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무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세미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심청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체벌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CEO 주도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463
  • “우리 축구 안해!” 브라질 7군데서 경기 ‘올스톱’ 진풍경

    “우리 축구 안해!” 브라질 7군데서 경기 ‘올스톱’ 진풍경

    삼바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이색적인 축구시위가 열렸다. 13일(현지시간) 브라질 프로축구 1부리그 선수들이 1분간 경기를 거부했다. 이날 브라질에선 1부리그 34주차 경기가 7군데서 열렸다. 경기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렸지만 각 경기장의 모든 선수들은 시위 각본대로 공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선수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어깨동무를 한 채 그라운드에서 허수아비(?) 노릇을 했다. 일부 경기에선 상대편 선수들이 패스를 하면서 공격을 거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사전에 시위를 약속한 선수들의 단체행동으로 모든 경기가 1분간 마비(?)됐다. 현지 언론은 “선수들의 모임인 ‘현명한 판단을 위한 운동’이 시위를 기획했다”면서 “이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선수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브라질 1부리그 선수들은 “정규시즌이 너무 길어 선수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면서 시즌 단축과 30일 휴가 보장을 요구했다. 클럽 상파울로의 골키퍼 로헤리오 세니는 “지금의 일정은 선수들은 물론 심판과 기자들에게도 지나친 강행군”이라면서 브라질축구연맹에 즉각적인 일정개편을 촉구했다. 사진=카피탈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어디서 왔니?” 영화속 외계인 닮은 희귀곤충 화제

    “어디서 왔니?” 영화속 외계인 닮은 희귀곤충 화제

    마치 영화속 외계인을 보든 듯한 느낌을 주는 곤충 사진이 해외 언론을 통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사진 속 곤충들은 독일 헤센주(州) 프리드리히스도르프의 사진작가 이본느 스판(42)이 촬영한 것이다. 어찌보면 나뭇가지처럼 생긴 이 곤충들은 국내에 말머리 방아깨비(학명: Pseudoproscopia latirostris)로 소개된 바 있다. 이름대로 머리는 말과 비슷하지만 그 모습은 ‘외계인’이 어깨동무를 하는 듯 보인다. 이 곤충은 그 재미난 모습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애완 동물로도 키워지고 있다. 이를 촬영한 스판은 “거의 6개월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 투 아이’(Eye to Eye)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고 있다”면서 “곤충들이 사람처럼 보이게 찍으려 했다”고 말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규현 회식 인증샷 너무 화목해 보여…맹승지는 왜 없지?

    규현 회식 인증샷 너무 화목해 보여…맹승지는 왜 없지?

    슈퍼주니어 규현이 ‘라디오 스타’ 회식 인증샷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3일 규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녹화 끝나고 임창정 형에게 잡힌 김에 정성화 형이랑 무지 달린 날. 마술사 현우 형은 술은 안마시고 기가 막히는 마술쇼를 보여주심! 맹승지 씨는 아이디어 회의 하다 늦게 와서 없네요”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방송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의 게스트로 출연한 임창정, 정성화, 최현우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미소를 짓고 있어 돈독한 선·후배 사이를 인증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맹승지 언니가 없어서 아쉬워” “너무 화목해 보인다” “다른 DJ들은 왜 안왔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재중, 거미와 입 맞춘다…김재중 솔로 콘서트에서 합동공연

    김재중, 거미와 입 맞춘다…김재중 솔로 콘서트에서 합동공연

    가수 김재중이 거미와 함께 입을 맞춰 무대를 꾸민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31일 “김재중이 다음달 2일 시작되는 솔로 공연에 깜짝 놀랄 게스트들을 초대했다”면서 “특히 최근 한 식구가 된 매력적인 가창력의 주인공 거미와 멋진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김재중과 거미는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악보를 보며 진지하게 상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씨제스 측 관계자는 “김재중은 현재 자신의 정규 1집 아시아 투어를 앞두고 라이브 밴드 연습에 한창이다”면서 “록 장르의 앨범이기 때문에 밴드와의 디테일한 합을 맞추기 위해 연일 연습에 몰입 하고 있으며 지난 30일부터는 게스트들과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김재중 거미 연습’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김재중 거미, 콘서트에서 합동무대 기대된다” “김재중 거미, 거미 가창력 훌륭한데” “김재중 거미, 멋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김재중은 다음달 2~3일 양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 D에서 솔로 콘서트를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구인모 지음/현실문화/584쪽/2만 8000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문인들은 1929년부터 1937년까지 근 10년간 유행가 가사를 쓰고 음반으로 취입했다. 일제 강점기 문인들의 외도와 이탈을 문학사 및 문화사적으로 분석한 책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는 선언으로 출발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동환, 이은상, 홍사용 등이 노랫말을 쓰고 고한승, 김종한, 김형원, 노자영, 유도순, 이하윤, 조영출 등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시인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음반에 취입한 작품은 확인된 것만 698곡으로, 식민지 시대 전체 유행가요의 18%에 이른다. 이들이 유행가 가사를 쓰며 대중과의 교감에 나선 것은 ‘개벽’ 등 동인지의 폐간에 따른 창작 공간의 위축, 높은 문맹률에다 빈약한 독자층 등 시단의 폐색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잡가나 유행창가와 같은 이종 양식들과의 경쟁, 시의 대중화에 대한 열망, 시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으려는 현실적 욕구, 다국적 음반산업과 유성기의 도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험은 자유시에서 출발한 근대시를 정형시로 퇴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행시는 1929년 이광수 외에 김소월, 변영로, 양주동 등 11명의 문학인과 안기영, 윤극영 등의 음악인 5명이 조선가요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효시는 이은상의 ‘마의태자’다. 이광수의 ‘우리 아기 날’, 김동환의 ‘종로네거리’, 홍사용의 ‘댓스 오-케-’가 음반으로 나왔다. 대표작은 김형원이 노랫말을 쓰고 안기영이 곡을 붙인 ‘그리운 강남’으로 해방 후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인기가 오래갔다. 조선가요협회 참여 문인들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해 1933년을 기점으로 활동이 뜸해졌지만 김억, 유도순 ,이하윤 등은 그 후에도 활발하게 작품을 냈다. 김억은 1933년 ‘수부의 노래’를 시작으로 1940년대까지 61편을 음반으로 냈다. 이하윤은 ‘섬색시’, ‘처녀열여덟엔’ 등 158편의 유행가 가사를 발표했다. 유도순은 카페 여급 김봉자와 경성제대 의학사 노병윤의 스캔들을 다룬 ‘봉자의 노래’를 히트시키는 등 1934~35년 2년간 92편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유행가요의 운명은 1932년 매일신보 기자가 이광수의 ‘쓰러진 젊은 꿈’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엽기적’이라고 한 데서 보듯 어느 정도 예견된다. 흘러왔다 흘러가는 유행가의 속성처럼 정통 문인들의 유행시는 곧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김억과 이하윤은 1937년 이후 전시상황에 부응하는 시국가요를 짓는 등 전쟁협력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기도 했다. 지은이는 그러나 “‘동심초’(김억 작사, 김성태 작곡), ‘동무생각’(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등이 가곡으로 남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나의 아토피 멘토] 유아아토피에게 미치는 홍삼의 영향

