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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미ㆍ소 외무회담/한반도 문제등 논의

    【모스크바 타스 연합】 미국과 소련은 1일 소시베리아 이르쿠츠크시에서 열리는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국제문제 및 양국현안을 폭넓게 논의한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은 모두 3차례로 이어질 회동에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며 아프가니스탄 및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지난 29일 나지불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동맹국인 소련과의 협의를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데 이어 11년간 계속돼온 아프간 내전이 해결될 것이란 밝은 전망이 극적으로 대두됐는데 나지불라대통령의 갑작스런 이번 방소로 아프간 사태에 대한 합의나 휴전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12년간 계속되고 있는 캄보디아 내전의 해결전망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베이커장관은 미국이 지난 7월중순 대캄보디아 정책을 돌변시킨 후 최근 5일동안의 동남아 순방에서도 이 지역 외무장관들로부터 이에 대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
  • “신데탕트시대”… 일본의 안보전략(해외논단)

    ◎이클레 전 미 고위관리ㆍ일 나카니시교수 공동진단/“「자체방위」보다 「범세계안보동맹」 모색할 때”/크렘린변화 따라 「지역방어」 수정 불가피/90년대말 「미ㆍ일ㆍ구 3각체제」 등장 가능성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세계 곳곳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방위력 증강문제로 국내외에 논란을 일으켜 온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일본은 내년 3월이면 중기 방위력증강계획이 일단락될 예정이어서 일본의 새 방위전략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의 향후 방위전략과 관련,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 (90년 여름호)는 「일본의 대전략」이란 제목으로 FㆍCㆍ이클레씨와 나카니시 데루마사씨가 공동집필한 논문을 싣고 있다. 이클레씨는 레이건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 정책담당 부장관을 지냈으며 나카니시씨는 일본 시즈오카대 국제관계 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음은 「일본의 대전략」 요지이다. 유럽의 변화와 소련의 중첩된 위기가 일본의 안보환경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동구에서의 공산주의 붕괴와 소연방의 해체움직임은평양 하노이 그리고 북경의 지도체제를 흔들리게 할 것이다. 일본의 안보전략은 미국과의 동맹을 골간으로 형성됐고 아직도 그속에 한정돼 있다. 그러나 곧 이 동맹의 목적과 성격은 유럽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과거 일본에는 미국의 대소봉쇄전략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가 형성돼 있었고 미일동맹을 소련의 침입에 대항하는 방패로 평가해 왔다. 이 단순한 전략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기는 하지만 곧 충분치 못하게 될 것이다. ○대소봉쇄 점차 탈피 일본으로서는 거대한 경제력ㆍ기술력에 걸맞게 세계평화에 이바지 한다는 목적의식을 고양시켜야 할 때가 됐다. 일본은 인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평화적인 국가라는 이미지에 상응하는 그리고 일본국민들로부터 널리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전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방위정책의 대상영역은 일본열도를 넘어 확장돼야 한다.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일본의 경제와 지역적으로 한정돼 있는 방위정책 사이의 불균형은 더 이상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대전략」은세차원에서 개발될 필요가 있다. 첫째 일본의 주변지역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안보전략은 소련의 변화에 맞춰 조절돼야 한다. 둘째 원거리 국가와의 경제관계뿐만 아니라 원거리 지역의 적대세력간 마찰과 전쟁확산도 고려한 범세계적 안보전략도 개발돼야 한다. 셋째 핵개발이 아닌 핵공격을 막기 위한 측면에서 핵전략문제가 검토돼야 한다. ○세계평화 지향해야 오늘날 일본의 방위정책은 아직도 소련 군사력의 위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북한 남침에 대한 소련의 지원,소련의 위협적인 군사력 시위,북방 4개도서의 점령이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과 적대적 관계를 갖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소련 국내외정책이 요즘처럼 계속된다면 이러한 역사적 이유들은 그 의미가 점차 희박해질 것이다. 또 일본이 장차 안보와 관련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국가는 소련만이 아니다. 일본의 「대전략」속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중일관계는 일소관계에 비해 훨씬 가깝고 복잡하다. 따라서 훨씬 어려운 전략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의 「대전략」속에서 중국이 수행할 역할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5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중일관계는 위협적인 관계에서 화해의 관계로 바뀌었다. 이후 중일관계는 상당한 안정을 누려 왔다. 이는 주로 미일 동맹관계에 힘입은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변화도 안보전략에 문제를 던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평양의 공산독재정권이 마침내 무너져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통일 한국은 핵무기 개발을 완만하게나마 추진할지도 모른다. 일본의 「대전략」은 전세계를 고려하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수립돼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여겨지는 나라는 시기와 분노의 대상이 되기 쉽다. 70년대 미국은 적대국 소련과는 무관하게 이란 리비아 등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국가의 안보전략은 목전의 관심사항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우발적 사건에도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중동전은 페르시아만을 통한 원유공급을 고갈시켜 일본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일본경제가 먼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군사 안보에 관한 한 지역적인 차원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무기가 발달되고 상호연관성이 긴밀한 시대에 독자방위전략은 동맹체제보다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필요하다면 땅이 좁고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를 가진 일본으로서는 미일동맹이 더욱 필요하다. 90년대 말에는 미국 유럽 일본의 3각 동맹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최근 변화가 아시아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든 또 군축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핵무기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장기 전략도 핵무기의 존재를 피할 수는 없다. 미국의 핵전략은 NATO구조하에서 유럽의 상황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은 반면 일본에 의해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핵에 대한 거부감은 일본정부로 하여금 핵에 관해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일동맹 덕분에 핵위협으로부터 보호됐을 뿐만 아니라 시끄러운 핵논란으로부터도 면제됐다. 앞으로도 당분간 군축으로 인해 핵문제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일본은 핵무장국가들과 공존해야만 한다. 일본의 경제력과 잠재적 군사력은 다른 나라의 핵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은 핵과 관련,중요한 역할을 피할 수 없으며 문제는 역할을 할 것인가 말까가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이다. ○핵방어대책 수립을 혹자는 일본의 비핵화와 함께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최소화하거나 비동맹국이 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비동맹주장자들은 일본의 산업과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자위대만으로 방위에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독자방위정책은 이웃나라와의 군사적 긴장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며,소련 중국 그리고 아마도 통일한국의 핵위협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일본이 비동맹 핵무장국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외로부터의 거센 반발을 고려할 때 더욱 설득력이 없다. 미국과의 동맹은 일본에 핵위기시 안보우산을 제공할뿐만 아니라 SDI의 경우에서 보듯이 강대국의 전략 및 핵전력 감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핵부문에서의 미일동맹은 양국간의 신뢰유지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핵확산 및 핵위협에 억지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자체 방위에 주력해 왔지만 앞으로 일본은 다른 민주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평화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공동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일본정부는 핵시대에 2번이나 미래지향적 안보전략을 수립ㆍ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57년에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 했으며 76년에는 중기방위계획을 세워 해상수송로 방위선을 확장하는 등 방위력을 증강해 왔다. 그러나 이 중기계획은 91년 3월에는 완료되므로 90년대와 21세기를 이끌어 갈 「대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바다를 항해하면서 목적지도 없고 나침반과 지도도 없다면 배는 바람 부는 대로 갈 것이다.
  • “탈냉전”… 변화하는 미 안보전략:상

