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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각제거론 아직은 이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7일 내각제 개헌 시기조정론을 제기하고,朴泰俊자민련총재가 외신과의 회견에서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해 정치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공동여당 단독으로 열고 있는 경제청문회에 한나라당이 참여토록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져 있는 마당에 내각제 개헌 논의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가뜩이나 경제난과 실업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와대쪽이 “내각제 개헌은 반드시 추진할 것이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고 시기조정론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15일 자민련의 대전 신년교례회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마치 ‘내각제추진 발대식’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이같은 발언은 내각제 논의가 확산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놓고 공동여당간에 갈등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아 무척 염려스럽다.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는 것이다.공동여당간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게 되면정국에 또하나의 불안요인을 보태게 되기 때문이다.金大中대통령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전제 아래 내각제 개헌문제를 金鍾泌총리와 무릎을 맞대고 의논하겠다고 국민 앞에 공언해둔 상황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각제 개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직은 빠르다는 게우리의 생각이다.굳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6·25동란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당했다.지난 10개월 동안 정부와 국민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위기를 겨우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미 170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고 앞으로도 구조조정의 가속화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판이다.실업문제 해결이 초미의 관심사다.게다가 공공부문의 개혁과 구조조정도 화급한 과제다.정치문제에 휘둘려 구조조정과 개혁이 중동무이로 주저앉게 되면 경제회생은 어렵다.지금까지 정부가 IMF사태에 비교적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여당간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만에 하나 개헌문제로 공동여당간에 조금이라도 금이 간다면 공동정권의 에너지를 분산,소진시켜 또다른 국가적 재난을 불러올 수도 있다.개헌문제를 거론하는 시점을 포함해서 모든 문제를 대통령과 총리간의 ‘허심탄회한 논의’에 맡겨두고 공동여당은 긴밀한 협조 속에 경제회생에 전념해주기 바란다.
  • ’99학년도 서강대 논술고사 문제

    다음 제시문은 루신(魯迅)의 ‘아Q정전(阿Q正傳)’에서 발췌한 것이다.주인공의 사고와 행동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기술하고,이를 통해 인간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존재로서의 진실한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논술하라. (가)아Q가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다 입 밖으로 말했기때문에 아Q를 놀리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정신적인 승리법이 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그 뒤로는 그의 노란 변발을 잡아챌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아Q,이건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게 아니라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네 입으로 말해봐.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아Q는 두 손으로 자신의 변발 밑동을 움켜잡고 머리를 비틀면서 말했다. “벌레를 때린다.됐지? 나는 벌레 같은 놈이다…이제 놔 줘!” 벌레가 되었어도 건달들은 놓아주지 않았다.전과 똑같이 가까운 아무데나 그의 머리를 대여섯번 소리나게 짓찧었고,그런 뒤에야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그들은 이번에는 아Q도 꼼짝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십초도 지나지 않아 아Q도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그는 자기가 자기 경멸을 잘하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했다.‘자기 경멸’이라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제일인자’이다. 장원(壯元)도 ‘제일인자’가 아닌가? “네까짓 것들이 뭐가 잘났냐!?” 아Q는 이처럼 여러가지 묘법을 써서 적을 극복한 뒤에는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 술을 몇잔 마시고 또다른 사람들과 한바탕 시시덕거리고 한바탕 입씨름을 하여 또 승리를 얻고,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잠이 들었다.돈이 생기면 그는 야바위노름을 하러 갔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아Q는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속으로 끼어들었다.목소리는 그가제일 컸다. “청룡(靑龍)에 사백!” “자― 열어요― 얏!” 물주가 상자 뚜껑을 열고서 역시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읊어댔다.“천문(天門)이군요―0 각(角)은 텄고요― 인(人)이랑 천당(穿堂)은아무도 안 걸었고요―! 아Q 돈은 가져오고요―!”“천당에 백― 백오십!” 아Q의 돈은 이렇게 노래를 읊는사이에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옮겨갔다. 그는 결국 거기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뒤쪽에 서서 구경하며 자리가 파할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를 태우고 그런 뒤에 못내 아쉬워하며 사당으로돌아갔고,다음날에는 눈이 부은채 일하러 갔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인 것인지,아Q는 불행히도 딱 한번 이기기는 했는데 도리어 더 낭패를 보았다. 그것은 웨이주앙(未莊)에서 마을 제사를 지내는 날 밤이었다.그날 밤에는관례대로 연극을 했는데,무대 왼쪽에서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노름판이 잔뜩 벌어졌다.연극판의 징소리와 북소리가 아Q의 귀에는 십리 바깥에서 나는것 같았고 아Q에게 들리는 것은 오직 물주의 노랫소리 뿐이었다.그는 따고또 땄다.동전이 작은 은전으로 바뀌었고,작은 은전이 큰 은전으로 바뀌었으며,나중에는 큰 은전이 두둑이 쌓였다.그는 대단히 신바람이 났다. “천문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는지 그는 몰랐다.욕하는 소리,때리는 소리,발걸음 소리,뭐가 뭔지 알수 없는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그가 간신히 일어나보니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으며,몸이 여기저기 아픈 걸로 보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몇번 당한 것 같았다.몇몇 사람들이 이상스러워하며 그를 쳐다 보았다.그는 넋을 잃고 사당으로 돌아왔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기의 은전 뭉치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제삿날 벌어지는 노름판은 대부분 이 마을사람들이 아니니 어디 가서 재산을 찾는단 말인가.하얗게 반짝이는 은전더미! 더구나 자기 것이었는데,지금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자식이 가져간 셈치자고 해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자기를 벌레라고해 보아도 역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그는이번에도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놓았다.그는 오른손을 들어 자기뺨을 힘껏 연달아 두번 때렸다.얼얼하게 아팠다.때리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때린 것이 자기라면 맞은 것은 또 하나의 자기인 것 같았고,잠시 후에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았으므로… 비록 아직도 얼얼하기는 했지만… 만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웠다.그는 잠이 들었다. (나)아Q의 귀에도 혁명당이라는 말은 진작부터 들려오던 터였고,올해는 혁명당을 죽이는 것을 제 눈으로 구경하기도 했었다.그런데 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혁명당은 곧 반역이며 반역은 곧 자기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껏 ‘깊이 증오하고 극히원통’해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이 백리 사방에 이름이 높은 거인(擧人)어른을 그토록 겁먹게 하였으니,그는 자기도 모르게 ‘동경’을 품게 되었고,더구나 웨이주앙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에 아Q는 더욱 유쾌해졌다. “혁명도 좋은 거구나”라고 아Q는 생각했다.“그 개같은 놈들을 혁명해 버리자.혐오스러운 놈들! 가증스러운 놈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항복해야지” 아Q는 요즈음 돈이 궁해서 아마 다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더구나 빈속에 낮술을 두 잔 마셨는지라 더욱 빨리 취해서 한편으로 생각하고 한편으로 걷다 보니 다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어찌 된 것인지 갑자기 자기가혁명당이고 웨이주앙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포로인것 같았다.