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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권 공조는 ‘동상이몽’

    충청권 광역단체들이 상생발전을 위해 협의체를 운영 중이지만 민감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충돌하고 있다. 겉으로는 공조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는 꼴이다. 4일 충북도에 따르면 충북·충남·대전 등 3개 시·도지사 협의기구인 충청권 행정협의회가 1995년 구성됐다. 2012년 출범한 세종시도 동참했다. 이 협의회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2월에는 4개 시·도 직원들이 상주하는 상생협력기획단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에 직면하면 충청권 상생은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오는 4월 개통 예정인 KTX 호남선 노선이 좋은 예다. 대전은 KTX 호남선이 서대전역을 경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충북은 유일한 분기역인 청주 오송역의 기능 약화를 우려하며 대전시 요구안을 반대하고 있다. 두 지자체는 같은 날 맞불 집회까지 개최했다. 협의가 이뤄진 상생정책도 흔들린다. 최근 대전시는 호남선 서대전역 경유에 충북이 반대하는 게 서운하다며 청주공항 활성화 조례 개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뜻을 충북도에 전해 왔다. 충북도의 제안으로 충청권 4개 시·도가 청주공항 활성화를 위해 신규 국제노선 개설 항공사에 지원금을 주는 내용을 담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종시는 서울~세종 간을 연결하는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장하고 있고, 충북도는 지역 경제 타격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사설] 새해 남북관계 초당적 대처로 풀어야

