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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주점·룸살롱·안마소서 지자체 접대비 결제 안된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접대성 경비를 지출할 때는 의무적으로 ‘클린카드’를 써야 한다. 클린카드란 유흥업소 등에서는 원천적으로 결제가 되지 않도록 특약을 맺은 신용카드를 말한다. 비용 지출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유흥주점이나 나이트클럽, 룸살롱, 안마시술소 등 부적절한 유흥비 지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의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집행기준’을 마련해 각 자치단체에 시달했다. 앞서 행자부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자치단체의 예산지출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골프장 4건, 유흥단란주점 75건, 안마시술소 11건 등 모두 156건에 4861만원이 불필요하게 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행자부는 업무추진비 가운데 현금사용을 30%로 제한하던 규정은 폐지했다.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카드깡을 하거나, 회계서류를 조작하는 등 부작용이 더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신 현금사용일자, 사용용도, 지급대상자 등을 회계서류에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또 경조사비는 기관운영업무추진비에서만 집행하고, 시책업무추진비에서는 일절 사용하지 못한다. 업무추진비를 동문회비나, 학위취득 축하연 등 개인적인 비용으로 쓰는 것도 금지했다. 지방의원들이 해외여행을 할 때 공무원의 국외여비를 전용하는 편법도 사라지게 됐다. 지방의원의 여행경비는 시·도의원은 연간 180만원, 기초의원은 13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원들은 공무원의 국외여비를 전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근 3년 동안 268명의 지방의원이 모두 4억 9000만원을 부적정하게 지출했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모임]

    ●배재학당 제32회 총동창회배 기별대항 축구대회 21일 오전 10시, 배재고 대운동장 (02)794-2323,019-244-7815●배문·서문 총동문 체육대회 21일 오전 10시,4호선·7호선 총신대역 2번출구 서문여중고 (02)706-2572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개교 60주년 맞는 경남대 박재규 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개교 60주년 맞는 경남대 박재규 총장