그는 득의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떠들었다. “반역이다! 반역이다!” 웨이주앙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불쌍한 눈빛은 아Q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자 그는 유월에 빙수를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그는 더욱 신이 나서 걸어가면서 고함을 질렀다. “좋아… 원하는 것 은 전부 다 내 것, 마음에 드는 여자도 전부 다 내 것.뚜뚜,창창!후회한들 어쩌리,술김에 잘못 알고 쩡 아우들 목을 쳤네.후회한들 어쩌리,아아아… 뚜뚜,창창,뚜,챙그랑창! 내 손은 쇠채찍을 들어 너를 때린다…” 짜오씨 댁의 남자 두 분과 두 사람의 친척이 대문 앞에 서서 혁명을 논하고 있었는데 아Q는 그것도 보지 못하고 머리를 꼿꼿이 쳐든 채 노래를 하면서 지나쳐갔다. “뚜뚜…” “라오Q(老Q)” 짜오 노어른이 겁먹은 태도로 맞이하면서 낮은소리로 불렀다. “창창” 아Q는 자기 이름에 ‘라오(老)’자가 붙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므로 자기하고는 무관한 다른 말이려니 여기고 노래만 불렀다.“뚜,창.챙그랑창,창!”“라오Q”“후회한들 어쩌리…”“아Q!” 수재가 할 수없이 직접 그의 이름을 불렀다.아Q는 그제야 멈춰서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뭐요?”“라오Q… 요즘…” 짜오 노어른은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요즘… 벌이가 좋은가?”“벌이가 좋냐구요? 물론이죠. 원하는 것은 전부…” “아…Q형,우리같이 가난한 동무들은 괜찮겠죠…” 짜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는데,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것 같았다. “가난한 동무들? 당신은 나보다 돈이 많잖아”라고 말하면서 아Q는 가 버렸다. 사람들은 낙심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짜오 노어른 부자는 집으로 돌아가 밤에 등불을 켤 때까지 의논했다.자오바이옌은 집으로 돌아가 허리춤에서 전대를 끌러내려 자기 처에게 주면서 상자 밑에 숨겨 놓으라고 했다. (다)반역이라? 재미있구나…. 하얀 투구에 하얀 갑옷의 혁명당이 온다.청룡도에 쇠채찍,폭탄,총,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구겸창(鉤鎌槍)을 들고서 사당 앞을 지나가며 부른다.‘아Q’같이 가세 같이 가! 그래서 같이 간다…. 그때가 되면 웨이주앙 사람들은 꼴 좋겠지.무릎을 끓고 부르겠지,‘아Q,살려줘!’ 누가 들어준대? 제일 먼저 죽여야 하는건 샤오디와 짜오 노어론이야,그리고 수재도,그리고 가짜 양놈도…. 몇 놈이나 남겨둘까? 왕 털보는 원래 남겨둬도 되겠지만 그래도 안돼…. 물건은,곧장 들어가서 상자를 열면 원보(元寶: 은으로 말굽 모양같이 만든화폐)에 은화,옥양목 셔츠…. 수재 마누라의 영파(寧波)침대부터 사당으로옮기고,그밖에 치앤씨 댁의 탁자랑 의자를 놓고.아니 짜오씨 댁 것을 쓰자.나는 손대지 말고 샤오디를 시켜 옮기자,빨리 옮겨야지 안 그러면 따귀를 때릴 테다. 짜오쓰천의 누이동생은 너무 못생겼어.쪼우치댁의 딸은 젖비린내 나고.가짜양놈의 마누라는 변발도 없는 남자랑 잤으니.흥,좋은 물건이 아냐! 수재 마누라는 눈꺼풀에 흉터가 있지.우마는 못본지 오래 됐는데 어디 있나 몰라.아깝게도 발이 너무 크지.아Q는 미처 생각을 매듭짓기도 전에 벌써 코를 골았다.넉냥짜리 초는 아직 반치도 채 타지 않았고 붉은 빛이 그의 벌려진 입을비추었다. “어어!” 아Q는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들어 황망히 사방을 둘러보더니 넉냥자리 초가 보이자 다시 머리를 처박고서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그가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거리로 나가 살펴보니 모든 것이 다 전과 똑같았다.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고,생각해보려 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았고,느릿느릿 걸음을옮기다 보니자기도 모르게 정수암(靜修庵)에 도착했다. 암자는 봄에도 그랬던 것처럼 고요했으며 흰 벽에 검은 문이었다.그가 잠시 생각해보다가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자 개가 안에서 짖었다.그는 급히 벽돌조각을 몇개 집어들고서 다시 좀더 힘껏 두드렸다.검은 문에 곰보 자국이 숱하게 생기고 나서야 누군가 문을 열기 위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Q는 얼른 벽돌 조각을 움켜쥐고 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검은 개와 싸울준비를 했다.그러나 암자 문이 빠끔이 열렸을 뿐 검은 개는 뛰쳐나오지 않았다.들여다보니 늙은 비구니 한사람만 있었다. “자네 왜 또 왔나?” 그녀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혁명하려고요….알아요?…” 아Q는 아주 모호하게 말했다. “혁명 혁명,벌써 혁명했잖아”“자네들이 우리를 어떻게 혁명한다는 거야?” 늙은 비구니가 두눈을 붉히며 말했다. “뭐라고요?” 아Q는 의아했다. “그 수재하고 가짜 양놈이!” 아Q는 너무 뜻밖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대경실색을 했다.늙은 비구니는 그의 예기(銳氣)가 사라진 것을 보자 날쌔게 문을 닫았다.아Q가 다시 밀어보았지만 꿈쩍도하지 않았고 다시 두드려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 평화봉사단 ‘제2의 전성기’

    │워싱턴 외신종합│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 다시 옛 전성기를 되 찾게 됐다. ‘미국 문화와 가치의 전도사’로 불리는 평화봉사단은 4일 올해 4,000명의 단원을 모집한다고 발표했다.74년 이후 25년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현재 80개국에서 활동중인 6,000명 단원중 절반이 올해로 2년간의 임기를 마치게 된 데 따른 것으로 계획대로라면 연말에는 7,100여명이 된다. 이같은 대폭 증원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98년 연두교서에서 평화봉사단원 1 만명 모집계획을 밝히고 의회에 20% 예산증액을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이미 2억4,000만달러가 확보됐다. 평화봉사단의 마크 기어런 단장은 단원의 97%가 대졸자이고 15%는 석사 이 상 학위 소지자라고 밝혔다.단원들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위스콘신, 하버드 등 명문대 출신이 대부분이다.평균 연령은 28세.올해는 50세가 넘는 단원도 전체 모집인원의 8%가량인 320여명을 선발한다. 평화봉사단은 61년 정부 산하기구로 창설,38년 동안 120개국에 15만명이 파 견돼 의료봉사,영어교육,영농지원을 벌이며미국 문화와 가치를 전파하고 친 미 성향을 심어왔다. 90년대 들어 평화봉사단원들은 환경보호,중소기업 개발지원,자연재해 대비 활동 등도 벌이고 있으며 활동무대를 동구권으로 확대하고 있다. 60년대 대원이 1만명이 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가 80년대 제3세계의 반미 감정 고조로 움츠러들었던 평화봉사단이 21세기를 앞두고 다시 활발한 활동 을 준비하고 있다.
  • 독서로 꿈키우고 영상으로 情키우고

    ◎방학중 볼만한 유아·청소년 도서­비디오 안내 논술시험에 대비하려면 어릴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지만 시험·숙제에 바쁜 학교생활에 쫓기느라 평소 책 한권 마음놓고 읽을 시간이 없다.방학동안만이라도 학교공부에서 해방,좋은 책과 비디오를 보며 간접 경험을 넓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방학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자녀에게 권할만한 책과 비디오들이 많다.어린이도서연구회와 서울YMCA 건전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의 추천을 받아 소개한다. 도서는 창작동화가 주를 이루며 옛이야기와 우리문화를 테마로 했다.비디오는 최신작이 대부분이다. ■도서 ●유아 누구야 누구(보리) 꿀꿀돼지(웅진)하늘이랑 바다랑 도리도리 짝짜꿍(보림)호롱이 잡은 피리(보림) 고릴라(비룡소) ●1∼2학년 아재랑 공재랑 동네 한바퀴(길벗어린이)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사계절)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웅진) 별님동무 고기동무(우리교육)땅속나라 도둑귀신(보림) 화요일의 두꺼비(사계절) ●3∼4학년 콩,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잔디숲 속의 이쁜이1,2(웅진)고기잡이(보림)진희의 스케치북(산하)머리속의 난쟁이(사계절) ●5∼6학년 버들붕어(현암사)제주도 이야기(창작과 비평사)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국민서관)고향솔잎(미리내)장준하(사계절) ●청소년 스물 네개의 눈동자(자유포럼)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작가정신)잡초는 없다(보리)아버지와 아들의 꿈(생명의 말씀사) ■비디오 ●극영화 아미스타드(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매튜 매커너히,안소니 홉킨스 출연) 어느 어머니의 아들(테리 조지 감독·헬렌 미렌,피오눌라 플라나간 출연) 비욘드 사일런스(카롤리네 링크 감독·실비 테스튀드,타타냐 트립 연출)호스 위스퍼러(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출연) 가베(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샤하예 조다,아바시 사야히 출연) 레인메이커(프랜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맷 데이먼,클레어 데인즈 출연) 매드 시티(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존 트라볼타,더스틴 호프만 출연) 마더 나이트(키스 고든 감독·닉 놀테,세릴 리 출연) 위대한 유산(알폰소 쿠아론 감독·에단 호크,기네스 팰트로 출연) 아들을 위하여(짐 에이브라함 감독·메릴 스트립,프레드 워드 연출) 알래스카(프레이즈 헤스톤 감독·빈센트 카타이저,찰톤 헤스톤 출연) 가타카(앤드류 니콜 감독,에단 호크,우마 서먼 출연) 딥 임팩트(미미 레더 감독·테아 레오니,모건 프리만 출연) 나폴레옹(마리오 안드레치오 감독)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돈 부르스 감독) 하얀 꼬마곰 라스(한스 드 비어 감독) 고마워요 우체부 아저씨(영국 링크 엔터테이먼트사 제작)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무시 프로덕션제작) 투포야 놀자(이탈리아 미저리 스튜디어 제작)또또와 유령친구들(한·대만 합작).
