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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테네 2004] 남복 12년만에 정상 스매싱… 20일 우리끼리 金 다퉈

    아테네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은 한국선수끼리 펼치는 4년 만의 리턴매치다. 20일 밤 11시 금메달을 놓고 격돌하는 20년지기 김동문-하태권조와 같은 소속사 1년 선배이자 한국 대표팀의 최고참 듀오 이동수-유용성조.한국 배드민턴을 대표하는 이들 4명은 모두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다. 4년 전 시드니올림픽 때 준결승에서 맞붙어 선배인 이-유조가 김-하조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가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고,김-하조는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4명중 금메달 맛을 본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에서 길영아와 조를 이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박주봉-나경민조를 누른 김동문.이번 대회 혼합복식 8강 탈락의 한풀이에 나선 김동문과 생애 첫 금메달 고지에 오른 하태권,시드니올림픽 은메달의 애석함을 풀기 위해 4년간 절치부심한 이동수와 유용성.모두 한치의 양보 없이 전력을 다할 것이 분명하다. 준결승전에서 3번시드의 김-하조는 엥 하이안-플랜디 림펠리(인도네시아)조를 맞아 첫 세트 초반 3점차 리드를 당했으나 강력한 스매싱을 앞세워 8-8에서 전세를 뒤집은 뒤 내리 7점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2세트에서는 안정된 네트플레이와 전방위 공격을 뽐내며 단 2점만을 내준 채 승부를 결정지었다. 시드를 배정받지 못한 이-유(세계 9위)조는 5번시드의 옌스 에릭센-마르틴 룬드가르트조의 높이에 눌려 첫세트를 9-15로 내줬으나 이후 과감한 네트플레이를 펼치며 15-5,15-3으로 거푸 세트를 건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이어 2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아테네 2004] 김대은 ‘은’ 양태영 ‘동’ 개인종합 첫 메달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0.012점차로 금메달을 놓쳤다.’ 1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아테네 올림픽인도어홀에서 벌어진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전이 끝난 뒤 한국선수단에는 환희와 아쉬움이 교차했다.‘체조 황제’를 가리는 올림픽 체조 개인종합에서 김대은(20·한국체대)과 양태영(24·경북체육회)이 나란히 사상 첫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거뒀지만 다 잡았던 금메달을 코앞에서 놓쳤기 때문. 각각 57.811점과 57.774점으로 경기를 마쳐 1·2위를 달리던 이들은 3위에 머물던 미국의 폴 햄이 마지막 철봉 경기에서 고난도 기술에 착지까지 실수 없는 연기로 9.837점을 얻어 합계 57.823점을 확보하는 바람에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햄과 김대은의 점수 차는 불과 0.012점에 불과했다.이들로서는 결과적으로 4번째 종목인 뜀틀에서 착지를 하다 옆으로 넘어져 8점대 이하의 점수가 예상되던 햄이 의외로 9.137점의 높은 점수를 받는 등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득을 본 게 못내 아쉬웠다.하지만 한국 체조는 올림픽 개인종합에서 사상 최초로 메달을 따낸 데 이어 단체전에서도 4위에 올라 명실상부한 체조 강국 대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사실 김대은은 개인종합 메달은커녕 종목별 메달도 기대하지 않은 ‘신예’.지난 1994년 영광 중앙초등학교 3년때 ‘멋있어 보여’ 체조에 입문한 김대은은 경력 7년 만인 지난 2001년 태극마크를 달았다.마루,링 등 선호 종목도 있지만 그동안 대표팀에서는 개인종목보다 팀 경기 위주로 6개 종목을 익혔다.지난해 올림픽 예선을 겸한 애너하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5위와 올림픽 티켓 획득에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동메달에 그친 양태영은 대구유니버시아드에서 4관왕을 차지한 한국 체조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훌륭한 체조 선수는 모든 종목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지난 1991년 창천초등학교 때 체조를 시작한 양태영은 99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window2@seoul.co.kr
  • [이창구기자의 아테네리포트] 영웅들의 외로운 도전

