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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덕 주싱가포르대사 ‘귀임’

    이상덕 주싱가포르대사 ‘귀임’

    이상덕 주싱가포르 대사가 대사직을 그만두고 지난 29일 귀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30일 “이 대사가 개인적 사유로 귀임을 희망했다”며 “현재 외교관 신분은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개인적 사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이 대사는 외교부 동북아국장을 마치고 2016년 4월 주싱가포르 대사로 부임해 1년 9개월간 대사직을 역임했다. 그는 동북아국장을 맡았던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에 우리 측 수석대표로 참여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12월 28일에 위안부 합의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련 실무자들의 책임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도읍지는 漢 낙랑군 조선현… 평양은 후대 상상의 산물일 뿐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도읍지는 漢 낙랑군 조선현… 평양은 후대 상상의 산물일 뿐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400여년 전의 17세기 평양으로 돌아간다면 기자(箕子)가 평양에 왔었다고 믿기 십상일 것이다. 평양에 기자의 유적·유물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는 인식은 사후 2400여년 후인 서기 12세기부터, 기자의 평양 유적은 서기 14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에는 유적이 만들어진 지 이미 400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진위 구별이 쉽지 않았다.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을 믿고 싶었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은 굳이 진위를 밝힐 생각도 하지 않았다.●기자의 지팡이 조선 선조 때 윤두수(尹斗壽·1533~1601)는 평양감사 시절 ‘평양지’를 편찬했는데 서문에서 “평양은 기자의 옛 도읍이다”라고 썼다. 윤두수는 “평양성의 남쪽에 기자가 만든 정전(井田)이 있고 … 성 북쪽에 토산(?山)이 있는데 기자의 의관(衣冠)을 묻은 곳이다. … 그 외에도 기자궁(箕子宮), 기자정(箕子井), 기자의 지팡이(箕子杖)가 있다”고 말했다. 평양에 기자의 궁전이 있고, 기자의 의관을 묻은 토산이 있고, 우물인 기자정이 있고 기자의 지팡이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가 평양에서 실시했다는 정전제(井田制)의 모형도 만들어 놨다. 사각형 농지를 우물 정(井) 자 형태로 나누면 아홉 구획의 농지가 생기는데, 여덟 가구가 한 구획씩 경작하고 가운데는 공동으로 경작해 세금으로 내는 이상적인 토지제도가 정전제다. 윤두수의 동생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평안도 감찰사로 나가는 박자룡(朴子龍)을 전송하는 서문’에서 “(평양에는) 기자의 지팡이가 있어서 감사가 관아에 있을 때 그 지팡이 한 쌍을 가지고 앞에서 인도했다”고 말했다. 윤근수는 자신이 등나무(?)로 만든 기자의 지팡이를 직접 보았는데 “임진왜란 때 잃어버렸으니 개탄스럽다”고 한탄했다. ●중국에 역수출된 평양기자 기자가 평양에 왔으니 그 후손들도 있어야 했다. 조선 중·후기 문신 미수(眉?) 허목(許穆)은 ‘동사’(東史)의 ‘기자(箕子)세가’에서 “기자의 후손은 기씨(奇氏), 한씨(韓氏), 선우씨(鮮于氏)”라고 말했다. 조선의 기씨·한씨·선우씨가 기자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런데 송나라의 문인 소식(蘇軾·1037~1101)과 원나라 문인 조맹부(趙孟頫·1254~1322)가 중국의 선우(鮮于)씨들에게 써 준 글들에서 ‘선우씨가 기자의 후손’이라고 쓴 것이 알려졌다. 그래서 광해군 때 예조판서였던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건의에 따라 선우식(鮮于寔)이 평양 기자 사당의 제사를 주관하게 됐다.평양은 중국 사신들이 오가던 지역이었고, 기자 무덤은 이들의 단골 방문지가 됐다. 평양의 기자 유적은 중국에도 널리 퍼졌고, 중국인들이 거꾸로 조선인들에게 물었다.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영조 42년(1766년)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기행문 ‘연기’(燕記)에서 중국 허난(河南)성 출신의 한림(翰林) 팽관(彭冠)과 나눈 이야기를 실었다. 팽관이 “기자의 후손이 지금 조선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홍대용은 “평양에 기자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데 그의 후손들이 세습하면서 사당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전(井田)의 유적지가 아직도 있으니 고증할 만합니다”라고 답했다. 14세기 이후 만들어진 평양의 기자 유적들이 거꾸로 중국인들에게 ‘기자동래설’의 증거로 역(逆)사용됐던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들의 의심 그런데 조선 후기 중국의 1차 사료들을 검토하는 학풍이 일면서 “기자가 정말 평양으로 왔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강역고’(疆域考)의 ‘조선고’(朝鮮考)에서 “내가 살펴보니 요즘 사람들은 기자조선에 대해서 많이 의심하면서 혹 요동에 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라고 썼다. 기자조선이 평양 일대가 아니라 고대 요동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다. 정약용이 사숙(私淑)했던 성호 이익(李瀷·1681~1763)도 그런 학자였다. 그는 기자가 평양에 왔다고는 생각했지만 기자의 강역에 대해서 쓴 ‘조선지방’(朝鮮地方)에서는 기자가 당초에 봉함을 받은 지역이 “연나라에 접근해 있었으니 지금 만리장성 밖 요심(遼瀋·만주) 지역이 모두 강역 내”라고 썼다. 기자조선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에 있던 연나라와 국경을 접해 있었으니 요심과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부근의 만리장성을 넘는 지역이 모두 그 강역이었다는 뜻이다. 이익은 또한 ‘병영’(幷營)이라는 글에서는 ‘기자가 봉함을 받은 지역이 … 순(舜)시대의 병주(幷州)와 영주(營州)가 아니겠는가”라고도 말했다. 병주는 베이징 부근이고, 영주는 산둥성 일대를 뜻한다.●기자조선 위치가 중요한 이유 기자조선의 위치가 중요한 것은 현재 북한 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북아 역사전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자조선의 도읍지 평양이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됐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섰으므로 북한 강역이 중국의 역사 영토라는 것이 중국은 물론 국내 식민사학계의 논리다. 그럼 중국 사료도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한나라의 정사인 ‘한서’(漢書)에는 한나라의 행정구역을 설명한 ‘지리지’가 있다. ‘한서’의 ‘지리지’ 주석은 낙랑군 조선현이 기자가 도읍한 곳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한서’ 지리지에서 말하는 낙랑군 조선현을 찾으면 된다. 한 무제(武帝)는 원봉(元封) 5년(서기전 106) 전국을 13개 주(州)로 나누어 각각 자사(刺史)를 두었다. 지금의 베이징 지역에 있던 유주자사부(幽州刺史部)는 산하에 여덟 개 군을 두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낙랑군이다. 한나라는 전국에 30리 단위로 설치한 역참(驛站)에서 말을 갈아타 가면서 행정 문서를 주(州)나 군(郡)에 전달하게 했다. 한 주(州) 내의 산하 군들에는 보통 하루나 늦어도 이틀이면 행정문서가 전달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유주(베이징)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을 지나서 천산산맥, 장백산맥, 낭림산맥 등의 험준한 산맥을 넘고, 허베이성 난하와 요녕성 대릉하, 요하를 건너고 압록강과 청천강 등을 건너 하루나 이틀 안에 평양에 행정문서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조선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이다.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隋)나라 양제(煬帝·재위 604~618) 때 인물 배구(裵矩)는 서역에 관한 지리서인 ‘서역도기’(西域圖記)를 지어 올릴 정도로 지리에 밝은 인물이었다. ‘수서’(隋書)의 ‘배구 열전’에 따르면 그는 수 양제에게 “고려(고구려)의 땅은 본래 고죽국(孤竹國)인데, 주(周)나라 때 기자를 봉한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봉함을 받았다는 고죽국에 대해서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의 ‘고죽안시’(孤竹安市)에서 “고죽국은 영평부(永平府)에 있다”고 말했다.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이 있던 자리라는 뜻인데, 명·청 때의 영평부는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龍)현이다. 청나라 때 역사지리학자 고조우(顧祖禹)가 편찬한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영평부 북쪽 40리에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었던 조선성(朝鮮城)이 있다”고 말해서 영평부 자리가 기자조선의 도읍임을 밝혔다. 앞으로 후술하겠지만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이 옛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 지역이라는 사료는 이외에도 많다. 평양은 고려 후기 유학자들이 기자의 도읍으로 끌어들였을 뿐 중국의 여러 사료들은 지금의 허베이성 루룽현을 기자의 도읍지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할 중국 사료는 많다. 중국이나 일본의 눈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의 전환이 시급한 때다. ■기자와 선우씨 조선에서 ‘선’자 따고 우땅 ‘우’를 합쳐 선우…선우씨 정통처럼 인식 ‘상우록’(尙友錄)에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했는데, 그 아들 중 한 명인 중(仲)이 우(于)땅을 채지(采地·봉토)로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선에서 선(鮮) 자를 따고 우땅에서 우(于) 자를 따서 선우(鮮于)씨가 됐다는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재위 1368~1398) 때 중령별장(中領別將) 선우경(鮮于京)의 7대 후손이라는 선우식(寔)이 평안도 태천(泰川) 평양의 기자 사당인 숭인전(崇仁殿) 곁에 와서 살았다. 그래서 그를 기자의 후예로 인정해 광해군 때 숭인전 전감(殿監)에 제수했고, 그 자손이 대대로 전감직을 세습함으로써 선우씨가 기자의 정통처럼 인식됐다.
  • 다보스포럼서 ‘평창의 밤‘