    불모지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깊이 내렸기에 어찌 바람에 흔들릴까. ‘어린왕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어디엔가 숨어 있는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 약관 20대 나이였다. 다 쓰러져가는 한 대학과 졸지에 맞닥뜨렸다. 아무리 봐도 까마득한 벌판이었다. 뜻을 굳게 세웠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한줄기 빛과 우물을 찾아나섰다. 감천(感天), 떠나가던 학생들이 점차 돌아왔다. 방황 속의 황량한 캠퍼스에는 꽃향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 지방의 명문사학으로 당당히 뿌리내렸다. ●‘북한학´ 학문 만들어 평생 역사 현장에 박재규(전 통일부장관) 경남대총장. 요즘 들어 각별한 회한에 잠긴다. 첫번째는 자신의 35년 인생을 쏟아부은 큰아들 같은 경남대가 오는 20일로 60세 생일을 맞는다는 것이요, 두번째는 불모지에 ‘북한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내고 평생을 북한 전문가로 역사의 현장에 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 집무실에서 박 총장을 만났다. 먼저 근황 얘기가 나왔다. 개교 60주년 행사 준비로 바쁜 가운데에도 부르는 곳이 여전히 많아 국내외로 특강을 자주 나간다고 했다. 강의 내용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안보문제, 남북관계 전망, 한·미관계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군부대 신세대 장병과 대학생들로부터 강의요청을 자주 받는다. 박 총장은 알다시피 북한문제 전문가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무장관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방북한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세 차례나 만날 정도로 북한 고위층 사정에도 밝다. 그렇다면 다음달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일행에 포함됐을까.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남북 정상회담 당시 주무장관의 입장에서 모시고 가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이어 개교 60주년에 대한 화제로 옮겼다. 감회가 남다르겠다고 하자 “함께 살아온 인생과 거의 같다.”면서 지난 세월을 회고한다. 그러니까 광복 직후였다.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재양성과 교육정책에 맞춰 서울에 5∼6개의 대학인가가 났을 때였다. 당시 신익희 선생이 서울에 ‘국민학관’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 겸 학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민학관’은 부산으로 서둘러 옮겨졌다. 난리통과 재정난 등 엎친 데 겹쳐 대학은 ‘보따리 신세’로 전전긍긍한다. 결국 1952년 해인사재단으로 넘겨지면서 명칭이 ‘해인대학’으로 바뀐다. 캠퍼스도 경남 진주로 이동했다.61년에는 마산으로 학교가 옮겨지면서 ‘마산대학’으로 다시 개명됐다. 이후에도 재정난 등의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 무렵 박 총장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다. 그러자 주위에서 “마산과 창원 일대에 대학 하나 있는데 그걸 못살려서야 말이 되겠느냐.”고 하면서 박 총장에게 유학의 경험을 활용해 대학을 살려보라고 권유했다. 이때가 혈기왕성한 20대 후반의 나이였고 딱 1년만 해보자고 뛰어들었다. 특유의 꼼꼼함과 추진력 덕분인지 학교 사정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작해봐야 120여명의 전교생 중 절반 정도만 등교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학생수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2년 서울 한복판에 ‘극동문제연구소´ 차려 박 총장은 72년 수도 서울의 중심 한복판에 ‘극동문제연구소’의 간판을 보란 듯이 내걸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지방대학 주제에 무슨 북한 연구소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동북아와 한반도 통일문제를 다루는 세계적 특성화의 기치를 당당히 내걸었다고 자부했다. 또 연구소 하나만큼은 친자식처럼 키워낸다면 어느 대학 못지않게 자랑스러워질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했다. 얼마 후 소홀히 여겼던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권 국가 연구에 대해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해내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앞서나갔다. 또 많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내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98년 3월 드디어 북한대학원을 개원하면서 연구소의 연구기능과 교육기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이른바 북한 및 통일연구의 메카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 것. 이후 활발한 학술교류, 출판 및 교육활동 등을 통해 규모나 실적 면에서 국내 제1의 대학연구소로 자리매김한다. 또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중심 연구기관이자 사회과학 연구자들을 연결한 휴먼 네트워크의 허브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54차례의 국제학술회의와 91차례의 해외학자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2005년에는 경남대 북한대학원이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새롭게 태어나 북한과 통일분야를 교육하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전문 대학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 총장이 북한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시절.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중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한스 모겐소 교수와 존 허츠 교수 등의 강의를 듣게 된다. 첫학기때였다. 사회주의 경제학자인 피터 와일리스 교수가 런던에서 뉴욕시립대학에 1년간 교환 교수로 왔다. 그러자 박 총장은 그의 소련 경제학 수강을 택했다. 하루는 강의가 끝난 어느 날 와일리스 교수가 박 총장을 부르더니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남한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북한 경제에 관한 리포트를 하나 작성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할 수 없이 유엔과 대학 도서관 등에서 사회주의 자료를 뒤져가며 정해진 기일 내에 리포트를 완성, 제출했다. 와일리스 교수는 고맙다고 하면서 통일을 대비해 북한 연구를 하면 그 분야의 선구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한다. 그는 또 박 총장이 원한다면 런던 경제대학(LSE)에서 장학금을 주며 박사학위 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특히 박 총장은 유학 도중 일시 귀국해 군 복무를 하게 되는데 우연하게도 북한 연구를 하는 곳에서 근무했다. 이때 미국에서 볼 수 없는 여러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고 군복무가 끝날 무렵에는 ‘북한사회의 구조적 분석’이란 첫 저서를 남기게 된다. 군 제대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갔으나 박사학위를 마친다는 꿈을 잠시 미루고 경남대학과 인연을 맺었던 것. 그래서 첫번째 특성화 플랜으로 한층 심화된 북한연구를 위해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연구소 창립 당시만 해도 연구원이 염홍철(현 대전시장)씨 등 두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재학생 수만 하더라도 1만 5000명이 넘지요. 돌아보면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멸치잡이 가업… 배멀미로 ‘자격미달´ 판정 박 총장은 44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이 이듬해 광복과 함께 입국해 경남 마산 근처의 옥계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래서 고향이 옥계. 부친은 멸치·갈치잡이 배 몇 척을 소유한 선주였다. 하지만 살림은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도 산을 넘고 두 시간 이상 걸어야 했다. 아버지가 어느날 멸치잡이 가업을 물려주려고 배에 태웠다가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자격미달’ 판정을 받는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마산고등학교 진학 후였다. 서울로 전학을 하려고 했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자 1년 동안 용산 미군기지에서 영어를 배운 뒤 63년 미국 뉴욕행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대학 경영인으로, 북한문제 전문가로 항상 역사의 앞길과 현장에서 묵묵히 걸어왔다. 이래저래 이번 개교 60주년을 맞는 감회는 각별하다. 그래서 행사도 다양하고 의미있게 마련했다. 오는 22∼23일 동북아지역 총장협회 총회 및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는 것을 시작으로 10월까지 북한재정 관련 국제심포지엄, 한·조·중 3국 학술회의 등 각종 국제학술회의를 잇따라 연다. 특히 다음달 11일까지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경남대학교 소장 데라우치문고-조선 시·서·화 보물전’이 열린다. 이는 박 총장이 지난 개교 50주년 때 직접 일본에서 데라우치문고를 한국으로 가져와 소장했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국보급 문화재여서 관심을 모은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마산 출생 ▲67년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69년 미국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 석사) ▲74년 경희대학교 정치학박사 ▲73∼85년 경남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73∼86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86∼99년 경남대학교 총장 ▲96∼97년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97∼99년 한국대학총장협회장 ▲99.12∼2001.3월 통일부장관 ▲03∼현 동북아대학총장협의회 의장, 경남대 총장 ▲05∼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상훈 미국 뉴욕 언론연구위원회 공로상(80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 세계 체육지도자상 수상(96년), 제1회 한반도평화상 수상(04년), 아름다운얼굴 교육인상 수상(04년). ●저서 북한사회의 구조적 분석(72년), 북한평론(75년), 북한정치론(84년), 북한의 신외교와 생존전략(97년) 등 수십편.
  • 건국대 60주년 기념식

    건국대는 15일 개교 6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김경희 이사장과 정길생 총장, 김태경 동문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행사에서는 건국대와 건국대병원, 건국유업 등에서 연합으로 구성된 180여명의 범건국합창단 공연과 기념 마라톤 대회, 서예전과 한·중 학술심포지엄, 교수 학술도서전시회 등이 열렸다. 건국대는 학생과 교직원, 동문 등 2000여명이 참가한 마라톤대회에서 모인 430여만원을 전액 광진구 관내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사용한다고 밝혔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스승의 날 두 모습] 닫혀버린 제자사랑

