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굴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육지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영남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23
  • “네안데르탈인은 인류 조상 아니다”/미 스토네킹 박사 주장

    ◎유전자 분석결과 현대인과 달라 인류는 과연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의 후손인가.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인류학자인 마크 스토네킹 박사의 유전자테스트 결과를 인용,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인간과 전혀 다른 특질의 계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하고 있다. 스토네킹 박사는 “3만년전에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은 2만여년 동안 유럽지역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종교배는 하지 않았다”면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하고 단언했다. 스토네킹 박사팀은 3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 뼈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의 염기서열과 5개 대륙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것을 비교·분석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세포의 구성단위.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세포핵의 DNA보다 복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점에 착안했다.연구팀이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화학적 구조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염기서열은 현대인과 달리 폭이 매우 넓다는 사실을 사실을 밝혀냈다.즉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이 인간은 보통 기본쌍 사이에 7∼8개의 차이를 갖고 있지만 네안데르탈인은 평균 27∼28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네킹 박사는 “네안데르탈인과 인간은 50만∼60만년전에 서로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혈통이 인간보다 4배 남짓 오래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1848년 처음 발견됐으나 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56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네안데르 골짜기(네안데르탈)에서 발견된 두개골.이 두개골은 크기가 작아 대형 유인원 또는 백치의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었으나 영국의 해부학자 킹은 이것을 원시적인 인류의 두개골로 인정,64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명명했다.그 뒤 벨기에의 스피(1886),유고슬라비아의 크리피나(1895∼1905),프랑스의 르 무스티에(1908) 등에서 잇따라 발견됐다.58년에는 중국 광동 근처에서도 출토됐고 61,64년에는 이스라엘의 아무드 동굴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골격이 발굴됐다.지금까지 30여개의 유적지에서 모두 50개체 이상의 네안데르탈인 뼈가 발견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 중국 낙산(세계 문화유산 순례:49)

    ◎높이 71m·어깨너비 28m 세계 최대 마애불상 우뚝/1,200여년전 해통 선사 첫 불사/90년동안 능운산절벽 깎아 완성/3강이 합수지점 수상사고 잦자 “부처님 법력으로 사고예방” 기원 사천성 낙산시 동능운산 서벽 서남봉에는 엄청난 석각미륵좌상이 있다.이 부처상을 가리켜 “산 하나가 불상이고 불상 한 구가 산”이라 하지 않았던가.이른바 낙산대불이라 했다.높이 71m,어깨넓이 28m,귀의 길이 7m,코의 길이 5.6m.발등 위에만 1백여명이 동시에 올라갈 수 있다.발톱도 사람 넷이 상을 펴놓고 마작을 즐길만한 넓이다. ○발등에만 100명 동시 올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낙산대불 자리 동능운산까지는 사천성 성도에서 3시간30분 남짓한 거리다.민강과 대도하,청의강이 합수하는 지역의 여러 묏부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온몸에 천년의 이끼를 법의처럼 입은 대불은 발아래 흐르는 강을 굽어보는 자세다.그래서 그림자가 늘상 강물 위에 어린다.그 강물과 건너편의 아미산 영봉들을 홀로 보기가 아까웠던지 양편의 절벽에다 작은 마애불을 떼로 거느렸다.그러나마애불들은 세월이 너무 흘러서 원래의 모습이 지워진지 오래다.다만 대불 양편 바위 위에 새긴 10여m 크기의 두 금강역사상만이 큰 눈을 부릅떴을 뿐이다. 대불을 조성한 시기는 지금부터 1천190여년전인 AD 803년.우리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당 현종때인 713년에 해통이란 선사가 처음 불사를 폈다.그리고 나서 당나라 사천 절도사 장구를 거치고 다음 절도사 위고때에 회향됐다.산 한면을 깍는 불상 조성은 90년의 세월이 걸렸다.사암석의 능운산 절벽을 깎아 조성한 불상이지만 여느 평지에서 다듬어다 조립한듯 정교했다.처음엔 전각을 지어 대불의 얼굴 상호만이 밖에서 보였으나 지금은 전각이 불타버렸다. 대불이 굽어보는 민강·대도하·청의강은 본래 수상교통로였다.지금은 운송 기능은 쇠퇴한 채 양자강의 지류로 그냥 흐르고 있다.사천 서남쪽과 성도,중경 등을 연결하는 대동맥이었으나 이들 세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머리는 물살이 워낙 급했다.그래서 사고로 인한 희생이 잇달았다.낙산대불에는 그런 수상사고를 부처의 법력을 통해 막아보자는기원이 담겼다.중생구제의 미래불인 미륵불 형상을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불을 조성한 해통선사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대불 조성을 위해 모은 시주에 탐을 낸 지역 벼슬아치가 돈을 요구했다.해통선사는 돈 대신 자신의 두 눈을 주었다는 것이다.그 벼슬아치는 결국 잘못을 뉘우쳤는데 예나 지금이나 탐관오리는 어디나 기생했던 모양이다.이 절 이웃에는 해통선사가 수련했다는 동굴과 그의 소상이 자리했다.그 소상밑에는 “내 눈은 빼어줄 수 있지만 부처님을 섬기는 재물을 얻기는 어렵다”는 글이 써 있다. ○능운사 18나한상 유명 낙산대불은 물론 규모가 크다.그러나 당나라 전성기 중국 건축예술의 정수라는 점에서 더욱 값진 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중생을 언제나 자비롭게 내려다 보는듯한 눈길은 이 불상의 백미다.아무리 크다하나 머리에서부터 다리끝까지 나무랄데가 없다.그 높기만한 불상을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몸매는 균형이 잡혔다.불두가 전체 키에 비해 너무 큰 14.7m나 되지만 올려다보는 사람들 눈에는 커보이지 않는다.그 비결 뒤에는 미리 계산한 설계의 지혜가 깔렸다.대불 양편에는 절벽을 깎아낸 500여m의 길이 있다.사람들이 오르내래며 대불을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능운산은 푸른나무들이 인상적이라 하여 청의산이라고도 했다.멀리서 보면 대불이 들어서 있는 능운산과 인접한 오우산은 부처가 드러누운 형상이다.대불 밑의 오우산과 대불 위의 능운산 입구의 13층 영보탑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오우산의 오우사 역시 당나라때부터 미륵부처를 모신 명사찰로 이름 나 있다.물길이 끊어놓은 능운산과 오우산 두곳은 다리로 연결됐다. 능운산은 대불을 조성하기 전부터도 뛰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불교의 명산이다.능운사라고도 하는 대불사는 천왕전과 대웅전·장경루,부속건물로 이루어진 대가람.대웅전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삼신불과 18나한상이 유명하다.천왕전 정중간에는 양쪽에 사대천왕을 거느린 미륵불상이 서서 오는 참배객을 맞았다.
  • 금수산궁전 조기완공 박차/중앙방송/군인외 일반근로자도 동원

    북한은 금수산지구 조성사업을 빨리 끝내기 위해 군인과 건설노동자들은 물론 정무원 위원회·부,공장·기업소 근로자까지 대거 동원하고 있다. 중앙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발휘해 금수산기념궁전 지구를 주체의 최고 성지로 보다 훌륭히 꾸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아미산금릉동굴,주택,원림녹화 등 성역화 조성사업에 정무원,근로자,학생들까지 동원해 노역배가를 다그치고 있다.특히 김정일은 최근 금수산지구 조성사업 조기완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이들 군인,건설자들과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보냈으며,주민들에게도 지원활동을 강화할 것을 독려하는 내용의 감사를 전달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비 ‘크루즈’/연인과 함께 추억 여행을

    ◎눈부신 백사장… 쪽빛바다… 원시 아열대의 풍치…/마닐라∼시코곤섬∼보리카이섬 잇는 뱃길 비경/낮엔 해상레저 밤엔 선상 민속쇼 등 ‘환상 파티’/코코넛 오일의 해변 마사지도 해볼만 호화 유람선을 소재로 한 ‘사랑의 유람선’(원제 LOVE BOAT)이란 TV 드라마가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치가 상승하면서 TV드라마 속에서나 볼수 있었던 ‘크루즈(Cruise·선상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내 여행사들이 동남아 크루즈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이 가운데 가격 등에서 비교적 부담이 덜한 필리핀 크루즈를 소개한다. 이 상품은 마닐라를 출발,필리핀 제도의 비경을 품고 있는 시코곤섬과 보라카이섬을 돌아 다시 마닐라로 돌아오는 것으로 배에서 사흘밤을 보내는 짧은 여정이지만 크루즈의 독특한 멋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크루즈는 낮에는 섬에서,밤에는 선상에서 지내도록 프로그램을 짠 것이 특징이다.섬과 섬을 옮겨다니며 섬마다 제각각인 풍광을 감상하고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여행특성은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점심때 마닐라항에서 출발,15시간정도 배를 타고가면 시코곤섬에 닿는다.시코곤은 원시의 아열대 풍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순박한 원주민들이 여행객들을 친절하게 맞아줘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100∼200m를 들어가도 허리밖에 차지 않는 산호바다는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격이다.특히 썰물때인 하오 2시쯤(현지시간)이면 마주 보이는 섬까지 걸어갈수 있다. 물론 각종 해상레저도 즐길수 있다.필리핀 전통목선인 ‘방카’를 타고 섬주위를 도는 ‘호핑’,구명조끼와 수경 등 장비를 갖추고 물속에 들어가 바닷속 풍경을 구경하는 ‘스노클링’,바다낚시 등은 스트레스 해소에 만점이다. 저녁때 승선,아침에 눈을 뜨면 세계적인 휴양지 보라카이섬이 눈앞에 펼쳐진다.이곳은 고운 백사장,바닥까지 드러나는 투명한 옥색 바다로 세계 여행전문가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해변”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의 길이는 7㎞.해상레저와 함께 코코넛오일을 사용한 해변 마사지도 일품이다.바나나보트와 제트스키 등 해상스포츠 메뉴가 시코곤섬보다 더욱 다양하다.오토바이를 타고 20분정도 가면 마주치는 ‘박쥐동굴’도 둘러볼 만하다. 크루즈의 또 다른 재미는 선상프로그램.승무원들이 펼치는 민속쇼와 여행객들과 어우러진 디스코 파티는 여흥을 한층 돋운다.또 야외풀장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즐기는 수영은 크루즈에서만 누릴수 있는 환상적인 경험이다. ◎여행정보/호핑·바다낚시 등 1인 6천∼9천원선/기온 30도 안팎… 여행 적기는 10∼월 마닐라∼시코곤∼보라카이∼마닐라를 오가는 유람선은 ‘마부하이 선샤인’호로 7천t급에 440명까지 태울수 있다.스위트룸,허니문룸,패밀리룸 등 다양한 숙박시설과 선상 풀장,노래방시설을 갖춘바,헬스클럽,뷔페식당 등이 있다. 마닐라 시내에서 하룻밤 묵는 것을 포함,4박5일 일정에 가격은 84만9천원.12월엔 마닐라∼엘니도∼보라카이∼마닐라를 경유하는 상품도 나온다. 섬에 닿은 뒤에는 자유여행 방식으로 진행된다.호핑·바다낚시·스노클링은 한사람에200∼300페소(6천∼9천원·1페소 30원)정도이고 제트스키는 15분 기준 600페소,4인 1조의 바나나보트는 한사람에 280페소정도. 밤에는 선장이 환영파티를 개최하는 만큼 정장 한벌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또 선상에선 국제전화가 1분에 12달러나 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통화는 육지에서 하는 것이 좋다. 해상스포츠를 즐길 때에는 카메라 등 바닷물에 약한 물품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카메라에 바닷물이 닿으면 곧바로 깨끗한 물에 카메라를 담가두어야 한다.기온은 30도안팎으로 무덥지만 호텔이나 선내는 에어콘시설이 잘 돼 있어 긴옷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여행 적기는 10월∼3월.여행문의 아일랜드 리조트 클럽(501­8978).
  • 인도 엘로라(세계 문화유산 순례:48)

