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무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세미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심청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체벌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CEO 주도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463
  • “해적 석방은 없다”… 3국 인계 무산땐 국내형법 적용 검토

    정부가 지난 21일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생포·사살한 해적들의 신병 처리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23일 현재 오만 무스카트항을 향해 항해 중인 최영함과 삼호주얼리호에는 생포한 해적 5명과 사살한 8구의 시신도 실려 있다. 정부는 1차적으로 오만 등 인접한 제3국에 해적들을 인계하고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국들이 신병 인수에는 난색을 표하면서 국내로 이송,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해적들의 신병 처리 문제와 관련, “현재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관련국과 협조 중”이라면서도 “제3국 인도와 한국 호송 방안 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소말리아는 중앙정부가 없는 상황인 데다가 해적의 활동무대가 공해이기 때문에 사법처리를 위해서는 인근의 주권국가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말리아 해적을 수감하고 있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지원 부족, 소말리아나 알카에다와의 외교문제 등을 이유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해적 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적 수감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해 왔던 케냐도 지난해 4월 해적 신병 인수 거절을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체포한 해적을 바로 석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우리 정부는 제3국 인계의 차선책으로 석방보다는 국내 이송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내로 데려오면 해양법에는 해적에 관한 사항이 없기 때문에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을 준용해 사법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해적에 대해선 모든 국가가 사법관할권을 갖는다. 미국을 비롯해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해적들을 자국으로 이송해 처벌한 전례가 있다. 앞서 2009년 네덜란드령 앤틸리스제도 선적 화물선을 납치하려다 붙잡힌 해적 5명은 이듬해 6월 네덜란드 로테르담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았고, 지난해 4월 독일 국적 컨테이너선을 납치하려다 네덜란드 요원들에게 체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은 독일로 인계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또 같은 해 미국 군사법정에서는 해적들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한편 처치 곤란한 해적들을 ‘표류형’(漂流刑)에 처한 사례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5월 소말리아 해역에서 체포한 해적 10명을 해안에서 600㎞ 떨어진 공해상 작은 선박에 태워 석방했다. 자크 랑 유엔 해적특별대사는 지난 22일 앞으로 3~4주 안에 해적의 사법처리에 관한 유엔 결의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석우·홍성규·윤설영기자 cool@seoul.co.kr
  • 영화인들의 추천 영화 즐겨보자

    영화인들의 추천 영화 즐겨보자

    “감독이 아닌 관객 입장에서 생각하니 청소년기였던 1980년대에 열광했던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당시 불법비디오로 볼 수밖에 없었던 ‘이블 데드’를 극장에서 보면 어떨지 가슴이 설렙니다. 영화인이나 관객 모두 문턱 없이 어깨동무하고 영화의 원초적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페스티발’과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 김지운, 김태용, 류승완, 봉준호, 이명세, 이준익, 이해영, 임순례, 최동훈…. 내로라하는 영화의 달인들이 강력 추천하는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다시 찾아왔다.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27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시네마테크하면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떠올리기 쉽다. 때문에 영화 학도나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가서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를 구호로 내걸었다. 문턱을 대폭 낮췄다는 이야기다. 영화감독, 평론가, 음악인들이 직접 작품을 고른 섹션 ‘친구들의 선택’이 가장 눈길을 끈다. 14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붉은 살의’(이마무라 쇼헤이·1964), 최동훈 감독은 ‘리오 브라보’(하워드 훅스·1959), 이명세 감독은 ‘겟 어웨이’(샘 페킨파·1972), 류승완 감독은 ‘미친 개들’(마리오 바바·1974), 이준익 감독은 ‘몬티 파이톤의 성배’(테리 길리엄·1975), 이해영 감독은 ‘이블 데드’(샘 레이미·1981), 김지운 감독은 ‘지옥의 묵시록-리덕스’(프랜시스 포드 코폴라·2001)를 골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등 뒤에 소매치기”…닭살커플 노린 범죄 포착

