의 집을 압수수색 중”이라며 “강압적인 폭거로 수사를 빙자한 강도 같은 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오전 박 대표의 어머니와 동생의 집을 압수수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표는 “수사하려면 체포영장을 발부해서 감옥에 보낸 뒤 감옥에서 하길 바란다”며 “감옥에 넣는다고 해도 2000만 인민이 기다리는 대북전단이 못 갈 줄 아느냐”라고 언성을 높였다. 박 대표는 지난 4월 25~29일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1달러 지폐 5000장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용납 못 할 도발 행위”라는 담화를 싣는 등 크게 반발했다. 경찰은 박 대표 주장 이후 내사를 진행하다가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지난 6일 박 대표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 10일 1차 소환해 6시간가량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만간 박 대표와 조율해 소환 일정을 재통보할 것”이라고 했다.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관계발전법상 처벌 대상이다. 지난 3월 30일부터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에 따라 관련 혐의 피고인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혐의가 인정될 경우 실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특히 이번 대북전단 살포는 관련 법 개정 이후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점심 먹다 폭격에 사망한 팔레스타인 3세 아이 및 일가족

    점심 먹다 폭격에 사망한 팔레스타인 3세 아이 및 일가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면서 사상자도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3세 아이를 포함한 일가족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프랑스24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33세 남성 에야드 살레하는 현지시간으로 19일 가족과 집에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폭격을 받았다. 당시 집에는 장애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해 온 살레하와 임신한 그의 아내, 3살 된 딸이 함께 있었고, 가족이 모두 모여 점심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미사일 폭격을 받은 살레하 일가족은 그 자리에서 모두 사망했다. 살레하 아내의 뱃속 태아까지 포함하면 단란했던 일가족 4명이 미사일 폭격으로 사망한 셈이다. 살레하의 남동생은 “형은 장애로 14년 동안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로켓 폭격이나 전투기에 대항할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휠체어에 앉아있었을 뿐”이라면서 “동생의 아내와 동생의 딸 역시 (폭격받아 사망할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들의 아파트는 산산조각이 났고, 조카가 타던 빨간 자전거는 엉망진창이 된 아파트 잔해 속에 버려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남성과 그의 임신한 아내, 어린 딸이 이스라엘 폭격으로 사망했다”면서 “이스라엘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고, 심지어 엄마 뱃속 태아까지도 죽였다. 이는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나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와야 하느냐”며 격분을 감추지 못했다.이스라엘의 폭격이 군사 구역이 아닌 민간인 거주지역에 쏟아졌다는 사실에 비난이 쏟아졌다. 태아를 포함해 살레하 일가족 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폭격으로 이날 하루 동안 7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지난 10일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27명으로 늘었다. 이중에는 어린이 64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에서는 5세 소년와 16세 소년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공습을 지속할 것이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AP통신 19일 “네타냐후 총리는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작전을 계속하는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고 총리실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축구잘하던 아이가 공습으로…친구 무덤 찾은 팔레스타인 소년들

    축구잘하던 아이가 공습으로…친구 무덤 찾은 팔레스타인 소년들

    “무덤을 열면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팔레스타인 소년은 19일 천진난만한 얼굴로 현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년은 “친구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다른 소년은 “부나트가 정말 이 무덤 안에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슬람 와엘 부나트(16)는 18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과 팔레스타인인 퇴거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이 맞붙은 이날 시위에서는 부나트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3명이 목숨을 잃었다.시위에 참가한 압둘라 자이드(14)는 “총알이 빗발쳤다. 겨우 몸을 일으켰는데, 부나트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부나트를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부나트는 곧 사망선고를 받았다. 부나트는 여느 또래와 다름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자이드는 “명랑한 친구였다. 항상 우리를 웃기고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는 부나트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기억한다”고 말을 이었다.특히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동네를 주름잡았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고 함께 공놀이를 즐기는 골목대장이었다. 죽기 전날 부나트와 축구 시합을 했다는 누르신(11)은 “시위 전날 같이 놀았다. 경기 중에 다툼이 있었고 화가 나 집으로 갔다. 지금은 형을 용서한다. 다시는 형한테 화내지 않을 테니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유가족의 비통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부나트의 할머니는 “시위가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손자가 잘못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정한 아이였다. 손자의 부재를 견뎌낼 수 있을지, 손자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오열했다.동생 모하마드(10)는 “시위 당일 형이 먹을 것을 주고 갔다. 형이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버지 어머니가 혼자 울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도 죽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거다. 다치거나 체포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이 놀고 싸우던 형은 이제 여기 없다. 이스라엘군이 형을 죽였다”고 슬퍼했다. 18일 시위는 같은 날 이스라엘 전역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총파업과 궤를 같이한다.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자국민 정착촌을 세우는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및 국가건설 선포에 따른 1차 중동전쟁으로 영토의 80%를 빼앗겼다. 이스라엘의 토지 몰수 및 원주민 축출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 80만 명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이스라엘 외 여러 중동 지역으로 피난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정착한 이스라엔인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달 초에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동예루살렘 셰이크자라 지역에 쳐들어가 팔레스타인 축출을 요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라마단 기간이었던 10일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를 습격해 최루가스와 섬광탄, 고무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00여 명이 다쳤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즉각 로켓포로 반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보복성 폭격을 퍼부으면서 양측 갈등은 교전으로 번지게 됐다. 열흘 넘게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교전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27명에 이르렀다. 이 중 64명은 어린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다툼 끝에 흉기로 찔러”...형 살해하려 한 동생에 집행유예 선고