    [스승의 날 두 모습] 닫혀버린 제자사랑

    스승의 날인 15일 전국 학교 70% 가량이 자율적으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와 서울시교육청, 교원단체들은 기념행사를 잇따라 가졌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학부모단체 등 정부와 교원ㆍ학부모단체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스승의 날 기념식’을 공동 주최했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와 교원단체가 따로 개최했던 ‘스승의 날 기념식’은 8년 만에 처음 공동으로 열렸다. 전교조는 이날 따로 행사를 가졌다. 전국 초ㆍ중ㆍ고 대부분이 이날 휴업에 들어간 것에 대해 학부모 박모(43)씨는 “촌지 때문에 학교가 쉰다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면서 “내년에는 교사와 학생들이 한 자리에 어울려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등교한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기념식이나 반별 행사 없이 평소처럼 수업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별도 행사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백성호 한가람고 교감은 “2년 전까지는 기념식을 했는데 학생들의 짓궂은 행동에 교사들이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난해에는 휴업을 했더니 졸업생들이 찾아오지 못해 불평이 많았다.”고 정상수업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보성고는 이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담임선생님께 꽃을 달아주는 행사와 사제동행 축구경기를 가졌다. 용산고 역시 전교생이 등교한 가운데 기념식을 열고 학생회 주최로 동문 선배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이택순 경찰청장의 강연회를 가졌다. 경기고 역시 학교 차원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열었다. 한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이 회원 1313명을 대상으로 스승의 날 자율휴업과 선물비용 관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변화가 없다’는 답변이 796명(60.8%)으로 가장 많았다. 학부모들이 교사에 대한 선물부담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풀이됐다. 이밖에 ‘선물하지 않는다’(16.2%)와 ‘낮아졌다’(15.6%),‘높아졌다’(7.5%) 순이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클릭이슈] 盧대통령 “北에 많은 양보” 해석 엇갈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몽골 방문 중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고 한 언급과 관련, 정부 정책으로서의 실체가 있는지, 알리려고 했던 ‘노심’(盧心)은 무엇인지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과의 선긋기를 통한 대북 독자노선 채택이 아니냐는 분석으로도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은 교착상태인 6자회담 타개를 위한 대북 메시지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잇단 안보 회의를 통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방북,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6자회담 복귀 설득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한 유일한 카드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차관과 이용준 북핵외교기획단장은 이달 말 중국을 방문, 중국측으로부터 탕자쉬안 국무위원의 방북 결과를 듣고 교착 타개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즉흥 발언? 계산된 발언? 몽골 동포간담회에서 ‘남북철도와 유라시아 철도 연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양보’를 밝힌 노 대통령의 언급은 동문서답에 가까웠다. 정부 당국자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결론이 모아진다. 다만, 노 대통령이 현 한반도 정세를 보는 상황인식이 답변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채 나왔다고 보고 있다.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려 한다.”는 언급과 관련,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특별한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몽골 발언이 있은지 이틀 뒤인 11일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문제에 무거운 책임을 갖고 해법을 찾아야 할 당사자는 한국이며, 한국 대통령으로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 운명을 미국에 맡길 수 없다.”고까지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온 뒤 “확대해석은 하지 말라.”며 진화에 나서던 입장에서 한발 더 나간 발언이다.‘노심의 전달’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종석 장관도 12일 라디오에 출연, “미국의 역할에 한계가 있는 것 같으니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DJ 방북과 6자회담 교착타개 중·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7·28일 중국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평양을 방문했으나 결국 빈 손으로 돌아왔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선 DJ방북을 통한 설득밖에는 길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를 선뜻 받아들여 회담이 이뤄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우선 목적은 6자회담의 재개란 것. 특히 정부는 미국의 대북 압박과 교착상태가 계속될 경우,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한 플루토튬 재처리 등 악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상황관리’ 차원에서도 긴급한 조치란 설명이다. ●한·미간 갈등과 특별한 조치는? 워싱턴측은 한·미간 북핵문제 해결에서 전술적 차이가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이견도 분명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으니 ‘당근’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북한의 개혁을 촉진하는 전제로 ‘당근’을 줘야 하지만 현재로선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분위기는 한국이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6자회담으로 데리고 나오려는 노력에는 묵인하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지켜본다는 말이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16∼18일 남북 장성급회담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때 남북간 현 상황과 관련한 ‘공감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성동구 새 청사 입주 2주년 기념식 대신 매실나무 심기

    서울 성동구가 종합행정청사(성동종합행정마을)의 개청 기념식을 기념식수로 대신해 화제다. 성동구는 11일 성동종합행정동 개청 2주년을 맞이해 구청과 성동문화회관, 왕십리문화회관, 왕십리교통광장 등지에 매실나무 100여그루를 심었다. 이 매실나무는 경남 하동군이 기증한 것으로 매년 4월이면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린다. 향기가 진한 것이 특징이다. 성동구가 기념식수로 개청 기념식을 대신한 것은 1회성 문화행사는 한번 지나가면 잊혀지지만 식수는 훨씬 의미가 깊고 환경에도 보탬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날 기념식수에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둔 17명의 직원이 참가해 구청 앞 화단에 나무를 심었다. 이날 행사에는 퇴직예정자를 포함, 모두 130명의 직원들이 참여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부고] 노동자 시인 박영근씨

