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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정임 “소문겁나 친정 못와”

    남정임 “소문겁나 친정 못와”

    “그녀는 지금 일본땅에서 사기당한 결혼을 후회하며 가련하게 울고있다” 풍설(風設)에 “내눈으로 잘사는 것 보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 고소하겠다”는 어머니 『엄마, 한국가는 것 중지했어.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야』일본으로 건너간 은퇴「스타」남정임(南貞姙)이 최근 그의 어머니한테 보낸 편지 한토막이다. 『남정임이 은막에「컴·백」한다』『가정불화로 이혼할 것 같다』심지어『이미 한국에 잠입했다』는 등 영화계 안팎에 떠돌고 있는 뒤숭숭한 풍설, 그 진상은? 지난 1월 11일 재일교포 임방광씨와 결혼한 남정임은 6월 13일, 그의 신랑을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랑은「동여상사(東與商社)」라는 무역회사를 갖고있는 교포재벌 임원오(林 源吾)씨의 둘째아들. 한때 5백억자산의 부잣집 며느리가 됐다고 모두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시집간지 채 10개월이 못되는 사이에 이 부러운 혼사에 찬물을 끼얹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요컨대, 남정임이 사기결혼을 당했다는 것. 5백억 재벌은 고사하고 5억도 없다는 소문. 수많은「빠찡꼬」장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신랑이란 사람이 남의「빠징꼬」집에서 지배인 노릇을 하고있다는 것. “잘 사는 것, 시기하는 소리” 신랑의 나이도 28살이 아니라 남정임보다 두살 아래인 24살이고 성질이 몹시 사납다는 등. 그래서 이따금 아내를 때려 어떤 사람은 남정임의 얼굴에 퍼런 멍이 가실날이 없다고 바로 목격자인듯 얘기하기도 했다. 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런 소문을 근거로 해서 남정임의 진퇴문제가 제2단계로 화제에 올랐다. 남정임이 시집살이를 감당해낼 것이냐는 문제인데 여기에는『남정임 은막복귀설』『남정임 한국잠입설』이 그럴싸하게 뒤따랐다.『그렇게 당한 마당에서 그 성질에 어떻게 되돌아올까?』『그래도 은막에 돌아오면 문희(文姬)도 은퇴했으니까 다시「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거야』- 영화가의 입들은 각각 제나름대로 추측하게 마련. 이런 뒷공론은 우선 남정임이 결혼에 실패했다는 전제위에서 이뤄진건 물론. 남정임이 사기결혼을 당했다는게 사실일까? 그녀는 지금 일본땅에서 결혼을 후회하면서 가련하게 울고 있는 것일까? 얼마전 딸의 집에 가서 2개월동안 머물다 돌아온 남정임의 어머니 김순희(金順姬)씨는 이런 소문에 분함을 참지 못하는듯 펄펄 뛰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왔는데 누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불길한 소문을 퍼뜨리는 지 알 수 없다』 남정임의 소문을 다룬 한 주간지를 고소하겠다고 고소장을 내밀었다. 자신이 고소인으로 된 고소장의 내용은『고소인의 딸 남정임은 동경도(東京都) 천대전구(千代田區) 5번지10의4 임방광과 결혼하여 현재 누구보다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고있다. 터무니 없는 기사를 내어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여사한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 그가 말하는 딸의 근황은 다음과 같다. 『정임은 지금「니혼TV」옆「지요다구」에 있는 3층집에서 신랑. 두 시동생과 행복하게 살고있다. 집은 옥상에「풀」이 있는 호화저택으로 시아버지가 장만해준 것이다. 주말이면 2,3일간의 주말여행을 꼭 떠난다. 10월 9일엔 북해도(北海道)와「하와이」까지 2주간의 여행을 하고왔다. 신랑 임씨는 아버지회사인「동여상사」의 부사장 격인데「가와사끼」「아까사까」「신주꾸」등에 갖고있는 여러 개의「빠찡꼬」집은 남에게 맡겨서 경영하고 있다. 신랑이 때린다는 것 터무니없는 소리다. 사이가 퍽좋고 시부모한테도 얼마나 귀여움을 받고있는데』 “새 자동차 샀단 편지봐요”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남정임과 그의 남편이 보내온 9월 27일자의 편지가 제시됐다. 먼저 남정임의 사연. -엄마가 다녀간 후로 일본에는 매일 비가 오고있어, 골치아플정도로. 한국은 어떤지, 우리들 소식은, 그리고 엄마생활은, 엄마가 떠난지 며칠은 너무나 쓸쓸했어. 지금은 다른데 신경쓰기 때문에 잊어버렸어- -한국에 가는 것은 잠깐「스톱」했어. 이상한 소문때문이야. 엄마 우리걱정은 하지말고 엄마 건강에 주의하세요. 자동차 새로 바꿨어.「머큐리·큐」가 큰 것, 미제로. 다음 한국 갈 때 갖고가 엄마 태워줄게-. 영어사전과 한영사전 좀 부쳐주어요- 신랑 임방광씨가 장모한테 보내온 편지는「어머니」란 호칭이외는 모두 일어로 쓰여졌다. -요즘 너무 바빠서 민자(敏子)(남정임의 본명)가 쓸쓸해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1주일에 2,3 회는 꼭「서비스」해요. 주로 영화구경,「쇼핑」. 이따금 싸우지만 우리들은 아주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시간있으신대로 편지 자주 주세요- 한편 본지는 남정임의 요즘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10월 15일 그의 집(지요다구 262-4893번)으로 국제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는 가도 받는 사람이 없어 통화가 되지 않았다. 낮에는 시댁에 많이 가있기 때문일거라는게 남정임 어머니의 관측. 그러면 남정임은 그의 편지내용대로 이상한 소문 때문에 한국에 오지 않을 것 인지? 당초 그녀는 결혼전에 촬영중단한 2편의 영화『은내골 설야(雪夜)』『빗속에 찾아온 여인(女人)』을 끝내주기 위해 10월중순 귀국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 기회에 그녀의 은퇴기념작인『첫정』의 속편을 만든다는 계획이 한편에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이상한 소문」때문에 기분나빠서 당분간은 오지 않겠다는 뜻. 『도대체 왜 그런 소문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일단 은퇴하고 시집가면 말썽도 끝나는 줄 알았는데』 딸의 귀국을 기다리는 어머니 김순희씨의 원망섞인 푸념. 재일교포 5백억 자산가라는 발표가 조금은 호들갑스런 느낌도 없지 않았던 혼인이었기에 그 반작용에서 오는 메아리도 그만큼 큰것같다. <관(觀)> [선데이서울 71년 10월 24일호 제4권 42호 통권 제 159호]
  • [부고]

