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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청후 최대사건… 조서 쌓으면 5m/광운대부정 수사 이모저모

    ◎김 부총장 딸 91·92년 광운대 연속낙방/“돈 날리고 남편·아들 망쳤다” 한숨도 2주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리시험사건과 광운대입시부정사건은 관련 학부모와 브로커,교직원들이 대거 구속된 가운데 경찰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경찰은 12일로 예정된 수사발표와 검찰송치를 앞두고 마무리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엄청난 입시부정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광운대 김창욱부총장(57)에 대한 조사를 지휘한 이용욱 서울경찰청 폭력게장(40)은 김 부총장이 27년전인 66년 서울 중동중 물상교사로 재직할 당시 가르친 제자로 밝혀져 화제. 김 부총장은 이 계장에 의해 지난 5일 밤 이 학교 본관이 압수수색 당한데 이어 10일 하오에는 경찰에 소환돼 폭력계에서 조사를 받는 등 수사관과 피의자로 입장이 뒤바뀌는 기연을 연출. 한편 91년 3월 부총장에 취임,이달말로 2년임기가 끝나는 김 부총장의 외동딸(22·의정부 모전문대 재학)이 91·92년 후기대입시에서 광운대 인문사회대에 연속 낙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운대는 11일 92년과 93년 입학시험의 OMR카드가 없어진 것이 확인된데 이어 교무과 창고에 보관돼 있어야할 90년과 91년 입시답안,OMR카드 7만3천여장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광운대부정입학사건과 대리시험사건은 사회적 관심과 파장이 컸던만큼 갖가지 진기록도 속출. 서울경찰청은 이번 사건에서 1백74명의 수사관을 동원,후기대입시가 끝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1일까지 14일 총3백36시간동안 쉴새없이 사건을 추적. 개청이래 가장 많은 2백여명의 보도진이 매일 서울경찰청에서 취재경쟁을 벌였고 수사대상에 올랐던 사람도 11일 현재 구속자 51명을 비롯,불구속입건등 21명,수배자와 참고인 77명등 2백여명이나 됐다. 이들이 작성한 진술조서도 1인당 평균 40여장으로 증거자료까지 합치면 50여장이나 돼 7∼8명의 조서묶음이 3백50여쪽 책1권의 분량이고 피의자 72명의 조서를 쌓으면 5m나 된다. ○…광운대 김창욱부총장이 10일 하오 서울 경찰청에 소환되자 김부총장과 사제지간인 이용욱폭력계장(40)은직접 정문까지 달려나가 엘리베이터로 3층 폭력계 사무실까지 예의를 갖춰 정중히 안내. 김부총장은 11일 상오1시쯤 귀가하면서 『고생하셨습니다.마음이 아픕니다』라는 이계장의 위로를 받고 『이렇게 만나서 미안하군.다음에 만날 때는 이런 만남이 아니었으면…』이라면서 아쉬움을 표시. 이계장은 김부총장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 반장 등 부하직원에게 맡겼다는 후문. ○“부정 오명쓸라” 울상 ○…부정입시파동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입시업무관리에는 빈틈없다고 자신을 보여온 성균관대가 11일 지난 전기대 입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도 검정시험출신으로 허위기재해 합격한 노태훈군의 사례가 확인되자 『학교측 잘못도 아닌 서울시교육청의 잘못까지 떠맡게 됐다』고 해명. 특히 허위기재로 응시해 합격한 노군이 올 한양대 안산캠퍼스 후기시험에서 대리시험을 치른 사실이 드러나는 등 관심의 대상이 되자 성균관대측은 『학교가 피해자인데도 자칫하면 학교나 학교관계자가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처럼 오인받게 됐다』며 울상. 성균관대의 입시관계자들은 검정시험합격자들의 경우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행하는 원본과 제출합격증서를 대조 확인하는데 노군의 경우 서울시교육청의 검정고시합격증서가 진짜여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서울시교육청을 원망. ○…한양대 안산캠퍼스 후기경영학과에 대리시험으로 합격한 사실이 추가로 적발된 교원대 손인수교수의 아들 손모군(19·서울Y고졸)은 합격사실을 확인하고도 8일 마감된 등록을 하지않아 불합격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손군의 어머니 황정자씨(55)는 『1천만원만 주고 나머지 5천만원은 합격된 뒤에 주기로 했으나 대리시험부정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적발될 것이 두려워 등록을 안했다』면서 『1천만원만 날리고 아들과 남편의 앞길을 망쳤다』고 한숨. 황씨는 적발될 것에 대비,입학원서에 자신의 집주소 대신 시집간 딸 손모씨(32·여)의 경남 마산집 주소를 적어넣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부정입학으로 물의를 빚고있는 93학년도 광운대 후기입시 부정합격자에 대한 학교측의 합격취소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부정입학자 가운데 최소한 2명이상이 입학등록을 마친 것이 확인돼 관심. ○대리응시생 구명운동 ○…국민대 후기입시에서 대리시험을 치러 구속된 조모군(19·연대 건축학과 합격)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 조군의 대일외국어고 동창생 1백여명은 지난 8일 연세대 정문앞에 모여 「조군 구명운동 대책위원회」를 결성,조군에 대한 법의 관대한 처분을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전개. ○동문회서 모금 나서 ○…광운대 총동문회(회장 김형태·49)는 이 학교 입시부정사건과 관련,10일 하오 본관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단측은 재정확충과 학원운영 방식의 개선을 통해 학원정상화에 힘써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동문회측은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문화관과 연구관을 목표대로 완공하기위해 1만여 동문들을 상대로 50억원을 모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브로커아들 성대 「부정합격」/노양석씨

    ◎차남 내신성적높이려 출신고 조작/대원외고→검정고시로 고쳐/한대 대리시험 「부자합작」도 드러나/대학동문 브로커 노·김·신씨 연계 수사 대학입시부정파동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올 성균관대 전기입시에서도 부정으로 합격한 학생이 있음이 10일 밝혀졌다. 이는 본사취재팀이 올 한양대 안산캠퍼스 후기입시에서 2명의 수험생을 대리응시시켜 1명을 부정입학시킨 전고려고 교사 노양석씨(59)의 행적을 추적,조사한 끝에 밝혀냈다. 추가적발된 한양대 대리시험부정을 저지른 전고려고 교사 노씨는 올 성균관대 전기입시에서 자신의 둘째아들(19·대원외국어고졸)의 출신학교와 내신성적을 위조하여 성균관대에 부정입학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노군의 입학원서를 정밀조사한 결과 노군이 지난해 서울대원외국어고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원서에는 검정고시를 합격한 검정고시출신자로 기재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노군은 대원외국어고에서 3학년 2학기 성적이 전체 3백93명 가운데 3백39등을 기록하는등 내신 7등급의 저조한 성적이었다. 노씨는 아들의 낮은 내신등급을 높이기 위해 이같이 입학원서를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군의 출신고와 내신성적등 원서위조는 이미 구속된 신훈식씨일당과 함께 덕성여대에 대리시험으로 응시한 안모양(18)의 출신고등학교와 내신성적을 위조해줘 수배된 전 고려고교사 김광식씨에게 부탁,이들이 원서를 위조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와 노씨는 지난 78년쯤부터 84년까지 고려고등학교에 함께 근무한 K대 국어교육과 선후배사이이다. 성균관대측은 이날 노군의 출신고와 내신성적이 위조되었음을 확인해준 뒤 원서를 공개치않고 자체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노씨는 이에앞서 올 한양대 안산캠퍼스후기시험에서 박화선씨(50)에게서 1억2천만원을 받고 박씨의 아들 이모군(19)대신 자신의 아들 노군이 대리응시케해 기계공학과에 부정합격시켜준 것으로 드러났었다. 이에따라 경찰은 노씨가 덕성여대입시에서 수험생의 출신고와 내신성적을 조작한 혐의로 수배중인 김씨와 서울고려고에서 함께 근무한적이 있고 노·김씨가 이미 구속된 신씨(33)와는 같은학교선후배 사이인 점을 중시,이들이 방대한 입시브로커 조직의 일부인 것으로 보고 이들의 연계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이들외에 국민대 대리시험 사건의 주범인 대일외국어고교사 김성수씨(38)도 신씨와 3년여동안 함께 근무한 사실도 확인했다.
  • 한국전통자료집 영문판 발간/유네스코 한국위,올 사업 확정

    ◎설악산 생태계보호·홍보도 역점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유네스코의 이념을 아동및 청소년들에게 보급해온 협동학교사업(ASP)40주년을 맞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한국위원회(사무총장 정희채)가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협동학교사업 담당교사들이 참가하는 연구협의회(7월)와 태국 담당교사들과의 협력방안을 협의하는 모임(4월)을 계획하는등 자체적인 기념행사들을 준비해놓고 있다. 이밖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올해 중점사업은 오는 9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문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국제포럼.한국위원회와 경남대가 각각 미화 6만달러씩을 출연해 주최하는 국제포럼은 지난 91년 유네스코 본부가 「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열었던 국제회의에 뒤이은 것.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골간으로 하는 성장일변도의 기존 발전양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구체화되면서 발전과 문화간의 관계구명을 통해 새로운 발전양식을 타진해보기 위한 자리로 세계적인 석학 26명이 참가해 벌써부터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한국문화를 꾸준히 외국에 소개해온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지난 78년부터 15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한국전통자료집 영문판 「Sourcebook of Korean Civilization」 제1권을 최근 발간했다.올해안에 제2권이 발간될 예정인데 국내와 저명학자 40여명이 참여,상고시대부터 1945년에 걸친 한국의 종교·문학·예술·민속등을 분석하고 대표적인 고전들을 발췌·소개하고 있어 오랜만에 나온 내실있는 한국문화사소개서로 기대를 모은다. 또 설악산 생물권보존지역보호및 홍보,동남아지역 기초과학 네트워크사업,방송통신위성과 문화정체성연구등이 올해 유네스코 한국위윈회 주요사업에 포함돼있다.
  • 「육상 환경보전 중앙회」 사무국장 강주동씨(파수꾼)

