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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펜하겐 명물’ 인어공주 한강 풍경이 됐네

    ‘코펜하겐 명물’ 인어공주 한강 풍경이 됐네

    서울 시민들이 24일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광장에 설치된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물 인어공주 동상 앞에서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고 있다. 인어공주 동상 모형 설치는 서울과 코펜하겐 두 도시의 상징물을 본떠 만든 조형물을 교환하기로 한 2014년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서울포토] 한강에서 만난 인어공주 동상

    [서울포토] 한강에서 만난 인어공주 동상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 인어공주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한강에서 만난 인어공주’ 동상은 서울시-덴마크 코펜하겐시 간 우호협력의 상징이며 양 도시를 대표하는 조형물을 서로 교환해 설치함으로써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의미를 갖는다.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묵묵히 삶 살아가는 ‘당신’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묵묵히 삶 살아가는 ‘당신’

    해방되던 해에 태어난 최평열씨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70대 노인이다. 경제발전시대의 대한민국 가장들이 그랬듯이 30여년간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공기업의 과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최수앙 작가는 그런 아버지의 일대기를 기념하는 특별관을 만들기로 한다. 작가 6명으로 모조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범인(凡人) 최평열씨’를 위한 조각, 회화 등의 작품을 만들고 화려한 액자와 좌대를 설치했다. 서울역사의 귀빈식당이 있던 곳에 마련된 ‘최평열 과장 기념관’에서 평범한 최 과장은 영웅적인 삶을 산 인물로 재탄생한다. ●12월4일까지 40일간 열려 최 작가는 “개인사라기보다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젝트였다”면서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 시대에 과연 영웅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평열 과장 기념관’은 누구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한 시대의 영웅이 어떻게 조작되고 탄생하는지를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 공연, 영화,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풀어내는 ‘페스티벌284:영웅본색’전이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다. 행사는 8개국 24개팀 70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와 공연 및 다양한 관객 참여프로그램, 영화 상영 등으로 꾸며지는 융·복합 예술페스티벌이다. 전시를 기획한 신수진 예술감독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이라는 불씨를 살리고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영웅을 찾아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삶’에 관한 세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우선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과 영웅적 면모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영웅의 필요조건을 돌아본다. 권오상 작가는 건물 1층 로비에 설치한 사진조각 작품을 통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찬호, 김혜자 같은 유명인과 일반인을 뒤섞어 놓음으로써 영웅의 조건이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최수앙 작가 외 5인으로 이뤄진 모조기념사업회의 작업은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삶’이라는 전시 주제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역사 속 인물 같은 거창한 존재가 아닌 ‘우리들의 작고도 큰 영웅’을 조명하기도 한다. 이기일 작가는 영국 밴드 비틀스 마니아들로부터 각종 사료를 모았다. 1960~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진화를 이끈 밴드 ‘히식스’(He6)의 대형 사진을 걸어둠으로써 비틀스 신드롬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소비됐는지도 보여 준다. 중국 작가 장웨이는 ‘가상극장’ 연작 중 ‘영웅’, ‘빅스타’, ‘미지의 여인’ 14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중국인 300여명을 촬영한 인물사진에서 일부분을 가져다 컴퓨터로 조합해 스티브 잡스, 앤젤리나 졸리, 마이클 잭슨, 오드리 헵번 등 해외 유명인의 얼굴을 만들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품은 영웅의 이야기를 다양한 작품과 관객참여프로그램으로 경험할 수 있다. 장지우 작가는 자신을 가상의 영웅으로 만든 작품 ‘지우맨’을 선보인다. 장 작가의 전시 공간은 이부자리에 만화책이 뒤엉킨 흔한 자취방 모습이다. ‘20세기 소년’, ‘후뢰시맨’ 등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책과 만화영화 테이프들이 꼽혀 있는 책장을 밀어젖히면 비밀의 공간이 나타난다. 평범한 청년 장지우가 지구를 지키는 ‘지우맨’으로 거듭나 악당을 물리친다는 판타지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곧 영웅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인 참여 프로젝트도 전시는 실외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강우규 열사의 동상이 서 있는 바깥 광장에 설치된 건축가 김광수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작가와 일반인 참가자들이 사진을 주고받으며 완성해 나가는 작품이다. 참가자가 자신의 영웅 사진을 찍어 보내면 작가가 이를 액자로 제작해 집으로 발송해 주고 참가자는 다시 이 액자를 자신의 생활공간에 놓고 사진을 찍어 작가에게 되돌려 보내주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파빌리온에는 이렇게 주고받은 사진들이 전시돼 다른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영웅으로 생각하는지를 엿볼 기회를 준다. 오는 12월 4일까지 40일간 진행되는 이번 페스티벌에선 전시 외에 연극, 서커스, 인형극, 무용공연과 ‘여인의 향기’, ‘카사블랑카’, ‘스팅’ 등 2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모든 행사는 무료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청년이 살고 싶은 대구…소통·공연에 희망이 꽃핀다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청년이 살고 싶은 대구…소통·공연에 희망이 꽃핀다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은 대구 청년들에게 가장 행복한 기간이다. 대구시는 청년을 위한 축제 ‘대구청년주간’을 연다고 23일 밝혔다. 대구청년주간은 ‘청년이 떠나는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고 젊고 역동적인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구시가 지난해 자치단체로서는 처음 마련한 행사다. 동성로 일대에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청년소통, 청년참여, 청년정책 등 3분야로 나눠 진행된다. 청년소통은 청년과 청년 간, 청년과 기성세대 간 소통은 물론 지역 간, 계층 간 등 전방위적 소통의 장으로 구성된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과 지역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대구시는 기대한다. 청년참여는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청년 사업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일회성 이벤트를 지양하고 청년들이 이 행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참여를 할 수 있도록 모멘텀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청년정책은 대구시의 청년정책을 짚어보고 지역 청년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지역 청년정책을 지역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내놓고 이를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정책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개막식 ‘쇼미더 청년’ 신나는 야간 축제 개막식은 28일 오후 6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다. 이어 대구청년의 목소리를 듣는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그룹 아프리카의 보컬 윤성과 청년 국악인 김수경이 축하 공연을 한다. 대구 청년 연극배우와 청년합창단이 등장해 다양한 청년들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권영진 대구시장 등 참석자들과 청년들이 함께 희망 풍선을 날리고 2016년 청년주간 주제를 외치게 된다. 오후 8시부터는 청년정책온(on) 발표회가 있다. 모두 8개 청년팀이 참가해 직접 만든 정책을 발표한다. 팀별 10분간 발표가 끝난 뒤 서로 정책을 평가하고 공유하는 시간도 가진다. 오후 10시부터는 청년들이 함께 즐기는 야간축제인 ‘쇼미더 청년’이 진행된다. 지역 힙합뮤지션들이 대구와 청년을 주제로 직접 만든 곡을 공연한다. 29일 오후 2시부터는 동성로에서 대구 청년의 가치와 세계청년의 만남의 장인 대구 청년 롤플레잉게임(RPG)이 마련돼 있다. 내외국인 100여명이 참가하며 지역 청년과 세계 청년이 혼성으로 팀을 만들어 참가한다. 팀마다 미션을 주고 이를 달성토록 하는 게임이다. 오후 5시부터는 지역의 청년 인디밴드인 페르마타와 구본진, 빽빽이 등의 공연이 이어진다.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마술가 송경의 마술 퍼포먼스와 청년 뮤지컬, 젊은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계획돼 있다. 행사 기간 대구중앙지구대에서 CGV한일까지 560m 구간에는 6개 프로그램별로 27개의 부스가 설치된다. 6개 프로그램은 청년활동관과 청년정책관, 청년 놀이관, 셀러대첩, 청년주제관, 창업상담 등이다. 청년활동관은 청년정책 공유, 대구청년을 위한 정책 소개, 숨은 청년인재 인터뷰소개, 청년 스피치 프로젝트, 소통을 통한 청년이 만든 커뮤니티, 청년 밥상 관련 설문 조사 등이 진행된다. 청년정책관에서는 올해 진행된 대구시의 청년정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픽과 2016년을 살아가는 지역 청년 모습이 전시되고 대구시 청년 정책을 알리는 홍보관이 운영된다. 청년놀이관에서는 댄스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성과 심리, 고민상담부스가 마련돼 있다. 또 주거상담부스와 메이크업 지도 부스도 설치돼 있다. ●동성로 560m 부스마다 숨은 재미 셀러대첩은 대구지역 청년작가들을 위한 아트마켓이 설치되고 소품과 공예품 셀러들도 볼 수 있다. 일괄 부스를 배정하는 게 아니라 개인별 공간으로 구성된다. 1인 배정 면적은 가로 1m, 세로 1m이다. 소셀마켓과 SC플리마켓 등 20개 팀이 참가한다. 청년주제관은 대구 청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 15명이 출품한다. 창업상담관에서는 대구시 일자리지원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나와 청년 창업을 상담한다. 부대행사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29, 30일 이틀간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오오극장에서 청년영화제를 연다.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청년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게 목적이다. 관객과의 만남, 문화공연 등의 형태로 진행된다. 주제는 ‘청년이 만든’, ‘청년이 이야기한’, ‘지역을 이야기한’ 등 3가지로 정했다. 청년클래식음악제도 29일 오후 7시 30분 한영 아트홀에서 열린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소개하고 문학적 특징을 인문학적 견지에서 심도 있게 다룬 후 ‘파우스트’에 영감을 얻어 작곡된 다양한 음악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30일에는 대구청년클래식음악제 거리공연도 한다. 금관 5중주와 드럼 등이 연주된다. 청년예술가들이 그린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아비프로젝트도 준비돼 있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독립예술가나 청년 예술가들이 참여해 청년의 다양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29일 오후 4시에는 대구청년센터에서 ‘청년연결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청년포럼을 연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소속 청년활동가와 대구청년활동가네트워크 회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모두 2부로 진행되며 1부에서는 사고의 연결, 2부는 활동의 연결에 대해 열띤 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도시 대구를 디자인하다’라는 주제로 30일 오후 1시 30분 이원재 경제평론가의 진행으로 토론이 진행된다. ‘응답하라 대구청년’이란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공중전화 박스 형태로 제작된 부스에서 지역 청년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장면을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영상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청년주간 행사는 대구시가 추진하는 청년정책의 연장이다. 시는 올해를 ‘청년도시 대구 건설’ 원년으로 선포했다. 청년의 고민을 해결하고 청년이 모이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조례를 만들고 전담조직인 ‘청년정책 태스크포스’도 구성했다. 청년도시 대구 10대 과제도 선정했다. 창업지원생태계 구축,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취·창업 관련 기관 청년지원기능 강화, 청년정책 5개년 기본계획 수립과 신규 청년정책 발굴, 청년위원회 역할 강화 및 청년센터 조성, 대학생 멘터링 및 인턴 확대, 저소득층 대학생 복지지원 실시, 청년예술가 지원 및 글로벌 인재 양성, 예술창작 인프라 및 특화거리 신설, 청년축제 육성 등이다. ●시장 “젊고 역동적인 대구 이미지 구축” 시는 이와 함께 청년 신규사업 20개를 확정했다. 취업과 창업을 위해 전통시장 청년창업과 콘텐츠기업 지속성장 지원, 패션창조거리, 지역고용혁신추진단, 청년취업 잡 고(Job Go)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는 청년이 떠나는 도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젊고 역동적인 대구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청년축제를 기획하게 됐다”며 “청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대구청년주간이 전국의 청년문화를 이끌어가는 축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中에 첫 ‘위안부 소녀상’… 美 등 이어 네 번째

