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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롱아일랜드 유스오케스트라/한여름밤 수놓는 꿈의 선율

    ◎28·29일 예술의 전당 세계 정상급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미국의 롱아일랜드 유스 오케스트라가 오는 28·29일 하오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갖는다.이번이 세번째 내한공연. 지난 62년 지휘자 마틴 드레이위츠에 의해 창단된 롱아일랜드 유스 오케스트라는 젊고 유능한 음악가들에게 2∼3년동안 연주기회를 부여,젊은 음악도들에게는 ‘꿈의 오케스트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있는 전문 연주단체.지난 71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등 세계 68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가졌으며 청소년 오케스트라로서는 최초로 제3세계 순회공연을 실시하기도 했다.이번 내한공연에는 드레이위츠가 직접 단원 80여명을 이끌고와 지휘봉을 잡는다. 이틀간 연주의 레퍼토리를 완전히 다르게 구성,이 오케스트라의 폭넓은 음악세계를 맛볼 수 있게 한다.28일에는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전주곡과 그리그의 ‘페르퀸트’ 조곡,생상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g단조 작품22 등 6곡을 연주하며 29일에는 쥐페의 ‘시인과 농부’서곡,비제의 ‘카르멘’조곡,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작품35 등 5곡을 들려준다.문의 232­4798.
  • ‘베세토 탐방단’ 316명 일·중에 파견

    ◎“21세기 동북아 우리가 이끈다”/역사·문화 탐방… 세미나·토론회도 ‘다가오는 베세토시대,우리가 주역이 된다’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베세토 어드벤쳐 해양탐방단’ 2개팀이 20일 서울을 떠나 각각 항공편과 배편으로 일본 나가사키 및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베세토(BESETO)는 북경­서울­동경을 일컫는 말로 한·중·일 3국은 21세기에 동북아 3국이 세계의 중심지역이 될 것에 대비해 93년부터 행정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다져왔다. 이번 탐방은 젊은 세대에게 21세기에 대한 비전과 도전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해 삼성이 마련했다.올해 처음으로 216명의 대학생들이 2개팀으로 나뉘어 11박12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 파견됐다. 또 다른 1백여명의 학생은 다음달 10일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 떠난다. 이날 일본에 도착한 대학생들은 ‘21세기 동북아발전을 위한 청년의 역할’ 등의 주제로 탐방계획서를 제출한 5천여명 가운데 선발됐다.탐방단장은 이경숙 숙명여대총장이 맡았다. 학생들은 탐방기간중 4인1조로 짝을 지어 동경 오사카 고베 큐우슈우 교토 나라 등 필수 코스 및 지역코스를 자율적으로 탐망한다. 대학생들은 특히 연수선 ‘드림21호’를 타고 일본 연안을 탐방하는 동안 배위에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한일관계를 새롭게 조망해 보는 세미나도 갖는다.이 자리에는 박성래 외대부총장과 소설가 최인호씨 김현구 고대교수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 등이 동참한다. 또 오는 25일 일본 고베에서는 한일 대학생 토론회 및 친선의 밤 행사가 열린다.
  • 전쟁분위기 조성 ‘의도적 도발’/북 DMZ도발 의도 뭘까

    ◎박격포 동원 조준사격 73년이후 처음/황 회견 보복·남 대응력 시험 복선 깔려 16일 상오 북한군 7명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도발을 저지르면서 빚어진 아군과 북한군의 총격전은 포탄까지 쏠 정도로 치열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더해 주고 있다.남북한간 교전에서 포탄이 등장한 것은 70년 이후 처음이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의 기자회견으로 심사가 뒤틀린 북한이 분위기를 좋지 않은 쪽으로 몰고가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우려섞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우발적인지,의도적인지에 대해서는 사태의 추이를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앞으로 북한이 또다른 도발을 자행한다면 이번 도발은 ‘전쟁 분위기’ 조성 등을 겨냥한 시발탄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군은 그러나 북한군이 단순히 군사분계선을 넘은 북한군을 엄호하기 위해 아군의 경고사격에 맞대응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강도 높은 대응 자체가 ‘의도된 도발’이라는 시각이다.무엇보다 황장엽씨의 귀순 이후 줄곧 보복하겠다고 협박해온 점을 근거로 꼽고 있다.북한은 올들어 군사분계선을 5차례,서해의 북방한계선을 6번이나 침범했었다. 박격포와 비반충포(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동원한 점도 북한의 의도적 도발을 뚜렷하게 반증한다는 설명이다.그동안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은 아군이 경고방송과 하늘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면 되돌아가는 게 상례였다.그러나 이번에는 아군의 경고사격에 맞서 곧바로 조준사격으로 맞섰고 우리측 초소를 겨냥해 포탄까지 퍼부었다. 이날 도발현장은 육안으로 사람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가 나빴다.북한군은 이에 따른 아군의 경계태세를 시험하기 위해 도발을 자행했을 가능성도 있다.아군은 첨단장비로 북한군의 움직임을 포착·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군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이후 우리군이 대비태세가 더욱 강화된데 이어 황장엽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전쟁도발 대비 종합점검단’을 구성하자 우리의 대비태세에 허점이 있는 지 여부를 탐색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과 김정일의 권력승계 등과 관련한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남북한간 긴장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도발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96년이후 북 도발 일지 ▲96.4.5=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60㎜ 박격포,40㎜ 대전차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한 북한군 230여명이 3일간 진지구축 등 군사훈련. ▲96.5.17=북한군 3명이 경기도 연천군 군사분계선 북쪽 200m지점에 나타나 소총 4발 발사한데 이어 북한군 7명이 군사분계선 남쪽 20∼30m까지 침투. ▲96.5.23=서해 연평도 서남쪽 해상에서 북한군 고속정 10여척이 북방한계선을 침입. ▲96.10.18=강원도 강릉 해안에 잠수함으로 무장공비 침투. ▲97.4.10=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정리 북방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부근에 북한군 5∼6명이 활동. ▲97.7.2=서해 연평도 북한 경비정 한 척이 북방한계선을 3마일 침범,5시간동안 머물다 되돌아감. ▲97.7.4=서해 연평도 서남쪽 27.78㎞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 1척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 학술원상(외언내언)

