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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영화의 모든 것… 눈이 즐겁다

    스페인 영화의 모든 것… 눈이 즐겁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과 현재 주목받고 있는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스페인 영화제’가 오는 30일부터 새달 12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주한스페인대사관과 함께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영화제다.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만들어진 11편이 준비돼 스페인 영화계의 오늘날을 확인할 수 있다. ‘북극의 연인들’(1998) 등으로 이름을 날린 홀리오 메뎀의 최근작 ‘혼란스러운 아나’(2007)가 개막작이다. 최면을 통해 자신 안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믿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몽환적인 감수성으로 그려진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성 연출가인 이사벨 코이셋 감독이 할리우드 스타 팀 로빈스, 사라 폴리와 함께 만든 ‘시크릿 라이프 오브 워즈’(2005), 아슬아슬한 두뇌게임을 통해 당대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마르셀로 피네이로 감독의 ‘생존게임’(2005),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낸 페레 포르타베야 감독의 ‘바흐 이전의 침묵’(2007), 인간의 고독에 대한 탁월한 성찰을 보여 준 하이메 로살레스 감독의 ‘고독의 편린’(2007) 등이 상영된다. 호세 코르바초·후안 크루즈 감독이 공동연출한 ‘타파스’(2005), 라파 코르테스 감독의 ‘요’(2007) 등 젊은 작품도 마련됐다. 상영스케줄은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조하면 된다. 4000~6000원. 문의 (02)741-9782. 한편 독일문화원은 독일 인기 TV 수사물 상영회 ‘독일, 범죄의 표적’을 열고 있다. 지난 19일 독일 내 인기 시리즈인 ‘사건 현장’의 ‘라이프치히로 가는 택시’를 상영했고, 9월초까지 격주로 금요일 오후 7시에 상영회가 계속될 예정이다. ‘사건 현장’ 시리즈의 ‘동물인형’(7월3일), ‘마닐라’(7월17일), ‘살인으로 끝나는 그림 동화’(8월14일), 그리고 또 동독 시절 만든 수사물 ‘경찰 전화 110’의 ‘결투’(9월4일) 등이 준비됐다. 호르스트 쉬만스키 등 한국판 수사반장과 형사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신청은 이메일(projekt.kultur1@seoul.goethe.org)을 통해 하면 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 연예인 100% 무보정 사진 가능할까?

    한국 연예인 100% 무보정 사진 가능할까?

    전세계의 패션 잡지와 광고 사진의 디지털 보정 작업이 수정이 아니라 조작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패션 사진가와 정부, 언론이 이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오늘날 패션이나 광고, 그리고 사진 업계는 1990년대 초반 등장해 사진이나 동영상 보정 작업에 쓰여 온 포토샵(일명 ‘뽀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경향은 실제가 왜곡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사진 속 인물을 동경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화보 속 인물을 미의 표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보정 작업은 물론 아예 화장 자체를 하지 않는 사진을 추구하는 사진가와 잡지도 등장하고 있다. 일부 국가의 보건 당국은 잡지가 사진 보정 작업을 할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이 프랑스다. 구동독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사진가인 피터 린드버그는 최근 ‘엘르’지에 보정 작업은 물론 화장조차 하지 않은 표지 인물을 잇달아 내보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배우인 모니카 벨루치, 체코 출신 슈퍼모델 에바 헤르지고바, 그리고 프랑스 출신 배우 소피 마르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진들은 지나치게 인위적인 사진들과 대조를 이루며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 때문에 프랑스 보건 당국은 잡지나 광고 사진 수정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이미 시작한 상태다. 린드버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괴하게 합성된 사진 속 인물들을 두고 아예 ‘화성에서 온 생명체’(objects from Mars)라고 부르며 기존 관행을 맹렬히 공격중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월간지 ‘라이프&스타일’지는 4월호 표지에 리얼리티쇼 스타인 킴 카다시안을 싣고 ‘100% 무보정 사진’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매년 ‘가장 아름다운 1백인’을 선발해 싣는 ‘피플’ 5월호 역시 ‘보습제 외에는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유명인 11명의 사진을 게재했다. 최근에는 CBS의 탐사 프로그램인 ‘60분’도 사진 보정 문제를 다뤘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설적인 여성지 편집장인 ‘보그’의 안나 윈투어는 “오늘날 패션 잡지에서는 뭔가 진짜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거꾸로 도발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보정 작업이 혁신적인 것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반대로 보정이나 화장이 없는 사진이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 미 일간지 ‘뉴욕타임즈’는 지난 달 28일자에서 이 논란을 전하면서 “패션 잡지가 현실 도피를 통해 번창해온 것을 고려해볼 때 린드버그와 ‘엘르’의 도발이 오래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사진가와 잡지 에디터들 역시 사진 보정 작업과 관련한 공식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다. 지난해 전미잡지에디터협회는 사진의 보정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는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상태다.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이효리, 윤은혜, 전지현 등이 이른바 뽀샵 처리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그러나 화장은 물론 디지털 보정 작업과 관련해 공개적인 논란을 벌인 적은 없다. 한 패션 잡지 에디터는 “관행적으로 두꺼운 화장과 잦은 보정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게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조차 없다.”고 말한다. 보정 여부를 공개하자는 정부나 국회 차원의 입법이나 각종 협회 차원의 자율 규제에 관한 논의는 더더욱 없다.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우리 모두의 몫 아픈 기억과 끊임없이 대면해야”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아픈 기억과 계속 대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양대 연구중심대학(WCU) 석학교수로 초빙받아 방한한 일상사 연구의 대가 알프 뤼트케 교수가 10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임지현 교수와 대담을 가졌다. 이날 ‘트랜스내셔널 일상사’라는 주제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가진 대담에서 두 학자는 “과거사 청산은 소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부터 독일 에르푸르트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뤼트케 교수는 거대담론 위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일상사’ 분야에서 저명한 석학이다. ●독일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 →독일에서의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과 비교한다면. 뤼트케 과거사 청산은 파시즘이 무너진 후 20~30년에 걸쳐 이뤄졌다. 동독의 경우 “파시스트였던 적이 없다.”며 과거를 외면했지만 1970년대 들어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것은 많은 무명씨였다는 시각이 생겨났다. 대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유대인을 약탈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과거사 청산의 선구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옛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를 둘러싼 논란만 해도 그렇다. 임지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정통성을 내세우며 친일파가 청산됐다고 주장한다. 남한도 일제나 독재시대에 대해 소수의 권력자만 책임이 있을 뿐 나머지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독재시대에 대한 향수가 만연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가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와 싸우려면 인적 청산으론 안 된다. 일반인들이 그 시대의 가치와 대면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사 청산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위원회들이 통폐합될 처지다. 임지현 그런 위원회들이 없어지면 과거사 청산이 안 된다는 것인가. 과거와 대면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 성원들이 해야 하는 몫이다. 뤼트케 과거청산에서 중요한 것은 다원주의 원칙이다. 정부, 역사가, 소시민, 시민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 ‘역사 작업장’이라는 운동이 시작돼 독일로 옮겨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반성한다.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었다. ●시민들 스스로 역사 공부하고 반성을 →과거사 청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뤼트케 ‘네트워킹’이다. 모여서 공부하고, 과거와 대면해야 한다. 20세기의 슬로건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면 지금은 “만국의 노동자여 네트워킹하라.”다.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독일 통일 설계사’ 호르스트 텔칙 ‘긴장의 한반도’ 해법

