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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측근들이 본 3김시대 종언 의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3김(金)시대’의 막이 내리고 있다. 고인과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가 현대 정치사의 주요한 축을 담당했던 시기다. 특히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과정에서 특별한 업적을 이뤘으나 한편으로는 ‘지역주의’와 ‘계보 정치’라는 그늘을 남기기도 했다. ‘3김’의 주변 인사들은 23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3김 정치’가 과제로 남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후진들이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현 전 의원은 “김대중·김영삼 두 분이 과거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민주화를 늦춘 것은 물론 이에 따라 심화된 갈등구조는 지역갈등이란 불행으로 이어졌다.”면서 “앞으로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김영삼의 상도동계가 서로 대화하고 화합하면서 동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상천 의원은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생의 라이벌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이뤄진 만큼 이번 국장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광옥 전 의원도 “국민 대화합을 향한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도록 우리 후배들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상도동계인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해온 김대중·김영삼 두 전 대통령은 민주세력 집권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었으나 경쟁 과정에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파생됐다.”면서 “우리 후배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화해하고 통합하면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측근들은 또 고인의 정신을 받들어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교동계의 핵심인 권노갑·한화갑·김옥두 전 의원은 이날 영결식장에서 “‘3김 정치’나 ‘3김의 종말’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 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고인이 평생 온몸으로 지키고자 힘썼던 민주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을 국민의 편에서 계승·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설훈 전 의원은 “‘3김’이란 말은, 돌아가신 김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적당한 용어가 아니다.”면서 “그러나 ‘3김 정치’는 기본적으로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체제의 틀을 만들었기에 우리 정치사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를 거치며 이룩된 민주주의가 최근 뒷걸음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민 전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3김 시대’는 종말을 고했으나 그들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는 아직 공고화되지 못했고 독재 근성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민주주의는 물론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 인권개선 노력 등 고인이 추구한 가치들을 21세기에 맞게 이뤄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다.”고 상기시켰다. 주현진 허백윤기자 jhj@seoul.co.kr
  • [사설] 김 전 대통령 가신 길 평화·화해로 기려야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떠나고 우리는 남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고, 인권을 살찌우고, 얼어붙은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햇살을 안겨다 준 김 전 대통령이 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면의 길에 들어섰다. 김대중, 그 이름 석자는 역사가 됐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가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부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데 있어서 고인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외침으로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의 불꽃을 지켜냈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가 흔들릴 때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장롱 속 금붙이들마저 끌어내며 이룩한 경제 회복으로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분단 한반도에 대화의 물꼬를 텄고, 남북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공영의 대상임을 일깨웠으며, 인류는 그런 평화의 전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며 갈채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의 숭고한 가치와, 용서와 화해만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을 힘이라는 가르침을 고인은 안겨주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로 지난 엿새 이 땅엔 용서와 화해, 평화와 사랑의 물결이 넘쳐났다. 동서로는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정적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이뤄졌고,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손을 잡았다. 남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를 받아든 북한 조문단이 빈소를 찾았고, 우리 정부와 막힌 대화의 실타래를 풀 방안을 논의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분향소로 신분과 계층을 떠난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었지만, 거기에 이념과 지역 대립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고인의 자취가 크고 깊은 만큼 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우리의 과제 또한 막중하다. 