  • 이동전화 예절(이것부터 고치자:2)

    ◎오나가나 ‘삐리릭’ 공중도덕 0점 수준/문제점­연주회 등서 호출음·큰소리 통화.길거리 곳곳서도 ‘난데族’.운전중 사용 교통사고 급증 ‘주범’/개선방향­기기 오작동 유발 우려.비행기·병원선 반드시 ‘Off’.공공장소선 ‘진동’ 전환을/보급현황­휴대폰·무선호출기 가입자 성인 2명중 1명꼴 ‘생필품화’/외국사례­비즈니스외엔 자제 상식화.日·유럽 운전땐 법으로 금지 ‘이동전화는 있지만 예절은 없다’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도 전화 예절은 한마디로 무례(無禮) 그 자체다. 한국통신에 따르면 지난 달 말 현재 이동무선전화 가입자는 1,304만293명,무선호출 가입자는 1,038만7,437명이다. 성인남녀 두명 가운데 한명은 이동전화와 무선호출기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보급률이 자동차보다 높다. 이처럼 이동전화는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됐지만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공해’가 되기도 한다. 한 선전광고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울리는 탓이다. 혼자 있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휴대전화를 걸거나 받는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일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극히 당연한 상식임에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文智英씨(25·여·서울 동대문구 면목동)는 요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모자라는 잠이라도 보충하려고 눈을 감으면 반드시 휴대전화 신호음이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통화에 잠이 깨기 때문이다. 文씨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꿔 놓지 않고 굳이 ‘삐리릭’ 울리도록 내버려두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주부 張美善씨(32·여·서울 영등포구 대림동)는 더욱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관객들의 무례함에 모처럼 부풀어 올랐던 기분을 완전히 잡쳤다. 연주회가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 휴대전화의 날카로운 호출음이 울렸다. 주위 관객들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그 사람은 “나 피아노 연주회에 와 있어”라고 큰 소리로 자랑까지 해댔다. 외국에서는음악회,영화관,미술관 등을 찾을 때면 휴대폰의 전원을 끄는 것이 상식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음성사서함이나 메시지 서비스 등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휴대전화나 호출기를 주로 비즈니스용으로 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동통신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휴대폰 사용자들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부득이 이용하더라도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통화를 하거나 핸드프리 키트를 이용하는게 바람직하다. 崔健永씨(26·회사원)는 지난 5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도로에서 가족과 통화를 하다 앞차와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崔씨는 “분명히 앞차와의 거리가 상당하다고 느껴 통화내용에만 신경을 썼는데 ‘꽝’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앞차의 뒷 범퍼와 충돌한 뒤였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교통사고조사반의 한 경찰관은 “운전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와 함께 조사반에 오는 사례가 한 달에 10건 정도 된다”면서 “대부분의 운전자가 휴대폰 사용사실을 감추기 때문에 실제로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건수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 운전자들의 핸드폰 사용도 문제다. 河晟元씨(28·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지난 달 서울 영등포경찰서 앞길에서 택시를 탔다가 아무 꺼리낌없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운전기사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수동변속기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는 핸드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낀 채 과속과 추월을 일삼아 河씨를 불안에 떨게 했다. 일본에서는 택시기사가 운전 도중 담배를 피우거나 핸드폰을 사용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싱가포르나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운전할 때 핸드폰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길을 걸을 때도 휴대폰 사용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통화에 몰입해 통행인들과 어깨를 마구 부딪히는 ‘나대로 족(族)’들이 도로 곳곳에 널려 있다. 한마디로 무례함의 극치다. 90년대 문명의 총아로 부상한 이동통신이 최근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서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도 생겼다. 특히 병원이나 비행기 등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휴대전화나 개인휴대통신(PCS)과 정밀기기의 주파수가 중복되거나 서로 전파간섭 현상을 일으켜 오작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吳龍鎭씨(27·대학원생)는 지난 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방을 쓰던 환자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환자는 진단결과 핸드폰의 이상현상으로 순간적인 전파충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吳씨는 휴대전화의 위험성을 열심히 홍보하고 다닌다. 의료기기가 주파수 간섭으로 인해 오작동 된다면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휴대폰 예절의 중요성은 누누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휴대전화는 작게는 남의 생활을 방해할 수 있으며 때로는 타인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의식의 확산이 절실하다.
  • 農心을 스승으로/김호기 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장(굄돌)

    작년 말부터 불어닥친 IMF 한파에 추위를 타던 서민들에게 금년 여름은 참으로 잔인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심술부리는 악동같은,소위 게릴라식 폭우가 가뜩이나 아픈 IMF의 상처를 덧나게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방학을 마치고 동무들과의 만남을 즐거워해야 할 소녀가 교과서를 수해로 떠내려 보내고 빈 가방으로 등교하는 모습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자연재해를 인력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마는 요즈음 들어 자연재해가 세계적인 현상이 된 것을 보면서,그 원인중 상당부분이 인간이 저지른 자연에 대한 경망스러운 오만에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산업화에 따른 무분별한 자연훼손,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공해,자연의 수용범위를 넘은 각종 쓰레기의 양산 등. 우리를 보호하는 자연의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자연을 성나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자연에의 외경심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삶이 무엇일까. 농부의 삶이야 말로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할 전형일 것이다. 농부는 자연이 가르쳐준 시기에 맞춰 밭 갈고,씨 뿌리고,물 주고,김 매고,비료 주며,그리고 나서 때를 맞추어 수확한다. 자연이 정한 순서를 따르되 결코 바꾸지 않으며,때를 기다릴줄 알고 성급하게 덤비지도 않는다. 싹을 빨리 보고싶다고 너무 많은 물을 주면 싹은 트기도 전에 썩어버릴 테고,수확이 아무리 급해도 열매 익는 시기는 기다려야만 한다. 자연이 가르쳐준 시기에 맞추고 단계마다 정해진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과 꾸준한 땀흘림,뿌린대로 거두는 수확의 기쁨,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농부의 삶이다. 농사를 짓듯이 자연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농부에게서는 자연에 대한 경망스러운 오만은 볼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횡포를 반성하자. 농심(農心)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
  • 비리 정치인 법대로 처리해야(사설)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에 관련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이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여야는 격돌로 치닫던 경색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물밑접촉에 나섰다.막후협상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해서 여야는 단독국회 운영과 장외투쟁을 각각 거론하고 있지만,대체적으로 다음주 초에는 정기국회가 정상화될 전망이다. 국정감사,예산안심의,경제회생·민생관련법안 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처리해야 할 정기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국회정상화를 위해 여야간에 주고 받는 것으로 알려진 협상카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개인비리 정치인들을 검찰에 자진출두시키되 주중에는 국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여권은 야당의원 영입을 자제하고 회기중 사정 대상 정치인들이 불구속 기소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빠른 시일안에 여야 영수회담이 열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문제도 들어있다.‘여야 영수회담’은 충족돼야 할 조건이 많기 때문에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야당의원 영입 자제’또한 여권이알아서 할 일이다.그러나 ‘비리 의원 불구속 노력’은 문제가 다르다. 