    황성준(황성준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씨 별세 선아(이화여대 간호과대학 BK21)경아(삼일회계법인 회계사)선영(서울아산병원 외과계중환자실2 간호사)씨 부친상 이동우(가평군 하면보건지소 공중보건의)씨 빙부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92 설동원(전 한남대 과장)동호(한밭대 총장)동승(대전시 시설관리공단 감사실장)동수(탑푸드 대표)씨 부친상 2일 대전 건양대병원, 발인 6일 오전 9시 (042)544-4631 신상호(한의사)씨 별세 동엽(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순희(대구 신소아과 원장)성희(뉴욕시립대 교수)씨 부친상 이성헌(제일의원 원장)김재일(선진회계법인 대표)씨 빙부상 2일 대구 동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53)250-8142 우석제(중소기업진흥공단 부장)범제(우리서비스네트워크 팀장)씨 부친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 (02)3010-2265 김운선(안산공과대 관광정보학과 교수)씨 별세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6시30분 (02)3010-2252 김정호(사업)강호(법무법인 로고스 차장)명수(해원MSC 대표)씨 모친상 이중일(농업)씨 빙모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2)3010-2232 김광호(충청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양호(사업)수영(스냅토이즈 대표)영아(하남 창우초 교사)씨 모친상 신상준(사업)표대종(〃)김서중(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차장)씨 빙모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91 안영균(전 강동경찰서 경무과장)서지화(국가원로 국정자문회의 사무총장)윤명중(전 현대하이스코 회장·전 글로비스 부회장)씨 빙모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010-2295 최우정(트리니티 원장)씨 부친상 김태훈(서울정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7시30분 (02)3010-2262 전규언(대구신문 문경주재 부국장)씨 빙모상 3일 함창 중앙장례식장, 발인 5일 오전 9시 (054)541-4477 윤종웅(외환은행 인사운용부장)종호(서울아산병원 내분비외과 조교수)씨 부친상 김호성(GS홈쇼핑 상무)씨 빙부상 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5일 오전 8시 (02)3010-2293
  • 中 쓰촨성 진도 6.1 또 지진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쓰촨(四川)성 멘양(綿陽)시 핑우(平武)현과 베이촨(北川) 창족 자치현의 경계 지역에서 1일 오후 4시32분쯤 규모 6.1의 지진이 일어났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국가지진국이 북위 32.1도, 동경 104.7도 지점의 지하 20㎞에서 발생한 지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밝히지 않았다. 쓰촨성에서는 지난 5월 12일부터 진도 8 규모의 강진과 여진이 잇달아 수만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에 따라 베이징올림픽을 코앞에 둔 중국에서 지진 공포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한편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7만명 가까이 숨진 쓰촨 대지진의 진앙지 인근인 멘양에서 북쪽으로 69㎞ 떨어진 곳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jj@seoul.co.kr
  • 섬뜩한 여고생들

    동급생을 다섯 시간 동안 끌고 다니며 마구 때리고 돈을 뜯은 것도 모자라 변기물까지 마시도록 강요한 섬뜩한 여고생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31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모 고교 1학년 박모(17)양과 신모(16)양을 구속하고 다른 박모(16)양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함께 등교하길 꺼린다는 이유로 동급생 김모양을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도봉구와 성동구의 상가 화장실 등지로 끌고 다니며 마구 때리고 변기에 고인 물을 손으로 떠 마시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31일 타계한 이청준의 삶과 문학