    다보스포럼서 ‘평창의 밤‘

    전 세계 정·재계 유명 인사가 모인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25일(현지시간) 평창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한국 평창의 밤’ 행사가 열렸다. 각국 장관급 각료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5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개막사에서 “한국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진정한 전 세계 평화와 공존을 위한 축제가 되도록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이 동서 냉전에 마침표를 찍었던 것에 이어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전 세계의 평화를 다지는 바탕이 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2020년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까지 동북아시아에서 이어지는 올림픽에서 평창올림픽이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두 도시의 올림픽에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이날 ‘전략적 지리: 한반도’ 세션에도 참석해 “평창올림픽은 시작이며 그 이상이 남아 있다”며 “제재·압박과 북측이 (북핵) 진로를 바꾸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방식이 북한에 (지금까지의) 계산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북 관계가 비핵화 논의를 전제로 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올해 평창의 밤 행사는 외교부와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했다. 2009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최로 열렸지만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중단됐었다. 행사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인 장유경, 생황 연주자 박지하 등이 평창올림픽 홍보 공연을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열린세상]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지난해 말 ‘위안부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보고서 발표와 올해 초 외교부 장관의 담화 후 한·일 관계가 다시 냉각되고 있다. 진정성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와 1㎜도 움직일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대립이다. 1993년의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반성하는 역사적인 문건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양국 합의의 형식이나 내용은 고노 담화보다 훨씬 퇴보한 것이다. 그 퇴보는 바로 아베의 퇴행적 역사관에서 시작됐다. ‘골대’는 한국이 옮긴 것이 아니라 일본이 먼저 옮겼다. 위안부 문제가 다시 불붙고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확산된 것은 1997년 이후 아베를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의 고노 담화 폄하 발언과 2007년 3월 “강제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각의 답변서가 촉발한 것이었다. 그해 7월 말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유엔 인권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간 갈등이나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전적으로 아베 총리가 초래한 것이다. 2014년 아베의 고노 담화 검증도 사실상 그 훼손의 일환이었다. 일본은 고노 담화와 관련된 한·일 간의 외교교섭 내용을 공개해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외교적 타협의 산물인 것처럼 폄하했다. 한국의 위안부 합의 검증은 고노 담화 검증의 재판(再版)이다. 이번엔 한국 정부가 비공개 토의 내용(이는 이면합의가 아니다)을 공개했다. 장군멍군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책임 인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과는 잘못된 행위 확인과 뉘우침 표명, 책임 인정, 미안함을 표명하고 보상을 하면서 장래 그러한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변화하겠다”고 약속하는 일련의 연계된 행위를 의미한다.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되고 피해자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돼야 진정성이 입증된다.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와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외상은 합의 발표 직후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을 교묘히 부인했다. “사과 편지를 보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는 아베 총리의 국회 발언이나 “합의 내용을 1㎜도 옮길 수 없다”는 관방장관의 저급한 발언은 이와 같은 사과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합의는 이미 일본에 의해서 사실상 폐기된 것이다. 일본은 불가역적 해결의 조건인 사과와 책임을 부인하면서 한국에는 언필칭 골대를 옮긴다며 합의를 준수하라고 한다. “불가역”은 가해자가 사죄를 번복하거나 훼손하는 언행을 금지하는 것이지 피해자에게 영원히 입을 닫아야 하는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일본의 눈속임 프레임이다.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면서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 문제를 무슨 경제보상 개념인 것처럼 폄하하는 것도 그런 프레임이다. “증거가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라는 논리도 성폭행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는 식의 해괴한 일본식 논리의 전형이다. 근대 이후 한·일 간에 체결된 조약에서 속인 쪽은 일본이고 속는 쪽은 한국이었다. 일본은 골대만 옮기는 것이 아니다. 골라인마저 옮겨 긋는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바로 그런 수준의 일본이 설정한 어설픈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 요구하는 사과나 책임의 체계적 개념조차 공식적으로 명시한 적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전 세계적인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국제 이슈가 됐다. 최근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 참석한 여배우들의 검은 의상이 상징하듯이 여성 인권 문제는 중요한 국제적 어젠다로 남을 것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역사 왜곡 문제를 총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외교적 교섭만으로 역사를 타협할 수는 없다. 위안부 합의 검증 보고서가 이러한 역사성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1980년대 아베 총리의 선친인 아베 신타로 외상은 경제력으로 G2 반열에 오른 일본이 세계의 일류 국가가 되려면 특히 한국의 우호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역사적, 지정학적 순리를 아는 거물 정치인이었다. 아베 총리가 하루빨리 그러한 선친의 지혜를 깨닫기 바란다. 용서와 화해 과정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으로 출발하며 그 토양 위에서 한·미·일 협력도 강화될 것이다.
  • [인사]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관 이영열 ■중소벤처기업부 △충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유동준◇과장직위 승진△인재활용촉진과장 김민규 ■연세대 △교학부총장 홍종화△행정·대외부총장 민동준△국제캠퍼스부총장 이경태△연구본부장 겸 대학원장 박승한△문과대학장 이경원△상경대학장 겸 경제대학원장 신동천△공과대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홍대식△생명시스템대학장 김응빈△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 권수영△사회과학대학장 김재엽△법과대학장 겸 법학전문대학원장 겸 법무대학원장 안강현△음악대학장 강무림△학부대학장 임윤묵△언더우드국제대학장 성태윤△정보대학원장 이준기△커뮤니케이션대학원장 윤태진△교육대학원장 정희모△행정대학원장 하연섭△언론홍보대학원장 김경모△교목실장 한인철△미래전략실장 김동노△기획처장 이창하△교무처장 손영종△입학처장 겸 연세사이언스파크전략기획단장 엄태호△학생복지처장 김용호△연구처장 겸 산학협력단장 이원용△총무처장 김효성△시설처장 김광수△학술정보원장 이봉규△대외협력처장 전혜정△국제처장 이두원 ■광운대 △대학원장 겸 광운한림원장 최영근△스마트융합대학원장 이종철△경영대학원장 겸 경영대학장 서상구△교육대학원장 장정희△상담복지정책대학원장 최영훈△건설법무대학원장 신만중△전자정보공과대학장 이종철△소프트웨어융합대학장 이혁준△공과대학장 겸 환경대학원장 윤도영△자연과학대학장 송영권△인문사회과학대학장 겸 동북아대학장 장정희△정책법학대학장 최영훈△인제니움학부대학장 김백영△기획처장 유정호△교무처장 겸 교육혁신원장 김주찬△학생복지처장 겸 체육부 체육실장 박철환△입학처장 문상현△대외국제처장 김정권△총무처장 직무대리 김성룡△관리처장 직무대리 최금주△정보통신처장 이형근△산학협력단장 정영욱△중앙도서관장 이향철△정보과학교육원장 이종용△광운미디어콘텐츠센터장 오문석△언어교육원장 노진서△교수학습센터장 이승영△연촌재 관장 이춘원△대학신문사주간 정일권△생활관장 김대식△동해문화예술관장 조충현
  • [시론] 평창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끄는 조건들/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

