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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소,통독 나토 가입 허용/고르비ㆍ콜 합의

    ◎동독주둔 소군 3∼4년내 철수 【프랑크푸르트ㆍ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소련은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허용할 것이라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16일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이틀간의 회담을 마친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소련이 원하든 않든간에 통일독일이 스스로 선택한다면 나토에 가입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이같이 말하고 앞으로 통일독일은 어떠한 형태로든 어느 정도 소련과 함께 협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기자회견은 소련 TV와 서독 TV를 통해 생방송되었는데 콜총리도 이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고르바초프는 자유롭고 완전한 주권국이 될 통일독일이 어떤 군사동맹체에 소속하든 이는 자유선택의 문제라는 데 합의했다고 밝히고 독일의 나토 가입여부 결정은 통일과정이 완료되고 2차대전 4대 전승국들의 권리와 의무가 종료된 후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콜총리는 이어 자신은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 독일이 통일된 후 나토의 회원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고 말하면서 이밖에도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 일정및 통일독일의 군대규모등 주요문제에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다. 한편 콜총리는 『독일과 소련은 상호 모든 면에서 걸치는 포괄적인 조약에 서명할 것』이라면서 『동독 주둔 소련군은 독ㆍ소 상호조약의 서명후 3∼4년에 걸쳐 철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은 『이 기간동안 서독군은 현재의 48만명에서 37만명으로 감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콜은 이어 『통독후 2차대전 전승국의 권리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며 독일은 「완전한주권」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소련군이 동독에서 완전철수될 때까지 전승국의 군은 베를린에 계속 주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독의 나토 가입에 대한 소련의 허용방침으로 17일 재개되는 독일통일문제에 관한 「2+4」회담은 커다란 진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 동독 철강노동자 단체협약을 체결/직업보장ㆍ임금인상

    【동베를린 AP 로이터 연합 특약】 동독철강 노동자들은 13일 동서독 경제통합에 따른 실업불안을 떨쳐버리고 물가상승에 따른 생계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1년동안 직업을 보장하고 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고용주들과 체결했다.
  • 고위회담 성사를 통일 성사로(사설)

    그 가능성 예측대로라면 오는 9월초 어느날 서울에서는 남북한 총리급고위회담이 열리게 된다. 지난번 예비회담에 이은 몇차례 실무접촉에서 양쪽은 의외롭다 할 정도로 별 이견없이 본회담 개최에 따른 실무사항에 합의했다. 오는 26일의 예비회담에서 합의문서가 서명된다면 서울과 평양의 길은 다시 이어지게 된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바람직한 일이고 통일이전 분단해소 노력에 발전적인 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남북 고위급예비회담 실무접촉에서 논의된 대로 남북한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항공기편으로 오고감을 상상해볼 수 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상공으로의 직항이 쌍방에 의해 허용된다면 분단이후 허가에 의한 첫 여객기 왕래가 될 것이다. 분단된 민족과 갈라진 국토의 통합이란 무엇인가. 비행기와 기차·자동차로 오고가고 이윽고는 단절됐던 문화와 풍속이 다시 이어지고 통화와 생활권이 묶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과 서독이 그러했고 남북예멘이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남북대화와 교류가 가는 길이 바로 그래야 한다는것이다. 아직은 그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최소한도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우리 당국은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통일주간」을 선포할 방침이다. 또 마침 그 기간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발표(9월11일) 1주년을 전후하는 기간이다. 우연의 일치일는지는 몰라도 최근 전해지기로는 북한이 그들의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서방 자본국들과의 유대를 도모하기 위해 남방정책을 추구할 것이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남방정책이 우리의 북방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입안이라고만은 여기지 않는다. 북방정책이든 남방정책이든 그것은 이제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이며 냉전지대인 남북한이 그들 자신을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며 시대의 추세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를 포착하고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판단의 차이였던 것이다.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이 만나는 곳에서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족적 의지가 집결되고 민족적 통일의식의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한반도문제는 궁극적 해결의 단초가 잡히고 기초가 놓이는 것이다. 물론 최근 남북한 양쪽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통일의 방법론은 아직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보아 남쪽은 통일민주공화국이라는 통일국가 형태에 이르기 위해 중간단계로 체제연합의 성격을 갖는 남북연합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통일국가 그 자체의 성격을 띠는 이른바 「고려연방제」를 내세운다. 어느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가는 양쪽 당사자의 시각과 인식에 따라 다르겠으나 국내외적으로 이미 객관적인 평가는 나 있다. 남북한 총리회담에서는 북쪽이 주장해왔던 정치·군사문제가 토의될 것이고 교류와 협력을 위한 제반 구체적인 문제가 협의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소홀히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화에는 상호 신뢰와 이해 양보이외에 협상의 기본원리에 대한 동의가 앞서야 한다. 그것이 명분과 형식이다. 그 모두에 충실할수록 대화의 실효는 클 것이다.
  • “평양에 변화 조짐”외신보도를 보고/박봉식교수 서울대ㆍ정치학박사