    1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남자체조 개인종합 결승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김대은과 양태영은 분명 한국 체조사에 확실한 이정표를 세웠다. 체조에서 개인종합이 무엇인가.바로 ‘체조 황제’를 뽑는 무대이다.마루운동 안마 링 뜀틀 평행봉 철봉 등 6개 종목을 골고루 잘 하는 선수만이 우승할 수 있다. 여홍철과 이주형이라는 세계 최고의 뜀틀 선수와 평행봉 선수는 있었지만 ‘체조의 달인’은 없었기에 두 선수는 더욱 빛났다.개막 이후 썰렁하기만 했던 아테네올림픽 인도어홀도 이날만큼은 3000여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김대은과 양태영은 2시간 동안 너무나 외로운 경기를 했다.취재기자들을 제외하면 이날 두 선수의 활약을 현장에서 지켜본 한국인은 10명 미만이다.금메달이 확실한 양궁과 유도에서 본 태극기의 물결도 없었다. 선수의 가족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흔드는 태극기 하나가 중국 미국 루마니아 등 체조 강국의 국기 속에서 외로운 섬처럼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장내 아나운서가 각 종목을 시작할 때마다 두 선수를 멋진 목소리로 소개했지만 박수는 들리지 않았다. 가장 어렵다는 링을 완벽하게 연기했는데도 두 선수는 환호를 받지 못했다.각국 응원단은 야유와 함성으로 자국 선수를 ‘지원사격’했다.심판이 점수를 짜게 줬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야유를 보냈다.선두를 달리던 한국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면 ‘우-’하는 소리를 질러 압박했다. 시상대에 오른 양태영과 김대은은 관중석 어디를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두 선수 중 하나가 금메달을 땄더라면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조용하고 창피한 시상식을 볼 뻔했다. 자랑스러운 두 선수가 외롭게 금메달에 도전할 때 한국선수단의 고위 관계자들은 한 호텔의 리셉션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실한 금메달보다는 ‘의미 있는 도전’에 더 큰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window2@seoul.co.kr ■ 아테네올림픽 특별취재단 이창구기자(체육부) 김명국차장(사진부) 김태충차장 조병모 위원석기자(이상 스포츠서울 스포츠부) 김용습(〃 사회부) 강영조기자(〃 사진부)
  • [아테네 2004] 男 개인전 노메달 수모

    ‘아! 1점….’ 이렇게 힘든 일이었을까.20년 동안 쌓여온 한국 남자양궁의 올림픽 금빛 숙원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기대를 모은 장용호(28·예천군청) 박경모(29·인천 계양구청) 임동현(18·충북체고) 트리오는 19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양궁 개인전에서 단 한명도 메달권에 오르지 못하며 올림픽과의 질긴 악연을 끊어내지 못했다.이로써 한국은 2000년 시드니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남자 개인전 노메달 불명예를 안았다. 첫 출전한 1984년 LA올림픽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세번째.지금까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대회는 은메달을 따낸 88년 서울올림픽(박성수)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정재헌) 정도다.사상 처음 전 종목 석권을 노리던 한국 양궁의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됐다. 이날 변수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의 변덕스러운 바람이었다.전날 한국 여궁사들을 괴롭히기도 했던 바람은 이날 오후 들어 위세를 부렸고,오조준에 실패한 한국 남자 궁사들은 뜻하지 않던 상대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장용호(28·예천군청)가 16강(18발)에서 먼저 눈물을 삼켰다.90년대 명지도자 이기식 감독이 키워낸 호주의 신예 팀 쿠디히(17)에게 역전패를 당한 것.6엔드 두번째 슈팅까지 한 점을 앞섰지만 마지막 발에서 긴장한 탓인지 8점에 그쳤고 쿠디히는 10점을 꽂아 165-166으로 승부가 뒤집어 졌다. ‘쿠디히 불운’은 맏형 박경모에게도 이어졌다.쿠디히와 8강전(12발)에서 만나 3엔드까지 84-84로 팽팽한 승부를 펼쳤으나 4엔드 들어 막판 집중력이 흔들리며 111-112,다시 한 점차로 석패했다. 마지막 희망이던 임동현마저 8강에서 84년 LA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노장 야마모토 히로시(42·일본)에게 2엔드에서 벌어진 2점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110-111로 무릎을 꿇었다. 서거원 양궁 남자대표팀 코치는 “20년 동안 맺힌 한을 풀 것으로 기대했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면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던 것 같다.하지만 단체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테네 2004] 박성현은 누구