    [시론] 평창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끄는 조건들/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이제 3주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동계올림픽도 남북 관계만큼 큰 일은 아닌 듯하다. 주변 행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북한의 올림픽 참여 문제와 현송월 방문 등이 모든 언론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왜 평창올림픽에 오려 할까? 그 속내를 알긴 어렵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토대로 추정해 보면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한 전략적 행보로 볼 수 있다. 이미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이 한국과 주변국을 위협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으니 잘 지내자는 의미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강조하는 ‘북핵 평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이러한 거짓 평화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 지난 25년간의 북핵 협상을 돌아보면 북한은 불리하면 대화하고 유리하면 도발해 왔다. 수많은 핵·미사일 실험은 물론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 말만 믿기에는 과거 기록이 너무 좋지 않다. 핵보유를 인정하는 순간 남북 관계의 주도권은 북한이 쥐게 된다. 핵비확산체제 측면에서도 허용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어 낸 진정한 평화, 즉 ‘비핵 평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안보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핵 평화’와 ‘비핵 평화’ 대결의 서막이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체제 선전의 기회로 활용하며 ‘우리민족끼리’라는 평화 슬로건과 미녀 응원단이 만들어 낼 다양한 ‘화젯거리’를 한국과 전 세계에 전달하려 들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의 단초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북측의 의도는 알고 있지만 일단 대화를 시작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다는 구상인 것이다. 제한된 남북 접촉의 기회를 고려할 때 평창올림픽이라는 좋은 기회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다만 남북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아는 만큼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다음과 같은 사안에 유의해야 한다. 먼저 평창올림픽을 넘어서는 구상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한국과 북한의 공통점은 평창 참여고 차이점은 비핵화 문제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경제 문제나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같은 군사 문제는 평창과 비핵화 사이의 연결 다리다. 평창올림픽 참여를 남북 관계 전반에 관한 대화로 키우고 다시 북·미 대화나 비핵화 대화로 연결시켜야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대화의 연결고리를 언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상황의 회귀 가능성에 유념해야 한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북한이 평창에서 체제 선전만 하고 돌아간다면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따스한 시선도 다시 차가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가 지나간다고 해서 남북 관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상황을 지난해 12월로 되돌린다 해도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평창에 올인하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기회가 남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끝으로 협상에서 저항점을 준수해야 한다. 저항점은 협상을 하는 데 추가 양보가 어렵고 더이상의 협상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을 의미한다. 현 단계에서 협상의 저항점은 한·미 동맹과 비핵화 공조다. 북한이 선전 선동을 넘어 보다 공세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를 만드는 노력 못지않게 그간 평화를 지켜왔던 안보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한 번 훼손된 동맹이나 비핵화 공조는 다시 복구하기 쉽지 않다. 북측도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던 만큼 평창에 오지 않을 경우 후폭풍이 클 것이다. 따라서 당당히 대응하며 우리 주도의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비핵 평화’가 ‘북핵 평화’를 이기고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뿌리내리는 길이다.
  • [인사]

    ■국방부 ◇과장급 전보△자원동원과장 진천호△국방홍보원 미디어전략실장 오인제△군사시설기획관실 환경팀장 성길수△군수감사담당관 박병로△재난관리지원과장 전윤일△동북아정책과장 배정원△회계감사담당관 박진영△다자안보정책과장 최정익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 홍정기 ■국토교통부 ◇부이사관 승진△도시정책과장 정의경△자동차정책과장 박대순△건축정책과장 남영우△도로투자지원과장 방윤석△철도정책과장 박일하 ■국회사무처 ◇관리관 승진△기획조정실장 장대섭△국회사무처 박철규◇이사관 승진△국회사무처 권태현 윤광식 이지민◇이사관 전보△국방위원회 전문위원 김남곤△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 송병철△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 조의섭△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 정순임△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 정성희△특별위원회 전문위원 홍성현△관리국장 최상진△국회사무처 박종희 김건오 유세환 천우정 홍형선 박재유◇부이사관 전보△국회사무처 김종화△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입법심의관 박종우△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 신종숙△법제실 행정법제심의관 최선영△정보위원회 입법심의관 김병주△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심의관 정환철△국제국 의회외교정책심의관 김경호△국회사무처 김세현 ■국회입법조사처 ◇이사관 전보△사회문화조사실장 이신우△기획관리관 박태형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생의학오믹스연구부장 김진영 ■신한은행 ◇지점장 승진△반포서래지점장 도지정△성서 기업금융센터 기업지점장겸 RM 김무희 ■산업은행 ◇본부장△IT본부 류근혁△KDB미래전략연구소 장병돈△혁신성장금융본부 양기호△강북지역본부 오진교△영남지역본부 엄범용△충청호남지역본부 이동기△아시아지역본부 이병호◇부·실장△비서실 최대현△온렌딩금융실 김종선△컨설팅실 황길석△해양산업금융실 임태욱△기업금융1실 정경훈△기업금융2실 김근호△기업금융3실 최현묵△해외사업실 민인환△무역금융실 최애경△자금운용실 김민병△금융공학실 김상수△발행시장실 오준석△PF1실 김길동△PF2실 박웅찬△PF3실 노치영△기업구조조정2실 강병호△투자관리실/출자회사 매각실무추진단장 진인식△심사1부 오종녕△심사2부 유병철△리스크관리부 이동우△여신감리부 권용일△IT기획부 유재용△금융전산부 고관식△e-뱅킹전산부 변석균△차세대추진부 박희재△영업기획부 정병철△수신기획부 이은우△인사부 김복규△총무부 조치상△연금사업실 김정원△신탁실 이희윤△미래전략개발부 김흥상△신성장정책금융센터 정재경△윤리준법부 강경완△소비자보호부 노강식△검사부 정태환△영업부 조인현◇지점장△강남 강신구△대치 김숙△반포 이병인△서초 정호건△잠실 황문현△잠원 유훈수△한티 정재영△가산 전상준△신문로 오영근△김포 이웅주△부평 백호열△안산 민경필△인천 이상곤△산본 고송△안양 권오영△원주 김경열△판교 유희빈△평택 윤종열△화성 백도흠△경산 이원식△경주 엄원용△금정 조성제△대구 김경환△광주 홍권석△군산 박상순△금남로 홍성식△대덕 홍선범△아산 김종섭△여수 김영규△오창 유근하△천안 서근모△뉴욕 반영은△토쿄 이정권△런던 엄효운△베이징 소호태△칭다오 곽경탁△프랑크푸르트 송강국△아부다비 김성훈△마닐라 윤경환△홍콩 이영재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조선에 망명’이 고려 때 ‘기자가 평양 왔다’로 둔갑하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기자, 조선에 망명’이 고려 때 ‘기자가 평양 왔다’로 둔갑하다

