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굴
    2026-02-28
    검색기록 지우기
  • 국보
    2026-02-28
    검색기록 지우기
  • 송이
    2026-02-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67
  • 희귀한 ‘1940~60년대 새 신발’이 한가득… ‘보물창고’ 발견

    희귀한 ‘1940~60년대 새 신발’이 한가득… ‘보물창고’ 발견

    거의 5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조용히 감춰져있던 희귀 신발들의 보물창고 모습이 공개됐다.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는 수백켤레는 족히 넘을 오래된 빈티지 신발들이 모여 있는 베일 속 비밀창고의 내부가 공개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미국의 한 가족이 게재한 것으로 본래 조부모가 경영했던 신발가게의 물류창고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지난 1940년부터 활발히 경영됐던 해당 신발가게는 1960년대에 문을 닫았는데 이 창고는 그 뒤로 약 50여 년간 굳게 문이 닫혀있다 최근 가족들에 의해 다시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은 전혀 구할 수 없는 40~60년대 미국 빈티지 신발들이 거의 변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비록 오랜 시간 먼지에 쌓여있긴 했지만 재질이나 기능성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 조금만 청소해주면 지금이라도 신을 수 있는 수준이다. 누군가는 해당 게시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의 램프가 숨겨져 있는 비밀동굴 같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해당 창고가 미국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은 “내부적으로 해당 창고를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못 정했기 때문에 보안상의 이유로 위치는 알려줄 수 없다”며 “가족 구성원 간 내부논의가 끝나면 그때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reddit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너무 힘든 일 당하면 가만히 멈춰 서 숨을 쉬세요

    너무 힘든 일 당하면 가만히 멈춰 서 숨을 쉬세요

    “올해는 ‘세월호’ 참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삶은 전반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퇴보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 곳곳에 세월호 유족들처럼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 송은일(50)이 사람들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삶을 망치거나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상처의 속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등단 20년을 맞아 펴낸 새 소설집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북인)은 상처와 치유의 결정체다. 2009년 소설집 ‘남녀실종지사’ 이후 5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소설집이다. 표제작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을 비롯해 ‘나비의 동굴’, ‘맹렬한 오후’, ‘파우스트와 나와 케이’, ‘혹’ 등 중·단편 8편이 실렸다. 삶에 치이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내(나비의 동굴), 전망 없는 삶에서 빠져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옷가게 주인(맹렬한 오후),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 삶의 변두리에 내몰린 여자(혹)…. 상처 입은 영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작가는 “‘나비의 동굴’에 나오는 사내와 ‘나의 빈틈을 통과하는 것들’의 배꽃잎이 유독 짠한 인물들”이라고 했다. 표제작은 상처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빈틈’은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 허약한 지점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허방처럼 아찔한 틈을 갖고 있다. 그 틈을 통해 바깥에서 뭔가가 들어올 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틈으로 무엇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작품 속 남녀 주인공 ‘홍선용’과 ‘배꽃잎’은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서로 만났다. 트럭운전사 홍선용은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할 때, 통신회사 콜센터 여직원 배꽃잎은 막말과 음담패설에 시달리며 새로운 삶의 출구를 찾고자 할 때다. 홍선용은 연일 배꽃잎에게 전화해 육두문자를 쏟아낸다. 소설은 홍선용이 배꽃잎을 찾아가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 끝난다. “한 개인의 상처가 상대방의 틈과 만나게 될 때 상대방을 소생 불가능할 정도로 쓰러뜨리는 상처의 치명성을 다뤘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너무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것 같아 둘이 만나는 부분에서 싹둑 잘랐다.” 작가는 점집을 즐겨 찾는다. 미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점집에서 받은 위안이 작품에 구현되고 독자들은 그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치유의 선순환이다. “너무 힘든 일을 당하면 헤쳐 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선 가만히 멈춰 서서 숨을 쉬어야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50년 전 모습 그대로…신비의 ‘신발보물창고’ 발견

    50년 전 모습 그대로…신비의 ‘신발보물창고’ 발견

    거의 5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조용히 감춰져있던 희귀 신발들의 보물창고 모습이 공개됐다.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는 수백켤레는 족히 넘을 오래된 빈티지 신발들이 모여 있는 베일 속 비밀창고의 내부가 공개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미국의 한 가족이 게재한 것으로 본래 조부모가 경영했던 신발가게의 물류창고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지난 1940년부터 활발히 경영됐던 해당 신발가게는 1960년대에 문을 닫았는데 이 창고는 그 뒤로 약 50여 년간 굳게 문이 닫혀있다 최근 가족들에 의해 다시 발견됐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은 전혀 구할 수 없는 40~60년대 미국 빈티지 신발들이 거의 변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비록 오랜 시간 먼지에 쌓여있긴 했지만 재질이나 기능성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 조금만 청소해주면 지금이라도 신을 수 있는 수준이다. 누군가는 해당 게시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의 램프가 숨겨져 있는 비밀동굴 같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해당 창고가 미국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은 “내부적으로 해당 창고를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못 정했기 때문에 보안상의 이유로 위치는 알려줄 수 없다”며 “가족 구성원 간 내부논의가 끝나면 그때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reddit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카페 사르트르(한국사르트르연구회 지음, 에크리 펴냄) 실존주의 철학자,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 및 극작가, 실천적 지식인, 여성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평생 동반자…. 화려한 수식어를 단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전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서구 지성의 대명사가 됐고, 실존주의 철학은 국내 학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사르트르 연구에 매진해 온 한국사르트르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연구회 발족 20주년을 기념해 연구서를 펴냈다. 사르트르의 철학이 탄생한 주무대인 파리 생제르만데프레의 카페에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학자와 연구자들이 다채로운 시각으로 사르트르를 새롭게 읽어낸다. 580쪽. 3만 5000원. 트렌드 코리아 2015(김난도 등 지음, 미래의창 펴냄) ‘대한민국 청춘 멘토’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5년 예측 보고서. 연구소가 선정한 내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는 양의 해에 걸맞게 ‘카운트 쉽’(COUNT SHEEP)이다. 도처에 불안한 요소들이 남아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책은 ‘다크호스’를 키워드로 했던 2014년 한 해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리뷰한 뒤 본격적으로 명암이 공존하는 2015년의 모습을 경제, 나라 살림, 정책 방향, 기술 변화, 사회문화적 동향을 전망한다. 2014년의 소비는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침몰했고 정치권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책은 2015년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과 모바일 앱 기술의 결합으로 소비자에게 끊김 없는 쇼핑 환경을 제공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면서 소비는 크게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411쪽. 1만 6000원. 상실과 노스탤지어(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심희찬 옮김, 문학과 지성사 펴냄) 일본의 종교 및 역사학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가 근대 일본인들의 내면을 분석했다. 저자는 한국의 탈식민주의 연구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재일 조선인, 소수자,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학문적 영향력을 넓혀 온 소장학자다. 그는 책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끼인 ‘인 비트윈’(in between)으로 정의한다. 일본의 근대는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한 체제개혁을 단행한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되어 이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미국의 점령을 받는 등 사회격동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근대 일본이 사로잡혀 있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질감 내지 상실감을 포착해 그 근원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성찰한다. 327쪽. 1만 6000원. 유라시아 고고기행(황규호 지음, 주류성 펴냄) 오랫동안 문화재·종교·학술 담당기자로 뛰며 전세계 문명과 종교의 발상지를 답사하고 고고학 발굴현장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가 쓴 대중을 위한 고고학과 미술사 교양서. 저자가 프랑스 파리 고인류연구소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구석기 워크숍에 초청돼 이 분야의 지식을 나눈 경험에서 비롯된 책은 인류 구석기 메카로 통하는 발로네 동굴, 라자레 동굴 등 프랑스 주요 선사유적을 둘러 본 경험을 소상히 다룬다. 이밖에 파키스탄 정부 초청으로 방문했던 서남아시아의 인류문명과 불교미술 발상지, 시베리아 고고민족학연구소가 주최한 시베리아 100년의 파노라마 국제학술회의 참석 당시 방문한 시베리아와 알타이 문화도 조명한다. 책의 후반부는 약 35년 전 전기 구석기 유물로 만능 연장으로 사용된 아슐리안 주목도끼의 고장인 한반도 중부 한탄강변 전곡리 유적에 집중한다. 동서양의 시공간을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투영해 우리의 고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다. 258쪽. 1만 5000원.
  • [서동철의 시시콜콜] 아브리 파토와 석장리 유적

    [서동철의 시시콜콜] 아브리 파토와 석장리 유적

    ‘겨울비치고는 제법 많이 내린다. 베제르강 깊은 골짝에 어둠이 깔린 지 오래고, 에지드타약(s Eyzies-de-Tayac) 거리에는 인적마저 끊겼다. 이 겨울비가 내리는 날 외진 유적지를 찾는 이들이 없어서 마을이 조금은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 빗물이 얼룩진 카페 창가에 앉아 포도주 몇 잔을 기울이고 싶은 밤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 샹송이 깔리면 비 내리는 겨울밤의 운치가 더 살아나겠지….’ 프랑스 남서부의 구석기 유적지 아브리 파토를 묘사하는 대목은 이렇게 시적(詩的)이다. 도르도뉴강 지류인 베제르강 언저리는 후기 구석기 문화 밀집 지역이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의 화석이 발굴되고 라스코 동굴벽화와 퐁드곰 동굴벽화도 발견된 ‘유럽 구석기 연구의 수도’다. 그렇다 해도 고고학도가 아닌 일반 관광객이라면 여간해서는 찾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라시아 고고기행’을 읽다 보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용솟음친다. 웬만한 사람은 한두 장 읽다가 지쳐 버릴 전문적 이야기를 주제가 있는 에세이처럼 풀어낸 사람은 문화재 저널리스트 황규호다. 아브리 파토는 후기 구석기 문화가 켜켜이 쌓인 바위그늘 유적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바위 벼랑 사이에 자연적으로 깊숙이 파인 공간에서 눈비와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피했다. 이곳의 구석기인들은 3만년쯤 4000년에 걸쳐 10m가량 퇴적된 지층에 모두 14개의 문화층을 남겼다. 발굴은 1898년 이후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3분의1 정도만 판 상태라고 한다. 한 해 10㎝ 이상 발굴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0만점에 이르는 동물뼈가 나왔지만 7명분의 사람뼈가 출토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유적 전시관에는 16세로 추정되는 아기 엄마를 복원해 놓았다. 유명한 ‘마담 파토’다. ‘유라시아 고고기행’은 간다라 문화의 본거지인 파키스탄과 한민족의 원류로 알려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아브리 파토를 떠올린 것은 공주 석장리 박물관에서 본 그곳의 흥미로운 유물 때문이다. 바위에 부조 형태로 여인의 모습을 새긴 ‘구석기 비너스’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니 1964년 손보기 교수가 이끄는 연세대 팀이 석장리 발굴을 시작하고 올해로 꼭 50년이 흘렀다. 한반도 남부에서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확인한 ‘사건’이었다. 이후 연천 전곡리와 단양 수양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구석기 유적 발굴이 이어졌다. ‘유라시아’가 잊고 있던 석장리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dcsuh@seoul.co.kr
  • 청약 우등생 광명역 파크자이 11월 3~5일 3일간 계약실시