    광복과 분단 70주년인 올해 남북 당국 간 회담의 결실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박근혜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까지 신년사에서 적극적 남북 대화 의지를 비치면서다. 문제는 남북 대화가 열매 맺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인사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이례적으로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우리는 남북 관계가 탄탄대로를 달리려면 남남 갈등이란 걸림돌부터 치워야 한다는 견지에서 야권의 대국적 호응을 기대한다. 새해 벽두부터 남북 대화 재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누차 실질적 통일 준비를 다짐했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통일준비위 명의로 지난 연말 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다. 더욱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남북이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가는 대도에서 만나려면 숱한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당장 동맹국인 미국부터 북한의 대화 의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으로선 김정은의 제안이 북핵과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로 본다는 뜻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과 관련, 엊그제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잖아도 북측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마당에 김정은의 한마디에 매년 2∼3월 실시되는 한·미 키리졸브 연습과 8월의 한·미 연합 프리덤가드 연습 등을 중단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정부로선 한·미 훈련 규모나 시기를 다소 신축적으로 조정해 북측에 성의를 표시하고 이를 위해 미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할 판이다. 더군다나 정상회담이나 고위 당국자 회담 등의 전제조건을 둘러싼 남북의 입장차는 현격하다. 남북 당국이 동상이몽 격으로 회담 테이블에 앉으려 하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의 70년 한을 풀어 주는 인도적 사업으로 실마리를 풀어 남북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3대 세습체제 유지가 지상 목표인 북의 속내는 다르다. 체제 동요를 일으키는 개혁·개방은 최소화하는 선에서 남측의 경제 지원을 극대화하려는 낌새다. 내심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관철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란 얘기다. 이런 판에 야권이 5·24 조치 해제나 10·4 공동선언 이행을 주문하는 등 엇박자를 내면 결과는 어떨까. 회담장에서 밀고 당길 사안을 두고 미리 변죽을 울리면 우리의 협상력만 떨어뜨리는 꼴이 아닌가. 박 대통령이 신년인사회에서 5·24 조치를 해제하라고만 요구하지 말고 야당도 도와 달라고 요청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게다. 문 위원장도 “남북 문제 푸는 데 여야가 따로 없다”며 적어도 원론적으론 화답했다니 다행스럽다. 민생 경제와 국민의 안전과 복지 문제 등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당연히 언제든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으레 그렇듯이 남북 문제와 안보에 관한 한 초당적 대처가 절실함을 거듭 강조한다.
  •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Ⅰ <첫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세 문제를 만들었다. 월급에 대비해 그만큼이면 적당한 노동량인 것 같았다. 책을 만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읽은 것에 관해 말할 줄 아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한 개의 독해 지문에 세 개의 문제를 만들어 달면 업무가 끝났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오래 회사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회사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읽거나 읽은 것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했다. 한 달에 세 문제를 만들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며 문제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하는 척으로 일과를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해 큰 목소리로 토의하며 바쁜 척했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적혀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에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때 그녀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지도교수가 갑자기 죽은 뒤에 이상하게도 그녀의 꿈이 사라졌다. 그녀는 학업에 품었던 자신의 꿈이 로스쿨 입시용 문항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만에 세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고의 노력을 쥐어짜야 할 때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쉽게 만들어지든 오래 걸려 만들어지든 간에 개개의 문제가 전부 걸작이었다. 어떤 때에는 혼자 풀기 아까운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에게 그 문제를 자랑하고 당장 풀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들은 마지못해 그녀가 낸 문제를 풀어보았으나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지닌 지적 능력의 총합을 초월하는 자신의 창의력을 확인한 양 우월감을 느꼈고, 콧대가 우뚝해져서는 도파민의 폭풍에 정신 잃은 채 기뻐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성된 회전은하와 스케이터의 연속 회전 간의 원리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을 때에는 그만 김연아 선수에게 그 문제를 선물할 뻔했다. 김연아 선수와 접촉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렵한 독해문제를 출제했으니, 한시바삐 문제를 풀어보고, 각운동량보존법칙에 관한 이해를 동원하여 더욱 멋진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김연아가 그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문제에 실어 전하고 싶었다. 김연아가 팔을 길게 뻗어 회전할 때에 보여주는 느긋한 우아함과, 몸을 움츠렸을 때 운동량이 보존됨에 따라 속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간절함은 청년이 생에 대하여 품어야 하는 희망이 어떠한 양상이어야 하는지 물리학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학시절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교수님의 소설로 문학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헌정 출제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교수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는 <보기>를 달아 심화된 감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타인들의 머리에 더듬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혼란을 다룬 작품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 없다’라는 독백에 밑줄을 치고 ㉠을 단 뒤, 그 ㉠에 관해 아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란 얼마나 허망하고도 희망적인 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교수님의 소설과, 자신이 낸 문제를 바라보며 그 희망적인 허망함에 관해 성찰했고, 청년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사명을 통감하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업무량과 비교하여 동료들의 게으름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하루에 세 문제씩 꼬박꼬박 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친 기차 같다고 자기들끼리 욕했으며, 방해하기 위해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촘스키가 글을 참 못 쓴다고 욕을 하거나, 과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과학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은가에 관해 토론하거나, 푸코의 저서는 번역이 엉망이어서 출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문학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에 세 문제씩을 즐겁게 생산하고 있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녀의 동료 중 한 인물, 항상 고려청자색 눈빛을 지니고 있는 우애경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서울대에 못 갔어요.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잘되지 않았어요. 이런 회사에서 문제 내는 일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서울대에 가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녀는 우애경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젊은 시절을 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개인에 주어진 잠재력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올바른 전제에서 추론을 시작해야 나의 모습을 검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녀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애경으로부터 등을 돌린 뒤 다시 문제를 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우애경이 시뻘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출제에 골몰했다. 출제를 하며 우애경에 관해 생각했다. 우애경은 왜 화가 났을까?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으로 분류하여 한 줄로 세워볼 수 있다. 그녀는 우애경의 화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들을 물리화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생리 중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태가 저혈당증을 일으키고, 저혈당증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뉴런 간 화학·전기신호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화를 내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 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러한 이유가 작동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먼 원인일 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애경의 분노를 초래한 심리적 원인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해보라는 말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이유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①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하기 싫어서, ②가능성과 잠재력에 차이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③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분 나빠서, ④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이 싫어서, ⑤아니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묵살당해서?(이 지점은 상상의 영역이므로 과학적 추론 불가) 위 내용 중 무엇에 해당하든 그것은 화가 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기분이 찜찜해졌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습하던 무언가의 실체는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분명해졌다. 유난히 칼국수가 늦게 나오는 그 식당에 둘러앉아, 그녀의 동료들은 하염없는 잡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깍두기를 먹고 있었다. 잡담은 점점 석연찮은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미팅하던 때처럼 남녀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데에서 시작한 잡담이 각자들의 출신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애경이 유부장에게 말하기를, 유부장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것이 학창시절 가장 언짢은 일이었다고 했다. 유부장도 자신의 학창시절에 우애경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적이 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으나 마주보는 눈빛들은 사실 뭔가를 만끽하는 중인 듯 행복해 보였다. 화제는 갑자기 신촌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껏 잠자코 있던 다른 인물이 배꽃처럼 웃으며 동참하더니 신촌의 추억을 떠들어댔고, 그들의 대화를 끊을 수도 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칼국수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끊을 수도 낄 수도 없는 인물로는 그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서교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시 서대문구 전체에 관한 추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지 못할 터였다. 서교동의 추억을 지닌 인물이 왠지 모를 경멸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몹시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지닌 신촌의 추억이란 극장 앞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라도 주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미도나 맥아더장군에 관한 화제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관한 화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마침 양푼에 가득 담긴 칼국수가 등장해주었고, 대화는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친 채 모두 얌전히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마치 먹는 데에 열중한 것인 양 아무도 그녀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회사에 혼자 남아 쓸쓸히 책을 뒤지고 출제를 했다. 김소진의 ‘개흘레꾼’을 다시 읽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 주인공이, 허름한 차림으로 빵을 사들고 온 아버지를 냉대하는 대목을 발췌하여 문제를 냈다. 개흘레꾼의 주인공은 말했다.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 ㉠과 ㉡의 의미에 대한 출제를 하다 말고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포토샵으로 다듬은 사진 아래에는 ‘이우리’라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는 ㉠ 혹은 ㉡에 머물러 자기 자신의 의미가 규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일단 맹렬히 출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결심을 실현하기로 했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주인공은 인천을 싫어한다. ②주인공은 우애경에 대한 반격을 결심했다. ③주인공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④주인공은 ´개흘레꾼´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여 생각하고 있다. ⑤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이 남들의 인생에 포함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Ⅱ <두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아홉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세 개의 지문을 뽑아 각각 세 개씩의 문제를 다는 데에 온종일이 걸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면 혼자서 한 벌의 모의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출제 기계라고 했다. 그녀의 유능함에 견주어 우애경은 점점 더 무능해 보였고, 아무나 붙든 채 자기가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며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우애경을 보며 그녀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유능한지, 모니터를 향한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자세로 하루에 아홉 문제씩을 생산한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출제자인지를,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문제를 풀어본 수많은 학생들이 직접 증언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애경이 사고를 쳤다. 오전 열시의 고요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소리가 점점 커졌고, 일본어이긴 했지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우애경의 컴퓨터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가 우애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우애경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로 숨었다. 우애경 주변의 남자 사원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니 화면 가득한 살색 움직임들을 어떻게든 없애려 하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 꺼버렸다. 우애경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창에 지나가던 배너를 건드렸을 뿐인데 민망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우애경의 컴퓨터를 복구하느라 오전 업무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지나가는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 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우애경은 달팽이관이나 청소골 같은 것이 없기라도 한 양 그녀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배실배실 웃고 있었고, 속으로는 민망해 죽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애경과 담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원래들 업무시간에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시기도 하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인데, 우애경과 동료들은 아주 불쾌한 듯, 마치 포르노 사이트 접속으로 오전 업무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아래위로 노려보더니 탕비실을 향해 우르르 가 버렸다. 그녀는 모두가 떠나 버린 사무실에 앉아 홀로 출제를 했다. 그녀는 정말로 왕따였다. 그녀는 우애경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적어도 질타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회사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애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애경의 성격이 갑자기 능글맞고 넉살 좋게 바뀌었다는 것인데, 우애경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그 사건을 덮어버렸다. 유부장에게 말하길 “어머, 부장님. 계속 그렇게 야근시키시면 전 또 그 배너 건드려 버릴 거예요” 라고 하거나, 다른 팀 직원에게 말하길 “다들 너무 일만 하면서 침체되어 있기에 내가 야동 바이러스 감염으로 활력소가 되어준 거잖아” 라고도 했다. 우애경은 매일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일본어 공부에 좋은 게 일제 동영상이더군요” 라는 말을 해서 일부 남자 직원들이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으며 절묘한 순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 감염된 컴퓨터를 쓰도록 해” 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우애경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고, 살색 가득하던 컴퓨터 화면에 대한 기억과, 우애경이 업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여자라는 인상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종래엔 유부장이 “앞으로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우애경 씨 컴퓨터를 쓰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에 모두 웃게 되기까지는 사건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애경은 변죽 좋아 보이도록 성격이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능함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애경은 아무 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이우리를 향해서 발톱을 세운 채 이우리가 하루에 아홉 개씩 낸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각운동량보존법칙과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관한 문제에서는 은하의 나선 팔에 관한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험에 비해 한 단락 분량이 더 추가된 것이므로 모의고사에 수록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지적 때문에 그녀는 우애경과 한 시간을 싸워야 했다. 나선 은하의 나선 팔 부분과 중심부는 각각 산개성단과 구상성단으로서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은하의 형성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따라서 줄일 수도 뺄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을 다퉜으나 그녀가 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하면 이마에 핏발이 서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고, 동료들은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력섭동이라든가 산개성단을 구성하는 중원소에 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다들 하품을 하고 듣기 싫어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이우리가 언성을 높여가며 하는 말들이 알 수 없는 소리라고들 했다. 반면 그에 응수하는 우애경의 논리는 아주 간명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길잖아요. 지문이 너무 길잖아요. 안보여요?” 그녀가 낸 모든 문제에 관해 우애경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냈다. 가장 억지를 부렸던 것은 ‘개흘레꾼’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개흘레꾼’이 한 대학생의 자기 탐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한 작품일 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19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 시대상황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애경은 그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해요. 경쟁사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 안 돼요.” 민주화운동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과 테제, 안티테제 등의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관해 출제된 문학 문제가 좌파 이념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이우리 씨가 잊은 것은 아니겠죠. 이우리 씨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개흘레꾼’ 문제는 폐기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말이 안 나왔다. 혀의 근육 어딘가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우애경은 마치 그녀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그녀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화장해서 4대강에 뿌려다오’ 라는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문법적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 정답의 선택지로 삼아 어법 문제를 출제한 바 있었다. 모의고사 시행 직후 게시판에 이의제기가 올라왔다. 출제자 중 누군가가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지닌 것 같은데 이는 모의고사의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시험을 본 학생이 올린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회원가입일이 게시일 당일인데다가 모의고사에 응시한 기록도 없는 회원의 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 글이 우애경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있어 최초의 가설 설정이란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우애경이 자작 이의제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그것을 검증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유부장은 게시판 사건 때문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진짜 응시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곧 잊어버렸다. 그녀 자신도 잊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애경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것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녀가 우애경에게 닦달당하고 있을 때이면 어디선가 유부장도 홀연히 나타났고, ‘그러니까 지문이 길어요, 안 길어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든가, ‘데모하다 잡혀가는 학생 이야기가 나와요, 안 나와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는 말만을 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을 피해 유부장이 우애경의 등허리를 툭툭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애경은 청자색 눈빛으로 유부장을 응대했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를 치켜 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 서로의 동문들과 미팅한 추억 말고는 별 공통점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유부장은 ‘이우리 성질을 컨트롤할 사람은 우애경 씨 밖에 없어. 우애경 씨만 믿어’ 라고 했다던데,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칼 퇴근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테제에 의해서나 ㉡안티테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자기 자신은 이 회사의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길게 빠졌다. 우애경과 싸우느라 흥분해서 문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문제를 꼬박꼬박 출제하리라 결심했지만 그걸 못 채우는 날이 늘어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의고사 회차가 거듭되면 훌륭한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칭송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응시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바로 탁월한 출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유부장은 그것이 자기 공이라고 했다. 모의고사의 성공은 곧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판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나는 전국 최다 응시생을 끌어모을 수 있어.” 그녀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위한 선택을 함부로 할 리가 없으니, 응시생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국 훌륭한 교육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유부장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야.” 그녀는 그렇다면 무얼 하는 회사인 거냐고 반문했다. 유부장은 좌중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교육 콘텐츠를 파는 곳이야.” 진정 훌륭한 모의고사, 참된 독해력과 사고력 증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등등을 운운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녀를, 유부장은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마케팅 비용이 문항제작비의 이십 배는 돼. 마케팅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라고. 이우리 씨의 생사 또한 마케팅에 걸려 있는 거야.” 유부장은 벽에 붙은 포스터광고를 가리켰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만든 모의고사!’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신을 법조인으로 탄생시켜줄, 업계 최고의 역작’이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붙어 있었다. “응시생들은 절박한 상황이지. 어떻게든 기득권층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해. 욕심으로 눈 먼 애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먹고살 거야.” 그녀는 유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수많은 청년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부장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있다 할지라도 그놈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해. 나한테 속아 넘어갈 놈들이 아니란 말이다. 사설업체 모의고사 같은 건 안 본다고.” 동료들은 매일 놀고만 있었고, 자신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도 이우리가 꼬박꼬박 만들어놓은 문제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우리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인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가 진짜 출제기계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계처럼 문제만 뽑아내면 이우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빈 사무실에 앉아 밤늦도록 출제를 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아있는 사람은 이우리 씨밖에 없군.” 대표이사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척 나가고 나면 모두가 집에 가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대표이사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남아 있나 체크하러 나는 돌아왔지. 역시 이우리 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 대표이사는 무릎이 날깃날깃 닳은 트레이닝복을 그녀에게 자랑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적에 입던 옷이야. 나는 긴장을 늦출까 봐, 내가 가장 어렵던 시절의 옷을 버리지 않았어. 오늘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우리 씨밖에 못 보게 되었군.” 대표이사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양자역학에 관해 출제를 하고 있었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과 러더퍼드의 금박막 실험이라. 흥미로운데. 풀어봐야겠어. 나는 자네가 낸 문제의 팬이야. 힘내라구.” 대표이사는 격려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도 아니고 옆구리도 아니고 겨드랑이도 아니고 오른쪽 가슴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를 톡톡 치고는 떠났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하다 말고 그녀는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확히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함부로 만져지면 안 되는 것 같은 부위에 대표이사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찜찜한 그 부위를 괜히 긁적이며, 그녀는 대표이사가 청년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입는다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그녀는 절박한 마음으로 취업을 모색하던 백수시절을 떠올렸다. 어디든 취직만 된다면 일단은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 것 때문에 그녀는 공지영의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 출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활 무렵’에서, 병아리는 알을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사투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병아리가 살아갈 힘을 얻으려면 스스로 뚫고 나오게끔 놓아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들 엄마는 알 껍질을 조금 뜯어내어 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한 번만 살게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사는 거야.” 대표이사의 칭찬에 힘입어 그 소설의 구절이 생각났고, 겨드랑이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멋진 출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뻔한 미래란 없다. 청년이란 미시세계의 전자처럼 입자이자 파동인 존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위 상황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이우리는 대표이사와 자신의 계급 차를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②부하직원들은 그들의 상사인 유부장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같다. ③이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④대표이사가 이우리의 몸 어딘가를 만진 것은 곧 다른 데도 만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⑤회사의 인물들이 품은 동상이몽은 결국 매한가지로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 Ⅲ <세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그녀는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그녀를 알아봐 주는 한 유부장이나 우애경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힌들 상관없었다. 하루에 열두 문제라면 한 주 동안 모의고사 2회분이 생산될 양이었고, 우애경이 검토하고 흠을 잡기에도 벅찰 분량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두가 자신을 인정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고, 본인이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것들인지에 관해 누가 듣든 말든 마구 이야기해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느라 점심시간이면 밥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석부석 말라갔고, 밥을 씹어 삼킬 힘조차 아껴서, 문제를 내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때로는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가지 않은 채 밤을 새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름다운 문제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우애경의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열두 문제를 내고 나면 뉴런 다발들이 걸레처럼 비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우애경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우애경의 눈 속에서 청자색이 옅어진 것을 본 그녀는 우애경을 때려눕히고, 옥수수처럼 흩어진 이빨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해 걸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그녀는 유부장에게 조언했다. “계란을 많이 드세요.” 유부장은 반찬투정을 했다. “흰자는 괜찮은데 노른자가 메스꺼워서 나는 계란을 안 먹어.” 그녀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십년 생애 내내 계란을 멀리 하셨나요?” 유부장은 무심히 말했다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것 몇 가지가 있지. 계란, 콩. 두부.” 그녀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주된 콜린 공급원인 계란과 콩을 멀리하시니, 체내에선 아세틸콜린 합성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사십년째이니 결핍이 심각하리라고 예상되어요.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유부장은 그녀에게 의학 상담이라도 하는 듯 진지해졌다. “잠은 쉽게 드는데 새벽에 곧 깨서는 전혀 못 자곤 해.”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아세틸콜린 부족증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부장에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꼭 풀어보라고 권했다. 치매의 발생과 뇌 내 아세틸콜린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유부장님의 뇌 내 아세틸콜린 감소폭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디 콩을 드세요.” 그녀는 유부장을 보며 말했다. 유부장은 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난 콩이 싫어.” 그녀는 유부장의 전두엽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원칙이 대단히 흐려진 상태인 걸로 보아서 전전두엽에 기능이상의 뉴런들이 많이 분포하고, 거기에 아밀로이드 침전물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아세틸콜린 수치가 상당히 낮아지고, 낮아진 아세틸콜린 수치는 다시 전전두엽의 기능이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았다. 유부장은 어느 날, 그녀가 낸 문제들을 일괄 검토하고 싶으니 원본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백 개의 문제를 유부장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영준이라는 강사가 그 문제들을 묶어 저서를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준이 말하길, 잠을 줄여 만들어낸 토끼 같고 알토란 같은 문제들을 수험생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왜, 그녀가 출제한 수많은 문제들이 강사가 출제한 문제로 둔갑하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부장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훈계했다. “이우리 씨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문제를 낸 사람이고, 그 문제를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돼. 그건 회사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사건 경위를 알아냈다. 이영준 강사는 계약을 해제한 뒤 경쟁사로 옮겨갈 계획을 품고 있었다. 유부장은 인터넷 스타강사인 이영준을 붙들어야 했고, 저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가수가 사랑받는 것처럼,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강의하는 엘리트 미남 강사라면 더욱 사랑받을 터였다. “그건 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거예요.” 그녀는 바쁜 척, 그녀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척 사무실을 누비는 유부장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 저는 이 회사의 직원이므로 제 생산물의 재산권이 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만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작인격권마저 유부장님이 침해하실 수는 없어요.” 사과받고 싶은 나머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인격권을 침해하신 점, 사과 바랍니다.” 하지만 유부장은 들은 척도 않았고, 거래처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부장은 기억력이 심히 나빠진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 몫으로 매달 나오는 사원복지비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왕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청구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팀 김미영 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꼬박꼬박 사원복지비 십 만원씩 쓰셨던데 무슨 소리예요? 유부장님이 이우리 씨 복지비 신청을 대신 해주시던데요? 제가 영수증 다 갖고 있어요.” 관리팀 김미영 대리와 함께 그녀는 그간 자신이 제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수십 장의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밤 열한시 삼십분에 강남역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든가,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었다든가, 동반인 1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어린이용 문구세트를 샀다든가, 향수를 사고, 햄버거세트를 먹었다든가, 디저트카페에서 타르트를 먹은 일 따위가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김미영 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부장님이 매번 자기 계좌로 금액을 청구하시기에 좀 의아하긴 했어요.” 그녀는 왜 자기 명목의 금액을 유부장이 사용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유부장은 청각장애가 있기라도 한 양 빤히 보기만 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도 보여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천천히 쉽게 또박또박 말해보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나 유부장은 씩 하고 웃으며 겨우 말했다. “미안, 나는 기억이 나질 않네. 이우리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뒤 유부장은 거래처에 간다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허탈했고,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부장은 며칠 지방 출장을 가 있었고, 유부장이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가 모의고사 마감을 해야 해서 미처 싸울 틈이 없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원복지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마침 유부장이 활짝 웃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그 치사한 일에 대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부디 콩을 많이 드시고 착하게 사세요.” 그녀는 밥을 먹는 유부장을 바라보았다. 유부장은 들은 건지 만 건지 콩나물은 건져둔 채 국물만 마셨다. 저작인격권 침해에 관해 유부장은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짜증 나게 하네. 이우리 씨, 잘 들어. 월급 매달 제날짜에 받았어, 못 받았어?” 그녀는 월급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까지의 대가가 네 월급이야. 알았어?” 유부장은 내친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준 강사한테 교재를 넘긴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어. 이영준이 고객을 끌어모아서 돈 벌어올 거고, 그러면 그 고객들이 네 모의고사에 응시할 거야. 결국 그 이익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고 말이야. 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사과를 받지 못한 그녀는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는 자기 방을 찾아온 그녀를 아주 반가워했고, 대학 시절 미처 말 걸어보지 못했던 추억의 여인을 바라보듯 아련하게 미소 짓고 손수 음료도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격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눈물지을 때에는 티슈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대표이사가 맞장구까지 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렸고, 울고 난 뒤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표이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이우리 씨가 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네. 그동안 몰라주어서 그게 참 미안하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선량하고 무력한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거야. 사원인 너의 불만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임명한 중간 관리자인 유부장의 권한을 무시한 게 돼.” 대표이사는 콧물을 닦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내겐 곧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녀는 다 털어놓고 난 뒤의 후련함과,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므로 여전히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는 생각했다. 대표이사가 말한 ‘나중에’는 오늘의 나중인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어느 날이라면 가까운 미래인지 설마 먼 미래를 의미하는 말인지? 그 ‘나중에’가 오늘 저녁을 의미하는 것일까 봐 그녀는 밤 열시가 되도록 앉아 있어 보았다. 그때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허망한 희망을 품고 아주 천천히 출제를 했다.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였다. “이우리 씨.” 돌아보니 대표이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대표이사는 씩, 하고 웃었다. 무릎이 허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였다. “일단 집에 가긴 갔는데, 이우리 씨가 생각나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대표이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웃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어렵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을 때 타던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표정이 좀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대표이사에게도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대표이사도 사십팔년째 콩이나 계란을 배제한 식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의아해하며 대표이사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표이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턱 앞에 손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김이 끼쳤다. 손바닥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놓여 있었다.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이거 먹어.” 대표이사는 그녀의 책상에 감자 두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감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7번 경추부터 꼬리뼈까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녀는 그 손바닥에서 몸을 떼어냈다. 반사적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감자 안 먹습니다. 사장님이나 드세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더니 대머리까지 전부 빨개진 대표이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감자 준 직원이 이 회사에 있는 줄 알아?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 아니야.” 대표이사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말했다. “감자 싫으면 그럼, 초밥 사다줄까? 초밥 먹을래?”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등 뒤에서 식식거리더니,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흐와스코의 소설에는 격리되어 철교 건설에 투입된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설기간 동안 그들의 모든 일상은 오로지 노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꿈은 단 한 가지, 건설현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 마지막 날, 그들이 만든 다리를 떠나며 일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 다리가 이미 추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그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다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흘린 눈물과 알 수 없이 아파오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마지막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의 의미와 위 글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그들의 청춘 전부가 바쳐진 다리를 자신의 창작물처럼 여기고 있다. ②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쥐어짜 노동했던 일에 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③자신들의 청춘과 자신이 만든 다리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④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말 못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⑤드디어 노역에서 놓여났다는 기쁨보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 청춘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선택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⑥피 같고 살 같고 자식처럼 여겼던 대상이 고작 철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이다. ⑦그들의 미래란 두고 온 날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⑧그들의 청춘이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부품이고 도구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⑨가장 중요한 것을 침해당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으므로 흐르는 눈물이다. ⑩정작 울어야 할 자들이 울지 않기 때문에, 대신하여 흘려주는 눈물이다……. 그녀는 알 수 없이 굴러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끝>
  • 與 “공무원연금·자원국조 시기 연동” vs 野 “내년 상반기까지 여론수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착수와 자원외교 국정조사 실시 등을 결정한 ‘12·10 합의’의 세부적인 이행 절차와 시기를 놓고 여야가 내놓은 해석은 동상이몽에 가깝다. 새누리당은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대해 ‘주고받기’식 합의를 했다고 보고 있다. 즉 야당의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주장을 받아들인 만큼 시기를 정할 권한은 여당에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자원외교 국정조사 간 빅딜을 이룬 만큼 처리 시한 역시 확실히 연계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둘을 연계하지 않으면 야당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미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11일 “자원외교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하려면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 계획도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속도보다는 절차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기한을 못 박지 않았지만 우리는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충분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전날 합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기를 논의했지만 결국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일각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4월에 처리하자고 합의해도 이 같은 약속이 ‘공수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5월 여야 원내지도부가 모두 바뀌기 때문에 그사이 합의의 동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1월 처리는 시기적으로 어렵고 2월은 야당의 전당대회 일정이 있다”면서 “여당은 늦어도 3월쯤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처리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원외교 국조를 둘러싼 신경전도 ‘12·10 합의’를 흔들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논의의 숙성이 더 필요하다는 야당이 자원외교 국조와 관련해서는 ‘속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 원내대표가 이날 “4대강 국정조사는 다음주에 계속 논의를 이어 가기로 했다”고 밝힌 대목은 국조의 전선 확대를 예고한 것이란 점에서 여야의 신경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사설] 국회 민생 살리기 현안 해 넘길 생각 말라

