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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국가정체성 위기와 법제의 정비/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시론] 국가정체성 위기와 법제의 정비/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총선을 마치고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정치권의 혼란은 근래에 보기 드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민주정치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와 비중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최근 정치권의 혼란상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혼란과 연계되어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총선의 결과 제3당으로 부상했던 통합진보당의 내홍이다.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과정의 탈법과 부정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결국 일부 국회의원들에 대한 자격심사 및 제명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친북세력들의 활동에 대한 비판과 경계 또한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적단체인 범민련 노수희 부의장이 밀입북한 사건이나 같은 단체 간부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막말 소란을 피웠던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또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요청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남북한의 적대적 대립과 이를 배경으로 한 이념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비용, 인력을 소모해 왔다. 최근에 들어와 민주화의 진전 및 북한에 대한 경제적 우위에 대한 자신감 등을 바탕으로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의 이념적 갈등이나 대립이 없다는 것도, 이를 무시해도 좋다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다양한 이념이나 주장이 대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를 무제한 내버려 두면 민주주의 자체가 파괴될 수 있음은 나치의 예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방어적 민주주의로서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키는 제도적 장치들을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주의와 이를 통해 실현되는 인권이 국가공동체의 중심적 가치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국가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수호는 모든 국가기관과 더불어 모든 국민의 과제이며, 민주적 법질서의 존립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위헌정당해산제도, 민주주의를 침해하려는 기본권 오남용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제한하는 것, 그 밖에 신원조회제도나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정치형법에 의한 보호조치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들이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수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안보를 이유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했던 것처럼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현행 형법 및 국가보안법 등에서는 범죄단체나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등의 구성이나 가입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그 단체 자체의 해산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 때문에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로 6 ·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가 국가보안법에 따른 이적단체임을 확인하였으나, 이 단체를 강제해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때문에 해산하지 못했던 예도 있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개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보안법이 갖는 상징적 의미 덕분에 갈등이 심해졌고, 결국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범죄단체나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등의 해산 필요성은 우리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민주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독일의 결사법에서도 해산제도가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적용하여 해산한 단체들도 적지 않다. 일본도 파괴활동방지법을 제정하여 불법단체에 대한 해산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의 예를 참고할 때, 우리도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아니라 범죄단체 등의 해산에 관한 일반적인 법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불법행위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를 통한 국가정체성의 확립 또한 더욱 확실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신명수 前회장 35억 자택 강제 경매

    신명수 前회장 35억 자택 강제 경매

    노태우(80) 전 대통령의 사돈인 신명수(71)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감정가 33억원짜리 자택(서울 성북구 성북동 81-6)이 5일 경매로 넘어갔다. 신 전 회장은 입찰 보증금만 3억 3200만원에 달하는 ‘알짜’ 자택에서 30년 넘게 살아 왔으나 개인 빚을 갚지 못해 집을 내놓는 처지가 됐다. 5일 경매정보업체인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신 전 회장의 자택은 서울중앙지법 2계에서 경매에 부쳐져 단 한 번만에 35억 210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106.3%. 앞선 법원 감정평가에서 이 자택의 감정가는 33억 1199만원으로 책정됐다. 토지(760㎡) 29억 6400만원, 건물(728.5㎡) 7850만원, 저택 내 수목 2억 3430만원 등이다. 부동산태인 관계자는 “성락원길 바로 옆의 자택은 상류층 거주지 중에서도 좋은 곳에 자리한다.”면서 “자택 맞은편이 수목으로 뒤덮여 사생활 보호도 완벽하다.”고 전했다. 자택에 걸린 다양한 가압류는 신 전 회장의 어려워진 형편을 대변했다. 선순위 권리가 포함된 채권 총액은 256억 1500만원. 이 중 1억원의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경매 청구자로 나섰다. 예보는 선순위 채권인 푸른저축은행의 근저당권 10억여원과 정원개발의 17억여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다른 채권자와 나눠 갖게 된다. 예상 배분 금액은 700만원에 불과하다. 한편 이번 자택 경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신 전 회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 전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지 10년 만인 1999년 신동방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신동방그룹도 2004년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신 전 회장은 1990년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인 재헌씨와 자신의 장녀인 정화씨를 결혼시키면서 노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었으나, 지난해 10월 정화씨가 재헌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둘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도 “재임 당시 비자금 230억원을 신 전 회장에게 맡겼는데 이 돈을 신 전 회장이 마음대로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썼다.”면서 최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7) 광주 남구 정율성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7) 광주 남구 정율성로