    ‘신의 땅에서 활의 여신으로 거듭나다.’ ‘대기만성’ 박성현이 ‘신들의 고향’ 아테네에서 여신 아르테미스로 거듭 태어났다.아르테미스는 제우스의 딸이자 태양의 신 아폴론의 쌍둥이 남매로 활 솜씨가 매서웠다. 첫 근대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된 파나티나이코 양궁 경기장은 그녀가 2인자 껍질을 깨고 1인자로 거듭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였다. 에게해와 인접해 바람 빠르기가 초당 2.5∼4m를 넘나들고 회오리도 자주 일어나 과녁 한 가운데 화살을 꽂기가 힘든 곳이었지만 170㎝의 키에 몸무게 72㎏의 탄탄한 체격에서 시속 196㎞의 화살을 뿜어내는 ‘파워 슈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남자 선수 못지 않은 강궁을 사용하는 박성현.70인치(약 178㎝) 길이에 당기는 힘이 무려 44.5파운드(약 20㎏)나 되는 활,탄탄한 기본기와 과감한 플레이가 그녀의 무기였다. 박성현을 이야기하려면 ‘국내 1인자,국제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준 동갑내기 윤미진과의 관계를 먼저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국제양궁협회(FITA) 랭킹 2위인 그녀는 태릉선수촌에서 연습할 때나 국내대회에서는 세계 1위 윤미진을 앞섰지만 국제대회만 나가면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라이벌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오늘의 영광을 이룰 수 있었다.박성현은 은근히 아테네 결승에서의 라이벌전을 그려 왔지만 윤미진이 8강전에서 타이완의 위안슈치에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또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성사되지는 않았다. 박정복(53)씨와 강순자(49)씨 사이에서 딸 부잣집 막내로 태어나 1993년 군산 소룡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다. 전북체고 때만 해도 그저 신체조건이 좋고 양궁을 즐기는 소녀 궁사로만 여겨졌을 뿐 이렇다 할 성적은 없었다.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고교를 갓 졸업한 2001년 3월 종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국가대표선발전을 1위로 통과하면서부터. 어찌 보면 이른 나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고교시절 이미 시드니올림픽 금메달을 쏜 윤미진에 견주면 오히려 늦은 도약. 이후 크고 작은 국제 경험을 쌓으며 실력도 쑥쑥 자라났다.그해 5월 코리아국제양궁에서 개인 3위,단체 1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7월 유럽그랑프리 3차리그에서는 개인전 2위를 거머쥐더니 윤미진이 참가하지 못한 9월 세계선수권에서는 ‘맏언니’ 김경욱(33·모비스)을 연장 접전 끝에 누르고 우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듬해부터 윤미진과 팽팽한 맞수 관계를 유지했다.7월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맞대결을 벌여 1위를 내줬으며,8월 아테네 프레올림픽에서도 윤미진과 준결승에서 마주쳐 동메달에 그치는 등 1인자의 그늘에 가렸다. 같은 달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드디어 맞수를 꺾고 정상에 올랐으나 국내에서 열린 데다 대회의 위상도 낮아 흡족한 결과는 아니었다. 올해 들어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꾸준히 1위를 유지,일찌감치 아테네 출전을 확정한 박성현은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에서 마침내 자신을 활짝 꽃피웠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아테네 2004] 여자 양궁 세계를 쐈다

    [아테네 2004] 여자 양궁 세계를 쐈다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한국 양궁의 사상 첫 전종목 석권을 향한 진군이 시작됐다.박성현(21) 이성진(19·이상 전북도청)이 나란히 금·은메달을 거머쥐며 한국의 올림픽 여자 개인전 6연패를 일궈냈다.사격 여자 더블트랩에서는 ‘육군 중사’ 이보나(23·상무)가 값진 은메달을 보탰다. 박성현은 18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경기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이성진과 마지막 한 발을 남길 때까지 동점을 이루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110-108로 이겨 금메달을 차지했다.한국은 시드니올림픽 2관왕 윤미진(21·경희대)이 8강전에서 위안슈치(타이완)에게 덜미를 잡히는 위기를 딛고 양궁 최강국 면모를 다시 한번 뽐냈다. 마르코풀로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더블트랩에선 이보나가 결선합계 145점으로 킴벌리 로드(미국)에게 1점 뒤져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지난 16일 트랩에서 ‘깜짝 동메달’을 딴 이보나는 한국선수단에서는 맨 처음 혼자 2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갈라치올림픽홀에서 열린 탁구 여자복식 8강전에서는 이은실(삼성생명)-석은미(대한항공)조와 김경아(대한항공)-김복래(마사회)조가 각각 북한의 김현희-김향미조,크로아티아의 타마라 보로스-코넬리아 바디아조를 누르고 준결승에서 만나 은메달을 확보했다. 한편 남자축구는 테살로니키 카프탄조글리오스타디움에서 열린 말리와의 A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11분부터 7분 사이 조재진의 연속골과 상대 자책골로 극적인 무승부를 이뤄 8강에 합류했다.한국은 말리와 1승2무(승점 5)로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차에서 밀려 조 2위가 됐다.한국 축구가 올림픽 8강에 오른 것은 지난 1948년 런던대회 이후 56년 만이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2004] 올림픽 8강 도전史