지역과 이념, 계층의 대립이라는 이 나라 3대 갈등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극복하려 했던 지역주의의 골을 메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당파를 떠나 지역갈등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말로만 지역주의 극복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제도 개선 등을 논함에 있어서 이 나라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이념 과잉의 대결구도 또한 극복해 내야 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식민통치와 남북 분단, 군부통치라는 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이념의 덫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라가 이념의 굴레에 묶여 주춤거리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탈이념의 세계사적 조류에서 우리만 퇴행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친서민 행보를 보다 강화,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을 극복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한다. 기회의 균등과 정의로운 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인동초가 피워 낸 평화와 화해의 꽃을 이제 우리가 가꿔야 한다.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뒤 동교동 ~ 서울광장 거쳐 오후 6시 영면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영결식 뒤 동교동 ~ 서울광장 거쳐 오후 6시 영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된다. 한 시간여의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량은 국회의사당을 떠나 곧바로 부인 이희호 여사와의 추억이 깃든 동교동 자택에 들른다. 국민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시청앞 서울광장 등을 거쳐 오후 6시가 되면 김 전 대통령은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란히 영면에 들어간다. ●청와대 방문 여부 아직 미정 김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영결식이 치러지기 30분 전인 오후 1시30분쯤 국회 본청 앞 빈소에서 진행된다. 국장 영결식은 오후 2시부터 1시간20분 간 진행되며 절차는 국민장과 비슷하다. 단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4단 계단식으로 세워지며 2000여송이의 국화로 장식된다. 최대 5만명 이상이 들어가는 식장에는 장의위원 2300여명을 비롯, 각계 정부초청인사 9000명과 유가족 초청인사 1만 5000명 등 2만 4000명의 자리가 마련된다. 신원확인과 안전 등을 이유로 비표나 초청장이 없으면 영결식장에 입장할 수 없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추도사, 천주교-불교-기독교-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 모습 등이 담긴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추모공연이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3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면 영결식은 끝이 난다. ●유족측 교향악단도 요청 이번 영결식 사회는 남녀평등을 원한다는 유족 측 희망에 따라 조순용 전 청와대민정수석 등 남녀 1명씩 정했으며, 추도사도 추가됐다. 유족 측은 분향·헌화시 군악대, 조악대와 함께 교향악단도 요청한 상태며 추모공연은 1명의 성악가와 어린이합창단이 함께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영결식 준비를 위해 오전 8시부터 국회 출입이 통제되며 임시 분향소가 국회 정문 맞은편 도로에 설치돼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국회 정문,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난 3시20분, 운구 행렬은 국회를 빠져 나와 시속 20~30㎞의 속도로 동교동 자택~청와대(협의중)~시청앞 서울광장~서울역 광장~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한다. 유족 측은 자택 다음으로 김 전 대통령이 집무했던 청와대에 가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이동 경로에 있지 않아 정부 측과 협의를 하고 있다. 영정차량은 사이드카 30여대가 앞뒤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영구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영정차 앞에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한다. ●이희호 여사 “간소하게 치르자” 노제는 열리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께서 간소하게 치르자고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현충원에는 오후 6시쯤 도착한다. 김 전 대통령의 안장식은 유가족을 비롯한 동교동계 지인들과 장의위원회 집행위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진행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유가족·정치권 “국민화합의 장 기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國葬)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해 유가족과 정치권은 국민 화합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 전 대통령 쪽의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고인의 병상 중에 과거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었던 분들도 와서 화해하고, 그런 과정들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소개됐다.”면서 “이번 국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 비서관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장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그동안 김 전 대통령께서 화해와 화합, 평화를 위해 일하신 것에 대해 국민들이 인정해 주셨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그러한 정신에 맞게 남은 국장 기간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 쪽에서는 유족을 비롯해 고인이 평생 함께 했던 동교동계·옛 민주계 인사들과 민주당이 함께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화합’의 의미를 부여했다. 정치권은 고인의 장례가 국장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모두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국민적 애도 속에 영결식이 잘 치러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빈소가 마련돼 참으로 다행”이라면서 “거리에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민의의 전당에서 대화를 통해 품격있는 의회정치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전날 “좋은 선례인 것 같다.”고 전제하고 “유족과 정부, 국회가 원활한 협의 속에 결정한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혔다. ‘상주’ 역할을 맡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도 국장이 고인의 평소 소원대로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반면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 가운데 어떤 분에 대해선 국민장으로 하고 어떤 분은 국장으로 해서 논란이 된다면 국민화합에 좋지 않다.”면서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DJ 국회로… 조문 24시간 개방

