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방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띠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1000원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냄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K-2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54
  • 평판사 “의견 거부땐 추가행동”

    대법관 인선 파문으로 촉발된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되고 있다.재경지역 일부 부장판사들이 모임을 열고 집단사퇴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소장판사들이 심야 회동하는 등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법원 일반직원들도 개혁 요구에 가세했다. 연명(連名)의견서 제출을 주도한 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 등 소장 평판사 7∼8명은 휴일인 15일 심야 회동을 갖고 의견서가 거부될 경우의 행동방안을 논의했다.한 소장판사는 “지난 1월 대법관 인선의 개선을 건의했으나 묵살됐다.”면서 “대법원이 법관들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더라도 개혁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언급,타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소장판사들은 이날 대법관 제청을 예의주시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추가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이들은 16일에도 모임을 갖고 앞으로 대법관 인선을 포함해 전반적인 사법부 개혁 플랜의 마련을 요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의견서에는 부장판사 1명을 포함,15명의 판사가 추가로 연명해 동참한 법관은 159명으로 최종집계됐다. ▶관련기사 4면 이에 앞서 서울지법 문흥수 부장판사 등 재경지역 부장판사 5명은 지난 14일 저녁 긴급모임을 갖고 강도높은 사법개혁을 촉구했다.문 부장판사는 “사태가 미봉책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데 공감했으며 집단사퇴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들 부장판사들은 대법원장이 현재 후보로 선정된 3명 가운데서 대법관을 제청할 경우 대법원장의 책임론을 본격 제기키로 했다.또 전국법원공무원노조준비위원회는 “14일 오후 전국 일반직원에게 이번 파문에 관한 의견을 개진해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으며 18일 오전 11시까지 의견을 모아 공식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대법원은 연명의견서가 14일 최종영 대법원장에게 제출됐으며 법원행정처가 중심이 돼 전체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제청권이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라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나 모든 가능성을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19일로 예정됐던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도 이번 사건의 여파로 1∼2주 연기됐다. 안동환 정은주기자 sunstory@
  •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장 이의근 경북지사

    “절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2003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장인 이의근 경북지사는 “지난 두차례의 행사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모두 보완했다.백화점식 나열이 아니라 주제를 함축해 핵심 테마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면서 “모든 관람객들이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지사는 “전시관 명칭도 벌터(새천년숨결관),처용의 집(동방문학관),첨성대 영상관(첨단영상관),에밀레극장(사이버 영상관) 등으로 새롭게 붙여 신라 냄새를 물씬 풍기게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입장객 목표인 150만명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다.물론 해외관광객 10만명 유치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또 “이번 대회가 대구유니버시아드와 연계해서 열리는 만큼 U대회에 참여하는 각국의 임원과 선수단이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꼭 관람하도록 하겠다.”며 “이를 위해 선수촌과 엑스포공원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행사를 하루 이틀에 모두 둘러보기에는 어렵다.꼭 보고 싶은행사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찾아보고 관람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 시민단체 초청 ‘해외 민주인사’ 사연

    반국가 인사나 간첩으로 낙인 찍혀 30여년 동안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해외 민주인사 61명을 집단 초청하려는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참여정부 출범 이후 시대 분위기의 변화를 타고 이들이 귀국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들의 사연과 경과,정부의 입장 등을 살펴본다. “꿈에도 그리운 고국 땅을 밟아서 빼앗긴 수십년의 세월을 되찾고 싶습니다.”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가 추천한 고국 방문 대상자들은 벅찬 감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국땅 밟나’ 기대감 30∼40년의 세월을 이역만리 객지에서 보내는 동안 ‘반체제·친북인사’라는 오명 속에서도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조국이었다.이들은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삶이 제대로 평가되기만 바랄 뿐이다. 42년째 고향인 경남 남해를 찾지 못한 곽동의(74·일본 도쿄 거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의장은 10일 기자와의 국제전화에서 오래전 세상을 등진 누나 얘기부터 꺼냈다.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1964년 하나밖에 없는 누님을 잃었을 때 장례식 조차 가지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당시 곽 의장은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하며 반독재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곽 의장은 “투쟁을 멈추면 입국을 허가해주겠다는 당국의 제의에 ‘죽은 사람을 두고 정치거래를 하느냐.’며 그 자리에서 여권을 찢어버렸다.”고 말했다. 곽 의장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교민단체인 민단에서 제명돼 여권발급은 물론 금융거래도 제한당하고 자녀들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던 아픔을 떠올렸다.그는 “입국한 뒤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고국방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해외민주화 인사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부터 국내 인사들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명예회복과 정당한 평가 내려져야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인 이희세(72·프랑스 도르돈 거주)선생은 큰아버지인 이 화백이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화가의 꿈을 접었다.모교인 홍익대 강사로 일하다 1964년 프랑스로 유학간 뒤에도 ‘한국 화단을 바꿀 재목’이라는 평가까지 듣던 그였다. 이 선생은전화를 통해 “한국민들이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명예회복은 오히려 우리가 한국 정부에 해주어야 할 일”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통일운동과 반독재 활동을 벌인 그에게 이번 고국초청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그는 “그간의 활동을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분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일된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쳐 살아온 우리에게 조국의 문은 완전히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민련 해외 활동을 벌여온 김성수(67·독일 프랑크푸르트 거주)·정방지(60)부부는 “희망이 있으면 오랜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로 소회를 밝혔다.이들은 1966년 독일로 유학온 뒤 만났다.정 여사는 “추진위가 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직접 축하의 영상메시지를 보냈다.”면서 “3대 독자인 남편을 기다리다 지난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께 가장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친북·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35년 동안 고국에 오지 못한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교수는 휴가중이라 통화하지 못했다.동백림사건에 연루됐던 정규명 박사 등 많은 인사들은 투병중이어서 통화조차 어렵거나 제대로 연락되지 않았다. 구혜영 기자 koohy@ ■어떻게 추진되나 해외에 체류중인 민주화 인사 61명을 일괄 초청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대책위원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14개 단체로 구성된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는 12일 이들의 입국심사서류를 법무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국정원장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초청 대상 인사들의 소속 단체가 반국가단체로 규정돼 있거나 일부 인사는 간첩사건에 연루돼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어 당국의 가시적인 조치가 없으면 ‘조건없는’ 귀국은 실현되기 어렵다. ●반국가단체 소속 이유로 여권발급 거부 해외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고국방문 초청사업은 2000년 12월 결성된 한통련 대책위가 물꼬를 텄다.고영구(현 국정원장) 변호사와 상지대 강만길 교수,국회의원 이창복씨 등이 공동대표를맡았다.당시 조직위원장이었던 임종인 민변 부위원장은 “반체제 인사라는 오명을 쓰고 수십년간 살아온 한통련 회원들의 명예회복이 급선무”라고 말했다.정부 당국에 명예회복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들에 대한 여권발급거부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통련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이듬해 8월 결성식을 갖고 일본에서 반독재 민주화와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구출 투쟁에 주력했다.한통련은 1978년 이른바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반국가단체 선고를 받았다.곽동의 한통련 의장은 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통련이 일본에서 대규모 반유신 활동을 벌이자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씨를 한통련 회원으로 몰아 한통련을 이적단체로 몰았다.”고 주장했다.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 있어 입국 거부 해외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반독재 투쟁은 1990년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해외본부 결성으로 이어졌다.범민련 결성은 이들의 활동방향을 통일운동으로 옮기는 역할을 했다.범민련해외본부는 남·북측 본부와 함께 3자 공동체제로 활동하는 기구로,결성 1년 뒤 1차 범민족대회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자마자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남측본부 후원회 김수연 간사는 “해외본부 인사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입국불허 조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남측본부는 지난해 12월 이들을 초청하기 위해 법무부와 교섭을 벌였지만 거부당했다.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번번이 입국을 거절당했다. 작곡가 윤이상(1995년 사망)씨와 부인 이수자(78)씨,정규명 물리학 박사,고 이응로 재불 화가 등이 이에 속한다.현지에서 이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고 있는 ‘한민족 유럽연대’의 김진향 통일위원장은 “정치망명의 길을 택해 대부분 현지 국적을 취득했다.”고 전했다.국내에서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와 5·18기념재단 등을 중심으로 이들의 초청사업이 진행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추진위 김건수 사무국장은 “국민의 정부 때 국내 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에 앞장섰던 것처럼 해외 민주인사들에게도 공평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참여정부가 어느 정권보다 인권을 강조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관련당국 입장 해외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귀국성사 여부와 관련,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다만 초청인사 대부분이 반국가단체 소속 회원이거나 과거 실정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어 일단 입국하더라도 필요한 조사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갖고 있는 일관된 견해다. 국가정보원은 10일 “이들의 민주화 노력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실정법 위반 사실은 묵과할 수 없는 만큼 ‘처벌’이 아닌 ‘절차’는 거쳐야 한다.”면서 “60여명 전원에 대해 일률적인 법 적용은 어렵고 개인별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입국 자체를 금지하는 사람은 없다.”면서도 “이들의 입국 사실을 국정원에 통보토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반국가단체 적용을 받고 있는 한통련과 범민련을 비롯해 과거 실정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들은 법 적용 논리에 따라 조사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면서 “그밖에 워낙 사안이 중대해 비자발급 규제대상인 사람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여권발급 금지대상자인 인사는 외교통상부장관의 발급 최종결정이 나지 않는 이상 입국 자체가 불투명하다. 여권법 제8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정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한해 여권 발급을 거부토록 돼있다. 결국 이들의 귀국이 성사되려면 국가정보원의 입국통보 요청이 철회되거나 과거의 혐의를 벗어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대부분 예순을 넘긴 노인들이 짧은 기간 입국해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칠지 의문”이라면서 “이들의 명예회복과 조건없는 귀국이 보장되려면 대통령과 관계 당국이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멜 표류기 제주서 첫선/‘항해·표류의 역사’ 특별전 북적

