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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래의 세상보기]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이 문제를 놓고 새삼스럽게 마음 무거워진 당신의 우울을 이해합니다.저도 그 새삼스러움에 맞닥뜨려 우울하기 때문입니다. 저 수천년 전부터 인간은 인간을 알고자 했습니다.그러나 그 일은 지난하기 그지없어 결국은 철학이라는 학문체계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무수한 철학자들이 그 답을 찾아내려고 골몰해 왔습니다.그러나 그 성과는 아주 보잘것없이 미미했습니다.왜냐하면 인간이란 그만큼 복잡미묘하고 애매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를 보고 마음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인간 존재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회의하지 않은 사람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그러나 인간이란 그렇게 잔인하고 야비한 존재라는 것을 불현듯 확인해야 하고,그럴 때마다 우리는 슬픈 우울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지금이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 중세도 아니고 인권 존중을 인류의 최상의 가치로 공동인식하고 있는 ‘문화의 세기’에 그런 일이 저질러져 우리의 슬픔은 더 깊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세계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평화의 세기’라고 합창을 했습니다.당신은 그 아름다운 말을 믿었다고 했습니다.저도 믿었습니다.아니,믿고 싶었습니다.그런데 21세기는 첫발부터 전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지옥에 다녀온 기분이다.그 지옥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게 문제다” 이라크의 포로 학대 장면을 담은 비공개 사진과 비디오를 본 미국 상·하의원들 중 한 사람이 한 말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 그 부당성을 처음부터 냉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그 부당함에 더하여 미국은 급기야 포로 학대의 지옥까지 만들었습니다.지금 미국을 향해 쏠리고 있는 세계인들의 우울한 눈초리를 세계의 최강국이라는 미국은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이고 평화의 세기라고 했던 것은 몽상적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당신이 회의하고 있는 인간의 속성상 그 희망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세기를 돌이켜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세기를 보내면서 세계의 지식인들은 20세기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전쟁과 학살의 세기.전지구적 공해 유발의 세기.과학 발달의 세기.두 가지는 부정적이고,한 가지는 긍정적인 평가였습니다. 첫번째로 전쟁과 학살을 꼽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20세기 100년 동안에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것은 겨우 13일 정도이고,그 줄기찬 전쟁 속에서 인간은 인간을 1억명이나 죽였던 것입니다.돈 1억이 아니라 사람이 1억입니다.그것이 인간입니다.서로서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탐욕을 위하여 인간은 거침없고,서슴없고,가차없이 상대방을 죽이는 존재입니다. 20세기와 함께 사회주의권이 몰락해 자본주의는 아무런 견제세력 없이 21세기를 독주하게 되었으니 그 탐욕은 얼마나 커졌겠습니까.그래서 그 시작이 이라크 침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인간을 긍정할 수 없는 것을 괴로워했습니다.그건 당신만의 괴로움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는 괴로움이고 외로움일 것입니다.이 세상에 생명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지만,인간처럼 동류끼리 동류를 그렇게 줄기차게 죽여온 일이 없고,더구나 효과적으로 많이 죽이기 위해 머리 싸매고 연구해가며 수많은 무기를 만들어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긍정하지 않고서야 무슨 의미로 살 수 있겠습니까.또한,인류의 역사 속에는 받들고 우러를 수 있는 참되고 인간다운 인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그런 사람들이 가르치고 실천한 것을 본받아 세상이 바르게 되어 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당신의 우울 앞에서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저의 우울이 됩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열린세상] 한·미관계 재정립 기회로 삼자/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을 계기로 주한미군 감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주한미군 감축은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이미 충분히 예견돼온 것이다.미국은 세계전략 변화와 군사혁신 차원에서 해외주둔군 재배치계획(GPR)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감축을 추진해 왔다.현재 3만 7000여명의 주한미군을 3분의1 이상 감축하고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이다.이라크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이같은 주한미군 감축계획이 약간 앞당겨졌을 뿐이다. 당초 미국은 현재 한·미간에 진행중인 주한미군 재배치협상과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마무리지어 이전비용 등 한국으로부터 받아낼 것을 다 받아내고 나서,주한미군 감축을 공식화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라크 상황은 미국에 그 같은 몇 달의 여유도 주지 못할 만큼 다급하게 돌아갔다. 주한미군 감축이 기정사실화되면서,일각에서 안보공백을 우려하기도 한다.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꾸준한 군사력증강을 통해 이미 독자적인 대북전쟁억지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 안보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심지어 럼즈펠드조차도 작년 3월,“한국의 GDP가 북한의 25∼35배나 되고,전방의 억제력을 스스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 감축이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안보불안감이 있었으나,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1년에는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미7사단 전체를 비롯해 2만명을 감축했다.당시 우리는 소총 한자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수준이었다.1990년대에는 넌-워너수정안에 따라 상징적인 수준의 병력을 제외한 주한미군의 대폭적인 감축계획이 추진된 바 있다.지금의 안보상황은 당시와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엄청난 군사력 증강이 있었고,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런데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이라크 차출과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감축은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점을 함축하고 있다.첫째,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해 전쟁억지력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주한미군을 다른 군사작전지역으로 이동 투입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더 이상 대북 전쟁억지력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이라크 차출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전쟁억지력보다는 미국의 동북아 내지는 세계전략 차원에서의 역할로 변화했음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둘째,이라크 파병의 명분이 사라졌다.파병찬성론자들은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하지 않으면 대신 주한미군이 이라크에 파견될 것이라는 주장을 주요한 파병논리로 삼았다.그러나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과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은 전혀 별개의 문제임이 드러났다.우리가 이라크 추가 파병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미국은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보낼 계획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주한미군 4000명이 이라크에 가게 돼 군사력에 구멍이 생기는 마당에 우리의 정예병력 3000명을 파병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셋째,용산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비롯해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한 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현재 한·미간의 협상은 3만 7000명의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한다는 전제에서 진행돼 왔다.그런데 주한미군의 상당한 감축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므로,현 협상의 기본 전제가 깨지게 되었다.따라서 주한미군이 감축될 규모와 상황 변화를 고려해 재협상해야 한다.감축될 주한미군의 규모에 맞게 재배치되는 지역의 필요한 토지를 재산정해야 마땅하다.또한 주한미군의 규모 축소와 역할 변화가 분명해졌으므로 용산미군기지 이전비용의 부담문제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우리국민들은 지난 반세기 이상,“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주한미군이 없으면 북한이 당장 쳐들어오고,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이번 주한미군 감축은 역설적으로 이런 고정관념과 관성적 생각에서 깨어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아울러 지금까지의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고병익 前서울대총장 타계

    서울대 총장을 지낸 학술원 회원 고병익(高柄翊) 박사가 19일 오후 3시45분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80세. 경북 문경에서 출생해 일본 도쿄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피란지 부산에서 역사학회를 창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해방 이후 한국 동양사학계 1세대 대표주자로 평가되는 사학자다. 1956년 서독 뮌헨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연세대·동국대 교수를 거쳐 1962년 이후 79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봉직한 뒤 79년 서울대 총장에 임명되어 80년까지 총장직을 수행했으며 이듬해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 되었다. 82∼91년 한림대 교수를 지냈으며 이밖에도 도산서원 원장과 방송위원회 위원장,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 역사·문화와 관련된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동양사학을 전공한 고인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전통 연구에 천착해 중국 원나라와 고려의 복잡하고 긴밀했던 관계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저서로는 ‘아시아의 역사상’‘동아교섭사의 연구’‘‘동아시아의 전통과 근대사’‘동아시아의 전통과 변용’을 비롯한 역사서와,수상집 ‘혜초의 길따라’ 등 다수가 있다. 이같은 폭넓고 활발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과 위암학술상,금관문화훈장 및 용재학술상을 수상했다.유족으로는 장남 윤환·차남 문환·장녀 혜령·차녀 재령씨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발인은 22일 오전 9시.(02)760-2020 김성호기자 kimus@˝
  • LA서래대학서 명예박사 학위