    [나의 아토피 멘토] 유아아토피에게 미치는 홍삼의 영향

    작년 이 맘 때 유아 아토피 치료를 받던 홍민혁(가명, 7세) 군에게 할머니가 직접 만든 홍삼을 보내 왔다. 민혁군은3년 전부터 매년 가을 몸 보신을 위해 홍삼을 먹어왔다고 한다. 최근 호전되는가 싶더니 추석전보다 악화되어 통증을 호소하는 민혁군은 홍삼복용에 따른 대사항진으로 얼굴과 몸에 아토피가 악화된 것이다. 현재 1개월째 치료 중이며, 초기 치료인 청열 해독 과정을 통하여 대사가 진정되고 있는 상태이다. 홍삼은 민혁 군의 피부가 회복된 뒤 피부 보습이 잘 이루어져 땀 배출이 원활하고 열 조절이 잘 될 때야 비로소 복용이 가능할 것이다. 홍삼은 흔히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피로회복에 좋은 보약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홍삼은 면역력증가와 피로회복 기능이 있다. 특히 고혈압과 저혈압에 효과적이다. 체질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보약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력회복을 위해 홍삼을 찾는다. 그러나 아토피 환자의 홍삼복용은 신중해야 한다. 꿀을 넣고 인삼을 찐 것 홍삼은 사포닌을 변환시켜 진세노사이드 함량을 높여 인삼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진세노사이드를 비롯해 홍삼 속의 여러 성분들은 항염, 항산화작용을 한다. 하지만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홍삼의 과다복용은 얼굴을 포함한 몸 전체의 아토피를 악화시킬 수 가능성이 있는 약재로 본다. 인삼이나 홍삼은 약성이 따뜻하여 약을 복용하면 몸을 따듯하게 하는 성질이 강하여 기초체온 조절력이 저하된 아토피 환자가 홍삼을 복용하게 되면, 대사기능이 조금만 높아져도 열이 피부로 배출되지 못해 아토피 증상은 악화되고 만다. 동무 이제마(1837~1899) 선생의 사상의학에서도 ‘인삼은 소음인에게만 쓰는 약이다’라고 나와 있는 것처럼 인삼이 대사를 활성화 시키기 때문에 그러하다. 특히 따듯한 약성을 지닌 홍삼과 인삼을 소아에게 사용할 때는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홍삼과 인삼 등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정보의 신뢰성 확인도 없이 무조건 많이 먹으면 안 된다. 홍삼의 사포닌 성분이 과할 경우 드물게는 아토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홍삼을 복용하고자 할 때는 전문의와의 개별 체질 진료와 진단 후 충분한 상담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도움말 = 프리허그한의원 대구점 권오용 원장 ]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나누니 세졌다… 양천구 ‘복지 어깨동무’

    나누니 세졌다… 양천구 ‘복지 어깨동무’

    양천구가 복지예산과 일자리, 문화 분야 등의 문제 해결에 민간 자원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예산을 세수로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귀권 구청장 권한대행은 “지방자치단체의 한정적 재원으로 복지 지원 등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역 기업, 민간단체 등과 손잡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구는 해법을 ‘돈’ 아닌 ‘연결’에서 찾았다. 전 권한대행은 민간과 함께 나눔 문화를 뿌리내리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SH공사와 협약을 맺고 저소득 독거노인과 중증 장애인을 위한 무료 빨래방을 열었다. ‘따뜻한 마음 복지재단’과의 협약으로 18개 동 주민센터에서 사랑의 쌀독을 운영하고 전국보일러설비협회와 함께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도배와 장판 교체, 보일러 고장 수리에도 나섰다. 의료 부문에서도 이화여대 목동병원과 보건의료복지 나눔 협약을 맺고 저소득 소외계층 수술비 지원과 의료진 재능 기부, 복지시설 의료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양천구 한의사회와는 ‘사랑의 손길 나눔’ 협약으로 저소득 청소년 건강검진 및 의료서비스도 제공한다. 145개 한의원에 사랑의 저금통을 비치해 어려운 이들을 돕는 모금운동도 한창이다. 아울러 급증하는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협약을 체결했다. 3개 종합병원은 영안실과 빈소를 지원하고 대한장례인협회는 장례지도사를 통해 장례 절차를 돕는다. 3대 종교단체로 구성된 추모단은 추모의식, 기업 연계 봉사단은 상주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홀몸 노인의 마지막을 지킨다. 전 권한대행은 “이 밖에도 많은 기관과 함께 자살 방지 시스템 마련, 금연운동, 어린이 경제교실, 재해 복구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맥도날드 할머니 마지막 지킨 이는 ‘외국인 여성’

    맥도날드 할머니 마지막 지킨 이는 ‘외국인 여성’

    ’맥도날드 할머니’ 마지막 지킨 이는 ‘외국인 여성’ 지난 7월 복막암으로 숨을 거둔 ‘맥도날드 할머니’ 권하자(73)씨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은 외국인 여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14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맥도날드 할머니를 국립의료원으로 처음 데려간 사람은 주한 캐나다교육원 강사인 스테파니 세자리오(28)였다. 2011년 맥도날드 할머니를 처음 난난 세자리오는 올해 초부터 매주 만나 말동무가 돼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세자리오는 할머니를 설득해 병원에 데려갔다. 세자리오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과거의 삶에 붙들려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식으로 생각한다 해서 그가 정신이 이상하다고 치부해선 안된다”면서 “또 권씨의 정신이 이상하다고 해도 그가 홀로 쓸쓸히 죽어가야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는 그와 함께 있어 기뻤다. 그 역시 죽기 전 내게 ‘지금은 당신이 내게 유일한 가족이군요’라고 말해줬다”면서 “사람들이 권씨를 단지 ‘정신나간 쇼핑백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이트설’ 수지 성준, 과거에도 애틋…

    ‘데이트설’ 수지 성준, 과거에도 애틋…

    미쓰에이 수지와 모델 출신 배우 성준의 데이트설이 제기되면서 두 사람이 함께 찍었던 과거 사진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성준은 지난 6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수지야 미안”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 수지와 성준은 올블랙 의상을 맞춰 입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수지는 성준의 팔에 살짝 기댄채 애교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수지와 성준은 MBC 드라마 ‘구가의서’에서 호흡을 맞추며 친분을 쌓았다. 11일 오후 스포츠서울닷컴은 수지와 성준이 지난 9월 가을밤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했다. 사진에서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는 등 스스럼없이 스킨십하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18세기 선비 이옥과 21세기 한국의 지식인

