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6자회담의 숨은 그림
한해를 마감하면서 남북관계를 회고했을 때 가장 큰 이슈는 북한핵 문제와 6자회담의 추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북한의 의도적인 핵위기 고조 시도와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가능성에 따라 당사자인 우리 역시 매우 민감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이 과정에서 6자회담이 성사됨으로써 북핵문제가 관련 당사국간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문제는 이 6자회담의 실체에 대해 우리가 현실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6자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도 낙관적 시나리오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왜 6자회담이 성사되었느냐.’는 질문의 핵심은 미국과 북한의 자세변화와 관련되어 있다.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다자적 접근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나라는 러시아였고,이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반면 북한은 미국과 직접적 해결을 원했고,주도권을 가진 미국 역시 굳이 ‘여러 목소리가나오는 테이블’에 앉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 넘는 숨가쁜 북핵위기의 고조에 따라 각국의 입장에 변화가 나타났으며,6자회담의 성사에 필요한 조건들이 만들어 졌다.우리로서는 어떻든 평화적 해법을 찾아야 했고,중국은 동북아의 핵도미노와 일본재무장 방지의 필요성,그리고 일본은 안보위협의 방지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미국과 북한 역시 ‘시간벌기’라는 점에서 6자회담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시간벌기에 대한 동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북한의 경우 위기의 원인을 미국에 의한 안보적 위협과 경제적 봉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핵문제의 부각을 통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다.
북한은 이라크 전쟁을 목도하면서 미국의 자신들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였고,북·미 직접대화의 교착상태에서 일종의 탈출구로 6자회담을 선택했다.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미국 역시 현실적으로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여력을 가지고있지 않았다.또한 현 상황에서 동맹국인 남한내부의 정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 점에서 미국도 시간 벌기를 위해 6자회담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인지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6자회담에서 미국이 잃을 것이 별로 없으며,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이해관계가 다른 참여자들이 늘어난 6자회담은 지루한 논의의 과정이 될 것이며,그만큼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개연성을 지닌다.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6자회담이 결렬될 경우 미국이 북핵문제를 유엔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미국 주도로 강력한 대북봉쇄조치가 유엔에 상정되더라도 거부할 명분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이 경우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북한은 과거처럼 안보적 위기의 고조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이 과정에서 미국은 대북 군사적조치를 위한 명분을 착실히 쌓아갈 것이다.이와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면 미국의 대북 군사조치는 가능한 현실로다가올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6자회담의 비관적 전망은 가능한 것이다.이는 우리에게 보다 현실적 인식과 적극적 대응책의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다.전방위의 노력을 통해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것 이외에 북한의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아울러 미국에 대해서 북핵위기의 본질이 취약해진 북한의 내구력에서 비롯된 것이며,북한의 생존전략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따라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외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그 어떠한 해법도 없다는 사실을 미국에 강력하게 전달해야만 한다.
조 한 범 통일연구원 북한기초연구사업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