여당도 이 점을 의식한 듯 비리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검찰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개입할 성질이 아니라면서도,비리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천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불기속 기소를 유도하겠다는 속셈을 내비치고 있다.그러나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왜냐하면,여야 비리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처리야말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회정상화 문제와 비리 정치인에 대한 사정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실제로 이번 정기국회는 국회운영제도·정당·정치자금·선거 등 정치전반의 뼈대에 관한 개혁법안들을 처리해야 한다.보도에 따르면,청구·기아·개인휴대통신등과 관련해서 개인비리 혐의로 현재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여야 의원들이 24명이나 된다고 한다. 개인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정치개혁 법안들을 사심없이 공정하게 처리할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통째로 맡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여권이 국회정상화라는 명분에 발목이 잡혀 비리 정치인들에 대한 사정을 중동무이로 끝내면 정치개혁은 물건너가고 만다.결국 우리사회 전반의 총체적 개혁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국민의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제2건국운동’이 또하나의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비리 정치인들은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
  • 삼성그룹(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위기는 기회” 삼성의 도전의식 뜨겁다 초유의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대그룹들마저 하루 아침에 공중 분해되는가 하면 미니그룹으로 속속 변신해가고 있다. 서울신문은 흥망의 부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기업을 찾아 재조명해보는 건국 50주년 특집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기업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초일류 만이 생존” 質경영 뿌리내려/“起亞 꼭 인수” 자동차산업 육성 집념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원하다’ 믿든 믿지 않든 재계가 철칙삼아 간직해 온 명제다. 그러나 IMF사태로 이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도 사라졌다. 재계 1위 삼성. 삼성도 문민정부까지만 해도 잘나갔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와 척진 사이는 물론 아니다. 삼성이라고 IMF한파가 비켜갈 리 없다. 계열사 대부분이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작은 청와대로 불렸던 비서실이 구조조정 본부로 40년만에 간판을 바꿔달았고 문민정부때 특혜시비를 일으켜가며 진출했던 자동차도 IMF한파로 휘청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성맨들 사이에서는 옛 사가(社歌)가 유행이다. “고난과 시련속에 일어선 우리…” 삼성맨들은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의 사업과 제품들 가운데 진정 세계 일류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李 회장이 삼성맨들에게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질(質)경영을 통한 초일류는 李 회장이 93년 신(新)경영을 출범시키며 삼성맨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초일류는 삼성경영의 알파요 오메가. 모든 것이 ‘초일류’에서 시작돼 ‘초일류’로 끝난다. 李 회장은 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나부터 변해야 산다”고 역설했다. 제2창업의 2기 경영을 구획정리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었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꿔보자. 고객의 요구에 혁신적으로 대응하고 사회 요구에 정직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다. 앞으론 초일류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 95년 4월엔 북경발언으로 파문을 던지기도 했다. “기업은 2류,행정은 3류,정치는 4류…” 이 발언으로 李 회장이 마음고생을 했지만 李 회장은 이 말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삼성에게 닥친 또 하나의 시련은 자동차. 삼성자동차 역시 IMF한파로 고전하고 있어 기아차 인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도’아니면 ‘모’의 심정이다. “자동차 한대를 만드는 데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기계 전자산업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조립산업이어서 산업간 파급효과가 크다. 자동차 사업진출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여론의 반대,막대한 투자 등…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구조와 자동차 산업수준을 볼 때 누군가는 반드시 새로 참여해서 한차원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국가 장래를 위해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이 세간에서 정경유착이니,개인적 취미에서 시작한 것이니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경영진과 기술진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것이 결코 아니다”(李 회장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본관에는 “우리가 왜 자동차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집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이 기아인수로 위기극복의 계기를 만들어낼 지 주목된다. ◎어떻게 일궈 왔나/밑돈 3만원 삼성상회가 종업원 17만명으로 성장 삼성의 모태(母胎)는 1938년 3월1일에 설립된 삼성상회(三星商會)다. 고(故) 李秉喆 선대회장이 마산에서 정미업과 운수업으로 쌓은 사업수완을 밑천으로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이 것이 오늘날 삼성그룹의 싹이다. 청과류와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에 팔고 국수제조업(별표국수)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李 회장은 48년 11월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겼다. 상호도 삼성물산공사로 바꿨다. 2년만에 면사수입 등으로 당시 서울의 유명 100사 중 9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다 6·25전쟁을 맞았다.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설립,전쟁의 와중에서도 생필품을 들여다 팔았다. 53년엔 제당(製糖)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년만에 설비를늘려야 했다. 54년엔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양복지다운 양복지가 없어 ‘마카오 신사’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영국제 양복 한벌 값이 봉급생활자 석달치 월급(6만환)이던 데 비해 제일모직은 1만2,000환에 팔았다. 삼성은 물산과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사를 주축으로 급속성장을 계속했다. 李秉喆 회장은 64년 ‘야심작’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요소비료 공장(33만). 그러나 한비는 공정률 80%를 보이다 67년 10월에 국가에 헌납된다. 사카린원료로도 사용되는 비료생산원료(OTSA)가 유출됨으로써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비화됐던 것. 삼성은 당시 한비지분을 요구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나 어쨌든 이 사건으로 그룹이 존폐위기로 몰려 헌납해야 했다(삼성은 이후 94년 7월 한비공개입찰에 참여,한비를 인수한 뒤 삼성정밀화학으로 개명한다). 8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투자를 서둘렀다. 반도체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83년에 발표된 64KD램의 개발성공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선진대열에 들어었음을 알린 쾌거였다. 李秉喆 회장은 한국경제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87년 11월 19일 타계했다. 88년 李健熙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 반도체 칩을 개발한 데 이어 96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1기가 D램을 개발했다. 순풍에 돛을 단 삼성전자는 95년 2조5,054억원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삼성은 지금 매출·자산 80조에 61개 계열사,16만7,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재계 1위그룹으로 서 있다. ◎인재 제일주의/학력 철폐… 능력주의 지향/첨단시대 개성·창조 강조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등 위성그룹들을 독립시키고도 부동(不動)의 1위를 지키는 삼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무엇보다 창업자인 ‘거상 李秉喆’의 족적이 워낙 크다 하겠다. 비서실을 통한 특유의 공세적 경영이나 ‘품질은 타협이나 양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철저한 질(質)경영도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인재 제일주의가 있었다. 일찍이 최고 경영자가 인재중용에 눈을 떠 삼성은 57년 국내 그룹으로는 처음 신입사원을 공채했다. 宋世昌 전 삼성항공 사장 등 27명이 그들이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1년간 부서배치를 받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일부터 배웠다. 호텔같으면 주차관리,에버랜드라면 공원 대청소가 신입사원 몫이었다. 李健熙 회장 체제에서는 학력까지 철폐하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고집했다. 치밀하고 밀도높은 교육때문에 ‘인재조련’에 비유됐다. “개성시대,창조시대에는 끼있고 개성이 강한 사람의 신바람과 기를 살려야 한다” 삼성이 겨냥하는 인재는 컴퓨터업계의 빌 게이츠나 영화계의 스필버그,패션계의 베르사체와 같은 이른바 골드컬러(Gold Color). 첨단·정보시대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화이트(White)컬러도,블루(Blue)컬러도 아닌 골드컬러에 달렸다는 게 李 회장의 지론이다. 신(新)인재 상은 박세리에게서 입증됐다. 