    ◎“오염으로부터 국토보호도 애국”/육군3사 출신 예비역들이 모여 환경단체 결성/전국적 조직 바탕 계몽운동 추진 육삼환경보전중앙회.육군제3사관학교출신예비역들의 모임인데「환경보전」이라는 깃발을 내걸고있다.회장은 1기생인 이양수씨(49)가 맡고있으나 모임 운영의 실무는 9기생으로 사무국장일을 보고있는 강주동씨(41)가 거의 도맡아 하고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군대가 국토를 지키는것은 다른나라로부터 조국을 보호하는 것이고 우리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은 오염으로부터 국토를 수호하는것 아니겠습니까.이런취지에서 환경보호운동에 나서게 됐습니다』 강씨는 그동안 기별 지역별로 유대를 다져오다 막내기수인 19기가 졸업한지 11년만인 지난해 8월 총동문회격인 육삼회를 발족시키고는 동문들이 뜻을 모아 환경단체로 지난해 10월 등록,공식출범했다고 밝혔다. 『우리들의 나라사랑이 전역을 했다고 끝날 수는 없다는 생각들이었지요.기왕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있으니 국토를 영원히 지키는 환경보전에 나서기로 했던것입니다』 현재 회원수는 모두 1만4천여명.이가운데 직장과 지역의 예비군중대장과 교련교사를 하고있는 회원들이 절반가량인 점을 감안,회원들의 주변을 중심으로 환경교육을 실시한다는데 무게를 두면서 각종환경관련 캠페인등도 해나갈 계획이다. 『전국의 예비군이 2백만명입니다.이가운데 우리회원을 중대장으로 두고있는 곳이 70%가까이 되니 예비군교육때 짬을내 계도를 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을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또 이들이 각읍·면단위에까지 분포되어있는점을 감안 지역별로「1산1강되살리기운동」도 벌일계획이다.시 도별로는이미 지난해 시 도지부발족을 하면서 시작했다.부산은 수영만 대전은 보문산 전북은 전주천을 대상으로 되살리기운동을 해오고있다.올해에는 시 군단위에서도 실시하고 장기적으로는 읍 면단위까지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올해에는 무엇보다도 오는 9월 대전엑스포에서 벌일 예정으로있는 환경보전행사에 역점을 기울일 계획입니다.이곳에서 환경보전기록영화상영 재활용패션쇼도 구상하고있는데 여건이 되면 선진국의 저명인사를 초청,세미나도 가질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같이 의욕에 찬 계획과 함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환경보전에 나서려는 이들 모임에도 어려움은 있었다.자금문제다.십시일반으로 모아 운영비로 쓰고 있으나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그래서 전국 예비군중대장등을 상대로 만들려는 환경교육지도서도 탈고가 된상태지만 인쇄를 하지못하고있으며 엑스포참여행사도 축소해야할지 모르는게 이들의 고충이었다.
  • 조각가 최종태씨(이세기의 인물탐구:15)

    ◎영혼 깃들인 조형세계 표출에 온힘/내면적 깊이서 「참예술」 찾는 미의 탐구자/「착한 사람」 형상화 일념… 순수 소녀상 집착/중3때 충남학생 미전서 수상계기로 예술의 길 걸어 오늘은 뭔가 될듯하다.뭔가 할 수 있을것 같다고 느낀다.그래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되는듯 싶다고 생각될 때 되지않으면 왠지 「암담」해진다.되고있는 「하루」를 얻기위해 그는 오늘도 지하실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집요하게 소녀상에 집착하고 있는 조각가 최종태씨.슬픔이나 미움이 묻어있지않은 얼굴속에서 그는 「좋은 사람」「착한 사람」을 끌어내고 싶다.그리고 그가 성취하고자하는 얼굴을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그리고자 한다.그는 실재하는 얼굴을 그리려할뿐 실재하는 얼굴의 외형을 원치는 않는다.이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가 접근하려는 얼굴로부터 점점더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부피가 느껴지지않는 식물성의 체구에 때묻지않은 시선,때묻지않은 표정,그러나 날카로운 예술가의 초상에는 고고함과 고통이 동시에 담겨져있다.만일 시인이 조각가보다 한수 위라면 그는 단순한 조각가아닌,「미의 탐구자같은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만사에 꾸밈도 변명도 없다.술수도 책략도 타협도 없다.오로지 「순수무결한 소녀」에 집착하는 해맑은 심성은 우리가 살고있는 오염된 현실에서 한줄기 다이아몬드 빛처럼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려는 정령과도 같다. 프랑스의 파트리스 브로크 로랑 프상티는 그의 작품은 「극동의 지혜와 준엄함이 깃든 예술」,정병관은 「세계미술사적인 수준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인물조각가로 불려 마땅하다」고 평한다.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생존작가중에서 최종태만큼이나 평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드물거라는 생각이다. 가장 높이 나르는 새가 가장 먼데를 보듯 그의 내면에 무한한 공간을 구성해놓고 작가의 마음속 먼데까지 높이 올라 늘 전체를 관망하려는 자세때문인지도 모른다.예술이 예술을 넘어선 경지,그는 조형의 단계를 지나 이미 초월을 꿈꾸는 위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하마터면 소설가가 될뻔도 했다.서예가 또는 작곡가가됐을지도 모른다.그만큼 그는 다양한 재능을 타고났다.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야외사생이 충남학생미전에서 2등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화가의 길을 정했던것 같다. ○보수적 집안서 자라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보수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법대에 가기만을 완강히 우겼다.별로 좌절이라든가 타격을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이때만은 「큰 충격」이었음을 그는 여러 글에서 밝히고 있다. 대전사범 졸업후 미대에 진학,그는 『내가 왜 서도의 길을 내던지고 그림의 길을 갔는가,그림의 길을 내던지고 조각의 길을 갔는가 하는것 등은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 수동적으로 그때마다 그렇게 조건이 지어졌다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 중학교때는 화가 이동훈씨가,대학교 1학년때는 장욱진씨,조각으로 돈것은 김종엽씨의 영향때문이다. 그는 스승인 김종엽씨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해왔다.그러나 졸업할무렵 스승이 추상형태를 추구하자 스승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음에도 형태에 관한한은 자신의 길을 곧게 지켰다. 당시 서구 현대미술사의 한편에는 모딜리아니가 있고 루오와 자코메티,자드킨이 있고 또 현실을 살아가는 아픔과 거기 실존주의 철학과 동양철학이 있었다. 60년대초반의 그는 아르프와같은 유동하는 추상포름을 딱 한번 만들었고 후반에는 미니멀쪽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는 『「예속이나 편승」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판단,「예술가의 삶은 참삶을 찾는것이며 따라서 형태의 선택은 자신의 진실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진 길이라도 그의 길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모델을 쓰지않은 작가로도 유명하다.조각은 물론 그림에서도 「모델」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형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들었다.손을 귀에다 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득한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다.이는 70년대이후 두번째 시도다. ○모델 쓰지않는 작가 그무렵 사는것이 너무 힘든 절화의 상황에서 형태를 어떻게 다룰지몰라 고심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끊임없이 그를 감전시키는 어떤 힘,바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어머니의 소리를,어떤 천상의 소리를,들릴듯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면에서 확인키위해 그는 이와 비슷한 작품을 만든적이 있다. 『재산이라곤 쌀밖에 없었던 우리집,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쌀을 팔아서 물감·종이를 사주었다』아끼고 아껴도 1주일에 한곽씩 물감을 써야하는 그였기에 지금도 눈물없이는 「어머니」를 말할 수가 없다고 돌아본다.「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어머니가 그에게 준 또하나의 구원의 선물이 된 셈이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잊지못한다. 「인생의 문제는 무엇인가/싸우는 것이다.다음의 문제는 누엇인가/이기는 것이다.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가/죽는 것이다」이 짤막한 서시는 「바로 레미제라블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생과 예술의 전쟁에서 싸워 이긴 자코메티를 부러워하고 있다.특히 싸르트르가 자코메티에게 한말,「그는 매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늘 승리하고 있다」는 예술가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니겠느냐고. 이제 나이 60이 넘어 「죽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시점에 서서 그는 「무궁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유한한 인간존재와도 같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문득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가 사는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하기도 한다.그리고 세상에서 처음보는 풀,처음보는 나무,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신천지의 경이로운 광휘를 최초로 그리고 싶은 것이다. 「삶과 죽음사이에 그 이름할 수 없는 빈공간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풀잎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는 그는 이제 관조의 강가에 서서 그가 건너온 피안의 언덕을 중용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것이 서있는 인물이건 얼굴상이건 한결같이 거룩하게 우뚝 솟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늘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계시하는 얼굴은 범속을 떠났으나 대지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어느때는 절망과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도끼같은 얼굴을 내밀고 자유의 저편을 내다본다. 물론 최소한의 필요만 남기고 곁가지는 가차없이 생략되어 어느경우든 입체감의 거부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직선의 작가이면서 자칫 단조로움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 얼굴상 조각은 매끄러운 곡면이 연출되고 측면의 선도 보일듯말듯한 곡선의 변화를 부여하고 있다. ○부인 헌신에 늘 감사 그는 대전에서의 교사시절 같은 학교 영어교사이던 부인 김절자씨와의 사이에 지영(이대대학원) 범락(서울대4)남매. 그는 조각일을 할뿐.부인은 예술가 남편에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작품을 파는 일도 싫어하고 작품흥정을 소름끼치게 거부하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온 부인에게 그는 어느 글에선가 「아내여 미안하다」고 쓰고있다. 술은 주사가 있을만큼 폭음.특히 시인 박용래를 좋아한다.그러나 이젠 나이먹고 실수할 것이 두려워 시인 소월처럼 「마누라를 건너편에 앉혀놓고」집에서 술마신다.끝없는 줄담배.대신 어디서든지 「글써달라」는 부탁만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대뒤 노고산동 하꼬방,신촌역 전세집에 살다가 80년에 연남동에 정착하여 지난해 처음 작업실이 있는 집을 지었다.뭔지 부자가 된듯하지만 마당에다 천막을 치고 흙을 바르고돌을 쪼던 때가 진짜 작품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그러나 이런 일에는 이미 초연하여 여전히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만드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착한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그의 모습을 비슷비슷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웅변보다는 침묵,발언보다는 경청하는,행동보다는 사변하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리고 정연하게 늘어선 수많은 그의 소녀들을 바라보는 순간,그들이 하나같이 살아움직이는듯한,루크 브젱이 그에게 했던대로 「청동·목재·화강암으로 된 모습들에서 문득 심장뛰는 소리가 들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그가 집요하게 추구한대로 어쩌면 정신세계를 가진 인체를 지금 이시간에 성취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연보 ▲1932연12월 충남 대덕군 회덕면 출생 최명교씨와 임용자씨의 4남1여중 장남 ▲1952연 대전사범졸업(화가 이동훈씨에게 그림지도) ▲58연 서울대 미대 졸업(공주고­천안여고­숙명여중­천안고­대전 대성고에서 교사)▲59연 국전 입선 ▲60연 조각 「서있는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에 이어 「어머니와 아들」「앉아있는 여인」으로 연3회 특선,국전 추천작가 ▲64연 대전 문화원서 제1회 조각 개인전 ▲65연 시인 임강빈 시화전 ▲66연 공주사대 교수 ▲67연 이대 미대 교수,서울대 미대 동문 이남규·이민회·이지휘·조영동과 5인작가전(서울신문회관) ▲68연 현대 공간회 창립(이후 15년간 해마다 클럽전) ▲70연∼현재 서울대 미대교수 ▲71연 유럽지역여행(이탈리아 조각가 파치니와 교류) ▲75연 조각개인전(미국 문화원) ▲76연 파스텔화·소묘·조각·목판·릴리프전시회(문헌화랑) ▲77연 조각과 목판화전(신세계 화랑) ▲81연 조각개인전(신세계 미술관)구미지역여행 ▲84연 파스텔 그림전(가람화랑) ▲85연 FIAC(국제견본시 현대 미술)85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조각개인전(가나화랑),FIAC86에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 ▲87연 가나화랑주관 파리 샹프륄리 아틀리에서 오리지널 판화제작 서울대 연구교수 ▲88연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법륭사 백제관음상 감상 조각개인전(호암갤러리) ▲90연 조각·파스텔화 개인전(가나화랑) ▲91연 FIAC91 출품(부부가 유럽여행) ▲92연 파스텔화·테라코타·조각·연필화·먹그림 개인전(가나화랑),그외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서울양화진성당)「김대건신부상」(한강성당)「성모상」「콜롬바와 아그네스 자매상」「예수성심상」「십자가의길」(명동성당)장욱진 탑비(충남 연기)제작 충남문화상·국전추천작가상,서울시문화상 수필집 「예술가와 역사의식」「현장을 찾아서」「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열화당간 「최종태 화집」,가남아트간 「최종태」
  • 선현들의 말씀 오늘에 맞게 재조명(’93책의 해)

