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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시론]‘중산층의 세기’와 英佛논쟁

    21세기는 ‘중산층의 세기’이다.이미 20세기 후반 서구에서는 중산층이 대중화되고 블루칼라 노동자층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뚜렷한 사회변동이 진행되었다.이로 인해 노동자정당으로 출발한 서구 진보정당들은 21세기 길목에서일대 이념적 위기에 봉착하였다. 클린턴과 블레어의 ‘제3의 길’ 또는 슈뢰더의 ‘신(新)중도’노선은 중산층으로의 ‘중심이동’을 통해 저 이념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정치이념이다.클린턴,블레어,슈뢰더의 새 정치노선에 계속 반대하는 프랑스 사회당의 조스팽 노선도 “중산층 주도”의 중산층-서민-소외계층 연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동맹’인 한에서 진보의 주도계층을 중산층으로 설정하고 있다. 게다가 ‘제3의 길’의 동맹전략도 중산층 중심으로 주변의 서민을 하나의정치블록으로 묶는 ‘새로운 진보연합’을 공언한다.따라서 조스팽의 현란한 비판적 수사(修辭)에도 불구하고 ‘중심이동’과 동맹전략 문제에서 블레어와 조스팽의 의견차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 ‘중산층의 세기’라는 말은 21세기 중산층상(像)이불확실하면오해를 야기한다.일각에서는 ‘21세기 중산층’을 부(富),안정,동질성을 향유하는 계층으로 오해하는 개념혼동 속에서 21세기의 고(高)리스크 경제의특징을 지적하며 “중산층의 세기”라는 말을 ‘백일몽’으로 비관한다. 중산층은 자영업과 자유업 계통의 전통적 중산층과 화이트칼라 신(新)중산층으로 구성된다.지식기반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전통적’ 중산층도 계속 증가하지만,‘신중산층’은 전통적 중산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이런 변화의 이면(裏面)에는 동시에 ‘서민의 중산층화’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물론 이같은 변화는 시장화 및 세계화와 결합하면서 리스크·마찰·장애·고통을 동반한다.이런 까닭에 21세기 중산층은 불안정하다.잘 나가는 화이트칼라나 중소기업가가 갑자기 ‘명퇴’와 부도로 인해 노숙자로 전락할 위험도 있고 실업·감봉·좌천의 위험에 늘 노정되어 있다.따라서 ‘21세기 중산층’은 내부 분화의 폭이 매우 크다.학력·실력·요행에 따라 화이트칼라가‘골드칼라’로 상승하는가 하면 하급 봉급생활자로 처박히기도 한다.따라서 21세기 중산층은 그 구성이 이질적이고 소득도 차등이 심하다.요는 부·안정·동질성의 특징을 가진 ‘과거의 중산층’과 달리 ‘21세기 중산층’은소득차이·불안정·이질성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바로 중산층의 생활기반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생산적 복지의‘새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동시에 서민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습득을 통해 중산층 직업과 일자리를 얻는 것을 지원,촉진하는 생산적 교육·보건·여성·노인복지를 위한 ‘새 정치’도 필요하다.생산적 복지정책은 지식기반 경제,이 경제의 기본전제인 시장화와 세계화 등으로 인해 생겨나는 리스크와마찰을 완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식기반화를 촉진하는 생산적 기능을 한다. 역으로 지식기반 산업화만이 튼튼한 복지재원을 제공할 수 있다.관건은 지식기반 경제·시장·세계화·중산층으로의 정치적 중심이동,새로운 복지정책을 하나의 순환체계로 연결하는 것이다.블레어와 조스팽의 진짜 의견차이는이 순환고리 속의 ‘시장’ 개념과 관련된 것이다. 블레어는 ‘신혼합경제론’의 이름으로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사회적 시장’ 개념에 접근한 반면,조스팽은 이것조차도 신자유주의나 다름없는 것으로배격,더 강한 시장통제를 주장한다.조스팽 노선의 자가당착성은 지식기반화의 전제인 시장의 역동성을,따라서 지식기반화를 제약하면서 튼튼한 지식기반 경제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중산층의 복지확대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데 있다.시간이 증명하겠지만,관측상 프랑스가 조스팽 노선에 서 있는 한 전도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 조스팽 편들기는 실수일 것이다.독일 기본법과 같은맥락에서 질서자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 하에서 조스팽 편들기는더욱 가당치 않다. 黃 台 淵 동국대 교수·정치학
  • [대한광장] 책읽기의 기술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을까?/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집을 잃고/ 햇볕에 말랐을까?// 한 뭉치에 백권씩 이백 뭉치의 책 더미를,아니 나무등걸을/ 숲을/ 천장에 닿을 때까지 쌓는다…// 이 중에 몇 권이 꼭 만날 사람을 만나/ 그를 오랫동안 창가에 혹은/ 길모퉁이에 세워둘까?’(장천권,‘얼마나많은 나무들이’) K군.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좋은 책을 골라달라는 요청에 오늘 늦게나마 답하게 되었습니다.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겠습니까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는 그런대로 쓸 만한 말 같군요.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푸르고 우리의 정신도 덩달아 고양되는 계절에 조용한 장소에 앉아 좋은 책을 읽는 것만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을 느낄수 있는 때는 그리 많지 않겠지요.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보라는 말은 해줄 수가 없군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이,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대껴 본 사람일수록 사람을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듯이 책읽기 또한 스스로 경험을쌓고 안목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책과 더 잘 사귈수 있는 기술에 대해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몇 가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다른 취미도 별로 없고 또 직업상 오랫동안 책과 함께 살다보니 책을 고르고 읽는데에도 그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혹 참고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우선,꼭 필요한 책을 구입할 때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기본적으로 책은 쌉니다.한 권의 좋은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식과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얻으려면 그 수십 배,수백 배의 비용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서점에 갈 때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돈이 부족하면 간담이 작아져서 정작 필요한 책을 못 사게 되거나 다른 책과 비교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책을 선택해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남이 하는 말을 듣거나,저자의 명성에 속아,또는 겉 표지나 목차의 꾐에 빠져 덜컹 사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읽어보면 기대와는 전혀 딴판의 것일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그러나,쓰라린 실패의 고통 없이 탁월한 선택의 능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실패도 안목을 기르기 위한 수업료라고 생각해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손이 닿는 곳에 두지않아도 좋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또,남들이 다 읽는다고 해서 자기에게 맞지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식에 비해 내용이 떨어지는 책을 읽는 일도 읽는 시간만큼 손해라고 봅니다.‘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매력적인 이성이 옆자리에앉아 감동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볼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단,책을 수면제 대용으로 애용하시는 분들이라면 베고 자기에 알맞은 두께를 가진 책을 고르는 것도 무방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한권의 책으로 만족하지 말고,같은 주제나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비슷한 종류의 책을여러권 읽고 나면 좋은 책의 장점이 확연히 눈에 띄고 시각이 좁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땐 무엇보다 의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활자로 인쇄돼있으면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그럴듯해 보일수 있습니다.고전이나 베스트셀러 중에도 거짓말이나 엉터리주장을 나열해 놓은 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책을 읽다가 무언가 의심쩍은 대목이 있으면 원전이나 사실 확인을 통해 의문을 끝까지 확인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번역서에는 또 잘못된 번역이나 나쁜 번역이 많습니다.번역서를 읽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만나면,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기 전에 오역(誤譯)이 아닌가 의심해보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두서없이 늘어놓은 나의 말들이 참고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을 주지 않았나 걱정되는군요.부디 이 가을에 K군을 더욱 깊게 만들 좋은 책을 만나기를 바랍니다.아,참.가장 중요한 기술을 깜빡 잊고 전하지 못할 뻔했군요.“책읽기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즉시 중지하고 그 일을 할 것”. 金 武 坤 동국대교수·신문방송학
  • [사설]‘협박전화’ 엄하게 다스려야