    中에 첫 ‘위안부 소녀상’… 美 등 이어 네 번째

    이용수 할머니 “외롭지 않을 것” 중국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처음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22일 중국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루 앞 교정에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국가가 됐다.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40여개를 비롯해 전 세계에 50여개가 설치돼 있다.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동상과 같은 소녀상 옆에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양이다. 서울 성북구에 세워진 한·중 평화의 소녀상과 똑같은 형태다. 제막식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 이용수(88) 할머니와 중국 하이난(海南)성의 천롄춘(陳連村·90) 할머니가 함께 참석했다. 폭우 속에 이뤄진 이날 제막식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두 소녀상의 얼굴에 흐르는 비를 닦아 주며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러. 이날 소녀상 제막과 함께 ‘중국 위안부 박물관’도 상하이사범대 원위안루 2층에 개관했다. 이 역시 중국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위안부 관련 박물관이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입증하는 각종 사료와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유물, 대일 배상 요구 활동 관련 자료, 학술연구 성과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현재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는 19명만이 남아 있다. 한편 국제연대위원회는 이날 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활동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본부에 등재 신청한 상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중국 첫 위안부 소녀상…이용수 할머니 “이젠 외롭지 않을 것”

    중국 첫 위안부 소녀상…이용수 할머니 “이젠 외롭지 않을 것”

    중국에 첫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다. 위안부 소녀상은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중국에 세계 4번째로 세워지게 됐다. 현재 위안부 소녀상은 국내에 40여개를 비롯해 전 세계에 50여개가 설치돼 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22일 중국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루 앞 교정에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했다. 한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동상과 같은 소녀상 옆에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양이다. 서울 성북구에 세워진 한중 평화의 소녀상과 똑같은 형태다. 제막식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 이용수(88) 할머니와 중국 하이난(海南)성의 천롄춘(陳連村·90) 할머니가 함께 참석했다. 폭우 속에 이뤄진 이날 제막식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두 소녀상 얼굴에 흐르는 비를 닦아주며 “이제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평화의 소녀상 제막은 중국의 위안부 전문가인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의 주도로 한국과 중국의 조각가들이 무상 기증해 이뤄졌다. 이날 소녀상 제막과 함께 ‘중국 위안부 박물관’도 상하이사범대 원위안루 2층에 개관했다. 이 역시 중국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위안부 관련 박물관이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하는 각종 사료와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유물, 대일 배상 요구 활동 관련 자료, 학술연구 성과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한국에는 위안부 관련 박물관이 4곳이나 설립돼 있으나 위안부 관련 연구와 활동이 한국보다 늦었던 중국에 처음으로 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는 19명만이 남아있어 위안부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쑤 교수는 전했다. 신혜수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 단장은 “난징대학살 피해에 집중했던 중국의 관심이 위안부 문제로 돌려지며 처음으로 박물관이 설립됐다”며 “일제 식민통치 시절 전쟁의 참상과 여성인권 침해를 알리고 교육하는 시설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단장은 앞으로 중국 곳곳에 위안부 관련 박물관이 세워질 것을 기대하며 대만 타이베이에도 내달중 위안부 관련 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제연대위원회는 이날 중국 ,한국, 미국, 네덜란드, 일본, 인도네시아 등지의 학자 및 관계자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위안부 관련 자료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활동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본부에 등재 신청한 상태다. 위안부 관련 사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내년 5월 유네스코 내 등재소위원회의 신청서류 심사를 거쳐 내년 10월 국제자문위원회를 통과한 다음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최종 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쑤 교수는 “일본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고 심사 관련 규정을 고치려 하고 있다”며 “일본의 협박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남대문 옆, ‘시장의 역사’ 품은 떠들썩함