    학술원 예술원상이 발표되고 있다.예술이나 학문적 업적에 대한 기억보다는 매스컴에 자주 이름을 보아오던 사람들이 더많이 등장하고 있다.글은 별로 쓰지않은 문학상수상자도 있는것 같고 이렇다할 빛나는 창작활동을 보여준 바 없는 수상자도 있어 보인다.그런 일은 별로 새삼스런 것도 아니어서 교섭력과 사교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 상도 먹었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그렇다보니까 상탄 일이 별로 존경스럽지도 않고 동경스럽지도 않다.타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다지 자부심을 못느끼는 것같다. 예술원이나 학술원은 우리의 가장 권위있는 기구다.여기서 인정한 것은 우리의 최고수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적어도 그래야 한다.그러나 이곳의 수상자도 결과는 비슷한 것 같다.아마도 수상에 따른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전체적인 상훈들이 이렇게 평가절하된 일은 유감스럽다.이것은 어느 한 상에 얽힌 불행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렇게 운영되고 관리되어 온데서 온 전체의 불행이다. 이현재 회장의 학술원은 11일 총회를 열고 학술원회원은 학술원상을 탈수 없게 하는 것을 명문화했다고 한다.이 상이 “원로끼리 나눠먹는 상”이 안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이를 계기로 “학술원의 진정한 위신과 위상을 높이고… 학술원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확립하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이현재 회장은 공언하고 있다.그의 뜻대로 이런 결정이 학술원 밖의 유능한 인재를 키우고 기리는 일에 기여하기를 우리도 빈다. 상도 상이지만 학술원이나 예술원의 회원이 결정될 때가 되면 정상배집단이 무색할만큼 선거잡음이 들려오고 수상결정자가 회원자격에 회의를 느껴 수상을 거부하는 일까지 생긴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은 어디라도 얼마든지 있어서 온당하고 인격이 높은 사람들은 뒷전에 밀리고 음모의 술수가 승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도 안다.그렇게 정해진 회원이 대세를 이룬 기관이 안되게 거듭나는 일도 긴요하다.그렇지 않으면 회원끼리가 아니라도 돌아가며 운동품앗이로 나눠먹는 상은 여전할 것이다. 새수상자가 나오면 온갖 ‘말’만 무성하고 그럴 때마다 상의 권위는 땅위를 뒹구는 일을 줄여가기 위해서 회원수상불가를 명문화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살려 갈 것을 기대한다.
  • 주요 조사결과/체제에 염증… 민족적 차원 망명 결심

    ◎‘리스트’없이 국내외 접촉인물 제시 ■위장 망명설 황장엽에 대해 의혹이 갈 만한 부분인 망명동기,“귀순도 망명도 아니다”라는 입국시 발언내용,망명결심에서부터 결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등에 대해 현재까지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위장망명으로 판단할 만한0사항이 드러나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음.황장엽은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염증과 조국통일에 기여해 보겠다는 민족적 차원의 고뇌가 작용하여 망명을 결행한 것으로 판단됨. ■사상 전향문제 황장엽은 60년대 후반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 원리와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접목시켜 주체사상을 이론화·체계화하기 시작하였으나 74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김부자 우상화 논리인 혁명적 수령관에 결부시키며 김부자 독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자 사상적 갈등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는 자신이 본래 구상했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이론적 오류와 현실적 한계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음.이와 함께 북한공산체제로는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기약할 수 없다는 확신하에 보다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심을 포지해 왔으며 더우기 국내 입국 이후 남한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면서부터는 북한공산체제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확신과 함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실패를 자인하고 있음 결론적으로 황장엽은 북한공산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체제인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동안 주체사상을 통해 김부자 체제보위에 앞장서 온데 대해 깊은 자책감을 느끼고 있어 더 이상 사상전향 여부를 논할 필요는 없음. ■‘황장엽 리스트’문제 황장엽이 “북한의 지하조직이 상당수 남한에 침투해 있으며 남한내부동향에 대한 보고서가 김정일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남한에 고정간첩 5만여명이 암약하고 있다”든가 “이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말은 누구에게도 언급한 바가 없는 것으로 일단 확인되었으며 조사과정에서 이른바 ‘리스트’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았음. 그러나 황장엽은 대남 공작부서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오랜세월동안 북한 고위층의 지위에 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대남공작관련 사항과 평양 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들에 대해 진술한 바 있음. 이에 따라 안기부는 황장엽의 이러한 진술내용과 관계당국에 존안된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중에 있으며 그 결과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 법적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Ⅳ

