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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슈뢰더 개혁정책 ‘먹구름’

    [베를린 남정호특파원]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SPD)이 5일 브란덴부르크와 자를란트 등 2개 주에서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 참패,슈뢰더 총리의 ‘제3의 길’에 제동이 걸렸다.다시 말해 독일정부의‘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 할 수 있다. 복지예산을 포함한 예산 삭감을 핵심으로 하는 재정개혁안을 둘러싸고 극심한 당내분을 겪어오던 사민당은 슈뢰더 총리의 경제개혁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선거에서 결국 야당 기민당(CDU)에 고배를 마심으로써 향후 정책수행에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14년간 사민당의 아성이었던 자를란트주의 경우 페터 뮐러(43)가 이끈 기민당이 45.8%의 지지율을 얻어 44.4%에 그친 사민당을 누르고 승리,헷센주에 이어 두번째로 야당 집권 주가 됐다.전통적인 사민당 강세지역인 브란덴부르크 주에서도 기민당이 26.4%의 득표율로 선전,39.9%를 얻은 사민당의절대 안정세력을 깨뜨렸다.특히 이 지역에선 구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이 23.6%의 득표율을 얻어 큰 신장세를보였다. 이는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적녹연정(赤綠聯政)의 국정운영에 대해 독일 국민들의 민심이 이탈했음을 의미한다.수성(守城)에 실패한 사민당은 말할 것도 없이 녹색당은 의석진입조차 하지못했다.연정의 참패는 연방상원(분데스라트)에서 여당의 다수표 상실을 뜻하고 이는 슈뢰더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등 각종 개혁법안들이 야당에 의해 발목이 잡히게 됐다는 의미이다. 또한 ‘베를린 공화국’출범 직후 실시된 이번 선거의 결과가 앞으로 실시될 12일의 튀링겐 주의회선거,18일의 작센주의회 선거,그리고 10월10일의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는 도미노 현상 우려마저 일고 있다.슈뢰더 총리는 5일 연방교통장관 뮌터 페링을 새로 신설될 사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당의 단합을 기하고 당내분을 추스르며 재정개혁안에 대한 정책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하는 등 선거 실패에 따른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한편 브란덴부르크주에서는 외국인 배척을 표방한 극우정당인 독일국민연맹(DVU)이 6%의 지지를 얻어 의회진출에성공,향후 독일 정가에 적지 않은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 前동독대사관 철수후 北·獨 외교채널

    [베를린 남정호특파원]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베를린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가장 안심하고 회담을 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다.독일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북한이 동유럽으로 진출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으며,통일 이후 북한은 동베를린에 구축해놓았던 근거지들을 거의 상실했지만 이익대표부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94년 제네바 핵협상 타결 이후 95년에 경수로회담을 베를린에서 열었으며,지난해 3월에는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해 교착상태에 빠졌던 미사일회담을 다시 갖기로 합의하기도 했던 곳이다. 양측은 이번 회담이 베를린에서 열리는 이유에 대해 ‘서로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으나 편리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과 독일간의 비공식 외교채널인 북한 이익대표부는 90년 10월 독일 통일 이후 구 동독 주재 북한대사관이 철수하면서 91년 1월에 설치됐다.이익대표부는 동베를린지역에 있던 북한대사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의 정식 명칭은‘중국대사관 베를린지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권보호사무소’이며 독일 주재 중국대사관 관할하에있다.이익대표부는 공식적인 외교업무는 수행할 수 없지만 경제,통상,문화및 영사업무는 허용되고 있다.이익대표부는 현재 김창룡 전 외교부 부부장이 98년 1월부터 대표를 맡고 있으며 외교관 신분을 갖고 있는 참사관과 서기관이 각각 4명씩 근무하고 있다. 북한이 이익대표부 전 대표인 강정모를 무역상으로 기용한 것은 베를린이아직도 외화벌이 근거지로 사용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지난해 10월에는이상유 부대표가 무기밀매 등의 혐의로 독일 검찰의 조사를 받고 독일에서추방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북한 이익대표부의 김경필 서기관이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jhn@
  • 베를린 한국총영사관 폐쇄

    [프랑크푸르트 남정호특파원] 동서냉전 현장의 산 증인격인 베를린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개관 27년만에 문을 닫는다. 독일 행정부와 의회가 오는 9월1일부터 베를린에서 집무를 시작하고 한국대사관도 이에 맞춰 베를린으로 이전함에 따라 베를린 총영사관은 이달말 대사관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지난 73년 1월 1일 개설된 서베를린 총영사관은 90년 10월 독일통일 이후베를린 총영사관으로 개칭됐으며 공관 관할지역도 옛 동독지역으로 확대됐다. 베를린 총영사관은 지난 4월 함부르크 총영사관 폐쇄에 따라 관할지역이 늘어나 독일의 16개주중 10개주를 관장해왔다. 김승의(金勝義) 베를린 총영사는 24일 총영사관 폐쇄를 앞두고 관저에서이임 리셉션을 개최했다.김총영사는 이임 연설에서 한국과 독일간 우의증진을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독일측 참석 인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베를린시대 개막과 함께 한·독 관계가 더욱 발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헤어비히 하제 베를린 주의회 의장은 답사를 통해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한 힘과 의지를가지고 남북문제를 풀어갈 경우 머지않아 통일을 이룩할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리셉션에는 하인리히 룸머 연방 하원의원,하르트비히 피펜브록 독일경제협회장,한스 마이어 훔볼트대학 총장 등 베를린의 정치·경제·문화계 인사 350여명이 참석했다. njh@
  • 「獨수도 베를린 이전」새달1일 첫 閣議“21세기 출발”

