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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 선 노점·텅 빈 상점… 유커가 만든 ‘명동 양극화’

    줄 선 노점·텅 빈 상점… 유커가 만든 ‘명동 양극화’

    노점상 “쉴 시간도 없네요” 상인회 “가게 80% 문 닫을 판” 상인들 “노점, 세금 안 내고 불법” 노점상 “우리 덕에 관광객 늘 것” “경기가 안 좋다고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중국인 관광객들 덕분에 장사가 아주 잘돼요.” 지난 1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명동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모(45)씨는 빠르게 음식을 뒤집으며 “말할 시간도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옆에 있는 직원은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5명의 중국인 관광객에게 음식을 싸주었다. ‘가리비 버터구이’, ‘문어 꼬치’, ‘바나나튀김’, ‘딸기 찹쌀떡’ 등 이색 노점상 앞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반면 한우전문점, 해물전문점 등 식당들이 즐비한 먹자골목은 너무나 한산했다. 한창 저녁시간인데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집도 있었다. 호객 행위를 하는 직원은 음식점 안에서 가게 밖 골목만 바라봤다. 명동에서 20년간 소고기 구이집을 운영해 온 홍혜수(66·여)씨는 “사람들이 노점상에만 가고 식당은 아예 안 찾아서 매출이 한창 때인 3년 전의 3분의1 수준”이라며 “이대로라면 곧 가게를 접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서울 도심의 ‘외국인 관광 1번지’인 명동이 중국인 관광객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 지역 상권의 표정이 극명한 양극화로 갈리고 있다. 노점에만 손님이 몰리면서 상점들의 매출은 급감했다. 상점 주인들은 “일본인들의 자리를 중국인들이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동희 명동상인회 사무국장은 “일본 사람들은 노점에서는 간단히 간식 정도만 먹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반면 중국 사람들은 노점에서 완전히 식사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명동 음식점의 80% 정도는 지금 심각한 상황이고, 폐점을 고민하는 사장들도 많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13년부터 일본인을 앞질렀다. 동시에 2013년을 기점으로 중구의 음식점 수도 줄기 시작했다. 2011년 2917개에서 2013년 3062개로 늘었지만 2014년에는 3044개로 감소했다. 중구 관계자는 “현재 200여개에 이르는 명동 노점상 중 80%인 160여곳이 음식을 팔고 있다”며 “예전에는 머리핀이나 휴대전화 케이스를 파는 액세서리 노점이 많았지만, 그 자리를 음식 노점이 빠르게 대체한 상황”이라고 했다. 식당과 노점상 간에 희비가 엇갈리다 보니 충돌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삼겹살을 판매하는 노점상에 대해 상인회가 업종이 겹친다면서 항의를 했고, 결국 노점상은 품목을 바꿨다. “세금을 내지 않고 점포보다 수익을 더 얻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상인회 측은 서울시가 현재 푸드트럭의 영업 장소를 명동 등 관광특구까지 확대하는 ‘음식 판매 자동차 영업장소 및 관리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데 이렇게 되면 상점들의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자신들 때문에 명동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상점에 들어가는 관광객들도 덩달이 늘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중구 관계자는 “노점상이 불법이지만 생계가 걸린 만큼 양성화해 관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올해 안에 1명당 1개의 노점을 허용하는 노점 실명제를 도입해 ‘문어발식 기업형 노점’을 퇴출할 계획이다. 글 사진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소나무재선충병 엉터리 방제 산림업체 등 적발

    울산지방경찰청은 17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엉터리로 하고 자치단체로부터 사업비를 받은 A산림업체 대표 문모(49)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문씨에게 국가자격증을 빌려준 박모(27)씨 등 산림관련 기술자 6명과 현장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공무원 1명을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는 2014년 울주군 온산읍 동상지구 재선충병 방제사업을 낙찰받아 1930그루를 방제하기로 했으나 1370그루만 처리했다. 이미 벌목한 나무 밑동을 다시 자르고 나서 새로 벌목한 것처럼 사진을 찍어 군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벌목한 나무의 훈증, 보관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문씨는 병충해 방제 산림업체를 경영하려면 7명 이상의 산림경영기술자를 보유해야 하지만, 1명만 고용하고 나머지는 박씨 등으로부터 1명당 800만원 정도 주고 자격증을 빌린 뒤 4대 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으로 고용한 것처럼 꾸몄다. 실제 방제작업은 기술이 전혀 없는 일용직을 고용해 시공했다. 울주군 담당 공무원은 업체의 자격과 시공을 점검하지 않고 공사완료 확인을 해준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문씨는 2014년 재선충병이 퍼졌지만, 담당 공무원 수가 적어 관리감독이 부실한 점을 노렸다”면서 “숲 가꾸기 등 다른 산림사업도 낙찰받아 시공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BBC “北 외화벌이 최대 수단은 조각상 등 미술품”

    BBC “北 외화벌이 최대 수단은 조각상 등 미술품”