골프에 대한 李 회장의 각별한 애정 탓도 있지만 삼성은 박세리라는 싹을 찾아내 ‘초일류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초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 노하우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계열사 및 생산제품 ▷전자소그룹◁ ▲삼성전자­반도체, 가전제품, 기타전자제품 ▲삼성전관­LCD, 디스플레이 ▲삼성전기­전자품목 ▲삼성코닝­TV 및 모니터 브라운관용 유리, LCD유리 ▲삼성SDS­시스템통합, 정보통신 ▲한국휴렛팩커드­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삼성 GE의료기기­MRI, CT, 기타 의료기기 ▷기계소그룹◁ ▲삼성중공업­기계, 조선플랜트, 중장비, 건설 ▲삼성항공­항공기, 카메라 ▲삼성시계­시계 ▷화학소그룹◁ ▲삼성종합화학­에틸렌, 플로틸렌, 부타디엔, 복합수지 ▲삼성정밀화학­메틸아민, DMF, 말로네이트, 화공기기, 환경설비 ▲삼성BP화학­초산, 비닐초산 ▲삼성석유화학­PTA ▷금융소그룹◁ ▲삼성생명­그린행복연금보험, 홈닥터플러스보험, 슈퍼무지개보험, 허니문설계보험 ▲삼성화재­화재보험, 해상보험, 자동차보험, 상해보험, 연금보험, 해외여행자보험 ▲삼성카드­일시불/할부/현금서비스, 카드론(대출), 할부금융, 통신판매, 보험 ▲삼성증권­주식/채권 매매, 증권저축, BMF, RP, CD, 수익증권 ▷자동차소그룹◁ ▲삼성자동차­자동차 생산 및 판매 ▲삼성상용차­상용차 ▷독립회사군◁ ▲삼성물산­무역, 건설, 자동차 판매, 유통, 의류 생산/판매 ▲제일모직­소모사, 방모사, 울, 소보복지, 방모복지, 카펫, 여성/남성의류 ▲삼성에버랜드­리조트개발/운영, 골프장, 운영사업, 빌딩관리, 컨설팅/에너지사업, 식음사업 ▲삼성엔지니어링­석유화학 플랜트, 정유/가스플랜트, 산업공장/환경오염 등의 엔지니어링 ▲신라호텔­서비스, 컨설팅, 레포츠 사업 ▲중앙일보­일간지, 출판 ▲제일기획­광고기획, 제작, 조사, 마케팅, SP, PR, 디스플레이 이벤트, CI ▲에스원­로컬 경비시스템 및 전자 경비 시스템, 감시 시스템 ▲삼성영상사업단­영상, 영화 ▲삼성의료원­서울병원, 강북병원, 마산병원, 생명과학연구소 ▲삼성문화재단­호암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관, 삼성어린이 박물관 ▲삼성복지재단­효행상, 어린이집 건립운영, 소년소녀 가장 돕기 ▲삼성경제연구소­연구, 교육 ▲삼성종합기술원­정보처리, 첨단기술개발 ▲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기타 유관 기관◁ ▲인력개발원­연수, 교육 ▲삼성경영기술대학­기술교육 ▲삼성패션연구소­패션 디자인 여구 ▲IDS­디자인 교육, 연구 ▲호암재단­호암상, 청년논문상
  • 北 교과서 형편없는 紙質에 놀라/金石香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옥수수껍질 원료로 만든 종이에 인쇄 15일부터 전시할 북한교과서를 처음 보는 순간 감정의 흐름이 뚜렷하게 두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느꼈다.아! 이 노릇을 어쩔 것인가? 한참 자라나는 학생들이 이런 종이로 만든 교과서를 써야 하는 것이 도대체 누구 탓인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런 느낌들이 그 하나의 갈래였다.또 하나의 갈래는 우리 국민이 북한사회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백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이 책들을 한번 보는 편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었다.교과서를 만든 종이의 지질을 한번 본다면 굳이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렵다거나 북한주민들이 굶주린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으리라.어쨋든 이번 전시회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북한교과서를 직접 눈으로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전시하는 북한교과서 입수의 의미는 대략 다음의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첫째,북한교과서라고 하면 지금까지 많아야 몇 권 정도씩 들여오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인민학교 1학년부터 고등중학교 6학년까지 10개 학년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골고루 입수했다.인민학교 교과서는 8과목 17종이나 되고 고등중학교 교과서는 22과목 79종에 달한다.말하자면 북한교과서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본자료를 이번 기회에 갖춘 셈이라 하겠다. 둘째,북한당국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우리 대한민국의 실상을 왜곡하는 습성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들여온 북한교과서에서도 그 점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수학이나 화학교과서를 들쳐도 머리말에는 김일성·김정일이 “수학은 중요한 과학입니다”처럼 평범한 말을 한 것을 ‘교시’라 하여 굵은 글씨로 강조해 놓았다.그러가하면 인민학교 1학년 국어 ‘내 동생’ 단원을 보면 ‘승리호’ 자동차에 고운 비단과 흰 쌀을 싣고 “미국놈들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동무들을” 찾아가는 동생의 모습을 묘사해 놓기도 했다. 셋째,이번에 들여온 교과서는 모두 북한학생들이 쓰던 책이라는 점이 특별히 재미있다.이 점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는 교과서 구석구석에 나오는 낙서나 그림을 통해 북한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인민학교 1학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시절’ 표지 안쪽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혁명’이라는 글자를 써두었고 다른 책에는 ‘조국통일’이나 ‘일당백’이라는 낙서를 했는가 하면 탱크 그림을 그린 책도 있다. 고등중학교 3학년 화학교과서의 맨 뒷장을 보면 값 20전이라고 나오는데 20전이라는 글자의 앞 뒤 빈 공간에 “1000,2000딸라,20000억 수딸라”라는 낙서를 해놓아 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 달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하게 한다.이런 낙서와 그림은 북한학생들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한달 사이에 북한 잠수함이 동해에 나타나는가 하면 무장간첩의 시체가 발견되었다.우리들은 북한당국의 파렴치함에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그러나 지금도 북한 땅에서는 펄프가 없어 옥수수껍질 오사리를 원료로 만든 종이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인쇄한 교과서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산다.이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 여름방학 이런 책 읽히세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인형 피노키오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이름이다.하지만 피오키오를 책으로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디즈니 만화영화를 통해 전세계 어린이의 친구가 된 피노키오는 사실은 이탈리아 동화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쓴 ‘삐노끼오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영상문화의 홍수 속에 ‘비디오 키드’만 양산되고 있는 이 시대,‘학교교육이 책읽기를 방해한다’는 역설이 통하는 요즘,청소년 특히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서습관을 내면화하는 것이다.방학은 그 좋은 기회다. 어린이독서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 단체에서는 방학철이 되면 으레 권장도서목록을 발표한다.어린이도서연구회,한우리 독서문화운동본부,간행물윤리위원회,그리고 대형서점과 어린이도서총판 등이 그런 곳이다.이들 단체들이 권하는 도서목록을 참고로 어린이들에게 집중력과 사고의 자율성을 키워 줄만한 책들을 골라 소개한다. ▲유아=그림책 꽃밭을 찾아서(유애로 글·그림/보림 펴냄) 심심해서 그랬어(윤구병 글,이태수 그림/보리) 고사리손 요리책(배영희 글,정유정 그림/길벗어린이) 물(앙드리엔 수테르 글,에리엔 느드레세르 그림/보림) 우리는 바다로 간다(애니타 개너리 글,재키우드 그림/혜인) 꼬까신(최운식 글,최영주 그림/보림) ▲초등학교 1∼2학년=삐노끼오의 모험1·2(카를로 콜로디 글,김유대 그림/창작과비평사) 오소리네 집 꽃밭(권정생 글,정승각 그림/길벗어린이) 닭장에 갇힌 주머니쥐(도오튼 버어지스 글/길벗어린이)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김장성 글,노기동 그림/사계절) 할미꽃은 왜 꼬부라졌을까?(보물섬 엮음/푸른나무) 견우직녀(유애로 글,그림/보림) 물방울의 추억(에텐느 드랄라 글/서광사) ▲초등학교 3∼4학년=아기 개미와 꽃씨(조장희 글/오늘어린이) 신나는 교실 (윤태규 글/산하) 숲은 누가 만들었나(윌리엄 제스퍼슨 글/다산기획) 아씨방 일곱 동무(이영경 글·그림/비룡소) 흙꼭두 장군(김병규 글/서강) 여울각시 (이중현 글/우리교육) ▲초등학교 5∼6학년=비밀의 동굴(채영주 글/국민서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조은수 글/창작과비평사) 라스므스와방랑자(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비룡소) 별난 박물관 별난 이야기(허완·김제호 글/산하) 고향 솔잎(신현득 글/미리내) ▲전학년=엄마 아빠와 함께 떠나는 이색 박물관 여행(백년이웃 편집실 엮음/두산동아) 쉽게 찾는 우리 꽃(여름)(김태정 글·사진/현암사) 개구쟁이 산복이(이문구 글/창작과비평사)
  • 여름방학 어린이들 책읽히기 걱정되십니까?/사이버공간 클릭해보세요

    ◎PC통신 하이텔동호회 ‘동화읽는 어른’/유아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도서 추천·비평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희희낙락이지만 엄마들 마음은 오히려 복잡하다. 다들 떠나보내면 낮시간만은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하루종일 들볶일 생각,다른집 아이들에 뒤지지 않게 학원이며 캠프 챙겨 보낼 생각,모처럼 여유를 갖게 된 아이들에게 책도 읽혀야 할텐데….생각이 아이들 독서에 이르면 더욱 난감해진다. 양서를 추천하는 목록들은 많지만 거의 어른용이고 어린이책 지침서는 가물에 콩나듯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들은 PC통신 하이텔 동호회 ‘동화읽는 어른’(SG98)을 노크해보자. 제목 그대로 동화,그림책에 관심있는 어른들이 모여 좋은 작품을 추천,비평하며 동화문화를 일궈나가는 곳이다. 이곳의 모태는 드물게 어린이책만 조직적·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어린이도서연구회로 이 연구회 지역모임인 ‘동화읽는 어른모임’에서 활동하던 이혜 영씨(30)가 튼 둥지다. “통신을 하다보면 문학모임이 무수한데 동화나 어린이 문학을 다루는 곳은 없더군요. 통신ID가 있는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10여명이 우선 문패만이 라도 걸어 놓자고 시작했지요” 아동학을 전공한 이씨의 소박한 문제의식이 씨를 뿌린 이 모임은 사이버공간에서 뜻밖에 많은 동지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새 회원이 160명까지 늘었다. 아이를 둔 주부들이 많지만 동화에 관심있는 젊은 문학도,동화작가 등도 이 공간을 기웃거린다. “모임을 꾸려나가면서 엄마들이 정말 동화 정보에 굶주려 있구나 하는 점을 절감했어요. 