    청약 우등생 광명역 파크자이 11월 3~5일 3일간 계약실시

    GS건설이 경기 광명시 일직동 광명역세권 “광명역 파크자이”가 최고 33.1대 1의 경쟁률로 전 타입 1순위 마감됐다. 22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광명역 파크자이 731가구 분양에 8781명이 청약을 접수해 평균 12대 1의 경쟁률로 5개 타입 모두 1순위 마감됐다. 당첨자 발표는 이달 28일, 계약일은 다음 달 11월 3일~5일 진행된다. 오피스텔은 21~22일 청약접수를 진행 23일 당첨자 발표와 계약을 시작 24일 까지 계약만료 예정이다. 광명역 파크자이는 역세권 중심상업지구에 들어서면서 초대형 생태공원인 새물공원을 낀 단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청약자들을 끌어드린 것으로 분석된다. -’광명역 파크자이’ 축구장 20배에 이르는 새물공원 인접‘광명역 파크자이’는 다른 역세권 단지와는 다르게 단지 앞에 축구장 약 20배 크기에 이르는 새물공원이 조성된다. 이 공원은 안양시가 3,000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들여 박달하수처리장을 지하화해 그 상부에는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오는 2017년 1월 완공예정이다. 특히 이 지역은 대규모 공원 외에도 수리산공원이 조망가능하고 가학산동굴, 도덕산 등 녹지와 등산로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주변환경이 인근에 위치해 있다. 단지 서쪽으로는 서독산이 위치해 있고 동쪽으로는 도보이용이 가능한 안양천이 위치해 있다. 대규모 쇼핑센터도 들어설 계획이다. KTX광명역 일대는 서울 서남부의 유일한 대형 쇼핑시설인 코스트코가 지난해 입점해 쇼핑메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또 올해 말 세계적인 가구 전문점인 국내1호점 이케아(IKEA)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등이 문을 열 계획이어서 향후 미래가치가 뛰어나다. -더블역세권에 사통팔달 교통환경 우수KTX•지하철 1호선 광명역이 단지 건너편에 있는 단지로 신안산선(예정)이 완공되면 더블역세권 단지다. KTX를 이용하면 서울까지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광명역~영등포역(1호선)구간의 지하철을 이용하면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등 서남권 업무지구로 이동이 편리하다. 서해안 고속도로 광명역(IC)가 차로 5분이면 진입할 수 있고 제2경인고속도로 일직JC진입도 수월하다. 여기에 오는 2016년 강남순환고속도로와 광명~수원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교통환경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모델하우스는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273-1번지 KTX광명역 동편 6번 출구 앞에 있다. 분양문의 : 1644-9997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씨줄날줄] 농악과 공동체/문소영 논설위원

    문화재청은 그제 ‘농악’(農樂)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다음 달 말쯤 등재가 확정되면 ‘김치와 김장문화’(2013년), ‘아리랑’(2012년) 등에 이어 한국은 17번째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농악은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풍물이나 두레, 풍장, 굿 등이다. 농악은 김매기나 논매기, 모심기 등의 힘든 농사일을 할 때 연주했다고 하지만, 전문 연주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나고서 연주했을 것이다. 농악의 악기 중 북·장구·징·꽹과리 등 네 개의 민속 타악기로 연주하면 1979년 시작한 ‘사물(四物)놀이’가 된다. 식량을 늘렸다는 측면에서 인류의 농사짓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농사는 힘든 노동이었다. 소와 말 같은 대형동물이 현대의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역할을 해야 할 만큼 말이다. 특히 과거의 농사는 공동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가족만으로 파종과 수확을 할 수 없어서 협동심을 이끌어내며 흥을 돋우는 농악의 역할이 중요했다. 농악의 시작을 알리는 기록이 없어 그 시기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농악은 농업과 관련이 있으니, 약 6000년 전 한반도에서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혁명’ 때부터 함께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것이 약 4만년 전이니 음악이 6000년 전쯤 시작했다는 추정이 망상은 아니지 않을까. 고구려 등 삼국시대에는 5월 파종과 10월 추수 후에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이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 동안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하니, 이때는 제례악과 함께 농악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후렴구인 “아으동동다리”에서 동동은 농악에서 쓰이는 북소리라고도 하고, 고려 제25대 충렬왕이 일반 농악에 관심이 커서 장려한 일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니, 고려 때는 이미 농악의 정착단계로 보인다. 조선에 와서도 세종·세조 등은 농악과 농가(農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는 농악이나 김치문화, 아리랑 등은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한 유산들이다.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나타난 인간 소외나, 노동 소외, 극단적 탐욕 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공동체적 삶이 주목받는 덕분 같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니,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등이 주목받는 이유도 성공신화를 쓴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와 부의 불평등이 세계적으로 100년 이래 최악이란다. 농악이 ‘혼자 잘살면 뭐하나! 같이 잘살아야지’ 하는 정신을 북돋아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한솔교육, 임직원을 위한 색다른 선물 전달

    한솔교육, 임직원을 위한 색다른 선물 전달

    ㈜한솔교육(대표 변재용)이 임직원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평소 일로 바빠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임직원을 대신해 가족들을 위한 가을 여행을 준비한 것. 창립 32주년을 맞아 선정된 32쌍의 가족은 단풍이 절정인 때에 맞춰 1박 2일의 여행을 선물 받았다. 사내 공모로 시작된 부모사랑 효도여행 행사는 100여 명의 조직원들이 신청 사연을 썼고 그중 애틋하고 감동적인 32개의 사연을 선정했다. 여행은 여주의 명소인 신륵사를 시작으로 금산 인삼 체험, 덕유산 향적봉 등산, 머루 와인 동굴 탐사 등 1박 2일 동안 즐길 수 있는 살뜰한 동선으로 구성됐다. 한솔교육 가족들은 울긋불긋 물든 가을 풍경에 연신 탄성을 터뜨리며 남도의 정취를 즐겼다. 교사로 근무 중인 딸은 둔 어머니는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딸을 보며 속이 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회사에서 준비한 좋은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행사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다. 한솔교육은 2014년부터 임직원과 그 가족들을 위한 행사를 매달 진행하고 있다. 임직원들은 매달 새롭게 기획되는 참신한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으며 참여도도 높아 임직원 사기 진작에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핀덴지점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는 “이번 행사에 참여한 부모님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좋았다고 말씀하셔서 너무 행복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회사, 여행에 도움을 준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솔교육은 기업문화 증진을 위해 늘 조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고객과 함께하는 수기 공모전을 진행, 현장의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전사적으로 전하며 임직원, 가족, 또 고객까지 이어지는 가족사랑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솔교육은 조직원의 행복이 곧 고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기업 이념을 기본으로 기업문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국내 미대의 서양화과에선 수채화나 유화, 아크릴화 등을 가르칠 뿐 프레스코화에 대해선 관심이 없죠. 같은 서양화인데 그리는 과정이 까다로우니 좀처럼 전문가도 없고, 그리려 들지도 않아요.” 오원배(61) 동국대 미대 교수는 작가라기보다 화학자에 가깝다. 전시장에서 쭉쭉 써내려간 화학반응식은 놀라울 따름이다. 생석회에 물을 넣어 수산화칼슘을 만들고, 다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탄산칼륨을 끌어낸다는 복잡한 화학식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했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를 알려면 화학작용을 이해해야 한다”며 회반죽을 벽에 칠하고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에 갠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고된 노동의 과정을 끊임없이 묘사했다. “프레스코 작업은 긴박하고 엄격한 노역입니다. 반죽이 마르는 20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까다로운 작업 탓에 허리 디스크를 아예 달고 삽니다.” 흔히 ‘서양의 벽화’로 알려진 프레스코화는 16세기 초 미켈란젤로가 그린 로마 산타마리아 미네르바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가 대표적이다. 로마인이 기원전부터 그렸는데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17세기 유화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세기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프레스코화에 ‘꽂힌’ 것일까. 작가는 “30여년 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졸업을 위해 모든 유형의 작품을 다 공부했다”며 “그때 처음 접한 프레스코화에 흠뻑 빠져 이후 5년 주기로 파리에 날아가 1년씩 프레스코화를 공부하고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정통 프레스코화’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2007년 처음으로 프레스코화 4점을 선보인 뒤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프레스코란 이런 것임을 국내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인 알타미라 벽화도 석회암 동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죠.” 2012년 인천 강화면 전등사 무설전에 프레스코 기법의 후불(後佛) 천장벽화를 그린 이도 작가다. 국내 법당에 그린 1호 프레스코화다. “불교 탱화에 시대 가치가 담겨온 만큼 현대의 불사들도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다음달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28점의 프레스코화를 선보이는 개인전 ‘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을 이어간다. 모든 작품을 프레스코화로 채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들은 예전 묵직한 분위기와 달리 파스텔톤으로 다소 밝게 변했다. 4년 전 늦장가를 든 작가의 눈에 세상이 밝게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파리의 지붕과 굴뚝이 가득 화폭을 채우는데, 모두 파리 유학시절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는 철저한 계산이 깔린 과학”이라며 “이번 전시가 감각적 작업에만 의존하는 국내 미술계에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바당밭 일구고 바당에 누인다