    오는 9월1일 독일의 새로운 21세기,이른바 ‘베를린 공화국’시대가 시작된다.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민주주의헌법의 태동,히틀러의 나치즘과 독재,1·2차 세계대전을 통한 군국주의,그리고 동·서독 분단으로 대표되는 냉전 등세계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응축한 도시 베를린.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이무너진 뒤 시작된 ‘베를린 천도(遷都)’라는 세기적인 대역사가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3일 베를린 집무에 들어가는데 이어 다음달 1일 베를린 첫 내각회의를 주재한다. 독일 의회도 6일 제국의회(Reichstag)의사당에서 전체회의를 개최,바야흐로 통일독일의 수도이자유럽의 중심지로서의 베를린 재탄생을 공표한다. “과거를 보려면 로마로,미래를 보려면 베를린으로 오라” 베를린 시 홍보국장 볼커 하세메르시는 10년의 대역사 끝에 거듭나는 베를린을 이렇게 자랑했다.91년 베를린 수도 이전을 결정한 뒤 독일 정부가 베를린에 쏟아부은 비용은 200억 마르크(약 12조 2,000억원).옛 동독지역의 떼를 벗기고 미래의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베를린은 그야말로 거대한 공사장이었으며 아직까지 크레인 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다.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에는 향후 수년이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 16개 부처 가운데 수도이전을 총괄한 교통부가 지난 6월말 50여년 본시대를 마감하고 베를린으로 이사한데 이어 10개 부처도 거의 이사를 끝냈다.150여개 외국 공관,언론기관 각종 이익단체도 이사에 여념이 없다. 본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인구는 수만명이다.일부 부처가 본에 남아 과도형태를 유지하긴 하지만 6,000명의 정부 관료와 그 식솔,그리고 국회의원 669명,보좌진 3,400여명 등이 베를린으로 옮겨 간다. 여기에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에 근거지를 둔 많은 기업들과 21세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베를린으로 속속 향하고 있다. 지난 5월 선출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이미 베를린의 새 대통령관저에머물고 있으며 슈뢰더 총리는 오는 2001년 새 총리관저가 완성될 때까지 옛동독 호네커 전 총리 관사에 임시로 기거한다. 베를린은 세계 유명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로젠조 피아노,노먼 포스터 경 등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새 베를린 건설에 참여했다.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베를린 장벽 서쪽에 위치한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민주 헌법이 탄생한 곳이자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한 곳이며 45년 연합군에 대한 독일 패전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제국의회 건물을새단장한 주인공은 건축 거장,노먼 포스트 경.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상징한 유리 돔,그대로 보존해놓은 과거 전쟁의 흔적들은 벌써부터 관광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거장 로젠조 피아노가 지휘한 포츠담 광장엔 8억달러 규모의 소니 복합단지,다임러 벤츠 본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새 베를린은 유럽 전통양식을 고수하라는 건축규제 탓에 구태와 혁신이 어정쩡하게 얽혀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천도의 의미 베를린 천도는 통일 독일의 숙원사업이자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후 지속돼온 통일과정의 마무리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독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는 특별하다.비록 한때나치와 냉전시대의 무대로 독일 역사중 치욕의 한부분이 됐지만 독일과 독일인에게 베를린은 ‘영원한 수도’ 그 자체이다. 1871년 독일이 첫 통일된때부터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수도였으며 그이전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베를린은 늘 독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이번 ‘베를린 천도’에 독일 전체의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일부 유럽국가에서 독일이 베를린 천도로 다시 권위주의,패권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에 영향받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몇몇 국가들에서는 베를린 천도를 곧 ‘동진정책’의 하나로 보면서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편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는 얼마전 본시대를 마감하는 의회연설에서 “독일은 신장된 국력을 함부로 과시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우리는 새로운 수도 베를린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지 새로운 공화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혀 베를린 천도를 바라보는 주변국들의 미묘한 입장을 배려했다. 이경옥기자 ok@ - 베를린한인회 교포중심 될듯 베를린 남정호특파원 주독 한국 대사관및 교민사회도 베를린 시대를 맞는 채비에 한창이다. 지난 6월 시내 중심가인 티어가르텐 남쪽 독일철도보험회사의 7층 건물중 4,5층(500평 규모)을 임대,막바지 사무실 개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사관은 독일 연방정부 및 의회 이전에 맞춰 오는 9월 1일부터 베를린 청사에서 업무를 공식 개시한다.베를린 주재 총영사관은 대사관 이전과 함께 폐쇄되고 본에는 영사업무 등을 관장하는 대사관 분관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기주(李祺周)대사는 “베를린 천도 이후 독일의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위상과 외교 정책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적절히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독일 주재 문화홍보원도 베를린으로 확장 이전한다.교민사회의경우도 활동의 중심이 프랑크푸르트 등 중부 독일권 한인회에서 베를린 한인회(교민 3,000여명)로 옮겨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金대통령 ‘새 천년’의 비전] 8·15경축사 분석 전문가 좌담