    중국대륙에 한류(韓流)가 한창이다. 한류의 원조는 누구일까? 드라마 대장금의 이영애? 동방신기? 소녀시대? 너무 약하거나 최근 일이다. 이미 1970~198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중국 13억 인민들이 열광하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다.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鄭律成·본명 정부은·1914~1976)이다. 한국인에게는 낯선 인물이거나 이념 다툼의 당사자쯤으로 치부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3대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사회과학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3억명 이상이 그에 대해 알고 있으며, 10억명 이상이 그가 작곡한 노래를 최소 한 곡 이상 알고 있다. 1992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개막식의 첫머리에 그의 노래가 불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율성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백운동에는 광주천을 가로지르는 대남대로 곁을 따라 푸른길공원이 꾸며져 있다. 폐철로의 변신이다. 2㎞ 남짓 길게 이어진 푸른길공원에서 가볍게 걷거나 운동기구에 매달려 있는 시민들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그 푸른길공원이 시작하는 지점,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는 곳에 약간 낯선 흉상이 세워져 있다. 둘레에는 대나무가 성기게 심어져 있다. 펜을 든 오른손과 허공을 움켜쥘 듯한 왼손, 뭔가를 부르짖는 입모양이 국내에서 쉬 보는 조각풍과는 다르게 힘차고 역동적이다. 바로 광주 남구 양림동이 고향인 정율성의 흉상이다. 중국 광저우에서 제작해 광주 남구에 기증한 작품이다. 이 흉상에서부터 정율성로가 시작된다. 233m의 짧은 길이다. 하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현대 역사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흔적이 굵게 새겨져 있는 곳이다. 정율성거리전시관이 길 왼쪽 벽면에 꾸며져 있다. 그의 사진과 함께 그가 작곡한 ‘옌안송’(延安頌)의 악보 동판이 있고 관련 기록물, 사진, 이력 등이 벽면을 따라 이어졌다. ‘옌안송’과 더불어 ‘팔로군 행진곡’(八路軍行進曲) 등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상물도 준비돼 있지만 아쉽게도 내년 초로 예정된 거리전시관 리모델링 작업과 맞물려 꺼져 있었다. 양림동, 항일독립운동, 한·중관계, 음악예술 등 네 개의 테마로 마련돼 있다. 길 중간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정율성 생가가 있다.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허름한 골목길 20~30m 안쪽에 ‘정율성로 16-7’의 생가가 있다. 입간판이 하나 세워져 있을 뿐, 지금은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집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일부러 광주까지 들르는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다. 거리전시관 방명록에 빼곡한 이름의 상당 숫자가 중국사람이다. 하지만 사실 정율성 생가와 관련해서는 일부 논란이 있다. 정율성이 1960년대 직접 쓴 ‘나는 전남 광주 양림정 빈농에서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력서(我的政歷)가 제시됐음에도 논란은 쉬 그치지 않았다. ‘광주 동구 불로동’이라는 주장을 일부 학계 등에서 여전히 제기한다. 정율성의 부인과 딸, 중국 정부까지 나서서 개입했을 정도다. 논란이 거듭되자 2007년 중국 정부는 아예 부산에 이은 지역 총영사관을 광주 남구 월산동 대남대로 413에 세우기도 했다. 사실상 ‘양림동 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의 부친 정해업은 일본의 병탄에 항의하며 낙향한 뒤 일제의 교육을 받지 않기 위해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4남 1녀의 자식들을 모두 사립학교에 보냈다. 정율성의 큰형 정효룡과 둘째 형 정인제는 모두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불령선인으로 몰리자 중국으로 피해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셋째 형 정의은도 김원봉이 단장으로 있는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다. 정율성의 매형 박건웅은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육주임으로 일했다. 이러한 민족적 기개와 혈통을 가진 집안에서 자랐기에 정율성 또한 남달랐다. 전주 신흥중학교를 다니던 정율성은 셋째 형을 따라 중국으로 가 1933년 5월 8일 난징(南京)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갔다. 음악을 좋아하는 정율성을 이해한 김원봉은 난징군사학교에서 일본인의 전화를 도청하는 비밀공작을 맡기는 한편, 주말에는 상하이(上海)에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그에게 성악을 가르친 러시아인 교수는 정율성의 천부적 재능을 칭찬하며 “이탈리아로 가 음악공부를 하면 동양의 대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유학을 적극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국의 독립에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율성은 이때부터 정율성은 상하이, 난징의 중국공산당원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고, 김원봉은 이에 실망해서 지원을 끊고 만다. 정율성은 1937년 옌안(延安)으로 건너가 루쉰예술학원 음악학부에 입학한다. 여기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녀인 딩쉐쑹(丁雪松)을 만나 평생의 반려로 삼았다. 그리고 1938년 봄에 ‘옌안송’을 발표했다.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함을 잃지 않는 교향곡 풍의 노래다. 그는 내쳐 1939년 ‘팔로군 행진곡’을 만들었다. ‘복잡한 사상’으로 의심받기 일쑤였던 조선인 청년 정율성은 일거에 중국 최고의 유명인 중 한 사람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가’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1945년 해방 이후 조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으나 미 군정 치하에 들어간 남한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중국공산당은 그에게 평양행을 지시했다. 뜻하지 않게 1946~1949년 북한에서 머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음악활동을 이어간 정율성은 1952년 중국으로 돌아와 1966년까지 중국가무단, 중국음악가협회, 중앙악단 등에서 활동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창작활동을 제한받는 고초를 겪은 뒤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자마자 명예회복을 이뤘으나 곧 고혈압으로 숨지고 말았다. 중국 건국의 100대 영웅으로 꼽힌다. 최영호 남구청장은 “최근 우리 사회 안팎에 시대착오적인 이념 몰이 흐름이 있다고 해서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인 인물까지 함께 잃어버리는 것은 역사적인 손실”이라면서 “정율성거리전시관에 더욱 입체적이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아 정비해서 한·중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매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광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8회는 부산 중구 ‘40계단길’을 소개합니다.
  •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獨 바로크 음악 본고장서 공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獨 바로크 음악 본고장서 공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23~24일 이틀간 독일 바로크 음악의 중심 도시인 드레스덴과 바이마르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과 협연으로 진행한다. 23일에는 독일 드레스덴의 세동방박사교회에서, 24일에는 바이마르의 수도원 교회에서 공연을 갖는다. 바이마르는 작가 괴테와 철학가 니체가 머물렀고, 작곡가 리스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합창단은 이번 공연에서 ‘달아달아’와 ‘쾌지나 칭칭 나네’를 비롯해 ‘양산도’, ‘군밤타령’ 등 우리 민요에 기초한 창작동요를 선보인다. 또 이영조 전 예술영재교육원장이 작곡한 ‘아리랑 고개 위의 들장미’를 독일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불러 양국 어린이의 아름다운 조화를 연출할 예정이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2010년 독일 드레스덴 현지에서 처음 공연한 데 이어 지난해는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이 서울 공연을 가지는 등 양측은 활발한 예술 교류를 하고 있다. 23일 공연에서는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 상임 지휘자인 유르겐 베커의 은퇴 무대도 함께 열린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아이엠’ 대한민국 K-POP의 현주소를 말하다