    바당밭 일구고 바당에 누인다

    제주 동북부의 구좌읍 김녕, 월정리 일대에 25일 새 걷기 코스가 열린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핵심마을 활성화사업’의 하나로, 지난 4월 선보인 산방산·용머리 지질트레일의 연장이다. 한데 테마는 다소 다르다. 산방산 쪽은 제주의 지질 역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은 제주인들의 삶의 원형을 엿보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 길 열림을 앞두고 미리 그 길을 걸었다. 왜 지질을 알아야 하는가. 섬의 역사뿐 아니라 섬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새겨졌기 때문이다.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의 부제를 보자. ‘바당밭, 빌레왓을 일구는 동굴 위 사람들의 이야기길’이다. 길의 전체적인 성격이 축약된 표현이다. 생경한 단어들도 포함됐다. ‘바당’과 ‘빌레’다. 둘은 제주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설명하는 도구다. 이 둘의 의미를 알아야 지질트레일 위에 얹혀진 제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바당’은 바다를 일컫는다. 변변한 농토 하나 없던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밭이나 다름없었다. 뭍의 농민들이 밭에 애정을 쏟듯, 그렇게 바다를 일궈왔다. ‘빌레’는 너럭바위다. 용암이 흐르다 식은 흔적이다. 빌레의 두께는 다양하다. 용암이 흐를 당시의 여러 변수에 따라 수십㎝부터 1m를 훌쩍 넘게 쌓였다. 빌레 아래는 흙이다. 무엇이든 심어 먹거리로 쓰자면 먼저 빌레를 걷어내야 할 터. 호미 등의 농기구로 빌레를 잘게 쪼개 걷어내면 그제야 흙이 나온다. 그 위에 곡식을 심었다. 그렇게 등골 휘도록 만든 밭이 ‘빌레왓’이다. 땅 아래는 동굴이다. 세계지질공원 핵심 명소인 만장굴과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동굴들이 발 아래 얽혀 있다. 이들은 이름깨나 날리는 축에 속하고, 게웃샘굴 등 주민들만 아는 동굴도 있다. 요약하면, 동굴 위에 집을 짓고 뭍과 바다의 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들의 삶을 이리저리 따라가는 길, 그게 ‘김녕·월정 지질트레일’이다. 트레일은 지역민과 전문가, 제주관광공사 등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길이는 14.6㎞. 지역민인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박자박 걸으면 6시간 남짓 걸린다. 들머리는 김녕어울림센터다. 예서 세기알해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세기알은 ‘성세기해변 아래’라는 뜻이다. 해안가에 원뿔 형태로 쌓아올린 검은 현무암 더미가 인상적인 자태로 서 있다. 김녕도대불이다. 밤에 조업 나간 어민들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도록 돕는 등대다. 해설사로 동행한 강정효(49) 제주대 강사는 “제주에 남아 있는 여러 형태의 도대불 가운데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도대불”이라며 “1972년 제주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등대불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설명했다. 해안엔 빌레가 넓게 형성돼 있다. 이른바 조간대다. 만조 때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 드러난다. 물 빠진 빌레 위엔 ‘바릇잡이’(얕은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와 ‘고망낚시’(물 빠진 돌 구멍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로 먹거리를 준비하는 주민들이 간간이 오간다. 빌레 밑엔 투수층이 발달돼 있다. 이 덕에 해안선 인근에서 용천수가 풍부하게 솟아난다. 청굴물도 그중 하나다. 이 일대 지명이 ‘청수동’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 강사는 청굴물을 “주민들이 물찜질하던 곳”이라 했다. 한라산 인근이나 제주 남쪽의 여러 폭포 주변에 사는 이들은 곧잘 폭포 아래서 물맞이를 즐긴다. 한데 폭포가 없는 제주 동북쪽 사람들은 청굴물 같은 용천수를 찾아 찜질을 즐겼다는 것이다. 청굴물은 바닷속 민물 목욕탕이다. 마을 앞 얕은 바다 위 두 곳에서 물이 솟는다. 물이 솟는 곳에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든 뒤 마을 쪽은 여자, ‘바당’ 쪽은 남자들이 썼다. 같은 시간대에 남녀가 함께 쓰는 경우도 있었을까. 외지인의 질문에 마을 할머니들은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일대엔 용암동굴이 많다. 동굴 위에서 사람들이 살아간다 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 이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 게웃샘굴이다. 두께가 1~2m 정도에 불과한 땅 아래 뚫린 동굴이다. 동굴 속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간다.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던 샘물이다. 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제주엔 섬 특유의 무속신앙도 발달했다. 당연히 섬기는 신도 많은데, 트레일을 걷는 동안 이와 관련된 시설들을 다수 엿볼 수 있다. 김녕본향당은 마을 전반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당, 귀네기동굴은 제주 지역에서 최초로 돼지를 제물로 삼은 돗제가 치러진 곳이다. 성세깃당은 ‘해녀마을’로 지칭되는 김녕리 해녀들이 잠수굿을 하는 곳이다. 성세깃당에서 ‘조른(짧은)빌레길’을 지나면 ‘김녕밭담길’이 시작된다. 빌레 위를 걷거나, 형태를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빌레와 밭의 높이 차는 들쭉날쭉이다. 불과 수㎝부터 1m가 넘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흙 위를 덮고 있는 돌들을 일일이 깨서 걷어내야 한다. 깬 돌은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는다. 그게 ‘제주 들녘을 휘감아 도는 검은 용’(黑龍萬里), 돌담이다. 그러니 돌담의 두께는 곧 제주 사람들 피와 땀의 높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 돌담은 얼핏 엉성해 보인다. 틈이 많기 때문이다. 김녕 쪽 돌담이 특히 성긴 모양새다. 한데 이 비워진 공간이 바람을 찢는 역할을 한다. 돌담이 효과적인 바람막이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비움 덕이다. 기능뿐 아니라 모양도 빼어나다. 들녘을 휘휘 돌아가는 밭담 덕에 어지간한 관광지 뺨칠 만큼 서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김녕밭담길’ 초입에 주민들이 진(긴)빌레정을 세워뒀다. 정자에 오르면 ‘흑룡만리’ 밭담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다. 강 강사는 “제주 안에서도 밭담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월정밭담길’ 구간은 산담을 관찰하기 적당하다. 산담은 무덤 주위에 둘러친 돌담이다. 망자의 집을 지키는 울타리인 셈. 신이 드나드는 ‘시문’과 무덤을 지키는 동자석도 이채롭다. 월정밭담길 아래는 저 유명한 용천동굴 호수와 당처물동굴이다. 하지만 출입은 불가다. 안내판에 새겨진 사진을 보며 발 아래 펼쳐져 있을 비경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반환점은 월정리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핫’(hot)한 제주 여행지로 꼽힌다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바당빌레길’이 펼쳐진다. 용암이 빚은 언덕 ‘투물러스’, 1270년 삼별초를 막기 위해 조간대에 쌓은 현무암 장벽 ‘환해장성’ 등 볼거리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덩개해안은 바다에 펼쳐진 빌레가 가장 인상적인 곳이다. 제주 5대산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에 잠긴 두럭산이 이 해안에 있다. 두럭산은 1년에 딱 한 번, 음력 3월 보름에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제주공항에서 일주동로를 따라 가다 김녕사거리에서 좌회전, 곧이어 만나는 마을길에서 우회전하면 왼쪽에 김녕어울림센터가 있다. →잘 곳 지오하우스 1호, 2호점이 25일 길 열림 행사 당일 문을 열 예정이다. 김녕과 월정 지역의 지질 구조와 문화 등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와 소품 등으로 장식한 소규모 숙박시설이다. 김녕어울림센터에도 소규모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다. →맛집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한 지오푸드(Geo-Food)도 첫선을 보인다.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미냉국’과 ‘톳주먹밥’,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모자반과 조를 넣어 끓인 ‘몸죽’ 등을 맛볼 수 있다. 김녕리 부녀회 등에서 만든 양파즙, 우미, 한천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 새물공원을 내 집처럼 누리는 GS건설 ‘광명역파크자이’ 눈길

    새물공원을 내 집처럼 누리는 GS건설 ‘광명역파크자이’ 눈길

    축구장 약 20배에 달하는 크기의 공원이 단지 바로 앞에 위치한 ‘광명역파크자이’가 10월 14일 모델하우스를 오픈한다. GS건설이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일대에 공급하는 ‘광명역파크자이’는 총 1,211세대로 이뤄진 대단지 주상복합아파트·오피스텔로 구성되어 있다. ‘광명역파크자이’를 살펴보면 전용면적 △59㎡ 285가구 △84㎡ 440가구 △95㎡ 150가구 등 지하2층~지상 37층 7개동 총 875가구의 아파트와 지하2층 지상23층 1개동 전용면적 △ 24~25㎡ 273실 △ 39㎡ 63실로 총 336실로 이뤄진 초역세권 단지이다. 광명역세권 택지개발지구4블록에 위치해 KTX광명역과 바로 인접해 있고 지하철 1호선 광명역을 이용할 수 있는 더블 역세권 단지다. 광명역세권 내 분양단지 중 광명역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신안산선(예정)이 2022년 완공되고 강남순환고속도로와 광명~수원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서울과 수도권 접근성이 개선될 전망이다. -새물공원을 내 집처럼 누리는 그린 프리미엄 우수 다른 역세권 단지와는 다르게 단지 앞에 축구장 약 20배 크기에 이르는 새물공원이 조성된다. 새물공원은 안양시가 3,00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들여 박달하수처리장을 지하화해 그 상부에는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오는 2017년 1월 완공예정이다. 대규모 공원과 함께 수리산 공원 조망이 가능하다. 또 단지인근에는 가학산동굴, 도덕산 등 녹지와 등산로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주변환경을 통해 에코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명품단지이다. 단지 서측으로는 서독산이 위치해 있고 동측으로는 도보이용이 가능한 안양천이 위치해 있다. 그린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도록 쾌적한 혁신설계가 돋보인다. 모든 가구의 천정고를 10~30㎝ 높여 거실면적을 넓혀 답답함을 없애 개방감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쇼핑에서도 단연 최고의 입지를 자랑한다. KTX광명역 일대는 서울 서남부의 유일한 대형 쇼핑시설인 코스트코가 지난해 입점해 쇼핑메카로 유명세를 털치고 있다. 또 올해 말 세계적인 가구 전문점인 국내1호점 이케아(IKEA)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등이 문을 열 계획이어서 향후 미래가치가 뛰어나다. 입주는 2017년 7월 예정이다.분양문의 : 1644-9997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해외여행 |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해외여행 |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Vietnam Ha Long Bay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내가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하롱베이가 보여 준 어떤 풍경 때문이었다. 바다와 섬, 새벽의 안개와 밤의 별, 쓰다듬 듯 불어와 주는 바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스쳐가며 만들어 준 풍경. 그것들로 인해 이제 나는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롱베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70km에 있는 북부 통킹만 인근의 넓은 바다를 지칭한다. 석회암 지대가 오랜 시간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수천개의 섬들이 잔잔하고 투명한 바다 위로 솟아 있다. 섬과 섬 사이로 유람선을 타고 지나며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 넓고 신비로운 동굴과 기암괴석 등 자연의 신비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하롱’은 용이 내려왔다는 뜻이다. 베트남의 국립공원이며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하롱베이 사실 하롱베이에 뭐가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왜 하롱베이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오래 전의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봤던 바다와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을 뿐. 푸껫, 세부, 보라카이 등의 휴양지를 두고 굳이 하롱베이여야 하는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하롱베이로 갔다. 그저 어딘가에서 잠시 쉬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노이 공항에 내려 하롱베이로 향할 때 보았다. 숙소에서 준비해 준 승합차를 타고, 앉아서 가며 보았다. 천천히 달리는 베트남의 자동차들, 자동차를 추월해 가는 많은 오토바이들. 