    [아테네 2004] 올림픽 8강 도전史

    ‘5전6기’ 한국축구는 올림픽본선 8강에 오르기까지 무려 56년 동안 5차례의 뼈아픈 실패를 되풀이했다.본선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광복의 흥분이 남아 있던 1948년.그해 5월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한국은 3개월 뒤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들은 흥분했다.조별리그가 없던 당시 16강 토너먼트 첫 상대로 멕시코를 만난 ‘원조 태극전사’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울분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골퍼레이드를 펼치며 5-3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그러나 이것이 전부였다.8강전에서 강호 스웨덴에 0-12로 대패하면서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16년 만에 다시 참가한 도쿄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 3전 전패를 당했다.3경기에서 단 한 골을 넣고 무려 20골을 내주며 체면을 구겼다.4년 뒤 멕시코대회 본선행에 실패한 한국은 일본이 동메달을 따는 것을 말없이 지켜봐야 했다. 당시의 충격으로 한국은 오랫동안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24년 만인 1988년 개최국 자격으로 ‘무임승차’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러시아 미국 아르헨티나 등 강호들과 만나 2무1패의 괜찮은 성적을 내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올림픽 단골손님이 됐다.그러나 이번엔 조별리그 통과가 ‘하늘의 별따기’였다.1승에도 목말랐다.될 듯 될 듯하면서도 매번 주저앉았다.96년 애틀랜타대회에선 가나를 상대로 48년 만에 승리를 추가했지만 역시 예선 탈락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가장 아쉬운 대회였다. 조별리그에서 2승1패의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절치부심한 한국은 6번째 도전인 아테네올림픽에 ‘올인’했다.2002한·일월드컵 4강 진출도 자극제가 됐다.결국 한국은 8강 진출의 1차 목표를 이뤘고 이제 메달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아테네 2004] 사격 여자더블트랩 이보나 또 1점차 눈물

    [아테네 2004] 사격 여자더블트랩 이보나 또 1점차 눈물

    아쉬웠다.그러나 장했다. 이보나의 본선 점수는 110점.비록 3라운드 점수(37점)에서 1점 뒤져 2위로 결선에 올랐지만 ‘기적’을 기대케 했다.더블트랩은 그녀가 수없이 메달을 장담을 해온 주종목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지난 16일 연습 한번 안해보고 출전한 트랩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국제 무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인 이보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격발 리듬을 타며 4번째 사격까지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1점 차 3위로 결선에 합류한 세계 9위 이노우에 메구미(일본)가 2번 사격에서 2발 가운데 한 발을 놓친 덕에 쫓기는 부담감도 덜었다. 5번 사격에서 아쉽게 한 발을 놓쳤지만 이후 10번 사격까지 완벽하게 경기를 이끌어나갔다.기회도 왔다.1위 로드가 10·11번 사격에서 각각 1발씩을 놓치며 역전을 허용한 것.세계 8위의 다크호스 이보나에게 한국 클레이 종목 첫 금메달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긴장감 때문이었을까.12번 사격에서 1발을 놓치며 다시 동점을 허용하면서 급격히 페이스가 흔들려 14·15·17번 사격에서 1점씩을 빠뜨렸다.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00시드니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세계 7위 로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4번 사격에서 한발만 실수 ,2점 차로 앞서 나갔다.대세가 기운 순간 이었다.이보나는 남은 사격을 모두 만점으로 마쳤지만 결국 1점 차로 접근하는 데 그쳤다. 현역 중사인 이보나는 지난 4월 프레올림픽 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였다.그동안 공기 소총에 가려 오랫동안 무명의 설움을 곱씹었으나 이번 올림픽에서 혼자 은·동메달을 따내 사격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이보나가 클레이 종목에서 연속 메달 총성을 울린 것은 사실 기적이나 마찬가지다.대한사격연맹에 등록된 3000여명의 선수 가운데 클레이 선수는 불과 50여명.사격강국으로 치면 한마을 동호인 숫자에도 못미친다.한발에 240원하는 비싼 산탄값 때문에 상무를 제외한 실업팀 창단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현실은 척박하다. 더구나 여자 클레이 선수는 모두 10명뿐.이보나가 메달을 딴 트랩과 더블트랩에서는 단 6명이 국내대회를 치른다.그것도 단체전 없이 개인전만 열려 경기 경험을 쌓을 기회도 적다.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 나가야만 경쟁력을 키우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아테네 2004] 무서운 10대 따로 있었네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다관왕과 세계기록도 부럽지 않다.” 중반을 향해 다가가면서 다관왕과 세계기록이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이색 메달로 조국에 큰 기쁨을 안긴 무서운 10대들이 올림픽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마리엘 자그니스(19·미국),유도 남자 81㎏급 우승자 일리아스 일리아디스(17·그리스),수영 여자 배영 100m 은메달과 개인혼영 2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커스티 코벤트리(19·짐바브웨)가 그 주인공들. 자그니스는 18일 결승에서 전 세계챔피언 탄슈(중국)를 15-9로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미국에 올림픽 출전 108년 만에 처음으로 펜싱 종목 금메달을 안긴 것이다.더욱이 자그니스는 올림픽 경험이 전혀 없는 신예로 이번 올림픽 출전도 우연히 이뤄졌다.세계랭킹 11위인 자그니스는 당초 이날 동메달을 딴 팀 동료 에밀리(세계 1위)와 사다(10위) 제이콥슨 자매에게 밀려 출전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나이지리아가 본선티켓 1장을 포기하는 바람에 행운을 안았다.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은 자그니스는 “여기에 온 것만도 좋은데 금메달까지 따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보다 더 기분이 좋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리아디스의 금메달도 개최국 그리스엔 귀중하다.올림픽 출전사상 유도 종목 첫 금메달이다.특히 8강전에서 한국의 권영우(마사회)가 소극적인 태도로 지도를 받아 4강에 오르는 행운을 잡은 일리아디스는 17살의 나이로 올림픽 유도 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도 이름을 남기게 됐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지만 짐바브웨에 올림픽 수영 사상 첫번째와 두번째 메달을 동시에 전한 코벤트리도 주목을 받았다. 장기적인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국 생각으로 늘 마음이 아팠다는 그는 “나의 금메달로 고통 속에 있는 조국 국민들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통신] 그리스 역도선수 22g차 동메달

