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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로왕 건국신화’ 입증 치열한 논쟁 예고

    표면의 6개 그림, 가야 신화 투영 첫 유물 “거북 등껍데기 외엔 단서 부족” 시각도 대동문화재연구원이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소형 무덤에서 발견한 토제방울은 소형 토기, 쇠낫, 화살촉, 옥구슬, 어린 아이의 치아, 두개골 조각과 함께 출토됐다. 홍대우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과장은 아이의 무덤에서 건국신화가 새겨진 방울이 발견된 것에 대해 “방울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놀잇감일 수도 있지만 방울이 통상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그 관계성을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토제방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표면에 선으로 새긴 그림이다. 연구원은 현미경 조사를 통해 남성의 성기 혹은 산봉우리, 거북의 등껍데기, 관을 쓴 남자,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연구원 측이 가락국 건국신화와 연결짓게 된 건 거북의 등껍데기 때문이다.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 역사서인 가락국기에 따르면 어느 날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9명의 족장(구간·九干)이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줄이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는 금빛 상자를 발견했는데, 알에서 제일 먼저 깨어난 동자가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 동자 역시 각각 다섯 가야를 세워 임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남성의 성기 혹은 산봉우리로도 보이는 그림은 대가야 시조의 탄생지인 가야산(상아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은 “토제방울이 당시 대가야인들의 건국신화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가치있는 유물”이라고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 “최근 열흘 정도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향후 학계의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야 한다”며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전문가들 역시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이희준 경북대 명예교수는 “거북의 등껍데기에서 가야 건국신화라는 점을 착안했지만 (6개 개별 그림 중) 춤을 추는 여인, 하늘을 우러러 보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거북아 거북아” 가야 건국신화 새긴 흙방울