    김현해(金玄海) 동국대 이사장은 최근 미국 LA서래대학으로부터 명예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8월 공연 뮤지컬 ‘미녀와 야수’ 조정은·현광원

    청순한 외모에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미녀’와 우락부락한 외양속에 소년 같은 순진함을 간직한 ‘야수’.오는 8월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올리는 디즈니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두 주인공,조정은(25)과 현광원(36)은 극중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너무나도 닮은 꼴이다.지난 10년간 전세계 20여개 도시에서 각기 다른 언어·인종의 ‘미녀’와 ‘야수’를 뽑아온 디즈니 오리지널 프로덕션팀의 캐스팅 안목에 절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다. 지난 연말부터 5차례에 걸쳐 치러진 ‘지옥 오디션’에서 400여명의 경쟁자를 누르고 주연을 따낸 지 한달째.쏟아지는 주위의 축하속에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새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리허설에 앞서 ‘몸 만들기’(현광원)와 ‘체력보강’(조정은)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이들을 만났다. ●호기심 많은 ‘벨’은 딱 내 모습 미녀 ‘벨’역의 조정은(동국대 연극영화과 4년)은 올해 데뷔 3년차인 새내기 배우.계원예고에 다닐 때 학교에 출강온 뮤지컬배우 남경읍과 조승룡을 통해 뮤지컬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청순한 마스크와 맑은 음색으로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 등 일찌감치 주연 자리를 꿰차며 차세대 유망주로 떠올랐다. “오디션을 너무 재미있게 했어요.배역을 꼭 따내겠다는 욕심보다는 디즈니 스태프를 만난다는 사실에 더 흥분했죠.오디션 끝나고 사인을 요청했더니 그쪽에서 더 당황하더라고요.원래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오디션에서도 제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아마 그런 부분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어요.” 1차 오디션에서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음역 스케일을 평가받다 고음 부분에서 목소리가 흔들린 것.자신도 모르게 ‘소리(Sorry)’라고 말하고 다시 불렀지만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힘없이 오디션장을 나오는 그에게 뜻밖에 지정곡 악보와 대본이 주어졌다.한순간의 실수보다 가능성을 평가한 것이다. 지적이면서 상상력 풍부하고,또 신념이 강한 ‘벨’역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그는 딱 한가지,15㎏이 넘는 드레스를 입고 왈츠를 추는 장면이 걱정이라며 벌써 한숨이다. ●성악가 출신의 ‘귀여운 야수’ 이탈리아에서 10년째 활동중인 현광원은 지난 99년 ‘팔만대장경’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뮤지컬 출연이다.지난해 10월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가 오디션 소식을 듣고 응시원서를 낸 뒤 6개월간 오디션이 열릴 때마다 서울과 로마를 오갔다.나중에는 주최측에서 부담스러워할 정도였다고.그는 “한번에 수백만원이 드는 비싼 오디션이었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되든 안되든 상관없다고 안심시켰다.”며 호탕하게 웃었다.외모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과 달리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지녔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는 로마에 있는 두딸 이영(9)·이은(7)과 열번도 더 본 작품이다.오디션에 합격한 후 두딸은 아빠에게 제일 먼저 이렇게 물었단다.“아빠,야수가 어떻게 왕자로 변해요?”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아니 할 수가 없었다.“제작사 대표에게 살짝 물어봤더니 절대 비밀이라며 안 가르쳐 주더군요.저도 참 궁금해요.” ‘야수’역은 노래와 연기력 못지않게 체력도 중요하다.6m가 넘는 꼬리와 대형 가발을 포함해 9㎏에 달하는 의상·분장을 하고 2시간 내내 버텨야 하기 때문.무대에서 날렵하게 보이기 위해 그는 요즘 달리기와 줄넘기로 기초체력 다지기에 한창이다. ●때론 연인처럼,때론 오누이처럼 조정은과 현광원은 열한살 차이가 난다.터울이 많은 큰오빠와 막내 여동생뻘.하지만 현광원의 장난끼 덕분에 두사람은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다. “5개월 장기공연 동안 더블캐스팅없이 동고동락해야 하는 사이라 무엇보다 호흡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제가 먼저 벽을 없애려고 노력했죠.”(현)“나이차가 어중간하게 나면 싸움이 날 수도 있는데 오히려 편해요.오빠가 밥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조) 조정은이 “오디션때 ‘덩치는 산 만한데 참 귀여운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애교있게 말하자 현광원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조정은을 보고 언젠가 같이 무대에 서고 싶었다.배역에 몰입하는 에너지가 강한 배우”라고 화답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탄핵기각] 전문가 좌담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이 갖는 의미를 평가해 달라. ●박명호 교수 헌재로선 최선의 헌법적·정치적 판단을 융합한 것이다.소수 의견을 공개하자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니 아쉽다. ●신율 교수 헌재 발표를 보면 선거법과 헌법수호 의무 위반 부분이 인정됐다.의회쿠데타란 말이 나왔지만 헌재는 탄핵소추가 국회의 정상적 업무 과정이라는 점도 인정했다.다만 ‘중대한’ 사유가 아니어서 기각했는데 그렇다면 중대한 사유가 어떤 것인지,어디까지가 중대한지 그 기준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200년 후에도 기록될 역사적 사건인 만큼 소수 의견도 밝히고 그 분포도 어떻게 됐는지 밝혔어야 했다. 여론과 시대적 상황,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한 것인가. ●박 교수 고려했을 것이다.‘몇 대 몇’이라고 공개하면 어느 쪽이든 재판관 개인들로서도 쉬운 입장은 아니었을 것이다.이번 평결문이 사실 헌정사 기초로 사용될 것이고 명문이 됐어야 하는데 소수 의견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 ●신 교수 어쨌든 탄핵이라는 우리나라 초유의 사태가 끝났다는 데 대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스탠더드 푸어스사의 국가신용등급에도 당장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그러나 탄핵 문제가 끝났다 해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풀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또 다른 평가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박 교수 일정 기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을 마무리지은 감도 있지만 여권이 국회 권력을 장악한 만큼 또 다른 시험대에 서는 것이다.사회갈등 조정과 국정주도의 책임을 좀더 강하게 져야 하는 상황이 왔다.정치인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 공무원으로서의 대통령 충돌이 이번에 법률적 판단 대상이 됐다.헌재는 헌법과 법률 위반이지만 파면의 대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정치인 대통령과 공무원 대통령의 입장을 이번 기회에 제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은 탄핵 기각으로 해소됐지만 그러한 정국에 이르게 된 원인은 노 대통령의 과제로 남았다는 것인가. ●박 교수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승리에 이어 법률적 승리도 얻은 셈이다.일정 기간 명분상 우위에 설 수밖에 없고 한나라당에 당장 사과를 요구하던데 야당에 대한 압박도 가해질 전망이다.청와대와 내각 개편에 있어 청와대 직할체제,친정체제를 강화할 수 있고 천정배 체제와 맞물려 개혁 드라이브를 우선시할 확률이 높다.여기에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생보다 대결의 정치를 또 한번 맛볼 가능성이 있다. ●신 교수 노 대통령 집권을 1,2기로 나눴을 때 1기는 정치환경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엔 열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노 대통령 지지층을 혼란스럽게 한 이라크 파병 결정과 대북송금 특검,미국에서의 발언 문제 등을 여소야대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집권 2기에는 통하지 않는다.김혁규 총리나 비정규직 문제,8.8%에 이르는 청년실업 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는 노 대통령 지지기반과 직결된다. 정치는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노 대통령은 이런 정책에 있어 일관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노 대통령이란 인간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지지하는 것이어야만 3김(金) 시대 인물 위주의 정치,정치인격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 ●박 교수 노 대통령은 사실상 새 임기를 시작하는 셈이다.그 전에도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유가 이해할 만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 어려움을 더 안을 수밖에 없다. 탄핵을 전후로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뀔 것 같나. ●박 교수 변화가 필요하다.과연 상생의 정치가 가능한지 결정적 단서는 노 대통령과 여권에 있다.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의 리더십이 보다 유연해지고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나왔다.대결적·이분법적이 아니라 통합지향 리더십으로 가야 국정이 안정된다. ●신 교수 첫 시험대가 김혁규 총리 임명 문제다.총리 임명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지만 내치를 총리에게 맡긴다고 얘기할 정도로 막강한 총리라면 왜 그가 아니면 안 되는지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한나라당도 왜 그는 안 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야당에서는 청와대 친정체제가 강화되면서 노 대통령 개인 중심의 국정운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신 교수 집권 2기에는 집중된 책임을 분산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의도가 있다고 본다.친정체제는 더 가속화되지만 형식적으론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게 아니겠는가. ●박 교수 청와대 정무기능을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대국회 관계를 등한시한다는 것은 야당은 무시하는 게 되고 또 다른 대결 국면을 낳을 수도 있다.대통령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국회의 야당에 대한 자세를 바꾸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탄핵소추를 의결한 야당도 정국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박 교수 야당은 단기적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한나라당 내부에서 사과를 한다 만다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데 지난 4·15 총선에서 한번 걸러졌다고 봐야 하고 지금 당에 탄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사람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부산과 경남 지역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총선 때만 못할 것이다. ●신 교수 탄핵이 이번 총선에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한나라당 지지기반은 전혀 요동이 없었다.오히려 탄핵 역풍이 없었다면 부산·경남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두 석 정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얘기가 나올 정도다.지역구도에 기반한 지지층,그만큼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 된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4·15총선을 통한 여당의 17대 국회 과반의석 확보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년여와는 전혀 다른 집권 2기의 정치토양을 확보했다.이에 따라 국정 운영의 리더십도 통합과 상생의 방향으로 걸맞게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와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의 좌담을 통해 탄핵기각 결정의 의미와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 과제를 점검한다. ˝
  • 15일 전국편집기자 농구대회