    ◎거스를수 없는 「1989년의 혁명」/고르바초프 실각 기다리는 시간 벌기 아닌지… 프랑스혁명 200년만에 유럽은 예기치 않았던 큰 격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1792년에 이르러 혁명전쟁으로 발전하였고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으로 번져 전후 25년동안 전유럽을 뒤엎는 전화를 당하게 되었다 작년에 일어난 유럽의 혁명이 200년전의 그것과는 달리 어떤 형태든 전쟁을 몰고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그 혁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진원지와는 거리가 먼 아시아의 중국과 북한뿐이다. 유럽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의 손에,또는 그 나라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제거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혁을 막아야할 이유는 없었다. 혁명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혁명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경우 비슷하게 적중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혁명의 조용한 진행을 가속화시켰고 이것을 바르샤바 탈소동맹국 모두에 확산시켰다. 그래서 동유럽내에서는 여기에 저항할 세력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1989년에 유럽을 휩쓸고 또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넘어갈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 본대로 프랑스의 혁명이 전쟁을 몰고 왔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패전국이나 패전국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동유럽의 혁명은 전쟁과 관계없이 일어나 예외적인 일이다. 한편 시각을 달리해 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서냉전체제의 격한 대립이 체제화되어 지속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군사대국으로서의 능력을 더 지탱할수 없는데서 생긴 일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냉전에 패배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주도의 혁명이 일어 났다고 할수 있다. 냉전도 전쟁이고 보면 소련이 서방측과의 냉전에 패한 것이며 그 결과 소련은 그의 지배하에 있던 바르샤바 탈소동맹국들에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이 지역에 혁명이 일반화 되었다고 하겠다. 소련은 냉전에 패배한 것을 각성한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혁명은 결코 조용할수 없는 모양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결국 소련 제국의 해체를 가져 올 것이며 소련제국을 해체해 가면서 까지 고르바초프는 그의 개혁을 정당화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중도에서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그러는동안 그는 정치적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도중에서 하차한다고 하여 한번 시작한 개혁을 어느 선에서 정지시킬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시장경제체제와 민주화라고 하더라도 서유럽식으로 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체코나 헝가리 등은 서구화가 가능할지 모르나 소련은 서유럽을 완전히 본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치 한국이 구미의 영향을 40여년간 받고 있으면서 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선진화됐다고 하는 일본이 일본식 자본주의를 갖추듯이 소련식 개혁과 소련식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200년전 20여년의 전쟁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쳐부순 유럽이 혁명전의 정치명분을 되찾고 구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죽 전쟁이 승리했음에도 그 혁명의 영향은 막지 못하였던 예를 본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이 유럽서 시작된 또는 사회주의의 종주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바람을 거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프랑스혁명의 바람을 보수주의국가인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들이 협력하거나 이합집산하면서 근 100년가량 막아왔으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이들 제국 스스로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은 동유럽과 소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힘이 없다. 오늘날 소련과 동유럽 변화의 물결은 소련의 변화하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바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려 할 때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분쟁은 때로는 생사를 걸고 하는 분쟁일 수 있다. 동독의 호네커나 폴란드의 야루젤스키는 고르바초프의 전화 한통화와 면담 한번으로 대권을 내 놓거나 국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등소평이나 북한의 김일성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이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기다려 그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 기본자세인것 같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에 전술적으로는 적응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은 그의 왕국을 고르바초프의 말한마디에 공중에 날려 버리게 될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방법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왕국을 지키려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온 세계는 데탕트를 구가하고 있는데,한반도에서 만은 냉전의 기본은 오히려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에 가서 그도 별도리없이 역사의 흐름앞에 무릎을 꿇고 말겠지만 그 사이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성원들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지가 확실치 않다. 많은 낙관론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필자는 선뜻 이 낙관론에 동조되지 않는 것이다. 월남의 경우 연 30억달러의 원조를 받고있고 이것이 반으로 줄어들전망이라 캄란만을 도로 미군이 사용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전쟁과 인명ㆍ재산ㆍ역사의 희생이 무엇때문이었던가를 월남의 경우 돌이켜 보게 된다. 북한은 6ㆍ25의 범죄적인 과실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1989년 동유럽의 혁명이 아시아에도 제대로 바람을 일으켜 온 인류가 환호하고 역사의 대열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외언내언

    월남전이 한창이던 무렵에 낯익었던 용어로 성역(Sanctuary)이란 말이 있다. 원래의 뜻은 중세의 국왕이나 법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한 사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월남전에서 베트콩이 월남에서 작전을 하고 도망가면 미군이나 정부군이 추격할 수 없었던 캄보디아영내의 기지를 두고 쓰던 말이다. 국력면에서 비교가 안된 월맹과 베트콩이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성역의 덕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역은 공산주의자들을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월남전이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 공산국이 이 성역으로 고전을 치르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작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가져온 직접적인 도화선은 동독국민들의 외국대사관 피신사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재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대사관도 말하자면 일종의 성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마침내 발칸반도로 옮겨 동유럽의 마지막 개방과 개혁의 거부국 알바니아를 강타하고 있다. 알바니아 주재 10여개국 대사관에 6천여명이 몰린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알바니아도 결국은 이 바람에 굴복,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11일엔 이 바람이 대서양을 건너 쿠바에도 상륙했다니 카스트로의 발등에도 불똥은 튀기 시작한 셈이다. ◆바람은 동유럽에서 한동안 잠잠해지는가 했으나 알바니아·쿠바의 경우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꾸준히 불고 있었으며 결국은 끝장을 보고야말 기세인 것이 분명하다. 두 나라는 북한과 함께 개혁과 개방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나라들일 뿐 아니라 북한과 친밀하고도 닮은 데가 많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북한은 루마니아사태 때보다 더 심한 충격과 우려의 눈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 고비만 넘기면 무사할 것으로 생각하며 바람잘날만 기다린다면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평양에도 서방대사관은 없으나 서방화된 소·동유럽 대사관들은 있다.
  • 동독군 2년내 50% 감축/국방장관 촉구