저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만큼 질문 E메일이 밀려들더군요. 이를 해갈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출판사가 동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원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족적인 동호회를 넘어서기 어려워요” 1주년을 맞아 ‘동화읽는 어른’은 게시판 목록에 여러가지 새로운 항목들을 추가하려 한다. 동화작가와의 만남도 열고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연계해 사이버 상담실도 꾸릴 생각이다. “여름방학 독서요? 아이들에게 시원한 자연을 느끼고,모처럼 우리 문화유적지도 찾아가고,또 읽고나면 따라 해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주세요. 그게 어디 쉽냐고요? 여기 지침을 하나 드릴께요”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 여름방학에 권하는 어린이책 ◇유아=△쪽빛을 찾아서(보림) △물(〃) △심심해서 그랬어(보리) △고사리손요리책(길벗어린이) △우리는 바다로 간다(혜인) ◇1,2학년=△오소리네집 꽃밭(길벗어린이) △닭장에 갇힌 주머니쥐(곰)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사계절) △할미꽃은 왜 꼬부라졌을까?(푸른나무) ◇3·4학년=△아기 개미와 꽃씨(오늘어린이) △신나는 교실(산하) △숲은 누가 만들었나?(다산기획) △아씨방 일곱 동무(비룡소) △흙꼭두 장군(서강) ◇5·6학년=△와우!동물친구들(그린비) △비밀의 동굴(국민서관)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창작과비평사) △라스므스와 방랑자(비룡소) △별난 박물관 이야기(산하) ◇초등 전학년=△이색 박물관 여행(두산동아) △쉽게 찾는 우리 꽃­여름(현암사) △개구쟁이 산복이(창작과비평사) △사물놀이(길벗어린이)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보리) ◇청소년=△물총새 이야기(개미) △파도타는 소년(문원) △가출일기(문학수첩) △쟁점으로 보는 한국사(푸른나무) △나의 산에서(비룡소)
  • 상륙 공작원 있나 없나/北 항해일지로 본 의문점

    ◎북 격려편지 받은 공작원 2명 잔류 가능성/국방부 “전원 귀환중 사고… 침투요원 없다”/임무수행뒤 16시간동안 제자리 걸음도 의문 【동해=특별취재반】 북한 잠수정에서 해안에 상륙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항해일지가 발견되면서 공작원들의 행적과 탑승자 숫자에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항해일지에 따르면 북한 잠수정은 21일 하오 8시30분 동해안 앞바다 1,500m 해상에 정박한 뒤 하오 10시 안내원 3명이 육지로 헤엄쳐 나와 모종의 임무를 끝낸 뒤 2시간여만인 22일 0시38분 귀환한 것으로 돼 있다.수영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여 동안 임무를 수행한 셈이다. 군 당국은 탑승자가 자살한 9명이 전부라는 가정 아래 이들이 동해안의 무인포스트(일명 드보크) 등 비밀아지트에서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때문에 28일에도 동해안 일대에는 일상적인 경계강화 이외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군 당국의 이같은 추정과는 달리 공작원 2∼3명이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안에 상륙했을 가능성이 있다.잠수정에서 발견된 편지 가운데 대남공작 지휘부가 공작원 ‘유학진’과 ‘덕인’ 등 2명에게 침투 지시를 하면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지적해준 목표에 한개의 편차도 없이 들어가는가 못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동무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격려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22일 하오 6시47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앞바다에서 발견된 잠수 두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공작조가 이미 상륙했다면 최초 잠수정의 탑승인원은 11∼12명이 된다. 북한 잠수정이 임무를 마치고 출발한 시점부터 우리 어선에 발견될 때까지 16시간 동안 전진거리가 300여m에 불과한 사실도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 군은 북한 잠수정 침투 전인 19일부터 8일간의 일정으로 동해안 일대에서 대잠·대북경계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잠수정의 침투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특히 이번 잠수정은 지난 16일 원산 앞바다 황토섬에서 사라진 사실을 미군측으로부터 통보받고 감시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잠수정 발견 때는 물론 지난 25일 잠수정에서 칠성사이다 패트병이 발견됐을 때도 해안 상륙 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하는 등 책임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 “北 잠수정 9명만 승선/육상 잠입 공작원 없다”

    ◎안보회의 상임위 결론/3명 한때 동해안 상륙 북한 잠수정에서 시체로 발견된 9명 이외에 더 이상의 육상 침투 공작원은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28일 상임위를 열어 지난 22일 속초 앞 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북한 잠수정은 이미 침투 후 탈출중이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안보회의는 이날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에 대한 중앙합동신문조의 조사결과를 심의,북한 잠수정에 승선한 인원은 모두 9명이며 이 가운데 3명이 잠시 상륙했다가 잠수정으로 돌아가 복귀중 집단 자폭했으며 국내에 잠입한 공작원은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합참 중앙합동신문조가 북한 잠수정에서 승조원들이 남긴 항해일지로 추정되는 메모를 분석한 결과이다. 국방부는 “잠수정에서 부대상급자와 동료들이 ‘유학진’과 ‘덕인’이라는 이름의 공작원 2명과 조장,부조장 등에게 보낸 전투임무 수행 격려편지 5통이 발견됐으나 이들이 숨진 9명에 모두 포함돼 있다”면서 “현재 동해안 일대에 대한 수색작업은 혹시 있을 지 모를 유기물과 무인 포스트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합신조는 잠수정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지적해 준 목표에 한개의 편차도 없이 들어가는가 못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동무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내용의 편지와 ‘북한작전부 313연락소’라고 적혀 있는 가요테이프,탑승원으로 보이는 9명의 이름이 적힌 개인신상 메모를 발견했다. 국방부는 29일 잠수정 침투사건에 대한 합동신문조의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무용인 趙興東(이세기의 인물탐구:174)

    ◎열일곱분 스승의 춤 계승과 극복/전통춤 섭렵… 가장 많은 춤사위 확보/자신만의 춤제 창안 또다른 원형 만들어/내딛는 보폭마다 백태의 곡선 연출/남성적 매력 넘치는 태평무·한량무 일품 흰색 도포차림에 검은 갓,큰 부채로,얼굴을 가린 趙興東의 ‘회상(回想)’은 한 선비가 자신이 지나온 나날을 청허탄회(淸虛坦懷)로 돌아보는 춤이다.82년 대한민국무용제 전야제에서 선보인후 지난해 봄 문예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뿌린 이 작품은 일종의 ‘조흥동류 한량무(閑良舞)’로서 해방전에는 신무용의 선각자인 조택원이 춤추었고 ‘몸은 비록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心不老)’는 제목으로 정인방이 형상화한 것을 그가 다시 춤사위를 짜고 악을 정리해서 자신의 춤으로 만들었다. ○현대와 궁중무 조화 본래의 ‘한량무’는 굿거리와 자진모리로 구성된데 비해 조흥동의 ‘회상’은 청송곡으로 시작해서 진양조 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장(壯)과 한(閑)과 원화(怨和)를 춤속에 용해시키고 다시 청송곡으로 환원하는 수미일관(首尾一貫)이 남다르다.백으로 절제된 조명아래서 어느 때는 독수리처럼 날고 어느 때는 강철같은 번뜩임을 보이면서 내딛는 보폭마다 백태(百態)의 곡선을 연출하는 바람에 ‘모든 장면마다 절륜의 명화를 그린다’는 평을 듣는다.‘회상’뿐만 아니라 그는 어떤 춤이든지 우리 몸짓 가운데 힘이 숨어있는 곳을 꿰뚫어 남성무용수만의 정결하고도 선명한 광채를 흩뿌려나간다.춤사위마다의 변화와 춤의 언어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이 다듬어온 정밀하고 유현한 기백을 살아있는 흥취와 멋으로 개발하고 ‘남성춤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도 조흥동만의 위업일 것이다. 그의 남성적 ‘태평무’는 스승 강선영의 화려한 겹걸음과 잔걸음등 발디딤새의 기교를 살리면서도 현대무용적인 분방함과 궁중무용의 내밀한 품위를 적절히 조화시켜 나간다.특히 발을 들었다 올리고 차듯이 엇비키는 다양한 율동은 리듬과 동작의 틀을 과감하게 깨면서 열박장단 돌림채로 눈부시게 몰아간다.여기에 조한춘의 꽹과리춤을 개작한 ‘진쇠춤’과 ‘장고춤’ ‘살풀이춤’ 역시 수없이 손질되고 다시 짜여져 시각적인 변화와 함께 호남의 기방적 교태미나 영남의 투박한 맛과는 달리 묵고적(默考的) 미선(微線)으로 정중동의 여백을 유려하게 펼치고 있다. 음악과 무용을 하는 이들이 주로 어울리는 서초동의 카페 체루니에 가면 그는 자신의 특기중의 하나인 ‘살풀이’ 한자락을 언제라도 여한없이 춤추어 보인다.와이셔츠에 양복바지 차림이지만 하얀 수건 하나만으로 한을 다스리고 추스르는 그의 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춤의 심장에 한없이 젖어들게하는 매력이 제격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유세를 부리거나 세련된 티를 내지 않고 언제나 조흥동만의 관옥(冠玉)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그래선지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강선영 김백봉 이매방씨등 까다로운 원로들로부터 ‘조흥동은 춤솜씨도 일품이지만 인간 됨됨이가 반듯한 무용가’라는 총애를 받고 있다. ○누나들이 무복 불 살라 지난 수년간 국립무용단장 춤의 해 운영위원장 한국무용협회이사장등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보이는 중에도 ‘무천의 아침’‘환’등의 대형작품을 만들어냈고 굵직한 직함뒤에 가려져있던 안무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지난해 10년만에 마련한 그의 발표회에 왔던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세련되고 정겨운 조흥동의 무대매너는 모처럼 무대에서 귀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준다’고 평한 바 있다. 그는 가장 많은 한국의 전통춤사위를 섭렵한 무용인답게 가장 많은 춤사위를 점유하고 있다.그가 사사한 스승만도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은방초 김석출 박송암 스님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일곱분이나 되고 유형별 유파나 계보별로도 각양각색의 춤이 망라되어있다.그러나 지난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인 ‘태평무’ 이수자가 됨으로써 전통 체득의 긴 여정을 끝내고 지금은 한성준류를 계승하고 있는 강선영에게 정착된 셈이다.