    “거북아 거북아” 가야 건국신화 새긴 흙방울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된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에서 5세기 말~6세기 초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5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소형 석곽묘에서 가야 건국신화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토제방울 1점이 출토돼 이목을 끈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20일 길이 165㎝, 너비 45㎝, 깊이 55㎝의 작은 무덤에서 발견한 지름 5㎝가량의 흙으로 만든 방울을 공개했다. 토제방울 표면에는 6개 그림(선각화)이 새겨져 있다. 연구원 측은 “이 그림이 삼국유사 ‘가락국기’ 중 수로왕 건국신화의 내용과 부합한다”면서 “그동안 문헌으로만 접했던 가야 건국신화의 모습이 유물에 투영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수로왕 신화가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뿐 아니라 경북 고령의 대가야에도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다. 그러나 그림과 가야 건국신화를 연결지을 단서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어 향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고령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띵구’ 이승구 작가가 말하는 ‘조각 한류(韓流)’“제 작품의 캐릭터 ‘띵구’를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조각뿐만 아니라 인형과 피규어, 티셔츠까지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각가이지만 중국을 넘어 세계인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어하는 작품을 남기려 합니다.” 中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하얀 강아지 ‘띵구’연예인에서 문화예술로 ‘한류’ 한 차원 높여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조각가 이승구(47) 작가의 포부다. 그의 작품은 베이징의 랜드마크인 파크뷰그린 쇼핑물, 진하오호 리조트 골프장, 상하이 그린랜드, 항저우 인디고 쇼핑몰 앞 등에서 설치돼 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홍콩, 우한, 다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건물 앞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가 그의 작품 주인공이다. TV나 영화의 스타들이 중국에서 일으키는 연예인 한류를 이 작가가 ‘조각 한류(韓流)’ 돌풍을 일으키며 문화예술로 한류를 한 차원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와 예술에서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그가 어떻게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몇 차례의 약속 재조정 끝에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지난 12일 만났다. 코밑과 턱에 수염을 기른 모습에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난 100% 한국 사람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지만, 부모님과 형, 누나 모두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2002년 중앙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킬시립미술학교를 거쳐 2008년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직후인 2008년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에선 저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각을 전공한 대학 동문들만 저를 알지만….” “獨 유학시절 만난 아내와 결혼 중국행…11년째中문화예술 자부심 대단…외국작가 활동 애로 많아”-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개념 미술’을 공부하다 다른 유학생들처럼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아내의 나라 중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전혀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잠시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던 2008년 8월 중국으로 왔는데, 벌써 11년이 됐습니다.” -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떻나.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남다릅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근성’이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홍보하지 않고 전시회를 해도 하루 1000~2000명씩은 거뜬히 옵니다. 고미술전시회라도 열리면 허름한 옷차림의 동네 어른들도 가서 봅니다. 유료 입장이라도 고가의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술가의 거리인 베이징 798 예술구에 있는 갤러리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바닥을 공사해야 할 판’이라고 농담 조로 이야기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중화사상이랄까 자긍심 이런 게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젊은 층으로 퍼져 나가면서 예술품 구매도 활발하지요.” 건물 앞을 보란 듯이 지키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DDinggu)’. 입을 크게 벌리고 붉은 혀를 쑥 내밀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애완견은 “불테리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사냥개 특유의 야생성도 엿보이지만 하얀 이빨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다. 검은 눈은 귀여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순진무구한 느낌이 물씬 풍기며 띵구라는 이름처럼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같다. 좌충우돌하는 강아지 띵구를 왜 중국인들을 좋아할까. 새로 짓는 건축물에 사악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지켜달라는 벽사의 의미로 강아지를 설치하는 걸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동물로 친숙한 느낌이 주는 작품성 때문일까. 신축 건물 앞에 버텨선 띵구, 볼테리어 형상화띵구는 어릴 적 별명…본성 잃어가는 인간 내면사냥개 특유의 야생성에 익살 맞은 장난꾸러기신축 건물의 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벽사 의미도”- 전혀 연고가 없는 중국에서의 활동, 힘들지 않나. “중국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작가들도 살아남기 힘들어하는 곳입니다. 외국 작가들이 얼마 못 버티고 철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사람이 제 작품을 사서 가져간다고 포장했습니다만 ‘작가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포장을 다시 풀더라고요.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한국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몰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작품 평론은커녕 보도자료 하나 부탁할 곳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자국 작가를 열심히 밀어주는 것이 마냥 부러웠죠.” - 전시회, 얼마나 자주 하나. “지난해에만 베이징, 상하이, 샤먼, 다통 등에서 6번 전시회를 가졌다. 요즘엔 상업시설도 있지만, 공공시설에서 전시회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선 한번 하면 2개월가량씩 전시합니다. 그러면 지난해 사실상 1년 내내 전시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너무 자랑 같나요(웃음).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일부러 찾아가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공공시설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예컨대 서울광장처럼 이런 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 공공장소 임대가 쉽지 않을 텐데. “제게 전시해달라고 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당연히 저도 일정한 금액을 받습니다. 공공시설 전시회도 수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중국에 도입한 방식입니다.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것입니다. 요즘엔 중국 작가들도 저를 따라서 공공시설에서 전시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전시작은 솔드아웃(Sold out·매진) 됩니다.” - 작품 소재가 강아지로 특이하다. “제 작품의 모티브는 사냥개인 불테리어입니다. 여기에다 제 어렸을 적 별명인 ‘띵구’를 붙여줬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제 이름을 빗대어 ‘띵구’라고 불렀거든요. 띵구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고 그 바탕에 색깔을 입힌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띵구가 또 다른 저 자신입니다. 원래 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고 입이 큽니다. 그러나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본성을 잃고 애완용이 되었습니다만 그 근성이 남아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이죠. 억압이나 스트레스 속에서 자유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갈망 이런 것을 담았습니다. 이걸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띵구가 저보다 유명해지게 할 겁니다.” “2009년 첫 전시회부터 전시작 매진 행렬지난해 6번 전시회…전시기간은 1년 내내”그의 작품 가격은 얼마나 나갈까. 그는 중국에서도 17%의 세금을 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높이 4m짜리의 대작은 4억 5000만 원에 넘겨줬다고 한다. 최고가라고 한다. 그러나 50cm 전후 크기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그래도 전시회 때마다 그의 작품은 다 팔려나간다. 최근 수년 동안 경기 활성화에 힘입은 중국에 불어닥친 건물 신축 바람도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통이 아닌 현대식 신축 건물의 지킴이로 그의 작품이 불티난 것이다. 요즘엔 그의 작품을 모방한 가짜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는 띵구, 2007년 만들었고, 2008년에 처음 발표했다. - 작품 성격,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 아이가 2014년인가 그때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중국 학생들처럼 목에 빨간 스카프인 홍링진(紅領巾)를 매고 왔습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반공교육을 세게 받았던 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도 미디어나 교육 등의 영향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이걸 전시회에서 한번 차용한 적이 있습니다. 제 전시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홍링진을 매게 했더니 중국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추억했고, 외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 재미있어하였습니다. 저는 뻘줌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20년간 3개국을 떠돌았으니 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겁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띵구에 담은 겁니다.” - 하루 작품 활동은 얼마나 하나. “직접 만드는 것만이 작품 활동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독서나 여행 등도 작품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주기에 작품활동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소재는 스테인리스 강철입니다. 이걸 구부리고, 떼어내고 도색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철공소 풍경과 비슷할 겁니다. 작품을 만들려며 진흙으로 틀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높이 4m짜리 큰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한 6개월 걸립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몸무게도 5kg 정도 빠집니다. 힘들지만 완성되고 나면 카타르시스도 느낍니다. 이럴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요즘엔 작업을 도와주는 스태프,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췄지만, 초창기엔 혼자서 거의 다 했지요.” “4m짜리 대작은 6개월…체중 5kg 빠져작품 최소 수천만원에 대중화 한계 회의사랑받는 작가 되려고 작품 대중화 고민인형·피규어·애니메이션 제작이 돌파구”- 언제부터 중국인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나. “중국에 온 다음해인 2009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제 작품이 운이 좋게도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이 아니라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거의 다 사갔습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 눈에 많이 익어야겠다는 생각에 초창기에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꾸준히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중국인들의 관심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4년 베이징에 있는 호텔 및 백화점인 파크뷰그린의 전속작가가 되었고요. 때마침 소셜네트워크(SNS) 바람을 탔어요. 제 작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제가 덕을 봤습니다.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다 팔려나갔습니다.” - 첫 전시 작품이 다 팔렸다면 중국에서 고생하지 않았겠다. “2008년 중국에 왔을 때, 말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조용하고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독일 문화에 익숙했다가 갑자기 거대도시 베이징의 시끄럽고 복잡한 문화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을 구하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가 버스를 잘 못타는 바람에 베이징 798 예술구 뒷골목을 갔지요. 그곳이 마음에 들어 작업실을 구했습니다만 집에서 작업실까지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중국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작업에만 몰두했지요. 매일 하루 4시간의 출퇴근 때 버스 안에서 작품 드로잉과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 드로잉은 지금도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버스를 종점에서 탔는데 맨 뒤 오른쪽 끝자리가 제자리였지요.” - 작가를 그만둘뻔했다던데. “2016년쯤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깊이 밀려들어서 작가를 때려치우려 했습니다. (두 손을 30~40㎝가량 벌리더니) 요만한 크기의 작품이 몇천 만원이면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나요. 저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대중화 한계에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싼 작품만 만들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2만~3만원 이면 살 수 있는 피규어나 인형 등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각의 범위를 폭넓게 생각하자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물론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니.” - 인가 작가여서 사드 영향은 없었겠다. “왜 없었겠어요.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나가떨어지는데….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의 한인 상가도 거의 절반 가까이 철수했지요. 제가 하려던 전시회나 띵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 취소되었습니다. 중국 회사와 계약해 띵구 피규어와 인형, 티셔츠를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법인등록도 하고, ‘이승구 스튜디오’라는 회사도 만들었습니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화할 계획입니다.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큰 중국에서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글로벌 In&Out]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지난 3월 1일, 한국이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1919년 3월 1일 발생한 3·1독립운동은 한국 민족해방투쟁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고,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임시정부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1919년 3월에는 한민족독립운동과 일제 멍에로부터의 해방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 가지 더 있다. 3·1운동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인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약 6600㎞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 창립회의가 열렸다. 1920년대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였다.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러시아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 혁명의 일환으로 봤으며 유럽 여러 공산단체와 함께 세계 혁명의 확산과 투쟁 중인 각 민족의 노동계급 지원 등을 목적으로 국제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1919년 코민테른 창립회의에는 조선에서 국민회 대표로 강상주가 참여하였으며 한국인들의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관해 이야기했고,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가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으며 1부를 코민테른에 전달했다. 4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령한인노동단체대회에서 강상주가 코민테른 창립회의에 대해 연설했으며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 동방부장 보즈네센스키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해 연설했다.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실감한 보즈네센스키는 같은 해 7월 26일 ‘한국의 혁명적인 단체인 국민회와 온 한국인들에게’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을 발표했다. 많은 한국 혁명가가 이미 붉은군대에 입대하고 극동지역에서 일제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국내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 당하고 열강과의 외교로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이 사실상 붕괴하면서 무장투쟁론이 강화되어 갔다. 많은 무장투쟁론자는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1918년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 지역의 일부를 점령한 일제와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을 당연한 동반자로 간주해 러시아로 건너와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은 이들을 지원했다. 좌익 민족운동은 문제도 많았는데 분파투쟁이 치명적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은 분열돼 서로 권력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1920년대 초 코민테른이 독립운동과 ‘상하이에서의 혁명사업’을 위해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둘러싼 분쟁(이른바 ‘모스크바 자금사건’)이 일어났고, 모스크바 자금을 상하이로 가져온 김립이 살해되었다. 또한 분파투쟁, 통수권 다툼, 국제정세 변화, 극동공화국과 코민테른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이 발생해 많은 운동가가 살상당하고 부대들은 무장해제되었다. 코민테른은 조선 내 반일·혁명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통일조직으로 공산당 설립을 수차례나 시도했으나 분파투쟁과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코민테른은 식민지 독립운동을 지도·지원하려고 노력했다. 그 집행위원회는 조선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설립하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의 젊은이들에게 민족해방과 혁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그 대학 동문 중에 중국의 덩샤오핑과 류사오치, 베트남의 호찌민, 일본의 가타야마 센, 한국의 조봉암과 박헌영 등 유명한 정치가가 있다. 또한 코민테른은 1922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극동민족대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에 한국인이 제일 많았으며 그 의장단에 김규식과 여운형 등이 선출되었다.
  •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코민테른 창립 100주년과 한국독립운동 100주년

