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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7호선 개통 한달 탐방/ 고속버스터미널역

    지하철 7호선 개통과 함께 새로운 소비 중심지가 떠오르고 있다.고속버스터미널역(서초구 반포동)에서 3분만 걸으면 복합 쇼핑·문화공간인 센트럴시티가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강남 고속버스 호남선터미널이 탈바꿈한 센트럴시티는 부지면적 3만5,000평,건축 연면적 13만평의 대형 건물로 1일 개장했다.지하 1층에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7,000여평 규모의‘영플라자’가 있어 젊은이들의 소비·문화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멀티플렉스 영화관,대형서점,음반매장이 있고 화장품,의류,잡화 등 다양한 매장이 자리잡고 있다.첨단장비를 이용한 사이버 테마파크도 있다.대학생인 김영태군(20·동작구 사당동)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지않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영플라자에 들어가면 분수광장이 나온다.광장 가운데 사람을 그대로묘사한 ‘도시인들’ 조각이 있다.조각상 손을 잡거나 조각상이 있는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분수와 어울려 색다른 느낌을 준다. 광장 왼쪽에는 영풍문고 강남점이보인다.1,500여평이라는 엄청난규모와 80만권의 책을 자랑한다.최고 6.5m의 높은 천장이 지하공간의답답함을 덜어준다.우리나라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매장 내에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해 장애인의 편의도 고려했다.이벤트홀에서는 미술전시회나 강연회가 수시로 마련된다.박준석씨(24·동국대2년·중랑구면목동)은 “전철로 26분이면 올 수 있고 전문서적을 사기 위해 강북까지 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고 말한다. 스노우보드,경주용자동차,스키,오토바이 등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있는 사이버 테마파크에서는 신나게 첨단게임을 즐길 수 있다. 6개의상영관이 있는 ‘센트럴6시네마’에선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고 ‘월드푸드코트’에 가면한식,중식,일식을 비롯해 피자와 패스트푸드 등여러 가지 음식을 각자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다.인테리어도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를 내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이달말쯤에는 자동차백화점인 ‘오토몰’이 개장할 예정.20개국 200여종류 자동차를 구경하고 살 수 있게 된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한나라, 정치자금화 의혹 제기

    한나라당 ‘권력형비리조사특위(위원장 玄敬大)’는 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한빛은행 관악지점에 대한 본점 감사과정에서 대출금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온 거액의수표에서 민주당 의원 등의 명의가 배서돼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 수표가 나오자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왔고,그 직후 감사를 중단하고 자료를 수거해 (감사단이)철수했다”며 “‘아크월드’ 등이 불법대출을 받은 기간이 총선 직전인 올 2월에 집중돼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돈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화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 위원장은 또 박혜룡씨가 대표로 있던 ‘아크월드’측이 ‘동국대동창회’로 보냈다는 팩스 사본 2장과 ‘동국대 총동문회’가 동국대총동문회장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보냈다는 호소문사본 1장을 각각 공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은 ‘동국대 동문회’가 자신에게팩스를 보냈다는 야당의 주장은 “사실이아니다”라고 부인하고 현경대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찬구 주현진기자 jhj@
  • ‘한국전 양민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 출범

    한국전쟁 전후 군·경 등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피학살 실태와 희생자 보상문제 등을 다룰 전국 규모의 기구가 처음으로 결성됐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준비위원회’는 7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대강당에서 범국민위원회를 출범했다.유족은 물론 연구자·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이 범국민위원회는 주요사업으로 ▲피해실태 조사연구 ▲통합특별법 제정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대국민홍보사업 등을 확정하였다. 이날 창립대회에서 상임대표에는 강정구 동국대교수·채의진 문경유족회장 등 3명이,공동대표에는 이해동 목사·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이장희 외국어대 교수·문규현 신부 등 23명이 선출됐다.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박형규 목사·고은 시인 등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사무처장에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정책기획실장에는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이 뽑혔다.창립대회가 끝난뒤 참석자들은 차를 타고여의도까지 이동,국회 주변에서 상여·만장 등을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독도찾기 운동본부’ 발기대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文奎鉉) 신부와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姜禎求) 교수,민주노총·한국노총 관계자 등 600여명은 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한민족 독도 찾기운동본부’ 발기대회를 갖고 독도 수호결의를 다졌다. 운동본부는 결성 선언문을 통해 “98년초 발효된 한·일 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중간수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일본측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제공했다”면서 “현재 동호회 수준에 그치고 있는 독도 주권수호 운동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각계 각층의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다음 달 중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한 뒤 11월초 공식출범한다. 송한수기자 onekor@
  • [대한시론] 위기불감증의 위기

