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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방산업체 ‘나토 확대’ 거액 로비/NYT 보도

    ◎의회상대 2년간 5천만弗 사용 【뉴욕 연합】 미국의 무기제조업체들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 지난 수년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 미 의회를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로비자금을 사용하는 동시에 선거운동 자금을 지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날 선거운동 연구 회사인 ‘캠페인 스터디 그룹’(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 소재)의 분석 자료를 인용,미국의 6대 방산업체가 지난 2년간 의회를 상대로 나토 확대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5천1백만달러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록히드 마틴,노스롭 그루만,레이시온,보잉 등이 포함된 이들 6대 방산업체는 또 지난 97년에 ‘미 연방 선거운동위원회’에 2백4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기탁했는데 이는 지난 91년의 1백50만달러에 비해 크게 증가한 액수라고 타임스는 말했다. 신문은 냉전 종식으로 무기 판매가 급격히 감소한 이들 주요 방산업체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왔으며 나토의 확대 개편은 이들 업체에 거대한 시장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나토 조약에 따르면 신규 가입국의 경우 기존 동맹국들과 국력에 걸맞는 수준의 군사력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나토 가입이 사실상 승인된 폴란드의 경우 100∼150대의 전투기 구매를 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록히드 마틴사 및 보잉사와 프랑스,영국 등의 항공기 제조업체들은 자사 혹은 자국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해 수주전에 참가,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 러 한반도 평화정착 의무있다/예브게니 바자노프(地球村 칼럼)

    최근 제네바 4자회담 결과를 보면 한반도에서의 분쟁해결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북한은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할 것을 계속 요구하면서 미국과 양자회담을 주장한다. 북한의 고집은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金正日 정권은 역대 정권중 가장 취약하다.그는 북한의 안보가 실제 취약한 것을 우려한다.金正日은 미국이 공격할 가능성을 항상 걱정하며 동시에 북한의 개방이 ‘견고한 주체사상’을 엎어버릴 것이라고 늘상 생각한다.金正日 정권은 따라서 4자회담의 진전에 실제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한편으로 그는 자신을 능가하는 ‘내부의 적’을 계속 경계하고 두려워 한다. ○북,미의 공격가능성 우려 이러한 상황이라면 평양정부가 보다 유연해지고 건설적인 자세를 갖도록 ‘새로운 지렛대’를 만들어야 한다.그 가운데 하나가 러시아가 활발하게 분쟁해결에 뛰어드는 일이다.러시아는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갖고 있는 국가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미국과 견줄 수 있는 군사강국이다.북한정권을 탄생시켰으며 수십년동안 북한의 동맹국이었다. 러시아가 참여하면 북한은 좀더 의기양양 해질수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가상적국’으로부터의 위협에도 덜 걱정하게 될 것이다.또 평양정부는 보다 유연하고 전향적인 자세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과거 소련과는 다른 현재의 민주적인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단지 남과 북이 가깝게 만드는 식의 건설적인 목적에만 사용할 것이다. 모스크바의 ‘개입’은 남과 북의 경제협력도 한층 촉진시킬 것이다.이 틈에 러시아도 남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더욱 진전시켜 나갈 것이다.현재 한국에서의 금융위기(고비는 넘겼지만)를 비춰볼 때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시장을 필요로 할 것이고 경제회복기에 접어든 러시아는 한국의 공산품을 더 많이 수입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북한의 입장에서는 산업회생에 필요불가결한 러시아의 원자재가 활발히 유입될 것이다.러시아가 분쟁해결에 참여한다면 북한은 러시아의 천연자원에 당장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러시아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러시아가 분쟁해결에 참여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 자체를 지향하여야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실제로 평화정착과정의 마지막단계에서 러시아는 지금보다 훨씬 ‘쓸모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왜 그런가.우선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국가 가운데 진정 통일을 바라는 유일한 이웃이다.장담하건데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란 국제무대에서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며 이것이 러시아 국익과도 일치한다. ○한반도 통일 러 국익과 일치 반면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 냉담할 것이다.통일한국이 많은 부문에서 경쟁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중국은 대체로 이데올로기 동반자 하나를 잃은 꼴이 돼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반도 통일을 진정원하는 당사자는 아닐 것으로 본다.사실 베이징정부는 한반도에서 사회주의가 끝장나는데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미국도 한반도통일로 ‘잃은자’가 될 것이다.통일한국은 현재보다 미국에 덜 의존할 것이며 통일한국은 한반도에서 미군이 가급적 떠나 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한·미,미·일 상호방위조약은 변화할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는 이같이 다르지만 통일한국 시대는 머잖은 장래에 올 것이다.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유용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통일로의 이행시기에서 보면 북한인들은 새 경제체제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즉 통일직후 북한의 모든 기업의 공장들은 즉각 효용성을 잃고 문을 닫아야할 운명에 직면한다.러시아는 이러한 공장들을 현대화하는데 한 몫 거들 수 있다.대부분의 시설은 소련시대 유산이어서 북한지역경제 회복의 관건은 러시아가 갖고 있다고 봐야한다.생산된 제품은 러시아가 다시 수입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통일한국 발전 도움줄것 동시에 통일직후 쏟아질 북한의 실업·유휴인력을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는 국가 또한 러시아다.수백만의 북한인들은 현재도 미래에도 러시아지역으로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들 것이다.극동지역 러시아는 이러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러시아는 또한 북한쪽 기업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보면 러시아의 가스나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싸다.다만 현재의 북한은 현금이 없어서 못살 뿐이지만 통일한국은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통일한국은 러시아와 할일이 너무 많다.러시아자원의 공동조사,북한측 노동자들의 재교육,무기의 현대화,농업생산물의 교환,특별경제구역의 개발,통일한국이 중국 혹은 일본과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러시아의 지원등등. 이제 한반도 평화정착과정에 러시아가 왜 필요한가는 어느정도 ‘증명’됐다.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잠재력을 이용하면 할수록 한반도는 더욱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다.더욱이 러시아는 한국과 국경을 접한 이웃이다.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발전은 그대로 한반도 상황과 직결되는 상호연관성을 갖는다.러시아가 한반도 평화과정에 참여해야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 제공자이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에서 통일을 앞당겨야할 의무가 있다.
  • 옐친 감기 증세 악화 CIS 정상회담 연기

