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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선언]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얼마 전 베이징에서 조선족 대학생 체육대회 및 친목회가 있었다.100명 남짓모였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북한에서 온 유학생,그리고 어학연수차 온 한국사람들도 섞여 있었다.분위기가 어떨까 하는 생각과는 달리,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인지 단박에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었다. 조선족 친구가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웃음의 도가니였다.“이 거는(이 분은) 한국에서 온 려행작가입네다” ‘아니,이거라니?’라고 언짢아 할 틈도 없이 학생들은 당장 나를 ‘려사님’(여사님)‘이라고 부르더니 곧 ‘동무’,‘동지’ 등의 공산주의 호칭(?)도 함께 쓰기 시작했다.같이있던 한국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당장 “아니 여성을 어떻게 선생님이라고 합네까?”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중국에서는 남자들에게만 선생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한다. 잘 들어보니 같은 한국말이면서도 이렇게 우리와는 쓰임이 다른 말이 많았다.“세게 바쁘단 말입니다(아주 힘듭니다)”,“우리 나그네는 골이 아주 비상하기요(우리 남편은 머리가 아주 좋지요)”,“다음번에는 지각소멸해야 합니다(지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등. 각자 자기가 자란 곳의 언어를 섞어 쓰는 것도 큰 특징이었다.중앙아시아에서 온 까레이스키 즉,고려인은 말끝마다 ‘오친 하라쇼(아주 좋아요)’라는러시아말을 반복했고,연변에서 온 조선족들도 샹빤(출근)이나 빵주(도움) 등중국어를 많이 사용했다.그에 비해 북한학생은 ‘까부수자’,‘자폭하자’등 섬뜩한 단어도 쓰지만,아주 예쁘게 다듬어진 한국말도 쓰고 있었다.“려사님의 그 끌신(슬리퍼),물맞이 칸(샤워실)에서는 세게 소용되겠습니다” 그날 우리들 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놀랍게도 내가 섞어 쓰는 외국어였다.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있는 스케줄,시스템,노하우 등 간단한 외래어에도 모두고개를 갸우뚱한다.실제로 이 학생들이 한국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볼 때최대의 여러움이 바로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다르거나 모르는 단어도 있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없었다.오히려 그런 차이가 재미를 더했다.10대에서 40대까지 나이도다르고,태어나고 살았던 곳도 다르고,현재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유도 다른우리는 각자의 말투와 생소한 단어들을 따라해 보면서 하루종일 정말 유쾌하게 보냈다.몇명은 내 숙소에서 저녁까지 해먹으며 뒤풀이를 했는데.그 때가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직후라 베이징 유학생 촌에서는 이미 ‘동서남북통일’이 다 되었다며 축배를 들었다.그날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이렇게 우리가 하루도 되지 않아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같이‘조선말’을 쓴다는 것이라고.그러니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한 민족이 틀림없다고.웃고 떠드는 뒤풀이 자리지만 ‘모국어를 통한 민족의 동질성회복’을 얘기할 때는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지난 7년간 세계 오지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말이 안 통하는 나라를다니면서 힘이 들 때나,문화적인 차이로 본의 아닌 오해를 살 때마다 지구저쪽에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7,000만명이나 있다는 생각만으로 얼마나 큰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그러다가 한국말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우리말로 한바탕 수다를 푸는 것만으로도 몇달간의 여독과 외로움이 눈녹듯이사라지는 경험은 또 얼마나 여러번 했던가. 지난번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역사적인 합의를 끌어낼수 있었던 것도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 때문이리라.만약 통역이 필요해물리적으로 시간만 두 배로 늘렸다 해서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같은 모국어를 쓴다는 것은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뚜렷한 증거임을,지난번 체육대회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한비야 오지여행가
  • 국가 울타리속에서 크는 北의 아이들

    북한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그 해답은 EBS가 24일(토) 방송하는 ‘육아일기’(오전9시20분)에서 찾을 수 있다.지난 3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대표단으로 방북한 한양대 정병호 교수가 찍은 필름을 편집한 ‘북한의 육아,2000년 봄 평양의 아기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나’(부제)는 평양에 위치한 김정숙 탁아소,9·15 탁아소와 유치원,경상유치원 등 북한의 육아현장을 두루살펴본다. 북한의 취학전 아동의 교육은 탁아소,탁아소 낮은반,탁아소 높은반,유치원등 네 단계로 나눠진다.북한의 탁아소는 주민들 사이에 주(週)탁아소로 불린다.전문직 여성을 위해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아이들을 맡아준다.아이들은 만 4세가 넘으면 유치원에서 2년간 교육을 받고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에 들어간다. 김정숙 탁아소와 9·15 탁아소에서만난 아이들은 아직 글을 모르지만 동물 그림으로 각자의 밥그릇과 칫솔을구분한다.서너살 남짓한 아이들이 10분 이상 계속되는 교사 이야기를 몸을곧게 세우고 듣는 모습은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준다.경상유치원과 9·15유치원에서는 북한의 영재교육 현장을 만날 수 있다.마이크 없이도 방 안이 울릴 정도의 발성으로 사회를 보는 다섯살 여자아이,세계적인 남성 무용수 누리예프를 연상시키는 고난도의 무용을 5분 동안 쉬지않고 추는 여섯살짜리 남자아이 등은 탄성을 불러 일으킨다.북한은 영재교육을 국가가 직접 맡고 있다. 정교수가 평양에서 만난 아이들은 당 간부나 전문직 종사자의 자녀들로,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북한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다’라는 외신보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이에 대해 ‘육아일기’ 제작진은 정교수의 입을빌어 북한 아이들의 영양상태의 심각성을 전할 예정이다. 제작을 맡은 강영숙PD는 “우리의 관심권 밖에 있던 평양의 아이들이지만언젠가는 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차원에서 평양과 한국 아이들의연관성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新 김정일 연구](2)’먹는 문제’ 해결사

