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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고촌의 동백아가씨/오한숙희 여성학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가요무대에서나 들음직한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 노래가 요즘 나의 화두, 아니 우리집의 화두이다. 다름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지금 동백 아가씨가 되어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지 삼십년이 된 어머니가 동백아가씨된 사연은 변심한 임이 아니라 변해가는 우리 동네 풍경 때문이다. 재작년인가. 나지막하니 평화롭던 논에 대형트럭들이 흙을 쏟아붓더니만 작년부터 아파트공사가 시작되었다. 예전 같으면 연초록의 어린 모가 심겨졌을 봄 논에 높다란 공사 철탑이 공룡처럼 뻗쳐 서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살풍경하다. 우리 어머니는 그 꼴이 보기 싫어 마을 뒤쪽의 꼬부랑길로 다니시고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지나가야 할 때는 마치 못 볼 것을 대하듯 고개를 외로 꼬신다. 이런 속내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부러움을 담은 덕담을 쏟아냈다. “좋으시겠어요. 땅값 올라가는 게 보이네, 보여. 선견지명이 있으셨지 뭐예요.” “좋긴 뭐가 좋아요. 난 하나도 안 좋아.” 우리 어머니의 시큰둥한 반응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할 뿐이었다. “아직 실감을 못하셔서 그렇죠. 아파트완공만 되어 보세요. 그때는 춤을 덩실덩실 추실걸요.” “뭐? 춤을 춰? 난, 아파트완공되는 꼴 보기 전에 이 동네 뜨고 싶어.” “그럼요. 여기 뛸 만큼 뛰면 팔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시는 게 현명하죠. 거긴 땅값이 아직 많이 쌀 테니까요.” 가치관의 차이는 이렇게 동문서답을 양산할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우리집 뒤 야산에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이 얼마전에 날아 들었다. 정말 동네를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비보였다.“도대체 언제 그 길이 뚫린다는 거냐,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 거냐.” 논에 아파트가 설 때는 한숨만 쉬시던 어머니가 뒷산 소식에는 애를 끓이셨다. 그나마 우리는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오셨는데 이것마저 위협을 받게 되자 이번에는 아이들까지 들썩였다. 아침저녁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산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마을 진입로에 ‘마을관통 고속화도로 절대 반대’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띄더니 이웃집 아저씨가 서명을 받으러 오셨다. 어머니는 “그럼 그렇지. 여기 사는 사람들이야 다 숨쉬는 맛에 사는 건데. 다들 반대하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워하셨다.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한숨이었다. “입장들이 다 달라요. 서울 사람이 땅 주인이면 반대할 이유가 없죠. 토박이들도 자식들이 은근히 좋아하니 헷갈리시죠. 서명은 받습니다만 어떻게 될 지는 애매해요.” 아저씨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는 딱히 누구한테랄 것 없는 역정을 내셨다. “집값 올라 돈 벌었겠다고 다들 떠드는데 그래, 얼마가 오른다더냐. 산 없애고 돈 주면 그 돈이, 이 산이 주던 것보다 더 크냐. 그이들이 이 산이 주던 것을 헤아려 봤대? 계산해 봤대? 이만한 산을 다시 만들려면 얼마 드는지 견적 빼봤다더냐. 모르는 소리. 잃고나서야 후회한다. 어리석은 사람들. 그깟 눈먼 돈 잠깐이면 날아갈 텐데. 그 돈 물려줘봐야 자식들 앞 길 망치기만 할 텐데.” ‘이 집을 내 마지막 거처로 생각했다.’는 어머니 말씀에 나는 목이 메고 말았다. 실향민으로 아버지 생전에 문패 한번 달아보지 못하고 셋집을 전전하느라 자식들의 일기장이며 성장의 귀한 기록들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을 세월이 갈수록 애통해하시는 어머니에게 집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질숭배신앙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어느 새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뭐든지 바꿀 각오를 안고 산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들은 어찌할 것인가.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연환경은 자본의 저울대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 존재를 증명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요즘 어머니는 해가 진 다음에도 종종 창문을 열고 뒷산을 바라보신다. “이 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헤아릴 수가 없단다. 그런 걸 어떻게 돈으로 계산해 주겠다는 건지.” 집값은 오른다는데 우리 어머니 가슴은 동백꽃잎처럼 빨갛게 멍이 들어간다. 오한숙희 여성학자
  • [길섶에서] 산행/이호준 인터넷부장

    남녘에는 동백꽃이 한창이고 보리밭이 푸르다던데…. 햇살이 눈부신데도 산기슭의 바람은 잘 갈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등에 땀이 흐르고 입에서 단내가 난다. 몸 안의 노폐물뿐 아니라 마음에 쌓인 찌꺼기까지 모두 털어내고 싶다. 산행 내내 얼마 전 선배와 나눴던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요즘은 새벽에 깨면 영 잠을 이룰 수 없어.” “어? 선배도? 저도 그래요. 뒤척거리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생각이 많아서 그래. 책에서 봤는데 그런 땐 운동이 최고래. 몸을 혹사시켜 잡념을 몰아내는 거지.” 산허리, 양지 바른 곳에서 얼굴을 내미는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 들여다본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구나…. 하산길로 잡은 반대쪽은 아직 한겨울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며 평범한 진리를 거듭 새긴다. 그래, 인생도 그럴 뿐이야. 볕이 드는 곳이 있으면 응달이 있게 마련. 바람이 분다고 오던 봄이 돌아가기야 할까. 봄의 씨앗은 강남제비가 물고 오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서 싹트는 건지도 모른다.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레저+α]

    [레저+α]

    ●제주도 유채꽃 나들이 제주신라호텔은 다음달 말까지 봄의 절경인 유채꽃 풍광을 할인된 가격에 만끽할 수 있는 유채꽃 패키지를 내놓았다. 호텔내 피트니스클럽과 수영장은 무료이며, 겔랑스파는 할인된다. 렌터카도 50% 할인된다. 요금은 2인 조식을 포함해 주중 18만원, 주말 24만원.www.chejushilla.com,1588-1142. ●동백꽃도 보고 해신도 보고 우리테마투어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 동백과 완도 해신 촬영장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마련했다. 일정은 해남 땅끝마을과 완도보길도, 세연정, 완도 해신 세트장, 강진 백련사 등이며, 가격은 왕복교통비와 식사(2회), 입장료를 포함해 6만 9000원이다. 출발은 서울 시청역 1,2번 출구 덕수궁 정문앞.www.wrtour.com,(02)733-0882. ●섬진마을 매화축제 강산여행은 봄향기가 그윽한 전남 광양시 섬진마을 매화축제와 여수 오동도 동백섬을 돌아보는 상품을 마련했다. 다음달 11·12·18·19일 출발하는 무박 2일 상품으로 남해안 일출명소인 향일암에서 일출을 감상한 뒤 섬진강 매화마을과 여수 오동도를 돌아보는 코스다. 요금은 5만 3000원.www.kangsantour.co.kr,(02)3426-3211. ●인터넷으로 하와이 화산여행을 하와이관광청은 인터넷으로 하와이의 화산을 여행할 수 있는 웹사이트(www.efieldtrips.org)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디스턴스 러닝 인터그레이터사가 제공하는 이 웹사이트는 하와이의 화산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의 데스벨리, 알래스카 등을 온라인으로 구경할 수 있으며, 펄하버를 비롯한 역사적인 장소도 화상으로 여행할 수 있다. 오는 3월10일에는 국립공원 관리직원과 화상 채팅을 실시해 화산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02)777-0033. ●3·1절에 태극기 만들어 봐요 서울랜드는 3·1절을 맞아 다음달 1일 세계의 광장에서 ‘태극기 탁본체험 행사’와 ‘3·1절 OX퀴즈’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탁본체험행사에서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문의 원판 모형본으로 직접 탁본을 할 수 있으며, 탁본을 관람객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줄 예정이다. 아울러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기념 퍼레이드가 오후 2시 펼쳐지며 태극기 아저씨로 유명한 이계춘씨가 함께하며 태극기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주고 기념사진도 촬영한다.www.seoulland.co.kr,(02)504-0011. ●렌트카 제공 이벤트 제주 재즈마을은 3월 31일까지 제주도 재즈마을 펜션을 예약하는 사람에 한해 렌트카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벤트는 화∼목요일 예약자에 한하며, 재즈마을 복층 1박(렌트카 24시간 포함) 16만원, 원룸 1박(렌트카 24시간) 11만원이다.1577-4241,www.djj.co.kr.
  •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뒷골목 맛세상] 모란시장의 먹을거리