    【모스크바 연합】 오는 19일로 예정됐던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담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건강때문에 다음달 하순으로 연기됐다고 크렘린궁이 17일 발표했다. 옐친 대통령은 현재 모스크바 교외의 대통령 거처 ‘고르키9’에서 감기치료를 받고 있으며 주치의들은 이날 오전 그에게 사실상 침상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는 ‘절대안정’을 취할 것과 “기관지와 폐의 합병증을 피하기 위해” 이번 주 모든 일정을 취소하도록 처방했다.이에 따라 옐친 대통령의 이번주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크렘린궁은 주치의들이 “대통령의 호흡기 질환을 감안할 때 성대에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고 전하고 옐친 대통령에 대한 항생제 투여와 기침 및 호흡장애에 대한 처방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옐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반 리프킨 CIS 담당 부총리 등 고위 관리들에게 조속한 시일내에 CIS 국가들과 ‘4자 관세동맹국’,정상회담 일정을 재조정할 것을 지시했다고 크렘린궁은 전했다.
  • 클린턴,코소보 무력 개입 시사

    ◎유혈사태 강경 비난… “어떤 선택도 배제 안해” 【워싱턴·베오그라드 UPI DPA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혈인종분규를 빚고 있는 신유고연방에 대한 제재조치 마련에 실패한 가운데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1일 가장 강경한 어조로 세르비아 코소보주 유혈사태를 비난하고 군사행동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회담을 갖기전 기자들이 유혈사태가 일어난 세르비아 코소보주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을 질문받고 “현재로서는 어떠한 선택도 배제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기판매 금지 등 신유고연방에 대한 새로운 제재조치와 동맹국들의 일치된 행동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유고연방(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구성) 인근 마케도니아에는 현재 350명의 미군을 포함한 750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미국방부는 이들 병력이 당초 철수시한인 8월을 넘겨 계속 잔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은 이날 코소보사태 해결을 위한 첫회의를 갖고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들이 지지하는 무기금수 등 제재조치 방안을 논의했으나 코소보사태가 ‘국내 정치문제’임을 주장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로 의장성명을 채택하지 못하고 폐회했다.
  • 내가 본 DJ 대통령의 세 모습/예브게니 바자노프(특별기고)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 독재 비판 감동적 연설 ‘한국의 사하로프’로 각인/1992년 대중연설 목도 가는 곳마다 군중 매료 ‘한국의 옐친’ 별명 추가/러 박사학위 취득 과정 해박한 지식에 외경심 ‘한국의 루소’로 불러야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당시 소련 대사관의 부영사였던 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발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주로 띠고 활동했다.어느날 나는 지방신문에서 한국의 한 반체제인사가 대중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김대중씨였다. 나는 업무상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당시 47살의 김대중씨는 나이보다 정력적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그는 가차없이 한국의 독재상황을 비판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해 역설했다.나는 연설에 빠져 들어갔고 40분이 지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연설은 끝나고 질의응답이 계속됐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매우 깊은 신념에 차 있었다.나는 당시부터 이 용기있는 한국인을 ‘한국의 사하로프 박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그 이후 나는 줄곧 김대중씨의 활동을 모니터했다.그의 연설전문이라든가 그가 기고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나갔다. 그러다 1973년 김대중씨가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도쿄납치사건’을 접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곧바로 찾아갔다.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백모 영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그는 몹시 당황했고 “신문기사는 사실이 아니다.김대중씨는 납치당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70년대 후반까지 나는 “김대중씨는 한국의 보물이다.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외교관들을 성가시게 했다. 1980년 11월3일.김대중씨는 당시 한국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귀임했을 때였다.모스크바에서 나는 지방의 한 신문에 김대중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한국의 군사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소련 정권은 당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을 비난하는 어떤 글도 환영하고 있었다. 신의 덕분인지 그는 사면돼다시 미국땅을 밟았다.1985년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그를 다시 접하는 행운을 얻은 것은 1991년 김대중씨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였다.