    “떡 장수, 메밀묵 장수, 국수 장수, 활기에 넘치고 가지가지 소리가 있는 시장, <페르시아 시장>이 아니고 전쟁이 밟고 지나간 장터에도 음악은 있다. 장난감 파는 가게에 인민군들이 서 있고 그들이 돌아갈 때 누이와 동생, 아들과 딸들에게 선물할 장난감을 고르고 있지 않은가” 박경리의 작품, ‘시장과 전장’(1964)에 묘사된 남대문 시장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한국전쟁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도 삶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유일한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흡사 붉은 양탄자 층층이 올린 아라비아 페르시아 시장 뒷골목에서 양탄자가 날아오르는 요술처럼, 남대문시장에서도 피난민들의 남루한 삶을 날려 줄 마법의 램프 속 도깨비가 남대문시장에는 있었을 듯하다. 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시장4길 21. 흔히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없다는 말같이 도깨비처럼 뚝딱 소리 한 번에 모든 물건을 다 구할 수 있어 ‘박격포’까지 판다는 허명(虛名)마저 되새김질하는 시장이 바로 ‘남대문시장’이었다. 남대문시장은 지금도 명실상부 의류를 비롯해 각종 섬유 제품, 액세서리, 안경 같은 잡화, 주방용품, 공산품, 토산품, 수입 상품, 농수산물 등 1700여 종의 물품들이 거래되는 한국 제일, 최고(最古), 최대 전통시장임은 분명하다. 대지면적으로만 2만 467㎡, 건물연면적으로는 6만 4613㎡에 달하며, 점포 수는 이미 만 여곳 이상이 성업 중인, 하루 4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발도장을 찍는 서울의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곳에는 도소매를 겸하는 전문 상가가 있어 일반 손님들도 원하는 물품이 소량이라도 편리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서울 시민의 넉넉한 안살림을 채워주는 곳간과도 같은 곳이다. 최근에는 남대문 시장이 한류(韓流)의 중심지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의 아메요코(アメ)시장이나 대만 최대 재래시장 디화지에(迪化街)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연 1순위 관람코스로 새롭게 등장하여 과거의 전성기를 누릴 심사를 남대문 시장은 품고 있다. ●옛 모습은 숭례문 밖 생선 팔던 칠패(七牌)시장 남대문시장의 역사는 이러하다. 원래 17세기 초부터 한양 도성에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물품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시전(市廛)상인들이 종루(鐘樓) 행랑을 중심으로 모여 조선팔도 모든 물목들을 어깨 힘 잔뜩 넣은 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도성 외부에 인구가 몰리는 17세기 후반 남대문과 서소문 밖을 중심으로 상가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바로 남대문시장의 전신인 칠패(七牌)시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18세기 중엽, 서울 동부의 어의동(於義洞) 근처에도 또 다른 상가가 등장하게 되는 데 이는‘동대문시장’ 전신인 ‘이현(梨峴)상가’였다. 이로 인하여 서울 도성 안팎의 상가는 종루 시전상가와 이현, 칠패 상가를 합하여 삼대시(三大市)로 나뉜다. 제각각 취급하는 물품도 다양해서 종루 시전상가는 궁궐이나 관아, 그리고 양반 사대부가에 필요한 사치품이나 중국 수입물품, 생활용품을 판매하였다. 반면 남대문시장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칠패시장은 마포나루터와 인접해 있어 새벽녘 마포(麻浦) 서강(西江)을 거쳐 들어오는 곡식이나 생선같은 상품들을 도성 안 서민들에게 대주었다. 특히, 칠패의 어물전(魚物廛) 명성은 지금의 노량진 유명세보다 훨씬 윗길이었다. 따라서, 지금도 남대문 시장의 대표 음식인 '갈치조림'의 명맥이 뜬금포처럼 등장하지 않은 연유가 바로 이러하다. 18세기 후반 한양 도성을 기록한 당시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회현동, 죽전동, 주자동, 어청동, 어의동, 이현, 명문 등지에 칠패시장에서 미리 매점매석한 어물이 산처럼 쌓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지역은 번성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1914년, 우리나라 제1호 시장으로 등록 구한말에 이르러 칠패시장의 규모가 종로와 남대문로를 뒤덮을 정도로 성장하자 대동미와 대동포 출납을 관장하던 선혜청(宣惠廳)으로 시장의 중심 터전이 옮겨가게 되고 이로부터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의 자리가 옛 선혜청 자리로 잡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에 의해 시장 경영권이 당연히 넘어가게 된다. 1922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중앙물산주식회사로 시장의 경영권이 넘어가고 조선의 유통을 장악하려던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남대문 시장은 1936년경 등록된 상인의 수만 무려 230여 명이 될 정도로 급성장한다. 또한 1930년대 시장의 하루 거래액이 8만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은 활성화되어 현재 남대문 시장의 규모가 만들어진다. 당시 주요 거래 품목은 미곡(米穀)과 과일, 채소, 생선 등 농수산물과 식료품이었으며, 이 외에도 고기류나 생활 잡화도 취급하여 명실상부한 거래액 규모에서는 조선 최대 전통시장의 면모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남대문 시장은 동대문시장과 아울러 서울의 중심시장 자리를 지켜온다. 1947년에 215개의 점포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1952년에 252개로 늘어났고, 종전 후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150개의 점포와 500여 개의 노점들이 생업을 이끌어가는 공간으로 살아 남아 있었다. 특히 휴전 이후 남대문시장은 주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룬다. 전후복구를 위한 미군의 구호물자와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군용품,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내려오던 적산(敵産) 사치품과 밀수품 들이 거래되면서 소위 ‘도깨비’처럼 단속을 피해 물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이 남대문 시장 안에서는 빈번하였다. 특히 50,60년대 정부에서 유통 금지 물품으로 단속을 하던 밀수품들인 카메라, 양주, 담배, 시계, 양산 등이 남대문 시장 곳곳에 등장했다가 없어지곤 해서 당시 서울 시민들의 호기심을 가득 받기도 하였다. 또한 미군들의 군복, 담요, 시레이션(C-ration) 박스 등 접하기도 힘든 고급 군수물자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어 항간에는 ‘박격포’도 살 수 있다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퍼지기도 하였다. 1960, 70년대에는 빈번한 불난리를 피해 시장 건물 현대화사업에도 박차를 가한 기간이었다. 1969년 1월에는 지하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이 완공되었고, 이후 1975년까지 667개의 점포가 추가되어 그 때의 건물들이 현재까지 이르러 지금의 시장의 틀을 만들었다. 1980년대는 바야흐로 남대문 시장 전성시대였다. 흔히 ‘남문’패션이라고 해서, 베이비붐 세대들인 1970년대 생 아동들이 학교에 입학할 즈음 전국적으로 아동복에 대한 수요가 넘쳐흘렀고 이를 남대문시장이 감당하였다. 40대 이상이라면 지금도 귀에 익숙한 ‘부르뎅’, ‘원 아동복’ 등의 아동복 브랜드가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의 ‘워너비’ 메이커가 되었다. 또한, 신발류로는 ‘프로스펙스’, ‘르까프’, ‘까발로’, ‘타이거’, ‘슈퍼카미트’, ‘프로월드컵’ 등의 브랜드가 등장하여, 남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를 넘어 전국 각지로 어린이들의 동심을 흔들어 놓았다. 특히 어린이날 전후로는 물건을 떼러온 ‘봉고’들이 남대문 시장 입구 10Km부터 줄지어 서있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남대문시장의 호황은 1997년 IMF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더구나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등장하고 인근의 동대문 시장이 의류 특화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남대문시장은 의류 중심의 상권이 대거 액세서리, 안경점, 여성 전문 패션, 그릇, 내복류 등으로 이동하여 2000년대를 맞이한다. 오늘날 남대문시장은 비록 예전의 ‘박격포’까지 팔 기세의 위세는 점점 사그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발을 굳건히 붙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급증으로 인하여 한류상품, 인삼, 김, 가죽 제품 등과 같은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상점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17세기 후반에 출현한 어물 유통의 중심지, 남대문 밖 칠패(七牌)시장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남대문 시장. 현재 인터넷, 모바일 쇼핑 등의 변화된 유통 환경에서도 그 옛날 나랏님도 어쩌지 못하던 난전(亂廛)시장 특유의 질긴 생명력을 한류(韓流)의 물살을 타고 단단히 이어가길 바란다. <남대문시장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너무나 당연하다. 남대문시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서울을 방문하는 초심자에게 남대문 시장은 경복궁, 남산 타워와 아울러 기본 탐방 코스다. 2. 누구와 함께?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가 보면 좋다. 추억과 더불어 시장 골목골목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3. 가는 방법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권유한다. 지하철4호선 회현역 5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제일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규모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크다. 점포수가 만 개가 넘으니 넉넉한 시간을 두고 둘러보는 것이 낫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80년, 90년대의 부르뎅 아동복이나 원 아동복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에게는 그 당시만 못하더라도 여전히 전통시장 특유의 진한 삶의 내음은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많다. 6. 꼭 봐야할 상점이나 거리는? -수입상품거리나 그릇 도매점, 액세서리 상가도 볼만한 것이 많다. 특히 수입상품상가 강추! 7. 먹거리 추천? -원래 남대문시장 최고의 인기 음식은 단연 갈치조림이다. 갈치조림골목은 남창동 본동상가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회현역 5번 출구 인근의 칼국수 골목도 유명하다. 또한 안경점 골목 주변의 노천 생갈비도 먹을 만하다. 이외에도 곰탕, 닭곰탕 등등의 먹거리 투어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시장. 8. 홈페이지 주소는? -www.namdaemunmarket.co.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남대문 시장 만으로 한나절 넉넉하다. 주변이 바로 명동이어서 남산이나 경복궁, 광화문 등지로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우선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기 전에는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전체 지도를 꼭 보고 가야한다. 또한 전문적인 상가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매 목적에 맞는 상가 위치를 미리 알고 가면 좋다. 그리고 주차 문제는 심각해서 반드시 주차장에 세워 두어야 견인, 과태료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에누리 없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인천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