    찬바람이 밖에서 매섭게 몰아치던 지난 96년12월27일.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김정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집회 비밀연설을 통해 당간부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식량난으로 굶주림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당 일꾼들이 앉아서 회의만 하고 있고 뭣들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그러면서 “지금처럼 정세가 복잡한 때에 내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서 걸린 문제들을 풀어줄 수 없다.수령님은 생전에 나에게 절대로 경제사업에 말려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질책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로부터 약 1년1개월이 지난 98년1월16일.김정일은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연형묵 전 총리가 당 책임비서로 있는 자강도의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현지지도에 나섰다.김일성 사망이후 위기타개와 권력기반 구축을 위해 군부 다스리기에만 매달려오던 그가 이례적으로 직접 민생과 경제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이를 시발점으로 김정일은 종전처럼 군부대를 잇따라 방문,군부 추스리기에 나서는 한편 그해 3월9일 성진제강기업소를 시찰하는 등 경제부문에 대한현지지도의횟수를 점차 늘려갔다.과학기술발전을 독려하기 위해 지난해 1월11일엔 연초 첫 나들이로 평성에 있는 과학원을 시찰했다. 다시 1년이 지난 올해 1월24일.두툼한 방한복에 털모자를 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평북 태천군 들판에 나타났다.그가 엄명을내려 추진하고 있는 토지정리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올들어 김정일은 무려 8차례에 걸쳐 토지정리사업장을 비롯해 발전소,양어장,기계공장 등을 시찰하면서 독려의 고삐를 죄어가고 있다.이처럼 그가 경제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식량난 해결과 경제를 살리지 않고는 체제안정을 이룩할 수 없음을 절감한데다 당과 군부를 완전히 장악해 권력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젠 경제부문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김정일의 독려로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9년만에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식량사정 역시 눈에 띄게 나아졌다.이에 힘입어 북한측은 경제회복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또 김정일이 이번 김대중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종 여유를 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그러나 아직도 북한에서 식량은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더욱 공장을 돌리려 해도 전기가 부족해 산업면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먹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면서 종자혁명,감자농사혁명,두벌농사(이모작)및 양어사업의 전군중적 운동을 다그치고 있다.이와함께 증산과 농사의 기계화작업을 촉진하기 위해 토지정리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특히 김정일은 ‘토지정리는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한 대자연개조사업이며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이라며 토지정리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감자농사혁명에 쏟고 있는 그의 관심과 독려도 대단하다. 김성진.그는 감자가 많이 나는 백두산 인근 산골짜기인 양강도 대홍단군 당 책임비서에 지나지 않는다.그렇지만 북한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거의 없다.지난 98년 10월 그곳을 현지지도한 김정일이 ‘동무야말로 진짜배기 혁명가,참된 당일꾼’이라고 극찬하고 그를 따라 배울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이 때 김정일은 ‘감자는 흰 쌀과 같다’며 감자증산을 독려하고 나섰다.이처럼 김정일은 토지정리사업과 감자농사를 통해 식량난 타개를 추구하면서 정보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획경제의근간인 연합기업소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등 구조조정에도 힘쓰고 있다. 이제 김정일은 경제사령관으로 전환기 북한경제의 한 중심에 서 있다.그러나 농업구조와 군수중심의 산업구조의 과감한 개혁과 개방,시장경제의 도입없이는 곧바로 한계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유은걸기자 eky73002@
  • [마음은 북녘 고향에] (1)평양 경제리 출신

    ‘몸과 마음은 이미 고향에.’북녘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려온 응어리는 한순간에 녹아내린다.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향민들은 대동강변에서 멱감던 시절부터 떠올리며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지 못한다.고향땅을 눈앞에 둔 실향민들의 벅찬 감회를시리즈로 싣는다. “이곳이 바로 내가 놀던 을밀대(乙密臺)야.지금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을게야.” 실향민 최선익(崔善翌·83·경기도 일산시 장항동)씨와 나용호(羅容浩·70)씨는 15일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지난 세월 고향 방문에 대한 열망과 가슴이 찢어지는 실망이 수없이 오갔으나 이번처럼 마음이 설렌 적은 없었다.남북의 두 정상이 맞잡은 손을 번쩍들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이제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날 서울 마포구 염리동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만난 최씨와 나씨의고향은 평양시 대동강변에 자리잡은 경제리.마을어귀에는 대동강이 흐르고뒤편에는 모란봉이 우뚝 서 있다. 두 사람은 13살 차이로 월남하기 전에는 모르는 사이였다.하지만 월남한 뒤 이북도민회 평양시민회 사무실에서 만나 20여년을 형·아우로 지내며 의지하고 있다. 어릴적 대동강가에서 ‘동무’들과 멱을 감고 모래찜질을 하며 모란봉 입구에서 ‘헤이따이 고꼬’(병정놀이)를 하던 추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두 사람은 모란봉 입구로 향하는 신작로를 건너 평안남도 도청 옆에 있던 평의고등중학교를 다닌 선후배 사이다.나씨는 “일전에 TV에서 동문인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나왔는데 북한을 방문,학교를 찾았으나 학교는 흔적도 없고 교정에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만 길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고 하더라”면서먼산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최씨는 “그래도 대동강과 모란봉은 옛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고 나씨를 달랬다. 최씨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지난 46년 29살의 나이로 단신 월남했다.나씨는김일성대학 영문과를 다니다 51년 1·4후퇴때 남쪽으로 넘어왔다.두사람 모두 ‘평양에서 살 수 없는지주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평양시민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나씨는 북에 남았던 부모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른다.그러나 부모 형제보다는 시민회 일을 더 걱정한다.나씨는 “시민회에 등록된 실향민은 10만3,000여명”이라면서 “이번 광복절까지 미등록된 평양시민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해질 녘 대동강변에서 모란봉을 바라보는 것이 죽기전 마지막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꿈이 이뤄질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3)잃어버린 먹거리