    ‘아이엠’ 대한민국 K-POP의 현주소를 말하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샤이니, F(x), 보아, 강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류 아이돌 스타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리얼 청춘 바이오그라피 ‘I AM’(이하 아이엠)이 국내 관객에게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 가수들이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친 공연 실황과 함께, 수많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엠’은 다큐멘터리이자 성장영화의 성격을 띤다. 마이클 잭슨이나 밥 말리 등 아티스트의 공연실황이나 그들의 속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영화관에서 개봉된 적은 있지만, ‘아이엠’ 출연 가수들처럼 젊거나 어리고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은 작품은 많지 않았다. 공연실황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장르적 성격을 가진 만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공연장면과 국내 대표 아이돌 스타들의 오디션 당시 동영상, 멤버 별 일대 일 인터뷰 등 다양한 스토리는 마치 퍼즐처럼 서로 다른 조각으로 분리돼 있는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하나의 모습으로 합쳐진다. 슈퍼주니어가 데뷔 무대를 마친 뒤 한데 뭉쳐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멤버 려욱만 화장실에서 남몰래 혼자 울어야 한 사연, 5명으로 시작했던 동방신기가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2인조로 다시 무대에 서기 직전 떠올린 생각, 예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F(x) 설리가 눈물을 흘리며 안무연습을 하는 모습 등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화려한 스타의 진짜 속마음 한 켠을 보면 인생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이엠’은 환호성과 눈부신 조명 아래 서는 아이돌 스타 개개인을 비추는 동시에, 대한민국 음악의 현주소를 넌지시 과시하기도 한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최초로 공연하는 아시아 아티스트라는 자부심과 그들에게 열광하는 파란 눈의 팬들은 K-POP(케이팝)의 열기가 그저 허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때문에 오로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땀 흘려온 그들의 성과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엠’이 SM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광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껄끄러운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이 ‘광고’는 ‘SM 제국’이 몇 년간 공들여 제작한 ‘상품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그들의 ‘상품들’을 최고의 퀄리티로 업그레이드 하는 철저한 트레이닝과 관리시스템도 공개한다.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개개인의 땀과 눈물이 필수 과정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국의 거대한 자본이 땀과 눈물 뒤에서 강력하게 그들을 뒷받침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이엠’은 대한민국 음악과 문화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과시하는지, 또는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땀과 노력, 서러운 눈물,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SM엔터테인먼트는 그 미래가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합동방제로 모기 일망타진” 구로·양천·영등포, 방역반 조직

    구로·영등포·양천구가 모기 퇴출을 위해 뭉쳤다. 구로구는 이들 구와 함께 모기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여름철 모기 발생이 많은 안양천과 도림천을 대상으로 합동방제 활동을 펼친다고 19일 밝혔다. 한 지역에서만 방제 활동을 하면 모기들이 구 경계를 넘어 다른 구로 이동하기 때문에 동시 방제 활동을 실시해 이 같은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3개 구는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안양천과 도림천에서 방제 활동을 전개한다. ‘합동방역반’이라는 이름으로 구별 4명씩 총 12명의 기동 조직도 꾸렸다. 이와 함께 구로구는 하절기 방역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모기 퇴치약이 하수구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문어발식 보조 기구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또 지역 주민이 스스로 새마을 자율방역단을 꾸려 소독활동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오는 10월까지 6개월 동안 모기 개체수를 세는 포충기를 동별로 2대씩 운영하고, 모기 발생량을 홈페이지(www.guro.go.kr)에 공개해 주민들이 모기 확산 정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로구 관계자는 “주민들이 모기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일망타진하겠다는 각오로 뛰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진범 따로 있나

    대법원 3부(주심 박일환 대법관)는 14일 “노숙소녀를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해 위증 혐의로 기소된 정모(33)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재 상해치사 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복역 중인 정씨가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해석돼 정씨가 요청한 재심 청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부는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결정적 증거는 정씨 등의 자백과 증언이 유일한데 범행 동기, 사건현장의 이동방식과 경로, 폭행 당시 상황, 폭행과 사망추정 시간의 불일치, 자백 번복 경위 등에 비춰 신빙성을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피고인의 증언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라고 인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2008년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노숙하던 김모(당시 15세)양을 때려 숨지게 한 이른바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정씨는 공판 과정에서 함께 기소된 공범의 증인으로 나와 “우리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해 위증죄로 추가기소됐다. 원심은 현장 감식에서 정씨의 범행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씨는 유죄가 확정된 뒤에도 무죄를 주장하며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지만 고법에서 기각돼 다시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정씨가 수사 과정에서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정씨가 무죄를 인정받으면 형사보상법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 정씨는 만기 출소를 두 달여 앞두고 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노태우 前대통령, 사돈 신명수 前회장 수사의뢰

    노태우(80) 전 대통령이 지난 1일 사돈인 신명수(71)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배임 혐의를 수사해 달라며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냈다. 대검찰청은 10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에 배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을 내기 위해 진정을 냈다.”면서 “대통령 재임 때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빌딩 매입과 강남 동남타워 신축 비용으로 신 전 회장에게 420억원을 맡겼다. 신 전 회장이 이 돈으로 불린 재산을 동의 없이 처분했다.”는 내용을 진정서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검 중수부는 지난 1995년 수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이 40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 가운데 230억원이 신 전 회장에게 건네졌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에게 추징금으로 2628억원을 내라고 통보했으며, 노 전 대통령은 현재 추징금의 91%를 납부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1) 경기 남양주 수종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1) 경기 남양주 수종사 은행나무