그때까지 김대중씨는 과거의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한국의 사하로프’ 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2년 봄.김대중씨는 나와 나의 처를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 초청이 그의 뛰어난 두번째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나는 대중집회장에 직접 나가 김대중씨가 수천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매료됐다.열광적으로 그를 ‘한국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와 나의 처는 김대중씨의 고향인 한반도 남부 하의도를 여행했다.하의도는 김대중씨가 태어나 공부했던 곳이다.그는 1950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나는 다시 김대중씨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한국의 옐친’이라고­.그는 어디를 가도 다 군중들의 ‘관심’과 ‘충성감’을 쉽게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다시 김대중씨를 서울에서 만났다.이 자리에서 그는 러시아 박사학위에 관심을 표시했다.나는 러시아의 ‘독토르(박사)’학위는 다른 서양의 ‘PHD’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고 러시아에서 독토르 학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권 이상의 단행본 저서가 있어야 함을 알려줬다. 이것이 내가 그의 세번째 훌륭한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그는 내게 무려 17권이나 되는 저서를 겸손히 보여줬다.나는 놀랐다.그의 학문 영역은 놀라운 것이었다.철학·정치학·경제학·미학·신문방송학·문학 뿐만 아니라 동·서양사와 예술·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한국:민주주의의 여러사건과 희망들’이라는 새 저서로 러시아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1호였다.심사위원들은 하루종일 계속된 구술시험을 끝내고 ‘전원일치’로 박사학위를 수여키로 결정했다.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까지 보냈다.러시아 정부는 즉각 학위수여증을 수여했고 러시아 아카데미학자들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다.그날밤 나는 ‘한국의 장자크 루소’‘한국의 계몽주의자’라고 그의별명을 추가했다.
  • 일관성 결여로 잦은 혼선/문민정부 5년­통일외교

    ◎대북정책 방향 오락가락… 불협화 노출/대일 어업협상·통상문제 매듭 못풀어 문민정부 5년간의 통일·외교정책은 일관성 결여로 잦은 혼선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또 미국,일본 등 전통 우방국들과의 관계형성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취임사를 통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라는 획기적인 발언으로 문민정부에서 대북정책의 큰 변화가 있음을 시사했다.이어 김대통령은 보수세력의 반대속에서도 출소공산주의자 이인모 노인을 조건없이 북으로 송환했다. 그러나 북한이 곧바로 우리측의 유화정책에 역행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나오자 정부는 통일·외교정책의 방향타를 놓쳐 버렸다. 대북정책이 극우와 온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취임 100일을 맞은 김대통령은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해 이제 대북정책이 강경으로 선회했음을 선언했다.김대통령은 또 학자출신인 온건파 한완상 통일부총리와 한승주 외무장관을 각각 이영덕 부총리와 공노명 장관으로 교체했다. 문민정부는 이후에도 경수로건설,대북 식량지원 등을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을 막지 못했다.특히 95년 북한이 2천t의 쌀을 싣고가던 우리선박 ‘시 아펙스호’에 강제로 인공기를 게양토록한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국내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이는 뒤에 정부의 식량지원정책이 지나치게 ‘비공개’로 진행돼 당시 통일원조차 국기게양에 관한 합의사항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민정부 후반들어 집중된 외교사안은 4자회담과 한일어업협정 개정문제 등이었다.사망한 김일성의 조문파동으로 남한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김대통령은 96년 4월 미국의 클린턴대통령과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4자회담을 공동제안했다. 문민정부는 4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실제로 북한측에 식량지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는 연계(linkage)전략을 구사했다.북한이 수락의사만 밝힌채 좀처럼 회담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과 미국측은 김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난해말 본회담개최만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북측이 주장하던 의제문제를 덮어놓은 상황에서 ‘내용없는’ 본회담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또 한일어업문제도 문민정부 폐막 한달여를 앞둔 상황에서 김영삼 정권과 더 이상 협상을 벌이지 않겠다는 일본 정계의 보수파들에 의해 일방파기돼 양국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밖에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게된 다음에야 정부내에서 경제·통상외교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문민정부가 내건 ‘세계화’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낸 사안이었다.
  • 미­일 걸프사태 갈등/일­“평화해결 외교적 노력 지속 필요”