    ◎「소 팽창 봉쇄」서 「지역안정 확보」로 전환/테러등 저강도전 대비,세계 경찰역은 계속/핵의존 탈피,기동력 갖춘 항모ㆍ경보병 역점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들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서울신문 국제부 최두삼기자는 미국정부 초청으로 지난 6월중순부터 1개월간에 걸쳐 미국내 정부관리ㆍ학자ㆍ군부 및 의회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변모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군사전략 목표」와 「동북아주둔 미국의 역할변화」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의 의식전환과 갑작스런 동구공산블록의 몰락이란 역사적 대변혁기를 맞아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것이라는게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가졌던 기자의 선입견이었다.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의회는 국방비 삭감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군비축소로 생겨난 여유자금을 평화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탈냉전시대를 맞으면서 이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막을 내렸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의 군부지도자 학자 관리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지난 40여년간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는 「소련세의 팽창을 봉쇄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제3세계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처에서 일하고 있는 불안정 요인을 제어하는 「지역안정 확보」로 바뀌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여전히 맡아야할 군사적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제3세계가 주목표 이같은 군사전략 목표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보여온 마이클 클레어교수(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평화 및 세계안보연구소장)까지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클레어교수는 『냉전으로 인한 위기위식이 지난 40년간이나 지속됐으며 불과 몇달전에야 그같은 공포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증강되기 시작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력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음에도 오래 가다보니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미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군부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대에서 항공우주학을 강의하고 있는 로드 밀레교수(현역공군장교)를 비롯한 국방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국들이 주요 위협상대였으나 앞으로는 게릴라 테러 국경분쟁내전 마약전쟁 등 저강도의 분쟁이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미소군의 갑작스런 축소는 지역헤게모니쟁탈전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며 대폭적인 군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클레어교수는 미국의 군사전략목표가 소련권으로부터 제3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군부지도자들은 앞으로 전개될 전쟁양상으로 ▲미군의 파나마침공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사상자도 많지 않고 단기간에 끝나는 저급강도의 전쟁과 ▲이란­이라크전과 같은 중급강도의 전쟁을 들고 이들 저ㆍ중급전투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춰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투태세는 기동력을 수반하는 항공모함이나 경보병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재래무기 소폭 감축 이렇게 되면 현재의 유럽주둔 미군 유지비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긴 하겠지만 역시 적잖은 비용이 들게 분명하다. 아마도 전략핵전력의 경우 급격한 감축이 예상되지만 재래식 병력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다는 얘기다. 탈냉전시대에 들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핵전력의 감축이라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듯 했다. 이제 핵무기를 통한 헤게모니장악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군수품의 지원ㆍ수출 등을 통한 헤게모니장악도 옛날얘기가 되고 있는듯 했다. 지금까지는 미소가 각기 자기네 블록내의 종속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여,수출했으나 앞으로는 종속관계에서 동등한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미소가 공동으로 중급국가들을 상대로 헤게모니장악을 노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어느 한쪽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중급국가 역할 커져 탈냉전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해오던 일부 중급국가들이 앞으로는 종전처럼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세계국가들에게 다른 무기들을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남북한이 꼽히고 있다. 이란­이라크전때 보여줬듯이 미소뿐 아니라 많은 중급국가들의 무기가 전쟁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이곳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들 중급국가들의 역할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쨋든 미국은 탈냉전시대를 맞아 의회를 중심으로 군비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의회나 행정부는 장기적으로 미군의 25% 감축을 논의하고 있지만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소련의 위협은 사라졌으나 국지적인 분쟁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며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게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 학자나 관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주리대(세인트루이스)의 국제정치학자 조웰 글라스만박사는 『물론 소련은 변했지만 미국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는 『과거에 미국은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니카라과 이라크 등 아직도 국지적인 불안요인이 많아서 미대외정책의 가장 큰 관심사가 지역안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중동으로부터의 석유수송로 보호작전개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중동수송로 비중 커 미국은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77%를 차지하고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30%를 공급하는 페르시아만일대 산유국들의 석유수송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방해로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왔다. 특히 연간 2만1천대의 선박이 지나는 수에즈운하와 그에 못지않은 바브엘만데브해협,그리고 호르무즈해협 등에 친소정권이 많이 등장함에 따라 보다 큰 경계를 해온게 사실이었다. ○평화배당금 적을듯 이제 이들 수송로에 더 이상 공산세력의 위협은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서방세계의 젖줄이라 할수 있는 이곳 해상수송로 보호작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게 미국정부의 분명한 입장인듯 했다. 중동의해상수송로 작전을 맡고 있는 플로리다주 탐파의 미중앙사령부는 휘하에 40만대군을 동원할 수 있으며 연간 15억달러를 들여 수송로 보호작전을 펴고 있다. 냉전이후시대(POST Cold War Era)에도 이곳의 지역적 불안정때문에 미군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미국조야의 대응태세로 보아 군축에 따른 평화배당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기대하기조차 어렵겠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 소의 “나토잔류 수락” 의미

    ◎「완전통독」의 마지막 장애물 넘다/서독 30억불 경원이 결정적 계기/유럽 새질서 구축의 이정표 세워 소련이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을 허용함으로써 통독 가도에 놓여있던 마지막 장애물이 제거됐다. 전후 40여년간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최전선이었던 동독을 서독측에 「내주고」 이어서 통일독일을 나토에 「넘겨주기로」한 것은 일단 소련의 엄청난 양보로 풀이되고 있다. 소련은 그동안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세력균형,통일독일의 군사적 위협 등을 이유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꾸준히 반대해왔다. 통일독일의 두기구 동시 가입,동시 탈퇴,범유럽 새 안보기구 구성 등 일면 일관성이 결여된 대안들을 번갈아 제시하면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만은 반대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련이 왜 나토가입을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고르바초프가 종전의 완강한 반대입장을 버린 직접적인 동기로 7월초 연이어 열린 런던의 나토 정상회담,휴스턴 G­7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의 결과를 들고 있다. 이달초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던 나토 정상회담에서 16개 회원국들은 동서 양진영이 이제 더이상 적이 아니라는 평화선언과 불가침선언을 바르샤바조약측에 제의했다. 또한 기존 나토군사전략의 기본축이었던 핵억지원칙을 대폭 완화,핵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군사동맹체로 유지돼온 나토의 성격에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16일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허용을 발표하면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그 배경설명에서 나토의 성격이 바뀌었고 동서 군사동맹이 서로 「적이 아님」을 곧 공동선언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방측은 또 G­7 정상회담을 통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한 지지,그리고 국가간 의견차는 있었지만 대소 경제원조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헬무트 콜서독총리는 1백50억달러에 달하는 대소 차관지원을 동맹국들에게 촉구했다. 서독은 이외에도 독자적으로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약속해 놓고 있다. 16일 소련과 서독 두 정상이 발표한 내용중에는 앞으로 정치 경제안보 문화 등 양국관계 전반에 우호협력 조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대목도 들어있다. 이는 콜총리가 이번 두 나라 정상회담에서 별도의 추가 원조계획을 소련측에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는 것이다. 그외에도 서독은 동독영토에 주둔하는 소련군에 대한 경비지원까지 이미 약속한 바 있다. 이같은 잇단 경원제의는 독일통일의 보장받기 위해 서독이 소련에 대해 기울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대륙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안보분위기는 기존 양대 군사블록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들어 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련의 양보는 넓게 보면 이런 맥락에서의 설명이 가능하다. 이번 양국 합의사항중 군사부문을 보면 동독주둔 소련군의 점진적인 철수,동독영토에 나토군 주둔 불허용,서독군의 단계적 감축등을 담고 있다. 특히 감군부문은 현재 빈에서 진행중인 유럽재래무기 감군협상과 보조를 맞춘다고 되어 있다. 이는 군사동맹으로서의 나토에 통일독일을 귀속시킨다기 보다는 비군사화된 나토에의 가입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토의 성격변화가 전제돼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번 소련의 양보는 오히려 현 나토의 재편을 가속화시킬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논의는 소련의 개혁,동유럽의 변화 등에 따라 동서군사 대결이 약화됨에 따라 나토회원국내에서 이미 제기돼온 터이다. 더구나 군사대결의 상대인 바르샤바조약은 이미 회원국의 탈퇴등으로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서독도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관철시켰지만 기본적으로는 새로운 범유럽안보기구가 구성돼 기존의 두 기구를 흡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독 영토에 배치돼 있는 단거리 핵미사일등도 동서군축 협상이 마무리되면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나토 방위전략의 바탕은 미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대소방어와 핵억지전략이다. 그러나 지금 유럽에서 태동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이 두원칙의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은 이런 의미에서 새유럽안보체 구성을 향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련은 앞으로 나토와 바르샤바기구의 상호불가침선언,과도기간 동독영토주둔 소련군의 군사지위협정,철수 시한,통일독일의 병력규모 등을 싸고 서방측과의 협상을 통해 두 군사동맹체의 사실상 무력화를 진행시켜 나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이후 꾸준히 내세워온 「유럽공동의 집」과 궁극적으로는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ㆍ영국은 소련의 잠재적 위협,거대독일의 재무장 등을 들어 현 나토체제의 비군사화에 여전히 미온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통일독일의 나토가입 시기와 방법을 놓고 소련은 신경전을 벌이려 할 것이다. 새안보체 구상과 관련,주목되는 것은 35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활동이다. CSCE가 현재의 단순협의체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기구구성을 갖춰 새 유럽안보협의체 기능을 갖도록 하자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평양에 변화 조짐”외신보도를 보고/박봉식교수 서울대ㆍ정치학박사