    DJ 국회로… 조문 24시간 개방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관된 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은 운구 직후 국회의사당 정문 10m 앞의 천막 안에 설치된 냉장용 유리관에 안치됐다. 유리관은 길이 2.2m, 높이 1.35m, 폭 1.1m 크기로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온도가 섭씨 2도로 유지되며 습기도 조절된다. 이 유리관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 사용된 것과 같은 제품이다.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는 유가족이 먼저 분향했고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사상 처음 국장이 치러진 국회에서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맡았다.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총리가 국장의 장의위원장을 맡는다는 현행 법률 규정과 기존 국장 관례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고인은 이날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된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국회로 운구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국회로 운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로 옮겨진 20일 오후 서울에서는 한동안 퍼붓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려쬐었다. 이날 오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관식을 마치고 국회로 향하는 고인에게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유족과 지인들 입관식 내내 눈물 이날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오전 11시 45분부터 50분 정도 고인의 염습이 진행됐다. 용이 그려진 구름모양의 곤룡포를 수의로 입고 용안 화장을 마친 고인의 얼굴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한 참관인은 “편하게 주무시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염습에 이어 오후 1시30분쯤부터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측근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입관예식이 치러졌다. 유가족 20여명과 동교동계 인사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전병헌 의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성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 등이 함께 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고인을 바라본 참관인들은 30분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이 여사는 고인의 왼쪽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이들은 촛불을 든 채로 서교동 성당 윤일선 주임신부의 입관미사에 참여했고 ‘주여 세상 떠나는 영혼 당신 품에 거두소서’로 시작하는 성가를 나지막이 불렀다. 미사가 끝나자 이 여사와 세 아들, 동생 김대현씨, 며느리, 손자들이 고인에게 성수를 뿌렸다. 투병 중인 큰 아들 홍일씨도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이어 박지원 의원과 김선흥·최경환 비서관 등 고인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비서진들이 고인에게 인사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들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권노갑·한화갑·김옥두·한광옥 등 동교동계 인사 4명도 고인의 앞에 서서 “여사를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오후 2시쯤 입관예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입관실에는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한영애 전 의원은 “용서하세요.”를 반복하며 흐느꼈다. ●시민들 ‘우리의 소원’ 부르며 작별인사 오후 4시15분쯤 운구가 시작됐다. 고인의 손자인 종대씨가 영정을 들고 운구차에 올랐다. 운구는 입관식에 참석했던 동교동계 인사들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조순용 비서관, 박지원 의원 등 10명이 맡았다. 정 대표와 권노갑 전 의원이 맨 앞에 섰다. 이 여사는 며느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들 홍업·홍걸씨가 뒤따랐다. 운구가 끝난 세브란스병원 앞에는 한 시간 전쯤부터 400명 가까운 시민이 모였다. 일부 시민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놓아 불렀다. 운구 행렬이 지나간 신촌 로터리 주변에는 인도를 빼곡히 채운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운구차는 10분 남짓 만에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고인을 맞았다. 허백윤 오달란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장의委 유족추천 1116명… 노 전대통령 때 10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장의위원회 규모는 사상 최대인 2371명에 달한다. 이같은 규모는 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 서거 때의 네 배, 노무현 전 대통령 때보다 1000명가량 많다. 이는 유가족 추천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 때보다 10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장례 때는 유가족 추천 인사가 111명에 불과했으나, 이번엔 1116명으로 10배나 늘어났다. 장의위원에는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의 16대 국회의원과 제15대 대통령자문위원장 등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때는 총 1383명, 최규하 전 대통령은 680명,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 당시에는 691명의 인사들이 장의위원에 포함됐다. 이번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맡았으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희락 경찰청장 등 5명이 집행위원으로 선임됐다. 지난 노 전 대통령 때 처음 생긴 운영위원회는 만들지 않았다. 각계 분야별 장의위원은 국회의원과 국회사무처 차관급 이상 289명,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55명, 현직 행정부 장·차관급과 각종 위원회 위원장 등 123명, 시·도지사 17명, 3군 참모총장 등 군 대표 5명, 경제·언론·종교계 대표 등 98명, 국공립 사립대 총장 183명, 15대 국민의 정부 장·차관급 이상 404명, 친지 및 유가족 추천인사 1116명 등 2290명이다. 장의위 위원에는 특히 김 전 대통령 시절 측근들과,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던 이들이 다수 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동교동계 집사였던 남궁진 전 대통령 정무수석, 박금옥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 김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박선숙 전 대통령 공보기획관, 당의 조직통이었던 배기선 국회의원이 포함됐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의혹사건 당시 특별검사를 맡았던 송두환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21일자 일간신문에 장의위원 전체 명단 등이 담긴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공고문을 게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와 애증의 20여년 광주·전남 추모위원장 지선스님