    남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바라다보이고,북쪽으로 사라봉을 끼고 있는 제주국립박물관은 한여름의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활기차다.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가족 단위 관람객들은 쓰는 말씨도 제각각이다. 전라도에 경상도,충청도에 강원도까지….뜻밖이다.벼르고 별러서 찾은 제주도에서 박물관이라니.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7세기 스웨덴전함 바사호 재현 제주박물관이 북적이는 데는 지난 8일 막을 연 ‘항해와 표류의 역사’특별전이 한몫을 한다.네덜란드 선원 헨드리크 하멜의 제주도 표착 3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항해와 표류,동서양 문물교류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한다.국내는 물론 네덜란드와 일본 등의 국·공립기관 등에서 250여점의 유물을 출품했다. 관람객들은 그러나 곧장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입구에 재현되어 있는 18세기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 소속 범선의 선장실이 발걸음을 붙잡기 때문이다.어른들에게도 흥미롭지만,어린이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박물관이 그리 재미없는 곳은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듯하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스웨덴 전함 바사호의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길이 62m,높이 50m의 1300t 짜리 전함은 1628년 처녀 항해에서 침몰했다.1958년 인양됐고,스톡홀름에는 전용 박물관이 세워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하멜이 몸담았던 네덜란드 연합동인도회사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 회사의 무역선은 17∼18세기 4700여차례 출항했으나,무사귀환은 3500여차례에 불과했다.그럼에도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니 동방무역이 얼마나 매력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사슴가죽과 용뇌향,설탕,명반,목향 등 주요 교역품도 전시됐다. 하멜은 1653년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떠났다.일본의 나가사키를 향하던 하멜 일행은 폭풍에 휘말려 제주 차귀진 해안에 난파했다.그는 일본으로 탈출하기까지 조선에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하멜 표류기’는 이 기간의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6부가 필사되어 각 위원회에 보고됐고,이 정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는 조선과의 교역을 위하여 코리아(Corea)호를 건조했다.●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해 쓴글 특별전에는 이 6부의 보고서 필사본 가운데 하나가 나와 있다.네덜란드 국립공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이 보고서가 전시회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하멜의 육필(肉筆)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코리아호의 존재는 함께 출품된 연합동인도회사의 출항기록부에 나타나 있다. 한국과 중국,일본의 해상활동도 난파에 따른 해저유물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전남 신안과 제주 신창리의 중국무역선과 충남 보령과 태안,전북 군산 비안도,전남 완도 어두리와 신안 방축리의 한국 침몰선에는 도자기들이 주로 실렸다.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동서양 및 한·중·일 교역과 한국안에서의 자기 수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사람들의 표류기록도 생각보다 훨씬 많아 눈길을 끈다.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다 유구국으로 흘러간 장한철의 ‘표해록’(1770)과 중국표류기를 가사로 엮은 이방익의 ‘표해가’(1797),필리핀까지 표류한 문순득의 ‘표해록’(1805) 등이 그것이다.특별전은 10월12일까지 열린다.(064)720-8101. 글·사진 제주 서동철기자 dcsuh@
  • 청와대 “더 변해야 한다는 게 우리사회 생각”/한총련 합법화 유보 시사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 대한 참여정부의 시각이 싸늘해지고 있다.지난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주한미군 장갑차 점거사건을 ‘이적(利敵)행위’로 규정,유사행위에 대한 강력대처 방침을 밝히고 있다. 특히 내부적으로 검토해오던 한총련 합법화 조치가 상당기간 유보될 수 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관련기사 3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0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시위는 합법화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한총련이 합법화되려면 더 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생각”이라면서 “강령 뿐 아니라 행동방식에서도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죄가 있는 부분은 법대로 처리하되,단순 한총련 가입자에 대한 수배해제 기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온 분리 대응 방침을 밝혔다.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과격시위를 보고받고,“성조기를 태우는 등 동맹국 군대에 그러한 행동과 시위를 한 것은 무례하고,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노 대통령은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와 행동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엄정하게 처리하라.”는 뜻을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통해 마크 민턴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에게 전했다. 고건 국무총리도 9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미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한총련 학생들의 반미 기습시위는 국익과 국민정서에 반하는 중대한 이적행위이고 군사시설에 대한 불법 침입 범죄”라고 규정했다. 고 총리는 “시위 가담자는 예외없이 법에 의해 엄중처벌하고,이들을 조종하거나 방조한 배후세력도 색출,엄단할 것”이라며 “미군시설에 대한 경비를 철저히 강화하고 부대시설 침입을 시도하는 시위는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총련이 8·15 행사와 관련해 ‘서울 집중투쟁’을 갖는 등 투쟁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고 8월15일을 전후한 일정기간 미군 시설 주변을 특별경비구역으로 설정,경찰 경비를 강화키로 했다.고건 총리는 11일 리언 러포트 사령관,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마크 민턴 부대사 등 미국 관계자들을초청,만찬간담회를 갖고 재발방지를 위한 정부 대책을 설명할 계획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한총련 사태는 노 대통령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다.”며 노 대통령의 사과와 강금실 법무장관 문책을 요구했다. 곽태헌 홍지민기자 tiger@
  • 방송대상에 SBS ‘뉴스추적’ 등 선정