    【동베를린 UIP 연합】 라이너 에펠만 동독 군축ㆍ국방장관은 10일 동독군의 병력수를 앞으로 2년 이내에 현재의 50%인 5만명선으로 감축시킬 것을 촉구했다. 에펠만 장관은 이날 동독관영 ADN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현 동독군의 일부는 국가가 통제하는 국경수비대의 일부로 개편시켜 어떠한 군사동맹체에도 소속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국경수비대는 자체 지휘부와 행정통제 기능을 갖는 비교적 독립적인 부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앞으로 2년간 약 5만명선으로 대폭 감축될 동독군 병력중 50%만 직업군인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바기구 회담에 나토관리 초청/셰바르드나제

    【브뤼셀 로이터 연합】 소련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담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관리들이 참석해 주도록 초청할 것을 제안했다고 마르쿠스 메켈 동독 외무장관이 10일 밝혔다. 메켈 장관은 브뤼셀 나토 본부를 방문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 외무장관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이 제한했다고 말했다.
  • 동서무역 교류에 통독,긍정적 영향/서독학자 주장

    동서독의 통합은 동구권의 무역체계를 붕괴시켰으며 이에 따라 서방기업의 동구권진출이 보다 쉬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전경련과 서독의 IFO경제연구소가 10일 공동주최한 국제세미나에서 태너 IFO동구실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코메콘(공산권경제상호원조회의)내에서 소련에 이은 제2의 무역국인 동독이 독일 마르크로 결제하게 됨으로써 역내 국가간의 바터무역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코메콘국가들의 결제방식을 경화에 의한 결제로 바꾸게 된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모든 상품에 대해 동서진영간의 경쟁을 불러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 외언내언