    ◎불­힌두­자이나 3교 34개 석굴 웅대/6∼11세기에 걸쳐 2㎞ ‘신전’ 교별로 대역사/부처좌상·힌두여신상·마하비라상 등 안치 아잔타 석굴이 섬세한 벽화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면 엘로라의 석굴은 웅장한 조각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아잔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행은 엘로라로 향했다.아잔타에서 엘로라까지는 약 66㎞ 거리.인도산 택시 ‘앰배서더’에 몸을 실었다.엘로라로 가는 데칸고원 길은 미시령 고개 만큼이나 굽이굽이 이어졌다.차창 밖으로 보이는 데칸의 산허리는 레구르 토양 탓인지 온통 검붉은 빛이었다.길가에 듬성듬성 볼품없이 서있는 ‘베니얀 트리’ 또한 원숭이 볼기처럼 불그죽죽해 묘한 조화를 이뤘다.2시간 남짓 달렸을까.완만하게 경사진 바위언덕 위로 거대한 일자형의 동굴 무더기가 보였다.엘로라 유적이었다. 엘로라에는 모두 34개의 석굴이 장장 2㎞에 걸쳐 늘어서 있다.아잔타 석굴이 불교석굴로만 이뤄진데 비해 엘로라 석굴은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자이나교 석굴이 섞였다.불교석굴은 맨 오른편 1굴에서 12굴까지로 인도에서 불교가 점차 빛을 잃어가던 6세기 무렵부터 8세기초에 걸쳐 조성됐다.이 불교석굴들에 이어 6∼9세기경에 건립된 힌두교 석굴이 13굴에서 29굴까지 자리잡았다.30굴에서 34굴까지는 8∼11세기에 걸쳐 자이나교도들이 만든 석굴로 추정된다. ○1번∼12번굴 불교석굴 엘로라의 불교석굴은 10굴만 빼고는 모두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예배하는 공간을 갖춘 비하라식으로 되어있다.특히 5굴은 너비가 35.6m,길이가 17m나 되는 엘로라 최대의 비하라 석굴이다.2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석굴 내부의 닫집인 감실에는 부처의 좌상과 관음보살,다라보살,미륵보살 등이 가득했다.석굴안에는 조명시설이 없어 구석구석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다행하게도 굴 입구에는 알류미늄 판으로 햇빛을 반사시켜 안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그 몫은 으레 추레한 행색의 인도 노인들 것이었다.비록 가난하지만 신이 정해준 운명의 길을 아무런 저항없이 걸어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정신적 풍요가 넘쳤다. 엘로라의 불교석굴들에서는 아잔타석굴에서와는 달리 불교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불상을 중심으로 힌두교의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는가 하면 불상을 비슈바카르만,즉 천지창조의 주역인 힌두신으로 숭배하는 경우도 있었다.힌두교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불교석굴은 제6굴이다.석굴 문에 새겨진 힌두교의 강가 여신과 야무나 여신이 이방인을 맞았다.제단의 좌불상 옆에서는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도 만났다.부처와 힌두 여신의 ‘행복한’ 공존….그 옛날 신들이 함께 어울린 서양 헬레니즘 시대의 제신습합현상이 연상됐다.인도에서 불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엘로라 불교석굴은 종교야말로 ‘영혼의 나라’ 인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게 하는 단서임을 분명히 해주었다. ○카이라시시원 규모웅장 비교적 단순한 구조와 장식을 지닌 불교석굴과는 달리 힌두교 석굴은 웅대하면서도 고도의 기교를 살린 화려한 조형미가 두드러졌다.그 중의 백미는 카이라사나타 혹은 카이라시 사원으로 불리는 16번굴이었다.8세기 중엽 라쉬트라쿠타 왕조에 의해 공사가 시작돼 150여년에 걸쳐 만든 이 사원은 깊이가 83m,폭이 46m,높이가 35m에 이른다.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면적의 2배,높이는 1.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당시 인도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0세 전후였다고 하니 적어도 수대에 걸친 대역사였음에 틀림없다.이 석굴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덩어리를 깎아 만든 모놀리스다.더욱 경이로운 것은 바닥에서부터 위로 깎아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천정에서부터 바닥으로 쪼아 내려오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3층으로 된 건물 바깥벽에는 힌두교 신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온갖 형상의 부조물들이 장식돼 정신이 아뜩했다.특히 눈길을 끈 것은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형상화한 부분이었다.‘라마야나’에 나오는 악마 라바나는 히말라야에 있는 시바신의 거주지 카이라시 산을 통째로 들어올려 역발산기개세를 뽑낸다.이에 시바신의 아내인 파르바티는 화들짝 놀란다.그러나 시바신은 라바나가 치켜든 산을 한쪽 발로 지긋이 내리눌러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다.힌두사원의 조각들은 이처럼 시바신의 위업이나 ‘링가 워십’,곧 남근숭배를 다룬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자이나교 석굴 조각미 정교 카이라사나타 사원에서 북쪽으로 500m쯤 가면 자이나교 석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북쪽 끝에 주로 몰려 있는 자이나교 석굴은 힌두교 석굴처럼 힘찬 느낌을 주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정교한 조각미를 엿보게 했다.자이나교 동굴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32번 동굴이다.베다신화의 주신인 인드라의 회의장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가 안치됐다.마하비라의 상은 부처의 형상과 같았지만 반가부좌에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점이 달랐다. ◎여행가이드/현지 호텔 1곳뿐… 육식식단·술집낀 식당 이용을 엘로라로 가기 위해서는 봄베이 북동쪽에 위치한 관광기지 아우랑가바드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편하다.아우랑가바드에서 엘로라까지는 30㎞ 거리로,상오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지방버스편이 있다.요금은 8루피.엘로라의 버스정류장은 16번 동굴인 카이라사나트 사원앞 광장에 있다.이 사원앞 광장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포장된 길은자이나교 동굴들이 모여있는 북쪽끝과 연결된다.엘로라의 숙소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카이라스’라는 이름의 호텔이 단 한개 있다.이곳에서는 육식식단을 갖춘 술청 낀 식당도 이용할 수 있다.
  • 신조협려­대만 소프트월드사/‘평민신분’극복 무협세계‘1인자되기’

    ◎무예연마·사랑 ‘원사이드’ 진행/잇단 사건속 실마리/난이도 다소 높아 ‘신조협려’는 대만 소프트월드사에서 만든 RPG(롤 플레잉게임). 국내에는 지관(02­871­0812∼4)에서 한글로 바꿔 10월 중순쯤 내놓는다. 게임의 원작 시나리오는 김용의 무협소설.워낙 원작이 방대한 분량이라 이번에 나온 게임이 전편이고 곧 후편 제작에 착수한다. 평민인 주인공 ‘양과’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무협세계의 1인자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이 게임의 기둥줄거리다. 유년기부터 시작되는 양과의 피나는 무예 연마과정,사랑에 눈을 떠가는 과정,화산 정상에서 무공연마에 열중하다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속세를 등지게 되는 일 등이 흥미진진하게 표현된다. 이전의 RPG와는 달리 원사이드 진행방식을 택하고 있어 게이머는 무조건 주인공 ‘양과’를 선택해서 플레이해야 하는 점이 특징. 게이머는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데 실마리는 도처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한테서 얻게 된다.들은 얘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꼭 기억해둬야 한다. 게임 초반부는 어드벤처 형식으로 진행된다.이때는 양과의 무공이 아직 형편없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수많은 인물과 아이템을 찾아내는 이벤트가 들어 있다. 다른 RPG와 차별되는 것은 시나리오다.원작에 충실하게 만든 게임이므로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특히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장면장면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길과 동굴이 한꺼번에 배경으로 나올수 있는 장면에서도 동굴장면만 따로 처리했다. 이 장면에서 게이머는 동굴에 빠지게 되는데 스스로 아이템(갈고리)을 찾아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게임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전투장면은 3D로 처리하고 있다. 전투장면에서는 마우스로 아이템을 클릭하면 다양한 속성을 알 수 있고 필요한 아이템은 끌어다 사용할 수 있다. 게임안에 들어있는 무공초식(기본무공)은 전진검법에서 미녀권법,타구봉법,음란쇄혼장,옥녀소심검,천라지강세,쌍검합벽,쌍수호박 등 매우 다양하다. 시나리오를 중시하는 게임이라 그래픽은 그다지 뛰어나지않은 편.하지만 어린 동자들이 방으로 달려가 놀고 있는 모습,소가 풀을 뜯어먹는 장면,하품하는 장면 등은 애니메이션이 돋보인다. 16곡의 배경음악도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생각을 많이 하면서 플레이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김용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진행할 수 있다.
  •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화제의 책)

    ◎스페인계 문화의 전체상 빈틈없이 정리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푸엔테스가 쓴 라틴 아메리카 문화 개설서.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나 인상은 빈곤,실업,정치적 불안,외채,게으름 등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러나 라틴 아메리카는 정치적·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일궈왔다.이런 맥락에서 푸엔테스는 라틴 아메리카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탄생시킨 스페인을 알아야 하고,스페인을 알려면 스페인의 실체를 이루는 그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이 책에서는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서부터 로스앤젤레스 뒷골목의 낙서문화에 이르기까지 스페인과 스페인계 아메리카 문화의 전체상을 빈틈없이 살핀다. 스페인은 카를로스 1세와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펠리페 1세 치하의 100여년 영광의 역사를 갖고 있다.그러나 유럽역사에서 스페인만큼 이민족의 침략이나 지배를 많이 받은 민족도 드물다.선주민인 이베리아인과 켈트족의 이주,고대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식민지,카르타고의 속령,장기간에 걸친 로마의 지배,고트족 왕국,무어인의 침략과 지배 등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다.문화적인 면에서 볼때 스페인만큼 혼합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도 별로 없다.스페인의 문화는 한마디로 켈트­이베리아 문화,가톨릭 문화,이슬람 또는 유대문화로 대변되는 다양성과 포용의 문화다.푸엔테스는 이런 풍요로운 문화적 바탕과 상상력이 정치·경제부문에서는 왜 발현되지 않는지 안타까워한다.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인의 정체성에 관한 뼈아픈 자기성찰의 기록이기도 하다.서성철 옮김 까치 1만5천원.
  • (주)재미시스템개발‘개벽’/‘녹두장군’ 전봉준의‘동학 농민전쟁’