    ■ 돼지 부속물 ‘장터 뷔페’ 지금 50,60쯤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면,1960년대 무렵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삽화 한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몇 학년 국어교과서인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지만,5일장이 선 시골장터에서 중년의 사내가 눈보라를 맞으며 하염없이 서 있는 삽화이다. 삽화 속 사내는 눈보라를 맞으면서 어머니를 기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로 5일장을 돌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난장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여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킨다. 그리고 미처 아들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기려 난장에 서서 온몸으로 눈보라를 맞고 있다는 줄거리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어른·아이 모두의 축제 그 중년 사내의 삽화가 나에게 언제까지라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내야말로 나와 한 치도 틀림없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자전적인 작품에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장터의 풍경이 나온다. ‘우리 식구는 모두 장돌뱅이였던 셈이다. 어머니는 어물전의 한 귀퉁이에서 길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 그 위에 역시 거적때기만한 차일을 친 채, 김이며 미역, 멸치, 마른 새우 등의 해산물을 팔았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해종일 어머니와 함께 장날을 보냈지만, 조금 커서 네댓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어머니의 등을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돌뱅이가 되어 장터를 헤집고 다녔다. 장돌뱅이에게 있어서, 닷새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이란, 어른 아이 막론하고 축제일 수밖에 없었다. 장날이 돌아오는 나흘 내내 기껏해야 휴지 나부랭이나 회오리바람에 날리곤 하던 쓸쓸한 빈터와 기둥만 앙상하던 빈 가게들이, 장날이 되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람들이 들끓는 싸전이며 어물전, 포목전, 유기전, 옹기전, 잡화점 등으로 변하고, 노점 음식점들마다 돼지머리와 순대가 산더미처럼 쌓이거나 가마솥이 넘치도록 팥죽이 끓어대는 요술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장돌뱅이들은,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목이 쉬도록 시골 사람들을 불러 하루 벌어 닷새를 먹고 살 돈을 마련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장터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물건을 훔치거나 아니면 혹시 길에 떨어진 동전 한닢이라도 줍기 위해 해종일 악머구리 끓듯 해댔다. 어린 장돌뱅이의 벌이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싸전 근방을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어른들의 다리 틈으로 쌀을 한 주먹씩 훔쳐내어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되밀이꾼에게 들켜서 되밀이로 얻어맞거나,‘이 문댕이새끼, 손모가지를 콱 짤라불기 전에 쌀 못 놔?’‘아이고, 전 어떤 장돌뱅이년 구녕에서 나온 새끼여?’ 하는 시골 아낙네들의 막된 욕지거리야 다반사였고, 조금도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어린 장돌뱅이들은 저만큼 도망치면서 ‘히잇, 니에미 X이다아’ 하고 대거리를 해대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린 장돌뱅이에서 50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이에 이르러서도, 어쩌다 5일장에만 가면 나는 장터 특유의 축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고 만다. 그리하여 몇 시간이고 좋이 장터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한만을 잔뜩 남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도 한다. 수도권 일대에 조선조부터 유명한 5일장으로는 광주의 사평장, 송파장, 안성의 읍내장, 교하의 공릉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빛이 바랬다. 대신에 내가 즐겨 찾는 5일장은 성남 모란장이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다가 4일과 9일,14일과 19일,24일과 29일, 이렇게 5일 간격으로 장이 열리는 모란장은 우선 3000평이 넘는 넓은 장터여서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서울에서 지척이면서도 기이하게 전혀 도회지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니,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시골장터의 분위기 속에는 누군가에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들짐승 혹은 모질게 살아남는 여름 한낮의 잡초 같은 거친 생명력이 깔려있다. 거친 생명력은 자칫 수상쩍은 기운마저 감돌 정도이다. 이를테면 어디 한군데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집안의 우환노릇이나 하면서 거느릴 가족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역마살의 작은 아버지나 외삼촌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불온하고 어수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살붙이의 정이 가는 식이다. 그런 모란장의 분위기는 어쩌면 성남시 자체에서 태생적으로 연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회지의 때 묻지 않은 시골장터 분위기 도대체 성남이 어떻게 만들어진 도시인가.1960년대에 박정희식 값싼 노동력 위주의 경제개발에 희생되어 실농한 농민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등지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판잣집에서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한 채 이번에는 철거민이 되어 광주시 중부면의 허허벌판으로 내몰려 만든 소위 광주대단지의 ‘달나라 별나라’가 시초 아니던가. 먹고 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나라에서 준다는 20평의 땅에 혹하여 지금의 은행동 일대에 ‘달나라 별나라’를 만들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눈이 뒤집힌 임산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삶아먹는 파천황의 굶주림 끝에, 마침내 ‘광주폭동’을 일으킨 비극의 땅이 아니던가. ‘광주폭동’은 작가 윤흥길씨에 의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라는 작품으로 재현되었다. 이 작품에는 ‘안동 권씨’에 대학까지 나와 출판사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오로지 내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광주단지에 까지 오게 된 주인공이 주로 철거민들을 중심으로 한 데모대를 피해 도망치다가 자칫 데모대의 물결에 휩쓸려 들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꿔져 버립디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 술값만 내면 양은 맘껏 데몰 피해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 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주어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화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디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농·공·축·수산물 없는게 없는 만물상 ‘나체화’의 성남시가 2004년 12월 말 현재 97만 명을 넘어 100만 명이라는 초읽기에 들어간, 나라 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가 되었다. 만일 그대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만나고 싶다면, 그리하여 그대 또한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체화’를 느끼고 싶다면, 그대는 지금 당장 모란장으로 오라. 모란장 어디에서건 그대는 너무 쉽게 아홉 켤레의 사내와 나체화를 만나게 될 터이다. 만일 그대가 설 명절을 맞아도 돌아갈 고향이며 가족이 없는 떠돌이라면, 더더욱 망설이지 말고 모란장으로 오라. 와서 그대 또한 기꺼이 벌거벗은 채 나체화 속으로 들어가라. 지하철 8호선과 분당선이 만나는 모란역에서 5번 출구를 나와 20m 쯤 걸으면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모란장 입구가 보인다. 성남이나 분당행 시내버스를 타서 모란역에서 내려도 마찬가지다. 또한 모란역 곁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전국의 어디에서건 성남행 시외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모란장 입구라고 해서 딱히 무슨 표지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꽃이며 난이나 동백꽃 같은 화분을 길바닥에 늘여놓은 꽃전이 입구인 셈인데, 꽃전을 지나면 쌀이며 보리, 콩, 조, 수수, 율무 같은 갖가지 잡곡을 파는 잡곡전이 나오고, 당귀며 황기, 인삼, 감초 같은 약초에서부터 지네며 뱀, 심지어 굼벵이까지 파는 약초전이 나오고, 할머니들의 고쟁이 같은 내복에서부터 누비옷이며, 버선, 양말, 양장, 신사복, 점퍼 등을 파는 의류전, 신발전, 고등어, 갈치, 대구, 새우, 꽁치, 삼치, 굴, 동태에서 아구며 가오리 등 온갖 생선을 파는 생선전, 무며 배추, 상추, 시금치에서 사과, 배, 바나나, 곶감, 귤을 파는 야채전을 지나면 드디어 먹거리를 파는 음식전이 시작된다. 아니, 잠깐만 음식전을 모른 척 지나치자. 음식전 옆에는 활어전이 있는데, 주로 붕어며 잉어, 누치, 가물치, 장어, 새우, 자라, 미꾸라지 등 살아 있는 민물고기들이 펄떡펄떡거리고 있다. 활어전을 지나면 고추전이 나오고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이 싸서 1,2만원짜리도 있다는 각종 강아지를 파는 애견전이 나오는데, 장터의 맨 끝에는 흑염소며 닭, 오리, 토끼, 고양이 등을 파는 가금전이 있다. 모란장을 대강 둘러 보았으면, 다시 먹을거리를 파는 음식전으로 돌아가자. 젊은 남정네가 아내며 어린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있거나, 늙은이 내외가 둘이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음식전에는 팥죽이며 호박죽이 양은솥 안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팔팔 끓고, 왕만두, 만둣국, 팥국수, 장터국수, 잔치국수, 칼국수 등이 산더미로 쌓여 있다. 그것들이 모두 2000원에서 3000원 안팎이다. 그런가 하면 옆에서는 가오리찜, 순대국밥, 손만두, 소라, 홍합, 돼지허파, 코다리찜, 돼지머리고기, 문어, 쭈꾸미, 새우 등이 역시 산더미로 쌓여 있다. 두 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양의 한 접시가 각각 5000원이다. 문득 가까운 어디선가 굿판이라도 벌어진 듯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쇳내 나는 목청으로 누군가가 신명지게 품바타령을 불러대고 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면, 만장한 구경꾼들 한 가운데에서 엿장수의 놀이판이 벌어져 있다. 그렇듯 엿장수의 놀이판 주변으로는 뷔페 중에서도 희한한 ‘쌍방울뷔페’의 ‘원주민촌’,‘무진장집’,‘대박집’,‘왕눈이’,‘막썰어집’,‘고향집’,‘은영네 대포집’ 등이 눈에 띈다. 쌍방울이란 돼지 불알을 일컫는 말로, 바로 돼지부속 고깃집들이다. ●음식도 가지가지 입맛대로 골라 포식 이 돼지부속 고깃집들은 부속의 종류에 따라 값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님의 양에 따라서 얼마를 먹든지 간에 고기 값은 무료이고, 술값만이 다르다. 이를테면 소주 한 병에 3000원, 동동주 한 잔에 1500원인 ‘돼지 잡는 날’에서는 이곳에서 도래기름이라고 부르는 이자와 지라, 콩팥, 염통 등의 돼지부속이 나오고, 소주 한 병에 5000원인 ‘쌍둥이네’에서는 지라며 콩팥, 염통 이외에도 돼지껍데기며 생고기, 새끼보, 불알 등이 더 나온다. 이렇듯 모든 돼지 부속물들이 기다란 철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으면, 손님들은 술이 떨어지지 않는 한 이리저리 철판을 옮겨 다니며 얼마든지 포식할 수 있다. 뿐이랴, 바로 쌍방울뷔페 옆에는 내가 빠질 수 있냐는 듯이 왕새우구이, 민물장어, 꽁치구이, 청어구이, 꼼장어에 버섯삼겹살이며 메추리구이, 닭발, 닭똥집, 두부김치 등을 파는 ‘명희네’며 ‘옛사랑집’이 있다. 거기서 잠깐 눈을 돌리면, 커다란 가마솥에서 솔솔 단내를 풍기며 가득히 보신탕이 끓고 있는 ‘은영이네 가마솥 보신탕’이 있다. 그러나 이 보신탕은 장터 반대편 ‘영남흑염소’ 건물 주변이 대여섯 집들이 차일을 잇댄 채 줄지어 서 있다. 보신탕은 보통이 8000원, 특이 1만원이다. 만일 그대가 여기까지 모란장을 돌아 보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 또한 성남이라는 사연 많은 도시의 나체화 속으로 껴들어 있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대가 낯선 사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라 한 점을 안주로 한 병에 3000원짜리 소주를 목 안에 깊이 털어넣을 때, 아니면 엿장수들의 음담패설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칠순 노파 옆에서 그대 또한 키득키득 웃어댈 때, 그대는 이미 그만큼 불온하면서도 어수룩한 살붙이의 정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한 폭의 나체화를 만들고 있으리라. (작가)
  • 5만평 동백숲 만들기 23년 양언보씨

    “세계적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주인공 비올레타가 번갈아 들고 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은 바로 동백입니다. 그래서 ‘춘희’(椿姬), 즉 ‘동백아가씨’로 번역되지요.” 양언보(61·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상창리 271)씨는 ‘동백아저씨’로 통한다.23년 전 어느날 굴삭기를 동원,‘대학나무’로 불리는 자신의 감귤나무밭을 확 갈아 엎었다. 이어 동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미친 사람’이라고 다들 손가락질했다. 극구 말린 부인과는 이혼의 위기까지 갔다. 하지만 오로지 동백나무 심기에만 전념했다. 또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기름을 짜는 동백나무 씨앗을 주머니에 슬쩍 넣어오기도 했다. 내친 김에 사업을 해 번 돈을 몽땅 ‘동백언덕 만들기’에 쏟아부었다. 집념의 결실이 맺어졌다. 지난해 상창리 일대에 ‘카멜리아힐’이라는 5만여평 규모의 동백나무숲이 장관처럼 조성된 것. 제주도 자생의 동백을 비롯,180여종의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원래 동백나무는 거제도 등 남해안 섬지방에 군락지로 널리 퍼져 있으나 양씨처럼 개인이 동백나무 수목원을 가꾼 것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양씨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 ‘동창아, 동창아 노오올자’라는 주제로 ‘춘(椿)페스티벌’을 열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임동창, 아쟁 연주자 김영길, 사물놀이패 진쇠 등을 초청해 한바탕 동백축제를 벌인 것. 그가 동백나무에 애정을 쏟은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감귤나무의 수익성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최소 10여년 뒤의 감귤나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번째는 어릴 때부터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너무 좋아했던 까닭이다. “동백은 우리 생활과도 친숙하지요. 혼례식에서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굳은 약속의 상징으로 통합니다. 또 옛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도 사랑받아왔지요.” 그는 동백사랑 실천을 위해 “비올레타 같은 ‘동백아가씨’ 축제를 매년 열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카멜리아힐(www.camelliahill.co.kr)을 사랑하는 ‘카사모’를 결성했다. 제주 김문기자 km@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91세 최고령가구 신카나리아