    “다툼 끝에 흉기로 찔러”...형 살해하려 한 동생에 집행유예 선고

    반려견 용변 문제로 다투다 형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려 한 동생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일 인천지법 형사13부(호성호 부장판사)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29)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한 A씨에게 보호관찰과 함께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A씨는 지난 1월 9일 오전 6시 10분쯤 인천시 남동구 자택에서 흉기로 형 B(30)씨를 7차례 찔러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강아지가 용변을 볼 수 있게 화장실 문을 열어 둬야 하는데 왜 문을 닫았느냐. 다른 곳에 용변을 봐 집에 냄새가 난다”며 A씨에게 강아지 용변 처리용 수건을 집어 던졌다. 이에 화가 난 A씨는 “옛날처럼 덤벼보든가”라며 대들었고, 형으로부터 머리를 여러 차례 얻어맞자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흉기에 찔린 형이 주방으로 도망가서 “이제 그만하라”며 부탁하는데도 계속 흉기를 휘두르다가 아버지에게 제지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형인 피해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위를 흉기로 7차례나 찔렀다”며 “피해자는 폐와 비장에 외상성 혈기흉 등을 입고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사소한 이유로 폭행을 당한 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서울시·사랑의열매, 냉난방비 30억 지원

    서울시·사랑의열매, 냉난방비 30억 지원

    서울시와 서울사랑의열매가 취약 계층들이 혹서기와 혹한기를 무사하게 날 수 있도록 30억원을 지원한다. 시는 폭염이나 한파 피해에 취약한 에너지 취약 계층과 명절 기간 어려움에 취하기 쉬운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기초복지 지원사업’ 배분금을 지원하는 전달식을 18일 서울시청에서 열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을 비롯해 김진곤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허곤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 배명희 서울노숙인시설협회장이 참석했다. 사랑의열매는 이번 사업을 통해 취약계층 가구에 혹한기 월동생활비 등 10억원을, 사회복지시설에 혹서기·혹한기 냉난방비 및 관련 용품 구입비 등 20억원을 지원했다. 25개 자치구와 장애인·노숙인·아동·청소년 등 각 분야 단체와 협력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사랑의열매는 이번 지원을 비롯해 올해 사회취약계층 보호사업, 일자리 지원사업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사업에 1234억원을 투입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남의 아이 어떻게 키우냐고요, 이 행복 안 겪어보면 몰라요