    “그 분을 영원히 떠나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고, 만감이 교차합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은 20일 “그가 평생 추구해온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 등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장례일까지 매일 저녁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겠다.”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산승(山僧)’에서 ‘투사’로 변신해 20여년 동안 광주지역 재야운동을 이끈 지선 스님은 DJ와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세월’을 거친 ‘인연’을 맺는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이후 ‘반독재 투쟁’이란 기치 아래 대학생들과 섞여 매일 거리 최루탄 공방전의 선봉에 섰고,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6·29 선언 다음달인 7월 초 석방된다. “석방되던 날 DJ와 YS가 교도소 앞에 찾아와 처음으로 두 거물 정치인을 동시에 만났다.”며 “이후 두 분 사이를 오가며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촉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으로부터 선거 전까지는 꼭 단일화될 거란 말을 들은 뒤 각 대학에서 강연이 있을 때마다 ‘민주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역설했으나 그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광주에서 재야활동에 열중이던 지선 스님은 DJ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평민당을 이끌던 때도 여러번 부딪쳤다. “DJ는 당시 ‘비 폭력, 비 반미, 비 용공’이란 3대 원칙을 끝까지 강조하며 우리 재야운동가와는 일정 거리를 두려 했던 현실 정치가였다.”며 “이런 점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자주 빚어졌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한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 재야인사인 고 조아라 선생 등과 함께 동교동을 방문했다. 보기에도 흉측한 모습이었던 이철규씨 사진의 일간지 게재를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DJ는 당시 “공안 당국에 탄압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며 일거에 거절했다. 지선 스님은 “5·18 이후 수많은 대학생과 열사들의 죽음을 외면하려면 정치를 그만 두라.”고 맞섰다. DJ역시 “법복을 입고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대학생을 선동하면 되느냐.”며 질책했다. DJ와 지선 스님은 이 때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DJ가 집권한 이후부터 그는 10여년 동안 ‘산방’에서 지냈고, 최근 3개월 간 하안거를 마친 뒤 DJ추모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어른은 가셨지만 우리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 계실 그 분을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지선 스님에겐 애증의 20여년이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사형선고 받고도 소신 안굽힌 분 감사원장 임명뒤 일절 간섭안해”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사형선고 받고도 소신 안굽힌 분 감사원장 임명뒤 일절 간섭안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난을 오직 강인한 의지로 극복해 오셨다.”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을 지켜본 한승헌(75) 전 감사원장은 평생 동지의 마지막 모습을 이처럼 뼈에 사무치게 기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한 전 감사원장에 대해 “한승헌 변호사는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된다.”고 자랑했다. 김 전 대통령과 격의없이 농담을 주고 받은 몇 안 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한다. 한 전 감사원장은 1970년 월간지 ‘다리’의 필화사건을 변호하며 김 전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74년 김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았고 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는 육군교도소에서 같이 복역했다. 93년 ‘김대중씨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모임’ 공동위원장, 98년 국민의 정부 초대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김대중 자서전 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전 감사원장이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것은 월간지 ‘다리’ 창간 1주년 기념식이다. 민주주의를 역설하는 강연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청중이 초만원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소신과 패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73년 8월 일본으로 납치됐던 김 전 대통령이 생환하자, 정부는 67년 대선 때의 발언을 문제삼아 선거법 위반혐의로 김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가택연금으로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 대신 이희호 여사가 나를 찾아와 변호를 의뢰했다. 매일 아침 동교동으로 가서 대책을 상의했다. 그러던 중 내가 75년 3월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갈현동 집에 찾아와 어머님과 아내를 위로하셨다.”고 전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신군부의 정권탈취에 가장 큰 장애물인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한 사건’이라고 한 전 감사원장은 못박았다. 공소장 낭독에 걸린 시간만 해도 1시간27여분. 그런데도 “사형 선고를 받고 소신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생사에 초연했다.”고 회상했다. 감사원장 취임 초기 때 대통령이 감사원을 간섭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범 답안’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 답안을 한번도 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를 이끌어 내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한국인의 자랑이다. 아직 나라에 걱정거리가 많은데 그 분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김대중도서관 평화통일교육 메카로”