    최근들어 ‘협박전화’가 기승을 부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협박전화에 시달리는 대상도 판사·언론인·교수 등 사회각계에 걸쳐 있다. 이달초 대한불교 조계종 고산총무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린 이수형(李秀衡)부장판사 집에는 매일 밤 정체불명의 협박전화가 걸려와가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협박범들은 별다른 요구사항도 밝히지 않은 채 “당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부모님이 사는 곳을 알고 있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린다는 것이다.며칠 전에는 이 부장판사 집에 꽃이 배달됐는데,‘축(祝) 이수형판사 사망’라는 카드가 들어있었다고 한다.그러나정작 이 부장판사가 할 수 있는 조처라고는 전화코드를 뽑아버리거나 자녀들의 등·하교길을 챙기는 일이 전부다.경찰은 이부장판사와 가족들의 신변보호는 물론 협박전화범 색출에 나서야 한다.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폭력적’ 방법으로 대응하는 세력은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국민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그러나 그같은 이의 제기는 어디까지나 실정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온당한 방법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하물며 부처님을 모시는 불자(佛子)들의 세계에서 신체적 위해(危害)가 들먹여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동국대 황태연(黃台淵)교수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황교수는 중앙일보 홍사장 구속사태와 관련,‘언론의 자유와 횡포’라는 글을 지난 10월2일자 ‘대한매일’에 썼다가 특정세력으로부터 협박전화 공세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화폭력방지법’이라는 실정법이 있는 마당에 더 이상 전화폭력이 계속될 경우 법적대응할 것임을 선언하고 나왔다.말하자면 경찰에 공식 수사를 요청하겠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최근 시인 김지하씨와 언론인 이규행(李揆行)씨가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김씨와 이씨는 각각 어떤 기수련(氣修練)단체와의 노선 갈등에서 빚어진 테러위협이 그 이유라고 한다.김씨는 자신을 표적으로 삼은 ‘테러단’이 해외에서 결성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며,이씨는 어떤 신문에 쓴 칼럼과 관련해서 걸려오는 협박전화 때문이라는 것이다.김씨와 이씨가 관여하고 있는 단군(檀君)에 대한 이해나 ‘기(氣)’의 경지가 현묘(玄妙)하면 할수록 그것을 둘러싼 갈등은 설파(說破)로 해소돼야 한다는게 우리의생각이다. 전화를 통해 비열하게 ‘그늘에 숨어서’ 사람을 협박하는 전화폭력범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당국은 끝까지 그들을 색출해서 엄정해게 단
  • 서울시문화상 12명 발표

    서울시는 7일 올해 서울시문화상 수상자 12명을 선정,발표했다. 14개 부문에 걸쳐 서울의 문화발전과 문화예술 진흥에 기여한 시민에게 수여되는 서울시문화상(상금 1,000만원)은 올해 모두 51명이 후보로 올랐으며지구환경과학 및 영상 부문에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시상식은 서울시민의 날인 오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부문별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인문사회과학 김안제(金安濟)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기초과학 최병두(崔柄斗) 서울대 명예교수▲생명과학 김성훈(金聖勳) 성균관대 교수▲문학 홍기삼(洪起三) 동국대 교수▲미술 하종현(河鐘賢) 홍익대 교수▲음악 안숙선(安淑善) 국립창극단장▲공연 황문평(본명 黃海昌) 한국연예협회 명예이사장▲교육 김귀년(金貴年)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언론 이문희(李文熙)한국일보 상임고문▲출판 전병석(田炳晳) 문예출판사 대표▲건설 유복모(柳福模) 연세대 교수▲체육 김상겸(金相謙) 고려대 교수김재순기자 fidelis@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20) 무역의 나라-고려

    903년 3월,왕건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를 내려가 나주지역을 점령하였다.909년에는 해군 대장군으로서 나주를 지키면서 후백제가 절강성의 오월국에보내는 사신선을 나포하기도 하였다.그는 경기만의 함선을 거느리고 영산강하구와 인근 섬에서 창궐하는 해적들을 소탕한 백선(百船)장군이었다. 해양세력인 그의 가계는 매우 독특하다.선조 호경은 백두산 산신이다.작제건은 주몽처럼 신궁으로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단군신화나 해모수신화등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고려의 건국신화는 바다와 관련이 있다.하늘과 바다의 만남,산신과 해신의 결합에서 탄생한 것이 왕건이다. 경기만은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해륙교통의 요지이고,중핵에 있다.그 가운데에 위치한 강화도 일대는 해구(海口),혈구(穴口)라고 하여 서울과 개성,해주 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이다.해상세력이 해양력을 바탕으로 물류체계를 장악하면 경제력과 정치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이다.왕건의집안은 황해 남부와 경기 서부, 강화도가 만나고,황해와 한강 하류와 예성강이 합쳐지는 소지중해와 같은 이곳에서 성장한 해상토호이다.송악(개성)은후에 해양경영을 염두에 두고 계획도시로 조성되었다(한재수 설). 고려는 처음부터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북방의 요나라를 견제하고,문화를 받아들였으며,무역을 위해서 한족과는 자주 교섭하였다.태조때부터 황해를 건너 후양(後梁)과 교섭했으며,송(宋)이 건국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이었다.송은 거란을 치기 위해 고려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160여년간 고려는 송라에 57번을,송은 고려에 30번의 사신을 보냈다.2년에 한번 꼴로 사신단이 오고간 것이다.이 때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서희(徐熙)는 7년동안 끊어졌던 외교를 바다를 건너 재개시키기도 하였다.송과의 교섭은 해양이 아니면불가능했다. 송나라에 간 유학생들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기도 하였다.반대로 고려에서 관직을 받은 송나라 사람도 있었다.승려 의통(義通)은 947년 바다를 건너가 영파에서 법(法)을 전파했다.대각국사 의천은 절강성 항주에 머물기도했는데,근래 서호(西湖) 부근에서 고려의 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와 송나라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을 했다.사신선들은 공무역선이었다.송은 고려에 의복 상아 차 칠 옥 물소뿔 악기 술 새(鳥)등을 수출했고,고려는비단 삼 부채 종이 먹 등 수천점을 보냈다.1078년에는 송이 100종이 넘는 품목과 6,000건에 달하는 물건을 보냈고,고려도 그에 상당한 물건을 보냈다.그러나 당대의 문장가이며 관리였던 소동파는 고려와의 무역이 피해가 심하다고 비판적이었다. 민간의 무역은 더욱 발달하였다.고려사에 따르면 1012년부터 1278년까지 266년간 송나라의 상인이 129회 5,000여명이 왔다.황해는 엄청난 무역이 이루어지는 황금의 바다(gold-sea)였다.상인들은 주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출신이었다.서역상인들도 많이 와서 1024년에는 100여명이 온 적도 있었다.개성은 다양한 인종과 물건들이 모이는 동아지중해의 유명한 국제도시였다.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서 여인의 손목을 잡은 회회인(回回人)은 바로서역의 상인이었다. 반대로 고려인들도 중국의 남방의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살고 있었다.지금도 영파에서는 고려관터를 발굴하고 있다.이러한 교역은 원나라가 세워진 다음에도 지속되었다.원의 세조인 쿠빌라이는 쌀을 강남에서 고려로 3차례 운송하기도 하였다.특히 일본원정을 위해서는 20만석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당시의 항해술과 항로는 어떠했을까? 처음엔 주로 고려의 배로 왔다갔다 했다.태조인 왕건이 사신을 파견했을 때,등주 근처에서 배가 파손하여90여명이 익사하였다.1019년에도 등주 부근에서 배가 파손되었다.어려운 항해였다.항로는 크게 3개가 사용되었다. 첫번째는 예성강 하구에서 출발해 옹진반도까지 나간 다음 황해를 직횡단하여 등주로 들어가는 항로다.초기에 사용됐는데 2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두번째는 역시 예성강구와 산동반도 하단의 밀주를 잇는 항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동중국해 사단항로다.이 항로는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극(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란 책에 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즉 배는 영파를 출발,보타도에서 바람을 기다린 다음 북상하여 상해만 바깥바다까지 와서 거의 사선으로항해하여 흑산도로 향했다.이어 고군산도 자연도 등을 거쳐 예성강 하구에 도착하였다. 이 항해는 늦봄에 남서풍을 타고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다.송사(宋史)에 의하면 순풍일 경우에 흑산도까지 5일이 걸린다고하였다.필자는 지난 1997년 6월 하순에 뗏목 ‘동아지중해호’를 타고 이 항로를 답사했다.항로는 일치했지만,흑산도까지 17일이 걸렸다.동중국해 사단항로는 원양항해구역이므로 고난도의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 원양항해와 대규모 교역은 성능이 훌륭하고 큰 배가 있어야 가능하다.왕건의 전투선은 23m 넓이에,위에 다락이 있었다.동해에서는 여진의 해적선들을격퇴하기 위하여 과선(戈船)을 만들었는데 이름대로 뱃전에는 창검을 꽂았고,앞머리에는 적선을 들이받는 충각을 달았다.70여명이 탈수 있었고 적재용량이 1,000석인 큰 배였다. 송의 사신선은 신주(神舟)와 보좌하는 객주(客舟) 여러 척으로 구성되었다. 객주는 길이가 30m,배높이가 9m 폭이 7,5m이고,돛은 높이가 30m이고,곡식 2,000섬을 실을 수있다.신주는이보다 3배쯤 크다.상인들의 배도 큰 차이가 없었다.이 대형선박들이 황해와 동중국해를 누비며 고려와 중국을 이어주었다. 고려는 장보고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상세력들로 출발해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국제적 국가였다.반면에 조선은 바다를 막아 해양력을 제거하면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이 되어 주변부 국가로 전락하였다.21세기는 바다가 열린 신세기이다.세계질서는 물론이고,특히 동아지중해의 질서는 해양력이 민족의 생존력임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尹明喆 동국대겸임교수]
  • [대한광장] 본 공화국과 베를린 공화국