    고한 김일성 주석과 공개석상에서 또는 비공식으로 수십여 차례 만났던 얘기는 책 한권을 엮을만큼 많은 사연이 있지만,그동안 가장 미묘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번도 제대로 써서 발표한 적은 없었다.몇 년 뒤의 회갑 때에 가서나회고록 안에서 정리를 해볼 작정이다. 맨 처음에 만났을 때에는 다 알려진 바와 같이 문익환 목사 일행과 동석한자리였다.접견 장소로 들어가는데 그가 집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체격이 크고 쇳소리가 나는 음성이었다.김 주석은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호남자의 인상이었다.완전한 백발은 아니고 회색의 반백 머리를 올백으로 넘겼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썹이 짙고 길게 드리워져 있는 점이었다. 원형의 식탁에 모두 둘러 앉았는데 주석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문목사가 왼편에 내가 앉고 수행원들도 함께 앉았다.그는 당시에는 살아 계시던 문목사 노모의 안부도 물었고 용정이나 북간도 시절의 추억도 말했다.문목사는 만주용정에 살 때 집에 독립운동가들이 수많이 묵기도 하고 드나들기도 했는데안중근 의사도 모친이 대접해드린 일이 있다고 말했다. 김주석도 만주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항일군들과 연대할 때에 중국인부락을 지나다가 군량을 보급 받거나 숙박하고 나서 돈이 없으면 간단한 차용증을 써주고 ‘조선인민혁명군 김사령’이라는 글을 남기곤 하였는데,중국혁명 이후에 옛날 지주들을 척결하면서 김사령의 차용증을 지닌 지주들은 거의 다 사면했다는 말이 있더라고 중국정부의 간부들 가운데서 자신과 가장가까웠던 주은래가 전하더라면서 웃었다.그는 특히 옛날 중국의 시 속에서나 꺼우리 라는 만주 지역 사람들의 성씨에도 나타나듯이 만주는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의 서안을 비롯한 예전 고구려 땅에서 남에서는 ‘식혜’라고 하는 감주를 담가 먹는다는데 등소평이가 감주를 썩 좋아한다면서,그 너르고 기름진 땅을 우리 조상들이 국토로서 보존해내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였다.그렇지만 함경북도 일대에는 한때 여진족이 살았다고 하면서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는 ‘불타는 돌’이란 여진 말이며,주을 온천의 주을은‘뜨거운 물’이라는 여진 말이라면서 인민들 중에도 예전 여진의 성을 가진 사람이 간혹 있어서 모두우리 식으로 고쳐 주었다고 했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느닷없이 주석님 어머님이 전도부인이 아니셨느냐고 묻자 그는 잘 못들었다는 시늉으로 귓가에 손을 갖다 대며 되묻고나서 측근이모친께서 교회에 나가시지 않았느냐 하는 말씀이라고 설명해주자 웃으면서대답했다. 우리 오마니는 살기 힘드시니까 교회에 가서 주로 주무셨디…. 사실 주석의 외조부는 장로교의 목사였고 외삼촌은 장로였으며 부친도 장로교단 소속인 숭실학교를 다녔으며 모친도 ‘강반석’이란 성명인데 그 뜻은‘베델’이란 세례명에서 왔다고 한다. 이같이 나도 일찍이 개화한 집안 분위기를 나도 아는 터이고 당시 이북의 개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게 흔한 일이었다.김주석의부친 김형직은 교회 식의 야학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을 모으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러시아 혁명과 신문물에 접하면서 무산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운동에 눈 뜨게 되는데 그때가 아마도 어린 김성주와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만주로 떠날 때가 아닌가 생각 되었다.북선지방의 근대주의자는 마르크시스트와 크리스천의 두 얼굴에서 비롯된다는 것은참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나는 그 뒤에도 이미 작고했지만 당시에는 중국에 망명 중이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공 부처와 만찬을 함께했던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점심을 함께한 적이 몇번 있었다. 공식적인 만찬 자리에서 그는 언제나 활달하게 좌중에 음식을 권하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한식과 중식이 서로 적당히 어우러진 듯한 정식이 코스로 나오곤 했는데 약주도 즐겨 들었다.만찬 술은 인삼주이거나 백두산 들쭉술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15도 짜리 들쭉술을 좋아했다.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들쭉술을 좋아해서 열 두 상자나 비행기편에 실어 보냈다고 했다.들쭉은제주도의 멀구슬처럼 새까맣고 동그란 일종의 들딸기라고 하는데 고원지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요즘에는 남에서도 북한산 들쭉술을 먹을 수 있지만 한정된 야생의 열매로 그 많은 물량을 감당할 수는없을테니 혼합주로 맛을 낸 것이 분명하다.진품 들쭉술은 약간 쌉싸름하고 조금 떫은 것이 진한 적포도주 비슷하면서도 매우 향기롭다.전에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지만 주위에서 하도 말려서 겨우 끊었다고 한다.그는 점심 뒤에 한 시간씩 집무실옆의 방에서 오침을 한다고 말했다. 가 깊은 인상을 받은 어느 점심은 매우 소박했다.작은 메추리 다리를 몇 개먹고나서 국수가 나왔다.주석은 자신이 국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두 끼만 국수를 먹어도 곧 질린다고 하지만,자기는 한 열흘은 먹을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국수를 담은 유리 대접을 내려다보니 면이 그야말로새까만 색이었다.콩물국수인 셈인데 하얀 콩물에 검은 국수가 잠겨있는 모양이 이색적이었다.주석이 다른 날처럼 음식 설명을 내게 해주었다. 이거이 언 감자 국수라고 하는 거요.일전에 독일의 작가 루이제 린저 여사가 왔을 때 독일에 감자 음식이 많은줄 아는데 이렇게 조리하는 방법은 아느냐고 했더니,얼린 감자로 요리하는 건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고 하더군. 검정색‘언 감자 국수’의 면발은 찰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언 감자를 우려내어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는다는데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다.위에는 검은 깨를 뿌리고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서 먹는다. 그가 음식의 유래를 내게 말해 주었다. 우리가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할 때에 인민들이 많이 도와 주었소.화전하는 인민들도 저이 먹을 것이 없는데 우리가 지나는 산길에다 표를 해두고감자를 묻어놓군 합네다.눈이 한 길이나 쌓이고 땅은 꽁꽁 얼어 붙어 있디. 감자를 파내면 시꺼멓게 얼어서 돌덩이야.근거지루 질머지구 가두,언 감자를 구워도 못먹고 삶아도 못먹어요.그때 왜놈들 청야작전이 철저해서 보급선을 멀리서 차단하고 있대서.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남은 빨치산들을 토벌하겠다는 소리요. 인민들이 준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구 그때 함경도 출신 동무가 우려내서 국수 만드는 법을 생각해냈소.가난한 인민들은 다 살아갈 궁리를 하는 지혜가있소. 맹물에다 소금만 넣고 끓인 국수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나중에 뉴욕에서 나는우연히 개마고원이라는 냉면 집에서 이 국수의 조리법을 듣게 된다.아는 사람에게 듣기로는 그 집의 물김치가 기가 막히게 시원하고 맛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서 찾아가 보니 북청에서 피난 나왔다가 미국으로 이민했다는 사람네 집이었다.과연 물김치가 일품이었다.무는 보통 물김치처럼 나박썰기가 아니라 길쭉 길쭉하고 얇게 썰었고 배추 잎도 그만한 크기로썰었는데 오이쪽이 간간이 떠 있다.얇게 채 썬 밤,대추,사과,배,쪽파,등속의 건더기가 알맞게 섞였고 역시 김치 국물이 한 대접이다.고춧가루를 채에 걸러서 탔는지 붉은 물이 들었지만,나중에 뉴욕에 왔던 한시해 부부장에게서들으니 진짜 개마고원 김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집의 할머니가 팔십이 다 된 분인데 ‘언 감자 국수’를 알고 있었다.함북지방의 화전민들이 곧잘 해먹는다는 것이다. 언 감자를 강판에 갈아 채에다 녹말을 내리는 것은 감자국수 해먹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반죽을 하여 국수틀에 넣고 끓는 물에 국수를 뺀다.국수를 찬물에 우릴 적에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끈기를 씻어내어야 찰기가 더 좋다고한다. 콩물 내는 것은,물에 담갔다가 위로 뜨는 콩을 버리고 골라내어 비린 맛이가실 때 쯤까지 끓이다가 설컹할 적에 건진다.그래야만 콩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고 한다.믹서에 갈 적에는 물을 조금 붓거나 편리한 대로 두유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콩국의 맛을 내려면 땅콩이나 잣을 갈아서 넣어도 좋고 들깨나 참깨도 좋다.검은 참깨를 뿌리고 위에다 함경도식 갓김치를 얹어 먹는다.함경도 산야의 들갓은 길이가 짧막하고 줄기도 여리다.여기 갓김치는 전라도 식으로 젓갈을 전혀 쓰지 않아서 깊은 맛은 없는 대신에 쌉쌀하고 향긋한 갓의 냄새가 싱싱한 것이 특징이다.
  • [남북 화해의 길목에서] (3)적십자 지원