    백경남(白京男)동국대 사회과학대학장,안석교(安錫敎)한양대 경제학과교수,서경석(徐敬錫)한국시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이 15일 오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15경축사와 관련,대한매일신보사 편집국에서 좌담을 갖고 경축사내용을 분석,평가했다.좌담 내용을 주제별로 간추린다. ■ 총론?백교수 이번 경축사에서는 지난 100년을 회고하고 새천년을 국민과 함께모색하는 방향이 제시됐습니다.특히 줄기찬 민주화투쟁으로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고 국민의 저력으로 IMF 위기를 극복한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에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일류국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내각제 연기의 명확한 내용을 국민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 경축사에서 개헌을 연기한 불가피한 이유를 짚었다는 점입니다. ?안교수 경축사는 역사적으로 두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하나는 취임후 1년반이 지나면 IMF를 극복하겠다고 밝힌 대통령이 1년반이 지난 지금 대차대조표를 밝힌 것입니다.두번째로는 다가올 밀레니엄에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대통령의 철학과 비전,리더십을 보인 점입니다. ?서총장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 의의를 둡니다.다만 국민에게 현실을 깨우치게 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최근 ‘장밋빛 미래’의 환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졸라맸던 허리띠도 이완돼 있습니다.집단이기주의는 사방에서 분출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인내를 해달라”고 강조하길 바랐습니다. ■ 생산적 복지?안교수 지난 1년반동안의 구조조정에서 볼때 대규모의 중산층이 ‘한계집단’으로 전락하고 서민은 더욱 어려워지는 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고통분담을 강조했지만 고통이 특정계층에 가중된 탓입니다.계층의양극화 현상을 두고는 시민계층의 지지와 정치·사회 안정을 얻을 수 없습니다.때문에 대통령도 생산적 복지와 고용문제를 강조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복지정책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하나는 재원조달 문제입니다.그동안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누적 증대됐습니다.재벌개혁과 관련,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습니다.앞으로도 적지않은 공적자금이 들어갈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 복지부문에 필요한 세수,자금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또 생산적 복지의 기본핵심은 ‘인간 요인’입니다.인간개발을 통해 그것을 고용과 연결시켜 복지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인간교육이든 직업교육이?고용을 확대한다는 게 기본 핵심인데 아무리 정부가 투자해도 이것이 시장에서 흡수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됩니다.때문에 2002년에 완전고용을 실현하겠다는 말씀은 자칫 선언적 내용에 그칠 수 있습니다. ?백교수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뤄진 불평등한 사회자원배분 구조는 IMF체제 이후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했습니다.계층간 갈등의 심화는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상화를 위협하는 요소가됩니다.생산적 복지의 국정철학은사회의 갈등 관리와 통합정책의 필요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IMF 이후 중장기 비전을 설정하고 사회 양극화 현상과 실업,빈곤 등만성적인 사회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인 통합정책이 바로 생산적 복지의 배경입니다.구체적으로 내년부터 가정이 어려운 중고생의 학비를 무상지원하는 등 국민 전체를 새로운 성장과정에 동참시키고 사회연대를 창출하는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여기에는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사회통합을 위한 적극적·참여적 복지와 사회연대적 인프라 구축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구체적 키워드는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입니다.제대로 실현만 되면 복지국가의 기본틀이 짜여지고 복지국가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서총장 경축사에서 언급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시민·사회단체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것입니다.복지정책의 방향을 중산층 약화방지와 서민생활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도 옳았습니다.그러나 시민의 참여나 동참을 호소하는 부분이 빈약합니다.정부 혼자 복지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복지확대에는 민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우리도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자발주의를 키워나가야 합니다.직능·봉사·사회단체 등 민간부문이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어야 합니다.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개혁정책의 입안에서부터 집행,평가까지 모든 과정에서 시민참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정부가 하고 있는 많은 일 가운데민간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게 이양을 해야 합니다.시민과 손을 잡으려는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사회 부분을 언급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 경제개혁?백교수 새천년을 향한 경제구상에서 재벌개혁을 다시 한번 천명했습니다. 경제구조를 재벌중심에서 중산층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분배정의를 실현하고 조세형평을 지향하려는 의지도주목됩니다. ?서총장 경제구조 전반을 효율적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은 인정합니다. 노력의 요체는 재벌개혁이며 지금은 재벌개혁의 호기입니다.그러나 정부는지금 선단식 경영을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을뿐 자본과 경영세습에는 손을대지 못하고 있습니다.분명한 철학과 기준으로 접근하길 바랍니다. ?안교수 경축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IMF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금융,공기업,공공부분,노동분야 등 4대부문의 개혁을 추진했는데 분야에 따라서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절반의 성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내리는 신용등급의 상향조정이라든지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나 브라질,러시아 등과는 달리 최근 경제성장률,실업률,국제수지,인플레 등 거시 경제지표로 볼때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 정치개혁?안교수 현 정부출범시 화두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습니다.경제부문에는성과가 있었다 해도 과연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에 가시적 효과가 있었느냐는 판단에는 유보적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하기위해 일련의 제도개혁이 필요합니다.부정부패 방지법을 제정한다든지 정당법,선거관련법을 개정해서 투명한 정치·돈 안드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든지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개혁과제입니다. ?백교수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난 전국정당화,선거공영제,고비용 저효율의 정치 청산을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국회를 본회의 중심으로 운영하자는것은 토론정치를 중시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이제는 대립과 분열,갈등,이기주의에서 화합과 통합,평화,개방주의로 나아가고 법과 상식이 지배하는 법치국가를 실현해야 한다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개혁성과 참신성을가진 전문가 그룹을 신당에 영입하겠다고 밝힘으로써 21세기에 적응하는 정당의 모습도 제시했습니다.중요한 것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대목입니다. ?서총장 시민단체는 한결같이 내각제를 하지 않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시민단체는 온 나라가 내각제 논란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사이 개혁이 물 건너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소모적인 논란이 일찍 끝나 다행입니다.공동여당이 내각제를 단행했다면 국민적인 반대운동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사실 내각제 약속은국민의 의사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개혁에 우선 순위를 둔 대통령의 인식도 올바르다고 봅니다.지역당 구도를 벗어나 전국당을 만들 수 있는 제도,즉 중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바람직했습니다.대통령이 남은 임기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것은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타파하는 일입니다.김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호남,영남,충청당을 다음세대에 넘겨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경축사에 개혁세력 대연합 제안이나 정책이념에 따른 정계 대개편선언 등이 빠져있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백교수 개혁이 성공하려면 광범위한 시민단체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흡합니다.한편 대통령으로선 브랜드가인권·민주대통령인데 그런 맥락에서 인권위 설치를 강조하고 부정부패척결의지를 재천명한 것을 평가합니다. ■ 통일,남북문제?안교수 대북 포용정책을 선언한 뒤 가시적 성과가 나타난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어느 때보다 지난 1년반 동안 대북정책이 안팎의 도전에 부딪혔습니다.대통령이 안보를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힌것은 의미가 있습니다.남북관계에서는 통일을 지향한다기보다 관계 정상화가 중요합니다.독일의 경험이 중요합니다.서독이 통독(統獨)이 아니라 동서독관계의 정상화와 동독 주민의 기본권 신장에 주안점을 둔 것을 눈여겨 봐야합니다.대통령이 흡수통합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방향을 천명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는 단기적으로 조급한 기대를 해서는 안됩니다.남북한 관계에독일의 ‘작은 걸음의 정치’를 원용해볼 수 있습니다. ?백교수 대북문제에서는 큰 효과를 노리고 세계에 터뜨리는 전시적인 행태가 아니라 벽돌을 쌓는 자세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지난 1년 동안 경제와 통일은 엄청난 도전과 시련에 직면했는데 대통령이 탁월한 위기극복 능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입니다.바깥에서 우리의 포용정책을 지지하는데도 국민적 지지가 없다면 대북정책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통합적인 통일정책이 필요합니다. ?서총장 대북관계도 정부·민간간 협력이 중요합니다.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민간지원의 의미는 중요합니다.지난 정권에서는 민간 지원의 규제가 심했지만 지금은 폭넓은 자유가 있습니다.오히려 문제는 우리 국민의 열기가 식었다는 것입니다.북의 냉담함이나 IMF체제 때문입니다.정부도 민간의 일이라고 방임만 할 것이 아니라 열기를 이어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백교수 시민단체가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합니다.그래야 대북포용정책이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정책에 대한 당위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리 박찬구 김성수 이지운기자 ckpark@
  • “베를린 장벽 희생자 28년간 943명”

    [베를린 연합] 지난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동서 베를린을 가로막고 있던베를린 장벽과 기타 동서독 국경을 넘다가 희생된 동독인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943명에 이른다고 베를린 장벽연구단체인 ‘8월 13일회’가11일 밝혔다. 이 단체는 베를린 장벽설치 기념일에 즈음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독일정부의 공식 통계는 동서독 국경 희생자를 270명으로 잡고 있으나 이는 국경 경비병에 의해 사살된 숫자만 기록한 것이며 발트해를 통해 동독을 탈출하려다익사한 사람들과 체포를 두려워해 자살한 사람들을 포함한 결과 사망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년 8월 13일을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단체는 희생자중 40명은 어린이고 가장 어린 희생자는 1살이며 최고령 희생자는86세라고 밝혔다. 동서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지난 89년 11월 9일 동독인의 탈출러시에 밀려 동독정부가 국경통과를 허용하면서 일거에 무너졌다.
  • 베를린 장벽 복원 논쟁 ‘시끌’