    지난 3월 1일, 한국이 3·1 독립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1919년 3·1 독립운동은 오늘 한국 민족해방 투쟁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고,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원이다. 1919년 3월에는 한민족독립운동과 일제 멍에로부터의 해방 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가지 더 있었다.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약 6600㎞ 정도로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이라는 조직의 창립회의가 열렸다. 물론,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코민테른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소위 ‘색깔론’ 등의 영향이 남아 있는 오늘에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는 바로 색깔론이며, 이를 위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1920년대의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코민테른의 관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났으며 세계 최초의 노농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였다. 10월 혁명을 주도한 레닌과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은 러시아 혁명을 세계혁명의 일환으로 봤으며 유럽 여러 공산단체와 함께 세계혁명의 확산하고 투쟁 중인 각 민족의 노동계급 지원할 목적으로 국제기관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코민테른 창립회의에는 국민회의 대표로서 강상주가 참여하였으며 한국인들의 반제·반식민지 투쟁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가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고 1부를 코민테른에 전달했다. 4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노령한인노동단체대회에서 강상주가 코민테른 창립회의에 대해 연설했으며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 동방부장 보즈네센스키가 소비에트 정부를 대표하여 연설했다.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실감한 보즈네센스키는 1919년 7월 26일 ‘한국의 혁명적인 단체인 국민회와 온 한국인들에게’라는 소비에트 정부의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한국 혁명가들이 이미 붉은군대에 입대하고 극동지역에서 일제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에게 국내에서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또한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된 한국대표단이 문전박대당하고 열강과의 외교를 통해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무장투쟁론이 강화되어 갔다. 많은 무장투쟁론자들은 세계 혁명을 추구하고 1918년 러시아내전에 개입하여 연해주 지역의 일부를 점령한 일제와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을 당연한 동반자로 간주하여 러시아에 넘어오고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은 그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좌익민족운동은 문제도 많았으며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분파투쟁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은 통일조직을 결성하지 못하였으며 서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결과, 1920년대 초 코민테른이 독립운동과 ‘상해에서의 혁명 사업’을 위해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둘러싼 분쟁(이른바 ‘모스크바 자금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모스크바자금을 상해로 가져온 김립이 살해되었다. 또한 분파투쟁, 통수권 다툼, 국제 정세 변화, 극동공화국과 코민테른 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이 발행하였으며 많은 운동가가 살상당하였고 그 부대들은 무장해제되었다. 코민테른은 한국 국내 반일·혁명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통일조직으로 공산당을 수차례나 설립 시도했으나 분파투쟁과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코민테른은 식민지의 독립운동을 지도·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그 집행위원회는 한국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설립하고 한국, 중국, 베트남 등 국가의 학생들에게 민족해방과 혁명 사업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쳤다. 그 대학 동문 중에 중국의 덩 샤오핑과 류 사오치, 베트남의 호찌민, 일본의 가타야마 센, 한국의 조봉암과 박헌영 등 유명한 정치가가 있다. 또한 코민테른은 1922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주도로 극동민족대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에 한국인이 제일 많았으며 그 의장단에 김규식, 여운형 등이 선출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제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초에 고조되었던 세계 혁명정세가 1920년대 후반에 완전히 퇴조하였다. 이 상황에서 세계혁명을 강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코민테른의 힘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에 시작한 소련 대숙청 과정에서 한국인 간부들을 포함한 많은 좌익운동가가 희생당하였고, 1943년 코민테른은 공식 해산되었다.글. 사진: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이희진, 대체 누구? “도끼는 불우이웃” 130억 원 호화주택 봤더니..

    이희진, 대체 누구? “도끼는 불우이웃” 130억 원 호화주택 봤더니..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씨의 부모가 살해된 채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때 방송까지 출연했던 그의 과거가 재조명됐다. 18일 불법 주식거래 및 투자유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씨의 부모가 살해된 채 발견돼 충격을 안긴 가운데 그의 방송 출연 사실이 화제를 모았다. 이 씨는 지난 2013년을 전후로 증권 전문방송 등에서 주식 전문가로 활약했다. 이후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강남 청담동 고급 주택이나 수십억에 달하는 ‘슈퍼카’ 사진을 올리는 등 재력을 과시하면서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렸다.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희진 씨는 엠넷 예능프로그램 ‘음악의 신2’에 청담동 주식 부자로 등장했다. 이 씨는 당시 방송에서 부유한 일상을 SNS에 공개해온 래퍼 도끼를 겨냥해 “도끼는 불우이웃”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방송을 통해 호화롭게 치장된 자신의 집을 공개하며 “집 만드는 데만 130억 원 들었다. 수영장이 자동문”이라며 “4층과 5층에도 수영장이 있다. 약품을 타지 않고 자연적으로 정화가 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의 방송 출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씨는 동생과 함께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회사를 세워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천7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매매하고 시세차익 약 130억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16년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간 원금과 투자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약 240억 원을 끌어모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아울러 이씨 등은 2014년 1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증권방송 등에 출연해 허위 정보를 제공하며 총 292억 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4월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심규홍 부장판사)는 이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200억 원, 추징금 약 130억 원을 선고하고, 이씨의 동생(31ㆍ구속기소)에게는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100억 원을 선고(벌금형 선고 유예)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씨가 증권방송 전문가로서 회원들의 신뢰를 이용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현재 이씨에 대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하노이 결렬 이후 첫 김정은 메시지는… ‘대미 압박’ 거세질 듯