    [문소영의 시시콜콜] 18세기 선비 이옥과 21세기 한국의 지식인

    같이 어울려 다니는 무리나 짝을 ‘동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단어는 남한에서 금기어다. 북한이 쓰기 때문이다. ‘인민’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1945년 해방 전후에 백성, 인민, 국민 등이 혼용되다가 북한에서 인민을 애용하면서 기피 단어가 됐다. 1948년 5월 개원한 제헌의회에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Republic of Korea)라는 영문 국호와 달리 ‘공화국’을 적시하지 않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이유도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김진배 전 언론인이 쓴 ‘헌법의 두 얼굴’에 나온다. 북한 관련 드라마를 보면 “우리 공화국에선~”이 자주 나와 공화국도 왠지 불온한 듯해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화국이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직·간접 선거에서 일정한 임기를 가진 국가원수를 뽑는 국가형태이자 세습 군주를 부정’하는 민주주의적 제도를 말한다. 글을 쓰다 사전을 찾아보면 알게 모르게 북한어를 사용해 깜짝 놀란다. 근대문학 등에서 일종의 사투리로 표현된 단어들이 무의식 속에 저장된 탓일 게다. 뜨락이나 쪼각, 누에벌레, 등멱을 하다, 멍멍하다, 또아리, 그러매다 등등은 북한어다. 뜰, 조각, 누에, 등물(목물)을 하다, 먹먹하다, 똬리, 얽어매다 등으로 바꿔줘야 한다. 그 단어를 내버려둘까 하다가도 ‘이게 빌미로 나중에 몰리는 것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정정하는 편이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위축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한때 마녀사냥하듯이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켰던 과거를 모르는 순진하고 태평한 사람인 게다. 최근 중국 사마천의 사기가 출전인 ‘이민위천’(以民爲天)도 맘놓고 사용할 수 없는 단어로 분류됐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이 사자성어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가슴에 한 번쯤 품어야 하지만, 최근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북한 김일성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종북’의 대명사처럼 됐다. 청나라의 패관소품(소설과 잡문)을 좋아했다고 해 벼슬길이 막힌 조선 정조 때의 선비 이옥이 생각난다. 주자의 순정한 문체를 따라야 한다며 문체반정을 주도한 정조는 청나라 풍의 가벼운 문체를 사용하던 이옥을 문제의 인물로 지목해 강제 군역도 시키고 하더니 주류 양반사회에서 밀어냈다. 현대에 이옥의 작품은 조선 후기 문학의 주체적·능동적 경향과 다양성을 대변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중세 학자들은 지동설과 같은 신성모독성 이론과 철학을 논의할 때 교황의 파문에서 벗어나고자 ‘사실이 아니지만 이렇다고 가정해보자’라며 연구했고, 그것이 근대 과학혁명의 씨앗이 됐다고 한다. 금지어와 금기, 억압이 지뢰밭처럼 촘촘한 나라에서 창의적 생각이나 시도가 가능할까?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중소 두부업체들 대기업에 도전장