    ◎거스를수 없는 「1989년의 혁명」/고르바초프 실각 기다리는 시간 벌기 아닌지… 프랑스혁명 200년만에 유럽은 예기치 않았던 큰 격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1792년에 이르러 혁명전쟁으로 발전하였고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으로 번져 전후 25년동안 전유럽을 뒤엎는 전화를 당하게 되었다 작년에 일어난 유럽의 혁명이 200년전의 그것과는 달리 어떤 형태든 전쟁을 몰고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그 혁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진원지와는 거리가 먼 아시아의 중국과 북한뿐이다. 유럽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의 손에,또는 그 나라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제거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혁을 막아야할 이유는 없었다. 혁명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혁명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경우 비슷하게 적중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혁명의 조용한 진행을 가속화시켰고 이것을 바르샤바 탈소동맹국 모두에 확산시켰다. 그래서 동유럽내에서는 여기에 저항할 세력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1989년에 유럽을 휩쓸고 또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넘어갈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 본대로 프랑스의 혁명이 전쟁을 몰고 왔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패전국이나 패전국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동유럽의 혁명은 전쟁과 관계없이 일어나 예외적인 일이다. 한편 시각을 달리해 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서냉전체제의 격한 대립이 체제화되어 지속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군사대국으로서의 능력을 더 지탱할수 없는데서 생긴 일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냉전에 패배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주도의 혁명이 일어 났다고 할수 있다. 냉전도 전쟁이고 보면 소련이 서방측과의 냉전에 패한 것이며 그 결과 소련은 그의 지배하에 있던 바르샤바 탈소동맹국들에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이 지역에 혁명이 일반화 되었다고 하겠다. 소련은 냉전에 패배한 것을 각성한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혁명은 결코 조용할수 없는 모양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결국 소련 제국의 해체를 가져 올 것이며 소련제국을 해체해 가면서 까지 고르바초프는 그의 개혁을 정당화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중도에서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그러는동안 그는 정치적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도중에서 하차한다고 하여 한번 시작한 개혁을 어느 선에서 정지시킬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시장경제체제와 민주화라고 하더라도 서유럽식으로 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체코나 헝가리 등은 서구화가 가능할지 모르나 소련은 서유럽을 완전히 본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치 한국이 구미의 영향을 40여년간 받고 있으면서 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선진화됐다고 하는 일본이 일본식 자본주의를 갖추듯이 소련식 개혁과 소련식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200년전 20여년의 전쟁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쳐부순 유럽이 혁명전의 정치명분을 되찾고 구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죽 전쟁이 승리했음에도 그 혁명의 영향은 막지 못하였던 예를 본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이 유럽서 시작된 또는 사회주의의 종주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바람을 거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프랑스혁명의 바람을 보수주의국가인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들이 협력하거나 이합집산하면서 근 100년가량 막아왔으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이들 제국 스스로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은 동유럽과 소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힘이 없다. 오늘날 소련과 동유럽 변화의 물결은 소련의 변화하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바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려 할 때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분쟁은 때로는 생사를 걸고 하는 분쟁일 수 있다. 동독의 호네커나 폴란드의 야루젤스키는 고르바초프의 전화 한통화와 면담 한번으로 대권을 내 놓거나 국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등소평이나 북한의 김일성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이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기다려 그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 기본자세인것 같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에 전술적으로는 적응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은 그의 왕국을 고르바초프의 말한마디에 공중에 날려 버리게 될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방법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왕국을 지키려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온 세계는 데탕트를 구가하고 있는데,한반도에서 만은 냉전의 기본은 오히려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에 가서 그도 별도리없이 역사의 흐름앞에 무릎을 꿇고 말겠지만 그 사이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성원들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지가 확실치 않다. 많은 낙관론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필자는 선뜻 이 낙관론에 동조되지 않는 것이다. 월남의 경우 연 30억달러의 원조를 받고있고 이것이 반으로 줄어들전망이라 캄란만을 도로 미군이 사용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전쟁과 인명ㆍ재산ㆍ역사의 희생이 무엇때문이었던가를 월남의 경우 돌이켜 보게 된다. 북한은 6ㆍ25의 범죄적인 과실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1989년 동유럽의 혁명이 아시아에도 제대로 바람을 일으켜 온 인류가 환호하고 역사의 대열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북한,「남방정책」 추구

    ◎경제난 타개위해 서방국과 유대 강화 【워싱턴 연합】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국가들과의 유대강화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고 워싱턴 타임스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11일 서울발 기사에서 서방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는 않고 있으나 북한은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에 자극받아 한국 동맹국들과의 외교및 경제관계를 강화하려는 이른바 남방정책을 추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한국이 동맹국들에게 북한의 접근을 거부하지 말도록 권유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는 이달 중순 평양을 방문하는 사회당 대표단을 통해 일­북한 관계개선에 아무런 선행조건도 없음을 통고할 방침이라고 전하고 그러나 미국은 미­북한 외교관의 북경접촉을 격상시키자는 북한 요청을 거부하고 4대국의 남북한 교차승인 구상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등 대북한 관계개선에 휠씬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 대소 경원문제가 최대의 쟁점/내일 막오르는 G­7정상회담

    ◎「우루과이 라운드」타결여부 주목/환경 보존ㆍ제3세계 부채탕감도 의제로 서방 7개 선진국(G­7) 정상들이 9일부터 3일간 미국에서 회동,군사력보다 경제안보가 훨씬 중요해진 새로운 세계와 대결한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출신지인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리는 이번 G­7회담은 「냉전종식후 첫 경제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70년대의 경제 정상회담이 인플레이션,저성장ㆍ경기후퇴ㆍ에너지위기 등을 주로 다뤘다면 80년대엔 제3세계 부채ㆍ환율ㆍ국제수지 불균형 등이 경제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였다. 90년대 경제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서방 세계 분열의 원심력을 막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련의 변화와 더불어 서방 동맹국들이 공동 대처해야할 위협적인 군사세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경제문제로 인해 서방세계가 분열될 가능성이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0년대엔 어떤 형태로든 지역 무역블록의 출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작년부터 일본은 태평양지역에대한 장악을 굳혀가고 있으며 미국은 미주 자유무역시대를 제창하기 시작했다. 12개 서구 국가로 구성된 EC(유럽공동체)는 동구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비EC회원국을 포용하기 위한 회담을 개최중이다. 이번 휴스턴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질 3대 의제는 소련과 동구에 대한 경제원조ㆍ농산물교역ㆍ환경보존 문제다. 이밖에 독일통일ㆍ중국원조ㆍ제3세계부채ㆍ마약자금 「근절」ㆍ세계경제 성장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소련은 지금 서방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 소련군의 동독철수 촉구에 대소원조를 이용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소련에 대한 1백90억달러 경제 원조 호소에 앞장설 것이고,소련 구제와 고르바초프의 집권 계속을 바라는 프랑스의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이 이에 동조할 것이다. 당초 부시 미대통령은 그렇게 많은 돈을 소련에 투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최근 부시는 『만일 소련이 국방비 삭감과 경제개혁을 약속대로 이행한다면 서방측이 소련에 경제원조를 제공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라고 신축성을 보였으나 부시 미대통령은 미국의 재정 적자와 의회반대를 이유로 미국의 직접적인 대소자금 지원은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및 동구에 대한 경제 지원과 관련,일부 서방 국가들이 일본에 걸고 있는 기대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정부관리들은 가이후총리의 향미에 앞서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소련 보다 중국에 대한 경제지원조치의 선행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련이 확실한 사회 경제 개혁을 이룩할 때까지는 모스크바에 대해 경제원조 대신 기술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일본측 입장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무엇보다도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의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오는 12월로 시한이 정해져 있어 이번 회담에서 협상타결의 강력한 전기를 마련하지 않는한 GATT체제 자체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EC회원국들은 92년의 EC통합계획 때문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성공,특히 농산물에 대한 정부 보조금 문제에서실질적인 결론을 끌어 내는 것을 막을지 모른다. 미국은 교역을 왜곡시키는 농산물 보조금이 향후 10년내에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EC측은 소규모의 비효율적인 농장을 소유한 자국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줄 미국안에 반대하며 보조금의 부분삭감만을 주장하고 있다. 만일 EC가 이 협상의 진전을 막을 경우 기존의 다자간 무역체제를 지역별 무역블록으로 세분하려는 압력이 고조될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C와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대해 냉전종식과 재정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도록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과 미국은 일본에 대해 세계경제 및 정치체제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도록 촉구할 것이다.
  • 우호조약 준수/북한,소에 촉구

    【도쿄 AFP 연합】 북한은 5일 소련에 체결 39주년을 맞은 소­북한 우호동맹조약을 준수하라고 촉구함으로써 최근 소련의 대한 화해움직임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북한 부총리 김복신(여)은 5일 소­북한 우호동맹체결 39주년을 맞아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현 국제정세와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사태진전은 양국이 우호동맹조약의 목표에 따라 우호협력 정신으로 동맹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양국은 반동세력의 방해를 좌절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 통일정책ㆍ군축전략 세미나 중계