    강원도 태백의 깊은 골,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儉龍沼)에서 솟아오른 샘은 남한강이 되고, 금강산 금강천에서 흘러온 또 하나의 물줄기는 북한강이 된다. 두 강 줄기는 경기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나 호흡을 고른 뒤, 민족의 젖줄 한강이 되어 수도 서울에 접어든다. 두 강물의 합강(合江) 풍경을 가장 잘 내다볼 수 있는 곳은 맞은편의 운길산 중턱쯤이다. 제법 가파른 운길산 등산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물머리의 저녁 노을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오르는 사진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걷기 열풍과 함께 늘어난 등산객들이 부쩍 눈에 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방의 사찰 가운데 최고의 풍광 “깊은 산은 아니지만, 수도권에서 이만큼 울창한 숲도 흔치 않아요. 숨이 찰 정도로 헉헉거려야 하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보면 수종사에 닿지요. 숲도 좋지만, 절집 마당에서 보는 두물머리 풍경이 여느 등산 코스보다 좋지요.” 주말마다 수종사를 찾는다는 등산객 박순철(64)씨는 천천히 산을 오르며 한마디 던진다. 도시에 살면서 가까이에서 숲과 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어 좋다는 이야기다. 그가 느릿느릿 오르는 해발 610m의 운길산은 큰 산은 아니라 해도, 길이 가팔라서 제법 숨이 턱에 찬다. 그 중턱에 아름다운 절집 수종사(水鐘寺)가 있다. 법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은 새로 지은 것이지만, 수종사는 유서 깊은 천년 고찰이다. 이 지역 태생인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수종사를 “신라 때 지은 고사(古寺)”라며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물이 흘러나와 땅에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기 때문에 수종사라 한다.”는 기록을 ‘수종사기’(水鐘寺記)에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의 자취를 찾기 위해 수종사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의 등산객처럼 건강을 위한 등산 코스로, 혹은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일 뿐이다. 특히 저녁 노을 붉게 물들 무렵 수종사 법당 앞마당에서 내다보는 두물머리 풍광은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이다. 이 풍광을 조선 전기의 명문장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동방의 사찰 풍광 가운데 최고의 전망’으로 꼽았다. 수종사의 아름다운 풍광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쌓아 온 심미안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셈이다. ●옛 절 중건 지시한 세조가 손수 심어 절집을 찾는 사람들의 자취는 허공으로 흩어지지만 그 안에는 수종사의 긴 역사를 증거하는 자취가 하나 있다. 큰법당을 비롯한 여러 전각 가장자리 언덕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도 나무의 기세는 대단하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 앞의 안내판에는 나무의 키를 35m, 가슴높이 줄기 둘레를 6.5m라고 했다.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 1982년에 측정한 값이지만,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눈짐작으로는 대략 25m가 채 안 돼 보인다. 큰 줄기가 부러진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갑자기 나무의 키가 줄어들었을 리도 없다. 아무래도 애당초 부실한 측정이었지 싶다. 그러나 나무에는 숫자로 드러낼 수 없는 넉넉한 기품이 담겼다. ‘수종사’라고 이 절을 명명한 조선의 임금 세조가 손수 심은 나무인 까닭이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는 전국의 물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가 오대산 상원사의 약수로 목욕을 하고 돌아오면서 이곳 운길산 아래 마을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밤 세조는 신비롭다 해야 할 만큼 청아한 종소리를 들었다. 세조는 신하들을 시켜서 소리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했다. 신하들은 “운길산 중턱에 폐허가 된 천년 고찰이 있는데, 그 터의 한쪽 바위 굴에 열여덟 나한이 줄지어 앉아 있다.”며 “신비로운 종소리는 그 바위 굴 옆의 큰 바위 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라고 아뢰었다. 물소리의 신비를 지키고 싶었던 세조는 옛 절을 다시 고쳐 세우라고 지시하면서 그 절의 이름을 손수 물 수(水)와 쇠북 종(鐘)을 써서 수종사라 했다. 1459년의 일이다. 절집이 완공되자 세조는 몸소 가파른 산길을 올라 종소리를 내는 샘물을 다시 찾아보고는 절집 마당 한켠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때가 정확하니 나무의 나이도 정확하게 554살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임금의 손길을 말없이 증거하는 음전한 생김새의 나무다. ●500년에 걸친 역사의 흐름으로 남아 세조의 은행나무는 사방으로 팔을 넓게 펼쳤다. 그 폭이 무려 20m나 된다. 더 넓은 세상을 품고자 했던 임금이 심은 나무여서인지 그의 품은 의젓하고 넉넉하다. 오래도록 거침없이 흘러야 할 민족의 젖줄 한강을 굽어 살피는 늠름함이 나무 줄기 깊숙한 곳에 배어 있다. 은행나무가 서 있는 언덕은 산 아래의 두물머리 주변 풍광을 조망하기에 좋은 자리다. 수종사 법당 앞마당과 함께 ‘동방 최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자리다. 넓게 펼친 나뭇가지 아래에 들어서서 강촌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평화로워진다. 나무 앞에 놓인 벤치에는 짧은 시간 동안 몇 쌍의 젊은 연인들이 스쳐 지났다. 이 땅의 평화와 역사를 지키며 서 있는 임금의 나무 아래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사람 살이가 그렇게 하나 둘 쌓인다. 강마을에 땅거미 지고, 나뭇잎 사이로 비껴드는 햇살에 노을 빛이 스며든다. 옛 임금이 심은 은행나무 아래로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가쁜 숨결이 새 역사 되어 천천히 내려앉는다. 글 사진 남양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수종사는 자동차로도 찾아갈 수 있지만,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등산로가 좁고 가팔라서 운전이 쉽지 않은 데다 주변 풍광이 걷기에 좋기 때문이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전철을 이용하면 남양주 조안면의 운길산역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운길산역 앞 삼거리에서 강변으로 이어진 국도 45호선의 청평 방면으로 800m쯤 가면 나오는 보건소 삼거리에서 수종사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300m쯤 가서 오른쪽 길로 약 1.5㎞ 오르면 수종사에 닿는다.
  • 전두환 손녀 호화 예식 사회자, 누군가 했더니…