    31일 타계한 이청준의 삶과 문학

    31일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씨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지성파 작가로 꼽힌다. 장편 ‘당신들의 천국’, 단편 ‘벌레이야기’ 등의 작품에서 보듯 그는 40여년 문단생활 동안 인간 존재의 의미를 특유의 성찰적 시선으로 천착해왔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한국 현대소설사를 가장 빛낸 대표적인 ‘지성 작가’로 이청준 선생을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39년 전남 장흥군 대덕면(현 회진면) 진목리에서 태어난 작가의 어린 시절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여섯살 때 세살짜리 아우를 홍역으로, 반년 뒤에는 형을 결핵으로 떠나보냈다. 그 이듬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같은 불행은 훗날 더없는 문학적 자양이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두운 다락방에서 형이 남긴 소설책과 메모, 독후감 등을 읽으며 죽은 형과 ‘영혼의 대화’를 나눴다. 이때 죽음이 결코 죽은 자와의 관계를 끊어놓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형을 대신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끝간데를 모르는 지성의 저력 광주서중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나 ‘대처(大處)’로 나오게 된 작가는 도회(都會)에 대한 동경과 절망의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됐다. 이는 그가 문학청년이 되는 동기가 됐다.“도회지의 현실에 끼어들지 못하니 문학으로라도 끼어들고 싶어 문학에 정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청준의 문학 세계는 여느 작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다양하다. 토속적 민간신앙에서부터 산업화사회의 인간 소외, 언어에 대한 탐색, 예술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쏟아낸 지성의 저력은 끝간 데를 모른다.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어떤 주제든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고인은 작가로서의 직업의식이나 지성으로서의 작가 의식에서나 괄목할 만한 저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청준 문학의 뿌리이자 키워드는 고향과 어머니다.‘눈길’ ‘새가 운들’ ‘연’ ‘빗새 이야기’ ‘축제’ 등 많은 작품들은 바로 ‘망향가’이자 ‘사모곡’에 다름 아니다. 일찍 아버지를 떠나보내 어머니로부터의 곡진한 모정을 한층 절실히 느끼게 된 작가는 산문 ‘이 나이의 빚꾸러미’에서 “내 삶과 문학에 대한 은혜를 따지면야 그 삶을 주고 길러준 고향과 그 고향의 얼굴이라 할 어머니를 앞설 자리가 없다.”고 고백했다. 심정섭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는 이청준에 대해 쓴 글에서 “그가 판소리와 남도창을 좋아하는 것은 애초부터 고향의 땅과 밭두렁 논두렁에 맺은 약속으로 인해 이뤄진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하면서 곧바로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경험한 만큼 그의 초기작품에는 자유와 절망의 긴장감이 넘친다.4·19혁명에서 자유의 단초를 봤다면,5·16쿠데타에서 절망의 현실을 경험한 셈. 그런 맥락에서 ‘퇴원’ ‘병신과 머저리’ ‘매잡이’ 같은 작품은 정치의식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대신 그의 작품은 환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상처를 위무하는 쪽으로 기운다. ●‘서편제´ 등 영화화… 대중과 더 가까이 작가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전통적 장인의 세계를 파고들기 시작, 판소리의 세계를 서사화한다. 현실의 한을 소리로 풀어낸 ‘남도사람’ 연작과 ‘선학동 나그네’ ‘서편제’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울러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담론으로서의 소설’을 선보이기도 한다. 말과 현실이 어긋나고 안과 밖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현실을 형상화한 ‘언어사회학서설’ 연작과 ‘당신들의 천국’ 등이 그런 경향을 대표한다. 이청준의 ‘난해한’ 문학은 영화 등 예술과 손을 잡으며 독서 대중과의 괴리감을 메워준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천년학’(원작 ‘선학동 나그네’) ‘축제’와 이창동 감독의 ‘밀양’(원작 ‘벌레이야기’) 등으로 문학에 ‘손방’인 사람들까지도 문학의 세계로 이끌어낸다. 평소 가깝게 지낸 임권택 감독은 “너무나 소중한 분을 잃었다. 속상해서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다. 가슴 아프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 여러 작품에서 공동 작업을 하며 고인과 예술적 교감을 나눠온 화가 김선두 중앙대 교수는 “선생님은 참 예술가의 전형으로 사시다 가신 분”이라며 “선생님은 장르 간 대화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상대와 싸워 그를 넘어서라.”고까지 주문했다고 회고했다. 그림이 글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홀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인간의 죽음과 슬픔, 정서 등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길어올렸다.”면서 “고인은 김승옥씨와 함께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최승희의 열정적인 삶 그려

    “담배를 쥔 여자의 손끝에서 시베리아를 통과하며 늙어 버린 바람 냄새가 났다.”(17쪽) 또 한 명의 ‘시인 겸 소설가’가 등장했다. 시인 김선우(38)씨가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시인의 첫 번째 소설이다. “소설을 쓴 것도, 첫 소설로 최승희를 다룬 것도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최승희를 그리는 데는 소설이 가장 잘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은 최승희가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무용가 이시이로부터 무용을 배울 때부터 1952년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를 시간 배경으로 한다. 중국-평양-일본 등 최승희가 움직인 굵직한 동선과 스승 이시이, 남편 안막과 같은 주요 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상상력으로 창조했다. 최승희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흠모하는 기타로와 최승희를 동경하는 기생 예월, 예월의 아들 민 등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작가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8할은 허구”라고 밝혔다. 작가는 “최승희는 21세기의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아내야 했던 불우한 여성예술가였다.”면서 “오늘의 세계에 제대로 피와 살을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최승희와의 인연은 3년 전으로 돌아간다. 작가의 동화 ‘바리데기’를 읽은 한 영화사 대표로부터 ‘근대를 살아온 여성을 다룬 시나리오 한 편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이전부터 매력을 느끼고 있던 최승희를 쓰기로 결심했다는 것.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본, 중국, 평양 등으로 취재를 다녔고, 자료가 축적되자 소설로 완성해 보고픈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 작가는 원주 토지문학관과 해인사에서 1400여장의 초고를 완성한 뒤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소설은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퇴고하면서 여러 계층의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했어요. 난해한 시적 표현들을 중심으로 400여장을 거둬냈지요.” 소설과의 인연은 그보다 더 오래됐다. 첫 시집을 낸 뒤 한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던 2002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조세희 선생이 전화를 걸어와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하면서 소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8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2) 한국 살레시오회 모지웅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2) 한국 살레시오회 모지웅 신부

