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맹국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정류장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표준화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보디가드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휴지조각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18
  • 「지도력을 위한 재원」/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해외논단)

    ◎미 지도력은 싼값으로 유지될수 없다/강력한 외교·군사력 갖춰야 국제문제 해결/상원서 예산 삭감땐 중대한 타격 가져올것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지도력을 위한 재원(RESOURCES FOR LEADERSHIP)」이라는 제목으로 탈냉전이후 미국의 세계문제에 있어서 지도력 강화를 주장하는 연설을 했다.다음은 연설문 요약이다. 미국 지도력의 중요성과 그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재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그 필요성은 최근 옛유고와 중동의 두지역에서 입증되고 있다.옛유고에서의 분쟁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은 지난 3년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그러나 이제 클린턴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제사회의 새로운 결단에 힘입어 우리는 진실로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올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궤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2개월전 런던에서 우리는 세르비아계의 안전지대에 대한 공격을 응징하기위해 실질적이고 단호한 공중폭격을 단행해야한다고 동맹국들을 설득했다.그 이후 우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고도의 효율적인 공습을 봐왔으며 보스니아내 전쟁 당사자들로부터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현재의 국경내에 단일 국가로서의 보스니아 유지에 동의한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국제무대에서 외교력없이 군사적 힘만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가능케하는 조건들을 만들어 낼수 없다.외교와 군사력은 유럽에서건 다른 지역에서건 분리할수 없는 미국의 힘의 도구가 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외교는 아랍­이스라엘 협상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돼왔다.최근 몇주동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이 2년전 워싱턴에서 서명했던 「평화원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하도록 막후에서 노력을 기울여왔다. 보스니아와 중동은 우리가 냉전이후의 세계에서 직면했던 「복합분쟁」의 본보기들이다.지난 몇주사이의 사태진전은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주고 있다.그것은 세계가 거친 도전에 직면했을때 미국의 지도력 없이 이룩할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우리의 지도력은 싼 값으로는 유지될수 없다는 사실이다. 냉전시대 말기에 우리는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널리 펼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가는 곳마다 미국의 방향제시와 지도력을 요청받았다.개방경제와 개방사회는 번영과 안정을 구가할 최고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세계방방곡곡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바람직한 상태는 단지 우리가 지탱할수 있고 구축할수 있는 정도에서 머무르고 말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랄수 없다. 참으로 미국 지도력의 중요성은 금세기의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지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지구적 세력으로서 미국이 세계문제에서 발을 빼는 정책은 미국을 위한 책임있는 선택이 아니며 세계를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지난 수년동안 우리는 핵무기가 수천기씩 방치돼 있는 옛소련 영토내에서의 수많은 무장충돌을 보아왔다.우리는 이라크와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주변국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왔다.이같은 명제는 최근 사담 후세인이 대대적인 생물학무기계획을 은폐하려 했다는 확증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테러리즘과 조직적범죄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소생은 물론 우리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문제에 있어서 초당적인 컨센서스는 미국의 힘의 핵심적 요소가 돼왔다.50년전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 당시 공화당과 함께 나토를 창설하고 마셜플랜을 세웠으며 이는 몇년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때도 그대로 유지됐다.지난 2년간도 그같은 초당적 협력은 지속돼 나프타(북미자유무역지대)와 가트(관세무역일반협정)를 다루면서 고립주의·보호주의와 싸웠으며 옛소련의 개혁과 중동평화를 위한 지원을 계속해왔다. 현재 상원은 국무부의 통상 운영예산마저도 3억달러 가까이 삭감하려 하고 있다.이는 우리에게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50개에 달하는 대사관과 영사관을 폐쇄토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 외교가 맡은 기본 임무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을 들게 할는지도 모른는 위기들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한 예로 북한의 핵동결을 위해 북한과 체결한 핵협정은 우리에게 당장 수억달러가 절약되게 하고 있다.그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동북아에 상당수의 미군을 증강시켜야했을 것이다. 만일 국무부의 예산이 삭감된다면 수년내에 외교정책을 수행하기위한 재원들을 잃게 되고 말것이다.이는 미국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세계를 위해 비극이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미국 지도력의 계속적인 필요를 옹호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나는 오늘 우리가 미국이 강해야 할것이냐 아니냐는 토론 대신에 미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것인가를 토론하게 되길 희망한다.
  • 불 해군 컴퓨터망에/해커 침입·정보 도청

    【파리 로이터 AFP 연합】 일단의 해커들이 지난 7월초 프랑스 툴롱의 해군기지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해 프랑스와 동맹국 군함과 관련된 고급 비밀 정보를 도청해갔다고 주간 르 카나르 앙셰네가 19일 보도했다. 20일 발매되는 이 잡지는 『함공모함·순양함·핵잠수함 등과 관련된 비밀 정보들이 도난당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으며 샤를르 미용 국방장관도 이를 확인했다』고 전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신코콤」 체제 출범 합의/미 등 28국

    ◎리비아·북·시리아 무기수출 통제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을 비롯한 28개 선진국들은 북한 등 잠재적 적국들을 겨냥한 무기및 첨단무기기술 수출 통제를 위한 새로운 체제에 합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0일 보도했다. 미고위관리들은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이 새로운 무기통제 체제는 냉전시대의 무기통제체제인 코콤(대공산권무기통제위원회)의 후속 체제로 고안된 것이지만 과거와 달리 무기수출 결정을 개별 국가에 맡기는 등 통제가 더욱 완화됐다고 전했다. 이 관리들은 코콤이 바르샤바조약 동맹국들을 겨냥한 것인 반면 새 무기통제체제는 북한·이란·리비아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린 데이비스 미국무부차관은 미국이 테러지원국가로 공식지명한 수단·쿠바·시리아 등에 대한 무기수출을 「추정에 의해 거부」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무기 구입권을 갖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새로운 체제는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8개 선진국 회의에서 합의됐다고 말하고 세계 7대 무기공급국가중 이번 회의에 초대되지 않은 중국을 제외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러시아·미국 등 6개국이 이 체제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 나토공조 균열 조짐/스텔스기 동원 세계공습 싸고 이견

    ◎미,러 비난 무마위해 특사파견 【워싱턴·사라예보 AP 로이터 연합】 러시아가 최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공습을 격렬히 비난하고 나선 가운데 미국은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장관 등 고위관리 2명을 러시아와 세르비아 공화국에 파견,설득작업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토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미스텔스 전폭기의 보스니아 출격에 거부 입장을 보이고 프랑스마저 세르비아계에 대한 최근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는 등 나토의 공조체제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미국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마이클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탈보트 부장관이 나토의 세르비아계 폭격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12일이나 13일중 모스크바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탈보트는 러시아측 입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러시아와 고위급 접촉을 가질 것이라고 매커리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와 함께 리처드 홀브룩 국무차관보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회담을 갖기 위해 13일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홀브룩 차관보는 또 14일 제네바에서 「접촉그룹」 관계자들과 회담한 뒤 자그레브를 방문,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대통령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나토가 13일 유엔의 「안전지대」를 포위중인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해 또 다시 공습을 단행한 가운데 보스니아 회교정부군과 크로아티아계 동맹군은 세르비아계 영토 수백㎦를 장악했다고 유엔관리들이 밝혔다.
  • “이념서 실리로”한반도 역학구도 급변/북·러 군사동맹조약 폐기의미