    민자당과 평민당은 5일 각각 63빌딩과 프레스센터에서 「6ㆍ29 3주년기념 대토론회」 「통일및 북방정책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민자당토론회는 「민주화와 정치발전의 향후과제」 「북방정책과 통일전망」 「경제안정과 국민복지」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평민당토론회는 통일및 북방정책이란 단일 주제로 전개되었다. 이날 두 토론회 내용중 정부측의 통일정책 논리를 정리한 민자당토론회의 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보와 군축에 관한 구체적 전략을 제시한 평민당토론회의 지만원씨(군사전략가)의 주제발표 내용을 각각 발췌,소개한다. ◎북방정책과 통일 민자/새로운 민족공동체 꾸미는 작업/대결서 협력관계로 전환이 관건 ◇북방정책과 통일전망(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보)=국내외에서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6공화국이 이를 통일로 향한 획기적 새 발상과 정책수립의 계기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통일은 과연 무엇을 뜻하며 어떻게 추진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다음 세측면에서 새로운 발상이 전개되었다. 첫째,통일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의 창조라는 것이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통일은 새로운 민족사회를 만드는 창조적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그러한 통일의 미래상은 정치위주로 특히 국가체제위주로 논의되기 보다는 민족의 전통과 꿈과 삶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민족공동체의 창조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것이 규범적 측면에서나 실현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다함께 바람직하다. 셋째,민족공동체 형성을 통한 통일의 달성은 여러 단계를 거친 긴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무한한 인내력과 치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위와같은 새로운 발상에 입각해 대화ㆍ교류ㆍ협력을 통한 남북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코자 7ㆍ7선언이 나왔으며 공동체 형성을 위한 종합적인 청사진으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남북당사자간 협의와 병행해 이에 걸맞는 주변환경의 조성과 지역적 평화구조의 모색을 위해 유엔에서의 6개국 협의체안 제시가 있었다. 북한이 냉전시대의 고정화된 입장,전체주의 체제가 지닌절대적 경직성으로부터 다소나마 탈피해 대결관계를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노력에 동참토록 유도하기 위해 우리는 3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7ㆍ7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등 획기적 정책추진,우방 및 국제사회로 하여금 북한에 개방압력,북한의 동맹국들로 하여금 변화의 불가피성을 북한에 설득토록 하는 3면 전략이다. 이러한 3면으로부터의 개방화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 큰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북간에는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대화가 전개될 것이며 다음달로 예정된 총리회담이 그 첫번째 예이다. 남북대화나 교섭의 초점은 의제선정에 있지않고 대화의 형식이나 틀에 있다. 남은 문제는 북한이 우리 정부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화를 나눌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북군축의 요체 평민/주한미군 전쟁억지력 설득을/정상회담서 정치결단 내려야 ◇남북한군축의 요체(지만원 전국방연구원책임연구위원)=군축은 안보전쟁시대에서 경제전쟁시대로 돌입하는 세계적인 변화 추세이다. 남북한간에각종 교류가 활발해지고 군사적 위협이 축소된다는 것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며 전제조건이다. 전 공산권의 정치ㆍ사회적 변화와 경제개발의 물결이 우리 북방외교정책과 이익을 같이하고 있으며 한소관계의 진전으로 북한의 체제고수 노력은 북의 고립화를 더욱 심화시켜갈 것이다. 주한미군이 대북전쟁 억제력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아에서의 세력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에 납득시키는 것은 군축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주한미군은 남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의 철수는 일본의 핵개발과 재무장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납득시켜 주한미군의 존재를 정당화시켜야 한다. 군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군축은 화해ㆍ개방ㆍ교류의 정치적ㆍ경제적 접근과 병행 실시되어야 하고 공세적 방어전략과 선방어 전략이 포기되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은 북한을 군축협상에 끌어들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다. 주한미군이 전쟁억제력을 제공하고 있는 사이 남한은 과감히 감군을 실현,북한에 신뢰성을 보여줄수 있다. 군축의 추진전략으로는 일단 남북 정상회담에서 군축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뒤 남북 공동위원회를 개최,기본원칙 등에 대한 실무접근을 봐야 한다. 각종 교류외에 휴전선 일대에서 물물교환 10일장,각종 연예행사,미술전 등의 민간활동을 증진해야 한다. 군축을 위해 비생산적인 FX사업포기선언등으로 남한이 솔선해 신뢰구축을 선도해야 한다. 각 정당의 범정당적인 연구기구를 설치하고 군과 정부는 최우수 인력을 선발,대북제안 내용과 대내작업에 대한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 북한에게 감축규모와 감축후의 인력ㆍ장비 등의 처리문제 등을 제안해야 한다.
  • 한반도에도 신데탕트 바람 분다/미ㆍ유럽서 본 「한국통일의 전망」

    ◎미국의 시각/동구변혁이 분단해소의 촉매로/평양 폐쇄주의가 장애물… 자유왕래 실현돼야 일찍이 공산주의의 멸망을 예고했던 미국의 석학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교수는 『유럽문제가 해결되면 국제적 관심이 한반도에 쏠려 한반도 통일 논의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한반도 통일은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의 이같은 낙관론은 지난봄 동북아 문제협의회에 참석한 한국 의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피력된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2차대전후 인위적으로 분단된 한­월­독 가운데 월남과 독일은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이겨서 분단문제를 해결했다』고 상기시키며 『남북한 통일문제가 한 체제에 대한 다른 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아니면 타협형이나 제3의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앞으로 북한 공산체제는 살아 남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과는 뻔하다』면서 한반도에서 독일식 통일의 재현 가능성을 강력히 예견했다. 북한을 압도하는 남한의 경제력과 인구도 이같은 예견의 바탕에 깔려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남북한문제 전문가 가운데 소련의 개혁과 동구공산주의의 몰락이 앞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촉진시키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을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도 아직은 없는 것 같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한간에 기초적인 교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문제를 운위 한다는 것이 시기상조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의 견해도 한반도 통일의 긴박성을 역설했다기 보다 세계적 변화의 맥락에서 통일 여건이 호전 됐음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스티븐 로젠펠드는 『2차대전후 해방된 한반도를 통일국가로 건설하는데 실패했던 미국과 소련은 이제 냉전 종식과 더불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독일과 동구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통일과 사회주의 국가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 방안에 관한 미소의 공동 연구가 지금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이 일을 바로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환영한다. 우리는 남북한 대화가 통일달성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을 촉진시킨 최근 사태들은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된 지역의 대표들과 분단 정부의 관계관들이 긍정적인 대화를 할 경우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기반 위에서 통일의 기초가 마련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독일에서 터득했다.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사태 발전이 있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솔로몬의 답변이 시사하듯이 한반도에는 아직까지 통일의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한반도가 통일 되려면 우선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완화되고 자유 왕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미국은 말하고 있다. 또한 신뢰구축 조치가 이룩되면 북한이 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추가 감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문제들을 논의할 남북대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판국에 어떻게 먼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예측할 수 있겠느냐고 미정부 관계자들은 반문한다. 최근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해 독일 통일의 돌파구를 열었던 신뢰구축 조치가 한반도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며 남북한의 극적인 통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타임스는 그 이유를 『남한과의 서신 교환 및 전화통화를 봉쇄하고 무역도 거의 하지 않는 북한의 폐쇄주의』에 돌렸다. 저명한 아시아통인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는 통일문제 접근과 관련한 남북한 정부간의 대립,즉 남쪽은 경제 및 문화 접촉의 증진을 통한 신뢰 분위기 조성을 선호하는 반면 북쪽은 처음부터 광범위한 정치 군사 협정을 요구하고 있는 이견의 해소를 선결해야 할 큰 과제의 하나로 지적했다. 한반도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한결같이 낙관론을 펴고 있다. 특히 78고령인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아 강조한다. 미국무부의 북한문제 전문가 존 메릴은 『북한이 사회주의 세계에 충격을 준 민중소요를 피하려면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한 노력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문제는 북한이 모방할만한 경제개혁의 모델이 사회주의 세계에는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의 관건인 북한의 변화는 이처럼 돌파구 없는 경제문제에 의해 촉발될지도 모른다. ◎유럽의 시각/「신뢰의 장」 넓힐 유연한 자세 필요/독일과는 달리 한반도문제는 예측못할 난제 한반도문제를 보는 유럽의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번째는 최근의 국제정세가 한반도문제해결에 어느때 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을 토대로 한 긍정론이다. 이 견해는 대세의 흐름에 힘입어 한반도문제도 이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으며 통일이라는 좋은 열매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고 사뭇 희망적인 전망에 인색치 않다. 그러나 또다른 쪽에서는 한반도문제는 여전히 앞을 내다 보기 힘든 난제중의 하나로 판단하고 있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남북한의 분단해소문제는 동서독의 그것과는 기초부터 다를 뿐만 아니라 분단상황이나 북한정권의 특수성 등으로 미루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동서진영간의 해빙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한반도만이 예외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인식이다. 파리대학의 기 소르망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이 얄타체제의 산물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얄타체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당연히 한반도의 분단해소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전제,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정세변화는 분단해소작업의 착수를 위한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소련의 한국승인,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노력,미국과 북한과의 접근 움직임등은 동북아평화정착에 필수조건들이며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 하나씩 충족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한반도통일작업의 시작단계로 보아야 마땅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레세크 스즈크박사는 한국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대북한 대화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주 가까운 시기」에 그러한 노력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같은 견해들은 한반도통일문제와 관련한 외적요인 또는 주변환경변화추이를 토대로 한 분석들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북한의 자세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지난달의 미군유골 인도,미국에 대한 비난 중단,대서방접근 노력강화 등은 전례없는 온건노선의 표방으로 받아들여진다(프랑스ㆍ르몽드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그들의 2대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참아내기 힘든 국제고립화 현상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역대 어느 정권보다훨씬 차원 높은 대외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한껏 고양되어 있는 한국으로부터의 외교적 도전에 대처해야만 하는 북한은 어쩔수 없이 온건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고 개방을 준비해 나가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동ㆍ서독과는 달리 직접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좌ㆍ우익의 극심한 대립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해소문제는 상호불신의 제거작업에서부터 착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에이든 포스터카터교수도 북한에 있어서 「변혁」이나 「개방」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이른바 「주체사상」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정권유지의 틀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말하자면 변혁과 개방을 전제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는 북한이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공산주의 또는 스탈리니즘의 패퇴,이데올로기의 가치전환으로 표현되고 있는 동구의 변혁과 같은 이념적 전환이 북한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관계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자세와 입장을 고려해 가면서 모처럼 성숙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대응책을 세워나갈 때 한반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곁들여 한국은 동구나 소련ㆍ중국과 국교를 트고 나면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민족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양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이며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충고가 뒤따르고 있다.
  • 도로파괴ㆍ악천후로 구조대 접근못해/이란대지진… 아비규환의 현장