    북한의 외화 획득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거대 조각상 등 선전용 미술품 수출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16일 ‘북한의 최대 수출품-거대 동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 미술 창작 단체인 만수대창작사의 미술품 수출을 조명했다. BBC는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북한 제품은 많지 않지만 유일하게 성공적인 수출품은 ‘예술’이라며 특히 아프리카에서 북한의 문화적 영향과 성과가 두드러진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만수대창작사의 작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BBC는 전했다. 1959년 설립된 만수대창작사는 4000여명이 소속돼 거대 동상과 벽화, 현수막, 포스터 등 북한 내부의 선전물을 제작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외교용 선물로 미술품을 해외에 내놓기 시작했다. 만수대창작사가 눈독을 들이는 시장은 아프리카다. 가장 유명한 수출 작품은 2010년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세운 청동 조각상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이다.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이 대형 조각상은 높이가 약 50m로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보다 높다. 당시 대통령이 조각상의 인물이 너무 아시아인처럼 보인다고 불만을 나타내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최장기 집권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92) 짐바브웨 대통령의 사후 기념물로 쓰일 무가베 대통령의 거대 동상 두 개도 완성돼 보관 중이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 외곽에 있는 독립 투쟁 영웅 기념비도 만수대창작사의 작품이다. 북한이 아프리카에서 많은 작품을 수주할 수 있었던 이유로 BBC는 저렴한 제작비와 ‘크기’로 승부하는 작품 스타일을 꼽았다. BBC는 “중국이나 러시아도 이제 무조건 거대하기만 한 기념물은 만들지 않는다”면서 “(북한 예술품의) 매력은 명백하고 당연하게도 그 크기가 전부”라는 예술 비평가 윌리엄 피버의 말을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월드경매+] 로댕 ‘입맞춤’ 미니어처 청동상, 30억여원에 팔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입맞춤’을 축소 제작한 미니어처 청동상이 16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서 220만 유로(약 30억 원)에 낙찰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번에 낙찰된 청동상은 로댕이 사망한 지 10년 째인 1927년에 그가 생전에 만들어둔 미니어처 주형(거푸집)을 가지고 높이 85cm로 제작한 것. 로댕이 1885년에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81.5cm짜리 석상보다는 절반가량 작다. 이 석상은 현재 파리 로댕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로댕의 ‘입맞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만큼 유명해 첫 주조 이후 지금까지 27회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에 나온 작품은 프랑스의 미술품 거래상인 장 드 루아즈가 소유하고 있던 5점의 청동상 가운데 한 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예상가보다 10% 높은 가격에 낙찰돼 로댕 사후 제작된 미니어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이번 경매를 진행한 ‘비노슈 에 지퀠로’(Binoche et Giquello) 측은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낙찰받은 미국인 사업가는 이외에도 또다른 로댕 작품인 ‘영원한 봄’의 미니어처 청동상도 예상가의 2배인 69만3000유로(약 9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로댕의 또 다른 동상 3점도 예상가의 2배인 9만5000유로(약 1억3000만원)부터 19만유로(약 2억6000만원)까지 프랑스 등의 유럽 출신 수집가들에게 낙찰됐다. 이들 작품은 앞서 팔린 것보다 작은 것이다. 한편 로댕의 작품은 특성상 수많은 위조 사건에 연루돼 왔다. 특히 1997년에는 가이 헤인이라는 유명 청동상 거래상이 로댕을 비롯해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까미유 끌로델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위조한 청동상 수천 점을 만들어 유통해오다 적발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다 기차 때문이다. 일본 기차 여행이 편리한 건 여행 좀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지만,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오카야마가 이렇게 쉽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꼭 가야 할 곳이라며 기나긴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아도 좋은 동네. 느긋한 오카야마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This stop is Okayama첫 번째 역오카야마岡山 청명함, 단출함 그리고 느긋함 오카야마는 오사카와 히로시마 사이 세토내해와 접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간사이 지방, 서쪽으로 히로시마와 규슈, 남쪽으로 시코쿠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곳은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지였다. 게다가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해 땅과 바다에서 거둬들인 수확도 풍부했다. 스스로를 청명한 고장이라 칭하는 이곳은 이름처럼 자연과 더불어 느리고 풍요롭게 발전해 온 지방이다. 그러한 오카야마로 최근 외국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좋은 그 느긋함을 찾아서다. 오카야마시는 오카야마현의 최대 도시지만 도심 풍경은 단출하다. 서쪽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동쪽으로 30여분 거리 안에 오카야마의 자부심인 오카야마성과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고라쿠엔을 비롯해 다수의 미술관과 심포니홀 등 문화 공간이 흩어져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오카야마성. 영주 우키타 히데이에에 의해 1597년에 완성된 오카야마성은 아사히강을 해자처럼 두르고 솟아 있다. 본래 흐르던 강의 줄기를 바꿔 지금처럼 성을 휘돌아 나가게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영주의 권위와 힘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키다 나오이에부터 이케다 아키마사까지 총 14명의 영주가 280년에 걸쳐 성의 주인으로서 이 지역을 관할했다. 성에서 가장 높은 6층 천수각에 올라 보면 그들이 조망하려 했던 풍광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하다. 내부에는 이케다 가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성 중 드물게 검은색을 띄고 있어 우조, 까마귀 성이라는 별명도 얻은 이곳은 1945년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고, 1966년 복원해 현재 오카야마시가 관할하고 있다. 오카야마성에서 쯔루미 다리를 건너면 고라쿠엔으로 이어진다. 이바라키현의 가이라쿠엔, 이시카와현의 겐로쿠엔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과 관련한 레드 가이드 외에 여행 정보를 평가하는 그린 가이드도 펴내는데, 레드와 동일하게 그린 역시 별 3개를 최고점으로 친다. 고라쿠엔은 이 그린 가이드에서 당당하게 별 3개를 받은 곳이다. 과거 영주가 찾으면 기거하는 곳이었다던 엔요테이 안쪽의 가쿠메이칸. 다다미로 칸칸이 이어진 내부의 나무문을 열어젖히니 고라쿠엔의 풍광이 바람처럼 왈칵 밀려들어온다. 나무와 물과 바람과 하늘, 자연의 조화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감탄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두루미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간다. 고라쿠엔의 홍보담당자 미카 사카모토씨에 의하면 고라쿠엔에는 현재 8마리의 두루미가 있는데, 이들은 매일 산책길을 걷는 등 일정한 훈련을 받고 있단다. 4마리는 아직 초보이고 훈련이 잘 된 4마리가 시간에 맞춰 공원을 우아한 몸짓으로 날아다닌다는 것. 3대 정원의 명성은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약 14만2,000m2의 이 드넓은 정원은 봄의 벚꽃과 매화부터 여름의 꽃창포와 차나무,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까지 계절을 눈으로 맛볼 수 있다. 어디를 걸어도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고라쿠엔에서 가장 좋은 뷰포인트를 꼽자면 단연 니시키가오카 언덕이다. 6m 가량 올라온 인공 언덕인데 시선을 가리는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 내려다보는 전망이 고층 전망대 못지않다. ▶inside Okayama 모모타로의 전설일본 전역에서 통용되는 동화 같은 설화 모모타로 이야기가 이곳 오카야마에선 특히 자주 등장한다. 모모타로가 구술 전술된 이야기기에 이곳과 관련 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으나 오카야마가 복숭아의 고장이란 점, 유난히 물이 맑고 청명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카야마의 상징이 되었다. 오카야마 서쪽 외곽에는 모모타로 전설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일본의 고대 왕족을 모신다는 기비츠신사도 있다. 도시 곳곳에서 모모타로의 동상과 그림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맨홀 위의 모모타로가 앙증맞다. 명물 전차 오카덴 오카야마시에선 이곳의 명물 노면전차 오카덴을 타 보자. 오카야마성과 고라쿠엔에 가려면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출발해 시로시타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약 5분 남짓 소요된다. 요즘 일본에서 전차의 부활이 유행인데, 오카야마는 비록 운행 구간이 축소되긴 했지만 한 번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100년을 이어 왔다. 전차의 부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회학자들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에서 찾는다. 장년층이 속도 위주의 지하철보다 전차를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쇼핑은 이온몰 일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쇼핑몰 이온몰. 2014년 오카야마시에 개관했는데 기차역에서 도보 3분이라는 초중심지에 들어선 것이 특징이다. 지하 2층에서 7층까지 도심 속 쇼핑몰로는 꽤 큰 규모인데 패션부터 리빙, 갤러리, 다이닝까지 입점 점포도 훌륭하다. 특히 1층에 질 좋은 슈퍼마켓을 전면 배치했는데 시민은 물론이고 여행자가 이용하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This stop is Kurashiki두 번째 역 구라시키倉敷 곳간에서 꺼낸 우아한 미관지구 오카야마시를 벗어나 오카야마현으로 여행 구간을 넓히면 입소문 1순위는 단연 구라시키다. 오카야마에서 기차로 20분이면 닿는 이곳 구라시키에는 에도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 있다. 구라시키는 에도시대 초반부터 물류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구라시키강을 따라 쌀과 면화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들어섰고, 물길을 따라 배들이 물건을 실어 날랐다. 구라시키라는 도시의 이름 자체가 광, 곳간을 뜻하는 ‘구라’에서 왔을 정도. 이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구라시키 미관지구美觀地區다. 역사보존지구이자 관광지인 셈인데 다른 지역과 달리 상점가 이층에 일반 시민들이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 관광과 일상이 그윽하게 맞물려 있는 모범적인 예라 하겠다. 구라시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여, 미관지구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건너 뛴 듯 에도시대의 전통가옥과 거리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아름다운 일상용품을 전시한 구라시키 민예관, 수백년이 넘은 상인의 집을 개조한 료칸, 옛 방적공장을 개보수한 아이비스퀘어 등은 이 미관지구를 떠받치는 장소들이다. 미관지구를 풍요롭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오하라 미술관이다. 1930년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설립된 오하라 미술관은 무려 3,5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작가 목록이 모네, 로댕, 엘 그레코, 샤갈, 고갱,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세간티니, 피카소 등 놀랍도록 화려하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방적공장을 일군 오하라 마구사부로와 그가 후원했던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의 합작품이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문화 후원에 관심이 높았던 오하라 마구사부로에게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는 서양의 대작을 소장할 것을 권유한다. 1920년대 고지마 도라지로는 직접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 세심하게 작품을 선별했다. 이 과정에서 모네와 마티스에게서 직접 작품을 구입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구라시키의 자랑이 된 오하라 미술관은 그렇게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미술관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뛰어난 감식안과 선견지명은 지금껏 수많은 주민과 여행자들의 예술적 허기를 채워 주고 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대각선으로 강을 건너 내려가면 아이비스퀘어에 닿는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을 담쟁이덩굴이 싸고도는 모양이 이름 그대로다. 이곳은 옛날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하여 호텔과 레스토랑,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74년 완성되었는데 건물의 기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시설을 바꾸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가미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현지 주민들의 결혼식 야외 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161개의 객실을 보유한 아이비스퀘어호텔 역시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골조를 살리며 공사하느라 몹시 애를 먹었지만 그 덕분에 특유의 분위기를 이어 올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니까 이곳 구라시키는 과거 곳간 창고가 넘쳐나는 물류지대에서 한동안 방직공장이 즐비한 도시였다가 그 역사를 잘 보존해 오늘날 여행자를 품는 곳으로 변모된 셈이다. ▶inside Kurashiki 아기자기한 미관지구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생동감 있게 하는 것은 단연 아기자기한 가게들이다. 천편일률적인 토산품 가게가 아니라 제 개성을 뽐내는 곳들이 많다. 공업용 테이프를 생산하던 회사가 이제는 디자인 중심의 마스킹 테이프를 생산하는데 이를 활용한 체험도 가능하다. 이 밖에 과거 구라시키의 직물 생산의 전통을 재현한 가게, 다양한 디자인의 향초 공방 등이 오밀조밀 이어진다. 구라시키강의 유람선3월부터 11월까지는 구라시키강을 오가는 유람을 즐길 수도 있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버드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는 미관지구의 풍광은 또 다른 맛이다. 풍요로운 반달, 무라스즈메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자주 눈에 띄는 간식은 반달 모양의 ‘무라스즈메’다. 과거 풍요로운 곳간을 상징하듯 곡물을 활용한 전통 간식이다. 구수하면서도 달콤해 자꾸 집어 먹게 된다. 반죽을 달궈진 팬 위에 얇게 펴 부치고 그 위에 팥소를 넣어 만두처럼 덮어 내는데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3개 만들기 체험 500엔. 오카야마 대표 음식들 오카야마현의 대표 음식을 나열하자면 마마카리, 문어, 기비 당고(수수경단) 등이다. 물론 대표 과일인 하얀 복숭아와 피오네 포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중 청어과 생선 밴댕이에 해당하는 마마카리는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데, 초밥으로도 전채로도 인기다. 또 가쓰오부시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타코 샤브샤브, 문어밥으로 먹는 타코메시도 대표 메뉴다. ●This stop is Kojima세 번째 역 고지마幸島 청바지를 입은 도시 인구 7만2,000여 명의 작은 도시가 청바지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단부터 개찰구까지 청바지가 수놓아져 있고, 기차 역사 밖으로 청바지가 나부끼며, 청바지 래핑을 두른 버스와 택시가 거리를 누비는 이곳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있는 작은 마을 고지마다. 고지마는 일찍부터 방직·섬유산업이 발달해 한때 일본 학생복의 90% 이상을 생산했던 곳이다. 이곳에 청바지가 보편화된 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전파된 서양 문화와 맥을 함께한다. 그러나 고지마 관계자는 이미 그 이전 군정 시기에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들어온 청바지를 고지마의 다수가 공유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고지마의 ‘빅존’이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일본산 청바지를 생산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 원단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몹시 딱딱하고 두꺼워 고지마의 발달된 봉제기술로만 제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3년부터 일본산 원단을 직접 생산하면서 뻣뻣한 청바지 원단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고지마의 장인들은 각종 아이디어를 냈다. 기계에 청바지와 돌을 같이 넣고 돌리는 ‘스톤 워싱’도 이곳에서 개발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사쿠라지마의 가벼운 화산석이 그들이 원하는 워싱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청바지의 워싱이나 자연스러운 주름이 절로 완성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인체 곡선에 더 편안하게 맞고 더 아름다운 핏을 내는가를 장인들이 고심한 결과다. 패스트 패션이 등장하면서 고지마의 청바지 브랜드도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고지마는 질 좋은 일본산 청바지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한 해 입고 마는 나쁘지 않은 청바지가 아니라, 한번 구입하면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고급화를 추구한 것. 이는 기성품과 오더 메이드 양쪽 모두에 적용되었는데 방향 전환은 빼어난 한 수였다. 누구의 장롱을 열어도 최소 다섯 장은 들어 있을 만큼 청바지는 흔한 아이템이지만, 고작 몇 밀리미터의 차이로 핏이 미묘하고 불편한 어려운 제품이기도 하다. 고지마에서 주문할 수 있는 ‘오더 메이드 진’은 이런 개개인의 체형과 취향을 십분 이해한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템이다. 베티하우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단 선별과 패턴 제작부터 시작해, 벨트 레이블, 리벳, 단추, 스티치 등 소소한 부자재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원단도 다양해 솜을 누빈 것부터 캐시미어가 함유된 데님도 있다. 평생 패턴을 보관해 주므로 언제든 재주문도 가능하다. 품질 때문에 한 번 입어 본 사람은 다시 찾는데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대만뿐 아니라 멀리 유럽에서도 찾아온다는 게 베티 스미스의 이야기다. 인근 체험관에선 자투리 데님 원단을 활용해 핸드폰 고리나 열쇠고리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며, 아이디어 넘치는 소소한 상품 코너도 있다. ▶Travel tip 특급열차를 5일 동안 무제한으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낯선 오카야마현으로의 여행이 수월했던 건 바로 JR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덕분이다. 간사이공항에서부터 간사이 지방이 아닌 오카야마현까지 신칸센을 포함해 특급 기차를 5일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차 패스다. 성인 기준 9,000엔(국내에서 구입하면 8,500엔)으로 일본 내국인의 단순 1회 왕복 요금보다 저렴하다. 때문에 바쁜 오사카 여행 전후로 혹은 오카야마를 콕 집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카야마 공항을 연계하는 직항편도 있지만, 보다 다양한 도시를 보고 싶다면 항공편이 훨씬 다양한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이동하는 방법도 괜찮기 때문. 신오사카 1회 환승을 포함해 간사이공항에서 오카야마역까지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JR은 또 간사이공항 인근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도 연결하므로 하루를 활용해 즐기기도 좋다. USJ는 지난해 해리포터 존 개관으로 월 관람객 신기록을 갱신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대리기사 폭행’ 김현 의원 1심 무죄