    ◎초중고생위한 「고전의 세계」 출간/논어·맹자·소학·격몽요결 등서 발췌/문화부,각학교에 도의생활교재로 보급/명구에 얽힌 일화 곁들여 이해도와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동양의 고전을 알기 쉽게 정리한 「고전의 세계」가 출간돼 청소년들의 도의생활 교재로 쓰여진다.문화부가 펴낸 이 책은 국민학교용 「밝은 마음 바른 생활」2종과 중학교용 「배우며 생각하며」,고등학교용 「사람이 가는 길」등 모두 4종이다. 이 책은 「논어」「맹자」「소학」「명심보감」「격몽요결」등의 고전에서 청소년 시절의 지표가 될만한 덕목을 골라 체계적으로 정리,제시하고 있다.먼저 각주제의 머리에는 선현들이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한 고전의 주요 명구를 예시한다.본문에서는 이와 관련된 일화,민담,역사적 사실등을 풍부하게 들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또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생각해 볼 문제(국민학생용)나 연구문제(중·고등학생용)를 실어 본문의 내용을 실생활과 연계시켜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도록 했다.한편 국민학생용과 중학생용은 천연색 삽화를 곁들여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 책은 성균관대 최근덕교수의 책임연구 아래 같은 대학의 오석원 이기동 최영진 최일범교수와 아동문학가 김종옥 고정욱이 집필에 참여했고 삽화는 숭의여전 김정교수가 맡았다. 사실 「논어」「맹자」류의 고전들을 알기쉽게 풀어 쓴 책들은 이미 시중에 넘쳐나고 있다.그러나 이들 고전이 담고있는 가치관이 모두 현대에 그대로 적용되지 못할뿐 아니라 이해되지않는 대목도 있어 청소년들이 거리감을 느껴왔다.이에따라 집필진들은 먼저 이들 고전이 담고있는 가치관가운데 계승될수 없는 것은 버리고 계승될수 있는 것만 가려냈다.여기서 추린 덕목을 현대적 감각에 알맞게 재조명하고 미래사회에 대비한 윤리의식을 보완시켜 성장단계에 맞는 수준으로 정리했다. 「고전의 세계」의 권별 수록내용을 보면 국민학교용 「밝은 마음 바른 생활」은 생활예절과 어버이사랑,형제사랑,이웃에 대한 내용을 담아 유년기에 올바른 정서의 기틀을 다지도록 했다.중학교용 「배우며 생각하며」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예절,그리고 삶의 슬기와 용기를 북돋울수 있는 내용을 담아 소년기의 미래지향적인 가치관 형성을 돕는다.고등학교용 「사람이 가는 길」은 가정,국가,세계속에서 자아를 발견하여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인생관을 가질수 있는 내용을 담아 사춘기의 인격형성에 도움을 주도록했다. 이 책은 1차로 2만권이 만들어져 전국의 초·중·고교 및 유관기관에 청소년 지도자료로 배포된다.문화부는 현재 일선 교사들이 이 책의 내용을 효율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데 도움을 줄 교육지침서의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문화부는 이밖에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의 세계」와 고전을 심층적으로 이해할수있는 해설서도 단계적으로 펴낼 계획이다. 이 책은 입시교육에 찌든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여유를 주고 또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 형성도 꾀해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에따라 문화부는 이 책이 각급학교의 교재로 쓰일수 있도록 하기위해 교육부와 활발히 접촉,현재 상당한 진전을 보고있는 상태이다.문의 문화부 생활문화과 720­3816
  • 「팔인전원」 수용 촉구/러시아,이스라엘 조치 비난

    【모스크바·튀니스 AFP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2일 이스라엘에 대해 레바논 남부지역으로 추방한 4백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을 허용하라고 촉구하면서 이스라엘의 반대로 중동평화를 위한 기회들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고 비난했다. 세르게이 야스츠헴브스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이스라엘 정부가 추방민들의 즉각 귀환을 요구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799조를 준수하기를 희망한다면서 귀환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중동문제의 긍정적 해결에 심각한 위협과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숭실대 총장 선출/교수협·동문 대립/이사진도 내분

    숭실대 재단이사회(이사장 임인식)는 지난 27일 제149차 이사회를 열고 각각 교수협의회와 동문회의 추천을 받은 어윤배교수(59·사회사업학)와 김성진교수(64·경제학)에 대한 총장선임 투표를 실시했으나 두 교수 모두 재적 3분의2의 표를 얻지 못함에 따라 조요한현총장(67·철학)을 7대총장에 연임키로 결정했다. 임이사장은 이에대해 『지난 7일부터 5차례에 걸친 이사회에서 총장선임문제를 논의했으나 교수협의회측과 동문회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데다 이사들의 의견마저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학사행정의 파행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현 조총장을 만장일치로 연임키로 한것』이라고 밝혔다. 교수협의회측과 동문회측은 그러나 28일 각각 대표자회의를 갖고 『당초 이사회에서 후보추천을 위임해 놓고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데 대해 유감』이라며 임이사장의 공개해명을 요구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 세시풍속·놀이 무대서 재현/이경호,「계수나무…」2월9∼10일 공연