    한국방송협회는 9일 제30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과 개인상 수상자를 발표했다.작품상은 18개 부문 24편,개인상은 23개 부문 24명이 선정됐다. 올해 신설된 ‘심사위원 특별공로상’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진행자 송해씨가,‘심사위원장상’은 MBC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각각 받았다.다음은 주요 작품상 및 개인상 명단. ●작품상 △보도=SBS‘뉴스추적-흔들리는 한반도,그리고 주한미군’,CBS‘아직도 끝나지 않은 망향가-일본에 버려진 한국인 BC급 전범들’△교양=MBC 10부작 ‘미국’,PBC‘평화음악실 특집,클래식 음악의 원류-민속음악’△다큐멘터리=EBS 5부작 ‘아기성장 보고서’,KBS‘이제는 그리운 사람들-제90화 전차를 타고 마포종점에 가다’△어린이·청소년=KBS‘애니멘터리 한국설화’,PBC‘초록나라 꿈동산’△드라마=SBS‘올인’ ●개인상 △보도기자상 이진숙(MBC)△아나운서상 황정민(KBS)△TV프로듀서상 김영희(MBC)△지역방송인상 김연식(마산MBC 스포츠담당 부국장),민산웅(극동방송 부사장겸 대전극동방송 지사장)△탤런트상 이병헌△가수상 보아△코미디언상 박준형
  • 北선박 3척 또 NLL월선 해군 경고사격 받고 퇴각

    북한선박 3척이 8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했다.올들어 북한 선박이 NLL을 월선한 것은 모두 14 차례이며,우리측의 경고 사격은 3 번째다. 합동참모본부는 오후 2시30분쯤 백령도 동방 5마일 해상에서 북한 예인선이 소형 선박 2척을 예인하던 중 NLL을 0.5마일까지 월선했다 우리 해군 고속정 편대가 경고사격을 가하자 38분 만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 이런 책 어때요 / 여행의 역사

    빈프리트 뢰쉬부르크 지음/이민수 옮김 효형출판 펴냄 오디세우스의 방랑에서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대별로 살폈다.인도와 중국을 여행하는 데 25년을 바친 중세 이슬람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원제국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밀레오네’,즉 ‘동방견문록’을 읽고 인도와 일본에 가는 길을 찾고자 한 콜럼버스 등이 소개된다.중국의 작가 린위탕(林語堂)은 “여행한다는 것은 방랑한다는 뜻이다.방랑이 아닌 것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그러나 인류의 여행은 아무런 목적 없는 방랑의 여행보다는 호기심,재화,교양,즐거움 등 목적을 갖고 떠난 여행이 더 많았다.1만 3000원.
  • 인간의 땅 시베리아 400년 역사여행

    우랄산맥과 태평양 사이의 러시아 영토’ 아시아 북부 500만 평방마일,지구상 육지 면적의 12분의1을 차지하는 거대한 땅 시베리아는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곳이다.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 30∼40도,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흔하다.숨을 내쉬면 수정구슬 모양으로 얼어붙는 숨결이 소나기처럼 땅바닥에 내리꽂힌다.그때 들리는 살랑거리는 소리를 사람들은 ‘별들의 속삭임’이라 부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베리아가 원래부터 러시아 소유의 유럽 땅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또 이 땅에 거주민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면,동토의 땅으로 유배된 유럽의 혁명가나 전쟁포로,굴라그(Gulag,사상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된 노예들일 것이라고 상상한다.그러나 러시아인이 시베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16세기 말엽 이전에도 시베리아는 이른바 ‘신세계’가 아니었다.러시아에 의해 정복되기 전에도 시베리아엔 30여 민족,25만명가량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북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는 수천년 동안 그곳을 지키며 살아온원주민들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샤머니즘 통해 시베리아 정체성 파악 ‘샤먼의 코트:사라진 시베리아 왕국을 찾아서’(안나 레이드 지음,윤철희 옮김,미다스북스 펴냄)는 ‘동토의 땅’ 시베리아가 사실은 인류의 문명 이전의 살아있는 문화가 숨쉬는 ‘인간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영국 출신의 러시아사 학자인 저자는 오늘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을 러시아 통치하에 있는 시베리아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로 삼는다.원주민들이 춥고 거친 환경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 샤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베리아의 원형적인 모습을 살핀다. ●대표적인 아홉 민족 직접 찾아가 시베리아인들은 세상 만물은 살아 있으며 제각기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신들은 서로 싸울 때 바위를 집어 던진다.미동도 하지 않는 북극성은 신령들이 말을 매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하다 못해 구름조차도 안개 자욱한 천막과 냄비가 갖춰진 가정과 가족을 거느린다고 믿는다.이처럼 활기 넘치는 만물이 우글대는 세상과 시베리아 원주민 사이를 이어주는 이가 바로 샤먼,곧 무당이다.저자는 쇠로 만든 새와 뱀,가죽끈 등으로 장식된 샤먼의 코트를 보면 동방박사가 입었던 것으로 착각할 만큼 이국적이라고 말한다.하늘에 올리는 감사제와 속죄의식을 주재하는 샤먼의 활동 중 가장 독특한 것은 혼령여행이다.혼령여행 길에 오른 샤먼은 사지가 잘렸다 다시 붙는 고통을 감내하는 가운데 샤먼의 영험한 능력을 얻게 된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시베리아를 시베리아인에게’라는 관점에서 씌어졌다는 점이다.저자는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아홉 민족을 직접 찾아나선다.타타르,한티,부랴트,투바,사하,아이누,니브히,우일타,추크치족.이들의 문화는 민족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근친상간을 허용하고 공동소유를 인정하는 원시공산제적인 모습을 보인다.그러나 이같은 근대적인 문명 이전의 문화는 ‘유럽의 아시아’가 우랄산맥 너머에서 나는 각종 특산물을 얻기 위해 ‘아시아의 시베리아’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적잖이 훼손됐다. ●러시아 문화 유입… 타락의 길로 러시아인들에게 시베리아가강렬한 유혹의 대상이 된 것은 단연 어둠보다 까맣고 백설보다 고운 검은담비 모피 때문이었다.검은담비 모피는 권위와 부의 상징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모피는 러시아 경제를 살찌우는 데 큰 몫을 했다.하지만 시베리아에 검은담비 숫자가 줄어드는 대신 보드카와 담배가 들어왔고,매독과 천연두가 따라왔다.유럽인들 특히 러시아인들에게 시베리아는,더이상 고리키가 말한 ‘죽음과 사슬의 땅’이 아니었다.새로운 자원과 기회가 쌓여있는 ‘신천지’로 탈바꿈한 것이다.그러나 이와 함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타락과 노예화의 길로 접어들었고,마침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러시아에서 발간된 역사책들은 물론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카자크가 칸을 상대로 출정하던 아득한 과거로부터 원주민 민권운동가들이 석유개발에 반대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한다.전래민담과 KGB보고서 같은 참고문헌뿐 아니라 승려와 샤먼,수용소 생존자,공산당 기관원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정보를 전해준다. 이 책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또 각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인류애적인 관심 속에 되돌아보게 한다.한민족의 시원이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본향인 바이칼이란 주장도 있고 보면,우리로선 더욱 주의깊게 볼 만한 책이다.1만 3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인천 여객선 충돌 16명 부상