    ‘대리기사 폭행’ 김현 의원 1심 무죄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대리운전 기사 폭행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김현(51·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곽경평 판사는 15일 공동폭행·공동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과 한상철 세월호 가족대책위 전 대외협력분과 부위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전 위원장·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용기 전 장례지원분과 간사에게는 벌금 1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2014년 9월 17일 0시 4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거리에서 대리운전을 거부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던 대리기사 이모(54)씨와 시비가 붙어 폭행하다 이를 말리는 행인과 목격자에게도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행인이 김 의원의 명함을 낚아채자 김 의원이 ‘명함 뺏어’라고 지시해 싸움이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러한 발언이 실제로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는 점 등을 들어 김 의원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곽 판사는 “피해자 이씨와 일부 목격자들이 해당 발언으로 싸움이 시작됐다고 진술하지만 각자 시점이 다르고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이 다르다”며 “오히려 대리기사 이씨가 사건 직후 한 인터넷 카페에 남긴 사건 정황을 묘사한 글에는 김 의원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 등이 대리기사 이씨가 현장을 떠나지 못하도록 강요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이씨의 자유 의사를 제압할 만큼의 위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 전 위원장과 김 전 수석부위원장, 이 전 간사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검찰 측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파주 ‘짚풀공예 장인’ 장춘금 할머니