    인천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

    오는 29일 인천 부평공원에 들어설 예정인 평화의 소녀상이 14일 인천 신흥동의 김창기 작가 작업실에 전시돼 있다. 134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인천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인천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김 작가를 동상 제작자로 선정했다. 인천 연합뉴스
  • [커버스토리] 내 아내는 외교관… 그녀는 두 번 운다

    [커버스토리] 내 아내는 외교관… 그녀는 두 번 운다

    일·가정 두 토끼 잡기 헉헉… 고달픈 삶 고충심의위 이달 가동 복지 배려 팔걷어 올해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이 70%를 돌파하는 등 최근 여성 외교관이 급증하자 외교부가 해외 공관 근무 지원 제도 및 조직문화의 전반적 개선을 위해 ‘일·가정 양립 고충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달 중 가동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 시험의 여풍(女風) 확산 이후 관련 제도 마련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건 정부 부처 중 외교부가 처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4일 “여성 외교관 증가로 가족 문제와 관련된 고충이 많아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면서 “내부 절차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다음주부터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성별, 세대, 해외 경험 유무 등을 고루 따져 총 8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인사기획관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고충 접수창구를 통해 들어오는 구성원들의 고충이나 아이디어를 심사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원만한 결혼, 출산, 육아 등을 위해 해외 공관 근무 방식을 변경하거나 인사 발령 시 공통으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법령이나 규정 등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부부 외교관을 인근 공관에 배치해 주거나 여성 직원의 출산·육아를 감안해 근무지 배치 시 배려해 주는 것들이 모두 관행이나 시혜 같은 형식으로 이뤄졌다”면서 “이런 조치들이 상급자나 인사 담당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제도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쉼터 조성, 수유실 확보 등 물리적인 복지 공간의 도입 방안 등도 검토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위원회 활동이 이뤄지면 특히 부내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외교관들의 활동상 제약을 일정 부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신규 인력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높아 조직 역량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70.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단독] 외교부, 여성외교관 ‘일가정 양립 지원 위원회’ 이달 가동

    [단독] 외교부, 여성외교관 ‘일가정 양립 지원 위원회’ 이달 가동

    올해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이 70%를 돌파하는 등 최근 여성 외교관이 급증하자 외교부가 해외공관 근무 지원 제도 및 조직문화의 전반적 개선을 위해 ‘일·가정 양립 고충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달 중 가동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 시험의 여풍(女風) 확산 이후 관련 제도 마련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건 정부 부처중 외교부가 처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4일 “여성 외교관 증가로 가족 문제와 관련된 고충도 많아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면서 “내부 절차가 끝나는대로 이르면 다음 주부터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성별, 세대, 해외 경험 유무 등을 고루 따져 총 8명 위원으로 구성하며, 인사기획관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위원회는 고충 접수창구를 통해 들어오는 구성원들의 고충이나 아이디어를 심사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원만한 결혼, 출산, 육아 등을 위해 해외공관 근무 방식을 변경하거나 인사 발령시 공통으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법령이나 규정 등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부부 외교관을 인근 공관에 배치해주거나 여성 직원의 출산·육아를 감안해 근무지 배치시 배려를 해주는 것들이 모두 관행이나 시혜 같은 형식으로 이뤄졌다”면서 “이런 조치들이 상급자나 인사 담당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제도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쉼터 조성, 수유실 확보 등 물리적인 복지 공간의 도입 방안 등도 검토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위원회 활동이 이뤄지면 특히 부내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외교관들의 활동상 제약을 일정 부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신규 인력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높아 조직 역량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70.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항구가 쓴 역사’ 근대사의 시작 인천항 월미도

    ‘항구가 쓴 역사’ 근대사의 시작 인천항 월미도

    자월도 여정의 날머리인 인천항 주변에 둘러볼 곳이 많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월미도가 지척이고, 맛집들이 몰려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근대화의 흔적이 오롯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 등도 멀지 않다. 월미도는 1980년대 이후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곳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데다 바다와 접해 있어 추억을 곱씹으려는 ‘옛 청춘’과 ‘현재진행형 청춘’들이 고루 즐겨 찾는다. 2001년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좀더 화려해지고 세련돼졌다. 대관람차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여기저기서 쏘아올린 폭죽은 검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인천상륙작전 최초로 전개된 월미도 월미도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최초로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지금의 월미도(그린비치)와 북성동(레드비치), 용현동(블루비치) 등 3개 지점을 중심으로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가운데 ‘그린비치’가 제1단계 작전지였다. 이어 1950년 9월 15일 연합군이 그린비치를 통해 상륙에 성공했고, 약 2주 뒤인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전세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간 월미도엔 적잖은 변화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월미산 개방이 반갑다. 한국전쟁 이후 약 50년간 미군부대가 주둔한 탓에 출입이 통제되다 2001년 일반에 문을 열었다. 월미산 일대는 월미공원으로 조성됐다. 산을 에둘러 둘레길도 조성됐다. 2009년 ‘수도권 걷기 좋은 산책코스 베스트 20’에 선정된 길이다. 둘레길 곳곳엔 ‘평화의 나무’가 서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떨어졌던 수천 발의 포탄과 총탄을 견딘 나무들이다. 둘레길 들머리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와 240여년을 살아온 ‘평화의 어머니 나무’ 등 모두 일곱 그루다. 월미산 정상 못 미친 곳에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25m 높이의 철골구조 위에 유리를 덧씌운 형태다. 전망대 맨 위층에 서면 인천항, 인천공항, 송도국제도시, 인천대교 등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관조명이 불을 밝히는 밤엔 전망대 자체가 볼거리 노릇을 한다. 월미달빛마루 카페에선 파노라마 전망과 함께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중구 쪽에도 인천상륙작전 관련 볼거리들이 몇 곳 있다. 자유공원엔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된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광복 직후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기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며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월미도 입구부터 동상에 이르는 길은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맥아더 길’로 명명됐다. ●차이나타운·일본 조계지의 공존 인천역 맞은편은 차이나타운이다. 초입에 세워진 패루(중국식 전통 대문)를 지나면 화려한 색감의 중국풍 건물이 이어진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일대가 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겼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공화춘, 중화루 등 거의가 중국 음식점이다. 여기에 토산품, 의상, 제과 등을 파는 가게들이 드문드문 혼재돼 있다.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화교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길이 150m에 달하는 ‘삼국지 벽화’가 벽면에 펼쳐져 있다. 삼국지의 명장면을 해설과 함께 총 160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해 놨다. 화교학교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계 경계석이 나온다. 이 조계 경계석을 경계로 왼쪽은 청나라, 오른쪽은 일본 조계지였다. 조계지는 개항도시에 있던 외국인 거주지로,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경계석에서 일본 조계지 쪽으로 들어서면 일본풍의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나온다. 이른바 ‘개항장 거리’다. 옛 ‘일본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중 일본제1은행은 인천 개항박물관으로 변신했고, 일본18은행 건물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재개관했다. 개항장 거리 가운데 있는 중구청 건물은 옛 일본영사관 자리다. 홍예문(인천유형문화재 49호)은 인천 중앙동 등에 밀집된 일본인 거주 지역을 만석동까지 늘리기 위해 일본 공병대가 뚫었다. 인천의 구도심 항구 지역과 동인천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홍예문 아래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수고를 피하려는 사람들도 종종 이용한다. 문 위에 서면 인천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홍예문을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삼치거리, 동화마을 등이 이어진다. 이 밖에 서양식과 일본식을 섞어 화강암으로 만든 인천우체국(현재 인천 중동우체국), 1897년 고딕 양식으로 건축됐다가 1937년 외곽을 벽돌로 쌓아 변형한 답동성당 등도 개항장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인천개항장 밤마실 축제 등 열려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내리면 바로 앞이 차이나타운이다.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이면 붐비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할 수 있다. 인천시에서 주최하는 인천 개항장 밤마실 축제가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의 여러 문화재를 밤에 즐길 수 있는 행사다. 100년 전 창고를 예술촌으로 단장한 인천아트플랫폼, 옛 일본 58은행 등의 개장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늦춰진다. 특히 14, 15일엔 미디어 파사드(건물 외벽에 영상을 투영하는 기법)를 활용한 영상쇼,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수은등 모양의 가로등 켜진 옛길을 천천히 걷기만 해도 그윽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멍멍~ 주말엔 반려견과 즐겨요”