    ◎구한말 배경 고증통한 시대상/관군창고 점령→레벨 상승→잇단 사건의 출현 (주)재미시스템개발(02­362­8500)은 10월 1일부터 온라인 머드(MUD) 게임 ‘개벽’을 시범서비스한다. 그래픽이 지원되는 머드 게임으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 농민전쟁이 소재다. 여느 머드 게임처럼 특별한 시나리오는 없고,레벨 상승에 따라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나가게 된다. 채팅 위주로 진행됐던 기존의 머드게임과는 달리 RPG(롤 플레잉 게임)적 요소중 액션성을 강조한 점이 새롭다. 가장 큰 특징은 사용환경을 간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이동등 채팅을 제외한 모든 조작은 마우스 클릭만으로 가능하다. 머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나우누리나 유니텔에 접속한 뒤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면 자동으로 인스톨되어 쉽게 게임할 수 있다. 게임에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실존했던 민초들이 등장한다.고종이 즉위한 뒤 벌어지는 동학 탄압과 병자호란,갑오경장,청일전쟁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배경이다. 1871년 11월농민 이필제가 관군의 무기고를 습격해 체포된 뒤 처형당하면서 게임은 시작된다.결말부분은 1894년 고부군을 중심으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군영 창고를 탈취하는 것이다. 그래픽은 화려하지는 않지만,초가집,대궐,염전,서당,동굴 등을 통해 구한말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캐릭터는 8종류.농민,보부상,평민,양반,포졸 등이다.동학의 최고 지도자인 ‘접주’가 되는 것이 게이머의 1단계 목표다. 게이머는 주변의 다른 접속자와 함께 전략을 협의해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관군 창고를 점령하면 경험치가 상승하여 레벨이 상승하고 또다른 이벤트를 접하게 되는 식이다. 게이머는 주변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교류할 수 있으며 소문을 통해 정보를 생산할 수도 있다. 게임에는 다양한 아이템과 무기도 등장한다.무기중에는 죽창을 비롯해 동학농민전쟁때 실제 쓰였던 농기구도 나온다. 호스트 컴퓨터 1대당 최대 1천명이 접속해 동시에 게임을 즐길수 있다.현재 2대의 호스트 컴퓨터가 준비돼 있으며 앞으로 접속자가 늘어나면 더 확대할 계획이다.윈도95 전용.
  • 충북 수양개유적 10만평 사적지 지정

    ◎국내 최대규모… 중기 구석기∼초기 철기 망라/현재도 발굴 계속…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고’ 충북 단양군 적성면 매곡리 수양개유적이 최대규모의 사적으로 떠올랐다.문체부 문화재위원회가 지난 22일 사적으로 의결한 수양개유적은 모두 10만평.지금까지 규모가 가장 컸던 충남 부여군 송국리유적 4만평에 비해 2.5배가 더 넓다.이처럼 수양개유적을 대단위로 넓게 잡아놓은 이유는 점단위 유적에서 경험한 문화재보호의 한계성을 극복하기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중기구석기를 비롯 후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를 망라했다.선사문화(의 보고로 평가받는 보기드문 복합유적이다.지난 1983년 충북대 이융조 교수(고고학) 팀이 중기구석기유적을 발굴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유적은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그만큼 여러 시대에 걸친 선사문화유적이 수양개 곳곳에 분포되어 이번에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지로 의결한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긁개,찌르개,주먹대패 따위의 석기가 출토되었다.약 2만년전에 수양개로 들어온 중기구석기인들은 강가 자갈층 위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그 다음 단계에 수양개에 자리잡았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유적에서는 주먹도끼,찍개,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등의 석기류가 쏟아져 나왔다.특히 슴베찌르개는 약 1만7천년전의 수양개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검증한 바 있다. 수양개에서 나온 석기류의 소재는 거의가 판암,수양개유적은 다른 구석기유적과는 달리 석기제작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돌망치와 모룻돌 같은 석기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나온 석기제작소만도 자그마치 50군데를 찾아냈다.이는 구석기인들의 석기제작행위를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야생동물 젖소(원우) 정강이뼈에 물고기모양을 새긴 조각품이 나와 당시 구석기인들이 지닌 사유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 토기조각을 포함한 신석기시대 유물과 청동기시대 유물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더구나 지난해는 한반도에서 역사의 새벽을 연 초기철기시대의 삼한사회유적을 찾아냈다.이는 고고학계와 더불어 고대사학계가 수양개유적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모두 5만평에 이르는 삼한시대 마을유적으로 1차 발굴에서 집자리 26군데를 찾고 많은 유물을 거두었다.유물은 청동의기,철제 무기류와 생활용구,토기,옥제 치레걸이 등으로 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수양개유적은 남한강 상류의 강가유적.지금은 충주댐을 막아 유람선이 닿는다.이와 더불어 중앙선철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또 다른 구석기 동굴유적인 금굴,구낭굴,상시가 수양개와 이웃했다.그래서 이 기회에 남한강상류 선사골화를 한눈에 바라볼 ‘수양개 선사유적발굴관’을 세워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하자는 여론도 높게 일고 있다.
  • 인도 아잔타(세계 문화유산 순례:41)

    ◎승려들이 700년 쪼고 다듬은 석굴 ‘장관’/말굴모양의 600m… 30개 동굴 조성/화려한 벽화로 장식… 호화궁전 방불 세계적인 불교예술의 보고 아잔타의 불가사의는 장자가 꾸었다는 호접몽(호접몽)의 고사에 견줄만했다.현기증이 날만큼 까마득한 자연암벽을 뚫고 들어가 오직 불은만을 생각하며 700년 이상 깎고 다듬어 만든 종교적 신앙심의 결정체.그 앞에서의 벅찬 감흥은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7세기경에 걸쳐 조성됐다.이 석굴은 하마터면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8세기에 들어 불교가 쇠퇴하면서 그만 정글에 묻힌채 1천년 이상 방치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그런 아잔타 석굴에 한 영국군 장교가 ‘환생’의 기쁨을 안겨줬다.1819년 인도 중부 데칸고원 일대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던 존 스미스라는 영국군 기병대 장교가 그 장본인이다.야생 넝쿨속을 더듬던 그는 암벽 사이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동굴 안에는 휘황찬란한 채색벽화와 각종 조상들이 그득했다.그는 주위에 그런 동굴들이 온통 무리를 지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랐다.그렇게 아잔타 석굴은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다. ○기원전 2세기부터 ‘시공’ 아잔타 석굴은 인도 중부의 고도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0여㎞ 떨어져 있다.아잔타로 가는 교통요지인 아우랑가바드에는 아잔타행 지역버스가 하루 네차례씩 다닌다.30루피의 요금을 주고 버스를 탔다.버스는 데칸고원의 앙가슴을 파고들었다.고원의 뜨거운 땅기운과 쏟아지는 햇살,거무틔틔한 면화토가 이국정취를 자극했다.3시간 가량 달렸을까.버스는 아잔타 석굴로 올라가는 입구앞 정류장에 멈춰섰다. 데칸의 품안을 흐르는 와그라 강 협곡을 따라 늘어서 있는 아잔타 석굴은 말발굽처럼 구부러진 모습이었다.아잔타 석굴은 모두 30개에 이른다.장장 600m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석굴군에는 편의상 입구에서부터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그러나 그것은 연대기적인 순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잔타 석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번 굴이다.버스정류장 앞 돌계단에서 1번 굴까지는 불과 200m 거리다.허위단심으로 층층대에 오르니 왠 건장한 장정 둘이 옷깃을 잡아 당겼다.인도의 1인승 가마 ‘팰런킨’(palanquin)을 타라는 것이었다.집요한 그들의 손길을 간신히 뿌리치고 1번 굴까지 걸었다. 그 1번 굴은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돌에서 채취한 자연물감으로 그렸다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들로 장식돼 마치 호화궁전 같았다.이 벽화들은 세월에 절어 선연한 빛은 잃었지만 살아 숨쉬는듯 생동감이 넘쳤다.그중에서도 뒷 복도 왼쪽에 있는 ‘보디사트바 파드마파니’라는 보살그림은 단연 압권이었다.오른손에 연꽃을 한송이 들고 있다고 해서 지연화보살화로도 불리는 이 벽화는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그린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를 쏙 빼닮았다.기품있는 표정과 자연스레 흘러내린 곡선의 아름다움은 신조지교란 말을 실감케 했다. ○1819년 영군장교가 발견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1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전기동굴과 5세기 중엽부터 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후기동굴로 나뉜다.연대순으로 보아 가장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0번 석굴이다.전기 동굴은 이른바 무불상시대에 조성돼 본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대신 중앙에 거대한 돔을 연화대위에 두었다.좌우에는 회랑형식으로 기둥을 깎아 놓아 통로로 삼았다.10번 석굴은 ‘차이티야’,곧 불사리탑인 스투파를 모신 탑원식 예불당이다. 차이티야가 불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동굴이라면 ‘비하라’,곧 승원식 동굴은 승려가 살기 위해 만든 요사채 형식의 동굴이다.이 양식을 대표하는 것이 12번 석굴이다.굴안에는 바위를 쪼아 만든 한평 남짓한 방들이 10여개나 벌집처럼 들어 앉았다.다리를 겨우 뻣고 눕기에도 비좁은 방안에는 돌침대까지 마련됐다.고양이 이마빼기만한 이 숨막히는 방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선정삼매에 빠져 수행정진하는 옛 선승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잔타의 벽화는 석가세존의 전생담인 ‘자타카(jataka)’와 그의 일생에서 소재를 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아잔타에서 가장 큰 비하라 동굴인 4번 석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28개의 기둥에 의해 실내가 지탱되어 있는 이 굴에서는 무엇보다 팔상도가 그려진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팔상도는 석가세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생동안 드러낸 여덟가지의 변상을 다룬 그림이다.싯다르타 태자 시절의 궁중생활이며 당시의 상가,악기,동물 등에 대한 묘사가 더할나위 없이 섬세했다.16번 석굴에서는 부처의 이복동생 난다의 아내 순다리가 남편의 출가수행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주목을 끌었다.이른바 ‘죽어가는 공주’ 벽화다. ○불당·요사채 형식 동굴 아잔타 석굴 벽화 중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17번 굴의 벽화다.탁발하고 카필라성으로 돌아온 부처를 맞이하는 야소다라 왕비와 아들 라후라 왕자의 애처러운 표정이 그대로 눈에 잡혔다.아잔타 석굴답사에서 결코 빼놓을수 없는 그림 하나가 더 있다면 열반상일 것이다.26번 석굴 출입구 왼쪽에는 길이가 7m에 이르는 인도 최대의 열반상이 누워 있다.오른손을 베개 삼아 평온하게 누운 부처의 얼굴에 청정무구한 불국정토의 상이 겹쳐졌다.오! 아잔타여.
  • 이집트 아부 심벨(세계 문화유산 순례:39)