    조선 사대부들은 평양을 기자(箕子)의 도읍지란 뜻에서 기성(箕城)이라고 불렀다. 기자가 평양으로 와서 기자조선의 왕이 되었다는 이른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이다. 지금 사람들은 기자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고려,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기자는 국조(國祖) 단군(檀君)에 버금가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세상을 중화족과 이족(夷族)으로 나누는 화이관(華夷觀)으로 바라보던 고려,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에서 온 기자를 우리 선조로 삼으면 우리 민족이 이(夷)가 아니라 화(華)가 된다고 생각했다.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기자 존숭 사상이 한국 사대주의의 뿌리라는 점에서 ‘기자동래설’은 범상히 넘길 것이 아니다.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는 은(殷)나라 왕족이었다. 그의 부친은 은(殷)나라 28대 임금 문정(文丁: 태정(太丁)이라고도 함)이었고,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숙부였다. 중국은 전 왕조의 마지막 임금을 폭군으로 그리는 것으로 역성혁명을 정당화했는데, 은나라 주왕도 이런 필법에 따라 극악한 폭군으로 묘사되었다. 폭군 곁에는 늘 임금의 눈을 가리는 여인이 있다는 것도 중국식 역사서술 방법의 하나인데, 주왕에게는 총희(寵姬) 달기(?己)가 있었다. 술로 만든 연못과 고기로 만든 수풀이란 뜻의 ‘주지육림’(酒池肉林)도 주왕과 달기의 연회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기’의 ‘은(殷) 본기’ 주왕(紂王)조에서 ‘주왕이 술로써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으로 만들었다’(以酒爲池, 縣肉爲林)고 묘사한 데서 나온 사자성어다. ●“殷 왕족 기자 周 통치 못참아 조선행” 실제 폭군 여부를 떠나서 망국(亡國) 군주가 비판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또한 망국 군주들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간쟁을 거부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은나라 주왕도 그랬다. 주왕의 실정을 간쟁한 은나라 세 왕족은 공자 때문에 유명해졌다. 공자가 ‘논어’의 ‘미자(微子)편’에서 비간(比干), 미자(微子), 기자를 은나라의 ‘세 어진 사람’(三仁)이라고 크게 높였던 것이다. 이 중 가장 강력하게 간쟁한 인물은 28대 문정의 둘째 아들이자 주왕의 숙부인 왕자 비간이다. 비간의 간쟁에 분노한 주왕은 “내가 들으니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면서 비간의 가슴을 갈라서 그 심장을 꺼내 보았다고 한다. 이 소식에 놀란 미자는 도망쳤고 기자는 미친 척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그사이 은(殷)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나라 서백(西伯·문왕)은 여러 제후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길렀다. 서백의 아들 무왕(武王)은 부친 사후 제후들을 연합해 주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주나라 천하를 세운 무왕은 자신의 동생 소공(召公) 석(釋)을 시켜 감옥에 갇힌 기자를 석방했다. ‘상서대전’의 ‘은전’ 홍범 조는 “기자는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조선으로 도주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기자가 동쪽 (고)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의 뿌리인데, 기자가 도주했다는 고조선은 단군조선을 뜻한다. 고려의 유학자들은 ‘조선으로 도주했다’는 구절 앞에 ‘동쪽’이란 방위사를 자의적으로 넣어서 기자가 평양으로 왔다고 둔갑시켰다. 기자가 세상을 떠난 지 2400여년 후인 12세기경인 숙종 7년(1102) 10월, 예부(禮部)에서 숙종에게 이렇게 주청했다.●고려, 평양일대 기자 무덤 뒤지다 헛수고 “우리나라의 교화와 예의는 기자에서 시작되었는데, 아직 국가에서 제사 지내는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 무덤을 찾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게 하소서.” 기자의 무덤을 찾아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주청이다. ‘고려사’의 ‘정문(鄭文·?~1106) 열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정문이 “임금의 서경(西京) 행차를 호종하면서 기자 사당을 건립할 것을 청했다”라고 돼 있어 정문이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정문의 아버지 정배걸도 유학의 학술(儒術)로 문종(文宗)을 보필했다는 인물이므로 대를 이은 유학자 집안이었다. 숙종의 허락을 받은 예부에서 평양 일대를 뒤지며 기자의 무덤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기자의 무덤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의 ‘송미자 세가’ 주석에는 두예(杜預·222~285)가 “기자의 무덤은 양국(梁國) 몽현(蒙縣)에 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기 3세기경 서진(西晋)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두예가 말한 양국 몽현은 지금의 하남(河南)성 상구(商丘)시 북쪽이다. 은(殷)나라는 상(商)나라로도 불렸는데 구(丘)자에는 ‘옛터’라는 뜻이 있으니 상구(商丘)는 ‘은나라 옛터’라는 뜻이다. 필자는 2016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하남성 상구시 북부와 산동(山東)성 조현(曹縣)이 교차하는 곳인데, 무덤이 있다는 농촌 마을을 찾아갔지만 옥수수밭 천지여서 찾을 수가 없었다. 한 현지인이 오토바이 수레를 타고 나타나 대략 위치를 짚어 주어 옥수수밭을 헤치고 들어가니 실제로 기자의 무덤이 있었다. 두예의 말은 사실이었다.하남성 상구시에 있는 기자무덤을 수천리 떨어진 평양에서 찾았으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고려 유학자들은 기자 무덤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20여년 후인 고려 충숙왕 12년(1325) 10월자 ‘고려사’의 ‘예지’는 “평양부에 명을 내려 기자의 사당을 세워서 제사하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평양에 기자의 가짜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서기전 12세기 때 인물인 기자는 사후 2600여년 후인 14세기에 평양에 가짜 무덤이 생겼다. 그렇게 평양은 기성(箕城)이 되었다. 기자의 무덤이 어딘가 하는 문제가 왜 중요하냐면 ‘기자=평양설’이 중국 동북공정의 주요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사가 순수 고대사가 아니라 첨예한 현대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은 기자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라며 북한강역을 자국의 역사강역이라고 우기고 있는 중이다. 하남성 상구시의 옛 기자 무덤에 새로 세운 묘비에는 ‘고려사’ 등 한국 사료만 잔뜩 쓰여 있었다. 중국의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기자의 무덤을 평양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하남성 상구시의 기자묘를 슬그머니 없애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中, 기자동래설을 동북공정 침략논리로 조선총독부는 한국 강점 직후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름 자체에 한국사의 공간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고 ‘반도’(半島)로 축소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들어 있다. 이때 만든 ‘조선반도사’의 상고 부분은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썼는데 “이른바 기씨(箕氏)조선은 본래 한강 이북 대동강 방면에 있어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고 썼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기자를 인정하면 한국의 종주국이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는 ‘기자조선 전설고(考)’(1922)를 다시 써서 기자를 부인했고 시라토리 구라기치, 나카 미치요 같은 식민사학자들이 뒤를 이어 기자를 부인했다. 한국사를 중국사에서 떼어 일본사에 붙이기 위한 것이었다. 나아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몰아붙이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고안해 한국사의 시간도 반만년에서 1500년으로 대폭 축소했다. 반면 빨라야 3세기 후반부터 시작하는 일본사는 서기전 660년에 야마토왜가 건국했다고 무려 1000년을 끌어올려 2600년 역사로 조작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라는 고대판 조선총독부가 있었다고 우겼다. 지금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극우파의 이런 역사침략은 계속된다.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지금의 동북아 역사전쟁과 맞닥뜨리게 된다. ■만주 서쪽에도 ‘평양 ’… 고구려의 수도 의미 ‘평양’은 현재의 평양뿐인가 평양은 특정 지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구려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장수왕 15년(427)에 천도한 평양 외에도 평양은 많았다. 고구려는 동천왕 20년(246)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丘儉)의 침략으로 수도 환도성이 일시 함락되었다. 동천왕은 이듬해(247) 천도를 단행하는데, ‘삼국사기’는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겼다.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仙人王儉)의 옛 터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인 왕검이란 물론 단군왕검을 뜻한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을 처음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때의 평양은 물론 지금의 북한 평양이 아니라 만주 서쪽에 있던 평양이다.
  • 자위대 전투력 강화… 작전반경도 넓힌다