    ◎“살려달라”절규에 장비없어 속수무책/생존주민들 여진 두려워 집에도 못가/“신이내린 시련”… 영국ㆍ이라크 등 각국서 원조나서 ○…21일 이란 북부를 폐허화한 강진으로 1만∼2만5천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란의 정신적인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짤막한 성명을 통해 이번 지진은 「신의 시련」이라고 지적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인내와 협력을 통해 긍지를 갖고 이 시련을 극복하자』고 촉구.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도 3일간을 공식 추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이란국민들에게 구조작업을 돕도록 당부. ○…이란정부는 각료회의를 소집한 뒤 IRNA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무시무시한 비극으로 지금까지 2만7천여명이 사망하고 2만9천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히고 이란의 모든 정부기관은 「전면적인 비상태세」에 돌입했으며 생존자들에 대한 공중구조를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란관영 IRNA통신은 또 하메네이와 라프산자니대통령이 구조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지진피해지역을 방문했다고 밝히고 구조활동의 협조를 위해 대통령직속 특별대책반이 구성됐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진등 급파 ○…이란 정부는 이번 지진을 「끔찍한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남아프리카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게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긴급 원조를 요청. 이란 당국은 특히 전주민들에게 금요일 기도회에서 헌혈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지진으로 인해 부상한 사람들을 위해 혈액을 공급해줄 것을 호소. 한편 일본ㆍ프랑스ㆍ스위스ㆍ영국ㆍ호주도 앞서 미국에 이어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이란에 긴급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일외무성은 이날 이란과 일본간의 우호적인 관계와 인도적인 측면을 감안,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해 1백만달러를 기부할 것이며 53만9천달러 상당의 구호물자 및 의료품을 공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또한 12명의 구조대와 10명의 의료팀이 외무성 관리 2명 등과 함께 이날 저녁 이란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봅 호크 호주총리도 호주정부는 이란의 구호활동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고 영국 민간 자선단체소속 자원봉사대 17명도 이란 지진피해 구호활동을 위해 현지로 향할 준비를 갖추었다고 이 단체 관계자가 말했다. ○“관계개선 호기”분석 영외무부도 21일 이란정부의 구호 요청에 즉각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고 영국 적십자사도 우선 지진피해자들을 위한 담요ㆍ의약품ㆍ식료품등 구입 자금으로 1만파운드(1만7천2백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의. ○…이란의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미국 및 서방동맹국들이 이란측에 우호적인 태도와 관계개선을 위한 의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설명. ○EC,1백만불 제공 ○…유엔은 주제네바 구호조직을 통한 즉각적인 지원활동에 들어갔으며 유럽공동체(EC)도 1백만 ECU(유럽통화단위ㆍ1백20만달러)의 구호금을 전달했다. ○…이란 제1의 적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21일 새벽 북서부 이란을 강타한 지진과 관련,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 이라크 관영 INA통신은 후세인대통령이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재난에 「심심한 유감」을 표시하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상자 테헤란 이송 ○…희생자들이 몇t씩이나 되는 자갈과 파괴된 건물속에 파묻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구조요원들이 사고현장으로 몰려가고 있으나 지진으로 인한 도로파괴와 악천후로 현장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RNA통신은 사고현장으로 통하는 주요도로가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돼 육로를 통해 현장에 접근할 수없어 도로가 복구되길 기다리고 있으며 악천후로 공중수송도 용이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 또한 중상자들의 대부분은 현장치료가 불가능해 테헤란으로 이송되고 있다. ○…구조대가 겪고 있는 또다른 어려움은 정전. 지진으로 송전시설이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피해지역 도시와 마을사람들은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있어 조명장비 없이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벽돌더미에 깔린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부상자들의 비명을 듣고도 속수무책인 채로 발만 동동. ○한마을 4백명 사망 ○…전화로 접촉한카스피해 인근 라시트마을의 한 주민은 자기 마을에서만 4백명이 죽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살아남은 주민들도 여진이 두려워 집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길거리에서 서성대고 있다고 울먹. ◎지진지역은 가장 비옥한 차생산지/대부분이 세라믹 벽돌집… 피해 극심 ○…21일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화된 이란 서북지역은 이 나라의 가장 비옥한 토지를 비롯,부유한 마을,경치가 수려한 산들로 이루어진 곳. 이란 관영 매체들은 이번 지진으로 총면적 5만㎢,주민수 4백만명으로 추산되는 길란 및 잔잔주에서만 1천9백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는데 소련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의 국경으로부터 테헤란 북쪽 해안휴양지에 이르는 카스피해 해안을 품고 있는 길란주는 주로 건조한 기후의 이란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길란주 농부들의 주업은 담배경작. 남쪽으로 잔잔주까지 뻗어있는 고원지대에서는 이란이 생산하고 있는 다작물 거의 대부분이 생산되고 있다. ○…이번 이란의 지진이 엄청난 피해를 부른 것은 이지역 지각을 이루는 2개의 판상이 유동적이며 죄는 형태로 산악지대를 형성,진동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게 지진전문가들의 진단. 게다가 피해지역의 많은 가옥들이 홍수가 잦은 침전된 평야위에 지어진데다 건축자재가 콘크리트 보강재를 사용하지 않은 세라믹 벽돌이어서 외부충격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는 것. ○대수롭지 않게 보도 ○…이란 언론들은 21일 2만5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북부이란의 대지진에 대해 별다른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채.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이란 언론매체는 지진 보도에 신속성을 보여 이란통신의 경우 지진발생 30분만에 수도 테헤란에서 진동이 감지됐다고 타전. 그러나 그뒤의 후속 보도들은 잔잔과 길란지방에서 많은 사상자가 우려된다고 짤막하게 언급했을 뿐 주로 농작물에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만 전했다. 게다가 이란관영 IRNA통신의 최초 보도들은 재앙의 정도를 극적으로 과소평가하기도. 이 통신이 이날 늦게 사망자수를 1만명으로 보도한 사이 유엔주재 이란대사는 2만5천명이 죽고 수만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이란 라디오방송은 6시간30분 뒤에야 지진보도를 했으며 TV는 한술 더떠 12시간이 지난후에야 아무런 논평없이 북부의 지진현장 장면을 반영. 하셰미 라프산자니대통령이 지진희생자들을 위한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음에도 TV는 아동용 만화와 교육프로를 내보내고 이집트와 영국간의 월드컵축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세계 10대 지진 ▲1556. 1.24 중국 산서 83만명 ▲1737.10.11 인도캘커타 30만명 ▲1526. 5.20 시리아 안티오크 25만명 ▲1976. 7.28 중국 당산 24만2천명 ▲1927. 5.22 중국 난산 20만명 ▲1923. 9. 1 일본 도쿄 14만명 ▲1730.12.30 일본 북해도 13만7천명 ▲1920.12.16 중국 감숙 10만명 ▲1290. 9.29 중국 치흘리 10만명 ▲1201. 3 에게해 10만명
  • 「한국전 기원과 성격」… 「6ㆍ25」 40돌 국제학술회의