    서독이 한달동안 지구촌을 뜨겁게 했던 90년 월드컵을 제패했다. 서독팀의 우승은 16년 만의 것이고 월드컵사상 3번째라는 데서 정말로 값진 것이다. 더욱 감격적인 것은 통일독일의 해에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는 것. 90년은 정녕 독일의 해인가. ◆서독팀은 이번 대회에서 줄곧 힘에 넘친 유럽식 축구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축구장을 쉴새없이 치고 달리며 문전으로 대시하는 활기찬 축구를 벌였다. 마치 독일의 통일을 밀어붙이는 그 박력과 비슷했다. 통일의 골문을 향하는 「그 세」가 운동장을 압도했다는 비평가의 지적이 새롭다. 진작부터 서독의 우승은 이래서 점쳐졌는지도 모른다. 82년 스페인,86년 멕시코대회의 연속 준우승에서 벗어나 우뚝 섬으로써 통일의 감격을 더했다. ◆서독의 승리는 또하나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베켄바워감독을 세계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감독이 되게 한 것. 그는 결승전야 『월드컵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40년의 휴식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 그가 얼마나 우승을 위해 애썼는가를 짐작케 했다. 서독축구의 황제로,세계 최고의 스위퍼로 극찬을 받아온 그는 마침내 감독으로 정상에 올라 자신은 물론 통일된 조국에 영광을 안긴 주역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어도 전 지구인들에게 감동을 가져다 준 팀ㆍ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예상도 못했던 팀이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후보선수가 월드스타로 부상했다. 대표적인 팀이 카메룬이고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별」 스킬라치는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게 됐다. 스포츠는 그래서 재미있고,드라마가 있고,열광케 한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었다. ◆오는 94년 미국월드컵에서도 독일의 우승이 벌써부터 예상되고 있다. 스포츠의 강국 동독과 서독의 단일팀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기 때문. 통일독일은 이렇게 더욱 그 세를 뽐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서독의 승리가 남의 일로만 여겨져서는 안된다. 오늘의 독일의 감격ㆍ기쁨이 언젠가는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 통독과 「남북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통독을 보는 우리들의 심경은 어둡고 착잡하다. 독일은 어찌해서 통일하게 됐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유일의 분단국가로 여전히 남아있게 됐는가. 이 지구상에서 통일국가로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명실공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서 통일된 모습으로 단절없이 가장 오래 지속돼 온 나라는 중국도 인도도 아니고 서구의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들이 통일된 국가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고 있는가. ○쉽게 합칠 수 있었던 이유 독일이 통일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1백20년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50개 공국으로 혹은 80개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승리로 1871년 처음으로 근대국가로 통일이 됐고 이 통일은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근근 70수년을 유지해오다 종전이후 또 분단됐다. 이처럼 통일보다는 분단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있던 독일이 분단보다는 통일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온우리보다 쉽게 합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3개의 깊이 생각해볼 교훈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서로 대치하고는 있었다해도 무력으로 동족을 죽이는 살상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남이 억지로 씌워놓은 이념때문에 형제를 죽이지 않았고 이웃을 살육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공대천지원수가 될 이유가 없었고 감정의 앙금이 끝까지 용해되지 않고 남아서 서로를 비뚤어지게 볼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고,환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2+4」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4대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같은 민족임을 서로의 내부에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외부적 요인에다 내부적 요인을 종속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패전으로 나누어져도,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역사적 유죄를 같이 짊어지고 있었어도 역사는 역사,현재는 현재로 분리해 보았다. 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이 언제나 열려져 있었다는 것,외부에 내부를 독립시키고 있었다는것,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것이 수백년간의 분열과 짧은 통일기간과 그리고 그후의 계속된 분단의 역사를 다시 통일케하는 첫째의 요인이며 교훈이 된다. 둘째로 그들은 비록 통일의 역사는 짧았다 해도 그리고 그 통일과 맞먹을 만큼 통일후의 분단의 역사가 거의 반세기에 이르도록 길었다해도,그들간에는 서로 합칠 수 있는 근대화된 체제의 공유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치스 이전의 바이마르공화국 체제이고,그리고 현재 그들이 돌아가는 체제역시 이 역사적 공유경험의 체제에서 일보도 달라짐이 없는 자유·개방·경쟁의 민주국의 체제이다. 그들은 비록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갭을 가지고 있다해도 이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로 남아 있고,그리고 여전히 사회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체제 경험여부 중요 통일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체제로 양쪽이 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같은 체제를 경험해 보았느냐,보지 않았느냐가 통일의 조건이며 기준이 된다. 만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로 그 어느 한편이든지 돌아가게 된다면,그들 사이에는 동질성이 전혀 있을 수 없고 그들사이에 이제부터 전개되는 관계는 오직 서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질성의 관계만이 남는다. 이 경우,이루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통합」이 된다. 그런데 독일은 쉽사리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험공유체제를 가지고 있었고,따라서 정신적으로,심리적으로 민족공동체를 재창출해 낼 수 있는 기틀을 사실상 확보하고 있었다. 셋째로 공산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내지 비생산성이다. 출발할 때부터 동독은 공산권사회에선 가장 산업화된 나라이고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공업국의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정반대로 이 나라는 서구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낙후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특히 일상 생활용품에서도 전화 한대를 갖기 위해서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공산주의 경제정책의 비역동성­정체성이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것­그 어느 의미에서나 유일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그것은 군사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군사산업이 계획을 세우는 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지수가 적고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군비이외의 생산품목은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부터가 너무 수가 많고 너무 유기적으로 복합화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사회 하나만 보아도 이 한나라에서 해마다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품목은 2천4백만종이나 된다. 이 2천4백만종의 생산품목을 유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데 세워야 하는 계획은 1백50억개가 넘는 것으로 산정되어 있다. 누가 어느 기관에서 이것을 완벽하게 계획해낼 수 있겠는가. 자유시장 경제에서라면 스스로 조정해서 생산될 것은 생산되고 문을 닫을 것은 문을 닫는다. 그러나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에선 이것은 아무리 계획하고 생산해 나가도 인위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그래서 소련에선 1천6백만명이상의 노동력이 필요없는 자리,서로 중첩되어 있는 자리에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비생산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노동력의 15%인 1천8백만명이 경영관리직에 앉아서 방대한 운영기구를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직,그 국가사회야말로 얼마나 역피라미드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가. 공산주의 경제가 어느 나라나 하나도 예외없이 1970년대의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정체해 버리는 것은 이 인위적 계획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것을 뚫고 극복하는 방법은 동독처럼 체제전환을 해서 통일의 길로 가든지,지난 2일 28차 공산당대회에서 한 고르바초프의 연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이념은 19세기의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는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우리는 고전적 이데올로기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에서처럼 페레스트로이카로 가든지,둘중 하나이다. ○“언제까지 분단국가로…”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돼 있는가. 40년전의 6·25는 「40년동안 여전히 살아 있는 전쟁」­계속 불구대천지 원수로 가는 전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을공유한 근대화된 체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남북」이 공유한 것은 전통사회 체제이든 아니면 일제식민지 체제 뿐이다. 긴 통일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우리는 어떻게 합치든 「통일」 아닌 「통합」의 이질적 관계만이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은 밖이야 어떻게 변하든 아랑곳 없다는 듯 페레스트로이카도 글라스노스트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 것인가.
  • 북한의 판문점 일방개방 발표/실효성 의심스런 조치/중국계신문 보도