    전두환 손녀 호화 예식 사회자, 누군가 했더니…

    KBS 윤인구(39) 아나운서가 국내 최고급 호텔에서 치러진 전두환(81) 전 대통령의 손녀 결혼식에서 사회를 본 것으로 드러나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53) 시공사 대표의 장녀 전수현(26)씨는 지난 5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중소기업 이사 김모씨와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전 전 대통령과 이순자씨 부부, 차남인 전재용씨와 탤런트 박상아씨 부부,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 등 6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례는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이 맡았고 사회를 윤 아나운서가 봤다. 신라호텔의 다이너스티홀은 장동건·고소영, 고수, 전지현, 강호동 등 톱스타들이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 통상 억대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의 상징으로, “전 재산 29만원”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펴온 전 전 대통령의 손녀가 공개적으로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데 대해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날 사회를 맡았던 윤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오고 있다. KBS 아나운서실 관계자는 “윤 아나운서가 결혼식 사회를 본 것은 전수현씨와 개인적인 친분 때문으로 알고 있다.”면서 “영리 목적의 외부 행사가 아닌 개인적 친분으로 인한 사회는 허용된다.”고 말했다. 1997년 KBS에 입사한 윤 아나운서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당질이자 윤치영 초대 내무장관의 손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⑩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고(故) 장계량(張啓良)씨

    [기획]최고경영자=⑩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고(故) 장계량(張啓良)씨

    단돈 10원짜리도 함부로 쓰는 일이 없었다. 꼭 지갑에 넣었다 꺼내 쓰는 구두쇠 사장이었다. 창업 당시엔 5전짜리 콩국수를 먹고 전무가 된 뒤에도 일본에 출장을 나가면 1백「엔」짜리 메밀국수 외에는 입에 대지 않았다. 이렇게 모은 돈 1억 2백만원을 임종 직전 선뜻 사회에 되돌려 놓았다.『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어야 아이들만 버릴뿐』이라는 주장. 지난 5일 작고한 전 한미(韓美)식품 사장 장계량(張啓良)씨는 참된 기업인이 어떤 것인가를 임종에서 보여 주었다. 북에 두고 온 아들 그리며···사원 가족·문중 자녀 위해  우리나라 기업인 중 자기 재산을 몽땅 사회에 되돌려 보낸「케이스」는 유한양행(柳韓洋行)의 유일한(柳r一韓)씨에 이어 이번 작고한 장(張) 사장이 두번째. 장(張)씨의 재산이 단신 월남, 맨손과 땀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라는 데 더 의의가 깊다.  간암(肝癌)으로 지난 해부터 연세(延世)대 의대 병원에 입원, 투병하던 장(張) 사장은 자신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 지난 해 12월 중순, 녹음기와 변호사를 불러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겨 두었다.  『맨손으로 월남, 오늘의 한미(韓美)식품과 칠성(七星)음료를 이룩했으니 유한은 없다. 다만 통일이 되어 고향에 못 가본 것이 한일 뿐. 내 소유로 되어 있는 한미(韓美)식품의 주식 1억 2백만원 전액을 기금으로 인동(仁同)장학회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인동(仁同)장학회는 ①「펩시」에 3년 이상 근무한 전 종업원의 자녀 ②내 고향 평북(平北) 귀성(龜城) 군민의 자녀 ③인동(仁同) 장(張)씨 문중의 자녀들로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한 수재들을 도와 주기 바란다. 단 명예직인 장학회 이사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겨 두었다가 통일이 되거든 북(北)에 남겨 두고 온 내 아들에게 물려 주도록. 못난 아비의 마지막 선물이다』 50원짜리 구내식당 점심···사원들에겐 자상한 사장  이 유언에 따라 한미(韓美)식품 중역진은 곧 인동(仁同)장학회 준비위를 구성, 올해부터 이를 실시키로 했다. 지난 7일 경기도 벽제면에 묻힌 장(張) 사장의 묘소 옆에는 북(北)에 두고 온 장(張) 사장 부친의 묘비도 세워져 있는데 이는 통일이 되거든 이 묘비를 부친의 산소에 세워 달라는 장(張) 사장의 애절한 유언이 있었기 때문.  「펩시·콜라」판매로 지난 해 23억원을, 칠성(七星)「사이다」로 30억원을 벌어들인 칠성(七星)·한미(韓美)식품은 원래가 7명의 동업자들로 구성된 합명회사였다.  전 칠성(七星)음료 사장인 최금덕(崔今德)씨가 수원에서 자그마한「사이다」공장을 경영하다가 경영난에 몰리자 50년 봄 동업자를 구한 것이 칠성(七星)의 시초. 최금덕(崔今德)씨를 비롯 작고한 장(張) 사장, 주동익(周東益·작고)씨, 김명근(金命根)씨, 박운석(朴云錫)씨, 최창문(崔昌文·작고)씨, 그리고 우(禹)모씨(납북) 등 7명이 모였다. 대부분이 단신 월남한 실향민(失鄕民)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성이 모두 달랐다. 회사 이름은 동방(東邦)음료였지만「칠성(七星)」의 상표를 붙인 것은 칠성(七姓)이 모였대서 생긴 이름이었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공장을 차렸을 때만 해도 이 7명이 주주이자 사장이자 공장 직공이며 사환이었다. 모두들 작업복 바지에「잠바」를 입고「사이다」를 만들어 들고 나가 팔았다. 공장 앞 개성(開城) 아주머니가 경영하던 판잣집 콩국집에서 3끼 식사를 하고 어쩌다 잘 팔리면 호떡을 사다가 호떡「파티」를 벌이는 게 최고의 호사.  6·25 동란이 터진 이듬 해 박재화(朴在華·현 회장)씨 최희태(崔希泰·현 이사)씨 등이 새로운 동업자로 참가하고 그 뒤 다시 김영태(金永泰·지난 7일 장(張) 사장의 뒤를 이어 사장에 취임) 강내근(姜迺根·이사)씨 등이 끼어 들었지만 칠성(七星)을 키운 원「멤버」는 칠성(七星)의 창업자들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칠성(七星)은 국내 청량음료 업계를 파고 들기 시작, 60년대에 와서는「톱·메이커」로 성장했다. 칠성(七星)의 성장으로「라이벌」이던 서울「사이다」가 도산 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인수, 주동익(周東益)씨와 박운석(朴云錫)씨, 김명근(金命根)씨 등이 분리,독립해 나갔다.  한동안 호경기를 누리던 칠성(七星)은 67년「코카·콜라」의 상륙과 함께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칠성(七星)은 국내 청량음료 업자들과 힘을 합쳐「코카」의 상륙을 막으려 애썼으나 실패, 이 때 장(張) 사장은『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도 외국 것을 들여다 싸우자』고 제의, 김인선(金寅善·현 영업 제2과장)씨를 통해「펩시」를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張) 사장은 거의「쇄국적」이랄 정도로 외국 자본의 한국 침투를 꺼리는 사람. 합작 투자를 거절하고 오직「펩시」원액만을 사들인다는 조건부로 한미(韓美)식품을 68년 창설했다.「펩시」측 미국인 중역을 맞을 땐 꼭 한복 차림이었고 요정엘 가도 자신이 장구치고 한국 춤을 추었다고. 69년 6월 영등포 공장이 준공되었을 땐 외국인 내빈이 많자 일부러 한복으로 갈아 입고 나오기도 한 외고집이었다고.  49년 혈혈단신 월남한 장(張) 사장이었던지라 자신에겐 마냥 인색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에겐 더 없이 잘 해주었다고. 명절 때면 꼭 떡과 고기를 가지고 공장에 나와 공장 종업원들과 수위들에게 나누어 준 인자한 사장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50원짜리 구내식당의 점심을 먹고 10원짜리도 꼭 지갑에 넣어두었다 쓰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김인선(金寅善)씨와 함께 68년 동남아 출장을 갔을 때도 꼭 1백「엔」짜리 메밀국수만 찾아 먹어 김(金)씨가『이러단 굶어죽겠다』며 사표 내겠다고 협박한「에피소드」까지 갖고 있다. “돈 남겨주면 사람 그르칠까봐 가족 안줘”  칠성(七星)과「펩시」의 연간 총 매상이 한해 55억원으로 오른 70년대에 사장직을 맡았으나 이 구두쇠 기질은 변함 없었다.  한때 매상 55억원의 기업체 사장이면서 융자를 얻으러 산은(産銀) 총재를 찾아갈 때도「잠바」차림이었다면 알조(죠). 차림이 너무 허술해 면담을 거절 당하자『나도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며 총재실 문을 밀치고 들어선 장(張) 사장이다.  직원들이 어쩌다 가불 신청을 한면 절대로 가불 안해주는 사장이었으면서도 유능한 충각 직원이 장가를 가면 선뜻 자기 돈에서 50만원을 내주기도 하고 사정이 딱한 직원에겐 자기 돈을 이자없이 꿔주기도 했다.  『자식이나 친척들에게 돈을 남겨 주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을 그르치게 한다』는 게 장(張) 사장의 평소 주장. 간암(肝癌)과 싸우면서 장(張) 사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육영사업을 벌일 것을 계획했다가 끝내 못이루고 인동(仁同)장학회 설립을 유언으로 남겼다.  『내 평생 아무런 원도 없다. 다만 단신 월남해 북(北)에 두고 온 부모님께 효도 못하고 처자식들에게 몹쓸 아비된 것이 부끄러울 뿐이고 통일되는 걸 못보고 죽는 게 한이 될 뿐. 그러나 내 평생을 두고 키운 칠성(七星)·「펩시」의 가족들을 위해 인동(仁同)장학회를 세운다면 더 이상 큰 보람은 없다. 평소 구두쇠 사장이라고 나를 나무랐겠지만 여러분 자녀를 공부시키는데 내 재산을 돌려드리니 이젠 구두쇠 소리를 말아 주게』  지난 7일 칠성(七星)·「펩시」사장(社葬)으로 치러진 장(張) 사장의 유언이 녹음「테이프」서 흘러 나오자 장례식은 그대로 울음바다가 됐다. 참된 기업인의 깊은 뜻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  향년 55살의 아까운 나이 북(北)에 1남(男)1녀(女), 남(南)에 1남(1男)을 두고 갔다.<김창웅(金昌雄) 기자>   <편집자주>=「최고경영자」는 생존해 있는 경영자 중 각 부문별「톱·메이커」를 다루게 돼 있으나 이번 회만은 장(張) 사장의 갸륵한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작고한 분을 골랐읍(습)니다. [선데이서울 73년 3월 18일 제6권 11호 통권 제23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스웨덴,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 반하다