    3일 오후 2시25분쯤 인천시 옹진군 팔미도 북동방 4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프린세스호(312t급)와 골든진도호(653t급)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객 16명이 다쳐 인하대병원과 길병원,기독병원 등에 분산 후송됐다. 프린세스호는 오른쪽 뱃머리 부분이 파손되고 골든진도호는 오른쪽 선체 중앙부분에 작은 구멍이 생겼으나 사고 발생 15분만에 자력으로 인천연안부두에 입항,승객들이 하선했으며 기름 유출은 없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사고 당시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300m에 불과했던 점으로 미뤄 안개 때문에 프린센스호 오른쪽 뱃머리 부분과 골든진도호 오른쪽 선체 중앙부분이 부딪혀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린세스호는 이날 오후 1시30분 덕적도에서 승객 423명을 태우고 인천연안부두로 입항 중이었으며,골든진도호는 이날 오후 2시10분 연안부두에서 승객 244명을 태우고 연평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그도 신선을 꿈꾸었다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 펴냄 백승종 지음 “성리학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주돈이,정호,정이,주희 등 송·명대 사상가들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신유교를 말합니다.이는 우주론·인성론·실천철학을 일관된 원리로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지극히 논리정연하면서도 거대한 사상체계이지요.성리학은 그 ‘장대한 규모와 종합성,그것이 수행한 기능의 측면에서 서양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비견될 만하다.’고도 합니다.”(백승종) “지난 역사를 상고할 때,원나라의 수도 연경에서 성리학이 처음 도입된 것은 고려 후기가 아니었겠소.원나라의 학풍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오.그때만 해도 성리학은 상산학(象山學)과 뒤섞인 상태로 유입되었소.이후 수백년에 걸쳐서 성리학만을 존숭하는 분위기가 차츰 고조되었던 것이오.15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조선 선비들의 성리학설에 관한 이해는 가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오.”(하서 김인후) ●역사학자 저자와 16세기 성리학자의 가상대담 16세기를 대표하는 조선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와 역사학자 백승종(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나눈 가상대담의 한 대목이다.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백승종 지음,돌베개 펴냄)는 우리나라 미시사 연구의 개척자로 인정받는 저자가 오랜 시간 마음 속으로 하서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저자는 왜 문답식 대화체라는 색다른 방식을 택했을까.무엇보다 거기엔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대화체를 빌려 쓴 책은 옛날부터 적잖았다.유교의 경전인 ‘논어’와 ‘맹자’는 그 고전적인 선례다.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의 ‘향연’ 또한 대화체 형식에 의존하고 있다.대화체의 맥을 잇는 저술은 17∼19세기 한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실학자들과 개화사상가들이 대화체의 전통을 되살려낸 것.그들은 실옹(實翁) 또는 실사(實士)와 허옹(虛翁) 또는 속유(俗儒)를 대비시키면서 치열한 사상적 토론을 전개했다.대화체는 이처럼 동서양의 유구한 지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현대들어 한국의 역사서술에 대화체를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는 이 파격적인 서술방식을 통해 먼지에 쌓인 수만 개의 활자 속에 가능성으로만 존재해온 역사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본격적인 가상담론을 펼치기에 앞서 책은 먼저 하서 김인후가 누구인가를 밝힌다.하서는 문묘에 배향된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 가운데 유일하게 호남 유림이다.절친한 벗이기도 한 퇴계 이황과 더불어 16세기 성리학계의 쌍벽으로 손꼽히는 하서는 정조에 의해 ‘동방의 주염계’라는 평을 들은 일세의 거유(巨儒).하서는 훗날 사칠논변(四七論辨,사단과 칠정에 관한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토론)의 기폭제가 된 중요 자료인 천명도(天命圖,우주만물의 성정을 표현한 그림)를 남겼다. ●한시 1600편 통해 다면적인 하서 김인후 재조명 이 책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16세기의 문화적 중층성을 드러내는 하서를 생동감 넘치는 입체적 인물로 복원한다.400여년 전 인물인 하서는 더이상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철학자라는 박제된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도교와 불교,성리철학이마음 속에서 부단히 교차하는 다면적인 인물로 되살아난다.이런 작업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바로 하서가 남긴 1600편의 한시다. 하서는 일상의 편지마저도 기꺼이 시로 썼을 만큼 시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깊었다.그가 남긴 시는 일상의 사연들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정치사와 지성사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촘촘히 직조해낸다.중국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가 논적(論敵) 육상산이나 육구령과 시를 통해 격론을 벌였듯이,이 책에서 시는 논쟁의 핵심을 간명하게 전하는 유력한 도구다. 하서의 시 가운데 저자가 제일로 치는 것은 ‘화표학(華表鶴)’이라는 제목의 칠언고시다.저자는 이 시를 하서가 평생 지향해온 바를 요약한 ‘심리적 자서전’이라고 평한다.“끝없는 벌판 갈길 멀다렻뎠?화표주 하늘로 솟았네/검정 치마 흰 저고리,어디로 가는 길손일까/표연히 날아든 하늘 신선/서글퍼 맴맴 돌아 오래도록 머뭇머뭇/옛 성곽엔 쑥대만 욱었다네/길다란 울음소리 하늘에 번지오/만리를 부는 바람,눈빛 터럭 불어가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교나 불교 같은이단을 배척한 성리학자 하서가 점괘를 즐겨 보고 “표연히 날아든 하늘 신선”이 되고자 했다는 점이다.이 시는 무술적(巫術的)인 사생관과 도교적인 세계관이 성리학적 세계관과 뒤섞여 있는 16세기 선비들의 중층적인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렇다면 조선시대는 반드시 ‘성리학지상주의’의 나라는 아니지 않았을까.저자는 이 대목에서 세조때까지만 해도 송학(宋學),곧 성리학보다 한당(漢唐)의 유학을 숭상하는 풍조가 강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대화체 서술방식을 택한 저자는 “이른바 ‘가상’은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또 하나의 ‘가능성’을 좇는 역사라고 해서 사료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충청이남 ‘물난리’/ 집중호우로 10명 사망·실종 추풍천 범람, 5개 마을 침수