    3일은 통독 9주년 기념일이었다.이제 독일통일은 독일인과 주변국에 있어서일상적인 생활속에 자리를 잡아 통일의 감격은 과거사가 되었다. 그 가운데9월6일 베를린 연방의회의 이전을 계기로 현재 독일 국가의 정체성의 담론속에는 ‘본공화국’과 ‘베를린공화국’의 자리매김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1일 라인강의 작은 도시 본에서는 ‘50년 동안의 본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라는 모토 아래 본에서 마지막 연방의회가 열렸다.두 공화국 논쟁과 관련,자유와 평화속에서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베를린이 지배하던 독일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독일의 젊은 세대들에게 의미있는,역사적인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 그 메시지에 의하면 70여년 동안 베를린이 지배한 독일은 민주주의의 부재로 비극적 경험을 하였다.그러므로 도덕과 정치를 파멸시킨 나치스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고향과 재산을 빼앗긴 역사로부터 유럽과 독일은 19세기와 20세기의 민족주의적 권력정치의 그늘에서 탈피,‘유럽의 집’을 건설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통일과 독일통일을 하나의 고리에 연결한 그는 ‘본공화국’과 ‘베를린공화국’의 구분을 거부했다.“독일은 베를린으로 가지만새로운 공화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어쩌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본공화국은 그에 있어서 감사와 행복의 상징일 것이다. 50여분 동안의 연설에서 그는 독일인들에게 겸허,협력 정신,그리고 자기도취의 유혹에 대한 저항을 촉구했다.콜의 세대들은 독일 땅에서 평화와 자유의 세기를 위해 노력했으므로 이제 다음 세기를 주도할 젊은 세대들은 그 평화와 자유를 지켜달라는 주문이었다. 지난 9월6일 연방의회의 베를린에서의 업무 시작으로 독일은 베를린공화국시대를 맞이하여 베를린은 독일 정치와 유럽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누가뭐래도 본정치는 베를린정치 시대를 여는 초석이었다.본이 이룩한 민주주의와 평화와 자유 없이 오늘의 베를린 시대는 상상할 수 없다. 본공화국에는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폭력적인 나치스의 반민주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좌절에 대한 독일국민의 책무와 종족 이데올로기 아래 거대한 참화를 유럽에 입혀,역사발전에 진보의 신앙을 망가뜨린 독일인의 역사에 대한성찰이 배어있다. 독일인은 지난 45년 동안 모순과 고통에 찬 역사를 지난 시기 과오의 대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눈물과 고된 시련으로 파시즘을 청산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평화와 번영을 건설해 주변 강대국의 방해 없이 국제사회로부터면죄부를 당당하게 부여받은 베를린공화국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다시 태어나려는 노력으로 점철된 본공화국은 겸허하게,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로 꽉 차 있는가하면,괄목할 만한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책임과 정치적인 역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대신 베를린공화국은본공화국이 힘겹게 이루어 놓은 터전 위에서 과거의 업보로부터 자유로운 유럽화된 독일의 맥락에서 대국의 조건이 갖추어진 공화국에로의 이행을 뜻한다. 그래서 독일의 새로운 세대는 분단된 독일을 상징하는 본공화국이 아니라 통일되고 유럽화된 베를린공화국을 만들어가고 있다.그래서 냉전과 분단시대의자유와 평화와 번영과 민주주의를 힘겹게 일구어온 본공화국시대 세대들이바라본 베를린은 낯설게 변해가고 있다.새로운 변화는 1991년 이후 베를린중심가에서 매년 열리는 7월 한여름의 ‘사랑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1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정신이 주도해간다.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로부터자유로운 그들은 첨단 테크노 뮤직으로 평화와 자유에 대한 정열을 베를린을만들어가는 데 쏟아, 시와 조형미술,음악에서 젊은이들이 숨을 쉴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히틀러의 폭압적 정치를 상징하는 건축,자유를 위해 투쟁한 영웅들의 기념비,동서이데올로기의 분열과 갈등,호수와 숲과 평야와 강물이 있는 베를린에는 사회적,경제적,정신적 변화에 새로운 삶의 양식이 펼쳐지고 있다.20세기의 이념을 극복하고 태어난 베를린공화국에는 본공화국을 건설한 세대와 다른 세대에 의해 빨라진 맥박속에서 본공화국의 소망이 조각돼가고 있다. [白 京 男 동국대 사회과학대학장]
  • [대한시론] 언론의 자유와 횡포

    유전인자 속에 언어능력을 내장한 인간에게 언론의 자유가 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정치의 초석이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이제 상식됐다.1793년 칸트는‘펜의 자유’는 ‘민권의 유일한 수호신’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나아가 칸트는 이 자유가 부정당할 때 통치자도 정보부족으로 불법과 실정(失政)을 범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제레미 벤담은 1815년 ‘정치산술론’이라는 혁명적 팸플릿을 통해 역사상최초로 언론의 자유와 여론의 ‘정치적’ 본질을 가장 일관되게 논증한 바있다.공론(公論)은 소수의 판사로 구성되는 재판정보다 낫다는 것이다.판사들은 매수될 수 있지만,다수 공중(公衆)은 매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벤담은 또 기자가 오보를 통해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고의가아닌 한’ 형사책임에서 면해지는 특권을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어떤 시민이라도 공직을 맡으면 명예를 얻게 돼 보통시민보다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비판적 여론으로 이 명예를 상쇄시켜 위정자와 시민의 지위를 평준화할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누구나 여론을 생산하고 소비하던 시대에 형성된 이 고전적 자유공론 및 언론철학은 오늘날도 원칙적인 타당성을 지닌다.그러나 그간의 경제·사회·기술변동으로 인해 고전적 언론자유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면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우선 칸트·벤담 시대와 달리 언론매체의 자본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까닭에 ‘여론생산자’와 ‘여론소비자’가 엄격히 분리됐다.더구나 따지고 토론하는 ‘공중’은 쉽게 조작당하는 ‘대중’으로 변했다.이제 큰 부자들만이 ‘언론장사’를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언론사는 여론생산을 독점하는 반면,대중은 생산된 여론의 소비자로서 일방적으로 조작당하게 된 것이다. 대언론사의 이 여론독점에 대한 유일한 대항추는 언론사들간의 경쟁이지만,이것마저도 언론독점 현상으로 곧 무력화되고 말았다.게다가 독점기업과 재벌들이 대언론사를 손에 넣는 일이 벌어졌다.점차 대언론사는 3중의 독점권을 가진 권력체로 변질되고 ‘언론의 자유’는 ‘언론의 횡포’로 둔갑했다. 여론이 이제 ‘발행된의견’으로 전락했다는 1940년대 아도르노의 비관적명제는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이것은 언론의 자유가 오히려 언론 때문에약화되는 역리(逆理)를 뜻한다. 언어능력의 유전인자를 확신하며 의사소통적 논리가 결국 언론사들의 횡포를 누를 것이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론적 위로는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지만,이 소통적 논리의 관철 과정은 선진국에서도 격렬한 투쟁을 겪었다.서유럽의 선진적 방송·언론법은 모두 이 험난한 투쟁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에서 여론의 독과점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그러나 이 위험에 대처하는 언론개혁은 생각하지도 못할 실정이다.겨우 우리는 자기소유 언론사를 방패로 대기업주가 불법적 특권을 누리는 관행을 문제삼는 단계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수 십년 동안 스스로는 수도세·전기세도 안 내고 탈세를 자행하면서도 남의 비리를 규탄해온 위선적인 언론사도 있지만,한낱 지금 단죄하는 것은 대기업주가 자기 언론사를 ‘빽’으로 믿고 저지른 보광그룹 회장겸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씨의 ‘관행적’ 범법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실정이니 서유럽 수준의 언론개혁은 아직 우리의 아젠다가 될 수 없는 것이다.기업주 겸 언론사장의 국법유린 ‘관행’을 법치주의 차원에서 단죄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씨에게 ‘충성’하는 기자들이 정부 고위인사들을 ‘5적’‘7적’으로 지목하고 ‘죽이겠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으며 보광그룹수사를 ‘언론탄압’으로 비방하는 것은 국가를 능멸하며 언론의 자유를 오용해온 재벌언론의 ‘횡포’의 진면목이다. [黃台淵 동국대교수·정치학]
  • 서울 각 자치구 가을맞이 축제…마음이 살찐다