    박정철(朴正哲·서울신문 부장) 한국편집기자협회장은 15일 오전 9시 동국대 체육관에서 25개 회원사 500여명의 편집기자와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제10회 전국 일간신문ㆍ통신 편집기자 농구대회를 갖는다.
  • 수시1학기 2만4361명 모집

    다음달 3일부터 원서접수에 들어가는 2005학년도 대입 수시 1학기 모집에서는 102개 대학이 2만 4361명을 선발한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복수지원이 가능하지만 수시 1학기 합격자는 1개 대학에만 등록해야 하며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수시 2학기와 정시,추가모집에 지원할 수 없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http://univ.kcue.or.kr)는 12일 이같은 내용의 ‘2005학년도 수시 1학기 대학입학 전형 주요사항’을 발표했다. 수시 1학기를 실시하는 대학은 지난해에 비해 10개교 늘었다.모집 인원도 3656명이나 증가,2005학년도 전체 모집인원 39만 6209명의 6.1%를 차지했다. 일반학생 전형에서는 40개교가 6202명을,특별 전형에서는 93개교가 1만 8159명을 선발한다.특별 전형 중에는 대학별 독자적인 전형에 따른 모집인원 1만 4347명도 포함되어 있다.대학별 독자기준 특별전형에는 추천자 5785명,교과성적 우수자 2920명,어학우수자 377명,만학도 및 주부 177명,지역할당 305명,실업계고교 출신자 2861명 등이 있다.지난해 처음 도입됐었던 실업고 출신의 정원외 전형으로 1880명을,농어촌학생의 정원외 전형으로 1142명을 선발한다.전북대와 가톨릭대,숙명여대,순천향대,호서대 등 5개교는 전공예약제로 196명을 모집한다. 원서는 대학별로 다음달 3∼16일까지,일부 대학은 2일부터 인터넷으로 원서를 받는다.입학전형과 합격자 발표는 7월19∼8월19일까지 대학 자율적으로 실시한다.등록기간은 8월23∼24일이다. 원서접수 방식은 인터넷과 창구 접수를 병행하는 대학이 58개교,인터넷만으로 접수하는 대학이 38개교,창구 접수만하는 받는 대학이 6개교이다. 논술 등 필답고사는 7월19일 서강대와 한양대를 시작으로 ▲20일 경희대·동국대 ▲21일 이화여대 ▲22∼23일 성균관대 ▲23일 중앙대 ▲24일 고려대 등 모두 17개교에서 실시한다.면접·구술고사는 7월16일 나사렛대를 시작으로 8월10일 서강대까지 대학별로 다양하게 치러진다. 자세한 대학별 요강은 대교협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대교협 학사지원부(02,780-5567,7941)에 문의하면 된다. 박홍기기자 hkpark@˝
  • 시인과 선승, 어울려 세상을 논하다

    시인은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추슬러 형상화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한다.속세를 떠난 선승(禪僧)은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그래서 시인과 선승은 승과 속을 떠나 언제든지 어울릴 수 있는 ‘도반’이다. 동국대 석좌교수인 신경림(69) 시인과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회주 오현(72 )스님.신 시인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치열하고 힘겨운 삶을 실천이라는 덕목과 생명력으로 살려낸 순박한 문인이라면,오현 스님은 승속을 넘나드는 기행과 필력으로 승가의 이목을 받았던 괴팍한 선승이다.언뜻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두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도반의 그것이었다. 지난 10일 저녁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조계종 출판사인 ‘아름다운 인연’이 처음 낸 책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의 주인공인 시인과 선승이 책 출간을 맞아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책은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시인이 백담사로 스님을 찾아 여행·사랑·환경·욕망·통일·전쟁·문학 등 7개의 테마를 놓고 솔직하게 대화한 것을 옮긴 기록이다. 두 사람은 오랜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동행자가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것처럼,세상을 향해 묻어 두었던 가슴 속의 절규를 속시원히 털어낸 듯 편안해 보였다.우선 시인이 “시는 시정잡배들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하는 소리인데 선승이 잘 이해해서 고맙다.”는 말로 운을 떼자 스님은 중국 명(明)대의 현인 원호문의 글로 답했다.“시위선객첨금화/선시시가절옥도(詩爲禪客添錦花/禪是詩家切玉刀) 시인이 선승을 만나니 비단으로 덮이고 선승이 시인을 만나니 옥칼을 다듬어 주네.”시인의 승속을 넘나드는 경지를 극찬한 말이다. “세상의 평가대로 ‘괴승’으로 알았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시인이 말을 잇자 스님은 “신 시인의 시에는 세상 사는 사람들에 관한 모든 그림이 있고 그것은 불교의 선시(禪詩)에 다름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그럼에도 시인과 선승은 어쩔 수 없는 경계를 갖고 있는가 보다.시인이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욕심은 결국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아닌가.”라고 묻자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꽃과 나무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의 욕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생명의 욕구일 뿐 그 욕심의 정도를 자제해야 하며 특히 사람은 적게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열흘간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인생역정과 세상을 향한 말을 가감없이 전한다.“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했는데 그 종착역인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라는 스님의 물음에 시인은 말한다.“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죽음이 마냥 두려운 것만은 아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두 사람의 알려지지 않은 연애 경험담도 들어 있다.시인이 ‘죽도록’ 사랑했던 소녀에 대한 짝사랑과 연상의 여인에 대한 연민과 실패를 고백하자 선승은 출가 직후 절집 공양주 딸과 나누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들려준다. 인생을 시처럼 살고,시를 인생처럼 쓰는 선승과 시인은 결론 짓는다. “문학의 감동은 삶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재구성했느냐에서 오는 것입니다.그리고 쓰지 않고는 못사는 사람만이 쓰는 것이지요.” 인제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조정래의 세상보기] 南과 北 두 정상의 역사적 책무