고속도로의 모든 차가 저속의 협약이라도 맺은 듯 느리게 달렸다. 물론 내가 사는 나라의 기준으로 그랬다. 시속 60km 남짓. 답답해 보였다. 좀 밟아요, 아저씨.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아직 베트남의 속도에 익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아직 여행의 속도에 진입하지 못한 것. 여행은 느려야 아름다운 법이니. 나는 천천히 맥주를 한 캔 마셨다. 깨어 보니 하롱베이였다. 호텔의 정문이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었다. 깨어 보니 ‘파라다이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답했다. “Here is your paradise.” 그래서였을까, 정말 파라다이스였다. 맑고 부드러운 남중국해의 바람. 유럽을 옮겨 온 듯한 호텔. 조금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항구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유람선들. 멀리서 찾아온 친구처럼, 저기 손 흔드는 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롱베이에 가면 누구나 유람선을 타게 된다. 낮시간 동안 짧게 인근해에 머물다 돌아와도 되고 하룻밤 또는 그 이상 바다에서 묵어도 된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에서 여행객을 기다린다. 호텔과 연계된 크루즈 상품을 미리 선택하면 편하다. 호텔 근처 선착장에서 쉽고 가깝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 유람선을 타고 항구를 빠져나가면 쉽게 섬의 바다에 닿는다. 먼 옛날, 외세의 침략에 맞선 용이 적들을 향해 뿜어낸 여의주가 그대로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기억하며 그 풍경 속에 젖어 든다. 그것이 하롱베이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롱베이에 간다는 것은, 바다 위를 아름답게 떠돌며 수많은 섬들과 직접 만난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려고 나는 하롱베이에 왔다. 짐을 풀고 바다로 나갔다. 크루즈에 올랐을 때 놀랐다. 당신도 놀라게 될 것이다. 호텔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침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의 몸으로 호텔이 떠서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침실과 바다 곁의 발코니. 텔레비전과 커피머신. 따뜻한 물이 끝없이 나오는 샤워룸. 커튼을 닫으면 호텔이고 창문을 열면 크루즈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돛을 펼치고 배가 움직이자 풍경이 다가왔다. 섬들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섬들은 나와 가깝고 또 나와 멀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섬들이 내게 다가오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어쩌면 그때 나는 섬이었고 하롱베이의 모든 섬들은 여행자였는지도 모른다. 수천개의 섬이 오히려 나를 여행한 것. 하롱베이에서 크루즈가 움직이자 오후의 바람이 한잔처럼 취하게 불고, 나는 그대로 섬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여행의 속도에, 하롱베이의 속도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섬이 내게 오는 속도와, 내가 섬을 지나는 속도가, 이 유람선이 바다 위에 안기 듯 나아가는 속도가, 나란히 내 삶의 평속이 된 것이다. 나는 느려졌고 느려지면서 느긋해졌고 더 오래, 길게, 하롱베이에 닿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쯤 나는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당신도 언젠가 하롱베이에 와야 한다. 섬들의 향연 속에서 내가 스스로 섬이 되는 놀라움을 느껴야 한다. 아니, 섬이 나를 마음껏 여행하도록 허용하며 생에 한 번쯤 내가 섬이 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작은 배로 갈아탄 뒤 내려 걷게 되는 신비로운 동굴과 어느 섬에 올라 바라보는 대양의 석양 속에서, 작은 배를 타고 다가와 과일과 음료수를 판매하는 현지인의 웃음 속에서, 붉고 노랗고 파란 현지인의 의상 속에서, 오랜 정박과 섬의 도열과 바람의 회항 속에서, 당신도 이제 하롱베이를 만나야 한다. 그때 당신은 나와 같이 하롱베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도시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나는 이야기한다. 그 밤, 크루즈에서 바라보던 섬의 어두운 실루엣과 저 멀리 하늘의 수많은 별빛을. 만져질 듯 가까워서 별을 향하여 손을 올렸다가 내린 사실을. 그 손으로 한잔의 술을 마시고 바다와 함께 취한 이야기를. 그 밤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깐 울어 버렸다는 고백을. 잠들지 못한 채 당신께 편지를 썼다는 말을.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바다의 가득한 안개 속에서 바라본 희미한 섬들은, 전날의 선명함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것은 현실 속에 이미 다가와 있는 추억 같은 것이었음을. 잊어야 할 것은 잊을 수 있고 잊지 못할 것은 더 선명해지는 풍경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이미 하롱베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취재협조 호텔앤에어닷컴 사진제공 Paradise Cruises ▶travel info Airline 하노이까지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베트남항공 등에서 매일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까지 4시간 30분,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리다. 공항에 내려 고속도로를 4시간쯤 달리면 하롱베이에 닿는다. 일반 버스를 이용할 경우 6시간 정도 소요된다. Luxury Cruise 하롱베이에 가면 누구나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신비로운 섬들을 관광하게 된다. 바다에서 하룻밤 이상 묵을 것인지, 짧게 인근의 섬들만 보고 돌아올 것인지를 선택하면 된다. 하루쯤 바다에 머무는 일정을 추천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크루즈 상품을 선택할 경우, 호텔의 시설과 서비스를 크루즈 안에서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크루즈에서 작은 배로 갈아탄 후 근처 섬과 동굴 등을 둘러보거나 카약 등의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하노이로 입국하여 하롱베이를 즐긴 뒤, 근처 앙코르와트 등의 도시를 여행하는 연계 상품도 많다. Hotel 하롱베이에서 즐기는 풍요로움 파라다이스 스위트 호텔 지금까지 하롱베이 여행은 은퇴 후 효도 관광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막상 하롱베이에 가보면 휴양을 즐기러 온 젊은 유럽 여행자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하롱베이는 유럽인들에게처럼 근사하고 럭셔리한 여행지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출발점에 호텔 파라다이스가 있다. 하롱베이 최초의 럭셔리 부티크 호텔 하롱베이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럭셔리 호텔이다. 크루즈 선착장과 가깝고 아늑한 경관으로 최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뚜언처우섬에 있다. 2008년 건설을 시작하여 최근 완공된 유럽형 부티크 호텔이다. 156개 전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높지 않은 가격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노이, 사이공 등 베트남 주요 도시 이름을 딴 4개의 건물로 구분되며, 옛 도시의 사진을 각층 복도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하롱베이 전통 음식은 물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1층에 있고 그곳에서 밤마다 유명 밴드의 공연이 진행된다. 피트니스센터, 스파, 컨퍼런스룸까지 다양한 부대시설도 갖춰져 있다. 편안한 여행을 즐기려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파라다이스 호텔의 경우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은 물론, 호텔과 연계된 다양한 여행 상품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롱베이 여행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크루즈 상품을 직접 운영하여 서비스와 가격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크루즈 상품의 경우 원하는 여행 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등급의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크루즈 내부에 호텔 객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시설도 훌륭하다. 호텔과 같은 침실 및 완벽한 냉난방, 객실별 샤워시설, 다양한 요리의 레스토랑, 선상의 일광욕과 바비큐 등의 서비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작은 배로 잠시 갈아탄 후 승솟동굴, 원숭이섬, 티톱 전망대 등의 연계 관광도 기본으로 제공한다. 프러포즈 등 나만의 특별한 이벤트를 원할 경우 신비로운 동굴 속 만찬도 선택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하롱베이 시티 투어, 골프 등의 연계 상품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Place 베트남 불교의 본산 옌뜨YEN TU 국립공원 하롱베이와 하노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백년 불공을 드려도 옌뜨에 가보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베트남 속담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유명한 산이다. 외세의 침략에 맞선 3명의 왕이 부처가 되어 산을 지킨다는 전설도 함께한다. 10여 개의 사찰과 수백개의 사리탑이 남아 있다.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수많은 인파가 소원을 빌러 찾아가는 곳이다. 봄마다 불교축제가 열리고 이때 수백만명이 찾는다.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탄 후 조금 더 걸으면 정상까지 오늘 수 있다. 중간 지점에 천년고찰 화옌HOA YEN이 있다. 계단을 걷는 도중 많은 사탑과 유적을 지나게 된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야 하므로 무릎이 안 좋을 경우 정상까지의 관람은 힘들 수 있다. 전설이 깊은 승솟SUNG SOT동굴 하롱베이의 섬 속에 있는 동굴이다. 무인도에 원숭이가 살고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긴 어부에 의해 1993년 우연히 발견되었다. 유람선에서 작은 목선으로 갈아탄 후 섬에 내려 조금 걸어 오르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스피드보트 등으로 동굴만 관람하는 코스도 있다. 길이가 100m를 넘을 정도로 넓고 긴 석회암 동굴인데 다른 동굴과 달리 석회암이 위로 자란다 하여 솟아오른다는 뜻의 ‘승솟’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랜 시간 석회암이 자라고 변형되며 기묘한 풍경을 이루었다. 가이드가 곳곳에 서서 동굴 벽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닮은 형상을 설명해 준다. 천궁동굴天宮洞窟이라고도 불린다. 신비로운 고립 원숭이섬HANG LUON 병풍처럼 둘러싸인 섬 한쪽에 낮고 좁은 구멍이 있고 그 사이로 작은 배 또는 카약 등을 타고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안쪽에 들어서면 섬 사이로 호수처럼 넓고 둥그런 공간이 나오는데 한쪽에 원숭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준비해 간 사과 조각을 던지면 원숭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먹이를 먹는다. 물결은 잔잔하고 기암절벽과 그 위로 푸른 나무들이 아름답다. 원숭이를 보러 들어가지만, 섬의 중심에 들어가 잔잔한 바다 위로 떠 가는 경험이 더 이채롭다. 중앙쯤에서 박수를 치면 그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바닷물의 수위가 올라가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우주비행사의 이름을 딴 티톱TI TOP섬 러시아의 유명한 우주비행사 티토프Gherman Titov, 1935~2000의 이름을 딴 섬. 그는 호치민이 러시아에 유학생 신분으로 머물 때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베트남에 초대된 티톱이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절경에 반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호치민의 배려로 섬 하나를 그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월남전을 대비하여 소련에 원조 및 비행술을 지원받기 위해 러시아 최고의 비행사 티토프를 초대했다는 말도 있다. 400여 개 계단을 한참 걸어오르면 하롱베이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잔잔한 바다 위로 아름다운 하롱베이의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저 멀리 유람선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섬 아래 인공으로 조성한 작은 해변에서 한가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파라다이스 스위트 호텔(베트남) Tuan Chau Island, Halong City, Quang Ninh Province, Vietnam +84 33 3842 368 www.paradisecruises.vn 호텔앤에어닷컴(국내)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91-1 02-310-2600 www.hoteln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Vietnam Dalat 달랏, 그 달달함에 대하여