    서울 각 자치구가 결실의 계절 10월을 맞아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를 마련,주민들에게 풍성한 가을을 선사하고 있다. 운동회철에 맞춰 주민화합을 다지는 체육대회가 곳곳에서 펼쳐지는가 하면지역특성을 살린 문화행사도 다양하다. 강동구는 다음달 1일 한강 광나루둔치에서 ‘새천년맞이 구민체육대회’를연다.농악놀이에 이어 족구 등 11개종목의 경기를 갖고 부대행사로 농산물공산품 판매장도 운영한다. 22∼24일에는 암사동 선사주거지,해공공원,구민회관 등에서 ‘강동선사문화축제’를 마련,원시인시절 등 조상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지역 문화유산인 ‘바위절 호상놀이’ 재현행사도 갖고 구립예술단 공연,청소년 사생대회,액세서리박람회,옛날자장뽑기 경연 등 부대행사 역시 풍성하다. 종로구는 개천절인 3일 사직공원에서 개천절 대제전을 올리고,중구는 구민의날인 1일부터 10일까지 남산골 한옥마을,동국대운동장 등에서 전통축제,구민체육대회,맛자랑 경연대회 등을 연다.강남구 역시 1일 구민의 날을 맞아축하공연을 갖는다. 성북구는 22일 구민회관에서 유명 연예인 등이 출연하는 가을음악회를 열고,29일에는 개운산 운동장에서 개청 50주년을 기념해 주민화합을 다지는 체육대회를 마련한다. 이밖에 은평구는 30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통일로파발제를,영등포구는 이미 주민과 함께하는 풍성한 행사를 마련,다음달 8일까지 계속중이다. 조덕현기자 hyoun@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9)동해를 건넌 발해인

    *동해를 건넌 모험가-발해인 1998년은 발해가 건국한지 13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구려가 멸망하자 만주는 무주공산이 됐다.그러나 대조영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고구려인들은 옛땅을 되찾고 발해를 세웠다.발해는 문화가 뛰어났으며,주변의 나라들과 교역을 활발하게 하였다.영토가 한창 때에는 남은 대동강부터 원산,서로는 요동반도(한규철 설),북은 연해주와 하바로브스크일대까지 뻗쳤다.‘해동성국’이라는 칭송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발해의 국력을 국제적으로도 인정한 것이었다. 발해가 강성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어받은 고구려정신과 지정학적으로 만주지역을 차지하였다는 것,남북경쟁이라는 현실,뛰어난 해양력을 잘 활용했기때문이다.732년 발해는 육군으로 요서지방,수군으로 산동반도 등주와 래주를 공격했다.당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질서에 위협을 느낀 발해는 북방의 흑수말갈을 토벌하였다.이어 돌궐 거란 등과 연합해 당을 공격하기로 하였다.장문휴(張文休)는 수군을 거느리고 등주성을 습격하여 자사(刺史)인 위준(韋俊)을 죽이고 점령하였다.등주는 중국의 수군세력이 고구려를 공격할때 사용하였던 묘도군도 끝에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이 공격은 발해가 수군을 이용해 당의 후방을 공격할수 있다는 경고성 행위였다.그후 당과 화친,황해북부 연근해항로를 이용해 교섭과 교역을 활발하게 했다.특히 산동지방의 고구려계 이정기세력과는 해로로 말 교역 등을 하였으며,심지어 발해 배들이 황해를 종단해 절강지역까지 내려갔다. 발해는 신라와는 적대적이었지만 일본과는 관계가 돈독했다.727년 첫 사신을 파견한 이후 926년 멸망할 때까지 200여년 동안 공식사절만 34번을 파견하였다.무왕(武王)은 국서에서 발해가 고구려의 후신임을 선언하였다.이는고구려의 국제적인 위상과 명분,실리를 계승하겠다는 대외적인 의지표방이었다.반면 일본은 13차로 발해보다는 소극적이었으나,정치적으로는 신라를 견제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치를 상승시켰다. 두 나라는 동맹을 맺어 신라를 남북에서 압박하였으며,8세기중반에는 신라에 공격을 시도해 국제전의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그러나9세기 들어 두나라 간의 교섭은 문화,경제적인 형태로 변화되었다.특히 중요한 것은 무역이었으며,발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발해인들은 담비가죽,호랑이가죽,곰가죽,말가죽,꿀,인삼을 수출했고,일본에서는 면 비단 수은 석유 등을 수입하였다.한번에 몇 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동해를 건너와 곳곳에 세워진 객관이나 객원에 머무르면서 장사를 하였다.일본화폐를 수십만전씩 갖고 귀국하는 경우도 생겼다.그러나 심각한 무역역조 현상이 나타나자 일본 조정은 일본인들의 사무역을 금했으며,발해의 배가 들어오는 오는 횟수와 장소를 제한하고,어길 경우 추방까지 하였다. 발해 사신선에는 수령과 상인들이 타고 와서 중계무역도 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그리고 상인들을 태운 민간배들도 독자적으로 왔으며(746년에는 1,100여명이 일본으로 온 것으로 돼 있다) 기록되지 않은 민간 상인들간의비공식적 교역은 일본의 동해안 곳곳에서 수없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내륙국가로 알려진 발해인들은 언제 어떻게 동해를 건너왔으며,어떤 배를 이용,항해를하였을까? 1998년 1월 24일 새벽,4명의 젊은이들을 태운 뗏목 ‘발해 1300호’가 일본 오키제도의 도고섬 앞에서 전복되면서 전원 희생됐다.사람들은 그들이 무모하게 왜 한 겨울에 그토록 험난한 동해를 건넜느냐고 비판했다.그들의 선배였던 필자는 그들 대신에 항변을 하면서 발해의 해양활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발해배가 일본열도에 닿으려면 한 겨울 북서풍을 받아야 한다.때문에 11월부터 2월 사이에 떠난다.돌아올 때는 반대로 봄철에 일본을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겨울 동해바다는 수온이 매우 낮고,늘 바람이 거세며,파고는 보통 2∼3m다.폭풍이 몰아칠 때는 풍속이 20m/sec 이상 된다.악조건속에서 동해를건너던 발해선들은 무수히 표류하거나 침몰해 숱한 사람이 수중고혼이 됐다(776년에는 120여명이 죽었다).그러나 ‘발해 1300호’처럼 오키제도에 도착한 사절선도 3번이나 있었다. 발해인은 항해술과 조선술이 매우 뛰어났다.동해는 망망대해지만,신라 때문에 안전한 연근해 항로를 포기하고 동해북부 사단항로를 이용해야만 했다.때문에 발해배들은 원양항해를 해야 했으며,지문항법 뿐 아니라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그래서 천문생(天文生)이라는 항법사가 타고 있었다. 한겨울 거친 파도와,강한 바람을 견뎌내려면 조선술이 발달해야 한다.평온한 계절에 내해에서 연근해 항해를 하는 신라나 당,일본배와는 구조나 강도에서 차이가 있다.발해배는 크기는 약간 적고,돛은 사각에 가까웠으며,평저선에 첨저선의 구조를 일부 보완한 형태였을 것이다.발해배들은 러시아의 크라스키노,두만강 하구,청진,북평 등에서 출발해 일본열도의 동북인 아키다(秋田) 니이가타(新潟) 노토(能登)반도,쓰루가(敦賀),이즈모(出雲) 타자이후(太宰府)등 여러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시 항해조건과 연해주를 차지한 발해의 영토 등을 고려할 때 발해인들은 봄 여름에 남서 계절풍을 이용하여 짧은 거리인 동해북부와 타타르해협을 건너 홋카이도나 사할린에도 진출했을 것이다.일본열도로 항해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항해다.최근에 홋카이도 남부지역인 오타루(小樽),오가와(大川)유적에서 7세기대 고구려계 유물과 발해말혹은 여진초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됐다.이것은 고구려나 발해인들이 연해주 항로를 이용,북방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을 높혀주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처럼 대륙뿐 아니라 동해와 황해북부를 장악하여 동아지중해에서 중핵 조정역할을 잘 수행하였고 해동성국이 되었다.결국 8∼9세기는 발해와 신라가 동아지중해를 나누어 운영하면서 분단의 한계를 해양으로 일부나마 극복한 시대였다. 윤명철 동국대 겸임교수
  • 의대 신·증설 내년에도 어려울듯