    우리는 어디에 와 있나.나로서 당장 피부로 느끼는 것은 한국의 지배층 부류가 진실 앞에서 허위를 우겨대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된지 오래라는 서글픈 사실이다.여기서 무슨 윤리 훈화를 할 처지가아니지만,윤리감각의 마비나 부재현상이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빨간 불’이 아닌가 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아무리 봐도 이대로 가다가는 겨레로서나 개인으로서나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없다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구기득권층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현실과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 승복하길 거부하는 심사이다.그래서 모든 힘을 현정권에 몰아붙여 정권 향배를 가리기까지할 투쟁에 모으고 있는 인상이다. 그냥 정치투쟁이나 정치갈등의 양상이 아니다.정상적 상황에서라면 선거가 끝나서 승패가 가려지면 그임기중 국가운영에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여야가 각기 제몫을 담당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조공생의 동반자가 된다.그런데 우리사정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제 모습,이른바 자화상을 돌아보자.97년 외환위기의파국을 간신히 벗어났다고 하지만,아직도 마음놓을 정도는 아니다.무엇보다 정경유착의 모순구조로 파국을 자초한 장본인들이 한번도 진심으로 사죄하는 자세로 위기극복에 협력하는 것을 못봤다. 오히려그런 책임의 일부를 질 자들이 경제발전의 주역이고 공로자라고 하며국민경제를 볼모로 해 족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다.이에 대해 정치권 일부는 그에 편승하고 그렇지 않은입장에 선 정치인도 그동안 그들의 돈을 받아 정치를 했기 때문에 떳떳하게 개혁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결국 정경유착의 모순구조로말미암은 부담을 고스란히 근로자와 소비자 및 착하게 세금낸 국민에게 들씌우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그래도 속수무책이고 그래서 개혁에 앞장설 대중이 개혁에 반발하고 개혁드라이브는 헛바퀴가 돌아가,개혁반대부류를 기쁘게 해주고 있다.그들은 독재정권 시절에 더욱미련을 두고 있다. 독재가 압살한 민주제도 중에는 지방자치가 있다.이 자치를 투쟁끝에 어렵게 회복을 시켜 놓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30여년의 군사독재는 지방의 호족층 지배를 뿌리내리게 했고 자치의 주역이 될 시민층을 철저하게 무력화시켜 놓았다.그래서 지방자치도 헛바퀴를 돌고 있다.중앙정부의 토목건설업이 판치는 분위기가 더 노골적으로 추하게드러나고 있다.러브호텔을 마구 허가해 주고 환경파괴에 무신경한 추태를 보라.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고 ‘세계화’와 ‘정보화’를 말해온지 오래된다.그런데 그에 따른 엄청난 현실을 기득권에 집착하는부류가 알기나 하는지.몇몇 재벌과 기득권층의 ‘우물안 개구리’식의 이권노름으로 날을 보내면서 우리는 생존 자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일을 봐도 그렇다.남북정상이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 이산가족 만남으로 부터 군사적 긴장의 해소나 경제 정치교류의 실마리를 조심스럽게 풀어가려고 할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것 자체가 못마땅해서 발목을 걸고 나서질 않나,용공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의혹의 분위기를 덧씌우지 않나,진행되는 일에 순서없이 시비를 걸지 않나,참으로 걱정할 정도이다.도와줘도 어려운 일에 왜 이럴까.정권잡는 것이 아무리 성급해도 정해진 절차와방법이 있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지금의 정치제도를 준수한다고 하면 법을 뛰어넘는 비약이나 변칙은통할 수 없고 국민이 위임한 바를 존중하는 마음가짐도 있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에게 있어 어느 누구도 합헌정부를 무시할 수 없다. 남북관계가 전쟁이나 무력적 제압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되어 있듯이 정권문제도 법률의 테두리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알고도 남음이있을 것이다.성급한 욕심으로 독을 깨는 일이 정치란 이름으로 자행되어 국민이 위임한 국정을 태만히 하는 것은 더욱 안된다.우리의 위기는 지배층이 본래의 임무를 태만하거나 포기하는 데서 똑똑히 감지되는 것이 아닌가.이 점을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적하고자 한다. [한상범 동국대교수·법학]
  • 이운영씨 2차회견뒤 또 잠적

    박지원(朴智元) 장관의 대출보증 외압 의혹을 제기한 신용보증기금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52)씨는 5일 2차 기자회견을 갖고 “박장관이 보증압력을 넣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서울 우이동의 한 음식점에서 일부 언론사 기자와만나 “지난해 2월8일 박장관이 전화를 해 ‘급성장하는 회사니까 아크월드에 15억 대출보증을 해주라’고 요청했다”면서 “사흘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와 ‘신용정도가 좋지 않다.5억원 정도는 (보증해 주도록)노력해 보겠다’고 했더니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아. 이걸못하면 당신 자리가 날아갈 거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 “박장관에게 동국대 동창회 임원 J씨를 보내거나 민주당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을 찾아가 선처를 호소한 적도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장관측은 “지난 5월초 J씨가 박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 문제로 만나기를 희망해 왔다”면서 “박장관은당시 이씨에 대한 탄원서가 여러 곳에 배포돼 있어 자초지종을 듣기위해 만날 약속을했다”고 말했다. 박장관측은 이어 “박장관을 찾아온 J씨가 선처를 호소했지만 박장관은 단호히 ‘결자해지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이씨에게압력성 전화를 넣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한빛銀 불법대출 수사

    한빛은행 거액 불법대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난항을 거듭하고있다. 검찰은 그동안 불법대출을 주도한 박혜룡·현룡씨 형제와 한빛은행전 관악지점장 신창섭씨(48·구속)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대출 경위와 대출금 사용처를 밝히는데 주력해 왔으나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게다가 지난달 31일 잠적중이던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52)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박씨 형제에 대한 대출보증과 관련,박지원(朴智元)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등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게 됐다. 검찰은 우선 ‘본류’를 수사하고 차후에 ‘곁가지’를 건드리겠다는 입장이다.검찰 관계자는 “전 지점장 신씨가 친지인 A사 대표 김모씨를 통해 미국으로 송금한 170만 달러(한화 19억원)의 출처 조사등 대출금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쫓고 있다”면서 “대출 외압 부분은 이씨의 신병이 확보돼야 관련자들과 대질신문 등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압 의혹 여부 규명에 필수적인 이씨의 신병을 검찰이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한 것은 의지부족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기소중지 상태인 만큼 긴급체포가 가능한 이씨가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기자회견까지 하며 ‘활보’하고 있는데도 검찰은 “간접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미온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대출의 ‘고리’역할을 한 전 관악지점장 신씨에 대한 수사도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검찰 관계자는 “신씨는 조사하면 할수록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그 큰 돈을 이곳저곳에 대출해줬다면 사연이 있을텐데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평가 엇갈리는 이운영 信保 前지점장. ‘억울한 희생양’인가 ‘파렴치한 범법자’인가. 지난해 2월초 박지원(朴智元) 당시 청와대공보수석으로부터 대출 압력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52)씨에 대한 엇갈린 평가다. 이씨는 지난달 31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부당한 압력을 거부한 양심적인 금융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사직동팀이나 서울지검 동부지청 등의 내·수사 결과는 다르다. 지난해 3월 당시 ‘이 지점장이 대출보증서를 발급해주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제보를 받아 내사에 나섰던 사직동팀은 이씨가 대출보증서를 발급해주고 1,000만원의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를 발견했으며 이씨는 서울지검 동부지청이 수사에 착수하자 잠적했다. 그러나 이씨 측근들은 “이씨는 원래 집안이 부유한데 무엇 때문에1,000만원을 받고 비리를 저지르겠느냐”면서 “이씨는 ‘희생양’일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방 명문 D고를 졸업한뒤 동국대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한 이씨는신용보증기금에 들어간 이후에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부산·광주·역삼지점장을 거쳐 ‘주요 보직’인 영동지점장까지 올랐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대한광장] 反美를 넘어 미국 바라보기