    ◎스탈린,49년 3월 김일성 만나 “남침”확정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가 주최하고 통일원이 후원한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미소가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등이 집중 토의됐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은 미소의 갈등으로 빚어진 특수한 내전이면서도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고 주장하는 존 메릴 미국무성연구관의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 대답없는 질문」과 소련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북한을 사주 한국전쟁을 도발했다는 윌리엄 스투웨크 미조지아대교수의 논문 「소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개한다. ◎6ㆍ25의 기원/윌리엄 스투웨크 미 조지아대교수/크렘린,미ㆍ서구 밀착 저지 겨냥/극동에 긴장 조성… 미 경제난 유도 속셈도 한국전쟁은 주모자인 북한과 주요 군사물자 제공자이자 군사고문단 및 병력의 결정적인 공급자였던 소련,그리고 중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보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소련이 이같은 모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느냐의 의문이 남는다. 당시 소련은 팽팽한 긴장속에 미국의 핵무기와 잠재된 기동력에 눌려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49년 가을 마샬플랜의 시행,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서독정부의 출범,미의회의 대서유럽군사원조결의 등 일련의 사태로 미루어 볼때 미국의 관심이 서유럽에 집중됐다고 판단,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단결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국내외 문제의 최종결정권자였던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관한한 공개토론을 허용했다. 49년에서 50년에 걸쳐 프라우다지는 몰로토프,스슬로프와 같은 온건관료층의 견해를 주로 반영했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말렌코프,베리야와 같은 강경군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강경파들은 미국경제가 점차 퇴조하고 있으므로 소련이 서유럽에 압력을 가중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원조를 포기하고 서유럽에서 물러날 것으로 믿었다. 반면 온건파들은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강조,소련의 압력이 오히려 서방국가를 결속시켰으므로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유럽에서는 평화정책을 쓰는 대신 극동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국제긴장상태 조성을 통해 ▲국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소련주변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정책전환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촉진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소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북한의 남침 등 여러조치들을 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시행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49년 한햇동안 미국은 남한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50년 1월1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방위체계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1월 중순에는 미하원에서 남한에 대한 경제원조안이 거부됐다. 스탈린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동맹국들의 집단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49년 3월 김의 모스크바 방문시 북한의 침공을 논의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마지막 남아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니 침공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과 군사원조 합의안에는 서명했지만 상호안전보장 조약의 체결은 피했다. ◎6ㆍ25의 성격/존 메릴 미 국무성연구관/초강국갈등서 비롯된 「특수내전」/이해 엇갈린 미ㆍ소ㆍ중의 대리전 양상도 지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북한은 결코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폐쇄체제의 영웅적인 자화상을 훼손하고 평양 당국으로 하여금 1백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를 스스로 인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대한 영웅적인자화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수년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반미투쟁월의 경축행사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관해 북한사람들이 형식주의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신있게 변호하지도 않는다. 평양 당국은 전쟁초기의 며칠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한 설명을 결코 출판물을 통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토의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를 유심히 살펴본 비판적인 독자라면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평양을 격하하거나 40년전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특히 그들이 남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려면 이러한 태도는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남한도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 문제,즉 한국전쟁은 침략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조전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강제적으로 가로놓여진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1950년에 국토의 분단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것을 영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수단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이승만대통령도 김일성이 남한으로 쳐 들어왔던 것처럼 북진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국제전인가 아니면 내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양자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강대국의 불간섭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양체제의창출은 한국내의 좌익과 우익간 투쟁의 국내적인 측면을 강화했다. 이제 소련이 미묘하게 표명하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개입(현재 우리가 조심스럽게 표명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도 있었다)에 따라 국제화의 성격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두개의 한국이 상호 경쟁하는 국내적 성격이 다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 소,북극에 핵전투기 40대 배치

    【오슬로 로이터 연합】 북극지방의 군사기지를 계속 현대화하고 있는 소련은 사상 최초로 콜라반도에 전투 폭격기를 배치시켰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인 노르웨이가 14일 밝혔다. 소련은 핵무기 적재장치를 갖춘 전투기 40대를 헝가리의 데브레첸으로부터 콜라반도로 재배치시켰는데 이 전투기들의 대부분은 나토에서 플로거 J로 불리는 미그 27기로 지난달 노르웨이 방위정철망에 처음 포착됐다. 노르웨이 방위 사령부는 성명을 통해 『소련이 북극함대에 전투 비행단을 배치한 것은 이 지역에서의 소련 공군력을 평가함에 있어 공격능력이 상당히 증가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련 북극함대는 전시에 미국 및 캐나다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을 연결하는 대서양 항로를 차단하는데 이용될 수 있어 그 중요도가 매우 높다.
  • “한ㆍ소 회담은 북한개방 충격요법”/뉴스위크지,커버스토리로 소개