    중소 두부업체들 대기업에 도전장

    중소 두부업체 연합 브랜드인 ‘어깨동무’가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25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한그루식품, 동화식품, 오성식품 등 3개 두부 제조업체와 콩 재료를 제공하는 강남농산, 두드림영농조합법인, 용기와 포장필름을 만드는 세림 B&G, 부영기업 등 4개 기업이 합류했다. 어깨동무협동조합은 26일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풀무원, CJ제일제당 등 대기업이 80%를 차지하는 두부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게 이들의 목표다. 지난 5월 어깨동무 국산콩 두부가 롯데마트에 출시된 뒤 두 달간 중소기업 두부 매출이 전체의 32.8%를 차지함으로써 지난해 같은 기간(22.3%)보다 10% 포인트 이상 늘었다. 롯데마트는 어깨동무 브랜드 사업을 제안하고 포장 디자인, 협동조합 설립 등 운영 과정에서 자문 역할을 했다. 어깨동무협동조합은 콩두부, 우리콩으로 기른 콩나물 등 신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천장을 쳐다보고 상반신을 흔들어가며 봉노 안에서 뒤숭숭하게 오가던 논의를 귀담아듣던 최상주가 말을 받았다.  “기천 냥에 가까운 거관을 반수님이 노심초사한 공덕으로 고스란히 되돌려 받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순전히 적당을 소탕한 공로로 얻은 돈이지, 전주에게 돌려주라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돈은 임자는 있으되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도록 조처하는 게 좋습니다. 여항에서는 우리를 장돌뱅이로 하자하지 않습니까. 짚신에 감발치고 꽁무니에 짚신 매달고 십이령 고개를 수없이 넘나들었으나 단 한 번이라도 앉아서 쉬어본 적이 있습니까? 봉노에서 생면부지 사람들과 콧등을 맞대고 잠드는 처량한 신세에, 장가처가 있다 해도 오래 집을 비우기에 십중팔구 오쟁이를 지는 신세들 아닙니까. 그러하나 우리 평생 길바닥에서 뒹구는 처량한 신세를 모면할 길은 없습니다. 차제에 적선하여 저들이나마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드립시다. 두 번 다시 저들로 하여금 소루쟁이 뿌리로 죽을 끓이고, 새삼이나 나리 뿌리를 삶아 먹고 연명하며 부황나서 흰자투성이인 눈으로 사람을 멀거니 쳐다보는 반편으로 만들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말래 도방 근처 맞춤한 곳에 반수 어른 송덕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모아둔 부의전이나 벌전만 가지고도 송덕비는 세울 수 있겠지요.”  어느새 봉노 안에는 곰방대에서 내뿜은 매캐한 살담배 연기가 희뿌옇게 들어찼다. 본래 성품은 괄괄한 편이지만, 사소한 일에는 보아도 못 본 척 관여하지도 않고 과묵하기 그지없어 입에서 구린내가 난다는 핀잔도 듣던 박원산도 앞에 놓인 목침을 꽉 움켜쥐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작심한 듯 한마디 거들었다.  “사람이 도적이 되는 것은 오직 굶주리고 추운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겠소. 차라리 구걸하여 목숨은 보전할지언정 길손의 물건을 훔치거나 취탈하지 말라는 말이 백번 곱씹어도 옳은 말이긴 하지요. 도적질을 정습하지 못하고 일삼는다면, 필경 자리에 누워 제대로 일생을 마치지 못할 것이오. 재물을 탈취하고 인명을 손상시켜 한동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지내더라도 얼마 못 가 들통나고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절명한다는 것을 저들인들 모르겠소? 구걸이라도 해서 연명하는 게 좋다는 말이 있으나, 그럼 입성 남루하고 언변도 없고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는 헐벗은 상놈 주제에 어디 가서 구걸하기는 수월할까요? 굶다 못해 거리 송장되어 거적때기 하나 뒤집어쓰지 못하고 산송장으로 뒹구는 것을 장시 병문 담벼락 밑이나 수챗구멍에서 자주 보아온 터입니다. 저들의 딱한 처지를 역성들지는 못할망정 층하를 두거나 폄척해서는 안 되겠지요. 접장 어른께서 왜 저들을 진작 내치지 않고 지금까지 음식 공궤를 하고 잠자리를 제공해주었겠습니까. 그 까닭을 우리 동무들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박원산이 오랜만에 속시원한 말을 하는군.”  순간 좌중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한동안 깊은 침묵이 흘러간 뒤, 윗목에 앉았던 동무 하나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서 옹구바지 속에 감춰두었던 행낭 쌈지를 꺼내 헤아리지도 않고 쌈지째 방 한가운데로 던졌다. 또 다른 동무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대를 풀어 내던졌고, 다른 동무는 행전 속에 감추었던 수결 두 장을 꺼내놓았다. 그것을 필두로 모두 꿍쳐 놓았던 염낭을 열어 헤아리지도 않고 한데 모았다. 방 한가운데 던져진 쌈지들로 보아선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2000냥 이상의 금어치가 되는 거관이었다. 만기가 나가서 중두리 하나를 안고 들어왔다. 쌈지를 풀고 되돌려받은 장물 부대들도 함께 풀어서 넣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굴릴 동안 방안에 있던 행중 동무들은 말없이 구르는 중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튿날 천봉삼과 곽개천 그리고 박원산 세 사람은 중두리를 지고 곧장 생달 마을로 발행하였다. 나머지 행중은 흥부장으로 발행하여 포주인 조기출이 지키고 있는 어물 도가에서 소금과 미역을 떼어 다시 십이령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름 뒤에 말래 접소 근처에 흩어져 기거하던 농투성이들과 아녀자들도 생달 마을로 떠났다.  밤이면 비루먹은 개 짖는 소리만 공허하였던 생달 마을에 다시 인총이 붐비기 시작하여 생기가 돌고, 구룡산 도래기재를 넘던 영월 태백 부상들도 박달령 상로길로 돌아왔다. 경상도 내성과 안동의 경계는 멀어야 50여리 내외였고, 충청도 단양과의 경계는 60여리 상거였다. 박달령만 넘으면 영월과 태백이 코앞이었고, 울진으로 곧장 가자면 십이령 넘어 150리, 그야말로 사통팔당의 길지에 상단들은 춘수전과 추수전 때마다 여축 없이 갹출하여 토지를 사들였다. 피폐하였던 마을에 인총이 늘어나면서 각성바지 유민이 모여들어 마을은 금세 30여 가호로 늘어났다. 밭에는 옥수수가 길길이 자라 지붕을 덮을 지경이었고, 풀무간이 들어서고 마방 딸린 숫막이 다섯이나 들어섰다. 마당에는 대낮에도 노루가 뛰어들고, 솥에는 꿩이 저절로 날아들었다. 천봉삼 내외는 생달 마을 한가운데서 객주를 열었고, 달덩이 같은 아들을 얻었다. 천봉삼은 이제 생달 마을의 촌장이면서 울진 흥부장, 내성장과 영월 태백의 장시의 거래를 주름잡는 객주가 되었고, 적굴에서 거둔 농투성이들은 각자 집을 가지고 오동나무골과 생달 일대의 드넓은 묵정밭을 꿀이 흐르는 문전옥답으로 바꾸는 데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쟁이 지는 : 마누라가 도망한다는 곁말.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내성 임소에서 말래 접소로 돌아온 정한조는 다시 도회를 열었다. 접소의 동무들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의한 단초에 대해서 소상하게 의견을 나눌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접장으로서 부리를 헐어 논의의 축을 잡아줄 필요는 있었다. “안동 부중의 주선으로 장물이긴 하나 거관을 한 푼도 축냄이 없이 고스란히 넘겨받은 것은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넘보지 못할 일이었네. 