    ‘독일 통일 설계사’ 호르스트 텔칙 ‘긴장의 한반도’ 해법

    “(남북)통일은 갑자기 올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북한에 대해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 민간교류 등 긴장완화 방안을 제시하고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충돌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독재국가처럼 불안정한 것도 없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국가안보수석을 8년 동안 지내면서 독일 통일을 이끌어내 ‘통일의 설계사’로 불려온 호르스트 텔칙 박사는 통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그 체제 안에 사는 국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 한·독 미디어 대학원대학교(KGIT) 초대 총장에 취임하기 위해 서울에 온 텔칙 박사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는 KGIT 사무실에서 만나 남북한 긴장 완화 및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3년 동안 콜 전 총리를 외교·안보분야에서 보좌했다. 그 뒤 BMW 국제담당 사장, 미국 보잉사 독일 회장 등을 지냈다. →북한이 군사적 전면 대결을 강조하고 남측과 맺었던 모든 평화조치의 무효를 선언하는 등 긴장을 높이고 있다. 긴장 국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독재국가와 민주국가 사이의 관계 발전은 매우 어렵다. 성과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다반사다. 국내 정치적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옛 서독에서도 그랬다. 민주국가 측은 상대방에 더 많은 것을 줘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라도 목표를 잃어선 안 된다. 상대방 쪽에서 ‘주먹’을 날리더라도 전진해야 한다. 상대방의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대화에 나오도록 다시 촉구했다.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는 바람직하다. 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충돌 위기 극복과 긴장완화를 위해 더 팔을 걷어붙이고 돕도록 이끌어야 한다. 누가 긴장의 책임이 있는지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긴장완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라. 통일 뒤 한반도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시키고 다자 안보체제 구상 같은 것도 내놓으면서 주변국을 안심시키고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반도 통일의 열쇠를 쥔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러시아, 일본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강경 태도로 긴장을 조성하는 북한을 어떻게 누그러뜨려야 할까. -1983년으로 기억한다. 옛 소련이 동독 등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했다. 서독의 평화운동가 등 수십만명은 서독 정부와 미국이 이에 맞서 서독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데 격렬하게 반대했다. 서독 정부는 80% 가까운 반대 여론을 넘어서 배치를 강행했다. 강력한 대응에 옛 소련도 미사일 감축협상을 시작했고 그 해 선거에서 집권당도 승리했다. 확고한 목표와 일관된 정책으로 나오면 국민도 설득할 수 있고 상대방도 억제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기반으로 한 안보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긴장완화 노력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 →옛 서독은 어떻게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통일 기반을 닦았나. -장벽으로 막혀 있던 동·서독 주민간에 동질감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데 주력했다. 동독지역 국민들에 대한 경제지원, 여행 및 방문절차 간소화 등 교류와 접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였다. 한국은 북한의 경제적 재건과 교육 지원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통일은 갑작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대비가 어렵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5년이나 10년이 지나야 통일이 될 것으로 봤는데 통일에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통일과정에서 공무원과 각계 전문가들을 동독에 많이 보내 경제복구 사업을 돕도록 했다. →북한이 내부결속을 위해 긴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회복됐다고 하지만 쇠약해지고 있고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다. 독재자의 건강은 국가 존속 자체와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후계자 문제를 제도적으로 처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후계자 논의가 나오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통독 과정에서 문제점이 있었다면. -통일 뒤 동독 주민들의 봉급 수준을 갑작스럽게 서독수준으로 올렸다. 그 때문에 동독회사의 경쟁력이 약화돼 상당수 망해버렸다. 생산성은 4분의1밖에 안 되는데 임금이 같다면 어떻게 버텨내겠나. 통독 직후 당분간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어야 했다. 동·서독 화폐간 환율을 1대1로 똑같이 한 것도 부작용을 가져왔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서독경제가 통일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대응한 것도 과도한 재정부담을 줬다. 서독 법제와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한 것도 실수였다. 동독에 더 많은 자율성과 선택 공간을 줘서 한동안은 자체 시스템과 제도로서 스스로 통제하게 했더라면 통일 후유증을 훨씬 더 줄였을 것이다. 동독 자체적인 행정기반을 바탕으로 적응 시간을 더 줬어야 했다. 성급한 일치화가 부작용을 키웠다. →KGIT의 특징과 향후 계획은. -산업예술, 정보통신기술, 생물공학 등 세 분야에서 산학협력과 현장 경험을 강조한다. 2년반 코스 중 1년은 독일에서 공부한다. 독일대학연합회(KDU)와 복수학위 제도를 운용해 KGIT를 수료하면 독일 파트너 대학의 석사학위도 받을 수 있다. 포츠담 바벨스베르크 영상예술대학. 취리히 조형미술대학, 함부르크대학, 뮌헨공대 등도 더 포함시킬 계획이다. 한국과 독일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를 이 고등교육기관을 기반으로 공동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설립 취지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외국기업이나 해외 근무에 강점을 갖는다. 한 학년이 100명이지만 올해는 60명을 전원 장학생으로 뽑았다. 4일 개교하는 KGIT 한·독 산학협력의 전형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학교는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운영된다. 글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일제때 자결 애국지사 부부 유서 첫 공개