    한달 임금 단돈 56달러.1달러당 1200원으로 쳐도 6만 7200원밖에 안 된다.이건 수만리 밖 아프리카 어느 빈국의 이야기가 아니다.서울에서 백리가 조금 넘는가 어쩌는가 하는 개성 공업단지의 이야기다.남과 북이 평화통일을 이룩해나갈 긴 도정에서 상호신뢰의 첫 결실로 만든 것이 개성의 공업단지다.그리고,거기서 일할 북쪽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임금을 남과 북은 한 달에 56달러로 합의한 것이다. 한 달 임금이 56달러…? 믿을 수가 없었다.560달러가 잘못 인쇄된 게 아닐까…? 그러나 모든 신문은 분명 56달러로 적고 있었다.그래서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56달러,6만 7200원이면 남쪽 부자들이 일류호텔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먹어치우는 한끼 밥값도 아닌,그 절반밖에 안 되는 돈이다.그런 돈이 북쪽에서는 노동자들의 한 달 임금이라니.아니,북쪽 노동자들은 그 돈을 전부 갖는 것도 아닐 것이다.사회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국가적 통제가 있을 게 아닌가. 그럼,정작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얼마일까….그,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 앞에서 가슴이 저리고 쓰라렸다.남쪽 사람 그 누구인들 이 사실 앞에서 마음이 편하랴.그런 돈에도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머나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500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의 동포다.그들은 우리와 말이 같고,풍습이 같고,생김이 같은 형제다.다만 역사 격랑기에 이데올로기의 선택이 달라 민족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나뉘었을 뿐이다.우리는 확인하지 않았는가,지난 아시안게임 때.북쪽의 ‘이쁜이응원단’ 과 남쪽의 시민들이 처음의 생경함과 서먹함에서 벗어나 한집안 혈육 같은 정으로 어우러지는 데는 단 사흘이 걸리지 않았던 것을.50년이 넘도록 양쪽에서 쌓아올린 정치적 이념의 벽은 동포라는 혈족애 앞에서는 그리도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남쪽 총각은 응원단 버스를 향해 결혼하자고 외치며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응원단 처녀는 곱고도 부끄럽게 웃으며 차창에 ‘순이’라고 썼다.북쪽 선수단 300여명을 남쪽 국민들의 세금으로 초청한 것이 화해와 화합의 작은 결실이었다면,남남북녀가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그 지순한 감정의 교류는 민족 통일로 가는 넓고 큰 강이면서,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를 밝혀주는 너무 자명하고도 자연스러운 응답이다. 지금 개성 공단에 입주하고 싶어하는 남쪽 기업들의 경쟁은 치열하다.어림이지만,경쟁률이 1000대 1이 넘을 거라고 한다.이유는 간단하다.임금 56달러가 보장하는 막대한 이윤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2∼3년 안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85%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길 작정이라고 한다.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지역에 따라 임금의 차이가 많지만,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들과 정밀 고급기술자들의 임금은 이미 600달러도 넘었다는 것이다.북쪽 임금 56달러의 10배다.그런데도 한국의 기업들은 서로 앞다퉈 중국으로 옮겨가려 하고 있다.왜냐하면 중국의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보다는 싸서 안정된 이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평균 임금이 북쪽 임금 56달러의 5배라고 치자.그리고,앞으로 2∼3년 동안에 우리나라 중소기업 85%가 중국으로 옮겨가면 그 공장들에 채용될 중국 근로자들은 얼마일 것이며,그들에게 지급될 임금 총액은 도대체 얼마일까? 한두 해가 아니니 그 액수는 계산하기 어렵게 막대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공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 기업들을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그리되면 남과 북에 동시에 일어나는 경제적 실효가 얼마나 클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북쪽에서는 엄청난 고용창출이 일어나게 되고,남쪽에서는 인건비 한 가지만으로도 5배의 이익을 얻게 된다.그뿐만 아니라 서로 말이 자유롭게 소통되어 작업능률이 배가 된다.또,손끝솜씨 뛰어난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숙련속도가 빨라 생산력이 극대화된다.더 나아가 민족동질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상호신뢰를 뿌리깊게 할 수 있다.그건 다름아닌 통일의 대로를 닦아 나아가는 바탕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그건 간단하다.새로운 개성 공단을 10개쯤 더 만들어내면 된다.교통이 편리하고,북쪽 체제보장에 아무 탈이 없도록 서해안쪽에 5개쯤,그리고 동해안쪽에 5개쯤 새로 만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그 일의 성취는 북쪽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며,남쪽에서는 GNP가 2만달러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그리고 그 경제협력은 서로의 통일비용을 줄여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공상은 공상이기만 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6·15 공동선언이 나오기 직전까지 그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공상이었다.그러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선언을 하는 것을 계기로 분단 한반도의 역사현실은 크게 달라졌다.갈등과 대결의 분단역사에서 화해와 협력의 통일역사로 대전환을 한 것이다.이 역사의 대전환은 그 누구도 뒤집을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공상을 현실화시키는 것,그것이 뛰어난 정치술이다.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그것이 탁월한 정치능력이다. 6·15 공동선언까지가 어려웠지,그 길이 열렸으니 이제 못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6·15 공동선언을 실현시켜 가기 위해서는 강철보다 강하고 바다보다 깊은 상호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는 것,그건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것이다.그리되면 새 개성공단은 단숨에 10개 아니라 20개도 생겨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머지않아 탄핵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새롭게 시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는 첫 번째 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를 권고한다.통일민족사의 지평 위에서 두 정상이 마주앉아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중학생들까지도 다 안다.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4강이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그 해답의 열쇠는 ‘우리들 자신’이 쥐고 있으며,그 역사의 책무 앞에 두 정상은 서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국내유일 중남미문화원 이복형 원장