    남의 아이 어떻게 키우냐고요, 이 행복 안 겪어보면 몰라요

    가정위탁모 이경하(47·서울)씨는 네 아이의 어머니다. 셋째, 넷째 아이는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18일 만난 이씨와의 대화는 진정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씨의 시선은 뿔테 안경 너머 아홉 살 아들과 두 살 딸, 두 위탁자녀와의 첫 만남으로 향했다. 셋째인 아홉 살 아들은 2014년 6월, 막내인 넷째 두 살 딸은 지난해 4월 따뜻한 선물처럼 이씨에게 찾아왔다. 두 아이는 원가정의 사정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경기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당시 경기지역에 거주하던 이씨에게 위탁됐다. 가정위탁은 부모의 질병·가출·실직·수감·사망 등으로 원가정에서 돌보기 어렵거나 학대받아 분리가 필요한 아동을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맡아 돌보는 제도다. 이씨 부부에게는 이미 20대 친자녀 둘이 있지만, 위탁아동을 가족으로 맞아 다시 육아를 하고 있다. 넷이었던 가족이 여섯으로 불어났다. 장녀는 올해 24세로 대학에 다니고 한 살 터울인 둘째는 군 복무 중이다. “처음에는 입양 전 위탁모를 했어요. 큰애 둘이 중학생이 됐을 때 위탁모를 시작했는데 위탁으로 키우던 아이들이 다른 가정으로 입양을 가게 돼 그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더라구요. 가족 모두가 그리워했어요.” 이씨는 그때 받은 상처가 워낙 커 입양 전 위탁을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아이가 행복해하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좋아 다시 아이를 맡아 기르고 싶었다”고 한다. 가정위탁을 알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문의해 가정위탁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아이를 데려올 채비를 찬찬히 갖췄다. “아이를 데리러 가정위탁지원센터에 갔는데, 글쎄 9개월 된 아이가 11㎏인 거예요. 건강하고 밥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남편과 둘이서 아이 먹는 것만 보며 ‘너무 예쁘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데려온 작은 남자아이가 어느새 아홉 살이 됐다. 어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순전히 아이가 좋아서 가정위탁을 시작했고, 아이들이 이씨 생활의 중심이자 기쁨이 됐다. 이씨는 셋째를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볼 계획이다. 위탁아동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만 18세가 되면 위탁가정을 나와 독립해야 한다. 이씨는 “친엄마가 데려갈 형편이 되지 않아 18세까지 내 자식으로, 내 손으로 키우기로 했다. 아이가 독립해도 계속 왕래하며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셋째는 18세 독립 때까지 내 자식으로 키울 것 이씨는 2년 전 셋째에게 가정위탁 사실을 조심스럽게 얘기해 줬다. “아들이 일곱 살일 때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가 질문하고 제가 대답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셋째는 엄마가 낳은 아이는 아니야. 낳아 준 엄마는 따로 있어’라고 얘기해 줬어요. 아이가 워낙 순하고 착해서 그런지 그 사실을 잘 받아들였어요.” 이씨의 친자녀인 첫째와 둘째는 엄마 아빠의 성격을 타고나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할지 예측이 가능했지만, 셋째와 넷째는 백지상태에서 만나 육아를 시작한 터라 알아가는 과정이 설레기도 하고, 때로는 어렵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셋째, 넷째 두 아이 모두 원래 가정의 부모와 연락이 닿고 있다. 셋째는 딱 한 번 친엄마를 만났다. 이씨는 “아이가 친어머니를 보고 싶어 해서 센터를 통해 엄마를 만나게 해 줬어요. 그때 아이가 어머니를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셋째에게 ‘(친)엄마 보고 싶으면 언제든 얘기해’라고 했지만, 아이가 ‘아니 엄마 나는 지금이 좋아’라고 하더라”고 했다. 지난해 가족이 된 넷째는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원가정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매달 친엄마를 만나고 있다. 이씨는 “언젠가 우리 넷째가 친부모에게 돌아갈 거라고, 헤어질 시기가 올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지만, 헤어지는 것에 대해 자꾸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헤어짐을 말하는 이씨의 목소리가 아련했다. 이씨는 “아이가 원가정으로 복귀하면 그때 또 다른 아이를 맡고 싶다”면서 “나이 쉰이 넘어도 힘 닿는 데까지 아이들과 지냈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해 줘야 할 것은 느는 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지원금은 적지만, 양육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이미 첫째와 둘째가 성인이 돼 셋째, 넷째 아이들 양육비는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월 받는 지원금은 아동 1명당 총 90만원 정도다.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가 50여만원, 가정위탁아동 양육보조금이 30만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결연후원금 10만원 등이다. 훗날 아이가 독립할 때 자립금으로 주려고 이씨는 매달 적금도 들고 있다. 넷째 아이의 육아에는 온 가족이 동참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50대 후반 남편이 아이 기저귀 가는 것부터 업고 달래는 것까지 도맡아 한다. 이씨는 “남편이 마트에 갈 때도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고 항상 안아 준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으려 하고 본인 손으로 분유를 먹이고 출근한다”며 웃었다. 친자녀인 첫째와 둘째도 동생들을 반겼다. 이씨는 “큰애인 딸이 많이 도와줬다. 셋째가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직장 때문에 바쁘게 왔다갔다하니까 고등학교 다니던 딸이 동생을 돌봤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셋째가 학교에 가기가 어려워지면서부터 이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는지 물었다. 이씨는 곧바로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는 “제 애들처럼, 할머니가 손주에게 느끼는 것처럼 마냥 이뻤다. 모든 행동이 사랑스러웠다. 워낙 그러다 보니 심지어 주변에서는 할머니가 손녀 키우듯이 하지 말라고도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셋째의 유치원 졸업식을 꼽았다. 이씨는 “우리 셋째가 유치원을 졸업하며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을 때 언제 저렇게 컸나 생각하다 눈물이 다 나더라”고 말했다. 이씨는 종종 주변 사람에게서 ‘내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아이까지 맡아 키우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애들과 지내는 기쁨과 애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좋은 일을 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답한다고 했다. 그는 “셋째가 너무 애교가 많은데, 이 예쁜 모습을 우리만 봐서 친엄마에게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씨의 바람은 아이들이 남부럽지 않게 성장해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녔으면 하는 욕심에 학원도 보내고 공부를 가르쳤는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잠시 욕심을 내려놨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보살펴 당당하게 독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아동은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자라는 게 좋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가정위탁보호율은 24%에 불과하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 10명 중 2명 정도만 위탁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가정위탁보호율을 2024년 3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가정위탁을 처음 시작하려는 가정에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냐고 물었다. 이씨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내 아이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일관성을 갖고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를 좀더 이해하고 사랑을 많이 주면서 키웠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아이도 위탁부모들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이씨는 “최근에는 가정위탁을 하려는 분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랑으로 키우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서로 사랑도 나눌 수 있다. 많이들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학대 피해 아동 돌볼 전문교육도 받고 있어 이씨는 학대피해 아동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도 돌볼 수 있도록 전문가정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2018년 일반가정 위탁아동 913명 가운데 학대·방임 피해아동은 249명, 지능지수가 낮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아동은 78명, 36개월 미만 영아는 94명이다. 이 아이들을 돌보려면 전문적인 양육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는 “학대받은 아이도 일반 가정에 머물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상처를 보듬어 주고 치유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4년부터 매년 5월 22일을 가정위탁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친부모와 위탁 두(2) 가정에서 내 아이와 위탁 아이 2명을 잘 키우자는 의미다. 지난해 기준 가정위탁 보호아동 수는 9903명이다. 조부모의 대리양육이나 친인척 위탁을 제외한 일반가정 위탁아동은 962명이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신세계 정용진·정유경 남매, 강남서 럭셔리 호텔 맞대결