    서울 영등포구 대림1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은 소년원 수감생활을 마친 청소년들이 사회와 가정으로 복귀할 적응훈련을 받는 곳. 순간의 잘못으로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했지만 제자리를 다시 찾아가기 위한 마음을 다지고 방법을 배우는, 일종의 재교육장이다. 이곳에서 늘상 ‘Be Happy’(행복하게 지내세요)를 입에 단 채 청소년들의 벗이요, 아버지로 살고 있는 벽안의 노사제가 있다.80여명의 청소년들과 도예, 목공예를 함께하며 인생상담을 소임삼아 사는 5명의 신부 중 유일한 외국인, 모지웅(80·본명 몰레로 산체스·스페인) 신부.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해 평생 가난한 청소년들의 후원자요, 버팀목으로 살았던 이탈리아 사제 요한 보스코(1815∼1888)의 정신과 삶을 한국에서 52년간 이어와 ‘한국의 작은 요한 보스코’로 통하는 이방인이다. ●어딜 가도 “나는 모모신부” 자랑 예보에 없던 장맛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던 지난 24일 오후 대림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은 모지웅 신부는 대뜸 성경을 펴들어 손으로 줄을 쳐내렸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복음 25장). 평범한 성경구절이지만, 평생 소외되고 뒤처진 젊은 영혼들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로 살아온 노사제의 삶이 얹힌 때문인지 눈에 쏙 박힌다. 한국에 온 지 10여년쯤 됐을까. 한국의 대학생들이 우연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 몰레로와 비슷한 한국의 성씨 모자를 따 장난삼아 지어준 별명 ‘모모 신부’를 본명보다 더 좋아하는 신부. 처음엔 이름을 놀림감으로 삼은 게 기분나빴지만 나중에 대중가요 ‘모모’의 노랫말을 듣고는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부터 어느 자리에서든 “나는 모모 신부”라고 자신을 소개해왔단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앞에서 한 자의 틀림도 없이 ‘모모’ 노래를 유창하게 불러내는 노사제. 그는 정말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모모인 것일까. ●56년 입국 ‘작은 요한 보스코´로 살아 스페인 톨레도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살았다는 모 신부에게 한국은 원래 ‘가고 싶지않은 땅’이었다. 어릴적 중국 선교사를 꿈꾸던 신학생 친척으로부터 중국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때문인지 중국을 향한 동경이 아주 컸다고 한다. 마드리드 살레시오회 신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도쿄 살레시오회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그때까지도 한국은 “전쟁에 파묻힌 위험한 나라”일 뿐 결코 가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살레시오회 일본 관구장이 ‘한국엘 가보라.’고 거듭 권유해 반 강제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마지못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해 한강철교를 건널 때였어요. 스페인에서 보았던 사진 한 장이 불현듯 떠올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폭격 맞아 엿가락처럼 엉긴 다리를 건너려는 개미떼 같은 피란민들…. 운명처럼 느껴지더군요.” 1956년 8월13일 낮 12시15분.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시·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그 순간은 원치 않던 땅에서의 새 삶을 다짐한 회심(回心)의 찰나였음에 틀림없다. 사진으로 보았던 한강철교를 넘어 밤차로 광주에 내려가 살레시오 중학교 기숙사 사감을 맡은 게 ‘작은 요한 보스코’ 삶의 시작. 한국 청소년, 특히 어려운 환경의 젊은이들이 털어놓는 속 깊은 생각과 애환을 들어주며 자신도 모르게 요한 보스코가 되어갔다. 살레시오 중학교 교감, 살레시오 중·고교 서무과장, 살레시오 중·고교 이사장 대리, 서울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살레시오회 공동체 원장,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대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한국에서 52년을 사는 동안 서울 도림동성당·구로3동 본당의 주임 신부시절 6년과 이탈리아 로마 유학 2년을 합친 8년을 빼곤 모두 한국 청소년들의 곁을 지키며 살아온 셈이다. ●학교 세워 어려운 청소년에 기술교육 서울 도림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가정형편상 중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야간 중학교를 만들었고, 광주 살레시오 중·고교 이사장 대리시절엔 돈보스코 야간 중학교를 세웠다. 의지할 곳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받아들여 기술교육을 시켰던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재직시절엔 수용하고 있던 청소년들을 전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시켜 어엿한 직장을 잡도록 주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시절 겪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노사제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80년대 중반 간첩죄로 몰려 사형당한 아버지의 아들이 있었어요. 교도소에서 사형 직전 수녀에게 ‘내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지요. 아들을 우리 청소년센터에 들어와 살게 했는데 말을 끊고 혼자만의 생활에 빠져들었어요.‘아들아 아들아’ 부르며 어렵게 말을 건넸지만 막무가내였는데, 어느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건네며 ‘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게 아닙니까.” 모 신부가 세워놓은 야간중학교며 청소년센터를 거쳐간 우리의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뜬금없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결혼 주례만 500번을 보았다.”는 말을 돌려준다. 커서 결혼을 한 뒤에도 배필과 함께 찾아와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란 말에 미안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조금 더 잘해줄 것을”. 가정의 행복과 부모의 사랑에서 멀었던 그들이 항상 행복하기를 기도한단다. ●주례만 500번… 아버지라 부를때 뿌듯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이런저런 상을 주겠다는 제의가 쏟아졌고 받았다. 국민훈장 석류장, 대한적십자 최고훈장인 ‘인도장’ 금장, 스페인 국왕 훈장에 명예 서울시민증도 받았다. 하지만 “상패들이 어딘가 있을텐데…”하며 자랑삼지 않는다.“상을 너무 많이 받아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을까봐 걱정”이라며 웃는다. ‘전 세계 12억명이 하루 1달러로 살고 있고 5∼17세의 2억 450만명이 노동을 하고 있는 세상’.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자료를 내밀며 사제가 말한다.“부자들은 자신이 받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결코 잊지 않아요.”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서 학생상담을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이곳으로 온 게 지난해 7월. 은퇴했지만 여전히 바쁘다. 화·목요일 이틀은 서강대에서 스페인어·라틴어 강의를 해야 하고 성당들에서도 수시로 강의며 이런저런 도움을 청해온다. 중국 옌지의 국제합작기술학교(공업학교) 후원 책임을 맡아 학생들의 기숙사비며 장학금도 모금해 보내는 일도 큰 일이다. 가톨릭의대에 시신을 기증키로 약속했다는 노사제는 “내 껍데기를 세상에 돌려주는 게 내 일의 마지막”이라며 웃는다. 창문을 후려치는 빗소리가 팔순 노 사제의 목소리에 갇힌다.‘Be Happy’. 어쭙잖은 기자의 이별사에 노 사제가 다시 성경을 펴든다.“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 13절).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모지웅 신부는 ▲1928년 스페인 톨레도 출생 ▲1955년 일본 도쿄살레시오회 신학교 졸업, 사제 서품 ▲1956년 한국 입국 ▲1959년 광주 살레시오중학교 교감▲1964년 서울 도림동성당 주임신부, 야간 중학교 설립 ▲1970년 로마 살레시오대 유학 ▲1974년 광주 돈보스코 야간중학교 설립 ▲1979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1984년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1989년 서울 구로3동성당 주임 신부 ▲1993년 살레시오 공동체 원장 ▲1995년 대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1998년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사목 ▲2007년∼ 대림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사목
  • 자신을 새롭게 깨닫는 여정