    25일 오전 전북 전주에 시간당 85㎜의 폭우가 쏟아지는 등 충청 이남지역에 내린 비로 10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2시30분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모 참숯 제조공장 뒷산의 토사가 무너져내리면서 직원 숙소용 컨테이너를 덮쳤다.이 사고로 박주철(50)씨 부부와 중국교포 최석봉(42)씨 등 3명이 숨졌다. 오전 9시10분쯤 경북 군위군 군위읍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 149.9㎞ 지점에서는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8m 아래 논으로 추락,운전자 이모(46)씨의 부인(42)과 아들(9) 등 2명이 숨졌다.오전 9시쯤 충남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에서 송모(75)씨가 토사에 휩쓸린 뒤 오후 3시20분쯤 하류인 대전시 중구 산성동 유등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오전 9시30분쯤 전북 완주군 동상면에서 오모(58)씨가 주택침수를 피해 마을 앞 다리를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숨졌고 오후 2시쯤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에서는 임모(47)씨가 하천을 건너다 실종됐다. 이틀새 141㎜의 비가 쏟아진 충남 금산군 추부면의 추풍천이 범람,인근 5개 마을 주택 400여채가 침수돼 1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금산군 복수면의 하천 둑이 유실되면서 농경지 186㏊와 비닐하우스 35채 등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전국 송한수기자 onekor@
  • 책 / 海바다의 실크로드

    양승윤등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우리는 예로부터 대륙지향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온 민족이다.그런 한편으로는 고대부터 바다를 중시해온 민족이기도 하다.고조선시대에 이미 바다로 쳐들어오는 한나라의 대군을 물리쳤으며,장보고가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위대한 해양제국의 건설을 꿈꾼 고려 태조 왕건은 한반도를 통일한 뒤 지속적으로 바다를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그러나 아쉽게도 고려시대 이후 우리는 반도적인 환경에 고착됐다.조선시대엔 바다를 소홀히 해 임진왜란이란 비극을 겪었다.이순신장군은 한반도라는 해양제국이 남긴 마지막 신화인지도 모른다.이후 우리는 그 옛날 해양을 자유자재로 경영하던 활달한 기상을 되찾지 못하고 주변부라는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서교역로의 큰 즐기는 바닷길 ‘바다의 실크로드’(청아출판사 펴냄)는 우리가 잊고 있던 ‘바다’라는 역사의 한 축을 되찾음으로써 ‘육지’라는 관점만으론 이해하기 힘든 문명교류의 역사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한국외국어대 양승윤(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최영수(포르투갈어과)·임영상(사학과) 교수,한양대 이희수(문화인류학과) 교수,외교안보연구원 배긍찬(정치학) 교수 등 9명의 학자가 전공별로 집필했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정부는 ‘21세기 해양강국 실현’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동서교역로의 가장 큰 줄기인 바다의 실크로드를 제대로 알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책은 먼저 실크로드 ‘진화의 역사’를 소상히 살핀다.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기원전 2세기 전한(前漢)시대.한무제는 북방 변경지대를 위협하는 흉노를 제압하고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여행가 장건을 중앙아시아로 파견한다. 이어 기원전 106년 파르티아의 낙타상들에 의해 처음으로 파르티아와 중국 제국 사이의 무역로가 개통된다.그 후 전성기인 7세기에 이르러 당나라의 장안과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잇는 장대한 육상 실크로드가 완성된다. ●무슬림 상인들에 의해 동방항로 완성 그러나 육상 실크로드는 물동량의 한계와 육로가 야기하는 갖가지 재난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마침내 8세기부터는 유럽시장을 중계해온 서역의 무슬림 상인들에게 교역의 주도권이 넘어간다.바닷길 개척에 나선 무슬림 상인들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경주에까지 거점을 확보한다.바로 이들에 의해 동방의 항로가 완성된 것이다.이 바다의 실크로드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동서양 문화 교류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남중국해의 여러 나라를 매개로 하는 해상 교역로는 당당히 실크로드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흐름은 바다의 실크로드를 따라간다.해상 실크로드의 진원지는 중국이다.중국의 남북이 바닷길로 연결돼 상하이가 역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몽골시대부터.낙타 한 마리는 고작 270㎏을 싣고 터벅터벅 걸어서 머나먼 사막을 가야 했지만,8세기 후반 송나라에서 사용된 범선인 다우선 한 척은 600마리의 낙타 등짐과 500여명의 선원을 한꺼번에 실어나를 수 있었다.육지로 돌아가면 몇 천리가 되지만 바닷길은 훨씬 빠르게 각 지점을 연결해줬다.바다는 그래서 ‘문화의 고속도로’로 불린다. 동서교역은 낙타 등짐으로 교역품을 실어 나르던 대상(隊商)에 의해 10세기 이상 지속됐다.교역은 바닷길이 열리면서 짧은 시간에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확대됐다.말라카와 자바해를 거쳐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바닷길은 중동의 무슬림에 의해 베네치아로 이어졌다.인도의 구자라트와 베네치아가 중계무역항으로 부각된 것은 해상 실크로드가 이미 동아시아에서 유럽시장으로 연결됐음을 의미한다.장대한 해상 실크로드는 동서의 상품교역뿐만 아니라 무역을 통한 동서간의 문화적·종교적 교류도 가능하게 했다.요컨대 바닷길을 점령하는 나라는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다.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은 말라카 연대기 작가이자 항해사로 훗날 중국 대사로 임명된 포르투갈의 동양통 토메 피레스는 “누구든지 말라카의 주군이 된 자가 베네치아의 목줄을 쥐게 되리라.”고 한 것은 그와 같은 맥락이다.말라카는 15세기 중반 이래 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였다.‘무역왕국’ 말라카의 영화는 100년 동안 지속됐다.이 책은 말라카가 해상 실크로드의 동방거점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오래됐고 국내에 책도 많이 나와 있다.그러나 대부분 육상 실크로드에 관한 것들이다.실크로드 기행은 종종 막연한 신비감을 불어넣기도 한다.당나라 승려 현장은 “길이 없다.다만 사막을 헤매다 죽은 사람의 뼈를 보고 표적을 삼는다.”고 외쳤고,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사막에는 악령의 소리가 들린다.그 소리에 홀려 길을 잃고 죽어간다.”고 했다.이 책에서 말하는 실크로드는 물론 현장과 혜초,마르코폴로가 넘던 험한 사막의 길이 아니다.그것은 동과 서를 하나로 이어준 생명의 바닷길이다. 해상 실크로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책으로 기록될 이 책은 21세기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왜 바닷길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일러준다.바다는 문명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편집자에게/ 선관위 정치개혁안 후속조치 필요