    최근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SOFA 개정,한강독극물 투하,매향리 폭격장,숱한 주한미군의 범죄 등으로 부터 미군철수,통일후 미군주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되고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반영하듯 국회에서도 SOFA의 전면적 개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발표되었다.대통령까지 맹목적인 반미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야당총재는 “급진세력의 선동적 반미운동이 전통적한미 우호선린과 안보동맹을 위협하고 있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활발한 시민사회의 논의는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한지 55년만에 처음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진전을 상징하는것으로 반가워 할 일이다.그런데도 이러한 민주적 논의를 반미=용공=친북=급진세력=불순세력=탄압대상(무조건)이라는 낡은 올가미로 덮어씌우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의 분노를 사고 있다. 과연 최근의 시민사회 움직임이 반미이고 또 낡은 반공매카시즘을불러와야 할 성격의 것인가? 최근의 논의는 불평등하고 비정상적인한미관계를 대등한 한미관계로 바꾸자는 평등권,서울시민의 식수인한강에 독극물을 투하한 것에 대한 환경권과 생존권,국제 폭격장이되어버려 주민들의 삶이 원천적으로 파괴된데 대한 생활권,주한미군범죄에 희생된 한국인의 인권,외국군을 철군시켜 자주권을 높이자는주권,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미군을 철군하자는 통일권,주한미군이전쟁억지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갈 위협이 있다고 철군을 주장하는 평화권과 생명유지권 등 제반 권리요구운동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과 운동이 맹목적인 반미로 흐르는 경향이 일부 있기는 하다.이에 대해 우려는 할 수 있겠지만 배격은 할 수 없다.더구나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급진불순으로 타도의 대상이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되는 극단의 논리이다. 우리의 제반 권리요구에 관한 문제라면 주한미군 뿐 아니라 어느 누가 관련되더라도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주한미군 문제를신성불가침으로 논의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까지 짓밟는 행위이다. 물론 주한미군이 아직도 필요하고 한미관계가 이대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논쟁을 통해서 할 일이지 시대 역행적인 반공매카시즘을 통해서 시민사회에 강제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는 마땅히 주한미군을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존치할 것이 아니라 공론의 대상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물론 주한미군에 국한시키지 말고 한미관계 자체에 대하여도 이러한끌어내리기는 필요하다. 과거 55년동안 우리들 대부분은 일부 근거없는 신화 속에 미국과 주한미군을 안치시키고 흠모와 동경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다.동시에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고유의 귀중하고 자랑스런 것들까지도 단지 미국의 것과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민족 비하주의에 빠져 왔다. 심지어 일부는 어린 시절 왜 저 넓고 힘세고 강한 미국나라에서 흰둥이로 태어나지 않고 이 조그만 한국땅에 노란둥이로 태어났는지 한탄하며 태생에 대한열등의식까지 가지기도 하였다.미국은 때로는 진정한 우방과 친우였지만 때로는 내정간섭과 점령군이었다는 점을 부정 할 수는 없다. 과거 일제 식민통치기간동안 수많은 조선인들이 조선총독부와 내통하여 민족개량주의라는 이름아래 나라 빼앗김을 일본이라는 외세에탓으로 보기보다는 우리 민족 스스로에게 돌림으로써 더 심대한 친일행위와 반민족행위를 해왔다. 이제 통일시대를 맞은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도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이완용, 최남선, 이광수 등이 저지른 친일행위와 너무나 유사성을띤 행위와 사고를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또 이제까지의 숭미주의와 감정적인 반미주의를 넘어 미국과 주한미군의 실체를 꿰뚫어보는 지미주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강정구 동국대교수·사회학
  • 대입 수시모집 오늘부터 접수

    2001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28일 연세대와 포항공대를 필두로 시작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7일 전국 191개 대학 가운데 48개 대학이 수시모집으로 1만3,499명을 뽑는다고 밝혔다.전년에 비해 19개 대학 5,367명이 늘어난 것이다. 1,000명 이상 모집하는 대학은 연세대·고려대·경희대 등 3개교,500∼1,000명은 서울대·이화여대·영남대·전남대 등 4개교,100∼500명은 성균관대·부산대·숙명여대 등 24개교,100명 이하는 포항공대·인하대 등 17개교이다. 수시모집은 대학이 정시나 특차모집에 앞서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으로,고교장 추천·자기추천·실업계 고교생·특기자 등의 특별전형 방식으로 뽑는다.가톨릭대와 숙명여대는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을 병행한다. 전형유형별 모집인원은 학교장 추천전형이 20개교 4,619명으로 가장 많고,어학·체육 등 특기자 전형 25개교 2,192명,교사 및 자기추천전형 8개교 869명,취업자전형 11개교 810명,조기졸업 등 나머지 전형13개교 1,361명 등이다. 연세대·포항공대는 28일부터,고려대·이화여대·한양대는 29일부터원서를 접수한다. 다음달에는 경희대(1∼3일),부산대(4∼6일),서울대(6∼8일),한국외대(14∼16일),동국대(15∼19일) 등 17개교,10월에는 충남대(2∼11일),건국대(12∼19일) 등 18개교,11월에는 인천대(6∼7일),대구대(1∼3일) 등 7개교가 원서를 접수한다. 박홍기기자 hkpark@
  • 황석영씨, 동국대서 명예졸업장