    운동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를 쓴 노동자 출신 시인 박영근(朴永根) 씨가 11일 오후 8시45분 서울 백병원에서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의 악화로 별세했다.48세.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고를 다닌 고인은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다 1981년 ‘반시(反詩)’ 제6집에 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뒤를 이어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김기홍 등 노동자 출신 시인들이 잇따라 등장해 1980년대 이른바 ‘노동문학’을 꽃피웠다. 고인은 생전에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노동문화패 ‘두렁’ 등에서 활동했고, 인천민예총 사무국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과 이사 등을 지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널리 읽힌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1984)를 비롯해 ‘대열’(1987),‘김미순전(傳)’(1993),‘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1997),‘저 꽃이 불편하다’(2002)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1994년 제12회 신동엽창작상과 2003년 제5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이며, 장례는 15일 오전 8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시인장으로 치른다.(02)-590-2135.
  • ‘자랑스런 금속동문인상’ 수상

    남승의 홍익대 총장은 최근 열린 서울대 재료공학부 금속동창회 정기총회에서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여 후학의 귀감이 된 점을 인정받아 ‘자랑스러운 금속동문인상’을 수상했다.
  •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전년도 준우승자 김동희 2단의 등장

    [제16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2회전]전년도 준우승자 김동희 2단의 등장

    제1보(1∼32) 이번 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의 막내인 진시영 초단의 두번째 등장. 본선1회전에서 요즘 잘 나가는 온소진 3단에게 완승을 거둬서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상대가 약간 거물이다. 김동희 2단,85년생으로 2003년에 입단했다. 두 기사 모두 허장회 9단의 문하생으로 동문 선후배인 셈이다. 입단도 2003년,2004년에 나란히 했다. 그러나 나이는 김2단이 4살이나 위로 큰 형 뻘이다. 김2단도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기사처럼 보이지만 김2단은 엄연히 전년도 준우승자이다. 특히 작년 결승전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사인 박영훈 9단에게 선승을 거두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쳐서 바둑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세계 정상급의 기사와 무명기사의 대결로 알려졌지만 실은 두 기사는 85년 동갑내기 기사이다. 아마 그러한 라이벌 의식이 김2단의 실력을 배가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준우승 이후 쑥쑥 성장할 줄 알았는데, 김2단은 그 뒤로 다른 어떤 기전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낸 것이 없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비씨카드배에 등장한 것이다. 돌을 가리니 김2단의 흑번. 흑3,5,7의 미니중국식 포진은 최근 몇 년 동안 프로의 바둑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포석이다. 특히 백14까지의 진행은 최근의 유행수법인데 흑15가 더욱 최근의 수법이다. 작년말에 두어졌던 김기용 2단 대 손근기 2단의 본선1회전 대국에서는 (참고도) 흑1로 빠졌었다. 이하 8까지 진행됐는데 실전보다 더욱 특이한 진행이다. 흑21까지 흑의 세력이 너무 좋아 보이지만 이 형태에 대해서는 백22부터 삭감하는 수법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이하 32까지는 이런 정도의 진행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우리는 맞수 CEO] 초고속인터넷 “수성” “공격”

    [우리는 맞수 CEO] 초고속인터넷 “수성” “공격”

    하나로텔레콤과 파워콤간의 초고속인터넷 시장 영역다툼이 가열되고 있다. 경쟁을 넘어 혼탁양상으로 빠져들었다. 그 중심에 박병무(하나로텔레콤) 사장과 이정식(파워콤) 사장이 서 있다. 같은 40대이고 서울대 동문이다. 사장 취임시기도 비슷하다. 박 사장은 3월, 이 사장은 1월에 지휘봉을 잡았다. 이력은 특이하다. 박 사장은 인수합병(M&A) 전문가고 이 사장은 관료 출신이다. 이들의 충돌은 ‘성장전략’의 차이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시장진입 10년차인 하나로텔레콤은 수익성을 우선시한다. 반면 파워콤은 규모의 경제에 중점을 둔다. 수성과 공격에서 오는 파열음이다. 박 사장은 “규모가 우선이라면 가입자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 진입 10년차에 360만명의 가입자를 둔 하나로텔레콤의 상황에서는 수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발언이다. 그러나 시장에 뛰어든 지 1년도 안된 후발사업자인 파워콤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우선이다. 신규 업체 특성상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워야 한다. 이런 성장전략의 차이에서 ‘박·이’의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이 사장의 공격 경영의 요체는 판촉강화다. 약정기간이 만료된 가입자가 타깃이다. 연 250만∼300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시장이다. 신규 시장은 10만∼20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크지 않다. 공격이 강화되면 수성하는 쪽의 시장점유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박 사장도 판촉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는 결국 시장과열로 분출되고 있다. 박 사장은 “후발업체가 만족할 때까지, 즉 규모의 경제가 실현됐다고 판단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해 9월 시장에 진입한 파워콤은 4월 현재 54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 목표는 100만 가입자였지만 연말까지 130만명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치를 내놨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로텔레콤 등 기존 사업자의 고객을 끌어오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때문에 약정기간이 만료된 타사 고객을 상대로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속도는 높여주고 요금은 낮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사장은 통신시장에서 초고속인터넷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말한다. 통신·방송융합에 기반한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비하자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TV(IPTV) 보급 등은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장비 등 관련 시장이 머지않아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들의 신경전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 사장이 18일 오찬 기자간담회를 갖기로 하자 박 사장이 같은 날 조찬 간담회를 들고 나왔다. 하나로텔레콤측은 “주식거래가 재개되기 전날 기자간담회를 하겠다는 것은 주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불쾌해한다. 이에 대해 파워콤측은 “하나로 주가에 영향을 줄 만한 회사가 아니다.”면서 “50만 가입자 돌파 등 겸사겸사 날짜를 잡았는데 이날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런 소모전에서 발을 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TV포털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기업으로의 전환이다. 통신망을 바탕으로 초고속인터넷에 전화,TV포털까지 묶어서 판매하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초고속인터넷 사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 영역이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스쿨존서 또…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인 스쿨존(School Zone)에서 교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9일 오후 1시쯤 충남 서산시 동문동 서동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이 학교 3학년 한모(9)군이 15t 덤프트럭(운전사 정모·58)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가 난 곳은 스쿨존으로 지정돼 있으나 인근에서 아파트 신축 및 도로 확포장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올해 말 공사가 끝날 때까지 신호기나 과속방지턱 등 시설 설치가 유보돼 있는 상태여서 공사차량의 무분별한 통행이 빈번했다. 사고 당시 학교 앞에는 하교시간에 맞춰 학생들을 태우려는 학원 승합차가 여러대 세워져 있었으며 한군은 이들 차량 사이를 통과해 길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6일 경남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신현중학교 정문 앞 도로에서 등교중이던 김모(11·신현초 4년)양이 덤프트럭에 치여 숨지는 등 올들어 3·4월 두달 동안에만 전국에서 83건의 스쿨존 교통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서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중동중·고 100주년 학술대회