    [프랑크푸르트 남정호특파원]‘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우자’.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앞두고 베를린 정가의 ‘장벽 복원’논쟁이뜨겁다. 지난 89년 11월 9일 동독인의 서독 탈출 러시에 밀려 동독 정부가 국경 통과를 허용하면서 일거에 무너진 107㎞의 베를린 장벽은 흔적조차 남아있지않다.특히 수많은 동서독의 유일한 통로였던 찰리 검문소도 위치만 알려져있을 뿐 통일의 생생한 현장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수 가 없는게 10년 뒤지금의 모습. 에베르하르트 디프겐 베를린 시장(기민당)등 수많은 정치인과 시민들은 독일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를 ‘결정적인 실수’라고 질타하면서 도심 일부에장벽복원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념물을 복원한다는 명분 뒤에는 베를린 시 당국의 관광수입 올리기 속셈이 있는게 사실.독일의 베를린 천도로 베를린이 해외관광객들의 명소로 부각되면서 이를 활용,관광수입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는 10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사민당의 베를린 시장후보로나설 예정인 발터몸퍼 전 베를린 시장은 “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에 디즈니랜드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디프겐 시장의 장벽 복원의도를 비난했다.이미 있는 장벽을 그대로 두는 것과 사라진 장벽을 다시 세우는 것은 다르다는 것.몸퍼 시장은 “관광 수입을 늘리기 위해 동독인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며 장벽 복원에 반대하고 있다. jhn@kdai
  • 「한국의 지역주의와 해소방안」지역주의 심화과정과 현황 토론

    ■한용원 한국교원대 교수 한국 정치사에 지역주의가 대두된 것은 군부정권이 안보상황론과 개발독재론을 내세워 민중을 배제하는 억압적 통치를 자행하면서 도당적·파당적 이익을 보장하는 인사정책과 개발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지역주의를 이용한다면 정치발전을 저해시킬 것이므로 파벌정치와 접맥된 지역주의의 고리를 단절시키는 정치개혁의 추진이 급선무다. ■서경교 외국어대 교수 군부정권에 초점을 맞춘 지역주의에는 동감한다.하지만 정치권과 정치세력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게 남아있는 이상 지역주의는 여전할 것이다.현실적인 의미에서 지역주의를 공정한 게임이라든가 다른지역간의 세력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게 바람직하다. ■최한수 건국대 교수 87년 대선이 끝난 뒤부터 지역주의가 본격 대두돼 김영삼 정권 시절인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심화됐다.유권자들의 투표행태를 보면 그렇다.지역주의를 양산할 수 있는 지도자는 김대중 대통령,김영삼 전대통령,김종필 국무총리 등 3김뿐이다.이제는 호남과충청에서 표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도록 해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로만 지역주의를 규정하는 것은그리 설득력이 있지 않다.정책혜택이라든가 민심·여론·정부인사 등의 변수도 지역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다.이런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지역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역적인 투표행태는 여전할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 지역주의를 볼 때 한반도로 시야를 넓혀 봐야 한다.통일이 되면 북한지역은 과거의 호남지역보다도 심한 차별을 당할지 모른다.통일 독일의 경우 구 서독사람들은 구 동독사람들을 경멸하고 멸시하고 있으며 이런 것은 해소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따라서 북한주민들도 이러한것을 우려해 반(反)통일적인 정서가 심할 수 있다. ■정영국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북한지역까지 넓혀서 지역주의를 보는 시각은 독특한 접근방법이기는 하다.통일 독일의 예를 들면서 북한주민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북한주민들은통일된 이후의 지역주의나 지역감정보다는 전직 대통령까지 구속되는 등의 사정을 더걱정하지 않을까. 지역주의적 정당구조가 고착화된 것은 87년의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교수 3김이 물러난다고 당장 지역주의가 없어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곽태헌기자 tiger@
  • [공무원 스터디그룹] 행자부 ‘통일 준비 연구모임’

    “통일이 언제,어떤 형태로 올지 모르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지요.” ‘통일을 준비하는 행정자치부 연구모임’의 대표 서효원(徐효源)재정경제과장이 말하는 모임의 발족취지다. 통일부에 있을 법한 이 모임을 내무관료들이 만든 이유는 뭘까. “독일 통일 이후 독일 내무부가 옛동독의 난민대책 및 행정체제 재구축,통일조약 체결 등 주도적 역할을 한 것에 비춰볼 때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행자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서과장의 설명이다. 모임은 97년 11월 ‘통일내무부를 준비하는 연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회원은 7명으로 단촐하다.분단국이었던 서독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있거나 통일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모두 8번 세미나를 가졌다.매월 마지막 목요일을 모이는날로 정해두고 있으나 정부 구조조정 등으로 다달이 모임을 갖지는 못하고있다. 그러나 “탈북 주민의 수용대책’‘독일 내무부의 역할과 기능’‘남북 통일과정에서의 민간단체 역할에 관한 연구’ 등 나름대로 심도 있는 논의를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북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귀순한 강모씨를 초청,북한 지방행정실태에 대한 간담회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자치행정과의 최훈(崔薰)사무관은 “북한의 공무원들 가운데에도 아침에 출근 도장 찍고는 지역시찰간다는 명목으로 외출해 놀다가는 퇴근 무렵에 들어와 다시 도장 찍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 등 생생한 정보를 많이 들었다”며 “북한의 지방행정 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지난 4월에는 통독 당시 동독에서 행정관으로 있었던 한스자이델재단의 게르하르트 미셸 서울소장을 초청,“통일전후 행정자치부의 역할과 관련된 독일연방 내무부의 사례’에 대한 강연을 듣는 등 활동폭을 넓히기도 했다. 기획예산담당관실의 박동훈(朴東勳)서기관은 “동·서독 주정부 및 자치단체간의 자매결연은 옛동독 지역인 신연방주(州)의 행정체계 구축에 가장 효과적이었다”면서 “우리도 행정수준의 격차를 해소하고 북한 지방행정체계의 조기 재구축을 위해 남북 지자체간 교류협력을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대한광장] 노벨평화상과 한반도 냉전 해체