    당신의 바로 뒤에 소매치기가….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다정하게 길을 걷는 남녀의 지갑을 노린 대담무쌍한 소매치기가 한낮 중국 장시성 주장의 시내에서 포착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우연히 거리에서 인터뷰 사진을 촬영하던 현지 기자였다. 기자에 따르면 싸락눈이 내리던 지난 2일(현지시간) 수십 명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거리 한가운데서 이 같은 범죄가 벌어졌다. 당시 우산을 든 남녀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회색점퍼를 입은 20대 남성이 몸을 낮춘 수상한 자세로 이들의 등뒤로 다가갔다. 문제의 남성이 노린 건 우산을 든 남자가 어깨에 멘 갈색 크로스백. 몸을 잔뜩 웅크린 소매치기는 대담하게 가방을 열더니 그 안을 뒤졌다. 다행히 가방에는 지갑이 없었고 소매치기는 이내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뒤늦게 기자가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2인1조로 구성된 소매치기단은 10m이상 도망친 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낮 시내 길거리에서 대담한 소매치기를 한 것도 놀랍지만, 소매치기를 당하는 데도 누구하나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을 공개한 기자는 “보통 소매치기들이 무리를 이뤄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섣불리 소리를 질렀다가는 신변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이 상황을 설명했으나 대다수 네티즌들은 “소매치기 근절을 위해선 주변의 관심도 절실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차현지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아이는 5개월짜리. 5개월 전에 아저씨의 정액이 아내의 질을 파고들어 거센 산성반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수정란을 착상시켰다. 5개월 전이라면 아저씨와 내가 종로 3가 나이스 모텔 205호에서 새벽 내내 서로의 배꼽 속에 손을 넣었던 때다. 나와 만나기 전날이거나 혹은 다음날에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잠자리에 들었고 기계적인 성교를 했을 것이다. 아저씨의 아내는 궁색한 가짜 신음소리 내기에 바쁜 여자니까. 아저씨는 여자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신음소리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편집증 환자처럼 집착한다. 그런 아저씨가 나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 나는 가짜 신음소리 따윈 내지 않는다. 오로지 진심. 나는 진짜에게만 연다. 그것이 성대든 밑구멍이든 간에. 오늘 만나. 삐리릭. 교실 한구석에서 체육복을 베개 삼아 누워 있던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곧장 가방을 싼다. 든 것도 없는 가방을 메고 나는 교실 밖으로 향한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도중에 아저씨에게 한 번 더 문자가 온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매우 절약적인 문자. 럭셔리 라운지 모텔 507호. 아홉 시. 아홉 시까지, 아홉 시간이나 남았다. 그날도 여지없이 바람이 불었다. 아저씨와 만나는 날은 어쩐지 모르게 세찬 바람이 분다. 한반도가 원래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나? 아저씨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그러게요. 치마 밑단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얘, 허벅지 다 보인다. 아저씨가 말했다. 알아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넌 참 미쳤구나. 그래서 이름이 미치인가 보구나.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장례를 다 마친 식구들이 둘러앉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하나 둘씩 꺼내고 있었다. 넌 그새 또 어디 갔다 왔니. 그냥 잠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방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가 안 보였다. 엄마, 할머니는? 하고 물어보려던 찰나, 내 방 문 틈새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굽은 등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며 일정한 리듬에 맞춰 떨었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아저씨를 만났다. 삼성동 명아장 모텔 313호.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교복 와이셔츠를 벗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여덟시 오십 오 분에 모텔에 도착했다. 내가 313호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다 벗은 몸으로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아저씨가 인사했다. 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쾌적한 향내가 풍겼다. 오히려 첫 번째 갔던 곳이 적당히 촌스러우면서 마음이 편했다. 옷을 못 벗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누르듯이 만져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냥 참았다. 나는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몸을 열고 젖히고 오므리고 뒹굴었다. 두툼한 손가락처럼 두툼한 아저씨의 뱃살이 출렁거리며 내 피부에 닿았다. 남의 살을 맞대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저씨의 거죽에 파묻혀 질식할 것 같았다. 물론 아저씨가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지만 그냥 남의 살결, 살 틈으로 새어나오는 냄새 같은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한 차례 사정이 끝나고 난 뒤에 아저씨는 모로 누워 담배를 피웠다. 그때까지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가 슬쩍 내게 말을 건넸다. 미치. 미치예요. 아아, 그래. 그래서 내가 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었지. 네에. 근데 전 미치진 않았어요. 그냥 미치일 뿐이에요. 음, 그래. 하지만 좀 특별한 이름이구나. 네에. 미카엘 같은 거랑 연관된 건 아니에요. 음, 그렇구나. 그렇다면 미치는 무슨 뜻이니? 미치는 그냥 미치인데요. 별 뜻은 없어요. 음, 그렇구나. 아저씨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대화를 끝내겠단 듯 자세를 고쳤다. 등 돌린 아저씨의 넓은 등짝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아저씨의 담배를 빌려 등짝에 무어라 쓰고 싶었다. 등신이라고. 그때 아저씨 이름을 물어보면 좋았을 걸. 아직도 나는 아저씨 이름을 모른다. 장씨, 김씨, 윤씨, 최씨. 개중에 하나겠지. 여하튼 내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씨일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저씨의 두툼한 손가락과, 출렁이는 뱃살, 수염자국이 난 얼굴피부뿐이다. 정수리 근처가 조금 휑한 거나 금이빨로 된 어금니가 하나 있다는 것, 배꼽부터 무성한 털이 하반신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발이 아담한 것, 그리고 오른쪽 팔뚝에 개에 물린 자국 같은 게 있다는 것까지. 아저씨의 흉터는 곧 아저씨의 이름이었다. 아저씨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만났다. 만나는 장소는 서울 전역. 아저씨는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고심하여 장소를 물색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같은 동네, 같은 모텔을 반복해서 간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서울은 넓었다. 구석구석 늘어선 골목과 로터리가 답답할 정도로 복잡했다. 위로 세우고 벙커를 만들고, 한정된 공간의 쪽수를 넓히거나 한 칸짜리 공간을 좁히거나 하는 식으로 자꾸만 넓어져 가는 서울. 뚝딱뚝딱 완공이 끝나면 어디에선가 증축이 시작되고, 어딘가가 매끈해지면 다시 어딘가가 더럽혀졌다. 더럽혀진 부분을 메우는 동안 또 어딘가가 파괴되고 무너져 갔다. 할아버지는 폭설이 내리던 날,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져 죽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병원으로 후송된 지 십 칠 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가족들은 오래 살다 가셨으니 여한 없으시리라 판단, 호상이라 여기며 잔칫집처럼 장례를 치렀다. 여기저기서 웃고 떠들고 화투 패를 돌리고 거나하게 취해 노래를 불러대고. 삼일 중 이따금씩 곡소리가 들렸으나 그것도 매우 형식적이었다. 하하호호 웃다가 누군가 곡소릴 내면 얼마간 따라 울어주고, 딸꾹질 멈추듯 뚝 그치면 다시 하하호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내가 밖으로 빠져나와 교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순간, 아버지가 홀연히 담배를 물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보는 별은 참 폼이 안 나. 아빠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조심스레 한 모금씩 마셨다. 아빠의 왼손에 달린 담배가 빨간 불씨를 태우며 양복바지를 위협했다. 그거 탈 거 같은데. 내가 말했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염병할 양반. 보도블록에서 고꾸라지기는. 아빠는 색색의 벽돌이 지그재그로 놓인 보도블록을 얼마간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가닿은 가래침은 희부연 노란빛을 풍겼다. 아빠는 다 태우지도 않은 담배와 함께 종이컵을 집어 던졌다. 소주가 바닥을 치고 튀었다. 아빠는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다시 식장 안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저씨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저씨 뭐해요. 그러나 답장은 오질 않았다. 실은 한 번도 먼저 연락해 본적이 없었다. 뭐하냐고. 역시 묵묵부답. 차라리 보내지 말 걸, 두 번씩이나 씹혔다. 쪽팔리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미친이구나. 오늘 만날까? 미친이라니, 내가 분명 미치지 않았다고 했을 텐데. 미친 아저씨. 나는 눈에 젖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곧장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는 동안 아빠는 병원 건물 귀퉁이 어딘가에서 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대충 토하는 것을 마치고는 보도블록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굴 표면이 토사물 범벅이었다. 아빠의 긴 속눈썹에 연주황색으로 변한 실파가 붙어 있었다. 더럽게시리. 나는 다시 대로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나는 얼마간 더 병원 앞에 서 있어야 했다. 한쪽 손을 기계처럼 흔들면서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 말대로 별 몇 개가 우스운 크기로 떠 있었다. 저게 무슨 별이야. 그러는 사이에 택시가 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택시 아저씨에게 별 보러요, 라고 말할 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나는 아저씨를 만났다.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섹스가 전부였고, 섹스가 끝나고 치르는 비릿하고 울적한 냄새들을 소멸시키는 일에 신경 쓰느라 내 가방 속에 구겨져 있을 교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 아저씨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자락을 빙글빙글 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대꾸를 해야 될까 하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저씨에게서 아내 얘기를 그만 들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왜 애를 가졌어요? 내가 아저씨 배꼽에 손을 집어넣고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아저씨는 간지러웠는지 실실 웃으며 좌우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가진 건 아니고 아내가 가진 거지. 아저씨는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꺼가 필요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만 뭐 그거랑 그거랑 같은 일로 봐서는 좀 그렇지. 그거랑 그거랑 원래 같은 거 아니에요? 그걸 해야지 그걸 할 수 있잖아요. 에이, 하지만 언제나 그걸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니잖아. 아아, 하긴. 우리도 그거 하려고 그거 하는 거 아닌 것처럼요? 으응, 그래 맞아. 골치가 아픈 일이지, 그거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그거를 사용했고, 나중에 가서는 굳이 그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까지 그거 타령을 했다. 그러다가 대화의 종반부에서는 그거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에서부터 그거를 그거로 불렀는지, 그거가 그거가 아닌 다른 그거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대화를 마치고 다시 등을 돌려 누웠을 때, 아저씨의 등과 내 등이 맞닿았다. 나는 차갑고 아저씨는 뜨겁다. 섹스를 하고 나면 아저씨가 차가워지고 내가 뜨거워진다. 척추를 나란히 두고 우리는 열과 냉을 반복적으로 옮겼다. 열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도 참 후졌다. 내가 말했다. 아저씨의 등줄기가 움찔했다. 글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아내가 만든 거라니까. 아저씨가 발로 내 종아리를 간질였다. 굳은살이며 티눈이 박인 피부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생각을 해요? 너무 구려. 너무 너무 구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어떤 시대기는, 잘 먹고 잘사는 시대지. 너무 구려. 태어나는 일 자체가 구린 시대예요, 지금 이 시대는. 미치. 너는 너무 어린데, 너무 많은 걸 봤어. 그러니까 지금 이러고 있잖아요. 씨발. 나는 울먹였다. 아저씨가 발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 애 낳으면 나 꼭 보게 해줘요. 음,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뭐, 그렇게 해보지. 아저씨는 말을 이으며 침대를 빠져나갔다. 어디가요? 똥 누러. 아저씬 왜 만날 그렇게 똥을 싸요? 모르겠어. 난 너만 보면 똥이 마려워. 아내 앞에서는요? 집이건 회사건 똥 싸는 일이 고역인데, 난 너만 보면 똥구멍이 빠져버릴 거 같아. 나는 킥킥대며 웃었다. 똥을 싸고 싶어 재빠르게 화장실로 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아저씨. 나는 또 한번 아저씨에 관한 흉터를 진하게 새겼다. 똥냄새를 풍기며 침대로 돌아온 아저씨와 뒹굴다가 말고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여든 여덟의 할아버지와 함께 육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는 일흔 일곱. 열한 살 연상의 남편을 마주 대하며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유순한 고집과 무지한 강직함으로 이겨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평생 동안 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며 지냈던 고향을 저버린 것은 할머니의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진 탓이었다. 밭을 안 일구면 되지 않냐, 그냥 일 안 하고 시골에 계속 계시면 안 되냐, 하고 심술을 툴툴 부린 내게 엄마는 꿀밤을 먹였다. 네가 시골에 가서 한 번도 살아보질 못해 이러는구나. 시골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일이다.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야. 등불이 없는 동굴 같은 곳이라고.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은 어른들과 함께 부대껴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 마. 따로 모실 거니까. 따로 사는 데엔 나보다 엄마 몫이 더 컸다. 아빠는 미적지근하게 그러지 뭐, 하며 우리 집 근처에 값이 싼 아파트를 골라 전세계약을 했다. 십육 평형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새며 월마다 꼬박꼬박 작동 점검을 하는 엘리베이터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 때문에라도 할머니 집에 잘 가지 않았다. 가끔 식용유나 세제 같은 걸 사들고 가는 아빠에게 거기 귀신 나올 것처럼 음산해, 라고 말하면 아빠는 내 콧잔등을 쿡 치면서 노인네들 잠자리 뒤숭숭하게 함부로 말 놀리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깟 귀신, 어차피 동년배들 아니겠어?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 집 전세계약이 얼마 안 있어 끝날 참이었다. 재계약 여부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있던 엄마는 되레 계약기간 전에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조금 원망하기도 했다. 엄마는 짐들이 가득 들어찬 다용도실을 대충 비워내고 할머니가 덮을 이불을 마련했다. 할머니는 풀지 않은 짐짝처럼 더욱 몸을 웅크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때때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내가 비릿한 정액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어오면 건넌방에 있던 할머니가 빠끔히 문을 열고 나를 들여다봤다. 내가 왜요? 라는 기색으로 노려보면 이내 주춤거리는가 싶게 눈을 피하다가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다시금 내 쪽을 살폈다. 내가 한 번 더 뭘 봐요? 라는 표정으로 찌릿, 눈빛을 쏴주면 그제야 다 알겠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방문을 닫았다. 기분 나빠. 내가 닫힌 방문 틈새로 들릴 만큼 크게 말했다. 그럼 방문 너머로 할머니가 쪼그라든 풍선처럼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별 몇 개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옹졸하게 쪼그라든 것이 언젠가는 점점 작게, 그보다 더 작게, 그래서 결코 보이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질 것만 같았던 별들. 마치 할머니의 쪼그라든 유방처럼. 너네 엄마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안방에서 언성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 구질구질한 부부싸움이 또 시작됐다. 카악, 퉤. 아빠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어디서 뱉어 진짜? 엄마가 이전보다 한 톤 높게 소릴 질렀다. 카악, 퉤. 카악, 퉤. 의식적으로 가래를 뱉다가 사래 걸린 아빠가 연신 밭은기침을 토했다. 조금 과장이다 싶게. 나는 방밖으로 나가볼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침대에 누웠다. 모텔과는 다른 차원의 이불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말고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는 아무래도 버려진 짐짝처럼 놓인 할머니 따위는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미친 엄마 아빠. 나는 방문을 열고 건넌방에 있는 할머니를 살핀다. 방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다. 아마도 할머니가 직접 살짝 문을 열어 놓았을 터. 문과 문턱이 아귀가 딱 맞게 붙어 있지 않고 약간 틈을 벌리고 있다. 그 미세한 틈처럼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는지 몰랐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끝없이 유입되는 물세례에 허덕이듯이. 할머니 서럽겠다. 짝이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겠어. 네 아저씨는요? 아저씨의 귓불을 빨면서 내가 물었다. 그건 여자에게만 국한된 일이야. 남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아예 머릿속에 그런 게 없어. 