그러나 이 돈과 패물은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만 이 거관을 의롭게 쓸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야. 혹은 이 장물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는 의견들이 있을 수 있고, 흥부장과 내성장에 더 큰 어물 도가를 열거나 염전이나 고포의 곽전을 더 사들여 이문을 노리자는 말이 있을 수 있겠지 혹은 좀 더 두고 생각해보자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돈과 패물을 오래 간직하다보면 얼마 가지 못해서 이로 말미암아 환난을 겪게 될 것이야. 욕심이 생겨난다는 뜻일 테지. 곽전과 염전을 사들인다 하여도 종국에 가서는 네 것과 내 것을 따지게 될 것이야. 그러한즉슨 이 돈이 하루라도 빨리 우리 안중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 접소와 임소가 그동안 숱한 곡경을 치르고 풍진을 겪으면서도 거두어온 정리를 상하지 않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일 것이야.” 정한조의 말이 끝나자, 평소에는 말이 없던 최상주가 말했다. “염전을 사든 곽전을 사든 우리 동무들 공동의 이름으로 사들여 관리한다면 큰 말썽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이름을 걸고 재산을 사들여 화식하게 되면 필경 네 것과 내 것의 경계를 따지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필경 반목이 일어나 서로 의심하게 되고, 밸이 틀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헐뜯고 두 눈을 부릅떠 드잡이하며 능멸이 낭자할 것이오. 재물을 사더라도 최상주, 장안동과 같이 별호를 적바림 하여 사들인다면 우리가 곡기를 놓고 저승으로 가더라도 뒤탈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엄지머리로 장가를 들지 못해서 후손이 없지만, 일가친척은 있지 않겠습니까. 본명으로 재물을 얻고 화식한다면 우리가 저승살이를 간 이후에도 일가친척이 나서서 네 것이다 내 것이다 하는 반목과 곡경을 겪지 않을 터이지요.” 그렇게 말한 것은 도감으로 발탁된 천봉삼이었다. 그 말에 모두 솔깃해서인지 좌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박원산이 추임새를 주었다. “도감께서 한 말이 그중 귀에 솔깃합니다.” 결국 어떤 재산을 사들이든 우선 별호를 적바림하여 나중에 어느 누구라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장치를 하자는 데 우선 결의를 보았다. “그런데 이 돈과 패물이 지금 우리 접소에서 같이 기거하는 20여 명 아녀자들의 소유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돈이 장물이란 이름으로 둔갑하기 전까지 한때는 이들의 공동 소유라 했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 재물을 우리가 거두기 전까지는 이들도 이 장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 않았소.” “아니…… 도감 어른, 이 차판에 긁어 부스럼이 아닙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네. 그들이 내 것이라고 복장 지르고 나온다면 달래기가 수월찮을걸.” 권영동이 되받았다. “궤변이지요. 접장 어른이 슬하에 거두기 전까지는 저들은 소굴에 있던 적당이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네.” “일리가 있다니요?” “골자를 알고 보면, 그들도 적당이기 전에 자기 농토도 없어 유리걸식하던 농투성이들이었고, 우리처럼 사고무친한 노닥다리 세궁민이었고, 겨울이면 곁불 쬐고, 여름이면 남의 집 처마 밑에 떨고 서서 소나기를 피하던 적당의 차인꾼이 아니었나. 곡기를 끊고 죽어도 먼가래 쳐줄 사람조차 없는 딱하고 부질없는 처지들이 아닌가. 세상으로부터 외대를 당하며 장가처도 없이 부평초처럼 떠도는 우리 신세와 별반 틀리지 않은데, 역성들지 못할망정 우리가 방안에 앉아 그들을 허물 잡으면 날벼락 맞을 것이야.” “설마하니 장물을 그들에게 넘기자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저들에게도 살길을 터주고 사람됨의 명분을 안기자는 얘기일세.”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곰방대만 태우던 천봉삼이 가로막고 나섰다. “감히 시생이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모두 행낭 쌈지에 꿍쳐 놓은 밑천들 내놓으시지요. 100냥도 좋고 10냥도 좋고 1000냥도 좋습니다. 그 모은 돈을 되돌려받은 장물까지 섞어 중두리 속에 넣고 서너 번만 굴리면, 돈의 출처도, 장물이나 장물 아닌 것도, 네 돈 내 돈의 구분도 없어집니다. 그 돈을 챙겨 지금까지 둘러보고 점지해둔 생달과 오동나무골의 토지를 우리의 본명 아닌 별호나 익명으로 양안(量案)에 올립시다. 그처럼 여축 없이 결박을 해두면 투식(偸食)*을 일삼는 이서배들도 트집 잡아서 화속(火贖)*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수하에 거느린 식솔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게 적선하는 일일뿐더러 명분도 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처자식이 있습니까, 안부를 주고받는 일가친척이 있습니까, 재산을 물려줄 후손이 있습니까. 행담 짜던 늙은이는 죽을 때도 입에 댓잎을 물고 숨을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역시 열명길에 오를 때까지 십이령 고개를 소금 짐을 지며 오르내려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살맛이 나니까요. 사고무친한 우리가 열명길에 오르게 되면, 도조로 농사지어 먹고살게 된 저들이 우리 장례를 떡 벌어지게 치러줄 것이고, 기일이 되면 여축 없이 제사를 지내줄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의 영혼이 도솔천을 건너지 못하고 십수 년을 두고 구천에 떠도는 서러운 신세될 것 아니겠습니까.” *투식:공금이나 골곡을 도둑질함. *화속:대장에 오르지 않은 토지에 세금을 물리는 일.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배고령이 구월의 하초를 긴 팔로 덥석 잡아 끌어안으면서 입을 쩍 맞추고 한 손을 구월이 사추리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구월이가 배고령의 귀를 가만히 잡아당기면서 속삭였다. “오늘은 참으셔요.” “왜?” “달거리가 있습니다.” “달거리가 있다고? 아니… 개짐까지 차고 있네. 배태를 하였다는데 무슨 달거리가 있다고 둘러대나?” 구월이가 해쭉 웃더니 배고령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모두 술책이었지요. 이녁이 주선하는 대로 두었다간 혼례는커녕 부지하세월이 될 것 같아서 배태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엄니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지요.” “아니 자궁을 튼튼히 한답시고 장모가 감꼭지와 익모초를 구해다가 달이지 않았나?” “그 약탕기는 월이 아지마시가 배태하여 마실 상약이랍니다.” “어허…, 우리 내자 참도 기특하이. 내 혼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을 혼자 주선하지 않았나. 나는 못난이고 임자는 잘난이일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녀자가 제아무리 다부지다 한들 설한풍 쐬고 다니며 풍진을 겪는 남정네의 소견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어허…, 촌닭이 관청 개 눈 빼먹는다더니, 젊지도 않은 나이에 얻은 내 안해 구월이 다부진 말투 한 번 보게나….” “불을 끄시지요.” “그냥 둬. 