    ◎“냉전체제 붕괴” 북의 현실인식 유도/남·북 긴장완화에 도움… 우리외교 개가 러·북한간의 군사동맹조약은 지난91년 말을 기점으로 국제냉전체제의 종식과 소연방의 해체로 사실상 사문화된 조약이다.어느 의미에서는 러·북한관계보다 러·한국관계가 더 가까워진 마당에 전쟁발발시(특히 남북한전쟁을 상정)러시아가 북한을 자동적으로 무력지원한다는 조약이 효력을 갖는다고 볼수는 없다.지난해 6월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방문때 옐친대통령이 이같은 맥락에서 조약폐기 약속을 우리측에 했던 것이다. 러정부가 이 조약의 폐기 혹은 수정(군사자동개입을 명시한 제1조)을 그동안 미루었던 것은 경신을 하지 않을 경우 96년9월 이후 자동폐기되기 때문에 굳이 앞당겨 폐기해 북한을 자극치 않겠다는 의도에서였다.이 조약의 경신여부는 조약만료 1년전에 통보하게 돼있기 때문에 늦어도 9월중에 북한쪽에 경신,폐기여부를 통보하게 돼있었다.지난 61년7월6일 모스크바에서 체결돼 같은해 9월10일 평양에서 비준서교환으로 효력을 발생한 이 조약은 조약당사국 어느한쪽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매5년마다 자동연장되도록 규정돼있어 이번 조약은 내년 9월까지 유효하다.이때문에 러시아정부는 오는 10일 이전에 조약의 경신여부를 통보해야할 의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러정부가 조약폐기를 결정하며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역시 북한과의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6일 한태규외무부 구주국장을 외무성으로 불러 조약폐기를 북한에 통보한 사실을 알리면서도 7일 공식발표 때까지는 철저한 「엠바고(보도자제)」를 요청했다.현재 러측은 이미 사문화된 것으로는 보지 않는 것 같다.북한과 군사동맹관계를 배제한 「우호선린조약」을 체결할 경우 양국관계가 정상적인 이웃으로 새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북한도 이미 효력이 없는 군사동맹관계에 연연하기보다는 결국 새 조약체결에 응해,러시아와 정상적인 선린관계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같다. 한편 북·러간 군사동맹의 공식폐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국 사이에는 보다 첨예한 이해각축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우선 미국과 일본의 대북접근 템포가 제약없이 가속될 것이라는 게 이곳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러시아 역시 과거처럼 이념에 바탕을 둔 관계가 아니라 실익에 바탕을 두고 최소한 남북한과의 관계를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높다.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이미 핵개발반대,군사력증강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한국이 외교적으로 그전같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높다. 북한 군사력의 「모태」였던 러시아와의 군사동맹관계가 마감됐고 이제 미·일·러등 주변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간 이해에 따라 북한과 거래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물론 안보면에서 볼때 북한의 대남한전쟁도발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고 할수있게 됐다.그러나 한반도는 이제 수십년간의 냉전시대 동안 겪지 못했던 미지의 도전과 과제에 직면케 됐다. ◎평양·모스크바의 대응은/북,대미 평화협정 공세 강화할듯/러선 다자체제 통한 영향력 유지 추구 북한과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묶는 끈이었던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에 관한조약」이 폐기될 운명을 맞게 됨에 따라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옛소련 시절 체결된 이 조약이 그 동안 한­러 관계증진에 실질적인 장애 요소는 아니었다.이 조약은 그 핵심인 「북한이 침략당했을 때 자동개입한다」는 조항에 대해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측이 지난 93년 독자적 해석권을 갖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미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북한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얼마든지 있었다.따라서 한­러 협력확대에 큰 심리적 장애요인이었다.그래서 지난해 김영삼대통령이 방러 정상회담시 엘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이 조약의 폐기를 강력히 요청했던 것이다.때문에 이번에 러시아측이 이 조약의 폐기를 북한에 통보했다는 사실은 일단 지난 90년 한­소수교에 이은 우리 외교의 개가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완전한 친한노선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그 보다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한국으로부터 경협등 실리를 얻겠다는 현실 노선을 택했다는 것이 올바른 진단일 것이다.이는 러시아측이 북한에 군사동맹조약의 폐기를 통보하는 대신 한국과 맺은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비슷한 우호조약 체결을 제시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된다.러시아측의 이 제안에 대한 북한의 구체적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하지만 북한도 궁극적으로 이같은 변화된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다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다소 감소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고립감이 심화된 북한이 핵카드를 이용한 미·일과의 관계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점쳐지는 탓이다.이 과정에서 북한이 정전협정을 무실화시키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남북한 및 미·중·일등과 함께 다자간 협의를 통해 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참여,한반도에서 발언권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구상과는 정면 배치된다.따라서 핵문제나 평화협정 문제등을 둘러싼 외교경쟁에서 반드시 우리측이 절대우위를갖게 됐다고 속단키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러 동맹관계의 청산은 북한이 국제적 냉전체제의 붕괴를 현실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러시아가 상징적이나마 「동맹」에서 보통의 이웃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외교무대에서 국제사회 게임의 룰을 존중하도록 강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장기적인 견지에서 이번 러­북 조약의 폐기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나토,세계에 최대규모 공습/창설 46년만에

    ◎전투기 60여대 출격… 3차례 맹폭/세계 “공습 나토기 2대 격추”/EU 감사원 등 12명 사망설 【사라예보·브뤼셀 외신 종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사라예보에 대한 포격으로 37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해 30일 새벽(이하현지시간)부터 하오까지 3차례에 걸쳐 나토사상 최대 규모의 공습을 단행했다고 나토 소식통들이 밝혔다. 나토 전투기들의 이날 공습으로 사라예보 지역의 세르비아계 점령지에서 유럽연합(EU) 감시단원 5명등 모두 12명이 사망했다고 세르비아계 통신 SRNA가 비공식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특히 이날 공습에는 영국등 5개국과 아드리아해상의 미 항모 데어도어 루즈벨트호등에서 발진한 F­15E,F­18D,F­16 등 60여대의 전투기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40개월을 끌어온 보스니아 내전기간을 포함,지난 1949년 나토 창설 이래 지금까지 단행된 폭격 가운데 최대 규모의 공습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토와 유엔 관계자들은 이번 나토 공습으로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이 「괴멸적인」 피해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공습에 참가한 나토 전투기 2대가 세르비아계의 방공포에 의해 격추됐다고 세르비아계 라디오 방송이 주장했으나 나토의 공식확인은 아직 없다. 이날 2차 공습후 4시간뒤 단행된 3차 나토 공격에서 목표물들이 정확히 피격됐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앞서의 1·2차 폭격은 보스니아 서부의 모스타르시,동부 고라주데,북부 투즐라 등 보스니아 전역의 세르비아계 방공미사일기지와 통신시설,레이다 기지,탄약소,군수공장,지휘소등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나토는 추가공습을 위해 현재 이탈리아와 프랑스,독일,그리스,영국 및 아드리아해상의 항공모함등에 모두 1백76대의 전폭기와 요격기,정찰기등을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위협 제거때까지 공습 계속”/유엔대변인 밝혀 【사라예보·런던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사라예보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엔군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군사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유엔 대변인이 30일 밝혔다.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은 이날 나토의 사라예보 외곽과 보스니아 중부 및동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있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르나르 장비에 유엔보호군(UNPROFOR) 사령관이 이같은 서방측의 의지를 라트코 믈라디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군 사령관에게 통보했다고 전했다. ◎나토선 격추 부인 【나폴리 로이터 연합】 나토는 30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참가한 전투기 중 격추되거나 파손된 공군기는 없다고 나토 남부 사령부 대변인이 밝혔다. ◎미 특사­세공 대통령/공습직후 긴급회담 【베오그라드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 대통령 특사인 리처드 홀브룩 미국무부차관보는 30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시작된 후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과 긴급회담을 가졌다. ◎나토 대공습 왜 하나/“「보」 내전 끝내자” 세계 초토화/미­영 등 합동작전… 3∼4일 더 공격 30일 새벽 단행된 나토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점령지역에 대한 공습과신속대응군의 포격은 유례없이 큰 규모였다. 지난 28일 사라예보 중심가를 강타한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37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응해 벌어진 이번 나토의 공습은 40개월동안의 보스니아 내전중 꼭 11번째이다.그동안 나토의 공습은 세르비아계의 군사적 공격에 대한 보복용으로 위협을 가하는 수준이었던데 반해 이날 공습은 나토가 밝히고 있듯이 「보복」 차원이라기 보다는 「억제책」의 성격이 짙다. 그동안 보스니아내전에서 군사적 우위를 보였던 세르비아계가 크로아티아에 크로아티아내 점령지를 다시 빼앗기는 등 위축됐고 나토의 보복 공습위협에 밀려 유화 자세를 보이는 틈을 타 세르비아계를 확실히 약화시키고 분명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나토의 밀어붙이기 식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나토의 공습이 앞으로도 3일 정도,나토의 목적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추측으로도 뒷받침된다.또 이번 공습으로 어떻게든 보스니아 내전의 종결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번 공습이 이처럼 신속하고 대규모로 이루어진데는 모처럼 강대국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이 한몫을 했다.18개월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세르비아의 공격에 대해 미·영·프랑스·독일·러시아 등 5개국 접촉그룹은 물론,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세르비아계를 비난하며 군사조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보스니아 사태를 놓고 위상과 그 역할에 대해 회의를 불러 일으켰던 나토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요한 시험대로 여긴 영향도 컸다.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나토의 공습은 첫번째 목표를 방공시설에 두었으며 방공시설이 파괴되면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아계의 다른 지상목표물들에 대해서도 3∼4일간 공격하는 일이 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나토는 이날 3차공습을 끝낸 뒤 공습 결과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냈다.지난 공습 때 번번이 세르비아계가 유엔군을 인간방패로 삼아 더이상의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유엔군이 미리 고립되거나 공격이 쉬운 지역들에서 철수,인질로 잡힐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없애 유엔과 동맹국 사령관들이 쉽게 작전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은 공습 직전 보스니아 영토를 51대 49로 분할하는 미국측 평화안을 환영하고 평화협정 체결 준비가 돼있다고 선언했다.이에 대해 서방측은 군사행동을 피하기 위한 세르비아계의 술책이라고 일축하고 있으나 이번 공습의 여파로 세르비아계가 평화안을 수용할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한강 인도교 폭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3)