이 사람 없으면 죽겠다 싶은 그런 게. 결혼 왜 했어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뜸을 들였다. 글쎄, 돈을 모아야 하니까. 그리고 어쨌든 옆에 사람이 있어야 좋지 않겠어? 남자란 게 그래. 챙겨주고 입혀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좆나 후졌네, 남자들이란.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가 깔깔 웃었다. 뭐가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미친 아저씨. 뭐 이런 게 다 있지? 덜 말린 해초처럼 무성한 아저씨의 풀숲을 헤치다 말고 나는 입을 뗐다. 입술에 빳빳한 음모가 달라붙었다. 에이, 좀더 해주지 그래. 아저씨가 눈을 감은 채 말했지만 나는 그냥 일어났다. 반투명한 유리 칸막이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을 빡빡 문질러대며 샤워를 했다. 아저씨가 따라 들어왔다. 에이, 미치. 섭섭하게 왜 그래. 아저씨가 내 팔뚝에 묻은 거품을 닦으면서 품에 안으려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샤워기를 아저씨 방향으로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아저씨 살갗에 닿았다. 앗 뜨거워.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오늘은 안 할래요, 피곤해요. 저리 가요. 이제 만지지 마요. 아저씨는 몸에 묻은 물기를 털고 아쉬운 표정으로 나갔다. 내가 샤워를 마치자 아저씨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미치. 앞으로 삼주 정도 못 봐. 나는 왜냐고 물어보려다 그냥 말았다. 아내랑 여행을 갈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애 낳기 전에 좀 돌아다녀야 될 것 같아서. 애가 나오면 피곤해지잖아.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매만지며 물기를 닦았다. 외국을 다녀올까 해. 연차랑 휴가 당겨쓰니까 삼주 정도 여유가 생기더군. 나는 대충 로션을 찍어 바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가방 속에 든 교복을 입을까 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아내가 더블린에 가고 싶다네. 난 애초에 더블린이 어디 박혀 있는 덴지도 몰랐다니까. 그냥 동남아 일대나 둘러보고 올 것이지, 무슨. 대충 스타킹까지 신었다. 주머니를 쑤셔 담배를 찾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건넸지만 무시했다. 삼주 뒤엔 웃으며 보자.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명랑해서야. …… …… 삼주 동안 똥 못 싸서 어떡해요? 그러게. 그걸 생각 못 했네. 아저씨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픽 웃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들어 침대 중앙으로 눕혔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요? 내가 말해도 묵묵부답. 아저씨가 좋아하는 보라색 원피스가 내 몸에서 멀어졌다, 부득이하게. 아저씨는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음소리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엉덩이에 푸른 멍이 흉터처럼 들어 있었다. 언제고 지워질 것이 빤한 흉터가. * 아저씨는 정말 삼주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책상에 엎드려 잘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들었다. 의자에 등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역시 좀이 쑤셨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쳤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애들이 자리로 가 책상을 정돈했다. 아직 선생이 오질 않았다. 틈을 타 가방을 몰래 들고 빠져 나왔다. 이제 어디든 갈 곳을 찾아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말을 걸었다. 쎄미였다. 나도 데려가. 미친년. 귀찮게시리. 우리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어디 갈 건데? 몰라. 뭐야, 시시하게. 그럼 나 따라와. 그러든지. 우리는 번화가 로터리에서 내렸다. 쎄미는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역사 안 물품보관함에서 옷을 꺼냈다. 초록색 미니 원피스였다. 넌 갈아입을 거 없어? 나는 가방 안에 든 보라색 민무늬 원피스를 꺼내 보였다. 우리는 쌍방울자매처럼 원피스를 맞춰 입었다. 쎄미가 아이라이너와 립스틱을 주었다. 나는 어설프게 아이라인을 그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우리는 피시방으로 갔다. 모니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나는 쎄미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다가 졸았다. 얼마 안 있어 쎄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이제 나가자.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번화가 로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온갖 조명 세례에 비둘기들은 나뭇가지 위로 종적을 감췄다. 보도블록은 연이어 뱉은 껌들과 담배꽁초로 넘쳐났다. 쎄미는 로터리 변방에 있는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색이 누런 간판에 조명도 시원찮은 것이 딱 학생들이 숨어 술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짜리몽땅한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손짓으로 인사를 했다. 쎄미가 샐쭉이 웃어 보이며 익숙하게 소주 두 병과 부대찌개를 시켰다. 할머니는 그제야 태연히 일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 안에 있던 담배를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태반이 고등학생들처럼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며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다. 쎄미는 재떨이를 제 앞에 가져다 놓고 그새 담배를 두 대나 피웠다. 나도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쎄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쎄미, 오랜만이다. 쎄미가 남자애 둘에게 알은 체를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옳다구나, 같이 놀자는 소리로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가 큰 자식이 쎄미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뒤이어 눈썹이 숯덩이처럼 진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새 할머니가 전골냄비가 올라간 부르스타를 들고 와서는 퉁명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쎄미와 그 옆에 앉은 꺽다리가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취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수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숯덩이 눈썹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담배를 피웠다. 자박한 국물에 퐁당퐁당 빠져 있는 햄 조각과 두부, 콩나물과 양파. 찌개는 어쩐지 팔팔 끓여도 맛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앞에 두 사람이 기어이 취한 척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을 때쯤 나는 수저를 들어 국물을 맛보았다. 그랬더니 옆의 숯덩이도 냄비에 제 수저를 꽂았다. 나는 맥주에 콜라와 소주를 조금씩 섞어 숯덩이에게 주었다. 숯덩이가 고마워하며 답례로 자신도 타주겠다고 했다. 각자 서로가 타준 폭탄주를 마셨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쎄미와 꺽다리는 팔짱은 물론 어깨동무며 심지어는 서로에게 입술까지 드밀며 야단이었다. 소주를 일곱 병쯤 마셨던가. 그 와중에도 쎄미가 자리를 뜰까봐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꺽다리가 숯덩이에게 눈질을 보냈다. 무언의 암시 같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거행된 약속이 있었던 듯싶다. 쎄미는 비에 젖은 이불처럼 꺽다리의 팔뚝에 안긴 채 실려 나갔다. 이윽고 숯덩이와 나만 남았다. 숯덩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렸다. 우리도 일어나지 뭐. 벌써 가게? 그럼 더 있으려고? 시간 별로 없어. 밤은 못 새. 숯덩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유치한 반응. 어디로 갈 건지는 정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숯덩이. 아, 이래서 어린애들은 귀찮다. 다 정한 거 알고 있거든. 모텔로 갈 거 아니야? 일 치르곤 만나 해장할 거 아니었어? …… 그리곤 쎄미랑 나랑 누구 가슴이 더 컸는지 낄낄거리겠지, 뭐. 안 봐도 빤해. …… 빨리 계산하고 나와. 너구리굴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을 헤집고 나와 건물 앞에서 숯덩이를 기다렸다. 숯덩이는 쭈뼛거리며 나왔지만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았다. 앞장 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돼? 어, 원래 이러려고 했잖아. 내가 인상을 쓰자 숯덩이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손은 잡지 마. 숯덩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말자. 숯덩이가 말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에 들어갔다. 심야시간대에 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다가 잠시 졸았다. 조는 내내 숯덩이가 내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박력 없기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숯덩이가 팝콘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릴 쯤에 나는 숯덩이의 팔목을 거세게 붙잡고는 그를 이끌었다. 어디 가려고? 심심한데 그냥 DVD방이나 가든지. 우리는 영화관에서 가장 가까운 DVD방으로 들어섰다. 프런트에서 계산을 하는 숯덩이 몰래 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숯덩이와 몸을 섞고 난 뒤에도 아저씨에게선 답문이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나. 나는 검은 소파에 누워 말했다. 숯덩이가 휴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곤 내 쪽을 쳐다보며 눈을 흘긋거렸다. 화면에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게 비쳤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러닝타임이 긴 시리즈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됐다. 숯덩이가 슬금슬금 내 옆에 드러누웠다. 너 이만 가봐. 싫은데. 그럼 걍 닥치고 가만히 있든지. 어차피 나도 뺑이 치는 거야. 오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되거든. 학교는 안 다니니? 너야말로 학교 다니는 년이 이러고 다니냐? 등신. 너만큼 구린 애 아니거든, 나. 웃기고 있네. 됐다. 그만 말해, 입만 아파. 딱 봐도 사이즈 나와. 나는 뭐 누나들이랑 안 놀아본 줄 아냐. 뭐라고?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대충 윗옷을 걸쳐 입고 DVD방을 나왔다. 숯덩이는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 다섯 시였다. 거리는 아직 깜깜했다. 추위 탓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 건물 앞 계단에 누워 토사물을 흘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거리는 한적했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진 셔터에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숯덩이는 내 몸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주던 아저씨의 손길을 느낀 것일까. 내 몸에 남겨진 아저씨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쪽팔리게, 정말 후지게 자꾸만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아저씨를 만난 건 레코드 가게에서였다. 아담했지만 역사가 오래된 레코드 가게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섹션별로 잘 나눠진 음반들은 가게 주인의 손을 거쳐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됐다. 주인은 내가 오면 리패키지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 내가 모르는 희귀 앨범을 꺼내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저씨를 보았다. 존 레넌의 사망주기 30년을 맞아 아저씨는 비틀스의 앨범을 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LP로 된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을 꺼내주었다. 아저씨는 보물 다루듯 LP를 매만졌다. 그거 복사본 같은데. 내가 다가가 이 말을 전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쪽을 살피며 무슨 상관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데요. 20년 전에 들어온 건 정식판 거의 없어요. 다 해적판이지. 그리고 진퉁이라 쳐도 몇 억 넘을 걸요? 그냥 작년에 나온 리마스터 앨범 사세요. 저 같으면 그거 안 사요. 내가 말을 마치자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LP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친 아저씨는 앨범을 구경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봐, 진퉁. 같이 나가지? 그리고 우리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미치.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니? 비틀스 노래 제목이잖아요. 후추상사의 밴드. 물론 한국에 그 제목을 딴 인디밴드가 있단 건 알아요. 아니.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가 낸 책이 있어. 그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 속에 든 여자주인공 이름도 역시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거야. 루시나 리타 같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밴드가 남아프리카 출신들이란 거야. 그래서 번역본을 구하긴 힘들어. 그 튼실한 내용의 책은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고 해. 더 신기한 건 뭔 줄 아니? 소속된 밴드 팀원이 단 한 명이란 거야. 뭐야. 나머지는 다 세션이에요? 그 밴드는 공연 안 해요? 응. 그 밴드는 단 한 번도 공연을 한 적이 없어. 그 밴드의 업적이라곤 책 낸 게 끝이야. 그게 뭐가 밴드예요. 그냥 작가지. 그러게. 하지만 그 사람이 우기면 밴드겠지. 마치 네 이름이 미치가 아닌데도, 네가 줄곧 미치라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야. * 아침 7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어쩐지 고요했다. 방문을 열고 둘러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꺼놨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미친년. 집에 들어오기만 해.], [네 방에 있는 CD 다 갖다 버리기로 결단 내렸다.], [평생 네 멋대로 하다가 죽어. 여한 없이 그렇게 살아라. 부럽다.], [엄마아빠 오늘 등산 가니까 네가 할머니 밥 좀 챙겨드려. 것까지 안 하면 넌 정말 죽는다.] 나는 할머니 방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미역처럼 장롱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기척도 못 느끼셨는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큰 소리로 두어 차례 할머니를 부르자 그제야 어깨를 움찔하는 할머니. 저 왔어요. 밥 드셔야죠. 할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차. 원피스를 교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걸 깜빡했다. 생각해 보니 허접한 실력으로 그린 아이라인도 엄청 번져 있을 것이었다. 밥 챙겨드릴게요. 좀만 기다리세요, 하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할머니가 허공에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오라는 눈치인가 싶어 나는 대충 눈 밑에 번진 아이라인을 손으로 닦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할머니의 주름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내 어깨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어깨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사람의 피부라기엔 어색할 정도로 꺼끌꺼끌했다. 뭐 해드릴까요? 정적을 깨고자 몇 차례 여쭈어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몇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의 눈동자는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질문하는 걸 포기했다. 할머니는 다시 장롱에 머리를 기대었다. 할머니는 조만간 부서질 박제나비 같았다. 할머니의 눈가와 손,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이렇게 주름이 많으셨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이 가뭄처럼 답답하고 숨 가쁠 할머니. 할머니는 아침마다 이렇게 장롱에 머릴 기대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 있긴 한 걸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희정아.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어쩐 일인지 눈꺼풀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왜 우는 걸까? 이해가 안 됐으나 눈물은 더 솟구쳤다. 접을 수 있다면 잠깐 시간을 접어놓고 싶다. 정말 구리고 후지다. 나는 집전화기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 아저씨의 아내가 받는다면 나는 다 폭로할 것이다. 아저씨와 나는 비틀스를 공유한 사이라고요. 론리하츠클럽이란 밴드 아세요? 남아프리카에 있는 원맨밴드를 아시냐고요. 그런 것도 모르면서 임신은 왜 해요? 그렇게 안정적인 게 좋으면 차라리 소파랑 결혼을 하셨어야지.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요. 신호가 계속 가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받는다면 이제 아저씨와는 정말 끝이라고 말해야지. 아저씨의 똥배를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라고. 아저씨도 똑같아. 부인 앞에선 똥도 못 눈다면서 여행은 왜 같이 가요? 왜 나한텐 아저씨 이름도 안 알려줘요? 치사하게 산다. 치사 빤쓰다, 정말…… 그리고 달칵. 수화기 너머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한창길입니다. 아저씨 목소리다. 한창길이라는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건 분명 아저씨의 목소리다. 내가 수없이 핥았던 목에서 나는 그 소리 맞다. 허나 나는 한창길이란 이름을 모른다. 그런 이름일랑 들어본 적도 없다.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그러니까. 저는. 저는요, 아저씨. 저예요, 미치……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마 얼마 안 있어 아저씨에게 연락이 올 것이다. 내게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번호를 지웠다. 아뿔싸. 이렇게 깔끔할 수가.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걸 지워야지. 아저씨의 배꼽이 따뜻했다는 것 정도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열여덟이라는 전투의 군사기밀이라 생각하고 블랙박스에 가두어 사장시켜야지. 나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집전화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이나. 짜증나게. <끝〉
  • ‘홀몸노인 보살피기’ 공기업 2곳의 사회공헌