그러나 스승에게서 배운 전통춤을 그대로 추기보다 원형을 재해석하면서도 자기식의 춤제를 창출하여 자기 주관을 강하게 주입시킨 또 다른 원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흥동의 춤이다. 조흥동은 숙명적으로 춤출 수밖에 없는 기질로 태어났으나 집안은 예술과는 무관한 봉건적이고유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경기도 이천의 대농이던 趙泰煥씨(94)는 한학에 능한 학자풍으로 딸 넷을 낳고 백일기도 끝에 얻은 막내아들이라서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만큼’ 귀하게 키웠으나 그의 유년은 추수때면 동네를 돌던 농악패나 두레패 사당패의 놀이에 흠뻑 빠져있었고 서울에서 경동중고에 다닐 때도 유장한 가락과 우리 춤에 매료되어 집에서 보내온 학비를 모조리 무용수업을 받는데 써버렸다.부모는 공대나 법대에 가기를 원했으나 무용계의 기라성같은 스승들이 모여있던 서라벌예대 무용과에 진학,62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에 처음 참여했을때 누나들이 극장에 찾아와 춤꾼이 되어있는 동생에게 실망한 나머지 무복을 불사른 일은 무용계의 일화로 남아있다.당시로서는 남자가 춤추는 것을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조차 탐탁해하지 않았고 남성무용수로서의 수모와 설움을 알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배움을 청하는 가난한 춤꾼들을 거절하지 않는다.중견무용수인 김정학 차효영 김남용 문정근등이 그의 제자들이고 가족은 부인 朴商洙씨와의 사에 1남 2녀. ○그윽한 그만의 춤언어 조흥동 춤의 세계는 꾸밀 줄도 수를 쓸 줄도 뒤로 돌아서면 표리가 다른 이중성도 찾아볼 수 없다.그의 춤은 스스로를 위한 축연(祝宴)으로 ‘말없이 자기춤의 실체를 보여준 그를 빼고는 한국무용사를 말할수 없다’는 평론가 정병호씨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는 지금도 춤사위 하나하나를 허툴게 다루지 않고 진정한 부드러움과 인간미를 객석에 던지는 ‘무위적정(無爲寂靜)을 지킨다.언제 어디서 다시 태어나도 결국 춤꾼으로 살아갈 그의 운명은 그만의 춤언어로 ‘흐르듯’‘스미듯’‘감추듯’ 혜지의 끝없는 향기를 언제까지나 길어올리게 될 것이다. ㅁ그의 길 ▲1962년부터 국립무용단 공연참가 ▲1963년 중앙대 예술대졸업 ▲1966년부터 조흥동무용학원설립 ▲1968년 제1회 무용발표회 ▲1969·71·86·96년 조흥동창작무용발표회(국립극장) ▲1976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1977년 한국문예진흥원 심의위원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출연 ▲1982년 한국남성무용단창단 ▲1983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1984년 LA올림픽‘도미부인’주역 1985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86년 아시안게임문화예술축전안무 1987년 국립무용단 중남미순회 ▲1990년 국립무용단 상임안무가 ▲1992년 춤의 해운영위원장,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이수자 ▲1993년 국립무용단예술감독·단장 ▲1995년 ‘태평무’보존회 회장 ▲1997년 조흥동 춤의세계 공연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이사 ‘제신의 고향’(74년)‘이차돈’(75년)‘춤과 혼’(81년)‘젊은날의 초상’(85년)‘강강술래’(92년)‘무천의 아침’(94년) 대학무용콩쿠르안무지도상(76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상(81년) 서울특별시문화상(92년)93’최우수예술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95년)
  • 北 막판태도 급선회로 분위기 反轉/北京 남북 차관급회담 이모저모

    ◎만찬장서 흉금없는 대화… 남측에 들쭉술 선물/우리측 “남북 상호주의 레일 깔게 됐다” 自評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16일로 엿새 째를 맞은 베이징 남북당국간 회담은이날 현재로 역대 남북대화중 최장기간을 기록했다.이번 회담은 또한 양측의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접촉기간이 이번 주말까지 길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막판에 극적인 ‘벼랑끝 대타협’이 이뤄질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날 고(故) 金日成의 86회 생일인 ‘태양절’을 이유로 하루 쉬면서‘버티기작전’에 들어갔던 全今哲 단장 등 북측대표단은 이날 상오 10시 우리측 숙소인 차이나월드호텔의 丁世鉉단장실로 찾아와 비공식 접촉을 속개. 1시간50분 동안의 접촉이 끝난뒤 북측 全단장은 “다시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협의를 해봐아지”라고만 말하고 굳은 표정으로 퇴장. 우리측 丁世鉉 단장도 “아직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접촉성과를 부인했으나 본국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 차원이었던 것으로 판명 ○…남북 양측 대표단은 이날 저녁 북측초청으로 베이징 시내 북한식당인 ‘고려원’에서 3시간 가까이 만찬을 함께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오랜만에 흉금없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측 丁단장과 북측 全단장은 만찬도중 어깨동무를 함께 하며 우리가오 ‘고향의 봄’과 북한가요 ‘반갑습니다’를 합창했으며 북한측이 우리측을 접대하기 위해 북한에서 가져온 백두산들쭉술을 여러병 비우며 우애를 다졌다. 지난 13일 남측이 북측에 베푼 만찬의 분위기는 마치 학교동창생들의 모임 같은 정겨운 분위기였다는 것이 한참석자의 전언. 이날 북측은 우리측 대표들에게 백두산 들쭉술 1병씩을 선물로 제공. 우리측 한 관계자는 “북한은 과거 유엔동시가입 때도 전격 ‘U턴’을 했었다”면서 “이번 북측의 태도선회로 마침내 남북간 상호주의의 레일을 깔게됐다”고 회담성과를 자평. ○…이번 베이징회담 벽두 우리측기자들을 상대로 개별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던 북측은 회담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기사의 강도가 시들해지고 우리측기자들이 북측을 만나는 것을 큰 뉴스로 생각하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자신들이 직접 우리측 기자들에게 접근,입장을 설명하는 등 종전과는 다른 행태를 노정. 북측 全단장은 우리측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측이 자존심을 세울 일이 아닌데…”라며 비료지원 성과를 얻지 못한 데 따른 답답한 심경을 토로.金成林 등 다른 북측대표들은 우리측 대표단의 귀국예정일정을 파악하는가 하면 우리측 기자단의 동향에도 훨씬 관심을 갖는 등 국내외 여론추이에도 깊은 관심.
  • 현대무용가 安信姬(이세기의 인물탐구:166)

    ◎섬광 폭죽인듯 폭발하는 춤사위/대한민국무용제서 대상·개인연기상 등 휩쓸어/‘지열’로 일 국제페스티벌 딛고 아시아 스타 浮上 스포트라이트속에 정지된 安信姬의 포즈는 ‘그 자체가 춤의 시(詩)’라고 할 수 있다.신체의 사선(斜線)을 축(軸)으로 삼아 아이키도 돌기며 바운징으로 그가 돌아가야할 ‘길’에서 배회하고 ‘섬과 섬사이’를 떠돌면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이미지를 불꽃같은 감성으로 춤추어 낸다.‘춤은 춤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그는 공연때마다 ‘무진장의 에너지를 폭죽처럼 터뜨리고’‘내쏘듯 날카로운 섬광’을 무대중앙에 흩뿌리기도 한다.안신희란 존재는 이미 ‘춤과 사색,행위의 철학’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무용가이다.어느때는 ‘조롱에 갇힌 새’,어느때는 ‘이 세상의 모든 자유를 지닌 해방감’에서 단순한 극과 극이 아닌,중용의 조화를 얻기 위한 내심의 춤을 구축하기 때문이다.‘춤’은 그의 ‘숙명’이자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천부의 인연으로 그는 언제부턴가 ‘춤의 심연’에 깊이 빠져버렸다. ○“춤은춤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든 춤중에서 특히 관객의 시선을 끈 것은 지난 83년 일본 현대무용협회와 코파나스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국제 현대무용페스티벌에서 춤춘 ‘지열(地熱)’을 들 수 있다.‘지열’은 서구적인 차별성과 한국적인 특성을강조한 작품으로 춤추고 났을 때의 무용수는 한바탕 굿판을 끝낸 신들린 무녀(巫女)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긴 박수소리와 함께 그가 도취에서 깨어나자 일본 매스컴들은 그를 일약 ‘아시아의 신데렐라’로 부상시켰고 아사히신문과 주간‘아사히 저널’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신비로운 무대’제하로 ‘이번 축제에서 오늘의 춤을 보여준 것은 객석에 시종 싸늘한 긴장을던진 안신희의 지열이 단연 압권’이라는 평을 보냈다. ‘지열’을 전환점으로 그는 다시 대한민국 무용제에 ‘섬’으로 도전했고 시인 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구절과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테마로써 ‘섬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섬의 이상향을 역동적으로 풀어나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여러그룹속의 안신희가 아닌 대한민국 무용가로 떠올랐다.무용인 최대의 영예인 대상·개인연기상·미술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과정에서 평론가 박용구 조동화 김영태씨는 ‘뛰어난 리듬감각과 문학적 작품성은 올해 무용계가 얻은 최대의 수확’임을 전제,‘스타성이 있는 현대무용가’로서 ‘박력과 자기춤에 몰입하는집중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며 ‘자기 욕심을 포기할줄 모르는 안무가’로평했다. ○활화산­불생의 무용 안신희는 전남 구례에서 양조장과 정미소,과수원을 경영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어릴때는 부친 安基浩씨를 따라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에 오르거나 섬진강 지류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춤의 흐름을 몸속에 싹 틔울수 있었다.초등학교 5학년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그때까지는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으나 배화여중때부터 춤추기 시작하여 ‘악바리’‘연습벌레’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춤에 대한 강한 집념을 불태웠다.그때도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포즈에 한치의 흔들림을 용납하지 않아 이완과 수축,스피드와지속이라는 범위속에서 반드시 명확성과 평정성 민감성을 끌어냈고 ‘완벽’이라는 해답을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첫무대는 74년 스승인 육완순교수가 안무한 ‘슈퍼스타’다.‘늘씬한 키에 쭉뻗은 몸매,아름다운 외모가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로 그는 다음해엔 1개월간 미국공연,83년까지 유럽순회공연에 합류했다.그는 크거나 작은 어떤무대도 겁내지 않는 무대체질이 천성이기도 하다.한때는 알렉산더 고두노프의 예술성과 테크닉,극적인 춤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적 카리스마,마곳 폰테인의 지고지순한 삶을 선망하면서 직관적인 선택과 엄격한 훈련으로 불균형과 비대칭,현대생활에서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은유적으로 부합시키는 무용구조를 성립해 나갔다. 