    [어떻게 지내세요] 91세 최고령가구 신카나리아

    “난 아직도 열일곱 살이에요.” 일제시대 때부터 가수 고 현인 등과 함께 노래했던 원로 가수 신카나리아(본명 신경녀). 그는 ‘꾀꼬리 가수’의 원조라는 별명과 함께 국내 가요계에서 예명을 처음으로 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등 특유의 꾀꼬리 같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40대 이상 추억의 팬들이 아직도 많다. 또한 고 이난영·황금심 등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여가수의 길을 걸어오면서 가요계 발전에 큰 견인역할을 해왔다. 올해 91세로 현역 최고령 가수로 꼽힌다.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21일 오후 자택인 경기도 안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 17일에 이어 두번째였다. 어떻게든 직접 통화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인근에 산다는 조카 신(57)씨가 전화를 받았다. 조카는 “지병인 심장병 병환이 좋지 않으니 통화는 어렵다.”고 똑같은 대답을 했다. 조카는 또 “하루에도 몇번씩 들러 병원에서 약을 타오는 등 병수발을 해주고 있다.”면서 “(신카나리아는)외부 나들이는 물론이고 외부인과 통화조차 잘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고령에다 지병이 겹쳐서인지 요즘 누워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부드러운 음식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있으며 혈육으로는 함께 사는 외동딸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는 친척들이 찾아온단다. 조카에 따르면 신카나리아는 간혹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를 즐겨본다는 것. 이럴 때면 ‘나는 열일곱살이에요’‘삼천리강산 애라 좋구나’‘노들강변’(변주곡) 등 자신이 불러 히트쳤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신카나리아는 2002년 10월 가요무대 800회 특집 때 잠시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다.2002년 4월 가수 현인씨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다. 함남 원산 출생인 신카나리아는 1928년 ‘뻐국새’로 데뷔했으며 ‘강남따라’‘베니스의 노래’‘애수의 부르스’‘동백꽃’‘꽃이 피면’‘그리운 내고향’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김문기자 km@seoul.co.kr ●‘어떻게 지내세요’ 는 독자와 함께합니다. 각계 명사는 물론 한때 스타였던 인물, 화제를 뿌렸던 사건 속 주인공들의 근황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들의 얘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추스르고 삶을 돌아보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추천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연락처 : km@seoul.co.kr)
  • [스크린+α]

    ●인디스토리 옴니버스영화제가 29일부터 2월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독립영화배급사인 인디스토리가 주최하는 이 영화제에는 ‘동백꽃 프로젝트, 보길도에서 일어난 세가지 퀴어이야기’‘이공’‘쇼미’ 등 국내 영화와 ‘아리아’‘괴담’‘커피와 담배’ 등 해외 화제작 20여편이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중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세미나도 열린다.(02)743-6051.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이 영화 ‘시월애’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에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시월애’의 해외 세일즈를 담당하는 시네마서비스는 “할리우드의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로부터 이같은 내용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감독 알렉한드로 아그네스티가 메가폰을 잡는 이 영화는 3월14일부터 미국 시카고에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4)거문도의 역사와 삶

    ●英 침략행각 고스란히… ‘포트 해밀턴’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해군 함정과 상선이 거문도에 드나들었고,1885년부터 1887년까지는 해군이 기지를 두었다. 그 동안과 그 후 몇 해 동안 해군 사병과 해병대원 10명이 이 섬과 근처 해역에서 사망하여 섬에 묻혔다.1886년에 사망한 2명과 1903년에 사망한 1명의 해군 병사의 기록은 비문에 새겨져 있으나 나머지의 묘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병기한 거문도 영국군 묘지에 가면 ‘주한 영국대사관, 한·영협회, 영국부인회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이 패를 세웠다.’는 동판이 세워져 있다. 묘지의 주인공에만 관심을 갖는 위 기록으로 보면 워낙 표현이 온건하여 영국군이 잠시 나들이라도 나왔다 간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거문도 무단점령은 두 말할 것 없이 제국주의적 침략 행각이었다. 거문도는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에 있는 섬으로 대한해협과 대마해협의 문호에 해당한다. 영국은 일찍이 거문도를 주목,1845년에 사마랑을 보내 탐사를 한 뒤 해밀턴항으로 명명했다. 서구열강은 이곳이 동북아의 군함과 무역선 중간기착지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1866년 미국의 아시아함대 슈펠트 제독도 5일간의 정밀탐사 끝에 ‘해군기지로 손색이 없다.’고 결론내렸다.1878년에 이곳을 다시 찾은 영국 실비아호 선장 존은 아예 ‘영국이 이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응이란 관점에서 무단점령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해석상의 명분일 뿐이다.35세에 외무차관,39세에 인도 총독, 후일 옥스퍼드대학 총장이 된 커즌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에 관해,“블라디보스토크나 나가사키 사이에서 함부로 차는 축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거문도 점령은 동아시아에서의 거점확보가 핵심 의도였다.1885년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군기지화하면서 22개월간 장기 점령한다. 김윤식 등 조선정부의 요인들은 보고를 받고도 섬의 위치조차 몰라 강화도 앞의 주문도와 착각하기도 했다. 조선정부의 무능이 이 정도였다. ●섬 3개 사이 만 숨어있어 군항에 딱 이 엄청난 국제적 사건을 이해하려면 한번쯤은 이곳에 들러봐야 한다. 거문도엘 가다 보면 뱃길을 따라 초도, 손죽도 등이 펼쳐져 이곳이 다도해임을 누구나 알게 된다. 동·서도가 삼산교라는 교각으로 연결되며, 그 가운데에 고도(현재의 거문리)가 자리해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등대로 가다 보면 3개의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만이 요새처럼 숨어 있어 군항으로는 그만인 곳이다. 초대형 선박의 입·출항은 어렵지만 중간 연락항으로는 그만이다. 영국이 욕심 낸 이유를 알 만하다. 제국주의의 살아 있는 전시장과도 같은 섬 거문도. 영국군 묘역 바로 아래 바닷가에는 중국과 통신하던 해저 케이블이 남아 있다. 당시만 해도 전선(電線)은 ‘제국주의 침탈의 동맥’이었으니, 이는 본국과 교통하며 우리나라를 삼키려 한 야욕의 증거이기도 하다. 집단취락의 흔적인 일본식 여관, 소화13년(1938)에 건립한 거문항 확충비, 삼도(三島)신사터 등 식민의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야마구치(山口縣)현의 기무라 추다로(木村忠太郞)가 무인도를 개척하여 거문리를 조성한 까닭에 왜인들 사이에서는 더러 ‘목촌(木村)의 거문도’라거나 ‘왜도(倭島)’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왜인 후손들이 일본에서 ‘거문도회’를 조직, 이따금 이곳을 찾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한다니 그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삼치와 고등어, 갈치잡이가 주업이다. 일본인도 예전에 이곳에서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그 고등어가 이곳에 ‘거문도 파시’를 열었다.5월말에 시작,10월까지 파시가 이어졌는데, 이 전통은 일제시대부터 76년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60∼70년대에는 겨울 동안에 삼치파시도 이어 열렸다. 고등어와 삼치가 한창 들던 60∼70년대는 거문도의 전성시대였다. ●60~70년대엔 고등어·삼치 많이 잡혀 이곳에서 어획된 삼치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한창 삼치가 들 때는 배 한 척이 출어해 보통 2∼3t, 많게는 6t까지 잡아 올리기도 했다. 경남 통영이나 삼천포 등지에서 200여척의 배들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17세부터 어업에 종사해온 정복래(81)씨는 ‘파시평(波市坪)’이란 역사적 용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 말뜻을 ‘온갖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곳에서 동·서도를 잇는 삼선교까지 이런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과 비단, 신발가게에 강진 칠량에서는 옹기배까지 찾아들어 고기와 물물교환을 했다. 거나한 술판에 싸움 잘 날이 없었던 때도 이 무렵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 유곽이 들어차 포구에 창녀들이 진을 쳤다. 당시 거문리에는 우물이 12곳이나 있어 수백 척의 배들이 몰려들어도 식수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영국군이나 일본인이 동·서도를 마다하고 굳이 거문리로 몰려든 것도 풍부한 식수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거문도 사람들은 고등어보다 삼치를 더 가깝게 기억한다. 고등어 잡이가 경상도 선망배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선망배들은 밤에 작업한 뒤 낮에 잠깐 항구에 들러 물만 얻어 싣고 떠나 주민생활과 깊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고등어는 모두 부산에 모였다. 그렇지만 폭풍이라도 불라치면 이곳에는 인근의 고깃배들이 몰려들어 며칠씩 묵어가는 바람에 골목길이 흡사 장터 같았다. 한 척에 수십명이 타던 시절, 어선 수십 척만 들이밀어도 그들이 푸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거문도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더 이상 어로선단이 몰려들지도 않았고, 많은 거문도 사람들이 원해나 원양어선을 타고 외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로지 갈치잡이만 성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말린 갈치나 생갈치 위판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여기서 솟구친 의문 하나. 왜 60∼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어획고를 올리던 거문도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되었을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대일 청구권자금에 의한 노후 선박과 그물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다리며 잡던 어업’에서 ‘쫓아가 잡는 어업’으로 변신, 단기간에 엄청난 어획량을 올렸으나 그만큼 어자원은 급감했다. 여수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김진영 박사의 말을 듣자.“삼치나 고등어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외해종(外海種)이다. 서식 공간은 정해져 있고 먹이도 제한돼 있어 이들 어류는 자기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고등어를 우리는 연간 20만∼40만t씩 잡아 올린다. 엄청난 양이다. 치어기의 생존 조건이 좋으면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하지만 어류 번성의 주기는 2∼3년이다. 확실히 우리의 ‘어획 강도’가 너무 높다. 샅샅이 뒤져 씨를 말리는 ‘완전어획’으로 연안을 찾아든 외해종 치어까지 모조리 잡아버려 결국 어자원 고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은 ‘느림의 철학’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한 마리라도 더 잡아들이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을 터이니 작은 놈들까지 싹쓸이할 것이 뻔한 이치 아닌가. 자원이 고갈되면서 우리는 고작해야 1년생 고등어를 사먹고 있으니,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말한 바 ‘소년어’를 잡아먹고 사는 격이다. ●또 하나의 명물, 100년된 등대 거문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거문도 등대이다. 백도의 아름다운 절경도 소중하지만 이 섬의 역사를 알려면 이 등대를 찾는 게 훨씬 정확하다.1905년에 세워진 등대이니 내년이면 100년. 열강이 각축하던 100년 전에 등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거문도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등대로 가는 바닷가 벼랑길은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동백나무 터널을 수백m나 통과해야 한다. 등대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이만한 숲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한준봉(56) 소장은 “등탑 자체가 문화유산 감인 데다가 숲조차 뛰어나서 연간 1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해양수산부에서 거액을 들여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등대지기의 삶은 고달프다. 한 소장도 평생 오동도와 백야도, 소리도, 거문도 등 등대만을 돌아다녔다. 그는 아내의 출산 경험담도 털어놨다. 병원없는 절해고도에서 애를 낳는 바람에 자신이 직접 탯줄을 자르고 뒤처리까지 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앓기라도 할라치면 장장 6∼7시간이나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가야 했다. 이렇듯 등대지기의 애환은 끝이 없다. 이곳에는 한 소장 말고도 김계인(54)·한현성(29)씨 등 2명의 등대원 ‘홀아비’들이 더 있다. 이곳에 초임 발령을 받은 한씨는 총각이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묻자 “등대에서 살겠다는 아가씨만 있다면….”이라며 말꼬리를 감춘다. 농촌 총각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남들 모르는 ‘등대총각’은 어쩌랴. 혹시라도 동백꽃 피고 지는 등대섬에서 살 뜻이 있다면 누구든 나서 보시라. 마침 관사도 비어 있어 새 삶에 운이 트이기도 할 것이니. 단, 등대의 삶이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은 알아둘 것. 영국군 묘지, 등대 100년, 일본인 어촌은 언뜻 무관한 항목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거문도 위쪽 손죽도에는 왜구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이대원 장군의 사당이 있으니 이 역시 외세와 관련된 역사의 일부이다. 구한말 거문도의 지식인이었던 귤은(橘隱)은 거문항의 만(灣)을 삼호(三湖)라 명명했다.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뜻인데, 실제로 거문도는 역사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이청준·김영남·김선두 지음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이청준·김영남·김선두 지음