    국회는 그제 새해 예산안을 처리한 데 이어 어제부터 민생 법안과 쟁점 현안을 심의하기 위해 상임위들을 가동했다. 그러나 여야가 당략을 앞세워 동상이몽의 ‘입법 전쟁’을 벌일 기미가 보여 사뭇 걱정스럽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집중해야”, “사자방 국정감사 결론 없이 연말 못 보내”라는 등 서로 억양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야는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법안부터 처리하는 합리적 자세를 견지하기 바란다. 정기국회에 계류 중인 안건은 산더미다. 공무원연금·공기업·규제개혁 등 이른바 3대 개혁안은 물론 경제 활성화와 관피아 척결 등을 겨냥한 민생개혁 법안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상임위별 법안 심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형편이다.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하기까지 국회가 몇 달간 공전한 데다 한 달 이상 끈 예산 공방 탓이다. 9일 정기국회 폐회일까지 남은 닷새 동안 수백 개의 법안을 심사해 처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응당 12월 임시국회를 열어 개혁법안 모두를 연내에 처리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임시국회를 열더라도 절충과 타협이란 대의정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여든 야든 다수결 원칙에 따른 표결 대신에 법안의 합의 처리를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를 잘 살려야 한다. 여야, 특히 야권은 그러지 못할 경우 국회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증폭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각종 개혁 입법과 민생 현안을 먼저 처리하는 등 입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다수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할 이유다. 무엇보다 디플레 우려까지 제기되는 등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벌써 엄동설한임을 직시하기 바란다.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을 최우선 심의하란 얘기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을 육성해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낙오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사회적경제기본법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개혁 법안을 다른 쟁점 현안과 연계하는 구태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법의 연내 처리에 ‘올인’하는 경위는 십분 이해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처리를 강조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전현직 관료 집단이나 교사·군인 등 이해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을 고려하면 각급 선거 캠페인 국면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시급한 과제임은 틀림없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여당이 이른바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 국정조사나 최근 불거진 ‘비선 의혹’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야당과의 빅딜에 매달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사자방이든 비선 의혹이든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의 추이를 보며 필요할 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공무원 표를 의식해 연금 개혁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정당은 다수 국민의 지탄을 받게 해야 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이해충돌방지법) 처리에도 꼼수가 끼어들어선 안 될 것이다. 이 법의 적용 대상에 언론사 기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니 하는 얘기다. 법리상 맞느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내키지 않는 김영란법 처리를 무산시키려는 방편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민생을 살리려면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각종 개혁 입법들과 경제 활성화 법안들만큼은 반드시 연내에 매듭짓기를 당부한다.
  • 與 “지자체 부담” 野 “정부가 책임”… 복지 재원 동상이몽