    신세계 정용진·정유경 남매, 강남서 럭셔리 호텔 맞대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강남 럭셔리 호텔 시장에서 맞붙는다. 18일 신세계그룹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6성급인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이하 조선팰리스)을 오는 25일 오픈한다. 조선팰리스는 정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자회사로 호텔 사업을 총괄하는 조선호텔앤리조트가 네 번째로 선보이는 자체 호텔 브랜드다. 이 호텔과 멀지 않은 반포에 동생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이 센트럴시티를 통해 메리어트인터내셔널에 위탁운영 방식으로 소유한 JW메리어트 호텔이 있어 그룹 내 계열사 간 호텔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다.조선팰리스는 총 254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격대는 1박에 50만~60만원부터 1600만원을 호가한다. 뷔페 레스토랑은 일요일 중식 기준 15만원으로 국내 호텔 뷔페 중 최고가다. 두 호텔 모두 강남 VVIP 고객을 타깃으로 하고 있고, 객실, 식당 등 이용 가격이 비슷하게 책정돼 있다. 정 부회장은 정 총괄사장과 ‘남매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호텔 사업 부문을 정 부회장의 이마트부문 산하로 정리했다. 정 부회장은 미래 먹을거리로 호텔 사업을 점찍고 조선팰리스를 포함해 반년 여 만에 ‘그랜드조선 부산’(2020년 10월), ‘포포인츠바이 쉐라톤 서울명동’(10월), ‘그래비티 서울 판교 오토그래프 컬렉션’(12월), ‘그랜드 조선 제주’(2021년 1월) 등 5곳의 호텔을 선보이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1996년 26세의 나이로 조선호텔에 입사해 호텔 사업에 먼저 몸담은 정 총괄사장은 오는 8월 대전신세계 엑스포점 옆에 신세계백화점의 자체 호텔 브랜드인 ‘오노마’(5성급)를 개관하는 등 호텔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다만 사업은 코로나 사태로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지난해 매출은 1490억원으로 전년 대비 28.7% 줄었고, 영업손실은 706억원으로 전년 대비 469.3% 적자폭이 커졌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최대주주인 이마트로부터 두 차례 유상증자 통해 2800억원을 조달받기도 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시작부터 꼬이는 최저임금 논의… 민노총 불참 ‘반쪽 회의’

    시작부터 꼬이는 최저임금 논의… 민노총 불참 ‘반쪽 회의’

    2차 전원회의도 1차처럼 평행선 달려노동계 ‘1만원 이상’ 고수 강경 입장경영계 ‘코로나 위기 동결·삭감’ 맞서최종 의결까지 한 달여간 험로 예상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부터 꼬이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18일 2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했지만 민주노총 불참으로 ‘반쪽 회의’가 됐다. 최종 의결까지 앞으로 한 달여간 험로가 예상된다. 최임위는 전문위원회로부터 생계비와 임금 수준 등 기초자료에 대한 심의 결과를 보고받고 다음달 15일 열리는 제3차 전원회의부터 최저임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다음달 초까지는 전문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심의에 필요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에 대한 심사가 이뤄진다. 노사는 지난달 1차 회의 때처럼 이날도 평행선을 달렸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1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연속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기록한 만큼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최저임금이 또다시 저율로 인상된다면 그동안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존중사회를 외친 현 정부에 대해 냉철한 평가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고려해 내년에도 동결 또는 삭감해야 한다고 맞섰다. 최저임금은 관련 법에 따라 8월 5일까지 고시해야 하며, 이의 제기 절차를 고려하면 7월 중순까지는 의결을 마쳐야 한다. 하지만 올해 심의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여 시일 내 의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전원회의 1시간 전 입장문을 통해 불참을 통보하고서 회의장 밖에서 집회를 열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 불참 이유로는 노동계가 최임위 공익위원 9명 전원 교체를 요구했는데도 정부가 박준식 위원장과 권순원 위원(공익위원 간사)을 포함한 8명의 유임을 결정한 점,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됐는데도 노동자위원 정수를 기존처럼 한국노총 5명, 민주노총 4명으로 한 점 등을 들었다. 노동계는 지난 2년간 공익위원들이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결정했다며 공익위원 전원 교체와 구조 개선을 요구해 왔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이 논의해 결정한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9명씩 동수라서 사실상 공익위원 9명이 ‘캐스팅보트’를 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깎은머리 마음에 안들어”…中 9세 손님 신고에 이발소 경찰 출동