    ◎외세개입 없을땐 100% 적화통일 가능/나진·선봉에 남한기업 투자 원치 않아 ▷북한 대외관계◁ ○외교정책·전략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김정일 비준 ④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음.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 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김정일을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음.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70.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음.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음.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르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음.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연구소는 인도,불란서,페루,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중남미 지역 1만불,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음.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음. ○주요국과의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서 중국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바 있으며,대일관계 개선 목적은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불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음.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함.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불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음.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음.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수 없으며 빠찡코,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바 있음. ▷대남 및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통일전략(합작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은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계획을 수립,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음.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함. ○남북대화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회담목적은 연방제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북한에는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금강산 개발,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 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Ⅰ

    ◎산소 없애 생물 죽이는 ‘기화폭탄’개발 소문/남측 정정혼란때가 전쟁도발 최적기/김정일 전쟁명령 지휘체계 대폭 축소/‘전쟁나면 미국도 사정권’ 승리 장담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1)전쟁준비 관련사항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의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이 50% 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음.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음.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할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음.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믿을 것은 군대뿐이다.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음.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음.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음.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62.10 쿠바사태시 김일성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음. 김정일은 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음.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음. 63년 김일성을 수행,평강지구(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요새화가 되어 있었음.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음. 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음.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이었으며,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함.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 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있음. 중앙당 간부를 비롯,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음.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임.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68.1)·EC­121 격추사건(69.4)·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음.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쏠릴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함.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상황에서 믿을 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전략 전쟁지휘체계는 종래 ‘김일성→인민무력부장→총정치국장→총참모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음.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략전’전략에 입각,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것임.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롯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음.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음.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임. 김일성,“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 등으로 미항공모함을 몇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임.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북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있음. ○김정일의 군부장악정도 김정일은 최고사령관(91.2)과 국방위원장(93.4)에 취임,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지휘·정치·보위부) 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음. 총참모장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조명록(총정치국장),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음.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음.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했음. (2)군사력 증강 관련사항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기술을 도입하고 있지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동 희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정치국 상무위원,도당 책임비서,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 (3)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읍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때 NPT를 탈퇴(93·3)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듬.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너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시기하고 있음.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4)대남 군사태도 ○대한국·주한미군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4위 수준이며,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신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 함으로써 미군도 이길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 스피리트훈련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잔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을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
  • 그룹계열사 회장실·기조실 규제/재경원,내년부터

    ◎자금·인원 등 지원 한도 설정 빠르면 내년부터 그룹 계열사의 회장실 및 그룹 기획조정실에 대한 자금지원이 제한된다. 6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내년에 법인세법 개정을 통해 그룹 계열사가 회장실 및 기획조정실에 지원하는 자금의 한도를 설정하기 위해 ‘공동경비기준(가칭)’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중이다.또 법인세법상 ‘업무추진과 관련된 경비’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 회장실 등에 지원되는 자금을 멋대로 비용처리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그룹 계열사들이 아무런 기준조차 없이 법적 실체가 없는 회장실 및 기획조정실에 대규모 자금과 인원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전년도 매출액이나 순이익 등을 근거로 기준을 정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 미성년자에 소주 판매/슈퍼마켓 주인 첫 입건/청소년보호법 적용

    지난 1일부터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된 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슈퍼마킷 주인이 처음으로 청소년보호법 위반혐의로 입건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4일 김성환씨(37·강동구 천호3동)를 청소년보호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2일 하오 8시쯤 서울 강동구 천호3동 108 자신이 운영하는 한마음 슈퍼에서 미성년자인 김모군(17·서울 S고 1년) 등 2명에게 2홉짜리 소주 10병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개정된 청소년 보호법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술 담배 부탄가스 등을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 1등이라 해서 다 좋은건 아니고(박갑천 칼럼)