    하노이 결렬 이후 첫 김정은 메시지는… ‘대미 압박’ 거세질 듯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곧 발표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관심이 쏠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처음 발표될 김 위원장의 대외 메시지가 향후 북미 대화의 ‘가늠자’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반응을 살피며 내부적으로 대미 전략을 고심했던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에서 주장했던 비핵화 카드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며 미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과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강조할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미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신뢰관계가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비핵화 신고 및 검증, 폐기를 얘기하면 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는 북미 협상이 미국의 높은 비핵화 요구수준으로 인해 틀어졌다는 ‘책임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앞서 주장해왔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일부 해제를 맞바꾸는 데 대한 정당성을 되풀이할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충분히 미국의 반응을 살피며 분석한 결과 더는 미국의 입장 변화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현재는 배제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이 ‘자력자강’을 내새우면서 계속 언급해왔던 경제 노선 강조를 통해 내부 결속 다지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다시 한 번 언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일각에서는 동창리 미사일발사장과 산음동 미사일 생산기지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장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도 여전히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정당성을 강조하며 불씨를 살리고 있고, 최 부상도 “양 최고지도자 간 관계는 여전히 좋다”며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만큼 당장은 이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론 북미가 협상의 판을 완전히 뒤엎지 않는 이상 북한이 과거 노선으로의 회귀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 부상이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강조한 만큼 양측 주장의 대치가 장기화되며 판 자체가 깨져버릴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발표는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나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보다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최선희 “미국과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평양에서 기자회견

    최선희 “미국과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평양에서 기자회견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타스통신과 AP통신은 이날 최 부상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최 부상은 미국이 지난달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상은 “미국이 15개월간의 변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않는 한 회담을 계속하거나 타협할 생각이 없다”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위원장이 ‘무슨 이유로 이 기차 여행을 다시 해야 하나’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하노이 회담의 결렬에 대해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너무 바빴고 성과를 낼 진정한 의도가 없었다”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적대감과 불신감을 조성해 북미 최고지도자 간 협상을 위한 건설적인 노력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최 부상은 2차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민간 경제에 적용된 제재만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최 부상은 설명했다. 최 부상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것은 회담 결렬 이후 대미 압박을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지금으로서는 회담을 중단하겠다는 사인을 보내면서 미국의 요구 수준을 낮춰 보겠다는 의도”라며 “미국에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제재완화를 못 하겠다는 메시지를 쏟아내는 만큼 북한으로서는 회담 중단을 경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부상이 “두 최고 지도자 간의 관계는 여전히 좋고, 합도 잘 맞다”고 부연한 만큼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최 부상의 발언에 대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건강한 반려동물 문화 조성 나선 강남…19일 ‘반려견과 행복한 동행’ 무료 강좌

    서울 강남구는 ‘반려견과 행복한 동행’ 무료 강좌를 마련했다고 14일 밝혔다. 강좌는 오는 19일 오후 2시 삼성1동문화센터 7층 강의실에서 동물행동학과 동물케어를 주제로 진행된다. 전문 수의사들이 귀청소·발톱깎기 같은 기초건강관리와 강아지 입양, 외출 방법, 노령견 관리와 이별 준비 등을 강의한다. 구는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건강한 문화 조성을 위해 올해 총 세 차례 전문 강의를 하고, 10월 강남페스티벌 기간엔 ‘반려동물위크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수진 지역경제과장은 “반려동물 관련 전문 교육으로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조성할 것”이라며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공존하는 ‘행복 도시, 강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독립운동 하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오현주·이종욱

    오, 남편 안전 보장 조건 애국부인회 밀고 이, 승려 신분으로 신궁참배·일제에 헌금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와 청년외교단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인물도 있다. 오현주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언니 오현관, 정신여학교 동문 이정숙·장선희와 함께 혈성부인회를 조직한 인물이다. 그런데 대구지법 판결문을 보면 그는 “남편이 5월 중국에서 돌아와 조선 독립은 도저히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으니 이런 운동은 그만두라고 엄금받아 관계를 끊을 것을 맹세했다”며 “김마리아가 주가 돼 부인회를 위해 노력해 준다고 하면 탈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대구복심법원 판결문에는 “탈퇴를 희망하고 10월 19일 재결성 모임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김마리아 권유에 의해 출석했다. 그날 새롭게 결성한 뒤 13도 지부장을 명했고 회원은 약 2000명이 됐다. 나는 그 후는 애국부인회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는 자수 조서가 등장한다. 오현주는 자기 부부와 언니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를 밀고했고, 결국 1919년 11월 28일 애국부인회와 청년외교단 수뇌부가 체포됐다. 오현주 부부도 검거됐지만 하루 만에 풀려났다. 오현주는 해방 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됐으나 불기소됐고, 남편은 기소 후 보석 석방됐다가 이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월정사 승려로 있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참가해 청년외교단 총무와 외교특파원을 역임한 이종욱은 궐석재판을 받고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판결문에는 “이병철이 이종욱을 만나 임시정부 정황을 들었는데, 이종욱이 상하이를 가는데 임시정부에 어느 정도 송금해 달라고 해 3명 몫을 합해서 550원을 이종욱에게 건넸다”고 돼 있다. 이런 공적이 인정돼 이종욱은 1977년 건국훈장(3등급)을 추서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 친일 행적이 뒤늦게 확인돼 2011년 서훈이 취소됐다. 후손들은 ‘친일 행적은 독립운동을 위한 위장´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보훈처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이종욱은 청년외교단 검거 사태 이후 불교계로 돌아갔다. 조선불교 총본산 주지 대표였던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신궁을 참배하고 일본군을 위해 기원제를 지내라고 조선 내 각 사찰에 하달했다. 또 친일강연회를 열고 일본 외무대신의 성을 따서 창씨개명했다. 조선 승려들에게 5만 3000원을 모금해 헌금도 했다. 1941년 대동아전쟁이 일어나자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사찰의 범종 등을 헌납했다. 해방 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조계종 중앙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소비자 행정 대상’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소비자 행정 대상’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지난 11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소비자 대상 시상식’에서 ‘소비자 행정 부문’ 대상을 지난해에 이어 2년 잇달아 수상했다. 유 구청장이 이번에 수상한 부분은 소비자 행정 분야다. 사회적 약자도 편리하게 민원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청 종합민원실 내부출입구 2개소 자동문 설치, 보건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의 보도경계석 개선, 구청 지하 1·2층 엘리베이터 앞에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추가 설치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유 구청장은 “기업에서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듯 행정에서도 민원인을 최우선으로 모시기 위해 민원인 편에서 생각하는 식으로 행정 서비스를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고현정 대학강의 중 흡연 ‘학부모 항의 전화에도..’