    이제 우리가 사는 도시의 하늘은 너무 밝아서 별들이 거의 깃들여 살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책과 TV, 그리고 영화를 통해 별을 보고 천문학 지식을 암기할 뿐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 주변의 천문대에서 밤하늘을 보는 즐거움을 여전히 맛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밤하늘을 향한 동경을 되찾으라고 조언한다. 나는 천문대를 찾는 사람들이 우주를 응시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가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사람들은 흔히 천문 관측 체험을 별자리의 모양과 망원경의 원리를 암기하고, 중력과 블랙홀 같은 용어를 기억하며, 초신성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천문학이 ‘지식으로서의 과학’만이 아니라 ‘지혜로서의 과학’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밤마다 같은 자리에서 빛나는 별들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우리가 마음에 간직한 나의 역사와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내가 보는 별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 국토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10곳의 천문대를 찾아 그곳에서 보았던 별들, 만난 사람들, 그리고 오래 전부터 그곳을 지키고 있던 역사문화 유적들과 나눈 대화들을 기록했다. 영월의 별마로천문대를 다녀오는 길에 단종 애사를 간직한 청령포와 장릉을 만났으며, 김해천문대로 가는 길에서 수로왕과 허왕후, 그리고 물고기자리의 전설을 만났다. 그리고 다른 8곳의 천문대를 찾아가는 길에서도 하늘로부터 땅까지 이어진 수많은 사연들을 만났다. 자연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마음이 변하는 신비로움. 그것은 천문대 체험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나는 천문대를 다녀와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으며,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게 변화를 일으킨 것이 저 먼 우주로부터 달려온 별빛이었건,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이었건, 그들과 나눈 대화였건, 혹은 길가에 핀 한송이 달맞이꽃이었건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천문대 가는 길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던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결국 내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의 천문대 가는 길이 과학지식만을 위한 학습의 길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보는 개안(開眼)의 길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음 펴냄. 전용훈 일본 교토 산교대 객원연구원
  • 조사단 “故 박왕자씨 호텔키 행방 묘연”

    정부는 ‘금강산 피격사건’과 관련 고 박왕자씨의 피살 지점은 ‘울타리 경계에서 200m 떨어진 곳’이고 호텔을 빠져나간 시간은 오전 5시16분 이전이라고 발표했다. 황부기 합동조사 단장은 25일 오후 서울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가진 금강산 피격사건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의 중간조사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격 사망 추정 지점이 울타리 넘어 200m라고 발표했는데,총기 모의실험을 했는지.그 결과 거리 추정했는지. ▲실험은 아직 실시하지 않았다.필요하다면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실험할 것이다. -총성 관련 북측은 총4발(경고 1발,조준사격 3발)이라 주장하고,목격자들은 2발이라고 주장하는데. ▲총소리를 들은 시각과 몇발이냐는 문제에서 진술이 엇갈리는데 앞으로 조사가 더 필요하다. -17세 북한 여군이 쐈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가 파악한 정황은. ▲확인된 바 없다. -고 박씨에게서 호텔 키가 발견됐다는 얘기가 있는데 북측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나. ▲북측 입장 듣고 확인해야겠다. -고 박씨 신분증이나 방 키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는지. ▲그 열쇠의 행방은 묘연하다. -피살 지점에 대해 북측은 울타리서 300m 떨어진 곳이라고 했었다.오늘 발표에서는 200m라고 했는데,그 차이가 무얼 의미하나. ▲오늘 발표한 ‘200m’는 시신을 수습할 때 찍었던 사진과 조사단이 확보한 사진 중 현장이 들어가 있는 사진을 국과수에서 정밀 감정,좌표 설정을 통해 뽑아본 결과다. 이 부분에 대한 차이도 북한측과 진상조사 과정서 규명해야 한다. -모의실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모의 실험은 좀 더 기다려 달라.현재 어떤 실험을 해야할 지 검토하는 중이다. -피격 당시에 북한군 통신 감청 결과는. ▲잘 모르겠다.아는 바가 없다. -목격자들이 진술한 총성 횟수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는데,국내 목격자 중 횟수를 다르게(2발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 있나. ▲몇 명 있다.우리가 연락을 계속 하고 있는데 총성을 들었다는 사람의 숫자는 늘고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휴대폰을 많이 써서 시계를 잘 안 가지고 다니지 않나.금강산에 가면서 휴대폰을 맡겨 놓고 가다보니 시계가 없는 분들이 많았다. 대체적인 진술이 “내가 호텔에서 몇 시에 나갔는데 그 때가 몇 시쯤이더라.”는 식이어서 조사가 좀 더 필요하다. 총성 횟수도 두발,혹은 세발 이런 식으로 숫자가 다르게 나오고 있다. -이전 브리핑 때 “우발적인지 의도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는데,그동안 조사한 결과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지금 북측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가지고 조사단장이 이 자리에서 뭐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우발적인지 아닌지는 사격 지점 등 여러가지를 판단해서 현장조사가 이뤄져야만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현 시점에서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이르다. -당시 관광객들 중 “총소리를 듣고 시계를 보니 5시 몇 분이더라.”라는 사람도 있었다.그런 경우 실제 시각과 오차를 따져서 사망 시각 추정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부분도 감안해서 조사하고 있다.아까 CCTV를 국과수에서 정밀 감정했다고 말했는데,계속 확인하는 중이다.현 단계에서 몇 시에 정확하게 총소리가 들렸다는 점을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지금 그 말은 조사는 했지만 ‘크로스 체크’가 안 됐기 때문에 확정해서 말할 순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 박씨의 이동경로 부분인데,확인되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지 현 시점에서 총소리가 정확하게 몇 시에 났다는 것을 말씀드리기는 힘들다. -계속 북측에서 현장조사를 거부한다면 앞으로 합동조사단은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의혹에 대해 북한에 가서 현장조사를 하지 않고는 어렵다.앞으로 북한측에 이런 점을 계속 촉구할 것이다. -계속 거부한다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없다는 뜻인가 ▲그건 아마 북한도 남측의 국민 정서,국제사회에 미치는 북한의 이미지 등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조사단이 북한에 가서 신상조사를 하는 문제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 박씨가 펜스 넘어서 최종적으로 간 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확인됐나. ▲그 부분이 중요한 문제인데.현 상황에서는 그런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적절한 준비가 안 돼 있다.계속 조사해야 한다. -총을 쏜 군인이 1명이냐 2명이냐는 문제도 그런가 ▲그렇다.그 문제도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판단하기 어렵다.그것도 우리가 방북을 해서 충분한 현장 검증을 한 뒤 정확한 판단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강동구 통합청사 건립