    고향은 그리움이다.마치 줄을 끊고 달아난 연처럼 고향길은 끊어지고 정답던 이웃도 떠났지만,고향을 그리는 마음만은 막을 수 없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원형적 심성이기 때문이다.모든 게 정신없이 변해 가는 이 시대,고향은 우리에게 어떤 얼굴로 남아 있을까.소설가 이청준(65),시인 김영남(47),화가 김선두(46).전라남도 장흥이 고향인 세 사람이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학고재 펴냄)라는 색다른 제목의 책을 출간,자신들만의 고향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장흥은 특별한 관광지도 유적지도 아닌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다.하지만 그곳엔 구수하고 질박한 사투리가 있고,하루의 노동을 이끌어가는 육자배기 가락이 있다.발이 푹푹 빠지는 펄 같은 정(情)이 넘치고,서화와 예술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이청준에게 고향은 아픈 상처다.아버지와 손위 형제들을 일찍 여의고 가세마저 기울어 도망치듯 떠난 고향이니 어찌 아픔이 없으랴.쉬이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고향.그러나 마침내 다시 찾은 고향은 그에게 무엇 하나 더하고 덜할 것 없는 ‘관용의 성지’로 다가왔다.붉은 동백꽃이 선혈 낭자하게 울어대는 고향은 그에게 새로운 창작의 샘이다.이청준은 자신이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라는 동화를 쓴 것은 고향의 꽃전설과 유년 시절 몸에 배인 ‘동화 정서’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청준의 고향 진목리는 너른 바다를 끼고 있는 반면 김영남 시인의 고향 분토리 마을은 산과 산 사이에 장대를 걸치면 하나로 이어질 것 같은 첩첩산중이다.이런 풍토에서 김영남의 상상력은 하늘로 뻗어갔다.“산 너머 저 아득한 곳 하얀 두 줄을/멧비둘기 날아간 긴 여운으로 문질러/이 세상에 없는 그리운 음악 듣겠네”(‘가을 하늘에 해금이 있다’)라는 시 구절은 깊은 산골을 고향으로 둔 그에게 무엇보다 잘 어울린다. 이청준이나 김영남과 달리 김선두에겐 아버지의 모습이 깊이 각인돼 있다.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화가가 됐다.어린 김선두에게 크레파스를 쥐어주던 아버지.중학교 무렵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그는 바다와 산의 축복 속에 자랐다.관산 평촌의 고향 마을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아버지와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긴 그는 호를 이송(二松)이라고 지었다.영화 ‘취화선’에서 주연배우의 대역으로 장승업의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김선두의 수묵채색화에서는 구성진 남도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고향! 그것은 흠모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춘천이 낳은 소설가 김유정

    [문학이 머문 풍경]춘천이 낳은 소설가 김유정

    “ …‘이 자식아,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이 대가릴 까놀 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소설가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에서 배참봉댁 마름으로 나오는 김봉필이 데릴사위와 욕지거리를 하며 드잡이하는 장면이다.김유정이 한들 주막에서 술 한잔 걸치고 금병산 고개를 넘어오다 목격한 장인과 사위의 싸움 장면을 고스란히 작품속에 묘사해 놓았다. 김유정의 소설 대부분은 이렇게 작가가 태어났던 마을속을 배경으로 구상되었고,실제 작품속의 소재와 등장인물들이 실존했던 인물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시루를 닮았다고 붙여진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작품무대이고 산실이었던 셈이다.이처럼 김유정 소설속에 등장하던 장면 하나하나가 작가가 태어난 강원도 춘천시 증리 금병산 일대의 실레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작가가 외가댁이 있던 학곡리까지 걸어서 넘나들던 금병산 자락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작품 ‘동백꽃’의 배경임을 알린다.이 지역 동백꽃은 남쪽지방의 빨간 동백꽃이 아닌 노란색의 생강나무꽃으로 스칠 때마다 작품속에서처럼 알싸한 향기가 그득하다. 소설 ‘만무방’에서 막되어 먹은 만무방들과 응칠이 화투를 치던 노름터도 고인돌 모양으로 남아 있다. “…응칠이는 공동묘지의 첫고개를 넘었다.(중략)…딸기 가시에 종아리는 따갑고 엉금엉금 기어서 바위를 끼고 감돈다.”는 작품속의 노름터 가는 길섶엔 지금도 산딸기가 무성해 유월쯤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작품세계를 흠뻑 맛볼 수 있게 한다. 김유정을 처음 소설가로 데뷔시킨 ‘산골나그네’에서 나그네 들병이가 덕돌이의 새옷을 훔쳐 남편에게 입혀 도망가던 물레방아터가 팔미리에 남아 있다.실제로 작가는 팔미천에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자주 들르던 덕돌네주막에서 덕돌 어멈한테 많은 이야기를 듣고 도망친 들병이 이야기를 소설속에 등장시킨다. 작품 ‘산골’에 등장하는 사금을 채취하던 곳과 ‘봄·봄’과 ‘금따는 콩밭’에서 화전을 일구던 밭이 지금도 금병산 자락에 옹기종기 흔적으로 남아 있다.이밖에 ‘봄·봄’의 배경장소인 김봉필의 집과 실레마을 주막터,김유정이 서울에서 귀향한 뒤 배우지 못한 고향 청소년들을 위해 야학을 했던 ‘금병의숙’등이 남아 있다. 김유정은 29살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숨지기 전까지 불과 4년동안 독특한 언어감각으로 근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0여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다.1930년대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레마을 주민 유연호(70) 할아버지는 “김유정은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였고 낙향한 뒤에도 술 잘 먹고 한량끼 넘치던 청년이었다.”며 “말년에는 폐병으로 누님집에 머물며 총각 귀신을 면한다고 이름모를 처자와 혼례까지 올렸지만 합방도 못하고 3일만에 헤어진 뒤 숨졌다.”고 선배분들의 말을 빌려 회고했다. 지금은 신동면 증3리 김유정 생가터에 김유정이 남긴 작품과 흔적들을 모아 놓은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 살아 숨쉬는 작품속의 배경을 따라 보려는 학생들과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연일 끊이질 않는다. 해마다 3월 29일 추모행사를 시작으로 문학제와 문학강연·문학세미나가 매월 열리고,한여름에는 김유정 청소년 문학캠프,늦가을에는 생가지붕 이엉엮어 올리기 현장체험,매주 월요일 밤에는 금병의숙에서 문학교실이 열려 문학인들을 즐겁게 한다. 작가이면서 김유정문학촌 사무장을 맡고 있는 최종남(58)씨는 “작품속에 등장하는 떡메치기,닭싸움,전통결혼식,주막집 운영 등의 체험행사를 열어 독자들이 작가에게 더 친근하고 가깝게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어수룩하고 꾸밀꾸밀 일만 하는 그들을 보면 딴세상을 보는 듯하다.” 김유정이 남긴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처럼 작가는 그렇게 고향을 사랑하고 보듬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5) 바다에 열린 ‘고속도로’ 격렬비열도