    【홍콩 연합】 북한이 오는 8월15일을 기해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내 북측지역을 개방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동서독이 공동 합의하에 베를린 장벽을 철폐한 것과는 달리 일방적이며 또한 쌍방의 모든 주민들의 남북왕래를 규제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실효가 의심스러운 조치라고 7일 중국계 신문 신만보가 논평했다. 이 신문은 이날 「조선의 베를린 장벽 무너질 것인가」라는 제목의 국제시사 논평기사에서 동서독의 베를린장벽 철폐는 쌍방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실제적으로 서독이 사회주의의 동독을 삼켜버렸는데 반해 남북한은 계속 대립하고 있으며 남한에는 국가보안법으로 남북왕래가 허가를 받아야할 사항이고 북한은 인민들의 해외출국마저도 극히 적은 상황에서 일방적인 개방은 실효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만보는 남북한이 오는 8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총리회담을 개최키로 한데다가 일방적이기는 하나 판문점내 북측지역을 개방한다고 발표한 것은 남북의 화해분위기에 작용하여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소 경원문제가 최대의 쟁점/내일 막오르는 G­7정상회담

    ◎「우루과이 라운드」타결여부 주목/환경 보존ㆍ제3세계 부채탕감도 의제로 서방 7개 선진국(G­7) 정상들이 9일부터 3일간 미국에서 회동,군사력보다 경제안보가 훨씬 중요해진 새로운 세계와 대결한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출신지인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리는 이번 G­7회담은 「냉전종식후 첫 경제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70년대의 경제 정상회담이 인플레이션,저성장ㆍ경기후퇴ㆍ에너지위기 등을 주로 다뤘다면 80년대엔 제3세계 부채ㆍ환율ㆍ국제수지 불균형 등이 경제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였다. 90년대 경제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서방 세계 분열의 원심력을 막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련의 변화와 더불어 서방 동맹국들이 공동 대처해야할 위협적인 군사세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경제문제로 인해 서방세계가 분열될 가능성이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90년대엔 어떤 형태로든 지역 무역블록의 출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작년부터 일본은 태평양지역에대한 장악을 굳혀가고 있으며 미국은 미주 자유무역시대를 제창하기 시작했다. 12개 서구 국가로 구성된 EC(유럽공동체)는 동구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비EC회원국을 포용하기 위한 회담을 개최중이다. 이번 휴스턴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다뤄질 3대 의제는 소련과 동구에 대한 경제원조ㆍ농산물교역ㆍ환경보존 문제다. 이밖에 독일통일ㆍ중국원조ㆍ제3세계부채ㆍ마약자금 「근절」ㆍ세계경제 성장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소련은 지금 서방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 소련군의 동독철수 촉구에 대소원조를 이용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소련에 대한 1백90억달러 경제 원조 호소에 앞장설 것이고,소련 구제와 고르바초프의 집권 계속을 바라는 프랑스의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이 이에 동조할 것이다. 당초 부시 미대통령은 그렇게 많은 돈을 소련에 투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었다. 최근 부시는 『만일 소련이 국방비 삭감과 경제개혁을 약속대로 이행한다면 서방측이 소련에 경제원조를 제공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라고 신축성을 보였으나 부시 미대통령은 미국의 재정 적자와 의회반대를 이유로 미국의 직접적인 대소자금 지원은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및 동구에 대한 경제 지원과 관련,일부 서방 국가들이 일본에 걸고 있는 기대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정부관리들은 가이후총리의 향미에 앞서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소련 보다 중국에 대한 경제지원조치의 선행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련이 확실한 사회 경제 개혁을 이룩할 때까지는 모스크바에 대해 경제원조 대신 기술지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일본측 입장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무엇보다도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의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오는 12월로 시한이 정해져 있어 이번 회담에서 협상타결의 강력한 전기를 마련하지 않는한 GATT체제 자체가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EC회원국들은 92년의 EC통합계획 때문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성공,특히 농산물에 대한 정부 보조금 문제에서실질적인 결론을 끌어 내는 것을 막을지 모른다. 미국은 교역을 왜곡시키는 농산물 보조금이 향후 10년내에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EC측은 소규모의 비효율적인 농장을 소유한 자국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줄 미국안에 반대하며 보조금의 부분삭감만을 주장하고 있다. 만일 EC가 이 협상의 진전을 막을 경우 기존의 다자간 무역체제를 지역별 무역블록으로 세분하려는 압력이 고조될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C와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대해 냉전종식과 재정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도록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과 미국은 일본에 대해 세계경제 및 정치체제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도록 촉구할 것이다.
  • 동독 대규모 파업/취업보장등 요구

    【동베를린 로이터 연합】 실업자 증가에 놀란 수만명의 동독 노동자들이 4일 전국 각지에서 임금인상과 취업보장ㆍ근무시간단축등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으며 많은 지역에서는 이것이 항의시위로 이어졌다. 이같은 대규모적 노동분규는 6월중의 실업자수가 14만2천명으로 전월보다 근 50% 더많은 4만7천명이나 늘어났다는 노동부의 성명이 발표된 것과 때를 같이해서 벌어진 것으로서 전문가들은 비능률적인 동독산업이 서독과의 경제통합에 뒤이은 개편과정을 거치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북한,통독에 함구