    달의 운행과 이에 순응해 살아가는 선조들의 모습을 통해 새해풍속도를 그린 한국무용이 신년무용계의 첫 장을 장식한다. 신진무용가 이경호씨가 경희대동문들과 함께 2월9∼10일 양일간 동숭동 학전소극장(763­8233)무대에 올리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한마리」가 바로 그것. 섣달 그믐밤부터 대보름까지 보름동안의 풍속을 독무 또는 군무로 펼쳐간 이 작품은 널뛰기,쥐불놀이,거세배,활쏘기,물길어오기,돌쌈,달집태우기등 잊혀져가는 세시풍속과 놀이를 무대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최근의 한국무용이 지나치게 철학적인 주제에 치중,일반인들의 이해에서 멀어져가는데 비해 이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을 꾀하고 있다. 섣달 그믐밤,설날,12지일,보름전야,대보름등 시간적 순서에 따라 5장으로 나뉘어진다.지난해 「연,연,연」이란 작품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씨는 경희대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인천전문대 무용과에서 강사로 재직중이다. 연출은 연극연출가이며 대본작가인 김태수씨가 맡았고 음악은「슬기둥」대표를 지냈던 조광재씨가 만들었다.
  • 어려운 환경 과감하게 극복한 인간승리/검정고시 출신들 수기집 출간

    ◎전국동문회 추진 5년만에 결실… 훈훈한 화제/교육자·변호사·의사·학생 등 27명 참여/힘겨웠던 과거 육필로 담담하게 회고 검정고시출신 27명의 수기모음집 「내삶의 가장 소중한 선택」(한빛지적소유권센터)이 출간돼 연초 출판가에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수기집은 김재규 현대고등학교 교장,이민영 변호사,신한동 한남대교수,장무호 한의사,권진수 교육부사무관,박영립 변호사,최복현 시인,이재선 공인회계사,홍대유 한국마사회기수회장,소설가 송영씨등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인사들을 비롯 교사,대학생,자영사업가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이들은 「눈물젖은 빵」과 그 빵이 준 교훈,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가시밭길을 수기를 통해 털어 놓았다. 소설가 송영씨는 이 책에 실린 「나의 길」이란 수기에서 『파고다공원옆에 종로시립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8개월동안 무섭게 고교과정을 독습하고 가까스로 대학(외국어대 독어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하마터면 학력이 중졸로 끝날뻔했는데 간신히 턱걸이를 한것이다』고 자신의 대입검정고시시절을 회고했다. 수기집발간위원장을 맡은 황종환씨(변리사)도 「내삶의 중간지점에 서서」에서 『자신의 걸어온 길을 글로 표현하기까지에는 얼마간의 용기가 요구되는 것같다.그러나 나는 내 살아온 삶의 대부분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중략)그동안 알게 모르게 수많은 분들에게 받아온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하는 마음과 그 고마움의 빚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수기집은 전국검정고시동문회(회장 박영립)가 89년부터 추진,5년이 지난 지금에야 빛을 보게 된 것.지난1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변형윤 서울대명예교수는 『젊음과 고생과 성공은 불가분의 함수관계』라면서 『참담하기까지 한 숱한 고생과 쉽게 좌절할 수도 있는 주어진 환경을 과감하게 극복한 이 분들의 이야기는 인간승리의 참모습이다』라고 격려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 책은 「그 춥고 매섭던 겨울이」「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자전거 페달을 밟듯이」「산넘고 산을 넘어」「참으로 힘들었던 외로운 싸움」「회상」등 6장으로 나눠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시련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육필수기로 가득차 있다.책말미에 실린 「이 책이 나오기까지」에서 편집책임을 맡은 권지현씨는 『집필의뢰를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가 지내온 과정을 한번쯤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막상 원고를 쓰는 일에는 난색을 표하기 일쑤였다』라고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특히 사회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검정고시출신」이라는 숨겨온 과거를 털어 놓아야하는 어려움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93년·「책의 해」·우리문학/김병익 문학평론가(정경문화포럼)

    ◎급진적 민중­민족소재 급격한 쇠퇴 예상/상업주의 가속… 다양한 방법론 대두될듯 문민정부가 비로소 출범되고 그것에 아주 잘 어울리게 「책의 해」 행사가 벌어지는 1993년 새해의 우리 문학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문화 특히 문학은 그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받아들여 성급한 짐작은 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흥미있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우리 문학이 급격하게 다른 여러 문화부문과 함께 변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고 그 변화가 앞으로의 우리 90년대 문학의 향방을 가늠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그 예상의 실마리를 지금의 몇몇 문학적 조짐에서 찾아보자. 먼저 예상되는 것은 진보적 미술운동단체인 민미련이 자진 해체를 선언했다는 며칠전의 보도에서 시사되는 것처럼 급진적인 민중문학 또는 민족문학운동이 급격히 쇠퇴하리라는 점이다.지난해 젊은 진보적 문학자들의 한 좌담이 문학을 정치화하려했던 전날의 태도에 대한 반성을 진지하게 제기한바 있거니와,근래 주목받아온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도 노동현장의 현실변혁을 위한 운동보다는 중산층의 내면적 허위의식을 분석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오고 있었다.새해의 신춘문예를 심사한 동료 문인들은 응모작의 일반적인 경향이 몇년 전에 유행했던 운동권 소재의 작품들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반면,개인의 내적 병증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인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하는데 그 설명대로라면 우리 문학은 사회적·역사적 주제보다는 현대 사회속에서의 인간의 개인적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더 많은 힘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이미 논의된 바 있는 「민족문학의 위기론」이 이런 경향에서 배태된 것일 터인데 이럴 경우 우리 문학은 무겁고 억압적인 것에서 가볍고 열린 형태의 것으로 옮겨가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하고 좋은 변화만인지는 결코 쉽게 말해지지는 않는다. 작가들이 관심두는 주제가 이렇다면 그 창작 방법론에서도 리얼리즘,그것도 급진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법에 대한 주장도 약화될 것이다.현실과 역사를 재현하는데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수법이,현실의 변혁을 위한 문학이라면 보다 급진적인 리얼리즘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떠나 인간의 내면 정황을 섬세하게 분석하는 쪽으로 옮겨간다면 그 문학은 문체적 실험과 언어의 구성적 측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것의 실제가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일 것이다.근년의 우리의 문화계에서 특히 후자에 대한 회차가 왕성했던 것은 이런 경향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미 성숙한 소비사회에 진입해 있는 대부분의 선진 문학국들은 벌써부터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단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왔는데 그처럼 성숙하지도 못하고 민족적·체제적·현실적 모순들을 숱하게 싸안고 있는 우리의 경우 그러한 문학적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것인지,그 전환이 우리 작가들이 자부해온 문학적 진정성을 담보해줄 수 있을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그러나 우리 문학이 하나의 교조적 논리에 메이지 않고,그래서 문학의 정치화를 벗어나 다양한 주제와 다기한 방법론을 추구하며 문학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바람직한 창작 활동이 피어날 가능성은 얼마간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의 전개는 본격문학에서보다는 대중문학에서 더욱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가령 80년대에는 노동문학과 함께 현장 기층민들의 수기·일기·편지 등 주변 장르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어 이른바 장르의 해체와 통합론이 제기될 정도에 이르렀지만 90년대에는 이미 추리소설,SF,에로,만화 등 대중적 통속문학이 범람하기 시작하는데 문학의 이런 비속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어 우리문학 독서계를 휘어잡을 것이다.여기에는 최근의 한 기성작가의 예에서 보듯이 PC소설로 등장하여 기술 사회로의 진입을 반영하는 신종의 작품도 보급될 것이다. 이러한 장르상의 그리고 기법상의 예상되는 변화를 휘몰고 있는 것이 어느 사이에 번창해지고 있는 문학의 상업주의화이다.어떤 예술 부문보다 상업성이 침투하기 가장 힘든 시문학에서의 대중화 현상이 어느 다른 문화 선진 문화권에서도 도저히 비교해볼 수 없을 만큼 왕성하게 번지고 있다는 점이 이미 여러해 전부터 발견되고 있거니와 이 현상은 기왕의 대중소설 장르를 중심으로 기존의 본격문학권에 광범한 영향이 파급될 것이다.가령,무명 저자의 믿을 수 없는 책들의 베스트셀러화 현상,아류의 「소설류」역사소설들의 범람,그리고 혼성모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표절 행위,여러 형태의 외설 도서들의 유행 등등의 문제들은 순문학을 침식하는 정도를 넘어 그것을 혹독하게 파괴하고 문학적 진정성을 무효화할 우려를 충분히 갖는다. 이 상업주의의 거대하고도 거센 물결을 어떻게 감당하여 대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 문학의 가장 힘든 주제가 될 것인데 그것이 힘든 것은 단순히 작가와 문학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출판계와 독서계,그리고 사회 각부문의 의식 전반과 문학 정책들이 함께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격낮은 문학으로 추락할 것인지 문학적 진정성을 존속시켜 내적으로 풍요하고 창조적인 문학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는 90년대 우리 문화와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 희곡작가 박조열씨(이세기의 인물탐구:12)