    좋은뜻의 겨룸에서 1등 마다할 사람 있겠는가.선거·운동경기·바둑·학업·국가고시…,뭐가 됐든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런 사람마음.옛선비들이라 해서 다를것 없는 욕망이었다. 나중에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남곤이 과거에 급제하여 광화문밖으로 나가는데 누군가가 불러세워서 갔더니 그는 말한다.“자네 장원 못한걸 유감으로 생각하나? 중국서는 소동파가,우리나라에선 내가 2등으로 합격했으니 자네도 너무 고깝게 생각말게”.종을 시켜 알아봤더니 그는 탁영 김일손이었다.탁영은 장원 못한것을 분하게 여겨오던 터에 2등 합격한 남곤을 만나 평소의 불평을 터뜨렸다는 것이‘기문총화’의 해석이다. 하나밖에 없는 1등.수많은 학생들도 반에서 학년에서 그 1등을 위해 걸쌈스레 공부한다.그러다가 그걸 이루었을때의 기쁨은 클수밖에 없다.더구나 너나없이 ‘일류대학병’에 걸려있는 세태고 보면 더욱 그렇다.그런데 한 여고생은 대학이고 뭐고 관계없이 “1등일때 죽겠다”면서 목숨을 끊고 있다.1등의 영예를 영원히 안겠다는 뜻이었던 듯.어버이 가슴에 못박는데 1등되는 것임은 왜 몰랐던고. 사실 톺아오른 맨윗자리란 불안한 법.위는 없으니 떨어질 일밖엔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항용유회라 했다.항룡은 하늘끝까지 올라간 용으로 더는 올라갈 곳이 없어 오른걸 후회한다는 뜻이다.그렇게 떨어질 일밖에 없을때는 그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어린 여고생은 그 중압감을 못견뎌낸 것이리라. 지지라는 말이 있다.그쳐야 할곳을 안다는 뜻이다.“그쳐야 할곳을 알아 항상 그치고보면 평생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지지상지,종신무치:‘명심보감’).대체로 명예나 부의 추구를 두고 경계하는 말이다.하지만 잘나가는 터수에 그친다는게 쉽지 않다.더구나 학업에서야 어찌 그쳐야할 곳을 찾는다 할 일이겠는가.한데 우리의 여고생은 그걸 죽음에서 찾은점이 여간만 안타까운게 아니다.공부의 1등이 인생의 불명예1등 모습을 보인게 아닌가. 그래.세상에는 왜나간 불명예1등이라는 것도 있지.OECD회원국가 가운데서 우리나라가 그 불명예1등 차지하는게 많지 않던가.결핵사망자수·간암사망자수·교통사고 사망자수·난폭운전… 등등에서.이거야말로 그칠 곳을 알아야할 1등자리 아닌가 싶건만.〈칼럼니스트〉
  • 이데올로기가 빚은 인간단절과 희생/김채원 새 장편소설「달의 강」

    중견 여성작가 김채원씨(51)가 새 장편소설 ‘달의 강’(해냄)을 내놓았다.그의 작품세계는 줄거리나 인물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감각적 의식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여왔다.때문에 그의 작품은 심리묘사가 절제돼 있으며 하나의 간결한 소묘를 연상케 한다.‘달의 강’이라는 시적인 제목만 보면 이 소설은 ‘초록빛 모자’나 ‘봄의 환’ 혹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겨울의 환’ 등 이전 작품들이 풍기는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그러나 이 소설은 분단문제를 다룬 묵직한 작품이다.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이 낳은 인간 사이의 단절과 그것에 의해 희생된 인간을 그리는데 무게를 두었다.하지만 작가는 이처럼 거창한 주제를 특유의 미시적인 시각으로 섬세하게 소설공간에 녹여 놓는다. 이 소설은 50줄에 이른 주인공 ‘나’가 편지와 젊은 시절 써놓았던 노트를 통해 되살리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동경에서 만난 재일 북한인 하자와의 에피소드와 파리유학 시절 만난 재불화가 운무선생에 얽힌 일이 이야기의 줄기를 이룬다.작가는“분단은 내게 생래적인 통증”이라는 말로 앞으로도 계속 분단소설에 관심을 기울일 작정임을 밝혔다.
  • “동해지진 진앙은 내륙”/기상청 수정발표

    ◎양산단층대… 원전안전 우려 과학기술처와 기상청은 지난달 28일 포항 남동쪽 동해에서 발생한 것으로 발표됐던 지진의 진앙지가 내륙인 경주 남동쪽 약 6㎞지점(북위 35.8도,동경129.3도)이라고 2일 수정 발표했다. 이번에 수정된 진앙지는 활성 논란이 일고있는 양산단층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양산단층대 인근에 있는 고리·월성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안전진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상청은 이날 “세밀한 관측망을 가진 한국자원연구소의 자료를 받아 종합해본 결과 지난달 28일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가 당초 계산한 포항 남동쪽 동해상 해역이 아니라 경주 남동쪽 내륙으로 확인됐다”면서 “현재 사용중인 장비가 78년도에 도입된 아날로그형 구식 장비이기 때문에 오차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지진 발생 당일에도 진앙지를 강원도 동해시 북동쪽 67㎞로 통보했다가 기계 오작동을 이유로 포항 남동쪽 94㎞로 수정 발표했었다.
  • 샌들·선글라스/여름사냥 ‘2S’가 떴다