    ‘홀몸노인 보살피기’ 공기업 2곳의 사회공헌

    ■지역난방공사…복지주택 건설·생필품 지원 한국지역난방공사는 민·관·공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3섹터 개발방식’의 신개념 사회공헌인 ‘아리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에 홀몸노인 복지주택인 아리움을 건립한 것이다. 공사가 총괄기획을 맡고 건설비용의 일부인 16억 8000만원을 지원했다. 공사는 아리움 건립 후에도 정기적으로 노인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등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공사는 이에 앞서 2004년 12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원봉사조직인 ‘행복나눔단’을 중심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행복나눔단은 소외계층 지원, 환경보호, 교육·인재 양성 등 분야별로 다양하게 사회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행복나눔단은 회원들이 급여에서 일정금액을 공제하면 이와 같은 금액을 공사가 행복매칭기금으로 조성되고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교통안전공단…연탄·쌀 드리고 청소까지 교통안전공단은 경기 안산 본사와 전국 13곳의 지사, 57곳의 검사소, 자동차성능연구소, 녹색안전체험센터 등에 부서별로 ‘TS봉사단’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TS봉사단에는 전 직원이 참여, 부서별로 3~20명이 소규모 활동을 꾸린다. 홀몸노인이나 지체장애인의 자택,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말동무가 되어 주거나 청소를 한다. 또 소외계층의 이사나 장애인의 목욕을 돕는다. 최근에는 노숙인의 식사를 챙기는 봉사활동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얼마전 재무처 직원들은 다문화지원센터를 찾아 사랑의 쌀을 전달했다. 항공안전처 직원들은 신풍 비행장치검사소가 자리한 충남 공주시 신풍면의 홀몸노인을 찾아 연탄과 쌀을 배달했다.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봉사활동도 잊지 않았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쥬얼리 前멤버 조하랑, 섹시 발레리나 변신