    ◎연극계에 신풍일으킨 “지적작가”/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 일색/특유의 표현력으로 주제부각… 관객들 매료/「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상대상·희곡상 수상 박조열이란 이름은 몰라도 희곡 「오장군의 발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이 희곡은 74년당시 예륜의 「공연불가」판정으로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88년 해금되어 문예극장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을때 「역시 박조열 희곡」 찬탄을 금치못하게 했다. 탄탄한 극적 구성과 그 소재의 특이성,해학적이라 할 작가특유의 언어 표현의 탄력성은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작가적 자존심은 연극의 어디에서도 잔재주를 부리거나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다.진지하게 대상에 정면 대결하면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연극속에 용해시켜 설득력있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고있다.어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던 극의 테마를 작품 전편에 도도하게 깔고있으면서도 지성의 감성을 잃지않는 것도 대단하다.감상과 정조에 탐닉한 나머지 작품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정된 공간속에서 빚어지는 여러종류의 갈등을 저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한다.그는 연극의 격조뿐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관객을 그만큼 존중해주는 작가다. 연극계데뷔 28년만인 91년,첫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을 펴냈을때 평소 그를 총애해 마지않던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씨는 그의 희곡집출간을 「기특하다」고 표현했었다.「기특하다」는 표현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독하리만큼 「과작」인 그가 과연 「책한권」이 될만한 분량의 희곡작품을 썼느냐는 것이다.두번째는 「남달리 깐깐하고 결벽성이 강한 그가 자작품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겠는가」하는 평소의 그의 사람됨과 성품을 꿰뚫어 알고있는 입장에서의 소견이다. 어쩌면 수년후로 미루거나 또는 영영 이루지 못했을 이 창작희곡집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이긴 소산인 셈이다. ○30년간 쓴 희곡 9편뿐 박조열은 연극계에 몸담은지 30년동안 단 9편의 희곡을 썼을 뿐이다. 단9편의 희곡만으로 그는 연극계의두드러진 존재가 되었고 그의 희곡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많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이는 뛰어난 작품성과 글에 대한 완벽주의,확고한 주관의 작가정신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세속적인 것에 대한 일체의 거부,불의와 뻔뻔스러움을 용납치않는 단호한 의지는 희곡을 쓰지않는 동안의 여러 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오장군의 발톱」을 들수있다. 「오장군­」은 문예진흥원이 주는 첫번째 창작희곡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작품이다. 성은 「오」이고 이름은 「장군」인 이 땅의 무식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한 농부와 군대에 간 아들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따뜻하고 다감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없이 단지 주인공이 「소총병」이며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연극은 연습도중 발이 묶여 긴 어둠속에 사장됐었다. 공연이 좌절됐다는 실망도 실망이지만 이에 충격받은 작가는 이때부터 창작의욕을 잃고 붓을꺾다시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그의 희곡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관객의 호응과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때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운 지적 작가」로 지적되곤 했다. 데뷔희곡인 「관광지대」는 당시의 국시인 「유엔을 통한 남북통일 정책을 위반」했고 「미국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되면서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등 젊은 연극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희곡의 재미」를 체험케하여 극작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된 계기가 되게했다. 다음작품인 「토끼와 포수」는 달리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다.이 연극은 「우리 연극계에 일대 신풍을 일으킨 무대」로 평가받았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진행과 대사와 대사의 숨막힐 듯한 불꽃대결,연극만의 특권인 대사해학과 동작변화의 반전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 연극은 김정옥연출로 극단 민중극장이 초연하여 동아연극상대상·연기상·극본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각 극단들이,그리고 지방극단·대학극에서 다투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일색이었다.그중에서도 「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는 이른바 우리연극에서의 반연극·불조이극의 시범이라 할수있는 극작법이 특징이다. 통일문제가 극도로 터부시되던 시절,그 벽을 뚫기위한 방법으로 동문서답식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의도적으로 구사하여 작품이 말하려는 진의를 맨끝장면에서 관객이 깨닫게하는 은유법으로 극을 만들어나갔다.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흥미롭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관극경험을 할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자극적 「오장군­」의 「공연불가」방침에 못지않게 그를 분노케한 것은 오장군에 대한 연극계의 비겁한(?)침묵이었다.그것이 부당한 판정임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부당함을 말하려하지 않았다. 생계수단으로 방송극에 손대는 동안에도 그는 그에게서 「연극」을 빼앗아간 분노가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이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불탔다.정신적으로 왕성하던 시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희곡에 손댔고 얼마든지 샘물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누군가 그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창작의 샘물줄기를 잔혹하게 절단시켜버린 것이다.그는 비수같은 노여움을 죽이고 오로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86년 연극협이 처음 설치한 극작분과위 초대위원장에 추대되자 먼저 「규제 작품」들을 구제하는데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규제의 한계가 불투명하고 기껏 「단어 한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그 법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첫번째 시도로 그해 「한국연극」(4월호)에 「표현에 대한 한계장황과 개선책」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글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공연법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임을 전제,「공연윤에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가시적인 잣대로 규제하려들기보다 이를 오히려 자정기능에 맡기라」고 은근히 꼬집었다. 이를 기화로 신문·방송과 각분야전문지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다투어 보도하는등 이를 다각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제11회 서울연극제 심포지엄에서도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자』고 역설,이어서 「한국연극」 「공간」 「예술과 비평」지 등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일본연극전문지 「신극」에도 이후 4년간 한국연극계 동향에대한 평문을 기고하여 일반과 전문기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당위성과 인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그는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오쿠다이라 야스히로(오평강홍)의 「표현의 자유」(전3권)등의 저서를 구입하여 밤새도록 세밀분석으로 독파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4후퇴때 월남 88년 비로소 긴 어둠에 갇혔던 「오장군­」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로 어렵게 막올린 「오장군­」 공연은 그의 가슴속의 울분을 속시원히 씻어줬을 뿐만아니라 전례없는 대호평으로 그해 백상예술상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그는 연극계에 돌아왔다.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연극계 중심부에서 이제는 리더의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조열은 함남함주에서지주의 외아들로 출생,문학하는 친척이 집안에 있어 쉽사리 문학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다.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버나드 쇼와 몰리에르에 심취하여 그때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를 꿈꿨을뿐 극작가가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주신분」을 숨긴 것이 드러나 산간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남쪽으로 가는 LST에 승선했고 묵호항 정착후 육군에 지원,12년간의 군복무시절의 삽화를 정리한 것이 연극 「오장군­」이다. 험준한 산악 최전방 소대원으로 근무하던 51년,허약체질인 그가 고된 산중의 강행군을 견디다못해 「자결」을 결심하려던 순간,어디선가 그를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결한 아들의 소식」을 듣게될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그때 산중의 목소리는 「생사조차 알길없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념이 천리길 첩첩산을 넘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그에게 와닿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믿는 부인 최선분여사(58)와 공부잘하는 외아들(현섭씨·31·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어머니 그리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 마시며 눈물지을 때가 잦다고 말한다.그리고 고향을 등진지 4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일처럼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두고온 산하,고향의 얼굴들이 잊힐리야 없다.따라서 남북통일문제는 그의 희곡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커다란 기둥줄기가 될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요즘 15년만에 국립극장 가을공연 위촉작품과 태평양국제연극제를 위한 새 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의 손으로 찾은 「표현의 자유」이후 주제를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 될것이다.작가의 사명감과 투철한 작가정신,깐깐하고 곧고 불의와 세속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연극의 자존심을 돌이켜 아마도 또하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보 ▲1930년10월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 지주인 박승훈씨와 최한익여사의 1남4녀중 장남 ▲47년함남중학(구 함남고보)졸업 ▲49년 중등교원 자격시험합격(문학),원산공업학교교사­마전리중 전근 ▲50년 흥남철수때 월남,육군지원입대이후 12년간 군복무 ▲63년 육군예편,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극작수업),단막희곡 「관광지대」(단막희곡 28인선 수록) ▲64년 장막희곡 「토끼와 포수」극단 민중극장 초연 ▲65년 희곡 「소식」극단 민중극당 초연 ▲66년 단막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극단「탈」초연 ▲67년 단막희곡 「불임증 부부」(저승에서 만난 부부)극단 「탈」초연 ▲70년 희곡 「흰둥이의 방문」 ▲74년 희곡 「오장군의 발톱」예륜 「공연불가」판정 ▲75년 여석기씨와 함께 한국극작워크숍 창설 ▲76년 희곡 「가면과 진실」(문예진흥원 창작희곡지원작가),희곡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79년 한국최초의 FM 음악드라마 「음락가의 소상」(11개월 집필) ▲80년 독립투쟁과 사상분열사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땅의 아들들」(10개월 집필) ▲83년 일본연극계 견문 ▲86년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 초대위원장 ▲88년 「오장군의 발톱」해금(극단 미추 초연) ▲89년 ITI(국제연극협회)헬싱키총회 참석 ▲9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한국연극계의 글라스노스치」강연,일본마에바시(전교)예술제 심포지엄서 「한국의 현대연극」강연,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의 「오장군의 발톱」공연참관 ▲88∼현재 숭의여전 문창과 출강 동아연극상 대상(희곡상),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백상예술상 대상(희곡상) 「오장군의 발톱」「총독 돌아오다」「한국현대단막극선」
  • 「과천 문협」/왕성한 문학활동