    일제때 자결 애국지사 부부 유서 첫 공개

    일제 강점기 당시 나라를 잃은 울분으로 자결 순국한 부부의 유서가 나왔다. 전국 70여명의 순국 지사 가운데 부부가 함께 자결한 자료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에 사는 이일환(74)씨는 25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 할아버지(이명우·1872~1920)와 할머니(권성·1868~1920)가 자결 직전에 쓴 한글 유서 등을 공개했다. 이 부부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이어 1910년 한일합병으로 자결을 결심했다. 그러나 부모가 생존해 뜻을 미뤘다가 부모가 숨지고, 고종 황제의 상기가 끝나는 1920년 12월20일 이 부부는 함께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부부는 자결에 앞서 나라 잃은 비통한 마음과 후손 및 백성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담긴 여러 통의 유서를 남겼다. 이 지사는 유서에서 “나라를 잃고 10여년 세월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부인은 아들 삼형제와 두 며느리에게 보내는 4통의 한글 유서에서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을 뒤따르겠다.”는 심정을 보였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2009 녹색성장 비전] “고효율·고품질로 말한다”… 1등 태양전지의 자신감

    [2009 녹색성장 비전] “고효율·고품질로 말한다”… 1등 태양전지의 자신감

    ■글로벌 베스트 ‘독일 큐셀’ 안정된 원료 확보·설비 확장… 세계시장 석권 │탈하임(독일) 이도운특파원│“큐셀(Q-Cells)의 Q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바로 품질(Quality)입니다.” 지난달 13일 오전 10시에 도착한 독일 탈하임의 태양광 단지(Solar Valley). 옛 동독 지역의 허허벌판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첨단 산업기지로 변신했다. 단지 입구의 출입사무실에서 방문 절차를 밟은 뒤 다시 두 개의 검문소를 지나서야 큐셀 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적이 있는 홍보책임자 스테판 디트리히가 반갑게 맞아줬다. 디트리히는 기자의 사전 요청에 따라 본사 건물과 붙어 있는 제4태양전지 생산라인으로 안내했다. 큐셀은 탈하임에 6개의 생산라인을 갖고 있고, 멕시코와 말레이시아에도 공장을 지었다. 이미 방문 전에 사진 촬영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날 또다시 ▲안내자가 이끄는 동선을 벗어나지 말고 ▲기계나 물품을 만지지 않으며 ▲불필요하게 근무중인 직원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등의 10가지 사항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서야 생산라인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태양전지 제품마다 Q마크 ‘과시’ 제4생산라인에서 1년에 생산하는 태양전지의 용량은 180만MW. 한국에서 방문했던 미리넷솔라, 한국철강의 생산라인보다 용량은 크지만 설비나 공정의 흐름은 대체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큐셀이 태양전지 제작에 사용하는 장비가 슈미트, 로스 & 라우, 얀스 & 레드먼 등 독일 업체의 제품으로 한국 업체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이날 제4생산라인은 중국 업체가 납품한 폴리실리콘 웨이퍼로 태양전지를 생산하고 있었다. 웨이퍼 품질 점검~웨이퍼 클리닝, 에칭, 린싱, 건조~확산로에서의 양·음극 분리~가장자리 처리~실리콘 질소 코팅~스크린 프린팅~은 도금~성능별 분류 등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완성된 큐셀의 태양전지 오른편 아래 쪽에는 작은 ‘Q 마크’가 찍혀 있었다. 태양전지 하나하나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 또는 ‘과시’였다. 큐셀의 태양전지는 효율에 따라 와트당 3.7~3.9유로에 팔린다. 큐셀의 안톤 밀너 최고경영자(CEO)는 “고품질의 태양전지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큐셀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큐셀의 품질은 ‘라이너 르모이네(타계한 큐셀의 최고기술책임자) 연구센터’에서 나온다. 무려 250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실리콘 결정질 등 갖가지 원료를 사용한 태양전지를 시험 제작한다. 이 연구소에는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한국 여성도 한 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디트리히는 귀띔했다. ●앞선 경쟁력 비결은 250명 연구인력 연구의 방향은 두 가지. 첫째는 효율을 높이고, 둘째는 전지의 두께를 줄이는 것이다. 효율을 1% 높이면, 생산비용이 7% 줄어든다. 현재 양산되는 큐셀 태양전지의 효율은 15~16.6%이지만 연구실에서는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18~23%까지도 나온다고 디트리히는 말했다. 큐셀 연구소는 현재 사용하는 원료로 최고 28%까지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지만, 단기적으로는 18% 효율의 태양전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전지의 두께를 줄이면 줄일수록 값비싼 원료인 폴리실리콘의 사용량이 절약된다. 태양전지의 두께는 2003년에 330마이크로미터였다. 2008년 생산된 태양전지의 두께는 180마이크로미터로 줄었지만, 앞으로 120마이크로미터까지 좁힌다는 계획이다. 2001년 창업한 큐셀이 짧은 시간안에 세계 시장을 장악한 비결은 무엇일까. 큐셀이 2007년 일본의 샤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은 폴리실리콘 확보 때문이었다고 디트리히는 설명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태양전지를 만드는 원료인 폴리실리콘이 절대 부족했으나 큐셀은 노르웨이의 REC 등과의 끈끈한 유대를 발판으로 안정적으로 원료를 공급받았다. 2008년에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의 품질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좋은데다, 생산설비 확장을 통해 들어오는 주문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디트리히는 말했다. 각국의 태양전지 모듈(태양전지를 연결한 패널) 제작 업체나 태양광 발전소 건설 업체 등에 “큐셀은 약속한 날짜에 요구하는 품질의 태양전지를 어김없이 납품할 능력을 갖췄다.”는 믿음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dawn@seoul.co.kr ■코리아 베스트 ‘미리넷솔라’ “기술격차 불과 1~2년… 곧 큐셀 따라잡을 것” ‘효율 20%, 생산수율 90%’ 지난해 12월26일 방문한 미리넷솔라의 생산라인에는 이 회사의 목표가 짧고 명료하게 적혀 있었다. “큐셀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미리넷솔라의 창업자인 이상철 회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이 회장은 “큐셀 등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할 때 사업 시작이 5~7년 정도 늦었지만, 기술격차는 1~2년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총력을 기울여 1~2년 내에 동등한 수준으로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목표는 다소 무리하게 들렸다. 그러나 생산본부장인 정연득 전무는 “반도체와 태양전지 공정을 비교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정 전무는 “우리나라에는 태양전지에 비해 공정기술력과 응용기술력이 훨씬 앞선 분야인 반도체 전문가가 많다.”면서 “이들을 태양광 산업 분야로 끌어들이면 단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용량의 반도체는 개발한 뒤 제품화하는 데 2~3개월이 걸리지만, 태양전지는 신제품 개발 후 불과 1시간이면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선 공정·응용기술력으로 승부수 단기간에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기 위한 이 회장과 미리넷솔라의 전략은 효율과 생산능력 향상이다. 큐셀, 샤프, 선텍 등 세계 상위권의 태양전지 업체에 비해 태양전지 효율을 연구하는 미리넷솔라의 인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현재 연구인력은 20명 남짓. 미리넷솔라는 부족한 연구개발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옛 소련 국가들의 태양광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효율 37%에 이르는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개발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라고 이 회장은 전했다. 효율 향상만으로는 세계 시장을 장악하기 어렵다. 양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량 주문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성서공단 제1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30 MW 수준. 바로 옆에 건설중인 제2공장이 완성되면 올해 150MW로 늘어나게 된다. 2010년까지 300MW의 생산능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양전지 시장의 주도권은 지난해부터 공급자에서 수요자 위주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은 공급이 달려 만들면 팔렸지만, 앞으로는 질 좋고 값싼 제품만 팔리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미리넷솔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스스로 ‘저가 고효율 태양전지 제조업체’로 자리잡으려 하고 있다고 정 전무는 말했다. 당장 큐셀처럼 GW급 생산능력을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효율과 수율 등 제품의 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수율은 100장의 태양전지를 만들었을 때 팔 수 있는 태양전지 개수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불량품을 제외한 제품이다. ●올해 2공장 가동… 생산량 5배로 미리넷솔라의 제1공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하루 24시간, 2교대 근무로 풀(Full) 가동중이다. 연초부터 이탈리아 등지에서 대규모 주문도 밀려온다. 미리넷솔라의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대학을 막 졸업한 2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태양광 분야가 비전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많이 배운다는 욕심에 장시간 근무를 자청한다고 홍보책임자인 정선기 차장이 전했다. 생산라인을 안내해준 이관석 공정2팀 과장은 “태양전지의 품질은 원자재, 공정, 장비가 각각 3분의1씩 좌우한다.”고 말했다. 미리넷솔라의 경우 원자재와 장비를 외부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에칭과 도핑, 반사방지 등 공정 쪽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현대 LCD 출신인 이 과장은 설명했다. 미리넷솔라 태양전지의 와트당 가격은 2008년말 기준 3.1(2.5~3.3)달러 수준. 실리콘 가격에 따라 변동폭이 크다고 한다. 미리넷솔라는 일단 태양전지 분야의 양산체제가 안정화되면, 실리콘 박막태양전지와 각종 화합물 박막태양전지, 집광형태양전지(Concentrating Photovoltaic) 등 연관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폴리실리콘과 잉곳, 웨이퍼 등 태양광 가치 사슬(Value Chain)의 모든 단계로 사업 영역을 넓힌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대구 성서공단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獨 통일 전 살림 그대로 남겨진 주거처 발견