    ◎“한반도 평화정착에 중대한 전환점 될 것” 【뉴욕 연합】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1일 시판되는 18일자 최신호에 노태우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회동 관련기사를 커버 스토리로 게재하고 이번 한소 정상회담으로 아시아 안보정책 전반의 재고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논평했다. 「태평양에서의 해빙」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전망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는 노대통령의 적극적인 견해와 『과일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 익으면 먹도록 하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소극적인 견해를 함께 소개하고 어쨌든 노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평가했다. 뉴스위크는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한국과 소련이 정상회담을 가져 국교를 정상화하려고 움직이고 있음은 소련이 그들의 동맹국인 북한의 체면을 깔아뭉개더라도 새로운 부자친구를 하나 얻어야 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뉴스위크는 또 한소 정상간의 샌프란시스코 회담이 실제적인 어떤 구체적 협정을 남기진 않았으나 소련에 어쩌면 1백억달러에 달할 투자와 차관 및 교역확대 가능성을,한국측엔 북한측에 강력한 현실대응 요법을 가하게 함으로써 양측에 커다란 이득을 남겼는데,이번 회담이 북한측에 충격을 주어 그들의 고립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케 하고 남북한 경계지역의 분쟁을 줄이기 위한 교섭에 적극 참여토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동북아 새기류… 세계의 시각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의 통일등 한반도의 장래를 진단하는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미 무너진 동독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최악의 요소」만 갖추고 있어 체제존속이 어려울 것』이란 마이클 윌리엄스 미코넬대객원교수의 전망(8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나 「한국 성큼 걸어 나오다」라는 제목아래 『공산국가들은 남한의 경제력으로 보아 통일한국은 남한이 지배하게 될 것』으로 분석한 9일자 영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두 기사의 내용을 간추린다.〈편집자주〉 ◎미교수,「상항랑데부」이후 예진/“김일성 사후 북한붕괴 가능성”/무너진 루마니아의 최악 요소만 지녀/미 인터내셔널 트리뷴 한소 관계의 발전은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만남으로써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이 만남이 미국 땅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더욱 뼈아픈 상처를 입게 됐다. 이번 회담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동북아 정정에 가장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회담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지난 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지 꼭 40년만에 이뤄진 노ㆍ고 회담은 한국의 정치ㆍ경제적인 우위를 반영한 것이다. 이 회담은 또한 지난 48년 이후 지속돼온 북한 김일성체제가 계속 지탱할 수 있을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ㆍ고 회담은 한소 관계를 또다른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이 회담으로 한소간 완전한 국교수립과 대사의 교환은 이제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소의 접근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7일 북한은 한국 대통령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적인 협상」을 했다고 고르바초프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ㆍ군사원조의 대부분을 여전히 소련으로부터 얻고 있기 때문에 사실 소련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산세계에서 유독 북한만이 정치개혁은 물론 경제적 변화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소련학자들은 올해 78세인 김일성의 사후에도 현북한공산정권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미 무너진 동독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최악의 요소만 함께 갖춘 북한정권이 존속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 개최로 북한이 그동안 소련과 중국사이에서 벌여온 줄타기 외교가 더이상 먹혀들지 않게 됐다. 중국으로서는 크메르 루주만큼 「국제적으로 이미지가 아주 나쁜」 북한의 유일한 지지국으로 남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이 주변지역 긴장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기뻐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이니셔티브는 일본이 새롭게 일고 있는 대소협력물결에 합류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기업인들은 잠재적으로 거대한 소련시장에 한국과 미국이 침투하는데 대해 점차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항시 날카로운 타이밍 감각을 발휘해 온 고르바초프는 이번 방미기간 중에도 자신이 1991년에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도쿄는 그가 아직까지도 찾아가지 않은 유일한 세계 주요도시이다. 소일관계는 일본에서 북방영토로 불리는 쿠릴열도내 4개섬을 둘러싼 양국간의 오랜 분쟁으로 마비돼 왔다. 미소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모스크바 당국이 최근 한국에 접근함에 따라 소련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일본의 경제적 지렛대 기능은 크게 손상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일본의 경제원조대가로 소련이 4개섬을 반환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르바초프로서는 한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소일 정상회담을 늦춤으로써 소련이 일본에 대해 어떤 중대한 영토 양보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해온 것 같다. ◎영 경제지,남북한의 장래 전망/“통일한반도 한국이 지배한다”/경제력 절대우위… 유엔가입 장애없어/영 이코노미스트지 한반도의 교착상태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상면하게 됨에 따라 일견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한반도 문제가 탄력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들 두사람의 만남은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부시대통령과의 회담후 귀로에 갖는 것으로 짜여졌고 회담시간도 불과 1시간밖에 안되었으나 그 결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이로써 소련은 사실상 과거 동맹국인 북한을 버린 것이다. 지난 88년 12월까지만 해도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남한과 외교관계를 가질 의향이 없다고 공언했으며 그후로 북한은 공산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에 눈과 귀를 막고 지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국가들에 있어서는 한국이 그들에게 줄 것이 많은 나라로 떠오른 것이다. 88년에 3억달러였던 한소 무역은 89년에 6억달러로 늘었으며 금년에도 늘어날 것이다. 공산국가들은 남한의 경제력으로 보건대 통일이 되더라도 남한이 지배할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두나라의 경제는 서로 잘 어울리는데 소련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그리고 한국은 비교적 덜 정교하긴 하지만 소련에게는 필요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서방의 대공산권수출통제기구인 코콤(COCOM)의 멤버가 아니며 코콤 또한 금지규모를 완화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므로 한국과 소련간에는 괜찮은 거래가 가능한 입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37년이 되는 한반도의 긴장은 팽팽하다. 주로 소련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은 남한을 2대1로 압도하고 있으며 직접대화는 잘 나가는듯 하다가도 실패로 끝나곤 한다. 지난 11월 남한이 북한의 문화교류 제의를 거부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남북대화 파탄의 책임은 주로 북한측에 있다. 남한이 다음에 성취할 큰 일은 유엔회원국이 되는 일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의 유엔가입안을 물리치는데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을 믿어왔으나 이제 소련은 더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것 같지 않다. 그럼 중국은 어떠한가. 과거에 김일성은 소련이 까다롭게 나오면 중국과 포옹함으로써 소련을 협박하곤 했다. 이러한 포옹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중국도 그동안 계산을 다시 해오고 있는 중이다. 한중간에 외교관계는 없지만 두나라의 무역거래량은 작년 경우 26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중국과 북한무역의 4배나 되는 것이다. 남한은 유엔가입안을 신중히 다루고 있다. 지난 4월 노대통령은 유엔주재 한국외교부를 교체했다. 정치인이며 노대통령의 측근인 현홍주 신임대사는 북경과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한 일이 있다. 남한의 무역ㆍ기술ㆍ투자 등은 중국에게는 매력적인 것들이다. 북경과의 외교관계전에 남한은 대만과의 관계를 격하시켜야 되는데 대만측이 반발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극소수에 불과한 「이념국」인 북한을 버리기 전에 재고 삼고를 하고자 할 것이다.〈연합〉
  • “한반도의 딜레마는 끝났는가”/소 통신,「상항 랑데부」분석

    ◎모스크바 외교정책 전환의 신호탄/평양과 마찰 불원…「화해의 장에 동참」겨냥 소련의 노보스티 통신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의 의미를 분석하고 소련과 북한간의 미묘한 입장을 설명한 장문의 기사를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랑데부… 한반도의 딜레마는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이 분석기사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사학박사보 A 보가투로프=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미국방문 일정 마지막날에 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심층 분석을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분명한 결론은 소련 당국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평양측을 무마하려 하기보다는 남북한 문제에 대해 적합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대로 행동키로 결정한 것 같다는 점이다. 외형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이같은 두가지 접근방법은 고르바초프가 85년에 당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당면하고 있는 고통스런 딜레마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반도정책 노선은 교묘하리만큼 유연성을 띠어가고 있는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랑데부는 소련 외교정책의 주요한 돌파구를 신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돌파구가 양대통령간 샌프란시스코 회동의 진수인 것 같다. 소련의 대외관계에 있어서 국가와 당의 우선순위는 나뉘어진다. 이같은 당과 국가의 분리를 공약한 고르바초프가 한국의 노대통령과 만난 것은 우발적인 사건은 아니다. 이같은 새로운 외교정책 때문에 이념적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한다는 공산당의 전통적인 노선에서 벗어난 세계는 이제 마침내 현실화 했다. 한소 정상회담은 회담결과에 있어 미소 정상회담과 비견될 수 없는 것이나 이같은 관점에서는 미소 정상회담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측의 논평은 세세하고 낙관적인 반면 소련관리들은 자제하고 있다. 상황은 대단히 미묘하다. 평양측이 보인 반응은 과거만큼 통렬하지는 않으나 분명한 것이었다. 아무도 평양과의 마찰을 원치 않는다. 해야 할 과업은 북한으로부터 타당치도 않은 장광설을 듣는 불쾌감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쪽에 보다 인내적인 자세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 지역의 유익한 과정에 평양을 동참시키는 일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과 미군유해 인도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는 중요한 정치적 조치를 취했다. 이 협상의 결과는 주로 상징적인 것으로 단지 시작일 뿐이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이 광범위해지면 동서독이 통일문제에 접근하기에 앞서 정상적인 상호접촉의 단계를 거쳐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무역에 있어 남북한 통합이 심화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소관계가 이같은 통합의 시점을 표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소 양국은 경제협력을 발전시키고 영사처를 개설하는 한편 관광과 인적교류를 촉진하는 계획도 갖고 있고 조만간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시기가 가까와 질수록 한국주재 소련대사의 서울 도착을 기점으로 오히려 한소관계가 퇴보할지 여부의 의문이 더 자주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양국관계발전을 위한 말은 많이 오고 갔으나 막상 관계발전을 위해 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소련에 대한 한국의 진출규모는 이렇다 할만큼 드러날 정도가 아니다. 물론 소련의 경제가 어려운 상태에 있고 또 합작투자와 관련된 법들이 미비하다는 등 어려움들이 실재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경제계 일각에서는 한국기업인들이 소련과의 경제협력을 할 용의를 밝히는 과정에서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경우이든 한소 양국은 아직 양국간의 관계를 상호의존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경제협력을 위한 확고한 기반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은 호혜적인 것이어야 하며 양국관계가 다양해 질수록 이 노력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딜레마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모스크바노보스터 연합〉
  • 「신 데탕트의 축」 유럽서 동북아로/한­소 정상회담 결산