    일본인은 그동안 8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1949년,핵력의 정체를 밝히는 등 물리학 3명,의학 1명,화학 1명,문학상 2명,평화 1명 등이다.노벨상은 인류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에 있어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인정되는상이며,인류 전체 감사의 표징이다.그러나 74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평화상 수상에 대해선 일본 내에서도 문제가 됐다.“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적극동조했고 중공(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반대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등. 73년 노벨위원회는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레둑토 월맹 정치국원에게 파리합의의 공로로 평화상 수여를 결정했다.그러나 당시 뉴욕 타임스는 ‘노벨전쟁상’이라고 비꼬았다.워싱턴 포스트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사람을 잘 웃긴다”고 했다.우방 일각에선 “미군을 무책임하게 철수시키기 위한 구실 마련”이라고 비난했다.“주변 국가를 침공하고 지키지도 않는 휴전협정에 동의했다고 평화상을 주다니…”라고 했다.레둑토는 수상을 거절했다.파리합의후 미군철수를 기다려 일거에 무력통일을 계획하고 있던 월맹으로서는 위장외교 전략으로 평화상을 받기에는 국가의 품위와 양심이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얼마전 한 TV가 키신저와의 회견에서 파리합의는 결국 ‘사기’가 아니었느냐고 추궁했다.회견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의 착잡하고 부끄러웠을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노벨평화상은 전쟁을 예방하고 민족간·이념간 분규를 해소하는 데 역사적 공헌을 한 인사에게 주어진다.수상자 몇 사람을 살펴본다. 1971년 대동독 강경노선 할슈타인 정책을 수정해 동구권 화해의 동방정책을 과감히 추진,독일통일의 초석을 놓은 브란트 서독총리,78년 네 차례의 중동전쟁후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그후 극우파에 의해살해당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50년간 계속돼온 인종차별정책 철폐를 위해 27년 동안 옥고를 치르며 이를 이룩한 만델라아프리카민족회의 의장과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64년 흑인 비폭력운동가로 후에 암살당한 킹 목사,94년 3,000년 이상 지속돼온 민족갈등을 지속하고 이스라엘 재건국이후 분쟁을 거듭해 왔던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정착시키고 결국 후에 반대 강경파에 의해 암살당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PLO의장 등 모두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용기있는 지도자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냉전구조를 해체하겠다고 했다.그러나 서해교전과 베이징 차관급회담 결렬 등을 우리는 보고 있다.분단은 우리민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외세에 의해 주어졌다.5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책임을 마냥 외국에만 돌릴 수는 없다.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반대로 작은 새우가 고래를 마구 끌고 흔들어 서로 등 터지도록 싸우게 했다.6·25가 그렇고1894년 청일전쟁,1904년 러일전쟁이 그렇다. 우리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다.소의 꼬리에 안주하기보다 닭의 머리로 떳떳하게 살려고 했다.광개토대왕의 웅지가 있었고 살수(薩水)의 용맹이 있었다.왕건의 통일 포용력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살신성인이 있었다. 김구의 민족자주 의식이 있었고 항일투쟁의 빛나는 전통이 있었다. 지도자는 대중의 뜻을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다.자기신념에 남이 따라오도록 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말한다.인구팽창,자원고갈,식량부족,환경오염,이념·민족분쟁의 새 천년에서 남북 가릴 것 없이 지금의 분단상태로는 자랑스런 국가로 살아남을 수 없다.2,500년전 철학자 플라토는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봤다”고 했다.남북한이 그럴 수는 없다.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다.같은 민족으로 세계의 멸시와 조롱을 더이상 참을 수는 없다.오늘날 남북이 안고 있는 어려움의 큰 원인이 분단 사실에 있다.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해야 한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가장 부강한 나라보다 높은 문화의 나라.’김구의 나라상이다.민족을 위해,세계 평화를 위해 노벨평화상이 우리 민족에게 수여되는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손장래 前 말레이시아 대사
  • [대한광장] ‘사실상 통일’ 달성의 선결조건

    과거 잠수정 침투와 같은 북한의 대남도발,미사일 및 핵개발 의지 등에도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일관성있게 유지해왔다.최근미국 대북정책조정관 겸 대통령 특사 페리가 북한을 방문,한·미·일의 대북 포괄적 접근방안을 설명하는 등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냉전구조 해체는 ‘남북이 서로 오고 가며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상황’ 달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분단국간의 인적·물적 교류협력을 추구하는 ‘사실상의 통일’은최소한 교류협력을 통해 어느 일국이 흡수통일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인적·물적 교류협력은 열위체제 하의 주민들의 정체성을우위체제 지향적으로 형성시켜 흡수통일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국제적 동맹관계 구축을 통한 세력균형 유지 등 최소한의 힘의 균형상태가 구축되어야 교류협력의 폐해로 인한 흡수통일을 방지하고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 진입할 수 있다. 동·서독은 통일 직전 900만여명의 동서독 주민들이상호 왕래를 하는 등‘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달성하였다.동독은 동서독간 교류협력의 심화로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잘 인식하고 있었으나,동서 냉전체제 하의 유럽의 분단이 지속되는 한 소련의 동독 비호로 인해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병합될 수없었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대만의 분리 독립정책의 충돌로 양안관계는 정상화되지 않고 있으나,중국의 국력 우위와 대만의 생활수준의 우위 및 미국의 안보상의 대만 지원 등 체제비교상의 힘의 균형으로 인해 흡수통일 우려가 불식되고 양안간 교류·협력관계의 활성화를 통한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우는 어떤가? 1990년대 구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 채택으로 소련·중국·북한의 사회주의 3각동맹체제가 해체된 반면,미국·일본·한국의 자유민주주의 3각동맹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또 북한의 국민총생산 규모는 남한의 2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등 체제비교상의 힘의 균형은 이미 파괴되었다. 따라서 국제적 세력균형의 와해,체제비교상의 열위 등 요인이 존재하는 한,교류협력이 강화되는 남북한간의 ‘사실상의 통일’ 상태는 북한체제의 와해를 야기할수 있으므로 결코 북한이 응할리 만무하다.그러므로 북한이 한·미·일 3국의 대북 포괄적 방안을 적극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태도라고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은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바,이는 새로운 힘의 균형관계 형성을 통해체제변화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로 보여진다. 우리정부는 미국과 중·러간의 관계악화,북·중·러의 관계개선 등 최근 동북아 정세가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구조를 형성,대북 포용정책이 유실될 수 있다고 우려할 필요가 없다.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시장을 제국주의적지배도구로 간주,세계시장 분리전략을 취했던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 주도의 세계시장이 필요한 나머지,미국은 물론 한국을 적대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체제전환 요구에 당면하고 있는 북한이 세계시장 통합적인 중국·러시아의국가발전전략을 추종한다면,북한은 교류협력에 따른 체제동요를 억제하기 위해 중·러·북의 새로운 3각동맹체제 구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이는 남북한간의 힘의 균형상태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복원하는 결과를 초래,역설적으로 정부의 남북한간 ‘사실상의 통일’상태 추구를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중국·러시아 관계개선이 중장기적으로는 ‘사실상의 통일’상태 달성을 위한 선결조건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黃炳悳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다고 풀의 기민함을 노래했다.시인이 작품에서 풀로 비유한 대중은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의 주인이자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주체로 자리잡았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와 구분해 대중을 가리키는 서양식 용어 ‘풀뿌리’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일반대중이라는 의미로 널리쓰이고 있다. 새 천년을 앞두고 지난 천년에 걸쳐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발명,발견등이 언론매체들에 종종 순위가 매겨져 나열된다.같은 맥락에서 관찰의 범위를 지나간 백년으로 줄여 잡을 때 필자는 금세기 후반 집중적으로 진행돼 온 정보통신의 발달에 주목하고 싶다.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난 80년대 이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온 컴퓨터 기술은 인류의 생활양태를 가히 혁명적으로바꾸었을 뿐 아니라 지구촌의 민주주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 세월 정치학 교과서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다뤄 온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개념은 이제 갈수록빛이 바래가고 있다.노동력은 다소 예외지만 재화와 용역이 사실상 무한정 국경을 넘나들게 된 오늘날의 지구촌에서 사람들의 생각도 전화선을 타고 컴퓨터가 창조한 사이버 공간을 자유로이이동하고 있다.사이버 공간의 놀라운 전파력에 힘입어 민주주의가 급속히 넓은 지역으로 파급됐다.이름하여 ‘사이버 민주주의’다. 서독의 민주주의가 동독의 공산독재를 압박한 끝에 마침내 통일을 끌어내기까지에는 동독 주민이 시청한 서독 TV방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정설이다.아직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에서도 ‘사이버민주주의’는 ‘풀뿌리’속으로 침윤(浸潤)되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는‘풀뿌리 민주주의’로 승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필자가 현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정책의 집행을 통해시장경제의 창달에 기여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있다.이를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약칭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다섯 가지 법률을 운영하면서 면밀한 시장감시와 공정거래 질서 규율을 통해시장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앞으로 더욱 노력해대중이 시장의 자유를 만끽하는 ‘풀뿌리 시장경제’의 정착을 앞당긴다는꿈을 갖고 있다.
  • [오늘의 눈] ‘변화’ 외면하는 북한