    동국대는 오는 25일 열리는 후기 졸업식에서 소설가 황석영(黃晳暎·57·본명 黃秀英)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황씨는 지난 70년 이 학교 철학과 3학년을 다니다 중퇴했으며,장편‘어둠의 자식들’ ‘장길산’ ‘무기의 그늘’ 단편 ‘삼포가는 길’ ‘한씨연대기’ 등을 발표하며 30년간 활발한 문단 활동을 펼쳐왔다. 김경운기자 kkwoon@
  • 하춘화씨, 동국대서 석사학위

    가수 하춘화(河春花)가 오는 25일 동국대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학위논문은 신민요와 트로트 가요를 비교분석한 ‘한국 가요의 원류와변천에 관한 연구’. 하씨는 98년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해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최근 일부 대학으로부터 출강요청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사과정 입학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한시론] 이산 상처를 아물리는 길

    우리는 남북의 부모와 자녀,남편과 아내,형제·자매가 반세기 만에만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눈물바다 속에서 며칠을 지냈다.우리뿐만아니라 세계가 울었다.비록 수백명에 불과하지만 만남의 물꼬를 텄다.큰 일을 해낸 것이다. 그간에 이산의 비극을 깔아뭉개 온 정치 장벽의 한 모퉁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우리는 이 만남의 민족사적 의의가 무엇인가를살펴 차분하게 마무리지어야 한다. 여기서 먼저 분명히 다짐해 둘 일이 있다.분단의 비극을 볼모로 하는 정치의 시대는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남북의 지도자들은 물론 주변국의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주문이다.1953년 정전협정 이래 남이나 북 어느쪽도 남북문제를 무력 또는 전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그렇기 때문에 남북이 아닌 제3국이 우리 민족문제를 자국 이득을 위해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민족적 입장이다. 다음은 우리에게 남북문제의 하나로 이산가족 문제가 정리와 감상문제일 수밖에 없지만,그것으로만 그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이 문제는 결국 정치와 법률 및 제도로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민족문제이고 동시에 국내 정치문제이고 국제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이 안겨준 엄청난 충격을 정치·경제·사회 등 각 방면에서 어떻게 아물려 가는가 하는 과제가 남북 지도자의 책무로 떠올랐고 우리가 떠맡아 해내야 할 일이 됐다. 그 가운데서도 이산가족이 서로 만남으로써 당사자 사이에 아주 껄끄러운 문제가 생기게 됐다.헤어졌던 부모와 자녀,남편과 아내,형제·자매들 사이에는 그동안 세월 속에 가리워진 각종 법률문제가 있다.냉전시대엔 월북자 가족이 있으면 쉬쉬하고 숨겼다.그러한 사실이드러나면 월북자는 실종신고를 해서 죽은 것으로 처리했다.그런데 지금 살아 있다니….월남하거나 월북한 남편과 아내는 남과 북에 각기배우자를 둔 채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살아 왔다. 그런데 이들이 만날 경우 그들의 법률적 문제는 어찌되나? 그러한 부모 사이에 태어난 형제·자매들은 남과 북에서 각기 어떠한 법률적위치에 처하게 되는가? 남과 북의 혈육이 반세기 만의 만남의 감격과 정리를 못이겨 사랑과 정성의 징표로 재물을 주고 받는다면 그 허용한도나 증여 방식 및 절차가 어떻게 되도록 해야 하는가? 나아가 상속상의 문제가 제기될 때 어떻게 법률로 처리하는가? 일일이 들어보면 사연이 복잡하다.헤어진 혈육이 반세기 만의 만남으로 생겨나는문제는 당연히 간단한 것이 아니다.그 이산가족들의 마음의 상처를건드리지 않고 신속하고 부담없이 법률 서비스를 해 주는 시민상담창구나 공적 구조기관 설치에서부터 특별법 제정까지도 배려해야 할 판이다.이러한 일을 미리부터 점검하고 대처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아닌가? 남과 북 양쪽의 책임자는 앞으로 이산가족이 계속 만날 수 있는 상봉 면회의 제도와 시설을 책임지고 설치 운영해야 하게 됐다.이 과업이 순리적으로 풀리기까지는 나라 안과 밖에서 넘어야 할 고개가 아직도 많다.우선 남북간에 정치·외교·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평화적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당장 남과 북은 소모적인 군비확장 경쟁이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아울러 남북 교류는 주변국인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 한편 나라안 당장의 문제의 하나는 통일에 회의적이고 반대하는 세력이나 냉전시대의 멸공 무력통일을 신봉하는 부류에 대한 문제다.그들의 냉전논리 대로라면 남북은 자살적 군비확장으로 긴장을 조성해야 하고 결국 전쟁에 이르게 될 것이다.이 논리 아닌 억지처럼 비현실적이고 자멸을 자초하는 역설은 없다.그점을 설득해 이해시키고,한편으로 민족에 해를 끼치는 위법적 탈선은 단호히 저지해야 한다.통일의 길은 남북 개방과 평화교류 및 그에 바탕을 둔 양쪽 체제의 민주화다.이산가족 만남의 민족사적 의의를 살리는 길은 이제부터 우리가 눈물바다의 감격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승화시켜 열매를 맺도록 하는가에 달렸다. [한상범 동국대 교
  • “울산암각화 古代설화 그린것”