    ◎람세스2세가 세운 웅대한 신전 ‘장관’/69년 아스완댐 건설로 3,200년전 신전 이전/나일강변 돌산 깎아 4년여 대역사끝 복원 1965년 5월 전세계 50여개국의 기술자들로 구성된 유네스코 작업반이 일강 서안의 작은 바위 절벽 아부 심벨에 도착했다.이들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대신전을 원래 자리에서 90m위쪽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착수했던 것이다.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이며 ‘태양의 아들’로 자처했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이었다. 모든 역사에는 명암이라는 양면성이 깔려있는 모양이다.파라오 중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영광과 이집트의 번영을 기원하며 세운 이 대신전은 수몰위기를 맞았다.람세스 2세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대대로 빈곤에 시달려온 이집트는 신전을 무시하고 아스완 하이댐 건설을 서둘렀다.1960년 1월에 착공됐다.아스완 하이댐 건설은 관개와 수력발전을 통해 이집트의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대역사였다. ○유네스코서 이전 작업 그러나 이 댐은 길이 500여㎞에 달하는거대한 인공호수 낫세르호를 만들었다.그리고 이로 인해 주변에 있던 수십기의 고대 무덤과 신전,기념물들이 수몰의 위기에 내몰렸던 것이다.유네스코가 무엇보다 긴장했던 것은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가 자신의 필생의 업적으로 만든 아부 심벨 신전이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이었다.마침내 이들은 신전을 통째로 바위산 위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바위 절벽을 깍아 만든 신전에 모두 1만7천개의 구멍을 뚫고 그안에 33t에 달하는 송진덩이를 밀어넣어 먼저 신전의 바윗돌들을 단단하게 굳혔다.그리고는 거대한 쇠줄톱을 동원해 신전을 모두 1천36개의 돌블럭으로 잘랐다.돌블록 하나의 무게가 30t에 달했다. 신전을 옮길 절벽 위쪽의 바위에는 그안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 2개를 만들어 덮어 단단한 인공 산을 만들었다.그 다음 신전의 재조립 작업이 시작됐다.1969년 2월,마침내 3천200년전에 탄생된 신전이 다시 완벽한 제모습을 갖고 안전지대로 옮겨졌다.4천2백만 달러의 공사비가 들었고 4년이 넘게 걸린 작업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신전의 수호신인 태양신 아몬의 기적이라고 말했다.지금 우리가 아부 심벨을 다시 보게 된 것도 바로 유네스코의 이 이전작업이 성공한 덕분이다.신전을 장식한 신상과 조각들은 완전한 형태로 재생됐고 다만 원래는 없었던 돌 블록들을 이어붙인 이음선들이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남부 이집트 누비아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아부 심벨까지는 카이로 공항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2시간 남짓 걸린다.아부 심벨 공항에서 신전까지의 20여분 거리는 왕복 버스가 운행하는데 이를 타고 2­3시간 신전을 돌아보고 나면 다시 이 버스가 공항으로 데려다준다. 버스에 내려 10분여를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미풍에 수면이 흔들리는 푸른 나일강을 끼고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돌산이 나타난다.강쪽으로 난 이 돌산 한쪽 면을 깍아 신전 전면을 다시 세웠고 큰 동굴처럼 돌산을 안쪽으로 깍아 신전 내부를 만들었다.신전 전면에는 높이 20m에 달하는 람세스 2세의 좌상 4개가 버티고 있다.얼굴의 좌우 길이가 1m는 족히 됨직하다.역학면에서는 거대한 람세스의 상 4개가 높이 30m가 넘는 신전전면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있다.왼쪽에서 두번째 상은 몸통과 머리부분이 모두 사라졌지만 나머지 3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신전 출입문 위에는 매의 머리를 한 여신 라 하크트의 상을 조각했다.출입문을 들어가면 길이 65m에 달하는 긴 인공 동굴이 나타났다.좌우로 8개의 오시리스 신상을 모신 복도를 지나면 신전의 가장 내밀한 방인 지성소에 도달한다.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신은 태양신 라와 나일강의 신 오시리스였다.파라오는 지상에서 태양신 라를 대신하는 존재였다.지성소에는 왼편부터 차례로 람세스 2세,아몬 라,그리고 하르마키스신,그리고 어둠의 신인 프타의 신상이 나란히 앉아있다. ○공사비 4천2백만불 소요 이 지성소에서 태양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안내인의 설명이다.매년 2차례씩,3월 21일과 9월 21일 상오 5시 58분이 되면 정확하게 태양빛이 신전 입구에서 지성소에 이르는 65m의 길을 밝혔다.그리고 나서 햐지나 아몬 라 신과 람세스 2세의 상에 햇빛이 닿았다.햇빛은 또 수분뒤 하르마키스신으로 옮겨가기까지 20여분을 지성소안에 머물었다.그런데 어둠의 신인 프타에는 햇빛이 비치는 법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수몰 위기를 피해 이 인공바위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이 태양의 기적은 여전히 계속됐다. 신전벽은 람세스 2세가 전장에서 거둔 혁혁한 승리의 장면들을 그린 상형문자와 그림들이 빽빽히 들어있다.가장 인상적인 것은 람세스 2세 재위 5년에 그가 북부 시리아족의 일파인 히타이트군과의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면이다.‘카데슈 전투’인데 그의 활약상이 잘 묘사됐다.이 승전기는 테베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에도 새겼다.카데슈는 지금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북서쪽에 위치한 요새였다.적의 매복 함정에 빠져 2천500대의 전차대에 포위됐다.그러나 태양신 아몬 라의 도움을 받아 단신으로 이들을 물리쳐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람세스 2세 신전의 옆에는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신전 하나가 더 있다.평화의 신을 모신 하토르 신전이다.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었다.람세스 2세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면 네페르타리는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왕비였다고 한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통해 람세스 2세의 위대한 힘은 왕비 네페르타리와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상형문자를 통헤 예찬했다. ○카이로서 비행기로 2시간 하토르 신전 전면 벽에는 람세스 2세의 상 4개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상 2개가 나란히 새겼다.이집트 역사상 왕비에게 신전을 지어 바치고 그 신전 전면을 왕비의 상으로 장식한 파라오는 람세스 2세뿐이다.태양이 되고자 했던 사나이 람세스 2세와 그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보다도 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노래했던 네페르타리 왕비와의 사랑.그 힘은 바로 아부 심벨의 신전을 탄생시켰고 또한 이 신전을 3천년 이상 지탱해온 원천이었던 것이다.
  • 설악산에 ‘온천테마파크’ 오픈

    ◎한화콘드단지내 5천평에 파도풀 등 갖춘 ‘워터피아’/유수풀·옥외레저스파·체력장 등 설치… 종합레저타운 설악산 관광권에 즐길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한화국토개발은 지난 19일 설악산 콘도단지내 5천평의 대지에 워터테마파크 설악워터피아를 개장했다. 지난해 4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5백억원을 투자했다. 워터피아에는 병풍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설악산 울산바위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온천을 즐길수 있는 노천탕과 남녀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바닷가 분위기를 연출하는 파도풀인 샤크블루,계곡처럼 물흐름을 느낄수 있는 유수풀,운동과 오락을 동시에 즐길수 있는 액션스파,수영을 즐길수 있는 규격풀도 들어서 있으며 100.7m,70.5m에 이르는 슬라이더도 곁들여져 있다. 이와 함께 바위탕,폭포탕,연인탕,해수탕,동굴탕 등의 시설에서 수영복을 입고 온천욕을 즐길수 있는 옥외레저스파,체력단련장,체온관리실,이·미용실 등의 시설도 갖춰져 있어 종합 온천테마파크로 부족함이 없다.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입구에서 코인을 구입,사용하도록 했으며 잔액은 현금으로 정산해준다. 사우나는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수영장 및 옥외 레저스파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8월25일까지의 성수기에는 어른 1만2천원,어린이 8천원이며 비수기에는 어른 9천원,어린이 6천원이다. 한화국토개발은 이번 설악워터피아의 개장으로 설악권은 여름한철 관광지가 아닌 사계절 관광지로 발돋음,연간 관광객이 1백만명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또 국내 최초로 콘도,골프,놀이동산,워터테마파크 등을 갖춘 복합리조트로 변모,동남아 시장은 물론 일본 등 해외 관광객 유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한화국토개발은 오는 99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옥외레저스파 2개소를 비롯 실버콘도(100실),빌라콘도(100실),관광호텔(180실)을 건립할 계획이며 2001년까지 볼링장,축구장,농구장,배구장,족구장,배드민턴장 등 각종 운동시설과 전문식당가,수변무대 등의 부대시설을 추가로 건설할 방침이다.(0392)635­7711.
  • 동경성의 대종교(송화강 5천리:27)