    -‘국회 문턱 낮춘다’ 기사(대한매일 7월21일자 1면)를 읽고 중앙선관위에서 내놓은 정치개혁안은 정치신인들의 정치권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그러나 개혁안을 현실화하는 데는 몇 가지 점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우선 총선 6개월 전부터 선거운동을 허용하면 선거의 조기과열을 부추기고 혼탁·금권선거를 초래할 수 있다.예비후보자가 후원회를 열어 선거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는 공감하지만,정치신인들의 출마러시와 후원회만 열고 출마하지는 않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해 정치자금 제공자의 실명확인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야당에 대한 양성적 정치자금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특히 민주당의 신주류에서 주장해온 내용들이 대폭 선관위안에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다.끝으로 그동안 정치개혁안이 여야의 당리당략과 입법권을 가진 기성정치인들에 의해 좌우돼 왔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선관위는 지난 10년간 16차례에 걸쳐 정치관계법 개정 시안을 내놓았으나,선거비용과 선거운동방식에 대한 상당부분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정용대 여의도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NGO / 친환경 개발도 반발하는 ‘새만금 생명연대’“갯벌살릴 대안 뭐죠”

    “새만금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다고요? 그것은 ‘아름다운 살인’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이하 새만금연대) 오영숙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법원으로부터 새만금 사업 집행중지 결정까지 이끌어냈지만 새만금연대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대통령이 새만금사업 재개 의지를 밝힌 데다 법원도 방조제 보강공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새만금연대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축제분위기도 잠시였을 뿐 다시 또 새만금 갯벌을 ‘완전히’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법원 결정 이전에 진행중이던 공사가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새만금연대측의 주장이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한마음에서 출범한 새만금연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200여단체 하나돼 2년째 활동 새만금연대는 2001년 3월19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앞에서 전국 200여개의 종교·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식을 가졌다.천주교 문규현 신부·박승해 수녀,불교 수경 스님,원불교 이성종 교무,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가 공동 상임대표를 맡았다.총 본부를 전북 부안에 두고 사무국은 서울 환경운동연합에서 더부살이 중이다. 종교계가 종파를 따지지 않고 하나로 뭉쳤다.종교계 지도자들은 출범당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각 종파 신도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만금 간척사업 백지화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새만금 갯벌이 곧 교회·성당·법당이자 21세기의 성지”라고 주장하며 새만금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어 종파별로 기도회와 법회가 잇따라 열렸고 ‘3보1배’와 여성 성직자 새만금 도보순례 기도회까지 고행과 수행을 겸한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을 환경단체들과 연계해 펼쳐왔다. 새만금연대에는 종교계와 시민·환경단체 외에도 각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서울대 고철환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그룹은 새만금과 관련된 워크숍,국제 심포지엄 등 각종 학술행사와 해외 전문가들과의 공동연구 등을 추진해왔다. 최열 공동대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현장답사 등 이론적인 학술적 근거제시가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해외 전문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만금문제를 공동과제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갯벌전문가인 아돌프 켈러만 독일 환경연방청 생태계 연구팀장의 법정증언은 법원이 새만금 사업 집행중지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이지않는 지원자 곳곳에 처음엔 200여개의 단체가 연합한 만큼 자칫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됐다고 한다.하지만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이라는 두 환경단체가 중간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이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여성 환경운동가로 96년초 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은 장지영 팀장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기도수행과 자전거 순례 홍보 등 2년 넘게 활동을 벌였음에도 4공구 물막이 공사가 강행됐을 때 허탈감을 느꼈다.”면서 “이제 더이상 무모한 개발논리를 접고 하루빨리 새만금 갯벌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3보1배라는 극한 투쟁의 방법까지 동원해 반대운동을 벌이고도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변화가 없자 새만금연대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었다. 그와중에 환경단체와 전북도 주민 3539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공유수면매립면허 및 사업시행인가 처분취소 청구소송 결과가 나온 것이다.법원의 공사중단 결정은 늘어졌던 마음을 추스르며 더 강한 투쟁의 열의를 되살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새만금 소송에서 변호를 맡았던 박태현 변호사는 환경전문가와 선배 변호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그는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됐다.”면서 “본안소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결정까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발전적인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북도민 이해 조정 필요 공감 이제 새만금연대의 운동방향은 대안제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잠정 중단결정만 내려졌을 뿐 근본적인 대안이 제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최종적으로 승소판결이 난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진행된새만금 사업은 논란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업중단과 더불어 실의에 젖은 일부 전북도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3보1배’라는 극단적인 자기희생과 고통을 사업중단촉구 방법으로 채택했던 새만금연대 사람들이 또 어떤 상생의 비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유진상기자 jsr@
  • 이사람 / 한국 라면의 산증인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