    ◎「임진강교 폭파 실패」뒤 서둘러 준비 지시/미 참전으로 예정보다 하루 늦춰 결행 19 50년 6월25일 일요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다음날 26일 월요일에 벌써 수도 서울을 혼란에 몰아넣었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6일 밤 각각 긴급 국무회의와 긴급국회를 열어 27일 새벽 수원으로의 천도를 결정할 만큼 전선은 긴박하게 돌아갔다.그리고나서 28일 상오2시30분쯤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버렸다.한강다리를 폭파한 시간에 T33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아직 수도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었다. ○개전 다음날 검토 착수 한강 다리 폭파계획은 전쟁 다음날 26일 상오부터 이미 검토되었다.전황이 매우 불리해지면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불러들여 한강다리 폭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이는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임진강 다리 폭파를 시도했다 실패한 과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공병감은 공병학교 폭파교관 황원회 이창복 중위에게 폭파준비를 서둘러 지시했다.당초 폭파시각은 27일 하오4시로 결정되었다.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가 시흥으로의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하오2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미군개입 가능성과 극동미군의 전방지휘소(ADCOM)가 한국에 설치될 것이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 소식을 미군사고문단(KAMAG)단장대리 W H 라이트로부터 전해들었다.그래서 시흥으로 나앉았던 육군본부를 다시 용산으로 복귀시켰다.이에따라 한강다리는 결국 하루늦게 폭파되었다.이시영 부통령 일행은 폭파직전 한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상오2시 특별열차편으로 한강를 건너 대전으로 내려갔다.그런데 이날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30분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이 전파를 탔다.그 내용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것이었는데,사실은 사전에 준비한 녹음방송이었다.한강다리의 폭파는 결국 수도 서울을 사수하던 국군장병 4만4천명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국군 4만4천명 낙오 북한 공산군이 서울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각이 28일 하오3시쯤이었으니까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뒷날 나왔다.이런 이유로 해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그러나 폭파를 명령한 육국 참모총장 채병덕은 7월27일 하동전선의 18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한강 다리가 끊겨나간 이후 육군 5개 혼성사단이 노량진 본동을 중심으로 모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서울에서 퇴각한 이들 부대는 명목상 사단편제였지 사실은 연대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개전한 시각에 한국의 우방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은 미조리주 인디펜던스 자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그는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국무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날 백악관에 도착했다.미국은 국제연합(UN)이 「평화에 대한 침략적 행위」로 규정지어 주기를 바라면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않는 전략을 취했다.그리고 미국무성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무렵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대신대만의 자유중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으로 총회 안보이사회 의석을 차지하도록 결정한데 항의하여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는 중이었다.소련이 불참한 안보이사회는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 원위치로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결의했다.이와 더불어 유엔 회원국은 이 결의의 집행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 자제를 요청하는 안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 공산군이 서울 근교에 접근하던 6월27일(워싱턴 시간) 미공군과 해군에 한국정부를 엄호지원하는 명령을 내렸다.이날 유엔 안보이사회는 소련이 여전히 불참한 가운데 「무력침략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음날 28일 서울은 침략자의 손에 들어갔다.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경찰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전 5일째가 되고 서울이 공산권 수중에 완전히 넘어간 다음날인 6월29일에는 맥아더장군이 자신의 전용기 바타안호를타고 동경에서 수원으로 비행해왔다.바타안호가 착륙하는동안 간이 활주로 한쪽 끝을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가 공격했다.맥아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한편 임시수도 대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적의 항공기로부터 요격을 피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저공비행으로 수원에 와 닿았다.이들이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안에 적의 전투기는 계속 기총소사를 해댔다. ○“미 해군 해안선 봉쇄” 맥아더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는대로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했다.트루먼은 6월30일 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이와함께 한반도의 전 해안선을 해군이 봉쇄하도록 명령하고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상당한 지상군 지원부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찰스 스미드 중령이 이끄는 미 지상군 선발대가 일본 사세보를 떠나 부산을 거쳐 7월5일 평택에 도착했다.그러나 이 미군부대는 한국군의 한강 방위선을 무너뜨리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앞에 속수무책이었다.이런 상황속에 UN안보이사회는 7월7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회원국은 그 군대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둘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주한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개전후 뼈아픈 11일간이 지나가는 동안 유엔과 미국은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리고 16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이 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특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지상전에 주동적 참전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선 주변에 위험한 그림자를 깔기 시작했다.그 위험은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공산군 점령지역의 허리인 인천을 상륙한데 이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1950년 가을이 저문 10월19일 저녁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전쟁양상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미 「국가정보평가서」/“소,「한국전 중 개입땐 대전 확산」 예측”/“유엔군 내분 조장… 전력약화 기대/필요땐 중에 소 의용군 지원 태세” 1950년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했을때 소련은 한국전쟁의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와같은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시 미국은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국가정보평가서­11」(NIE­11)에 따르면 소련의 통치자들이 중공의 한국전 개입을 지시 혹은 재가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미국은 평가하고 있었다.NIE­11은 그러나 소련이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세계대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IE­11은 또 소련이 세계대전 발발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공간의 전면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적고 있다.▲우선 미국과 연합군대를 다른 전장으로 유인해 병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간 알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의 침공으로 유엔의 단결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소련의 판단으로 추정했다. 이에따라 소련은 중공에 대해 적절한 물자와 기술인력,심지어는 의용군까지 제공해 한국에서의 중공군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특히 유엔군의 공중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중국내 거점 방위가 필요하다면 비행기와 대공포를 훈련된 요원도 함께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또 중국영토에 대한 미군(유엔)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경우 중·소조약에 근거해 중공에 대한 소련의 공개적 군사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IE­11은 이어 사태추이를 볼때 중국 공산당의 개입목적은 유엔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NIE­11은 미 중앙정보부가 1950년 12월5일 국무성 및 육·해·공군의 정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작성한 1급 비밀문서다.
  • “핵실험 영구금지” 미 결정은 옳다/레너드 스펙터(지구촌 칼럼)