    해외여행 | Vietnam Dalat 달랏, 그 달달함에 대하여

    Vietnam Dalat ‘달랏은 다르네’. 함께 여행했던 소설가 백영옥씨의 농담 같은 말이 계속 맴돈다. 선선한 공기, 언덕 위의 유럽풍 저택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푸른 호수. 이 모든 소소한 ‘풍경의 합’이 달랏이고, 그것은 베트남의 다른 어떤 곳과도 달랐다. 하지만 기자란 종족이 문제다. 덧셈 대신 소수분해를 하며 자꾸만 물었다. 달랏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냐고. 역시 농담 같은 내 대답은 이렇다. 달랏은 달다고. 공기도 달고, 물고 달고. 낮도 밤도 달다고. 달랏 베트남의 람동Lam Dong성의 성도로 람 비엔Lam Vien고원의 해발 1,50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 신혼 여행지로 ‘영원한 봄의 도시’, ‘작은 파리’, ‘꽃의 도시’ 등으로 불린다. 면적은 393.29km2, 인구는 2014년 기준, 약 30만명이다. 호치민 시내에서 약 300km 거리에 있으며 최근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이동 시간이 4~5시간으로 단축됐다. 영원한 봄의 도시를 발견하다 달랏으로 가는 길은 육지여야 한다고 했었다. 호치민에서 300km 정도니 먼 거리는 아니지만 포장도로가 없는 탓에 장장 6시간이 걸리는 오프로드 주행이라고. 특히 1,500m 고지로 올라가는 여정에서 커피를 볶는 고산부족도 만날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을 45분으로 줄여 주는 비행기를 선택한 탓에 ‘로드 무비’의 낭만은 날아갔다. 비행시간은 불과 50분.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공항에서의 첫 호흡은 푸른 빛이었다. 차갑고 맑았다. 1,500m 고지의 연중 평균 기온은 건기11~5월에 15℃, 우기6~10월에 22℃ 정도다. 후덥지근한 날씨로 악명 높은 베트남에서 에어컨 같은 도시다. 그래서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달랏 도심으로 가는 도로의 양쪽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솔숲이었다. 달랏은 남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소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이다. 잔가지가 없어서 키가 더 커 보이는 달랏의 소나무들은 대충 봐도 20m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달랏의 특별함에 먼저 주목한 것은 1858년부터 1954년까지 96년 동안 베트남을 침략했던 프랑스인들이었다. 베트남을 구성하는 54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랏Lat족과 마Ma족이 살고 있었던 달랏은 솔숲뿐 아니라 청정한 고원호수까지 품고 있는 살기 좋은 땅이다. 그 가치를 맨 처음 알아본 이는 루이 파스퇴르Pasteur의 제자이자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박테리아 학자였던 알렉산드르 예르신Alexandre Yersin이었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식민지 총통의 명령으로 달랏은 휴양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07년 첫 번째 호텔이 지어지고 별장도 꾸준히 늘어나 1920년대에는 2,000여 채의 유럽풍 별장이 있었으며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달랏은 앞장서서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투엔람 호수Tuyen Lam Lake 둘레로 리조트 단지가 조성되어 현재 37개의 리조트가 건설 중이다. 방문했던 에덴시 리조트는 일찍 공사를 마치고 운영 중인 3개의 리조트 중 하나였는데, 유럽 스타일의 가구, 명화 복제품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마치 유럽의 전원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반전은 이 호화 리조트들의 숙박료가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사실. 100달러 안팎이면 레이크뷰 객실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꽃을 키우고, 수놓는 마음 유럽인들의 별장촌이 리조트로 바뀌는 동안 농가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원래 달랏은 유명한 커피 생산지 중 하나였다. 프랑스인들이 겨우 찾아낸, 호치민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와 포도 생산지가 달랏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커피농사를 지으며 작은 카페까지 운영하는 소수부족의 농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폭우로 도로가 무너져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사향고양이가 만들어내는 누왁커피의 인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사향족제비, 다람쥐 커피까지 등장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달랏의 커피농장 수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작물은 수익률이 더 높은 고랭지 채소와 화초다. 달랏의 서늘한 기온은 아열대 화초들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 그래서 달랏은 ‘꽃의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달랏이 속한 람동성은 2005년부터 매년 12월10~18일 사이에 ‘달랏-꽃의 도시’라는 테마로 꽃 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때 몰리는 인파가 10만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도심의 인공호수인 ‘쓰언흐엉Xuan Huong·春香湖’의 주변을 밝히는 가로등의 디자인마저 꽃모양이다. 이 현상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1986년에 오픈한 달랏 꽃공원Dalat Flower Gardens이다. 고양꽃박람회를 연상케 하는 이 공원에는 장미, 베트남 토종 야생화, 네덜란드의 튤립, 일본 벚꽃 나무, 카멜리아 등 300여 종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어서 평소에도 베트남 여행자, 특히 신혼여객들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베트남 전통 자수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꽃이다. 달랏에서 자수 갤러리 겸 교육센터를 운영하는 XQ 빌리지XQ Historical Village에 가보면 자수로 그린 꽃들이 사진처럼 생생하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신의 바느질로 완성된 인물, 풍경, 정물들은 볼수록 신기하다. 갤러리 곳곳에 테이블을 놓고 자수 시연을 하는 여인들이 있는데, 자꾸만 그 손끝을 쳐다보게 된다. XQ 빌리지는 베트남 전통 자수공예 교육센터를 운영하던 부부아내 Hoang Le Xuan와 남편 Vo Van Quan가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1996년 달랏에 문을 열었다. 규모가 큰 전통 가옥 내부는 전시 공간과 휴식 공간 그리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교육센터로 나뉘어 있었다. 작품 전시뿐 아니라 최고급 실크와 아오자이만을 골라서 판매하고, 전통음악 공연도 보여 주기 때문에 베트남의 전통과 문화를 한결 고급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전 기억의 얼룩들 랑비안Lang Biang산을 향해 가는 길에 눈을 의심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어’ 하고 외치는 한 일행의 손가락 끝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니 차창 밖으로 얼룩말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 얼룩말이라니! 당황하여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가이드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칠한 거예요!’ 말하자면 보디페이팅이라는 것이다. 듣고도 잘 믿기지 않았던 가짜 얼룩말들을 무리로 다시 만난 것은 랑비앙산 입구에서였다. 산비탈에 세워진 랑비안 글자판 주변엔 얼룩무늬의 조랑말들과 카우보이로 분장한 마주들이 사진 모델을 자처하고 있었다. 랑비안은 유럽인들이 즐겨 찼던 사냥터였다는데 그들이 이 가짜 얼룩말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좌석으로 개조한 지프차의 짐칸에 앉아 덜컹거리며 라다 정상Dinh Rada까지 올라가는 동안 반갑지 않은 안개가 마중을 나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숲이 짙어질수록, 안개도 그러했다. 그러하여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발아래 달랏은 사라지고 없었다. 끄랑K’Lang과 흐비앙Ho Bian으로 불린다는 2개의 봉우리는 물론이고 해발 2,167m 정상부의 봉우리(총 5개) 중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서로를 간절하게 갈구하는 끄랑과 흐비앙의 조각상 주변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둘은 전설의 주인공이다. 랏족 출신의 청년 끄랑과 찔족 출신의 처녀 흐비앙의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두 부족이 화해하여 끄호족K’ho으로 합쳐졌다는 화해의 결말도 비슷하다. 고산부족의 아낙들이 노점에 베틀을 놓고 직접 만들어 파는 가방, 지갑, 머플러 등을 구경하다가 홀리듯 스카프 하나를 14만동VND 에 구입했다. 완성하는 데 3일이 걸렸고, 재료비만 10만동이란다. 어느 부분에 과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 돈으로 1만원도 안 되니 흥정 자체가 겸연쩍다. 그 베틀 하나로 3명의 자녀를 다 키웠다는 그녀는 모계사회의 가장이었다. 여자가 먼저 청혼을 하는데, 결혼 당시 그녀는 물소 2~3마리 가격에 해당했던 3,000만동(한화로 약 145만원)을 주고 남편을 데려왔다고 했다. 형제 여럿이 한 명의 아내와 살기도 하고, 상속권은 막내딸에게 돌아가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끝이 없지만 영업을 방해할까 조심스러워 곧 물러났다. 건축은 이야기를 전한다 얼룩말만큼이나 기이한 달랏의 또 다른 명물은 크레이지하우스Crazy House다(행야 게스트하우스Hang Nga Guesthouse로도 불린다).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도 울고 갈 것 같은 크레이지하우스는 무정형, 무규칙의 별난 주택이다. 촛농이 녹아내린 듯한 외관과 동굴 같은 내부의 건물들은 공중다리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안인가 싶으면 바깥이고, 1층인가 싶으면 2층이 되는 ‘크레이지’ 그 자체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은 호치민 시절 최후의 수상을 역임했던 쩡찐Truong Chinh의 딸, 당 비엣 야Dang Viet Nga로 모스크바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그녀의 ‘잉여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크레이지하우스다. 1990년에 시작된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인데, 자금 조달을 위해 일반에게 개방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운영하고 있으니 하룻밤을 청해 보시라. 톡톡 뛰는 아이디어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크레이지하우스가 건축적 명소라면 바오 다이 여름별장Bao Dai Summer Palace은 역사적 명소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Nga Yen의 마지막 왕인 바오 다이는 달랏에 3개의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일반에게 공개된 곳이 이 별장이다. 25개의 방이 달린 럭셔리한 별장은 행복한 삶의 무대가 아니었다. 바오 다이는 1945년 8월30일에 ‘식민지의 왕보다는 독립국가의 시민이 낫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속세의 권력이 다 무슨 소용이랴. 300여 명의 승려들이 생활하는 티엔비엔쭉람Thien Vien Truc Lam·竹林禪院은 풍황산에 포근히 안겨 있었다. 1994년 완공된 젊은 절이지만 호치민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하게 되는 곳이다. 호치민의 대통령궁을 설계한 건축가 응오빗투Ngo Viet Thu의 또 다른 건축물로 유명하다. 케이블카가 절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곳인데, 이념적 동맹국인 러시아의 관광객들이 특히 많았다. 사실 이 사원의 이미지는 시각이 아니라 청각에 더 각인되어 있다. 잠시 소나기를 피해 법당 마당에 서 있는 동안 어디선가 들려오던 맑은 울림. 그것은 여러 개의 소리통으로 만들어진 풍경이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풍경소리보다 아름다웠다. 달랏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작은 파리였고, 베트남인들에게는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였다면 내게는 끝이 없는 솔숲과 그 솔향을 품고 있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이 연주하는 청아한 풍경소리로 기억되는 참 참신한 베트남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www.vietnamairlines.com Dalat Flower Park 2 Phu Dong Thien Vuong St., Dalat, Lam Dong, Vietnam 7:30~16:00 +84 63 382 2151 XQ Historical Village 258 Mai Anh Dao, Dalat, Lam Dong, Vietnam +84 063 383 5265 www.xqhandembroidery.com Lang Biang 달랏 시내에서 12km 입장료 1만동VND, 지프차 1대 30만동VND 정상까지의 트레킹은 3~4시간이 소요된다. Hang Nga Guesthouse 3 Huynh Thuc Khang St., Ward 3, Dalat, Lam Dong, Vietnam 입장료 2만동VND 숙박료 싱글룸 34~47US$, 더블룸 47~84US$ Bao Dai Summer Palace Trieu Viet Boung St., Dalat, Lam Dong, Vietnam 7:00~11:00, 13:30~16:00 미화 1달러 입장시 신발에 봉지를 덧씌워야 한다. ▶travel info Airline 베트남으로 가는 빠른 길 베트남항공 달랏까지는 직항편이 없기에 호치민을 경유해야 한다. 베트남항공은 매일 인천과 부산에서 하노이 직항편을 띄우고 있다. 당일에 달랏으로 이동한다면 오후편(17:50)을 이용해야 하는데 호치민 공항에서 4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므로 시내로 나가서 마사지나 식사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 달랏까지 비행기로 50분, 자동차로는 4~5시간이 소요된다. 스카이팀의 10번째 회원사인 베트남항공은 현재 스톱오버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하노이나 호치민 여행을 함께 계획해도 좋다. 02-757-8920 www.vietnamairlines.com shopping 달랏 나이트 바자 달랏 마켓은 밤에 피는 꽃이다. 낮에 운영하던 상점들이 문을 닫고 나면 노점들이 장을 펼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축제가 벌어진 듯 풍선 아줌마, 솜사탕 아저씨들까지 등장하고 매캐한 연기를 피워내는 포장마차와 간식 노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서늘한 기온 때문에 달랏에서는 니트 의류를 많이 판매하는데 인형들도 모두 니트원피스를 입고 있다. 랑팜L’ang Farm 달랏의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식료품을 파는 체인점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달랏 커피.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달랏 외부 지역에서는 구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달랏 와인이나 주스, 또 다른 지역특산품인 달랏 딸기로 만든 쨈도 있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고구마, 바나나 등을 먹기 좋게 건조시킨 간식거리도 최고다. www.langfarmdalat.com Golf 시원하게 나이스샷 달랏 팰리스 골프 클럽Dalat Palace Golf Club 프랑스 식민치하였던 1923년 달랏의 중심부에 오픈한 골프장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중 하나다. 정치적인 요인으로 이후 개장과 폐장을 반복했던 골프장은 1995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낡은 시설을 개보수한 뒤 베트남 최고의 골프장으로 다시 등극했다. 