    중동중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학술대회를 열었다. 중동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9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중동 100년 한국 100년’을 주제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했다.중동 중고교 졸업생들의 사회 각 분야에서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자리로,‘중동 100년사’ 편찬의 기초 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다.‘한국의 법률사회와 법조계 동문’(김제완),‘한국의 문학을 이끈 중동동문들’(유영봉) 등의 발표에 이어, 장영섭 연합뉴스 사장, 안희천 서울교대 교수 등의 동문들이 참석,‘중동의 건학이념과 한국교육’,‘중동 100년과 한국의 정치 사회’ 등 7개의 세션에서 토론을 벌였다.
  • [新경제대국 꿈꾸는 인디아 리포트] (2) IT 인재산실 인도공과대

    [新경제대국 꿈꾸는 인디아 리포트] (2) IT 인재산실 인도공과대

    |첸나이(인도) 이기철특파원|“우린 미국의 학생들보다 30% 가량 더 많이 가르칩니다. 미국 대학에서의 석사과정을 우린 학부에서 끝냅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외국의 박사과정을 공부시킵니다.”인도 정보기술(IT)혁명의 최대 인재 공급원이며 ‘인도 최고의 명품’인 인도공과대학(IIT). 지난 3월 중순 마드라스의 대학본부 회의실에서 만난 아난드 IIT총장은 IIT 경쟁력의 비결을 “공부를 많이 시킨다.”는 단순한 답변으로 잘라말했다. 남방셔츠 차림에 도수높은 안경을 낀 그는 인도 최고의 대학 총장이라지만 소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학문의 연륜이 깊은 듯 눈빛은 ‘구루(guru·구도자)’처럼 형형했다. IIT 학생들은 4년 졸업할 때까지 165학점,5년제는 180학점을 이수한다.4년제의 경우 우리의 포항공대나 미국 평균 120학점보다 45학점이 더 많다.“특히 전공분야의 필수학점이 85학점으로 미국의 55∼65학점보다 훨씬 높습니다.”아난드 총장의 설명이다. 반면 교육비는 싸다.IIT에서 4년제 공학도의 경우 수업료 802달러와 기숙비를 포함해 연간 1458달러가 든다.MIT는 IIT보다 25배 비싼 3만 6030달러. 포항공대는 지난 2004년 기준으로 등록금 210만원을 포함해 연간 48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IIT출신이 졸업후 버는 수입은 MIT출신과 거의 차이가 없다.“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의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도 높아집니다.” “IIT가 최고의 대학 반열에 든 것은 교수법이 좋다기보다는 JEE를 통한 인도 최고의 천재들을 선발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난드 총장은 “학생들만큼이나 많은 인구에서 선발된 교수들도 역시 천재이며 교수법이 훌륭하다.”고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 100개의 독립된 특별 실험실 등 시설을 자랑했다.IIT에는 휴강은 없다.“교수가 출장 등으로 수업을 못할 경우 학생 사정을 고려해 아침 7시, 또는 저녁 9시 심지어 주말이라도 반드시 보충수업을 합니다.”휴강이면 ‘하루 땡쳤다.’며 좋아하는 우리네의 교수·학생들과 대비가 됐다. IIT 졸업생의 3분의 1이 취직 또는 유학으로 미국으로 간다. 나머지는 인도행정직공무원(IAS)을 준비하거나 IT쪽으로 빠진다.‘손에 기름을 묻히는’ 현장으로 가는 졸업생은 극히 드물다. 전공분야를 외면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아난드 총장은 “IIT는 경쟁력을 키우고,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방법을 가르친다.”며 “직업 선택은 학생들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또 “두뇌 유출보다는 인재가 개발되지 않음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IIT마드라스에는 독일·스위스·프랑스·이집트 등 외국인 학생이 25명뿐이다. 아난드 총장은 “국제학생을 600명 가량으로 올렸으면 한다.”고 내심을 털어놨다. chuli@seoul.co.kr ■ 유학생 김형득씨 인터뷰 “최고의 인도전문가가 되겠습니다. 그러기엔 IIT 인맥이 가장 좋습니다.IIT 인맥을 따라가면 인도 전체가 그려집니다.” IIT의 유일한 한국 유학생 김형득(36)씨는 시장 잠재력이 큰 인도 지역 전문가가 되는 방법으로 IIT를 택했다.IIT 졸업생들이 인도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공무원·기업인들도 안식년 등으로 IIT에 들어와 많이 공부한다. IIT마드라스 경영학 박사과정 2년차인 그는 2000년 5월 인도 남부의 폰디체리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그는 인도 최초 한국인 MBA로 기록돼 있다. 그는 인도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 소디프인디아 인도지사장도 맡고 있다. 낮에는 회사생활을 하고 퇴근후 공부한다.“매일 오후 9시부터 밤 1시까지 도서관에 있습니다.4시간씩 공부를 하지만 입학 친구들은 ‘그렇게 공부해서 졸업이나 하겠느냐.’며 걱정합니다.”입학 동창들은 연구실에서 ‘칼잠’을 자며 공부하는 ‘독종’들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독서 스피드.“책을 읽는 스피드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쓴 학생들에게 많이 밀립니다. 독서량에서 밀리는 게 가장 어려운 점입니다.”인터뷰를 마치고 중앙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IIT는 어떤 학교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서비스 회사인 영국 보다폰의 최고경영자(CEO) 아룬 사린, 갈색 왜성을 발견한 천체물리학자 슈리니바스 쿨카르니,IT 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선마이크로시스템스 공동설립자 비노드 코슬라,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회사인 모토롤라의 부회장 파드마스리 와리어…. 세계 IT업계를 움직이는 이들 인사는 모두 인도 IIT 출신이다. 포천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거의 모두에 IIT 동문들이 임원으로 포진해 있다. 그래서 인도인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도를 넘어 세계 IT뿐만 아니라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화려한 네트워크와 실력 때문에 IIT 졸업생은 세계 유수기업의 ‘러브콜’ 대상이다. IIT는 독립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가 1951년 8월18일 콜카타 서쪽 카라그푸르에서 개교했다. 