    ◎NPT체제 강화로 북한 핵위협 등 효과적 억제 8월15일,영국·미국,그리고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2차세계대전 패배 50주년을 기념했다.일본의 패배는 일본의 야만적인 점령과 일반인 및 전쟁포로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보다 앞서 8월6일과 9일은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50주년이었다.이 폭격은 일본의 패배를 앞당겼을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기리는 「축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대신에 이 두 도시 파괴 50주년은 핵전쟁의 철저한 파괴력에 대해 국제사회가 냉철한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하면서 「추념」되었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진 이 사건들은 오늘날 핵무기 문제의 계속적인 심각성을 상기시킴으로써 주목된 것이다.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으며 중국은 올들어 두번째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다행스럽게 핵무기의 역할이 앞으로 국제문제로서 다소 약화될 전망이 이번달 내비춰졌다.핵실험 재개에 대한 비난에 못이겨 시라크대통령은 96년 핵실험의 영구금지를 약속했으며 중국정부도 비슷한 약속을 내놓았다. 거기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미 영구핵실험 금지 방침을 밝혔고 또 일시적 실험중지 약속을 지켜온 미국이 소규모 폭발실험마저 위법대상으로 포함시키는 금지안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러나 소규모라도 실험실시는 전지구적 실험금지의 뜻을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올 8월의 일련의 이벤트들은 다양하면서 상충되기도 하는 메시지를 한국에 전달했을 것이다. 첫째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를 다시없이 좋은 일로 여긴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어떤 이에겐 이것은 수십년 일제 압제에 대한 징벌이었다.더 나아가 이 원폭투하 덕분에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다수 학자들은 당시 일본이 평화로 돌아선 것은 소련군의 참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으나 원폭투하는 일본의 항복을 가속시켰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폐허가 될 무렵에 이미 소련군은 한반도의 북쪽을 점령해가고 있었다.일본의 항복이 조금 더 늦춰졌다면 소련은 한반도 전역을 욕심냈을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모든 한국인은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하는 민간인들의 고통을 다시금 떠올렸을는지도 모른다.남·북한간의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핵무기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핵실험 금지 또한 한국에게 복잡한 문제와 다시 대면케 한다.오늘날 북한으로부터의 도전은 아주 새로운 차원을 갖는데 평양이 하나 혹은 둘의 핵 장치를 위한 물질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미·북한간 기본합의는 이 위협을 제거하는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록 절름거리기는 하지만 목표를 향해 진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이 중무장한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는 주요 방책이었던 냉전시대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진정 당시 미 핵무기의 한국 존재는 동맹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굳은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이었다.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핵확산금지 체제를 비롯한 외교적 방편이다. 미국의 모든 종류의 핵실험에 대한 금지 방침은 현재의 세계적 핵확산금지 체제를 강화할 것이다.더구나 핵실험 금지는 그자체로 지구적 핵억제 체제에서 중요한 새 요인이 된다.이 억제체제가 더 광범위해지고 더 상세해질수록 핵확산금지의 규범을 강화할 것이며 이 규범에 거슬려가려는 국가는 한층 고립될 것이다.북한은 이미 이같은 고립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 91년 미국 핵무기가 한국에서 철수된 이후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의지는 외부적으로 덜 분명해졌다.그리고 몇몇 미 국방관계자들은 미국의 핵실험금지 정책이 확고해지면 지금도 보일락 말락하는 미국의 핵억지력이 외부에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 핵실험금지의 영향은 그러나 미시적인 것이다.미국은 이제까지 어느 국가보다 많은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핵실험 계속여부와는 상관없이 어떤 적성국이 미국의 비축 핵무기 성능이 크게 나빠질것이란 판단을 바탕으로 군사적 계획을 세운다고 가정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결국 핵실험금지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보증을 보는 시각에다 별다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없다.반대로 핵실험금지는 북한의 핵도전을 종식시킬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올 8월에 발신된 핵 신호는 혼선돼 불분명할 수 있으나 하나의 메시지만은 단연코 뚜렷하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사태가 되풀이되어선 안된다.한반도와 세계의 핵확산금지에 관한 미국의 노력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
  • 러시아입장 고려 NATO확대 신중히/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동구국가입 서두르면 96년 러 대선서 민주개혁파 곤경에 러시아와 서방과의 사이에 놓인 가장 큰 쟁점중 하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대문제다.문제의 발단은 소련의 옛군사동맹국들인 동구권이 자신들의 적이었던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나선 데서 시작됐다. 그렇게 나선 이유는 다소 복잡하다.동구국들은 우선 나토가입을 통해 서방의 일원으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물론 경제적인 이득도 기대한다.이와 함께 나토 가입이 안보보장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동구,경제적 이익 기대 이들은 홀로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강대국의 먹이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갖고 있다.체코는 2차대전 전 나치독일의 먹이가 됐고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지금 체코,폴란드,기타 동구국들의 우려 대상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란 점이 다를 뿐이다.이들은 2차대전 뒤 모두 러시아에 의해 점령돼 비인간적이고,비효율적인 공산주의에 의해 속박됐다.몇몇 나라들은 이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다 소련군의 침공을 받아 저지됐다.동구국들은 이런 아픈 역사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민주화됨으로써 동구국들은 큰 혜택을 받았다.이들은 자유를 되찾았고 서구식 사회 건설의 기회를 얻었다.이웃 대국 러시아에 대해 품었던 공포감도 사라지는듯 했다.그러나 러시아의 개혁이 비틀거리고 외교정책 기조가 흔들리면서 이 공포감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1993년 12월 총선에서 극우민족주의자 지리노프스키의 압승은 동구국들을 아연 긴장케했다.지리노프스키는 수시로 동구권을 포함,주변국들을 러시아영토로 귀속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외에도 러시아 정치인들중에는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인물이 많다.정치적 불안정,경제·사회적 제불안요인은 동구국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앞날에 대해 짙은 우려를 갖게 했다.이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독립,자유,안보를 지키기 위해 동구국들은 나토로 몰려든 것이다. ○러시아­서구 관계 냉각 애초에 러시아 민주지도자들은 나토확대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91년,92년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승리감에 도취돼 있을 때는 모든 서방국들이 하나같이 동맹국처럼 느껴졌다.처음 폴란드의 나토가입문제가 나왔을 때 옐친대통령은 주권국가가 어떤 국제기구에 가입하든간에 그것은 그나라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했다.한때는 러시아 자신도 나토가입을 고려했을 정도였다.이같은 입장은 그러나 보수민족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러시아와 서방과의 관계도 긴장관계로 바뀌었고 러시아내 서방에 대한 기대,신뢰분위기도 급속히 냉각됐다.러시아에서 반서방 분위기가 높아지면서 동구국들은 더 결사적으로 나토가입을 희망했다.그러면서 러시아 역시 나토확대에 강경반대입장을 고수했다. 지금 나토문제는 러시아정부의 최대현안이다.러정부의 입장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서방은 처음부터 러시아를 기만했다.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해체했는데도 서방은 그 대응기구인 나토가 동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존속시키고 있다.둘째,나토를 동구권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서방이 여전히 러시아를 적으로 본다는 증거이다.셋째,나토확대는 유럽을 분열시켜 대결분위기를 조장한다.넷째,나토확대는 러시아를 유럽대륙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위 4가지 논지는 러시아정부내 대부분의 인사들이 동감한다.극우민족,공산주의자들은 여기에 몇가지 주장을 더 추가한다.우선 나토확대는 러시아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온다는 것이다.러시아는 서방의 군사,정치적 위협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또한 이런 세력불균형은 종국에는 전면대결로 발전케 된다고 말한다. 나토확대에 관한 러시아정부의 공식입장은 매우 강경하다.옐친대통령은 이 움직임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그러면서도 미국등 서방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시키고 싶어한다.그래서 타협의 여지는 있다.러외무부가 나토국들에게 제시한 몇가지 방안을 보자. 첫째,나토를 해체하고 전유럽을 포괄하는 안보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물론 서방은 이에 반대한다.그 다음으로 내놓은 안이 바로 동구권을 받아들이되 정회원이 아닌 동반자관계 자격으로 받으라는 것이다.러시아정부의 지도자들은 서방지도자들에게 최소한 나토확대를 서두르지는 말아달라고 주문한다.나토확대를 서둘러러시아내 보수여론을 자극할 경우 96년 대통령선거에서 보수파들이 승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이다.반대로 민주개혁파가 승리하면 나토확대에 크게 반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동구국 역시 굳이 나토에 가입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논리이다. ○회원국들 입장 엇갈려 나토국 내부에서도 확고한 컨센서스는 아직 없다.예를 들어 스페인,이탈리아는 나토확대에 반대입장이다.기구가 너무 커져 자신들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걸 우려해서이다.미국 역시 러시아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신중히 추진하자는 자세이다.반면 독일은 이를 빨리 추진하고 싶어한다.독일국경에 맞닿은 나토방위선을 동쪽으로 밀어내보내고 싶기 때문이다.그 경우 독일은 실로 50년만에 최전방국가의 짐을 벗는 것이다.군사전문가들은 대체로 나토확대에 신중한 견해를 밝힌다.무엇보다 그렇게 비대한 기구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우선 동구국들은 가입하더라도 군사장비,인력을 재무장하고 재훈련시켜야 한다. 이 모든 사항들을 고려할 때 나토확대는 최소한 수년은 걸려야 해결될사안이다.그리고 미·러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양국 모두가 그런 사태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세계 “미 평화안 지지”/보스니아 분할내용

    ◎유고 세 민족 인종청소 종료 임박 【모스크바·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15일 옛유고슬라비아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 개최라는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평화안의 핵심내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는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새로운 노력을 환영하면서도 미국의 평화안에는 러시아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군사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국무부의 로버트 홀브루크 차관보를 단장으로한 미대표단은 이날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보스니아 및 크로아티아지도자들과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기상관계로 사라예보방문을 연기하고 그 대신 크로아티아에서 무하마드 사치르비 보스이낭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홀브루크차관보는 보스니아를 2개 지역으로 분할해 한개 지역을 크로아티아와,다른 한개지역을 세르비아와 연맹토록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평화안을 휴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관리들은 대표단이 언제 사라예보로 떠날 것인지에 관해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평화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보스니아를 분할해 회교도들이 사라예보 주위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그 대신 유엔 안전지대인 고라주데를 포기토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이같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유럽동맹국들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스렘스카라차·다보르 AP 로이터 연합】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회교계 난민들이 구유고지역에서 각각의 영토로 탈출하는 행렬이 14일 최고절정을 이룸으로써 지난 4년간 유고내전의 가증스러운 목표였던 민족청소가 사실상 완성됐다. 특히 이번달 크로아티아군의 갑작스런 크라이나 점령,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크로아티아인에 대한 보복추방,이에 앞선 세르비아계의 유엔안전지대 스레브니차,제파 점령으로 난민들의 탈출은 더욱 가속화됐다. 세르비아당국은 크로아티아군의 크라이나 점령후 14일까지 15만에 달하는 세르비아계난민이 세르비아에 도착했다고 밝혔고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거점인 반자루카에서는 크로아티아에서 탈출후 세르비아로 향하는 난민들을 일시 수용하기 위해 14일역내 크로아티아계 주민 6백여명을 집에서 추방,인근 크로아티아로 내몰았다. 한편 보스니아 회교계 주민 약 3만여명은 크로아티아 중부 보이니치마을에서 발이 묶여 길가·숲속 등에서 3일째 노숙하고 있다.
  • 미,유럽에 대표단/「보」 새 평화안 논의