    소설가 황석영이 오는 10일 스웨덴으로 출국한다. 지난해 11월 스웨덴에서 번역·출간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현지 언론과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자 스웨덴작가협회에서 그를 초청한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2002년 일본어판이 나왔다. 2004년 7월 중국어판, 2005년 2월 프랑스판과 페이퍼백이, 같은 해 9월 독일어판이 나왔다. 2009년 9월에 영어판, 10월에 페이퍼백이 나왔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전 세계 각 대륙에서 모두 출간된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스웨덴에서 출간되자마자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예테보리 포스텐’지는 “이 책은 유럽에서는 68좌파에 해당하는 한국의 세대를 다루고 있다. (중략) 1980년에서 1998년에 이르는 교도소 묘사는 현기증이 나는 방식으로 스탈린 시대 소비에트의 감옥 묘사를 떠올리게 한다. 황석영의 소설은 현대 고전 같은 느낌이 든다. 유럽에 새로운 빛 한 줄기를 던져 주는 동방의 크나큰 소설이다.”라고 소개했다. ‘네리케스 알레한다’지는 “황석영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들을 교대로 배치한다. 이 점이 소설 구성에 활력과 균형을 부여한다. 황석영의 자연 묘사는 훌륭하며 한국의 일상생활과 문화에 대한 생각들은 흥미진진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달고 쓰디쓴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스웨덴 중앙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D)는 ‘올해의 좋은 책 3권’에 ‘오래된 정원’을 선정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정몽주 고향 영천에 ‘제2의 선죽교’

    정몽주 고향 영천에 ‘제2의 선죽교’