    쥬얼리 前멤버 조하랑, 섹시 발레리나 변신

    그룹 쥬얼리 출신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조하랑이 섹시 발레리나로 변신해 ‘베이글녀’로 등극했다. 조하랑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어깨가 드러나는 분홍색 발레리나 의상 차림의 사진을 공개해 건강미를 뽐냈다. 그는 사진을 통해 그간 방송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균형 잡힌 몸매를 과시하며 섹시한 매력을 발산했다. 조하랑은 케이블채널 KBS N ‘어깨동무’에서 새해 1월 2일 방송부터 개그맨 지석진과 공동 MC로 활약한다. 최근 진행된 독일 로케이션 촬영 중 그는 독일 슈투트라르트 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강수진을 만났다. 또 직접 발레에 도전해보는 미션 수행도 펼쳐 기대감을 높였다. 한편 과거 조민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조하랑은 2006년 쥬얼리 탈퇴 후 개명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렌트’ 등에 출연했다. 또 올해 10월에는 첫 디지털싱글 ‘홀로서기’를 발표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사진 = 조하랑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임재훈 기자 jayjhlim@seoulntn.com
  • “차 마시는 첫 마음처럼 이웃과 따끈한 나눔을”

    “차 마시는 첫 마음처럼 이웃과 따끈한 나눔을”

    “산다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현호임(59) 산다여 이사장은 21일 대뜸 ‘산다’의 뜻부터 물었다. 기자의 난감한 표정에 야생녹차(山茶)라는 답이 돌아온다. “야생녹차는 눈 내리는 엄동설한에도 차꽃을 피워낼 만큼 강인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여인들이 혼수로 차씨를 가져가기도 했어요. 차 나무의 특성상 옮겨 심으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어 여인네의 정절을 상징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산다여의 여는? 늘 여여(如如)하다, 즉 차 마시는 첫 마음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르메이에르건설이 2007년 문화재단을 만들었을 때, 현 이사장은 “차 마시는 첫 마음을 잃지 않듯, 봉사활동도 초심처럼 해나가자.”는 뜻에서 직접 산다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손길 필요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 그가 맨먼저 찾은 곳은 동네 노인 복지관. 무료로 차 한잔을 대접하며 말 동무가 돼주고 김치도 담가줬다. 현 이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입에 올리기에 민망하리만큼 소박한 일”이었지만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작지만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우리 사회에 의외로 너무 많다는 생각에 장애우 거주지, 군 부대 등 방문대상을 차츰 넓혀갔다. 그렇게 시작한 재단의 봉사활동은 거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매달 서울 도심 한복판(종로)에서 ‘우리 차 사랑하기’ 캠페인을 열고 있는 것.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에게 우리 차를 건넨다. 명성황후 가례식 차 봉사, 다문화가족 전통 혼례식 등 차로 봉사하는 자리는 어디든 선걸음에 달려간다. 초창기,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주위의 냉소적 시선이 자취를 감췄음은 물론이다. ●해마다 독일서 ‘한국전통문화축제’ 열어 해외로도 진출했다. 지난해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국정원에서 ‘한국전통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7월 9일부터 사흘간 개최했다. 현 이사장은 “다도 시연과 시음, 한복 입어보기, 김치 담그기 등 한국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했는데 한국의 전통 성년식을 무료로 올려주는 이벤트가 독일 젊은이들에게 너무 반응이 좋아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호응이 커지면서 재단은 생활 속의 차 예절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어린이, 주부, 직장인 등 연령별 계층별로 차 마시는 법과 다도 예절 등을 가르쳐준다. ●우리사회에 ‘열린 찻자리’ 더 많아져야 “차를 사랑하고 즐기는 다인(茶人)도 좋지만 봉사하는 다인은 더 좋다.”며 맑게 웃는 현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열린 찻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차를 마시며 얻는 기쁨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이를 이웃과 함께 나누면 더 큰 즐거움이 됩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엄마가 버린 반신마비父 봉양 3세소녀 ‘감동’

    몸져누운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응당 자식의 도리지만, 믿기 어려운 만큼의 효심을 발휘한 여자아이가 있어 감동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고 중국 기관지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산둥성에 사는 샤오신이(小心怡). 아픈 아버지를 위해 매일 물을 떠다 놓고 물수건을 만들며 청소를 도맡는 이 여자아이의 나이는 고작 세 살이다. 올해 26세인 아이의 ‘젊은 아빠’는 3년 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하반신 불구가 됐다. 당시 부인은 남편을 버리고 샤오신이와 함께 떠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마저 버린 채 연락이 두절됐다.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세 살배기 아이는 몸져 누운 아버지 곁에서 멋모르는 병수발을 시작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세수를 시키고 간단한 라면을 끓이는 등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인 아이의 보살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샤오신이의 아버지는 “이 아이는 내 삶의 전부다. 만약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난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딸을 보며 어떻게든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아직 수술 후 후유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그에게 세 살된 딸은 보호자이자 동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때때로 재롱도 부리는 샤오신이의 효심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동정과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정부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 도움을 주고 싶다.”며 관심을 표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존박 대두종결자 등극… “큰 머리 컬투에 안밀려”

    존박 대두종결자 등극… “큰 머리 컬투에 안밀려”

    엠넷(Mnet) ‘슈퍼스타K 2’가 낳은 슈퍼스타 존박이 대두종결자로 등극했다. 존박의 대두종결자 등극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공개된 존박과 허각, 컬투의 정찬우, 김태균 등 네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비롯됐다. 네티즌들은 사진 속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존박 등 네 사람의 머리 크기를 동그란 원을 그려 비교했다. 비교 결과 존박의 머리 크기가 컬투의 머리 크기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대두종결자 등극을 인증했다. 컬투의 큰 머리는 이미 연예계의 대표적인 ‘대두’로 인정 받아왔기 때문에 별 차이없는 존박이 적어도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뜻. 사진 비교를 통해 대두종결자에 등극한 존박은 이미 주진모 등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도 큰 머리로 굴욕(?)을 맛본 적이 있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MAMA 직접 본 기자의 ‘솔직한’ 뒷담화

    MAMA 직접 본 기자의 ‘솔직한’ 뒷담화

    시작 전부터 말 많고 탈 많았던 2010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이하 2010 MAMA)가 막을 내렸습니다. 유례없이 멀리 마카오까지 날아와 진행된 2010 MAMA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한 기자가 텔레비전 앞에서는 느낄 수 없었을 당시 분위기를 전할까 합니다. 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둘러본 코타이 아레나는 1만 5000석 규모의 유명 공연장입니다. 세계적인 팝스타인 비욘세와 셀린 디온, 레이디 가가, 어셔 등이 콘서트장으로 선택했을 만큼, 최고의 음향시설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죠. 주최측인 엠넷이 왜 거금 40억원(대관료 및 기타 운행비)을 들여 이곳을 대관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엠넷이 꿈꾸는 ‘아시아 음악인들의 축제’를 거행하기에 지리적·문화적 요소를 모두 갖춘 안성맞춤인 장소가 바로 코타이 아레나였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이들’의 인기, 까다로운 기자들도 놀라게 하다 훌륭한 공연장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 MAMA는 ‘우연찮게’ 국내 인기 가요프로그램의 방송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시작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때문에 내로라하는 가수들이(정확히는 그들의 소속사가) 출연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고, 사실상 이번 행사의 초대 가수석은 가까이서 보니 동네잔치로 착각할 만큼 빈약해 보인게 사실이었죠. 그나마 스케줄 ‘협상’에 성공했거나 휴식기 중인 대형가수 2PM, 원더걸스, Miss A(미쓰에이), 2NE1(투에니원), 빅뱅, DJ DOC, 타이거 JK, 슈퍼스타K2 TOP4(허각, 존박, 장재인, 강승윤) 등이 참석해 구색은 갖출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가수들이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소개될 때마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워져 갔습니다. 특히 엠넷과 관계가 껄끄러운 SM 패밀리, 특히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의 인기는 현장의 기자들도 놀랄 정도였죠. ▲피부색·국적 다른 이들의 ‘ONE’ 무대 이번 2010 MAMA에는 역시 발군의 해외가수들이 다수 소개됐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모은 아티스트는 ‘중국의 닉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운 외모를 가진 중국의 장지에입니다. 중국판 ‘슈퍼스타K’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댄스곡 일색이던 공연 분위기 속에서 감미로운 발라드를 열창했는데요. 발라드 가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국내에서도 그 정도의 비주얼과 가창력이라면 크게 활약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가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 솔로상을 받은 거미와 선 듀엣무대였습니다. ‘아시안 뮤직어워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객석의 많은 팬들이 이들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은 마치 전 세계인이 한자리에 어울려 축제를 즐기는 올림픽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하늬와 DJ DOC의 합동무대에도 1만석 관중들은 열광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가야금 가락과 힙합의 조합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넘어 장르와 문화의 차이 또한 뛰어넘게 해 국적이 다른 관중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벅찬 무대였죠. ‘ONE ASIA’를 느끼게 한 것은 무대 뒤에도 있습니다. 바로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진짜 주인공인 스태프입니다. 규모가 규모인만큼 엄청난 장비와 인력이 소요되는 현장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뿐 아니라 태국과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에서 온 다양한 전문가들이 단 하나의 무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한국+중국+일본 뿐?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세계 유수의 음악 시상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신구(新舊)의 조화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년을 넘게 활동한 마돈나와 데뷔 10년이 갓 넘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합동무대가 주는 감동을 기대했던 건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요. 또 다국적 스태프에 비해 무대에는 한·중·일 3국 가수 뿐 이었다는 사실도 조금은 씁쓸합니다. 더 효과적인 무대시간 배정과 아이디어로 다양한 아시안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었다면, MAMA의 위상과 함께 한국 음악시상식에 대한 선호도도 함께 높아졌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자주 볼 수 없는 긴 시간의 공연(무려 4시간)이다 보니 체험기도 길어졌지만, 그만큼 아시아 최고의 음악축제를 꿈꾸는 2010 MAMA의 첫 걸음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내년에는 속이 더욱 꽉 찬 MAMA를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마카오=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일 인디음악 훈남들 맞붙는다