    [명인·명물을 찾아서] 파주 ‘짚풀공예 장인’ 장춘금 할머니

    짚신, 꼴망태기, 멍석, 똬리 등은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었지만 어느새 사라져 갔다. 짚 또는 풀로 만든 생활용구에는 조상의 지혜와 슬기가 담겨 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볏짚이나 들풀로 만들다 보니 품 이외 비용이 들지 않았다. 가볍고 통풍이 잘돼 곡식을 담아 보관하거나 이동하기에 편리했다. 질겨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보관하기도 간단했다. 멍석은 둘둘 말고, 망태는 벽에 걸어 보관했다. 수명이 다해 버리면 땔감으로 쓸 수 있어 친환경적이었다. 우리 조상과 함께해온 이 같은 짚풀용구들은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각종 화학제품에 밀려 이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옛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페나 음식점 혹은 농경 관련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작품 한 개당 20~30일은 족히 걸려 이런 가운데 농촌에서 노인들이 치매를 예방하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취미화되면서 ‘짚풀공예품’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과거 짚풀용구는 가볍고, 질기며, 편리하면 됐으나 짚풀공예품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예술’이 더해졌다. 경기 파주, 강원 원주, 충남 아산 등 전국 각지에서 공모전도 열려 매년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루는 열전이 펼쳐지고 있다. 경기 파주시에서는 월롱면 도내4리 등 7개 마을 주민들이 겨울 농한기를 이용해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양의 짚풀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2002년 전통짚풀공예 기능보유자로 파주시 무형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된 구순의 심경임 할머니에 이어 장춘금(83)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장 할머니는 59세 때인 1992년 처음 짚풀용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논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논둑에 잘 자란 끄렁(곧고 길게 자라는 질긴 잡초의 한 가지)이 무성했어. 하두 이쁘고 탐이 나서 버리기 아까워, 낫으로 깎아서 끌고 온 경운기에 가득 실어다 말렸지. 그리곤 농사일이 끝나 한가한 농한기에 처음으로 맷방석을 만들었어.” 따로 배운 적은 없다. 15세쯤 됐을 때인가, 갓난애를 업고 아버지가 사랑채마루에서 만들고 계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유심히 지켜본 게 전부다. 장 할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맷방석을 만들어보고, 재떨이 받침도 만들어 보는 등 요령을 익혀 나갔다. 풀에 물감을 입히는 기술까지 터득하면서 마치 수를 놓는 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도 넣을 수 있게 됐다. “다듬고 새끼 꼬고 염색하고…작품 하나 만들려면 20~30일은 족히 걸려. 집안일을 할 때도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도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 그 후 1999년 3월 파주시에서 시 승격을 기념해 ‘짚풀공예품 공모전’을 한다기에 무작정 작은 재떨이 받침을 출품하면서 마을 이장에게 큰소리를 쳤다. “내가 이번에 입상만 하면 3년 안에 대상을 타겠다. 두고 봐라.” 이 대회에서 장려상을 탄 장 할머니는 이듬해와 그 이듬해 잇따라 동상을 받더니 2003년 은상에 이어 2004년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다음 해 11월 농촌진흥청이 주최한 제1회 짚풀공예품 공모전에서는 최우수상을 탔다. 이듬해에는 더욱더 펄펄 날았다. 2월 파주 짚풀공예품공모전 동상, 6월 원주 제5회짚풀공예품공모전 금상, 11월 1일 농촌진흥청 제2회 짚풀공예품공모전 최우수상, 11월 30일 아산 외암민속마을 짚풀문화제 기념 전국짚풀공모전 대상 수상 등 같은 해에 4개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 이후로도 매년 2~3개 대회에서 장려상, 은상, 동상, 금상, 우수상, 대상 등을 20회 가까이 더 받는 등 전국 대표 짚풀공예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 2014년 3월에는 미국 교포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하는 한국민속놀이 행사에서 사용한다며 200만원을 주고 원형 멍석을 구입해 가기도 했다. 3개월 품이 든 아까운 것이었지만 먼 나라에 간 동포들이 고국을 생각하며 사용한다기에 흔쾌히 건네줬다. ●“짚풀공예 활성화·市 지원 늘었으면” 늦깎이 짚풀공예 장 할머니의 성공담을 듣노라면 요즘 젊은 사람에게도 강렬한 동기부여가 된다. “10년여 전 동짓달이었는데, 시어머니 제사를 지낸 며칠 후 재료 준비는 다 해놨는데 어떤 작품을 어떤 문양으로 만들어야 할지 영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새벽잠에서 깼는데, 갑자기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얼른 일어나 종이에 문양을 그려 놨다가 조반을 먹고 작품을 만들었지. 무엇이든 결심을 하고 간절히 원하면 꿈에서라도 알려 주나 봐. 그게 바로 2004년 3월 파주 공모전에서 처음 대상을 탄 거야.” 장 할머니는 이제 전국 각지에서 초청장을 받고, 특별 대우를 받는 유명 짚풀공예 전문가가 됐다. 그러나 고향 파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에 이르면서 파주시에 섭섭함을 숨길 수가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딸하고 농촌진흥청이 주최한 공모전에 나갔는데 최우수상을 탄 거야. 원주시 등 다른 지역에서는 시 공무원들이 꽃다발을 한 아름 사 갔고 와서 건네주며 축하해주고 격려해 줬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아무도 안 온 거야. 딸 애하고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도망치듯 나왔어. 상금의 많고 적음도 중요하지는 않아. 하지만 파주시 공모전 상금이 전국에서 가장 적어. 3개월을 고생해서 만들어 출품해 대상을 받아도 상금이 100만원밖에 안 돼. 다른 공모전의 반의 반도 안 돼. 대상이 그 모양인데 그 아래 입상작들은 오죽하겠어?” 한참을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이갑준 이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마을이 짚풀공예로 아주 유명해졌어요. 우리 마을에만 여러 대회에서 대상을 한 번 이상 탄 어르신들이 네 분이나 됩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파주시와 면사무소에서 ‘전수관을 만들어 주겠다. 뭐 필요한 거 없느냐’고 하는 등 관심을 갖더니 면장이 바뀌고 시장이 바뀌니까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느냐?’하면서 아주 입을 싹 닫는 거예요. 사람이 바뀌어도 ‘행정(주민과의 약속)’이라는 것은 신뢰와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장 할머니는 “전국 각지에서 어렵게 다시 부활한 우리 짚풀문화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뒤따라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숨결이 담겨 있는 빼어난 작품을 전시해 후세에 보여주고,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 줄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1975년 5급 기술고시로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3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하며 교통과 도시계획 분야에 몸담았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서울의 도로를 그리고, 도시계획을 짜고, 지하철 노선을 고민했다. 그의 입에서는 요즘 문화와 역사, 관광이라는 세 단어가 빠지질 않는다. 2011년 보궐선거로 민선 5기 서울 중구청장이 된 그는 민선 6기에서도 문화의 힘을 확실히 느꼈다. 올해도 중구의 핵심은 ‘문화·역사·관광’이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참 아팠어요. 중구가 타격이 가장 컸죠.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90%가 중구를 거치는데 그 수가 확 줄었거든요. 지난해 5월과 10월에 치른 ‘정동야행’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역사·관광, 세 단어 조합은 중구의 경쟁력 지난 한 해를 평가해 달라는 말에 최창식 중구청장의 표정이 다소 어둡더니 금세 밝아졌다. 취임 초기와 비교하면 문화를 보는 시선이 180도 달라졌다. 대형 공사를 주도해 왔던 그는 문화 정책에선 거의 문외한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문화 행사에 이렇게 큰 비용이 들어가나”라는 말이 늘 나왔단다. 그런 그가 요즘은 “문화가 밥그릇”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중구에는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와 서애 유성룡의 고택터, 성곽길, 서소문 성지, 성공회서울성당, 혜민서터, 주자소터 등 역사적 가치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 자원이 많다. 그는 “역사성을 보존하고 관광명소로 개발하면 중구뿐만 아니라 서울의 품격과 경쟁력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 지난해 가을 연 정동야행으로 그 믿음을 확인했다. 덕수궁, 옛 러시아공사관, 중명전 등 한국 근대 문화유산을 묶어 만든 프로그램이다. 3일 동안 야간까지 개방하자 5월에는 9만명이, 10월에는 10만 322명이 즐겼다. 지난해 말 축제의 오스카라 불리는 피너클 어워드에서 뉴프로그램상과 브로슈어 부문 상을 받았다. 올해는 충무아트홀이 중구의 문화 정책을 기분 좋게 이끌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개막한 자체 제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최근 개막 10주 만에 1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최초로 기록한 단일 시즌 최대 매출이다. 충무아트홀과 100년 영화사의 산실 충무로를 연계해 첫 ‘뮤지컬 영화 페스티벌’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사업을 펼친 게 대외기관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남대문시장이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선정됐고 황학동 중앙시장도 문화관광형 육성시장으로 뽑히는 등 50개 부문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죠. 인센티브는 전년보다 3배나 많은 91억여원을 확보했습니다.” ●떠나는 만리동 봉제공장 주인들 생각하면 고민 성과를 설명하면서 뿌듯해하던 그는 서울역 고가를 언급하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만리동 봉제공장 주인들이 떠나고 있어요. 5분이면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남대문시장을 오가는데, 서울역 고가를 폐쇄하면서 20분이 걸린단 말이에요. 그분들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최 구청장은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도시개발 및 토목공사 전문가로서 그는 “이건 도시 재생이 아니라 신설”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역 서부 지역과 명동·남산을 연결하는 보행로’라는 서울시의 설명에 대해 그는 “보행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아 보행의 목적이나 활동이 없으면 활성화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경험도 꺼냈다. 강동구에 있는 광진교다. 2차선 도로인 광진교가 홍수로 크게 손상된 뒤 2003년에 복원했다. 당시 지역 주민의 요구로 4차선으로 넓혔다. 차량 통행이 없자 2차선을 보행공원으로 만들었다. “서울역 고가와 똑같은 개념이죠. 폭과 길이도 똑같아요. 광진교는 올라가면 아차산과 한강이 보이고 한강공원에도 가닿아요. 그런데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서울역 고가에선 자동차와 철도, 고층빌딩만 보이죠.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워요.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 남산에 간다? 보행자의 행동 양식은 조금도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1㎞를 맥없이 걸을까요? 6개월은 신기하다고 사람들이 오갈 겁니다. 그 뒤가 걱정이 됩니다.” 그는 “중구청장이 아닌 서울시민으로서, 40년 가까이 서울시에 몸담은 행정가로서 서울역 고가를 바라볼 때 답답함을 떨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더니 을지로 개발계획으로 화제를 돌렸다. ●도시 재생의 새 모델, 3D 입체도시 구상 남대문지하상가, 회현상가, 명동상가, 을지로상가 등 지하보도를 연결해 ‘지하 도시 생활권’을 만드는 구상이다. 공중과 지상, 지하까지 3차원(3D)이 원활하게 소통하도록 하는 3D 입체도시 계획이다. 을지로 지상을 정비할 그림도 그렸다. 을지로2가까지는 서울의 중심인데 을지로3가는 방치돼 있다. 30평 이하 건물이 45%이고 모두 개인 소유다. 신축하려면 100평은 돼야 하는데, 30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 건축대장이 현행법에 맞지 않는다. 죄다 불법 건축물로 낙인찍혀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수 없다. 상업용 건물 양성화 특례법을 만들어 규제를 풀어야 추진할 수 있다. 을지로3·4가의 재개발을 추진하면 다음 작업은 을지로상가의 체질 변화다. “상인회를 조직하고 특정 상가를 조성하면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조명에 어울리는 상점을 섞어 두고 제조업 같은 것을 재배치해 특화거리를 꾸미고 환경을 개선하는 거죠. 을지로 거리에 있는 상점은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제조공장과 보관창고는 외곽으로 옮겨 쾌적한 쇼핑거리로 만들 생각입니다.” 도시를 바탕에 두고 그려 내는 그의 구상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간혹 이념 논쟁에 휩쓸린다. 최근 돈화문역사공원이 그랬고, 취임 초기 호남 출신 직원을 솎아 냈다는 비판이 그랬다. 그는 종이와 펜을 집어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시 지정문화재인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이 있고 주변에 5층짜리 건물이 두 개 있어요. 지하 2층짜리 구립 주차장을 지하 4층까지로 늘리고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는 거예요. 옆에 청구성당, 문화교회, 구립 도서관이 붙어 있어 그림이 정말 예쁘게 나오거든요.” 5층짜리 주택과 건물을 그대로 두고 공원을 조성하면 몇몇을 위한 ‘앞마당’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박정희 가옥까지 넓혀 공원을 훨씬 크고 의미 있게 사용하자는 구상인데, ‘박정희 기념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이상한 시선을 받았다. “중구에선 그런 이름을 쓴 적이 없어요. 박정희 가옥의 역사성은 외면할 수 없죠. 5·16 군사정변을 계획하고 지휘한 곳이니까요.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공원 조성 사업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호남 출신 직원의 인사 논란도 거리낌 없이 말했다. 청렴도, 인사·교류 정체, 과도한 승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였다고 했다. “순환 교류, 전출 대상자 11명 가운데 10명이 호남 출신이었던 터라 호남 학살이네 탄압이네, 별별 얘기가 다 나왔죠. 내가 해주 최씨 17대 종손이고 집안 산소가 다 전남 화순에 있어요. 출신으로 따지면 나도 호남과 멀지 않아요. 다만 난 원칙대로, 법질서대로 모든 걸 똑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자연히 대화는 구정 철학으로 넘어갔다. “우리 중구가 도심 중에 도심인데 법질서가 너무 어지러워요. 명동이나 동대문에는 기업형·불법 노점이 극성이라 영세 점포 상인들이 손해를 보죠. 무허가 건물도 최고로 많아요. 그런데 누구도 손을 안 대요. 불법에는 엄정하고, 원칙과 법을 지키면 보상하는 식으로 해 나가야 합니다.” 최 구청장은 “법과 원칙을 지키며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게 도시 질서이자 경쟁력”이라며 “중구는 모든 업무에서 똑바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고향·해외로 떠난 서울은 ‘리틀 차이나’