장기 골프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달랏은 연평균 기온이 섭씨 21도이니 베트남에서 골프를 치기 좋은 곳 중 하나다. 18홀 기준으로 그린피는 주중 220만동VND, 주말 250만동VND www.vietnamgolfresorts.com restaurants 보랏빛 만찬 탄투이 레스토랑Thanh Thuy Restaurant 쓰언흐엉 호숫가에 위치하여 풍경이, 특히 야경이 멋진 레스토랑. 보랏빛으로 통일한 실내 분위기는 모던한 느낌이다. 저녁에는 실내석보다 야외 테라스의 인기가 높으며 특히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현지 맥주를 곁들여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02 Nguyen Thai Hoc St., Dalat, Lam Dong, Vietnam 063-353-1668 바람 부는 호숫가 물랑루즈 레스토랑Moulin Rouge Restaurant 쓰언흐엉 호숫가에서 눈에 띄는 풍차 건물을 찾으면 된다. 바로 옆에 있는 사이공달랏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주말이면 단체 손님만으로도 300석이 가득 차 버린다. 결혼식 피로연장으로도 사용되는데 가라오케, 당구장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02 Hoang Van Thu Street, Dalat, Lam Dong, Vietnam 6:00~22:00 +84 063 3556789 Hotel & Resort 호젓한 호수가의 유럽풍 별장 달랏 에덴시 레이크 리조트Dalat Edensee Lake Resort & Spa ‘베트남의 검은 숲’이라고 불리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투엔람 호수Tuyen Lam Lake가에 넓은 부지로 자리 잡고 있는 유럽풍 리조트다. 총 113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10개의 미모사 빌라(총 40실), 12개의 자스민 빌라(총 48실), 6개의 카멜리아 빌라(총 24실), VIP 빌라로 구분되는데 모두 독립 빌라 형태다. 호젓한 휴식에도 좋지만 크고 작은 미팅룸과 극장까지 갖추고 있어 기업 연수에도 적당하다. Tuyen Lam Lake Zone VII.2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83 1515 www.dalatedensee.com 앤티크가 주는 편안함 아나 만다라 빌라 달랏 리조트Ana Mandara Villas Dalat Resort 달랏의 어느 언덕에 남아 있던 프랑스인들의 별장 17채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리며 개조한 5성급 리조트다. 건물이 지어진 1920~1930년대에 구입한 가구들은 이제 모두 100년을 바라보는 앤티크가 됐고 벽난로도 여전히 작동한다. 방마다 크기도 구조도 다르므로 객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지만 마치 휴양림 안으로 들어온 듯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위기다. 야외 수영장과 스파도 있다. Le Lai Street, Ward 5,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555 888 www.anamandara-resort.com 달랏 최고의 럭셔리 호텔 달랏 팰리스 럭셔리 호텔Dalat Palace Luxury Hotel 1922년 달랏의 인공호수 쓰언흐엉 옆에 세워진 호텔로 당시에는 ‘호텔 드 랑 비엔Hotel Du Lang Bian’, 혹은 ‘랑비엔 팰리스 호텔Lang Bian Palace Hotel’이라고 불렸었다. 개보수를 거쳐 1995년 재오픈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스타일의 건축물은 100년이 지나도록 달랏 최고 호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총 43개의 딜럭스와 스위트룸으로 이뤄져 있으며 딜럭스를 기준으로 1박에 250달러 정도다. 12 Tran Phu St. Dalat, Lam Dong, Vietnam +84 63 3825 444 www.dalatresorts.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외여행 |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해외여행 |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Fall in Love with Vietnam 여행에서 돌아와 당신이 어떤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그 도시의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간 당신의 시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높고 아름다운 건물 그 자체보다 건물의 서쪽 벽면에 얼굴처럼 붉게 비추인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을 더 사랑하는 것. 아니면 어느 저녁, 숙소로 돌아가며 올려다본 하늘의 푸른 별,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던 꼬마아이, 끝없이 젖고 또 마르던 해변의 모래들, 멀리서 들리는 이국어의 함성들. 그렇게 당신을 스쳐 지나간 그 도시의 어떤 순간들을,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풍경이다. 장소와 시간이 연인인 듯 서로 껴안은 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한 순간. 그 찰나의 찬란함이 적금처럼 모여 쌓인 여행의 잔고들. 그 기억을 우리는 풍경이라 부르고, 쉽게 사랑에 빠져든다.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Vietnam Da Nang · HoI An 다낭 & 호이안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가. 너그러워져도 괜찮은 몇몇 휴양지에서도 이 문장을 스스로 완성시켜 보겠다는 듯 종종걸음을 치곤했다. 그렇게 나는 내 여행 세포가 기억하는 감각을 복기하며 다낭에 떨어졌다. 마음을 다잡았던 것과 달리 그곳에서 나는 한결 차분해졌다. 해변의 선베드, 노천카페의 앉은뱅이 의자, 고도의 담벼락. 그곳이 어디든 나는 비스듬히 기대 나른해지곤 했다. 다낭 & 호이안 다낭은 베트남 중부의 항구도시로 참파왕국, 안남왕국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지금은 해안선을 따라 리조트가 개발되면서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옛스러운 도시로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지금도 일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DaNang 오늘의 알람은 태양 다낭에서의 며칠, 단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요란한 휴대전화의 알람 대신 눈가를 실룩이게 만든 아침 해였다. 그러나 서울과의 두 시간여 시차를 생각하더라도 ‘am 06:00’ 글자 선명한 그 순간에 잠을 깨고 싶진 않았다. 뭉그적거리다 보니 다시 졸음이 밀려왔다. 침대 위로 쓰러지고 잠시 후, 잠결이지만 꽤 잘 자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잠에 쏟은 시간이 그다지 아깝지가 않을 만큼. 그래봐야 호텔 조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아침나절. 다낭의 태양은 아침을 거르게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베트남이라 하면 우리가 흔히 월남전이라 부르는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가 컸다. 다낭은 그랬던 베트남의 이미지를 오히려 낯설게 만들었다.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에 동쪽으로 바다가 두르고 있는 베트남은 북쪽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를 시작으로 무려 3,444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그들만의 문화유산과 풍광을 간직한 고도古都를 품고 있다. 그 가운데 아름답고 활기찬 분위기의 휴양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 다낭이다.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는 속이 알싸해지는 느낌을 줄 만큼 꽤 드세다. 다낭의 미케My Khe 해변은 그 끝이 어디쯤인지, 선 자리에서는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아득하게 펼쳐졌다. 몇 번 피해 봤지만 이내 파도가 두 발을 덮친다. 머리 가르마는 따가운데 발끝은 시원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동안에는 머나먼 타국에서 온 몇몇 여행자들이 해변을 독차지한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다낭에 주둔했던 미군들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아주 간단하게는 ‘향수’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구절. 풀이하면 전원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데 하루키의 어느 소설에서 보았던 그 구절이 떠올랐다면 너무 감상적인 것일까. 천국이든 극락이든 바라는 것은 매한가지 바다인 줄 알았는데 강이었다. 다낭 해변 안쪽으로 친근한 이름의 ‘한강Song Han’이 흐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꺼우롱Cau Rong·龍橋’ 주변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그 언저리에 눈에 띄었던 건축물이 있다. 고운 핑크빛의 다낭 대성당Chinh Toa Da Nang. 문을 밀어 보지만 꿈쩍을 안 한다. 기웃댔더니 자신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청년이 맨발로 뛰쳐나와 안내를 해준다. 정작 궁금했던 것은 ‘성당 안을 둘러볼 수 있나 없나’인데 본분에 충실한 이 청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성당으로 하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중세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한 고딕양식이라는 등 속사포로 설명을 한다. 순박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개 미사를 하는 일요일에 개방을 하고 다른 날은 방문객이 있을 때만 열쇠를 가진 직원이 와서 열어주는데 그 직원이 지금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고. 결과적으로 성당 안을 볼 순 없었지만, “괜찮아요, 그대의 친절한 안내가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니.” 시내를 살짝 벗어나면 차창 밖으로 대번에 고개를 빼게 되는 풍경을 마주한다. 다낭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응우한썬Ngu Hanh Son이다. 목썬Moc Son, 호아썬Hoa Son, 터썬Tho Son, 낌썬Kim Son, 투이썬Thuy Son 등 5개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응우한썬은 한자어로 오행산五行山이다. 각각의 봉우리는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을 상징한단다. 그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투이썬은 산길을 따라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동굴을 따라 관통하는 산이다. 흙벽에 새긴 부조와 동굴 곳곳 불상이 영험한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동굴 가장 아래 공포가 느껴지는 곳을 지옥, 동굴 속 깎아지를 듯한 156개의 계단을 타고야 맞이할 수 있는 전망대를 극락이라고 했다. 계단을 기다시피 극락에 올랐다. 응우한썬의 나머지 4개 봉우리와 그 아래로 야트막하게 내리깔린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피식 웃었지만 속에서는 부지런히 소원을 읊어댄다. 좋은 구경 실컷 하고 소원도 빌었지만 마른 목은 도무지 해결되질 않는다. 습하고 뜨거운 베트남의 낮 공기엔 ‘카페 쓰어 다Caphe Sua Da’가 정답이다. 철들지 않은 어린 양, 어리석은 중생에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맛볼 수 있는 노천카페가 곧 천국이고 극락이랄까. 무슨 사람이 그리 가볍나 핀잔을 줄지 모르겠으나 그거야말로 모르는 말씀이다. 이 커피 한잔을 제대로 즐기려면 나름의 내적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강하게 볶은 원두를 양철 필터를 통해 한 방울씩 추출한 베트남 커피는 에스프레소 샷보다 몇 배나 더 진하다고. 여기에 설탕과 우유 대신 연유를 넣어 차갑게 즐기는 베트남식 아이스커피가 바로 ‘카페 쓰어 다’. 극단적으로 쓰고, 극단적으로 단맛이 어우러지는 이 커피는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야 제대로. 조급하지 않게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HoiAn 고도의 싱그러움이란 소낙비가 내리던 오후,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다낭에서 25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호이안을 향해 길을 나섰다. 다행히 호이안에 가까워지자 비가 잦아들었다. 오늘의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를 유유히 흐르는 투본Thu Bon강과 지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호아이Hoai강변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그러나 16~17세기 무렵의 옛 호이안은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상선이 드나들며 크게 번성했던 무역항이었다. 호이안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레 마을은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색채를 품게 되었다. 베트남 고유의 문화적 토대 위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문화를 두루 흡수하여 조화를 이뤄낸 고도古都 호이안은 이후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덕분에 베트남 전쟁의 마수를 피해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마을 전체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때문인지 이 작은 마을에는 여느 메트로폴리탄 못지않게 다양한 낯빛의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강물 잔잔한 마을 가운데에 아치형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 ‘꺼우 라이 비엔Cau Lai Vien·來遠橋’이 있다. 호이안이 가장 번성했던 17세기, 특히 일본과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각각의 마을을 형성했는데 당시 일본 상인들이 돈을 모아 두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라이 비엔은 멀리서 온 친구란 뜻이다. 호이안은 이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구분된다. 다리 주변에 중국 복건성 상인들의 회합장소였던 ‘쭈어 푹 끼엔Chua Phuc Kien·福建會館’과 베트남 상인 ‘풍흥Phung Hung’의 고택 등 옛 시간을 머금고 있는 명소가 이웃한다. 호이안의 옛 거리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쨍한 색감이 인상적인 갤러리,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상점, 감각적인 디자인 숍 등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시간이 멈춘 고도라지만 호이안은 잿빛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낙비 때문만은 아닐 테다. 파스텔 톤의 건물과 푸른 잎사귀 무성한 가로수가 더욱 선명한 빛을 내비친다. 손잡고 걷거나, 나란히 자전거를 탄 젊은 연인들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자박자박 걷는다. 벽도 쓰다듬어 보고, 빗방울 매달린 나뭇잎도 건드려 보고. 베트남에서 느낀 뜻밖의 싱그러움. 이번 여행에서도 등 돌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비엣젯항공 VietJet Air, 02-399-4500, www.vietjetair.com ▶travel info Resort 다낭에서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안락한 잠자리는 물론이고 굳이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싶을 만큼 근사한 비치프론트 리조트에 머물렀던 것이 컸다. 어디 근사한 비치프론트 리조트가 한둘이냐 하겠지만 다낭의 해변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6대 해변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경쾌한 낮과 평화로운 밤 푸라마 리조트 다낭Furama Resort Danang 오아시스라고 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축 스타일에 베트남 전통 양식을 가미한 건물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리조트 중앙 뜰에 서면 코코스야자가 도열한 끝에 수영장과 백사장, 다시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차례로 주단을 펼친다. 