    獨 통일 전 살림 그대로 남겨진 주거처 발견

    독일 통일 전 동독의 살림살이를 그대로 간직한 20년 전 주거처가 도심 한복판에서 발견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BBC’ 온라인판은 “구 동독 지역인 라이프치히(Leipzig)시에서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2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파트 한 칸이 발견됐다.”고 독일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초라한 아파트 부엌에는 구 동독 시절에 쓰이던 식료와 잡화로 가득했으며 외제라고는 서독에서 생산된 데오드란트 병이 전부였다.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은 1988년 10월을 마지막으로 가리키고 있어 이곳에 살던 사람이 언제쯤 집을 비웠을지 가늠케 했다. 건물을 개조하기 위해 내부를 조사하다가 이 아파트를 발견한 건축가 마크 아레츠(Mark Aretz)는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했을 당시 가졌을 법한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의 흥분을 전했다. 또 “아파트 안에 남아있던 문서와 편지를 살펴볼 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이 24살 남성인 것 같다.”며 “동독 정부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독일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1990년 10월 통일됐다. 사진=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www.faz.net)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
  • [오바마정부 출범] 세계 각국 지도자들 반응

    │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서울 이경원기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열린 20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환영하며 희망과 기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독일 방문을 요청했다. 쾰러 대통령은 올해가 동독 붕괴 20주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독일의 통일에는 미국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고 빠른 시일 내 방문해야 할 당위성(?)을 주장했다. 로런스 캐넌 캐나다 외무장관도 “미 역대 대통령들이 항상 취임식이 끝난 뒤 곧바로 캐나다에 왔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도 앞당겨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제 각국은 오바마가 어딜 먼저 방문할지 신경이 곤두서는 모양이다. 그만큼 상징적 의미가 큰 까닭이다. BBC 방송에 따르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최초로 만나는 유럽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에 대해 “중요한 것은 회담 일정이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라면서 “영국 정부는 미국의 새 행정부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ARD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일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자동차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은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를 타진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기아와 빈곤문제 퇴치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21일 “손을 맞잡고 아·태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해 전력을 다했으면 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각 분야의 우수한 팀과 함께 심각한 경제 위기를 비롯, 많은 과제의 극복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큰 성과를 올리기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최근 가자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지역은 축하와 충고가 함께했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날을 ‘위대한 날’이라고 치켜세운 뒤 “오바마가 위대한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마누체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은 “오바마가 적대감과 미국의 주도권을 버리는 방향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 역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평범한 노력으로 불의가 극복되고 더 나은 삶이 성취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취임을 환영했다.
  • [지방시대] 비수도권 투자가 국익에 유리한데… /조진형 금오공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지방시대] 비수도권 투자가 국익에 유리한데… /조진형 금오공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세수 규모는 중앙과 지방이 80대 20인 반면 세출은 40대60으로 지방정부의 가계부는 항상 적자다.따라서 지방정부의 부족한 세원을 중앙정부가 보충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예산 부족분 일부를 지방정부가 알아서 사용토록 보태주는 것이 ‘교부금’이고,그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일정 부분 부담케 하거나,지방정부 간의 경쟁을 통해 중앙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보면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아주 인심이 좋은 형님으로 보인다. 국세는 수도권에서 거두는 세금이고 지방세는 비수도권에서만 거두는 세금이 아니다.즉소득세는 국세,취득세는 지방세 등 세목으로 나누어져 있다.다만 세원은 중앙과 지방이 규칙(법)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세수 차이가 엄청난 편이다.따라서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예산에서 지방세수의 비율)에서 비수도권은 매우 낮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즉,비수도권 지역은 적게 내고 중앙 정부에서 많은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러할까.세금을 내는 주체인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에 70.9%가 모여 있다.하지만 이들의 공장은 주로 비수도권에 있다. 