    【내외】 북한은 동서독이 지난 1일 0시를 기해 경제ㆍ사회통합을 실현,사실상 통일을 이룩한 데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의 신문ㆍ방송 등 선전기관들은 동서독간의 경제화폐통합에 따라 동독은 명목상의 국가로 남게 되었으며 1일부터 동서독 국경에서의 동서독인에 대한 모든 통행규제가 철폐되는등 동서분단이 종식된 사실에 대해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11월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등 동구권 국가들의 개혁열풍에 대해서도 철저히 보도를 통제한 바 있는데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동구권의 개혁바람이 그들 사회에 유입되어 체제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
  • 연내 정치통합으로 가는 길(이제 독일은 「하나」:6ㆍ끝)

    ◎4전승국등 이해관계 조정이 과제/대국화 경계… 미ㆍ소,「세력권 묶어두기」고집/파도 국경문제 의구심,새 조약체결 요구/콜,주변국 불안 씻기 분주… 내주 방소땐 거액 차관 『아직 근무수칙이 바뀐게 없기 때문입니다』 「7ㆍ1경제통합조치」를 계기로 용도폐지된 검문소에 소련군초병이 남아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져 다가가 물어 봤으나 이 병사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서베를린과 동독의 포츠담을 이어주는 글리니케다리 검문소의 서방측 검문요원들은 모두 철수했으나 소련군측은 계속해서 근무를 시키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미ㆍ영ㆍ불ㆍ소등 승전 4개국 외무장관들의 박수를 받으며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체크 포인트 찰리 검문소 자리에도 건물은 없어졌으나 미국의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달라진게 없다는 소련군병사의 얘기나 베를린 하늘에 나부끼고 있는 성조기는 바로 동서독의 통일문제에 얽힌 복잡한 국제관계의 일면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협정의 발효로 지난 1일부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구현한 양독은 올해안에 완전통일을 이룩한다는 공동목표를 설정해 놓고 마지막 일정인 정치통합작업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금년내에 통일완수를 위한 전독총선을 실시하자는 서독측의 제의에 확답을 피해 오던 동독은 지난 2일 서독측의 요구를 받아 들이면서 오는 12월2일 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의,해가 가기전에 통일독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치통합일정에는 국제관계 조정이라는 필수적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들어 있다. 동서독의 통일문제가 대두되자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독일민족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면서 짐짓 관대하고 아량있어 보이는 태도를 나타내며 관여치 않겠다는 말을 해 왔다. 그러나 양독의 통일을 단순한 독일민족 내부문제로만 보는 유럽사람들은 거의 없다. 분단된 동서독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바로 「거대독일」의 탄생을 의미하며 그것은 국제정치역학의 대변혁을 초래한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시각이다. 게르만민족의 팽창주의에 숱한 시련을 겪어온 주변 나라들은 단단히 죄였던 고삐가 풀리는 상태로 밖에 볼 수 없는 통독에 환영의 박수만을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 찬성하고 축하하기는 커녕 분단상태가 가능한 한 더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데 더 솔직한 그들의 심정일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은 2차대전전승국들과의 관계. 이들의 승인이 없으면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의 주권회복이 불가능하며 결국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미ㆍ영ㆍ불 등 서방 측 전승국들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소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방측의 입장은 통일독일을 NATO에 묶어 둠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가함과 함께 집단통제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빠진 NATO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소련은 어떤 경우라도 통일독일이 소련의 안보에 위험을 주어서는 안된다는게 기본 입장이며 이의 해결책으로 NATO 및바르샤바 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 방법을 제의하기로 했었다. 역사의 유물로 밀려난 동서독 국경검문소에 계속해서 근무자를 배치하고 있는 소련은 병사의 말대로 통독문제와 관련하여 아직 결정적인 자세의 전환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평소 『소련을 무시한 통일은 안할 것』을 강조해온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다음 주중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그의 방소길에는 이례적으로 테오 바이겔 재무장관이 수행한다. 서방언론들은 『바이겔장관의 가방에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살 때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며칠전 서독정부가 소련에 3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일방적인 발표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본정부는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을 통일승인의 값으로 소련에 지불하려는 것 같다고 현지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NATO 개혁용의 표명이나 이미 정치기구로 탈바꿈하기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개혁결정등은 통독을 위한 호재로 작용할 것임이틀림없다. 통독작업 진행과정에서 걸림돌 역할을 해오던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지난달 22일 동서독 의회가 『동서독은 현재 또는 미래에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표면적으로는 잠잠해 졌다. 그러나 당사국인 폴란드는 조약체결을 희망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동서독이 보여온 애매한 태도때문에 주변나라들은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밖에도 통독은 결국 동서독간의 「국경선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므로 해서 동독지역은 자동적으로 EC(유럽공동체)가입효과를 취하게 되지만 동독과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과의 관계는 미묘한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현재의 동서독 정부는 의무와 약속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통일 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 당사국들이 확신감을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소련을 포함한 전승국들의 입장,주변나라들의 이해와 협조등 국제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앞으로 남은 통독완결작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알바니아 「피신자」출국 허용 검토/외교소식통