    고향·해외로 떠난 서울은 ‘리틀 차이나’

    유커 춘제 맞아 15만여명 방한 재중동포 구로동 모여 명절 보내 설 연휴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체감 온도가 1도까지 떨어진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광장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주위에는 외국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특히 중국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관광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아내와 7살 된 아들을 데리고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안롱위(41)씨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5분 동안 가족 사진을 찍은 뒤 서둘러 경복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지금까지 제주, 부산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서울 도심 지역을 관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13일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닐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여러 곳을 돌아보려면 “한시가 급하다”면서 총총히 자리를 떴다. 안씨 부인은 명동에서 구입한 화장품이 가득 들어 있는 쇼핑백을 꼭 쥐며 안씨를 따라갔다. 올해도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제(7~13일)을 맞아 많은 수의 유커가 한국을 찾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번 설 연휴기간에 한국을 찾는 유커의 숫자를 지난해 춘절(2월 18~24일) 대비 약 18% 증가한 15만 60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설 연휴로 지방이나 해외로 떠난 서울 시민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개별관광으로 서울을 둘러보고 있다고 밝힌 황리핑(24·여)씨는 “북촌 한옥마을과 서촌도 최근 뜨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연휴가 끝나기 전에 꼭 가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여파로 주춤했던 유커는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증가세를 회복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커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신규민 한국관광공사 관광시장조사팀 차장은 “경제발전에 따른 중국인의 해외 관광 수요가 높아지는 것이 유커가 증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면서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지역만을 대상으로 관광 마케팅을 하는 외국과 달리 내륙 지역을 무대로 우리가 관광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점도 주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커가 관광과 쇼핑을 목적으로 서울 시내를 점령했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중국 출신 동포들은 망향(望鄕)의 심정으로 설 연휴를 보냈다.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은 30여명의 중국 동포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구로구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중국 동포가 많은(2만 5679명) 곳이다. 명절을 맞아 모처럼 재중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2001년 한국에 들어온 조태화(40)씨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이 다 함께 모여 고향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고향이 많이 그립지만 한국에 가족과 친구가 있어 이제는 여기가 고향 같다”고 전했다.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3년째 중국 정통 꽈배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39)씨는 “명절에 고향에 못 가는 중국 동포에게는 이곳이 일종의 심정적 고향인 셈”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차세대 총리감 앞세워… 아베 실버 정당 ‘청년 정치’

    차세대 총리감 앞세워… 아베 실버 정당 ‘청년 정치’

    7월 참의원 선거권 18세로 하향 고령층 중심의 정책 불만도 적용 일본 자민당이 장년과 노인에게 의존한 ‘실버 정당’ 이미지를 벗고 젊은층을 끌어들이고자 새 조직을 설치하고, 그 책임자에 30대 스타 정치인을 내세웠다. 젊은 유권자 비중이 높아지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4일 자민당이 전날 세대 간 사회보장 격차 문제를 다룰 ‘2020년 이후 경제·재정 구상 소위원회’를 신설하고, 사무국장으로는 고이즈미 신지로(35) 중의원 의원을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젊은 세대에 인기가 높아 미래 총리감으로 꼽히는 3선 의원이다. 30~40대 젊은 의원들 20명으로 꾸려진 소위원회는 20년 이후의 사회보장 개혁을 본격 논의한다. 고이즈미 의원은 “지금 젊은 세대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강하다. 성역 없이 논의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닛케이에 따르면 위원회가 신설된 데는 고령자 중심의 사회보장 정책에 대한 소장파 의원들의 적지 않은 불만도 작용했다. 국가의 사회보장 예산 32조엔(2016년도 기준) 가운데 고령자에 대한 연금, 요양 등 개호보험에만도 약 14조엔이 든다. 12조엔의 의료비 대부분도 65세 이상 고령자가 독식하는 상황이다. 소위원회는 앞으로 부유한 고령자의 사회보장 부담을 늘리고, 여기서 확보된 재원을 육아, 교육 등 젊은 세대를 위한 시책이나 제도 확충에 투입하는 것을 검토할 계획이다. 자기부담 상한제를 둔 고액 요양비 제도도 재검토하는 한편 연금 지급 연령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는 “선거를 앞두고 노인 중심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를 끌어안기 위한 몸짓”이라고 전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선거권 연령이 18세 이상으로 내려가면서 젊은 유권자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 제도 개혁으로 차세대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목표 아래 참의원 선거 공약이나 정부의 재정 운영 정책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다무라 노리히사 전 후생노동상은 “지금까지 고령자 부담을 계속 늘려 왔다”면서 “더이상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자민당 내에서 “‘노인층을 버리라’는 메시지가 되면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산업화 기적’ 이끌었던 50세 KIST