    내년에도 의대와 한의대의 신·증설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6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2000학년도에 목포대,창원대,대불대,동의대,삼육대,한동대 등 8개대(360명)에서 의대 신설을 요청했다.또 단국대,동국대,연세대,울산대,성균관대 등 7개대에서 의대생 정원을 230명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또 공주대 등 17개대에서 한의대를 개설하겠다며 730명을 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동신대 등 3개대는 100명의 증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교육부의 이같은 의대와 한의대 입학정원 증원요구에 대해정원을 동결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차흥봉(車興奉) 복지부장관은 최근 의사단체와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의료인력이 과잉배출되면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온다며 신·증설을 억제할 뜻을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의과대 입학정원이 인구 100만명당 88.7명으로미국(65.1명), 일본(61.7명)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인 데다 현 정원을 유지해도 2010년 쯤에는 인구에 대한 의사비율이 선진국수준을 넘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의대생 신증설이 지역구 사정 등을 고려,정치적으로결정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한편 의과대는 98학년도 이후신·증설이 불허되고 있다. 임태순·박홍기기자 stslim@
  • [쉽게읽기] 이용범의 ‘1만년동안의 화두’

    오늘날의 사회가 지식과 정보의 사회라는 건 새삼스러운 진단이 아니다.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개인 삶의 성패는 물론 국가의 흥망성쇠에까지 영향을 끼쳐 그것을 능가하는 권력을 좀처럼 찾기 어렵게 한다.그런데 현대사회의 지식과 정보는 너무나 세분화되어있어서 이른바 ‘전공’의 형식을 만들게 된다.자연히 전공 밖의 분야에 대해서는 아둔해지기 쉬운 게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직면하는 현실이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총체적 전망이나 통합적 인식은 르네상스시대의 아련한추억처럼 가물거릴 뿐이고,자기 분야의 일류 기술자나 조직사회에 충실한 임무 수행자들을 양산하기 위한 비정한 속도의 기관차가 현대를 관통하여 질주한다.사는 게 무엇인지,인간이란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해 헛헛하기만 하다. 우리는 모든 역을 너무 빠르게 지나가며,자기 선로 바깥의 낯선 풍경들을 보며 소외감을 느낀다.이제 와서 이를 찬찬히 돌아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벅차다. 그러나 이 벅찬 문제를 감당하려는 한 권의책이 여기 있다.인간이라는 생물의 종자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당면했던 가장 절실했던 문제들을 저 깊숙한 기억의 창고로 부터 꺼내어 밝은 햇살 아래 내보이려는 야심의 산물이다.죽음과 영혼,깨달음,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선과 악의 투쟁 등등 인간을둘러싸고 진행되어온 유서깊은 문제들을 화두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1만년 동안의 화두’(이용범 지음)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도,이 책은 급변하는 문화변동 시대의 인간의 위상을 인류사적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보기 드물게 큰 틀을 가지고 있다.인간의 어느 특정분야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다양한 관점에서 주목함으로써아둔한 전공의 위험에 경종을 올리는 것이다. 저자가 이 분야의 전문 학자가 아니라 작가라는 점도 이채롭다.저자는 작가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나간다.작가로서의 입담이나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아니다.저자는 오히려 여러 분야의 연구 결과를적시 적소에 자료로 제시하는 방법을 택한다.동서고금의 정평있는 문헌들이200여종이상이나 동원되고 있는데 그 자료들이 활용되는 문맥이 적절하고재미있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지적 호기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충족시키려는 재미있는 서술에만 있지 않다. 인간과 우주가 결국은 하나의 시원(始原)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결론은 전공과 속도에 휘둘리는 현대인에게 정녕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무겁게던진다. 들녘 펴냄,값 1만5,000원. [윤재웅 문학평론가·동국대 강사]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8)해상왕 장보고

    ‘生年未祇奉 久承高風 伏增欽仰(생년미기봉 구승고풍 복증흠앙: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습니다.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 갑니다)’. 840년 2월 17일.당에서 천신만고 끝에 신라배로 귀국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 장보고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그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덕분에 그나마 신라의 해양사,장보고의 활동,그리고 그의 동아시아적 위상을 알 수 있게 됐다. 장보고는 단순한 군인이나 상인,더욱이 야심찬 정치가는 아니었다.그는 변화된 동아지중해의 본질을 꿰뚫고 신질서의 핵심으로 뛰어든 인물이었다.장보고 선단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었고,바다와 육지에 걸쳐있었다.신라와 당,일본은 물론 간접적으로 발해와 동남아국가들,아라비아에까지 이어져 있었다.대운하의 주변에 포진한 신라방들과 연계하면서 산동반도의 여러 지역들,청도만입구의 연운,그리고 절강성 영파와 주산군도 등 황해의 서안,한반도의서해안,남해안,제주도,일본 규슈의 하카다,우사(宇佐)지역(金文經설)를 거점으로 황해와 동해북부를 제외한 동아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이 광범위한 활동의 중심지는 남부해안에 828년 설치한 청해진(완도)이었다.청해진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항로가 경유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동아시아의 해적을 퇴치하는 해군력을 키우고,선단이 대기하는 군사도시이었다.때문에 완도나 장도(將島)외에 주변 섬들에 소규모의 군항을 만들고,방어체제를 구축해 공수를 유기적으로 엮은 나폴리같은 대규모 해양요새였다.또 국제교역을 국내산업과 연결시키는 수륙교통의 요지로써 배후에 생산과 소비,운송을 담당한 강진 해남 등이 있는 해양폴리스였다. 장보고는 이 도시에서 사무역과 공무역과 산업을 관장하는 한편 해적의 퇴치,신라내정의 참여 등 사업을 벌였으며,곳곳에 황해 연안 포진한 신라방들을 관리하며 연결시켰다.때문에 라이샤워는 장보고를 해외조계지(colony)를지배한 총독(commissioner)으로 평가했다. 그로 하여금 경이적인 활동과 역사적인 역할을 하게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해양활동 능력이었다.신라인들은 항해술이 매우 뛰어났다.옌닌의 책에 따르면 신라배들은 산동반도에서 신라땅까지 바람이 좋을 때는 2∼3일이면 닿을 수 있다고 하였다.847년 옌닌이 귀국할 때 탄 배는 음력 9월 2일 정오 적산포의 모야도를 출발해 황해를 건너 다음날 아침 육지를보았다.직횡단거리가 200㎞ 정도가 된다. 신라인인 절강의 대항해가 장우신(張友信:조영록 설)은 명주를 출발해 3일만에 일본의 서부까지 항해하였다.동중국해의 북부를 사단으로 항해하는 고난도의 원양 항해이다.신라배에는 ‘암해자’,즉 뱃길을 숙지한 항해사와 풍부한 경험의 선원들이 다양한 항해도구를 사용했다.9세기초 일본열도에는 신라인이 자주 오고,신라배가 해안에 출몰하여 불안을 조성하였다.장보고의 사후에는 신라인들이 일본해안에서 들끓었다.이런 사실은 신라인의 항해술이뛰어났음을 알려준다. 장보고의 선단은 다양한 항로로 바다를 누볐다.황해중부 횡단항로는 산동반도의 적산 등주와 밀주 등 여러 지역에서 출발해 횡단하다가 백령도 등 황해도 연안의 섬들을바라보면서 서해근해를 남하해 청해진에 도착한 뒤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출항한다.가장 안전하고 많이 사용하던 항로이다. 두번째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절강성의 명주(영파)나 그 아래를 출발하여 동중국해를 근해항해로 북상한 다음에 상해만 부근에서 황해남부를 사선으로 항해,제주도 해역에 진입한다.한라산은 원양항해시 선박의 위치를 확인하는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이어 청해진으로 들어가거나 남해(사천:서영교설)나 동해(울산)부근으로 항해한다.또는 일본 서부의 고토(五島)열도로 항해한다. 세번째로는 절강에서 일본열도로 항해하는 또하나의 항로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당시 이 항로들은 계절풍을 이용했는데,특히 동중국해 사단항로는당나라를 출발할 때는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남풍을 활용하고,다시 당으로 돌아갈 때는 북풍계열을 활용해야 한다. 신라인의 조선술은 매우 뛰어났다.신라는 752년에 일본의 나라 동대사에서대불의 개안식을 하였는데,이때 축하겸 사절 700명을 7척의 배에 태워보냈다.1척에 약 100명이 탄 것이다.839년 일본조정은 장보고가 교역하던 태재부에 우수한 신라배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이 무렵 태재부에는 6척의 신라배가 있었다.일본은 가야 백제 신라 등으로부터 조선술을 배워 왔으며,당과 교류할 때는 사신,승려,상인들이 신라배를 타거나 신라선원을 고용하였다. 양주의 신라상인 왕청(王淸)은 일본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는데,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839년에 당에서 귀국하던 일본사신은 신라배 9척을 고용하여무사히 귀국한 일도 있었다.신라인들은 당나라 대운하주변과 항구에서 조선업을 하였다.847년에는 옌닌이 타고온 신라배가 현재 비파호 근처 히에이산의 명덕원(明德院)에 그림으로 남아있다.쌍돛대에 활대가 9개인 사각돛은 물레를 이용하여 움직이고,닻이 8개 이상이었고,누각이 있다.그런데 당나라에가는 일본사신선들은 길이 20여m,폭은 7m 전후로,백 수십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대선들이 수십척씩 그물같이 뻗은 항로를 이용해 황금의 바다에서 사람과 각종의 진귀한 물건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장보고는 해양을 매개로 ‘동아지중해 환류(環流)시스템’을 완성시킨 전무후무한 사람이었다.그러나장보고의 죽음과 함께 이 시스템은 붕괴되어버렸고,바다는 배반의 공간이 되었으며,신라의 해양시대는 종언을 고하였다.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일부가 해상호족으로 기사회생하여 후삼국시대와 고려라는 새질서의 주인이 되고자 꿈틀거리고 있었다. 21세기 신질서속에서 분단한국은 중국와 일본에 비해 열세이다.우리가 생존할 길은 장보고를 모델로 신 해양질서의 본질을 인식하고,해양력을 강화시켜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 추진하는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1차전서 참패 안방서 되갚는다…올림픽축구팀 잠실서 2차전