    □샌들 ·로마병정풍 독특한 스타일 ·착용 간편… 발목보호 기능도 □선글라스 ·테 곡선처리 ‘스포츠형’ 인기 ·얼굴에 밀착… 활동성 뛰어나 「스포츠가 좋다」 최근 개성적인 모습을 연출하려는 젊은이들 사이에 스포츠 선글라스와 스포츠 샌들 등 스포츠 기능을 강화한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포츠 선글라스란 스키용 고글이나 물속에서 쓰는 수경처럼 렌즈가 휘어져 있어 썼을때 눈이 다소 튀어나와 보인다.운동경기때 시각적인 장애를 막아주고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든 것을 상품화한 것이다.선글라스테 부분도 곡선형으로 얼굴에 밀착되기 때문에 격렬한 움직임과 땀에도 잘 흘러내리지 않는다.멋내기 소품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실제로 라켓볼,스쿼시 등의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애용하고 있다. 레포츠 샌들은 하이킹,래프팅,가벼운 등산 등 여름나기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중세 로마병정들이 신고 다녔던 디자인과 모양을 살려 독특하면서도 품위있게 만든 레포츠 샌들은 착용이 간편하고 활동이 자유로우며 발목보호 기능까지 지니고 있어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또 정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차림에나 잘 어울려 외출때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발목부분을 완전히 감싸주는 발목보호 기능의 디자인과 여성용으로 굽을 약간 높게 한 디자인 등 기능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레포츠 샌들이 나와 있다.
  • 부채에 땀이 배어야 “시원”/태극선 1인자 조충익씨

    ◎살 가늘고 견고… 태극천 겹치지 말아야/특수접착제 사용… 장마철 곰팡이 안슬어 “태극선 만큼 우리를 잘 나타내는 상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년 가까이 전주에서 태극선을 만들어온 조충익씨(50)의 전통부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부채는 손으로 연신 흔들어대는 것이어서 정성을 들여서 만들지 않으면 며칠 못가 망가지고 맙니다.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죠” 조씨는 요즘 전북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전주죽세공예협동화단지내 10여평의 작업실에서 ‘천연 손풍기’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국내 태극선제작의 1인자로 손꼽히는 그가 지금까지 제작해온 부채는 아동선 금선 대금선 파초선 중원선 등 20여종이 넘는다.일반부채보다 살이 3배쯤 많은 250살짜리 세미선은 태극선 제조기법의 최고봉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태극선의 특징은 부채살에 오려붙인 태극선의 태극무늬천이 전혀 겹치지않아 전체가 마치 한장으로 보이는 것이 조씨의 빼어난 솜씨다.특히 자신이 고안한 특별접착제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마철에도 곰팡이가 슬거나 변질되지 않고 부채살이 가늘어도 매우 견고하다.이 때문에 그의 태극선은 해외에서도 알아준다.각종 운동경기대회에서 응원단이 한국을 상징하기 위해 흔드는 태극선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간 것들이다.
  • 독립운동가 김국환옹 별세

    독립운동가 김국환옹(80)이 29일 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함북 정평이 고향인 김옹은 1937년 일본 동경에서 유학할 때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며 43년 함흥에서 항일투쟁을 펼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유족은 서봉쇠 여사(71)와 1남2녀.발인은 3일 보훈병원 영안실,장지는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02)475­7499.
  • D­1/홍콩인 마지막 하루(홍콩 주권반환:12·끝)

    ◎“크게 바뀔것 없다” 시민들 차분/가족과 외식 등 평소와 똑같은 생활/주권반환보다 연휴에 더 깊은 관심 홍콩에 있는 야마타니 무역화시 부장인 홍콩인 보슈시(36)씨는 29일 아침 7시에 일어났다.29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마지막 이틀째 날이지만 그는 다른 날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홍콩 반환을 의식하지 않고 하루생활을 시작했다. 상오 8시쯤 아침을 먹고 10시쯤 집을 나왔다.29일 휴일이지만 일본에서 온 고객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그는 일본 고객을 데리고 홍콩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일본 고객과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후 하오 4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외식을 하기 위해 하오 6시쯤 부인과 어린 두딸을 데리고 다시 집을 나왔다.그는 홍콩 중심가 완차이에 많은 빌딩에 장식된 홍콩 반환 경축 불빛을 보고야 바로 눈앞에 다가온 홍콩 반환을 의식했다.그는 화려한 경축 장식이 붙어있는 건물옆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후 딸에게 옷을 사주기 위해 옷가게로 갔다. ○경축장식 본뒤 「반환」의식 그러나 옷이 맘에 들지 않아 사지 않았따.딸들은 엄마와 아빠 손을 이끌며 옷을 사달라고 졸랐지만 그는 딸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그대신 옆에 있는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줬다.딸들은 옷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 듯했다. 옷을 사달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그는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즐긴뒤 하어 9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목욕을 한후 텔레비전을 켰다.텔레비전에서는 오늘 있었던 여러가지 반환관련 행사가 나왔다.그러나 그는 홍콩반환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이틀 앞으로 다가온 영국지배 아래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의 잠자리에 들었다.그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영국인 건축가 셀리 셔(32)씨도 29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7시쯤 일어났다.그도 29일이 홍콩 반환전 마지막 날이라는 의식은 별로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휴일이라 상오를 집에서 보냈다.그러나 하오 2시쯤 그가 돌보는 필리핀 어린이와 함께 영국의 고별식이 열리는 빅토리아항의 이스트 타마르해변가로 갔다.이스트 타마르에서는고별식 준비를 위한 마지막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는 잠시 영국이 떠난 후의 홍콩을 생각했다.그에게 홍콩반환은 결코 좋은 뉴스는 아니었다.영국이 언제까지 홍콩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영국이 떠난 홍콩에서의 생활이 걱정됐다.그는 앞으로 6개월후 영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필리핀 어린이와 함꼐 하오 5시쯤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하오 7시쯤 저녁을 먹었다.그는 잠시 텔레비전을 끈후 건축 관련 책을 읽었다.밤 11시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곧 잠이 들지 않았다. 홍콩 중심가 완차이에 있는 「서데인 운동장」에는 29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구와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스탠드와 농구장 옆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보고 있었따.그들은 내일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채 운동경기와 관람에 열중하고 있는 것같았다.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홍콩반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겉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역사적인 홍콩 반환 취재를 위해 세계에서 8천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와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들에게 닥친 변화를 별로 개의치 않는 것같았다. ○농구·축구경기에 열중 공무원인 데니스 라이(34)씨는 『거리에서는 경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홍콩 반환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생활한다』고 말했따.그는 『운동장에서 농구나 축구에만 열중하는 저사람들의 표정에서 홍콩반환을 의식하고 있음을 읽을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그는 『29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해외애서 즐기기 위해 수많은 홍콩인들이 해외여행을 떠났다』며 『그들은 홍콩반환보다 홍콩반환 때문에 만들어진 연휴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조선족의 농어업(송화강 5천리:30)