    ◎발해 도읍지서 꽃핀 민족종교/1930년대 본거지 구축… 동북3성서 독립운동/발해농장·이상촌 건립… 조선족에 살길 열어/단군섬이던 교인들은 일제탄압에 뿔불이/자금난 본떠 만든 궁궐터엔 깨진 기왓장만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은 해동성국으로 일컬었던 발해국에서 따온 지명이다.발해역사 229년동안 두 번이나 도읍지가 되었던 상경용천부는 바로 발해진에 있다.동경성이라고도 불리는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조영했다는 것이다.장방형을 이룬 도성은 외성과 내성,궁성을 갖추었다. ○궁궐터를 밭으로 개간 오늘날 남아있는 외성에는 버드나무가 길길이 자라 숲이 되었다.북쪽 외성의 길이는 5.5㎞,남쪽 길이는 5㎞,동서 길이 3.5㎞에 달했다.외성안에는 마차가 다니는 80m의 거리가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당나라 장안을 방불케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그리고 내성 역시 장방형으로 그 둘레가 4.5㎞에 이르고 있다.당시 삼성육부가 자리잡았던 내성에는 성터와 금원자리가 그런대로 남았다.이른바 어화원이라고도 하는 2만㎡의금원 자리에는 인공못과 조산흔적이 아직도 보인다. 궁성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궁성의 남문인 오문은 그 흔적이 뚜렷하다.오봉루로 더 널리 알려진 오문은 누각만이 없을뿐 높이 6m,너비 20m 규모로 잘 복원되었다.오문 북쪽 5개의 궁전터에는 크나큰 주춧돌만이 잡초속에 묻혔다.16부 130개 현을 호령했던 왕실의 권력이 오간데가 없는 이 황성을 누가 자금성이라 했던가.가장 큰 궁전터 동쪽에는 팔보 유리정이 있다.왕이 마신 어수가 솟아올랐다는 이 샘의 석축에는 이끼가 창연하다. 용천부를 두루 밟노라면 허무한 생각이 가슴에 쌓인다.세월과 함께 모든 영화가 사라진 궁궐 옛 터전에는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군다.그래도 누군가가 궁궐터를 밭으로 부쳐서 여름이면 옥수수가 검푸르게 자랐다.이 땅은 발해 이전에는 고구려 강토였고,더 올라가면 고조선의 영토였다.청나라때인 강희16년(1677년)에는 청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봉금구가 되어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변경민들이 사선을 넘나들었다.새벽에 강을 건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조선인들을 더이상 막을수 없게 된 청조는 이른바 「혼춘영고탑초간장정」을 반포했다.이는 조선족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영고탑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혼춘이 아니라 발해진에서 15㎞에 불과한 영안시에 있다.그래서 1889년께 이 일대에 조선개간민촌 고려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려영은 주로 영고탑성향으로 형성되었다. ○1889년에 고려영 형성 그 당시 조선인은 1천200∼1천400명이었다.이후 조선민은 더 늘어나 1930년에는 3천88명,1932년에는 1만2천767명을 기록했다.이들은 바로 중국 동북3성에서 독립운동을 거의 주도한 대종교의 기반이 되었다.그러다 대종교는 1911년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을 거쳐 1920년에는 흑룡강성 밀산시 당백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다녔다.1928년에 다시 흑룡강성 영안시 남관으로 들어온 대종교 본부는 1934년 발해의 옛 읍지인 영안시 발해진 동경성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종교는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기면서 조직과 기구를 정비했다.3·1학원을 세우고 발해왕궁터 바로 남쪽에 천진전을지었다.교주는 윤단애 선생이었다.그 무렵에 조만춘이라는 사람이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그런데 조만춘이 만주국 사법과 밀정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그의 밀고로 대종교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는데,영안시 삼량향 남향촌의 이인희옹(70)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그는 대종교 주요 멤버였던 이수원의 손자다. 『우리집은 대종교 총본사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디요.아침에 깨어보니 할아버지께서 본사에 다녀오신 모양입데다.그리고 나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일제가 동원한 경찰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디요.할아버지께서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식구들이 울면서 만류했디 않았겠습네까.다 잡혀갔으니끼리 뒤에 수습을 하셔야 된다고….그래서 피신을 하셨디요.식구들은 대종교 서적과 서류를 마대에 넣어 한족집에 맡기는 것도 보았디요』 단군을 섬긴 대종교인들은 거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영안시 동신촌 이병조(72)의 부친 이련건도 그런 분이었다.일제의 주구 조만춘의 유혹도 뿌리친 그는 옥중에서 동지들한테 보낸 한시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발해성터에서/무엇을 해야 할꼬/나라일 걱정에/하룻밤이 일년 같구나」.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망명지에서 어렵사리 살았던 우국지사들의 고뇌가 엿보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933년 동경성에 정착한 대종교 요인이다.동만농장 토지를 사서 발해농장을 꾸리기도 했다.당시 논을 개간하며 쌓은 둑은 지금의 아보저수지에 묻혀버렸지만,그가 「발해농장」간판을 걸었던 건물의 잔영은 남아있다.발해진 상경로 17호 발해진청사에 절반쯤 남은 건물이 그것이다. ○격변의 세월 한족촌 탈바꿈 안희제 선생은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었다가 이듬해 8월3일 병보석을 받았다.그러나 감옥문을 나선뒤 세상을 떴다.그는 동경성일대의 조선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생전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그와 더불어 추앙을 받았던 인물을 더 꼽으라면 김소래 선생이 있다.반일투사이자 교육가인 선생은 1928년 오늘의 영안시 와룡향 홍기임장에 이상촌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 한족들이 그 자리에 살고있다.김소래 선생을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본래가 조선족 이상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만큼 변해버렸다.지금 임장사무실로 쓰는 건물 뒤쪽으로 흐르는 실개천 건너의 언덕이 선생의 집자리였다고 한다.물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아마도 묵묘로 남았다가 세상이 바뀌어 자취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김소래 선생은 1933년에 피살되었다.선생은 피살전에 죽음을 예견했는지 몰라도 책과 서류를 산속 동굴에 감추었다고 한다.그런데 광복후 사냥꾼 이기송이 집으로 가져왔으나,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발해 도읍지의 독립운동사는 그렇게 역사 뒤안으로 사라졌다.
  • 「서유기」의 무대 연운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9)

    ◎“손오공의 출생지” 화과산 곳곳에 전설이…/삼원궁경내 현장법사의 기념관 우뚝/칠십이동 괴석원에 「저팔계」도 의젓이/지장암·숙성촌에 아직도 신라고승·무역상 체취가… 중국 4대 기서의 하나로 「서유기」의 발상지요,그 주연인 당승 삼장법사와 돌원숭이 손오공의 출생지인가하면 청대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혼성 아류소설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명작 「경화연(경화연)」의 산실은 바로 강소성 북단 항구인 연운항이다. 그곳은 명작의 무대요 산실일 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위도상 부산과 목포에서 줄곧 서쪽으로 황해를 건너면 닿는 곳.일찍이 당나라때는 신라 사람들이 무역하던 해상의 거점이요,신라의 고승들이 도를 닦느라 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신마소설로서 오승은(1504∼1582)의 「서유기」는 시작부터 황당무계했다.화과산 산상에 있던 한덩이 신선 바위.그 바위가 열리면서 알이 나오더니 석란은 바람속에서 돌원숭이로 변하고 돌원숭이는 수렴동 동굴속에서 동천복지를 발견,거기다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깃들이다가 그들로부터 「미후왕」으로 추대되고,그 뒤 천궁과 지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팔십일난을 극복,끝내 서천인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어오기까지 위기를 배제하고 요마들을 소탕하는 용감하고 슬기있는 손오공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그 돌원숭이 영웅인 손오공과 당승 삼장법사의 출생지인 화과산이 바로 오늘날 연운항시 동쪽 15㎞지점의 운대산이라서 거짓말같은 사실에 누구나 얼얼할 수 밖에 없다. 「서유기」그 첫회를 펼치면 12만9천600년을 1원으로 하는 천지의 역수로부터 망망묘묘한 혼돈의 세계를 말하면서 영기를 통한 원숭이가 태어난 화과산을 묘사했다. 「동승신주,해외일국토,명왈오래국.국근대해,해중유일명산,환위화과산.차내십주지조맥,삼도지래용,자개청탁이입,홍판후이성,진개호산!」 (동승신주의 바다 저쪽에 또 하나의 국토가 있나니 이름하여 「오래국」.오래국은 넓은 바다를 끼고 바다 한복판에 산이 솟았나니 이름하여 「화과산」.이 산은 십주의 할아버지요,3도의 기원으로 천지가개벽되어 청탁이 갈라진 뒤의 정말 명산이었다)고. 물론 중국에는 여러곳에 「화과산」이 있다.1982년 10월,연운항시에서 전 중국의 「서유기」전공학자들이 모여 제1회 「서유기」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지 답사와 많은 문물의 고증을 통해 연운항시외에 있는 화과산이야말로 「서유기」의 발상지임을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회안에서 불과 130㎞요,외가가 연운항인데다 오승은이 두번이나 화과산을 올랐다는 방증 외로도 「서유기」에 묘사된 화과산이 사실과 근접했고,「서유기」의 스토리가 연운항 일대에서 수백년 전래했던 전설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둘러 화과산으로 차를 몰았다.불과 20분에 작은 어촌을 방불케하는 화과산향에 이르렀다.거기서 동쪽으로 운대산의 주봉인 화과산(해발 625m)까지는 갈수록 비탈이었다.그 산구 왼편에는 대촌댐,댐옆으로 그 유명한 아육왕탑.그것은 40.6m의 높이에 9층8각탑,북송 천성1년(1023)무렵에 고대 인도의 아육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뒤 열네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탑.강소 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산구에는 높이 12m,가로 28m의 아치형 산문,거기에는 원숭이를 비롯,사자·호랑이·돼지·곰등 백쌍의 동물이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섰으니 과연 손오공의 고향임을 실감케 했다. 산문을 지나 선인교를 넘고 다시 남천문.한참을 오르자 사로탑,그 옆에 해발 580m의 청풍정에 운대산 그 복부를 굽어보는 삼원궁이 있다.삼원궁은 화과산의 가슴이다.당승 3형제를 기린다는 그 절에는 현장법사의 기념관이 있고 「서유기」의 유적이 모두 삼원궁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다. 거기서 동북으로 오르면 높은 벼랑에 동굴,그 동굴밖에 드리운 물줄기,이름하여 「수렴동」이라 일컫지만 물은 마른채 「고산유수」라는 각자가 선명했고,그 각자가 쓰여진 명·가정23년(1544)은 「서유기」의 저작시기보다 몇십년 빨랐다.수렴동에서 북으로 오르면 옥황각,내려가면 후원,그 아래로 칠십이동에 괴석원,물론 팔계석도 그 곁에 있다.그 괴석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유기」의 교과서를 읽는 양 흥미진진했다.어떤 것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에 유사했고 어떤 것은 억지 춘향인데,400여년전 여기 어디쯤 「서유기」를 구상하며 거닐었을 오승은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그렇게 오르내리다가 문득 만난 것이 문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본다는 정각­조해정에 이르렀을때,멀리 굽어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괴석들만 어수선했다.옳지! 이 화과산이 300년전엔 강소 유일의 해도에 솟은 산이었지.1668년의 대지진때 운대산 해안선이 북으로 14㎞나 이륙된데다 토사에 메운채 1700년대부터 벽해가 상전 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는 이 산이 출렁이는 황해속에 우뚝 솟았고 사슴과 여우가 뛰놀면서 기화요초와 송백·지란을 품에 안았겠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서쪽 골짜기 지장암과 숙성촌에는 신라의 중들과 신라의 선원들이 도를 닦고 부락을 형성했던 곳이다.하긴 조선 성종때 우리나라 최세진이 엮은 중국어교재인 「박통사언해」속에는 벌써 「서유기」를 소개한 바 있으니 해주(연운항의 옛 이름)는 여러모로 한·중 교류의 거점이었다. 화과산을서둘러 하산한 뒤,필자는 다시 남쪽으로 20㎞지점인 판포까지 단숨에 달렸다.「경화연」의 산실을 찾아서. 당나라 여황이었던 무칙천의 황제 찬탈과 붕괴과정을 겉으로 과거에 낙방한 당오란 사람이 해외 40여개국을 나들이한 견문과 당규신 등 백명의 재녀들이 여권을 신장하는 고사를 안으로 쓴 재자소설로 윤리성·애정성·사회성·무협성·철학성·풍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이여진(1763∼1830)이 스무살무렵 그의 고향인 북경을 떠나 이곳 포구에 와서 그의 불우했던 벼슬살이의 체험을 살려 20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1818년에 출판,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그 산실이 여운항시 판포진 동대가에 재현되었는데 지금은 비옥한 농촌이지만 당시는 소금을 만들던 염장.역시 상전벽해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경화연」속의 「군자국」이 예의지국으로 그려졌는데 그 군자국의 모델이 신라라는 설이 있어 우리 입맛을 다시게 했다.
  • 또다른 세상으로 화려한 외출/상품 다양해진 해외 패키지여행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언어소통이 자유로운 사람은 베낭여행도 좋치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각 여행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빼놓치 않고 즐길수 있다. 각 여행사에서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다양한 패키지 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지역별 전문 여행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패키지 투어를 소개한다. ◎유럽/바이킹 박물관·송네해안 등 북유럽 9일코스 가볼만/호화역객선 실제 타면 “환상” 누비라 세계여행사는 13년간 이탈리아에서 현지여행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유럽 전문여행사다.이 회사는 4개의 유럽 투어상품이 있다. 우선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영국 등 주요 4개국을 8일동안 여행하는 상품이 있다.출발일은 9일,16일 두차례 있으며 비용은 99만9천원.런던,파리를 거쳐 취리히를 들른뒤 밀라노,플로렌스,로마 등 이탈리아 주요지역을 구경하고 서울로 온다. 오스트리아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스트리아,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룩셈부르크,독일을 13일간 순회하는 코스를 이용하면된다.비엔나,짤즈부르크,인스부르크를 거쳐 이탈리아,프랑스,룩셈부르크를 경유한뒤 독일에서 서울로 온다.1백49만9천원. 북유럽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를 9일간 도는 코스가 있다.9일,16일 두차례 출발하며 경비는 2백59만원.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공원 등을 둘러본뒤 호화 여객선 실자라인을 타고 스웨덴으로 이동,바이킹배 박물과,송네피요르트 해안 관광코스가 볼만하다. 러시아와 북유럽을 15일간 일주하는 여행은 3백29만원이다.8일,15일,22일,29일 4차례 출발한다.모스크바와 성페테스부르크를 거쳐 헬싱키로 넘어와 핀란드,스웨덴,놀웨이를 둘러본뒤 덴마크,독일을 구경한다.연락처 738­7272. ◎일본/짧은시간 바람처럼 훌쩍/1박2일 온천코스 히트/비용 28만원… 샐러리맨 선호 일본은 온천의 나라다.게다가 우리나라와 지근거리에 있어 짧은 비행속에 실속있게 여행할수 있는 잇점이 있다.엑스포관광은 주말을 이용 둘러볼수 있는 상품과 4박5일간 순회하는 상품 등 다양한 패키지 투어를 선보여 고객들의 호응이높다. 지난해 개발한 1박2일 온천여행 상품은 제주도 여행경비로 온천과 관광지를 둘러볼수 있어 인기를 끈 힛트상품.토요일 상오 10시30분에 출발,큐슈 후쿠오카의 명승지를 관광한뒤 1박하며 온천과 일본 전통요리를 맛보고 다음날 일본 국립공원 아소산 분화구를 관광한뒤 하오 3시에 서울로 돌아온다.비용은 28만원으로 특별히 오랜 시간을 낼수 없는 샐러리맨,자영업자들이 선호한다. 큐슈의 벳부,오이타 등 온천지역을 3박4일간 순회하는 상품은 65만원선으로 매주 화,목,금요일 출발한다.동경에서 하꼬네,아타미,교토,나라,오사카,큐슈지역을 4박5일에 돌아보는 전국 일주코스는 99만원으로 매주 화요일 출발한다.2박3일간 동경,하꼬네,후지산을 둘러보는 코스는 65만원선이고 여기에 일본 신혼부부들의 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닛꼬에서의 1박을 추가할 경우 80만원선이다.매주 목,금,토 출발한다.오사카,교토,나라를 3일간 둘러보는 상품은 54만원선이고 4일에 둘러보는 상품은 69만원이다. 이 여행사는 동경,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의 왕복항공편과 호텔예약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행해주고 있다.연락처 732­5671. ◎호주·뉴질랜드/요즘 늦가을… 피서여행 제격/천혜의 풍광 만끽/번지·급류타기·승마 선택가능 호주·뉴질랜드 등 남반구가 묘한 매력으로 한국인들을 유혹하고 있다.지난해 아시아인중에서 호주여행객들이 한국이 제일 많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현재 남반구는 계절적으로 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들어 무더위를 피해 여행하기에 적격이다. 자유여행사는 호주·뉴질랜드 상품이 4개 있다.매주 금요일 출발하는 호주 5일 투어는 브리스베인,골드코스트,시드니를 도는 것으로 64만9천원이다.호주 멜버른과 시드니 사이에 있는 케언즈지역을 5일 순회하는 상품은 49만9천원이다.매주 수요일 출발하며 번지점프,급류타기,승마 등의 선택관광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원주민쇼와 스노쿨링,산호관광 등 이색 상품이 많아 인기를 끌고 있다. 8일간 호주와 뉴질랜드를 함께 순회하는 상품은 매주 화,금요일 출발한다.브리스베인,골드코스트,시드니를 거쳐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로토루아,와이토모 석회동굴을 관광한다.비용은 1백9만원.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을 8일간에 걸쳐 관광하는 상품은 99만9천원이다.매주 화,금요일 출발한다.연락처 7777­114. ◎여행·레저 이런것 준비하세요 여행이나 레저활동을 즐길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레저용품으로 장수하고 있는 상품을 소개한다. ▲가제보=계곡이나 해변가에 나가면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는 차양막이 필요하다.텐트 전문제조업체 버팔로 스포츠는 가제보라는 그늘막을 생산,시판하고 있다.오토캠핑은 물론 콘도,민박,호텔 등에 숙박할 때도 필요한 다용도 품목이다.보조차양막을 이용하면 유사시에는 텐트대용으로도 가능하다.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표면이 코팅처리됐으며 특수 가공원단을 사용,완전 방수다.3m×3m20㎝ 크기의 15인용을 시판중이며 돗자리와 차양막 포함 19만8천원이다.201­0670. ▲멘소래담 로션=영진약품의 멘소래담 로션은 소염진통제의 개념을 붙이는 것에서 바르는 것으로 바꾼 대표적인 레저 장수상품이다.운동선수와 레저활동시 필수품이 된 것은 물론 가정상비약화 됐을 정도다.피부에 붙이는 파스와는 달리 근육통이나 통증이 있는 부위에 바르게 돼 있어 편리하다.또 란트롤이라는 특수기재를 사용,침투력이 강하다.바르고 난뒤 30초정도가 지나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아 연고류나 젤류와 대비된다.100㎎,75㎎로션이 각각 4천860원,3천630원이며 따운 느낌을 제거한 쿨로션은 90㎎이 4천원.463­8131∼9. ▲성지문화사=승용차로 여행을 할 때 필수적인 것이 지도다.지도 전문제작업체는 전국의 도로,관광지,시가지도,여행정보 등을 수록한 전국도로지도를 출간한데 이어 서울,수도권,대구·경북,부산,광주·전남 등 지역별 도로지도를 잇따라 내놓아 손수 운전자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지역별 도로지도에는 아파트 동번호는 물론 관공서,교육기관 등의 일반 주기명이 상세하게 실려 있고 차량운행에 도움이 될수 있도록 차량회전방향,주차장,로타리이름 등도 담겨 있다.6천원∼2만원까지.795­9941·7200·1700. ▲얼음냉풍기=에어컨은 비싸고 선풍기는 오래 사용하면 더운 바람이 나온다.올 여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에어컨과 선풍기의 중간 정도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한은무역이 지난해부터 시판하고 있는 예티 얼음냉풍기다.얼음이 녹으면서 생기는 차가운 공기를 휠터를 통해 실내에 공급하는 것으로 얼음조각 250∼300개를 넣으면 4∼5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바람이 깨끗하고 시원해 노약자나 어린이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24만3천원.716­1993.
  • 불 작가 베르베르 신작 「개미혁명」/열린책들간