    ◎미­“올림픽 성공 위한 김빼기” 불쾌감 【도쿄=강석진 특파원】 미국과 일본 사이에 이라크에 대한 무력응징을 놓고 틈이 벌어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에 동맹국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일본쪽으로부터는 ‘한가한 소리’가 자꾸 나와 김을 빼고 있다. 일본은 나가노 동계 올림픽 시작전부터 올림픽 기간중에는 무력행위를 자제한다는 유엔 결의를 존중하라고 미국에 요구해 왔다.전열정비가 여의치 않던 미국은 10일 주일대사관을 통해 유엔결의 존중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 발 더 나아가 무력 행사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는 10일 야나이 슈ㄴ지(유정준이)외무차관과 협의하면서 “현단계에서 무력을 행사해도 세계의 여론을 설득할 수 없다”면서 “외교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오는 13일 방일하는 리처드슨 유엔주재 미국대사에게 이같은 기본입장을 전달함과 동시에 ▲무역행사의 경우 새로운 유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 ▲올림픽 기간중에는 무력을 행사하지 말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하고 있다.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10일 동계올림픽에 관계없이 필요하면 이라크를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정부의 틈이 벌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감정도 개입돼 있다고 도쿄신문은 전한다.일본은 미국이 유럽,아랍,안보리 비상임이사국 등을 설득하기 위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코언 국방장관 등 고위 특사를 잇따라 파견하면서 일본은 제껴 두는 데 대해 불만이 팽배했으며 결국 외교루트를 통해 장관급 특사의 파견을 요청해서야 리처드슨 대사가 오게 됐다는 것이다.일본으로서는 걸프전 당시 돈만 내고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한 아픈 기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해 미국은 나가노올림픽을 들어 김을 빼는 일본에 대해 속으로는 괘씸하게 생각,외교 루투를 통해 불쾌감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경우 일본은 결국 미국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일본은 나가노 올림픽의 성공과일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더 나아가 전비 부담이 가볍게 되면 일조이석이 될 것이다.
  • “유럽동맹국 방위비 80억달러 유지 필요”/코언 미 국방

    【뮌헨 AFP 연합】 윌리엄 코언 미국방장관은 8일 유럽 동맹국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안보 비용을 분담하기 위해 최소한 현수준에서 방위예산을 안정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언 장관은 이날 ‘뮌헨 안보정책회의’에 보낸 성명에서 “유럽 동맹국들은 방위 연구와 개발비로 총 80억달러를 투입하고있으나 미국은 3백70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번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미국대표들은 미국과 유럽이 다같이 기술 발전을 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우위 속에 조화될 수 없는 2중 무기체제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 미,이라크 고강도 공격 경고/올브라이트 국무,영 외무와 협의

    ◎“사태 심각”… 무력사용 임박 시사/전폭기 등 걸프 증파… 이라크선 공습대비 훈련 【런던·바그다드 AP 연합】 이라크 군사공격 지지 획득을 위해 동맹국 설득외교를 펼치고 있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심도면에서 고강도의 타격이 될 것이라고 31일 경고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런던에서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과 협의를 가진 뒤 기자들에게 “우리가 무력을 사용할 경우 그 강도가 상당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이라크 사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미국과 영국이 시각을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올브라이트 장관은 앞서 마드리드에서도 “인내심이 떨어져 가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을 만난 영국의 쿡 외무장관은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면서 이라크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증가되고 있음을 경고했다.이에 앞서 지난 30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전화통화후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이 “두나라 대통령은 현상황에 대한 추가적 조치들을 검토했다”고 전해 프랑스도 미국 입장을 지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몇몇 중동국가들도 미국의 입장에 동참했다. 이와 관련,빌 리처드슨 유엔주재 미대사는 이날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다보스 경제포럼 참석차 스위스를 방문한 리처드슨 대사는 “이제 외교는 거의역할이 소진됐다”면서 “군사력이 강력한 대안으로 올라와 있다는 외에 어떤 계획도 발표할 만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월리엄 코헨 국방장관이 걸프 지역의 군사력을 더욱 증가시키는 계획안에 대해 검토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이 지역에는 함공모함 니미츠호와 조지 워싱턴호,크루즈 미사일 순양함,구축함과 잠수함을 필두로 325대의 항공기와 2만4천명이상의 병력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 대비를 하고 있다. CNN 방송은 미국 국방부가 F­117 스텔스 전폭기를 포함,항공기 50여대를 추가 파견하는 등 이 지역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 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라크는 이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민방위 훈련을 준비하는 가운데 리처드 버틀러 유엔사찰단장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이라크에 대적하고 있다고 또다시 강도높게 비난했다.그러나 사찰단의 활동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관영 알­줌후리야지는 유엔 안보리에 대해 미국의 공격을 막아 줄것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미국과 이라크간 충돌을 막기 위한 외교적 중재에 나서고 있는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사태의 정치적 타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끈기있게 방법을 찾아 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폐기상황을 기술적으로 종합평가할 유엔 전문가 23명이 유엔특별위원회(UNSCOM) 소속 항공기편으로 바레인을 거쳐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미­이라크 군사대결 양상/클린턴 동맹국과 연대 논의