내일 해가 뜰 때까지 어두운 밤을 밝히도록 그냥 두는 게 좋겠네. 때죽나무 열매로 얻은 이 밝은 빛이 찬물내기를 지나고 장평고개를 넘어 말래 접소까지 닿아 훤히 밝히도록 축수하세나.” 그로부터 달포가 지난 뒤였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허리에는 붉은 단풍이 걸리기 시작했다. 낙엽이 쌓여 가는 십이령 깊은 골짜기에는 흐르는 물소리 어느덧 청아하고, 신새벽이면 쌓여 가는 낙엽 위로 하얀 무서리가 내렸다. 옷소매로 스치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그 무렵 말래 접소의 동무들은 비지땀을 흘려 가며 옆도 돌아볼 겨를도 두지 않고 몸을 바쳐 내성으로 소금과 어물 짐을 날랐다. 흥부장 어물 도가는 이곳 출신 조기출을 포주인으로 앉히고, 그로 하여금 흥부장 시세를 무리 없이 관장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동안 양류밥을 먹으면서 빈둥거렸으나, 옛날처럼 글 읽는 선비로 돌아갈 엄두는 조금도 없던 조기출을 포주인으로 앉히었더니, 발걸음이 날아갈 듯하고 얼굴에 노골적으로 좋은 기색을 보이며 어물 도가를 잠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 모두가 말래 도방 동배간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들지 않았다면 기대할 수 없던 일이었다. 내성에서 안동 부중 부상들에 통문을 놓아 60여 명이 모여 도회를 열게 되었던 것도 그처럼 가을이 깊어 가던 10월 초순의 일이었다. 통문 발행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내성 임소에서 감당하였다. 예로부터 통문을 놓는 경우는 몇 가지 일로 제한했다. 국역(國役)이나 전쟁과 같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사역을 하기 위하여, 큰 산송(山訟)이 일어나 시비가 되었을 때, 보부상이 아내를 잃어버렸을 때, 저자에서 부상과 보상 간에 시비가 일어났을 때, 보부상과 관청 간에 시비가 일어났을 때만 사발통문을 돌려 도회를 가졌다. 만약 부상 중에 누군가 모욕을 당하면 그들은 동맹하여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 낼 때까지 그 고장에 모든 상품 공급과 거래를 끊었다. 사사로이 도회를 여는 것은 국금(國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경하할 일이나 보부상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공문제가 열리던 그날 내성장 임소에는 부상들을 제외한 200여 명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부상들의 합창 소리가 내성장 병문에 울려 퍼졌다. 성수 만세 성수 만세 오늘 장에 천냥이오. 아랫장에도 천냥이오. 한 달 육장 매장해도, 수천 냥씩 재수 봐요. 가는 길에 만냥이오, 오는 길에 만냥이오. 소금장수 등짐장수, 가는 곳마다 짭짤하네. 만세 만세 성수 만세, 좌사우사 여러분들, 오고 가는 험로에, 몸수 안녕하옵시고, 재수 대통하옵소서…. 그 도회에서 훼가출송되기만을 기다렸던 길세만이 무사타첩되었고, 천봉삼은 곽개천과 같이 도감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최상주(崔尙州), 박원산(朴元山), 권영동(權永東), 장안동(張安東), 송만기 같은 동무들이 모두 어엿한 공원으로 발탁이 되었다. 그 도회에서 배고령을 필두로 하여 몇몇 동무가 한동안 윤기호가 꿰차고 성세를 떨쳤던 어물 도가 포주인에 지명되었다. 문제는 그만한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자본이었다. 그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던 곳에서 해결되었다. 적당을 소탕하고 얻었던 장물을 단 한 푼의 축냄도 없이 되돌려 받았기 때문이다. 반수 권재만이 두 달포 가까이 안동 부중에 탄원을 넣어 얻어 낸 결과였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유숙할 객주 치기를 내키지 않아 하는 늙은 주모를 다독거려 어렵사리 봉노로 찾아들었다. 혹여 적굴 사람이거나 무전취식을 일삼는 무뢰배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에 봉노 내주기가 썩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깔아둔 멍석 틈새와 목침 속에 창궐하던 물것들에 뜯기다 못한 세 사람은 마당에 있는 살평상 위로 잠자리를 옮기고 모깃불을 피웠다. 천생 말뚝잠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잔뜩 흐려서 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천봉삼이 말했다. “생달 사기점을 드나든다는 동무들에게 들었던 말과는 생판 다르오.” “그들도 지레 겁먹고 도래기재로 내왕하고 있을 테지요.” “적당들도 당장 눈치채고 도래기재로 소굴을 차린다는 생각은 못했을까…. 협기만 있다면 궐놈들과 대치하여 소탕할 수도 있을 텐데….” “그 동무들… 입성은 말쑥하고 언변도 젊잖았으나 결기나 배짱은 없어 보입디다. 부상들 가운데 용맹도 절륜하고 기개도 놀라워 협객의 기풍이 있다는 동무들을 흔하게 볼 수야 없겠지요.” “협객이 있다 할지라도 선달산과 옥돌봉 능선이 동서로 가로막고, 북쪽으로만 골짜기가 트여 있어서 적굴 놈들 네댓이 북쪽 골짜기에 있는 잔도만 가로막으면 생달은 독 안에 든 쥐요.” “그러나 북쪽에 구애가 없다면 내성이나 울진에서 영월 태백으로 가는 길은 도래기재를 넘는 노정보다 하루 반 노정 줄이기는 수월하지요. 그로써 경상도 내륙과 강원도 내륙 사이의 상로를 온전하게 유지한다면 큰 이문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장담한 것은 천봉삼이었다. 곽개천이 거들었다. “서쪽으로는 충청도 영춘장까지는 고개가 많긴 하지만 120여 리, 영월 땅까지는 줄잡아 100리 상거겠으니 장정 걸음으로 이틀 노정이면 더 갈 곳이 없고, 내성까지는 옥돌봉 넘어 서벽을 지나 40리 상거에 불과하오.” “접장께서 소굴에서 데리고 나온 노인네들과 아녀자들을 멀리 내쫓지 않고, 왜 이제까지 양류밥을 먹이고 있는지 그 속내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곽개천이 그 말을 받아서, “시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요.” 천봉삼은 덩달아 잠을 청하지 못하고 불당그래로 살평상 옆에 피워둔 모깃불을 뒤지는 주모를 살평상 모서리에 불러 앉히고 물었다. “생달에 원래 길손들을 바라고 숫막을 연 집이 몇이었소?” “네댓 집 되었지요. 그땐 생달이 유숙하는 길손들과 등짐장수들로 제법 붐볐더랍니다.” “지금은 몇 가호나 살고 있소?” “10여 호 됩니다. 천봉답에 피 농사나 짓고 근근이 연명하고 있지요.” “사기점은 여기서 초간하오?” “오전 약수터 못미처에 있습니다만, 요즘은 등짐장수들의 출입이 뜸해지고 숫막도 덩달아 한 시절 가고 말았지요.” 달게 자기는커녕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등걸잠으로 조리를 친 일행은 하루종일 옥돌봉과 문수산과 박달재를 비롯하여 생달의 사기점까지 둘러보았다. 그리고 하룻밤을 더 묵고 내성으로 회정하였다. 물론 그때까지도 임소에는 반수 권재만의 소식이 당도하지 않고 있었다. 소식 늦은 것이 장차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알 수 없었으나, 서둘러 십이령을 넘어 말래 접소로 회정하였다. 일행이 내성 발행하여 가풀막진 모래재 초입으로 들어설 즈음, 배고령에게서 배웠다는 길세만의 타령이 들려왔다. 미역 소금 어물 짐 지고 내성장을 언제 가노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흥부장을 언제 가노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서울 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오고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 15일 육영수 여사 추도식