    한·일 인디음악 훈남들 맞붙는다

    “(장기하의 음악은) 유니크한 노래와 소리가 굉장히 매력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부분이 있습니다.”(도쿠마루 슈고) “(도쿠마루의 음악은) 어떤 계열이나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게 가장 매력적입니다. 특히 편곡이나 사운드 메이킹 방식이 완전히 새롭습니다.”(장기하) 한국과 일본 인디 음악계의 대표적인 훈남들이 카리스마 대결을 벌인다. 한국 대표는 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일본 대표는 싱어송라이터 도쿠마루 슈고(30)다. 이들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합동 콘서트를 연다. 이름하여 ‘한일 훈남 대합전’(韓日薰男大合戰)이다. 23일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연장 WWW에서 열리는 공연은 이미 매진됐다. 다음달 24~25일에는 서울 서교동 브이홀로 무대를 옮긴다. 인디 밴드 눈뜨고코베인에서 드럼을 치던 장기하(28)를 중심으로 결성된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발표한 싱글 ‘싸구려 커피’로 제2의 인디 물결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88만원 세대의 감성을 담은 노랫말에 복고적인 포크 록, 독특한 퍼포먼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2월 발매한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는 인디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5만장 이상 팔렸다.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오르며 평단의 인정도 받았다. 도쿠마루는 ‘네오 시부야’계 뮤지션으로 분류된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바탕으로 여러 장르가 섞이며 시부야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제이팝(J-POP)의 한 갈래다. 도쿠마루는 얼터너티브 팝, 에스닉, 록, 포크 등을 아우르며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2004년 미국 인디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데뷔 앨범은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일본은 물론 유럽까지 활동무대를 넓히고 있다. 도쿠마루 쪽에서 장기하 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만남이 성사됐다. 장기하는 도쿠마루를 통해 8월 일본 프로모션을 가졌고, 최근 1집을 일본 음악 팬들에게 선보였다. 앞서 도쿠마루도 장기하 쪽을 통해 한국에 정식 라이선스 음반을 발매하고 지난 7월 단독 공연을 치렀다. 이들은 “좋은 음악은 어디에서든 통하게 마련”이라며 서로의 음악을 치켜세웠다. 도쿠마루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인 한국에 진출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음악팬들은 (일본에 견줘 반응) 온도가 조금 높은 것 같다.”면서 “조금이라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가고 싶다. 시장 규모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장기하는 “일본 분들은 감정을 밖으로는 많이 표출하지 않는 것 같지만 굉장히 진지하게 몰입하는 경우가 있어 놀랐다.”며 한국과 일본의 음악 즐기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선 노랫말이 주는 재미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관련해 그는 “가사를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분들 앞에서 공연을 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기도 하다.”면서 “꼭 가사가 아니더라도 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4만 4000원. (02)563-0595.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취업과 연계된 대학입시 기획 필요/권성자 책만들며크는학교 대표

    [옴부즈맨 칼럼]취업과 연계된 대학입시 기획 필요/권성자 책만들며크는학교 대표

    며칠 있으면 대학입학 수능시험이다. 수능과 전혀 관계 없는 필자도 언제부터인지 수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능이 임박한 10월부터 대학입시 정시모집이 끝나는 다음 해 2월까지는 고3·재수·삼수 심지어 사수까지 시키는 부모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어느 대학에 지원을 했는지, 결과는 어떠한지’ 등의 대화를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이렇게 힘들게 대학 들어갔는데 졸업하고 취업도 못해 자기 몫을 해내지 못하면 어쩌냐.’ 하는 근심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곤 한다. 대학입시는 입시생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무조건 붙고 보자는 식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분위기 속에서 11월 12일자 시론에 실린 ‘대입수험생에게 드리는 편지’는 ‘창조력 중시 트렌드’, ‘자유무역협정으로 신시장이 열리는 트렌트’, ‘변종글로벌시대 트렌트’ 등을 참고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직업평론가의 조언이 가슴에 와 닿았다. 10월 26일자 ‘3박자 갖춘 신설 특성학과 노려라’는 기사는 대학의 신설학과와 특성학과를 소개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4년제뿐 아니라 2년제까지 포함하여 좀 더 광범위하게 소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매년 대학입시는 찾아오고 수험생에 관한 많은 기사들이 실리지만 서울 소재 유명 대학들의 모집전형을 보면 필자가 대학에 들어갈 때인 1980년대 초반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커리큘럼은 어떠한지’, ‘취업과 연계할 수 있는 미래 트렌드는 무엇인지’, ‘10년 후 전망은 어떤지’ 등 학과를 자세하게 소개해주는 기획기사가 실린다면 학과를 선택하는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업도 10년 후를 준비하기 위해 정부와 여러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듯 개인도 10년, 20년 이후의 미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조언이 필요하다. 대학입시가 시작될 때부터 졸업과 취업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10년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연계된 기획기사를 기대해 본다. 10월에는 일자리 기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정부가 10월 12일에 발표한 ‘국가고용전략’과 맞물려 고용을 통한 성장, 분배구조 개편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정리해 주었고, 10년간 240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지 분석해 주었다. 특히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닌 현재 청년들의 일자리 구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기사와 분석이 눈에 띄었다. 13일자 1면에 소개된 ‘문화산업 음지 일꾼’ 만년 ‘어시스턴트의 자화상’을 통해 패션잡지, 사진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 및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생생하게 잘 다뤘다. 이어 9면에는 이 부분은 출판, 영화산업 종사자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지적하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주 44시간보다 긴 시간을 일해야 하는 1~5년차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근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현실을 잘 보여준 기사였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연계되어야 청년들의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치뉴스 면에 관련된 기사가 다루어진 점은 좋았다. 13일자 ‘지자체-대학, 지역발전 어깨동무’에서 대학은 인력과 기술을 제공하고, 지자체는 행정 및 경제 지원을 하면서 윈-윈 전략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는 일반 취업뿐만 아니라 우수 아이템을 지닌 ‘청년창업 100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공간과 자금, 교육컨설팅, 마케팅 등 창업의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비롯, 대전시와 부산시의 창업 지원 내용도 다루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우리 국민 모두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일회성 기사로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슈화해 주기를 바라며 예리하게 파헤쳐 적절한 대안도 찾아 제시해 주길 기대해 본다.
  • MB, 스스럼없는 ‘스킨십 외교’

    12일 아침 8시 20분쯤 G20 서울 정상회의 회담장인 강남 코엑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입장할 차례가 되자 다른 정상들이 들어올 때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문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印尼대통령에겐 손잡고 첫인사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 피해 복구 때문에 전날 밤 늦게 도착한 유도요노 대통령에게 첫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위로의 말을 건넨 뒤 진심을 전달하려는 듯 ‘애인처럼’ 손을 꼭 잡고 기념촬영을 했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강한 친밀감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셈인데 유도요노 대통령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도 특유의 ‘스킨십 외교’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웬만큼 친한 정상들과는 ‘포옹’이 기본이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도 강하게 포옹을 나눠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입장할 때는 양 손을 내밀며 환영했고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와 사진촬영할 때는 두 사람의 가운데 서서 양쪽으로 어깨동무를 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정상들과 평소 돈독한 인간관계로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무난한 회의 진행을 하며 막후 조정이 가능했다. 이 대통령은 12일 폐회 선언에 앞선 마무리 발언에서 “회의를 빠르게 진행했다. 몇분이 양보해 주니까 G20 전체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이런 정신이 향후 G20 운영에도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양보 정신’을 강조했다. ●각국 정상들과 평소 친분 유지 당초 실무진이 써준 원고에는 들어 있지 않던 내용이다. 이 대통령이 평소 정상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에 회의 때 서로 발언하려는 것을 조정하고, 민감한 문제에 반박하며 갈등을 빚는 일을 유연하게 피해갈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김성수·김상연기자 sskim@seoul.co.kr
  • 경기·강원 관광발전 ‘어깨동무’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아 경기도와 강원도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손잡는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광재 강원지사는 5일 경기 가평군 남이섬 선착장에서 열리는 ‘짚-와이어’(Zip-Wire) 준공식에서 관광활성화 협약서에 서명한다. 두 단체는 짚 와이어 활성화 및 수상과 육상을 연계한 관광자원 상품 개발 등을 약속할 예정이다. 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경기도의 세계도자비엔날레, 경기국제항공전 등 국제대회 및 각종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비무장지대(DMZ) 공동 보전 및 개발과 연구 관광 상품 운영 협력, 관광객 유치를 위한 공동 마케팅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가평 짚-와이어는 쇠줄(와이어)로 연결한 뒤 도르래를 타고 활강하는 시설이다. 경기관광공사와 가평군, ㈜남이섬이 참여해 공사를 추진해 왔다. 가평 선착장에 설치된 80m 높이의 타워에서 남이섬까지 940m(자라섬까지는 640m)로 연결되며 현재 선착장에서 배를 통해 5분 정도 걸리는 시간이 1분가량으로 줄어든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아버지회가 어머니회와 다른점