    ‘두번 실수는 없다’-.허정무감독이 이끄는 올림픽축구대표팀이 27일 오후 7시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일본과의 친선경기 2차전을 앞두고 필승의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7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가진 1차전에서 1-4로 참패한 한국은 귀국후막바로 광양으로 내려가 전술훈련을 마쳤고 지난 18일 상경과 동시에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추석연휴도 반납한 채 훈련중이다. 허감독은 “1차전 패인은 미드필드 싸움에서 뒤졌기 때문이다.2차전에서는미드필더 숫자를 늘려 중앙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고 필승 전략을 밝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고수하던 3톱 시스템(3-4-3포메이션)을 버리고 이동국(포항 스틸러스)과 최철우(고려대)를 투 스트라이커로 세우는 대신 3톱으로활약한 설기현(광운대) 안효연(동국대)을 플레이메이커 이관우(한양대),수비형미드필더 김남일(한양대) 김도균(울산 현대) 등과 함께 미드필더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허감독이 그동안 대체요원으로 뛴 최철우를 ‘필승카드’로빼든 이유는 지난 7일 1차전에서 영패를 모면하는 골을 터뜨려준데 따른 배려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난달 유럽전훈에서 4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스피드와 상대 수비의 움직임을 빼앗는 개인기가 뛰어나기 때문. 한편 10월3일 중국과의 첫 경기 등 코앞에 다가온 내년 시드니올림픽 최종예선(10월3∼11월13일)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허감독은 “일본전에서의 지나친 승부욕이 올림픽본선 티켓을 따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변의 염려에 대해 “오히려 1차전 참패를 만회하는 것이 최종예선에서의 선전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며 선수단을 독려하고 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중구 10월1일 구민의 날, 각종 문화행사 풍성

    서울 중구(구청장 金東一)가 구민의 날을 제정,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다양한 주민축제를 마련한다. 지난 1943년 중구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래 처음으로 갖는 구민의 날 행사다. 구민의 날 제정과 관련,구는 그동안 신당동과 중림동이 편입돼 현재의 행정구역이 확정된 75년 ‘10월 1일’안과 일제때인 43년 경성부 안에 중구가 생긴 ‘6월 10일’안,숭례문 건립일인 1396년 ‘3월 4일’안 등 세가지를 놓고몇차례 여론조사를 거치는 등 고심해오다 최근 10월 1일을 구민의 날로 확정했다. 첫날인 1일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널뛰기 투호던지기 제기차기 떡메치기도자기빚기 등 전통놀이와 문화행사가 마련되고, 2일은 동국대 운동장에서‘중구민 한가족 체육대회’가 열린다. 이어 노인장기대회(5일 구민회관),‘우리집 맛자랑 경연대회’(6일 구청 강당),‘어린이 글짓기·그림그리기 대회’및 ‘주부백일장’(7일 남산),‘장충단제’(8일 장충공원),‘중구민 한가족 걷기대회’(10일 남산) 등이 개최된다. 김재순기자 fidelis@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7)海商王 장보고(상)

    841년 11월 중순 어느 날.한반도의 남쪽에서 빛나고 있었던 ‘동아지중해의 진주’인 청해진이 역사에서 사라지고,그 주인인 장보고는 암살돼 영웅의일생을 마쳤다. 장보고는 현재 완도군에 있는 한 섬에서 태어나 차별받고 자란 섬사람이었다.아명이 ‘궁복(弓福)’인 그는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배를 타고 당으로 건너갔다.그때는 관리와 귀족,승려,상인들도 많이 건너갔다.가난을 피해 외국으로 이민가는 서해 연안의 농민이나 어민들도 많았다.당군의 초급장교가된 장보고는 역설적으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일가가 일으킨 대당전쟁을 토벌하는 무령군(武寧軍) 군중소장으로 출세했다. 이정기는 고구려 멸망후 요동에서 산동으로 옮겨와 그 지역을 지배하던 군벌이었다.평로치청절도사(平盧淄靑節度使)로 발해 및 신라의 교역을 통제하였다.동족인 발해와는 황해북부항로를 이용하여 상당한 규모로 군마교역을하면서 부를 축적했다.그는 산동지역의 해양권과 대운하의 주변을 장악하면서 당을 경제·정치적으로 위협하다가 제나라를 세워 당나라와 오랫동안 전쟁을 했으나 결국 819년에 패하면서 55년에 걸친 역사는 사라졌다. 이를 계기로 유민사회는 전환을 맞았으며,신라와 당의 관계는 보다 원활해졌다.이 시기에는 대운하와 황해연안주변에 재당 신라인들이 집단거주지를이루었으며,황해를 건너다니며 교역을 하였다.장보고는 이들을 조직화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갔다. 당의 고급장교로 신라변방의 해양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거대 해상(海商)으로 커가던 장보고는 당시 국제질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세계는 군사적 대결에서 경제협력 중심으로 변화하였고,교역이 질서변동의 핵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지중해와 페르시아의 물품들이 대상길과 해상길을통해서 중국에 수입됐고,다시 더 큰 이익을 위해 신라와 일본으로 수출됐다. 마찬가지로 신라와 일본의 토산물이나 공산품들도 당에 수출되었다. 산업이 발달한 신라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수출해야 했다.당시 육로는 폐쇄돼 있어,열린 길은 해로 뿐이었다.때문에 각 나라는 물류망을 장악하고,해양력을 강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바로 이때 장보고가 시대변화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몇가지 상황이 조성되었다.당시 동아지중해에는 당과 신라,일본의 해적이 횡행하고 있었다.해적들은 일종의 무장상인(武裝商人:armed-merchant)으로 그 실체가 분명하지못했다.다국적군으로 이뤄진 해적은 선박을 공격하고,교역을 방해하며,심지어 노예무역까지 하였다. 때문에 해로망을 이용한 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당상인 신라상인 일본상인들에게 해적은 제거의 대상이었다.각 국은 해양방어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 대규모 해군을 편성해 해적선을 토벌할 능력이없었다.때문에 상인과 정부는 무정부 상태인 황해에 무장력을 갖춘 해상관리자가 나타나 해적을 퇴치,바다를 평정하고,교역로를 보호해주길 바랐다. 한편 당에는 해적들에게 잡혀온 신라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당은 법으로 이를 금할 정도였다.장보고는 신라에 노예약탈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웠다.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으며,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서해와 남해에서 발호하는 해상세력들을 통제하는 일이 시급했다.또 교역상의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한편 보다 국제화되고,정치적인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의 해상세력을 키워야만 했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국제환경과 신라내부의 필요에 의하여 장보고는 828년에 귀국,‘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는 직책으로 해양과 관련한 전권을 부여받으면서 동아지중해의 ‘해상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라이샤워 설)이 되어갔다. 그는 해적을 퇴치하여 바다를 안녕시켰다.황해 연안에 퍼져 있던 재당 신라인들을 체계적으로 조직,거주지역,물품생산,교역과 해상운송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며,법화원(法華園)같은 종교시설을 마련,정신적 유대관계를 강화시켰다.특히 본거지를 군항이며,자유무역항(金成勳설)으로 만든 청해진에 두어 재당신라인과 본국의 신라인을 동시에 관리하고 조정했다.제조업,상업,운송업,삼각 중계무역,보세가공업,문화교류,이데올로기 전달 등을 ‘해양’이라는 시스템속에서 운영하였다. 장보고는 ‘대당매물사(大唐賣物使)’를 교관선이라는 무역선에 실어 파견하였으며,구(毬:페르시아산 담요) 자단(紫檀:자바 등의 향목) 향(香:수마트라산 향료)등 고가품을 수입해 신라귀족들에게 팔았다.또 일본을 방문,현재의 후쿠오카에 지점을 설치하고 ‘회역사(廻易使)’란 무역선을 보내 사무역(私貿易)은 물론 공무역까지도 시도하였다.이 때문에 엄청난 무역 역조현상이 일어나 조정에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보고는 무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하면서 신라인의 저력을 동아지중해에 실현시켰다.그는 오늘의 의미로 볼 때 좁은 신라땅을 극복하고 해양을 매개로 NET(자연스러운 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로만들었다.그는 또한 군산상(軍産商)복합체를 실현시켰으며 가문이나 혈통,학문적인 배경없이 탐험정신 하나로 해외로 진출,사업에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질서를 두려워한 신라의 보수적 중앙귀족과 장보고선단의 해상권 장악을 억제하려는 세력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장보고의 깨진 꿈과 함께 우리는 동아지중해의 주인자리를 앗겨버렸다.장보고는 바다를 향해 진출하려는 현재의 우리에게 ‘중핵관리 역할’이라는 희망과 지도자의 한계에서비롯된 좌절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대한광장] 盜聽은 수사의 正道 아니다