    ◎「문학」 2·3집,수필집 등 잇따라 출간/시민참여 프로그램 개발에도 관심 지부창립 3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문협 과천시지부가 왕성한 활동으로 과천에 새로운 문학텃밭을 일궈가고 있다. 지난 91년 40여명의 문인들로 출범해 「과천문학」 창간호와 사화집 「밤나무골 시인들」을 출간한데 이어 이번에는 「과천문학」 2·3집과 수필집 「잡초와 별과의 연서」,아동문학선집 「눈꽃속 아이들 이야기」를 펴낸 것이다. 「과천문학」 2집에는 원로시인 설창수씨와 함동선 시인의 작품들이 초대작품으로 실렸으며 「과천문학」 3집에는 화갑을 맞은 김정원시인이 작품에 대한 집중조명을 특집으로 마련했다.문인 34명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수필집 「잡초와 별과의 연서」에는 황금린,전숙희,김후란·구상,장수철씨 등의 일상생활에 얽힌 수필들이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다.동시와 동화 모음집인 「눈꽃속 아이들 이야기」는 장수철 정주상 석용원 김영희씨 등 9명의 아동문학가들이 새 작품을 싣고있다. 지방자치제의 실질적인 실시를 앞두고 지역마다 문협단위로무크지를 펴내며 지역문화기반을 다져가고 있는데 과천의 경우 지역문인들의 공동창작집 발간은 물론 시민대상의 대중적인 문화프로그램 개발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학술(93문화계/과제와 전망:4)

    ◎문민정치시대,다양한 시각서 연구/대선 분석·평가하는 저술·토론회 활발/남북학술교류·동구연구 활동 가시화/고고학·정치학계 등 도덕성 회복위한 자정운동 올한해 학술분야는 「문민정치시대」개막이라는 새로운 사회지평에 대한 연구및 해석이 주를 이루면서 이에따른 제반 학술활동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고 다양하게 추진될 전망이다. 우선 이러한 학계의 여망을 담은 정책서적의 출판이 두드러진다.대선직후 새해들어 출간된 「국민은 이런 변화,이런 정부를 원한다」는 6공화국에 대한 학계의 평가와 앞으로의 정책과제를 담은 저술.새정부에 바라는 국민의 마음과 민주정부수립에 대한 학계의 의견을 14개 분야로 나눠 변형윤교수(서울대명예교수)등 89명의 학자들이 제시했다.이어 나온 「새정부가 해야할 국정개혁24」에서는 경제분야를 중심으로한 선결추진과제 24가지를 담았다. 14대 대통령선거결과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술토론회도 연초부터 줄이어 새정부의 새정책을 기대하는 학계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그 하나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12일 연세대에서 개최한 「14대 대통령선거평가와 민주화운동의 방향모색」정책토론회다.손호철교수(전남대)가 「대선의 의미와 민족민주운동권의 대응평가」를,임영일교수(경남대)가 「대선이후 민주화운동의 전망」을 발표한다.또 김세균교수(서울대),황인성 전국연합정책위원장등이 토론자로 나서 대선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현상을 진단함으로써 「문민시대」의 새로운 쟁점을 점검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소장 김호진)도 14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치에 있어서 중산층과 노동자」를 주제로 학술포럼을 갖는다.박찬욱교수(서울대)가 실증조사를 바탕으로한 14대 대선의 승인과 패인을 짚어보고 김홍명(조선대),황수익(서울대)교수등이 우리 앞에 닥친 문민시대가 사회각계각층에 줄 영향등에 대해 토론한다. 올한해 학계연구의 큰줄기를 이룰 문민시대논의와 함께 학문연구및 학술단체운영상 일어난 갖가지 잡음에 대한 자성론도 대두할 전망이다.지난해 고고학계의 발굴비리폭로와 대선기간중 정치학계의 회의비용요구 추문등땅에 떨어진 도덕성에 대한 자성움직임이 그것이다.이는 대학가의 연구분위기쇄신과 맞물려 자정운동차원으로 구체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이에따라 사회학회의 경우 지난 동계학술대회를 통해 학자가 학문활동전반에서 지켜야 할 윤리지침을 명시한 「학문윤리강령」채택을 위한 토론회를 벌였다. 이어 올6월의 상반기 정기총회에서는 윤리강령을 상정,채택할 움직임을 보인다.정치학회도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돈과 지나친 정치참여로 인한 잡음을 최소화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고고학회는 회장단의 사퇴를 촉발한 발굴비리폭로사건이후 자체정화에 보다 적극적인 상태이다. 이밖에 올한해 우리 학술계가 기대할 과제로는 지난해 남북부속합의서채택및 두만강지역 공동개발에 따른 남북한의 학술교류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중국과의 국교수립이후 부각되고 있는 발해·고구려등 우리 고대사연구분야와 지난해부터 각 대학부설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소련·중국및 동구권연구등 지역사연구작업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 첼리스트 전봉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1)