    ◎목단강유역 벌판서 중국 으뜸쌀 생산/무공해 무오염 무화학비료 3무의 향수미 일품/발해시대 「왕의 밥」 호칭,60년대엔 모택동 밥상에/강유역 칠색송어 양식장 즐비… 어업도 날로 번창 조선족의 농·어업 기술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가는 열차가 있다.그러니까 두만강변에서 출발한 열차가 얼마동안 북쪽으로 가다가 흑룡강지류 목단강을 만나 강과 어깨동무하는 철도인 것이다.이 열차가 발해의 옛 도읍지 상경용천부 땅인 동경성을 지나고 나서 한참 달리다 보면 강가 벼랑에 돌계단이 나타난다.발해왕과 후비사이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돌계단은 제법 가팔랐다. 그 옛날 발해왕이 왕비를 잃고 어떤 인연이 되어 어부의 딸을 후비로 맞았다.목단강에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했던 어부는 왕을 사위로 삼고나서도 고기잡이를 고집했다.그런데 고기잡이를 하러 다니는 길이 바위벼랑이라서 늘 위험이 뒤따랐다.왕은 보다못해 벼랑에 계단을 내어 어부인 장인이 편하게 다니도록 배려했다.왕비도 백성을 잘 먹게 하고 잘 입히려면 자기부터 일을 해야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 길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은 부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바위벼랑 근처에 뽕나무를 심어주었다.그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돌계단과 뽕나무밭이 아직도 강가에 남아있다.전설이기는 하나 어부와 그 딸인 왕비의 근면성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고나 할까.어떻든 오늘날 목단강유역에 사는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으뜸가는 향수쌀을 생산하게 되었다.향수는 발해진의 한 조선족촌이다.주변을 흐르는 목단강의 여울물소리가 유난히 울린다고해서 향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향수촌을 중심으로 영안일대에서 생산한 이 입쌀은 1992년 제1차 농업박람회에 이어 1993년 제2차 농업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그래서「동경성표」로 이름난 향수입쌀은 나라가 베푸는 잔치용 쌀이 되었다.「영안현지」를 보면 「노주의 쌀은 공미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발해시대의 노주는 향수였다는 것이다.어떤 학자는 길림성 화룡시 서고성일대를 노주로 보고 있다.쟁론이야 어떻든 명나라 조정은 동경성 언저리를황제의 식량생산지인 황량구로 지정한 사실은 돌아볼만한 일이 아닌가한다. ○발해시대 황량구 그러나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이들 쌀주산지도 인적이 끊긴 봉금구가 되었다.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결에 흔들릴뿐 사람 그림자가 얼씬도 하지 않았던 향수일대에 벼꽃은 언제 다시 피었을까.「영안현지」는 1916년 조선족이 서련화포에서 벼농사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조선족들은 오늘의 발해진 향수,강서 일대에 논을 만들고 물을 끌어 벼농사를 지었다」고 기록했다.그리고 7년후인 1923년에는 영안현내 논은 4천683㏊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향수입쌀은 독특한 지질환경에서 수확되었다.논바닥밑에는 화산이 폭발할때 흘러들어온 용암이 10㎝ 정도가 깔려있다.그리고 토층이 얕기때문에 용암이 열을 잘 받아들여 벼의 생육을 한껏 돕게 된다는 것이다.또 청정한 경박호물이 이 지역을 지나면서 수온이 올라가 역시 벼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그래서 쌀알이 고르고 윤기가 흘렀다.밥을 지어놓으면 찹쌀처럼 끈기가 있는데다 향기마저 풍겼다. 발해시대 「왕의 밥」으로 호칭되었던 향수입쌀은 1960년대 들어 모택동의 밥상에 올랐다.공량미가 몽땅 북경으로 반출되었다.그럼에도 생산자들에게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개혁개방이 이루어진 이후 비로소 상품가치가 인정되어 농민들에게 부유한 삶을 안겨주었다.향수입쌀은 향수촌만이 아니라 발해진 전역에서 나오는 쌀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발해진 전체의 경작면적 7천㏊가운데 논이 5천㏊다.1㏊당 생산량도 7천500∼8천㎏에 이르고 있다.향수촌의 경우 40가구만이 한족이고 나머지 160가구는 조선족이다.말하자면 벼농사기술자라 할 수 있는 조선족판인 것이다.그런 탓에 다른 지역 입쌀보다 앉은 자리에서 3.75g당 20전을 더 받는다.향수촌의 임을선씨(41)는 지난해 5㏊의 논에서 4만원의 순수입을 올렸다.이웃 강서촌의 이성일씨(41)는 지난해 0.6㏊에 불과한 논에서 자그마치 8천원의 수익을 올렸다.1㎏당 6원이나 하는 검은 입쌀 흑향미를 재배했기 때문이다. 향수촌과 벼농사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강서촌은 403가구가 사는 농촌마을이다.조선족은 353가구인데 거의가 벽돌집에 살고있다.수돗물이 집집마다 넘치고 모두가 텔레비전을 갖추고 유선방송까지 시청했다.유선TV에서는 한국과 북한,연변 등지의 프로가 방영되었다.그런데 마을주민인 조순애씨(37)는 한국 KBS의 「가요무대」를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꼽았다.그렇듯 「가요무대」는 중국 동북3성 조선족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목단강유역의 벼농사가 벌떡 일어서면서 쌀가공업도 기업화하고 있다.한국의 효림이라는 기업이 들어와 영안시 종묘회사와 합작으로 경박호알곡제품유한회사를 세웠다.이를 효시로 15개의 가공공장이 들어섰다.향수입쌀의 특징을 말할때 흔히 삼무라고 하는데,그것은 무공해,무오염,무화학비료다.아름다운 경박호를 낀 100리 벌판에서 두엄만으로 벼농사를 짓고있으니까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목단강유역은 농업 못지않게 어업도 번창했다.저 유명한 한반도 산골물에서만 사는 칠색송어까지 인공사육하고 있다.강원도 두류산 골짜기에 서식한다는 칠색송어는 사철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하천을 좋아하는 물고기라는것이다.목단강유역은 그런 조건을 갖추어 1초마다 1t 이상의 샘물이 솟고 여름에도 16도 이상 수온이 올라가지 않는 지점이 많았다.그래서 규격화한 칠색송어양식장들이 강가에 즐비했다.칠색송어는 지렁이와 풀이 먹이인지라,이들 먹이 역시 자연산으로 충당되었다. ○1㏊당 8천㎏ 생산 칠색송어가 목단강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59년 주은래수상의 북한방문때 일이다.주은래수상이 칠색송어를 맛있게 드는 것을 보고 김일성이 새끼 6천마리와 알 5만개를 선물했다는 것이다.이들 강원도 송어는 흑룡강성 양어연구원이 인수한 후 동경성 발해궁터 15리밖 구룡천마을앞에 양식장을 차렸다.그러나 양식장을 넘겨받은 칠색송어개발회사가 1995년 4월까지 3백40여만원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런 위기에서 칠색송어를 살려낸 사람은 동북농업대학 출신의 김광현씨(31)다.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양식장에 배치되었던 그는 회사를 떠맡았다.1991년 일본 북해도립수산부화장에 가서 6개월동안 연수하면서 칠색송어양식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그가 귀국한 뒤에는양식장이 제대로 돌아가 칠색송어가 북경을 비롯한 큰도시로 연간 7만5천㎏이 반출되고 있다.양식장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김광현씨는 이제 한숨을 돌리고 칠색송어 양식업의 장래를 낙관했다. 『이 고기는 희귀어종이라 원가가 높디요.그런데 막상 회사가 파산하니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데다.제가 대들었디요.자신이 있었으니까 뛰어든 것입네다.양식장 주변에 경박호라는 관광지가 자리했다는 지리적 여건을 고려해서 칠색송어양식을 관광항목으로 개발한 것이 주효했디요.낚시질 상품은 물론 동서양 각종 요리로도 개발했던 것입네다.지금은 전국 주문량이 늘어나 없어서 못 팔디요』
  • 장마 “주춤”… 태풍 “북상”/기상청