    與 “지자체 부담” 野 “정부가 책임”… 복지 재원 동상이몽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2년 대선까지 한국 사회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누리과정, 기초연금 등 무상복지 논란을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3~4년 동안 정책들이 정착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터져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보편적 복지 논쟁이 재현됐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이후 경남도와 도교육청 간 다툼은 3~4년 전 보수와 진보의 다툼을 연상시켰다.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 보수의 논리는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주느냐’란 말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진보 진영 논리는 ‘밥도 교육이다’라는 말로 대변됐다. 최근 여야 지도부 간 언쟁도 닮은 꼴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무상급식, 누리과정 등의 재원 문제와 관련해 “과잉 복지는 국민을 나태하게 만든다”고 일갈했다. 반면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제 복지정책을 시작했는데 복지 과잉을 걱정할 단계인가”라고 일축했다. 최근 논쟁이 단순하게 과거의 재현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여권이 0~5세 무상보육, 기초연금, 고교 무상교육, 무상 초등 돌봄교실 등의 공약을 주도했고 실제로 정책들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3~4년 시행해 본 뒤 최근 다시 불거진 논쟁은 무상복지 자체와 함께 재원 부담 주체에 관한 논쟁으로 확산됐다. 여권은 중앙정부를, 야권은 지방정부를 대변하는 식의 구도가 형성되며 정치권에서는 법안 발의 등의 ‘행동’이 뒤따르고 있다. 7일 당·정·청은 “지방채 발행 한도를 추가 확대할 테니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안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누리과정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야권은 누리과정 등의 예산을 교부금이 아닌 국고 예산으로 편성하는 방안을 이참에 법률에 명시할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주 중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제출할 계획인 김성주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교부금을 국가 전체적으로 추진하는 복지정책에 소진한 뒤 자체 복지를 방치해 복지 수혜의 지역 격차가 커지고 있다”면서 “대선 공약으로 내건 복지 정책의 비용은 중앙정부가 감당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광은 대통령이 팔고 지자체가 피박 쓰는’ 상황을 법률로 타개하겠다는 뜻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내년도 누리과정, 교원 명예퇴직 보상 등을 위해 교육청이 빚을 내면 전체 빚이 9조 7000억원으로 올해의 2배 이상이 된다”면서 “누리과정을 쭉 계속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빚을 내라는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여야 간 대립은 또 다른 쟁점을 품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적정한 복지 수준이 어디까지인가란 물음에 관한 것이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타협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말했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중 우선순위를 정하자는 뜻이지만 야권에서는 이참에 성장과 복지 중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아전인수 격 해석도 나왔다. 내년도 3조 9284억원에 달하는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허덕이는 현실과 별개로,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담 공교육비 비중이 4.8%로 OECD 회원국 평균(5.4%)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여야 지도부, 세월호 이후 정국 ‘동상이몽’