    북한측이 민주노총 인사들에게 김일성 동상 참배를 요구했다고 한다.14일한 당국자가 뒤늦게 이를 확인했다.남북노동자축구대회 개최 협의차 4월27일∼5월4일 방북했던 민주노총측에 그같은 ‘권유’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대표단이 이를 딱 잘라서 거부했다고 당국자는 전했다.이바람에 북측 관계자들이 오히려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김일성 동상 참배는 북측의 입장에서는 극히 당연한 ‘관성적인 행태’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사건’은 남북한 사회의 이질성을 재확인하기에 충분한 삽화가 아닐 수 없다. 이 해프닝을 접하면서 남북한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쪽은 북한의 ‘통일전선’카드에 필요이상의 피해의식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정부는 평양 남북노동자축구대회에서 체육교류라는 본래 취지가 탈색될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북측이 8·15범민족대회의 일환으로 치르면서 대규모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을 동원,체제선전장으로 악용할 경우에대한 우려다.이 대회는 오는 8월10일 열기로 합의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남북간 민간교류를 과감히 지원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민간단체의 자율성을 믿어야 한다는 차원만은 아니다.북한을 변화시키는 다른 방법이 없는 탓이다. 물론 무엇보다 북한당국이 남한당국과 민간단체를 ‘분리’시키려는 기도를 버렸으면 싶다.그같은 통일전선전술이 실효성없는 낡은 카드임이 속속 입증되고 있는 탓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 북한당국의 행보는 아직 갈지자다.지난해는 헌법개정을 통해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변화의 기미를 보였다.올해는 인민경제계획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방식을 강화하는 한편 먼지앉은 통일전선카드도 다시 빼들고 있다. 세계사의 주류는 독점산업자본주의-복지지향 수정자본주의-신자유주의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근자에는 제3의 길마저 모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북한만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곬으로 고집하고 있다.통일연구원의 서재진(徐載鎭)박사는 사회주의 동독이 서독에 흡수당한 것은 “동독의 지배엘리트들이 마지막까지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지도부가 같은 사회주의권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변화를 통해 살아남은 전례를 직시했으면 싶다. 구본영 정치팀 차장
  • 주도홍씨 ‘독일통일에‘서 지적-남북한교회 교류길 넓혀야

    “한국교회는 조국통일을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이 질문은 한 신학자가 우리 기독교계의 자성을 요구하며 질타한 외침이다. 기독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이자 기독교북한선교회 연구위원으로 있는 주도홍씨는 최근 ‘독일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 이야기’(기독교문서선교회)를 펴내 한국교회의 분발을 촉구한다.이 책은 10여년간 독일에서 독일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본 주씨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을 보완,출판한 것으로 이 분야 연구서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한 독일은 정치적 통일이전에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사전작업’이 이루어져 왔는데 그 이면에는 동서독 교회의숨은 역할이 지대했었다.동독교회는 공산당의 박해 등 어려운 여건속에서도정규예배와 신학서적도 계속 출간해왔다.이에 부응하여 서독교회는 동독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그는 “독일의 통일은 독일교회가 기도와 땀으로 일구어낸 성과”라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인과 한국교회·성도들에게 귀감이될 것”이라고 강조한다.값 5,400원.
  • [대한광장]대북정책, 발전을 통한 변화