    “멍멍~ 주말엔 반려견과 즐겨요”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견을 기르는 가정도 급증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문화에 대한 이해와 예절, 각종 정보는 부족해 이웃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서울 양천구가 건전한 반려견 문화 정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양천구는 오는 15일 오후 1시 양천공원에서 ‘제2회 행복한 양천 반려견 문화축제’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강아지 얼굴 모양으로 생긴 양천구의 지도에 착안해 열게 된 반려견 문화축제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시작했다. 애견인구 천만 시대에 애견인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도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다양한 강아지 공연과 체험행사 외에도 반려견 무료 건강검진, 무료 애견미용, 반려동물 행동상담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반려견들의 어질리티(장애물 넘기), 프리스비(원반던지기) 시범공연이 펼쳐지고 반려견에 관한 상식문제를 함께 풀어 보는 OX퀴즈, 견주와 반려견이 함께 달리는 반려견 달리기대회, 톡톡 튀는 장기를 펼치거나 귀여운 반려견을 뽑는 반려견 슈퍼스타K도 기대된다. 또 동물 귀 머리띠 등을 만들어 동물로 변신해 보는 체험인 동물매개치료와 동물 옷 디자인을 직접 해 보는 동물매개교육을 통해 반려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참가자가 창의적으로 강아지 옷을 디자인하는 애견 패션 대결도 펼쳐진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마련된 이번 축제로 올바른 반려동물과 생명존중 문화가 지역사회에 정착되길 바란다”면서 “애견인이 아닌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성동구, 장애인보장구 수리대회 개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대회가 열린다. 장애인이 다른 동료 장애인의 보조 장비를 고치는 뜻깊은 대회이다. 서울 성동구는 12일 서울 왕십리광장에서 ‘제5회 성동구청장배 전국장애인보장구수리기능대회’를 연다. 장애인보장구기술자 양성과 보장구 수리환경 인프라 확대를 위해 마련한 이 대회는 2012년부터 매년 진행된 장애인기능대회로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과 한국보장구수리기능인협회가 함께한다. 대회는 한국보장구수리기능인협회의 정기총회를 시작으로 전국 25개 시·도 대표선수들이 참가, 보장구 수리 기량을 겨룬다. 대회 입상자에게는 금상 100만원, 은상 50만원, 동상 3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입상자를 제외한 선수들에게는 작은 격려금이 지급된다. 또 다양한 부대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선착순 휠체어(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수동휠체어) 이동보조기기 커버 지원과 서울시보조공학서비스센터의 보조공학기기 전시회 및 보장구 소독·세척 서비스, 보장구 판매업체의 보장구 전시회도 진행된다. 구는 2009년 전국 최초로 장애인 보장구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자립에 필요한 복지상담과 보장구 관련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번 대회는 장애인 기술자들이 동료, 이웃 장애인의 장비를 고치고 손봐줄 뿐 아니라 자립의 발판이 될 좋은 기회”라면서 “앞으로도 기본적인 복지혜택뿐 아니라 지역 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고교생 폭행 사주 의료재단 이사장 2년형

    부산지법 형사7단독 조승우 판사는 11일 자신의 병원 직원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 병원 직원과 폭력배 등 성인 남자 7명을 학교에 보내 가해 학생들을 때리도록 지시해 공동상해와 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 모 의료재단 이사장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5월 병원 여직원 B씨로부터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 등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 직원들에게 “다시 그러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혼내 주고 교사들도 알 수 있도록 학교를 뒤집어 놓고 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병원 직원 5명과 폭력배 2명 등 7명은 학교로 찾아가 5명은 교문 인근에 대기하고, 폭력배 등 2명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B씨 아들을 괴롭힌 학생 4명을 찾아 주먹으로 얼굴 등을 때렸다. 이들은 교문에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린다”고 말하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은 달려온 교사 2명에게 막말을 하며 업어치기로 넘어뜨려 다치게 했다. 하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 측은 경찰에 신고해 출동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청에도 알렸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또 A씨는 2010년 12월 병원 직원에게 “의료재단 내 반대파 2명을 때려 중상을 입히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2011년 1월 말 서울의 한 호텔 야외 주차장에서 A씨가 지목한 인물을 폭행해 정신을 잃게 했다. 검찰 수사 결과 A씨는 2010년 하반기 경찰 관리 대상 폭력배를 수행비서로 채용한 뒤 수행비서에게 두 차례 폭행을 주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폭행 사건에 가담한 일부 폭력배를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A씨는 폭력과 사기, 마약 범죄 등 다수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부산지법, 고교생 집단폭행 사주 의료재단 이사장 징역 2년 선고

    부산지법 형사7단독 조승우 판사는 자신의 병원 직원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뒤 병원직원과 폭력배 등 성인 남자 7명을 학교에 보내 가해 학생들을 때리도록 지시해 공동상해와 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 모 의료재산 이사장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5월 병원 여직원 B씨로부터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 등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뒤 병원 직원들에게 “B씨의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다른 괴롭힘도 당하고 있는데 다시 그러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혼내주고 교사들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학교를 뒤집어 놓고 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에 병원 직원 5명과 폭력배 2명 등 7명은 같은 날 해당 학교로 찾아가 5명은 교문 인근에 대기하고, 폭력배 등 2명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B씨 아들을 괴롭힌 학생 4명을 찾아 주먹으로 얼굴 등을 때렸다. 이들은 교문에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고 말하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달려온 교사 2명에게 막말과 함께 업어치기로 바닥에 넘어뜨려 다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 측은 경찰에 신고해 출동했고 교육청에도 알렸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경찰관이 학교에 출동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청에 제때 통보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또 A씨는 2010년 12월 병원 직원에게 “의료재단 내 반대파 2명을 때려 중상을 입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사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2011년 1월 말 서울의 한 호텔 야외 주차장에서 A씨가 지목한 인물을 때려 바닥에 넘어뜨린 후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했다. 검찰 수사 결과 A씨는 2010년 하반기 경찰 관리대상 폭력배를 수행비서로 채용한 뒤 수행비서에게 두 차례 폭행을 주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같은 폭력조직 후배를 불러 두 차례 청부폭력을 지시했고, 폭행사건에 가담한 일부 폭력배들은 의료재단 직원으로 채용됐다고 검찰은 전했다. A씨와 후배 폭력배는 폭력과 사기, 마약범죄 등 다수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판사는 “조직적·계획적으로 저지른 폭력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특히 폭력배를 동원해 교육현장에 들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생과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이기 때문에 엄히 처벌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병원 이사장, 폭력배 시켜 “직원 아들 왕따시킨 가해학생 혼내라”

    병원 이사장, 폭력배 시켜 “직원 아들 왕따시킨 가해학생 혼내라”