미국 TV CBS의 추적 60분 사회자 레슬리 스탈은 “미국의 하버드대, 메사추세츠공과대(MIT), 프린스턴대학을 합친 대학이 IIT”라고 소개한 바 있다. IIT 모델은 미국 MIT. 첫 IIT 캠퍼스는 카라그푸르의 히즐리 강제수용소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했던 시민불복종 운동의 지지자들을 수감하기 위해 영국이 1930년대 세웠던 건물이다. 이후 2001년 아시아 최초의 공대인 톰슨공대를 IIT루르키로 이름을 바꿨다. 인도 전역에 7개의 캠퍼스가 있다. 서로 로고를 다르게 사용할 정도로 독립적이다. 인도 대통령은 IIT 각 캠퍼스의 장학사 자격을 갖는다. 장학사는 IIT이사장을 지명한다. 이사회는 IIT가 있는 주정부가 지명한 명망있는 과학기술자와 기업가 각 한 명, 교육·자연과학·공학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실제 경험을 보유한 인물 4명,IIT교수 2명으로 구성된다. IIT의 예산 대부분은 국가에서 지원받는다. 예산 집행은 1961년 제정된 ‘IIT법’에 의해 IIT 이사회가 결정한다. 지난 80년대 한 변호사출신 교육부 장관이 IIT에 지시를 내리기 위해 IIT법을 읽고는 도저히 간섭할 길이 없음을 알고는 사무실 바닥에 내팽개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후 정치인들도 IIT를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는다. IIT가 독립적인 데는 교수진의 노력도 담겨 있다.IIT마드라스 연구처장 나라야난 교수는 “교수들이 연구활동에 바빠 정치문제 등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교수진의 명성이 대단하고 자부심이 강해 다른쪽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반 이상일 편집국 부국장(반장) 이석우 국제부 차장 이기철 산업부 차장 전경하 경제부 기자 이운용 영산대 인도연구소장
  • 숭문高 개교 100주년 기념식

    개교 100주년을 맞은 숭문고등학교(교장 서연호)가 8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본교 운동장에서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 장영수 건설문화원 이사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등 동문과 재학생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 “의사소통 부재 탓” “학생운동 구시대 답습”

    “살을 도려내는 비장한 각오로 교수 감금에 가담한 학생들의 출교(黜校)를 결정했다.”(4월19일 고려대 어윤대 총장) “학생들의 이사회 무단 난입을 용서할 수 없다. 학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4월26일 연세대 정창영 총장) “총장실을 훼손한 학생들을 징계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5월8일 중앙대 김대식 부총장) 대학 총장들의 날선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등록금 인상·학교운영 방향 등 학내 문제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표출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격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총장들의 ‘꾸짖음’을 일부에서는 ‘교권확립 운동’으로까지 해석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으려 하기 전에 대학사회의 의사소통 부재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외친다.●총장들의 잇단 ‘꾸짖음’ 고려대는 지난달 5일 일부 운동권 학생회 학생들이 본관 건물에 보직교수 9명을 감금한 것과 관련,7명의 학생을 출교조치했다. 출교는 재입학조차 할 수 없는 가장 무거운 징계다. 이후 출교조치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삭발 시위에 들어갔으며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교수 감금사태 이후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고려대에서는 연일 출교조치에 대한 찬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총학생회의 본관 점거가 두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달 25일 동문회관에서 열린 재단 이사회 오찬장에 학생들이 무단으로 들어와 피켓시위를 벌여 갈등이 증폭됐다.●“운동권의 사회적 지체현상” 과거 ‘학생회활동=민주화운동’의 등식이 존재하던 때 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한 교수사회의 왈가왈부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연세대의 한 보직교수는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운동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하는데 구시대적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이재열(사회학과 교수) 소장은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과격한 행동도 충분히 용납됐다.”면서 “그러나 현재 학생회는 명분도 잃고 점점 일반 학생들로부터 멀어지다 보니 취약한 리더십을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결속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학생들의 이같은 모습을 ‘학생운동의 지체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대학의 반성도 주문하면서 “학생들이 대학의 의사결정이나 행정에 대해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등록금 동결·교비 불법 지출 의혹 답변 없어 본관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연세대 총학생회측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학교측은 단 한 차례도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지난달 25일에도 이사회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 현안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참관하려 했던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앙대의 한 단과대 학생회장은 “페인트칠이라는 의사표현에 있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학생총회에서 의결한 등록금 동결과 교비 불법지출 의혹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 학교측이 무조건적으로 징계를 강행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김기용 유지혜기자 kiyong@seoul.co.kr
  • 휘문고 9일 개교 100주년 잔치