    일본 자위대가 전투능력 강화에 나서는 한편 작전 반경을 속속 넓혀 가고 있다. 이달 말 미국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A기를 도입하는 일본은 항공자위대의 전투기 부대를 현재 12개에서 14개로 늘리고,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미국 전투기를 이착륙하도록 했다. 산케이신문은 21일 일본 방위성이 현재 1개 비행대가 설치된 미야자키현 뉴타바루 기지에 1개 비행대를 증설하는 등 현행 12개인 비행대를 14개 체제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투기 부대 증설은 일본 정부가 올해 개정하는 방위력 정비 기본지침인 ‘방위계획 대강’에 포함된다. 일본은 호위함 이즈모에 미군 전투기도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해 나갈 계획이다. 도쿄신문은 미군 전투기의 이착륙도 가능하도록 한 것은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중요 영향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작전 중인 미군에 탄약 보급과 전투기 급유 및 정비를 자위대가 담당할 수 있도록 한 ‘2015년 개정 안보관련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정부는 유사시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 등 집단적 자위권을 보장한 2015년 개정안전보장관련법에 따라 미·일 군사협력 공간과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이에 따라 해상자위대가 미군 함선을 지키는 ‘미국 함정 방호’를 실시했고, 미국 이지스함에 대한 연료 보급도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22일 열리는 국회 개회식에서 지상 배치형 신형 요격 미사일 시스템 ‘이지스 어쇼’ 및 장거리 순항미사일 도입 등 군사력 강화가 변화하는 동북아 안보환경 속에서 꼭 필요한 것임을 강조할 계획이다. 헌법이 규정한 ‘전수방위’ 규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논란 속에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고, 중국의 부상 등 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군사적 대비 태세 강화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부는 적의 미사일 기지 타격이 가능한 사거리 500㎞인 노르웨이제 장거리 순항미사일 ‘조인트 스트라이크 미사일(JSM)’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세계 2위 항모대국 되나?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세계 2위 항모대국 되나?

    일본이 해상자위대의 헬기 탑재 구축함(DDH)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고, 함재기로 F-35B 전투기를 수십 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일본의 급격한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방위성은 해상자위대가 4척을 보유하고 있는 헬기 탑재 구축함을 F-35B 전투기 탑재가 가능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한 항공자위대가 42대를 도입 중에 있는 F-35A 전투기 물량 일부를 F-35B로 변경하거나 아예 F-35B를 수십여 대 추가 구입하는 방안이 내년 하반기 발표되는 중기방위력정비계획(中期防衛力整備計画)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해상자위대의 2만 7000t급 헬기 탑재 구축함 이즈모(いずも)와 카가(かが), 1만 9000t급 헬기 탑재 구축함 휴우가(ひゅうが)와 이세(伊勢)는 등장 당시부터 받아왔던 의혹대로 항공모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사실 일본의 항공모함 보유 움직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측되어 왔었다. 지난 2009년 취역한 휴우가급 구축함은 진짜 구축함 형상이었던 시라네(しらね)급을 대체하는 헬기 탑재 구축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대형 항공기 7대 이상을 격납/정비할 수 있는 대형 격납고와 엘리베이터, 항공기의 화염을 견딜 수 있는 내열 처리된 갑판 등 수직 이착륙 전투기 운용을 위한 설계가 상당 수준 적용되어 있어 등장 당시부터 항모 개조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었다. 휴우가급보다 더 큰 논란의 대상은 지난 2015년부터 2척이 취역한 이즈모급 구축함이었다. 이즈모급 역시 구축함이라는 분류가 적용되었지만, 이 ‘구축함’은 어지간한 나라의 경항공모함보다 훨씬 큰, 사실상의 중형 항공모함 수준의 덩치로 등장했다. 해상자위대가 공식 발표한 이즈모급의 만재 배수량은 2만 7000t이다. 그러나 이 군함은 비슷한 배수량을 가진 호주 해군의 캔버라(Canberra)급 상륙함보다 길이는 18m, 폭은 6m 이상 크며, 이탈리아 해군의 3만t급 경항공모함인 카보우르(Cavour)급보다 더 크다. 선체 사이즈로만 보면 미 해군의 4만t급 강습상륙함 아메리카(USS America)나 프랑스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급에 필적한다. 비행갑판은 내열처리되어 있으며, 격납고와 엘리베이터 역시 전투기 탑재가 가능하도록 넉넉하게 설계되었는데, 이 배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무려 90개에 달하는 여성사관용 독실(獨室)이 함수 비행갑판 바로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7년 기준으로 해상자위대의 여성 자위관 비율은 5%를 넘지 못하고 있고, 이즈모급의 승조원 숫자는 470명이다. 이즈모급에 탑승하는 불과 20여명 남짓한 여성 승조원을 위한 독실을 90개나, 그것도 함수 갑판 바로 아래에 설치했다는 것은 이 공간이 차후 전투기 운용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 즉 스키점프대나 연료탱크, 탄약고 등을 설치하기 위한 예비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즈모급은 고정익 항공기 이착륙에 필요한 맞바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30노트 이상의 속도 성능은 물론, 고정익 전투기 운용이 편리한 현측(舷側) 엘리베이터와 80만 갤런 용량의 항공기용 연료탱크 등 현재의 상태로도 큰 개조 없이 F-35B를 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 능력을 갖고 있다. F-35B 자체는 수직 이착륙 전투기이기 때문에 전투행동반경과 무장 탑재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이 전투기를 지상 공격이 아닌 함대 방공과 대함 공격 임무 위주로 활용하는 해상자위대 입장에서 전투행동반경과 무장 능력 부족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항공모함 운용에 반드시 필요한 호위전력도 이미 충분하다. 현재 해상자위대는 우리나라의 기동전단 격인 호위대군(護衛隊群)을 4개나 운용하고 있다. 각각의 호위대군에는 1~2척의 이지스 구축함과 1~2척의 방공구축함, 3~4척의 범용 구축함 등 7척의 구축함과 더불어 1척의 헬기 탑재 구축함이 편성되어 있다. 오는 2022년이 되면 이들 호위대군은 탄도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춘 대형 이지스 구축함 2척, 이지스함에 버금가는 방공 능력을 가진 방공 구축함 2척, 범용 구축함 3척 등 신형 전투함들로 크게 보강된다. 여기에 헬기 탑재 구축함이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어 가세할 경우 일본은 2020년대 중반 이전에 4개의 항모 전단을 보유하여 아시아 최강의 해군력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5년, 평성(平成) 27년 방위예산에 다기능 함정(多機能艦艇) 선행연구 예산을 편성해 대형 강습상륙함 획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방위성은 이 함정이 지휘통제·상륙작전·물자 및 병력수송·보급작전·인도적 지원 및 재해 구호·의료지원 및 항공기 운용 등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며 미 해군의 4만t급 강습상륙함 와스프(Wasp)급과 유사한 성격의 함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상자위대가 기존의 헬기 탑재 구축함 4척을 항모로 개조하고, 항공기 운용이 가능한 다기능 함정까지 F-35B 탑재 플랫폼으로 운용할 경우 2020년대 중반까지 일본은 최대 6척의 항공모함 또는 상륙함과 3척의 대형 헬기 탑재 상륙함을 보유한 아시아 최강의 해군력을 갖게 된다. 중국 역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2030년 이전에 항공모함 4척 체제 구축을 선언하는 등 한동안 동북아 지역에서의 해군력 군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문체부 “8월 아시안게임도 남북 공동입장 추진”