    지난달 20일 오후 2시 북한 남포항.5,000t의 비료를 싣고 여수를 떠나 50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북한 땅’은 의외로 포근했다.마중 나온 세 명의북측 적십자 인도요원들의 태도도 예전과 달랐다.하역을 위해 항구에 나온 200여명의 일꾼들도 밝은 얼굴이었다. 남측 적십자요원들은 항구에서 800m 떨어진 숙소 ‘선원구락부’까지 벤츠등 외제차로 이동하고 2층의 특별 연회장에서 영덕게와 비슷한 동해산 게와온갖 진귀한 산나물로 식사를 하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술 한잔 기울이고어깨동무하며 노래도 부르면서 남북이 한 동포,한 형제임을 확인한 자리였다.이튿날 오전에는 ‘봄날의 눈석이(눈 녹음의 북한식 표현)’이란 영화를 함께 보며 한민족으로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더욱 두터워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상회담 합의 발표 후 처음으로 북한에 비료를 전달하고 돌아온 대한적십자사 강대만(姜大萬·56)감사실장은 “회담 합의 후 북의 태도가 이처럼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면서 “헤어질 때에는 하루빨리 통일을 앞당겨 다시 만나자고몇차례나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강 실장은 “과거에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북측이 지난번에는 ‘비료를 줘서 농사에 큰 보탬이 됐다.아주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던지는 등 최고의 친절로 대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곽정수(郭正洙·51)전산팀장 역시 지난달 22일 비료 6,000t을 싣고 울산을 떠나 해주항으로 들어갔다.이틀간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북쪽의 환대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고 한다.곽 팀장은 “남북의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피부로 느꼈다”면서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북 적십자요원들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탁구를 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한다.특히 “남에서는 폭탄주를 마신다고 들었다”는 북측 적십자 요원의 말에 북한 들쭉술에 맥주를 섞어 마시며 밤 깊도록 회포를 풀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맞이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로 바뀌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남이 북에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한 것은 97년.지금까지 80여차례 970억여원 어치의 물품을 적십자사를 통해 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동안 쌀이나 비료 같은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그다지 북의 신뢰를얻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보다는 여러 조건들을 내세우며 ‘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등 지나치게 ‘상호주의’를 내세웠기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들어 98년부터 기계적 상호주의를 배격하고 동포애와인도주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마침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문제만큼이라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미 너무도 많은세월이 흘렀는데 또다시 상호주의를 앞세워서는 일을 그르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북녘동포돕기 대표 李海學목사.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지나친 기대를 갖는것은 금물입니다”.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범국민운동본부’ 대표인 이해학(李海學·55)목사는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역사”라면서 “국민들이 가시적인 성과만을 요구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화해·협력 분위기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7년 결성된 북녘동포돕기 운동본부는 그동안 30여억원을 거둬 옥수수와 비료를 북에 지원해 왔다.요즘엔 씨감자 보급,농업기술 지원 등 북의 영농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목사는 “같은 민족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도와주는 일인 만큼 ‘나는이만큼 줬는데 왜 너는 그것밖에 주지 않느냐’고 따져서는 될 일도 안된다”고 상호주의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그는 정상회담이 끝나면 실무 차원에서 비료·식량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장기수 송환 등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 목사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이라면서 “과거남북이 회담하며 팀스피리트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거나 공작원을 내려보내는 등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진짜 신뢰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남북 통일을 ‘신문지 합봉법(合蜂法)’에 비유했다.겨울에는 벌집을 합쳐야 하는데 이때 그냥 함께 넣으면 다른 냄새를 가진 벌들이 싸우다 서로의 침에 찔려 결국 모두 죽는다.그러나 양쪽 벌집에 구멍을 뚫어 신문지를 대놓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 신문지를 치워도 사이좋게 한곳에서 산다고 한다. 이처럼 남북 통일도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당분간 두 개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하나의 국가 형태로 통일을 먼저 한 뒤 나중에 ‘서로의냄새에 익숙해지는’ 진정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는 게 이 목사의 지론이다. 박록삼기자.
  • 민노총파업 재계, 강경대응키로

    재계는 민주노총이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31일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데 대해 이를 불법으로 간주,강력 대응키로 했다.또 올해 임금협상에서기본급 인상을 최소화하고 기업성과에 따른 성과급 지급을 적극 활용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8일 회원사에 ‘노동계 총파업에 대한 경영계 지침’을 보내 총파업이 시작될 경우 가처분제도와 대체근로,무노동무임금 원칙을적극 활용토록 했다.파업과정에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책임을 묻거나 직장폐쇄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했다. 육철수기자 ycs@
  • 3共 ‘국정日誌’ 내용·의미

    ‘61년 8월16일 주요사항:서울 중앙우체국 이동무선전화 설치,공중전화 업무취급 개시.중요 지시명령:택시 메터제 실시 지시’,‘동년 8월17일 중요지시명령:경향 각지에서 인사정리에 도태된 공무원들이 상관을 무고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무고자 엄중 처단을 검찰에 지시.재판:이정재 사형언도’,‘동년 8월25일 고대생 습격사건 피고인 언도공판:신도환 무기,임화수 사형…’ 청와대 통치사료 비서관실이 지난 2월 중순 발굴,정리해 11일 공개한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3공화국 대통령비서실이 작성한 국정 ‘일지(日誌)’에 기록된 일부 내용이다. ●제3공화국의 날짜별 기록. 날짜별로 ‘주요사항’ ‘중요 지시명령’ ‘인사자 명단’ ‘주요업무 처리사항’ ‘국내외 뉴스’ ‘재판’을 수록한 일종의 편년체 통치사료다. 청와대 정은성(鄭恩成) 통치사료비서관은 “통치사료 창고에 있던 각종 자료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면서 “최고회의 의장과 대통령의 활동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하고 정리한 국가재건최고회의 통치기 및 제3공화국의 날짜별 기록”이라고 말했다.또 “통치주체의 활동과 동정을 통치주체의 입장에서 기록한 ‘1차 사료’는 이번에 발견된 일지가 처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학자들도 “새로 밝혀진 사료가치가 있는 기록은 아니나 당시 집권세력의 동향 및 정국인식 등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것”이라고 평가했다. ●발견된 자료는 총 14권 . 이번에 발견된 자료는 63년 12월17일 박정희(朴正熙)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까지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이,그 뒤에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수석실 담당직원이 작성한 ‘상황일지’형식이다. 크기는 A3 용지이며,가로로 기록되어 있다.63년 말까지는 대략 3개월 단위로,64년부터는 1년 단위로 편철되어 있다.총 번호는 15권으로 되어 있으나,67년 일지 1권이 분실돼 모두 14권이다. ●사건개요만 기록.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특이사 항이 없어서인지 기록이남아 있지 않았고,68년 1월21일 ‘김신조 간첩단 청와대 피습사건’ 등 청와대 내부 혼란기에도일지가 누락돼 있었다.그러나일지에는 사건 개요만 적혀 있을 뿐,구체적 내용은 기술되어 있지 않다.예를 들면 ‘63년 1월25일 주요뉴스:1.김종필씨,박의장의 특명전권 순회대사로 외유 등정,2.김종필씨,외유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의혹사건에 관련이 있다면 달게 심판받겠다고 언명’ 등으로 적혀 있다. 특히 61년 7월3일 인사 항목에는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 육군소장선출,상임위원장 겸임…’이라고 적혀있어 이날 박의장이 전권을 장악했음을 알 수 있다.또 62년 3월22일 국내외 뉴스란에는 ‘윤보선(尹潽善) 대통령하야.상오 11시30분 하야성명서 발표…’라고 기록돼 이날 윤대통령이 물러났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혁명’ 당시의 사회 엿보기.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도적지 않았다.61년 9월4일 주요업무항목에는 ‘커피 원두는 법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으나 다방에서 커피를 판매하게 되면 혁명 분위기를깨뜨리는 일이 발생하므로 업자에게 권고해 역수출되도록 결의했다’고 기록,당시 혁명주체들이 다방커피 판매조차 규제한 사회상을읽을 수 있었다. 아울러 항목 구성에서 최고회의나 대통령의 주요활동방향이 나타나 있는 것도 흥미롭다.최고회의 초기에는 ‘외교’를 제1항에 두고 있어 최고회의가쿠데타 이후 한·미간 외교마찰,한·일회담 등 국제여론에 대단히 민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3권부터는 ‘재판항목’을 새로 두어 혁명재판소의 각종 반혁명 재판을 정리해 놓았으며,61년부터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작성과 관련한 박대통령의 각종 업무보고와 경제동향보고 청취 등이 기록되어 있어 경제개발이최우선 국정목표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정상회담 3차 준비접촉 / 남북대표 대화록