    ◎인간과 개미세계 이해·화합의 과정/3백여종 풀·벌레·짐승에 대한 섬세한 묘사/“자연과의 공생만이 인간 「생존의 길」 웅변 국내 독서계에 또 다시 「베르베르 신드롬」이 일까.지난 93년 소설 「개미」가 80만부 이상 팔리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심어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37)의 신작소설 「개미혁명」(1·2권,이세욱 옮김)이 최근 열린책들에서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미 선보인 「개미」가 인간세계와 개미세계의 만남과 대립을 그린 소설이라면,「개미혁명」은 두 문명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을 이루게되는 과정을 다룬 개미이야기 완결판이다. 전작 「개미」에서 개미의 생태계와 생활상을 상세히 묘사한 베르베르는 「개미혁명」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300여종의 풀과 벌레,짐승들의 세계를 박학한 동식물학자의 손길로 그린다.교미후 숫전갈을 잡아먹는 암전갈,물위를 걷는 소금쟁이,무엇이든 먹어치우며 이동하는 누리떼,개미들이 타고 강을 건너는 수련 꽃잎과 잎맥에 대한 박진감있는 묘사는 자연에의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 팬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 쥘리는 숲에 산책을 나갔다가 바위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그녀는 떨어진 곳 근처의 동굴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에드몽 웰즈의 책을 발견한다.쥘리는 이 책에 영감을 받고,자신을 구해준 「일곱 난장이」와 함께 록음악 활동을 한다.마침내 이들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개미식 혁명」을 꿈꾼다.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하는 끝없는 사건들로 점철된 줄거리는 「개미」에서처럼 독자들에게 고도의 두뇌게임을 요구한다. 베르베르 작품의 특징은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마치 개미가 쓴 것처럼 개미의 시각으로 씌여진 「개미」,개미문명과 인간문명의 충돌과 이해를 그린 「개미의 날」,개미들의 평화로운 진보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개미혁명」,세계 밖에서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탐사자를 다룬 「타나타노트」 등의 작품이 그 두드러진 예다. 문명의 맛을 본 사람이 자연과 친화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그러나 「개미혁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수면밑의 세계에서 수면위를 올려다보며 송장헤엄을 치는 벌레의 눈으로,혹은 잎사귀 하나를 먹기 위해 한나절을 기어가는 민달팽이의 시간감각으로,때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뚜기떼를 보고 오들오들 떨며 두려움의 수액을 내뿜는 풀잎사귀의 촉각으로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즐거움….이것은 무엇보다 작가의 놀라울만큼 섬세한 숲속 소우주에 대한 묘사 덕분이다. 1억2천만년의 역사를 지닌 개미라는 종과 3백만년의 역사를 가진 「손가락」이라는 종이 지금까지 진화해온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할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이 책은 자연과의 공생만이 생존의 길임을 웅변해준다.이번에 나온 1·2권에 이어 마지막 3권은 6월말경에 선보일 예정이다.
  • 기행문학 거장 서하객의 강음(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8)