    【자그레브·모스크바 AP AFP 로이터 연합】 옛 유고사태의 해결을 위해 금주중 모스크바에서 개최될 예정인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간 정상회담이 크로아티아의 참석 거부로 무산 위기를 맞은 가운데 미국은 9일 고위 대표단을 유럽에 파견,동맹국들과 새로운 평화방안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 외교공세를 펴고 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유럽 동맹국들과 보스니아 내전종식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9일 앤터니 레이크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대표단을 영국 등 유럽지역에 파견했다고 미관리들이 전했다.
  • “미 국방비 삭감해야 한다” 64%/미 대화토론재단,안보의식 조사

    ◎“2개전쟁 동시수행 전략은 비현실적” 48%/“국제분쟁 해결 앞장을” 28%… 고립주의 선호 미국인들은 정부예산중 사회보장이나 의료보장 예산에 대한 삭감보다는 국방비의 삭감을 더욱 원하고 있으며 국방부의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2개전쟁 동시수행전략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워싱턴에 위치한 공화·민주 양당에 의해 운영되는 초당적 여론조사기관인 「미국인 대화토론재단」(ATIF)이 최근 미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안보의식조사에서 밝혀졌다. 긴축재정을 위한 정부예산의 삭감에 있어서는 조사대상의 3분의2에 달하는 64%가 국방예산의 삭감에 동의했으며 의료보장 예산 및 사회보장 예산의 삭감은 각각 35%,28%만이 찬성했다. 국방부의 2개전쟁 동시수행전략에 대해서는 48%가 「비현실적」이고 「불필요한」 전략이라고 지적했으며 또 미국이 동시에 2개의 전쟁에 개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61%가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미국의 국제분쟁에 대한 개입에 있어서는 유엔이나 동맹국들과 함께 경비를 분담하는 조건일 경우에 한할 것에 59%가 찬성을 표했으며 반면에 미국 혼자라도 국제분쟁에 개입할 것에는 44%만이 찬성했다. 또한 미국의 분쟁개입시 동맹국들이 자신들의 지불능력과 국익에 따라 공동 참여해야 한다는데 90%가 찬성했으며 미국의 국방예산은 유엔 혹은 동맹국들과 공동 부담한다는 전제위에 짜여져야 한다고 53%가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또 국제분쟁에 있어서 미국보다는 유엔이 전면에 나설것에 69%가 찬성했으며 반대로 미국이 앞에 나서야 한다는데는 28%만이 찬성의사를 보였다.만일 유엔이 실패할 경우에도 29%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고,31%는 다른 나라들이 행동할 때까지 기다린다에 31%가 찬성하는등 철저한 고립주의 양상을 보였다. 해외에 파병된 미군의 경우 작전시 반드시 미국인 지휘관의 지휘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데 66%의 지지를 보였다. 한편 현 클린턴 행정부를 포함한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 질문에서는 75%가 강한 불신을 나타냈으며 이는 오는 96년 대선에서 제3당의 출현이나 무소속후보의 등장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 미,아태 새 안보체재 모색/중의 “97년 홍콩접수후 군 주둔”대응

    【반다르 세리 베가완 DAP 연합】 미국은 중국이 오는 97년 홍콩을 접수한 뒤 그곳에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최근 발표함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미국관리들이 1일 밝혔다. 동남아 순방에 나선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수행중인 이 관리들은 새 안보체제에는 크리스토퍼 장관이 『핵심 동맹국』이라고 표현한 일본·한국·호주·태국및 필리핀 등이 들어있다면서 미국은 이들 국가 외에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회원국인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및 브루나이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 미국의 대보스니아 무기금수 해제(쟁점)

    상원의 보스니아 무기금수 일방해제 결의로 보스니아내전 정책을 두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에 클린턴대통령의 해제반대론과 보브돌 상원의원의 찬성론을 나란히 게재했다. 이를 소개한다. ◎찬성론/보브돌 미상원의원/“보인에 자체 방어권 줘야”/UN보호군 제구실 못해… 최소한의 무기 제공을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금수를 해제하자는 상원의 초당적이며 압도적인 법안통과는 보스니아및 미국의 지도력에 관한 일대 전환점이다. 이 논의의 요체는 아주 간단하다.전화에 찢긴 소국에게 2차대전이래 유럽대륙에서 가장 야만적이며 민족말살적인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침략에 희생되고 있는 독립주권국가에 대한 무기금수는 유엔헌장에 위배된다.국제사회가 이에 관한 태도를 바꾸는데 미국이 선도적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보스니아전 뿐 아니라 미국의 세계적 위치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제까지 3년동안 미국과 국제사회는 보스니아인을 보호하자는 유엔결의를 통과시키고,동맹국들과 회동하고,세르비아계의 공략에 맥없이 무너지는 「안전 항구」를 설정하고,세르비아계에 대한 나토의 최후통첩을 남발해왔다.미국 과 동맹국들은 이러저런 말을 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소비했으나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정책실패만 가중시켰을 따름이다.안전지대의 함락 등은 유엔보호군이 보스니아인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클린턴 대통령은 보스니아인의 무기자유구입 요청을 유엔이 원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클린턴정부는 보스니아전이 「미국화」되기 때문에 무기금수해제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나 보스니아인들이 원하는 것은 미군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가족과 집과 나라를 지킬 무기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잘못임을 알 수 있다.또 미국이 이미 유엔군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2만5천명의 미군 투입을 약속한 마당에 새삼스레 미국화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기금수 해제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 것이라고 행정부는 주장하지만 나토는 회원국간의 의견불일치를 이겨낼 만큼 강력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동맹체인 나토를 유엔에 증속시킨 게 큰 잘못이다.또 전쟁이 확대된다고 말하지만 보스니아인들은 이런 위기를 감수할 생각일 뿐아니라 세르비아계는 전부터 수만명의 유엔군 주둔아래서도 공략을 감행해 왔었다.서방의 우유부단과 비효율성이 이들에게 침략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본질적 문제는 보스니아전이 터지면서부터 미국은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였다는 사실이다.미국은 유엔에 묶여있는 바람에 세르비아계에게 아주 유리한 유엔의 무기금수조치나 실패한 유엔보호군 작전에 대한 지원 등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세계에서 미국의 지도력은 항상 미군개입을 의미하지 않았다.트루먼이나 레이건 독트린이 예시하듯 이는 침략에 대한 자기방위권의 강한 옹호에서 드러날 수 있다. ◎반대론/클린턴 미대통령/“보스니아전의 미국화 초래”/확전때 미개입 불가피… 평화협상에 힘써야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금수 원칙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해제하는 것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 내린 정책판단이다.분명히 보스니아는 지금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지만 문제의 요점은 행동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대략 세가지 선택안이 있다.첫째 미지상군을 포함,나토가 전쟁의 판세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입하는 길이다.대통령취임 때부터 나는 이 선을 넘는 것을 거부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나토의 일원으로서 보스니아에서 철수하는 동맹국군을 보호하거나 진정한 평화협정의 실천을 지원하는 경우를 빼곤 미 지상군의 보스니아 개입을 정당화할 수 없다. 둘째 현상황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느낀 의원들의 방안으로 보스니아인들이 스스로를 위해 싸우도록 무기수출을 금한 국제적 약속을 우리 미국이 혼자깨뜨리자는 것이다.아주 솔깃한 제안이나 일이 그처럼 단순하지 않는게 문제다.미국은 여려 심각한 후속사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 해제는 보스니아파견 자국 병사들을 크게 위험스럽게 하므로 즉시 보스니아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언해 왔다.동맹국 철수 시에는미지상군이 철수 이행을 위해 개입해야 되므로 결국 유럽 동맹군이 나가는 대신 미군이 들어가는 셈이다.그리고 무기를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전쟁이 심화되고 확대될 터인데 일방적 해제로 나토동맹국과의 약속을 저버린 미국은 군사적 지지나 인도적 지원에서 철수의 공백을 메워야 할 것이다.보스니아 확전은 발칸지역의 갈등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시킬 것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책임으로 더욱더 깊게 개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무기해제와 유엔보호군 철수는 진정한 해결책으로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행중인 평화협상을 크게 후퇴시킬 것이다. 보다시피 일방적인 해제는 일방적인 미국의 책임을 의미한다.위험이 예상되지 않는 대안은 보스니아정책에는 없다.지난 수년동안 우리가 동맹국과 함께 주의깊게 추구해온 길이 보다 현명한 대안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이는 유엔의 능력을 키워 세르비아계로부터 보스니아 안전지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켜내도록 하는 것이며 유엔군으로 하여금 결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이뤄온 성과를 앞으로도 계속 성취할 수있게 하느 것이다.민간인 사망자 수는 유엔군 파견 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의회의 일방적 해제법안 통과는 유엔보호군의 직접 개입과 나토의 공군력을 통한 인명구제및 평화협상 토대 마련의 노력을 크게 손상시킨다.동맹국들이 보스니아에 대한 책무에서 스스로를 면제시키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결국 금수해제법안은 보스니아전을 미국화 해버리는 것이다.
  • 미,21C 대아외교 4대전략 수립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아시아순방앞서 발표/핵심동맹국과 유대 강화/적성국가 「참여」 정책추구/경제성장 통한 안전보장/인권신장·시장개방 유도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28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상세하게 밝힌 미국의 대아시아외교 4대전략을 요점별로 소개한다. 29일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6번째인 아시아순방을 떠난다.지난 50년 존 포스터 덜레스장관이후 국무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캄보디아를,또 70년 윌리엄 로저스국무장관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각각 공식방문하는 일정도 포함돼 있다. 냉전종식과 아울러 아시아의 정치적 상황은 진실로 심대한 변화를 겪고 있고 특히 아시아의 강국인 러시아 중국 일본의 변화가 뚜렷하다.다행스럽게도 이 지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상호갈등에서 벗어난 상태이나 해묵은 경쟁관계가 갑자기 재연될 가능성이 상존한 가운데 통합성이 높아진 이 지역의 경제적 번영은 시장과 자원에 대한 경쟁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은 21세기를 앞두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4대분야별 전략을 채택했다. 첫째,미국은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등 이 지역 핵심 동맹국과의 기존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다 활성화시킬 방침이다.4대강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이 곳에서 미군의 존재는 안정과 번영의 기초를 이루며 우리 방어의 제1선이기도 하다.미국의 아시아전략은 일본에서 시작되는데 탈냉전시대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일본의 의도는 존중되어야 한다.한국의 깊은 협조로 양국의 오래된 군사·안보적 유대관계는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은 남북한관계 진전을 절대조건으로 한다. 둘째,이 지역 여타 주요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미국은 적성국가의 성장을 저지하는 「적극적 견제」가 아닌 「참여적 관심」정책을 추구할 것이다.중국만큼 아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나라는 없을 것이며 미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그러나 핵강국으로서 중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책임이 있으며 미국시민인 해리 우씨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 셋째,경제성장을 유지하고 통합성을 촉진하며 장기적 안정을 보장하는 지역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브루나이에서 아·태지역및 유럽연합의 17개국과 만나 북핵문제,남사군도와 관련된 항해자유의 문제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이상이자 관심사항인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다.「열린 사회」도 시장개방과 항해자유만큼이나 태평양에서 번영과 안정을 촉진시킬 것이다.미얀마와 북한의 예가 증명하듯 억압정책은 빈곤을 심화시킬 따름이다.
  • 「세계화정책과 한·미 경협 세미나」 요지