    3일 엿새만에 다시 만난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3차 접촉의 문을 열었다.양측 대표의 환담을 정리한다. ■양영식 남측 수석대표 날씨가 화창한 것이 봄의 교향악이 울리는 것 같아회담의 전망을 축복하는 것 같다. ■김령성 북측 단장 잘 될 것을 예언하는 것 같다. ■양 대표 TV를 통해 김 단장과 북측대표를 보고 많은 분들이 신사 중의 신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길 동무가 좋으면 가는 길이 가깝다’‘천리비린’등의 얘기를 한 김 단장을 ‘길 박사’로 부르고 싶다. 우리 속담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금강산 뱃길이 열린만큼 이번 정상회담 준비를 잘해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열고 하늘 길과 기찻길도 열어 사통팔달의 협력시대가 열리길 바란다. ■김 단장 우리 민족은 ‘3’을 길수로 선호하는 풍습이 있다.단군 즉위날도10월 3일이고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하늘과 땅,사람을 3요체라고 한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표현도 있고 백년해로하는 부부연분을 삼생연분이라고한다.곡절있는 일도 세번만하면 잘 되고 28년전 5월 3일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다. ■양 대표 작년에 해외동포 초청행사에 안병원 선생이 참가해 ‘소원이 하나있다’고 했다.남북이 공동으로 판문점에서 통일음악제를 열어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 자신이 지휘를 하고 싶다고 했다.준비접촉 대표가 디딤돌을놓아 두분 선장이 편안히 나아가 겨레와 세계 앞에 웅비하고 당당하게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자. ■김 단장 우리 민족이 통일만세,통일합창을 부를 수 있도록 하자. 판문점 공동취재단
  • 육군 황중선 상사이웃사랑 ‘살아있는 가브리엘 천사’

    “시련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단단해지고, 고통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다른사람의 고통도 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가브리엘 천사’라는 칭송을 받는 육군 36사단 공병부대 황중선(黃重善·36) 상사의 사랑 실천론이다. 황 상사의 주위는 환자 투성이다.어머니 이순자(李順子·60)씨는 15년전부터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만성 혈액결막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아버지 황사열(黃士熱·60)씨도 우측 대퇴골수문혈성이라는 병에 걸려 골반과 무릎 사이의 뼈를 들어낸 채 인조뼈로 버티고 있다.장모도 10년째 몸이 불편한상태다. 게다가 자녀 2명도 시력장애와 심장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황 상사는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생활하고 있다.그는 ‘건강이 행·불행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불행도 맞서 싸우면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며가족 보다 더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이면 병사 10여명과 함께 부대 인근 원주시 관설동 원주시립복지원을 찾아 장애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거나 말동무를 해준다.지난 89년전방부대에 근무할 때는 남몰래 소년소녀가장을 돕기도 했다.전역 후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해 보겠다는 꿈도 품고 있다. 육군은 황 상사를 육군 충·효·예 모범 하사관으로 선정,참모총장상을 주기로 했다. 노주석기자 joo@
  • ‘혈세낭비’ 또 되풀이

    16대 총선 당선자들이 국회 임기 개시 이틀 만에 1인당 440여만원의 한달치세비를 전액 수령하게 돼 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은 ‘국회의원 수당은 의원 임기가 개시되는 날이 속하는 달의 수당과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날이 속하는 달의 수당을 전액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에 따라 국회에 처음 진출하거나 15대를 쉬고 다시 원내에 진입하게 되는 111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는 16대 국회 임기 개시 이틀 만인오는 5월31일 세비가 지급된다.항목별로는 일반수당 231만원,관리업무수당 23만1,000원,입법활동비 180만원,정액 급식비 8만원 등 모두 443만여원이다. 전체 소요금액은 4억8,4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16대 국회의 개원은 사실상 6월5일 이뤄지기 때문에 당선자들은 입법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비만 챙기는 셈이어서 ‘무노동무임금’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지난 15대때도 신규 당선자에 대한 세비지급관행이 국민의 혈세를 남용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제도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편 한나라당 전국구 당선자인김홍신(金洪信)의원은 18일 273명의 16대국회 당선자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 5월 세비 반납 및 관련 법개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이지운기자
  • 무용/ 공옥진 살풀이와 탱고의 만남

    공옥진의 질펀한 춤과 정열의 탱고가 한자리에서 만난다.어울리기는 커녕 전혀 융화하지 않을 듯한 두 춤세계가 어우러질 무대는 서울 종로5가 연강홀에서 15일 막이 오르는 ‘공옥진,그리고 탱고’. 이같은 공연이 가능한 까닭은,공옥진과 합동무대를 갖는 탱고댄서 공명규가그의 친조카이기 때문이다.공명규는 원래 태권도사범으로 아르헨티나에 갔다가 그곳에서 탱고의 매력에 빠져 정식으로 배웠다.그 결과 동양인 최초의 프로 탱고댄서가 됐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춤은 지그재그로 맞물려 무대에 나선다.플라멩고로 시작해 공옥진의 살풀이·심청전이 이어지면 다시 라콤파르시타가 뒤를 받치는식이다.공명규의 파트너로는 송연희가 출연한다. 30일까지 수·목·금 오후7시30분,토 오후 4시·7시30분,일 오후3시,월·화없음.연강홀(02)476-2030. 이용원기자 ywyi@
  • 민중가수·노래패 “새앨범 향해 진군”

    민중음악을 표방하고 나선 곽주림,김호철,이지상 등 한국민족음악인협회소속 가수들이 일제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 운동권 가요의 ‘2000년대 버전업’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로고송 ‘바꿔’를 불러 주목받았던,대학노래패 ‘조국과 청춘’출신 곽주림은 여성로커로서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독집을 12일부터녹음한다.“음악으로 승부하겠다”며 극구 내용 공개를 꺼리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국과 청춘 분위기의 노래들과 ‘노란 참외’ 등이 수록될 예정이다. 역시 같은 단체와 ‘노래마을’ 소속이었던 손병휘가 포크를 기조로 한 프로그레시브 분위기의 새 앨범을 만들고 있다.도종환 시 ‘오늘 하루’와 안도현 시 ‘그대를 만나기 전에’ 등을 담아 5월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전대협노래단 준비위 출신으로 손병휘와 함께 작업했던 이지상은 ‘사람이사는 마을 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서 치열한 삶의 뒤안길에서 고통받는 공허와 허무에 대해 노래한다.백창우,정지원,신동호,민병일 등의 시에 곡을 붙여 조선독립군 출신 노인과 북한동포,기지촌 여성으로 살다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고 윤금이씨 사연 등을 노래한다.‘통일은 됐어’‘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철길’등. 노래마을에서 활동하고 ‘산책’ 영화음악에도 참여했던 윤정희도 서정적인삶과 희망을 노래한 앨범을 기획 중이다.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민중음악 진영에 속하는 대구지역 노래패 ‘소리타래’는 준비중인 4집 ‘화수분’에서우리 가락과 록리듬의 접목을 꾀해 솔직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다.불러도 불러도 지치지 않는 희망의 화수분을 퍼올리겠다는 것이다. 80년대 ‘단결투쟁가’‘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등 전투적인 노동가요히트곡들을 양산한 바 있고 90년대 들어 인터넷 방송 ‘노동의 소리’를 운영중인 김호철도 박준 2집,박은영,류금신 등의 새음반을 통해 그간 가다듬은목소리를 토해낼 계획이다. 이들의 실험정신이 21세기들어 어떤 변화를 치러낼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 [타이완 총통선거] 오늘투표…이모저모