    ‘다목적실·체육관 건립 청원서’ 서울 목동 목일중 아버지회 서철원 회장이 며칠 전 서울시교육청에 청원을 냈다며 종이를 꺼내 보였다. 학년마다 17개 학급이 설치된 목일중 학생들이 체육시간이 되면 5~6개 반이 한꺼번에 한 운동장에 모여서 운동을 해야 한다며 체육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최근 목일중 아버지회가 추진하는 가장 큰 현안 가운데 하나가 체육관 건립 추진이라고 한다. 아버지회의 노력이 성과를 거둬 체육관을 짓더라도 현재 목일중 재학생들이 쓸 수 있는 기간은 거의 없다. 체육관이 지어진다면 새로 입학할 후배들이 주로 쓰게 된다. 이런 청원을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학부모회가 추진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교육과학기술부 김문희 학부모지원과장이 풀어 줬다. 김 과장은 1일 “자신의 자녀가 잘되더라도 학교나 사회가 불안정하면 결국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학부모회도 자신의 자녀만을 위한 노력보다는 교육 환경 개선을 목표로 활동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회 생활 경험이 많은 아버지들이 교육에 참여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3일 목일중 아버지회가 진행한 어깨동무 산행 역시 새로운 유형의 학부모회 활동으로 분류된다. 학교에서 추천한 학생과 아버지회 회원들이 1대1 멘토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 등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버지들의 모임이라는 이유 때문에 기존 어머니회 중심 활동과 다른 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목일중 생활지도부장인 이제준 교사는 “지난해 신종플루가 유행하는데, 교육 당국에서 학생들 체온 측정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당장 체온계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아버지회 소속 회원이 구해 줬다.”고 귀띔했다. 어깨동무 산행이 있을 때에도 이동을 위한 미니버스와 학생들의 간식이 된 피자, 기념품으로 지급할 허리 쿠션까지 아버지들의 ‘조달 능력’이 한껏 발휘됐다. 이 교사는 “현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들이 참여하면서 학교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자녀가 졸업한 뒤에도 고문단 등의 형태로 활동하는 것도 이 학교 아버지회의 특징이다. 아버지회 고문단 회장인 조남석씨는 “결국 학교모임이 지역모임과 겹치게 된다.”면서 “아버지회 활동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자녀 교육 문제를 떠나서 아버지들끼리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아빠들 수다의 힘… 문제아를 웃게 하다

    아빠들 수다의 힘… 문제아를 웃게 하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썼다는 ‘아빠는 왜’라는 동시가 지난달 말쯤 화제에 올랐다. “나를 예뻐해 주는 엄마가, 먹을 것을 주는 냉장고가, 놀아주는 강아지가 좋다.”던 화자는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며 시를 끝맺는다. 여운은 컸다. 아빠 네티즌들은 “밤 늦게 들어가서 아이들 얼굴도 못 보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반응했다. 예비 아빠 네티즌들은 “왜 있는지 모르는 아빠가 되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교육&과학면을 통해 가정과 학교에서 변방에 있던 아버지들의 고민을 듣고, 아버지가 새로운 교육 현장의 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우선 아버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교를 바꿔 나가는 서울 목동 목일중학교 아버지회의 ‘어깨동무 산행’을 따라가 봤다. 학교 아버지회. 모임의 이름만 듣고 공부를 잘하거나 학급 임원인 자녀를 둔 아버지의 모임이라든지, 돈이나 시간이 많은 아버지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면 학교에 부는 ‘아버지 열풍’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수업이 없이 노는 토요일(놀토)을 맞아 자녀들이 다니는 서울 목동 목일중학교 학생들과 ‘어깨동무 산행’에 나선 아버지들은 ‘별난 존재’가 아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와 또래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나이대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나누고 싶은 아버지들이 아버지회를 통해 뭉쳤을 뿐이다. 물론 아버지들의 활동이 녹록한 수준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꽤 들어간다는 얘기다. 100여명으로 구성된 목일중 아버지회는 금요일마다 학교 주변과 우범지역을 순찰하고, 수시로 교육 현안 등에 대한 소통을 한다. 기금을 모아 학기마다 학교가 추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고, 남교사들과 축구대회나 낚시를 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 가운데 학기마다 한 번씩 열리는 ‘어깨동무 산행’은 아버지회 자녀들과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 함께 떠나는 등산 활동이다. 아버지들이 부적응 학생과 1대1 멘토를 맺고 조언을 해 주기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아버지들이 학생들에게 베푸는 행사처럼 보이지만, 자녀의 친구인 학생들과 만나면서 학교 생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아버지들은 입을 모았다. 이번 학기 어깨동무 산행은 중곡동 아차산을 코스로 잡았다. 아버지와 학생들이 뒤섞여 올라가면서 서로 “힘들다.”고 숨을 뱉는 사이 서먹함이 사라져 갔다. 옆 반의 누구와 누가 서로 좋아한다는 학생들의 대화에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요령을 가르쳐 주자 “요즘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금연침을 맞으면서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학생에게 자신의 금연 경험담을 얘기하며 “고생이 많겠다.”고 격려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격의 없는 대화는 “학교 운영이나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일체 관여를 하지 않고, 도움이 될 일만 찾아본다.”는 아버지회의 취지에서 이어진 측면이 크다고 서철원 아버지회 회장은 설명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어머니보다는 한 무릎 떨어져 있는 아버지상과 인간 관계를 직업적·사회적인 관계로 생각해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크게 왈가왈부하지 않는 남성 특유의 특성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아직 목일중 아버지회처럼 활동이 활발한 아버지회도 지역 사회나 가정에서 보면 이례적인 게 사실. 이 점은 어깨동무 산행에 나선 아버지들을 위해 집에서 챙겨준 도시락의 방대한 양과 정성에서 방증됐다. 아버지회 2학년 회장인 한승주씨는 “금요일 저녁에 학교 주변 야간 순찰을 돌고 아버지들끼리 맥주를 한잔 마시거나 토요일에 산에 간다고 해도 집에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조영호씨는 “아버지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학교 생활에 대해 알게 되면서 딸과 학교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늘어났다.”고 맞장구쳤다. 자녀가 중학교를 졸업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고문단으로 활동하는 송영기씨는 “아버지회 활동을 통해 사회에 나온 뒤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것도 아버지회가 활성화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거들었다. 아버지회 활동이 자녀들의 학교 생활을 돕기 위한 ‘임의 단체’가 아니라 자녀들을 매개로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유형’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글 사진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퇴임 앞둔 룰라 행보는

    퇴임 두달을 남겨놓고도 80%가 넘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다음 목표는 뭘까. 물심양면 전폭적인 지원 끝에 정치이력이 일천한 지우마 호세프 후보를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시키자 1일 외신들은 일제히 “룰라 대통령이 또 한번 혁명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란 호평을 이끌어낸 룰라 대통령은 내년 1월 1일 정권을 넘겨주더라도 정치적 퇴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지 언론들은 차기 정부와 집권당으로부터는 일정 거리를 두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국제 사회로 활동무대를 옮겨갈 것이라는 해설을 내놓고 있다.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수장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도 크다. 스스로도 “임기를 마치면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아와 빈곤 퇴치 노력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오는 201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부디 호세프가 정치를 잘해서 재선되기를 기대한다.”며 차기 대선 출마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호세프 정부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대권 재도전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가 여전히 떠돌고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5년만의 성과 감개무량 매출 100조원 도약할 것”

    “15년만의 성과 감개무량 매출 100조원 도약할 것”