    ◎절교의 기량… 무대연륜 50년의 “악장”/「첼로의 선봉」답게 작품특성 능란하게 표현/음악에 대한 사명감으로 모든 활동 적극적/국내초연작품 즐겨 연주… 청중에 싱싱한 감동 전달 바다밑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깊고깊은 암청색 선율,원로연주가 전봉초씨의 첼로언어는 날이 갈수록 그 깊은 맛을 더해 그가 켜는 베토벤은 명철의 사색처럼 심오하고 그윽하다. 작품이 지닌 특성과 표정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단순한 곡 해석만이 아닌 「낙장」의 대우로 존경받는 위치다. 무대에 선지 50년.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 시절 요미우리(독매신문)가 주최한 전일본 신인 선발연주회에 학교대표로 참가한 것을 첫무대로 그는 지금까지 독주회 20회,서울실내악회·실험악회·서울트리오와 그가 창단해서 이끌던 바크 합주단등 실내악연주 1백회이상,시향·KBS교향악단 협연 해외연주 등등 생생한 음악의 발자취가 산적해 있다. 돌아보면 스포트라이트에 점철된 세월,수천관중과 뜨거운 박수갈채와 꽃다발 속에서 슬픔이나 좌초없이 그는 순조로운 항로를 거쳤고 그래서 그의 인생과 예술은 탄탄한 금자탑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운 예술항로 그는 음악의 연륜만큼이나 무대를 알고 청중을 안다. 악기를 얼싸안고 무대에 서는 순간 객석의 분위기로 심상을 꿰뚫어 청중의 정곡을 이미 움직인다. 그가 연주에 임하는 자세는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과도 같은 미세한 열기가 느껴진다.그러나 그 정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안으로 감춘 진주빛 화염,진지하고 결곡하게 테마의 핵심에 파고든다. 얼핏 보기엔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철학성을 내보인 듯 하지만 그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성하여 불꽃같은 테크닉이 숨막히게 전개된다.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애틋한 애정이 전편에 넘쳐 그의 연주는 언제나 젊고 싱싱한 감동을 던져준다. 그는 또 첼로의 선봉답게 한국초연의 레퍼토리를 즐겨 선택한다. 61년 당시로선 획기적인 「현대음악의 밤」을 열어 힌데미트·드뷔시·베버 첼로소나타를 초연했고 65년엔 베토벤만을,그 다음엔 랄로와 생상스,10년전 독주회에서도 데르블로아「조곡2번」,바하 「아리오소」,포레 「비가」등 짧으나 까다로운 곡으로 「첼로만이 갖는 절교의 표현력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노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바이올린 박민종,피아노 정진우,첼로 전봉초등 서울대교수들로 이루어진 서울트리오는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초연곡을 정기연주하면서 한때는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피아티고르스키의 「백만불트리오」에 비유되는 황금기를 누렸고 조로가 심한 편인 음악계에 노익장 과시로 후배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는 어떤 시점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음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 87년 일본 교토회관 독주회이후 만5년만인 오는 4월29일(호암아트홀)음악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제21회 독주회를 앞둔 노대가의 심경은 요즘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43년 일본데뷔 이후 올해가 꼭 50년이 된다고 해서 후배·제자들이 마련해준 자리다. 그로서는 인생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어쩌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번 연주는 여러가지 점에서 뜻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그는 연주때마다 앓던 심한 열병이 이번에는 전처럼 행복한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연주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고 닦은 음악인들의 종교의식」이며 그의 연주는 신에 대한 고백성사,청중은 그의 고백을 듣는 사제의 입장이고 그는 『솔직하고 진실하게 고통과 고뇌와 슬픔과 갈등을 샅샅이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이번 고백성사는 어느때보다 숙연하리라는 예감이다. ○중3때 첼로 첫 연주 전봉초씨는 평남 안주에서 커다란 잡화상을 하던 전리순씨와 이해원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집안은 풍족한 환경으로 그는 맹산 북창국민교시절 형(전화황씨)의 친구이던 김동진씨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숭실중 2학년때 평양방송국 개국기념 프로에나가 마스네의 「타이즈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3학년되던해 첼리스트 김태연씨의 첼로연주회에 갔다가 「첼로의 남성적인 깊은 소리」와 「혼의 선을 켜는 듯한 음색」에 빠져 첼로로 바꿨다.그당시 상황에선 음악을 마음껏 공부하기란 쉽지않았으나 일본화단의 거봉인 큰형 전화황씨의 도움과 격려로 그는 일본에 유학할 수 있었다. 유학시절은 찬란하고 화려했다.같은 유학생인 박민종 정희석 윤기선씨등과 한국인만의 4중주단을 조직,영친왕 저택에 드나들며 연주를 한적도 있고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NHK교향악단 전신인 일본교향악단 도쿄송죽관현악단 수석주자로 활약,스승인 오무라(대촌묘칠)교수의 도움으로 강제 학병징집을 피해 만주 신경교향악단으로 건너갔다가 해방후 월남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음악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은 찾아볼 수 없다.지금도 1년 3백65일중 그는 2백일쯤은 음악회에 들른다.크고작은 음악회 모두는 그의 동료·후배·제자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는 이를 빼놓지 않는다. 또 친구들을 좋아해서 여러모임을 가지고 있고 어떤자리에서나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예술원 회원중 술마시는 사람끼리의 수요회,또 첼리스트중 60세이상인 첼로동문회 OMC(Old Musician Club)등은 한달에 한번씩모이는 친목 모임들이다. 그는 검은 베레모에 벨트를 맨 더블보턴의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영국신사」지만 그래서 사교적이고 활동적이고 실천적이나 불의를 참지못하는 까다로운 성격탓에 「면도날」이란 별명을 듣고 있다. ○사교적·활동적 성품 79년 서울대음대학장시절 문교부가 예체능계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예능계 대학교수들이 개인레슨을 함으로써 부조리를 빚고 있는 점」을 지적,「개인레슨 엄단」을 발표하자 같은해 「음락세계」4월호에 「음악의 조기교육에는 실력있고 경험이 풍부한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예능계 대입공동관리제 실시에 앞서 문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가」를 조목조목 물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연주가이자 대학교수·음협이사장·예총회장을 두루 거쳤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첼로로 활약하는 1백여명의 직계제자,훌륭하게 키운 그의 3남2녀중 장남(성일씨)콘트라베이스 차남(성환씨)바리톤·효성여대교수,장녀(미영씨)피아니스트·교원대교수 차녀(소영씨)첼리스트,그리고 3남(시문씨)만이 공대졸업후 금성연구소에 근무하는등 안팎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생을 승리한 것도 성취한 것도 아니며 때로 심한 비바람에 시달렸어도 음악의 열정 때문에 그것이 비바람인줄 짐작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전 82년 낙단4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나이를 먹으니까 공수래 공수거,세상사 여부운,이른바 「모든 고통을 낫게하는 감미로운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오로지 첼로에 전념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싶다』고. 그리고 두주일전인 지난 12월,그는 사랑하는 장남을 그의 눈앞에서 여의었다.시카고에서 콘트라베이스로 활약하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동안 망연자실,슬픔을 감추려할수록 그의 눈가에 통한이 서려 보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인생이란 왔다가 가는 것.그가 나보다 먼저 갔을 뿐」 담담히 체념하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여 그의 억양에는 처연한 오열이 실려있다.한 아들의 아버지이기 전에 예술가의 의연함과 긍지로 이를 이겨내려 애쓰지만 그의 그런 허탈감은 부모로서의 아픔일수밖에 없다. 우리 음악사에서 첼로선봉으로 커다란 획을 긋는 노대가의 이번 연주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연주일수도 있다.이번 연주에서 그는 평생동안 사랑해마지 않던 베토벤의 다섯개의 첼로 소나타와 바흐 무반주의 첼로조곡,바르토크의 루마니아 포크댄스를 암보로 들려준다. 아들의 영혼을 가슴에 묻은 첼로의 선율은 좀더 짙은 암청색을 띤채 비감을 정제시킨 관조의 경지를 보일수도 있다.그리고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는 부자간의 사연인양 그날의 객석에 장탄식으로 여울질지도 모른다. □연보 ▲1919년3월18일 평남 안주에서 출생 ▲39년 평양 숭실중 졸업후 도일 ▲43년 일본 동경제국음락학교 졸업(Violin이인호,김동진,Cello김태연·대촌묘칠사사)재학중 일본교향락단 동경 송죽관현락단단원 ▲43∼45년 만주 신경교향락단단원(각부 수석진자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 활동) ▲45년 지방순회연주중 북안에서 해방맞아 다음해 월남 ▲46년 고려교향락단 단원▲47년 서울교향락단 수석주자(서울실내악협회 창단 멤버) ▲48년 배재강단에서 제1회 첼로독주회이후 20회 ▲50∼53년 부산 피란지에서 실험락회 연주 20회 ▲52년 현제명씨 권유로 서울대 예술대 음락부 전임강사 ▲53년 서울트리오(첼로 전봉초 피아노 정진우 바이올린 박민종)창단 ▲54년 서울대 음대 학생담당 학장보 ▲58년 대한민국 문화사절단 일원으로 동남아 6개국 순회연주 ▲60년 제8차 IMC(국제음악회의)총회 한국대표로 파리UNESCO회의참석(동양에 있어서의 서양음악 주제발표) ▲65년 서울 바로크합주단창단(제21회정기연주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에게 바통넘김) ▲67년 음악연주 25주년기념 KBS교향악단과 첼로협주곡 협연 ▲72년 서울대 4중주단 창단 ▲76∼79년 서울대 음대학장(재임시 동양음악연구소 창설) ▲79년 전봉초 교수 화갑기념 첼로오케스트라 연주회(국립극장대극장)지휘 ▲82년 낙단생활 40주년기념 전봉초첼로독주회 ▲84∼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 ▲85∼88년 제13∼14대 한국음락협회 이사장 ▲85년 제21차IMC총회 한국대표(동독 드레스덴 기조연설) ▲87년 일본 교토 일한친선협회초청 첼로독주회(교토회관),제22차 IMC총회 한국대표(브라질) ▲88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회장 ▲91년 사단법인 아세아청소년 교향악단 한국지부장 ▲현재: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 이사장,사단법인 국제음락애호가협회 한국본부이사장,재단법인 안익태기념사업회 재단이사장,전쟁기념 사업회이사장,예술원 회원,이복련여사와 3남2녀. 5월 문예상 본상,대한민국예술원상,금관문화훈장,국민훈장동백장 음락의 주변,농현50년 낙수
  • 초선의원 활동비 월평균900만원/민주12명 7개월간 정치비용 공개

    ◎최고위원 경우 6개월간 당비 1,600만원 납부/경조비·회비 등 850만원… 빚 200만∼1,400만원 민주당의 초선의원 12명이 9일 마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활동 비용을 공개했다. 이들이 이날 정치자금의 내역을 국민앞에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정치권에 「돈적게 쓰는 정치」「깨끗한 정치」풍토가 계속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이들의 수입·지출내역을 살펴보면 바람직한 정치자금의 조성,지역구관리·의정활동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김원웅·문희상·박계동·신계수·원혜영·유인태·이규택·이길재·이부영·이석현·장영달·제정구의원등 12명이 공개한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동안의 정치활동비용 명세서에 따르면 한 의원이 한달평균 1천만∼1천2백만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물론 대선기간 동안 중앙당에서의 일부 「수혈」을 포함한 것이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평상시 한달평균 8백만∼1천만원이 있어야 최소한의 의원활동이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입을 항목별로 보면 1천만원 안팎의 수입 가운데 월 세비는 공제액을 빼고난 평균 4백만원선.나머지 60%는 중앙당지원금,동문회등의 후원금,성금,당비,각종원고료 심지어는 은행대출을 받거나 사채를 빌려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차입금이 없는 의원은 거의 없었으며 6개월동안 2백만∼1천4백만원정도의 빚을 안고 있었다.빚은 14대총선때 진 것이 많았고 은행대출을 통해 갚아나가면서 쌓인 것이 대부분이었다.이부영의원의 경우 6개월동안 1천4백만원의 빚에다 14대총선때 진 2천만원을 합쳐 현재 부채총액이 3천4백만원이었으며 문희상의원의 1천만원,장영달의원의 1천2백만원도 양상은 이의원과 유사하다. 수입은 의원활동비와 지구당운영·활동비로 모두 충당돼 이석현의원(6개월간 8백만원흑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적자상태. 대부분 지구당운영비가 의원활동비보다 조금 더 지출됐으며 정책개발비,자료구입비등의 지출보다는 사무실운영경비,행사·단체지원금등 비생산적인 곳의 지출이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부영의원의 경우 6개월동안 의원활동비5천8백만원중 순수 의원활동비는 12%인 7백만원인 반면 나머지는 최고위원으로서의 당비 1천6백만원,경조비·각종회비·단체지원금 8백50만원등으로 쓰였다. 「화환 안보내기」등을 주도한 이들 의원들의 경조비를 보면 대체로 한달 평균 10만∼38만원 사이인데 비해 제정구의원이 6개월동안 58만원을 지출,가장 적게 썼고 장영달의원이 2백30만원을 써 이들중 최고를 기록했다. 이같은 경조비용은 다른 의원들의 경우 한달 평균 1백만∼4백만원까지 지출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극히 절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활비는 의원 수입에서 떼어 쓰는 경우(이부영·신계수)와 부인이 버는 경우(유인태·장영달·문희상·원혜영)가 있었으며 이석현·이길재·제정구·김원웅의원등은 의원수입에서 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입원이 있는지 분명치가 않았다. 이들 의원들의 이번 「공개」에는 그러나 성금·후원금등 수입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어 한계를 안고 있지만 정례화가 되면 그 체계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야당정치인을 후원할 경우 받는 불이익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공개」에 따라 있을 수 있는 문제점도 보완해야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화가와 시인/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화가는 그림으로 아름다움을 묘사해내고 시인은 시어로 아름다움을 묘사해 낸다.그러니 다만 그 묘사 방법만 다를 뿐 아름다움을 표현해 낸다는 사실에서는 공통성을 가지게 된다.그래서 고래로 시정과 화의는 동일한 것으로 여겨왔다. 남종화의 시조로 추앙되는 왕유가 『당세의 잘못 된 시인,전신은 응당 화사였으리』라고 읊은 시구나,북송대의 대문호인 동파 소석이 왕유가 그린 「남전연우도」제발에서 「왕마힐의 시를 맛보면 시가운데 그림이 있고,왕마힐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한 제사가 이를 극명하게 밝혀주는 내용들이다. 이에 그림을 소리없는 시(무성시)라 하고 시를 형태없는 그림 (무형화)이라 하기도 하였다.따라서 명시인이 명화를 좋아하고 명화가가 명시에 탐닉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으며 시서화에 모두 능해 삼절로 꼽히는 대예술가들이 간간 출연하기도 하였다.그러나 화성이라고 추앙할만한 명화가와 시성이라고 추앙할만한 명시인이 동시대에 출현하여 서로의 시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극진히 아낀 예는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영조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진경문화기에서는 겸재 정선(1676∼1759)이라는 진경산수화의 대가와 차천 이병연(1671∼1751)이라는 진경시의 대가가 거의 동시에 출현하여 삼연 김창홉(1653∼1772)이라는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고 백악산 밑 같은 동네에서 평생을 같이 살면서 서로의 그림과 시를 그렇게 잘 이해하며 아껴주었었다. 겸재가 65세,사천이 70세 되던 해에 겸재가 현재 강서구 가양동 읍치가 있던 양천현의 현령으로 부임해 가게 되자,그들은 노경에 접어든 나이도 잊은채 전별의 자리에서 시 한수 지어보내면 그 시제와 시의에 맞는 화정으로 그림 한 폭을 그려 보내기로 하자는 시화환상간,즉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자는 약속을 하고 이를 잘 지켜 「경교명승첩」이라는 기념비적인 시화첩을 남기기도 한다.
  • 기업자율 최대 보장/김 당선자/중기활성화 집중지원