    울산 반구대의 천전리 암각화는 개별 그림의 집합이 아니라 일정한스토리를 담은 고대설화라는 주장이 나왔다.그것도 ‘나무꾼과 선녀’,‘원앙부인 본풀이’,‘구렁이 설화’ 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는것이다. 조철수 이스라엘 히브리대교수는 ‘정보의 발생과 그림문자,그리고울산암각화의 상징체계’라는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이 논문은 지난17∼18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암각화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조교수의 전제는 울산 암각화가 ▲청동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집합그림이 큰 단위로 구분되어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고대 문양인동심원과 마름모·물결무늬 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메소소포타미아상징문자의 보편성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한국 고대신화에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소가 있고,천전리 암각화에도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네발 달린 용 그림이 나타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인도 및 동남아시아 해상로를 경유하여 전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발리섬의 그것과 닮았고,인도의 드라비다어와고대국어 사이에 연관된 단어가 수백개가 넘는 것을 보면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인도 동쪽 아유타왕국의 공주와 혼인한 이전에도 이미 잦은 왕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볼 때 천전리 암각화 오른쪽의 물결무늬와 사슴뿔위의 동심원을 연못에서 사슴이 태양신의 딸을 태우고 달아나는 장면이라고 본다면,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살려준 나무꾼에게 연못가에서 선녀가내려오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심부에 가면과 큰 뱀 그림에 이어 뱀 옆의 여러 마름모 모양을연못이라고 본다면 구렁이 설화와도 통한다는 주장이다.연못가에서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에 관한 이야기로 가장 잘알려진 신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담인 길가메쉬 서사시이다.같은 차원에서 사슴과 작은 동물들,꽃,남자 등이 나오는 중앙부의 그림은 원앙부인 신화와 연결한다.이 신화는 꽃감관(花監官)의 임무를 맡아 불려가는 남편을 임신한 아내가 따라가다가 발병이 나서 동네 부자에게 팔리고,태어난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은 뒤 사람을 살리는 꽃을 들고가 숨이 끊어진 어머니를 살리는 이야기이다. 조교수는 “울산 암각화에 표현된 동물들의 움직이는 방향과 사람의모습 등은 전체적으로 종교제의를 거행하는 장소에 그려진 파노라마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마도 정해진 계절에따라 종교제의를 행하는 집행자의 사설을 들으며 볼 수 있는 장면일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작은 단위의 집합 그림에서 상징무늬의 연결점을 구하고 이를 우리의 고대 문헌 혹은 전승에서 단서를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울산에서 암각화를 발견한지 30년이 되는 해를기념하여 열렸으며,암각화의 역사·예술·종교·민속·보존문제 등이망라된 13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문명대교수가 이끈 동국대박물관팀은 1970년 울산 천전리에서,다음해에는 이웃 대곡리에서 각각 암각화를 찾아 학계에 보고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전남대총장에 鄭碩鍾교수

    정부는 16일 전남대 신임총장에 정석종(鄭碩鍾·60)교수를 임명했다.정 총장은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69년부터 전남대 교수로 재직,자연과학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에 李潤鎬 경기대 교수 임용

    법무부는 16일 개방형 직위로 지정된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교정(부)이사관)에 경기대 교정학과 이윤호(李潤鎬·45) 교수를 3년간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했다고 밝혔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이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범죄학 분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89년부터 경기대 교정학과 교수로 재직해 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대한광장] 광복 55주년, 이산극복 원년으로

    광복절 55주년을 맞아 85년에 이어 두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남과 북그리고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 모두가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민족은 분단 55년이 지나도록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헤어진 부모 형제 자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처해있다.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반세기동안 이산가족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아니할 수 없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가족권을 보장하려는 인도적인 문제로서 남북한 당국은 물론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시급히 해결해야할 당면 과제다.그동안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어려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산가족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남쪽은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데 비해 북쪽은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남쪽은 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고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현안문제와별도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특히 김대중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이산가족 재회 및 편지왕래를 취임 1년 안에 해결하겠다고 그 시한을 명시하고,취임 이후 이산가족 문제해결을 대북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두어왔다.김대중정부는 두차례에걸친 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비료지원과 병행하여 해결하기를 북측에 요구한 바 있으며,베를린 선언과 정상회담에서도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북한은 이산가족문제를 정치문제와 결부시키면서 “통일이 되면 이산가족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북한이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폐쇄적인 북한사회가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로 인하여 북한체제의 유지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데 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앞둔 98년 2월15일 중앙방송을 통해서 3월1일부터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에 주소안내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의 이산가족 찾기를 주선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김대중 정부의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에 대해서 북한이 이산가족 주소안내소 설치로 ‘화답(和答)’해옴으로써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던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첫 실천사업이다.남과북 각각 100명씩 ‘선택받은 소수’만이 헤어진 가족과 상봉을 함으로써 상봉하지 못한 대다수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다행히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10월에 계속해서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고,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의 고향 방문까지실현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가 지닌 민감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즉 김위원장은 “이산가족문제는 준비 없이 갑자기 하면,비극적인 역사로 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다”면서 “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이는 김위원장이 이산가족문제를 여전히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북한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북한 사회주의체제 안정 등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들의 전면적인 상봉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은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제도화이다.소규모 단위의 단발성 상봉보다는 이산가족의 주소및 생사확인 작업이 급선무이다.주소가 확인되면 서신교환과 전면적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다가오는 9월 비전향장기수 북송 이후 남과 북은 면회소 설치를 협의하여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또는 상설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우리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전향장기수,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정부는 북한당국에게 이산가족 문제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하여 인도적 차원에서다룰 것을 촉구해야 한다.그렇게 하여 1,000만 이산가족의 비원을 하루빨리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교수·북한학
  • 국립환경연구원장에 崔德一 환경연구관