    “김대중도서관이 평화통일교육의 메카가 되길 바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김대중도서관’의 운영방향에 대해 당부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도서관 운영진에게 이같은 바람을 밝혔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개설한 ‘김대중 평화아카데미’에 깊은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문제와 평화통일 방안, 대북포용정책의 유효성 등을 알리는 강좌들로 구성된 아카데미는 그 동안 200여명의 시민들이 수강했다. 회사원, 자영업자 등 통일에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강의를 찾았다. 현 정부 들어 대북관계가 경색된 것을 내내 아쉬워했던 김 전 대통령은 교육사업이 활기를 띠자 고무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재 도서관장은 20일 “김 전 대통령께서 ‘교육이 시민들에게 남북화해와 협력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알리는데 효과적인 만큼 깊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운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신촌병원에서 입관된 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운구 직후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먼저 분향했으며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사상 처음 국장이 치러진 국회에서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장의위원에는 국회의원과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행정부 장·차관, 각종 위원회 위원장, 3군 참모총장 등 군 대표, 시·도지사, 국·공립 및 사립대 총장, 경제·언론·방송·종교계 등 각계 대표, 유족 추천인사 등 2290명이 포함됐다. 고인은 이날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본청 옆 국회 도서관에는 밤새 조문객을 받아야 하는 상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설치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된다. 국회는 일반 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여의도역과 대방역에서 국회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국회 입장 때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 정문 앞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 바로 국회로 들어가도 된다. 글=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영상=영상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모든 시름 내려놓은 듯 편안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신촌병원에서 입관된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운구 직후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먼저 분향했으며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21일 오후 특별기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한 뒤 다음날 오후 귀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장의위원에는 국회의원과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행정부 장·차관, 각종 위원회 위원장, 3군 참모총장 등 군 대표, 시·도지사, 국·공립 및 사립대 총장, 경제·언론·방송·종교계 등 각계 대표, 유족 추천인사 등 2290명이 포함됐다. 고인은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본청 옆 국회 도서관에는 밤새 조문객을 받아야 하는 상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설치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되며 일반 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국회 입장 때 신분증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글 / 서울신문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 전대통령 서거] “이제 편히 쉬시길”…광주 곳곳 추도 현수막

    [김 전대통령 서거] “이제 편히 쉬시길”…광주 곳곳 추도 현수막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인 19일 전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평화와 화해를 향한 뜻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고인이 병상에서 예상됐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인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 견줘 추모 분위기가 차분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해 서울시에는 중구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에 설치되는 등 전국 130개 분향소가 마련됐다.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는 가로 22m, 세로 8m 규모이며, 고인의 영정은 2만송이의 흰 국화로 감싸졌다. 서울시는 천막 65동과 테이블 30개, 의자 70개, 이동화장실 5개, 아리수(350ml) 4000여개 등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 분향소를 찾은 정종석(57·경기 이천)씨와 동생 길임(49·서울 신림동)씨는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 “오랫동안 편찮으셨어도 괜찮아지시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물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은 1층 로비에 꾸며진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1~2층에 마련된 전시공간을 둘러보며 고인을 기렸다. 상주 역할을 맡은 류상영 전 도서관장은 “김대중도서관이야말로 고인의 생애가 다 모여 있는 곳”이라면서 “‘내가 죽더라도 도서관은 국가의 것인 만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다.”고 전했다. 옛 전남도청에 마련된 ‘광주시민합동분양소’에는 아침부터 정·관·재계 등 각계에서 보내온 화환이 빽빽이 들어찼다. 거리 곳곳에도 추도 현수막이 내걸렸다. 가족과 함께 광주지역 분향소를 찾은 김영화(47·식당업)씨는 “평생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고인의 발자취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면서 “이제 나라 걱정은 접고 편히 쉬셨으면 한다.”