수영장 끄트머리에 턱을 괴고 바라보는 박미안Bac My An 해변은 물론이고 그 뒷모습 또한 필름에 담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이처럼 태양을 즐길 줄 아는 투숙객들은 수영장과 해변을 오가며 다낭의 낮을 만끽한다. 다이빙과 스노클링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푸라마의 다이빙 센터는 마운틴 반도와 참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안내해 주는 다낭 유일의 다이빙 센터이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은 열대식물 가득한 정원 가운데의 라군 수영장 또는 스파를 이용하며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어낸다. 최고급 리조트답게 푸라마 스파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데 페이셜 아로마 케어나 전통 베트남 마사지 등 기본 타입의 경우 우리 돈으로 3~5만원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욱 만족도를 높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리조트 곳곳에 달아 놓은 등에 불이 들어온다. 한밤의 푸라마는 더욱 나긋나긋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시원한 맥주든, 은은한 와인이든 매일 밤 파도 소리 시원한 해변 테라스에 기대어 잔을 들도록 했기에. Truong Sa Street, Khue My Ward, Ngu Hanh Son District, Danang City +84 511 3847 333 www.furamavietnam.com 조용하고도 뜨거운 나절 라구나 랑코Laguna Lang Co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그룹이 2013년 11월 베트남 중부 랑코 해안에 ‘앙사나 랑코Angsana Lang Co’와 ‘반얀트리 랑코Banyan Tree Lang Co’라는 걸출한 리조트와 챔피언십 골프 코스, 마린센터 등을 겸비한 복합 리조트 ‘라구나 랑코’를 오픈했다. 다낭 도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때묻지 않은 해안가와 울창한 열대 우림 뒤로 높다란 산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진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뜨거운 나절을 보낼 수 있다. 베트남 후에 왕조의 성벽 창문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리조트 전반의 장식은 매우 감각적이다. 흙빛에 밝은 자색으로 포인트를 준 색감, 옻칠한 기물, 비단 자수를 놓은 직물 등이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홀에서 복도를 지나 객실에 이르기까지 반얀트리 호텔이 자리 잡은 세계 각지의 인상적인 풍광을 담아낸 사진과 그림을 내걸고 있어 리조트 전체가 세련된 갤러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마냥 널브러져 쉰다고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은 아니다. 너른 숲 한 켠에 나무를 심고, 리조트 내 수로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힘껏 굴리거나 바다 위에서 카약 패들을 젓는 동안에 맺힌 땀방울은 한층 개운한 기분을 들게 해준다. 모두 라구나 랑코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Cu Du Village, Loc Vinh Commune, Phu Loc District, Thua Thien Hue Province 02-2250-8051(한국사무소) www.angsana.com(앙사나), www.banyantree.com(반얀트리) Airline 베트남으로 가는 새로운 하늘길 비엣젯항공 여행의 설렘이 최고조로 달하면서도 얼마간 불안이 공존하는 비행시간. 국적기가 아니라면 승무원에게 사소한 도움을 청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2007년 설립된 베트남 제2의 항공사 비엣젯항공은 승객들에게 비행의 즐거움을 전하고 안전한 하늘길로 안내하고자 보다 젊고 발랄한 이미지로 단장했다. A320, A321 등 평균 기령 3년 이내의 최신형 기종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저렴한 항공 요금에도 불구하고 인천-하노이, 인천-다낭 구간의 경우 따뜻한 기내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한국인 승무원이 탑승하여 직접적인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호치민, 나트랑 등 베트남 내 8개 도시를 연결하는 국내선과 방콕,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도시를 오가는 국제선을 연계하면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9월10일까지 운행하는 다낭행 전세기는 매일 1회 11:05에 인천VJ8737을 출발해 14:30에 다낭에 착한다. 귀국편VJ8736은 01:50 다낭 출발, 08:00 인천 도착이다. 하노이 정기편VJ8977은 매일 11:05에 인천을 출발하며 14:10에 현지에 도착한다. 귀국편VJ8976은 01:45 하노이 출발, 07:55 인천 도착이다. ACTIVITY 시클로Cyclo는 우리의 인력거를 연상케 하는 바퀴 셋 달린 베트남식 소형 오토바이이다. 대중교통의 하나지만 요즘에는 이색적인 문화 체험으로 인기가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 비해 한결 호젓한 다낭과 호이안은 시클로 드라이브에 더없이 좋은 환경. 바퀴의 움직임과 강바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클로를 타고 골목골목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30분~1시간이면 충분. 호객행위가 상당하니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 대략 10만~30만VND. FOOD 다낭 여행자들이 꼭 찾아서 맛보는 음식이 있다. 베트남 쌀국수냐고? 다낭에서는 단연 미꽝Mi Quang이다. 다낭의 명물 면 요리로 면은 쌀로 만들었지만 우동 면에 가까울 만큼 오동통하고, 땅콩가루와 함께 국물 없이 자작자작하게 비벼먹는 양념장이 독특하다. 일종의 비빔쌀국수인 셈. 새우, 돼지고기, 닭고기, 해파리 등 고명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다낭 중심가인 한시장 주변으로 미꽝을 맛볼 수 있는 현지 식당이 많다. 가격은 2만5,000~4만VND.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묀헨글라트바흐는 인구 20만명에 불과한 작은 공업 도시다. 독일 북서부의 문화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쾰른, 뒤셀도르프, 에센처럼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묀헨글라트바흐는 루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도시의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다름 아닌 아프타이베르크 시립미술관 덕분이다. 역량 있는 젊은 화가들을 육성하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미술관은 표현주의부터 다다이즘, 팝아트, 미니멀아트까지 20~21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보여 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다른 유명 미술관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소장품도 자랑이지만 이 미술관의 세계적 명성은 중세의 수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 있는 미술관 건축물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미술과 자연, 건축의 멋진 조화를 보여 주는 미술관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에 의해 지어진 첫 번째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관 건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묀헨글라트바흐는 974년 세워진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원래 글라트바흐라는 이름이었다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도시와 구별하기 위해 1960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으니 이름만 보면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도시다. 2차 대전 후 독일 재건 과정에서 공업 중심지로 발달하면서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문화예술적 기반은 인근 도시에 비해 빈약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이 문화 향유의 기회가 많은 쾰른, 뒤셀도르프 등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1970년대 초에는 도시 공동화를 우려할 정도가 됐다. 시 당국은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는 방안으로 1904년 세워진 향토 역사관을 확대한 시립미술관 건립을 결정한다. 어떤 미술관을 세울 것인가가 문제였다. 쾰른에는 7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웅장한 고딕식 대성당과 수많은 미술관들이 있다. 뒤셀도르프는 독일 현대미술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명성의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을 비록해 K20, K21 현대 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가 풍부하다. 이런 인접 도시를 단번에 따라잡으려면 뭔가 폭발력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현대 유럽 건축계의 최고봉을 이루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한스 홀라인에게 설계를 의뢰하기로 한다. 후발 주자로 인접 문화도시를 대충 모방해서 뒤쫓기보다 그들도 깜짝 놀랄 만큼 최고로 멋진 미술관을 건립하고, 그에 걸맞게 아방가르드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시 당국의 과감한 결정은 과연 적확했다. 1982년 개관한 미술관은 시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 준 것은 물론 인근 도시들과 세계 도처의 미술·건축 애호가들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도시의 문화적 품격은 단번에 뛰어올랐고 잃어 가던 활기도 되찾았다. 이 도시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많은 유럽 도시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다. 훗날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는 “아프타이베르크가 없었다면 빌바오 구겐하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아프타이베르크는 독일어로 대(大)수도원을 의미하는 아프타이(Abtei)와 산을 의미하는 베르크(berg)가 합쳐진 것으로 미술관이 들어선 곳의 원래 지명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미술관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원 언덕에 있다. 기차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가 상업지구를 지나서 아프타이베르크로에 자리 잡고 있다. 주택가 뒤편에 있는 데다 경사지에 지어진 까닭에 도로 쪽에서 보면 외관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몇 층짜리인지,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여러 개의 칼날을 세워 놓은 듯 삐죽삐죽한 톱니 모양의 지붕을 한 회색 건물과 파사드가 반사 유리로 된 높은 건물이 이어진 형태는 공장 같기도 하고, 오피스 빌딩 같기도 하다. 입구는 명성을 듣고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방문객의 기대와 달리 너무나 평범했다. 내부로 들어가서 본 첫 인상도 마찬가지다. 중앙홀은 다른 미술관에 비해 좁아 보였고 어딘지 혼란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내부 공간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이런 실망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이 모든 것이 건축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장치였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한스 홀라인의 건축은 구심성을 강조하는 내부 공간 배치로 전시공간 체험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게 특징이다. 미술관은 그런 건축가의 콘셉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원형으로 펼쳐진 중앙홀의 양쪽 끝에 지상층과 반지하층으로 연결되는 흰 대리석 층계가 있다. 미술관이 들어앉은 지형을 살려 높고 낮게 설치된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크기에 다양한 모양을 한 전시실들을 끝없이 만나게 된다. 예측 불허의 공간에서 적절하게 설치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마치 보물섬의 다양한 동굴을 탐험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비교적 큰 그림들이 걸린 2층 전시장이다. 상층부는 자연광을 최대한 들여놓았다. 사선으로 잘린 천장의 빗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자연광이 눈의 피로감을 줄여 주면서 작품의 진의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한다. 중앙홀의 벽면에 설치한 커다란 거울 작품을 통해선 나선형 계단과 벽면이 데칼코마니를 한 듯 겹쳐 보인다. 즐거움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루할 틈 없이 작품 감상을 하고 나니 어느새 미술관이 문을 닫는 오후 6시다. 미술관 직원은 “정원의 조각박물관은 8시까지이니 안심하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도원에서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며 정원의 조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도원을 끼고 돌아 부드러운 곡선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내리막 경사지에 들어앉은 정원이 펼쳐진다.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려 만든 정원은 가파른 경사에도 불구하고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리막 중간에 미니멀리즘 조각이 설치된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고 초록색 잔디밭 군데군데에 현대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시민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살을 쪼이며 독서를 하기도 한다. 둥지를 찾아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은 저녁 공기 속에서 더욱 청아하다. 홀라인은 이 미술관에 대해 “건축가인 동시에 예술가로서 설계에 임했다. 전시되는 작품들의 예술성을 생각하는 건축가, 예술 작품으로서 건축물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입장이었다. 건축과 공간, 그리고 예술작품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했다. 건축을 예술로서 접근했던 홀라인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미술관을 올려다보았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수도원과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미술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수도원의 첨탑이 반사 유리의 효과를 내는 아연판의 미술관 건물, 콘크리트의 질박한 재질감이 드러나는 삐죽삐죽한 지붕으로 이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이 참으로 독특하다. 조각정원에 설치된 마우로 스타키올리의 원형 조각 작품을 통해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였다. 현대예술 작품을 통해 중세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직선과 곡선, 과거와 현재, 융합과 충돌, 자연과 인공처럼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미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된 건축. 홀라인이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해외여행 | GOTO 섬, 에메랄드빛으로 물들다