    환경부는 16일 국립환경연구원장(1급)에 최덕일(崔德一·57) 국립환경연구원 환경연구관을 승진 임명했다. 최 신임 원장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서울대 약학과,서울대 보건대학원을 나와 동국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립환경연구원 대기공학과장·환경위해성연구부장·환경기술개발관리센터장을 지냈다. 문호영기자 alibaba@
  • 남북이산상봉/ 서울만남 이모저모

    북에서 온 아들은 “오마니”를 외치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고,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만남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되어 분출했다. ◇ 상봉 ■안순환씨(65)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코엑스에 나온 어머니 이덕만씨(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50년 동안 소식도 없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씨도 아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며느리에게 갖다 주라”며 미리 준비한 금목걸이를 아들의목에 걸어 준 뒤 연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안씨는 “북쪽에 가족이있느냐”는 동생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사진을 꺼내 아내와 자식들을 소개했고, 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예뻐 합격”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축산 및 채소 생산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백기택씨(68)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딸 신금옥씨(50)를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옆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이 궁금했던 백씨는 여동생 문옥씨(67)로부터 “오빠,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오빠 딸”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백씨의 조카로 돼있는 딸 금옥씨가 “아버지,저 금옥이에요.아버지 딸”이라며 아버지품으로 달려들자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전북 임실로 건너 온 뒤 전쟁 때 전주북중 입학증까지 받았지만 행방불명됐던 정춘모씨(63)는 계모 최순래씨(78)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교복 입은 사진만 달랑 남겨 놓고 사라져 꿈같이 살아 왔다”며 울먹였고,여동생 정영자씨(54)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에서 돌아올 때 하얀 비둘기가 집 안으로 날아든 뒤꼭 한 달 만에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북쪽의 형 문병칠씨(68)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뒤사흘 만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 황봉순씨(90)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동생 병호씨(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는“어머니는 형님이살아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기력을 회복했는데 사흘 뒤 ‘병칠이가 보고 싶다’고 손을 내저은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동생 정자씨(59)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오빠의 손을 꼭 잡고는“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어머니가 한 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주영관씨(72)는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에 다니다 의용군에 입대한 동생 영훈씨(69)를 만나자 “어머니는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영관씨는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맸단다.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혹시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됐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인민군이 서울에진입한 바로 그날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징집됐던임재혁씨(66)는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치매로 듣지도 못하고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임휘경씨(90·서울 양천구 목동)를 보고 목이 메었다. 재혁씨는 형 창혁씨(71)에게 “어머님,어머님은…”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지만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는 말을 듣곤 할 말을 잃었다.. ■박노창씨(69)는 조카들로부터 큰형 원길씨(89·서울 은평구 신사동)가 상봉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렸다. 노창씨는 지난달만 해도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고 통보된큰형의 운구가 이날 오전 8시30분 장지인 경기 파주시 금촌면으로 향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조진용씨(69)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정선화씨(95)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쓰러져 들것에실려 아들을 만났다.정씨는 고령에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아침은 물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알려졌다.■상봉 가족수를 제한해 코엑스에 가지 못하고 8남매 중 맏이인 오빠 김용환씨(68)를 만나러 무작정 쉐라톤워커힐 호텔로 찾아온 용순(50)·용란(43)씨 자매는 오빠 용환씨가 코엑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기적’같이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오빠,오빠”를 연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정태씨(72)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계수 연종술(63)씨도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적은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버스에 오르는 이산가족들의 줄이 끝날무렵 김씨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쯤 버스 편으로 컨벤션센터 동문에 도착,3시30분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와 정해진 탁자에앉았으며,4시1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출발한 북측 가족들은 태진아의 ‘어머니’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4시40분쯤 홀에 들어와눈물의 상봉을 했다. 북측 가족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들고 홀 입구의 상황판에서 자기 번호와 같은 번호가 적힌 탁자를 확인한 뒤 탁자를 찾아가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 김포공항 ■북측 가족 151명을 태우고 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남측 승무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려항공 승무원들은 오전 11시30분쯤 북측 가족들이 국제선 2청사 17번 게이트를통해 빠져나간 뒤 게이트 앞에서 10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김홍정 사무장(52)과 유은아씨(27) 등 스튜어디스 5명은게이트 앞으로 나온 박승남 기장(46) 등 10여명의 고려항공 승무원들에게 꽃다발과 기념시계를 선물했다. ◇ 워커힐호텔 ■밤 10시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돌아온 북측 방문단들은 대부분 상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내일 다시 만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이동,방 배정을 받은 뒤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서울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점심은 갈비찜,은행죽,인삼야채무침,민어삼색전 등이 곁들여진 한정식으로,호텔 관계자는 “상봉단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대부분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면서 “같은 조선 사람들인데 달리 맛을느끼겠느냐”며 남북 동포들이 한 입맛임을 강조했다. 북측 가족들의 가슴에는 김일성배지와 함께 인공기와 적십자 표시가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배지가 달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신원을 증명하는 명찰도 휴대하고 있었다. ◇ 올림픽파크텔 ■밤 10시30분쯤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남쪽 가족들도 북한 방문단과의 상봉의 순간을 다시 되새기며 16∼17일의 개별 상봉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까 의논했다. 이날 아침 남측 가족들 중에는 잠을 설친데다 50년 만에 가족들을만난다는 기대 때문에 올림피아홀에 마련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들지못하고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남쪽 가족들은 기자들이 객실로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자 가족간 대화 등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의 객실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호텔측은 송파경찰서의 지원으로 이산가족들이 머무는 각 층마다 의경 2명씩을 투입해 객실 접근을 막았다. ◇ 한국종합전시장■북측 방문단과 남측 이산가족은 이날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강남구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COEX)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나란히 참석,재회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만찬은 상봉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여 늦은 오후 7시40분께 시작됐으며 남북 상봉자 600여명과 한적 관계자 100여명 등이 참석했다. 한적 봉두완(奉斗玩) 부총재는 환영사에서 “만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50여년동안이나 미뤄왔는가”라면서 “반세기 동안 간직했던회포를 이 자리에서 맘껏 푸시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특별취재단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6)남만주 독립투사 양세봉 활동지 신빈