고 명복을 빌었다. 오후에는 박광태 광주시장과 최종만 행정부시장, 5개 구청장 등이 합동조문을 했다. 동교동계 출신으로 고인과 특별한 인연을 쌓은 박 시장은 “전날 서울 세브란스병원의 빈소에서는 만감이 교차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이제는 차분히 고인의 뜻을 기리고 유지를 받드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시민단체총연합·5월단체 등이 참여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광주·남전추모위원회’가 발족돼 장례일까지 각종 문화행사를 이끌어나가기로 했다. 추모위는 “장례일까지 매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까지 도청 앞 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고, 장례일 당일에는 시민이 참여하는 추모대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전국 자치단체와 기업체 등은 예정된 축제 등을 연기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모셔졌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정토원에도 분향소가 설치돼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지금도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기에 정토원은 3개월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뜬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선진규 정토원 원장은 “민주화에 앞장선 두 명의 지도자를 잃어 슬픔이 크다.”며 “종교를 떠나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설치해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1961년 첫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강원 인제군 주민들도 깊은 슬픔에 빠졌다. 당시 선거를 도왔던 방효정(85) 인제군 원로회장은 “나라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남북통일이 되는 것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넷 누리꾼들의 추모행렬도 이어져 다음 아고라 추모게시판과 네이버 추모게시판에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들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종합 청주 남인우·서울 유대근기자niw7263@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자서전 사후출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 아들에 대한 절절한 심경과 1987년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를 “가슴에 가장 걸리는 부분”이라며 자서전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구술작업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기 6일 전인 지난달 7일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는 19일 “김 전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둘째아들 홍업씨가 지난 2002년 6월 구속됐던 것은 억울한 측면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보수언론이 지나치게 (홍업씨를) 몰아가는 등 혹독하게 비난받았던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장남 홍일씨에 대해서는 “아비로 인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죄책감이 든다.”며 애틋한 부정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막내 홍걸씨에 대해서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홍걸씨가 고려대 불문과(82학번)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 너무 대견하다며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세 아들에 대한 심경을 밝히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자주 눈물을 흘렸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뒤 쏟아졌던 비판에 대해 “나만 혹독하게 몰아붙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구술에서 “후보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때 김영삼씨가 먼저 ‘김대중씨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당시 여론은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나에게만 돌렸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1986년 건국대 항쟁으로 학생 1200여명이 구속된 뒤 더 이상 애국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내가 직선제 개헌과 언론 자율화를 정부가 받아들이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그때는 자기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했던 말인데 (여론은) 후보단일화 실패로 군정종식을 이루지 못한 모든 책임을 나에게만 물었다.”고 구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 내란음모 연루 정동년씨 술회

    “DJ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초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겪었던 정동년(66·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씨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더 오래 살아 주시길 바랐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이 사건 이후 DJ와 광주 재야·시민단체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0년 5월18일 자정무렵 집으로 들이닥친 5~6명의 남자에 의해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갔다. 시내에서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의 발길질과 각목 세례를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과 사용처를 추궁받았다. 합수부의 계속되는 고문에 상무대 영창 화장실로 들어가 군용 숟가락으로 자해까지 했다. 1주일째 이어진 고문으로 그해 5월 말쯤 DJ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박관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에게 나눠 줬다고 ‘진술’하면서 고문은 끝났다. 서울의 봄 기간인 1980년 4월 전남대 복학생 대표 자격으로 정씨는 DJ의 강의 초청을 위해 동교동을 방문했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으로 DJ와 함께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정씨는 재야활동을 하면서 DJ와 광주 지역사회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평민당과 DJ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이 때 광주지역 재야도 이탈 조짐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많은 쓴소리와 비판을 가했다.”며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남북문제와 대미 외교 등을 지켜 보면서 그가 정말 위대한 지도자란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 전대통령 서거]정치권 한목소리