    그리스에 첫 메달을 안긴 남자역도 62㎏급의 레오니다스 삼파니스가 불과 22g의 몸무게 차로 동메달에 머물러 희비가 엇갈렸다.삼파니스는 중국의 리마오셍과 똑같이 312.5㎏을 들어올려 공동 2위에 올랐다.그러나 삼파니스는 계체량 결과 리마오셍보다 22g이 더 나가 ‘같은 무게를 들었을 때 체중이 덜 나가는 쪽에 손을 들어주는’ 역도규정에 따라 3위에 그쳤다.
  • [아테네 통신] 北 김정수 “동메달 만족 못해”

    남자사격 권총 5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북한의 김정수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올림픽에 처음 나왔다고 3등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한 뒤 “금메달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우리는 은·동메달을 장려하지 않는다.”는 그는 “나중에 금메달을 따겠다.”고 강조.
  • [아테네 2004] 사격남자 50m 결승 진종오 銀

    [아테네 2004] 사격남자 50m 결승 진종오 銀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아….” 사격 남자 50m 권총 결선 경기가 벌어진 마르코풀로사격장.본선을 2점차 1위로 통과한 진종오(25·KT)의 7발째 점수가 전광판에 뜨자 관중석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점수는 6.9점.평소보다 3점 이상이나 낮았다.진종오도 순간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결국 2위로 결선에 오른 미하일 네스트루에프(러시아)가 8.9점을 쏴 오히려 1.4점 앞서기 시작했다.한 번 역전된 점수는 끝까지 뒤집어지지 않았다.단 한 발의 실수로 눈 앞에 둔 금메달이 은색으로 바뀌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진종오는 17일 아테네올림픽 사격 남자 50m권총에서 본선 567점을 쏴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페이스가 흔들려 합계 661.5점으로 네스트루에프(663.3점)에 이어 2위에 그쳤다.북한의 김정수(28)는 합계 657.7점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진종오는 이로써 올림픽 권총 종목 사상 첫 메달을 은메달로 장식했다.또 이번 올림픽 한국선수단 첫 은메달이자 전날 여자 트랩에서 동메달을 딴 이보나(23·상무)에 이어 사격 두번째 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 사격은 그동안 남자 소구경소총 복사의 이은철과 여자 공기소총의 여갑순 등이 금메달을 따냈으나 권총 종목에서는 노메달에 머물렀었다. 결선 시작 전만 하더라도 그의 금메달은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본선에서 8점 짜리만 두번 쐈을 뿐 나머지 58발을 9점 이상 과녁에 맞히는 등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다.2위 네스트루에프와는 비교적 큰 2점차. 결선 초반의 페이스도 나쁘지 않았다.1,2번째 격발까지 점수차를 그대로 유지했다.그러나 끝내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세번째 격발에서 7.6점을 쏴 추월을 허용했다.5,6번째 격발에서 10점 이상을 기록해 다시 경기를 뒤집었지만 결국 7번째 격발에서 통한의 6.9점을 쏴 재역전당했다. 불운도 겹쳤다.7번째 격발 때 전자식으로 작동되는 방아쇠를 당겼지만 불발된 것.방아쇠에 부착된 센서용 렌즈를 손가락으로 완전히 가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급한 마음에 다시 격발했지만 과녁 중앙을 한참 벗어났다. 이번 대회 10m 공기권총 은메달리스트인 네스트루에프는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막 발을 만점에 가까운 10.6점을 쏘며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올림픽] 이원희 첫金 메쳤다