    ◎남해안 내일 영향력… 주말 또 큰비/남해 298㎜ 등 이틀폭우에 농지 8,700㏊ 침수/관광버스 추락·고속도서 추돌 등 윤화 잇따라 경남 남해가 최고 297㎜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25·26일 이틀동안 전국에 내린 집중호우로 도로와 철도,농경지 등이 침수되고 항공기와 연안여객선의 운항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그러나 26일 하오부터 장마전선의 세력이 약화됨에 따라 강원 호남 및 영남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를 해제했다. 하지만 제8호 태풍 피터가 주말인 28일 남해안에 영향을 미치고 29일부터는 장마전선이 활발하게 움직여 또다시 큰 비가 내릴 전망이다. 기상청은 『장마전선이 대만 동쪽해상에서 접근하는 제8호 태풍 피터의 영향으로 세력이 약화돼 27·28일에는 소강상태를 보인뒤 29일부터 다시 활성화돼 이달말까지 또 한차례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7일에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10∼30㎜의 비가 내릴 전망이다. 이번 집중호우로 26일 하오7시 현재 강수량은 밀양 277 여수 255.4 마산 225 울산 165.9 보령 163 장흥 158 부산 119.7 대구 128.7 수원 104.2 광주 84.7 대전 138.6 원주 127.5㎜이다.서울의 강수량은 82.1㎜를 기록했다. 태풍 피터는 이날 낮 12시 현재 대만 남동쪽 약 550㎞ 해상(북위 21.4도 동경 126.6도)에서 한시간에 10㎞의 느린 속도로 북북서진중이다.기상청은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25m,중심기압이 985헥토파스칼(hPa)로 중형 태풍에 속하며 28일 하오부터 우리나라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예보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경남 밀양시 밀양댐 광역상수도 공사현장에서 이날 상오 인부 12명이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가 4시간만에 구조되는 등 3개 지역에서 39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대구시 북구 매천동에서는 지하다방 주인 김갑순씨(44·여·대구 북구 매천동)가 숨졌다.김씨는 이날 하오 1시30분쯤 물에 잠긴 다방에 소지품을 꺼내려고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또 경전선 덕산∼창원 사이의 철도 20m가 상오 6시20분쯤 돌에 묻혔다가 3시간10분만에 복구되는 등 전라선·경전선의 3개 구간이 한때 두절됐고 김해 여수 울산 진주 속초 등 5개 노선의 항공편과 76개 항로 연항여객선 91척의 운항이 중단됐다. 주택 상가 14채,농경지 5천883㏊도 침수됐다. 이날 내린 호우로 휴가장병을 태운 관광버스가 짙은 안개속에서 빗길을 달리다 북한강변으로 추락하는 등 빗길 교통사고가 잇따라 하룻동안 10여명 숨지거나 실종됐고 40여명이 다쳤다. 하오 1시2분쯤 춘천시 서면 덕두원 2리 등선폭포 부근 경춘국도에서 보람관광 소속 강원 74바 7014호 버스(운전사 김성문 29)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20m 아래 북한강변으로 추락했다.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양구 백두산부대 소속 권오성 병장이 숨지고 운전사 김씨와 남만우 병장 등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 하오 4시쯤에는 울산시 울주구 상남면 상천리 경부곳도로 상행선(서울기점 391.5㎞지점)에서 경남72 바2811호 태평양관광버스(운전사 장영천·52)가 부산90 아8028호 11t 화물트럭(운전사 김용암·52)의 뒷부분을 들이받아 장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일본인 관광객 사카모토씨(55·남)등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동해 규모 40 지진/어제 포항근해서… 올 최대