    “인도네시아 프로젝트는 해외 첫 일관제철소라는 의미 외에도 고부가가치 자원의 확보와 지구 온난화 방지, 저탄소 세상을 향해 포스코가 첫발을 내디딘 것을 뜻합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28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크라카타우-포스코’ 제철소 기공식을 앞두고 이같은 ‘2020 포스코 비전’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는 현재 매출 40조원을 100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사업 범위도 제철을 넘은 것이다. 정 회장은 “인도네시아는 1만 8000개에 이르는 섬들의 자원 탐사조차 아직 못했을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자원의 보고”라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는 포스코ICT와 얼마 전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관제철소가 포스코의 기술과 인도네시아의 인프라·원자재가 결합된 것처럼, 앞으로 모든 사업도 양국이 상생협력을 바탕으로 윈윈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여기에는 포스코의 ‘업(業)-장(場)-동(動)’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변화를 추구하는 업종과 함께 활동무대를 아시아와 전 세계로 넓히고, 더불어 포스코 내부는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변신하듯 직원들도 이제 철강근로자에서 지식근로자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인도네시아 프로젝트는 1995년부터 추진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중단했는데 이렇게 다시 불을 댕기니 감개무량하다.”면서 “일본 및 중국 제철의 해외 진출에 앞서 우리 투자의 타이밍과 여건이 좋아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칠레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오후 11시 30분)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로봇강아지가 아이들과 율동도 함께 하고, 쉬는 시간에는 수수께끼도 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단순한 명령어로 움직이던 로봇이 어떻게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정말 로봇을 선생님, 혹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을 밝혀 본다. ●사랑하길 잘했어(KBS2 오전 9시 20분) 경자는 사사건건 자신을 볶는 태호 때문에 딸 도희만 결혼시키면 이혼한다며 도희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그러나 도희는 승진에서 미역국을 먹고, 애인 재섭의 위로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도희는 새언니 지원에게 이직을 부탁하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문제로 영준과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아침 드라마 주홍글씨(MBC 오전 7시 50분) 마침내 주홍글씨 첫 방송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만, 석호는 경서를 다른 작가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다른 작가를 데려온다. 혜란은 순임, 영림, 성준을 불러 자신이 재용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순임과 성준은 이들의 결혼을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며 자신이 죽기 전까지 반대하겠다고 말하는데…. ●감성여행 내 안의 쉼표(SBS 오후 6시 30분) 소년 같은 순수한 매력이 돋보이는 김용택 시인이 자신의 팬인 가수 유열을 길동무 삼아, 아름다운 가을 절경을 자랑하는 변산반도 부안의 서해바다로 떠난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수려한 자연풍광을 자랑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임실 고향집과 이퇴계의 ‘관란헌’을 닮은 고풍스러운 서재가 공개된다. ●다큐인생 2막(EBS 오후 10시 40분) 서울 이촌동 아파트 상가 건물, 그 2층에 한정식 레스토랑 ‘초록바구니’가 있다. 애피타이저에서부터 디저트까지 정갈한 음식들이 소량씩, 코스별로 나온다. 식당 주인 김기호씨는 이 식당 그대로, 이 레시피 그대로 뉴욕으로 가서 장사를 해도 현지 사람들에게 팔리는 그런 한식당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경찰 25시(OBS 오후 11시 5분)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며 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한 남자. 그 남자는 노인을 공사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두명의 남자를 소개해주며 불쑥 노인에게 도박 속임수를 보여주고,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노인은 그들의 현란한 손 속임수와 말솜씨에 혹해 자신의 전 재산 5000만원을 덜컥 건넨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 충남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 충남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

    깊어가는 가을 한낮,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의 송림공원은 여느 해와 달리 황량했다. 지난 여름 태풍 곤파스가 오래도록 아물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긴 까닭이다. 7500그루의 소나무가 쓰러지거나 부러진 안면도 소나무 숲을 비롯해 서산 지방을 할퀸 바람은 참혹했다. 송림공원이라 부르는 애정리 마을 숲의 소나무 70여 그루도 그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참히 쓰러졌다.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지더라고요. 100년을 넘게 버텨온 나무들인데, 한꺼번에 죄다 쓰러진 거예요. 바람 지나고 나와 보니, 하! 참. 바라보기조차 싫어지더군요.” 짬 날 때마다 이곳 솔숲을 찾았다는 마을의 중년 사내는 쓰러진 소나무를 바라보며 얼굴부터 찡그렸다. ●600년의 연륜은 바람의 상처도 비켜가리 말로는 다시 오기 싫어졌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 그는 하루도 이곳에 나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정이 떨어졌다는 건 깊은 아쉬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안면도 솔숲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기 같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더운 날이어도 우리 숲에만 들어오면 서늘한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었어요. 그것도 이젠 끝이죠,” 치우기 위해 토막낸 소나무들이 누워, 휑뎅그렁해진 숲 한편으로 송곡사 혹은 송곡서원이라 불리는 옛 집 한 채가 내다보인다. 그 앞마당에는 뜸직하게 솟아오른 한 쌍의 향나무가 서 있다. 무려 600살이나 되었다. 큰 나무라고 해서 바람이 피해가지는 않았다. 적잖은 상처를 받았지만, 한 쌍의 늙은 향나무는 바람의 상처를 잊으려는 듯 한낮의 태양 아래 넉넉하게 몸을 풀었다.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햇살 한줌이라도 더 끌어 모으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래도 오래 산 나무의 힘이 좋은 거죠. 100년 넘은 소나무들이 다 넘어가는 동안 저 큰 나무는 용케 버티더군요. 그나마 저 나무가 살아줘서 다행이죠. 저 나무마저 쓰러졌다면, 아, 생각하기도 끔찍하네요.” 사람이나 나무나 세월의 풍파에 맞서 살아야 하는 생명체에게는 노하우가 있게 마련이다. 100살 넘는 나무들을 무참하게 쓰러뜨린 모진 태풍도, 600살 된 나무는 어쩌지 못했다. 100년 세월의 깜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생명의 끈질김이다. 태풍 곤파스가 서산 지역에 매우 큰 피해를 남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걱정된 것은 마을 숲의 소나무들이 아니라, 늙은 향나무 한 쌍이었다. 그 모진 바람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지, 혹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건 아닐지 궁금했다. 궁금증의 가장자리에 솔숲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늙은 나무가 어찌 바람의 습격을 겪어냈을지가 더 궁금했다. 그러나 긴 세월을 살아온 늙은 나무는 천연덕스럽게 옛 모습 그대로 살아남았다. 적지 않은 나뭇가지가 부러졌지만, 소나무들의 처참한 죽음에 비하면 상처라 하기에 겸연쩍을 정도밖에 안 된다. 한 쌍의 향나무 중 한 그루는 중간 부분의 가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중동무이가 난 채 땅바닥에 곤두박질한 큰 가지는 그날의 처참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예전의 훤칠했던 모습은 조금 상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가 살아온 긴 세월의 무게에 비춰보면 이 정도 상처는 머지않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다른 한 그루는 그야말로 시치미를 떼고 의뭉하게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마을 숲에서 100살 된 소나무들이 어이없이 쓰러지는 동안 600살짜리 향나무는 그렇게 바람을 이겨냈다. 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토록 아름답게 살아온 데에는 분명한 까닭과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여기가 서당이었다고 해요. 그 서당에 다니던 어린 학동이 심은 나무예요. 이번 태풍에 많이 부러졌어요.” ●향나무 한쌍 옆을 지키는 송곡서원 서원 앞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던 아낙네는 나그네를 맞이하며 무덤덤하게 한마디 던진다. 큰 나무의 생명에 대한 믿음을 앞세웠지만, 말 꼬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있다. 그깟 바람쯤이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만, 작은 가지들이 부러져 옛 모습의 일부를 잃었다는 게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마을의 상징이자, 자랑인 송곡서원 향나무는 조선 전기에 활동한 서산 출신 선비 유윤(柳潤, ?~1476)이 심은 나무다. 서원으로 고쳐 짓기 전에 이 자리에 있던 서당에서 글공부 하던 시절 손수 심었다고 한다. 유윤이 유난히 나무를 아꼈다는 기록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유윤은 단종 폐위 후 벼슬을 버리고 충북 청주의 무동(지금의 청원군 연제리)에 머물며 후학 양성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과 경륜을 높이 여기던 세조와 광해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를 불러내려 했다. 그때마다 유윤은 임금의 부름을 사양하며, 자신을 마을의 모과나무처럼 말 없이 살아가는 무동(楙洞)처사라 했다. 모과나무를 뜻하는 무(楙)자에 빗댄 이름이었다. 그때 그가 가리켰던 모과나무도 아직 살아 있다. 청원군 연제리의 그 모과나무는 우리나라 모과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크고 아름답다. 그가 죽고 200년 흐른 뒤인 숙종 때에 서산 지역의 후학들은 유윤이 심은 한 쌍의 향나무 앞에 홍살문을 세우고, 그 안쪽에 서원을 세웠다. 유윤과 함께 서산 출신의 선비 아홉 명의 삶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서원의 이름은 ‘송곡’이라 했다.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까닭이었다. 서원 앞마당에서 자연스레 서원목이 된 향나무는 그렇게 긴 세월에 걸쳐 15m나 되는 큰 키로 자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느 향나무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무릇 모든 생명체에 앞서서 세월의 풍진을 이겨낼 연륜과 생명의 노하우를 갖춘 장한 나무가 됐다. 한가위 명절을 지내고 송곡서원을 다시 찾았다. 처참하게 드러누웠던 소나무들은 토막토막 잘려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서원 앞마당의 향나무에서 부러진 가지도 잘라냈다. 비교적 정돈된 모습이지만, 풍요로웠던 예전의 솔숲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지난 여름의 상처는 당최 아물 기미가 없다. 황량한 공터로 변해버린 마을 숲 건너편에 서 있는 한 쌍의 늙은 향나무만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새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글 사진 서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찾아가는 길 충남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 495. 서해안고속국도의 서산나들목이나 해미나들목으로 나가 국도 32호선을 이용하여 서산 시내를 지나면 전자랜드와 아파트 단지가 훤히 보이는 예천사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500m 가면 안면도 방면의 지방도로 649호선이 이어지는 공림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5.5㎞ 직진하면 오른편으로 송곡서원이 나온다. 바로 옆에 지난 9월1일 개관한 ‘서산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