    ‘산업화 기적’ 이끌었던 50세 KIST

    베트남전 참전 대가 2000만弗로 설립 포철 건설 계획·컬러TV 개발 등 주도 “향후 50년 에너지 등 미래 문제 해결”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4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KIST는 이날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본원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등 450여명의 국내외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KIST는 1965년 5월 18일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설립됐다. 공동 성명을 통해 두 나라 정부는 1000만 달러(약 120억원)씩 총 20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1966년 2월 10일 최형섭 박사를 초대 소장으로 공식 출범했다. KIST는 포항제철소 건설계획 수립, 전자공업 육성계획 수립, 컬러TV 수상기 개발 등을 주도했다. 현재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15곳이 KIST 부설 연구소나 센터로 운영되다가 분리된 것이다. KIST는 이날 행사에서 ‘KIST 2066, 비욘드 미라클(기적을 넘어서)’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KIST 관계자는 “미지의 연구 영역에 도전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맏형으로서 국가 연구개발(R&D)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함께 본관 뒤쪽에 조성된 ‘50주년 기념 공원’에는 KIST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과 책자, 기념품, 50년 뒤 후배에게 남기는 편지 등이 담긴 타임캡슐 봉인식도 가졌다. 당초 연구원 출신 동문 모임인 ‘연우회’가 윤종용(전 삼성전자 부회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이 기부한 2억원으로 제작한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갖기로 했지만, 일부에서 “과학기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연기됐다. 이병권 KIST 원장은 “지난 50년간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면 앞으로 50년은 에너지 문제, 고령화, 기후변화, 도시화 등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 종합과학연구소로서 역할을 더욱 확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사명대사·유관순·이준 열사… 그 길엔 역사가 있네

    3·1독립운동 기념탑에서 유관순 열사 동상을 지나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장충단에 이르기까지, 독립과 자유의 역사문화유산을 만나는 거리가 생겼다. 중구가 조성한 ‘장충단 호국의 길’ 코스다. 중구는 장충동 일대에 있는 역사적 명소를 묶어 도보 코스로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만나는 유정 사명대사상에서 시작하는 이 코스는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수표교~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선생비~최현배 선생 기념비~유관순 열사 동상~3·1독립운동 기념탑~국립극장~김용환 지사 동상~자유센터로 이어진다. 장충단은 1900년 고종 황제가 만든 곳으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순국한 대신과 장병을 기리기 위한 장소였다. 일제는 장충단비를 철거한 뒤 벚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어 장충단 공원이라 불렀다. 유림이 조선 독립을 전 세계에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낸 사건을 기억하는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한 이준 열사 동상, 3·1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 열사 동상 등을 만나면서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사의 굵직한 사건을 접한다. 장충단 공원 안에서는 숙종과 장희빈이 만난 수표교의 실제 모습을 보고, 국립극장에서 시작하는 남산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 장충단 호국의 길을 걷다가 명소에 들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면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중·일·영 4개 국어로 다음달부터 서비스한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지역의 숨은 역사문화자원을 관광 콘텐츠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면서 “1시간짜리 장충동 탐방로는 ‘호국’을 테마로 한 것으로 역사의식을 높이고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독립과 자유의 역사 속으로…중구, 도보탐방코스 개발

    독립과 자유의 역사 속으로…중구, 도보탐방코스 개발

    3·1독립운동 기념탑에서 유관순 열사 동상을 지나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장충단에 이르기까지, 독립과 자유의 역사문화유산을 만나는 거리가 생겼다. 서울 중구가 조성한 ‘장충단 호국의 길’ 코스다. 중구는 장충동 일대에 있는 역사적 명소를 묶어 도보 코스로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만나는 유정 사명대사상에서 시작하는 이 코스는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수표교~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선생비~최현배 선생 기념비~유관순 열사 동상~3·1독립운동 기념탑~국립극장~김용환 지사 동상~자유센터로 이어진다. 장충단은 1900년 고종황제가 만든 곳으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순국한 대신과 장병을 기리기 위한 장소였다. 일제는 장충단비를 철거한 뒤 벚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만들어 장충단 공원이라 불렀다. 유림이 조선 독립을 전 세계에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낸 사건을 기억하는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한 이준 열사 동상, 3·1운동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 열사 동상 등을 만나면서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사의 굵직한 사건을 접한다. 장충단공원 안에서는 숙종과 장희빈이 만난 수표교의 실제 모습도 보고, 국립극장에서 시작하는 남산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 장충단 호국의 길을 걷다가 명소에 들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면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한·중·일·영 4개 국어로 다음달부터 서비스한다. 중구는 또 흥미로운 일러스트로 만든 지도를 만들어 탐방을 돕는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지역에 숨은 역사문화자원을 관광콘텐츠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면서 “1시간짜리 장충동 탐방로는 ‘호국’을 테마로 한 것으로 역사의식을 높이고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현장 다큐] 취객은 일상·몰카범은 복병…지하철 보안, 종점이 없다