    26일 새벽 올들어 가장 센 규모 4.0의 지진이 동해에서 발생,강원·영남 동해안과 충청내륙 일부지방에 영향을 미쳤다. 올들어 12번째로 상오 3시50분에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는 경북 포항시 남동쪽 94㎞ 해역(북위 35.7도 동경 130.3도)이다.
  • 한국 도시의 현주소/이규황 삼성경제연 부사장(굄돌)

    농촌사회가 주종을 이루던 시대에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그러나 산업사회에서의 도시는 현대인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또 국제화와 지방화가 병행하는 무한경쟁의 현대에는 국가경쟁력은 도시의 경쟁력에 많이 의존한다. 국제적인 규범과 시스템에 부합되는 금융·자본시장을 구비하고 값싸고 질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도시만이 커지고 다변화된다.따라서 도시의 경쟁력 강화는 개별도시의 문제라기보다 국가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과제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세계 16개국 30개 도시에 대하여 경제여건·삶의 질·시민의식 등 3부문 64가지를 변수로 삼아 도시의 경쟁력을 분석하였다. 국내도시로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이 포함되었다.종합적으로 볼때 국내도시들은 최하위권에 속한다.서울은 종합평가에서 19위,삶의 질만 본다면 30위로 최하위이다.시민의식은 23위 이내이나 경제여건이나 삶의 질은 나쁘다.특히 국내도시들은 경제수준과 삶의 질 수준이 서로 반비례한다. 국내 주요도시들의 개발정책의 모양새를 시사해준다.그러나 워싱턴 파리 동경 등 주요 선진도시들은 경제수준도 높고 삶도 풍요롭다. 우리 도시들은 경영환경이나 도시기반의 공급,국제화의 정도에서도 경쟁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 도시들도 이제는 선진화되어야 한다.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지역에 맞는 산업을 발전시키면서도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환경과 조화된 도시개발을 추구하여야 한다.도로,상하수도 등도 확충하고 정보화시대에 맞는 네트워크도 구축하여야 한다. 또 도시민들이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어야 한다.그리하여 문화와 경제,시설이 조화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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