    [아테네 올림픽] 이원희 첫金 메쳤다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3·마사회)가 화끈한 한판승 행진을 펼치며 마침내 한국선수단 첫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또 북한의 ‘유도영웅’ 계순희(25)와 ‘여자 헤라클레스’ 이성희(26)는 나란히 은메달을 따냈다. 이원희는 아테네올림픽 개막 4일째인 16일 밤(이하 한국시간) 그리스 아테네 아노리오시아홀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급 결승에서 2003세계선수권 3위인 러시아의 비탈리 마카로프를 맞아 줄곧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종료 9초를 남기고 안뒤축 걸기 한판으로 마무리,한국선수단 ‘금메달 1호’의 주인공이 됐다.남북한 동반 금메달의 꿈을 부풀린 계순희는 여자 57㎏급 결승에서 독일의 이폰네 뵈니슈에게 효과 1개 차이로 아깝게 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48㎏급 금메달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실패했다. 준결승에서 몰도바의 빅토르 비볼을 맞아 경기 시작 1분24초만에 불의의 기습을 당해 절반을 내줬으나 상대의 방심을 틈타 11초 뒤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한판승을 낚은 이원희는 마카로프와의 결승에서 우세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2분36초와 5분53초 거푸 유효를 보탠 뒤 9초를 남기고 업어치기에 이은 안뒤축 걸기로 한판승을 따냈다.이원희는 앞서 준결승까지 3경기 중 2경기도 한판으로 장식하는 화끈한 공격력을 보였다. 이에 앞서 한국의 이보나는 이날 마르코폴로사격장에서 열린 사격 여자 트랩 결선에서 83점을 쏴 호주의 수전 발로그(88점)와 스페인의 마리아 퀴타날(84점)에 이어 3위에 올라 동메달을 보탰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2004] 이원희는 한치 허점도 용서않는 원칙주의자

    [아테네 2004] 이원희는 한치 허점도 용서않는 원칙주의자

    |아테네 특별취재단|“한국 유도의 미래가 걱정스럽거든 이원희를 쳐다보라.” 지난해 9월 오사카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유도계 안팎에서는 “전기영을 끝으로 한국 유도도 끝났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그러나 남자유도 대표팀 권성세 감독만은 “웃기는 소리”라며 코웃음쳤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 ‘보증수표’라던 60㎏급의 최민호가 동메달에 그치고,‘다크호스’ 방귀만(66㎏급)마저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권 감독은 “이원희 만큼은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고등학교 3년 동안 이원희를 지도한 권 감독은 누구보다 ‘애제자’의 실력을 확신했다. 이런 믿음을 알기에 이원희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치밀한 체중관리로 항상 73㎏을 유지하고 있어 감량의 고통도 없었기에 컨디션은 최상이었다.감량 실패로 무너진 최민호의 한까지 풀겠다고 다짐하며 매트에 올라섰다.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가 버거울 법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아테네를 기대하십시오.반드시 금메달을 따겠습니다.”라고 했다.이날 이원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약속은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내가 나에게 한 다짐을 지켰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최후의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이 당당함.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허점을 용서하지 않는 지독한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다.‘한판승’에 대해 이원희는 “한판 만이 유도의 진정한 승부입니다.우세승은 엄밀히 따지면 완전히 이긴 게 아니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유도장에 처음 들어선 꼬마 이원희는 그날 밤 10시까지 낙법을 배우고 왔다.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대선배 김혁의 52연승을 저지하기도 했다.그해 이원희는 5개 전국대회를 모두 한판승으로 끝냈다.2002년 오스트리아오픈과 2003년 헝가리오픈에서도 12게임을 모두 한판으로 메쳤다.이원희의 꿈은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아시안게임을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두번 달성하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번의 세계선수권과 한번의 올림픽,두번의 아시안게임을 더 제패해야 한다.이원희는 “내 나이 스물세살,이제 시작이지요.”라고 말했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2004] 아쉬운 銀 북한 계순희

    [아테네 2004] 아쉬운 銀 북한 계순희

    |아테네 특별취재단|비록 금메달을 놓치기는 했지만 ‘유도 영웅’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았다. 10세 때 처음 도복을 입은 계순희는 16일 밤(이하 한국시간) 아테네올림픽 여자 57㎏급 경기에서 슈퍼스타다운 면모를 한껏 뽐냈다.특히 특유의 ‘힘’은 빛을 발했다.어정쩡하게 바깥다리를 걸고도 되치기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계순희의 힘은 뛰어 났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48㎏급 결승에서 계순희에게 패한 일본의 여자유도 간판스타 다니 료코(당시 다무라 료코)는 “저렇게 힘센 선수는 처음 본다.”고 말했을 정도.‘인민체육인’ 계순희가 북한 체육대회에서 무제한급 선수까지 한판으로 이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계순희는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 체급 올린 52㎏급에서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2001년 세계선수권에서는 52㎏급 금메달을 땄다.이후 다시 57㎏급으로 체급을 올려 2003년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사상 첫 두 체급 올림픽 금메달 일보 직전에서 눈물을 삼켰지만 계순희는 결승에 오를 때까지 탁월한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했다.상대가 힘을 분산시키려고 발을 빨리 움직이면 안으로 파고들며 다리를 잡아채는 기술을 구사하는 등 노련미가 빛을 발했다.다급해진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힘을 적절히 이용하는 되치기 기술도 압권이었다. window2@seoul.co.kr
  • [아테네 2004] 사격女트랩 이보나 뜻밖의 동메달