    고 육영수 여사의 39주기 추도식이 15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묘소에서 ‘재단법인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된다고 국립서울현충원이 14일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유가족과 정관계 인사, 추도객 등 7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과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않는다. 육 여사는 육영재단 설립, 어린이회관 건립, 소년소녀 잡지 ‘어깨동무’ 발간 등을 통한 육영사업과 한센병 환자의 자활 지원, 정수직업훈련원 설립 등 각종 사회 활동을 펼쳤다. 1925년 11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했으며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서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정부, 대북지원단체 2곳 모니터링 방북 허가

    대북 지원 물품 모니터링(분배감시)을 위해 오는 17일 민간 단체인 ‘어린이어깨동무’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방북한다. 통일부는 13일 “민간단체 3곳으로부터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 신청이 들어왔고, 이 중 2개 단체의 방북을 승인했다”며 “금주 중 남은 한 곳의 방북을 승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민간인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이외의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으로, 1년 가까이 제한된 인도적 차원의 방북과 민간 교류 재개의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들 단체는 14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평양으로 들어간 뒤 각각 남포와 평양에서 지원 물품 분배 상황을 살펴볼 계획이다. 어린이어깨동무는 8명,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10명이 방북한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지난달 29일 정부의 대북지원 승인에 따라 남포 소재 소아병원과 고아원에 1억 4600만원 상당의 밀가루와 분유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평양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 항생제와 소염제 등 2억 2300만원 상당의 의약품을 지원했다. 두 단체와 함께 방북을 신청한 ‘민족사랑나눔’은 신의주로 향할 예정이며, 정부와 방북 일자를 협의하고 있다. 이 밖에 지난달 대북지원 승인을 받은 단체 5곳 중 2곳은 해외 동포가 모니터링을 위해 방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해외 동포의 방북은 정부 승인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간 단체의 방북은 지난해 11월 17일 평양 장충성당 미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평화3000’이 마지막이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시생이 임소의 도회에서 접장에 천거되었다는 소식은 어찌 들으셨소?” “질청의 구실살이들과 상종이 잦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오늘밤 주과를 차려 모신 것도 경하할 일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도둑의 수괴와 동행이었다는 분은 사유(赦宥)를 받았습니까?” “모르는 게 없구려…. 반죽 좋은 그 사람도 치도곤이 무서워 손톱여물을 썰고 있소. 시생 역시 그 동무 꼭뒤잡이되어 접소에서 배송*될까 조마조마해서 그동안 덩달아 달게 자고 일어난 적이 없소. 밤마다 쪽잠에 조리를 치고 나니, 고뿔이 오려 하오. 그 동무나 시생이나 주제가 사납게 되었지요. 그 동무가 징치를 받게 되고 시생이 접장이 되면 무슨 비위짱으로 행세를 하겠소.” “모처럼 쇤네의 집에 침석을 마련하였으니, 하룻밤이나마 편히 쉬고 가십시오.” 향임의 말에 적지 않게 놀랐으나,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접소에서는 한저녁에 몰래 빠져나왔으니 동무들은 야경벌이* 나간 줄 알겠소.” “기방에서 몰래 침석을 하신다면, 야경벌이나 다름없겠지요.” 정한조는 입귀가 돌아가도록 웃고 나서, 향임이 쳐 주는 술잔을 받았다.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아간 뒤 궐녀는 주안상 가까이 두었던 등잔을 등 뒤로 두어 발짝 멀리 옮겨 놓았다. 주안상 근처는 어두워진 가운데 지분 냄새는 더욱 코끝에 사무치고, 등 뒤로부터 비치는 불빛으로 말미암아 풀 먹여 다려 입은 모시 적삼 속으로 궐녀의 부드럽고 흰 이목구비가 아련하게 드러났다. 주전자를 들어 올릴 때마다 궐녀의 젖가슴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였다. 몸가축을 알뜰히 가꾸었다는 증거였다. 익은 술냄새와 가슴까지 적시고 드는 지분 냄새가 서로 어울려 방 안의 분위기는 술잔에 미약(媚藥)을 푼 것처럼 금세 농밀하게 익어 갔다. 밤은 저절로 두어도 깊어 가는 법, 향임이 말대로 두 사람 모두 의지할 곳 마땅치 못하고 또한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외로운 처지들이었다. 어느덧 술 따르는 소리가 밤새 우는 소리처럼 살갑게 들릴 무렵,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등메 위로 코를 박고 비스듬히 누워 버렸다. 향임이가 다가와 베개를 받쳐 주는 것을 알아챈 정한조가 두 팔을 크게 벌려 향임이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옷이 구겨지십니다.” “그깐 소금장수 베잠방이 구겨져서 걸레가 된들 대수겠소.” “입성이 사나우시면, 체통도 구겨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향임이가 다가와 정한조의 옹구바지와 홑저고리를 벗겨 횃대에 걸어 주었다. 그는 그런대로 몸을 맡겨 두고 있었다. 취기가 도도하여 부끄러움은 저만치 달아나고 건장한 한 사내의 땀투성이가 된 허우대가 등메 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향임이는 함지박에 물을 떠와 사내의 몸에 밴 땀을 알뜰하게 씻어 주고 주안상을 수습한 다음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때 문득 궐녀의 뇌리를 스쳐 가는 상념이 있었다. 소년의 나이에 기적에 올라 관기로 처신하는 동안 관원이나 하나같이 어투가 도저한 양반의 수청 기생 노릇으로 면박이나 당하면서 그들에게 하기 싫은 화수(和酬) 먹이를 주고받거나 아니면 육허기나 풀어 주는 노리개가 되어 왔었다. 그러나 소금장수와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있는 이 순간만은 오랫동안 겪어 온 그런 수치심에서 완전하게 일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한 계집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다시 태어난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궐녀는 사내의 큰 가슴에 손을 얹고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손바닥으로 사내의 풋풋한 기운이 뜨겁게 전달되었다. 그 손을 사내가 잡아 이끌어 배꼽으로 가져갔다. 모잽이로 누운 계집의 다른 한 손은 어느새 사내의 불두덩 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윽고 두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고 등메 위를 한 바퀴 휘그르르 돌아감에 계집은 아래에 있고 사내는 위로 올랐다. 숨가쁜 소리가 오가고 난 뒤 계집에 주렸던 사내의 살송곳이 계집의 익혈을 향하여 맨땅에 송곳 박히듯 옹골지고 힘차게 내리박혔다. 사내의 하초에서 참기름 병마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메기 잔등으로 가물치 넘어가듯 미끌 하는 느낌이 들면서 계집의 감창소리가 입술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연거푸 이합을 치르고 나자 색에 주려 왔다고는 하나, 어진혼이 나간 듯 생게망게하여 깜깜한 밤인데도 한동안은 눈앞에서 북두칠성이 왔다 갔다 하였다. 계집은 사내의 겨드랑이 아래에서 물고를 뽑은 듯한 살송곳을 잡고 누워 좀처럼 비켜나지 않았다. 그리고 가풀막진 사내의 거웃을 오랫동안 어루만지며 채근하고 있었다. “오얏꽃* 주제인 쇤네가 언감생심 초례청을 차리자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간혹 쇤네의 누추한 와실을 찾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명색이 접장이 되었다 하나, 하찮은 소금장수에 무지한 밥쇠일 뿐이오.” “취하신 줄 알았더니, 멀쩡하시네요.” “잠자리를 같이하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소.” “말래 접소에 머무실 동안 말미를 내어 간혹 쇤네를 찾아 주시겠습니까? 은행나무 열매는 새가 먹지 않는답니다.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길가에 잠시 피었다가 지고 있는 오얏꽃이라 하나 은행나무 열매처럼 독은 없으니 자주 찾아 주십시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 오거든 고개 돌리고 외대나 마시오.” *배송: ‘쫓아내다’의 곁말 *야경벌이: 도둑질 *오얏꽃: 기생의 곁말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숨이 막힐 정도로 치를 떨던 월천댁은 울다 말고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정주간 뒤쪽에 있는 부엌 봉노로 내달았다. 애매한 구월이를 아주 요절낼 작심하고 지겟문을 돌쩌귀가 나가떨어져라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나 죽여주십사 하고 엎드려 있어야 할 구월이는 봉노에 없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챈 구월이는 진작부터 어디론가 피신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뒷덜미를 잡아채서 패대기를 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던 월천댁은 구월이가 보이지 않자 그만 어진혼이 빠져 불당그래와 삭정이들이 널려 있는 정주 바닥에 넉장거리하고 드러누워버렸다. “주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정주 바닥에서 넉장거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풀어헤쳤던 젖무덤을 서둘러 수습한 만기가 허둥지둥 달려와서 손사래치며 앙탈하는 월천댁을 곁부축해서 가까스로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억장이 무너져 눈앞에서 헛것만 오락가락하는 궐녀는 곧장 만기를 뿌리치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울타리 밖으로 내달았다. 손바닥 같은 숫막거리라 할지라도 가뭇없이 숨으려는 구월의 처지와 그를 찾아 헤매는 월천댁의 처지는 사뭇 다른 법, 눈을 화등잔같이 뜨고 화냥년 보리방아 찧듯 두서없이 허둥지둥 소생의 거처를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북새통을 피우며 발서슴하고 다니던 중에 어느덧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심사도 얼추 가라앉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까닭이 모두 제 못난 탓이었다는 생각을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만기를 남장 계집인 줄 모르고 김칫국을 떠먹은 불찰은 따지고 보면, 누워서 침 뱉기요, 똬리로 샅 가리기였다. 