    [현장 다큐] 취객은 일상·몰카범은 복병…지하철 보안, 종점이 없다

    지난 26일 아침 출근길 서울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노숙자가 흉기를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다. 그는 얼마 후 경찰에 붙잡혔지만 붐비는 출근 시간 밀폐된 공간에서 승객들은 한동안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수천량의 전동차가 수백개의 지하철역을 오가는 현실에서 경찰의 힘만으로 지하철 치안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서울시메트로9호선이 2011년부터 ‘지하철 보안관’을 운용하고 있는 이유다. 현재 활동 중인 지하철 보안관은 총 221명. 성범죄, 폭력, 절도 등 지하철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들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지하철 범죄는 총 3040건으로 전년(1992건)에 비해 53%가 늘었다. 지하철 보안관은 통상 2인 1조로 적게는 6~7개, 많게는 9~10개의 지하철역을 전담한다. 10량짜리 열차 기준으로 하루 8시간 근무하면서 30~40편 정도를 순찰한다. 개별 전동차량으로 치면 300~400량을 도는 셈이다. 지하철 보안관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 계약직 신분으로, 경비·경호 업무 경력자들이 많다. 상당수가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 무술 유단자들이다. 지난 27~28일 김성태(40), 조민형(39) 반장 등 지하철 보안관들과 동행하며 서울지하철 2호선 서부 구간에서 매일 이뤄지는 그들의 활동을 따라가 봤다. 김 반장 등은 사당-낙성대-서울대입구-봉천-신림-신대방-구로디지털단지-대림-신도림 구간을 맡고 있다. PM 7:29 신도림역 - 흐느끼는 노숙자, 쉼터로 인계 사람 많기로 유명한 신도림역이 퇴근길 인파로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김시형(42) 보안관과 함께 순찰을 하던 김 반장의 휴대전화로 “2133호 열차 안에 노숙자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노숙자가 전동차에 누워 자고 있어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고 있다는 승객의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2011년 보안관 출범 때부터 근무해 온 6년차 김 반장은 많이 겪어 본 일이라는 표정으로 “2호선은 순환 열차라 종점이 없어 겨울철에 유독 전동차 안에 잠자리를 펴는 노숙자가 많다”며 “승객에게 불편만 주면 다행인데 혹시라도 시비가 붙을 수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 보안관들이 사용하는 ‘지하철 안전지킴이 앱’을 통해 2133호 열차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했다. 신도림역에서 전동차를 타고 당산역까지 가서 내린 뒤 반대 방향 승강장에 서 있는 2133호 열차에 올라탔다. 휴대전화 통보로부터 2133호 탑승까지 걸린 시간은 6분. 노숙자 박모(64)씨가 의자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조심스럽게 깨워 영등포구청역에서 함께 내렸다. 박씨는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반장이 사는 곳을 묻자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눈물만 떨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씨를 위해 김 반장은 노숙자 쉼터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영등포 쪽에서 빈자리가 있는 쉼터를 찾아낸 김 반장은 그를 부축해 1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신도림역으로 이동했다. 메모지에 쉼터 이름과 담당자의 연락처를 적어 주고 1호선 전동차에 태워 준 김 보안관은 “우리는 담당 구간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인도를 책임지지는 못하는데 이럴 때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PM 9:11 사당역 - 오늘만 세 번째 취객 난동 신고 사당역을 순찰 중인데 취객이 열차 안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또다시 뛰기 시작했고 9분이 흐른 9시 20분 해당 열차를 봉천역에서 탔다. 하지만 이미 취객은 사라진 상태였다. 김 반장은 “우리야 허탈하지만 시민들이 안전하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취객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허탕을 친 게 이날만 세 번째. 취객이 많은 사당역으로 가기 위해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봉천역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열차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뒤쪽 두 번째 칸에 응급 환자가 발생했으니 조치 후 출발하겠습니다.” 긴박한 순간. 온 힘을 다해 달려가 보니 만취한 20대 초반 남성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지만 외상은 없어 보였다. 전동차 밖으로 끌어낸 뒤 그의 휴대전화를 통해 보호자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했다. 남성은 어눌하게나마 묻는 말에 반응을 보였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 못했다. 김 반장은 남자를 부축해 위층에 있는 역무실로 옮겼다. 김 반장을 밀쳐 내며 버둥거리는 남자 때문에 힘을 주느라 김 반장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PM 9:33 사당역 - 치마 입은 여성 따라가는 남자를 쫓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김 보안관이 조용히 에스컬레이터를 주시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20대 여성의 뒤를 한 중년 남성이 따라갔다. 다행히 수상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볼펜, 안경 등 몰래카메라의 형태가 워낙 다양해지고 은밀해져서 적발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김 반장은 “어제도 신도림역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손목시계에 달린 카메라로 찍은 30대 남성을 현행범으로 붙잡았다”며 “여성들 뒤를 쫓아가며 빈손으로 각도를 맞추는 게 의심스러워 확인해 보니 ‘몰카범’이었다”고 설명했다. 보안관들의 조끼 오른쪽에는 삼단봉, 왼쪽 주머니에는 카메라가 있다. 삼단봉은 보안관들의 유일한 호신 무기다. 하지만 승객의 폭력을 막으려다 쌍방 폭행이 될 수 있어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카메라는 반드시 필요하다. 성추행 사건은 증거가 없으면 90% 이상이 발뺌하기 때문에 현장 포착이 중요하다. 자정을 1시간 넘겨 신도림역에서 서울대입구역으로 가는 막차에 올라탔다. 김 보안관은 “취객을 상대로 한 성추행이나 소매치기 사건이 막차에서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만취해 잠든 승객들이 있어서 한명 한명 깨워서 내보내야 했다. 10여명과 씨름을 하고서야 고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됐다. 종일 지하철에서 일했는데 정작 퇴근할 때는 택시를 타야 했다. AM 11:15 신림역 - “왜 밥줄 끊냐” 상인 처지 딱해도… 퇴근한 김 반장 팀에 이어 조민형(39) 반장, 이재민(35) 보안관 팀이 주간 근무조로 순찰을 돌았다. 지하철 내 순찰을 하다가 신림역 인근에서 지하철 이동상인 강모(47)씨를 적발했다. 밤에는 취객 상대가 가장 큰 일이라면 주간에는 이동상인과 실랑이하는 게 업무의 태반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법을 그대로 보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 보안관들은 강씨와 함께 신림역에서 내려 신분증과 조사서 작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강씨는 “왜 남의 밥줄을 끊으려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 반장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안타까운 경우도 만나고 밤낮 없이 폭언·폭행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신고를 한 뒤 스톱워치를 켠 채 기다렸다가 ‘출동이 늦었다’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고, 이동상인에게서 뇌물을 받았다고 의심하는 승객도 있죠. 하지만 언제 어느 때나 감정이 앞서면 안 됩니다.” 신도림역 역사를 순찰하다 여성용 지갑·브로치를 파는 노점상과 맞닥뜨렸다. 조 반장 일행을 본 상인은 빠르게 좌판을 접어 사라졌다. 열차 안이나 역사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으로 금지돼 있다. 조 반장은 “지하철 보안관이 떠난 후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면 그만”이라며 “더 자주 순찰하고 계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M 2:00 순찰 종료 - “수백만명 안전 지킨다는 자부심” 순찰을 마치면서 조 반장이 말했다. “저희도 나름대로 매일 힘든 생활을 합니다. 그렇지만 가끔씩 승객들이 감사의 인사 한마디씩 건네면 힘이 나죠. 매일 수백만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의 일상을 지킨다는 자부심도 있어요. 우리처럼 많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도와줄 수 있는 일도 드물지 않을까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부천 소녀상, 안중근공원에 자리 잡는다

    부천 소녀상, 안중근공원에 자리 잡는다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은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천시민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모금 목표액 1500만원이 지난 26일 모두 모여 (모금이) 종료됐다”면서 “제막식은 2월 3일 11시 안중근공원”이라며 행사 참석도 유도했다. 일명 ‘부천 소녀상’은 부천시여성연합회 등이 주최가 돼 2014년 7월 모금액 2540만원이 모이자 제작에 들어갔다. 2014년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 출품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최인선 만화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다. 물론 저작물 공익 사용 계약도 했다. 부천시는 원미구 중동 소재 안중근공원에 세우라고 허용했다. 그곳은 ‘부천의 항일투쟁 전적지’ 같은 곳이다. 동상이 다 제작됐으나 막상 설치비가 부족해 한국여성지도자연합회 부천지부 사무실에 보관된 채 잊힐 뻔했다. 모금운동이 재개된 것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협상으로 소녀상 이전 등이 논란이 된 덕분이다. 정재현 부천시의회 의원이 지난 9일 “설치비 1500만원이 필요하다”며 성금을 요청했고 모금 재개 17일 만인 이달 26일 완료됐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2월3일 설치되는 ‘부천 소녀상’, 부천시민 295명이 모금에 참여