    강동구 소유의 구의회 주차장 부지와 강동경찰서의 현재 부지가 맞교환된다. 좁은 부지로 신청사 건립이 어려웠던 강동구로서는 통합청사를 마련할 길이 열린 것이다. 강동경찰서는 2011년 현재 위치(성내동 540-1)에서 100m가량 떨어진 구의회 부지(성내동 541-1)로 이전한다. 강동구는 23일 강동경찰서와 신청사 건립을 위한 부지 교환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구의회 주차장 부지 규모는 7815.3㎡, 국유지인 강동경찰서 부지는 5602.2㎡ 규모다. 구청사(성내동 540)와 맞닿아 있는 강동경찰서는 앞으로 구의회 주차장부지에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11년 입주할 예정이다. 구는 경찰서가 이전하면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통합 부지(1만 1592㎡)에 구청과 구의회 통합청사를 건립할 계획이다. 부지가 마련된 만큼 신청사 건립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나선다. 내년부터 매년 50억원의 기금이 적립된다.10년 내에 구청 통합청사를 준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는 현재 공간 부족으로 구청사 외에 3∼4곳에 임시 사무실을 쓰고 있다. 일부 국과 과는 가건물을 사용할 정도로 공간이 부족하다. 구 관계자는 “구청사 부지 5990㎡에 경찰서 부지 5602㎡가 더해져 통합청사를 지을 수 있는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게 됐다.”면서 “사무실 부족으로 임대 청사에 의존하던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여성에 더 가혹한 美경제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여성이 미국 경제난의 최대 희생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22일(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 발표를 인용,25∼54세 여성의 취업인구비율은 지난달 72.7%였다고 전했다.74.9%로 최고를 기록했던 8년 전(2000년 초)보다 2.2%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이는 12년간 늘어난 여성 취업 인구수를 한꺼번에 까먹은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 내 여성 취업인구비율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남성 취업인구비율은 현재 86.4%다. 신문은 여성의 취업률 감소현상이 교육 수준과 결혼 여부, 자녀의 나이,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JEC)의 선임 경제학자인 헤더 바우시는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가 자녀양육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분석 결과 경제·사회경제적으로 비우호적인 상황속에서 압박을 받아 부득이하게 그만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JEC는 22일 이 같은 내용의 의회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성 실업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제조업이다.2001년 이후 100만명이 넘는 여성이 직장을 그만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여성의 임금도 떨어지고 있다.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25∼54세 여성의 임금 중간값은 2004년 시간당 15.04달러에서 2007년 14.84달러로 떨어졌다. 이같은 여성의 실직은 가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롤린 멀로니 JEC 부위원장은 “여성들은 가계 수입의 3분의 1가량을 벌어들인다.”면서 “주부가 일하는 가정에서만 생활수준이 실질적으로 나아졌다.”고 말했다.kmkim@seoul.co.kr
  • “비정규직 줄이고 정규직 늘려야”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후생노동성은 22일 기업의 실적·성과중시 임금제도와 관련,“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유인즉 “사원들의 업무에 대한 의욕을 높이는 작용도 하지만 처우나 임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후생성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기업들이 도입한 실적·성과주의에 따른 임금제의 폐해및 개선안을 담은 ‘2008년판 노동경제백서’를 채택했다.백서는 지금껏 기업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 노동 관련법의 규제 완화를 통한 비정규직의 고용 확대를 추진해온 정부의 방침과는 다른 지적이다. 따라서 정부가 백서의 주문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 주목된다. 성과 제도의 경우, 제도 적용 범위를 재검토해 노동의 의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부분에 한정,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또 명확한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등의 운용 방법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요구했다. 백서는 “노동시장 불안을 제거하고 보람을 갖고 일할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태 및 의식에 대한 조사 결과, 정사원이 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비정규직이 된 비율은 2001년 38%에서 2006년 44.2%로 증가했다.30대 미만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의 업무 만족도는 28∼29% 정도로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40∼49세의 정규직은 32.7%인 반면 비정규직은 24%로 8.7% 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백서는 이밖에 최근의 경제성장이 노동자 생활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은 데다 업무의 만족도도 장기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장시간 노동 대신 인구감소 사회에 맞는 업종의 창출도 제안했다. hkpark@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조영진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조영진 선생 별세

    중국과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조영진 선생이 21일 오후 7시 별세했다.91세. 선생은 1917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나 1935년 원산상업학교 3학년 때 ‘독서회’를 조직, 한글역사서적 및 위인전 등을 탐독하고 비밀리에 토론회를 열다가 일본인 교사에게 적발돼 퇴학당했다. 1936년 2월 중국에서 한인회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하 항일조직을 결성했으며 1938년 4월 일본대학 부속 제2상업학교에 편입해 동지를 규합하고 지하 항일학생단체인 ‘동경영흥유학생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41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도쿄 물리학교의 본과 수학부에 진학해 유학생 및 교포들과 접촉하며 배일사상 고취 활동을 벌이던 중 일경에 체포됐다. 도쿄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을,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보경(82) 여사와 아들 경삼(경희대 의대 내과교수), 경식(울산의대 영상학과 교수), 딸 경설 등 2남 1녀가 있다. 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장지 국립대전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 빈소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02)3010-2230.
  • 먹을거리·교육비·서비스료 줄줄이↑