    “거목은 쓰러졌지만 그 분의 유지(遺志)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정치권에서는 ‘화해와 용서’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고인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각각 상징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도 “남은 우리가 지역주의 해소에 매진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상도동계 출신인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는 1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두 분이 인간적인 면에서 화해를 했고, 이제 정치적인 화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두 분을 모시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후배들이 지역주의를 고치는 일에, 민주화 운동의 초심으로 함께 손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새로운 결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원로 정치인들도 지역갈등과 이념·계층 간 갈등을 극복해 고인의 뜻을 받들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치적으로 같은 편에 섰든, 반대편에 섰든 갈기갈기 찢어진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내는 일에 힘을 쏟자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고인이 지역감정으로 피해를 본 것도, 그것을 활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된 뒤 화합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면서 “그분의 뜻을 받들어 한층 더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장은 “정치권도 격돌과 대립에서 벗어나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중·대 선거구제 개편 등을 대승적 견지에서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도동계 출신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좌익이니, 빨갱이니 하는 소리까지 듣고 모진 고초와 모욕을 당했지만 고인은 자신에게 모질게 했던 사람들을 다 용서했다.”면서 “그분의 말과 행동을 10분의 1만 닮았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처럼 꽉 막힌 상황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전 의장은 “서로를 껴안고 용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교동계 출신인 박상천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 경제발전을 추구하던 그 뜻을 이어받아 고인의 중도·개혁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고인은 남북 및 이념 간 화해와 화합을 위해 헌신하고 국민과 함께 고락을 함께 한 분으로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면서 “고인이 남긴 높은 뜻을 계승하는 데 모든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부의장 출신의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지역문제뿐 아니라 계층 간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지역갈등 해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회 양극화를 치유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고인이 재임시절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두른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상기시켰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이희호 여사 “꼭 일어나셔야 해요” 끝내 오열

    “하느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남편을) 저희에게 보내주세요….” 18일 오후 1시20분쯤, 이희호 여사는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댄 채 속삭이듯 애원했다. 이 여사는 이날 오전 남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중환자실에서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심박동 곡선은 심상치 않게 움직였다. 홍일, 홍업, 홍걸 3형제 등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오후 1시25분쯤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 김 전 대통령의 윤철구 비서관, 안주섭 전 경호실장 등이 급하게 호출됐다. 김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각자 고별인사를 건넸다. “사랑해요.” 가족들이 김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다. 남편의 모습은 이 여사가 한평생 지켜봤던 모습 중 가장 평온한 얼굴이었다. 오후 1시43분, 의료진이 “사망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순간 이 여사와 가족, 측근 20여명은 끝내 흐느끼고 말았다. 이 여사는 남편의 오른쪽에 앉아 자신이 직접 짠 벙어리장갑을 낀 남편의 오른손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이 여사는 전날 저녁 7시45분 마지막 면회를 하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꼭 일어나실 거예요. 하느님께서 당신을 지켜주고 일어나실 힘을 주실 거예요. 꼭 일어나셔야 해요.”라며 간절히 갈구했다. 그러나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반자였던 남편은 영영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동안 꿋꿋하게 버텨오던 이 여사는 끝내 오열하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한때 자리에 누워야 했다. 홍업씨와 홍걸씨가 자리를 지켰다. 이 여사는 오후 5시30분쯤 추스르고 일어나 빈소로 향했다. 슬픔을 억누르고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헌화하고 조문객을 맞기 위해서였다. 박지원 의원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반드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냉정한 상태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YS “거목 쓰러져”… 각계 인사 애도 물결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YS “거목 쓰러져”… 각계 인사 애도 물결