    지독한 정기국회 파행을 야기한 세월호특별법 타결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여야가 세월호법을 매듭짓자마자 다시 또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다. 새누리당은 내년도 예산안과 공무원 연금 개혁안, 경제활성화법 처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속도전에 나선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헌론과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투트랙으로 정국 주도권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 “지금의 고통 분담은 미래 세대를 위한 황금저축”이라면서 “공무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처우 개선책도 반드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당 중앙여성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오는 금요일 (공무원 노조를) 만나기로 했다”면서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공무원 연금안을)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예산안 늑장 처리는 국회의 대표적 적폐 중의 적폐”라며 법정 시한(12월 2일) 이내 처리를 주문했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지도부가 정부의 방침에 적극 호흡을 맞추는 것은 집권 여당으로서의 기본 임무이기도 하지만 최근 김 대표의 개헌론 설파로 소원해진 당·청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동행’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개헌 골든타임을 놓치면 낡은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어렵다”며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연내 구성을 강조했다. 이어 국민대타협 기구 출범과 국회 정치개혁특위 가동, ‘4대강·자원외교·방산 비리’(사자방) 국정조사 제안 등을 새누리당이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야당은 국정조사 관철 쪽에 압박의 무게를 더 싣고 있다. 김 대표의 최대 약점이 돼 버린 개헌론으로 여당을 코너로 몰아세운 뒤 결과적으로는 국정조사 수용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역시 ‘공무원연금 개혁안 연내 처리’라는 만만치 않은 카드를 쥐고 있어 국정조사 합의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국회의 의무인 예산안 처리를 놓고도 여야는 동상이몽이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예산안 자동부의제와 관련, 새누리당은 담뱃값 인상안 등이 반영된 정부의 세입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면 개정해야 할 관련 부수법안 역시 패키지로 자동부의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부수법안이 정부 예산안과 별도이기 때문에 여야 합의가 없으면 자동부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박대통령 시정연설·3자 회동] “예산안 처리” 공감했지만 동상이몽… 공무원연금 개혁도 험로

    [박대통령 시정연설·3자 회동] “예산안 처리” 공감했지만 동상이몽… 공무원연금 개혁도 험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29일 회동에서 내년도 예산안 및 세월호 3법 등 각종 법안 처리를 ‘명목상’ 다짐했다. 분위기는 밝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합의’는 없었다. 각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만남을 마무리했다. 여야 지도부가 이날 예산안의 헌법규정 시한 내 처리에 대해 대통령과 공감대를 이루긴 했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회동 결과 발표문을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반발 기류가 터져 나오자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이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 처리한다는 것은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뜻”이었다며 부인한 탓이다. 회동 직후 야당 내에서는 “지나치게 여당에 끌려다녔다”는 비판론이 들끓었다. 남은 국회 일정 동안 여야가 표면적으로는 예산안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긴 하겠지만 한판 대결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부터 국회선진화법상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부담은 더욱더 크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연내 처리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전날 새누리당 의원 전원이 당론 발의하긴 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예상된다. 야당도 큰 틀에선 연금개혁 필요성에 동의하나 내용·추진방식을 놓고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시한에 쫓겨 졸속 처리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여당 내에서도 공무원 반대표를 의식한 불만여론이 내재돼 있는 데다 연금삭감 방식, 기금 적자 해소율에 의문을 표시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반면 난항이 예상되던 정부조직법 협상은 새정치연합이 해경 폐지가 핵심인 정부안에 대해 수용 가능성을 시사해 주목된다. 백재현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은 “해경 폐지 반대를 끝까지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역시 해경본부를 두는 안 등 대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이유로 예산안과 정부조직법안 중 최종 쟁점을 여야 원내 지도부가 막판 패키지딜 형식으로 한데 묶어 처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세월호특별법과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은 전망이 밝은 편이다. 세월호법은 여·야·유가족 간 이견이 상당부분 해소된 것으로 알려져 앞서 여야 합의대로 10월 내 처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법사위 계류 중인 유병언법도 ‘제3자 재산권 침해’ 논란만 해소되면 회기 내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김영란법은 ‘사실상 올해 안에 빛을 보기 힘들지 않겠나’라는 관측이다. 여야가 정무위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지만 부정청탁·금품수수 등 징계대상·범위를 놓고 정치권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데다 법안소위도 아직 구성되지 않은 탓이다.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사이버 검열·감청 논란과 4대강 비리, 해외자원 개발사업 국정조사 이슈는 연말 정국의 휘발성 있는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羅만 빼고…기동민 노회찬, 야권 단일화 될까

    羅만 빼고…기동민 노회찬, 야권 단일화 될까

    기동민 노회찬 ‘아름다운 단일화’ 기싸움 본격화…험로 예고 7·30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서울 동작을(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일단 손을 맞잡았지만, 출발부터 양측의 기싸움으로 삐걱대고 있다. 노 후보가 사전투표 전인 24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 ‘후보직 사퇴’의 배수진까지 치면서 어찌됐든 단일화는 이뤄지게 됐지만 단일화 방식을 놓고 양측이 충돌양상을 보이면서 ‘아름다운 단일화’는 물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기 후보는 23일 서초구 현대 HCN에서 열리는 후보간 TV토론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 후보의 전날 후보 단일화 제안에 대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겠다”며 일단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두 후보는 이날 오후 만나 단일화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체적 단일화 방법을 놓고 ‘동상이몽’ 양상이 연출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기 후보측은 여론조사 시한이 촉박하다는 등의 이유로 ‘담판’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전격 양보했던 모델을 내심 염두에 둔 듯하다. 반면 노 후보는 이에 대해 “사실상의 제안 거부”라며 여론조사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여론조사 단일화를 실시할 경우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데다 ‘후보직 양보’라는 승부수로 명분을 선점한 노 후보가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야권 안팎의 대체적 관측이다. 노 후보는 TV토론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4일까지 담판이란 이름으로 버티겠다는 거냐”며 이날 중으로 단일화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새벽 이미 기 후보와 한 차례 만났으며, 그 자리에서 기 후보가 ”단일화에 응할 수 없다”고 거부한 바 있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간 단일화 과정에서 안 후보가 ‘룰 협상’ 결렬 후 후보직을 일방적으로 사퇴, ‘절반의 단일화’에 그치면서 시너지 효과가 반감됐던 전철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양측 모두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어 극적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 후보로선 협상이 끝내 결렬, 노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귀결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노 후보는 이미 “특정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데다, 자신이 끝까지 완주했던 2010년 6·2 서울시장 선거 때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패배에 대한 책임론에 휘말렸던 ‘뼈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노 후보가 당의 공식채널을 통한 협의를 공식 제안한 가운데 협상 주체를 놓고도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기 후보 사이에 ‘핑퐁게임’이 벌어지는 등 난맥상도 노출되고 있다. 기 후보는 “저는 당의 전략공천을 받은 후보”라며 “당에서 책임있게 판단해달라”고 최종 결정권에 대한 ‘공’을 지도부로 넘겼다. 기 후보측 진성준 총괄선대본부장도 “당이 책임있게 이 문제를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도부는 “당대당 연대가 없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후보별 협상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이 당대당 차원으로 옮겨질 경우 수도권 다른 지역 연대문제로 논의가 확산, ‘나눠먹기식 연대’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를 두고 노 후보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당이 전략공천해놓고 야권연대에 대해선 후보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얘기”라며 “기 후보는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고 당은 정작 후보에게 미루는 콩가루집안”이라고 맹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동민 노회찬 ‘아름다운 단일화’ 기싸움 본격화…험로 예고