    부산의 한 의료재단 이사장이 폭력배를 사주해 고등학생들을 폭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해당 이사장은 직원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왕따)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직원과 폭력배 등 성인 남자 7명을 학교에 보내 가해 학생들을 때리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법 형사7단독 조승우 판사는 공동상해와 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부산 모 의료재단 이사장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1년 5월 병원 직원 B씨로부터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 등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A씨는 며칠 뒤 병원 직원들을 모아놓고 점심을 먹으며 “B씨의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다른 괴롭힘도 당하고 있는데 다시 그러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혼내주고 교사들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학교를 뒤집어 놓고 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에 병원 직원 5명과 폭력배 2명 등 성인 7명은 같은 날 오후 해당 학교로 몰려갔다. 5명은 교문 인근에 대기했고, 경찰 관리대상 폭력배 등 2명은 교실을 돌아다니며 B씨 아들을 괴롭힌 학생 4명을 찾아 주먹으로 얼굴 등을 때리고 교문 부근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교문에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고 말하며 위협하기도 했다. 교사 2명이 달려와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교무실로 가서 얘기하자”고 하자 이들은 교무실에서 행패를 부렸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한 교사를 업어치기로 바닥에 넘어뜨려 다치게 하기도 했다. 폭력배 2명이 낀 남성 7명이 학교에 침입해 학생과 교사를 폭행하며 난동을 부렸지만 해당 학교는 왕따와 외부인에 의한 폭행 사건이 알려질까봐 경찰은 물론 교육청에도 이같은 사실을 신고하거나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 판사는 “조직적·계획적으로 저지른 폭력으로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특히 폭력배를 동원해 교육현장에 들어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생과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이기 때문에 엄히 처벌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한편 A씨가 폭력을 사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2010년 12월 병원 직원에게 “의료재단 내 반대파 2명을 때려 중상을 입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사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2011년 1월 말 서울에 있는 한 호텔 야외 주차장에서 A씨가 지목한 인물을 마구 때려 바닥에 넘어뜨린 후 정신을 잃을 때까지 폭행했다. 검찰 수사 결과 A씨는 2010년 하반기 경찰 관리대상 폭력배를 수행비서로 채용하고 수행비서에게 두 차례 폭행을 주도하도록 지시한것으로 드러났다. A씨와 후배 폭력배는 폭력과 사기, 마약범죄 등 다수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지검 강력부(부장 정종화)는 검거한 폭력배에게서 “A 이사장 사주를 받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진술을 확보, 올해 4월과 5월 A씨의 구속영장을 두차례나 청구했지만 법원은 연거푸 영장을 기각했다. A씨 변호인은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부산 유력 법무법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을지로 뒷골목 담벼락 화려한 그림옷 ‘대변신’

    지난 9일 오전 10시, 주말의 텅 빈 서울 을지로 골목이 일순간 왁자지껄해졌다. 한 무리의 젊은 예술가들과 24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손에 붓과 페인트를 들고 한데 모였다. 을지로 4가역 1번 출구 근처 뒷골목,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후미진 뒷골목에 금속 공장, 공구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들은 칙칙하고 어두운 이곳을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대변신시키기 시작했다. 담벼락과 가게·공장 셔터가 파이프·철근 패턴이 화려한 그림들로 산뜻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이날 일명 ‘셔터 아트’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을지로 청년예술가팀인 ‘새 작업실’ 김선우씨와 ‘R3028’ 팀원들. 서울시 아동상담센터에 다니는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이날 체험학습차 함께했다. 동네 상인 박모(45)씨는 “칙칙했던 골목길이 한결 밝아졌다”며 흡족해했다. 실력을 뽐낸 예술가들은 중구가 을지로 산림동의 빈 점포들을 임대해 창작공간으로 제공하는 ‘을지로 디자인/예술프로젝트’ 소속이다. 김선우씨는 앞서 청구초등학교 주변 골목길 벽화사업 때도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술 교육대학원 전공자 8명이 뭉친 ‘R3028’은 주민 대상 감상교육 등 체험미술 사업을 펴고 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청년예술가들의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근대 산업역사의 중심지인 을지로가 다시 주목받는다”며 “이 일대에 문화예술을 덧입혀 도심 재창조를 일궈내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北 매체, ‘불바다’같은 위협적 단어 역대 최고로 자주 써

    北 매체, ‘불바다’같은 위협적 단어 역대 최고로 자주 써

    북한 매체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불바다’ 같은 위협적 언사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매체 감시 사이트인 ‘조선중앙통신(KCNA) 워치’는 ‘북한위협지수’가 6일 현재 0.4를 나타내, 이 사이트가 지수를 공개하기 시작한 지난 1998년 이후 최고치라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 등 도발이 지속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은 것에 따른 결과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KCNA 워치는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의 기사에서 ‘불바다’, ‘타격’, ‘응징’과 같이 공격적인 표현을 날마다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집계해 북한위협지수를 산출한다. 위협지수가 0.4라는 의미는 위협적인 표현이 들어간 기사가 전체의 40%에 이른다는 뜻이다. 중앙통신의 지난 3월 보도 내용을 보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당시 우리 공군의 대북 정밀타격 훈련 등을 거론하면서 “대구경 방사포들도 박근혜가 도사리고 있는 청와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격동상태에 있다”며 “누르면 불바다가 되고 타격하면 잿가루가 되게 되여있다”며 위협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도 지난달 중앙통신을 통한 성명에서 미국 전략폭격기 B-1B의 한반도 출동한 데 대해 “서울을 완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위협지수’는 실제 군사적 도발로 직결되진 않으며, 오히려 반대의 경향마저 나타난 게 그동안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던 2013년의 경우 북한이 미국 본토와 한국을 미사일로 겨냥하겠다고 주장하는 등 위협발언이 줄이으면서 이 지수가 정점을 찍었으나, 그해 실제 군사적 충돌은 없었다. 반면 2010년 천안함 폭침이나 작년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과 같은 주요 무력도발 직전에 이 지수는 특별히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과거와 달리 북한이 위협적 언사를 군사도발로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리 군 당국과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은 자기들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유형의 국지도발, 전략 도발 등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래의 꿈 위로의 숨 고향의 쉼