    휘문고가 9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 및 스승의 날 큰잔치’ 행사를 연다. 휘문고는 1906년 5월1일 민영휘(閔泳徽) 선생이 고종황제로부터 자기 이름 속 ‘휘’자를 딴 교명을 하사받아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터에 세운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시작됐다. 동문으로는 국무총리를 지낸 최두선, 백두진, 이한기씨 외에 조중훈 전 한진 회장, 민경중 전 기아 명예회장, 김성수 전 오양수산 회장 등이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김영랑, 정지용, 홍사용, 박종화, 김훈, 유현목, 손석희씨가 동문이며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 장충식 전 단국대 재단이사장, 이선근 전 문교부 장관 등도 휘문 출신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동국대 개교 100주년 맞아

    동국대가 8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동국대는 이날 오전 10시30분 교내 만해광장에서 ‘건학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기념식에서는 동국대 100년사 영상자료와 각계 명사의 축하메시지가 상영되며, 홍기삼 총장이 ‘민족의 화해, 종교의 화합’ 메시지를 담은 평화선언문을 읽을 예정이다. 또 미당 서정주 선생이 작고 전에 남긴 100주년 기념시도 낭독된다. 기념식에는 법전 조계종 종정, 박경조 성공회 주교, 최근덕 성균관 관장, 이혜정 원불교 교정원장 등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김진표 교육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알프 짐머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총장,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열린우리당 최재성 의원 등 외빈과 학생, 교직원 등 1500여명이 참석한다.12∼13일에는 ‘달빛 연등축제’ ‘동국인 한마당’ 등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만해 한용운 선생이 1906년 첫 입학생이었다. 서정주와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동국대 동문이며 시인 신경림, 소설가 황석영,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조정래가 문인요람의 맥을 이었다. 이덕화, 고현정, 최민식, 한석규, 김혜수, 이경규 등 연예인들도 연극영화과 출신이다.홍기삼 동국대 총장은 “개교 100년을 계기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만전을 기해 명문 3대 사학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양산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2) 양산길