    [아테네 2004] 사격女트랩 이보나 뜻밖의 동메달

    |아테네(그리스) 특별취재단|“지금도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꿈만 같습니다.아테네에서는 단 한번도 트랩 연습을 하지 않고 나섰는데 뜻밖의 메달을 땄네요….” 사격 여자 트랩에서 기적의 동메달을 건져올린 이보나의 주종목은 더블트랩.트랩에 출전한 것은 순전히 컨디션 점검을 위해서였다.국내에서는 경기에 나선 적이 있었지만 아테네에서는 1초도 연습을 하지 않았다.변경수 대표팀 감독도 “꼴찌만 하지 말라.”고 농반 진반 얘기했을 정도. 그러나 특유의 집중력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턱걸이로 결선에 진입한 이보나는 12발까지 모두 성공시키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심한 바람도 오히려 그에게 득이 됐다.베테랑 선수들의 정조준을 계속 괴롭혔기 때문.결국 녹록지 않은 실력과 운으로 한국 선수 최초의 클레이 종목 메달리스트가 되는 횡재를 거둬들였다. 이보나는 현역 중사.국제대회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지난해 9월 세계클레이사격선수권대회 더블트랩에서 105점(120점 만점)을 쏴 7위에 오르는 등 세계 정상권 진입 가능성을 보여왔다.지난 4월 아테네 프레올림픽 더블트랩에서 1점 차로 4위에 그친 게 오히려 약이 됐다.이런 이유로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잘 나가는’ 공기소총 선수들을 제쳐놓고 그가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장담하곤 했다. 광주 서광여중(현 서광중) 1학년 때 입문한 뒤 전남여고를 거칠 때까지는 공기소총 선수였지만 지난 1999년 상무에 입단하면서 트랩으로 방향을 틀었다.두둑한 배짱을 지닌 데다 순발력이 뛰어나 클레이 사격에 적합하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른 것. 그는 지난해 4월 대표선수로 발탁한 뒤 기량이 일취월장한 케이스.이번 대회 직전 “국내 선수보다 외국 선수들이 편하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져 주위를 놀라게도 했다.그는 수산업을 하는 이상섭(55)씨와 최유진(46)씨의 2남1녀 가운데 둘째.독서가 취미다.아버지 이씨는 딸의 소식을 전해들은 뒤 “어려운 시골살림에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감격스러워했다. window2@seoul.co.kr
  • [2004 아테네 올림픽] 천민호 금빛총성 울려라

    [2004 아테네 올림픽] 천민호 금빛총성 울려라

    ‘금빛 과녁,조준 끝.’ 남자 10m공기소총의 천민호(17·경북체고)가 16일 마수걸이 금메달에 도전한다.한국 첫 금메달을 ‘무서운 10대’의 손끝으로 만들어 침체된 팀의 사기를 높일 태세다. 사실 한국팀의 ‘각본’대로라면 첫 금메달은 14일 나왔어야 했다.여자 공기소총 서선화(22) 조은영(32·이상 울진군청) 두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무난히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예상됐다.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인 결선 진출 좌절.남자 유도 60㎏ 최민호도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다.천민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천민호는 10대의 패기와 20대의 대담함,그리고 30대의 집중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세계 랭킹도 ‘넘버 2’다.올림픽 전부터 사격계에서 “여자 선수들보다 천민호가 더욱 유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라는 평가가 나왔다.지난 2000년 사선에 처음 발을 디딘 그는 2년 만에 소년체전 개인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다.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올해 4월.봉황기 사격대회 겸 국가대표 4차 선발전에서 남자 선수로서는 경이적인 600점 만점을 쏘며 스타로 올라섰다. 직후 열린 아테네 프레올림픽에서는 세계주니어신기록인 599점을 쏘며 금메달을 땄다.6월 밀라노월드컵에서도 1위에 오르며 ‘천민호 돌풍’이 운이 아닌 실력임을 입증했다.지난 92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여갑순에 이어 ‘고교생 반란’을 올림픽에서 준비 중이다. 제성태(19ㆍ경희대)도 예비 메달리스트.천민호와 함께 4차 선발전 때 만점을 기록한 세계 랭킹 15위의 실력자.천민호가 검증된 후보라면 제성태는 다크호스. 그러나 세계 벽은 높다.2002년 시드니월드컵 챔피언인 세계 랭킹 1위 요제프 곤치(슬로바키아)와 3위 페테르 시디(헝가리) 등 동구권의 명사수들을 넘는 것은 금메달을 향한 필수조건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2004 아테네 올림픽] 최민호 아름다운 銅