그의 무용의 길은 한동안 탄탄대로 였으나 대학 3학년때 부친의 사업실패로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고향인 구례에 칩거한 적이 있다.그러나 ‘무용의 길은 너무 멀다’는 것과 ‘예술가는 어려움을 이길줄 알아야만 거듭난다’는뼈아픈 경험끝에 무용없이는 ‘공기없이 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결론아래 한때는 밤낮없이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끝내 ‘하나님이 대로(大路)를 열어주실 것같은 강한 암시’를 받았고 그 시절에는 적선동에 방한칸을 얻어 신촌까지 걸어다니면서도 다시 ‘춤출수 있다’는 기쁨과 샘솟는 창작의지로 창작무용들을 얼마든지 만들어냈다.‘교감’‘13월의 여행’‘청동무늬’‘전설’등은 그때의 산물이다. ○미­유럽순회 공연도 원로 평론가 박용구씨는 ‘안신희는 마치 불을 보면 뛰어드는 나비처럼 그의 춤은 자신의 몸을 사르는 활화산의 무용이자 불새의 무용이며 그의 춤에접하면 고압선에 감전된듯 강한 전율을 느낀다’고 평한다.최근의 그의 춤은 무르익은 성숙을 보이면서 아무런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지상 최대의 자유를 춤으로 구조화하는 시기다.객석의 애증의 그림자마저 읽게된 그는 자연과 문화와의 경계선을 추구하면서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처럼 더높이 더멀리 날기 위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있다.실제로 그의 무용언어는 연극적 대사가 느껴지는 절규와 경악과 유기적인 삶의 풍경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해 낸다.가족은 그의 무용적 삶을 이해하는 부군 韓基天씨와 아들 누리(12살)가 있다.오늘의 한국무용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안신희가 이룬 성좌는 누구보다 밝고 극명하다.한때는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슬픈’ 희비애락에 침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몸속으로부터 솟구치는 득의의 춤을 추게 되었고 쏘는듯 날카로운 춤의 빛줄기는 관객의 가슴에 언제라도 진한 감동을 던져준다.그는 자기 세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는 춤꾼으로서 지금부터가 ‘안신희 무용’을 위한 비상(飛翔)직전의 출발선상에서 고고하게 서있다. ◇연보 ▲1957년 전남 구례출생 ▲1974년 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출연 및 미국지역순회 공연 ▲1983년 안신희 무용발표회,육완순무용단 ‘슈퍼스타’유럽순회 공연 ▲1984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프랑스 소르본대학 무용과수업 ▲1992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레닌그라드국립발레단 합동공연 ‘만가’출연(소련 모스크바·레닌그라드) ▲1993년 대전 EXPO개막축제안무 ▲1996년 서머아트페스티벌 및 빛고을창작무용제 ‘꾼들’안무·출연 ▲1998년 5월 국제현대무용페스티벌 ‘존재’’고향에 대한 보고서’ 안무·출연 한국현대무용협회 및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21C선교무용위원 현대무용분과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강사 대한민국무용제 신인상(81년) 대한민국무용제·대상 및 개인연기상(83년) 코파나스상(84년) ‘2천년대를 달리는 한국의 예술가’(92년)선정,‘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선정
  • 안보리,결의안 해석싸고 또 알력

    ◎이라크 사찰 거부때 ‘가혹한 결과’ 문구/미 “군사공격 의미” 러·중 “아니다” 맞서 【워싱턴·모스크바 AP AFP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가 유엔무기사찰 합의를 위반하면 ‘가장 가혹한 결과’(severest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란 대이라크 경고 결의에 대한 해석을 놓고 또 다시 분열 양상을 드러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3일 “‘가장 가혹한 결과’의 의미는 분명한 것”이라면서 안보리가 전날 채택한 결의안은 이라크의 무기사찰활동 거부시 군사공격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을 미국에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매커리 백악관대변인도 안보리 결의안이 ‘가장 가혹한 결과’에 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이는 “군사적 행동을 분명하게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도 미국과 영국에 맞서 이라크의 합의 위배시 유엔의 자동적 무력개입 규정 명시에 제동을 걸어온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이번 결의가 자동무력개입을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겐나디 타라소프 러시아외무부대변인은 안보리에서 채택된 대이라크 경고 결의안이 이라크의 무기사찰 합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자동적 무력사용은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U자형 국토개발/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국토개발이 시작된 것은 일제시대부터이다.일제는 식민지수탈과 중국침략을 위해 부산∼서울∼신의주,목포∼서울∼원산∼청진을 잇는 X자형 국토개발을 추진하면서 철도와 항만을 건설했다.목적은 한반도의 발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을까 하는 침탈의 효과에 있었다. 해방과 더불어 남북이 갈라지면서 X자의 윗부분이 떨어져나가고 X자의 아랫부분인 인자,즉 남한만 남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공업화시대에도 국토개발은 인자형 개발구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인자의 오른쪽인 경부축을 주축으로 삼았다.왼쪽인 호남축은 보조역할을 하도록 하는 전략을 취해왔지만,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중국이 경제성장에 속도를 내자 우리도 여기에 대응,그동안 소외되었던 서남해안을 개발해야 한다는 L자형 국토개발 방안이 제기돼 우리나라의 국토개발 전략은 전면 수정됐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구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이 나진·선봉지구 개발에 나서면서,그동안 꽁공 얼었던 동해바다의 얼음이 녹고 있다.바로 환동해경제권의 등장이다. 세계화시대에 서남해안 뿐만 아니라 동해안까지 포함해서 바다 3면 모두를 적극 활용하는 U자형 국토개발을 추진해야만 한다.더구나 남한 해안만을 개발대상으로 설정하는 u자형 국토개발이 아니라,신의주에서 남해안을 돌아 동해안 꼭대기의 나진·선봉으로 이어지는 U자형 국토개발이 되어야만 한다. 전국토의 해안선을 십분 활용해 U자형으로 뻗어나가면,그 힘은 돋보기의 원리처럼 만주대륙으로 집중될 것이다.만주대륙을 우리의 활동무대로 삼는 길은 바로 바다를 공략하는 데 있다.
  • 투표함 속 201표 유·무효 공방

    ◎여 “회기 넘기면 무효” 야 “진행된 투표 휴효”/백지투표는 “불법” “기권의미” 해석도 각각 2일 하오 김종필 국무총리지명자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본회의장에서 충돌을 벌인 여야는 이날 이뤄진 표결의 유·무효 등을 놓고 적법성 논쟁도 벌였다. 이날 투표를 마친 의원 197명의 표가 유효한지를 두고 여야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여당측은 “회기를 넘기면 투표행위 자체가 자동무효”라고 주장했다.자민련측은 “의원들 호명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이상득 총무는 “자정을 넘기도록 의장이 투표종결을 선언하지 않으면 계류된다는 설과 자동적으로 종료한뒤 개표 결의안을 내는 두가지 설이 있다”면서 이미 진행된 투표가 어떻든 유효하다고 합법성을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이날 밤 10시 김수한 의장은 3당 총무회담을 소집한뒤 11시까지 투표를 마친뒤 국회를 다시 소집해 개표하겠다고 통보함에 따라 사실상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함께 여당측 일각에서는 김수한 의장이 투표개시 후 40분만에 일시정회를 선언한 것과 관련,“투표행위중 정회하면 자동적으로 무효가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국회 사무처에서도 이에대한 명확한 유권해석을 하지 못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측은 또 한나라당 의원들의 임명동의안 투표가 불법공개라고 주장하며 무효를 선언했다.여당측은 8대 국회때인 72년 7월31 백두진 국회의장 사퇴권고결의안 투표때도 일부 의원이 기표소에 들어가는 척 하다가 나와서 백지투표한 것에 대해 재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는 선례를 들었다.이에따라 박광태 의원 등 여측 감표위원 4명은 재투표를 실시하도록 공식요구했다. 이에대해 법사위원장인 한나라당 변정일 의원은 “기표소에 들어가 가를 찍든 부를 찍든 자율에 맡긴 정상적 투표”라면서 “유·무효 논란은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변의원은 “설혹 백지투표를 했더라도 기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3가지 국토/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한민족은 가슴 속에 세가지 국토를 품고 산다.첫번째 국토는 남한 면적 9만9천607㎢이다.여기에 북한을 합친 22만2천36㎢인 한반도가 통일을 기원하는 우리 겨레의 두번째 국토이다.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잃어버린 국토,언젠가는 되찾고 싶은 땅이 있다.바로 선조들이 말을 달린 만주가 그곳이다. 지금도 만주에는 1백만명에 달하는 동포가 산다.중국의 통치아래 있으면서도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자랑스런 한민족의 후예들이다.북한과 국경을 맞댄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길을 걷는 동포들을 만나게 된다.중국땅이 아니라 마치 고향땅인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다. 연변 조선족자치주는 두만강과 백두산 천지를 거쳐 압록강 중류까지 뻗쳐있다.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의 활동무대를 기준으로 해 볼 때 조선족자치주가 차지한 땅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서기 5세기경 고구려의 영토는 45만㎢였다.당시 고구려·백제·신라를 합친 우리 민족의 국토는 51만㎢.지금 남한 면적의 5.1배,한반도 면적의 2.3배에 달하는 꽤 넓은 영토였다.만주를 포함한 이 세번째 국토가 우리 민족이 마음에 새긴 염원의 국토이다. 지금의 만주땅이 우리땅이 아니라 중국 영토임은 엄연한 사실이다.성급히 만주 옛땅을 되찾자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국수주의다.다만 우리가 대대적인 국토개조를 통해서 한반도를 ‘동북아의 교류중심 국가’로 만든다면 만주도 자연히 우리의 경제권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경제에는 국경이 없는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만주를 다시 우리의 활동무대로 삼을 수 있는 길은 우리 경제의 강력한 힘이 만주로 뻗어나가도록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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