    【워싱턴·바그다드·뉴욕 AFP 연합】 미국이 군사행동 개시를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고 이라크인들도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전국민 동원령 속에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대규모로 응소하고 있어 양측간 고조된 긴장이 일촉즉발의 군사대결 양상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유엔 무기사찰단의 활동을 끝내 봉쇄한다면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동맹국들이 이에 대비토록 통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24일 최고위급 군사·안보 보좌관들과 회담한 뒤 동맹국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거는 등 이라크에 대한 연합전선 구축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 “미 수주내 이라크 공격”/WP지 보도

    ◎영국과 공습 목표물 공동 논의 미국 정부는 이라크가 유엔의 무기사찰 활동을 계속 거부할 경우 수주안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관리의 말을 인용,빌 클린턴 대통령과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이라크에 대해 유엔 결의를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공격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과 고위 보좌관들의 이라크 사태 관련 회의에서는 영국군과 함께 수행할 공습 작전의 목표물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과 영국이 검토하고 있는 작전 계획에는 수일간 엄청난 공습을 가한 다음 이라크 전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신문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 무기 사찰 방해 문제를 군사적 개입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공습이 임박했음을 동맹국들에게 통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날 이라크가 유엔특별위원회(UNSCOM)의 소위 ‘대통령궁’ 지역에 대한 사찰활동을 거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걸프 지역에 2개의 항공모함 선단을 포함한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걸프 주둔 미군은 백악관으로부터 공격 명령이 떨어질 경우 수분안에 이라크를 폭격할 수 있다.
  • 아 위기 일 책임론 또 제기/아시아 위기 이모저모

    ◎미 경제학자 “엔저정책 실패가 원인” 주장/키신저·하워드 호 총리 태·말련 지원 나서 【홍콩·자카르타·방콕 AP AFP 연합】 ○…아시아 금융위기의 책임은 일본의 지도력 부재와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이 19일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는 80년대 인정을 받았던 일본식 경제모델의 실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금융부문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일본의 금리 및 환율정책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 금융이론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9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머튼 밀러 박사는 “동남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엔저를 꼽을 수 있다”면서 95년달러당 80엔대였던 엔화가 현재의 130엔대 이상으로 폭락한 것은 일본 대장성의 “고의적인 정책의 결과”라고 비난했다. 밀러 박사는 일 대장성이 은행들에 대해 90년도 금융계의 거품현상으로 인한 악성부채에 대비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일본은행들이 이익을 인위적으로 부풀릴 수 있도록 하는 단기금리 인하와 같은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동남아를 동요시켰다고 지적했다. ○…태국의 경제팀은 19일 중앙은행인 태국은행에 대해 기업들의 현금부족사태를 완화시켜 주기 위해 현재의 고금리를 재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카폴 소라수카르트 정부 대변인은 이날 열린 경제각료위원회 회의에서 중앙은행에 대해 단기금리를 현재의 26% 수준에서 15∼20%로 낮추어 주길 요청했으며 은행들에도 기업에 대한 대출을 독려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이 대변인은 중앙은행이 2주내로 이 문제를 검토해 그 결과를 보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번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에서 압력이나 식민주의적 요소는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하요노 이스만 체육청소년부 장관은 말했다. 하요노 장관은 “대통령은 IMF가 협상과정에서 경제상 식민주의로 간주될 수 있는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수하르토 대통령이 4백억 달러의 IMF 구제금융 패키지는 인도네시아와 IMF의 거래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태국은미국의 동맹국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은 태국에 추가 금융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태국의 네이션이 19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지난 16일부터 비공식적인 태국 방문 일정을 시작한 키신저 전 장관이 “나는 태국이 미국을 위해 좋은 일들을 많이 했음을 기억한다”면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지원을 과시하기 위해 다음달 22∼24일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워드 총리는 19일기자들에게 호주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지원하기에 충분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한중법학회 학술회 이해완 판사 주제발표 요지