    격렬비열도에 가면 왠지 ‘격렬’해질 것만 같다.신진도 외항에서 ‘충남202호’에 몸을 싣고 격렬비열도를 향해 2시간쯤 난바다로 나서자 조용하던 바다가 ‘격렬’하게 용틀임한다.멀고 험난한 바닷길이다.다도해에는 못 미치지만,태안반도 서쪽으로도 자그마한 섬들이 열병식을 치르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자리를 잡고 있다.안흥항에서 신진대교를 건너면 연육교로 이제는 뭍이 된 신진도에 다다른다.신진도와 마도도 연륙되었다.신진도 외항에서 출발하면 가의도 정족도 옹도 궁시도 하사도 난도 우배도 석도를 거쳐 동격렬비열도와 서격렬비열도로 나뉘어 선 군도(群島)에 닿는다.여기서 좀더 서진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정기 연락선이 없어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섬들.‘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한 유행가가 읊조려지는 그런 섬들이다.가의도를 제외하면 살림집도 없다.옹도에 등대지기 몇 사람이 살고 있을 뿐이다.궁시도도 원래는 민가와 초등학교 분교까지 설치된 제법 번다한 섬이었으나 권위주의 시절,대간첩작전에 필요하다며 주민들을 다른 섬으로 소개시켜 빈 섬이 되었다.조선시대 왜구침략 때문에 빚어진 공도(空島)정책을 20세기에 들어와 다시 대하는 감회가 새삼 씁쓸하다. ●권위주의 시절 空島정책으로 주민 소개 온통 바위로 이뤄진 이들 ‘불모의 섬들’이지만 국제 해양교류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하다.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바다는 ‘국제 하이웨이’였으며,섬들은 휴게소나 나들목 구실을 했다.예나 지금이나 바닷길이 문명교류의 고속도로였던 셈.태안 마애삼존불이나 서산 마애삼존불이 근역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으로부터 바닷길을 통한 불교문화의 전래를 생각하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중국 산둥반도와 이곳 태안반도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그보다 짧은 해양 항로는 없다.국제 통신망인 해저광케이블도 안흥 위의 천리포쯤에서 시작하여 격려비열도 북단을 거쳐 산둥반도 밑으로 간다.남양만의 당항성도 중요했지만 안흥성에도 국제교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중국에서 뱃길을 열어 한참을 달려오자면 드디어 갈매기떼가 날기 시작한다.새가 날기 시작하면 어딘가 섬이 가까워졌다는 뜻.먼 수평선 위에 소금 몇 알을 뿌려놓은 듯 격렬비열도가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험한 뱃길에 지친 사람들에게 불현듯 나타나는 이 섬이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격렬비열도에서 직진하면 안흥항에 닿으며,그 사이에 흩어진 섬들이 ‘뭍으로 가는 길’의 길라잡이들이다.이걸 알고도 누가 무인도를 ‘쓸모없는 섬’이라고 폄하할 수 있으랴. 옹도에 배를 들이밀었다.선착장 공사가 한창인데,아직까지는 모선에서 보트를 내려야만 상륙할 수 있다.거센 파도가 일렁거려 보트쯤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함빡 물벼락을 뒤집어 쓰고서야 땅을 디딜 수 있었다.걱정이 태산 같아 말도 안 나오는데 경력이 20년이라는 항해사는 ‘이건 파도도 아니다.’라며 태연자약하다.집채만한 파도들이 줄지어 달려들며 보트를 삼킬 듯 물어뜯는다.필자 같은 문약한 책상물림은 가히 혼비백산이다.옷가지는 물론 카메라백과 기록노트가 온통 바닷물에 젖어 엉망이다.그러면서도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이 반갑고 경이로웠다. 들여다보면 등대지기의 삶은 ‘낭만’과 한참 떨어져 있다.많은 문인들이 등대를 소재로 낭만의 꽃을 피우고 있지만 정작 등대는 거센 파도와 싸우는 처절한 싸움의 현장이기도 하다.옹도등대,정확한 명칭은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옹도항로표지관리소.1907년에 설치됐으니,근대 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을 이 등대가 100년이 가깝게 거친 바닷길에 불을 밝혀온 셈이다. 이곳 박선우 소장과 두 명의 직원은 보름 간격으로 섬과 육지를 오가며 교대로 근무한다.어찌 생각하면 ‘팔자 좋게’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그만한 고역이 없다.노도와 풍랑으로 기약없이 섬에 갇히기 예사다.생지옥이란 이를 두고 말함이렷다.그러한즉 등대의 낭만 운운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옹도등대지기는 세 가지 신호를 보낸다.통상적으로 불을 밝히는 광파표지,안개가 낄 때의 음파경고인 무(霧)신호,그리고 레이더를 발사하는 전파표시가 그것.바다가 해무에 젖어들면 10m 거리도 보이지 않는다.근대 이전의 국제 선박들이 어떻게 암초 많은 이곳을 통과했을지 되짚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불이나 밝힐 뿐’이라는 식의 등대에 관한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다.인공위성의 전파정보를 받아 하늘과 바다를 하나로 잇는 이른바 DGPS 시스템을 활용하는 전천후 첨단 시스템을 활용한다.옹도등대는 대전 위성항법중앙사무소와 연계하며,여기에다 서산기상대의 위탁기상까지 떠맡고 있으니,뉴스에서 듣는 ‘서해안에는 풍랑이 몇 미터고,안개는 어떻고‘하는 정보도 알고 보면 옹도등대지기 같은 바다지킴이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등대의 임무를 강조했지만,그래도 등대의 멋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흰 배롱나무의 꽃무리가 은은한 향기를 뿜는 바다 저편으로 외항선 한 척이 지나간다.인천항이나 대산항,평택항으로 가는 배이리라.또 있다.그 등대에 다다르는 오르막 가파른 길을 빼곡하게 뒤덮은 동백나무 군락은 이곳이 남방계 식물의 영향권임을 말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육지에서는 얼어 죽고 마는 동백나무가 경기도의 울도에서 군락을 이룬 것을 본 적이 있다.북녘 자료를 보니,평안도 철산앞바다 대화도에도 군락이 무성하단다.구로시오 난류의 영향으로 해양성 기후가 형성돼 한반도의 바다는 육지와 전혀 다른 식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족도에는 가마우지떼가 모여 산다.자그마한 난도는 온통 괭이갈매기 천지다.섬 곳곳이 하얀 갈매기똥으로 덮여 있다.난도 정상에도 동백나무 군락이 우거져서 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동백꽃의 자태로 섬 생활의 고독함을 물들이고 있다. ●새들이 만든 유채꽃밭 봄바다의 압권 역시나 격렬비열도와 궁시도의 압권은 봄의 유채꽃.제주도의 유채꽃이 푸른 바다와 겹쳐 환상적 풍경을 자아내 뭇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면,이곳 유채꽃은 은자처럼 숨어 있어 간혹 발걸음을 하는 어부나 낚시꾼들만이 즐길 뿐이다.자연적으로 피었을 리는 만무하고,그렇다고 누가 철없이 절해절벽에 유채씨를 뿌렸을 리도 없으니,모르긴 하되 아마 새들의 작품이리라.배설된 유채꽃 씨앗에서 움튼 새싹이 해마다 번창하며 해중화(海中花)의 향연을 마련하였으리라.건너편 꽃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꽃박람회에 덧붙여 격렬비열도의 유채꽃밭은 그 자체로 가히 봄바다의 압권이다. 그러나 바다는 이런 따위의 아름다움이나 낭만과 무관하게 역시나 외롭고 험난하다.잠시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인근에서 가장 해류를 거세게 받는 곳이 안면 외해(外海) 안흥량이다.일명 관장목이라고도 부르는데,강화도 손돌목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물살이 드센 곳으로 손꼽힌다. 예전,격렬비열도를 거쳐서 안흥으로 들어오던 중국 배들이 이곳에서 숱하게 수장됐다.지금도 안흥의 어부들 그물에는 심심찮게 청자 따위가 걸려 올라오곤 한다.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된 배들의 흔적이리라.이런 탓일까.가의도에 가면 아예 ‘중국에서 가의라는 사람이 귀양와 그 때부터 가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하기도 한다.실제로 태안군 남면의 가씨들이 얼마 전까지 가의도에 들어와 시향(時享)을 지냈다고 하니,가의도가 가씨의 본향인 셈이다.가의도의 오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중국인들이 베어낸 둥치에서 새롭게 자라난 새끼라는 전설 등은 중국과 안흥의 연계설을 증언하고 있다.안흥이나 가의도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중국 다롄까지 가서 밀무역에 종사했다고 전한다.바다를 길삼아 교류하고 교역한 역사가 상상보다 활발했다는 증거다. ●명나라 사신 왕래때 표지로 삼던 후망봉 신진도 외항으로 들어서자면 왼쪽에 마도 후망봉이 홀로 솟아 있는데,고려시대에 명나라 사신이 왕래할 때 표지로 삼던 곳이다.산 뒤에는 능허대(凌虛臺)가 있어 바다를 관해(觀海)하기에 그만이다.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인 국방과학연구소 내에 안파사(安波寺) 절터가 있으니,풀자면 ‘파도를 잠재우는 절’이라는 뜻이다.예전 뱃사람들은 먼 항해에 앞서 이곳에서 공양을 올린 뒤 뱃길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들리는 얘기로는 이성계가 안흥성을 자주 드나드는 명나라 사신들에게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다는 설도 있다.설마 ‘잘 보이려고’ 성을 쌓았으랴만 높이 3∼4m,길이 1㎞가 넘는 석성을 쌓느라 10여년씩 부역에 시달렸을 민중의 고초가 손에 잡힌다.동서남북으로 돌문을 달고,그 안에 300채쯤 되는 ‘호화주택’을 지었던 안흥성은 명나라에 널리 알려져 ‘조선에 가거든 안흥성을 보고 오라.’는 말까지 생겼다.한때 영화로웠던 안흥성의 국제적 명성을 가늠해 봄직하다. 20여년 전,나룻배를 타고 신진도로 건너갔던 기억이 새롭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바다,마도는 물안개에 젖어 잠들어 있었다.그런 섬에 다리가 놓이고 1종 항구가 조성돼 지금은 횟집이 즐비하다.태안반도 해양관광 1번지로 손색이 없다. 차를 몰아 안흥성에 올랐다.수백 채의 집들은 동학혁명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성벽만 남아 있다.안흥성문 코앞까지 배가 들어와 곧바로 사신과 무역상들이 성내로 들어왔다고 하는데,지금은 물길과 멀어져 있다.새우 양식장으로 쓰던 앞바다는 조만간 골프장으로 바뀐단다.국제교류가 활발하던 바다에 골프공이 난비하는 풍경을 생각하니 왠지 낯설고 거북하다. 여승들이 주석하는 안흥성 태국사에서 바라보는 안흥량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격렬비열도의 그 모진 파도가 어디 갔을까 싶게 숨죽인 바다가 졸고 있다.빗방울 긋는 소리,물안개에 에워싸인 섬이 열 가지,백 가지로 변신하는 바다의 얼굴을 웅변해 준다.바다는 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곳이다.어찌 인간의 힘으로 바다가 가진 천의 얼굴을 이해할 수 있으랴. 관해의 으뜸 절창이 연출되는 안흥성에 오르니 그 옛날 국제 선단이 바닷길을 내달려 안흥성에 닻을 내리는 환상에 빠져들고 만다.무심결에 지나치는 무인도들조차도 이같이 역사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섬이야말로 예전부터 국제 고속도로의 네트워크 아니겠는가.
  • 올 여름 패션가 ‘아기자기 소품’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5월이 되면 한번쯤은 이런 생각이 든다.10원억을 가진 부자보다도,늘씬날씬 쭉쭉빵빵한 몸매를 가진 미남 미녀보다도,뚜껑 열린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탄 사람보다도 부러운 아이들. 요즘 패션가는 늘 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마치 장난감 나라에 온 듯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소품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도 가볍고 독특한 디자인에 달콤한 컬러를 섞은 소품들을 속속 출시했다.어릴 때 학교앞 문방구에서 뽑았던 200원짜리 플라스틱 귀고리나 반지를 찾아 걸어도 패션 리더로 칭송받지 않을까. ●‘키치 패션’의 고급스러운 해석 속된 것,가짜,원래의 것에서 벗어난 등의 의미를 가진 ‘키치(kitsch)’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지금부터 130여년 전 독일.당시에는 ‘고결한 어떤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였지만 요즘은 일상적인 예술,값은 싸지만 감상적이고 귀여운 것으로 승화돼 쓰이고 있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키치적인 소품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으로 떠오르고 있다.이색적인 디자인을 많이 내놓은 보세 로드숍은 물론이고,유명 브랜드에서도 키치 스타일 소품이 많다.의상은 실용적인 것을 내놓지만 소품에는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가득 담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샤넬의 2004년 봄·여름 컬렉션은 유난히 독창적이다.가죽을 엮은 퀼트,체인 끈,카멜리아(동백꽃) 패턴과 같이 꾸준히 샤넬의 상징으로 쓰였던 장식은 기본.카세트 테이프나 레코드판 모양을 본뜬 백,목걸이,귀고리 등 뮤직(musique)을 테마로 한 아이템에는 장난끼를 드러냈다.에나멜 소가죽을 소재로 한 45rpm 핸드백은 젊은 감각의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샤넬측은 예상하고 있다. ●달콤한 캔디향이 느껴져 올초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토즈의 캔디백은 가방 끝을 끈으로 조여 사탕 모양의 장식을 한 아이템.송아지 가죽 제품은 부드럽고,새틴으로 만든 것은 세련돼 보인다.블루 핫핑크 화이트 등 다양한 색상으로 신선함과 화사함을 안겨준다. 시계브랜드 스와치의 올 봄·여름 컬렉션의 6가지 키워드 중 하나는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다.시계줄에 5살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그림,상큼한 오렌지와 레몬색상의 꽃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한없이 명랑한 패션을 만들어 낸다.미국의 가장 트렌디한 잡화 브랜드 나인웨스트의 ‘드웨인’은 발등의 리본 장식을 원하는 곳에 뗐다 붙였다 자유자제로 연출이 가능하다.또 이탈리아 슈즈 브랜드 ‘비아 스피가’는 발등의 큼직한 리본과 반짝이는 에나멜 소재로 동화 속 주인공이 신고 나올 듯 사랑스러운 ‘캔디걸’을 선보였다. ●장난감 나라로 놀러오세요 몸은 20,30대지만 마음은 10대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화장품도 많다. LG생활건강이 지난달 선보인 색조화장품 ‘헤르시나 떼따떼드’가 대표적.‘재미있고 신나는 메이크업’을 컨셉트로 장난감 레고같은 블록 용기를 사용해 립스틱,아이섀도,파우더를 다양한 모형으로 조합할 수 있도록 했다. 머리를 하나로 쫑긋 묶은 포니 테일스타일을 한 소녀의 얼굴로 만든 향수 케이스나 플라스틱 반지모양의 립글로스를 내놓은 ‘안나수이’는 전통의 아기자기한 화장품.압구정동에 단독매장이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 ‘뿌빠(PUPA)’는 작고 정교해 10대와 키덜트(kidult)족에게 사랑받는다. 스와치그룹코리아의 이영숙씨는 “어른이 되려고 안달하는 10대들과 달리 딱딱한 사회생활에 찌든 20·30대는 어리고 풋풋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로 키덜트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며 “키치적인,또는 키덜트적인 아이템이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소비주체로 자리잡고 있는 이들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차이야기] 동백꽃차-피 맑아지고 멍든것 풀어줘요