    문체부 “8월 아시안게임도 남북 공동입장 추진”

    오늘 IOC 본부서 ‘남북 올림픽 회의’ 北 선수단 규모·참가종목 최종 결정 대회 개막을 20일 남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튼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공동 입장을 추진한다. 2030년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동북아 월드컵 공동 유치도 벌이기로 했다.문체부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합동 업무보고에서 “남북 교류 행사를 계속 이어 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체육 분야에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과 2019 동·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추가로 공동 입장과 응원을 추진하고, 국내 대회에 북한 팀을 초청하거나 종목별 교류를 늘린다는 계획도 내놨다. 다만 문체부 측은 “아시안게임 공동 입장과 응원은 추진하겠다는 방향만 세웠다”며 북한과 합의된 것은 아님을 덧붙였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2030년 남북한, 중국, 일본의 동북아 월드컵 공동 개최도 추진한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과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민족 기록유산 공동 전시 등 남북 교류를 이어 갈 방침이다. 한편 20일(이하 현지시간)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서 열리는 ‘남북한 올림픽 회의’에 참석하는 남북 대표단이 18일 오후 10시 스위스에 도착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 이희범 평창조직위원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장, 유승민 IOC 선수위원과 실무진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19일 숙소에서 사전 회의를 열어 남북이 합의한 세부 내용을 점검한다. 김일국 북한 체육상 겸 민족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우리보다 3시간 빠른 18일 오후 7시쯤 도착해 로잔으로 먼저 이동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20일 남북 대표단 핵심 멤버를 아우르는 4자 회의를 주재한 뒤 북한 선수단 규모와 참가 종목,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국기·국가 게양·연주, 공동입장, 단복 제작 등에 대해 밝힌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野 “태극기는 포기했나” 與 “평화올림픽에 딴지”

    정치권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핌 참가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 차관급 실무회담 개최를 언급하며 “미·중 양대 강국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에도 보수 야당들은 비협조적 자세로 일관하며 정부의 대화 노력에 계속해서 딴지를 걸고 있다”고 성토했다. 추 대표는 이어 “‘인공기는 안 된다’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말을 유치하게 하면서 평화올림픽을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는 것인가”라고도 했다. 반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평창 가는 버스가 아직 평양에 있다’고 엄포를 놓는 북한에 ‘제발 좀 와달라’고 구걸하는 것도 모자라 정부는 일찌감치 태극기를 포기했다”고 성토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불참한 빈자리에 현송월과 삼지연 관현악단이 앉았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불참한 빈자리에 당 서열 7위에 불과한 정치국 상무위원이 앉았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남북대표팀 ‘한반도기’ 공동입장 추진 논란에 대해 “정부 말대로 한반도기 사용이 합의돼도 북한이 계속 인공기를 흔들고 활동하게 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일대일로와 新남·북방 정책/오일만 경제정책부장

    [데스크 시각] 일대일로와 新남·북방 정책/오일만 경제정책부장

    지난해 12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경제협력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사드 문제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지만 예측불허의 동북아 정세에 비춰 한·중 관계 개선이란 더 큰 국익을 선택한 것이다. 첫 시동은 다음달 2일 열리는 한·중 경제장관 회의다. 1년 9개월 만에 재개되는 이번 회의에서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허리펑 중국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주임(장관)이 나선다.초미의 관심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와 ‘신남방·신북방 정책’이 어떻게 접목되느냐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 아시아와 유럽 문명의 통로였던 실크로드를 내륙과 해양 양면에서 부활시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향후 30년간 지속될 중국의 핵심 경제 전략이다. 지난 19차 당대회에서 당장(黨章)에 포함시켰다. 당장에 명문화했다는 것은 우리로 치면 헌법 조항이나 다름없다. 신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까지 퇴로를 끊고 중국의 모든 자원과 정책을 쏟아붓겠다는 배수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북방·신남방 정책은 북쪽으로 러시아와 유라시아, 남쪽으로는 아세안과 인도와의 연결을 통해 역내 국가들 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 국가 성장 동력을 살리면서 북핵 위기로 촉발된 안보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겠다는 의미다. 현실성을 떠나 정권의 명운이 걸린 승부수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무리 양국 정상이 상생을 외치고 손을 맞잡아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중국의 경제역량과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했다. 중국은 25년 전의 후진국이 아니다. 2030년 전후로 미국 경제를 추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한·중 경협은 초기 우리의 기술과 중국의 노동력이 결합하는 수직적 보완관계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한·중 경협은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2인3각의 게임으로 변했다. 우리가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야 중국과의 협력이 가능해졌다. 먹고 먹히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윈윈을 추구하는 고난도 전략이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4차혁명 시대는 한·중 간 경협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개혁·개방 70주년을 맞은 중국은 4차혁명 시대 미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 중국은 10여년 전부터 IT 벤처의 생태계를 만들어 냈고 드론,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중심지다. 우리 역시 혁신성장의 기반을 4차혁명에 빅데이터와 AI 등 13개 분야를 혁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과 맥이 닿는 한·중 경협이 한반도의 신북방정책과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동남아를 통한 신남방정책으로 확대될 경우 양국 간 협력 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우리의 오랜 꿈인 유라시아와 환태평양, 인도양을 엮는 ‘한반도 그랜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목표가 중국의 패권 전략에 말려드는 ‘허황된 꿈’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구한말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전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며 전전긍긍했던 약소국이 아니다. 경제 10위 대국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고 스스로 민주화의 대업을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스스로 한·미 동맹의 하부구조에 그 역할과 위상을 국한시켜 비하해선 안 된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대통령을 조롱하고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대통령의 말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런 사대적 행태로는 그 어떤 비전도 실현할 수 없다. oilman@seoul.co.kr
  • 툭하면 지연…‘年 7000만 항공시대’ 맞나