    ◎중 외국인저작권 보호 큰 진전 서울지법 이해완 판사는 8일 서울 종근당 빌딩에서 열린 한중법학회 주최,제18회 학술발표회에서 ‘중국 저작권법의 특징과 현황’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다음은 요지. 중국 저작권법의 큰 특징은 외국인의 저작권을 국내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급격한 개방에 따라 국제조약 체결이 선행된 반면,국내법은 미처 정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92년 국제 저작권 조약인 베른조약에 가입했다.특히 미국의 요구로 별도로 ‘국제저작권조약 실시규정’까지 제정,외국인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명시화했다.법으로만 보면 선진국 보다 더 확실하게 외국인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법적으론 선진국 앞서 따라서 현재 베른조약에 가입한 동맹국 국민의 작품의 경우 중국의 저작권법,저작권법 실시조례,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조례는 물론,그보다 보호범위를 더욱 확대한 국제저작권조약 실시조례와 베른조약을 적용받아 ‘내국민대우’를 넘어선 ‘초국민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있다. 96년 베른조약에 가입해 동맹국이 된 우리나라 국민도 중국에서 이러한 초국민 대우를 받는 ‘외국인’에 해당한다.반대로 우리나라도 베른조약 동맹국인 중국 국민의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법 및 베른조약의 규정에 따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전체적으로 중국 저작권법을 우리 저작권법과 비교해 볼 때 기본적인 부분이나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집행상황 개선 앞으로 중국 저작권법,특히 국내 작품에 적용되는 부분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함께 국제 규정에 보다 부합되는 내용으로 개정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두 나라 저작권법은 국제적 표준에 부합하는 법으로서 더욱 유사성을 띄게 될 것이다.사회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면서도 과거에 ‘지식사유’라는 이름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던 저작권제도를 자본주의 국가들과 거의 유사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오늘의 중국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들이 선택한 진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저작권보호에 관한 구체적 상황이 우리나라나 서구선진국의 상황과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지적소유권 협상 경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미국은 처음에는 지적소유권 보호에 관한 법제 정비의 측면에만 중점을 두고 중국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실제 법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른 피해가 속출했다.미국은 결국 사법부를 중심으로 한 법치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중국의 특수한 현실을 깨닫고 95년과 96년 지적소유권 협상에서는 주로 현실적 집행에 관한 부분,그것도 사법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행정기관에 의한 집행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두 차례 격렬한 협상을 거치면서 저작권보호에 관한 중국의 구체적 집행 상황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 러시아도 폭발없는 핵실험/작년이후 4차례… 비동맹국 반발 거셀듯

    핵폭발을 동반하지 않고 핵탄두의 안전성 등을 점검하는 ‘미임계 핵실험’이 미국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인도 등 비동맹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러시아가 포괄적핵확산금지조약(CTBT)을 조인한 지난해 북부 노바야젬리야 핵실험장에서 2회에 걸쳐 이같은 실험을 단행한데 이어 금년에도 이미 두차례의 실험을 끝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핵탄두 생산과 핵실험을 관장하는 원자력부는 매년 10회의 미임계 실험을 계획하고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연 2회 정도만 실시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폴러스 주한독일대사 ‘독 통일 경험과 과제’강연 요지