    매서운 바람에 치맛자락 부풀리듯 피어나는 동백꽃.흔히 겨울에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북 고창의 선운사 뒷산에서는 4월까지도 한창이다. 시들지 않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다소 뒤늦게 찾아도 우리를 반겨주는 동백.‘산에서 나는 차꽃’이라는 의미로 산다화(山茶花)라고 불리는 만큼 향과 맛 그리고 차색이 여느 꽃차와 달리 뛰어나다. 한방에서 동백은 피를 맑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출혈을 그치게 하고 타박상이나 멍든 것을 풀어준다.또 이뇨 작용이 있어 우리 몸의 불필요한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역할도 한다. 꽃을 송이째 증기에 살짝 찐다.큰 그릇에 한 송이를 넣어 90℃ 이상의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낸 다음 작은 잔에 덜어 마신다. 나길회기자 ■ 도움말 곽노규 강남 동일한의원 원장
  • 동백의 천국 거제 지심도

    꿈속에서 그리던 님이 오신다는 소식이라도 들었나 보다.오솔길 바닥엔 마치 누군가 새벽 바람에 나와 뿌려놓은 듯 이슬도 채 마르지 않은 동백 꽃송이들이 촘촘하다. 지심도(只心島).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심(心)자를 닮았다는 거제의 작은 섬이다.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자리잡은 이 섬을 사람들은 동백섬이라고 부른다.10만평 남짓한 섬을 동백숲이 가득 덮고 있기 때문이다.거제의 섬하면 대부분의 외지인들은 화려하게 가꾼 외도를 가장 먼저 꼽지만,정작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섬 지심도를 아는 이는 드물다.폭풍주의보가 떨어져 하룻밤을 기다린 끝에 어렵게 지심도행 배에 올랐다. “동백이 좋다고 해 왔어요.지난해 태풍 때문에 숲이 많이 망가졌다고 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대전에 살고 있다는 최민자(38)씨는 자연 그대로의 섬이란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했다.50여명 정원의 배에 탄 손님은 총 5명.이중 2명의 남자는 바다낚시를 하러 온 듯 낚싯대를 메고 있다.지심도는 바다낚시 명소로 알려져 있다. 20여분 만에 닿은 지심도 선착장에선 태풍으로 훼손된 시설 보수가 한창이다.선착장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 양쪽엔 동백숲이 가득 들어차 있다.발에 차이는 게 동백꽃이다. 지심도 동백은 12월부터 피기 시작해 4월 말에 모두 진다.언제라도 꽃을 볼 수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자태는 이맘때,3월에 볼 수 있다.한겨울엔 꽃망울을 잘 터뜨리지 않는데,이는 꽃이 얼어버리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동백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섬 일주에 나섰다.마을이라고 해야 총 12가구뿐이다.그나마 선착장 입구에 대여섯가구,나머지는 섬 동쪽인 세끝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동백숲이 이어지는 오솔길은 컴컴하다.팔뚝만한 것부터 아름드리까지 수십년에서 수백년 나이의 동백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중간중간 숲이 끊어지며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 봄기운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온몸에 스며든다. 동백숲이 없는 편평한 곳엔 유자나무가 많다.섬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가꾸는 과수원이다.하지만 지난해 열매가 열렸다가 미처 자라기도 전에 얼어버린 것이 꼭 말라버린 탱자 같다. 지심도엔 동백뿐만 아니라 후박나무,소나무,팔손이풍란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이 어우러져 산다.그중 70%는 동백숲이 차지하고 있다.또 드문드문 울창한 대숲이 자라고 있어 산책길이 한층 호젓하다. 섬 가장자리는 깎아지른 절벽이 둘러싸고 있다.오솔길 중간중간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이 몇 군데 나오는데,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절벽은 마치 병풍처럼 섬을 두르고 있다.아찔한 벼랑 아래로 파도가 철썩거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풍광이 장관이다.한겨울 동안 검은 빛을 내던 물색이 이젠 연한 청색의 완연한 봄빛깔을 띤다. 갯바위에선 태공 두명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까이 가보니 조금전 배에서 보았던 이들이다.아직 한 마리도 못 잡은 모양이다. “쉬러 왔습니다.물고기는 그냥 덤이고요.경치가 좋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가슴이 시원해요.” 경기 일산 신도시에서 안경점을 운영한다는 이민성씨는 물고기엔 관심 없다는 듯 평평한 갯바위에 비스듬히 누워 장난만 친다.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적하면서도 멋진 바다풍경에 취해 일어나기가 싫다. 지심도는 벼랑 아래 모든 곳이 낚시 포인트로 알려질 정도로 고기가 잘 낚인다고 한다.이날은 파도가 세 입질이 영 시원치 않은 것 같다.요즘 잘 잡히는 물고기는 망상어와 도다리.그러고 보니 아까 선착장에서 몇몇 낚시꾼이 그 자리에서 잡은 도다리로 회를 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 기억난다. 섬을 돌다보니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콘크리트 시설들이 눈에 띈다.포를 설치했던 진지,탄약고,서치라이트 터 등이 비교적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일본군은 1935년 섬에 살고 있던 10여가구를 강제로 쫓아내고 군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지심도는 거제도 남해 동남쪽 끝 섬으로,대마도 12마일 서쪽 공해상에 위치해 있다.따라서 선박들이 오가는 것을 훤히 볼 수 있어 예전부터 전략상 중요한 섬이었다고 한다.지금의 주민들은 광복 후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섬을 거의 한바퀴 돌아 세끝마을 가까이 오니 매화나무가 꽃을 활짝 피운 채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밑동이 꽤 굵은 것이 수령이 50년은 족히 넘을 것 같다.대여섯 그루밖에 안 되지만 워낙 나무가 크다 보니 꽃의 화려함이 웬만한 매화밭 못지않다. 지심도는 해안 둘레가 4㎞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다.일주도로를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하고,중간중간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 비경을 구경하면서 돌아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하지만 비단폭처럼 예쁜 절벽 아래 앉게 되면 이같은 시간은 무의미하다.섬 안엔 변변한 식당도 없으니 웬만하면 소풍가는 기분으로 먹을거리를 챙겨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꼭 맛보세요 장승포항 주변에 해물탕과 해물뚝배기집이 많다.해물뚝배기 하면 제주가 유명하지만,이곳 역시 맛과 푸짐함에서 뒤지지 않는다. 여객선터미널 앞에 늘어선 식당중 ‘혜원식당’(055-681-5021)이 찾을 만하다.큼지막한 뚝배기에 해물을 가득 담아 끓여내 온다. 꽃게와 딱새우,홍합,맛조개,바지락 등 10여가지가 들어간다.내용물 하나하나가 큼직큼직해 하나씩 까먹는 맛이 쏠쏠하다.나물과 파전 등 밑반찬도 전라도 지방 못지않게 푸짐하고 맛깔스럽다.해물뚝배기 1인분 1만원,해물탕과 꽃게탕은 냄비 크기에 따라 2만∼3만원. 지심도에서 나올 때 배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선착장 앞에서 싱싱한 해삼,멍게 맛도 보자.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아저씨가 썰어주는 해삼맛이 그만이다.1만원짜리 1접시면 소수 1병 곁들여 둘이서 먹을 만하다. 거제에 가려면 반드시 통영을 지나게 마련.통영 시내에 들르면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우선 통영관광호텔 앞에 멸치요리 전문점인 ‘멸치마을’(645-6729)이 있다.멸치 회무침,멸치밥을 주메뉴로 내놓는다.회무침은 갓 잡은 멸치 살을 발라내 미나리 등 몇가지 야채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요리.매콤새콤한 맛과 입에서 살살 녹는 멸치살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요리의 포인트는 멸치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는 것.이 식당에선 잘 삭힌 사과식초에 고추장과 몇가지 첨가물을 넣어 만든 초장으로 비린내를 말끔히 없앴다.1접시(1만 5000원)면 3∼4인이 먹을 만하다. 멸치밥은 솥에 쌀과 멸치를 넣고 짓는다.밥이 다 되면 잘 저어 대접에 담아 양념간장을 쳐서 비벼먹는다.신기하게도 멸치 비린내 대신 고소한 맛이 나고,멸치 씹히는 맛이 독특하다.1인분 7000원.통영시내엔 이밖에도 굴밥 전문집으로 ‘향토집’(645-4808),‘호동식당’(645-3133)이 유명하다.또 충무김밥을 내는 곳이 많은데,그중 ‘한일김밥’(645-2647)의 김밥 맛이 좋다. ●가는 길 서울에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및 대전∼진주 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차례로 갈아타고 사천IC에서 빠져야 한다.여기까지만 4시간 정도 걸린다.나들목에서 빠지면 우회전해 3번 국도를 타고 10분쯤 가다가 33번,14번 도로로 차례로 갈아타고 통영·거제 방면으로 계속 가야 한다.현재 4차선으로 도로확장 공사가 진행중인데,상당 부분 공사가 끝나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사천IC에서 장승포항까지는 2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장승포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하루 6회 버스가 출발한다.6시간 소요.부산 사상터미널,대전 동부터미널에서도 버스가 있다.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지심도행 배가 떠나는 선착장까지 기본요금에 갈 수 있다.배는 아침 8시,낮 12시30분,오후 4시, 3차례 운행된다.손님이 많으면 증편되기도 한다.배편 문의 017-577-1555. ●숙박 지심도 내 12가구에서 민박이 가능하다.문의 (055)682-2233.거제시내 에드미럴관광호텔(687-3761),거제관광호텔(632-7002),거제유스호스텔(632-7977) 등이 묵을 만하다.온천욕과 찜질을 하고 싶다면 거제시 신현읍 양정리의 거제해수온천(638-3000)을 찾아보자.지하 800m 에서 용출되는 약알칼리성 온천수를 이용한 실내온천과 노천온천 풀장,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가볼 만한 곳 외도와 해금강,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등에도 들러보자.지심도가 사람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섬이라면 외도는 사람 손에 의해 잘 가꾸어진 섬이다.고 이창호씨와 부인이 1976년부터 조성한 해상농원으로,산책을 겸해 다양한 아열대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장승포항이나 구조라 선착장에서 외도~해금강 코스 유람선을 탈 수 있다. 해금강은 ‘바다의 금강산’이란 이름처럼 다양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자바위,부처바위,촛대바위 등 기이한 암석들과,동서남북으로 통하는 해로로 연결된 십자동굴,일출과 월출로 유명한 일월봉 등이 볼 만하다.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17만명의 인민군,중공군 포로를 수용했던 곳에 조성돼 있다.포로 설득관,디오라마관,탱크 전시관 등이 있으며,실감나는 음향과 조형물,홀로그램 등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재현해 놓았다. 글 지심도(거제) 임창용기자 sdragon@˝
  • [서울 탱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무명 가수 조용필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발표 30여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노래방 등에서 40∼50대가 즐겨 부르는 곡이다.트로트 계열의 구슬픈 곡조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한(恨)많은 우리네 정서와 잘 어우러져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특히 노랫말에 부산의 유명 관광지인 해운대 동백섬과 부산 해로(海路)의 관문인 오륙도,부산을 상징하는 갈매기를 담아 부산사람들에게는 더욱 살갑게 다가온다. 남녘 끝자락에서 기지개를 켜며 북상 중인 봄의 화신이 코끝을 간지럽히자,동백섬 산책로에는 봄맞이 나온 행인과 운동복 차림의 주민들이 싱그러운 해풍을 맞으며 여가를 보낸다.길가에는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동백꽃이 수줍은 새색시마냥 다소곳이 고개숙인 채 이들을 반긴다.동백섬에서 바라본 오륙도는 일제의 핍박으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할아버지·아버지들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시대적 상황과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서민들의 기쁨과 슬픔,즐거움과 아픈 흔적을 응집해 표출하고 있다.그래서 그 어떤 장르보다 폭넓은 호소력과 전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산 출신의 작곡가 황선우씨가 작사·작곡하고 조용필이 부른 이 노래는 일본·중국·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에도 전파돼 부산을 알리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원래 이 곡은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연가(戀歌)였다.작곡가 황씨가 젊은 시절 같은 마을에 사는 처녀를 사모했는데,이 처녀가 멀리 시집을 가버렸다.황씨가 그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며 작사·작곡한 노래가 바로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며,그의 첫 작품이었다. 지난 72년 부산의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조용필이 음반을 취입했으나 반응이 신통찮았다.2년여 뒤 부분적으로 개사한 뒤 재취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님 떠난 부산항’은 ‘형제 떠난 부산항’으로 ‘그리운 내 님이여’는 ‘그리운 내 형제여’로 바뀌었다.당시 일본 조총련 동포 성묘단의 모국방문과 노랫말이 잘 맞아떨어져 국민 애창곡 1위로 떠오른 것.재일동포 대부분이 나라잃은 설움을 삼키며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 것을 알고 그들의 귀국을 반기는 취지의 곡으로 바꾼 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됐다. 시민들은 부산을 세계에 널리 알린 황씨와 조씨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94년 5월 해운대해수욕장 입구 호안도로 옆 송림공원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를 세웠다.현역으로 활동 중인 가수의 노래비가 건립되기는 처음이다.노래비는 93년 부산지역 시민단체인 ‘부산을 가꾸는 모임’ 주도로 3000만원의 기금을 모아 제작됐다. 신라대 미술학과 김청정 교수가 제작한 이 노래비는 가로 1m,세로 0.4m,높이 2.6m 크기다.윗부분 청동판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갈매기·오륙도를 형상화했다.아랫부분 대리석에는 가사가 2절까지 새겨졌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동백섬과 오륙도는 한결같지만,주변에 고급 아파트촌과 호텔 등이 들어서 호젓하고 아늑한 정취가 갈수록 사라져 아쉬움을 더해 주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함혜리 특파원의 파리지앵 스타일] 파리 쇼윈도 ‘꽃밭’으로 변신