    툭하면 지연…‘年 7000만 항공시대’ 맞나

    LCC 한 달 최다 15회 ‘지각출발’ 고객 항의엔 “원래 자주 늦는다” 지연 이유도 ‘항로 혼잡’ 등 다양50대 사업가 A씨는 지난해 12월 22일 마카오행 티웨이항공 비행기를 탔다가 낭패를 봤다. 오후 9시 3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밤 12시가 다 된 11시 57분에야 비행기가 이륙해 사업상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통상 국제선은 1시간을 넘기도록 출발하지 않으면 ‘지연’으로 보고 비정상 운항으로 분류한다. A씨가 항의하자 티웨이항공 직원은 “원래 자주 늦는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연간 여객 운송 7000만명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승객들은 잦은 항공기 지연 문제로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인천국제공항이 2터미널(T2)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동북아 허브 공항 시대를 여는 만큼 정비·인력 인프라 구축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서울신문이 항공정보포털시스템의 ‘실시간운항정보’에서 비정상 운항 현황을 확인해 보니 항공기 지연은 예상보다 많았다. A씨가 탄 티웨이항공의 12월 인천발 TW107 MFM(마카오) 비행기편(하루 1회 운항)만 봐도 한 달간 총 8회(5일, 15일, 16일, 18일, 21일, 22일, 23일, 25일)나 늦게 출발했다. 3.8일에 한 번꼴로 지각 출발을 한 것이다. 원인도 다양했다. ▲제방빙 작업 1회 ▲항로혼잡 2회 ▲무게중심 이상 1회 ▲항공기 연결 문제 4회 등이다. 티웨이항공 측은 “손님맞이가 다소 미흡하긴 했지만, 비행기가 노후화됐거나 정비 등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른 항공사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마카오행은 현재 4개 항공사가 운항 중이다. 12월 한 달 동안 진에어는 3회, 제주항공은 15회(하루 2회 운항), 에어서울은 각각 6회 지연됐다. 지연으로 인한 문제는 통상 저비용항공사(LCC)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2017년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3분기)’의 국제선 지연율 현황은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9.99%로 ‘지각대장’ 1위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이어 이스타항공(7.46%), 대한항공(6.36%) 순이었다. 결국 대형 항공사나 LCC 가릴 것 없이 지연으로 말미암은 승객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성탄절 연휴 당시 기상악화로 14시간 20분 동안 이스타항공 기내에 대기했던 승객 60여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승객과의 약속’을 보다 정확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항공기 지연과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많다는 것에 주목해 소비자 보상이 강화된 분쟁 해결 기준을 이달 중 내놓기로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연 문제는 항공사, 승객, 날씨, 공항 여건, 항로 문제 등 복잡하게 얽힌 만큼 항공사만의 책임으로 돌릴 순 없다”면서도 “보유 비행기가 적어 빡빡하게 짜인 일정 때문에 한 대만 고장 나도 이어진 연결 편까지 영향을 받는 문제나 정비인력 부족 등은 우선해서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北 평창 참가, 비핵화 전기 되기를 기대”

    “北 평창 참가, 비핵화 전기 되기를 기대”

    밴쿠버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출국 정경두 합참의장, 美에 협력 당부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경두 합참의장이 15일 방한 중인 미국 민주당 상·하원 대표단을 만나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와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에 대한 지지 및 협력을 당부했다. 이날 만남 후 강 장관은 20개국 외교장관에게 최근의 남북대화 상황을 전하려 캐나다 밴쿠버로 출국했다. 남북대화를 북한 비핵화 논의의 전기로 삼는 한편 국제 안보 공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산하기 위해 정부가 전방위적 노력에 나선 것이다. 강 장관은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태미 덕워스 상원의원, 루벤 갈레고 하원의원 등 미국 민주당 상·하원 대표단을 면담하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평창을 넘어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 북한 비핵화 문제 진전에도 기여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고 밝혔다. 미 의원들은 “어떤 형태의 대화도 대화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평창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한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정 의장도 용산구 합참 청사에서 미국 대표단을 면담하고 평창올림픽의 평화적 개최와 남북 고위급회담 등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이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강력한 안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현재 한·미 동맹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건한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의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이날 오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한반도 안보와 안정에 관한 밴쿠버 외교장관회의’(21개국 참가)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16일 개회식 기조연설과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 세션 ‘선도 발언’ 등에서 대북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설명한다. 외교부는 미국, 일본 등 회의에 참석한 주요국과의 양자 외교장관회담,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 등을 개최하는 방안도 각국과 조율하고 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도 16일부터 미 워싱턴을 방문해 존 설리번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을 만나고, 17일에는 ‘제2차 고위급 외교·국방(2+2)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에 참석한다. 확장억제란 동맹국이 적대국의 핵 공격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핵우산, 미사일방어체계,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미국 본토와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역사 속 행정] 숙종때 지독했던 지배층 당파싸움…그래도 조선이 200년 더 유지된 건 실학ㆍ탕평책 등 나라 위한 노력 덕

    [역사 속 행정] 숙종때 지독했던 지배층 당파싸움…그래도 조선이 200년 더 유지된 건 실학ㆍ탕평책 등 나라 위한 노력 덕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서 드물게 오랜 기간 ‘국가’로 대표되는 정치 공동체를 운영했다. 고조선에서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연속성을 갖고 국가가 발전한 것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현상이다. 조선(1392~1910)은 518년 동안 이어지다가 1910년 일본의 침략으로 멸망했는데,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온 담론 가운데 하나가 ‘당쟁망국론’이다. 조선왕조는 지배층의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다. 당쟁은 조선 후기 정치의 특징인데, 숙종 대에 여러 차례 환국이 반복되며 가장 격렬하게 전개됐다. 당쟁망국론에 따르면 조선은 아마 이 시기를 전후해 망했어야 하지만 조선은 그 뒤에도 200년 이상 유지됐다. 격렬한 당쟁에도 조선이 장기간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16세기 말 왜란과 17세기 전반 호란은 사림의 무기력을 폭로한 사건이었고 주자학과 성리학의 현실 적합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특히 삼전도의 치욕 이후 대부분 주류 양반 지식인들은 오랑캐에게 치욕을 당한 군주를 자신의 임금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일부는 국가 위기를 타개하려면 양반과 지주로서의 특권을 양보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이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대동법과 균역법이었다. 대동법은 지주의 부담을 늘려서 국가재정을 회복하자는 것이고, 균역법은 양반에게 군역의 대가를 지불하게 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대동법이나 균역법 모두 시행에 100년 넘게 걸렸다. 결국 대동법과 균역법이 대다수 양반 지주들의 반대에도 공포되고 시행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존립을 우선하는 일부 깨어 있는 신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뜻있는 지식인들에게 살아남아 학문적으로 체계화됐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 후기 실학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양반 지주였지만 양반의 계급적 이익을 부정하는 새로운 국가를 추구했다. 탕평론은 17세기 말 국가가 처한 대내외적 위기로부터 벗어나고자 당시 시대적 화두였던 대동과 균역의 이념을 계승한 것이었다. 영조는 어머니가 무수리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탕평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균역법을 공포하고, ‘속대전’을 편찬해 양반 지배층의 불법과 탈법을 견제했다.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가가 멸망에 이른 것은 당시 우리 현실을 볼 때 필연적 귀결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왕조가 멸망할 당시에 나온 당쟁망국론은 일면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적 흐름을 거역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양반 지배층이 사사건건 제도 개혁에 제동을 걸어 나라가 멸망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쟁망국론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17세기 이래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실학과 그것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탕평론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당쟁이 숙종 시기에 가장 격렬하게 이뤄졌음에도 국가 멸망이 200년이나 늦춰진 것은 바로 실학과 탕평론의 존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어느 시대나 정치와 행정에서는 여러 계급·계층의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치기 마련이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정치와 행정을 담당한 사람들은 그런 대립·갈등에서 무엇이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것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업무에 임해 주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공직자들이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조선의 사례가 잘 보여 주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김용흠 교수 (연세대 국학연구원)
  • 연간 여객운송 1억명 시대 ‘날갯짓’

    연간 여객운송 1억명 시대 ‘날갯짓’