    “우리의 반대쪽에 있어 멀게만 느껴지던 중남미는 어느덧 우리곁에 다가와 있습니다.가장 서민적인 음식인 삼겹살이나 대표적인 토속음식 홍탁의 홍어도 칠레나 페루에서 오지요.칠레 와인도 마니아들에겐 인기죠.” 이복형(李福衡·73) 중남미문화원장,70년대부터 멕시코·아르헨티나·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국가의 대사를 지내 ‘한국 최고의 중남미 전문가’로 꼽히는 그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지난달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칠레,경제공동체 브릭스(BRICs)의 선두 브라질 등 라틴 아메리카가 성큼 다가오면서 ‘중남미 통(通)’으로 중남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그의 말을 들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사실 라틴 아메리카는 그리 먼 곳이 아닙니다.더욱이 우리에겐 합리나 이성보다도 혀끝으로 먼저 느끼게 했지요.옥수수·감자·토마토·고추 등의 원산지가 바로 중남미 아닙니까.” ●멕시코 대사 등 지낸 중남미통 중남미는 어쩌면 화두일 뿐,앞서 해외문물을 보고 겪은 사람으로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또다른 데 있다.“세계인이란 다원화된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한데 우리는 ‘세계화는 곧 미국화’로 잘못 인식하고 있거든요.독점적 외래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라틴 아메리카입니다.” 물론 실용적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중남미의 자원은 무궁무진하고 인구도 통합 출범한 EU보다 많은 4억 7000여만명에 달해 잠재력이 엄청 큰 거인과 같은 대륙이지요.구리·동·은·주석·석유 등의 광물도 풍부하고,농산물은 우리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에 보완적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는 30여년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바쳤던 중남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담아 양쪽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외교관에서 은퇴한 이듬해인 1994년,경기도 고양시 고양동에 중남미문화원을 세웠다.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중남미문화원이다.일반인들은 거의 중남미에 대해 관심도 없던 때였다. 문화원이 선지 10년,중남미문화원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주한 라틴아메리카 대사관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대신해준다면서 적극 후원해줄 정도로 달라졌다.오는 15일엔 멕시코의 국보급 가면전시회가 한달간 열릴 예정이다.그리고 올 10월엔 문화올림픽이랄 수 있는 세계박물관대회(ICOM)도 예정돼 있다. ●10년 전 건립 ‘문화전도사’ 자임 그가 중남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4년,우리와 중남미의 거리는 실제거리보다 더 멀었다.“일반인들은 한국의 위치는커녕 이름도 몰랐지요.식자층에게는 한국전쟁과 분단,전쟁고아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습니다.”더욱이 그들은 우리나라를 턱없이 얕잡아보고 있기도 했다.“그들은 신대륙이 발견된 500여년 전에 유럽에 의해 개화된 반면 우리는 50년 전에야 비로소 개화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더라니까요.” 지금은 서로 이해의 너비와 깊이가 그 당시보단 넓어지고 깊어졌지만 여전히 피상적인 것이 안타깝다는 그다. 우리 국민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군사독재,극심한 외채와 모라토리엄,하이퍼 인플레이션과 빈부 격차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사실이다.정열적이면서도 축구를 잘한다는 밝은 면도 있지만 이는 제한적이다. 남미 또한 우리를 좋게 보지 않기는 마찬가지.남북 분단과 전쟁고아,군사독재와 외채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자동차와 휴대전화가 수출되고,2002월드컵을 통해 작지만 응집력이 강한 나라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생겨났지만,이도 최근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도 아침 5시에 일어나자마자 CNN과 NHK를 통해 세계의 흐름을 읽는다.33년간의 대사 생활 등 직업 외교관으로서 퇴직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습성 탓이다.지인들은 그런 그를 아직도 ‘대사’로 부른다. 중남미문화원 옆 미술관의 지하에 마련된 그의 집무실엔 중남미의 그림과 조각,공예품 등과 함께 뉴스위크(Newsweek)지와 일본 최대부수의 종합 월간지 분게이슈(文藝春秋)가 늘려 있다.외교관 출신답게 영어·일본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중남미 전문가란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의 아메리카, 특히 중남미의 역사에 정통하다.이들 지역의 찬란했던 고대 문명도 줄줄이 꿰고 있다.멕시코 이남 35개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부와 정권이 명멸함에 따라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에서부터 브라질의 룰라 정권까지 다양한 정부 형태에도 해박하다. ●우수박물관상 2차례 수상도 중남미문화원은 6000여평의 규모로 개관당시에는 박물관 한 동으로 시작했으나,97년에 미술관,2001년에 야외조각공원까지 꾸몄다.두 차례나 우수박물관상을 탔던 이 문화원에는 3000여점의 중남미 공예품이 있다. 이 원장 부부가 중남미의 작은 장터에서 일일이 사 모은 것들이다.“대사 시절 주말이면 어김없이 골동품 시장과 벼룩시장을 찾아다녔지요.” 혼잡한 장터에서 아내를 잃고 쩔쩔매던 일,부피가 엄청 큰 촛대를 안간힘을 쓰며 차에 옮기던 기억들이 새롭다. 1962년 대통령 의전비서관으로 주로 육영수 여사의 통역을 담당했으나 65년 외무부 의전과로 가면서 직업외교관으로의 길을 걸었다.스페인 대사관 참사관과 주 마이애미 총영사를 빼곤 죽 중남미의 일을 했다.73년 스페인 참사관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당시 대학생이던 박 대표가 우리나라에서 건조한 유조선 진수식 참석차 마드리드로 와 그의 통역을 맡았던 것이다.그는 박 대표를 만나면 “민생을 당부하야지요.그렇잖으면,‘이눔’하고 혼내겠습니다.”라며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퇴직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현역 때보다 오히려 더 바빠요.하루 예닐곱시간씩은 문화원을 정리하지요.나뭇가지 다듬기,잔디깎기,꽃심기,쓰레기 치우고 소각하기…” 골프장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아까워 골프를 끊었다는 이 원장에게서 중남미의 정열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중남미문화원(031)962-9291.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동국대(법대) 육군 통역장교(예비역 소령) ▲62년 대통령비서실(영어 의전비서관) ▲75년 비동맹 외상회의 한국 대표단 ▲81년 도미니카(공) 대사 ▲84년 수교훈장(숭례장) ▲83년 외무부 구주국장 ▲85년 아르헨티나 대사 ▲89년 멕시코 대사 ▲93년 국제 루벤 다리오 재단 니콰라과 명예회원 ▲96년 체육훈장(맹호장) ˝
  • [조정래의 세상보기] 南과 北 두 정상의 역사적 책무

    한달 임금 단돈 56달러.1달러당 1200원으로 쳐도 6만 7200원밖에 안 된다.이건 수만리 밖 아프리카 어느 빈국의 이야기가 아니다.서울에서 백리가 조금 넘는가 어쩌는가 하는 개성 공업단지의 이야기다.남과 북이 평화통일을 이룩해나갈 긴 도정에서 상호신뢰의 첫 결실로 만든 것이 개성의 공업단지다.그리고,거기서 일할 북쪽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임금을 남과 북은 한 달에 56달러로 합의한 것이다. 한 달 임금이 56달러…? 믿을 수가 없었다.560달러가 잘못 인쇄된 게 아닐까…? 그러나 모든 신문은 분명 56달러로 적고 있었다.그래서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56달러,6만 7200원이면 남쪽 부자들이 일류호텔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먹어치우는 한끼 밥값도 아닌,그 절반밖에 안 되는 돈이다.그런 돈이 북쪽에서는 노동자들의 한 달 임금이라니.아니,북쪽 노동자들은 그 돈을 전부 갖는 것도 아닐 것이다.사회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국가적 통제가 있을 게 아닌가. 그럼,정작 노동자들이 받는 돈은 얼마일까….그,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 앞에서 가슴이 저리고 쓰라렸다.남쪽 사람 그 누구인들 이 사실 앞에서 마음이 편하랴.그런 돈에도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머나먼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500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의 동포다.그들은 우리와 말이 같고,풍습이 같고,생김이 같은 형제다.다만 역사 격랑기에 이데올로기의 선택이 달라 민족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나뉘었을 뿐이다.우리는 확인하지 않았는가,지난 아시안게임 때.북쪽의 ‘이쁜이응원단’ 과 남쪽의 시민들이 처음의 생경함과 서먹함에서 벗어나 한집안 혈육 같은 정으로 어우러지는 데는 단 사흘이 걸리지 않았던 것을.50년이 넘도록 양쪽에서 쌓아올린 정치적 이념의 벽은 동포라는 혈족애 앞에서는 그리도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남쪽 총각은 응원단 버스를 향해 결혼하자고 외치며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응원단 처녀는 곱고도 부끄럽게 웃으며 차창에 ‘순이’라고 썼다.북쪽 선수단 300여명을 남쪽 국민들의 세금으로 초청한 것이 화해와 화합의 작은 결실이었다면,남남북녀가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그 지순한 감정의 교류는 민족 통일로 가는 넓고 큰 강이면서,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를 밝혀주는 너무 자명하고도 자연스러운 응답이다. 지금 개성 공단에 입주하고 싶어하는 남쪽 기업들의 경쟁은 치열하다.어림이지만,경쟁률이 1000대 1이 넘을 거라고 한다.이유는 간단하다.임금 56달러가 보장하는 막대한 이윤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2∼3년 안에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85%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길 작정이라고 한다.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지역에 따라 임금의 차이가 많지만,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들과 정밀 고급기술자들의 임금은 이미 600달러도 넘었다는 것이다.북쪽 임금 56달러의 10배다.그런데도 한국의 기업들은 서로 앞다퉈 중국으로 옮겨가려 하고 있다.왜냐하면 중국의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보다는 싸서 안정된 이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평균 임금이 북쪽 임금 56달러의 5배라고 치자.그리고,앞으로 2∼3년 동안에 우리나라 중소기업 85%가 중국으로 옮겨가면 그 공장들에 채용될 중국 근로자들은 얼마일 것이며,그들에게 지급될 임금 총액은 도대체 얼마일까? 한두 해가 아니니 그 액수는 계산하기 어렵게 막대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공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 기업들을 중국이 아닌 북쪽으로 옮기면 어떨까? 그리되면 남과 북에 동시에 일어나는 경제적 실효가 얼마나 클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북쪽에서는 엄청난 고용창출이 일어나게 되고,남쪽에서는 인건비 한 가지만으로도 5배의 이익을 얻게 된다.그뿐만 아니라 서로 말이 자유롭게 소통되어 작업능률이 배가 된다.또,손끝솜씨 뛰어난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숙련속도가 빨라 생산력이 극대화된다.더 나아가 민족동질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상호신뢰를 뿌리깊게 할 수 있다.그건 다름아닌 통일의 대로를 닦아 나아가는 바탕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그건 간단하다.새로운 개성 공단을 10개쯤 더 만들어내면 된다.교통이 편리하고,북쪽 체제보장에 아무 탈이 없도록 서해안쪽에 5개쯤,그리고 동해안쪽에 5개쯤 새로 만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그 일의 성취는 북쪽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며,남쪽에서는 GNP가 2만달러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그리고 그 경제협력은 서로의 통일비용을 줄여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 공상은 공상이기만 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6·15 공동선언이 나오기 직전까지 그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공상이었다.그러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선언을 하는 것을 계기로 분단 한반도의 역사현실은 크게 달라졌다.갈등과 대결의 분단역사에서 화해와 협력의 통일역사로 대전환을 한 것이다.이 역사의 대전환은 그 누구도 뒤집을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공상을 현실화시키는 것,그것이 뛰어난 정치술이다.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그것이 탁월한 정치능력이다. 6·15 공동선언까지가 어려웠지,그 길이 열렸으니 이제 못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6·15 공동선언을 실현시켜 가기 위해서는 강철보다 강하고 바다보다 깊은 상호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는 것,그건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것이다.그리되면 새 개성공단은 단숨에 10개 아니라 20개도 생겨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머지않아 탄핵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새롭게 시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는 첫 번째 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를 권고한다.통일민족사의 지평 위에서 두 정상이 마주앉아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중학생들까지도 다 안다.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4강이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그 해답의 열쇠는 ‘우리들 자신’이 쥐고 있으며,그 역사의 책무 앞에 두 정상은 서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이런 책 어때요]