    “깎은머리 마음에 안들어”…中 9세 손님 신고에 이발소 경찰 출동

    중국 이발소에 공안이 들이닥쳤다. 12일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구이저우성 안순시의 한 이발소에 손님 신고를 받은 공안이 출동했다고 보도했다. 10일 누나와 이발소를 찾은 9살 소년은 깎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평소 머리 모양에 대한 자기만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던 터라, 철 지난 머리 모양이 매우 못마땅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소년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관련 영상에는 이발소 의자에 앉은 소년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부짖던 소년은 급기야 공안에 이발사를 신고하기에 이르렀다.일단 현장에 출동한 공안은 긴급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 동생을 잘 달래보라고 소년의 누나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머리를 다시 손질하는 쪽으로 이발사와 타협해 보라고 타일렀다. 또 신고 전에는 항상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사소한 일에는 경찰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년의 누나는 까탈스러운 동생이 예상치 못한 머리 모양에 화가 나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전했다. 어린 꼬마가 머리 모양 때문에 이발소를 신고했다는 소식에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4일 ‘별난 중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관련 소식을 엮어 전했다. 현지인들은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아이가 그런 문제로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주변 어른들은 무엇 하고 있었느냐”고 꼬집었다. 머리 모양과 관련된 ‘별난 중국’ 사례는 3년 전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산둥성 더저우의 한 중년 남성은 집 근처에서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용실에 배설물을 투척해 유치장 신세를 진 바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하얼빈 日영사관 습격… 잊혀진 사회주의 계열 ‘백마 탄 여장군’

    경남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생가가 있던 곳은 문화광장으로 바뀌었고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시민들이 묘소를 찾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언니와 여동생의 후손들이 경기 이천과 경북 상주에 살고 있음이 최근 확인됐다. 김명시가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계열, 즉 좌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서훈을 수차례 거부했다. 친인척들은 숨어 지내다시피 했다. 취업과 해외여행에도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김명시는 일제강점기에 중국 공산당과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했고 광복 후에는 부녀운동에 앞장섰다. 마산에서 김명시를 기리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김명시의 생가에서 그가 다녔던 성호초등학교로 가는 오동동 골목길을 벽화로 단장한 것도 그 일환이다. 김명시와 관련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정도밖에 없다.조용한 아침에 찾은 오동동 골목은 도심인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그라피티 작가가 그렸다는 벽화에서 김명시는 경찰복을 입고 진돗개를 붙들고 있어 엉뚱하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백마 탄 여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명시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화의 뜻이 백마 대신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시민들을 지켜 준다는 것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생가가 있었다는 오동동 문화광장(실제로는 동성동)에는 표지판만이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시멘트와 보도블록으로 덮어 버린 광장에서 김명시가 나고 자란 곳임을 느낄 수는 없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린 김명시는 중국 대륙에서 대일 항전에 참전해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이다.” ●오빠·남동생도 좌익 항일투사로 옥살이 김명시는 1907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89번지에서 다섯 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봉권은 일찍이 사망했고 어머니 김인석이 자식들을 키웠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했지만, 마산 3·1 만세운동에 앞장서다 붙잡혀 고문을 당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했다. 오빠 김형선과 남동생 김형윤도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사로 모두 옥살이를 했다. 김형선은 1924년 마산 지역에 공산당 지부를 세웠고, 김형윤은 1930년대에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동조합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3월 김명시는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세상에서 견문을 넓히고자 서울로 갔다. 배화고등보통여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시를 사회주의의 길로 이끈 건 오빠 김형선이었다. 조선공산당이 결성되기 한 해 전 마산에서 공산당을 조직한 김형선은 사회주의 혁명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명시는 이듬해 7월 김형선이 활동하던 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에 들어가 마산 제1야체이카(사회주의의 세포 조직)에 배속됐다. 더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고려공청의 모스크바 유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그해 10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공산주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었다. 유학 동기생은 모두 21명이었는데 조봉암의 부인인 김조이, 조봉암의 동생 조용암,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중의 1명인 고명자가 있었다. ● 친인척들 숨어 지내고 취업·해외여행 제약 1927년 6월 김명시는 공산대학을 중퇴하고 중국 상하이로 갔다. 중국공산청년단 상하이한인지부 결성이라는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하이 거리는 장제스의 쿠데타로 공산주의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김명시는 조봉암과 홍남표를 도우며 지부를 만들었다. 김명시는 항일투쟁도 병행했다. 1928년 6월 각국 식민지 민족과 중국인 운동가 300여명과 피압박민족반제동맹을 조직했다. 이듬해 10월에는 홍남표와 만주의 길림성 아성현으로 가서 한인 당원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켰다. 반일동맹을 조직하고 기관지 ‘반일전선’을 제작하는 것도 김명시의 몫이었다. ●일제 만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 조직 1930년 5월 30일 밤 12시. 김명시가 이끄는 300여명의 한인 무장대가 하얼빈 일본영사관과 경찰서 등을 습격했다. 독립운동가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영사관이었다. 김명시는 일제의 추적을 뿌리치고 홍남표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흑룡강을 넘고 치치하얼과 톈진을 거쳐 상하이로 귀환, 활동을 이어 갔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무대는 국내로 옮겨졌다. 국내 노동 현장 잠입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김명시는 1932년 3월 중국공산당 본부의 지령을 받아 여성 노동자 조직 결성을 위해 인천으로 숨어들었다. 전단을 비밀리에 배포하고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일제의 감시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고명자에게서 40원을 얻어 밤낮을 걸어 신의주로 탈출했지만 그곳에서 체포됐다. 동지의 배신 때문이었다.김명시는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주모자로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기소돼 미결 기간까지 합쳐 7년의 옥살이를 한 뒤 1939년 출옥했다. 스물다섯에서 서른두 살까지 꽃다운 나이를 옥중에서 보냈다. 조선공산당 재건 총책이었던 오빠 김형선은 1933년 7월 서울 영등포에서 체포돼 징역 8년을 선고받아 광복이 돼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사상범 감시는 엄중했다. 이를 뚫고 김명시는 수만 리 길을 헤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찾았다. 부녀복무대의 지휘관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활동을 펼치고 톈진과 베이징 등 일본 점령 지구에 파견돼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때 김명시는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다. 진짜 백마를 탔다기보다는 김명시를 흠모했던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을 것이다. 어느 신문은 김명시를 ‘조선의 잔다르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광복 후 무정과 종로 거리 개선행렬 광복이 되자 김명시는 북으로 가지 않고 오빠 김형선과 박헌영, 홍남표 등 ‘화요계’가 활동하고 있는 서울로 왔다. 조선의용군 총사령 무정과 함께 1945년 11월 조선국군준비대 전국대표자대회에 참석하며 이름을 알렸다. 종로 거리 개선 행렬에서 김명시가 무정의 뒤를 따라 말을 타고 지나갈 때 시민들이 “김명시 장군 만세”라고 외쳤다고 한다. 1946년 11월 21일자 독립신보에 실린 김명시 인터뷰 기사 서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크지 않은 키, 검은 얼굴, 야무지고 끝을 매섭게 맺는 말씨, 항시 무엇을 주시하는 눈매, 온몸이 혁명에 젖고 혁명 그것인 듯 대담해 보였다.”김명시의 국내 활동도 활발했다. 12월 22일 개최된 조선부녀총동맹 결성대회에 참가하고 조선부녀총동맹의 선전부 위원으로 선출됐다. 1947년 6월 전라도에서 발생한 우익테러사건과 관련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조사단원 일원으로 활동했고 민주여성동맹 대표로 미군정청을 방문,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에게 반탁시위 항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김명시는 1949년 9월 16일 서울 경찰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한 달도 안 된 10월 11일자 신문에 ‘북로당 정치위원 김명시, 부평서 유치장서 자살’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0월 10일 오전 5시 50분쯤 자기의 겉저고리를 찢어 유치장 안에 있는 약 3척 높이의 수도관에 목을 매고 죽었다”는 게 당국의 발표였다. 하지만 고문치사인지 자살인지, 사인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이는 겨우 42살이었다. 외롭고도 비극적인 최후였다. 오빠 김형선은 건국준비위원회 교통부 위원, 남로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1950년 9월 북으로 올라가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남양유업 가족 2명 등기이사직 사퇴에도 ‘경영쇄신의 핵심’ 지배구조 개선은 요원