    2월3일 설치되는 ‘부천 소녀상’, 부천시민 295명이 모금에 참여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은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천시민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모금 목표액 1500만원이 지난 26일 모두 모여 (모금이) 종료됐다”면서 “제막식은 2월 3일 11시 안중근공원”이라며 행사 참석도 유도했다. 그는 이보다 앞선 지난 14일 “설날 전에 설치가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희망했었다. 일명 ‘부천 소녀상’은 부천시여성연합회 등이 주최가 돼 2014년 7월 모금액 2540만원이 모이자 제작에 들어갔다. 2014년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 출품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라는 최인선 만화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다. 물론 저작물 공익 사용 계약도 했다. ‘부천 소녀상’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과는 다른 모습이다. 같은 구리로 만들었지만 앞모습은 구리거울이고 뒤쪽은 길게 댕기머리를 한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즉 ‘부천 소녀상’ 앞에 서면 관람객은 자신의 얼굴과 대면해야 한다. 부천시는 원미구 중동 소재 안중근공원에 세우라고 허용했다. 그곳은 ‘부천의 항일투쟁 전적지’ 같은 곳이다. 동상이 다 제작됐으나 막상 설치비가 부족해 한국여성지도자연합회 부천지부 사무실에 보관된 채 잊힐 뻔했다. 모금이 지속돼야 할 지난해 봄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나라가 발칵 뒤집혀 모금행사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모금운동이 재개된 것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협상으로 소녀상 이전 등이 논란이 된 덕분이다. 정재현 부천시의회 의원이 지난 9일 “설치비 1500만원이 필요하다”며 성금을 요청했고 모금 재개 17일 만인 이달 26일 완료됐다. 김 시장은 “부족한 설치비가 부천시민 등 295명의 성금으로 채워져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기고] 기후재난에 대비하자/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기고] 기후재난에 대비하자/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어릴 때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매년 손에 동상을 입어 고생하면서도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눈은 유년기·학창시절 추억과 낭만을 주었다. 하지만 추억과 낭만의 눈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2010년 1월 4일 수도권에 ‘100년 만의 폭설(서울 28.5㎝)’로 주요도로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어 새해 첫 출근이자 첫 지각의 유쾌할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지난 23~25일엔 제주도에 한파와 강풍을 동반한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하늘과 바닷길이 모두 막혔다. 2박 3일 동안 관광객 8만 6000여명이 본의 아니게 육지로 빠져나오지 못한 불편을 겪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42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지역 주민과 지자체는 물론 국민안전처를 비롯한 정부 관련부처는 농업과 생활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비가 자주 내려 많은 지역에서 물 걱정은 다소 덜었지만 가뭄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다. 올 봄가뭄 해소를 위해 눈이라도 많이 내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이럴 경우 국민 불편은 물론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를 함께 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 아닌가 싶다. 10㎝ 이상의 눈이 일시에 내리면 제설에 어려움이 많다. 정부는 이에 대비하여 ‘자동으로 염수를 뿌리는 장치’를 확대 설치하고 오르막도로같이 위험한 구간을 특별 관리대상으로 지정해 정비해 왔다. 그러나 폭설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대응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필자는 평소 직원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성심을 다해 대비체제를 갖추어 놓으면 태풍도 피해 간다”면서 철저한 대응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말 대설대책을 점검하기 위해 인천공항고속도로와 경기 고양시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눈이 단기간에 내릴 경우 성능 좋은 장비가 갖추어져 있더라도 제설에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다. 비상상황 때 차량이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등 탄력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에서는 강설로 인한 국민 불편 해소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설 예비특보 단계부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 집 내 점포 앞 눈은 내가 치운다’는 성숙된 국민의식 발휘가 필요하다. 2015년 2월 미국 매사추세츠에선 존 케리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보스턴 자택 앞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 50달러의 벌금을 물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붕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게 의무화된 규정이 올 1월부터 시행되었지만 국민의 자율참여가 있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 집, 내 점포 앞에 쌓인 눈은 물론 ‘지붕 위 쌓인 눈 치우기’에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란다.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할 때보다 빨리 이룰 수 있다.
  • 여야, 오늘 국회 본회의 개최 극적 합의

    선거구 획정 협상은 ‘2+2회동’서 鄭의장 발의 선진화법 오늘 논의 여야는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둔 28일 밤 늦게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본회의에서는 이미 합의 처리키로 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북한인권법,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무쟁점 법안,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 체포동의안 보고 등이 처리될 예정이다. 나머지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 협상은 본회의 산회 직후 양당 대표, 원내대표 간 2+2 회동을 통해 논의를 이어간다. 새누리당 유의동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양당 원내대표가 전화통화에서 내일(29일) 본회의를 합의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본회의 산회 직후에는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2+2 회동이 예정돼있다. 회동에서는 나머지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2개 쟁점 법안 처리가 해결된 만큼 나머지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 논의에도 물꼬가 트인 셈이다. 앞서 여야 원내지도부는 비공식 접촉을 통해 쟁점 법안·선거구 획정안 협상 조율을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초 당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회동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됐다. 하지만 끈질긴 물밑 조율을 통해 극적으로 본회의 개최 합의를 이끌어냈다. 새누리당이 지난 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부결시킨 권성동 의원 대표 발의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도 29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개정안은 여야 합의가 없었던 만큼 처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 의장이 이날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중재안)은 29일부터 국회 운영위에서 논의에 들어간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 의장의 중재안과 관련, “우리 당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 중재안”이라면서도 “운영위에서 심도 있는 검토를 하겠다. 필요하다면 대안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야당은 선진화법의 예산안 자동상정 제도 폐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예산안 자동 상정을 폐지하자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 당내 이견이 조금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 체포동의안은 29일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다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의사일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 의원에게 검찰에 자진 출두하도록 하는 방안을 종용하고 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북핵 해법 주도권 미·중에 맡겨선 안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한 제재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이 확인됐다. 그제 5시간 가까운 마라톤회담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게 대북 원유공급 중단, 북한 광물수입 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요청했지만 면전에서 거부당했다. 왕 부장은 “제재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대화와 협상이 북핵 해법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양국 외교장관이 강력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필요성에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실효성 있는 제재가 사실상 어려운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핵실험 직후 강경한 반대 성명을 발표한 중국은 한·미·일 3각 공조가 강화되고 중국을 향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또다시 북한 감싸기로 돌아섰다. 특히 한·미 양국이 중국의 역할 확대를 강력히 주문하자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를 통해 “중국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우리가 북핵 대응책으로 사드 배치를 거론하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역대 최상의 한·중 관계’를 들먹이며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우리만 머쓱해진 꼴이다. 미·중 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만큼 절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미·중 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해 군사·외교·경제적으로 충돌하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 악화의 원인에 대해서도 미국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몰아세우고 반면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국익과 실리를 좇는 두 나라가 북핵 문제를 주도하는 한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역학구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꿈꾸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대북 제재 균열 조짐 속에 북한이 기습적으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중 양국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상황에서 북한은 차근차근 핵무장을 완성해 가고 있다. 이번에도 뜨뜻미지근한 제재로 북한이 판단을 잘못하게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외교안보팀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견인하겠다”는 둥 하나 마나 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어쩔 것인지 구체성이 안 보인다. 북핵은 결국 우리의 문제다. 미국도, 중국도 제3자일 뿐이다.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며 7년간 의도적으로 북핵 문제를 외면해 왔다. 사실상의 북핵 방치다. 중국은 핵실험 때만 발끈했을 뿐 북한의 핵 개발을 막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없었다. 왜소한 국력, 무능한 외교력을 탓하며 자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화들짝 놀라 적극적으로 북핵 공조의 손을 잡도록 우리가 북핵 해법을 주도해야 한다. 핵무장론이든 뭐든 강력한 ‘카드’를 내보여야 한다.
  • 조선 왕실 하루 0.95번꼴로 제사 지냈다

    조선 왕실 하루 0.95번꼴로 제사 지냈다

    조선 시대 왕실 제사의 대상은 계속 늘어났다. 왕조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왕의 수가 늘고, 종묘의 신실이 늘어나면서 왕릉의 수도 급증했다. 정조 때에 이르면 종묘에서 지내는 대사(大祀)는 조선 전기 7실에서 14실로 늘었고, 왕릉은 42기에 이르렀다. 정조 시대를 기준으로 조선 왕실에서 1년간 거행하는 제사 수는 347건에 달했다. 하루 0.95번꼴로 제사를 치른 셈이다. 이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8일 발간한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정제와 속제의 변용’에서 확인됐다. 정조 시대의 제사 347건에는 선농단(농사 짓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치르는 제사), 선잠단(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며 드리는 제사), 우사단(비를 빌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등과 일반 가정에서 조상에게 치르는 속제(俗祭)와 같은 제사만 225건에 달했다. 책을 보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실도, 관리들도 너무 많은 제사를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나온다. 왕 역시 하루 0.95번꼴로 제사를 지내는 건 힘들지 않았을까. 국가 제향이 늘어나면 이를 수행할 제관이 더 많이 필요해지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예를 들어 가장 큰 제삿날인 한식에는 120여명의 제관을 일시에 파견해야 했다. 그러자 왕실에서는 점차 직무가 없는 관리,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든 관리, 문신뿐 아니라 무신까지 제사에 차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제사를 피해 가려는 관리들이 늘면서 관료들에게서는 “제향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 왕실에서는 “더욱 공경히 치러야 한다”는 동상이몽식 이견을 갖게 됐다. 저자인 이욱 한중연 국학자료연구원은 “조선 시대 국가 제사는 유교 예법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 권력을 가진 왕실로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고, 하나의 문화 정치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조대 종묘 개혁을 시행한 것이나 고종대 제관 차출 방식을 바꾼 것은 공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제향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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