    ◎미시튼홀대 아시아센터­한국연구학회 주최/“세계화는 한국 미래창조의 비전”/「삶의 개선」 지구공동체 노력에 적극 참여/아·태서 주요 경제기능 이끌 중심국가 돼야/미는 「상호 대등성」입각 대한경제정책 펴길 「한국의 세계화정책과 한­미 경협」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세미나가 28·29일 이틀동안 미국의 뉴저지주 쇼트 힐 힐튼호텔에서 열렸다.시튼홀대학 아시아센터와 국제한국연구학회 공동주최로 두나라 정부인사,학자,기업인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세계화를 위한 세계무역기구(WTO)와 통상」등 7개분야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세계화정책을 해외직접투자,기술이전,국제금융등 경제적 측면에서 조감해본 최초의 국제학술행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다음은 주요 주제발표 요지이다. ◇21세기에 대비한 한국의 세계화정책과 한미관계의 함축성(김진현 세계화추진위 공동위원장·서울시립대총장) 한국의 세계화는 성장중심주의의 일원론적 사고방식에 대한 지적 전환을 의미한다.세계화는 한국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력을 바탕으로 도전에 대응하는 문제해결방식의 한국화이며 또한 계급갈등,지역간 편견,세대차의 극복을 의미한다.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지구공동체 의식의 고양을 의미한다.다시말해 한국의 세계화는 4대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평화전략이며 미래창조의 비전이다. 한국은 냉전시대 미국의 대소련 및 중국전략의 주요거점이었으며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군사안보와 경제성장에 필요한 제조건에 의지해왔다.현재 미국은 한국의 가장 큰 경제적 파트너이며 군사적 동맹자이다.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주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미간의 갈등은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의 적용에 크게 기인한다.미국은 한국을 제2의 일본으로 보아 왔다.그러나 한국은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국제경제환경에서의 위치와 경쟁력에서,그리고 환경과 인권,빈곤퇴치를 위한 국제적 노력과 헌신의 정도에 있어서 결코 제2의 일본일 수 없다.일본이 세계공동문제해결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사회에서의 리더로서의 책임분담을 회피해온 반면 한국은 인류전체의 삶의 개선과 행복의 증진을 위한 지구공동체의 노력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위협을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에서 보이듯이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정부와 한국민을 소외시킴으로써 국제권력정치의 구시대적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미국의 주요동맹국이며 문제당사자의 일원인 한국을 소외시키는 것은 미국측의 중대한 오류이다. ◇한미경제관계의 경향:미국정책의 의미(앤드류 김 국제투자협회회장) 한국 세계화정책의 성공여부는 제조업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자본흐름의 방향과 양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따라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시장과 서비스산업의 발달이 한국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한국의 잠재적인 경제적 발전을 최소화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미래 한미간에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같은 합작투자사업이 다수 생길 것이며 미국은 시장개방을 계속 요구할 것이지만 이는 결국 한국에도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문제는 미국의 시장개방요구가 한국의 경제적 효율성과 자유화에 도움이 되는 한계를 초과할 것이라는 점이다.미국의 정책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폭넓은 다자지역관계로 이동할 것이다.미국의 대한정책의 주요목표는 두나라 경제체제간의 상호보완성및 상호대등성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한국이 아시아·태평양에 있어 주요 경제적 기능을 담당하는 중심국가가 되고자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을 특별히 제안한다. ◇다자간 무역질서 대두와 한국의 새로운 역할(유장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원장) 세계화는 개혁의 대상을 경제부문에 국한하지 않고 국가 전분야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수의 기득권 세력때문에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또한 통일에 대한 불확실성,새로운 국제경제질서에 대한 적응미흡등도 우리의 세계화 추진노력에 장애가 되고 있다. 통일을 앞당기는 일과 신국제교역질서의 창달을 위해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특히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활성화 움직임에 한국과 미국의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한국은 역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중개역할을,미국은 역내 선두주자로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한국의 역할은 아태지역의 발전뿐만아니라 세계경제의 자유화와 통합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북한경제와 남북경제통합 전망(마커스 놀랜드 미 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북한에는 중앙계획경제와는 별도로 북한경제의 20­40%에 이르는 군사경제가 존재하고 있다.이 군사경제는 자급자족체제내의 자급자족체제라고 할 수 있다.군대는 농장과 탄광에서부터 무기를 생산하는 시설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통합경제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군대가 중앙계획경제와는 별도로 자신의 무역채널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경제정책상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북한이 붕괴한다면 인적·물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북한정권은 신중히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안을 대처하기에는 부적절하다.북한정권은 개혁의 폭과 속도를 늘리느냐 아니면 현체제에 집착,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느냐하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북한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데 이점에서 가장 분명한 지원자는 한국기업가를 포함한 이산가족이다.다음은 한국이외의 다른 쌍무지원 가능성으로 미국과의 핵거래 이행에 따른 에너지공급및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에 따른 식민지지배 보상금이다.세번째 외부지원은 세계은행등 다자간 개발은행으로부터의 지원을 생각할 수 있다. 남북한 경제통합은 어떠한 시나리오도 남한측에 심각한 이윤배분상의 문제점을 야기시킬 것이다.즉 남북통합으로 인해 남한의 저급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내려가는데 반해 고급노동자와 자본소유자는 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이러한 분배문제는 국내정치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보스니아 회교정부군에/미,몰래 무기제공”/워싱턴포스트 보도