    해외여행 | GOTO 섬, 에메랄드빛으로 물들다

    비행기가 고토에 도착했음에도 그곳은 너무나 조용했다. 공항을 나서자 섬 특유의 짭짜름한 바닷바람이 불고 야자수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세월 숨어서 지켜 나가야 했던 그들만의 신앙이 있는 곳. 기도의 섬, 고토열도다. 일본인도 낯선 고토열도 나름 일본 전문가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 곳곳을 다녀 봤다던 일행들도 고토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가사키현에서도 서쪽으로 100km를 더 가야 하는 고토열도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지역이다. 간혹 한국에서 고토열도까지 찾아오는 단체가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숨어서 지켜 온 신앙의 흔적을 보기 위해 찾아온 가톨릭 신자들이라고. 고토열도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숨죽이며 믿음을 지켜 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낯선 가운데서도 왠지 모르게 주민들의 ‘바른생활’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른 저녁 일찌감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고,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고토열도에서 3일간 머무르는 동안 가장 번화하다는 시모고토下五島 후쿠에섬福江島의 중심가를 둘러봐도 시끌벅적함은 찾을 수 없었고, 편의점마저도 9~10시면 문을 닫는다고 하니 이만하면 ‘바른생활’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고토열도가 가톨릭 성지순례의 목적지가 된 데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고토열도가 속해 있는 나가사키현에는 총 137개의 성당이 있는데 그중 고토열도에만 50여 개의 성당이 있다고 한다. 나가사키현이 971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고토열도에 있는 성당의 숫자가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성당의 수가 많아서 발길이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랜 박해를 이겨내기 위해 숨어서 믿음을 키워 왔다는 사실에 많은 순례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간직해 온 신앙의 역사 고토열도에 가톨릭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선교사 신분의 의사였다. 1562년, 고토열도에는 병에 걸린 영주를 치료할 만한 의사가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이미 개항했던 세이히반도의 요코세우라에 있던 선교사에게 고토열도로의 의사 파견을 부탁했다. 고토열도로 파견된 일본인 의사 디에고의 치료로 영주는 완치됐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4년 후 포르투갈 국적의 수도사 알메다와 그의 제자 로렌소가 함께 고토열도의 남쪽에 위치한 시모고토下五島 후쿠에지구를 방문하게 된다. 일본에 서양 의학을 처음 들여온 인물이 알메다였다고 하니, 그의 풍부한 의료 지식과 영주와 영주 가족의 신뢰는 후쿠에지구뿐 아니라 이후 신카미고토新上五島까지 가톨릭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터준 셈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열도에서 타 종교의 선교는 녹록치 않았다. 1597년 시작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선교사 추방 정책으로 스페인의 산 페리호에 탑승해 있던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 26명이 처형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고토열도 역시 피해갈 수는 없었다. 순교한 선교사 중에는 고토에 거주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었다. 지속되던 박해는 16년 후 일본 전국에 금교령이 내려지면서 더욱 심해졌다. 후미에踏(み)繪(십자가 위의 예수나 성모마리아 성화가 새겨진 판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행위)를 행하여 기독교인을 찾아내거나 혹은 불교나 신사의 신도임을 증명하도록 하는 일종의 신분 확인서로 신앙조사를 실시해 나가사키현뿐만 아니라 고토열도의 신자들까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자신의 믿음을 숨기게 됐다. 기리스탄이 지킨 믿음의 섬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신자들이 다시금 모인 장소는 고토열도의 북쪽, 신카미고토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계속되는 박해에 신카미고토에 모여 불교 신자로 위장한 채 숨어 지냈다. 이들 ‘기리스탄キリシタン’(포르투칼어로 ‘그리스도의’라는 의미인 크리스탕cristao이 일본어로 전해지면서 변하여 가톨릭 신자를 일컫는 말이 됐다)은 산속 깊숙한 곳에, 혹은 높은 언덕 위에 성당을 지어 숨어 지냈다. 성당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평범한 가정집에서 신앙을 키우기도 했다. 그중 아리카와지구에 있는 ‘가시라가시마 성당’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도 등록돼 있는 성당이다. 1868년, 고토박해가 시작되면서 섬을 탈출했던 신자들은 몇년 뒤 박해가 끝나자 다시 고토로 돌아와 성당을 증축했다. 신자들이 직접 자른 사암을 쌓아 올려 만들어 일본 전역에서도 보기 드문 석조성당으로 자리잡았다. 성당 벽을 감싸고 있는 사암을 잘 살펴보면 글자 혹은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표시는 사암이 몇 번째 쌓아져야 하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신자의 이름이나 숫자 등을 돌에 새겨 놓은 것이라고. 성당을 증축하는 데 참여한 기리스탄들은 낮에는 성당을 짓는 봉사를 하고, 밤에는 고기잡이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 신심 깊은 생활은 7년에 걸쳐 이어져 마침내 성당을 완공시켰다. 와카마쓰지구에 있는 나카노우라 성당은 바다를 흙으로 메워 그 위에 지은 성당이다. 저녁이면 성당 외벽의 불빛이 바닷물에 비추어 ‘물거울 성당’이라 불리는데 와카마쓰항에서 10여 분 정도 해상택시로 이동하면 기리시탄동굴로 갈 수 있다. 깊이 70m, 폭 5m 정도의 십자가형 구조로 되어 있는 동굴 내부에는 벽에 성모상을 모시고 십자가를 새겼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곳곳에서 기리스탄들이 숨어 지내며 신앙을 키운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신카미고토에 있는 29개의 성당에서는 친절하게 성당에 대해 설명해 주는 안내자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무선인터넷Wi-Fi. 스마트폰을 이용해 각 성당마다 연결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에 접속하면, 성당의 역사에 대해 들려주는 동영상이 재생된다.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알차게 고토여행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양이슬 기자 취재협조 여행박사 www.tourbaksa.co.kr 살뜰하게 고토 여행하기 고토 여행자를 위한 ‘시마토쿠Shimatoku’화폐를 이용하면 5,000엔에 1.000엔짜리 지폐 6장이 들어 있는 한 묶음을 구매할 수 있다. 즉 5,000엔 주고 6,000엔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 공항, 터미널 등의 판매점에서 살 수 있으며 시마토쿠 표시가 있는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한번 구입하면 6개월까지 사용 가능하며 현재 시마토쿠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150개 점포. *주의! 시마토쿠화폐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종업원이 ‘직접’ 화폐를 떼어 내도록 해야 한다. 여행자가 화폐를 떼어서 주면 무효. 잔돈을 거슬러 받을 수 없으니 주의하고 종업원에게 화폐를 건네주기 전 몇 장 남아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 ▶travel info AIRLINE 고토열도는 나가사키를 경유해 가야 한다. 진에어에서 인천-나가사키 노선을 주 3회(수·금·일요일) 운항한다. 나가사키공항에서 다시 일본 국내선(ORC)을 이용하면 30분 만에 후쿠에공항에 도착한다. 고비용이라는 것이 단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나가사키항구에서 페리나 제트포일을 이용할 수도 있다. HOTEL 신카미고토초 고토 마르게리타 리조트호텔 Goto-Islands Margherita Resort Hotel 입구에 들어서면 심플한 로비와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일출과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 그날의 일몰과 다음날 일출 예상시간을 적어 둔 쪽지를 제공하는 세심함까지 갖췄다. 1층 이탈리아레스토랑Crossroads of Sky and Sea의 조식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81-959-55-3100 www.margherita-resort.jp 시모고토 고토 콩카나 킹덤 와이너리 & 리조트 Goto Con-Kana Kingdom Winery & Resort 온천과 스파, 에스테틱은 물론 와이너리까지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리조트. 코티지 객실로 이뤄져 있어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와이너리에서는 시음도 할 수 있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 보길 추천한다. +81-959-72-1348 www.conkana.jp TIP 고토열도의 수많은 성당을 둘러보기에 가장 적절한 교통수단은 자동차.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전기자동차인데 유명 관광지마다 충전소가 있어 어렵지 않게 충전이 가능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오늘의 눈] 자유 없는 ‘창조 경제’ 누굴 탓하나/이두걸 경제부 기자

    [오늘의 눈] 자유 없는 ‘창조 경제’ 누굴 탓하나/이두걸 경제부 기자

    시간은 곧잘 기억의 상당 부분을 망각의 동굴에 가두곤 한다. 하지만 2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야심 차게 내걸었던 구호가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창조경제였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은 아직 상당하다. 경제민주화의 구호는 메아리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창조경제는 정부 부처의 이름이나 각종 대책의 문건 구석에서나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창조는 ‘기존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인류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창조의 힘 덕분이었다. 인류가 창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명을 꽃피운 것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거친 뒤로부터다. 산업혁명은 시민혁명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시민혁명이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이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가 보장된 뒤에야 누구나 신분이나 절대 왕권 등에 구애받지 않고 창조를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창조의 힘은 최근 들어 더욱 중시되고 있다. 통섭이나 융합, 선도형 등 우리 경제의 대안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들은 모두 자유에 빚지고 있다. 특히 경제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영역에서 일종의 ‘공기’ 역할을 하는 인터넷은 자유가 극대화된 영역이다.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접근성이라는 인터넷의 특징은 정보 생산자나 소비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예 성립될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터넷에 기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기실 창조경제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인터넷에서 발언의 자유를 끊임없이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를 강화하고 카카오톡 메신저의 압수 수색까지 벌였다. 다음카카오 측은 올 상반기까지 정부에 147건의 감청 요청을 집행했다. 구호만 앞서던 창조경제가 갈팡질팡하는 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시장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이 부족한 한 사람에 의해 사회가 휘둘리는 것은 지금의 가장 큰 비극이다. 전근대적 ‘개인’과 근대적 사회의 충돌에 따른 피해는 우리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탓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개헌론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다음카카오 측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뒤늦게 고객 정보 보호책을 내놨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정부를 겨냥해 소송을 걸거나 ‘정부가 계속 실수하고 있다’고 일갈하는 미국 기업들의 ‘상식’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텔레그램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았다. 요즘 카카오톡 대신 많은 이들이 ‘사이버 망명’의 대안으로 선택하는 외국 모바일 메신저다. 친구 목록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기업인들은 물론 중앙부처 관료들도 눈에 띈다. ‘국산 카톡 대신 외국산 텔레그램을 쓰는 건 국익에 반하는 일’(새누리당 대변인)이라 한다. 그러면 텔레그램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이들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douzirl@seoul.co.kr
  • [씨줄날줄] 4만년 전의 손/문소영 논설위원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교수가 2011년에 펴낸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한국판이 2013년에 소개됐을 때 일부 독자는 다소 짜증을 냈다. 제목은 물론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라는 부제 역시 19세기 중엽부터 본격화한 서유럽과 미국 등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유럽 중심적 역사관이 상당히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영국에 패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경제의 규모가 서유럽보다 앞서 왔다는 ‘리오리엔트’의 저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 노스이스턴대 교수와 다른 시각이다. 프랑크 교수는 우연한 사건의 결과가 서양 패권을 가져왔다는 ‘단기 우연설’을 지지한다. 주류는 모리스 교수와 같은 시각으로,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장기 고착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로, 서양은 인류 발생 시점부터 변경 불가능한 결정적 요소들 덕분에 동양보다 앞서 왔다고 설명한다. 모리스나 다이아몬드는 특히 신석기가 시작된 1만 4000여년 전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동식물 분포가 풍요로웠고 전파도 극동의 중국보다는 서유럽에 유리하게 진행됐다며 ‘지리적 특혜’를 패권의 원인으로 손꼽는다. 또한 인류 발생지인 아프리카와 가까운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이나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 등의 진화과정에서도 서유럽이 지리적으로 더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4만 880년 된 스페인 엘 카스티요 동굴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가 발견되고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암각화나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의 사례를 들어 선사시대의 예술은 유럽에서 시작됐고, 인류의 추상적 사고도 유럽인의 특징으로 강조했다. 이는 17~18세기 계몽주의나 과학혁명, 산업혁명의 선도 등은 유럽인만의 이런 추상적 사유에 기반을 둔다는 주장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인도네시아 동남부 술라웨시 섬의 마로스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벽화를 연구한 논문이 실렸다. 이번에 발견된 동굴벽화는 3만 99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단다. 동굴의 종유석을 분석한 결과다. 손을 벽에 대고 붉은 물감을 뿌린 기법으로 흔적을 남긴 벽화로는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가늘고 긴 팔뚝을 가진 완벽한 다섯 손가락 벽화는 여러 방향에서 벽에 손을 올려놓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해 변화를 주었고 리듬감도 있다. 선사시대부터 유럽 거주자에게만 인간의 창조적 능력과 예술감각이 있었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깬 ‘4만년 전의 손’ 벽화가 반갑기만 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대형 항공기 날 수 있는 ‘세계 최대 동굴’ 화제

    대형 항공기 날 수 있는 ‘세계 최대 동굴’ 화제

    점보제트기가 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동굴이 발견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뉴스는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에서 세계 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대형 동굴이 발견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 쯔윈거투하촨동(Ziyun Getuhe Chuandong, 紫云格凸河穿洞) 인근에서 발견된 이 동굴의 이름은 ‘미아오 대형동굴(Miao Room cavern)’로 크기가 1078만 입방 미터에 달한다. 이는 대형 제트 항공기인 보잉-747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다. 본래 이 동굴은 지난 1989년, 유럽-중국 공동 지질학 탐사 팀에 최초 발견됐으나 규모가 워낙 방대해 정확한 크기는 측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영국 랭카스터 대학 연구진이 첨단 3D레이저 측량 기술로 동굴의 규모는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최근 그 방대한 규모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해당 동굴은 대형 항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높이 100m의 거대한 구역부터 크기 45m로 세계 최대로 추정되는 대형 석순(石筍)까지 존재한다. 석회암 퇴적물 두께로 측정한 동굴의 최초 생성 연대는 약 6억 년 전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미아오 동굴은 크기가 워낙 방대해 3D레이저 측정법으로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견된 규모만으로도 이미 세계 최대 크기로 알려져 있는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동굴(Sarawak Chamber) 크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보잉 747기가 날 수 있는 ‘세계 최대 동굴’ 발견

    보잉 747기가 날 수 있는 ‘세계 최대 동굴’ 발견

    점보제트기가 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동굴이 발견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뉴스는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에서 세계 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대형 동굴이 발견됐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구이저우성(贵州省) 쯔윈거투하촨동(Ziyun Getuhe Chuandong, 紫云格凸河穿洞) 인근에서 발견된 이 동굴의 이름은 ‘미아오 대형동굴(Miao Room cavern)’로 크기가 1078만 입방 미터에 달한다. 이는 대형 제트 항공기인 보잉-747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다. 본래 이 동굴은 지난 1989년, 유럽-중국 공동 지질학 탐사 팀에 최초 발견됐으나 규모가 워낙 방대해 정확한 크기는 측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영국 랭카스터 대학 연구진이 첨단 3D레이저 측량 기술로 동굴의 규모는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최근 그 방대한 규모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해당 동굴은 대형 항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높이 100m의 거대한 구역부터 크기 45m로 세계 최대로 추정되는 대형 석순(石筍)까지 존재한다. 석회암 퇴적물 두께로 측정한 동굴의 최초 생성 연대는 약 6억 년 전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미아오 동굴은 크기가 워낙 방대해 3D레이저 측정법으로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견된 규모만으로도 이미 세계 최대 크기로 알려져 있는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동굴(Sarawak Chamber) 크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