따라서 생산은 비수도권에서 하지만 많은 세금은 본사가 있는 수도권에 내기 때문에 그만한 혜택을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만약 1960년대 개발단계에서 철저히 수도권에 몰입했다면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남부,벨기에 남부,과거 슬로바키아,동독 지역 등처럼 치유할 수 없는 지역적 분리현상이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대규모 공장을 비수도권에 건설해서 그나마 비수도권의 지역경제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제 이명박 정부에 의해 수도권 규제가 철폐되었으니 본사와 공장이 수도권에 몰릴 것이고,사람과 함께 세원의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쏠릴 것이다. 왜 이런 예측을 하는가 하면,수도권은 과밀·혼잡으로 비수도권과는 다른 특수한 곳(예를 들어 SOC의 과다 집중)임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관계로 간주하고 규제 철폐와 경쟁을 통한 광역경제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이 같은 정책으로 수도권의 일방적 흡수성장과 비수도권의 인구감소 등 비수도권의 황폐화가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것은 불공정한 경쟁이다.2004년 기준으로 단위면적당(㎡) 사회간접자본시설(SOC)은 도로의 경우 수도권은 90% 이상이 땅값 보상비인데도 도로 연장이 비수도권의 3배에 이르고 있다.철도는 5.5배이며,특히 공항은 80%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방에 비해 무려 26배에 달한다.또 수도권 과밀화 등으로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민주당의 조사 결과는 반대가 50%를 훨씬 넘고,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도 반대 49%,찬성 36%이었다. 1990년대부터 국토연구원을 비롯해 한국은행 등에서도 꾸준히 비수도권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국익에 훨씬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게다가 참여정부 때는 지방 혁신신도시 등 대기업과 정부 산하단체의 지방 이전을 통해 ‘지방 살리기’에 노력했다. 그러나 눈앞의 단기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국익을 멀리하고 거기에 적극 동참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동이 안쓰럽다. 비수도권은 ‘수도권 규제 철폐’를 주도한 기관과 정책 당국자,그리고 그 정책을 동조한 단체 등을 상대로 훗날 누구의 주장이 올바른가에 대한 준엄한 평가를 지켜볼 것이다. 어떤 정책이 비수도권 주민에게 이익이고 국가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시민의식이 심어져 투표로 이어지길 바란다. 조진형 금오공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 [지방시대] 2009년을 향한 덕담/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지방시대] 2009년을 향한 덕담/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면서…덕담 한마디씩 해주세요.” 쥐해 무자년이 저물어 가고 소해 기축년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세밑.앞당겨 가진 한 작은 송년회에서 사회자가 요청한 말이다.덕담이라? 나쁜 얘기는 말고 좋은 얘기만 해주라?  그런데 식탁 주위에 앉은 회원들은 ‘덕담’이라는 말에 선뜻 응할 태세가 아닌 것 같다.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반영하듯 모두들 신통치 않은 얼굴들이다.회사원,중소기업사장,고교교사,대학교수,사회단체대표,예술인,농업인,언론인,G문화재단 연구원 등 서로가 하는 분야와 직종이 다른 무자년 송년회 모임.한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큰 고통’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는 어느덧 백발이 다 된 사람도 있다.  먼저,정년퇴임을 하고 명예교수로 있는 C대학 L씨가 사회자 요청에 응한다.  “덕담도 장유유서로 해야 하는 모양인데…허허,그럼 나부터 해야겠군요.모두들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하지만 가는 해를 되돌아보고 오는 해를 바라보게 된 지금,나 또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다들 느끼고 있듯이 희망보다는 우려를 하고 있으니…”  L교수는 덕담은 뒤로하고 쓴소리부터 털어놓는다.좋은 정치랄까 바람직한 정치는 ‘물 흐르듯이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노자의 도덕경에서 인용해 오지 않더라도 정치는 물 흐르듯이,그리고 최고의 예술행위처럼 해야 하는데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을 가한다.경제 또한 국가구성체의 소수인 피라미드 상위 부분에다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꼬집는다. L교수는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국가철학의 부재’를 들어서 말한다.영어몰입식 교육정책은 사교육비의 과다출혈을 부채질함은 물론 장기적 안목과 대안을 요하는 교육목표(혹은 아이덴티티)까지 흔들고 있다고 손을 젓는다.특히 말썽이 되고 있는 국사교과서 수정엔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현단계가 통일과정시대(Unification Process Age)라는 점을 인식,냉전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보다 ‘통큰 정치철학’이 요구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개탄한다.  서독이 독일통일을 염두에 두고 동독지역에 150억달러를 사회간접자본(SOC) 종잣돈으로 투자한 결과,통독 이후에 그만한 플러스 요인을 거둬들였다는 사실도 강조한다.여기에 L교수는 자신이 단순히 낭만주의적 통일론자가 아니라면서 ‘통일’은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현 지도자가 보다 원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솔직히 말해,경제적으로 형인 남쪽 정부가 아우인 북쪽을 달래면서,그러나 서로가 다른 정치문화의 ‘오소리티’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권한다.내일의 코리아를 위하여 오지랖을 넓혀야 한다고!  덕담 순서는 자연히 올해 회갑을 맞이한 내게로도 왔다.그래 나는 ‘시인’답게 “밝아오는 2009년은 우리 모두가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단기성 콜금리를 막는 것도 우선 급한 일이겠으나 우리에게 부여된 장기금리(민주주의 발전,통일작업 등) 또한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될 커다란 숙제입니다.오두방정을 떨지 말고 소처럼 묵묵히 가는 정치를…!” 이렇게 말끝을 맺자마자 옆에 앉은 50대 중반의 Q형이 얼른 말을 받는다.  “김 시인 말씀에 한마디 붙입니다.내년이 소띠 해라 했지요.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처럼 소처럼 걷되 호랑이처럼 큰눈으로 사위를 살피면서 걸어야겠습니다.그러지 않을 경우,우리는 야생마의 뒷등에 실린 듯 천방지축 달려갈지 모릅니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김연아 이번엔 꿈의 200점 넘을까