    ●어느 인문학자의 문화로 읽는 중국/박영환 지음 중국인들은 돈과 숫자에 밝다.“나는 공산당도 부처님도 믿지 않는다.오로지 믿는 것은 돈뿐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하는가 하면,정부는 3·6·8·9 등 길한 숫자가 들어간 자동차번호판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다.중국인들은 또한 도시의 환경미화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이에 대해 저자(동국대 중문과 교수)는 “군자가 사는 곳에 어디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란 구절을 인용해 설명한다.중국인들의 습성의 바탕엔 외부 환경보다는 인품을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인의 의식과 문화현상을 면밀히 살폈다.9000원. ●체 게바라/일다 바리오 등 지음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르네스토(체의 본명)는 의학도로서 순탄한 청년시절을 보냈다.하지만 그는 의사시험을 치른 뒤 돌연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라틴 아메리카 곳곳을 여행했다.이 여행이 운명을 갈랐다.그는 페루 나환자촌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정치적 긴장감이 감도는 과테말라를 돌면서 미국에 종속된 현실과 마르크스 주의에 눈떴다.1956년 그는 쿠바에 도착,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지대에서 게릴라들을 모집하고 무장투쟁을 벌여나갔다.그는 ‘쿠바의 두뇌’로 불렸다.1만 5000원. ●시간 속으로 사라진 역사의 비밀을 찾아서/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엮음 분열된 중세유럽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됐지만 교회와 결탁해 자유를 앗아간 잔혹한 전제군주라는 비판을 받은 카를 대제,십자군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2700명에 이르는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했던 잔인한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격동적인 삶을 산 영국의 다이애나비와 곧잘 비교되는 오스트리아 왕비 시시….시각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시간 속에 묻힌 사건들은 과연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독일 ZDF방송국의 역사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엮은 이 책에서 역사와 진실의 오묘한 함수관계를 밝힌다.2만원. ●미켈란젤로/앤서니 휴스 지음 미켈란젤로의 예술은 탁월한 드로잉 실력에 토대를 두고 있다.그의 회화들은 실제 크기의 밑그림 없이 그려진 게 거의 없다.그런 점에서 흔히 색채에 바탕한 베네치아 화파의 티치아노와 비교된다.피렌체의 드로잉(디세뇨)과 베네치아의 색채(콜로레)의 싸움은 수세기 동안 핵심쟁점이 됐다.이 미켈란젤로 입문서에서 예술사가인 저자는 새로 청소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예로 들어 미켈란젤로의 색채적 상상력은 베네치아 화파와 다름을 밝힌다.또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16세기 유화들보다도 더 ‘회화적’인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2만 6000원. ●역사속의 우리 다인(茶人)/천병식 지음 우리에겐 유구한 차문화의 전통이 있다.신라 선덕여왕 때에도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이 책은 신라의 명문장 고운 최치원에서 현대적인 다학을 정립한 효당 최범술에 이르기까지 우리 차문화의 텃밭을 일군 20인의 이야기를 다룬다.우리 민족의 차문화는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뤘지만,숭유억불을 내세운 조선에 들어 점점 쇠퇴의 길을 걷는다.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차문화는 중흥기를 맞게 된다.그 중심엔 다성(茶聖) 초의선사와 다산,추사 등이 있다.이들이야말로 한 잔의 차로 마음을 다스려 천하를 얻은 이들이다.1만 5000원.˝
  • 수시 1학기 성공전략-일부大 지필고사가 당락 좌우

    수시 1학기 모집에서 논술과 면접은 합격·불합격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학생부 성적이 비슷비슷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평가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논술이나 면접 이외에 적성검사 등 지필고사를 보는 대학에 대해서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수험생들은 논술을 준비할 때 지원하는 대학의 논술 출제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이에 맞춰야 한다.대체로 기존 틀에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가장 큰 특징은 시사 지식뿐만 아니라 학문적 기초 지식을 배경으로 답을 쓰는 유형의 문제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전국 계열별마다 관련된 배경지식은 틈틈이 갖춰야 한다.자연 계열의 경우,수학이나 과학 과목에 대한 이해없이는 해결이 어렵다.수시 1학기에 논술시험은 건양대의 의학과,경희대,동국대,상지대의 한의예과,성균관대,전북대,중앙대 등이 치른다. 영어 제시문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도 체크 포인트이다.대부분의 대학은 전체 제시문 분량의 30∼50% 정도의 비중으로 영어지문을 주고 있다.영어 독해능력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면접·구술의 출제경향은 인성이나 가치관,사회관,인생관 등을 측정하는 기본 소양 평가와 전공의 수학능력,적성을 알아보기 위한 전공적성평가로 나눠진다.기본 소양평가에서는 자신의 장단점·사회봉사활동 경험 등 개인성향에 대한 질문들에는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인성과 가치관에 대한 질문에 적절히 답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정리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일부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지필고사를 실시,학생들을 평가한다.다단계 전형을 하는 대학에서 지필고사의 비중은 상당하다.따라서 이들 대학에는 학생부 성적만으로 지원하는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반면 논술이나 적성검사에 자신이 있는 학생은 지원해볼 만하다. 성균관대는 교과우수자 전형에서 기본 소양과 수학 잠재력 평가를 위해 논술 형태의 지필고사를 치른다.반영비율도 60%나 된다. 아주대는 올해 처음 1단계에서 적성검사를 실시해 100% 반영한 뒤 2단계에서 영상강의 테스트 30%와 적성검사 20%, 면접 20%를 활용하기 때문에 학생부의 영향력은 30%에 불과하다. 박홍기기자˝
  • [열린세상] 軍도 이대론 안된다/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현역 육군대장이 공금을 전용했다는 의혹을 군 수사기관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우리 군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물론 일부의 비리로 군 전체가 매도돼서는 안 된다.대부분의 군인들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애국심만으로 묵묵히 맡은 직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 군은 변해야 한다.이것은 단순히 비리 척결의 문제가 아니다.묵은 때를 떨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대대적인 구조 개혁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몇 년 전 1999년도 국방예산을 분석하면서 느꼈던 실망감이 새삼 떠오른다.당시 IMF체제로 많은 국민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군의 개혁과 구조조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육군 중장급 7명과 소장급 17명이 국방부가 정해 놓은 정원조차 초과하고 있었고 대령급은 76명이나 정원을 넘어서 있었는데도,줄어들기는커녕 영관급 장교 137명과 위관급 장교 139명의 증원이 예산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군 개혁을 시도한 바 있다.국방부는 20∼30년 후의 미래 안보환경에 대비한 국방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국방개혁을 단행한다는 목표 아래 1998년 4월 ‘국방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국방개혁 5개년 계획’(1998∼2003년)을 수립하고,군 구조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당시의 발표로는 2015년을 목표연도로 육군을 35만명으로 줄이는 것을 비롯해 군 병력을 40만∼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고,1군과 3군을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고,2군도 일부 군단 및 부대를 통폐합해 후방작전사령부로 개편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군대조직을 개편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만만한 국군간호사관학교를 폐교시키려다 여성계의 반발로 취소한 것이 전부다. ‘참여정부’ 들어와서 군은 더욱 성역화돼 버렸고,개혁의 무풍지대가 됐다.‘국민의 정부’에서는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군 개혁을 위한 시도라도 했다.그러나 현 정부는 군 개혁에 대한 구상이나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자주국방이라는 구실 아래 국방예산의 대폭증액을 통한 마구잡이식 군비증강이 추진되고 있고,MD(미사일방어) 참여로 미국의 군사전략 체제에의 편입이 가속화되고 있다.경제난으로 인한 긴축재정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국방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8.1%가 증가했다.탈냉전 후 최대의 증가율이다.전체 예산증가분의 60% 이상이 국방예산에 배정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국방비 증액이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압력에 의해 즉흥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증액된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 미국제 무기 도입에 충당되고 있다.특히 미국의 MD와 관련된 무기체제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이라크 파병문제의 파행적 모습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과정에서 보인 국방부의 굴종적 태도는 군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케 해 주었다. 국방목표를 미래지향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이를 위해 ‘북한 주적론’은 폐기돼야 한다.남북관계의 차원을 떠나 한국의 미래지향적인 안보정책 수립과 군의 개편을 위해서도 시급하기 때문이다.우리의 안보정책과 군 구조는 통일시대에 대비해 북한을 ‘주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잠재 적’을 대상으로 해 재정립돼야 한다. 방만한 군 구조와 조직에 대한 과감한 개편을 추진하고,군의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병력 1만명당 장군 수를 비교할 때,우리나라는 7명으로 미국의 5명,프랑스의 4명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으며,전체 장교에서 장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의 2배에 달한다.군 수뇌부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새로운 시대정신을 지닌 유능하고 참신한 젊은 장군과 장교들이 군의 중추세력이 돼야 한다. 군의 개혁은 한시도 미룰 수 없다.군 자신을 위해서도 변해야 한다.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과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 화교 설영흥 중국고문 현대차 부회장에 발탁