    고현정 대학강의 중 흡연 ‘학부모 항의 전화에도..’

    고현정 강의실 흡연 사진이 화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현정 강의실에서 담배 사진’이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고현정이 D대 교수로 재직할 때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고현정은 잦은 지각이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매 수업 강의실에서 수업 중 담배를 태웠다. 학생 중 어느 학부모가 학교로 전화 항의를 했다”라며 “그랬더니 과대(과 대표)가 고현정 교수님 담배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묵인하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진 보고 판단해라. 연기 교육차 담배 태우는 상황 아니고 매 수업시간 10회 정도의 흡연을 하였고, 학부모 항의 전화 뒤로도 종강까지 흡연은 계속됐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공개된 두 장에 사진에서 책상에 앉은 고현정의 오른손에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담배 연기가 올라왔다.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가 90학번 출신인 고현정은 지난 2014년 학과 동문 교수들의 제안을 받고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2014년 1학기, 3·4학년을 대상으로 한 ‘매체 연기’ 과목을 강의했다. 고현정은 모교에 꾸준히 장학금도 기부했다. 2006년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한 이후 ‘고현정 장학기금’을 운영하며 매년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DMZ,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문체부 14일 포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1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비무장지대(DMZ) 평화관광 정책 포럼을 연다. 포럼 주제는 비무장지대 평화관광 발전과 지역 특화 방안이다. 포럼은 지난해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에 이른 것으로,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자 마련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동북아 관광의 중심, 비무장지대 평화관광’을 주제로 기조 강연 한다.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김영봉 원장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활용과 국제적 브랜딩 방안’을, 이동원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소장이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비무장지대 평화관광 활성화 사업 방안’을 발표한다. 이어 비무장지대 접경 3개 광역지자체의 지역 연구원인 경기연구원과 강원연구원, 인천연구원에서 지자체별 특화 관광 콘텐츠와 올해 주요 사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포럼에 참가하려면 포럼 사무국에 사전 등록 하면 된다. 전화 혹은 홈페이지(dmzpeaceforum.com)에서 하면 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내 첫 미국 진출 꽃 피운 충남 태안 호접란

    국내 첫 미국 진출 꽃 피운 충남 태안 호접란

    까다로운 승인 조건에도 현장점검 통과충남 태안군 농가에서 키운 호접란이 국내 처음으로 화분째 미국에 수출됐다. 화려한 자태로 미국에서 사랑받는 난이지만 검역 탓에 흙을 털어내고 뿌리를 세척한 뒤 박스에 담겨 한 달 후 미국에 도착하면 시들고 활착이 안 돼 상품성이 떨어졌다. 태안군은 지난 6일 박진규(38)씨가 재배한 화분 호접란 2만 1000개(4830만원 상당)가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고 10일 밝혔다. 박씨가 화분 호접란 수출에 성공한 것은 한미가 2017년 12월 제정한 검역기준과 요건에 부합하는 온실로 승인받았기 때문이다. 승인받으려면 2중 자동문 설치, 달팽이 방지 기구설치 등 재배과정에서 12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미국 농무관들이 박씨 농장을 수차례 현장 점검한 끝에 화분째 수출을 허락했다. 이 호접란은 10개월간 기른 것으로 뿌리까지 닦아 수출한 것(그루당 700원)보다 훨씬 비싼 2달러(약 2300원)다. 어린 호접란은 매입자인 한인 농장주가 5개월쯤 더 길러 꽃 피기 전후로 출하한다. 박씨의 호접란은 오는 7월과 12월 두 차례 더 모두 10만개 화분이 수출된다. 박씨는 태안읍 2500㎡ 농장에서 연간 30만개의 호접란을 생산한다. 박병용 군 농업기술센터 화훼팀장은 “캘리포니아주 등으로 수출을 확대해 100만 화분 호접란을 수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10명 중 7명 “北미사일 안 쏠 것”… “북미협상 곧 재개 vs 지연” 갈려

    10명 중 7명 “北미사일 안 쏠 것”… “북미협상 곧 재개 vs 지연” 갈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안갯속을 헤매는 형국이다. 특히 북한 동창리 장거리미사일 발사장의 복구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10일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10명에게 긴급 설문조사를 통해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과 북미 관계 파국 가능성, 재협상 및 3차 북미 정상회담 예상 시점, 비핵화 빅딜 예상 내용 등 4가지를 물었다. 그 결과 10명 중 7명이 북한이 조만간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밝혔다. 10명 중 5명이 이르면 한두 달 안에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낙관했으며 올 하반기 재개 등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은 2명이었다. 다른 2명은 협상이 장기간 교착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3차 북미 정상회담 시점은 이르면 다음달 개최를 예상한 시각도 1명 있었으나 다수는 올 하반기나 내년 봄 등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은 2명이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북미 양측은 포괄적 로드맵에 합의한 뒤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였다.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가능성은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북한이 회담 결렬 책임을 다 져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강화에 동참하고, 미국에서 군사 옵션이 나오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시위는 할 수 있어도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대화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북한이 지금 미사일·로켓 시험 발사로 협상의 판을 깰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면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협상의 판을 깨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대한 압박 수준을 최대로 높인 뒤 협상을 재개해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으로 미사일·로켓 시험 발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북미 관계, 파국으로 가나 재협상 복귀하나 전문가 대부분은 북미가 2차 회담 결렬 이후에도 대화 기조는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협상 재개 시점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수주 안에 협상하기를 희망한다고 한 것은 대화의 동력이 상실될까 우려한 것”이라면서 “북한도 다음달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의 전환과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성과를 내야 하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는 만큼 대화의 동력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미가 3월 말에는 대화 재개의 시점을 찾고 4월에는 어떤 형태로든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협상을 바로 하기엔 준비가 안 돼 있기에 북중 관계를 진전시키며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려 할 것”이라며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음달 조기에 방북을 한다면 5~6월쯤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 있지만, 시 주석의 방북이 늦어진다면 북미 협상도 뒤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미 협상이나 정상회담 재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보다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달렸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에 대해 진정성을 더 보여 주지 않는 한 협상으로 가는 길은 멀다”고 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예상 시점은 2차 회담에서 최고지도자 간 담판에 의한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노출됐기에 시간이 걸릴 거라는 예상이 다수였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2차 회담에서 초조함을 노출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린 인상을 준 만큼 북한도 톱다운 방식의 기조를 유지할지 검토할 것”이라며 “북미 모두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충실한 실무 협상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은 북미 회담 결렬 언급은 자제하면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복구하는 상반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북미 협상을 재개할지 새로운 길을 택할지를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결정할 것”이라며 “3차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고, 김 위원장을 만나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임을출 교수는 “김 위원장이 베트남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을 보이는 등 조속한 협상 재개를 미국에 압박하는 모습”이라며 “북한은 4월 안에 협상을 재개하고 최대한 조속히 3차 정상회담을 하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3차 회담 북미 비핵화 빅딜 내용 예상 홍민 실장은 “북미가 비핵화 조치의 첫 단계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 전체 핵물질 시설의 폐기에 합의하되, 폐기 이행은 영변 핵시설부터 해서 단계적으로 하려 할 수 있다”며 “북미가 서로의 체면을 세워 주는 방식으로 합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이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만큼 3차 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외에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 추가 우라늄농축시설 폐기를 받는 대신 2차 회담에서 해제를 요구한 5개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중 의류 수출 금지 등 민생경제와 밀접한 두세 개만 해제해 달라고 하거나, 정유제품 수입 90% 차단 조치를 50% 차단으로 완화해 달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열수 실장도 “북한은 영변 외 추가 핵시설을 폐기, 미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품목별로 해제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며 “결의 전체를 해제하기보다는 북한의 수출이 금지된 석탄, 철광석, 수산물을 품목별로 차례대로 해제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했다. 반면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야당인 민주당 등 조야 전체가 한목소리로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기에 입장을 바꾸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을 앞두고 큰 배팅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북한이 미국과 합의를 하려면 미국이 요구하는 영변 핵시설 폐기 외 플러스 알파 조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文대통령 사과 진심이라면 진상조사 후 강정 주민들 명예회복을”