    고래의 꿈 위로의 숨 고향의 쉼

    고래는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왼쪽 뇌가 잠들더라도 오른쪽 뇌는 깨어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하나다.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서다. 몸뚱아리는 물고기지만 숨은 물 밖에 나와 쉬어야 한다. DNA에 새겨진 포유류의 기억이 여태 선명한 게다. 그러니 이런 가정도 성립하지 않을까. 고래는 늘 꿈을 꾼다고. 실제 고래는 움직이면서 잠을 잘 수 있고 물 밖으로 솟구칠 때도 꿈을 꾼다고 한다. 파란 바다 저 끝에서 고래와 만나는 건 그래서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된다. ‘고래의 고향’ 울산 장생포를 찾은 건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탐사선에 올라 고래를 만나 보겠다는 것. 애초 현실성 따위는 없었다. 그저 돌고래나 만나면 다행일 터다. 그래도 꿈을 꿀 수는 있잖은가. 바다 위로 솟구치는 큰 고래와 만나는 꿈 말이다. ●포경산업 전진기지가 고래관광특구로 울산 남구는 ‘고래관광특구’다. 자타가 인정하는 ‘고래의 도시’다. 남구에서도 고래의 본고장을 꼽으라면 단연 장생포다. 한때 우리나라 포경산업의 전진기지였던 곳. 포경산업은 여느 어업과 달리 고래 해체장 등 상당한 규모의 배후 기지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했던 곳이 장생포다. 먼저 고래박물관부터 들른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금지 이후 사라져 가던 국내 포경 관련 자료와 유물들을 수집해 전시하는 공간이다. 귀신고래 등 우리 근해에 서식하는 고래들에 대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밖에는 ‘제6진양호’가 전시돼 있다. 장생포를 거점으로 고래를 잡던 실제 포경선이다. 포경금지법 발효 뒤 방치됐다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됐다. 관람객 누구나 배에 올라 포경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 맞은편의 고래생태체험관은 다양한 바다생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돌고래 쇼도 열린다. 무엇보다 건물 초입에 세워진 한 외국인 동상이 이채롭다. 주인공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다. 1912년 장생포를 방문한 그는 1년간 머물며 귀신고래를 연구한 뒤 1914년 당시 ‘악마 고래’라 불리던 귀신고래를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고 처음 이름 붙였다. 하지만 귀신고래는 1970년대 이후 ‘귀신같이’ 사라졌다. 동해를 휩쓸었던 유럽 열강과 일제의 남획 탓이다. 물론 일제강점기 이후 포경업에 나섰던 우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후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였던 울산과 경북, 강원 일대의 해면을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현상금까지 내걸어 귀신고래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여태 녀석을 봤다는 이는 없다. ●550t 탐사선 타고 3시간여의 고래 탐사 이제 하이라이트. 고래 탐사 시간이다. “고래를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시원한 바닷바람 쐬고 돌아온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탐사에 나설 ‘고래바다여행선’에 오르기까지 수차례 들었던 말이다. 그만큼 고래 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터다. 보통은 6~8월에 자주 볼 수 있다고 알려졌다. 한데 이는 주된 관찰 대상이 돌고래류일 경우에 유효한 전제다. 대형 고래들이 좇는 먹잇감은 낮은 수온에서 더 잘 나올 수도 있다. 올해는 8월의 돌고래 관찰률이 어느 해보다 떨어졌다. ‘역대급’ 더위 탓에 수온이 올라 먹잇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온이 떨어지는 10월 언저리엔 큰 고래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한국계 귀신고래의 경우 5~6월 캄차카반도 오호츠크해까지 올라갔다가 10월쯤 먹이 활동과 출산을 위해 남하한다던데, 회유 길목에서 운 좋게 녀석과 조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고래가 처한 안팎의 현실을 짚어 보면 이는 몽상에 가까운 바람이다. 그래도 꿈은 꿈이다. 고래바다여행선 항로는 모두 세 코스다. 그 가운데 고래 탐사에 초점을 맞춘 건 1, 3항로다. 이번 여정에선 제 1항로를 따라간다. 울산 북동쪽 바다를 훑는 코스다. ●대형 고래와의 조우는 ‘하늘의 별따기’ 사실 대형 고래는 세 시간 안팎의 탐사로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대형 고래들은 대부분 한 번 잠수하면 두어 시간 가까이 바닷속에 머물 수 있다. 게다가 돌고래류와 달리 선박을 피하는 특성도 대형 고래 관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니 고래 탐사에 나선다는 건 사실상 돌고래를 보러 간다는 말과 같고, 돌고래 무리와 만나는 것조차 행운일 경우가 많다. 장생포항을 나선 배가 파란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550t 급 크루즈선을 개조한 배다. 덩치가 큰 덕에 어지간한 파도쯤은 뭉개고 지나간다. 당연히 뱃멀미도 덜하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잉크빛 바다 위로 날치 한 마리가 날아간다. 뒤를 이어 게 한 마리가 파도를 타고 두둥실 떠간다. 이게 꿈일까. 얼핏 만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얼마쯤 지나자 이번엔 날치 십여 마리가 배를 피해 날아간다. 우수수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나는 모습이 여간 이채롭지 않다. 해양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몽환적인 풍경이다. ●참돌고래떼 화려한 군무에 탄성이 절로~ 선상 공연도 끝나고 모두가 슬슬 지쳐 갈 때쯤 요란스레 선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선원들이 손짓하는 곳에 참돌고래 무리가 있었다. 무려 1시간 41분 항해 끝에 마주한 행운이다. 참돌고래 무리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던 관광객들을 위해 어느 수족관에서도 볼 수 없는 군무를 선사했다. 여기서 솟고, 저기서 잠수하고, 한바탕 쇼가 펼쳐졌다. 수면 위로 허리까지 솟구친 채 ‘문 워크’ 자세를 ‘시전’하는 녀석도 눈에 띄었다. 회항 때문에 녀석들과 함께한 시간은 채 20분이 못 됐지만 야생의 생명들이 벌이는 유희는 그 어떤 공연보다 경이로웠다. 장생포항 주변에 둘러볼 곳이 많다. 고래문화마을이 대표적이다. 고래조각정원 등 고래와 관련된 다양한 볼거리들을 모아 놓은 테마 마을이다. 특히 장생포 옛마을이 인상적이다. 포경산업이 절정에 달했던 1960, 70년대 장생포의 동네 풍경을 실물 그대로 복원했다. 고래 해체장 등 작업 공간과 선장, 선원들의 집, 그들이 즐겨 다녔던 선술집 등 향수를 자극하는 건물들로 가득하다. ●박물관·문화마을 등 옛 정취 고스란히 ‘장생포국민학교’(초등학교)를 복원한 건물은 꼭 찾는 게 좋겠다. 옛 장생포의 사진 등 볼거리가 꽤 많다. 가수 윤수일이 이 학교 졸업생이다. 교실 하나가 그의 사진과 신인 가수 시절의 앨범 등 옛 기념물로 꽉 찼다. 학창 시절 찍은 그의 사진은 대부분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다. 혈기방장한 객기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지 싶은 장면이다. 그도 고래잡이를 꿈꾸며 자랐을까. 장생포 앞바다에 뜬 죽도를 생각하며 ‘환상의 섬’(1985)이란 노래도 지었다던데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각별했나 보다. 하지만 어른이 돼 다시 찾은 고향에 그가 꿈꿨던 장생포는 없었다. 당시 상실감은 노래 ‘환상의 섬’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 섬엔 문명이 할퀴고 간 초라한 그 모습”이라고. 옛 마을 위는 고래조각공원이다. 혹등고래, 귀신고래 등의 실물 조형물을 조성해 뒀다. ‘인증샷’ 찍기 딱 좋다. 고래박물관에서 고래문화마을로 향하는 골목길 입구엔 ‘장생포 마을 이야기길’이 있다. 장생포 사람들의 삶을 벽화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 약 560m 구간에 다양한 벽화를 그렸다. 울산의 명소 한 곳만 덧붙이자. 태화강 십리대숲길이다. 지난 7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차 방문해 화제가 됐던 곳이다.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을 따라 십리(약 4.3㎞)에 걸쳐 대나무숲이 이어진다. 이름이야 다소 심드렁하게 느껴지지만 규모나 풍경의 깊이는 예사롭지 않다. 산책로를 걸으며 피톤치드로 샤워를 할 수도 있고, 죽림욕장에 누워 쉴 수도 있다. 글 사진 울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2 →가는 길:고래 탐사는 4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다. 탐사는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출발은 장생포항이다. 요금은 어른 2만원, 12세 이하 어린이 1만원이다. 홈페이지(www.whalecity.kr/whale) 참조. 226-1900~2.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도 고래 탐사에 실패했을 경우 고래박물관 입장료가 할인된다. →맛집:미식가들에게 울산은 ‘12가지 맛’이 난다는 고래고기 맛 기행지다. 장생포항 주변에만 고래고기 식당이 20여곳에 이른다. 값은 만만치 않다. 대부분 업소에서 수육을 5만원부터 판다. 처음 고래고기를 맛보는 이들은 다소 비릿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장생포 고래빵(269-7543)은 울산의 ‘명물’ 반열에 오른 고래빵을 파는 집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 고래이야기길 초입에 있다.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추사 김정희도 힐링했다는 백사실계곡 별장터 찾아 시간 여행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추사 김정희도 힐링했다는 백사실계곡 별장터 찾아 시간 여행