    김연아 이번엔 꿈의 200점 넘을까

    ‘꿈의 200점, 넘을 수 있을까.’ 2주 전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열린 08~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1차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시즌을 활짝 열어젖힌 김연아(18·군포 수리고)가 ‘꿈의 200점’ 돌파를 위한 재도전에 나선다. 오는 6~9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3차대회인 ‘컵 오브 차이나’에 나서는 김연아는 전지훈련지인 캐나다 토론토를 출발,3일 오후 베이징에 입성했다. 하루가 다르게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기량을 감안하면 피겨팬들의 관심은 이제 우승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록을 쏟아 내느냐에 꽂혀 있다. 일단, 이번 대회까지 우승할 경우 김연아는 지난 2006년 파이널대회(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후 그랑프리 시리즈 6개 대회 연속 정상을 밟으며 ‘피겨 지존’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200점 고지’ 돌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점수에서 200점을 넘어선 선수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1930년대의 소냐 헤니(노르웨이) 이후 페기 플레밍(미국), 카타리나 비트(동독), 옥사나 바이올(러시아), 타라 리핀스키, 사라 휴즈, 미셸 콴(이상 미국) 등 기량과 관능미를 겸비한 세계 정상의 선수들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휩쓸면서 각 세대를 주름잡았지만 ‘꿈의 200점’ 기록에는 범접하지 못했다.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일본)가 2년 전 일본 NHK컵대회에서 세웠던 199.52점이 현재까지의 최고 기록. 그에 견줘 김연아의 최고 점수는 지난해 시리즈 두 번째 대회였던 ‘컵 오브 러시아’에서 세운 197.20점(쇼트프로그램 63.50+프리스케이팅 133.70)이었다.200점에서 단 2.80점이 모자란 기록. 그러나 “현재 기량이라면 200점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전망이다. 김연아는 지난 1차대회 쇼트프로그램 경기 도중 점프 뒤 착지하는 과정에서 손을 바닥에 짚는 실수를 범했고,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두 번째 점프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데 이어 스핀 실수로 각각 69.50점과 123.95점을 얻어 합계 193.45점에 그쳤다. 당시에 1~2개의 실수만 줄였어도 200점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베이징에 도착, 곧바로 빙질 적응 훈련에 들어간 김연아는 “1차 대회를 끝내고 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이번 대회에서 그 성과를 확인하고 싶다.”고 자신의 최고 기록 경신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최병규기자 cbk1991065@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독일통일과 문학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던 1989년 11월 9일에 나는 마침 독일에 있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을 통해 동서독인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 또한 감동에 몸이 떨렸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상상만 하던 일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날 갑자기 휴전선이 열려서 남북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상황을! 이후에도 놀라운 사건은 계속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열린지 11개월 만에 독일이 통일된 것이다.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독일의 통일과정은 더욱 내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나는 귀국 후에도 꾸준히 통일 이후 독일사회의 변화와 통합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그렇듯 내가 지난 18년간 독일통일을 때로는 부러워하며, 때로는 고개를 저으며 바라본 성찰의 기록이다. 통일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독일 사회는 아직도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질적인 두 사회가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제도적 통일은 완수되었지만 동서독 주민들간의 머릿속 장벽은 여전하고, 양쪽 지역의 격차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원인은 독일통일이 서독 주도로 이루어진 흡수통일이었기 때문이다. 서독의 제도나 체제는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동독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동독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을 보며 나는 경제나 정치적 통합만으로는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심리적, 문화적 통일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독일통일을 연구하면서 주로 제도적 통합에만 초점을 맞춘 것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이 책에서 통일독일 사회의 내적 통합, 즉 문화적 통합에 중심을 두었다. 동서독인들이 왜 아직까지도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지 분석하는데 문학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문학은 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드러나는 공간이자 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이 투사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의 독일 사회에서 동서독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문학 작품에는 녹아 들어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세대의 문학작품과 언론에서의 논쟁들은 독일 사회의 내적 통합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통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모범이자 반면교사이다. 독일통일의 경험에서 우리는 원용할 점과 애써 피해야 할 점을 찾아야 하고 그들이 겪은 문제점을 피해갈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나는 책의 말미에 독일통일에 비추어본 한반도 통일방안을 넣었다. 어떠한 단계와 과정을 거쳐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완성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창비 펴냄)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 [런던 ‘탄소 파이낸스 2008’] 더 윈트 IETA회장 일문일답

    [런던 ‘탄소 파이낸스 2008’] 더 윈트 IETA회장 일문일답

    ‘탄소 파이낸스 2008’ 행사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구로서의 글로벌 탄소시장’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헨리 더원트 국제온실가스거래소협회(IETA) 회장은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시장 설립 움직임 등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한국의 환경부와 지식경제부 등이 탄소시장 설립의 주체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두 부처 가운데 어디가 낫다고 일방적으로 편을 들 수는 없다. 그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금융계와 기업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를 거쳐 결정할 사안이다. ▶한국은 자발적감축시장으로 먼저 가야 할까, 아니면 곧바로 의무감축시장으로 가야 할까. -의무감축국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 시장으로 먼저 갈 이유는 없다. 국내적인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무적인 시장을 택할 수도 있다. 인도와 중국도 에너지 효율을 위해, 또 에너지 안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고 있다. ▶북한을 기후변화 체제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과 북한을 하나의 온실가스 거래 지역단위(scheme)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고려가 필요하다. 과거 서독과 동독의 경제 통합 사례 등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 한국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60%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장기 목표를 세운 것은 좋은 진전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를 50%,60%, 또는 80%까지도 감축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2050년까지 목표하는 수치가 무엇이든 간에 각국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해야할 조치는 기본적으로 똑같다. 우선적으로 기업들에 온실가스 감축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그와 관련된 규정들이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도 더욱 분명한 단기적 감축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연합의 경우 2020년까지 2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의 일부 기업들은 반대하는데. -온실가스 배출 제한 및 거래 제도(Cap and Trade)가 도입되면서 흥하는 기업도 있고 망하는 기업도 있다. 흥하는 기업은 조용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 나간다. 반면 망하는 기업들은 불안감 때문인지 ‘소음’을 많이 낸다. 불과 10여년 전에 정보기술(IT)이 도입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 컴퓨터 구입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IT 기술 도입을 거부한 회사들도 있다. 결국 그 회사들은 어떻게 됐는가. 이제는 탄소도 가격이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한국 기업들이 현재의 글로벌 탄소거래 시장 체제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업내에서 탄소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 순위다. 사업을 진행하는 단계마다 탄소 배출을 염두에 둬야 한다. 런던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헨리 더원트 투자은행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금융 거래를 담당하다가 영국 정부로 들어갔다. 교통부에서 도로 및 운송산업 등을 맡다가 환경부로 옮겨 대기와 산업공해 등을 다뤘다. 환경부의 국제기후변화 담당 국장으로서 G-8 정상회의 등에서 영국의 기후변화 협상을 주도했다.
  • [서울광장] ‘김정일 이후’의 통일 청사진/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정일 이후’의 통일 청사진/구본영 논설위원