    【워싱턴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정부군이 미제군수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유럽정보기관들의 보고로 미국과 유럽 동맹국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럽국가들이 회교권 국가들을 통해 미국이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공급을 도모하고 있다는 의혹이 최근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참석한 고위급 회의에서 제기됐다면서 이는 3개국간의 신뢰를 저해할 뿐 아니라 세르비아계의 공격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공동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고위 관리들도 회교권이면서 미국과 가까운 터키·사우디 아라비아·파키스탄등이 보스니아에 대해 비밀리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이는 지난 91년 유엔 안보리가 취한 무기금수조치를 위반하는 셈이 된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김정일의 북한 1년(오늘의 북한)

    ◎노동당 비서 11명 풀가동… 쌀외교 주력/「김일성 유훈」 실천 독려… 식량난 해결 심혈/아·태시대 개막대비,외교관들 대폭 경질/황장엽·김용순·김영남 맹활약… 요인 24명 1회이상 외국방문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 전면등장과 대중앞 출현을 꺼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김용순 황장엽등 11명의 노동당 비서들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을 장악,북한핵타결과 쌀지원,서방을 겨냥한 남방외교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20일 간행한 1995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다음은 북한인물 1만6천명을 수록,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인명사전」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감해본 요인들의 주요활동과 북한의 지난 1년 결산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없는 북한」을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주요 직책에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봉률 사망 등 변수가 돌출,그의 전면등장시 세대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은 또 숙부인 김영주등 4명의 부주석에게 업무를 분담시킴으로써 충성심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년간 김일성의 유훈이란 그늘막에 숨어서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즉위」시기를 늦춤으로써 자신의 「효자」이미지를 한껏 치켜올리면서 「등극」에 필요한 정지작업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김정일 무얼 했나 김일성 사후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김일성 노선을 충실히 답습,주민들에게 소위 「유훈관철」을 독려해온 것으로 분석됐다.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간단없이 지속돼온 「운동」이나 「전투」에 지쳐 이젠 어떤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도 움직이질 않는다고 한다.따라서 기계 대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는 김정일에게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김일성의 「유훈」은 허기진 주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두번째로 김정일은 인민군 끌어안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벽두 제241부대(1.1)방문으로 시작된 김정일의 군선무활동은 지난 4월말까지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 접견(1.28) ▲제291부대 여성해안포중대(2.5) ▲해군 155부대(2.6) ▲제1017부대(4.25)시찰로 이어졌다.김정일의 이같은 잦은 군부대방문은 군경력이 없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면서 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됐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식량난 해결에 사활적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확인됐다.북한이 우리의 대북 쌀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나 일본에 쌀을 요청한 것도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부주석들의 역할분담 생전에 김일성이 제정받던 외교관들의 신임장은 부주석 이종옥(5회)과 박성철(2회)이 나누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부주석이면서도 김영주나 김병식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업무분담원칙과 견제(김영주)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주요직책 임면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주요직책에 대해 불과 5건의 인사밖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현준극의 노동당 국제부장 기용이다.현준극은 지난 88년 이래 노동신문의 책임주필 자리를 16년간 지켜온 언론통으로 북한 기자동맹중앙위 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는 인물.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현준극을 당국제부장이란 요직에 앉힌 것과 관련,주중국대사(66년)·당중앙위 국제부장(86년)을 지낸 그의 경력을 사 대중국외교에 무게를 실으려는 행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외교관에 대한 인사는 고위직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와 폭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30일까지 김정일에 의해 이뤄진 외교관 인사는 대사 26명 신규 임명,경질 15명 등 41명에 이르렀다.아프리카와 아시아지역이 중점 인사대상지역이었는데 이는 향후의 아·태시대개막 대비와 비동맹국 중시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로 풀이된다. ○외국방문 누가 많이 했나 김일성사후 외국을 제일 많이 나다닌 북한요인은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성대였다.그는 중국 두번,태국·방글라데시 각각 한번씩 모두 네차례 해외 나들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직책이 대외경제와 유관한 탓에 최다 해외방문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다음으로는 현준극 노동당 국제부장이 3회로 2위,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5명이 두번씩 외국엘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 당·정간부 가운데 부장급 이상과 정당·사회단체장으로 한차례씩 외국을 방문했던 인물은 이종옥 부주석 등 모두 17명이었다.이들의 방문국은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난의 심각성과 그들의 수교범위를 한눈에 읽게 하고 있다. ○회담 누가 많이 했나 94년 7월8일 이후 지난 4월30일 사이에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 또는 대표단과 회담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13회를 기록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으로 밝혀졌다.그다음은 대외경제위원회의 이성대 위원장이 3회로 2위,여연구 최고인민회의부의장 등 3명이 2회,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4명이 각각 1회씩을 기록했다. ○담화와 환담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눈 것을 담화로 정의했을 때 이 부문에선 직책이 직책인지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각각 16회씩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부주석 이종옥은 이들보다 2회가 적은 14회로 2위에 올랐으며 3위는 9회를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돌아갔다.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는 8회,부주석 박성철과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이 각각 6회를 기록했다.부총리 홍성남과 부주석 김병식은 각각 4회를 기록.김정일의 숙부인 부주석 김영주는 단 1회로 말석을 차지했는데 이는 두차례의 공장 격려방문외 김일성 사후 파악된 그의 유일한 공무다. ○면담과 접견 인사차 들른 외빈을 가볍게 만난 횟수로는 부주석 이종옥이 8회로 선두를 지켰다.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6번으로 차석.그 뒤를 각각 5번씩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이었다.
  • “「삼풍」 수습전에 출국… 마음 무겁다/김 대통령 방미 여로

    ◎“국익걸린 정상회담 미룰수없어 출발”/행사 간소화… 화동 꽃다발 증정도 생략 방미길에 오른 김영삼대통령은 22일 상오11시(한국시간 23일 새벽 3시)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7박8일간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22일 하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에서 있은 환송식에 참석한 뒤 특별기편으로 출국. ○당초 일정 단축 이홍구 국무총리와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서울공항 환송식 행사장에 입장한 김대통령 내외는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출국인사를 통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게 돼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며 『그러나 우리의 중대한 국익이 걸려 있는 한·미정상회담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당초 일정을 줄여서 다녀 오기로 했다』고 설명. 김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를 채우는 해』라면서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 이어 김대통령은 각부처 장관과 이춘구민자당대표 및 당3역 등 출영나온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특별기에 탑승. ○TV중계 사양 ○…총무처는 백화점 붕괴사고 후 시국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환송식을 간소화해 관례적으로 참석해온 황락주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용준헌법재판소장과 야당인사를 초청하지 않았으며 화동들의 꽃다발 증정도 생략. 한편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해 TV방송사의 환송행사 중계도 정중히 사양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설명. ◎김 대통령 출국인사/전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클린턴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국빈으로 공식 방문하기 위해 오늘 국민 여러분 곁을 잠시 떠납니다.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넣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나게 되어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안보문제를 비롯한 우리의 중대한 국익이 걸려 있는 한·미정상회담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당초 일정을 줄여서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이번 미국방문중저는 클린턴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한반도 한·미간의 경제협력문제를 비롯한 상호관심사를 폭넓게 논의할 것입니다. 특히 최근 북한의 정세변화에 따른 안보문제,남북대화와 미·북관계 진전등은 한·미 정상간에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중요 현안입니다. 저는 또한 미국의회의 초청을 받아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향한 한·미협력을 주제로 연설을 할 예정입니다. 또한 6·25동란 휴전 42주년 기념일을 맞아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합니다.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한·미간의 실질적인 관계가 반세기의 연륜을 채우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미 두나라는 서로의 발전을 돕는 대등하고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미국이 우리에게 긴요한 우방인 것처럼 한국 역시 미국에 중요한 동맹국입니다.두 나라는 6·25전쟁을 통해 맺어진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맞잡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번영하는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 미국방문에서 이러한 저의 생각을 미국의 조야지도자들에게 두루 설명하고 그들의 솔직하고 진지한 의견을 청취할 것입니다.오는 29일 돌아와서 다시 국민여러분께 방문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스탈린은 속전의 속셈(모스크바 새 증언:25)