    국민의 정부는 과거 대북정책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북 포용정책을대북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제시,실천해 오고 있다.우리정부는 현 단계 대북정책의 목표를 평화정착을 통한 남북한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에 주목적을두고 있다. 우리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과거 서독의 신동방정책의 추진기조인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과 비견할 만하다.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이란우선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는 현상유지정책을 추진하되(접근),중·장기적으로는 현상 유지를 타파하고 동독의 변화를 일구어낸다(체제변화)는 내용을담고 있다. 이러한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의 일환으로 서독 사민당정부는 소련 및 폴란드와 불가침협정 체결,동서독기본조약 체결 등 긴장을 완화하고평화를 정착시키는 신동방정책을 실시했다.이와 병행하여 민족 동질성회복및 분단고통 감소를 위해 동서독간 교류협력도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되었다. 서독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은 동서 양 진영간에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었고,양 진영간의 힘의 균형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 가능성이 최소화됨에 따라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나토와 바르샤바조약군간의 힘의 균형,케네디 대통령의 평화전략,중소분쟁에 따른 소련의 대 서유럽 유화정책 등대내외적 여건이 어우러져 관계 정상화에 의한 동서독간 접근이 이루어졌고,이는 마침내 독일통일을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서독의 경우처럼 북한에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정부의 한반도 평화와 안정구축을 위해 한반도 냉전구조의 완전 해체를 목표로 하는 평화·안보정책은 긴장완화를 목적으로 하는서독의 신동방정책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보다 많은 접촉’,‘보다 많은대화’,‘보다 많은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동서독간 교류협력 증진을 통해 분단고통의 감소와 더불어 체제우위 입증을 목적으로 하였던 서독의 대 동독정책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정부의 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접근을 통한 변화전략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 다자간 안보체제도 만들어지는 등 한반도의 냉전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주변 강국 및 남북한의 이해가 일치되지 않고 있는 한,지난한 시간이 요하는 일이다. 설사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된다고 할지라도 남한체제에 대한 우위 상실상황에 봉착한 북한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즉 자본주의 황색물결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남 분리차단정책으로 대응할 수도 있을것이다.우리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접근을 거부하는 북한이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수순을 밟아야 한다. 북한은 남한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체제수호를 추구해야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사회주의체제를 점차 시장경제체제로 변모시켜야 한다.이 점이 북한과 체제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없었던 동독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은 접근을 통해 북한의 체제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북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이란 대북한 외적 압력과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유교적 스탈린주의를 변화시켜야 하는 북한 내적 요구가 자연적으로 분출할 수 있도록 주변여건을 조성해주는 전략이다. 남북한 안보를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북한의 안보불안을 불식시키고,북한 산업화 지원을 통해 북한경제의 탈사회주의를 촉발시켜 북한스스로 체제변혁의 역사적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 경우 우리정부는 ‘발전을 통한 변화’ 전략이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보다 오히려 북한변화를 빨리 가져오는 첩경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黃炳悳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해외 저명인사가 본 ‘한국의 국난극복’]사이먼 플러머

    金大中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사정에 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른다.끊임없이 적대적인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한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한 채 미국과의 관계만을 강화하려 한다.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배제하려 하고 있으며,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잠수함을 침투시키고 있다.金대통령의 햇볕이 어떻게 이와 같은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인가? 金대통령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정치·경제적 사실을 좀 언급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싶다.북한의 세습주의적 전체주의는 완전한 실패로 끝이 났다.북한주민들은 영양실조가 아니면 굶어죽고 있다.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던 시도는 자본주의 전염에 대한 우려로 취소됐다.한국과의 외교 경쟁에서는 참패하고 말았다. 金正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현재의 북한은 외국에 의존해서 연명하는처참한 상태에놓여 있다.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내부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마치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물론 한국인들은 조국의 분단 상태가 종식되기를 원한다.그러나 그들은 북한이 붕괴하여 갑작스럽게 통일이 이뤄진다면 한국사회에 엄청난 재정적,사회적 부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부유한 독일의 사정과 비교해 보면 상황을 더 쉽게 이해할수 있다.91년부터 98년까지 독일정부는 옛 동독 지역에 8,1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갑작스러운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의 대규모 유입을 막기 위해서 한국은 북한에 약 1조 달러 가량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 비용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고 아시아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당장 통일을 이루려는 의도가 없으며,북한과의 경제협력 및 민간접촉이 점차적으로 확대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현대의 鄭周永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던 것과 한국인들이 북한의금강산을 관광하게 된 것은 이러한 접근방식이 결실을 이루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간의 빈부격차를 점차적으로 축소하여 궁극적으로 통일이 한국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만들고자 하는 이같은 노력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북한 정권의 고립적 성격 때문에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북한정권은 핵무기 개발사업을 포함해 군사력을 미국 및 그 우방으로부터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이는 94년에 미국과 북한이체결한 제네바 협정이 와해되고,궁극적으로 북한에 승산이 없는 전쟁으로 이어져,결국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고 마는 매우 위험성이 높은 정책이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정책은 북한이 정치적 자살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북한과의 화해를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다.이렇게 보면,‘햇볕정책’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해외저명인사가 본 ‘한국의 국난극복’]칼 킨더만교수

    수십년간 분단국가로 고통받아왔던 독일은 깊은 공감과 감탄의 눈으로 金大中대통령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인 햇볕정책을 지켜보고 있다.이런 혁신적인전략의 특성을 감지한 많은 독일 관측통들은 70년대 빌리 브란트 총리가 대(對)동독정책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던 일을 떠올렸다.金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던 브란트총리는 언젠가 필자에게 정치·경제분야에서 보여준 金대통령의 인내와 식견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독일의 동방정책과 한국의 햇볕정책은 모두 한쪽의 이득이 다른 한쪽의 손해를 의미한다는 ‘제로섬’전략이 아닌 측면에서 분단관계를 이해하려는 사고에서 유래됐다.이들 정책은 두 체제의 차이점을 서로 이해하고 모두에게혜택이 되는 교류를 창조·유지·확대해 공존체계를 만들어가는데 목적이 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란 환상없이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감지하는 재능이며 또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이 태어난 배경인 듯하다.이 방법은 어떤 목표가 현 상태에서 실현가능한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분단관계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진전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문제는 분리시켰다.이 전략이 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방북,金正日로부터 유례없는 환영을 받고 장기적으로 폭넓은 남북경협으로 이들 대규모 대북사업안을 논의할 수 있었던 분위기와 틀을 제공했던 것이다.鄭명예회장의 방북은 72년 李厚洛과 金日成 회담 이후 가장 희망적인돌파구로 간주되고 있다.비정부 차원인데다가 순수하게 경제적 성격을 띠고있어 이런 접근법은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정치적·군사적 도발에 대해 정치와는 분리된 차원에서 자유롭게 대응할 여지를 남겨준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당면할 과제는 독일의 동방정책보다 더욱 어렵다.동독은 소련의 위성국가에 불과했지만 북한은 근본적으로독자행동을 하기 때문이다.또한 동독국민은 서독의 언론매체에 접근이 가능했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북한은 어떤 종류의 대인접촉도 꺼리고 있어한국은 접촉기회조차 갖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런 북한지도층의 뿌리깊은 대화교류에 대한 공포심을 감안한 경제 및 기술협력 계획은 북한의 경제체제 자유화 등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것으로 기대된다.장기적 관점에서 시작된 햇볕정책은 인내와 탄력적인 심리주의,고도의 시행착오를 염두에 두고 추진돼야 한다.새로운 현실주의로 무장한 金대통령은 남북관계를 21세기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국내문제에서 金대통령은 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한국경제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다면적인 ‘제 2의 건국’ 캠페인을 촉구했다.이 전향적인 캠페인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참여민주주의와 조화로운 노사관계란 두개의 큰 축으로 구성돼 있다.지난해 金대통령은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지방정부의 중요현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런 조치의취지는 풀뿌리 조직이 한국사회의 정치적 삶을 형성하는데 한몫하도록 역동적 ‘상향식 의사결정’을 고무시키는 것이다. 경제측면에서 金대통령은 재벌기업의 효율지향적인 구조조정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한편 노조는 한국경제의 전반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이 모든 개혁이 실제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金대통령 당선 당시 일각에서는 그가 야당지도자 시절 그를 박해했던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그러나 金대통령은 관용을보여 동료와 적에게 모두 깊은 감명을 줬다.감당키 힘든 과제가 가로막고 있지만 21세기에는 金대통령의 개혁목표가 이행되고 남북한이 보다 밀접하게되는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金대통령 첫 월례 기자간담-모두발언