    [타이베이(臺北)김규환특파원]18일의 역사적 총통선거를 하루 앞두고 중국의 군사행동 위협에 맞서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타이완에서는 막판 부동표를 겨냥한 후보들간 비방유세가 극에 달했다.선거유세가 워낙 치열해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고 벌써부터 지지들간의 반목 등 선거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한편 미국은 무력위협을 하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기위해 특사를 급파했다. ●세 후보 진영사이에 ‘치바오’(棄保) 선전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치바오란 지지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가장 바람직스럽지 않은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지지후보를 버리고(棄),차선의 후보를 택하는(保) 타이완 특유의 선거전략. 쑹 진영은 국민당 지지자에게 “독립지향의 천 후보가 당선되면 전쟁이 난다.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롄을 버리고 쑹을 밀어야 한다”는 ‘치롄바오쑹’(棄連保宋)을 호소.반면 롄 진영은 ‘바오쑹’(保宋)은 천 후보에게 어부지리(漁夫之利)만 안겨준다며 역으로 ‘치쑹바오롄’(棄宋保連)을 주장. 천 진영은“대륙출신 쑹의 당선을 저지해 타이완 출신 총통을 뽑아야 한다”고 ‘치롄바오천’(棄連保陳)을 외치고 있다.여기에 최근 국민당 지도부가 ‘치롄바오천’(棄連保陳)을 결정했다는 소문마저 나돌아 치바오 선전은 유권자들의 투표 향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의 무력침공 위협 발언으로 타이완 정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고 있는 가운데 17일 후보 사퇴와 쑹 후보 지지를 발표한 신당의 리아오(李敖) 후보는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의 미사일 공격 경고에 떨고 있는데 유독 천수이볜 지지자들만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 같다”고 비아냥. ●타이완 남부에 있는 가오슝(高雄)의 한 실업고등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후보 지지도 조사를 실시,특정 후보 지지자에게 욕을 퍼부어 말썽.연합만보(聯合晩報)에 따르면 이 교사는 최근 학생들에게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거수로 표시하도록 지시,마을 이장 아들인 한 학생이 국민당의 롄잔을 지지하자 “롄잔을 지지한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놀려댔으며 이에 대해 학생이 반발하자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욕설을퍼부었다는 것. ●선거를 하루 앞두고까지 당선자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등 혼전 양상이계속되는 가운데 신경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타이베이 궈타이(國泰) 신경정신병원의 천궈화(陳國華) 박사는 최근 한 달간 선거 후유증으로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거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20∼30% 늘고 있다고 말했다.천 박사는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좌절감이나 박탈감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약 60%의 유권자가 이같은 선거증후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지 후보를 놓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간에도 의견 충돌로 반목하는 사례도 크게 늘어 타이완 사회가 선거 후 한동안 심각한 선거 후유증에 시달릴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 ●미국은 16일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재확인하고 타이완해협 양안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 입장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신봉과 폭력의 사용에 대한 반대,양측 대화의 촉진”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처드 홀브룩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기 위해 타이완 총통선거 다음날인 19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할 것이라고 중국 외교부 소식통들이 16일 밝혔다. ●380만명에 이르는 타이완의 20,30대 유권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 동안의 관례를 깨고 중국의 무력사용 위협 이후 총통선거에 적극적인 관심을보이기 시작.천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인 젊은 층은 중국의 무력사용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입장.타이베이에서 만난 한 의대생은 천 후보에게한 표를 던질 것이라면서 “전쟁위협은 걱정하지 않는다.천 후보가 이기더라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천후보가 당선될 경우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여당측의 주장을 일축. *陳후보 당선 유력… 정권교체 가능성.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총통선거를 하루 앞둔 17일 타이완(臺灣)에서는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비 뿌리는 타이베이시 중심부의 충샤오시루(忠孝西路) 다아(大亞)백화점앞.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이동 유세장에는 5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아볜(阿扁·천의 애칭)”,“아볜”을 연호하며 지지분위기를 북돋우고 있었다.지지자외에 시민들도 일부 가세해 300∼400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소리치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반면 옆의 국민당 롄잔(連戰) 후보와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 유세장에서는 20∼30명의 길가는 시민들이 잠시 연설과 구호를 지켜보다 이내 발길을돌려 뜨거운 열기의 천 후보측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린궈밍(林國明·44)씨는 “국민당의 롄과 무소속 쑹이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그래도 국민당 부패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진정한 인물은 천수이볜 밖에 없다”며 “타이완도 정권을 바꿔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회사원 펑위린(馮玉麟·37)씨는 “97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압승했을 때 정권교체는 이미 예견돼왔다”면서 “국민당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측근들이 천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것을 보면 천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점쳤다. 천 후보는 지난 일요일 대회전에서 롄,쑹 두 후보의 집회열기를 압도한데이어,타이완의 우상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리위안저(李遠哲) 전 중앙연구원장과 리 총통의 측근 쉬원룽(許文龍) 기미실업 회장 등을 끌여들여 팽팽했던 3자구도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롄측도 천의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장제스(蔣介石) 초대총통의 미망인 쑹메이링(宋美齡)여사,재계 거물 왕융칭(王永慶) 타이완 플라스틱 회장 등을 끌어들였으나 중량감에서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게 대체적인 평가. 여기에 부정부패,섹스 스캔들,검은 돈 정치 등 국민당의 각종 폐해가 롄 후보에게는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대학생 딩시정(丁希正·20)씨는 “이번선거전을 통해 롄과 국민당 출신 쑹이 부패와 스캔들을 폭로하며 서로 헐뜯는 꼴은 이제 더이상 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앞서 민진당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권교체의 교두보를마련했다.97년 12월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23개 현에서 13개현을 휩쓴 반면,국민당은 8개현을 확보하는데 그쳐 민심은 이미 국민당을떠났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khkim@. *총통후보 부인 3명 내조경쟁도 '후끈'. 타이완(臺灣)의 직선 제2대 퍼스트레이디는 누가될까.타이완 총통선거에서막바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3후보 부인들의 내조경쟁이 치열하다.언론 역시 리덩후이(李登輝)현 타이완 총통의 부인인 청원후이(曾文惠·73)를 잇는퍼스트 레이디감을 집중 조명하고 있고 후보 부인들도 매체와 대중 집회를이용한 막판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가장 이목을 끄는 이는 최근 여론 조사에서 우위를 달리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의 부인 위수전(禹淑珍·45).천후보의 정치적 동지다.85년 여당의 암살기도로 보이는 3차례의 트럭 충돌로 하반신이 마비됐다.휠체어를 탄채 남편의 유세현장에 나가고 있는데 상당한 동정표를 얻는 동시에 남편의투쟁 역정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45세의 젊은 나이와 꾸밈없는 미소,솔직하고 대중적인 대화자세는 그녀의최고 매력 포인트.그러나 최근 TV인터뷰에서천후보가 ‘정치와 법률외에는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무뚝뚝하고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먼 남자,집안에서는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지나친 솔직함’으로 참모진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국민당 롄잔(連戰)후보의 부인 팡위(方瑀·56)는 타이베이 둥우(東吾)대 교수 출신.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조용한 내조에 치중,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을 들어왔다.그러나 최근 남편이 수세에 몰리자 재향군인회청중들 앞에서 “당신들의 연금을 올려 줄 수 있는 후보는 국민당의 롄잔 뿐”이라고 연설하는 등 적극 내조로 돌아섰다.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의 부인 천완수이(陳萬水·59)는 선거 막바지에남편 등 가족들의 사랑을 담은 회고록을 발간,쑹후보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며 지원하고 있다.언론 매체 인터뷰에서 그녀의 공략 목표는 쑹후보의 목을 죄고 있는 국민당 자금 유용스캔들을 씻어내는 것.쑹은 국민당 간부로 있던 90년대 당 공금으로 미 캘리포니아에 아들 명의의 호화주택 5채를 구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그녀는 최근 TV에서 격앙된 제스처와 눈물로 결백을호소,국민들을 깜짝놀라게 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기고] 新사색당쟁의 참회를 염원하며