    ◎급속 통합에 체제적응·재산문제 대두/통일비용은 제한적이고 견딜만한 수준 한국외교협회(회장 박동진)는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클라우스 폴러스 주한 독일대사 초청 오찬강연회를 가졌다.다음은 폴러스대사의 ‘독일통일의 경험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 요지이다. 독일은 통일이후 이 통합과 관련된 정치적,법적,경제적 문제들을 직면하게 됐다.이 가운데 몇가지를 들면,첫째 동독제도의 존폐여부가 있다.우리가 공산주의 법과 제도를 따라야만 하는가.통일이후 독일의 통합된 법,제도가 생겨나기전 1천7백만명의 동독인이 자신들이 모르는 법적,사회적 체계속에서 갑자기 살아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따라서 서독관리들의 동독유입은 피할수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많은 동독인들은 서독에서 파견된 인사들에 의해 통치받는 것을 싫어했다.공산주의 경찰과 정보기관,군대 등이 물론 많았다.따라서 당시 독일은 균형정책으로 동독 공산체제에 직접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과 조직을 포섭함으로써 타협을 이루려 노력했다. ○통일 후회하는국민 없어 두번째는 동독내 부동산 등 재산문제가 있다.이 문제는 오랜 토론끝에 49년 이후 재산을 몰수당한뒤 대부분 서독에 거주하고 있던 원소유주에게 반환하기로 결정됐다.그러나 이는 끝없는 법적,기술적,나아가 도덕적 문제까지 야기했다. 세번째는 자유기업이 문제가 됐다.90년 이후 동독내 사회간접자본은 대부분 현대화됐다.그러나 자유시장경제는 여전히 생소했고 동독인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당시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의 두배였고,수출액은 서독의 10분의1 수준이었다. 지금 언급한 문제점들을 독일인들의 통일이후 불평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옛 동독인들을 포함해 독일인 어느 누구도 통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독일의 재통일은 옛 동독인들과 함께 자유와 위엄속에서 살 수 있다는데 진정 의미가 있다. 통일에 따른 서독의 재정적 부담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부담은 제한적이고 견딜만한 문제라는 것이다.통일비용은 통일이전 우리가 부담해야했던 분단관련 예산 가운데서 20%정도 차감계산됐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또 통일이후 간접자본의 투자들은 적당한 시기에 그 효용을 드러낼 것이다.독일의 경우 두 체제의 통합은 매우 빠른 시일안에 급속도로 추진됐다.우리가 두 체제의 통합을 좀 더 느린 속도로 진행했다면 그 비용과 경제적 혼란은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50년대 서독은 냉전의 산물인 홀스타인원칙을 적용했다.이는 어떤 나라건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상대국과는 외교적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그러나 60년대 이후 동방정책을 채택하고 홀스타인원칙을 포기하면서 우리의 동맹국들도 동독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이는 동독이 민주주의국가들과 접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인근국가들 안도감 우세 1945년,세계 4강들은 독일의 분단을 히틀러의 공격에 대한 댓가로 생각했다.이후 많은 세월동안 서독정부는 유럽내에서 믿을만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 신뢰를 쌓아갔다.그리고 (통일)기회가 왔을때 인근국가들은 우리의 통일에 반대하지 않았다.오히려 유럽에서는 독일분단이 극복되고 긴장,위험등이 제거된데 대한 안도감이 우세했다.따라서 현재 독일은 실로 오랜만에 우호국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맞이했다.
  • 클린턴 ‘격앙’… 선택 버튼 관심/미,이라크 공격할까

    ◎의회지도부 강경 기류에 득실 저울질/동맹국들 반대 거세 결단 쉽지않을듯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할 것인가.2일 미 공화·민주 양당 지도부가 이라크의 미국인 사찰단원 입국 거부에 대해 신속한 무력제재 조치를 미 행정부에 촉구함에 따라 이제 클린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리 토이브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클린턴 대통령이 정치자금 모금행사차 방문중인 플로리다에서 “이라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무시해왔고,안보리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그러나 한 행정부 관리는 “클린턴 대통령이 이라크의 잇단 사찰 거부와 관련,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이라크의 행동을 응징하기 위한 조치가 강구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트렌트 로트 상원 원내총무 등 공화당 지도부와 리처드 게파트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 등 의회지도자들도 이날 이라크에 대해 경고하면서 군사행동을 포함한 강력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무력사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빌 리처드슨 유엔주재 미 대사는 이날 ABC방송과의 대담프로에 출연,“힘의 사용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안은 유엔과 안보리에 대한 이라크의 대항 행위이기 때문에 미국과 이란의 양자구도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동맹국들 역시 무력사용에 반대하고 있다.안보리 내의 러시아,중국,프랑스는 물론 이집트,요르단 등 아랍동맹국들의 반대도 거세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양측 모두 극단적 대결은 피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이는 우선 90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유엔의 경제제재로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라크가 경제제재 해제의 전제조건인 무기사찰에 협조하지 않을수 없는 형편인데다 미국으로서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리차드슨 대사의 주장대로 단순히 미국과 이라크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유엔주도의 해결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북,대아 사회주의국 관계강화 겨냥/매스게임 전문가 대거 파견

    북한은 비동맹국가들과의 관계강화책으로 아프리카국가 등에 집단체조(매스게임) 전문가들을 파견해 쌍방간 협조 강화를 꾀하고 있다.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최근호는 “우리 나라(북한)의 집단체조 대표단 지도로 창작완성된 집단체조 ‘나의 조국 나이지리아’가 지난 1일 아부쟈 광장에서 독립절 37주(10월1일) 행사로 성대히 공연됐다”고 선전하면서 이날 나이지리아 국가수반은 축하연설문에서 집단체조대표단을 파견해준데 대해 김정일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 미 칼럼니스트 바인아트 미지 기고 요지(해외논단)