    남양유업 가족 2명 등기이사직 사퇴에도 ‘경영쇄신의 핵심’ 지배구조 개선은 요원

    ‘불가리스’ 논란으로 사퇴한 홍원식(71) 전 남양유업 회장 일가가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지만 경영쇄신을 위한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선은 요원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남양유업에 따르면 홍 전 회장은 남양유업 비상대책위원회의 지배구조 개선 요청에 대해 “현 이사회 내에 대주주 일가인 지송죽, 홍진석 이사 2명은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확대를 이사회에 요청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대주주 지분구조까지 새로운 남양으로 출범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배제된 두 이사는 홍 전 회장의 모친인 지송죽(93) 이사와 장남인 홍진석(45) 이사다. 홍 이사는 지난달 말 회삿돈 횡령 혐의로 보직 해임됐다. 홍 전 회장의 답변은 자신이 회장직에서 물러난 지 13일 만, 비대위 출범을 위한 이사회 소집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홍 전 회장 자신의 등기이사 사퇴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데다 정작 경영쇄신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동안 이사회 구성원 6명(사내이사 4명·사외이사 2명) 중 3분의2가 오너 일가 측이었는데 이번에 2명만 빠진 것이다. 남양유업은 홍 전 회장(지난해 말 기준 51.68%)과 부인, 동생, 손자 등 일가 주식을 합하면 지분이 53.08%에 달한다. 홍 전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경영 쇄신을 약속하고 이를 위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지만 출범 열흘째가 되도록 비대위 구성조차 마치지 못했다. 이달 7일 세종공장의 정재연 공장장(부장)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렸으나 비대위원 면면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쇄신안을 마련할 수 있는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달 3일 사임 의사를 밝힌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의 후속 인사에 대해서도 홍 회장은 언급이 없었다. 사실상 현상 유지일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비대위는 “소비자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강도 높은 혁신을 위한 세부 조직 인선과 외부 자문단 구성 등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광주 꼭 닮은 미얀마에 가슴 아려 ‘연대의 주먹밥’이라도 보냅니다”