    ‘국민의 정부’들어 제2건국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해방과 함께 찾아온 건국이 감격적인 것이긴 했지만 내부적으로 불완전한 점이 많았음도 주지되는 바다.국권회복 과정에 수반된 외세 의존의 부산물로 그들을 엎고 동족대결을 소리 높인 세력들이 남북 공히 득세해 갔음도 하릴없는 시류였던 것이다.이 틈에 전 시대의 매국노들은 거리를 활보할 공간을 얻고 민의를 왜곡하는 관제데모가 범람하는 가운데 이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들이 여론을 지배하게 된 것도 어쩔수 없는 세태였던 셈이다. 이렇게 형성 고착된 남북의 지배세력들은 반세기를 견고히 이어왔으니 북쪽은 김일성 일가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권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남한은 치열한 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보수기득권 세력의 지배권 장악만 요지부동이어졌던 것이다.그러나 그 육중하던 장벽도 세월의 흐름과 민의의 끈질긴망치질에 금이 가고 마침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은 역사에 한획을긋는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한국사 수천년에 왕조정부와 외래 식민정부,그리고 권위주의적 독재정부를 거쳐 처음으로 민의에 의한 정부로 가는 것으로 보였다.이는 4·19와 5·18,그리고 6·10항쟁을 잇는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피땀의 노력 결실이라 하겠다.따라서 8·15에 제1의 건국이 이루어졌다면 사상처음 민의에 따라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민간정부 출범은 그 자체 제2건국의 초석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첫걸음이란 항용 불안하기 마련이며 과제는 산적될 수밖에 없다.여기서 그 미결 과제 극복의 길도 지식의 기본원리인 과학에서 찾아질 수밖에없다.이를 역사에 대입할 경우 과학의 기초공리인 인과의 법칙을 수용하지않을 수 없다.그리고 이에 따라 최근 역사 현상의 선행 원인을 객관 추적할경우 일제 36년이나 남북 분단이 사악한 일본인들 탓이거나 제국,또는 패권주의적 미소 양대국 때문이라고만 규정함도 너무 주관적이거나 부분적인 설명일 개연성이 크다. 물론 그 점도 상정되어 마땅하나 원인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냉철히 찾아져야 하니 조선후기,실학자들의 자체 개혁노력을 좌절시킨 보수세력들의몰역사적인 게으름과 지연과 학연,혈연에 얽매어 지루하게 반복하던 ‘당파싸움’에서 또다른 중요원인을 찾지 않으면 한국의 역사교육은 절름발이가 되고말 것이다.자국사의 단점을 침소봉대함도 옳지 않지만 장점만 내세우며 단점을 경시함도 과학적 자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파악한 역사지식은 성경에서처럼 인격을 부여해 인식할수 있으며 이 경우 지난날의 단점을 민족적 죄악으로 각성·참회함은 역사학의 또다른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돌아볼 때 암담한 점이 많다.세상에 한 나라의 선거에 지역적으로 이토록 편차가 심한 경우가 있는지 과문한필자는 알지 못한다.일본인들이 한국인의 성격이 당파성 심하다고 힐난하자이를 일제 식민사학의 대표 이론으로 치부,격렬히 비난해왔지만 과연 오늘의우리는 그같은 논리를 비난만 할 수 있을지 곤혹스럽다. 이제 2000년 새 시대이다.긴 세월 수난받던 한국인도 세계사의 주역으로 부상할지 모른다는 기대감들이 아지랑이처럼 번지는 듯 하다.이는 고무적인 현상이다.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한국인의 마음 또한 선진화되지 않고는불가능할 것이다.한국인은 세계사를 선도할 능력이 있는 민족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선거를 앞두고 전국으로 번진 지역적 당파싸움의 극복과,세계사진운에 발맞출 역사의 화목한 어깨동무가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우리는 작금의 일련의 사태에 참회해야 하며 2000년대국운을 좌우할 선거를 앞두고 옷깃을 여미어야 마땅할 것이다.과거 ‘대한매일신보’에 우국의 필봉을 곧추세우시던 민족 사학자 박은식 선생과 신채호선생의 넋을 빌려 외람되나마 일언하는 바이다. [김재경 경일대교수·
  • 건대생·교직원 1,100명 ‘통일염원’금강산 등반

    건국대(총장 孟元在) 학생과 교직원 1,100여명은 오는 19일부터 3박4일 동안 금강산과 중국 옌벤 일대를 둘러보는 ‘건국 체험,통일로 가는 길’에 오른다.금강산이 개방된 뒤 한국 대학생들의 대규모 방문은 처음이다. 1,000여명은 금강산을 방문하며 30여명은 방천,용정 등 독립투사들의 활동무대였던 연변 지역을 둘러보고 재중국 교포들과 만남의 시간도 갖는다.19일오전 교정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길놀이 등 발대식을 가진 뒤 두 패로 나뉘어여정을 시작한다. 응용통계학과 2학년 김승규(金承奎·19)씨는 “금강산에 가면서 외국에 가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 현실이 가슴아프다”면서 “하루 빨리 통일을 이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조폭 20代·고졸이 주류”

    최근 새로 조직돼 유흥가 등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조직 폭력배는 고교를졸업한 2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경찰청이 최근 100일동안 조직 폭력배 집중단속에 나서 적발한 417명을 연령과 학력 등을 분석해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나이별로 보면 20대가 전체의 62.6%(261명)로 다수를 차지했고 다음은 30대로 22.1%였으며 10대는 7%였다.학력은 고졸(퇴학포함)이 55.6%를 차지했고 중졸(퇴학포함) 36% 등으로 고졸이하가 전체의 91.6%였다. 범죄 유형별로는 유흥가 혹은 영세상인을 갈취한 사례가 84.4%(352명)로 가장 많았으며 조직간 보복 및 세력다툼 4.8%(20명),청부폭력 4.6%(19명),인신매매 1.9%(8명) 등의 순이었다. 유흥가 및 숙박업소를 활동무대로 삼았던 층이 73.2%(345명)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도박장 7%(29명),채권·채무·고리대금업 3.6%(15명),건설·건축업계2.2%(9명) 이었다. 이들 가운데 전과가 없는 경우는 7.6%(36명)에 불과했고 4번 이상의 전과를가진 사람이 74.7%나 됐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여윳돈 투자전략] (상)1억원 이하