    모두가 직장에서 일할 시간인 낮에도 서울시내 교통이 언제나 혼잡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우스개퀴즈가 있다.정답은 많은 시민들이 전화도청을 피해 직접 만나 이야기하려고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란 것이다.처음 들었을 때는 모두들 큰소리로 웃지만 웃음소리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불안감과 불쾌감이다. 전화,팩시밀리,E메일에 대한 감청(監聽),감시(監視),도청(盜聽)이 늘어나고 있다.보도에 따르면 94년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검찰과 경찰 등 사법당국은 모두 37억여원을 들여 650여종의 감청장비를 구입,활용하고 있다고 한다.또 유무선 통신업체에 대한 수사기관의 정보제공 요청건수는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9만3,000여건에 달하며 이동통신업체에 대한 통화내역 조회건수도 지난해 1만7,000여건에서 4만8,000여건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이렇게 수사기관에 의한 감청과 감시가 늘어나는 것은 수사방법이 점점 기본을 벗어나고 있다는 걸 뜻한다고 본다.개인의 통신정보에 대한 감청은 영장이나 협조의뢰서가 발부되는 한에 있어서 합법이고 증거확보의 신속성·확실성이라는 차원에서도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것이 수사의정도(正道)는 아니다.또 우리나라의 윤리관으로 보아서도 떳떳하게 내세울만한 방법이 아니다. 수사기관의 담당자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범죄를 보다 교묘하게 하고지능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으므로 그에 대응하는 수사방법을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지 모른다.그러나 위험하고 나쁜 것은 전화,팩시밀리,E메일 등의 정보유통시스템이나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범죄자들이다.이들을 잡아내는 데 쓰이는 방법이 법적으로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정당한 수단이라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사실 개인의 정보통신내용에 대한 감청이 늘어날수록 통신상의 비밀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은 더욱 개발되고 세련되게 된다.전화통신 이용자들은 통화자간의 보다 확실한 비화기능(秘話機能)을 원할 것이며 인터넷 등 컴퓨터 통신 이용자들은 더 안전한 암호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E메일뿐만 아니라 음성통화의 보안성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유지할수 있는 암호화기술이 개발돼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따라서 과학적 수사기술이 발달한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이미 ‘감청수사’가 효율적인 수사방법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설사 특정한 범죄용의자의 통신정보에 대한 감청에 성공한다 해도그것에 암호가 걸려있을 때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서 해독하지 않으면 안되고,암호를 풀었다고 해도 그것이 범죄를 입증하는 정보가 아니었을 경우비용과 인력의 낭비가 클 뿐 아니라 다른 수사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수사기관들이 풀어야할 숙제는 범죄자들과의 사이에서엿듣는 것과 엿듣는 것을 막기 위한 기술개발에 무한경쟁을 벌이는 일이 아니다.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기반으로 과학적이고도 떳떳한수사방법을 개발하고 실행할 때,우리 사회에 범죄가 들어설 공간을 확실하게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감청수사의 또하나 중요한 문제는 합법적인 감청이든 불법적인 도청이든 이것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캐내는 것을 의미하는 이상,비밀을 쥔 자의 범죄또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바로 며칠 전에도 대구의 한 경찰관이 경찰서장 명의의 공문서를 위조해 전화국에 제시함으로써 개인의 전화통화내역서를 민간에 유출시키다가 적발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례만 가지고 극히 일부의 몰지각한 소행을 일반화할 수 없다고 한다면,백번 양보하더라도 수사기관이 그동안 감청·감시한 방대한 양의 정보중에서 정말로 범죄에 직·간접으로 이용된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알 재간이 없는것 또한 사실이다.혹 국민의 혈세를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이 드는 사람은 필자만이 아니다.관계당국이 이러한 의문에 대해 납득할수 있는 해답을 주기 위해서는 올해 각 통신회사에 제공을 요청한 15만여건의 통신정보 중에서 감청이나 분석에 의해 범죄자를 기소했거나 범죄사실을입증하는 자료로 삼은 정보가 몇건인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감청정보가 범죄수사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점,이것이야말로 감청수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중에서 일반 시민들이 가장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측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무곤 (동국대교수‘신문방송학)
  • [기고] ‘베를린 합의’ 이후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이 타결됨으로써 북·미관계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공동발표문에서 핵심 쟁점인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와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미·일 3국의 포괄적 대북 접근방안인 ‘페리구상’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한 ‘연착륙정책’에 어느 정도 호응해왔고 향후에도 페리구상을 수용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따라서북한은 클린턴의 임기중에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 당국은 그렇게 해두어야미국의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안정적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 이후 북·미관계는 다소 긴장관계가 조성되기는해도 전반적으로 제네바합의의 틀이 유지되고 있고 북·미관계도 개선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통한 핵 위기 해소(핵동결),1999년 3월 금창리 지하핵 의혹시설 조사(방문)합의,1999년 9월 대포동2호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등 북·미간에 다소 굴곡이 있기는 해도 현안문제의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미국의 개입 확대전략과 북한의 생존전략 사이에 ‘이익의 조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베를린 북·미합의 이후 남북관계 개선 여부이다.베를린회담 등을통해 북·미간 관계발전이 있더라도 북한이 기존의 ‘통미봉남(通美封南)’또는 ‘선미후남(先美後南)’정책을 수정하여 남북당국간 대화에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남북한 해군 사이에 벌어진 서해교전(연평해전)은 남북당국간의 신뢰회복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서해교전은 북한에 여러가지 ‘교육적 효과’를 주었다.재래무기의 노후화로 남북간 정면대결에서는 북한이 승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또한 북한은 서해교전을 통해서 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절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서해사태 이후 남북관계는 냉각기로 접어들었다.북한의 북방한계선 무효화를 위한 서해 해상분계선 선포와 해상군사통제수역 수호 표명 등으로 남북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어 서해사태에 대한 원만한 해결 없이는 남북당국간대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미,북·일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이 ‘조화와 병행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수단이 많지 않다.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국내 정치적 상황에 비춰보더라도 대북 ‘시혜’나 ‘양보’를 전제로 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당분간 한·미·일 3국 정상회담 등을 통해서 북·미관계 개선을 지원하고 포괄적 대북 접근방안을 구체화하는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우리 정부는 당분간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한 대북 접촉 창구와 채널을 확보하고 공식·비공식 접촉을통한 현안 해결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미관계 개선과 이를 통한 북한의 자본주의체제로의 편입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냉전구조 해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기때문에 남북관계의 발전이 더디다고 해서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우리 정부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 ‘이정표’에 따른 포괄적 대북 접근방안을 차근차근 구체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高 有 煥 동국대교수·북한학
  • [쉽게읽기] 이집트 死者의 書