이렇게 날뛰는 단초가 모두 월천댁인 자기 실수였지, 구월의 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처럼 황당하고 뒤틀린 심사를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혈육인 구월이뿐이었기에 이런 소동을 벌인 것이 아닌가. 굽도 젖도 못하고 월천댁 숫막 툇마루에 앉아 있던 만기는 나무 비녀에 쪽진머리가 봉두난발이 되어 집으로 들어서는 월천댁을 우두망찰하고 있었다. 구월이를 찾아내지 못한 앙갚음으로 만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뒤틀어잡고 앙탈을 부리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넋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지는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만기에게 힐끗 일별을 보내면서 월천댁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육실할 년이 어디 숨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나.” 일테면 뒤틀린 심사가 원망 반 걱정 반으로 바뀐 셈이었다. 궐녀는 툇마루 끝자리에 풀썩 엉덩이를 걸치면서 뇌까렸다. “이년 내 눈앞에 보이기만 해봐라…… 등에서 누린내가 나도록 패주고 다리몽생이를 싹둑 분질러서 문밖 출입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니……” 만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토록 모진 악담을 퍼붓는 월천댁이 구월이가 나이로 치면 삼촌뻘인 배고령과 정분을 터왔고 그로 말미암아 배태까지 했다고 직토를 해버린다면 어떤 몰골이 될까. 평소에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의 개똥도 줍지 않을 만치 소슬하게 살아왔다는 월천댁이 그 말을 듣게 되면 또다시 기절초풍을 하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될지라도 부리를 헌 김에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까지 직토를 해버려야 죽든 살든 양단간에 결말이 날 것이었다. 속으로 주저주저하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까치 두 마리가 맞은편 소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숫막을 향해 지악스럽게 짖어댔다. 이상하게 까치들은 항상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굴었다. 짖는 소리가 애간장을 긁어대듯이 거슬렸던 월천댁이 마당가의 돌멩이를 집어들고 까치들을 향해 팔매질을 하면서 걸찍하게 악담을 퍼부었다. “이놈의 새끼들…… 여동밥을 처먹지 못해 환장을 했나, 남의 복장 지르려고 몸 닳게 짖어대나.” 얼혼이 나가서 전전긍긍하는 월천댁을 가까스로 달래서 툇마루에 주질러앉힌 다음, 덩달아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엄벙덤벙하고 있는 늙은 중노미를 불러 물 한 사발을 떠오게 하였다. 그리고 소뿔은 단김에 빼더란 말이 있듯이 나중엔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내친김에 속내에 있던 말을 들이대고 말았다. “구월이를 얼른 혼례 치러주는 게 순서입니다. 이제 서둘러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요.” “혼례를 치를 때가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여? 비 오는 날 똥장군을 지고 밭두렁 비탈길을 걸으라면 걸을까 그건 못해.”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만기가 쐐기를 박았다. “무하고 여자는 바람 들면 못 쓴다는 말 듣지도 못했소? 이팔의 나이를 훌쩍 넘긴 처자가 배태를 하였다면, 삼이웃에 소문이 낭자하기 전에 냉큼 초례청을 차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아니, 구월이가 배태하였다고? 누가 그런 날벼락 맞을 말을 해?” “누가 그러는 게 아니라, 그거야 구월이 불러 물어보면 알 테지요. 등잔 밑이 어둡더라고 우리 상단 동무들은 모두가 눈치챈 일을 정작 어미가 모르고 있었구려.” “아이고 내 팔자야…… 개살구 지레 터진다더니 이 산중에 처박혀 사는 년이 바로 그 짝 났네. 내가 살아도 못 살어…… 나이 쉰이 다 되도록 딸자식 하나만 바라보며 애면글면 모든 고초를 참아왔는데, 종국에는 까막까치도 찾아와서 못난 어미 보고 짖게 되었구려. 내가 자문이라도 해야 분풀이가 되지 않겠소. 세상에 이런 봉변이 어디 있소.” “그러니까 동네방네 요상한 소문 퍼지기 전에 혼례를 치러주자고 도감 어른께서 말씀을 하시어 시생이 허둥지둥 찾아온 것입니다.” “도감 어른께서? 도대체 어느 놈이 금지옥엽인 내 딸에게 배태를 시켜 남의 애간장을 끓인단 말이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수정암 마룻장을 뜯고 찾아낸 장물의 물목단자에는 그동안 십이령을 넘나들던 어물 상단과 길손들이 적당에게 탈취당했던 엄청난 전대와 패물의 알천들이 일목요연하게 적바림되어 있었다. 당백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은장도(銀粧刀)와 석장도(錫粧刀), 은항장도(銀項粧刀), 칼자루, 피도갑(皮刀匣), 밀화(密花), 산호(珊瑚), 호박(琥珀), 진옥(眞玉)과 같이 어물 상단으로는 눈요기도 어려웠던 진귀한 보석들이었다. 값어치로 따지면 기천 냥을 헤아릴 만하여 과연 십이령의 험로를 넘나들던 상단의 복물짐이나 길손들의 봇짐을 가차없이 탈취한 적당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들 상단으로선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자들도 있었다. 그런 물목단자를 앞에 두고 속내가 달라진 접소 동무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장물들 대부분이 우리 상단을 은사죽음시키고 탈취한 물화들이니 임소의 하회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응당 우리들의 차지가 되어야 합니다.” “장물은 그동안 적변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버린 동무들의 친인척을 찾아내어 돌려주어야 후환이 없습니다.” “그 말도 온당하나 그동안 죽음을 당한 동무들 거개가 고향이 어느 고을 어느 골짜기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지 않나. 여기 모여 앉아 있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지만, 십중팔구 사고무친한 미장가 엄지머리에 오쟁이 진 홀애비 처지들이라, 그동안 장례며 면례(緬禮)조차 우리 임소 동무들이 십시일반해서 치러주지 않았나. 혹여 망자의 안태고향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십중팔구 가숙이라 할 만한 계집사람이나 내지른 소생도 없어서 생시 때 초인사는 물론이고, 안면조차 트지 않았던 사돈의 팔촌들만 움 안에서 떡 받기 십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물화들을 관아에 고스란히 갖다바쳐야 하나?” “그건 게걸들린 길청의 이서배 놈들에게 이것 갖다가 한입에 꿀꺽 삼키시오 하고 턱밑에 들이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야.” “설마하니, 몽땅 털어 삼킬까.” “그놈들 목구멍은 호랑이 목구멍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임자가 몰라서 그러나? 구실살이들이 월름(月?)이 없는 까닭이 나변에 있나? 그렇게 임자 없이 굴러온 물화를 거두어 치부하라고 월름을 두지 않았던 것이야. 여북했으면 호랑이 아가리란 별호가 붙었겠나. 우리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적굴을 소탕하고 건진 거관(巨款)을 입맛 다시는 데 이골 난 길청의 이서배 놈들 썩은 뱃속에 채워줄 까닭은 없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일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 접소에서 거둬들여야 할 장물일세.” 행중 식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가운데, 곰방대를 빼물고 천장만 쳐다보고 앉았던 정한조가 시끌시끌하던 좌중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가만히 일렀다. “그 장물의 물목단자는 이미 임소에 보장을 띄웠으니, 우리가 접소에 앉아서 가지자 말자 하고 떠들어댈 처지가 아닐세. 견물생심이라 해서 그만한 거관에 이르는 장물을 취득하였다면 나랏님이라도 거두어서 내탕금으로 쓰고 싶은 심정일 것이야. 나 또한 욕심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네. 그러나 장물로 말미암아 해로동혈하자는 접소의 동무들끼리 의견이 분분하고 종국에 가서는 좋은 의초들이 상해 서로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이 오갈까 해서 부랴부랴 임소에 보장을 접수시키지 않았겠나. 그로써 그 장물은 좋든 싫든 이미 우리 손에서 떠난 셈일세. 임소에서 작정하신 대로 우리 접소로 되돌려준다면, 그때 우리 임의대로 처분할 것이고 아니면 임소나 관아에서 처분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도리일세. 우리가 처음 적당을 소탕하고자 결의하고 나섰을 때, 저들의 장물을 거두고자 발기한 것은 아니지 않나. 다만 십이령 고갯길에 적당이 창궐하여 그 폐해가 막심해 그것을 정습시켜 우리들 상로의 안녕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었나. 그러기에 장물을 가지고 말들이 많은 것은 우리의 체면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일이며, 누워서 침 뱉기일세. 모두 자숙들 하게나.” 본심은 한결같이 충직한 사람들이라, 정한조의 한마디에 좌중이 잠잠해졌다. 정한조는 일행의 심사가 그동안 치러진 일들로 몹시 들떠 있고, 장물에 대한 미련도 말끔히 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들떠 있는 심지들을 쓰다듬고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이렇다 할 묘책이 나서지 않아 전전긍긍이었다. 사로잡은 적당의 수괴는 임방의 처분에 따라 안동 부중으로 압송하여 짐을 덜었으나, 그와 더불어 길세만을 징치하라는 하회가 떨어질까 해서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모처럼 조기출, 천봉삼과 정담을 벌여보았다. 긴 논의 끝에 천봉삼이 내놓은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우선 송만기를 샛재의 월천댁에게 보냈다. 송만기로 하여금 자신의 본색을 토로하여 월천댁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월천댁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곁에 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침착했던 월천댁은 송만기가 부풀어 오른 젖무덤을 숨기려고 가슴을 감싸고 있던 무명 자투리를 풀어 보이자, 그만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송만기가 남장한 계집일까 해서 사뭇 곧이듣지 않다가 오목 주발을 엎어놓은 듯한 만기의 푸짐한 젖가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만기의 실체를 차마 보고 싶지 않아 일변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 가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보고 또 보다가 그만 염치불구하고 곡지통을 내쏟고 말았다. 간혹 젊고 모색도 반반하게 생긴 보상들이 통행에 구애를 받거나 험상궂은 부상들이 뒤따라다니며 지분거릴까 해서 남장을 하고 다니는 경우는 있었으나, 소금이나 어물 짐을 지고 험로를 넘나드는 부상이 남장을 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