    부산 동래 하정마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온 옛길은 지금의 부산시와 경남 양산시의 경계지점인 사배고개를 넘어 양산지역으로 이어진다. 일명 지경(地境)고개로 불리는 이 고개는 높고 험준해 괴나리봇짐을 싸든 과거길의 선비와 보부상 등 양반·상놈 가릴 것 없이 몇번씩 쉬지 않고서는 오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래와 양산의 신랑·신부들은 사배고개를 넘나들지 않았다. 험한 고개를 넘어 시집·장가를 가면 ‘팔자가 세다.’는 속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 혼례를 치른 신혼부부들은 누구나 울산 방면으로 10여리를 돌아가곤 했다. 나중에 이 고갯길은 인근에 경부고속도로가 나고 왕복 6차선 도로로 넓혀지면서 정상 일대가 20m 이상 낮아져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사배고개에 올라서면 부산·양산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온다. ●쉬어 넘는 사배고개 옛길은 사배고개에서 1017호 지방도와 만난 후 옛 양산읍성의 남문(현 양산시 중앙동 269 노인회관 인근)으로 올라온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축조됐다는 양산읍성(길이 약 800m, 높이 6∼7m)은 흔적조차 없다. 양산문화원 이종관(73) 원장은 “70년대 들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주민들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등 성터에 마구잡이로 민가를 지었다.”고 말했다. 다만, 읍성의 동문(현 양산문화원) 자리에 있는 수령 800년이 넘은 느티나무만이 읍성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제 때 왜군 관헌들이 동헌(東軒·조선시대 지방관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관아건물)의 문서를 모두 꺼내 이 나무 아래에 쌓아 불을 질렀다. 당시 나무도 함께 불탔으나, 불가사의하게도 광복 이듬해부터 다시 새싹이 돋기 시작해 지금의 무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양산읍성의 남문을 돌아 나온 옛길은 양산천을 가로지른 현재의 강서동 영대교(옛 읍포교)를 지난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대로상의 유일한 다리였다. 일제가 돌다리를 놓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마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나무다리였다. 이 지방 토박이들은 이 다리를 ‘국계(國界)다리’라 한다. 박봉문(73·양산시 강서동)씨는 “‘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신라와 가야가 황산강(낙동강)을 사이에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퇴각하던 신라군이 양산천에 이르자 ‘여기가 국계’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국계라는 명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강서동사무소 이상한(43) 주무는 “연세가 드신 토박이들 외에는 국계에 대해 모른다.”며 1800여년 동안 전해 내려온 국계의 명맥이 사라질까 걱정했다. 옛길은 영대교를 지나서 강서동 양산향교 앞에서 좌측으로 물금길, 우측으로 언양 기장길로 갈라진다. 낙동강의 범람으로 옛길이 물에 잠기면 한양으로 통하는 대체 구실을 했던 언양길을 따라 조선시대 대동여지도상의 양산지역 첫번째 역인 윤산역을 찾아 본다. 영대교에서 서북쪽으로 2㎞ 위쪽에 자리한 유산동 양산공단 내 ㈜화승화학 인근이 바로 윤산역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윤산은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산으로 지명이 개편됐다.”고 말했다. ●옮겨간 황산 찰방역 본도인 물금길을 따라 가면 영남역지상의 황산 찰방역(현 물금읍 서부리 일대)이 나온다. 윤산역에서 황산 찰방역까지의 옛길은 1022호 지방도와 거의 일치하나, 택지개발이 한창인 물금읍 범어리 일대는 곳곳이 잘려 있다. 황산 찰방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역 가운데 하나. 윤산·소산·덕천·간곡·아월역 등 동래·언양·밀양 등지의 16개역을 관할했다고 영남역지에 기록돼 있다. 이곳에는 역리 7638명과 남·여 노비 1176명 등 총 8814명이 소속됐었다. 큰 말 7마리를 비롯해 중마 29마리, 짐 싣는 말(卜馬) 10마리 등 모두 46마리가 배치됐다.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직속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했다.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아니라 군수(종3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기 때문이다. 황산 찰방역은 철종 8년(1857) 낙동강의 범람으로 물에 잠기자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439번지 일대로 옮겨져 1895년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40여년간 존속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삼리 일대는 거의 밭으로 변해 황산역터는 흔적도 없다. ●벼랑 끝의 황산잔도 물금읍 서부리 물금초교에서 지방도와 옛길은 서로 갈라진다. 지방도는 철도 오른쪽 절벽 위로 굽어 있고, 옛길은 낙동강변 절벽 아래로 난 경부선 철로 왼쪽으로 향한다. 이 길이 바로 대동여지도상의 황산도(黃山道)이자 황산잔도(黃山棧道)이다. 황산잔도는 말 그대로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기 그지없다. 서부리 촌로들은 “잔도는 워낙 험해 동래부사가 피해 갔으며,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이 황산장에서 한잔 걸치고 가다 부지기수로 빠져 죽은 곳”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철로 왼쪽은 수풀이 무성한 채 곳곳이 허물어지고, 오른쪽은 잡목이 우거진 험로다. 잔도 바로 위쪽 황산강변 서북쪽에는 신라말 고운(孤雲) 최치원이 노닌 임경대(臨鏡臺)가 자리하고 있다. 잔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와 낙동강변을 따라 철길처럼 나란히 난 옛길은 줄달음쳐 어느새 용이 자주 출몰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원동면 용당리에 다다른다. 용당리에는 삼한시대부터 국태민안과 낙동강의 수운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지냈던 가야진사(伽倻津祠·지방민속자료 제7호)가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첫번째 정(丁)일에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가야진사 인근 낙동강변에는 신라와 가야의 교역로이자 눌지왕이 가야를 정벌하면서 왕래했던 가야진나루가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가야진보존회 이희명(57·원동면 내포리) 이사장은 “가야진나루를 복원하기 위해 최근 부지를 매입한 데 이어 추가예산을 확보 중에 있다.”고 말했다. 양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낙동강 굽어보던 명당 ‘임경대’ 복원 계획 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내 끼인 산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질펀히 흐르고)/鏡裏人家對碧峰(경리인가대벽봉·거울 속에 비친 인가가 푸른 봉우리를 대하고 있네)/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어느 곳에서 온 외로운 배가 바람을 가득 안고 어데로 가느뇨)/瞥然飛鳥杳無(별연비조묘무종·별안간 날아가는 새는 아득히 자취가 없네)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임경대에 올라 읊은 ‘황산강임경대(黃山江臨鏡臺)’라는 시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산수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과 자신의 감회를 읊조린 것이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해석서인 대동지지는 ‘임경대’가 황산역 서쪽 황산강변에 있다고 적고 있다. 양산시지에는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번지로 기록돼 있다. 임경대는 고운 자신이 돌을 직접 쌓아서 만든 뒤 노닐었다 해서 최공대라고도 한다. 이곳은 예부터 거울처럼 맑은 황산강(낙동강)물과 양산∼화제의 취서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산자수명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양산팔경’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고문헌은 임경대는 경상좌도의 최고 명승지로 신라 4선(영랑·술랑·남랑·안상)이 노닐었던 관동의 ‘사선정(四仙亭)’에 비길 만한 기상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고운이 이곳의 절벽에 ‘황산강임경대’를 새겼다고 전하나,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임경대의 본래 모습도 찾을 길이 없다. 물금읍에서 지방도 1022호를 따라 원동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로 왼쪽변에 6각형의 목조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는 음각으로 새긴 ‘임경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산시가 지난 1999년 임경대 인근에 길손 등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지은 것이다. 이런 임경대가 뒤늦게나마 복원될 예정이다. 양산시는 내년까지 옛 임경대 자리인 낙동강변 자연석 너럭바위 위 20∼30여평에 전통 양식의 정자를 지을 계획이다. 임경대가 복원과 함께 후대의 고운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양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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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경 제천동중 총동문회 7일 오전 10시, 충북 제천 신백동 모교 운동장 016-39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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