    “광주 꼭 닮은 미얀마에 가슴 아려 ‘연대의 주먹밥’이라도 보냅니다”

    오월어머니회 성명·기부 이어 도시락 응원“마음으론 미얀마 가서 함께 싸우고 싶어”5·18부상자회 등도 미얀마 사태 알리기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과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과 연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 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중고차 사기로 죽음 당해” 60대 울분…靑 청원도 등장 [이슈픽]

    “중고차 사기로 죽음 당해” 60대 울분…靑 청원도 등장 [이슈픽]

    “온몸에 문신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1톤 트럭 강제로 대출받아 샀습니다” 지난 2월 충북 제천에서 숨진 채 발견된 60대 남성 최모씨. 그가 남긴 휴대폰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동생들과 홀어머니를 부양해온 최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중고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비석을 설치하는 일을 하던 그에게 1톤 트럭은 밥벌이에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최씨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마땅한 거처도 없어 마을회관 공동시설에 세 들어 살 만큼 형편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5일 인터넷으로 중고차 매물을 알아보던 최씨는 시세의 절반인 300만원짜리 1톤 트럭을 발견한다. 이 차량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은 최씨는 수도권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는다. 그러나 가진 돈을 끌어모아 착실히 일해보겠다는 그의 꿈은 이내 물거품이 된다. 그곳에서 온몸에 문신한 남성들이 최씨를 8시간가량 차량에 가두고 무작정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최씨가 남긴 유서에 따르면 ‘백 번도 넘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느라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실제로는 200만원에 불과한 중고차를 700만원에 사도록 강요했다. 차량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욱이 최씨가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살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사기단은 대출까지 받아 낡은 중고차를 사도록 최씨를 협박했다. 결국 최씨는 빚을 지고 차량을 구매한 뒤 억울함에 애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의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중고차 허위매물을 근절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60대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허위매물을 근절시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17일 오후 6시 기준 3222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중고차 사기단은 피해자의 핸드폰과 면허증을 빼앗고 200만원짜리 차량을 700만원에 강매했다”며 “중고차 사기가 근절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강화해 달라”고 적었다.앞서 충북경찰청은 인터넷에 허위로 중고차 매물을 올려 구매자를 유인한 뒤 성능이 떨어지는 차량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강제로 판매한 A(24)씨 등 4명을 구속하고, 일당 2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팀장과 텔레마케터, 출동조, 허위 딜러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해 구매자들을 속였다. 구매자들이 차량 구매를 거부하면 위압감을 주거나 귀가하지 못하도록 따라다녔다. 또 다른 차량을 보여준다며 차에 태워 장시간 끌고 다니며 위협을 가해 자포자기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중고차 매매집단이 이러한 수법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피해자 50여명에게 6억원 상당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엔 언제쯤 광주처럼 민주화 올까요”