    고려 말의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1337~1392)의 충절이 깃든 선죽교가 그의 고향 경북 영천에 새로 조성됐다. 영천시는 13일 “포은 정몽주 선생 서거 620주년을 맞는 오는 24일 임고면 양항리 임고서원에서 성역화 1단계 사업 준공식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한 이 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에 세워졌으며, 선조 36년(1603년)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를 위해 시는 2006년부터 임고서원 일대 부지 4만 7000여㎡에 198억원을 투입해 선죽교, 유물전시관(포은유물관), 생활체험관(충효관), 연못 등을 조성했다. 준공식에서는 고유제, 지신밟기,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 송탑비 제막식 등을 가지며 ‘포은 선생 재탄생’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도 열린다. 문학제, 학술대회, 전국청소년미술실기대회 등 부대행사도 열린다. 시는 내년부터 2018년까지 500억원을 투입해 정몽주 생가 중창, 단심로 조성, 부래산 및 유허비 정비 등 임고서원 성역화 2단계 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김영석 영천시장은 “영천이 낳은 포은의 충효사상을 재조명하고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선죽교(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는 고려시대인 919년(태조 1년) 송도(지금의 개성시)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한 다리로 길이 8.35m, 너비 3.36m의 화강석 널다리이다. 이 다리는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오다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방원이 보낸 일파의 철퇴에 맞아 피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영천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예수는 동성애자에게 뭐라 말할까

    4월 말 서울에서 세계적인 팝의 아이콘인 레이디 가가가 공연을 했다. 공연장에는 그의 팬들뿐만 아니라 기독교 단체들도 모였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에 동성애와 악마 숭배를 조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공연 반대’를 외치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땅 밟기 기도’라는 것도 있었다. 사찰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의지’였다.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이런 행동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혁명을 기도하라’(한승훈 지음, 문주 펴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논란을 부른 사건들을 중심으로 성경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왜곡했고 실제로는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1부는 ‘동방박사’로 해석된 점성술사가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고 전하는 당시 정치적 상황부터 예수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의 궤적을 세세하게 살핀다. 예언자 요한이 세례하는 것을 일종의 팟캐스트에 빗대거나 동료에게 욕하지 말 것을 주장한 예수가 유독 ‘욕설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을 소개하면서 재미있게 풀어냈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지적질’을 시작한다. 레이디 가가 공연으로 불거진 동성애 문제를 보면 이렇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성서적 근거는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이다. 마을 외곽에 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나그네 두 명이 찾아왔다. 마을 남자들이 나그네들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며 롯을 폭행했다. 이들이 나그네들을 강간하려 하자 눈을 멀게 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벌한다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내용,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예수는 가장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을 곧 하나님이라고 봤다. 이 관점에서 야훼가 분노한 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동성애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집단 폭력이었다.”고 설명한다. 헌금은 또 어떤가.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교회에 헌금하라.”로, “가진 것 모두 내놓으니 부자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한 것”이라는 말은 “가진 것 모두 헌금하라.”로 바꾸었다고 했다. ‘부의 재분배’와 ‘소유욕에 대한 비난’을 곡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유교적 의례를 금지하며 제사를 거부했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다.’라며 교회가 신사참배에 앞장서자는 결의문을 채택했던 불편한 진실로 드러낸다. 저자는 책의 목적을 “예수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성찰하고 2000여년이 지난 오늘 사회혁명으로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한국 기독교를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은 톡톡히 한다. 1만 5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가족사랑 담뿍 담은 시조집

    올해 등단 40년을 맞는 유자효 시인이 신작시 72편을 담은 시조집 ‘사랑하는 아들아’(동방 펴냄)를 펴냈다. “눈 감아도 알아듣는/귀에 익은 그 소리”로 시작하는 ‘아내의 기침’이나 “끊일 것 같아도 세상은 이어가고/없을 것 같아도 내일은 다시 밝고/마음의 주인 되는 법 배웠다고 여기렴”이라고 말하는 표제작에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 표제작은 이안삼이 곡을 붙여 2010년에 가곡으로 만들어졌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1일 입양의 날… 그녀들의 아픔

    11일 입양의 날… 그녀들의 아픔

    정미혜(19·가명)씨는 지난해 4월 임신 사실을 알았다. 낳아서 기르자는 남자 친구의 말에 힘을 얻었지만 행복도 잠시, 남자 친구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장 헤어지고 혼자 키우든 버리든 알아서 해라.” 손찌검과 욕설이 날아왔다. 남자 친구도 어느샌가 연락이 뜸해지더니 그해 여름 연락이 끊겼다.혼자 아이를 키우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화물차를 운전하던 아버지도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던 때다. 어머니는 시각장애를 지녔다. 정씨는 그해 11월 딸을 출산한 뒤 입양기관으로 보냈다. 머리맡에 붙여 놓은 아기 사진을 볼 때마다 소리 없이 운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곁에 있었다면 입양을 결정했을까요. 지금이라도 입양을 취소하고 아이를 데려오고 싶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씨는 울먹였다.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아이들의 뒤에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들이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 해 2000명이 넘는 두리모(미혼모)들이 아이와 이별하고 있다. 아이를 입양 보낸 두리모에게는 흔히 “비정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두리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박옥남 동방사회복지회 소장은 “두리모는 상대 남자와 남자 부모로부터 외면당할 뿐 아니라 친부모들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편”이라면서 “정부에서 제공하는 두리모 지원으로는 양육이 힘들고 생활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입양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입양 보낸 두리모들의 자립을 돕는 시설은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애란 세움터가 유일하다. 상실감과 죄책감, 우울감에 시달리는 두리모들은 이곳에 머물며 입양기관에 보낸 아이의 성장일기를 작성하고, 어버이날 선물을 나누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비록 입양을 보냈지만 아이를 낳은 어머니임을 인식하면서 자식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권지현 애란 새움터 과장은 “두리모들은 출산 그 자체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는다.”면서 “입양을 보낸 두리모의 대부분이 상대 남성은 사라진 채 혼자 남아 이별의 고통을 감당한다.”고 지적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고래떼 포착 포인트! 울기등대 동방 5~8마일