    ◎여권 1만5천장 발급 준비/헝가리등선 협상나서 【파리ㆍ빈 AFP 로이터 AP 연합】 알바니아정부는 출국을 원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1만5천장의 여권과 비자를 발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믿을만한 소식통들이 4일 전했다. 이 소식통들은 이번 주말이전에 1만3천여장의 여권이 발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알바니아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2백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지난 2일부터 수도 티라나 주재 외국대사관들에 피신함으로써 야기된 정치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피신자들은 현재 정치적 망명을 요구,알바니아를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앞서 일부 서방 외교관들은 알바니아의 강경파 공산정부가 현 정권에 불만을 품은 수천명의 알바니아 국민들의 출국을 허용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교관들은 점증하는 알바니아의 정치적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유럽 최후의 스탈린주의 국가인 알바니아를 떠나려는 알바니아인들에게 1만장 이상의 비자와 여권이 즉각 발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일부 유럽국가들은 4일 해외출국을 요구하며 외국 대사관으로 피신한 2백여명의 알바니아 국민들을 돕기 위해 알바니아 정부와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헝가리 외무부는 이날 알바니아 당국이 티라나 주재 헝가리 대사관으로 피신한 4명의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여권발급을 약속했다고 밝혔으며 동독 관영 ADN통신은 이와 유사한 보장들이 지난 수일에 걸쳐 알바니아인들이 피신해 있는 외국 대사관들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 알바니아 변혁의 도화선될 가능성

    ◎「반정인사 대사관피신」의 배경과 파장/「장벽붕괴」부른 동독인 대탈출과 흡사/40년 일당독재ㆍ개혁늑장에 불만 표출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알바니아 반체제인사들의 외국대사관 피신사건은 향후 알바니아 정국에 전면적인 변혁을 몰고올 하나의 정치적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동구권국가 가운데 가장 느린 개혁속도를 보이던 알바니아에서 지난 며칠동안 반정부소요가 발생해 4백여명의 반체제 인사들이 수도 티라나주재 외국대사관으로 피신,이 가운데 일부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고 나선 이번 사태는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됐던 동독인들의 동구주재 서독대사관 피신사건과 그 양상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4백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이 대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해 담을 넘거나 트럭을 이용해 대사관 정문으로 돌진해 왔으며 알바니아 보안군은 이들에게 총격을 가해 적어도 4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하고 『현재 티라나주재 10여개 대사관에는 모두 4백여명이 피신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구의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식 공산독재체제를 고수해오다 최근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을 서서히 풀고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을 시도해온 알바니아 알리아 정부가 이번에 직면한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지난 5월8일 발표한 여행자유화 조치와 새로운 여권법이 지나치게 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40여년 동안 공산당 일당 독재하에서 누적돼온 국민들의 불만이 개혁물결을 틈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구 3백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9백만달러를 밑도는 알바니아의 현경제상황은 정치ㆍ경제ㆍ외교적으로 자주 고립노선을 선언한 지난 70년대 중반보다 오히려 더 악화됐으며 높은 실업률과 생필품부족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알바니아를 강타한 가뭄으로 식량마저 바닥나 국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의 최고통치권자 라미즈 알리아 노동당 제1서기는 국민들의누적된 불만이 현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지난 5월 중앙집권경제체제를 완화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한된 개혁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알리아정부는 이같은 민주화개혁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사회주의체제 강화라는 단서를 단채 루마니아식의 형식적 개혁만을 추진,국민들의 개혁열망을 수용하는데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알바니아관영 ATA통신은 『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알바니아인들이 「범죄자」와 「징집통지서를 받은 청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서독소식통은 『이들은 알바니아의 반체제인사들』이며 『서독정부는 이번 사건은 유럽경제공동체(EEC)회의에 상정,공동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혀 이에 대한 대응이 알리아의 개혁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가입의사를 밝힌데 이어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해온 「동구의 고도」 알바니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구대변혁의 「막차」에 오르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동독 훔볼트대 미셀교수는 말한다(이제 독일은 「하나」:5)