    “文대통령 사과 진심이라면 진상조사 후 강정 주민들 명예회복을”

    대통령 특별사면 발표가 난 후 찾아간 제주 강정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며칠째 오던 비가 그친 터라 서울과 달리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맑고 공기는 상쾌했다. 강정마을은 예전부터 ‘일강정(一江汀)’으로 불리며 제주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혔다. 강정마을에는 수량이 많기로 유명한 강정천이 흐르고 있어 쌀이 귀한 제주에서 강정 쌀을 최고로 쳐줬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로 교류하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 평화로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10대조 때부터 이 마을에서 살아온 토박이 강동균(63)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주민회장을 지난 4일 만났다. 강 회장은 2007년 정부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부지로 발표할 때부터 10년 넘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그는 “강정마을 주민은 사면을 바란 적이 없다”며 최근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강정마을 주민 특별사면을 비판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강정마을을 방문한 문 대통령의 사과가 진심이라면 진상조사를 통해 주민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지 3년. 그는 해군기지가 보기 싫어서 바다 쪽으로 통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사면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가요. “강정마을 주민들은 사면해달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명예회복을 요구했죠. 2007년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와 건설 과정에서 정부, 해군, 제주도정 모두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우리는 불법, 편법에 항거해왔습니다. 그 과정에 육지 경찰까지 와서 인권 침해를 했죠. 이런 것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겁니다. 10년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강정주민과 활동가 450여명이 사법처리됐고, 60여명이 수감됐고, 벌금이 4억원에 달합니다. 지금 재판 받는 사람도 200명이 넘어요. 그런데 그중 달랑 19명 사면했습니다. 가뜩이나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뉘어진 마을 주민들을 또 싸움 붙여놓은 겁니다. 10년 갈등이 100년 갈등으로 이어질 판입니다. 저희 주민들은 신음하는데, 19명이라뇨. 물론 사면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주민의 10%도 사면을 못 받은 겁니다. 사면증 받으라는 전화가 왔는데 거절했다는 주민도 있고요. 또 다른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거죠.” 제주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다 사법처리된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특사를 두 차례 공식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 번째 특사였던 지난 3·1절 100주년 특사에서 강정마을 주민 19명이 포함됐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경찰에서 그거 조사한다고 몇 번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해군기지 갈등이 시작된 게 2007년이니까 12년 됐죠. 퇴직한 사람들이 많아요. 전직 경찰관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조사 결과에 기속력도 없다고 하고요. 정부가 정하는, 대통령이 정하는 기구에서 진상조사를 해서 정부·해군·제주도정·경찰이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문 대통령이 마을에 와서 유감 표명했지만 한 마디로 될 일이 아닙니다.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대통령이 그랬잖아요. 그럼 잘못을 인정한 거잖아요.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진상조사해야죠.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강정 주민의 명예회복을 시켜야 합니다. 물론 반대투쟁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합니다. 어쩔수 없는 충돌 상황도 있었고요. 확실한 것은 저희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불법 공사한다고 항의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법처리된 것도 대부분 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이런 거에요. 그런데 경찰은 몇 십명 안 되는 주민을 포위하겠다고 수백명이 육지에서 내려왔어요.”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1일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해 “해군기지 건설로 제주도민이 겪게 된 아픔을 깊이 위로한다”며 “지역주민과 해군이 상생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해군기지 들어서고 그나마 잠잠했던 마을을 다시 들쑤셔놓은 게 국제관함식입니다. 관함식 진행 과정이 해군기지 때랑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아주 똑같아요. 지난해 3월 해군에서 관함식 설명회를 했어요. 강정마을회에서 임시총회 열어서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제주도의회도 반대 결의안을 채택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청와대 비서관들이 제주에 내려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저는 대통령이 강정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함식을 개최하기 위해서 온거죠.” -해군기지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기억이 맞다면 1993년부터 국방부가 제주도 해군기지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2002년 공식 발표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안덕면 화순으로 발표가 났죠. 화순 주민들은 물론이고 안덕면민 전체가 반대하니까 갑자기 남원읍 위미로 바뀌더니 며칠 후에 강정이 돼 버렸습니다. 국책사업이란 게 이런 식으로 진행돼도 되는 건가요. 졸속으로 강정마을이라뇨. 화순으로 결정하는데 10년이 걸렸는데 위미에서 강정이 되기까지 13일이 걸렸어요. 강정은 제주에 태풍이 오면 직격탄을 맞는 곳이에요. 지도를 보면 화순, 위미 말고 강정만 돌출돼 있습니다. 그런 곳이 해군기지로 적합하지 않죠. 조금만 풍랑이 일어도 배가 도망가는 곳이 강정인데요.” -해군기지 완공 후 마을 상황은 어떤가요. “강정마을 앞바다는 조류 흐름이 바뀌었어요. 저는 농사를 짓지만 어부들한테 물어보면 인근에서는 조업이 안 된다는군요. 원래는 갈치, 옥돔 등 제주에서 유명한 물고기는 다 잡히던 풍요로운 곳이에요. 천연기념물 연산호군락지는 전부 망가져 버렸죠. 관광미항 크루즈 항로 개설 때문에 준설 작업을 또 해야 한다는군요. 저희가 반대주민회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감시해야죠.” “옆집 제사까지 다 가던 강정마을이었는데 이제 제사 때도 안 만나고 친구들끼리도 다 갈라섰어요. 겉으로 보면 엄청 평온해보이죠? 속으로는 엄청나게 싸우고들 있어요. 돈독했던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바른말을 해도 인정 안 해요. 내편과 네편으로 갈라져 있죠.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포구로 가는 사거리에는 슈퍼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데 해군기지 유치 초기 때부터 한 가게는 해군기지 찬성, 다른 가게는 해군기지 반대 쪽에 섰다. 지금도 주민들은 편에 따라 슈퍼를 간다고 한다.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했던 전임 강정마을 회장과 강 회장은 강정초, 서귀중, 서귀포고 동문이지만 이제 교류하지 않는다. 강 회장은 전임 회장 해임 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마을회장을 지냈다. -마을 주민들의 관계를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요. “정부가 진심으로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동체지원사업으로 강정마을에 96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더군요. 실제로 3분의 1도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습니다. 사업비 대부분이 해군박물관, 해군기지 진입도로 등 사실상 다른 명목으로 사용돼요. 강정마을 자전거길 조성, 생태탐방로 습지조성 이런 건 그냥 자연 그대로 놔두면 되는 일입니다. 친환경농공단지를 주민들이 기대했는데 유보돼 버렸고요. 비가림하우스 지원도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주민과 못 받는 주민 간 갈등이 커졌어요. 행정가와 군이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는 것 같아요.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갈등 기간보다 해소 기간은 더 길겠죠. 정부도 돈만 쏟아부을 게 아니라 강정 주민들이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게 기다려주고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글 사진 제주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깊어지는 勞勞 갈등…한노총·민노총 서로 다른 길 가나