    ◎기인의 거룻배 드나들던 선착장엔 물이끼만/험산심곡 떠돌며 쓴 「서하객유기」 실록문학의 백미/황산자락 전쟁유물에 처절한 비명소리 들리는듯 세상에는 닮은 꼴도 많다.나라의 넓이나 지역의 대소를 막론하고 남북의 대치가 아니면 동서의 갈등이 있다.땅덩이가 클수록 그 예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는 양자강을 두고 강남과 강북의 차가 현저하다.같은 강소임에도 남북의 차별은 심했다.소남사람은 소북사람을 깔보며 소북사람은 소남사람을 매끄럽다 흉을 본다. 소남사람들은 자기들이 중국에서 제일 잘 산다고 뽐을 낸다.그도 그럴것이 최근의 소득조사에서 중국 최부의 농촌으로 강소의 강음과 무석이 올랐는데 그 모두가 강남이다.그중에도 강음의 화서촌은 그 소득이 전국 최고,「강남제일촌」으로 불리는데 세대당 1년 저축고가 인민폐로 10만원대(한화 1백만원상당)라고 한다. 무석에서 정북으로 한시간쯤 달렸을때 오랜만에 산이 보였다.강음박물관을 돌아보고 바로 뒷산을 올랐다.황산이란다.황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서산,동쪽에 마안산,동남쪽에아산….모두가 양자강 남쪽 기슭에 물막이로 선 야산들.그러나 삼국시대부터 오나라의 강토를 지키는 요새로서 그동안 태평천국,신해혁명,국공전쟁 등 근대사에 승패를 가름하던 격전지였다.지금도 황산의 정상에는 철근 콘크리트 9층의 망강루가 우뚝 솟았고,망강루 북녘 기슭에는 일찌기 아편전쟁때 영국함대를 노리던 포대가 남아있고,남쪽 산자락에는 국공전쟁때 홍군이 전공을 올린 기념으로 「해방군도강기념비」가 오벨리스크모양의 높다란 첨탑으로 서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필자는 망강루를 올랐다.굽이치는 양자강이 망강루를 허리삼아 휘감았다.포대 서원으로 강북의 정강을 잇는 장강대교의 공사가 한창인데 휘 한바퀴 돌아보는 안막에는 누런 황금 벌.과연 옥토 낙원으로 김이 무럭무럭한 느낌이었다.불현듯 아까 강음박물관에서 보았던 대상의 하얀 이빨,그 화석이 생각났다.2만∼3만년전의 그 화석이 글쎄 여기서 멀지않은 저쪽 청양땅에서 출토되었다니 이 땅의 속살은 얼마나 까맣게 익었을까? 나그네는 서둘러 강음을 떠났다.강음에서 다시 무석으로 돌아가는 길가 마진이란 마을이 가고 싶어서였다.겨우 20분쯤 달렸을때,왼쪽 노변에 아닌게 아니라 커다란 안내판이 우람하게 서있다. 「서하객고향­마진」이라고. 또 한번 필자의 본병이 도진 것이다.그것은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그 병 말이다.그 사람,서하객(1587∼1641)은 필자보다 몇곱절 역마살을 타고난데다 여행기는 물론 암석·고산·하천·화산등의 자연관찰을 통한 지리학 연구에 세상이 놀랄만큼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본명은 굉조,호가 하객이다.바로 마진고을 침당하옆에 있는 남양지라는 작은 부락에서 태어났다. 중국문학사에서 유기의 지위는 대단했다.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선비가 여행기를 통해 정치·사회를 관찰하는가 하면 자연지리를 기록함으로써 자기의 포부를 펴거나 우주의 섭리를 터득했다.그래서 시인 묵객치고 유기 한편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는 평생을 두고 벼슬길에 기웃거리지 않았다.스물두살때부터 시작해서 쉰다섯살,그가 죽을 때까지 꼭 34년동안,그는 단 한개의 지팡이와 한장의 이불을 메고 강소·절강·안휘·산동은 물론 멀리 섬서·호남·광동·광서·귀주,운남 등 16개성,더구나 험산심곡을 헤맨 산새요,원숭이요,물고기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는 분명,기인이었다.가만 앉아있어도 먹고 살 걱정이 없을만큼 넉넉한 살림임에도 그 따뜻한 집과 어진 아내를 마다한 채 한닢 거룻배를 타고 물길 닿는대로 강남과 영남을 떠돌더니 기암과 괴석에다 화산과 지진이 불시로 천지를 폭발하고 천지를 갈라버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서남지역의 험산준령을 밟았다. 우리나라 김정호 비슷하게 탐험적 떠돌이였던 그는 40여만자의 「서하객유기」를 남겼는데 아깝게도 원저는 2백만자가 훨씬 넘는 대작이었다.일기체로 기록된 그 유기는 인간의 극한을 그린 실록문학으로서 최고봉임은 물론 암석학·지질학·지도학의 기초를 닦은 과학서로도 그 의의는 파격적이다.특히 그는 유기에서 석회암의 침식현상인 캐스트(cast)를 발견했고,양자강의 원류를 곤륜산 남쪽인 금사강으로 단정한 것은 모두 지리학적인 발견으로 학술사에 기록된다. 무엇보다 그의 유기는 생동한 묘사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들 수 있다.광서·운남등지에 산재한 동굴이나 동굴속의 종유석,그 핍진한 소묘는 문학가의 상상과 과학자의 투시를 융합 성공한 것이다. 그는 동굴속의 종유석을 이렇게 기록했다. 「정측홀도수일엽,평기반공,외여당문,주적대,상하빙허,각수십장,권서현철,박제선시,엽간분개공대,야안지결지(여유일기이에서) (천장에서 갑자기 커다란 잎새 한장 거꾸로 달랑거렸다.반공에 달린 시렁이 밖으로는 문과 기둥을 마주 본 채 위 아래로 각각 수십길을 서로 기대더니 엷은 매미의 날개처럼 그렇게 널찍히 매달려 있고,잎새 사이마다 커다랗게 뚫린 구멍은 마치 동그란 눈동자같았다.) 남양지는 들녘 복판에 있는 작은 부락.서하객의 고택은 물론 최근에 복구한 것이지만 기품이 당당했다.입 구자 네모꼴 가택이 200평은 족히 넘을 법한 민가.그는 여기서 낳고 여기서 성장했다.그의 34년에 걸친 탐험의 베이스 캠프도 바로 여기였다.그 탐험의 떠돌이는 갔지만 그의 손때가 묻고 그의 족적이 찍힌 두가지가 필자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하나는 그집 뜨락에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는 한그루 나한송과 또 하나는 그 집 대문밖 동쪽 100여m쯤 침당하옆으로 지금도 고색 창연하게 남아있는 선착장과 진솔 단출한 공수식 돌다리였다.하객이 평생토록 타고 다녔던 거룻배,그 배가 정박하고 출항하던 곳이 지금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희한했다. 그 두가지는 그 집 대문 서쪽 100여m쯤에 대궐처럼 높은 까만 기와 담장에 에워싸인 그의 무덤,「명 고사하객서공지묘」라는 묘갈에 큼직한 봉분,계화의 향기로 전중 단아한 묘역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 IOC 수뇌부 “음식쓰레기 줄이기 동참”/사마란치 위원장 선언