    한국 라면의 산증인’ 전중윤(全仲潤·83) 삼양식품 회장.라면 하나로 1960년대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데 일조(一助)한 ‘그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작지만 단단한 체구였다.적어도 20년은 젊게 보이는,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틈만 나면 뛰거나 걷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점심 식사 후 30분 정도 낮잠을 즐기고 주말이면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을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는 습관도 건강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한때 즐기던 골프는 1998년 회사가 화의를 신청하면서 그만뒀다. “1961년 회사를 설립해 승승장구했지요.그런데 1989년 우리 회사를 포함한 5개 식품업체들이 라면에 비식용 우지(牛脂)를 넣었다고 검찰이 발표했어요.이 무슨 날벼락입니까.나중에 대법원이 무죄라고 판결했지만 엄청난 타격을 받았어요.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경영난이 심화돼 화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최근 영업이익이 몇년째 흑자를 보이고 있어 2,3년이 지나면 화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 등 채권단이 지난달 채무액 2300억원 중 보증채무 400억원을 출자전환해 줬습니다.담보채무의 금리는 연 10%에서 7%로,무담보채무는 7%에서 4%로 각각 낮춰줬어요.큰 혜택이지요.” 전 회장은 시간 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직과 신용을 가장 앞세워라.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하라.그래야만 우리가 일구어놓은 기업이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대대손손 번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그를 지켜본 정호권(鄭鎬權·전 건국대총장) 박사는 “전 회장은 아마 기업인보다 교수를 했으면 더 잘 했을 것”이라면서 “항상 책을 읽고 확고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데다 바른 정신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고 평했다. 그래서일까.전 회장은 한달에 50만박스씩 팔려 회사의 주력상품으로 40년째 자리를차지하고 있는 삼양라면의 맛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라면시장의 70%를 매운 라면이 차지하고 있지만,삼양라면의 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요즘 입맛으로 치면 맨송맨송할 수 있겠지만,“맵게 먹어 건강에 좋을 게 없다.”는 전 회장의 지론 때문이다.다만 품질만 업그레이드할 뿐이다.전 회장은 “우리나라에 암환자가 많은 것은 맵고 짜게 먹는 탓”이라면서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더라도 처음 내놓은 삼양라면의 맛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먹거리 철학은 경영권을 넘겨준 아들 인장(40)씨에게로 이어졌다. 인장씨는 1999년 처음으로 매운 맛의 수타면을 내놓았다.회사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책이었다.그럼에도 무작정 맵게는 하지 않았다.수프를 분말· 플레이크·고추양념 등 세 가지로 만들었다.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매운 맛을 조절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다른 회사 제품은 매운맛과 야채 등 두 가지 수프로만 돼 있다.세 개의 수프는 먹거리의 철학을 지키면서도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고심의 결과라고 주변에서는 풀이한다.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매운 라면은 내놓지 않을 작정이다. 그가 ‘우지 파동’을 겪은 것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다.“(그때를 회고하며 지금도 화가 나는 듯) 난생 처음 듣는 공업용 우지라니,말이나 됩니까.검찰 발표가 무책임했죠. 결국 3개월간 회사 문을 닫고 시중에 유통 중이던 라면을 전량 회수해 사료로 처분했습니다.” 이때 가슴을 차지한 한(恨)을 다스리기 위해 독서에 매달렸다.전 회장이 소장한 책은 무려 9000여권.관심 분야는 식품회사 창업자 답게 주로 식품과 건강 서적이다.요즘은 역사와 철학,불교 책을 읽는다.끊임없이 독서한 덕분에 불교 입문서인 ‘대승불교경전(大乘佛敎經典)’과 교육 방법론인 ‘인격과 교육’ 등의 책을 펴냈다. 정박사는 “전 회장은 특히 불교와 유교 등 동양문화에 철학적 깊이를 두고 있다.”면서 “‘자기가 정당하면 반드시 바로 선다.하지만 한번 잘못하면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후손들에게 해가 미친다.’는 말을 외우고 다닐 정도”라고 전한다. 슬쩍 화제를 정치 등 다른 사안으로 옮기려 하자 전 회장은 손사래를 친다.우지파동에 워낙 ‘덴’ 탓인지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면서 “정치나 사회 얘기를 하다 보면 잡념이 생겨 회사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라면을 만들 때 안전한 천연 원료만을 고집한다.“다른 업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식품업계가 돈벌이에 급급하면 안됩니다.자칫 안전성이 떨어지고 영양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식품은 절대 안전해야 합니다.인간은 120살까지 살 수 있습니다.사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식품이 75%를 기여하는 만큼 건강식품을 만들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되고 영양이 많은 성분을 추가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라면산업의 낙관적 전망에서 비롯된다.라면 시장은 해마다 4∼5%씩 꾸준히 신장하고 있고,세계 120여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하지만 경영이 정상화되더라도 결코 사업의 외연(外延) 확장에 치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재무구조 건전화와 윤리경영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라면의 인기는 21세기에도 계속됩니다.가격이싸고,빨리 조리할 수 있으며,맛도 있고,영양을 갖춘 식품이기 때문이죠.특히 시장개방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밀려와도 라면만큼은 수입품이 발을 못 붙일 것입니다.” ‘인생백회 천세우(人生百懷 千歲憂)’ 그의 좌우명이다.사람은 백년을 살지만 천년 후를 생각하자는 뜻이다.폭넓은 독서를 통해 그가 찾아낸 이 좌우명은 인간과 기업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김규환기자 khkim@ ■‘삼양라면' 발자취 ‘제2의 쌀’로 불리던 삼양라면의 탄생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전 회장이 식량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제일생명 사장직을 포기하고 나와 삼양식품을 설립하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라면을 생산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계속됐다.1년여 동안 하월곡동 창고에서 숙식을 하며 개발에 착수,우리 입맛에 맞는 라면을 개발했으나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지는 못했다.일본에서 라면기계를 들여올 만한 자금이 없어 생산라인을 갖추지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1800만달러에 불과할 때였죠.라면기계구입비 6만달러가 어디 있겠습니까.그래서 주무부서인 상공부를 찾아가 설득했습니다.5개월에 걸친 끈질긴 설득작전이 주효해 5만달러를 지원받았죠.” 전 회장은 5만달러중 2만 7000달러로 일본 명성식품으로부터 라면기계 2대를 구입하고 로열티 지불없이 선진 제조기술까지 전수받았다. 지한파(知韓派)인 당시 명성식품 사장이 국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그를 ‘예쁘게’ 봐준 덕택이다. 특히 당시로는 거액인 나머지 2만 3000달러를 국가에 반환함으로써 정부의 신뢰감도 얻었다.63년 9월15일 마침내 ‘삼양라면’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첫발을 내디딘 삼양라면의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광고매체가 발달돼 있지 않아 제대로 홍보할 기회를 갖지 못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무료 시식회였는데 대성공이었다. 서울역·남대문시장에 설치한 즉석 라면 요리대의 쫄깃쫄깃한 면발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극장가등에서 무료로 나눠주면서 라면은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때마침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져 라면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라면 개발 초기 2년 동안 무려 1억원의 적자를 낸 삼양식품은 3년째 들어 흑자로 돌아섰다.63년 29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65년 2억 3900만원,67년 10억 1400만원,71년 100억원대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삼양식품은 89년 우지파동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30년 가까이 쌓아온 명성이 뿌리째 흔들렸다. 4000여명이던 종업원들 가운데 1000여명이 떠나갔고,65%를 웃돌던 시장 점유율도 6%대로 곤두박질쳤다. ‘화불단행(禍不單行·화는 잇따라 온다)’이라고 했던가.우지파동으로 위기를 겪는 와중에 97년 외환위기라는 악재가 겹치자 결국 98년 1월 화의를 신청했다. 이후 서울 종로 본사 부지 등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하고 강원레저 등 계열사 매각과 함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다. 이러한 자구책과 ‘수타면’ 등 신제품 개발에 힘입어 시장 점유율이 20%대로 올라갔다. 지난해에는 2500억원대의 매출과 2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창출했다. 전중윤 회장은 ●1919년 8월 강원도 철원 출생 ●57년 동방생명보험 부회장 ●61년 제일생명보험 사장 ●61년∼현재 삼양식품 회장 ●67년 경희대 경영행정대학원 졸업 ●76년 연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82년∼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DMZ 총격사건 안팎/北 왜 4발만 쐈을까