    ◎‘지구화 원칙’은 경제만능 환상 국가간 경제교류 증진과 기술·정보 교류의 확산으로 초래된 지구화(globalization)를 통해 국제평화가 가능케 될 것이라는 신념이 냉전 이후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팽배했다.그러나 이같은 지구화 원칙은 환상이었으며 미국을 자기도취에 빠지게 하고 약화시켰다고 미 칼럼니스트 피터 바인아트는 주장했다.그가 미 시사주간지 뉴리퍼블릭에 기고한 ‘우리시대의 환상­지구화는 미국의 지식인들을 어떻게 유혹했는가’라는 글을 요약,소개한다. 영국의 정치학자 노먼 엔젤은 1910년 ‘위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이라는 불후의 국제정치 명저를 통해 “각국간의 상호의존과 무역 및 산업의 연계로 국제정치에서 정치와 군사의 역할이 소멸된다”면서 세계는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로 전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고 주장했다.그는 오늘날의 지구화를 예측한 이 책으로 3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구화 원칙은 클린턴 행정부 초기에 인기 있는 사상이었다.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은 민주주의만이 상호간의 전쟁을 막을수 있다는 이유에서 국제적으로 민주주의 커뮤니티의 확장을 모색해야 했다.그러나 클린턴 행정부가 이같은 원칙을 중국에 적용하려 했을때 갈등이 노출됐다. ○클린턴 정부 초기엔 인기 새로운 원칙은 미국이 제재조치를 부여하는 것도,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기술과 무역의 줄기찬 전진으로 무장된 지구화는 민주주의적 과업을 달성하는데 미 국무부의 압력보다도 더 효과적인 듯했다.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이웃을 협박하거나 반정부인사들을 고문하는 것이,막강한 세계 시장에 의해 길들여질 것임을 간단히 경고하기만 하면 됐다.즉,외교정책이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이뤄지게 됐다. 그것은 미국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투쟁으로 얻은 안보가 이제 멈출 수 없는 자애로운 힘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동시에 새로 부상하는 위압적인 힘들이 자유무역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을 감싸게 될 것이라고 생각케 했다.지구화는 하나의 강대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강대국의 자기도취를 불러왔으며 미국을 자기만족과 나약함에 빠지게 했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위협하며 취임했다.94년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그같은 메시지를 들고 북경을 방문했다가 공개적으로 홀대를 받았다.또 미국의 동맹국들과 미국의 기업들도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거부했고 마침내 미 행정부는 후퇴했다. ○강대국 자기도취만 불러 클린턴 행정부 사람들은 그들이 중국의 행동을 변화시킬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특히 중국의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더했다.이같은 깨달음에서 정책 형태로 ‘적극적 개입’,혹은 ‘지구화’가 나오게 됐다.이 정책은 중국경제의 세계경제와의 통합 증진을 통해 중국을 길들여 나간다는 것으로,바꿔 말하면 중국의 부에 대한 욕망이 스스로의 행동을 변화시켜 국제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한 가정들이다.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에 대한 보다 낳은 대응은 혜택을 입은 부유한 동맹국들로부터 안보체제 유지를 위한 보다 많은 분담액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한국·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과의 무역분쟁을 해소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또한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이들 국가는 중국의 국내문제에 대해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에서 손을 떼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없는 평화는 불가능 미국은 그 정책적 기조를 지구적 시장의 필요에 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힘의 균형에 두어야 한다.기술의 행진도,부의 확산도 국가 자원의 가동과 국가적 의지 없이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한다. 지구화 이론가들이 과거나 지금이나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다만 정치 없이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잘못이다.〈정리=나윤도 워싱턴 특파원〉
  • 미,일 지뢰조약 서명 제동/올브라이트 “안보지침에 영향” 거론

    【워싱턴·사라예보 AFP 연합】 일본이 대인지뢰 전면금지조약 서명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21일 이 사안이 미·일 안보조약상의 의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이날 “조약 서명이 미·일 안보지침에 따른 일본의 의무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일본이나 러시아에 대해 대인지뢰 금지조약에 반대하도록 ‘명확하게’ 촉구하지는 않았음을 강조하고 이틀 전 일본측과 협의를 가졌다고 밝혔다.그는 “압력이 아니라 뭔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도 미 상원 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은 물론 대인지뢰 금지조약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협약상의 의무를 조화시킨다는 견지에서 금지조약서명을 고려중인 다른 모든 동맹국들과도 협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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