    제4활주로 신설 등 2023년 완공 목표 스마트 공항 도약 … 일자리 5만개 창출 인천국제공항이 제2여객터미널 개장과 동시에 ‘4단계 건설사업’을 추진한다. 오는 18일 문을 여는 제2터미널에 이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4단계 건설사업’이 마무리되면 연간 여객 운송 1억명 시대를 맞게 된다. 동북아를 넘어 세계 중심 공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급증하는 항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부터 제2터미널을 신축하는 ‘3단계 건설 사업’이 지난해 연말 마무리됐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4단계 건설사업은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약 4조 2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제2여객터미널 확장을 비롯해 제4활주로 신설, 진입도로와 계류장 확충 등이 핵심이다. 4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면 제2터미널의 여객 처리 규모는 연 1800만명에서 4600만명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인천공항의 전체 여객처리 규모 역시 연간 1억명에 달한다. 세계 각국 공항이 경쟁적으로 시설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여객 1억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게 국토부 측의 설명이다.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4단계 건설 기간 중 5만명의 일자리와 8조원의 생산유발 효과, 2조 8000억원의 부가가치 창출이 예상된다. 4단계 사업을 통해 인천공항은 ‘스마트 공항’으로 거듭난다. 인공지능(AI)과 생체인식,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제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도입된다. 생체인식 기반 체크인 및 탑승 서비스, AI 기반 보안검색 엑스레이 판독, 고도화된 안내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4단계 건설사업 이후 최종 단계에 이르는 중장기 개발계획이 확정되면 제3여객터미널과 제5활주로가 신설돼 연간 1억 3000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천공항은 국제선 기준으로 싱가포르 창이공항(1억 3000만명, 2025년), 두바이 알막툼공항(1억 6000만명, 2030년)에 이어 세계 3대 초대형 공항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인천공항 2터미널 엔진 달고 ‘글로벌 허브’로

    인천공항 2터미널 엔진 달고 ‘글로벌 허브’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T2)이 오는 18일 개장해 운영에 들어간다. 새 터미널 개장으로 인천공항은 연간 7200만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아시아 대표 허브공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12일 제2터미널에서 ‘세계를 열다, 사람을 잇다’를 주제로 개장식을 열었다. 제2터미널은 체크인·보안검색·세관검사·검역·탑승 등 출입국을 위한 모든 절차가 제1터미널과 별도로 이뤄진다.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항공, KLM네덜란드항공 등 4개 항공사가 운항한다.국토교통부는 2터미널 개장을 계기로 인천공항 여객 수송 규모가 세계 7위에서 5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인천공항은 올해부터 연간 총 7200만명의 여객과 500만t의 화물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제1터미널의 여객 수송 규모는 5400만여명이었다. 이날 열린 개장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현미 국토부 장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 인천공항 명예홍보대사인 김연아·송중기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개장식에서 “개방통상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물류 허브는 국가적 과제”라면서 “인천공항은 동북아를 넘어 세계적인 허브공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천공항이 2023년까지 연간 1억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시설 확충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취임 후 이틀 만의 첫 현장 행보로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화두를 던졌던 문 대통령은 “지난 연말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고 들었다”면서 “노사가 힘을 모아 차질 없이 이행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제2터미널은 18일 오전 4시 20분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KE624편)의 도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18일부터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여행객은 이용하는 항공사에 따라 어느 터미널로 가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13억 중국인의 가슴 먹먹하게 만든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사연

    13억 중국인의 가슴 먹먹하게 만든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사연

    최강 한파가 동북아시아를 강타한 가운데 중국에서 극심한 추위 속에서 등교하다가 ‘눈송이 소년’이 된 한 소년의 사연이 중국인의 마음을 울렸다. 이 소년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에서 성금이 쇄도해 전날까지 벌써 12만 위안(약 2000만원)이 쾌척됐다.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소셜미디어와 포털사이트에는 윈난성 자오퉁시 주안산바오 마을에 사는 8살 소년 왕푸만(王福滿)의 사연과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 왕푸만은 겨울옷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은 옷차림을 한 채 머리와 눈썹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서리까지 맺혔고, 볼은 추위에 빨갛게 상기됐다. 어색한 표정의 왕푸만 주변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초등학교에서 약 4.5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그는 매일 1시간 넘게 걸어서 등교한다. 영하 9도의 맹추위 속에서도 목도리나 장갑을 하지 않은 채 걸어서 등교하다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이다. 담임교사가 찍은 이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에 전해졌고, 그에게는 ‘눈송이 소년’(氷花男孩)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중국 네티즌들은 “너의 고생은 미래에 너의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될 거야”라는 글을 올리는 등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사진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왕푸만이 농촌 출신으로,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간 농민공 자녀인 이른바 ‘류수아동’(留守兒童)이기 때문이다. 농민공 부모와 떨어져 농촌에 홀로 남겨진 류수아동들은 극심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기도 하며, 혼자 불을 피우다가 화재로 사망하는 등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왕푸만도 누나와 할머니와 함께 낡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돈이 없어 주로 밥과 야채로 끼니를 때운다고 이웃은 전했다. 난방 기구도 없어 장작을 태워 온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구경을 하고 싶다”는 왕푸만은 “학교에 가는 것은 춥지만 힘들지는 않다. 커서 경찰이 돼서 나쁜 사람을 잡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교에 관한 모든 길을 열다 -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외교에 관한 모든 길을 열다 -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

    “모든 외교는 수단을 달리한 전쟁의 연속이다.” 중국의 저명한 정치가인 주은래(周恩來 :저우언라이, 1898~1976)는 일찌감치 국가간 외교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즉, 매일 매일 한반도를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외교 전쟁들이 동북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한반도의 국제정치학적 위상에 대한 고찰은 이미 국제정치학 대가인 존 미어세이머(John Mearsheimer)의 입를 통해 한번 더 확인할 수도 있다. 그는 “한국은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정학적 환경에 살고 있다”라면서 “국민 모두가 영리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외교의 길을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 기록의 전부를 보여주는 곳, 외교안보연구원에 있는 외교사료관으로 가 보자. 외교사료관의 전시물들은 박제된 유품이 아니라 현재도 유효한 외교기록물들이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문서이자 지금도 그 영향력을 미치는 역사의 증거품들이다.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그냥 놀라울 따름이다. 진짜 대한민국의 외교 기록 그 자체여서 관람객들은 그저 감탄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만 하면 된다. 이 곳의 명칭, 즉 외교사료관이라는 이름에서도 우리는 여기가 그냥 평범한 외교전시물을 보여주는 박물관 정도의 관람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외교사료관은 대한민국 외교 사료를 보관 전시하는 곳이다. 2006년에 설립되어 총면적 6086㎡,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의 전시관으로 <한미 수호통상조약 미국 측 전권 위임장>, <휴전 협정서 및 임시 보충협정서> <6.15 남북공동선언> 등 중요 외교 관련 사료를 보관 전시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헌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30년이 지난 외교 문서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업무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중에서 외교사료관 내 지하1층과 지상 1층이 외교사 전시실로서 주로 일반인들이 외교관련 사료들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조약이 체결된 19세기말부터 현재까지 주요한 외교문서와 영상물을 비롯, 외교사료(사진, 여권, 훈장, 기념품 등) 총 8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1층에는 일반인들이 외교 문서들을 열람할 수 있는 문서 열람실이 있으며 2층과 3층은 마이크로 필름 1000여개 외에 6만 여개의 외교문서를 보관하는 서고로 사용되고 있다. 2018년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격동의 외교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교사료관에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외교사료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성비 최강의 장소. 적극 추천! 2. 누구와 함께? - 혼자. 조용히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3. 가는 방법은? - 서초구청 옆 외교안보연구원 내. 4. 감탄하는 점은? - 진짜 외교 문서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서울 내에 숨겨진 가성비 최강의 전시관. 6. 꼭 봐야할 장소는? - 1층 외교사료관 7. 주의할 점은? - 들어가는 입구에서 안내를 받고, 방문객 안내증을 받아야 함.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dev/main_index.do 9. 관람 정보는? - 반드시 <외교사료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개관일과 시간을 확인해 볼 것. 프로그램 견학 신청도 가능.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외교사료관은 정부 기관에서 운영하는 검증된 공간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당당히 외교 문서 및 기록들을 살펴보는 것도 민주주의의 정신이기도 하다. 초강력 방문 추천!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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