    ◎한반도 대결구조 청산의 새 이정표 세워/민관협의체 통한 경제교류 급진전 예상 한반도 탈냉전의 기폭제가 터졌다. 동구와 유럽을 풍미해온 화해와 협력의 기류가 드디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은 양국 수교합의에는 물론 동북아와 한반도에서의 냉전체제의 대결종식,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공동 노력키로 합의한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는 크게 보아 ▲한소수교 및 양국정상의 상호교환방문 합의 ▲동북아 평화구도구축 공동노력 ▲남북한 관계개선 협력 ▲양국 경제협력가속화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우선 전후 45년간 한반도 분단과 6·25의 북한측 후견자로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어온 소련의 정상과 한국대통령의 만남자체가 이미 관계정상화를 기정사실화한 것이지만 이날 두 대통령이 마주 앉아 『멀지않는 장래에 완전한 수교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양국 수교문제는 이제 초읽기에 돌입한 것으로 생각된다.노·고르비회담이 양국수교의 구체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양국정부대표단이 곧 실무협의를 갖도록 합의한 이상 빠르면 7월중에라도 양국 외무장관간의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교절차협의가 가속화된다면 오는 가을에는 한소 두나라가 대사급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양국정상이 「상호 적절한 시기에 때가 되면」 서울과 모스크바를 방문키로 다짐함에 따라 가을 수교→노대통령의 연말 방소→고르바초프대통령의 내년 상반기 방한이라는 관계당국자의 예상일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 대통령이 『개방과 화해의 물결이 이제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미쳐야 한다』는 인식아래 냉전종식,평화정착에 공동노력키로 한 것은 양국 정상회담이 단순히 양자 관계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뉴 데탕트의 축을 유럽에서 이제는 동북아로 옮겨 놓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번 한소 정상회담이 미소 정상회담에 뒤이어 태평양연안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고 다시 한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3각 연쇄회담인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 의미는 대단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또 동북아 냉전구조의 핵심이 바로 북한의 폐쇄주의에 기인하고 있는 현실과 소련정상의 이같은 공동노력을 교차시켜 보면 한반도및 동북아에 있어 앞으로 전개될 기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노대통령에게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해 소련이 어떤 기여를 해야하느냐』고 스스로 물은 대목은 바로 북한의 개방을 위해 소련이 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의지의 우회적인 표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물음에 거침없이 남북정상회담수락종용,북한의 개혁·개방지원,무력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북간에 평화정착이 이뤄지도록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많은 「지렛대」를 갖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항공기 등 고도정밀무기체제가 모두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석유의 대부분을 역시 소련측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대외교역량,외채의 80%가 소련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대북설득은 북한수뇌부가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 직전 평양측이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남북한 군축안을 제의한 것은 바로 북한이 얼마나 소련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가하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북한의 고립화를 원치 않고 소·북한협력관계발전을 기대하며 남북한이 협력의 동반자가 돼야한다고 밝힌 것은 바로 「대 평양메시지」로서 소련이 자신의 동맹국인 북한에 대해 노대통령과 한국정부의 솔직하고 진지한 입장을 가식없이 전달토록한 것이다. 서울­평양의 직선통행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통행을 통해서라도 냉전의 대결을 종식시켜야한다는 우리 북방정책의 목표가 이번에 극명하게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양국의 경제협력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진전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지금까지 민간차원에서 운영되어왔던 양국경제협의체를 양국정부및 경제계로 혼합구성되는 민관경제협의체로 끌어올리기로 함에 따라 경제교류는 가속력이 붙게 될것이다. 이날 회담에서 「지리적 근접성과 상호의존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경제협력증진을 강조한 것은 시베리아 공동개발이라든가 한국의 소비제품공급·생산기술과 소련의 우주·항공등 첨단과학기술및 기초과학의 상호협력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양국경제협력을 사실상 정부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한국의 대소경협촉진에 장애가 되어오던 투지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등 제도적 장치의 미비가 수교와 함께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0억∼40억달러 규모의 대소경협문제는 이번에 직접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양국 경제협력의 심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정상의 첫 대좌는 동북아 냉전구조의 핵심고리인 한반도의 탈냉전은 물론 한·중국관계의 개선,미일의 대북한 관계진전의 물꼬를 트게할 것이라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선언으로 평가된다.
  • 한ㆍ소 정상 4일 회담/양국,동시발표

    ◎샌프란시스코서 역사적 첫 대좌/조기수교ㆍ한반도평화 논의/노대통령 3일 출국/6일 워싱턴서 부시와도 회담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오는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31일 하오 3시(한국시간)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동시발표했다. 노대통령은 이를위해 오는 3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노대통령은 4일 한소 정상회담을 가진뒤 5일 워싱턴에 도착,6일 상오(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호놀룰루를 거쳐 8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한소양국 역사상 처음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소 국교정상화 문제를 집중논의,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양국간의 국교를 정상화 한다는데 합의할 것으로 보이며 남북한 관계개선을 포함한 한반도에서의 안정과 평화문제를 중점 논의한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이번 회담은 두나라가 이미 수교원칙에 합의한 시점에서 이뤄져 한소 수교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련이 중국과 함께 북한의 마지막 남은 지원국이며 군사동맹국이란 점에서 두 정상의 만남은 북한의 향후 진로 및 남북한 관계개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소 정상회담후 미네소타주에 잠시 들렀다가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로 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소 정상회담의 정확한 회담시간과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6일 백안관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은 한소 및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부시대통령에게 설명하며 부시대통령은 미소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정상은 이 자리에서 한소간의 관계정상화및 북한의 개방유도를 위한 공동노력 방안등을 아울러 협의한다. 부시 미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이전에 솔로몬 미 국무부차관보와 메틀록 주소대사를 샌프란시스코로 보내 노대통령에게 미소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의 한소및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에 수행할 공식수행원은 다음과 같다. ▲최호중외무장관 ▲박동진주미대사 ▲공로명주소영사처장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 ▲김종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노창희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 ▲이수정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최규완대통령주치의 ▲박건우외무부의전장 ▲김삼훈외무부미주국장 ▲나원찬외무부구주국장
  • “동북아에 새평화기류 형성”기대/“한ㆍ소 관계 개선”미ㆍ일의시각

    ◎북한에 충격… 무언의 개방압력 일언론/동구수교 이어 또 하나의 승리 WP지 노태우대통령이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사상 최초로 긴급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는 빅 뉴스는 도쿄(동경)외교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교소식통들은 한반도문제가 앞으로 세계의 새로운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함과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소련과 국교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언론들도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면서,이의 실현은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정세를 펼치려는 한국의 적극외교가 가져온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초 한소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오는 6월5일 미국방문을 끝내고 귀국하는 도중 극동의 캄차카에 들러 아시아ㆍ태평양 정책에 관한 중요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된 30일 하오부터 점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86년 블라디보스토크연설,88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 이은 이번 캄차카연설은 고르바초프의 포괄적인 아시아 외교연설의 제3탄이 되는것으로,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의 사전협의를 거쳐 극동아시아지역에의 안정과 평화,나아가 한반도통일문제에 관한 새로운 제안이 있지 않을까라고 외교 관측통들은 전망했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도쿄(동경)신문은 『한소 양국의 국교수립과 경제협력,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정세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라고 분석하고 『정상회담의 실현은 사상 초유의 일일뿐만 아니라 제2차대전 이후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정세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는 지난 3월 소련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한국과의 국교수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국교수립의 시기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근 소련매스컴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고 개방ㆍ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사가 몇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등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해설기사를 통해 『소련의 대한수교수립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분석하고 『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한반도 정세에의 영향력행사를 요청하는 한편 양국의 조기 국교수립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한국정부가 이번 회담계획과 관련,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를 미국에 긴급파견했으며 북방외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최근 동구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소련은 동맹국인 북한의 태도에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이번 회담결과의 성패는 소련측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노­고르바초프의 회담은 지금까지 소련의 개혁과 동구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한반도의 냉전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서방측 소식통의 말을 인용,『이번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노대통령은 양국 경제협력의 가일층확대 이외에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사할린잔류 한국인의 모국방문등에 관해 소련측의 협력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북방외교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특히 북한의 개방화촉진이 초점이 될 것이며 미일을 비롯한 서방측이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의 공포도 토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소식통들이 이번 회담에서 『조기 국교수립등의 의제가 결실을 맺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실현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며 한국ㆍ북한에 대한 일ㆍ미ㆍ중ㆍ소의 크로스 승인에 한발 더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노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이번 한소 수뇌회담의 결과를 포함,미국정부와 서방측의 대소ㆍ대중ㆍ대북한정책을 검토ㆍ재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방미중 노태우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동의한 것은 소련의 주요 대한관계개선조치로서 북한의 김일성에겐 외교적 모욕이 될 것이라고 31일 뉴욕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소련언론이 개방문제와 관련하여 김일성의 통치를 비난하고 있는것과 때를 같이해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소련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해온 미국관리들은 노대통령을 미국에서 만나기로 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지는 한국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회담은 ▲한소관계정상화의 행보가 빨라지고 ▲소련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타임스지는 최근 소ㆍ북한관계는 마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그 예로 북한의 핵무기 안전협정체결 지연에 대한 소련의 불만,북한의 소련특파원 추방,소련언론의 북한관,소련역사가의 남침설 및 김일성정체폭로등을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이 북한지지국들을 상대로 추진해온 문호개방정책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서울의 모스크바 동구 잠식에 화를 내 온 평양을 격분 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에서 노ㆍ고르바초프는 전면외교관계 수립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회담을 일괄적으로 지지할 것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과의 급속한 화해에 대해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워싱턴타임스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의 극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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