    북한 정권수립 60주년을 맞은 지난 9일 평양 김일성광장. 노농적위대 열병식장의 주석단은 썰렁해 보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병설 속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조명록 총정치국장 등 노쇠한 인민군 고위간부들의 모습이 외려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나 기자는 곧 감상에서 화들짝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열병식에 이어 열린 횃불행진에서 수만명의 인파가 ‘인간 전광판’인양 ‘김정일’과 ‘2012 강성대국’이란 글귀를 아로새기는 장면을 보면서다. 분단 60주년을 맞았건만, 남북간 체제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 물론 오늘 북한의 초상화는 남루하기 짝이 없다.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인 남한에 비해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6분의 1에 불과하다. 만성적 식량난에 탈북 행렬도 꼬리를 물고 있다. 영양 결핍으로 북한의 일곱살 어린이의 키가 남한 아동보다 평균 20㎝나 작다는 게 뜬소문이 아닐 게다. 올해도 얼마전 유엔식량계획 (WFP)이 대북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이런 판국에 절대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건강마저 적신호라면 북한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게다. 한 동안 잠잠했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리처드 핼로란은 최근 기고에서 워싱턴의 피터슨 국제문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광범한 사회적·정치적 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미 의회조사국도 “비참한 경제상황이 김정일 정권에 잠재적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불만세력을 키울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합리적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듯한 서방적 시각에도 맹점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에도 많은 관측통들이 세습체제가 짧으면 6개월, 길어도 3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란 예측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그후 십수년이 흘렀지만, 김정일 체제는 여전히 건재했지 않은가. 까닭에 60년 부자 세습체제가 저물더라도 수년 안에 북한에서 과거 동구권의 ‘붕괴 도미노 현상’ 같은 사태를 예견하긴 어렵다는 게 현실적 판단일 듯싶다. 이를 막기 위해서 북한도 핵카드에 기대어 생존을 도모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면서 주민을 살릴 본격적 개혁·개방을 주저해온 게 아닌가. 우리가 10년 넘게 ‘햇볕’을 쪼였건만,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낡은 외투를 벗기는커녕 선군(先軍)주의란 갑옷을 더 껴입고 있지 않은가. 이는 통독 과정과는 전혀 다른 상황 전개다. 월등한 국력의 서독이 꾸준히 동독과 교류협력에 나서자 동독의 지도부와 주민들은 마침내 체제를 버리고 서독에의 흡수통일을 선택했었다. 더구나 김정일 정권 이후 북한내 친중정권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분단 고착화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인 탓이다. 하지만 어쩌랴. 실패했지만,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듯한 북한체제와 더 오래 공존해야 하는 게 동족의 업보라면. 우리는 과거 서독이 그랬듯이 경제력뿐 아니라 복지와 인권 등 모든 면에서 내실을 다지면서 북한과 대화와 교류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북한정권의 개혁·개방을 돕는 일이 우리에게도 이롭다는 신념에 회의를 품을 이유는 없을 듯 싶다. 좋든 싫든 우리의 통일정책에 ‘김정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창조적 상상력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사설] ‘군 침투 간첩용의자 50여명’ 사실인가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군에 침투한 ‘간첩 용의자 50여명’이라고 적힌 군 보안당국의 메모가 엊그제 한 언론에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군과 정부내 정보기관들이 내부 안보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군 보안당국의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면 온 국민이 경악할 일이다.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군 내부에서 암약하는 간첩 용의자가 50여명이라면 어디 예삿일인가. 그러잖아도 위장 탈북한 여간첩이 군내 강연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CD까지 상영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나. 심지어 일부 군 관계자들이 원정화와 성관계를 맺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까닭에 용의자 명단에 장교, 부사관 등 현역 간부도 포함돼 있다면 군의 보안시스템에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한다. 물론 메모 내용이 사실 이상으로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큰 문제다. 조용히 내사해 사실관계부터 규명해야 할 일이 일부 언론에 먼저 공개된 것 자체가 군 기강의 해이를 방증하는 징표이다. 혹여 원정화 사건 이후 공안 드라이브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면 국민을 두번 실망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이번 원정화 사건을 분단국의 평화관리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며 정부부터 안보의식을 다잡는, 전화위복의 지렛대로 삼기를 당부한다. 군 정보기관이나 정보당국이 지난 10년간 느슨해졌다는 지적이 맞다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과거 동독 정권도 통독 직전까지도 서독으로 스파이를 보냈다고 한다. 서독 정부가 그랬듯이 우리 정부도 남북 화해협력은 그것대로 추진하되, 북측의 첩보전이나 대남 적대행위 가능성에 대해서마저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될 것이다.
  • “남북통일에 6자회담이 핵심 역할할 것”

    “남북통일에 6자회담이 핵심 역할할 것”

    “독일 통일 당시 2+4회담(동·서독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이 진행됐던 것처럼 남북 통일에도 북핵 6자회담이 핵심 역할을 할 것입니다.”독일 통일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호르스트 텔칙(68) 전 독일연방총리 국가안보수석이 방한,22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독일 통일과 남북 통일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며 이렇게 말했다. 텔칙 전 수석은 “6자회담은 남북에 가장 중요한 주변국인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회담”이라며 “이들 4개국은 남북 통일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들의 도움과 협조 없이는 통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통일에는 미국과 소련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한반도 상황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크고, 특히 미국의 지지가 있어야 안보가 보장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과 긴장 완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을 묻자 텔칙 전 수석은 “동·서독 분단 당시 서독 정부는 동독과의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양국 관계에 타자의 개입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특히 동·서독간 인적 교류를 최대한 늘리는 등 동독 국민과 접촉을 용이하게 하는 데 가장 신경을 썼다.”며 동·서독 주민간 접촉이 통일에 큰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이어 “1980년대 서독은 동독에 2000억마르크의 자금을 지원하며 단계적(step-by-step) 정책을 펼쳤다.”며 “이는 한국의 햇볕정책과 비교할 수 있는데, 당시 서독에서도 일부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동독 주민을 위한 것이었고 결국 동독 정권은 마지막에 붕괴됐다.”고 말했다. 텔칙 전 수석은 또 “서독이 통일 후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처럼 남북이 통일되면 한국이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할 것”이라며 통일비용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텔칙 전 수석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보좌관과 국가안보수석을 지냈으며,1980년대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콜 전 총리의 특사로 한국과 수교 전인 중국·러시아에 한국과의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독일인 레나테 홍 남편 찾아 방북