    ◎스탈린,서방 분열 노려 한국전 지속 고집/미·중 접근을 우려… 휴전회담 결렬 모색/모에 “협상 서두르지말라”… 압력 넣기도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에도 줄곧 스탈린은 사실상 전쟁을 계속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그의 입장에서 볼때 한국전쟁은 미국의 두손을 한반도에 묶어두는 외에 서방 동맹국들 사이에 그리고 미국내 여론에도 분열을 조장하는 2중의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스탈린은 이 전쟁이 중국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판단했다.1930년대 모택동이 미국과 회담한 이래 스탈린은 줄곧 미·중 두나라의 접근을 우려해왔다.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스탈린은 북한과 중국 내부의 휴전지지 분위기를 억누르기 위해 무척 애썼음이 다양한 문서들을 통해 입증된다. ○다양한 문서통해 입증 휴전회담시작전인 전쟁초기 소련의 입장을 참고로 살펴보자.50년 12월 7일 소련공산당(당시 이름은 전연방 볼셰비키공산당)은 유엔대표부 앞으로 한국전쟁에 대해 평화적 태도를 취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렸다.(정치국회의록 N79.제189항) 『현재 한국전 상황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중지할 것을 건의한 귀하의 입장은 잘못됐음.현재 미군은 패배를 거듭하고 있고 완전패배를 면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휴전제의를 계속 내놓고 있음.따라서 다음 2가지 사항을 제의할 것. (1)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2)한국문제는 한국민의 손에 맡길 것.』 이와는 달리 중국·북한측은 당시 유엔군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휴전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달리고 있었다.다시 회담진행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51년 8월13일 모택동은 스탈린 앞으로 휴전회담과 관련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대통령문서소.소련군 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22834) 『적대표들은 38도선 획정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함.적은 현상황과 현전선에서 휴전에 들어가고 완충지대 설치를 주장함.…중략…회담진행 상황과 회담장 밖의 상황을 종합고려할 때 적이 우리의 38도선 휴전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같음.적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양보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회담을 결렬시킬 준비를 하고 있음.적이 휴전개시 시점에 대한 입장을 양보할 것 같지는 않음.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음.38도선을 따라 휴전을 성사시키고 그외 부차적인 양보만 할수 있다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라면 회담결렬에 대비해야 함.본인을 비롯 우리 동지들은 적대관계 지속에 반대함.제한된 물자보급,일반적인 국제정세,우리 나라의 입장,그리고 현상황에서 북한이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38도선을 고수하려다가 회담결렬을 맞기보다는 현전선에서 휴전을 성사시키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함. 그런 다음 3∼5년 동안 힘을 다시 모을수 있을 것임』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38도선 휴전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미국측 주장대로 현전선에서의 휴전을 분명하게 건의한 것이다.물론 3∼5년 동안 힘을 모아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는 자기 입장을 내세우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탈린은 줄곧 비타협적인 입장을 고수했다.51년 11월 19일 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대통령문서소.전문번호 N6849) 『휴전협상관련 동지의 평가에 동의함.그러나 미국이 비록 협상을 지연시키고는 있으나 조기 휴전을 보다 필요로하는 쪽은 미국임.이는 현국제정세를 봐도 마찬가지임.만약 중·조선 동지들은 협상에서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싶다 하더라도 절대 서두르지 말고 조기 휴전을 바란다는 의중을 절대 내보이지 말기 바람』 북한측도 휴전을 바라기는 중국과 마찬가지였다.이를 입증하는 전문이 있다.이듬해인 52년 1월16일 당시 외상이던 박헌영은 중국군총사령관 팽덕회를 찾아갔다.팽덕회는 이 회담내용을 모택동에게 즉각 보고했다. 『박헌영은 조선국민 모두가 평화를 원하며 전쟁 계속에 반대한다고 강조했음.하지만 소련과 중국동지들이 전쟁을 계속하는 게 유익하다고 믿는다면 북조선노동당 중앙위는 어떤 난관도 이기고 현재 입장을 고수하겠다고 했음. ○비타협적 입장 고수 이에 대해 본인은 현재 상황이 아군에게 유리하고 미군에게 불리하다고 설명하고 그런 이유로 휴전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음.회담 말미에 박헌영은 자기가 말한 내용은 자신의 사견이며 노동당 중앙위와 북조선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강조했음』 한편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이 휴전성사를 위해 기자회견을 갖고 모종의 이니셔티브를 취하려했다가 소련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다음은 이와 관련,52년 3월5일 소련외무부가 소련당 정치국 앞으로 보낸 전문.(문서번호 N36/35) 『북한주재 소련대사 라주바예프동지가 김일성에게 판문점 회담과 관련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고 보고했음.라주바예프동지는 김일성에게 다음 3가지 문제에 관해 인터뷰할 것을 제의했음.첫째,미국측의 회담지연 문제.둘째,휴전조건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중립국감시위에 소련대표 참여.셋째,미국의 협상지연에 대한 북한의 입장개진. 외무부 입장에서 볼때 라주바예프동지의 견해는 절대 받아들일수 없음.그런 인터뷰가 발표되는 것은 조선·중국측이 입장이 초조해하고 안달해하는 것으로 해석될수 있음』 소련당정치국도 3월7일 답전을 보내 (문서번호N.P86/33)『우리는 협상을 서두르지 않음.그것은 본국의 이익에 배치됨.라주바예프동지의 제안을 받아들일수 없음』이라고 밝혔다.이렇게 해 김이 라주바예프의 이름을 빌려 시도했던 것이 분명한 인터뷰기도는 무산됐다. ○스탈린이 직접 보내 이런 가운데 김일성은 7월17일 직접 스탈린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5025/sh) 『경애하는 요시프 비사리요노비치동지께.조선의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한 결과 우리는 휴전협상이 무한정 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지난 1년간 우리는 사실상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수비전략에 치중했음.그런 결과 적은 거의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았고 반면 우리는 인적·물질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음. 따라서 적은 최근 조선내 여러 발전소를 파괴했으며 이를 수리할 시간여유 조차 우리한테 주지 않고 있음.52년 7월 11일 밤부터 12일 새벽 사이 평양에 대한 단 한차례 공습으로 평화스런 주민 6천명이 사망,부상을 당했음.적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조건들을 내걸고 있음. 중국동지들은 이조건들을 수락하지 않음.우리도 물론 모택동동지의 이런 입장에 동의함.하지만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정부와 국민이 더 이상의 부당한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요한 시설을 방어하고 적극공세를 취할 필요가 있음.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는 바임. 1,방공망 강화.10개 대공여단에 대한 추가 무기지원이 필요함.50%는 중국이 나머지 50%는 소련이 제공해주기 바람. 2,전투기의 야간작전 강화. 3,적의 관심을 우리 후방에서 돌리고 회담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규모 지상군 작전을 펼칠 필요가 있음.우리의 전투력강화를 위해 빠른 시일내에 기술 및 물자지원을 해주기 바람. 4,동시에 우리는 휴전회담의 조속타결과 전투중지 및 제네바협약에 의거한 포로교환을 강력히 요구해야 함.이런 요구는 모든 평화애호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고 한국의 교착상태를 타개할 것임』 김일성은 이 전문 말미에 『같은 내용의 전문을 모택동동지에게도 보냈음』이라고 덧붙였다. 전쟁계속을 위한 추가 무기지원을 해주든지 아니면 휴전협상을 서두르자는 두가지 요청을 담았지만 무게는 후자에 두고 있었다.그리고 김일성은 위기에 몰리자 전형적인 수법,즉 모·스탈린 양자관계를 묘하게 이용하려했음을 이 전문은 다시 한번 보여준다. ◎새로 밝혀진 사실/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휴전의사 무시 휴전협상이 시작되자 비로소 스탈린이 전쟁을 결정할 때와 중국군 참전결정을 할 때 왜 그렇게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빠지려 하였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이번 자료를 보면 스탈린은 휴전보다는 전쟁을 계속하려 하였음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그는 자국의 유엔대표부 앞으로 직접 비밀전문을 보내 한국전쟁에 대해 유엔에서 평화적 태도를 취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모택동과 김일성에게 보내는 전문이 아니라 자국의 유엔대표에게 직접 보내는 이 비밀전문은 그가 모택동과 김일성의 휴전의사를 무시하고 전쟁의 계속을 주장한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것은 중국과 북한을 담보로 하여 미국을 계속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그는 중국·북한을 내세워 미국과 대리전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모택동과 현지 중국 군지휘관과 협상대표들,그리고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는 전쟁의 지속을 원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모택동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엔측의 현전선에서의 휴전의견을 받아들여 조기에 전쟁을 끝내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물론 이는 처음 밝혀지는 사실이다.그러나 스탈린은 『조기 휴전을 더 바라는 쪽은 미국』이라면서 『조기휴전의사를 절대로 내보이지 말라』고 모택동의 의사를 무시하였다.박헌영과 김일성의 의견도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실제로 모택동과 김일성·박헌영이 적극적으로 종전의사를 갖고 있었고 그러한 정책을 추구하였는지는 더 많은 방증자료를 기다려야겠지만 우리는 이번 자료를 통해 스탈린이 전쟁을 계속하려 하였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