    최근 주식시장과 은행권 등 금융시장이 재테크 수단으로서 큰 이점을 보이지 못하자 여유자금을 가진 사람들이 부동산투자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점차 회복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속에 자금규모에 따라 어떤 부동산 상품을 골라야 할 지 소비자들은 고민하고 있다.금액대별 부동산투자요령 및 상품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5,000만원 이하 우선 장기 투자자라면 개발전망이 밝은 소규모 준농림지경매물건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특히 화성·평택·당진 등 서해안고속도로주변이나 제주도 등지의 준농림지는 개발여지가 많아 소액투자의 적지로 꼽힌다. 또 10평형대 아파트나 다세대를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재테크수단이다.신규공급아파트에 대한 평형 제한 규제가 풀리면서 소형 공급이 크게 줄어든 반면 수요는 여전하다.따라서 전세를 안고 구입하거나 경매물건을 낙찰받아 임대사업을 하면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가양동 도시개발아파트는 전세 끼고 구입할 경우 5,000만원이면 다섯채를 구입할 수 있다.매매가가 6,700만∼7,000만원인데 비해전세가는 5,000만∼5,200만원이다.거기에 1,2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을 끼고있기 때문에 취득·등록세를 포함하더라도 1,000만원이면 한채를 구입할 수있다는게 현지중개업소의 귀띔이다. 가양동 백마공인 김봉화(金鳳華)씨는 “전세 수요가 많아 내놓기 무섭게 나가고 있다”면서 “소액을 투자해 임대사업을 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5,000만원∼1억원 이하 우선 20평형대 아파트를 전세 끼고 구입하면 2채이상 구입할 수 있어 임대사업을 할 수 있다.강남구 수서동 신동아 21평형의경우 매매가는 1억2,000만원이지만 전세가가 8,000만∼8,500만원 선이어서8,000만∼9,000만원이면 2채를 구입할 수 있다.또 경기 분당신도시 구미동무지개마을 LG 21평형도 매매가 1억1,000만원에 전세가 7,000만원으로 8,000만원만 있으면 임대사업을 할 수 있다. 경매 역시 괜찮은 방법이다.종로구 창신동 쌍용 26평형의 경우 감정가는 시세와 비슷한 1억2,000만원이지만 대부분 2차례 유찰돼 입찰가는 전세시세와비슷한 7,680만원으로 떨어졌다.9,000만원에 낙찰받더라도 2,500만원 이상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입찰가가 7,000만∼8,000만원대인 다가구주택을 입찰가보다 조금 더 주고 낙찰받은 뒤 임대하는 것도 실속있는 재테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재개발 구역지정이나 사업승인을 얻은 한강변 아파트 지분을 구입하는 것도고려해 볼 만하다. 조합원 지분의 경우 로열층을 배정받을 수 있고 분양가도일반분양분보다 낮다. 금호11구역의 경우 33평형에 입주할 수 있는 15평 지분시세가 1억4,000만원인데 전세를 끼고 사면 9,5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반도컨설팅 문제능(文濟能)컨설팅본부장은 “조합원 분양가가 평당 600만원대로 책정될 경우 입주후 4,000만∼6,0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이청준 신작소설 ‘무소작씨의 종생기’

    이 시대에 누가 들을 이야기가 없어 이야기꾼이 이야기꾼이 된 이야기를 선뜻 들으려 할 것인가.그러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숱하게 해온 이야기꾼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 소설가 이청준의 신작소설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열림원)는 이야기꾼에 대한 이야기다.그러나 ‘부러 지은 티가 나는’ 이름의 이야기꾼‘무소작’씨에 관한 소설적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야기나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소설적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이 중편소설을 읽어 나가노라면 주인공 무소작의 육신은 점점 가벼워지는 반면 작가의 이야기관은 착실하게 살이 붙는다. 작품은 낯 익지 않은 낱말로 시작되는 제목에서부터 어쩐지 다소 수상해 보인다.그러나 탁월한 이야기꾼인 작가가 곧장 오늘은 자신의 몇십번 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관을 말하겠다고 나설 리는 만무하다.30년 넘게 쉬지 않고 소설을 써온 작가의 소설관은 귀담아들을 만할 터이다.하지만 어떤면에선 이야기답지 않은 제 이야기관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더 중요할수 있다.삶이나 사회의 구체적 일면보다는 크고 작은 현상을 관통하는 뼈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해주고 싶을 때 우화란 방법을 쓴다.인간 삶의 여러 조건들에방해받지 않고서 하고 싶은 말을 재빨리 해치우기 위해 동물의 의인화 기법을 채택한 우화에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곤 한다.이때의 인간은 보통 소설의 인간보다 훨씬 몸이 가볍다,마치 내장같은 것이 없는 것처럼.이청준의무소작씨는 이야기,이야기꾼이란 무엇인가를 설득력있게 말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가볍게 변조된 우화적 인물이다. 물론 무소작은 처음엔 전혀 우화적이지 않다.마당의 강한 볕발을 동무삼아외롭게 보내야만 했던 유년의 시간들,이상한 ‘꽃씨 할머니’에 대한 기다림,그리고 높은 산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볼 때 가슴에 휘몰아쳐 오는 먼 곳에 대한 동경 등등 차라리 작가의 소년시절을 연상시키는 자전 소설적 분위기로 독자를 감싼다.그러나 열세살 작가와 같은 나이로 고향을 떠나면서 무소작은 우화적 인물로 변신한다. 기력이 떨어진 예순살 노인으로 그는 고향으로 되돌아 오는데 작가는 그간의 삶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무소작은 먼곳을 떠돌기를 좋아하는 기벽을 가진,그러나 신기할 정도로 세계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거기에는 그만한 연배의 한국인이면 어쩔 수 없이 지녀야할 역사적 흔적이 ‘상쾌하게’ 무시된다.몇십 편의 이야기에서 이 흔적과 혼신의 씨름을 해왔던 이청준은 전연 우물쭈물 하지 않고 역사적 내장을 빼고 무소작을 초 한국적인 우화의 세계로밀어 넣는다. 그리고 역사 대신 이야기,혹은 소설이라는 초 역사적 문제와 대결시킨다.어릴 적 전설인 ‘꽃씨 할머니’를 동원한 소설가의 위기 해결 방법과 이야기의 끝맺음이 애매하고 성에 안 찰 수 있다.그러나 소설에 관한 우화소설 ‘인문주의자…’는 이야기만으로 재미있으면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우화로서의 뼈대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열림원은 작가의 8년만의 소설집 ‘목수의 집’도 같이 발간했다. 김재영기자 kjykjy@
  • 전경련 지식기반경제센터 3개팀 가동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1세기 지식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경련내에 ‘지식기반경제센터’를 설립키로 했다. 전경련은 13일 오전 김각중(金珏中) 회장대행 주재로 올해 첫 월례회장단회의를 열고 21세기 지식혁명시대에 대비,‘지식경영’‘산업기반’‘지식사회’를 연구하는 3개팀으로 된 지식기반경제센터를 구성,운영하기로 했다. 지식기반경제센터는 지식경영 이론 및 현장도입 방안,산업별 지식기반 확충,e-비즈니스 환경구축,정보화 교육 및 제도개선 등에 주력한다.기업 경쟁력강화를 위해 임금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문제와 관련해서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와 함께 올해 중 중견 벤처기업 60개사와 외국기업 40개사 등 100여개 기업을 신입 회원사로 영입할 계획이며,벤처기업에게는 종업원 수와 매출규모등 기존의 회원사 자격 규정을 완화해주기로 했다. 육철수기자 y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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