    물가가 무차별적으로 오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생산자물가에 비해 턱없이 높은 경우도 많다. 국제 원유가격과 원자재 가격을 핑계로 ‘가격 올리기’가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간장의 생산자물가는 지난 6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2.4% 뛰었다.1998년 12월의 27.4% 이후 가장 높다. 이 품목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생산자물가 오름폭에 비해 14.6%포인트나 높은 35.1%였다. 국수의 생산자물가는 36.8% 올랐는데, 소비자물가는 55.7% 상승했다.28년만에 최고의 상승률이다. 블라우스의 생산자물가는 오르지 않았으나 소비자물가는 8.8% 상승했다. 남자용 내의도 생산자물가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소비자물가는 6.6% 올랐다. 모자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0%로 생산자 물가의 3.8%를 훨씬 웃돌았다. 남자용 구두의 생산자물가는 0%였으나 소비자물가는 5.8% 상승했다. 여자용 구두 역시 생산자물가 0.9%인 반면 소비자물가는 8.1% 뛰었다. 장롱의 생산자물가는 10.1% 떨어졌으나 소비자물가는 5.0% 올랐다. 싱크대의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오르지 않았으나 소비자물가는 7.0% 올랐다. 한은 관계자는 “생산자들이 소비자물가 상승을 억제해 오다 이번에 모두 반영하면서 소비자-생산자물가의 차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용역 서비스 가격의 상승도 상품에 전가돼 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대부분 10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건설관련 서비스의 생산자물가는 지난 6월에 전년동월 대비 24.0%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중 건축설계·감리료는 27.5% 뛰었다. 엔지니어링서비스료는 19.9%가 올랐다. 변리사료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상승률이 0%였지만, 올 들어 상승해 지난 6월에는 5.1% 상승했다. 공인회계사료 5.3%, 부동산감정료 8.3%, 건물청소비 6.6%가 각각 올랐다. 사설교육비 부담에 학부모들의 허리도 휘어지고 있다. 보습학원비는 지난 6월에 6.0% 올랐다. 유치원 납입금은 8.4%, 피아노학원비는 4.1%, 미술학원비는 4.4% 올랐다. 단과 대입학원비는 6.3%, 종합 대입학원비 7.2%, 취업학원비 6.3%가 각각 올랐다. 자동차 학원비는 14.5% 뛰었다. 또 공연예술관람료 6.2%, 운동경기관람료 10.2%, 볼링장 이용료는 5.0%의 오름폭을 나타냈다. 골프장 이용료는 5월에 8.0%에 이어 6월에 7.8% 올라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CEO칼럼] 기본기에 충실한 사회 가꾸자/윤용로 기업은행장

    [CEO칼럼] 기본기에 충실한 사회 가꾸자/윤용로 기업은행장

    국가대항 운동경기를 보게 되면 우리 선수들의 기본기가 외국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본기를 착실히 다지기보다는 승부 위주의 훈련에 매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축구경기에서의 문전처리 미숙이라는 오랜 난제는 신세대로 이루어진 요즘 대표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왜 이런 것일까. 필자는 축구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다만 좀 더 중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기본부터 착실히 가꿔가는 자세가 약한 데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기본기가 약하면 처음에는 성과를 보일지 몰라도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그 이상의 발전이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의 기본기를 우리의 삶에 비유하면 ‘기초질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선·신호 지키기, 길거리에 침 안 뱉기, 꽁초 안 버리기 등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사항들은 로버트 풀검이 쓴 베스트셀러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에서처럼 우리가 다 아는 것이다. 다만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국가에서 이런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경규가 간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횡단보도 정지선과 신호 지키기 운동을 벌인 바 있다. 꽤 인기를 끌었던 그 코너의 장기방영으로, 운전자들 사이에서 질서 지키기가 상당히 뿌리내렸다는 보도를 접한 기억도 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다시 방영되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교차로에서 꼬리를 물고 들어가 결국 정체를 야기하는 얌체족이나 고속도로 갓길운행 및 버스전용차선 위반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창밖에 담뱃재를 터는 운전자들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것도 씁쓸한 소식이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 남이 보지 않는다고 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가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낙담하게 된다. 미국 카터 행정부시절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세계사에서 헤게모니를 쥐었던 나라들은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의 우위에 의해 1등이 됐던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로마 시대에는 로마가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 교육 법제 문화 정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끌고 갔던 것이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일류국가로서의 위상 확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자원 없고 가난한 국가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고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을 이룩한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력만이 아닌 우리 삶의 기본기에도 충실해야 한다. 채근담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히 하라는 말이다. 결국 남을 배려하는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말일 것이다. 하나 요즘 세태를 보면 자기에게는 봄바람 같고 남에게는 가을서리같이 엄격히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가지게 된다. 윤용로 기업은행장
  • “고래심줄 같은 일본의 몰염치”

    “고래심줄 같은 일본의 몰염치”