    미얀마가 광주에게 군인의 총부리가 시민들을 향했다. 전남 나주·화순·담양·장성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맞서려고 광주에 모인다. 1980년이 아닌 2021년 오늘의 이야기다.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인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종합터미널이 있는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촛불을 켠다. 본국 미얀마에서 군부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촛불 시위의 물꼬를 튼 것은 묘네자(38)다. 지난 2006년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광주에 정착한 그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초부터 홀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묘네자의 소식이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면서 300여명이 모였고 ‘광주미얀마네트워크’가 결성됐다. 매주 적어도 50명이 넘는 미얀마인이 국민통합정부(NUG)를 지지하는 팻말과 촛불을 들고 광장을 지킨다. 그렇게 3300㎞ 떨어진 미얀마에서 군부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모두의 마음속에 41년 전 5월 광주의 풍경을 소환 중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 시민들의 지지는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전남대에서 공부 중인 양곤 출신 미얀마 유학생 A(26)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미얀마 상황의 심각성을 얘기하면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광주 사람들은 깊이 공감하고 도울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서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아들은 얼마 전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친구의 가족들은 체포됐다. 나도 고국으로 돌아가면 체포될까 두렵지만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미얀마네트워크 대표인 묘네자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5·18 관련 도서를 읽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연대의 의미로 주먹밥을 나눴듯 미얀마에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함께 버티기 위해 음료수와 라면 등 먹을거리를 나누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이 수월해졌고, 유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군부의 무력 진압이 거세지고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지쳐 가고 있다. 묘네자는 “5·18 진압 작전 때 시민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유족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화해의 포옹을 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미얀마에선 41년이 지나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그는 “포스코 등 외국 기업과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면 미얀마인들을 하루빨리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에에자(57)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광주처럼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오늘도 되뇐다. 양곤대학교에 다니던 그와 함께 8888항쟁(1988년 8월 8일)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교수와 교사가 됐고,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에 동참해 도피생활 중이다. 군부가 은행을 장악해 돈줄이 끊긴 친구들을 돕기 위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미얀마인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태국 등 국경을 거쳐 송금한다. 더에에자는 “88년만 해도 지금처럼 군부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영아를 데려가는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의 상황이 훨씬 어렵지만 젊은 미얀마 세대는 강하고 슬기롭다. 광주가 이겨냈듯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가 미얀마에게…“같이 싸우고픈 마음 담은 주먹밥 보냅니다”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에게 주먹밥은 ‘연대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5·18 41돌인 올해는 군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나선 미얀마인들을 위한 주먹밥이 빚어졌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오월어머니회 등 오월단체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재한 미얀마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담아 주먹밥을 보냈다. 17일 서울신문와 인터뷰한 박행순(71)씨는 지난 2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규탄 집회에 참석해 미얀마인들에게 따뜻한 주먹밥을 건넸다. 그는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고 박관현 열사의 셋째 누나다. 옥중 고문을 견디며 단식투쟁을 하던 동생이 1982년 숨지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어머니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던 그는 2014년 미얀마를 찾기도 했다. 그 곳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 역사에 기록된 1988년 8월 8일 ‘8888항쟁’ 유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박씨는 최근의 미얀마 상황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미얀마 어머니들은 마냥 슬퍼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진을 어루만지며 ‘너를 대신해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던 강인한 여성들이었다”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전두환의 사과를 촉구하고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모습과 꼭 닮았다고 느꼈는데, 또 쿠데타가 일어나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를 비롯한 오월어머니회 회원들은 미얀마 시민에 연대하는 성명을 내고, 쌈짓돈을 모아 100만원을 광주 미얀마인들이 모인 ‘광주 미얀마 네트워크’에 기부했다. 광주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은 5·18기념재단 등 광주 시민단체들이 모인 미얀마 광주연대 발족으로 이어졌다. 이명자(71) 오월어머니회 관장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이 석달째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 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미얀마로 같이 가서 싸우고 싶다”고 전했다. 오월 단체들은 오는 23일 광주에서 회의를 여는 재한미얀마인들에게도 주먹밥 도시락을 전할 예정이다. 버스기사였던 남편을 계엄군의 무자비한 구타로 잃은 정성희(67)씨도 “미얀마 군인들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면 애기 아빠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떨린다”면서 “주먹밥이라도 보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는 이날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했다. 부상자를 옮기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을 복부에 맞은 뒤 기적처럼 살아난 김광호(61)씨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김씨는 “1980년 광주 경찰들은 시민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면서 “미얀마 군인들도 군인의 본분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시민들을 위해 ‘불복종 운동’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드 미얀마…“예술로 미얀마를 지지합니다”군홧발에 짓밟힌 채 피를 흘리는 청년, 쓰러진 사람을 품에 안고 군부에 맞서는 시민들…. 이처럼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1년 5월의 미얀마가 공유하는 참상과 저항정신을 그려낸 전시와 공연이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 전남대에서 진행되는 ‘위드 미얀마’ 전시회가 그중 하나다. 미얀마 작가 20명을 포함해 국내 작가 43명, 영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해외 작가 7명을 포함해 73명의 작가가 작품 98점을 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정숙(58)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에 합류한 오빠를 찾으러 집 밖으로 나섰다가 계엄군을 피해 골목으로 뛰어든 순간이 생생하다.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스피커에서 나오던 “죽어가고 있다. 살려 달라”는 어느 소녀의 외침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깊은 부채감을 남겼다. ‘상처 속에 핀 꽃-민주화’처럼 5·18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얀마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기록한다는 소식을 접한 노 작가는 지난 3월부터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새 미얀마 군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수배를 받거나 연락이 끊긴 작가도 생겼다. 한국의 작가들은 그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작품 전시에 매달렸다.작가들은 시민들의 연대와 예술의 힘이 총칼보다 강하다고 믿는다. 노 작가는 “한 미얀마 작가는 민주화 운동의 피가 다음 세대의 물방울로 바뀌는 작품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굳센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고경일 작가는 고 이한열 열사와 세 손가락을 들고 있는 미얀마 시위자를 연결해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미얀마를 살려내라’로 재탄생시켰다. 주최 측은 미얀마를 응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온라인 아카이브로 남길 계획이다. 올해 5·18 전야제도 미얀마에 대한 연대 메시지를 보냈다. 1부에는 광주가 아닌 도움이 절실한 미얀마의 이야기를 배치했고, 유튜브로 중계되는 공연에는 미얀마어 자막이 달린다. 총연출을 맡은 남유진(48) 감독은 “1980년 광주가 해외 교포나 외신 기자들의 도움으로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미얀마 시민들이 외롭지 않도록 광주에서,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익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한 미얀마 작가는 노 작가를 통해 하고픈 말을 전해 왔다. “우리 작품들은 매우 어렵게 전시됐고,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계속 지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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