    현대자동차는 2일 설영흥(薛榮興·59) 중국사업 담당 고문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화교출신인 설 부회장을 이례적으로 고문에서 부회장에 임명한 것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 및 생산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현대차그룹은 설명했다. 설 부회장은 대만 국립성공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무역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대차 중국사업담당 고문직을 맡아왔다.설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경복고 동기동창으로 신임이 두터운 데다 90년대 초반부터 현대모비스(당시 현대정공)에서 중국 비즈니스를 지원해와 중국현지 사정에 매우 밝은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중국 베이징기차와의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 설립에 깊이 관여하면서 중국 중앙정부와 베이징시 관료들과 다양한 인맥을 구축해 앞으로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설 부회장의 파격적인 발탁은 3일 다임러크라이슬러측의 이사회 결과에 따라 두 회사간의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제휴관계가 청산될 가능성이 다분한 시점에서 이뤄져 현대차가 중국시장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오는 2010년 중국에서 연간 100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종락기자
  • [씨줄날줄] 추기경의 감사/강석진 논설위원

    추기경에 관한 이야기를 몇달만에 다시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글 첫머리부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그래서인지 추기경 기사를 다시 쓰고 싶지 않았다.지난 2월3일자 같은 난에 ‘비판대에 선 추기경’이라는 글을 썼었는데 오늘 다시 추기경에 관한 글을 쓰려니 무척 조심스럽다. 우리나라에서는 추기경이라는 단어를 대명사로 써도 아직은 괜찮다.한 분만 계시기 때문에 이름을 안 붙여도 누군지 다 안다.그 분이 지난 28일 동국대 불교경영자최고위과정에서 초청 강연을 하면서 “저를 비판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제게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추기경이 최근 한 언론인과 가톨릭 신부로부터 각각 비판을 받은 데 대한 소회를 처음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추기경은 “지도자는 자기와 다른 생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정치권은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예수의 리더십을 보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것은 건전한 토론문화다.토론 문화가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비판과 경청이 전제가 돼야 한다.작금 우리 사회는 남에 대한 비난은 즐겨 하되 자기에 대한 비판에는 귀를 닫으며,권리는 있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자주 제기된다.특히 인터넷 공간을 뒤덮는 일방적인 비난이나 익명의 욕설 섞인 글들로 인해 토론 문화는 멍이 들고 있다. 혹자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혹자는 PC통신 시대에는 어느 정도 지켜지던 ‘네티켓’이 완전히 허물어졌다고 개탄한다.경실련 중앙위 의장인 서경석 목사도 얼마전 한 인터넷 언론에 띄운 글에서 민주화 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쥐었지만 민주화 세력은 ‘민주주의 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과잉 현상은 인터넷 언어폭력과 포퓰리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어둠’ 속에서 내뱉는 무책임한 비난과 욕설은 시민사회라는 유리병을 내려치는 망치와 같다. 추기경에 대한 칭찬은 차마 외람되다.“하느님께 갔을 때 ‘너는 세상에서 들을 칭찬 다 들었어.내가 해줄 칭찬은 없어.’라는 말씀을 들을까 걱정했다.”는 말까지 한 추기경에게 무슨 칭찬을 더 보태겠는가.다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되돌아가야 할 건전한 토론 문화의 전범을 보여준 데 대해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을 뿐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北 용천참사] 소학교학생 매몰 4일만에 극적 구조

    평안북도 용천역 대참사와 관련,북한의 복구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재일본 조총련 기관지 인터넷 조선신보는 28일 용천소학교(초등학교)에서 학생 1명이 매몰 4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다고 전했다. 조선신보는 “지난 25일 폭발 사고 당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내며 무너진 이 학교에서 이 학생을 구조해 냈다.”면서 구조된 직후 이 학생은 “배가 고파요.”라고 소리쳤다고 보도했다. 인근 중학교로 이동해 수업을 받고 있는 용천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은 친구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루 2만명이 동원된 복구작업 북한 중앙방송은 “피해복구 중앙지휘부가 3개월내 복구를 목표로 하루 2만명이 동원돼 복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방송은 “사고 현장에 파였던 구덩이가 초보적으로 메워졌고 기본 철길이 복구돼 열차 운행이 정상화됐다.”면서 “강한 폭음과 폭풍으로 실명되거나 귀가 먹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밝혔다.조선신보는 집을 잃은 주민들은 덜 부숴진 이웃의 집을 찾아 기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식 밝힌 손실액은 3억 유로(약 4200억원)다. ●군의 일사불란한 모습 안보여 북한이 국제사회에 용천역 대참사 현장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도 북한 사회 노동력의 주력인 인민군의 복구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이 자재 조달 전문가인 노두철 부총리가 총책임을 맡은 ‘용천피해복구 중앙지휘부’의 구성과 활동상을 소개하면서도 인민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방송은 “평북 시·군과 공장·기업소 노동자를 총동원,복구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인민군이 실제 복구 작업에 빠졌을 것 같지는 않다.”면서 “군 장비나,일사불란한 군대의 복구 장면이 외부 지원을 얻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북측이 병원의 참상을 구호단체에 공개하면서도 어른들이 아닌,어린이 부상자만 카메라에 담게 한 것도 같은 이유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는 실제 군이 투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용천 참사로 김정일 체제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로 판단,인민군을 경계 태세 상태로 놔뒀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이와 함께 계속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위용을 갖춘 군의 모습이 아니라 왜소한 북한 군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았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한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27일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정을 중국 방문 성과를 제외하고는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평안북도 용천군 행정책임자인 이춘화 인민위원장(군수)도 언론매체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사고 책임을 물어 해임됐거나 사고 당시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근대조선정치사’ 출판기념회