    ◎동아시아경기 환경대회로 서울신문사가 소비절약과 환경보호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음식쓰레기 50% 줄입시다」 캠페인이 「세계의 캠페인」으로 확산되고 있다.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대회에 참석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수뇌부가 서울신문의 캠페인에 적극 동참을 선언,참가 선수단이 실천에 나섰다. 10일 개막된 제2회 부산 동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김운용 대회조직위원장(IOC 위원·대한체육회장) 등 IOC 지도자들은 이 캠페인이 IOC가 범세계적으로 전개하는 환경보호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사마란치 위원장과 김운용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이건희 IOC위원(삼성그룹 회장),박상하 세계연식정구연맹회장 등 세계 스포츠계 지도자들과 문정수 부산시장 등은 이날밤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개회식 리셉션에서 서울신문사가 제작한 「음식쓰레기 50% 줄입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참가 9개국 500여명의 임원들을 대표해 적극 동참의 뜻을 알렸다. 김운용 대회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국내 최초의 환경보호 국제대회로 치를 것임을 이미 천명했다』며 『서울신문의 캠페인과 연계,환경대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사마란치 IOC위원장도 『질병과 전쟁은 물론 전세계의 기아해방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IOC로서는 음식쓰레기를 줄이자는 캠페인에 크게 공감한다』고 전제하고 『캠페인이 세계에 메아리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이어 『환경문제에도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IOC는 지난 76년 미국 덴버에서 열릴 예정이던 동계올림픽이 경기장 공사에 따른 환경파괴를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옮겨 치러진 이후 환경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94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때는 감자전분을 활용한 먹는 접시를 개발,음식 쓰레기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며 자연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천연동굴에 경기장을 건설하는 등 자연보호에도 앞장서 왔다. 한편 대회조직위는 선수촌에서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음식량을 면밀히 분석,필요량만을 제공하는 등 음식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 장석정 유개공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2000년까지 가채매장량 3억배럴 확보/19개사 41개 해외사업 참여… 투자회수율 78%/내년까지 비축량 43일분 확보… 수급안정 자신/대륙붕 개발 경제성 높이게 분지별 탐사로 전환 2기 연임체제에 들어선 한국석유개발공사(유개공) 장석정 사장은 요즘 「산유국의 꿈」을 현실로 구체화시키고 있다.무대는 국내 대륙붕이 아닌 해외 유전.올해부터 해외 유전개발을 가속화,2000년까지 3억배럴의 가채매장량을 확보한다는 야무진 계획을 갖고 있다.이를 위해 내부적으론 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하면서 외부적으로는 국내 업체와의 컨소시엄으로 해외유전 개발을 공략하고 있다.장사장을 권혁찬 경제부 차장이 만났다. ­유개공하면 국내 대륙붕개발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대륙붕 개발뿐 아닙니다.유사시에 대비한 석유비축사업과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해외 유전개발사업도 유개공 몫입니다. ○지분매입보다 직접개발 ­공사 경영은 어떻습니까. ▲95년 개발·시추·비축·정보 등 4개 부문별로 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했고 지난 해부터 비용절감과 수익증대를 두축으로 하는 경영혁신 프로그램을 추진중입니다.석유개발 부문은 이제까지 개발유전의 지분매입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개발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국내 유일의 시추선 두성호도 그동안 적자에서 올해에는 흑자로 돌아섭니다.비축분야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이어서 관리유지비 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도보다 50%정도 늘어난 2천3백84억원에 달했습니다. ­매출액 증가의 주된 이유는 뭡니까. ▲해외 유전개발 덕분입니다.지난해 3월 공사가 지분취득한 북해 캡틴유전과 국제 입찰로 따낸 페루 광구에서 하루에 1만배럴과 1만1천배럴이 한국 몫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캡틴유전의 경우 미국 텍사코사 보유지분중 15%를 공사와 한화가 각각 13.5%와 1.5%씩 나눠 총 2억1천만달러에 사들였습니다.페루 8광구는 아르헨티나 회사와 국내 컨소시엄이 공동으로 국제입찰에 참여해 지분의 40%를 획득했습니다.5천만 달러가 들었습니다.국내 컨소시엄 비율은 유개공이 20%,대우와 유공이 20%입니다.두 유전에 참여함으로써확보한 가채 매장량이 6백40만배럴에서 6천7백만 배럴로 대폭 늘어났습니다.유전개발은 비축과 매장량 확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가채 매장량을 확보하면 그 만큼 비축을 덜해도 되기 때문입니다.덕택에 우리나라의 원유자급률은 1.2%에서 2%로 높아졌습니다. ­유전개발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습니까. ▲공사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유개공의 신용도는 AA정도입니다.리보(런던은행간금리)에 0.6%를 가산한 수준으로 상환기간도 8∼10년으로 양호합니다.5억∼6억달러 정도 더 빌릴수 있는 신용여력이 있습니다.메이저들이 유개공에 유전매입 제의를 계속하고 있어 신용도가 허락하는 한 유전을 많이 매입해 나갈 생각입니다. ­국내 업체들은 몇개 회사나 유전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해외 유전개발은 81년 코데코의 인도네시아 서마두라 유전개발이 시초입니다.지난해말 현재 유개공을 비롯,삼성,현대,대우 등 19개 업체가 17개국에서 41개 사업에 참여중입니다.생산유전이 10곳,개발유전이 2곳,탐사가 29곳입니다.유개공은 생산유전 5곳과 탐사유전 8곳 등 13개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우리 업체들이 지금까지 총 17억1천4백만달러를 유전개발에 투자해 이중 13억3천1백만달러를 거둬들였습니다.투자회수율이 77.7%에 달합니다.수익성이 있다는 얘기죠.공사는 올해 탐사광구 2∼3곳,생산유전 1∼2곳을 새로 매입해 2천년까지 총 3억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두성호는 한동안 적자투성이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84년 시추에 투입된 뒤 지난해까지 90년(2억원 흑자)을 제외하고는 줄곧 적자였습니다.그러나 올 1·4분기중 7억원이 남아 올해는 흑자전환이 기대됩니다.공사가 94년 인수후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을 대상으로 적극적 마켓팅 활동을 편 결과입니다.지난해 연간 270일씩 조업하면서 하루 4만5천∼5만5천달러의 용선료를 벌었습니다.올해엔 조업일수가 10일정도 늘 것으로 예상돼 이익도 더 날 겁니다. ○7개 비축기지 내년 완공 ­석유비축량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바람직한 수준(60여일정도)에는 못미칩니다.현재 2차 석유비축계획(90∼98년)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3차 계획(96∼2002년)이 부지선정과 타당성 검토를 마친 상태입니다.3차 계획이 끝나면 2003년에는 60일분에 이릅니다.1차 계획(80∼86년)완료 이후 88년 66일분까지 올랐던 비축물량은 지난해 23일분까지 떨어졌습니다.유류소비가 증가한 반면 비축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지요.구리 평택 거제 등 3개 기지가 신설되고 기존 4개 기지가 증설됩니다.내년이면 총 비축물량은 9천1백16만배럴로 43일분에 달합니다.앞으로 2002년까지 총 1조2천3백여억원을 투자해 수도권 강원권 동남권 서남권 등 4개지역에 원유기지 4곳,비축기지 4곳을 건설할 계획입니다.충남 대산지역 등을 대상으로 입지선정을 마쳤습니다. ­기지당 건설·유지비는 얼마입니까. ▲건설비는 지상이냐,지하냐,원유냐,제품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지하기지의 경우 배럴당 18달러정도 입니다.유지비는 지하기지를 기준으로 대략 연간 배럴당 700원이 됩니다.지하비축기지가 5백만 배럴은 돼야 경제성이 있습니다.1천만 배럴정도의 비축기지를 건설하려면 대략1억8천만달러가 듭니다. ­비축기지 건설에 최대 애로는. ▲주민 민원입니다.곡성기지(제품비축기지)의 경우 94년 10월 입지승인을 받고 다음해 말 착공됐지만 주민궐기대회 6차례,농성 2차례 등 각종 반대로 공사가 지연됐습니다.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환경오염,누유,생활불편,지가하락이 기지건설의 반대이유였습니다.다른 비축기지를 견학시키고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기지의 안전성을 설득시켰습니다. ­국내 대륙붕 유전개발은 이제 끝난게 아닙니까. ▲아닙니다.유개공은 자원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확보된 기존 탐사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대륙붕 지질구조를 재점검하고 있습니다.석유매장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석유는 유기물이 퇴적돼 생기지 않습니까.울산 앞바다 6­1광구에서 가스가 분출된 것은 석유부존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그럼에도 지금까지 주로 외국회사에 탐사를 의존하고 시추공도 얼마 뚫어보지 않은채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앞으로 광구별 탐사를 분지별 탐사로 전환하고 기초탐사와 상업적 탐사를 병행하면서 경제성있는 유전발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능력주의 인사제 도입 ­경영혁신 차원에서 신인사제도를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어떤 내용입니까. ▲연공서열의 인사고과를 능력주의 평가로 바꿨습니다.개인의 업적을 평가해서 근무평정에 반영하는 것입니다.우선 각 처별로 경영평가를 통해 우수부서에서 10%이내의 우수 사원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업무개선,제안 및 우수표창을 업적으로 평가합니다.올해 안으로 하위직원이 부장급 직원의 업무능력 및 리더십을 평가하는 상사평가제도도 도입할 계획입니다.아래서 위로,위에서 아래로 입체적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이지요.청년이사회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전 부서의 과부장급 위주로 구성돼 회사의 경영,인사제도,채용방법 등의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경영층에 건의합니다. 장사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제학박사 출신이다.동력자원부에서 자원정책실장과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지낸뒤 93년 4월 유개공 사장에 취임했다.그는 공사 사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2기연임에 성공,경영능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축시설 건설 능력은…/지하기지 첨단굴착 공법 해외수출/여천U­1기지 국내 15일 소비물량 저장/원유입출시 오염·사고가능성 완벽차단 석유비축 기지의 규모와 굴착기술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이다.전남 여천시 낙포동에 있는 U-1기지는 우리나라 석유비축 시설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동양 최대의 지하비축 기지인 U-1기지는 2천9백72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다.하루 국내 소비량을 2백만 배럴로 계산할 때 15일분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지난해 10월 총연장 9.3㎞에 달하는 동굴공사를 끝내고 현재 기전설비와 입출하 부두공사를 진행중이다.총 공사비는 3천7백74억원.현재 공사진척도는 84.5%로 98년 6월 완공된다.원유 저장은 99년 4월로 예정돼 있다. 연면적 74만평 규모인 이 동굴기지는 LG건설과 현대건설이 1.2공구를 맡아 91년부터 지난 해까지 지하 30∼60m지점에 너비 18m,높이 30m,길이 450∼1천100m의 터널 12개를 뚫었다.깨어져 나온 암반조각만 약 1천만㎥. 비축원유는 동굴 저장시설바닥위 35∼50㎝의 수면위에 저장되고 유면이 천장부근에 다다르면 그위에 또다시 물을 주입,일종의 수봉이 설치돼 외부와 완전 차단된다.물과 기름이 뒤섞이지 않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U-1기지에는 서울 장충체육관 내부용적의 60배에 달하는 원유가 들어간다.입출은 2천500마력의 펌퍼 10대에 의해 40인치 송유관을 통해 이뤄진다.선박이 정박하는 원유부두에서 지하비축기지까지는 첨단 제어장치 등이 설치돼 다단계 감시가 이뤄진다. 유개공 관계자는 『U-1기지는 거제도 U-2기지 증설(1천2백만 배럴),평택의 LPG 저장탱크( 20만t 규모) 등과 함께 우리나라 지하 토목굴착공사 기술을 진일보시켜 중국 등 해외에 기술을 수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 과학의 날 30돌기념 4월의 각종행사 안내

    ◎밝은미래,과학하는 마음/과학의 달 행사 풍성/대한민국과학축전­가족경연·체험 한마당·과학영화 상영도/국립중앙과학관­북한산 곤충 표본 1,100여점 특별전 열어/한달동안 1만여명 초청 대덕연구단지 견학행사도 오는 4월은 과학의 달.4월 21일은 서른번째 맞는 과학의 날이다.과학기술계는 과학의 날 30주년을 맞아 「21세기 밝은 미래,과학하는 마음으로」라는 주제 아래 과학의 달 행사를 다채롭게 펼칠 예정이다.특히 올해는 4월18일부터 24일까지 7일간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제1회 대한민국 과학축전」을 개최하는 등 범국민적 특별 기획행사를 통해 청소년과 일반 대중이 직접 과학을 즐기고 체험하게 함으로써 과학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제1회 대한민국과학축전=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조규하)이 중앙교육 A+과학나라(대표 허필수)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규모 전시 및 야외 행사다.「느끼는 과학,보이는 미래」란 주제 아래 가족과학경연대회,과학동호인 한마당,체험의 한마당등 행사와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연구사례,신기술 신상품 등 전시행사가 1주일 동안 펼쳐진다. 가족과학경연대회는 「풍선로켓 만들기」,「바퀴없는 기차」등 과학원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각종 실험놀이를 가족 단위로 펼치는 것으로 유치부 초등부 중학교부 등에서 6백 가족이 출전한다. 과학동호인 한마당은 서울모형항공기연구회,한국무선조종모형항공기연구회,모형로켓동호회 등이 그동안 갈고 닦은 항공기와 로켓의 비행 및 발사 실력을 보여주는 한편 한국민물보기보존협회,한국거미연구소,아마추어천문학회,한국동굴탐험연구회,한국자생식물연구회,아마추어무선연맹등 과학동호인 단체들이 수집해 온 각종 장비와 사진,표본 등을 공개하는 전시행사다.은암자연사박물관,LG사이언스홀,고인쇄 박물관 등 과학기술박물관 소개 코너와 한국우주정보소년단,한국해양소년단,과학소년단등 소년단 활동 소개 코너도 마련된다. 체험의 한마당은 관람객들이 직접 과학을 체험하고 학습해 볼 수 있도록 한 행사다.도예·칠보·도금·한지·전통연 등 5개 공방을 설치해 기념 펜던트등을 직접 제작해 볼수 있도록 한 전통공방 코너,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제작한 마이크로 로봇 월드컵 축구 시연코너,과학상자 조립 등 교구체험 코너,천체관측 체험코너등 4개 코너가 마련된다.이밖에도 행사기간중 매일 하오 8시 야외 대형 스크린에서는 과학영화제가 진행돼 관람자들을 모험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편 전시행사에는 한국기계연구원 등 12개 연구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국내 과학 연구장비 및 교구·교재,CD롬 등 제작업체들이 참여,연구성과물과 초저온 냉동고와 같은 첨단 기기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국립중앙과학관 행사=장수풍뎅이 등 북한산 곤충 1천1백30점의 표본을 모은 특별전을 15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하고 서울 과학관에서는 4월 한달동안 자연과학생태사진특별전을 개최한다.청소년 대상 과학대강연회가 매주 금요일 하오 1시에 마련되고 「화성에서 만납시다」등 과학영화도 매일 상오 11시와 하오 2시에 두차례 상영된다.한달 동안 1만여명을 초청하는 대덕연구단지 견학행사도 있다.4월 한달 동안 대덕의 중앙과학관과 서울 과학관은 전관을무료로 공개한다. ◇제30회 과학의 날 기념식=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시상식과 함께 21일 상오 10시 대덕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강당에서 열리게 된다. ◇기타=19일 하오 7시 대덕연구단지 종합운동장에서 「과학의 날 기념 KBS열린음악회」가 과학기술자와 가족들을 초청해 열리고 과학의 날 기념엽서,과학의날 기념복권도 발행된다.그밖에 대전 천문대,소백산 및 보현산 천문대가 일반에 공개되고 각종 세미나,학술대회 등도 일제히 열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