    파리 패션가가 봄 컬렉션으로 산뜻하게 새 단장했다.커리어우먼들이 즐겨 찾는 생제르맹데프레,명품족들을 유혹하는 생토노레와 몽테뉴,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샹젤리제 등 유명 부티크들이 늘어선 거리의 쇼윈도를 통해 본 올 봄 파리패션의 테마는 단연 ‘꽃’이다. 올 봄 컬렉션에 많이 등장하는 꽃 무늬는 장미,마거리트,라일락,수국,나리,동백 등이다.잔잔한 들꽃 무늬의 여성스러운 원피스와 롱스커트도 눈에 띈다. 프라다와 발렌시아가는 잎이 겹치며 색상이 다채로워진 꽃 무늬의 로맨틱하고 여성미를 강조한 미니 원피스를 선보였다.앤드루 GN은 수국무늬의 짧은 실크 스커트를 물방울 무늬의 짧은 재킷과 조화시켜 발랄함을 돋보이게 했다.샤넬의 숏팬츠 앙상블과 레오나르의 해변용 긴 원피스는 커다란 꽃 무늬로 포인트를 줬다.타라 아르몬은 쇼윈도를 강렬한 핑크 꽃 무늬의 복고풍 스커트와 니트 가디건으로 장식했다. 색상은 핑크,하늘색,옥색 등 밝고 화사한 파스텔톤이 강세다. 의상 뿐 아니라 핸드백,브로치,목걸이,귀걸이 등 장신구에도 꽃 무늬는 필수.구치는 동백꽃을 수 놓은 대나무 손잡이 핸드백을,올드잉글랜드는 밝은 바탕에 봄의 들꽃들이 화려하게 프린트된 숄더백을 선보였다.이탈리아 출신의 보석디자이너 스텔라 카덴테는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장신구 제조업체인 살비아티를 위해 유리 꽃잎을 단 귀걸이와 목걸이를 디자인했다. 이처럼 꽃 무늬가 강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주간 ‘엑스프레스’의 패션칼럼니스트 카트린 말리체프스키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회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화려함과 산뜻함을 갈구하며,이같은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모티브가 꽃 무늬라는 설명이다. lotus@˝
  • [길섶에서] 남쪽에서 온 花信

    “아직 제철은 아니지만 올해도 동백꽃 소식을 전하네….” 남쪽 땅 끝머리에 사는 친구가 조금은 성급한 화신을 전해왔다.내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렸을 그의 거친 숨결이 편지에 묻어온 듯 가깝다.한강이 얼었다는 뉴스가 더 실감나는 삶을 살다 보니 꽃소식이 손에 잡힐 듯 와닿지는 않지만,세월이 오고감을 꼽아보기엔 부족하지 않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열린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거기에 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다네.그러다 그 꽃이 고개를 꺾고 후두둑 떨어지는 날엔 우리네 인생사를 돌아보게 되지.사람도 저리 깔끔하게 한살이를 마칠 수만 있다면….” 꽃 한 송이에서 우주와 인생을 보는 친구가 한없이 부러운 날이다.눈에 보이는 각박한 사회나 암울한 경제가 꽃소식과 멀기만 하기에 더욱 그렇다.서로에게 오물을 뿌리면서 물러가라느니 못 가겠다느니 싸우는 정치인들에 묻고 싶다.최선을 다하다가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날,미련 없이 물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하냐고.눈물처럼 뚝뚝 땅 위에 지는 날,그 고운빛이 절정에 달하는 동백처럼…. 이호준 기자
  • 주말매거진 We/훌쩍 떠나볼까-땅끝