    휴일인 17일 새벽 중부전선인 경기도 연천군의 육군 모사단 내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군의 아군초소 총격사건의 고의성 여부와 파장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의성 여부 분석중 이번 사건을 접하는 국방부와 합참은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의도적 도발과 우발사고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있다.이홍기 합참 합동작전과장(육군 대령)은 브리핑에서 “군사정전위원회 현장조사단의 분석작업이 끝나봐야 의도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의 판단을 유보했다. 이번 사건을 의도적 도발로 보는 쪽에서는 북한군의 총탄이 떨어진 위치와 최근의 북한핵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꼽는다. 이날 북한군이 발사한 기관총탄 4발 중 3발이 1100m나 떨어진 우리측 GP(경계초소) 옹벽을 정확하게 맞춘 데다 DMZ내 총기관리도 엄격하기 때문이다.또 최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조여오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저항하고,협상에 앞서 무력도발을 국면전환용 돌파구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반면,우발사고 가능성을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북한군이 기관총 4발만 발사하고 추가적인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은 데다 총격 시점이 근무 교대시간인 점에 비춰 새로운 근무조가 총기의 이상유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DMZ내 GP에서는 통상 남북한군 모두 상대편 초소쪽을 조준한 상태로 기관총을 거치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격의 정확성을 반드시 의도성으로 연결짓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총기가 발사된 북한군 GP에는 통상 20∼30명의 경계 근무자들이 배치돼 주야간 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며,오전 6시를 전후해 근무교대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긴장조성을 통해 핵카드 전술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면 기관총 4발을 발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했을 것”이라며 우발적 총격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적잖은 파장 생길 수도 군 당국은 일단 이번 사건이 의도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향후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보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경우 상황은 엉뚱한 쪽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즉 외교적 채널을 통해 북한핵 문제를 풀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힘을 얻으면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추가로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면 고의성 여부에 관계없이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악화될 수도 있으나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98년이후 북한 주요 도발일지 ▲1998.2.2 JSA(공동경비구역) 북한군 1명 2회 MDL(군사분계선) 월경 ▲ 〃 3.12 북한군 12명 MDL 40∼50m 월경(우리측 경고방송 2회,경고사격 20여발) ▲ 〃 6.11 북한군 GP(경계초소)서 아군 GP 방향 자동소총 4발 발사 ▲ 〃 6.22 속초 동방 11.5마일 해상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사체 9구) 발견 ▲ 〃 7.12 동해시 해안서 무장간첩 사체 1구,침투용 수중 추진기 1대 발견 ▲ 〃 12.18 여수 앞바다 침투 북한 반잠수정 1척 격침 ▲1999.6.7∼6.15 서해 NLL 북 경비정 침범,연평해전 ▲2001.11.27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2002.6.29 북 경비정 NLL 침범,서해교전 ▲2003.7.17 북한군,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우리측 경고사격)
  • 이런 책 어때요 / 세상을 움직인 악

    미란다 트위스 지음 / 한정석 옮김 이가서 펴냄 세계사에 돌출된 대표적인 악인들의 행적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경계한다.미치광이 황제 칼리굴라,‘동방의 폭풍’ 훈족 아틸라왕,스페인의 종교재판관 토르케마다,잉카제국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부헨발트의 마녀’ 알자 코흐 등 절대권력을 거머쥔 16명의 사악함을 다뤘다.신은 사랑과 용서를 표상하지만,역사는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잔혹함으로 가득하다.이반 대제는 살육의 축제가 끝나면 몇 주일 동안 제단 앞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는 의식을 거행했으며,‘피의 여왕’ 메리1세는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수백명의 신교도들을 불태워 죽였다.1만 9500원.
  • 경제 플러스 / 쌍방울 대표이사 직무대행 장부웅씨

    쌍방울은 서울지방법원이 송영호 대표이사의 직무대행자로 장부웅씨를 선임했다고 10일 밝혔다. 신임 장 대표이사 직무대행은 동방유량 대표이사 부사장,신동방 대표이사 사장,뉴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삼양유지사료 법정관리인 등을 지냈다.
  • 복수의 칼앞에 마주선 우정/16일 개봉 청풍명월

    코미디와 섹스를 조미료삼아 고민없이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요즘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든 액션사극 ‘청풍명월’(제작 화이트리엔터테인먼트·16일 개봉)은 이래저래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조선의 역사적 사건 ‘인조반정’을 모티브로 끌어들인 의고적(擬古的) 발상부터 그렇다.감각적인 이야기와 소재에 길들여진 신세대 주류관객층을 의식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접근방식이다.굵직한 특기사항 또 하나.요즘 만들어진 사극이 맞나 싶게,철저히 아날로그식 액션만을 고집했다는 사실이다.공중을 날아다니는 팬터지 액션이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눈속임 화면은 단 한 장면도 없다. 장대한 스케일의 영화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연기파 배우 조재현과,한동안 스크린 활동이 뜸했던 최민수다.엘리트 무관 양성소인 청풍명월에서 지환(최민수)과 규엽(조재현)은 뛰어난 검술에다,우정도 유별나다. 그러나 수련이 끝난 뒤 규엽은 국경부대로,지환은 궁궐수비군으로 나뉘어 배치되면서 숙명적인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다.규엽은 부대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반정에 가담하고 궁성을 수비하는 지환에 칼을 겨눈다. 검술액션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미덕이 많은 영화다.칼날이 부딪치는 살벌한 소리가 한순간도 화면을 떠나지 않은 채 고강도의 검술이 이어지는 데다,끔찍할 만큼 생생히 리얼리티를 살려내는 극사실주의 표현기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는,이내 반정의 소용돌이가 있은 지 5년 뒤로 시선을 옮긴다.그리고 숙적으로 맞서게 된 두 남자의 비극적 운명을 비장감 넘치게 그리는 데 주력한다.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이유로 스승이 무참히 죽임을 당한 뒤 스승의 딸 시영(김보경)과 숨어지내던 지환이 피의 복수를 시작하는 것. 일절 기교를 부리지 않는 극사실주의 영상은 영화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비린내가 전해올 듯 내내 선혈이 튀고 잘린 목이 바닥에 나뒹굴기 예사인 화면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육중한 갑옷차림에 난이도 높은 검술을 구사하는 배우들의 노고는 한눈에도 읽힐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드라마다.우정과 배신,복수 등의 극대비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재주는 보이지 않는다.실제 같은 활극에 눈만 긴장시킬 뿐 심리적 긴장을 유발할 장치없이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밋밋한 이야기 얼개는,인내심없는 관객들을 힘들게 할 것 같다.지환과 시영의 연애담이나,두 남자와 시영의 삼각관계라도 선명한 톤으로 묘사했다면 드라마가 한결 촘촘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동방불패’‘신용문객잔’‘황비홍’의 무술감독 원빈이 무술을 지도했다.‘결혼이야기’‘북경반점’등을 연출한 김의석 감독작. 황수정기자 sjh@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