    깊어지는 勞勞 갈등…한노총·민노총 서로 다른 길 가나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 민노총 작심 비판 “소외계층 대표 겁박”민노총 “김주영 위원장 발언 도 넘어…비조합원 노동자 보호 위한 것”탄력근로제보다 더 중요한 ILO 핵심협약 비준 이슈 묻힐까 우려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노선 차이로 ‘노노(勞勞)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이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합의해준 것이 시작이다. 지난 7일 경사노위 본위원회 의결이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의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두 조직의 대립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이다. 격앙되는 노노 갈등이 자칫 다른 노동 현안도 집어삼킬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나온다. 8일 창립 73주년을 맞은 한국노총 기념식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에 대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조직이, 총파업으로 노동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조직이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사회 소외계층 대표들을 겁박·회유해 사회적 대화를 무산시킨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경사노위 본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민주노총이 압박을 가한 탓이라고 정면 공격한 것이다. 민주노총도 맞받아쳤다. 이날 논평을 낸 민주노총은 “김주영 위원장의 발언은 도를 넘는 행위”라면서 “민주노총은 털끝만큼의 부담이라도 더해질까 두려워 경사노위 계층별 노동위원들에게 격려의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개악 영향이 조합원에게 끼칠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가해질 타격을 막고자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러는 동안 한국노총은 비조합원 노동자를 보호할 어떤 대안을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결국 지난 7일 합의된 안건을 올리지 못한 경사노위는 오는 11일 본위원회 일정을 새로 잡았다. 합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뿐만 아니라 최근 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 개선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합의한 ‘한국형 실업부조’ 등도 본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서다. 이에 민주노총은 “본회의 무산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 없이 감정에 치우친 강행일 뿐”이라면서 “본회의 무산 나흘만에 다시 소집한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개악안을 국회로 넘겨 처리한다면 이는 경사노위 법 취지 위반이며 더 큰 갈등과 반발을 부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깊어지는 노노 갈등에 정부의 근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논의 시한이 이달 말까지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사회적 대화에도 빨간 불이 켜진 상황이다. 노동계에선 탄력근로제보다 ILO 핵심협약 비준 이슈가 훨씬 더 영향력과 파급력이 막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노노 갈등으로 경사노위 파행이 이어진다면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힘을 받을 거란 우려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선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ILO 핵심협약 2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중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2개를 비준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 협약이 비준되면 실업자·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하는 등 기존보다 노조할 권리가 폭넓게 보장된다. 정부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 분위기가 민주노총이 우려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안을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면서 “요구 사항이 있으면 바깥에서 말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라는 틀 안에서 주고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열린세상] “기회를 놓쳤는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기회를 놓쳤는가?”/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997년 여름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 책임자들이 종전 20년 후 전쟁 회피나 조기 종전 등의 기회가 있었나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이 대화 이름은 ‘기회를 놓쳤는가?’(Missed Opportunities)였다. ‘하노이 대화’ 참가자들은 ‘놓쳐 버린 기회’를 인정하고 상대에 대한 무지와 오해 탓이었다고 동의했다. ‘하노이 대화’가 열렸던 그 호텔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지난 2월 말 개최됐다. 또 20년 만이다.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긴 터널을 빠져나와 북미 정상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것이란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무런 합의도 못 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회동 끝에 웃었다는 사진에 대화의 틀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라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좋지 않다. 하노이 정상회담 전 북한의 김혁철과 미국의 비건 간 실무회담이 워싱턴과 평양에서 각각 진행됐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 북한은 영변 폐기의 상응 조치로 제재 해제를 원했다. 반면 미국은 영변 이상을 요구했다. 영변과 제재에 대한 상호 가치평가에 극명한 차이가 존재해 교집합을 만들기 어려웠다. 북한이 영변 전체의 완전한 폐기를 약속했다면 미국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상응 조치를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을 넘어선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강요만하면서 ‘북한의 완전한 제재 해제 요구 때문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북한에 책임을 전가하는 대국답지 못한 옹졸함을 보였다. 실무회담에서 사전 논의와 조율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시점이 궁금하다. 그저 코언 청문회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노이 이후를 걱정한 미국 국내 정치적 변수가 트럼프의 결정에 너무 일찍 작동해 버린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합의부터 무언가 잘못됐고, 북미 협상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면 상황을 리셋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접근 방식을 무력화하면서 과거 선 핵폐기 후 보상과는 차별화된 포괄적 동시병행적 접근 의도를 드러냈고 있다. 거기에 북한이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조급함과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는 모순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북한의 약점을 간파하고 ‘협상 테이블 박차고 일어나기’를 통해 북미 협상의 판을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노딜’은 예정된 결과였다. 북한이 발가벗기 전에는 하노이에서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은 싱가포르 이전인 5월 말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와 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한 다음날로 시계를 되돌리려는 것일까. 트럼프는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더이상 하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또 하노이 합의 불발에도 한미 연합훈련 변경 및 축소를 한 것은 2016년과 2017년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던 위기 상황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의 틀은 유지하면서 판 깨기 위협으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의 기술이라면 그 효과가 사라지기 전 미국은 북미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선언에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폐기를 명문화한 만큼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려고 할 것이다. 남북도 지난해 5월로 시간표가 되돌려져서는 안 된다. 우리 곁에 찾아온 평화는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에 대해 현실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3자가 아닌 당자자로, 또 일방이 아니 쌍방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미국에서 폐기도 안 한 동창리를 복구·재건한다느니 미사일 생산 시설인 산음동에서 움직임이 보인다는 등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로 북한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우리 정보 당국까지 나서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중재자의 모습인지 묻고 싶다. 하노이에서 북한과 미국에 ‘기회를 놓쳤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중재의 기회를 혹시 놓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 전북 부안 마을 지키다 도난된 돌오리상, 16년만에 제자리로