    신국주 동국대 명예교수(본지 명예논설위원)는 오는 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연구논집 ‘근대 조선정치사 연구’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 한국영화계 대부 유현목 감독

    “유현목은 영화다.”“아니다,유현목은 인간이다.” 오발탄(1960년),임꺽정(61년),김약국의 딸들(63년),카인의 후예(68년),나도 인간이 되련다(69년),사람의 아들(80년)….건국 이래 한국영화 최고작으로 인정받은 ‘오발탄’을 비롯,43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미학을 이끌어온 유현목(79) 영화감독.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이자 영화계의 영원한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삶은 흑백과 컬러필름으로 50년 동안 모질게도 온몸을 친친 감아왔다.까닭에 ‘유현목’하면 덜도 더도 없이 한편의 ‘영화’에 비유된다.평론가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형형한 눈빛으로 한국 영화사를 관통했던 용감한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장 콕토는 ‘영화란 영상으로 쓰는 문장’이라고 했다.유 감독은 더 나아가 ‘영상으로 사고한다.’고 했다.일흔아홉의 성상은 그렇게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으며 질그릇에 켜켜이 담아왔다.이같은 그의 ‘시네마인생’을 흐트러짐없이 끄집어낼 수 있을까. 서울 남대문 옆 명지빌딩 20층에 자리잡은 ‘태평관기영회(太平館耆英會)’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태평관기영회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이사장 유영규)이 지난 2002년 12월 마련한 최고 원로들의 사랑방이다.명지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 외교공관 ‘태평관’과 중국 송나라 때 은퇴한 현사들의 모임이었던 ‘낙양 기영회’에서 이름을 땄다.참여멤버는 유 감독을 비롯,고병익 전 서울대총장,이영덕 전 국무총리,정원식 전 국무총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등 내로라 하는 원로 32명이다.유 감독은 “매월 첫째주 수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이곳에 온다.같이 늙어가는 각계 원로들과 만나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일 또한 공부가 아니냐.”고 했다. 근황이 궁금해졌다.그는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야트막한 동산을 뒤로 한 노독일처(老獨一處)인 셈이다.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30평의 주말농장에서 땅을 일구는 일에도 새록새록 재미를 느낀다.시금치,쑥갓,마늘 등 28가지의 채소를 가꾸며 동네사람들에게도 나눠준다. 나들이할 때는 늘 부인 박근자 여사와 동행한다.부인은 서양화가로 현재 여류화가협회 고문이기도 하다.부인은 지금까지 ‘여보’ 대신 ‘감독님’이라고 부른다.그는 부인 얘기가 나오자 ‘무던한 순둥이’라며 웃는다. 그는 지독한 골초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하루도 술을 거른 적이 없다.저녁 식사후 TV 9시 뉴스를 보고나면 반드시 맥주 3∼4병은 마신다.부인이 술을 못하기 때문에 혼자 식탁에 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세월을 음미한다.영화 같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즐거움에 푹 빠지는 시간이다. 그의 예술가적 역마살은 소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됐다.어느날 지방순회 공연차 온 유랑 신파극에 매료됐다.교회에서 성극대본도 쓰고 연출도 직접 했다.방학때면 동네 창고에 천막을 치고 성냥갑 몇개로 입장시키는 놀이도 했다.그렇게 모인 성냥갑으로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1939년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의 휘문중학에 입학했다.하숙생활이 시작됐다.중학때는 기계조립에 취미가 붙었다.남산의 과학관을 다니며 ‘어린이 과학’이니 ‘학생과학’이니 하는 잡지에 탐닉했다.하루는 ‘에디슨 위인전’을 읽었다.발명왕 에디슨의 학력이 겨우 소학교 4학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중학2년 때 휴학을 했다.담임 선생한테는 중이염이라고 둘러댔다. 때마침 담임선생 아들이 만성 중이염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던 터여서 휴학계를 선뜻 받아주었다.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고독의 가을을 만나면서 도화지와 수채화 도구를 둘러멨다.이리저리 쏘다녔다.흙을 반죽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하루는 바이올린 곡 ‘트로이메라이’를 듣고 폐장을 쥐어짜는 듯한 슬픔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어머니한테 졸라서 ‘스즈키 7호’ 바이올린을 샀다.그걸 끼고 다시 복학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조택원 무용발표회’를 관람했다.그는 처음 대하는 육체의 선율에 반해 무용가가 되기로 다짐하고 무용연구소를 맴돌았다.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모습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 겨울이었다.조선인징병 신체 검사에서 불합격되는 바람에 졸업장을 쥐고 고향에 내려가 세무서 임시고용원으로 취직했다.그러나 숫자놀음이 격에 맞지 않아 곧 그만두고 평양을 드나들면서 헌책방에서 건축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건축미술가의 꿈을 꾸었다. “하마터면 목사가 될 뻔도 했지.어머니의 성화로 인해 서울의 감리교 신학교에 원서를 냈는데 영어시험에서 낙방했어.그런데 외가집 소개로 아펜젤러 박사를 만나 연희전문학교 백남준 교장에게 입학시켜달라는 메모까지 받게 됐지.목사가 다 된 기분이었어.그런데 그만 메모쪽지를 잃어버렸지 뭐야.하나님께서 나를 목사자격 없는 놈으로 계시하신 줄 알고 포기했지.” 1946년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는 다시 서울로 왔다.거리 곳곳에는 연극포스터들이 쫙 붙어있었다.그는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연극 연습장 한구석에서 하루종일 지켜보는 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결국 그 이듬해,희곡공부를 위해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이 무렵 그는 프랑스의 피에르 슈날 감독의 영화 ‘죄와벌’을 관람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아 열 네번이나 미친 듯이 봤다.강의가 끝나면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죄없는 전선’ 촬영현장을 찾아다녔다.덕분에 여러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무성영화였던 임운학 감독의 ‘홍차기의 일생’에 조감독 겸 출연까지 했다.이때 영화감독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미술,음악,무용,문학,건축,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라는 답을 얻었다. 1948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재학시절,한국대학에선 처음으로 ‘영화예술연구회’를 창설해 ‘해풍’이란 영화를 만들었다.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풍파에 아버지를 잃고 미치광이가 된 젊은 아들의 이야기이다.이는 배우로서 데뷔작이며 마지막인 셈이다. “납북된 시인 김기림 선생이 지도교수였지.당시 신문기사에는 영화과가 없는 대학에서 이같은 유성(토키)대작을 만든 것은 동양에서 처음이라고 하더군.양주동 선생은 ‘배짱 하나 컸군,내 막걸리 한 잔 사지.’라고 거들기도 했어.돌이켜 보면 선무당이 사람잡는 모험이었으나 오늘날의 길을 굳혀준 출발점이기도 하지.” 그는 50년 영화인생을 뒤돌아볼 때 가장 아끼는 작품은 ‘오발탄’이라고 했다.그도 그럴 것이 ‘오발탄’은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 10’에서 1위,98년 ‘건국50년 영화,영화인50선’에서 1위,99년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작’에 1위로 뽑힐 정도였다.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백발홍안’의 노(老)감독.예나 지금이나 술이 얼큰하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베마리아’를 부른다.집앞 골목에 이르면 정지용의 시에 채동선이 작곡한 ‘고향’을 부른다.그러면 기다리던 ‘무던한 순둥이’가 마중나와 팔짱을 낀다.이렇게 영화같은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1925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45년 휘문고졸.49년 동국대 문과졸.64년 동국대 강사. ▲73년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장.76∼90년 동국대연극영화과 교수.80년 유네스코 문화위원. ▲81년 예술원회원(현).89년 한국영화학회장.90년 동국대예술대학장. ▲97년 부산국제영화제심사위원장,99년 춘사영화제 심사위원장.2000년 영화감독협회 고문(현). ▲주요 수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상,예술원상,대종상 등. ▲주요 작품=‘오발탄’‘인생차압’‘잃어버린 청춘’‘막차로 온 손님’‘카인의 후예’‘사람의 아들’‘불꽃’‘장마’ 등 43편. 김문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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