    기동민 노회찬 ‘아름다운 단일화’ 기싸움 본격화…험로 예고

    기동민 노회찬 ‘아름다운 단일화’ 기싸움 본격화…험로 예고 7·30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서울 동작을(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일단 손을 맞잡았지만, 출발부터 양측의 기싸움으로 삐걱대고 있다. 노 후보가 사전투표 전인 24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 ‘후보직 사퇴’의 배수진까지 치면서 어찌됐든 단일화는 이뤄지게 됐지만 단일화 방식을 놓고 양측이 충돌양상을 보이면서 ‘아름다운 단일화’는 물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기 후보는 23일 서초구 현대 HCN에서 열리는 후보간 TV토론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 후보의 전날 후보 단일화 제안에 대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겠다”며 일단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두 후보는 이날 오후 만나 단일화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체적 단일화 방법을 놓고 ‘동상이몽’ 양상이 연출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기 후보측은 여론조사 시한이 촉박하다는 등의 이유로 ‘담판’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하고 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전격 양보했던 모델을 내심 염두에 둔 듯하다. 반면 노 후보는 이에 대해 “사실상의 제안 거부”라며 여론조사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여론조사 단일화를 실시할 경우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앞서는데다 ‘후보직 양보’라는 승부수로 명분을 선점한 노 후보가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야권 안팎의 대체적 관측이다. 노 후보는 TV토론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4일까지 담판이란 이름으로 버티겠다는 거냐”며 이날 중으로 단일화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새벽 이미 기 후보와 한 차례 만났으며, 그 자리에서 기 후보가 ”단일화에 응할 수 없다”고 거부한 바 있다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간 단일화 과정에서 안 후보가 ‘룰 협상’ 결렬 후 후보직을 일방적으로 사퇴, ‘절반의 단일화’에 그치면서 시너지 효과가 반감됐던 전철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양측 모두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어 극적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 후보로선 협상이 끝내 결렬, 노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귀결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노 후보는 이미 “특정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데다, 자신이 끝까지 완주했던 2010년 6·2 서울시장 선거 때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패배에 대한 책임론에 휘말렸던 ‘뼈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노 후보가 당의 공식채널을 통한 협의를 공식 제안한 가운데 협상 주체를 놓고도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기 후보 사이에 ‘핑퐁게임’이 벌어지는 등 난맥상도 노출되고 있다. 기 후보는 “저는 당의 전략공천을 받은 후보”라며 “당에서 책임있게 판단해달라”고 최종 결정권에 대한 ‘공’을 지도부로 넘겼다. 기 후보측 진성준 총괄선대본부장도 “당이 책임있게 이 문제를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도부는 “당대당 연대가 없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후보별 협상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테이블이 당대당 차원으로 옮겨질 경우 수도권 다른 지역 연대문제로 논의가 확산, ‘나눠먹기식 연대’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를 두고 노 후보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당이 전략공천해놓고 야권연대에 대해선 후보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얘기”라며 “기 후보는 당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고 당은 정작 후보에게 미루는 콩가루집안”이라고 맹비판했다. 네티즌들은 “기동민 노회찬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고 정략적 모습 아닌가”, “기동민 노회찬 단일화 기대합니다”, “기동민 노회찬 단일화 두 사람 모두 끝장 보려고 선거 나왔는데 쉽게 단일화할 순 없겠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진핑 방한 D-2] 中 “경제 협력” 韓 “북핵 공조”… 시 주석 방한 동상이몽

    [시진핑 방한 D-2] 中 “경제 협력” 韓 “북핵 공조”… 시 주석 방한 동상이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국빈 방한을 앞두고 중국 관영 언론들이 양국 간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북핵 공조’를 통해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려는 우리 쪽 분위기와 온도 차가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30일 ‘중·한 우호는 기업과 민생에 이익을 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양국 간 경제·무역 분야의 빠른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 간 교류, 국민 간 친분, 기업 간 화합이라는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양국 간 활발히 진행되는 경제 협력을 부각시켰다. 신화통신도 이날 ‘시 주석의 방한이 중·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당긴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한·중 양국 관계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 ▲주요 지역 및 국제 무대에서의 협력 등 3개 분야를 꼽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와 언론은 북핵이란 용어는 쓰지 않는 대신 6자회담 재개를 안보 분야 의제로 꼽고 있다. 앞서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지난 5월 한국을 찾았을 때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양국 간 발표문이 달랐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우리 외교부는 “북한의 핵 활동 등 최근 동향이 한반도 및 지역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는 등 한·중 공동 보조를 강조했다. 반면 중국 측은 “양국은 6자회담의 중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한국도 중국과 함께 노력해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6자회담에 방점을 찍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 주석의 국빈 방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한다.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이 시 주석의 방한이 갖는 의미와 회담 의제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러 천연가스 공급 싸고 EU 동상이몽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두고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합병의 책임을 물어 EU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개별 국가들은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가스를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중남부 유럽으로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사우스 스트림’에 대해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새로운 합의를 했다. 반면 올 초 공사에 착수한 불가리아는 경제 제재를 이유로 공사를 중단했다.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은 2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에너지 기업인 OMV와 사우스 스트림의 오스트리아 내 가스관 부설 공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이 사업을 방해할 것”이라면서도 득의양양했다고 AP가 전했다. 사우스 스트림은 러시아 베레고바야에서 출발해 흑해 해저를 통해 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슬로베니아를 거쳐 이탈리아 북부로 연결된다. 오스트리아 부분은 헝가리 국경선 끝에서 한 가닥을 뽑아 오스트리아 바움가르텐까지 50㎞를 연결하는 지선이다. 2017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게르하르트 로이스 OMV 대표는 “유럽 에너지 안보를 위한 투자이며 EU 규정에 맞는다”고 말했다. 2018년 전체 구간이 완공될 예정인 사우스 스트림은 EU가 에너지의 러시아 의존도를 낮춰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등으로 가스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나부코 가스관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짙다.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는 올 초 각각 사우스 스트림 본선 공사에 착공했다. 하지만 불가리아는 EU의 경제 제재 대상인 기업 ‘스트로이트란스가스’가 참여했다며 공사를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EU 정상들은 26~27일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전략을 채택하기 위해 회동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EU가 나라별 에너지 이해관계가 엇갈려 당장 올겨울 어떤 조치를 공통으로 취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달 초 열린 EU 경제 관계 장관회의에서 폴란드는 새로운 유럽에너지기구 창설을 주장한 반면 독일은 이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나토 기지가 들어선 폴란드는 에너지에 취약하지만 독일은 러시아와의 20년 장기 계약을 통해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교육과 입시는 엄마몫? ‘바짓바람’이 필요하다

    교육과 입시는 엄마몫? ‘바짓바람’이 필요하다

    자녀의 학습과 입시에 있어서 ‘치맛바람’과 다르게 ‘바짓바람’이란 용어는 낯설다. 하지만 아버지가 입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가족구성원이 추가로 ‘입시 정보전’에 참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입시 전문가들은 23일 설명했다. 입시라는 게 자녀의 진로, 진학, 학습태도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삼스러운 설명도 아니다. 교육학계 연구에서는 아버지가 자녀 교육과 입시에 참여할 때 자녀의 진로탐색 기회가 늘어나고, 학업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는 결과가 보고되어 왔다. 어머니와는 다른 아버지만의 진로에 대한 신념과 관점을 지녔다는 점은 아버지가 자녀의 입시에 관심을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최선의 효과 중 하나다. 특수목적고 진학을 고민하다가 서울에 살지만 자녀를 지방의 기숙사고에 보낸 아버지 이모씨는 “지방 명문고에서 선후배끼리 돈독해지고 부모와 떨어져 여러 상황을 부딪칠 기회를 주고 싶어 기숙사고를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원래 ‘자녀 공부는 어머니가 맡고, 아버지는 경제적 뒷받침을 하면 된다’는 주의였다고 한다. 막상 자녀의 진학을 고민할 시기가 되다보니 어머니와 아버지 간 시각차이를 분명하게 느꼈다. 그는 “어머니는 학원, 공부법 등 단편적 정보에 민감하고 아버지는 훗날 사회생활이나 직업 등을 고려하게 된다”면서 “서로 다른 시각을 놓고 함께 고민하니까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소설을 즐겨 쓰는 아들을 위해 토론교육이 특화된 서울의 일반고를 선택한 아버지 정모씨는 “공부보다 소설쓰기에 몰두하는 아들 때문에 부부가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작가를 꿈꾸는 아이의 생각이 확고한 데다 요즘에는 다양한 대입전형이 있으니 아이를 믿어보기로 했고 서로 부딪치는 일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진학사가 학부모 79명과 중·고교 학생 3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학부모와 자녀가 진로교육에 대해 동상이몽인 상황을 보여줬다. 몇 가지 직업을 놓고 고민하는 상황에 대해 자녀는 ‘진로를 정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진로를 못 정했다’고 단정짓는 식이다. 소통하며 이견을 좁히지 않은 채 대입을 치르게 되면, 한쪽이 크게 실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KACE부모리더십센터의 최수진 아버지교육강사는 “아이들은 진로를 정할 때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정작 아버지가 무관심한 상황은 비극적”이라고 진단했다. 자녀의 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씨는 “지금부터라도 아이의 흥미를 듣고, 조건 없이 아이를 칭찬하고, 말하기가 어색하면 등이라도 툭 치고 손이라도 잡으며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자녀의 학업과 입시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도록 서울신문은 5회에 걸쳐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의 칼럼을 연재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시아파 두 지도자 ‘동상이몽’ 이라크 해법