    전북 부안 마을 지키다 도난된 돌오리상, 16년만에 제자리로

    전북 부안 마을을 지킨 당산(堂山) 돌기둥 위에 놓인 돌오리상이 도난 16년 만에 돌아왔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2003년 전북 분안군 동중리에서 사라진 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 1점을 회수해 5일 반환했다고 밝혔다. 당산 위에 놓여있던 돌오리상은 가로 59㎝, 세로 20㎝ 크기로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조각했다. 부안 지역 민속신앙의 대상인 ‘부안 동문안 당산’은 3m가 넘는 당산과 그 위에 부안읍의 주산인 성황산을 바라보며 놓인 돌오리상,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장승 한 쌍으로 구성돼 있다. 절도범은 석물 취급업자나 장물 매매업자에게 돌오리상을 팔아넘기려 했으나,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까닭에 거래가 여의치 않자 임의의 장소에 오랫동안 숨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2015년 돌오리상 도난 신고 접수를 받은 이후 지속적으로 내사를 해오던 중 최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잣고개 중간 지점에 호돌이 조형물이 있는데 그 주변에 돌오리상이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석상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동문안 주민들은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이 곳에서 당산제를 지내는데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줄로 줄다리기를 마친 뒤 그 줄을 돌기둥에 감는 ‘옷입히기’ 행사를 해왔다. 마을 전체의 복을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지역 공동체적 의례다. 돌오리가 사라진 이후 새로운 오리상을 새로 제작해 당산 위에 설치했지만 돌오리상이 도난된 이후인 2005년부터 동문안 마을의 당산제는 중단됐다. 한 반장은 “돌오리상이 돌아온 것을 계기로 당산제가 다시 부활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현대썬앤빌 중앙로역’, 합리적인 분양가로 최상층 전타입 분양완료

    ‘현대썬앤빌 중앙로역’, 합리적인 분양가로 최상층 전타입 분양완료

    한국토지신탁이 시행하는 대구 중구 동문동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이 2월 28일 홍보관을 개관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돌입했다.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은 지하 4층~지상 24층, 오피스텔 전용 22~84㎡, 총 450실 및 상가로 구성되며 시공은 현대비에스앤씨㈜가 맡았다.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은 편리한 교통이 장점이다. 우선 대구지하철1호선 중앙로역이 도보 5분거리에 위치하며 대구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 가능한 반월당역 및 광역철도 이용 가능한 대구역 1정거장, 동대구역까지 4정거장이면 도착 가능하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중앙대로, 달구벌대로, 국채보상로 등을 통해 대구 시내외로 접근하기 좋다. 또한 ‘대구의 명동’이라 불리는 동성로 로데오거리와 붙어 있어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쉽다. 대구백화점, 롯데영프라자, 동아아울렛 등이 있으며 대구역 롯데백화점, 반월당역 현대백화점, 동아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 이용도 편리하다. CGV, 롯데시네마를 비롯한 각종 문화시설까지 밀집되어 있어 생활과 문화를 모자람없이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직선거리 300m), 2.28기념 중앙공원(직선거리 200m) 등 녹지공간도 풍부해 쾌적한 주거생활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의 중심에 입지한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은 배후수요 역시 풍부하다. 대구시청, 경북대 병원, 대형백화점 및 금융사 등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근의 노보텔 앰배서더 대구, 대구시티센터, 대구패션주얼리 전문타운, 대구삼성창조캠퍼스 등의 종사자도 임대수요로 품고 있다.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은 상품력도 돋보인다. 전실 복층형으로 설계돼 넓은 공간활용이 가능하고 높은 천정고를 선보인다. 최상층은 팬트하우스로 만들어져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벽천조경, 휘트니스, 커뮤니티라운지 등의 커뮤니티시설을 제공해 입주민의 편의를 돕는다. 주차시설은 오피스텔에서 보기힘든 자주식 주차장(50% 이상), 지상주차 설계를 도입한다. 시공을 맡은 현대비에스앤씨는 범 현대家로 주요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로 구성된 실용적인 복합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현대썬앤빌 삼성역, 고양 삼송지구 현대 헤리엇 등의 시공을 담당하며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쳤다. 종합부동산 금융회사 한국토지신탁이 시행을 맡아 사업의 안정성도 더했다. 한국토지신탁은 부동산 신탁업계 자기자본 기준 1위(2017년 기준), 2018년 6월 기업어음 신용등급 기준 A2 등급을 받은 업계 1위 신탁사로서 소비자들에게 신뢰 높은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분양관계자는 “금번 분양하는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은 대구 중심에 입지해 편리한 교통과 생활인프라는 물론 상품성까지 우수해 벌써부터 많은 문의전화가 오고 있다”며 “인근에 새로 분양한 단지보다 분양가도 합리적이라 향후 수익률면에서 더욱 우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썬앤빌 중앙로역의 홍보관은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에 위치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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