    고래를 찾아 울산 앞바다를 누비는 고래바다여행선의 고래 발견율이 올 들어 50%대에 육박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10일 울산 남구에 따르면 고래바다여행선은 지난달 1일 처음 출항한 이후 현재 15차례 출항해 7차례(46.6%)나 고래를 발견했다. 이는 2009년 7월 고래바다여행선 첫 운항 이후 가장 높은 발견율이다. 고래 발견율은 운항 첫해인 2009년 9.7%(72번 출항, 7번 발견), 2010년 28.4%(81번 출항, 23번 발견), 지난해 9.6%(73번 출항, 7번 발견)를 기록했다. 올해 고래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동해안 냉수대의 소멸 또는 남쪽으로의 이동에서 비롯됐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고래가 좋아하는 곤쟁이와 오징어, 멸치 등 난류성 어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고래바다여행선 출항으로 쌓은 ‘고래 발견 포인트’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허문곤 고래바다여행선 선장은 “고래 떼는 일본에서 시작된 해류를 타고 수심과 먹이가 적합한 간절곶 등대 쪽으로 몰려들기를 반복한다.”면서 “정박지(선박이 해상에 잠시 머무르는 장소)에 왕래하는 어선을 피해 5~6마일 벗어나게 되는데 울기등대 일원이 바로 그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허 선장이 분석한 대로 올해 고래가 발견된 6번 가운데 5번이 울기등대 동방 5~8마일 근처였다. 특히 올해 고래축제 기간에는 매일 고래 떼가 발견됐다. 고래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대부분의 출항도 만석 상태(정원 103명)로 이뤄졌다. 또 올해 전체 승선객의 38%가 다른 지역 관광객으로 조사돼 울산 남구가 국내 유일의 고래관광지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민·관 합동 시범 방역

    민·관 합동 시범 방역

    추재엽(오른쪽 첫 번째) 양천구청장과 공무원들이 9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공원에서 병충해로부터 구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2012 민·관 합동방역단’을 구성하고 시범 방역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책꽂이]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이용우 지음, 평민사 펴냄) 최근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일 가운데 하나는 이맹희·이건희 간 난타전이었다. 그 사연의 뿌리를 다룬다. 제목에서 저자의 입장은 드러난다. 이맹희는 대권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태종의 의중 때문에 스스로 타락의 길로 걸어들어간 양녕대군이라기보다, 억울한 모함 때문에 영조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사도세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도 ‘SCIA’(삼성정보부)라 표현한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다. 삼성의 발상지 대구 주재 기자를 오래하다보니 로열패밀리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민원들을 처리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한다. 특히 장남을 걱정하는 박두을 여사의 부탁으로 이맹희 뒤치다꺼리를 제법 했는데, 그때의 경험담들이 녹아 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에버랜드와 삼성전자를 세운 공을 봐서 이맹희에게 공로주를 배분하고 안국화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삼성화재를 CJ그룹에 돌려주라고 제안한다. 그게 혈친 간 우애를 복원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맹희를 옹호하면서도 독선적 성격과 경영상의 실책 문제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1만 2000원. ●오도릭의 동방기행(오도릭 지음, 정수일 역주, 문학동네 펴냄) 14세기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의 해외선교 방침에 따라 동방여행 길에 오른 수사 오도릭이 12년간 중동, 동남아, 중국, 중앙아시아 일대를 돌아다닌 뒤 남긴 기행문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힌다. 12년간의 기록임에도 분량은 다소 적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본인이 직접 적은 것이 아니라 병석에 앓아 누웠을 때 다른 수도사의 요청에 응해 구술한 내용이어서다. 역주를 단 이는 동서양 문명교류사를 연구해온 아랍인 학자로 큰 주목을 받았으나 남파간첩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던 ‘깐수’ 정수일. 문명교류사에 천착해온 이답게 수사가 생략하거나 잘못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뒀다. 1만 8000원.
  • ‘이스탄불의 황제들’ 만나보세요

    ‘이스탄불의 황제들’ 만나보세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터키 수교 체결 55주년을 기념해 ‘터키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 기획전시를 1일부터 시작했다. 2008년 4월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를 시작으로 2009년 4월 ‘파라오와 미라’에 이은 세계문명전 기획전 시리즈 세 번째다. 동서 문명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터키의 문화유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이자 최고 수준의 유물을 자랑하는 전시다. 기원전 3000년쯤 터키 아나톨리아 고대 문명 시기부터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기까지의 터키 역사의 전반을 아우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전시를 구성했다. 앙카라 소재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과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터키 이슬람미술관, 이스탄불 톱카프궁 박물관 등 총 4개의 터키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152건, 187점을 골랐다. 톱카프궁 박물관의 유물은 보석 그 자체다. 술탄 슐레이만 1세의 칼날을 7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칼, 다이아몬드와 진주·루비·에메랄드 등 보석으로 장식한 터번 장식, 은제 커피 화로와 커피 주전자,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커피잔 받침 등이다. 오스만 제국의 절대 권력자 황제인 술탄이 직접 사용했던 다양한 소장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이슬람 종교의 아름다운 의례용 촛대, 정복자 술탄 마호메트 2세의 코란, 나전 코란함 등은 뛰어난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 준다. 4부로 구성된 전시 1부에서는 기원전 3000년 터키 아나톨리아 고대 문명의 신화와 전설을 다뤘다. ‘트로이의 목마’로 멸망한 트로이 시대의 금귀걸이, 철제 무기를 다루며 강성했던 히타이트 제국의 하투실리 1세의 문서 등 13점이 전시된다. 2부에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서 비롯된 헬레니즘 양식을 보여 주는 유물 13점이 나온다. 3부에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건립하고 초기 기독교 문화가 발전했던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양식의 메달과 성물,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두상 등 8점이, 4부에선 오스만 제국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화재가 소개된다. 9월 2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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