    시아파 두 지도자 ‘동상이몽’ 이라크 해법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이라크를 내전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이란과 이라크를 대표하는 두 시아파 최고 성직자가 주목받고 있다. ‘ISIL 격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는 이들이 미국의 개입과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진퇴를 놓고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파 ‘맹주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22일(현지시간) 이란 관영 IRNA 통신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사태 개입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하메네이는 “미국이 사태를 종파 간 내전으로 몰아가 이라크를 다시 꼭두각시처럼 부리려 하고 있다”면서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개입 없이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은 “하메네이는 미국이 과거 사담 후세인을 지원해 이란-이라크 전쟁을 배후 조종한 것처럼 다시 이라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알말리키 정권을 축출하고 수니·시아파를 아우르는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전략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하메네이의 ‘미국 개입 반대’와 ‘알말리키 정권 유지’ 주장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시아파 정권을 이라크에 존속시켜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미국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중에 나온 ‘지침’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신정국가인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가 대통령 위에 있다. 반면 이라크의 시아파 최고성직자 알리 알시스타니는 미국의 개입을 반대하지 않고, 알말리키 총리의 퇴진을 종용하고 있다. 알시스타니는 지난 20일 금요 예배 강론에서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모든 국민은 무기를 들고 반군에 대항하라”는 그의 교시에 따라 과거 미군과 싸웠던 시아파 급진 민병대 ‘마흐디’도 다시 봉기했다. 2005년 제헌의회 총선에서 범시아파 정권이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알시스타니는 미군과 마흐디의 휴전을 중재한 바 있다. AP 통신은 “알시스타니는 미국과 이란의 영향력이 모두 배제된 시아파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목표를 위해서는 우선 이란은 물론 미국의 힘까지 빌려 ISIL을 격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급진 시아파의 봉기를 부추기고, 미국의 입장에 일단은 동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건축허가·정쟁… ‘규제사슬’ 산넘어 산

    건축허가·정쟁… ‘규제사슬’ 산넘어 산

     지난달 정부는 학교 근처에도 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규제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건축 허가라는 규제가 남아 있다. ‘재벌 특혜’라고 비판하는 규제보다 무서운 규제, 여론도 버티고 있다. 규제를 풀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규제는 사슬처럼 얽혀 있다. 기업 등 목표를 둔 규제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측은 ‘송현동 복합문화시설 건립 사업’에 대해 단순한 숙박시설만 짓는 것이 아니라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쇼핑센터 등 문화 및 상업 공간이 어우러진 공간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랜드마크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상징성이다. 해당 지역은 풍문여고뿐 아니라 경복궁을 옆에 두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경제적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들은 희생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절대정화구역인 ‘학교 주변 50m 이내’에 지을 수 없고, 50~200m 이내인 상대정화구역에 대해서는 관할 교육청이 재량에 따라 설립 여부를 결정한다. 대한항공 부지의 40%가량은 절대정화구역에 있어 이곳에는 호텔을 지을 수는 없다.  정부는 늘어나는 호텔 수요를 고려해 규제를 풀겠다는 취지다. 또 야당에서 모텔을 비롯해 러브호텔, 게임장, 유흥주점 등의 유해시설까지 관광호텔과 함께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자 100실 이상의 호텔만 건축이 가능하며 건축 후에도 유해시설이 들어오면 호텔 허가를 바로 취소키로 했지만 협의는 여전히 난항이다.  야권은 학생들의 학습권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 간사인 유기홍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6일 “학교 정화구역 관련 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도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이 많다”면서 “대통령이 호텔을 짓기 위해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것은 특정 대기업을 위해 호텔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국 정부는 이달 호텔정화위원회의 관광호텔업 심의 절차를 개정키로 했다. 하지만 도시계획 승인과 사업계획 승인 등을 내줄 지방자치단체는 동상이몽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로구청은 구청 자리로, 서울시는 복합문화단지로, 출판계는 ‘책의 전당’으로 만들자고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지는 매입가 2800억원에서 약 1500억원 정도가 오른 상태다. 정부가 수용해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다만, 종로구청에 따르면 이곳은 주거용지이지만 관광진흥법에 따라 토지 용도에 관계없이 호텔을 지을 수 있다.  재벌 특혜라는 비난 여론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로 규제 완화는 큰 것들이 대기업 특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규제가 워낙 많아 규제개혁은 기업의 건의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이후에는 형평성과 타당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부지 주변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인사동, 북촌 등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위치해 서울 중심 문화 지역을 벨트로 묶는 문화 랜드마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합리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기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건축허가·정쟁… ‘규제사슬’ 산 넘어 산

    건축허가·정쟁… ‘규제사슬’ 산 넘어 산

    지난달 정부는 학교 근처에도 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규제개혁을 선언했다. 하지만 건축 허가라는 규제가 남아 있다. ‘재벌 특혜’라고 비판하는 규제보다 무서운 규제, 여론도 버티고 있다. 규제를 풀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규제는 사슬처럼 얽혀 있다. 기업 등 목표를 둔 규제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측은 ‘송현동 복합문화시설 건립 사업’에 대해 단순한 숙박시설만 짓는 것이 아니라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쇼핑센터 등 문화 및 상업 공간이 어우러진 공간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랜드마크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상징성이다. 해당 지역은 풍문여고뿐 아니라 경복궁을 옆에 두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미 경제적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들은 희생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은 절대정화구역인 ‘학교 주변 50m 이내’에 지을 수 없고, 50~200m 이내인 상대정화구역에 대해서는 관할 교육청이 재량에 따라 설립 여부를 결정한다. 대한항공 부지의 40%가량은 절대정화구역에 있어 이곳에는 호텔을 지을 수 없다. 정부는 늘어나는 호텔 수요를 고려해 규제를 풀겠다는 취지다. 또 야당에서 모텔을 비롯해 러브호텔, 게임장, 유흥주점 등의 유해시설까지 관광호텔과 함께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자 100실 이상의 호텔만 건축이 가능하며 건축 후에도 유해시설이 들어오면 호텔 허가를 바로 취소키로 했지만 협의는 여전히 난항이다. 야권은 학생들의 학습권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 간사인 유기홍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6일 “학교 정화구역 관련 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도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이 많다”면서 “대통령이 호텔을 짓기 위해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것은 특정 대기업을 위해 호텔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국 정부는 이달 호텔정화위원회의 관광호텔업 심의 절차를 개정키로 했다. 하지만 도시계획 승인과 사업계획 승인 등을 내줄 지방자치단체는 동상이몽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로구청은 구청 자리로, 서울시는 복합문화단지로, 출판계는 ‘책의 전당’으로 만들자고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지는 매입가 2800억원에서 약 1500억원 정도가 오른 상태다. 정부가 수용해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다만, 종로구청에 따르면 이곳은 주거용지이지만 관광진흥법에 따라 토지 용도에 관계없이 호텔을 지을 수 있다. 재벌 특혜라는 비난 여론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로 규제 완화는 큰 것들이 대기업 특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규제가 워낙 많아 규제개혁은 기업의 건의로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이후에는 형평성과 타당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부지 주변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인사동, 북촌 등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위치해 서울 중심 문화 지역을 벨트로 묶는 문화 랜드마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합리적으로 규제를 풀어주기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시론] 드레스덴 연설, 동북아 신냉전 질서 위에 낸 숨구멍/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시론] 드레스덴 연설, 동북아 신냉전 질서 위에 낸 숨구멍/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해마다 봄이 되면 한반도 정세는 늘 요동쳤다. 올 3, 4월에는 유달리 한반도 이슈들이 뒤섞여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한·미·일 헤이그정상회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한·미합동군사훈련,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 서해5도 일대 포격사건, 북한의 핵실험 시사, 북한의 무인정찰기…. 올봄 위기는 몇 가지 점에서 예년과 다르다. 첫째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여러 가지 사안들이 뒤섞여 있다. 둘째 연례적으로 반복되는 봄철의 한시적 위기라기보다는 지속적일 수 있다. 셋째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로 한국 정부에서 남북 화해와 협력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에서부터 한반도 유사 시 미군 증파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커티스 프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이 2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한 증언이다.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을 그 근거로 들었다. 뿐만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기습공격 능력을 갖췄으며 장거리포는 서울 중심부를 타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작년에 내뱉은 말 폭탄이 공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미국은 자동예산삭감조치인 시퀘스터 때문에 국방예산을 줄이는 상황이다. 한반도 유사 시 상황과 북한의 군사 위협을 제시하는 것은 국방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워싱턴 정가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그만큼 김정은 체제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3월 초에는 카르니라 맥팔랜드 국방차관보가 “당면한 예산감축 압력을 고려해 아시아 태평양 군사력 재배치 전략을 재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곧 철회되었지만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회귀정책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 더욱 증폭됐다.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려면 아시아회귀정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시아회귀정책을 통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자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부담스러운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중국 견제 방안으로 한·미·일 협력관계 강화를 선택했다. 헤이그에서 한·일 양국 최고지도자를 초청해 북한 핵을 매개로 해서 한·일관계 봉합을 시도한 것이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북한 핵 폐기에 대한 유인책이 빠진 강경책이다. 위기가 한시적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4월 말 방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반도 긴장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 미국은 국방예산확보와 한·미·일 결속이 주된 이익이다.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반발하지만 내심 미사일 기술 활용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여러 종류의 미사일을 가지고 다양한 거리에 있는 목표를 상대로 해서 사정거리 실험을 해왔다. 북한이 꾸는 꿈은 한·미·일 3국을 위협하는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개발인 것이다.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토미사일(ICBM) 개발이다. 때마침 지난 2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이미 ICBM을 개발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한 압박과 협상수단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북한이 ICBM을 개발하는 것은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파멸적인 수단이 될 뿐이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동북아 신냉전질서 앞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드레스덴 연설이 숨 막히는 위기 상황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한 숨구멍이 돼야 한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남북고위급 접촉을 재개해 드레스덴 제안을 북한에 설명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기 바란다.
  • 의·정, 원격진료 시범사업 위태로운 동행