    ◎“「폐쇄체제」염증이 통합 앞당겼다”/일당독재ㆍ경제피폐 따른 국민불만 폭발/자본부족등 과제 많지만 시장경제 낙관 분단 독일이 하나된날,1일의 「D­마르크 데이」를 감격으로 보낸 동서독국민들은 이제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차분히 주변을 되돌아 보고 있는 모습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왜 그것이 가능했으며,앞으로 무슨 문제점이 있고,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민족사 변천의 전환점에 선 그들이 곱씹고되새겨 볼 구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독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동베를린 훔볼트대 경제학교수 크나후터 미셀박사를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경제ㆍ사회ㆍ 통합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세대에서는 희망할 수도,기대할 수 없었던 역사적 선물을 독일 민족에게 안겨 주었다. 통일이란 꿈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동서의 화폐가 어느 한쪽의 것으로 단일화 됐다는 사실은 실무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나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분단종식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평소 통일에 대한 귀하의 생각은 어떤 것이 있나. ▲먼저 얘기 했듯이 먼 장래의 것이며 우리 세대에서는 그 기반이나마 착실히 다져두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아 왔다. 언젠가는 이루어야할 분단민족의 과제가 통일인 것만은 사실이나 1년전만 해도 누가 오늘과 같은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1년간 급속히 진행된 통일추진 작업들이 제수준을 밟았다고 보는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칭찬받을 만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는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붕괴 이후 가시화되기 시작한 통일이 피바다속에서 이루어 질 것인가,아니면 시민들의 자유스런 의사표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성취될 것인가에 대해 매일 매일 걱정하면서 89년을 넘겼다. 자칫 잘못했으면 굉장히 비참한 사태가 초래 됐을지도 모른다. 서로 결과는 다르지만 중국 천안문사태나 루마니아사태가 비극을 초래한 점은 똑같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점을 돌이켜 보면 소름이 끼친다. ­통일의 가능성을 점친 것은 언제쯤인가. ▲호네커가 실각하고 두달쯤 뒤에는 통일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한스 모드로브가 만나 민족문제 해결에 희망적인 작업을 해내는데 실패했더라면 동독사람들은 통일작업의 추진을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공산독재정권타도 데모는 그 목적이 성취되자 자연스레 통일요구 시위로 바뀌었고 다시 콜­모드로브 작업의 격려를 위한 궐기대회 비슷한 성격으로 변모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거리낄 것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국민들을 처음 거리로 나오게 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 등 원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행할 수 없도록 묶어둔데 대한 반발과 불만의 폭발은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위에 앞서 계속된 서독으로의 대탈출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또 차 한대 사려면 13년을 기다려야 하는 침체된 경제상황이 부채질을 한 셈이다. 동독 국민들은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억압된 사회는 어떤 하찮은 동기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계속되어 오던 동독은 자본주의 서독으로 흡수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만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경제형태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의 예를들면 주택ㆍ의료ㆍ교육문제 등에 있어 사회보호를 위한 그물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급격히 변동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의 점진적인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변화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더욱 강화되고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제통합을 해석한다면 동독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급류가 흐르는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윤이란 생소하면서도 매력있는 열매를 보장하고 있는 강건너 저쪽의 시장경제를 향해 힘들게 헤엄쳐 건너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동독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어느정도의 경제규모는 유지하고 있어 강건너 저편에 도달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을 건너려는데 가로막는 것은 없는가. ▲솔직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도 모자란다. 생산시설은 낡고 경영기법도 뒤떨어져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는데 대한 모델도 없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숱한 시행착오가 뒤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통합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완전통일에 지장을 줄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경제통합이 완전통일의 첫관문이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분단의 골이 깊어져 있는데,완전통일이 한번에 달성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다. 통일은 해야겠고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아직 불가능할 때 우선 경제통합부터 실시할 수 밖에 없지않겠는가. 이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통합이전의 단계로대차방법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통화통합으로 시작했고 큰 무리가발견되지 않고 있느니만큼 잘 진행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동독은 이념적인 면에서 과거의 「동구」에서 이미 떠났다. 그러나 옛 우방들과의 관계 마저 끊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앞으로 동구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관계가 더욱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도 이미 과거의 이념 굴레 안에서의 친구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스스로도 변하고있다. 앞으로의 세계,미래의 유럽에서는 옛날과 같은 이분법의 친소관계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더라도 과거에 맺은 조약들은 계속 지킬 것이며 그들과의 경제관계도 더욱 수월해지고 깊어질것이다. ­독일의 통일을 겁내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 ▲「독일」하면 모든 인류는 「전쟁」을 연상한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이다. 우리는 다시 큰 힘을 가지고 이웃에 간섭하고 세계를 귀찮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우리의 얘기를 쉽사리 믿으려 하겠는가. 정치적 통합이 뒤로 늦어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 히틀러가 힘으로 유럽을 전쟁속으로 몰아넣었으나 결국은 항복으로 끝났고,그뒤의 독일역사는 민족분단 비극사이다. 우리는 이같은 역사적 교훈을 늘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통일이 정말 올해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전독총선이 끝나면 바로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과정에는 국민들의 힘이 큰 작용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렸다.
  • “통독 군병력 40만이하로”/서독제안/소의「군사 대국화」우려 해소

    【본 UPI 연합】 서독은 통일독일의 군병력을 40만명 이하의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흔쾌히 합의함으로써 그동안 독일통일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해온 소련에 큰 위안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서독 정부의 고위 소식통들이 4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헬무트 콜총리를 비롯,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게르하르트 스톨텐베르크 국방장관 등이 3일 개최된 특별회의에서 통일된 독일의 군병력을 이같은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들은 이같은 제안이 이번 런던에서 개최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회담에 상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독군은 현재 무장군 49만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독은 17만3천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제안은 또 통일된 독일을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서독의 계획에 반대해온 소련의 우려를 상당히 완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 통일 앞서 병력 반감/동독외무 제의

    【제네바 AP 연합】 마르쿠스 메켈 동독외무장관은 3일 독일 통일에 앞서 독일이 군사대국을 지향하려는 야심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군사력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켈장관은 이날 4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누구도 통일된 독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전제,『우리가 현재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다시는 군사력의 중심이 될 능력도,의사도 없는 독일이다. 우리는 평화와 안정의 요소로서의 독일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ㆍ서독이 양측의 군사력을 모두 합해 30만명 수준으로 반감할 것을 제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이같은 자발적 조치로 빈 군축회담의 향후 작업이 매우 순조로워 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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