    독일인 레나테 홍(71·여)씨가 47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인 남편 홍옥근(74)씨를 만나기 위해 방북,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레나테 홍씨는 북한 적십자사의 초청으로 두 아들 페터(48)·우베(47)와 함께 지난달 24일 에어차이나 항공편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25일 평양에 도착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외국 국적자의 개별 입북을 허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의 외교소식통은 “독일 외무부와 국제적십자사가 이들의 가족 상봉을 도와주기 위해 그동안 철저한 보안 속에서 활발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레나테 홍씨는 지난해 7월27일부터 지난 6월12일까지 함경남도 함흥에 사는 남편으로부터 모두 4통의 편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의 편지는 “사랑하는 레나테…, 당신이 나의 영원한 인생의 반려자가 되길 소원했었다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일 예나시에 사는 레나테 홍씨는 동독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과 1953년 결혼했으나 1961년 북한이 동유럽 지역에 파견했던 유학생들을 소환함에 따라 남편과 이별한 후 47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연합뉴스
  • [씨줄날줄] 시대와의 불화/구본영 논설위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우리의 70·80세대와 친숙한 작가다. 세계적으론 냉전이, 국내적으론 분단이란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 듯싶다. 학창시절 스탈린의 인권탄압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그의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부음을 전한 어제 조간 신문에서 눈에 확 띄는 헤드라인을 발견했다.“러시아 가치 지키려 ‘시대와의 불화’로 살았다”는 제목이었다. 시대와의 타협을 거부한 그의 인생을 퍽 잘 압축한 느낌이다. 그는 구소련 시절 독재자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가 발각돼 10년간 동토의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독일과 미국서 20년간 망명생활을 할 때조차도 소련에 대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선전전의 전위를 맡는 일을 거부했다. 서방세계에 안주했다면 가능했을 안락한 삶을 또다시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시대와의 불화’가 솔제니친과 같은 역사적 영웅을 낳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체제의 사슬이나 이데올로기의 벽 앞에 무력한 개인을 양산해온 게 역사의 비극이다. 냉전 시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루마니아의 산골 무지랭이 요한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게 된다.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과 2차대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독일에서 강제노동 중 아리안족 순혈로 인정받아 수용소장이 되는가 하면 미군 포로로 전범재판소에 회부되기도 했다. 동명의 영화에서 주인공 앤서니 퀸이 열연한, 우는지, 웃는지 모를 명연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석방된 요한이 아내와, 그리고 소련군의 능욕에 의해 태어난 아이와 상봉하는 마지막 장면 말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픽션만일까. 며칠 전 북한 유학생 남편과 헤어져 47년 동안 수절해온 독일인 레나테 홍(71) 할머니가 평양에 들어갔다고 한다. 남편 홍옥근(74)씨와 재회하기 위해서다. 한 동양인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그녀야말로 시대상황의 희생양이 아닌가. 북한당국이 체제동요를 우려해 동독에서 유학중이던 남편을 소환하는 바람에 생이별했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인생유전이 말년의 솔제니친처럼 해피엔드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獨, 옛 동독 따라잡기

    “옛 동독식으로 스포츠 강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 통일 이후 올림픽 무대에서 쇠락한 독일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고 있다. 한때 세계 스포츠 무대를 주름잡았던 옛 동독처럼 엘리트 체육학교를 집중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동안 독일은 약물 복용,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높았던 동독식 훈련법을 기피해 왔다. 하지만 통일 이후 올림픽 메달 수가 급감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과거 국가주의식 엘리트 체육학교 복원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 정부가 체육학교 체육관, 수영장 등의 시설 정비에 올해에만 2억달러 가까이 투입했다고 2일(현지시간) 전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통일되기 전까지 동·서독은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았다.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동독은 금·은·동 합쳐 102개의 메달로 종합 2위에 올랐다. 서독도 메달 수 40개로 5위에 랭크됐다. 동독은 1980년 미국, 서독이 보이콧한 모스크바 올림픽에선 126개의 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과 동시에 독일은 올림픽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82개(3위)를 기점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56개(5위),2004년 아테네 49개(6위)로 점점 뒤처졌다. 위기감을 느낀 독일 스포츠계는 ‘결단’에 나섰다.2003년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은 옛 동독식 모델을 따라 국가차원에서 스포츠 유망주를 집중육성하기로 했다. 일본,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 지원을 하는 것도 자극제가 됐다. 총 39개의 엘리트 체육학교를 지정해 집중 지원에 들어갔고 올해 1억 9650만달러가 투입됐다.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규모다. 독일 올림픽스포츠연맹 관계자 마이클 시르프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2004년 때와 같은 6위를 사수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베이징 올림픽] ‘수영황제’ 올림픽史 고쳐 쓸까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베이징 올림픽] ‘수영황제’ 올림픽史 고쳐 쓸까

    올림픽 사상 최다관왕은 1972년 뮌헨올림픽 7관왕에 오른 미국의 수영영웅 마크 스피츠.6관왕은 3명 있었다.88년 서울올림픽의 크리스틴 오토(당시 동독·수영)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비탈리 세르보(러시아·체조),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마이클 펠프스(미국)가 주인공. 이미 올림픽사에 족적을 남긴 ‘수영황제’ 펠프스(23)가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스피츠의 전설에 도전한다.193㎝에 88㎏의 탁월한 하드웨어를 지닌 펠프스는 지난해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7관왕에 올라 ‘베이징 신화’의 가능성을 비쳤다. 최근 미국 대표선발전에서 9개 종목에 출전을 신청했던 펠프스는 자유형 400m 등 4개 종목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불확실한 종목에 출전하는 대신 체력안배를 확실히 해 금메달 개수를 늘리겠다는 계산. 이에 따라 펠프스가 출전 가능한 종목은 8개(개인 5개·계영 3개)로 줄었다. 물론 펠프스가 스피츠의 기록을 깨지 못하더라도 개인 최다 금메달을 수확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라리사 라티니나(구 소련,56·60·64년)와 파보 누르미(핀란드,20·24·28년), 스피츠(68·72년), 칼 루이스(84·88·92·96)가 9개의 금메달로 공동 선두지만, 펠프스가 4개만 보태면 새로운 전설이 된다. 펠프스의 도전에 대해 스피츠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면서도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은 부담감 자체가 다르다.”고 충고했다. 펠프스가 중압감을 이겨내고 112년 올림픽 역사를 고쳐쓸지 스포츠팬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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