    대한의사협회의 내홍으로 차질이 예상됐던 원격의료 시범 사업이 예정대로 이달부터 추진된다. 의협은 2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최재욱 상근부회장을 총괄단장으로 하는 ‘의정합의 이행추진단’을 구성하고 곧 정부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노환규 의협회장의 현 집행부에 반기를 든 의협 대의원회가 3일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했지만 이들도 원격의료 시범 사업을 실시하는 데는 이견이 없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원격의료의 안전성이 입증되기를, 조만간 출범이 유력한 의사협회 중심의 새 비대위는 원격의료의 위험성이 입증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여서 시범 사업 종료까지 앞으로 6개월간 위태로운 동행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상이몽’의 정부와 의료계가 한배를 타게 되는 셈이다. 의협 새 비대위 구성에 참여하고 있는 최장락 대의원회 대변인은 “의협 회원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원격의료 원천 반대”라면서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의료계가 걱정한 오진 가능성, 동네 의원 경영 악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경우 새로운 투쟁이 촉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 대변인은 “새 비대위가 출범해도 의정 협의안의 큰 틀은 흔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주 중 의협 측 의정합의 이행추진단과 상견례를 겸한 첫 회의를 한 뒤 시범 사업 규모와 방법 등을 확정해 적어도 오는 15일부터 시범 사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병왕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협 사정으로 협의가 좀 늦어지기는 했지만 동네 의원과 경증 질환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기존에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했던 경험을 접목하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6개월 안에 검증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협 대의원회는 노 회장을 빼고 새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한 기존 방침을 바꿔 노 회장을 고문 자격으로 비대위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새 비대위 출범이 의협 내 세력 간 내홍으로 비치는 것을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러 ‘우크라 해법’ 동상이몽

    미국과 러시아의 외무장관이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무력이 아닌 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하자는 데 동의했다. 때마침 우크라이나 접경에 주둔 중인 러시아 병력이 점진적으로 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놓고 양국 사이에 이견이 커 아직까진 갈 길이 멀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파리에서 4시간의 긴급회동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사건에 대한 입장차가 있었지만 외교적 해법을 찾고 우크라이나인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양국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상황을 완화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담에서 제시된 방안에 나타난 양국의 입장은 엇갈렸다. 가디언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러시아 비정규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국제 감시기구의 접근을 허용할 것 등을 요구했다. 특히 그는 협상 테이블에 우크라이나 정부의 참여가 없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연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그는 “솔직히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연방 밖에서는 어떤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각 지역은 각자의 경제, 세금, 문화, 언어 등을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담 뒤 “매우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연방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F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최근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에 변화가 생길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터넷 통신 ‘글라브레드’도 이날 러시아군 병력이 약 4만명이었던 데 비해 현재는 약 1만명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날 우크라이나 서쪽 국경에 위치한 옛 소비에트 연방 몰도바에 1억 달러(약 1065억원)를 지원했다. 이 나라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주민 대부분은 자신을 러시아인이라고 여기며, 실제 러시아 병력도 일부 주둔하고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일연 ‘삼국유사’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일연 ‘삼국유사’

    동상이몽(同床異夢). 겉으로는 같은 편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을 가진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동상이몽을 많이 경험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사실만을 서술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요즘 교육계를 시끄럽게 하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것도 같은 사건에 대한 동상이몽 때문이다. 같은 현상에 대해 상반된 시각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유교적 사대주의와 신라 정통론 입장에서 고대 삼국을 재편하거나 누락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신화나 기록들을 풍부하게 수집하고,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으로 쓰였다. 여기서 술이부작이란 기록은 하되 따로 꾸며서 넣지는 않는다는 실증적인 태도를 말한다. ‘유사’(遺事)란 말도 남겨진 일이란 뜻으로 삼국시대에 일어났던 ‘삼국사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들을 적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국유사’에 쓰여 있는 단군신화 및 여러 건국신화들을 토대로 우리 민족의 기원과 정통성을 찾을 수 있고, 당시 고대인의 의식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를 술이부작의 원칙으로 쓰인 실증적인 역사서로만 본다면 그것은 삼국유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색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삼국유사’는 고려 25대 충렬왕 때 선종 구산문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승려였던 일연(一然)이 1281년쯤에 편찬한 책이다. 그는 당시 승려로서 최고 직책인 국존(國尊)으로 책봉됐다. 책은 총 5권 9편으로 돼 있다.(도표) ‘삼국유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권1의 ‘왕력’과 ‘기이’편을 제외한 대부분은 모두 불교에 관한 사실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삼국유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권1에 나온다. 책의 구성만으로 보았을 때 일연의 불교적 입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연은 충렬왕 때 불교계의 최고 정점인 국존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일연은 몽골과의 항쟁이 마무리되고 개경으로 환도한 뒤 들어선 개경정부의 절대적 후원에 힘입어 불교계에 전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는 권문세족과 원의 간섭이 심했던 때였다. 일연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민지(閔漬), ‘보각국존 일연 비문’(高麗國 華山 曹溪宗 麟角寺 迦智山下 普覺國尊碑 幷序)에 보면 일연을 후원했던 인물은 박송비, 나유와 같은 무신과 이덕손, 민훤, 염승익 같은 문신으로 나뉜다. 여기서의 무신은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뒤 개경으로 환도, 삼별초의 진압, 동정군(東征軍)의 참여를 주도했던 사람들이고, 문신은 충렬왕이 원에서 세자로 있을 때 원나라에서 모시고 귀국한 부류이다. 이렇게 일연은 반무신정권세력과 친원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당시 불교는 정치세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만큼 일연도 현실적인 정치권력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이라면 일연은 왜 ‘기이’편을 맨 앞에 배치했을까. 삼국유사의 ‘기이’ 제1편의 서문을 보면 “대저 옛 성인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에 대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錄)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를 잡고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가 제 편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모두 그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 뒤 단군신화, 주몽신화, 박혁거세신화 등 신기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이한 세계에 대한 믿음은 종교적 접근이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일연의 삶을 기록한 위의 비문을 다시 살펴보자. “… 일연의 어머니는 이씨이고, 낙랑군 부인으로 봉해졌다. 처음에 둥근 해가 집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의 배에 내리쬐는 꿈을 3일 밤이나 꾸었는데, 마침내 태기가 있어 태화 병인년 6월 신유일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두 기사를 연결해 보면 일연의 출생 역시 비범한 인물은 신이한 과정에서 태어난다는 독특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그는 신이함 자체를 불교적 경이로움과 연결시킨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 전반부에 ‘기이’를 배치해 후반부에 서술될 다양한 불교적 경이를 자연스럽게 납득시키고, 불교의 세계 속에서 삼국의 역사를 읽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권3 ‘탑상’편의 황룡사 관련 기사를 보면 이러한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황룡사는 호국불교의 구심점으로 국가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던 절이었다. ‘탑상’편의 ‘가섭불 연좌석’이라는 기사에 황룡사 터는 옛날 가섭불이 연좌하여 제자 2만명을 제도했던 거룩한 곳이라고 나와 있으며 ‘탑상’편 ‘황룡사 장륙’에도 황룡이 그 땅에 나타나 불사를 세웠다고 하였고, 황룡사가 완공됐을 때에 장륙존상을 봉안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황룡사 구층탑’편을 보면 중국에 유학 갔던 자장 법사에게 9층탑의 건립을 명한 뒤 경덕왕 13년에 황룡사 대종이 만들어지는 것까지 황룡사 관련 문헌과 기사를 여러 차례 배치함으로써 부처님의 섭리에 의해 호국불교가 발전하고, 구심점이 되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삼국유사의 방대한 기록들은 모두 정합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져 신라불교의 자취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다양한 모습의 승려들을 소개하여 민중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원효가 스스로 소성거사라고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통해 중생을 교화하는 이야기(4권 ‘의해’, 원효불기)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같이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목적지는 확실해 보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불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연이 보여준 술이부작의 원칙이란 전해 내려오는 모든 사실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목적을 가지고 엄선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삼국유사의 술이부작은 어떤 의미일까. 수많은 사실을 선별해 기록하기 위해서 일연처럼 확고한 입장과 관점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인터넷 세상이 또 다른 담론으로 작용하는 사회이다. 현대의 술이부작이란 시대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선별된 사실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면 삼국유사 전체를 모두 읽어보자. 정민 교수의 ‘불국토를 꿈꾼 그들’(문학의 문학)과 정출헌 교수의 ‘김부식과 일연은 왜’(한겨레출판)를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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