    ◎경제5단체장 접견서 강조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26일 상오 여의도민자당사에서 유창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 5단체장을 접견,『경제 재도약을 위해 정부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당선자는 유회장외에 김상하대한상공회의소회장,박용학한국무역협회회장,박상규중소기협중앙회회장,이동찬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취임하면 최우선으로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도록 할 것이며 이를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당선자는 그러나 『경제재도약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되고 기업과 국민 모두가 함께 뛰어야 하며 특히 기업 스스로도 낭비적 요소와 비효율적 요소를 과감히 없애는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당선자는 또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소기업이 결정적 역할을 할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정부로서도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 만큼 기업 스스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계 인사도 만나 김당선자는 이어 김성태 예술원회장을 포함한 문화·예술계인사들의 방문을 받고 『신한국건설과 우리 모두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신한국건설에 문화·예술계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당부했다. 김당선자는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며 창작활동지원,문화·예술공간의 확충,그리고 문화·예술계인사들에 대한 예우등에도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신한국창조에 문화·예술계인사들이 앞장 서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김당선자의 면담에는 김예술원회장외에 정한숙문예진흥원장,조경희예술의 전당이사장,곽종원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김락순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이옥동문화원연합회회장,남궁원영화배우협회장이 참석했다.
  • 영조의 그림솜씨/박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역사를 통해서 보면 통치자의 성향이 그 문화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알렉산더나 칭기즈칸 같이 세계를 정복한 영웅들이나 아쇼카나 진시황 같이 제국을 통일한 무단적인 인물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무호법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자연히 학문과 예술은 그에 종속되는 비운을 맞았었고 당태종이나 당현종 및 조선의 세종대왕이나 영조대왕 같이 학문과 예술을 숭상한 통치자가 다스릴 때는 문운이 크게 일어 획기적인 문화발전이 이루어 졌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그래서 이런 현군의 치세하에서는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역사상 최고 업적을 남겨 서성이니 화성이니 시성이니 하는 칭호를 얻는 이들이 많이 배출되게 마련이다. 소위 초당삼대가라 불리는 구양순,우세남,저수양 같은 대서예가들은 당태종이 길러낸 이들이고 그림에서 남북종화의 시조로 추앙되는 왕유와 이사훈및 시선 이태백,시성 두보는 당현종 성세에 배출된 인물들이다.세종대왕 시대에도 시서화금기 오절로 꼽히던 안평대군 이용을 비롯하여 화원화풍의시조인 현동자 안견과 사대부화풍의 시조인 인재 강희안 등 허다한 예술가들을 배출한다. 이런 대예술가들을 배출하던 당시의 군주들은 그 자신이 학예를 숭상하는 천품을 타고나 이미 학문과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 그 기량이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상례이다.당태종이 서예의 대가이었다든가 당현종이 시서에 능하였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리 세종대왕이 송설체 글씨에 능하고 난죽을 잘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그렇다면 조선 고유색 짙은 진경문화를 주도하여 시성으로 불러야 할 진경시의 대가 차천 이병연(1671∼1751)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화성 겸재 정선(1676∼1759)을 길러낸 영조대왕(1694∼1776)도 필연 학예의 천품을 타고난 대예술가이었으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과연 그렇다.이미 왕자시절에 그의 산수인물도는 부왕인 숙종대왕의 극찬을 받을 만큼 가경에 이르러 숙종어제의 제화시가 남아있을 정도이데 겸재의 동문 후배인 동포 김시민(1681∼1747)이 남긴 제사에서 보면 영조는 산수인물 뿐만 아니라 난초 국화 매화 등을즉석에서 휘호하여 도자기의 밑그림으로 쓰게할 만큼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 임금이었기에 시성 차천과 화성 겸재 및 풍속화의 시조 관아재 조영우(1686∼1761)등을 길러 내었을 터인데 사실 왕자시절에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 천품을 함양해 간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그 동네는 지금의 청와대 부근이니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해당한다.
  • YS 금의환향… 온동네 축제물결/대선후 첫 귀향·축하연 이모저모

    ◎“큰닭섬에 경사났네” 농악대 나와 환영/5백명 초청,가락동연수원서 자축연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22일 「금의환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하루를 보냈다.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인 거제도와 마산을 방문,부친과 동네어른들에게 당선인사를 했다. 이에앞서 그는 이날상오 큰 꿈을 키웠던 모교인 서울대 입시현장에 들러 대학관계자와 학부모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교육대통령론 피력 ○…김당선자는 이날 수험장주변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수험생들의 입실이 끝난 9시쯤 서울대에 도착,김종운총장으로부터 입시준비현황 등을 설명들은 뒤 『젊은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예의 「교육대통령논」을 피력. 김당선자는 입시경쟁률과 도서관실태 등에 관심을 표명한 뒤 『이제 「민주대 반민주」구도는 종식되고 새로운 선거문화도 정착된 만큼 국민 모두가 신한국건설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 김총장은 『서울대 동문중에서 첫 직선대통령이 나와 참으로 기쁘다』고 축하인사. 이어 김당선자는학부모 5백여명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회관 식당에 들러 『1년동안 자녀들과 함께 고3병을 앓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꼭 합격하길 바란다』고 위로해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기도. ○모친묘소서 눈시울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고향인 경남 거제를 방문,선영에 성묘하고 귀경길에 마산에 있는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인사. 김당선자는 이날 상오9시40분쯤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대통령 전용기인 공군2호기와 공군헬기를 차례로 이용,고향인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도착,곧바로 모친과 조부모 백부 묘소를 찾아 헌화 참배. 특히 김당선자는 모친 박부연여사의 묘소에서 봉분잔디를 고르며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바치고 눈시울을 붉힌뒤 한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고향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묵상에 잠기기도. 또한 부인 손여사와 김당선자의 여동생들도 『어머니 오빠가 대통령이 돼서 지금 찾아왔습니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당선자가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에 이르자 주민들은 「큰 닭섬에 경사났네 김영삼대통령」「김영삼대통령당선 경축」「대도무문의 크신 뜻을 통일의 시대로」등 플래카드와 애드벌룬을 내걸었고 농악대를 동원,수기를 흔들고 「대통령 김영삼」을 연호하는가 하면 「나의 살던 고향」을 연창하는등 온통 축제분위기. 주민들의 환호속에 생가에 도착한 김후보는 지역유지및 주민대표 2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주민들의 숙원사업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거제발전에 관심을 표명.이어 김당선자는 귀경길에 마산 회성동으로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내보이며 『아버지 이것을 타기 위해 40년이 걸렸습니다』고 인사한뒤 부인 손여사와 나란히 큰절. 마산 부친댁 인근주민 3천여명이 몰려나와 꽹가리와 북을 치며 김당선자의 마산방문을 열렬히 환호하자 대문 입구로 나와 즉석 연설. ○연예인 대거 참석 ○…김당선자는 이날 하오 김종필대표 정원식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소속의원·당직자·선대위관계자등 5백여명을 「정권창출의 산실」이 된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으로 초청,자축연을 베풀고 당선사례. 김당선자는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앞에는 국민 모두를 화합을 통해 하나로 묶고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과제가 놓여 있다』면서 『정권창출의 주역인 우리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면서 신한국건설을 위해 함께 뛰자』고 당부. 특히 이날 행사에는 김후보의 대선유세에서 큰 역할을 했던 「큰 나래회」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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