    땅끝선착장(갈두항)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족히 1㎞는 될듯한 가파른 길.잘 정돈돼 있지만 쉼없이 올라가니 제법 숨이 차다.전망대 아래 계단 옆의 예쁘장한 화강암 조각에 새긴 고은 시인의 ‘땅끝’이란 시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지난 한 해.가슴속 뭉쳐있던 응어리 풀어내 땅끝 앞바다에 모두 흘려보내고,희망의 새해를 맞자는 의미가 아닐까. 여명속 땅끝 앞바다는 회색빛이 돈다.멀리 흑일도와 백일도,그 뒤의 동화도,소화도가 어렴풋이 거무스름한 윤곽을 드러낸다.하늘이 서서히 붉어진다.그러나 일출의 장관을 고대하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홍시빛 해는 살짝 얼굴을 내밀기가 무섭게 하늘을 덮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꼭 해가 거꾸로 지는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삼산면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대흥사.고즈넉한 산사를 거닐며 새해의 희망을 구체화해보자.땅끝마을에서 승용차로 30분쯤 걸렸다. 대흥사는 백제 무령왕 14년 신라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본래 대찰은 아니었으나 조선 선조때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를 받은 뒤 사세가 번창해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당시 서산대사는 금강산에서 입적하면서 제자인 사명당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럽혀지지 않을 곳’이라며 해남 대흥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사찰 왼쪽 구역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시작으로,지붕과 건물의 맵씨가 경쾌한 천불전,선조가 서산대사의 공을 기려 사액을 내린 표충사를 둘러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표충사 뒤편 굵직한 감나무에 진홍빛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니 새파란 하늘 한가득 홍시가 박혀 있는 것 같다.새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거리를 남겨놓은 모양이다.산사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감나무에서 눈을 떼니 주장자를 어깨에 걸친 스님 좌상이 앞을 막는다.한국 차에 관한 명저 ‘동다송’(東茶頌)을 쓴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동상이다.선사는 대흥사에서 수행하며 한국차의 정신과 맛을 중흥시켰다. 바다가 가깝고 안개가 자주끼는 대흥사 주변은 좋은 차가 자라기 알맞은 기후 환경을 갖춘 덕택에 다성(茶聖)까지 배출한 한국차의 성지가 됐다. 이곳에서 차 이야기를 하자면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빠질 수 없다.선생이 ‘다산’이란 호를 얻은 것도 해남 바로 옆 동네인 강진땅에서 보낸 귀양살이를 할 때다.그는 도암면 만덕리에 다산초당을 지어 기거하며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혜장 스님(1772∼1881)에게 차를 배우고 호도 받았다.초당에서 다산은 추사 김정희,초의선사와 교우하며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강진군 도암면의 다산초당은 대흥사에서 30분쯤 걸렸다.다산유물관 앞 주차장에서 산 중턱에 자리한 초당까지는 800m 정도. 동백나무와 소나무,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선 길을 15분쯤 걸어 올라가니 단아하고 소박한 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산은 18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초당 왼쪽으로는 제자들의 거처인 서암(西庵)이,오른쪽으로는 다산이 첫 거처로 초막을 짓고 집필에 열중했던 동암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몇걸음을 옮겨 산등성이에 서니 강진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가족이 그리울 때면 다산이 찾던 곳으로,지금은 강진군이 천일각이란 정자를 세워놓았다. 천일각과 동암 사이 오솔길 입구에 ‘백련사 800m’란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다산 선생과 혜장 스님이 교우를 위해 수시로 오가던 길.부지런히 걸으니 10여분 만에 백련사에 닿는다. 대흥사와 달리 자그마한 산사다.제법 큰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여기저기 펼쳐진 공사 때문에 어수선하다.절 아래와 좌우로 동백숲이 울창하다. 백련사 동백숲은 고창 선운사 못지 않은 동백 명소.지난 며칠간 강추위가 이어진 탓인지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백년사는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절 아래 강진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다원’(禪茶苑)이란 찻집이 자리잡고 있다. 작설차나 솔잎차도 내고,다기(茶器)도 판매한다.따사로운 햇살이 유리를 통해 실내로 가득 퍼진다.차탁(茶卓) 앞 방석 위에 정좌하고 앉아 솔잎차를 시켰다. 차와 함께 생감과 떡·강정을 내오는데,출출한 나들이객에게 간식으로 그만이다.찻값은 3000원.은은한 정취의 산사 찻집에서 향긋한 솔향을 마시며 멀리 강진만을 내려본다.새해를 맞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해남·강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어떻게 가나요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번 국도,13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해남 땅끝마을에 닿는다.서울서 승용차로 6시간 정도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나주IC에서 빠져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지나 2번,18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타야 한다. 승용차를 몰고가지 않으면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해남시외버스터미널(061-534-0881)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뒤,일반버스를 타고 땅끝마을이나 대흥사로 가면 된다. 광주에서 땅끝까지 운행되는 버스도 수시로 있다.해남군 문화관광과(061-532-8942),강진군 문화관광과(061-433-4116). ●숙박 땅끝마을에 라메르관광모텔(061-534-8686),비치모텔(061-534-1033),땅끝민박(061-533-6389) 등 여관과 민박이 많다.대흥사 아래에도 기와집 형식의 전통여관인 유선여관(061-534-6005),두륜각(061-535-0080) 등 여관이 꽤 있다. ●달마산과 미황사 시간이 허락된다면 해남 남단의 달마산(489m) 및 그 아래 자리잡은 미황사에 가보자.달마산은 해남군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설악,태백을 지나 두륜산,대둔산을 넘어 내려오다가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르러 잠시 주춤한 뒤 급격한 암릉으로 변화하는데,바로 달마산이다. 이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을 지나 땅끝전망대가 서 있는 갈두산에서 그 기세를 갈무리한다. 병풍처럼 두른 달마산 암릉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사찰이 미황사다.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존 스님이 향도 100명과 함께 그것을 소의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지쳐 멈춘 곳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절로,이 때문에 불교의 남방 유입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절 마당에 서면 고색창연한 절집 뒤로 송곳같은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광이 볼 만하다.미황사~불썬봉 왕복코스가 가장 짧은 코스로 2시간 30분쯤 걸린다. ●해남·강진 맛기행 패키지 해남 땅끝마을∼대흥사∼강진 다산초당∼백련사∼영랑생가∼완도 코스로 짜여진 코스로,해남 용굴해물탕,강진 명동식당의 한정식,완도 산호정의 해물 한정식,목포 호산회관의 갈낙탕 등을 맛볼 수 있다.특급호텔인 목포관광호텔 및 완도 씨사이드호텔에서 묵는 2박3일 코스가 29만원.옛돌여행 (02)-2266-0220. ●꼭 맛보세요 강진은 한정식,해남은 해물탕이 유명하다.우선 강진군 군동면 호계리 강진공설운동장 앞의 ‘청자골 종가집’(061-433-1100)은 품위와 맛을 함께 갖춘 명가로 인정받는 집. 돼지고기 편육,데친 꼬막,더덕 양념구이,붕어찜,전어회,산낙지,참숭어알,홍어찜 등 온갖 요리와,손수 담가 지하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는 돈배,토하 등 각종 젓갈,2년 정도 숙성시킨다는 묵은 김치 등이 더해진다. 광주에서 전통한옥 한 채를 고스란히 옮겨와 4년간 지었다는 식당은 특히 맛과 함께 옛 사대부의 풍류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4인상 기준 8만원,10만원,15만원짜리가 있다. 강진읍 남성리의 ‘해태식당’(061-434-2486)은 다양한 요리에다가 겨울철엔 메생이국이 별미로 나와 손님을 끈다.강렬한 맛은 최대한 없애고 담백한 고유의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이밖에 강진읍 터미널 옆의 ‘명동식당’(061-434-2147),강진읍 남성리의 ‘흥진식당’(434-3031)이 음식 잘하기로 꼽히는 집이다. 음식은 1인 기준으로 1만 5000∼3만원.음식 가짓수가 많아 1인,2인상은 차리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해남읍 수협 인근의 ‘용궁해물탕’(061-536-2860)은 이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 서울과 부산에도 분점이 생겼지만 역시 해남 원조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들이 많다.주인 황점이씨는 손수 새벽 2시에 일어나 목포,완도 등 스무군데가 넘는 수산 시장을 누비며 신선한 재료를 구입한다. 무와 멸치를 2시간쯤 푹 고아낸 육수에 꽃게,새우,낙지,조개 등 10가지 이상의 해산물을 넣고 끓인다.해물에서 우러나는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된장과 조미료는 절대 넣지 않는다고. 냄비별로 3만원(2인분),4만원(3∼4인분),5만원(5∼6인분)짜리가 있다.
  • 책/우리말 오류사전

    박유희·이경수 등 지음 경당 펴냄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알싸한,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는 이처럼 노란 동백꽃이 등장한다.하지만 고창 선운사나 여수 오동도에 피는 동백꽃에는 붉은 색과 흰색은 있어도 노란색은 없다.어떻게 이런 모순이 생기게 된 것일까.김유정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소설의 배경이 강원도 산골이라는 사실로 미뤄 볼 때 강원도 지역에서 ‘동박꽃’으로 불리는 생강나무 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말 오류사전’(박유희·이경수 등 지음,경당 펴냄)은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표기와 표현의 사례들을 낱낱이 제시한다.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말에 씌워진 과도한 포장과 오해,편견 등은 완고한 규범만큼이나 우리말을 옥죄는 족쇄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한국어교육 전문가인 저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문체의 효과를 내기 위한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다.예컨대 피동표현은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능동 표현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 저자들은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지지 않는 시’를 예로 들어 반박한다.‘씌어지다’라는 이중피동 표현은 문체 효과의 측면에서 볼 때 마땅히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일본 한자어는 무조건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또한 오류라고 지적한다.결혼,기라성,애매,입장 같은 말은 흔히 일본 한자어로 통한다.1948년에 편찬된 ‘우리말 도로 찾기’에는 ‘결혼’이라는 단어는 일본 한자어이므로 이를 버리고 혼인으로 바꿔 써야 한다고 돼 있다.그러나 결혼은 일본에서도 쓰이는 한자어일 뿐,일본 한자어인 것만은 아니다.일찍이 ‘고려사’에도 고려 원종 15년(1274년)에 원나라의 만자군(蠻子軍)에게 혼인시킬 여자를 뽑아 들이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아를 ‘결혼도감’이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입장’이나 ‘애매’라는 말이 일본 한자어이므로 쓰지 말고 ‘처지’나 ‘모호’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 또한 짧은 생각이다.기라성이 일본 한자어에 기원을 둔 말이기 때문에 ‘빛나는 별’로 순화해 써야 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저자들의 견해.기라성이라는 조어는 비록 나타나지 않지만 ‘기라’라는 한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쓰였다.‘기라향(綺羅香)’이라는 단어가 있는데,이는 조선 순조시대 연경당에서 진작(進爵)할 때에 보상무(寶相舞)의 반주음악으로 연주하던 악곡을 말한다.이 책이 이처럼 우리말과 글을 바로 써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관념 또한 적지않은 오류를 낳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우리말 가꾸기 책들과 구분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 25년 단짝 ‘따로 또 같이’ 콘서트/정원영·한상원 듀엣콘서트 새달 3일 LG아트센터서

    이런 기막힌 인연의 음악친구가 어디 흔할까.올해 마흔셋의 동갑내기.음악생활을 해온 나이테도 똑같다. 여드름 송송한 열여덟살 때 함께 밴드활동을 시작했고,그것도 모자라 6년 뒤인 1984년 미국 유학길(보스턴 버클리 음대)에도 나란히 올랐다. 재즈 피아니스트 정원영(사진 오른쪽)과 펑크 기타리스트 한상원.유학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져온 둘의 별난 우정은 공연가에서 소문이 짜하다. 90년대 초 함께 귀국한 뒤 한충완·김종진·전태관 등과 프로젝트 밴드 ‘슈퍼밴드’를 결성했고,또 99년에는 정재일·이상원 등과 그룹 ‘긱스’를 이끌며 꾸준히 밴드음악의 지평을 넓혀왔다. 퓨전재즈의 제대로 된 맛을 국내에 선보여온 이들이 새달 3일 LG아트센터에서 듀엣콘서트를 연다.모처럼 단 둘이서만 호흡을 맞추는 무대는 마니아팬들에게도 한껏 호기심을 부추길만하다.‘따로 한몸’같지만,정작 음악적 색깔은 판이하기 때문이다. 한상원의 장기가 펑키한 록에 근거한 화려한 즉흥연주라면,정원영은 담백한 보컬에 소박하고 꼼꼼한 건반연주가 주특기.왜 굳이 공연의 부제를 ‘Difference is beautiful’(다른 것이 아름답다.)이라고 붙였는지,속내가 감잡힌다. 모두 3부로 이뤄질 공연은 보기 드물게 알차고 쫀쫀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질 듯하다.1부는 정원영의 독무대.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그로서는 이번 공연의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5월 5년간의 침묵을 깨고 4집 앨범 ‘Are you happy’?를 내놓은 그에겐 팬들과 한자리에서 호흡하는 첫마당인 셈.‘행복’‘동백꽃 순정’ 등 차분하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의 4집 수록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2부는 통째로 한상원의 차지다.그동안 선보인 2장의 앨범 가운데 ‘이탈’‘너의 욕심’‘키스’ 등의 인기곡들과 ‘Believe’같은 친숙한 펑키팝 몇곡을 골라놨다. 조용한 마니아들을 골수 팬으로 둔 두사람인데도 공연이 왁자지껄 소문난 건 3부의 게스트 덕도 크다.한상원밴드의 반주에 맞춰 둘의 앙상블이 조화를 이루는 사이로 신세대 인기가수 이적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긱스 시절의 히트곡 ‘짝사랑’ 등을 다시 부르며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같은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도 특별한 인연의 한 부분.둘 모두 서울예대와 동덕여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다.한상원은 “공연이 끝난 뒤엔 연말쯤 목표로 귀국 10주년 기념앨범을 내는 작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02)2005-0114.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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