    서울미래유산은 정치역사, 산업노동, 시민생활, 도시관리, 문화예술 등 5개 분과로 나뉜다. 산업노동분과 세부선정기준에 따르면 개별 건조물보다는 산업활동 간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갖는 단지 전체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도시산업사에서 상징성이 높은 건물은 개별 선정이 가능하다. 공산품의 경우 최초 제품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야 하고 동상·탑·기념물인 경우 예술적 가치만을 고려한다. 서울의 산업화와 노동현실을 다룬 문학작품도 지정할 수 있다. 다음엔 시민생활분과 세부선정기준을 알아본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입추, 처서, 백로 등 가을 절기가 모두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웠던 지난달 10일.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서울시 유형문화재 33호)에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아홉 번째 답사가 오전 10시 시작됐다. 참석자 대부분이 생소하게 마주한 성과 성문 앞에서 배건욱(47)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에 귀를 쫑긋 세웠다. 홍지문·세검정 현판은 박정희 친필전국 21개 문화재에 흔적… 가장 많아 “홍지문,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산성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탕춘대(蕩春臺)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탕춘대는 연산군이 1506년 이곳에 누대(樓臺)를 지어 연희 장소로 삼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조 때는 무사들을 훈련시키는 연융대(鍊戎臺)로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세검정 정자를 지나 월드캐슬 빌라 정문 왼쪽 암벽 아래 표지석으로 남아 있다. 배 해설사는 특유의 또렷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왜란과 호란 과정에서 수차례 한양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던 조선 왕조는 수도 방위를 전후 복구의 중심에 뒀습니다. 성 축조에는 많은 찬반 양론이 있었고 공사가 거의 완성될 때까지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신하들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서울미래유산’ 소전 손재형 옛 가옥현재는 한정식집 ‘석파랑’으로 변신 홍지문 편액은 숙종이 친필로 내렸다. 한성 북쪽 문이라서 한북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임금이 편액을 내렸기 때문에 홍지문으로 정리됐다. 1921년 1월 문루가 주저앉은 데 이어 8월에 대홍수로 사천(모래내)이 흐르던 오간수문마저 유실된 것을 1977년 복원했다. 편액은 이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것이다. 편액 글씨와 관련해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대통령 친필 문화재 현판 현황’에 따르면 전국 27곳 문화재에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그중 홍지문, 세검정 등 박 전 대통령 친필이 있는 곳이 21곳으로 가장 많았다. 노 의원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재복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코스에는 서울미래유산이 단 한 곳뿐이다. 종로구 홍지동 125에 있는 한정식집인 석파랑이다. 서예계 거목인 소전 손재형(1903∼1981) 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으로 보전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배 해설사에 따르면 이곳은 한정식집으로 서울미래유산이 된 게 아니라 소전이 지은 옛 가옥이기 때문이다. 1985년 사용 승인된 한옥은 1989년 소유주가 소전의 딸에서 현재 석파랑을 운영하는 김주원 회장으로 변경됐다. 김 회장은 1993년부터 이곳을 한식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김 회장은 “가족 잔치와 상견례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특히 한국을 찾은 외교사절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석파랑 언덕배기에는 석파정 별당(서울시 유형문화재 23호)이 있다. 소전이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26호)에서 별당을 옮겨 놓은 것이다. 별당에서는 조선 후기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다. 배 해설사는 “별당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기술을 가진 한옥 장인이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 지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별장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석파(石坡)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로 석파정은 이번 답사 종착지인 서울미술관 뒤쪽에 있다. 원래 이 정자는 조선 말 세도가인 영의정 김흥근의 별장이었다. 흥선대원군은 이를 자신의 별장으로 만들고 싶어 고종을 하룻밤 머물게 하는 꼼수를 부린다. 배 해설사는 “당시 군신관계 관습상 군왕이 머물렀던 곳은 신하가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흥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자를 상납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내 안양각 뒤 바위에 ‘삼계동’이란 각자(刻字)가 있어서 ‘삼계동 정자’로 불리다가 대원군이 차지하면서 자신의 호를 딴 석파정(石坡亭)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코스의 테마는 ‘도심의 쉼터 부암동’이다. 서울 시내에서 몇 안 되는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네다. 그래선지 예부터 세도가들의 별장이 많았다. 부암동 동명은 부암동 134에 부침바위(付岩)가 있던 데서 유래됐다. 부침바위에 다른 돌을 자기 나이 숫자대로 문지르다 붙여서 떨어지지 않으면 잃어버린 아들을 찾거나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높이 2m 정도 되던 바위는 1960년 자하문 도로공사 때 깨뜨리기 전까지 서 있었다. 지금은 이 바위를 기념하는 비슷한 크기의 석조 조형물이 세검정 삼거리에 있고 표지석은 부암동 유원빌라 근처에 있다. 답사단은 세검정(서울시 기념물 4호)과 조선시대 궁중, 중앙관청에서 쓰는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 터를 지나 세검정초등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운동장 구석진 곳에 있는 장의사(莊義寺) 당간지주(보물 235호)를 보기 위해서다. 장의사는 황산벌 싸움에서 전사한 신라 화랑 장춘랑과 파벌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당간지주란 절 입구에 깃발을 거는 기둥인 당간을 받치는 돌기둥을 말한다. 운동장 한쪽에 높이 3.63m의 거대한 석주 두 개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신라의 화랑 넋 기리는 ‘당간지주’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위치한 ‘보물’ 답사에 참여한 류창국(46)씨는 “당간지주를 바라보고 있자니 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고 두 화랑의 기백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의사는 연산군이 일대에 탕춘대를 만들면서 폐사되고, 이 터에는 ‘이괄의 난’의 영향으로 인조 2년(1624년)에 총융청이 자리잡았다. 총융청은 한양도성 외곽 경기지역 경비를 맡아 오다 고종 21년(1884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세검정초등학교 담장 중간쯤 총융청 표지석이 있다. 답사단은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백사실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본격적인 도심의 쉼터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부암동 마을정자인 신영정을 지나면 마을 사람들이 만든 이정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한다. 백사실계곡을 가려면 거대한 바위 위에 지어진 현통사를 지난다. 종로구 부암동 115 일대 백사실계곡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도심 청정구역이다. 북악산 북사면에서 발원한 계곡물에는 도롱뇽, 가재, 무당개구리 등이 서식한다. 1800년대 별서 유적지인 백석동천(명승 제36호)이 각자로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별장터는 백사 이항복의 소유였다는 설이 많으나 고증되지 않았다. 후일 추사 김정희가 이 터를 사들여 새롭게 별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옛 문헌에서 찾아냈다. 백사실계곡이 도심 속에 깨끗하고 조용한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아온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답사단이 찾은 이날 역시 계곡 밖은 햇볕이 이글거렸지만 이곳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든 ‘녹색그늘’로 시원했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백석동천’(白石洞天)의 호방한 각자가 풍광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어머니와 부인, 딸 등 일가족과 함께 나온 이영기(41)씨는 “평소 무심코 지났던 곳에 대해 역사적 배경이 담긴 해설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 시니어클럽에서 활동하는 이재원(63)씨는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클럽 어르신들을 백사실계곡에 모시고 와서 설명해 드리고 싶어서 먼저 배우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창의문(보물 1881호)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한양도성 백악구간이 훤하게 보인다. 멀리 백악의 가파른 산세를 좇아 도성을 쌓았을 조선 민중들의 거친 숨소리가 메아리로 들리는 듯하다. 서울 사소문 중 하나이자 자하문이란 예쁜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창의문에 다다랐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귀한 유적이다. 인왕산 산세가 흡사 지네 같다고 해서 홍예문 천장에는 지네의 천적인 닭이 그려져 있다. 안평대군 이용의 별장인 무계정사(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가 있던 터에 이르자 한옥채 공사가 한창이었다. 명필이었던 안평대군이 남긴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각자가 이곳이 무계정사가 있던 터라는 것을 증명했다. 바로 옆은 문인 현진건의 집터가 있다. 답사단은 마지막 지점인 석파정이 있는 서울미술관에 도착했다. 몇 해 전 개인에게 팔린 뒤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입장권을 사야만 대원군의 별장을 오롯이 볼 수 있다. 아쉽지만 배 해설사가 준비해 온 사진으로 답사 갈증을 풀었다. 배 해설사는 “부암동이라는 공간은 조선시기 한양도성 너머에 있어 도성 배후지 역할을 했고 개발도 많이 됐지만 그래도 고유 모습을 꽤 간직한 곳이다. 특히 백사실계곡은 자연을 잘 간직하고 있고 일급수지의 청정지역이자 다양한 시간을 넘나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답사를 마무리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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