    [2004 아테네 올림픽] 최민호 아름다운 銅

    |아테네 특별취재단|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준 최민호(24·창원경륜공단)는 시상대에서도,기자회견장에서도 외로웠다. 금메달 ‘1순위’로 거론되던 최민호가 14일 밤(한국시간) 유도 60㎏급 8강전에서 몽골의 카스바타르 차간바에게 지자 그 많던 한국기자들도,응원단도 모두 동메달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시상식이 끝나고 긴 한숨을 내쉬며 아노리오시아홀을 빠져 나가던 최민호는 “유도를 알기 시작한 뒤부터는 매트에서 구른 기억밖에 없다.”면서 “오늘 노무라 다다히로와 붙어 멋있게 한판으로 이기는 꿈을 키워왔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최민호가 보여준 투혼은 금메달이나 진배없다.5㎏ 감량이 버거웠는지 최민호는 1회전부터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평소 같으면 1분도 안돼 한판으로 넘길 수 있는 상대였지만 종료 29초를 남기고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가까스로 이겼다.2회전도 다행히 이겼으나 8강전에서는 급기야 다리가 마비됐다.상대의 누르기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통증만 더할 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목표는 동메달.패자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았다.최민호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바늘로 찔러댔다.밥공기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피가 흐르는 가운데 수분 섭취를 위해 물을 마셨다.몇 리터를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이윽고 쥐가 풀렸다.기다리던 본실력은 패자전에서 나왔다.최민호는 패자전 3판을 모두 업어치기 한판으로 이겼다.“쥐만 나지 않았다면 노무라가 올랐던 시상대에 내가 올랐을 것입니다.그러나 이것도 실력입니다.다시 시작해야죠.” window2@seoul.co.kr
  • “아쉽지만 장하다 우리아들”

    “아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남자유도 60㎏급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최민호 선수의 어머니 최정분(54·경북 김천시 모암동)씨는 “비록 동메달에 그쳤지만 한국선수단에 첫 메달이라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준 아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년에 250만원 하는 사글세 집에 사는 최 선수의 어머니는 학생 교복을 만들어 생계를 잇고 있고,같이 일을 돕던 아버지 최수원(52)씨는 5개월 전부터 경기도 안성,평택 등지에서 노동 일을 하고 있다. 최씨는 “부산 아시안게임때 시합을 앞두고 몸무게 7∼8㎏ 가량을 빼기 위해 거의 굶다시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면서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몸무게를 줄이는 과정에서 다소 무리가 따라 결국 힘을 쓰지 못한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김천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04 아테네올림픽] 공은 둥글다

    ■ 아테네올림픽 특별취재단 이창구기자(체육부) 김명국차장(사진부) 김태충차장 조병모 위원석기자(이상 스포츠서울 스포츠부) 강영조기자(스포츠서울 사진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 남자축구는 절대 강자도,절대 약자도 없는 혼전양상이다.8경기 가운데 5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을 만큼 치열했다. 이변도 속출했다.전쟁의 상흔을 딛고 참가한 이라크는 13일 그리스 파트라스에서 열린 D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19)가 버틴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4-2로 꺾었다.호나우두는 지난달 끝난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동하며 팀을 준우승까지 이끈 월드 스타.‘대어사냥’에 성공한 이라크는 승점 3으로 조 선두로 나서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B조의 아프리카 복병 가나도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를 맞아 2-2로 비겼다.한국 이라크와 함께 아시아대표로 출전한 일본(B조)은 파라과이와 난타전을 벌인 끝에 3-4로 아쉽게 패했다. 2000시드니올림픽 1∼3위팀인 카메룬 스페인 칠레가 이번엔 모두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일찍부터 많은 이변이 예상됐다.이런 가운데 아르헨티나만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12일)에서 대승(6-0)을 거두며 강호로서의 체면을 세웠다.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올림픽에서 실추된 남미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남미 국가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1924년과 1928년(이상 우루과이) 두차례뿐이다.76년 만의 정상탈환을 노리는 남미의 선두주자 아르헨티나의 기세가 무섭다. 1968년(멕시코올림픽) 일본의 동메달 이후 36년 만의 메달권 진입을 노리는 아시아는 강호들과의 첫 경기에서 1승(이라크) 1무(한국) 1패(일본)를 기록하며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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