    오부치 일본총리가 오셨는데,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지난해 방일때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는데 오부치 총리의 방한으로 한층 관계가 강화될 것입니다. 특히 대북문제가 복잡한 때 적시에 오부치 총리가 오신 것 같습니다.대북정책에 관해 한·미·일이 일치해서 나갈 수 있는,그리고 중국·러시아가 지지하는 포괄적인 정책에 대해 오부치 총리와 결론을 내리길 기대합니다. 어제 금창리 문제가 해결됐습니다.그것으로 남북관계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포용정책에 힘이 실린 것입니다.페리 조정관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미·일이 확고히 공조하면서 물샐틈없는 안보태세 속에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문제 제기를 하면 북한도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좋은경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북한에 대해 대화를 구걸하거나 서두르지않겠습니다.과거 서독이 동독에 그랬듯이 민간인 왕래와 정경분리 차원의 교류를 계속할 것입니다.미국이 서울을 거쳐 북한에 갈 필요가 없이 직접평양을 왕래,서로 교류협력해 나가길 바랍니다. 국내문제로 중요한 것은 실업문제입니다.실업자수는 약 176만명으로 8.5%나 됐습니다.이 가운데 100만명 정도는 중소기업에서 나왔습니다.벤처기업과중소기업,문회관광사업을 육성하겠습니다.사회안정과 국제적 경쟁력을 위해서도,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일반 노동자가 고급 노동자,일반 사무원이 고급 사무원이 되는 신지식인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사회안전망을 적극적으로 취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의·식·의료·자녀교육은 전부 정부가 지원할 것입니다. 7조7,000억원 예산에 2조원 남짓 추가하면 10조원이 될 것입니다.국영기업체의 사업전개 액수도 5조∼6조원이 될 것입니다.실업자수를 금년 하반기에는150만명으로 줄이고,명년에는 130만명으로 줄이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명년의 130만명은 고졸·대졸 신규취업자 40만명을 포함해서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큰 것이 될 것입니다.금년에는 정부가 전력을 다해 실업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입니다.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습니다.올해들어 중소기업이 1개가 문을 닫으면 11.7개가 창업을 해 중소기업 수가 늘어난 것은 대단히 바람직스러운 일입니다.이처럼 회복세로 돌아서 아랫목이 따뜻해지고,이제 중간 정도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있고,윗목까지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치는 자민련과 물샐틈없는 공조를 하고 있고,한나라당 李會昌총재와의 대화를 계기로 여야협력과 정국안정,개혁입법,민생해결,대북공조를 하고 싶습니다.여여뿐 아니라 여야도 적극 협력해야 합니다.
  • [사설] 대북 비료지원의 참뜻

    적십자사를 통한 대북 비료지원이 다음달부터 시작된다.대한적십자사는 앞으로 3개월 동안 국민성금 모금을 통해 10만t의 비료를 북한에 지원키로 했다.늦어도 파종기인 4월중엔 비료전달이 시작되며 국민성금으로 대북 지원량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정부의 기부금 형식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북한에 비료를 주기로 방침을 세운 것은 인도주의 및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한 조치다.대북 비료지원은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돕기 위한 조치다.올해도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북한의 식량공급이 중단된 최근 3년간 300만명 가까운 아사자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북한에 비료를 보내기로 한 것은 대북지원이 일시적인 식량원조보다 식량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실제로 비료를지원할 경우 같은 액수의 식량 지원보다 5배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굶주림에 떨고 있는 북한동포들에게 식량증산의 결정적 수단인 비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참다운 인도주의적 배려로 볼 수 있다.대북 비료지원의 또다른 의미는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정부의 노력이 두드러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북한이 비료문제와 관련한 남북접촉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조건없이 북한에 비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겠다는 의지의 결단으로 볼 수 있다.한국이 먼저 북한에 줄것을 주고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과거 서독이 동독에 대한 장기간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교류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선례도 있다.이렇게 볼때 대북 비료지원 방침은 식량난 해소를 위한 인도주의 정책과 함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신뢰조성을 통해 북한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그러나조건없는 대북 비료지원은 상호주의 원칙에 비춰볼때 정부가 부담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비료지원은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견지하되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그리고 북한의 성의있는 자세변화가 필수적 과제다. 상호주의를 포기해서는 안되며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국민들은 대북 비료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북한의 두꺼운 겨울외투를 벗기는 햇볕의 역할을하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 金대통령등 창조적 지도자 20세기 후반 민주주의 이끌었다

    코라손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이 필리핀 유력 영자일간지인 ‘투데이’지 8일자에 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기고문을 실었다.‘金大中,역사의 창조자’라는 제하의 이 기고문에서 아키노전대통령은 독재를 양산했던 20세기 마지막 25년동안 민주주의를 이끈 것은 거대한 세력이 아니라 폴란드의 바웬사,체코의 하벨,동독의 마수어,그리고 한국의 金대통령과 필리핀의 니노이 아키노 같은 지도자”라고 ‘창조적 소수론’을 폈다. 그녀는 이어 “金대통령과 필리핀 민주화에 기여한 나의 남편 고(故)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인격과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평하고 “이들은 공산주의를 주창한 혐의로 자신들을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해 형을 언도한 사람들보다 더욱 진지하고 열렬하게 공산주의와 싸웠다”고 역설했다. 또 “이들 두 사람은 상이한 이념을 가진 정적과 다투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했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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