    ‘歷史名城 前淸故里’(역사명성 전청고리)라고 쓴 현판을 단 높다란 채색관문이 차창위로 휙 스쳐 지나갔다.현판은 이곳이 청태조 누루하치의 고향이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뜻이었다.마침내남만주의 오지인 신빈현(新賓縣:항일전쟁 시기 지명은 興京縣)에 들어선 것이다.심양(審陽)에서부터 4시간 반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차가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신빈은 요녕성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만주족 자치현으로 길림성의 통화현과 닿아 있다. 양세봉(梁世鳳·1896∼1932)장군은 유해가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모셔져 있는 탓으로 남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투쟁의 명장이다. 남한에서는 김좌진이,북간도에서는 홍범도가 항일영웅으로 인구에 회자되듯이 심양과 남만주 일대의 동포들에게는 양세봉의 이름이 전설속에 칭송되고 있다.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 깃발아래 싸운 부대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양세봉이 소년시절의 김일성을 도와주었고 김일성이 막 항일투쟁을 시작한 무렵 교류한 적이 있다.그러나 양세봉은처음부터 반공성향이 강했고,조선혁명군도 1920년대말 국민부 산하의무장조직으로 창건되어 1937년 해체될 때까지 민족주의 이념을 굳게지킨 독립군이었다. 양세봉은 서봉(瑞鳳)이라는 이름도 썼다.평북 철산 출신으로 스무살이 넘어 만주땅으로 건너가 중국인 점산호(占産戶.지주)의 소작농이됐다.기미년 4월 만세시위가 남만주 일대까지 퍼져 왔다.그는 시위에앞장섰고 그때부터 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됐다. 천마산대에 입대해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무명 소졸로 투쟁하다가,참의부 중대장을 거쳐 1926년에는 남만주의 새로운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에 들어갔고,1929년말 국민부 산하조직으로 조선혁명군이 창건되자 부사령(副司令)을 맡았다. 1932년 봄,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은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위기를맞았다.양세봉은 총사령으로 추대되고 즉각 왕청문(旺淸門)에서 무장봉기를 단행,지휘부를 왕청문에 두고 500명의 대원을 이끌고 무순(撫順)까지 진공해 일본군을 격퇴했다. 당시에는 흥경현의 일부,지금은 신빈현의 일부로 행정상 현(縣)보다작은 진(鎭)에 해당된다.양세봉은 흥경현의 쌍협하(雙峽河)에서 또다시 적을 격퇴하고 이름을 드날렸다.그는 영릉가(永陵街)에서 중국 의용군과 합세해 대대적으로 진공해온 일본군을 패퇴시켰다.그리고 흥경성에서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 공격을 받아 혈전을 치르고 사수했다.그 뒤에도 2차 영릉가전투,청원(淸原)전투,영릉가의 석인구(石仁溝)전투에서 승리했다.중국인 의용군과 연합한 전투도 있지만 조선혁명군의 단독전투가 더 많았다.양세봉은 한편으로 끊임없이 소규모 인원을 보내 국내 진공을 펼쳤다.기록을 보면 1932년 16차례에 걸쳐 100여 명이,이듬해는 10차에 걸쳐 14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가 일본군진지와 파출소,우체국 등을 기습했다. 일제는 남만주의 영웅 양세봉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짰다.1934년9월,일제의 지령을 받은 밀정 박창해(朴昌海)는 중국인 지주 왕가(王哥)를 통해 마적 두목 아동양(亞東洋)을 매수했다.아동양은 양세봉에게 중국인 항일부대와의 연합을 협의하자고 속여 환인현(桓仁縣) 소황구(小荒溝) 골짜기로 유인해 저격했다.온 몸에 집중사격을 받은 양세봉은 동포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동포들은일제의 손길을 피하려고 가까운 고려성(高麗城)에 평장했으나 통화현(通化縣)의 일본 경찰은 이를 탐지해 시신을 꺼내 목을 잘라 성루에걸었다. 취재팀은 시내로 들어가 조선족 원로들을 찾다가 운좋게도 최선주(崔善柱)선생(66)과 조만선(趙萬善)·김순화(金順化)·김순자(金順子)선생 등 원로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현(縣) 인민위원회 부서기 등 고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은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결성,조선족 사회의 발전과 모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1995년 조선혁명군의 주둔지 왕청문에 양세봉 장군 기념비를 세운 주인공들이다.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대낮이었으나 원로들은 취재팀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우리는 흥경성전투 현장부터 돌아보았다.네 분원로가 손을 들어 이곳 저곳을 가리켜 보였다. “일만(日滿)연합군은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동쪽에서는 중국의용군이춘윤부대가 맞섰지요.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남쪽에서 협공했지요.대도회(大刀會)는 뒤에서 냅다 함성을 질렀구요.병력이야 이춘윤부대가 많았지만 적을 무너뜨린 건 양세봉부대였지요.참 대단했다 그래요.혼쭐나서 달아나는 왜놈들을 양장군은 무순까지 쫓아가며족쳤대요” 길목이나 구릉이 있어 실감은 났지만 이제는 모두가 시가지로 변해당시의 진지나 망루 따위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필자가 김순화 선생에게 물었다. “대도회는 뭡니까?” “2,000명쯤 되는 비무장 예비대였지요.배에다 부적을 뻘겋게 붙이고 죽창을 꼬나들고 함성을 올리며 돌진했지요.흥경성 2차전투에서많이들 죽었어요.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몇분이 있었는데 이젠안 계세요” 흥경성 2차전투는 양세봉이 조선혁명군의 주력을 이끌고 청원현에가 있을 때 적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혈전을 벌이던 중 일본군 비행기가 기총사격을 가했고 이춘윤부대는 속수무책으로 퇴각했다.대도회는 거의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취재팀은 그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왕청문진으로 향했다. 남만주 항일전쟁의 영웅 양세봉은 조선혁명군의 지휘부가 있었던 화흥(化興)중학교 안에 장려한 화강암 흉상으로 우뚝 서 있었다.6미터쯤 되는 높은 기단에 흉상은 1m65㎝,전면에는 ‘抗日名將 梁瑞鳳 將軍(항일명장양서봉 장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혁명군의 사령부이자 간부 양성소로 썼던 화흥중학교는 옛 자취는 사라지고 1960년대에 지었다는 교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조선족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양세봉의 죽음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일본경찰은 그의무덤에서 시신을 파내 김도선(金道善)이라는 조선족 농부에게 작두로 목을 자르라고 윽박질렀다.김도선은 ‘양세봉은 우리 조선민족의사령이다.내가 조선사람으로서 어찌 우리민족 사령의 목을 자른단 말인가’라며 거부하자 일경은 그 자리에서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양세봉 암살계략을 짠 조선인 밀정 박창해와 그의 시신의 목을 자르기를 거부하고 총살당한 농부 김도선.충성과 배반의 양극이다. 양세봉의 아내와 아들은 1946년 김일성의 각별한 배려속에 평양으로귀국했다. 북한당국은 그의 유해를 1961년에 모셔가 일단 평양 교외에 안장했다가 1986년 애국열사릉에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양세봉이 두 차례 대승을 거둔 영릉가를 돌아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분단모순 때문에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 않은 항일전쟁의영웅을 취재했다는 보람에 가슴이 뿌듯해진 채로 심양을 향해 차를달렸다. 신빈(중국 요녕성)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日帝 잔재 청산 제대로해야 올바른 자주통일국가 이룩”