    ■ 세브란스 병원 임시빈소 표정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특1호실에는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정·관계 등 각계각층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의 애도 물결이 자정 넘어까지 이어졌다. 영안실에서는 고인의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가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추미애 의원,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을 비롯해 동교동계와 옛 민주계 인사들 10여명이 함께 빈소를 지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조문에 앞서 이날 오후 조화를 보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후 5시30분쯤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아 “많이 아쉽다.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지셨다.”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오랜 동지였고 경쟁자였던 김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화해도 경쟁도 40여년을 함께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휴가차 방한했다가 이날 오후 7시 출국할 예정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일정을 바꿔 오후 6시쯤 조문했다. 반 총장은 “인권과 남북관계 개선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면서 “전 세계에 길이 남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에서 고인과 경쟁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오후 6시15분쯤 빈소를 찾아 “민주화의 거목이 가셨다. 마음 속으로 깊이 애도하며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오후 11시쯤 빈소를 나서며 “큰 별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 민주주의의 미래를 비춰줄 것”이라면서 “고인이 남긴 과제인 민주주의 수호와 한반도의 평화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이해찬·고건 전 총리,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등도 빈소를 찾았다. 한 전 총리는 “좀 더 살아계셨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부의장은 “우리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니까.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셨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와 고은 시인, 백경남 동국대 명예교수 등 김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인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김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김형오 의장 주재로 긴급 기관장회의를 열어 대형 근조 현수막을 즉각 게시하는 한편 국회 내 분향소 설치를 추진키로 했다. 회의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6선 의원을 역임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해 국회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유족이 원하면 국회 내 빈소를 차리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이재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YS “거목 쓰러져”… 각계 인사 애도 물결

    ■ 세브란스 병원 임시빈소 표정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특1호실에는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정·관계 등 각계각층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의 애도 물결이 자정 넘어까지 이어졌다. 영안실에서는 고인의 차남 홍업씨와 삼남 홍걸씨가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추미애 의원,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을 비롯해 동교동계와 옛 민주계 인사들 10여명이 함께 빈소를 지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조문에 앞서 이날 오후 조화를 보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후 5시30분쯤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아 “많이 아쉽다.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지셨다.”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오랜 동지였고 경쟁자였던 김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 화해도 경쟁도 40여년을 함께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휴가차 방한했다가 이날 오후 7시 출국할 예정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일정을 바꿔 오후 6시쯤 조문했다. 반 총장은 “인권과 남북관계 개선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면서 “전 세계에 길이 남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에서 고인과 경쟁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오후 6시15분쯤 빈소를 찾아 “민주화의 거목이 가셨다. 마음 속으로 깊이 애도하며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오후 11시쯤 빈소를 나서며 “큰 별이 더욱 찬란하게 빛나 민주주의의 미래를 비춰줄 것”이라면서 “고인이 남긴 과제인 민주주의 수호와 한반도의 평화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이해찬·고건 전 총리,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등도 빈소를 찾았다. 한 전 총리는 “좀 더 살아계셨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부의장은 “우리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니까.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셨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와 고은 시인, 백경남 동국대 명예교수 등 김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인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김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김형오 의장 주재로 긴급 기관장회의를 열어 대형 근조 현수막을 즉각 게시하는 한편 국회 내 분향소 설치를 추진키로 했다. 회의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6선 의원을 역임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해 국회기를 조기로 게양하고, 유족이 원하면 국회 내 빈소를 차리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글 / 서울신문 이재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영상 /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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