    얼마 전 소중하고 가까운 분이 세상을 뜨셨다.유명을 달리한 이야 무얼 느끼랴만,언제나 그렇듯이 살아 있는 이들은 슬픔에 잠긴 채로 바빴다.문상을하고,장례를 치르고,49재를 하고….생각해 보면 이런 일들은 죽은 이를 위한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의 배려이리라.그것은 곧 인간의 죽음이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증거하는 문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죽은 이를 위하는 배려의 전통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또한 다양하다.그러나 전통 그 자체가 하나의 문명으로 발전해 수천년을 이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이집트가 바로 그렇다.피라미드와 파피루스로 상징되는 고대 이집트 문명은 죽은 이들을 위한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책을 뒤적이거나 현장을 답사하는 일보다 당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살펴 보는 일이 더 중요한 까닭이여기에 있다.그런 점에서 ‘이집트 사자의 서’를 읽는 일은 고대 이집트를이해하는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더없이유용하다. 이 책은 ‘티벳사자의 서’와 더불어 죽음에 관한 인류의 가장 뛰어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삶의 비밀에 대한 신성한 성찰이기도 하다.두 책이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에 있는 사자를 위한 안내서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부활을 통한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반영하는 것이다.죽은 뒤에 영원히 산다는 것. 이보다매혹적인 생각이 또 있을까? 책 읽기를 통해 삶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역설적으로 ‘죽음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여기에서 생기는 것이다.더구나 이 책은 유대교의 원형을 이루는 형제 살육의 사건을 신화의 양식을 빌려 펼쳐 보이고 있으며,수난과 영생과 부활의 드라마를 통해 성서의 골간을 이루는 토대를 일찌감치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문명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이 책이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다.이집트학의 서막을 연 대영박물관의 실장 윌리스 버지,독일 학자 랩시우스,그리고 최근에 포크너가 편찬한 것을 소장인류학자인 서규석씨(국회 정책연구위원)가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한 것이다.국내 이집트학 연구의 수준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또다른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왕조 성립 이전부터 왕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3,000여년에 걸쳐 수많은 사제들이 남긴 주문들을 통해 고대인들의 사생관을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독특한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고대 문화의 깊숙한 곳까지 여행할 수 있음은이 희귀한 문헌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행복일 것이다. 문학동네 1만4,000원[서규석 편저]윤재웅(문학평론가 동국대 강사)
  • [대한시론] 재벌체제는 사회 곳곳 병들게해

    현재 정부는 일부 대재벌의 불법과 탈법을 척결하기 위해 국세청,공정거래위,금감원,검찰 등 4대 기관을 통해 사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국민의 정부의 이 조치는 역사적 차원의 국가행위이다.‘재벌체제’는 지금까지 법 바깥에서 또는 법 위에 존재하였지만,역대 정권은 이를 봐주며 재벌을 등쳐먹기만 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위의 근본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그러나 건국 이래 50년 동안 우리는 법치주의 확립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국민 속에서는 법치냉소주의가 팽배하였다.‘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시쳇말은 사법(司法)에 대한 대중의 좌절감과 냉소를 잘 집약하고 있다.대중은 국가기관의 말보다 도둑놈의 말을 더 믿고 신창원을 의적으로 간주하는 전도된 법의식을 갖고 있다.이런 법치냉소주의의 척결은 국민이 ‘죄벌(罪閥)’이라고 생각하는 재벌체제의 비법(불법·탈법·편법)을 방치하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재벌들의 비법적 오만은 “정부의 각부처를 분양받고 청와대를 돈 주고 사버리고싶다”는 그들의 주석(酒席) 농담에서 잘 드러난다.또 “기업경영에서 주가조작과 주가관리는 구별하기 힘들고 정부도 기관투자가를 이용해 주가관리를 하고 있다”는 전경련 부회장의 발언은 그들의 불법불감증을 잘 보여준다.공익을 위한 정부의 주식시장 개입과 사익을 위한 재벌의 주가조작을 등치시키는 이 발언은 정부를 ‘형님재벌’쯤으로 여기는 국가능멸이다. 조세연구원은 재벌들이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한다면 경영권의 대물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경영권이 세습되어 온것을 보면 ‘재벌체제’는 불법·탈법·편법복합체라는 것을 뜻한다.재벌이관행적으로 범해 온 탈세,정경유착적 부정부패와 뇌물행각,자금해외도피,주가조작,편법상속은 재벌비리의 주종목이다. 재벌의 1인 독재식 기업지배체제는 합법적인 기구들(기업의 독립법인성,이사회,감사,주주총회 등)을 무력화시킨 채 생성되고 존속해왔다.재벌체제의경영권 대물림이 불법과 편법의 산물이라면,‘재벌체제’의 생성과 유지는탈법의 산물인 것이다. 총수가 아무런 합법적 권한도 없이 어떤 계열사에 투자하고 어떤 회사를 인수하고 어떤 계열사의 빚보증을 서라고 지시하는 탈법체제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성장할 수 없다.경영자들이 밥먹고 골프치는 것까지도 체크하는 숨막히는 독재체제에서 자기 판단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책임경영 체제가 발붙일 수 있겠는가? ‘재벌체제’는 기업 테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재벌체제’는 언론사의대광고주로서 언론사에 영향권을 확대하여 여론을 병들게 하고 재벌비호 정치인을 키우고 각종 재단과 대학교를 세워 심지어 수많은 교수,언론인,문화예술인들까지도 장악하는 등 사회 곳곳으로 뻗쳐있다.그리하여 이들의 입을통해 ‘재벌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한다.경제발전에 재벌의 공도 크다는 둥,재벌체제가 국제경쟁에서 유리한 점도 있다는 둥,재벌압박은 경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둥,‘과격한’ 말로 언치(言治)를 한다는 둥 하는 말들이모두 이런 지식분자들이 만들어 낸 재벌이데올로기에 속한다. 경제발전에 공이 큰 군사정부가 수명을 다하고 청산된 것처럼 구(舊)재벌체제도 과거의 공으로 더이상 수명을 연장할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재벌체제가 국제경쟁에서 불리하다는 것은 IMF 위기가 웅변으로 증명하였고 재벌개혁은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를 제고시켜 준다.근거없는 말로 재벌체제를 비호하는 것은 역사적 죄악일 것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도 하고 ‘도덕의 최대한’이라고도 한다.‘재벌체제’의 비법적 재생산은 부도덕성의 재생산이다.검찰은 ‘재벌체제’의 이 부도덕성을 역사적으로 종식시킴으로써 그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할 것이다.검찰의 도덕적 생사(生死)와 법치확립은 이 일의 성패에 달려있다. 黃 台 淵 동국대교수·정치학
  • 야구 드림팀Ⅱ “시드니를 향하여”

    한국야구 ‘드림팀Ⅱ’가 시드니행 티켓 사냥에 나선다-.프로야구 톱스타가 망라된 야구 국가대표팀이 11일 잠실에서 개막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전을 겸한 제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9일 첫 합동훈련에 돌입했다. 이번 ‘태극 군단’은 ‘병역미필팀’으로 불린 지난해 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드림팀Ⅰ)과는 엄연히 다른 명실상부한 올스타팀.홈런신화를 창조하고있는 ‘라이언 킹’이승엽(삼성)을 핵으로 이병규(LG) 양준혁(해태) 박재홍(현대) 유지현(LG) 김한수(삼성) 등 최강의 멤버로 ‘다이나마이트 타선’을구축했다.또 시즌 19승의 정민태(현대)를 비롯해 주형광(롯데) 정민철(한화) 임창용(삼성) 진필중(두산) 등 특급 투수들이 마운드에 포진,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아마추어에서는 조용준(연세대) 경헌호(한양대 이상 투수) 김상훈(고려대 포수) 신명철(연세대 내야수) 박한이(동국대 외야수) 등이 프로와 호흡을 맞춰 정상 등극에 한몫 하겠다는 다짐이다. 올림픽 출전권 2장이 걸린 이번 대회는 6개국이 A조(한국 중국 태국)와 B조(일본 대만 필리핀)로 나뉘어 예선리그를 벌인 뒤 각조 2개팀이 결승리그에진출,상위 2개팀이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2연패를 노리는 한국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숙적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최우수선수(MVP)에 두차례나 뽑힌 ‘최고의 안방지기’ 후루타 야쓰야(야쿠르트),유격수 노무라 겐지로(히로시마)가 공·수·주에서 발군의 기량으로한국을 위협할 것이 틀림없다.특히 155㎞를 웃도는 강속구로 일본열도를 후끈 달구고 있는 18살의 ‘괴물 루키’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는 일단 대만전 등판이 점쳐지고 있지만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대만도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LA 다저스 싱글A에서 30홈런-30도루에 근접해 차세대 거포로 꼽히는 첸친펑,일본 주니치에서 100승-100세이브를 달성한 백전노장 궈위안즈(43),최고 구속 155㎞로 일본 프로에서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고교 3년생 차오친후이(19) 등이 우승을 장담하고 있다. 주성노 대표팀감독은 “마운드가 다소 허약한 대만이 1차 공략 대상”이라며 “치열한 마운드 싸움이 예상되는 일본전에서는 홈런 한발에 승패가 갈릴 전망이어서 이승엽과 이병규 등 장타자들의 활약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성수기자 s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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