    광복절은 지금도 뜻있는 사람들에겐 일제의 잔재를 속시원하게 청산하지 못한 광복이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솟구치는 날이다. 동국대 한상범 교수(법학)가 최근 출간한 ‘일제잔재 청산의 법 이론’(푸른세상 펴냄)은 이같은 분노가 퍼렇게 살아 뛰고 있다. 법 이론이란 제목이 풍기는 것과는 달리 이론보다는 감정이 더 뚜렷하지만 광복절을 즈음해 그의 열띤 주장은 아주 시의적절한 논의로다가온다.한자리에서 쓴 책이 아니라 8년여에 걸친 저작물을 묶은 것인데 한교수는 일관되게 일제 법제가 남긴 권위주의와 관료주의,파시즘의 병폐를 헤치고 있다.그의 관심 분야는 한국 법학자와 법조인의의식구조 분석에서부터 친일파의 물적 재산의 부정축재 폭로와 환수에 관한 법적 제도 장치 마련에까지 광범위하다. 한 마디로 저자의 논조는 일제잔재의 청산작업을 제대로 해야만 민족 자주의 통일국가를 올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일제잔재를 우리 역사의 질곡으로 분명하게 성격짓는다.이를 깨끗이 청산해야 되는데 이에 실패함에 따라 광복에도불구 아직까지 지난 역사의 굴레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이다.일제로부터의 해방이 우리의 자주역량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해방후 미군정이 친일파의 지원을받고 일제 법령제도와 일제관료를 그대로 써먹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저자는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기반을 친일파세력에두었기 때문에 헌법이 명백히 정한 친일파의 처단이 좌절되고 말았다고 말한다.그래서 민족 자주성이나 민주화 추진이나 사회기강의 확립이 친일파와 일제잔재의 청산과 맞물린다는 것이다.일제잔재라는 역사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고선 아무것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잔재의 법적 측면을 주시하고 있다.독립 후에도 일제법령을 그대로 이어가게 됨에 따라 일제의 권위주의 관료주의 군국주의및 파시즘의 잔재가 이어진 채 우리의 법제 행정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오염시켜 왔다는 것이다.특히 저자는 법조계나 학계를 친일파 및 친일성향 인사들이 주도해옴에 따라 친일 기득권 세력의 횡포는 군사정권으로 대를 이어서 반세기간 군림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래서 법제나 법학에서 일제잔재 논의는 탈식민,민주화,민족자주화 등에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인데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금기시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친일 반민족·반민주 세력의 뿌리와 정신구조를 일본 제국주의의 고착화 관점에서 파악하며 호전적인 제국주의가 우리 법제에 남아있다고 지적한다.가부장적 유교 통치문화를 일제와 해방후 독재자가 어떻게 악용해왔는가도 살펴본 저자는 폐기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이 일제하 한국 지배전략의 하나로 시작되었으며 군사정권하에서 한층 공고해져 다양한 사상의 흐름을 방해해왔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 법률로는 반민족행위자의 부정축재 등을 처벌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철저한 일제잔재 청산만이 21세기 우리 민주사회 발전의 출발임을 지적한다.그래서 민족정기함양기본법(가칭)같은법을 만들어 미결의 일제잔재 청산을 완결해야 한다고 강하게 결론맺는다. 김재영기자 kjy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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