    “날조된 역사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신국의 허상’에서)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1926∼2008)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15년여 전 ‘일본’을 집중적으로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아서였을까,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본의 행태에 대한 선생의 생각은 완강했다. 작가적 직관과 깊고 넓은 지식을 기반으로 일본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선생의 유고가 공개됐다. 선생의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학관장은 지난 5월 타계한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일본산고(日本散考)’라는 제목이 적힌 원고지 63장 분량의 미발표 육필원고를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원고는 1편 ‘증오의 근원’과 2편 ‘신국(神國)의 허상’,3편 ‘동경 까마귀’로 구성돼 있으며 1,2편은 원고지 25장 정도의 완성본이지만 3편은 원고지 13장으로 미완성 상태다. 선생은 ‘증오의 근원’에서 해방후 일본 문화계의 우리 문화 홀대 경향을 ‘화두’로 삼아 이같은 원한의 근원을 파헤쳤다. “일본은 도래인이라 표현하는 한족(韓族)이 그들 지배계급을 형성했던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심정일 것이며 가능하다면 일본 인종을 일본열도 고유의 인종이기를 바라는 것이 본심일 것이다.” 선생은 “우리와 일본이 동족 어쩌고 하는 것도 실은 진부한 얘기다. 역사연구의 영역일 뿐, 터럭만큼의 동질감도 없는 마당에 감상에 젖을 필요는 없다.”면서 “서로 이해하게 되면 좋고 다만 인류라는 자각으로 나를 다스려가며 앞으로 이 글을 써나갈 생각”이라고 집필 방향을 밝혔다. 왕권 확립을 위해 왕실 미화는 물론 신화의 날조·삭제·표절을 일삼은 일본 역사를 상세하게 소개한 선생은 ‘신국의 허상’에서 “일본만큼 ‘天(천)’자와 ‘神(신)’자를 애용하는 나라도 흔치 않다.”면서 “일본인은 신의 자손으로 즉, 신이라는 과대망상은 후일 세계정복을 꿈꾸는 망상으로 발전했다.”고 꼬집었다. ‘동경 까마귀’는 동갑내기 장호 시인의 동명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여유작작하다/사람 사는 언저리 아니면 못 사는 주제에/사람의 눈치쯤 아랑곳없이/정거장 둘레를 어슬렁거리다가도/지갑을 줍듯 먹어만 보면/스윽 달아난다” 선생은 일본인 정서에 깔린 짙은 우수와 허무주의를 겨울까마귀의 정서에서 찾아냈다. 선생은 또 서울 정릉에 살 때 집을 수리하러 온 일꾼들끼리 한가하고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험악했던 징용탈출 경험을 얘기하던 모습을 소개하면서 낙천, 해학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이상했다고 토로했다. 선생은 곧 이어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회생하여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썼다. 김 관장은 “어머니는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으신 만큼 일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하셨다. 생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 얘기를 많이 하셨다.”고 집필 배경을 추정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주말탐방] 외국인 무용수 몰도바 출신 세르게이·마야 커플

    [주말탐방] 외국인 무용수 몰도바 출신 세르게이·마야 커플

    “이렇게 큰 스케일의 무대가 또 있을까요? 테마파크 전체가 나의 무대지요. 다양한 배역과 거리 공연 등을 소화하며 연기력을 키우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나의 꿈인 뮤지컬 배우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가는 외국인 커플이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카르티라 세르게이(23)와 율리나 마야(23)가 주인공이다. 돈과 경력, 두 마리 토끼를 좇아 동유럽의 몰도바에서 한국까지 찾아 온 그들의 하루를 뒤따라가 봤다. # 한국은 동경의 대상 세르게이와 마야는 약혼한 사이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2005년 10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년7개월가량 체류하고 있는 셈이다.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고국에 돌아가 살 집을 마련한 다음, 결혼도 하고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 생활도 시작하겠다는 야무진 커플이다. 이들이 한달에 받는 월급은 시간 외 수당을 포함해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고국에서라면 다섯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연기자이다 보니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화장품값만 20만원. 나머지 비용을 아끼고 아껴 둘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는 저축을 한다. 거기에 한국에서 일한 경력은 보너스다. 고국에서 후하게 인정받기 때문이다. 국내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무용수들의 인권문제가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중앙아시아나 동유럽 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한국이 동경의 대상인 이유다. # 꿈이 있어 어려움 극복 ■오전 9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9시 정각에 일어났다. 토요일은 평일에 비해 출연 프로그램이 하나 더 늘 뿐인데도,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는 날이라 심적인 부담이 적지 않다. 집에서 롯데월드까지는 10분 거리. 회사 뒤편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동료 두 명과 숙식을 함께 한다. ■오전 10시 출근카드에 도장을 찍고 분장실 게시판에서 오늘의 일정을 확인했다. 세르게이는 이집트 병사, 마야는 무희(舞姬) 역할도 있었다. 스케줄 확인 후 곧바로 연습실로 올라가 몸을 풀었다. ■오전 11시30분 점심시간. 늘 그렇듯 연기자용 서양식 메뉴다. 분장을 해야 하는 등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먹어야 한다. ■오후 12시30분 오늘의 첫번째 공연인 스테이지쇼 시간이다. 이집트 파라오와 왕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세르게이는 “연인과 함께 공연할 수 있어 행복하다. 다른 연기자들은 가끔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토로하지만, 나는 마야와 함께 있어 일도, 생활도 모두 데이트가 된다.”며 씽긋 웃었다. ■오후 1시 공연을 마친 세르게이와 마야 커플이 분장실에 들어왔다. 시장통처럼 떠들썩하다. 노트북 컴퓨터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할 듯하다. ■오후 2시 퍼레이드 시간이다. 스테이지쇼는 정해진 레퍼토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퍼레이드를 벌일 때는 나름대로 생각해둔 춤동작을 간간이 펼쳐 보일 수 있다. 퍼레이드 도중 어린이를 안아 준다거나, 악수를 나누는 등 쇼맨십을 보여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후 2시30분 퍼레이드를 마치고 분장실로 들어온 무용수들이 머리와 등에 이고 진 장식들을 벗어 놓았다.5㎏ 정도 되는 꽃장식을 들어 보니 등쪽의 지지대에 땀이 흥건하다. ■오후 3시 오후 5시까지는 휴식 겸 개인 연습시간이다. 오늘은 특별히 브라질에서 온 삼바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예술감독이나 연기자나 통역을 사이에 두고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서로간에 힘이 배로 들 듯하다. 고된 일정 속에 일탈의 유혹은 생기지 않을까. 마야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 하나로 한국에 온다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겠죠. 그들과는 입국할 때 비자 타입 자체가 달라요. 전 무용을 전공했고, 무용수로 이루고픈 꿈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오후 5시30분 스테이지쇼 시간. 한 번 펼친 공연이지만, 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서야 한다. ■오후 6시 저녁식사. 역시 양식으로 준비됐다. 일찍 먹고 쉬는 게 낫겠다 싶어 20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오후 7시30분 오늘의 마지막 퍼레이드를 벌일 시간이다. 이번엔 어떤 춤동작을 선보일까 고민하며 분장실을 나섰다. ■오후 8시30분 평일엔 8시쯤 퇴근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스테이지쇼를 하나 더 소화해야 한다. 몸은 피곤해도 웃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신들을 보러 온 관람객들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프로임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9시 동료가 소주 ‘딱’ 한 잔만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마야에게 물었다. 일이 고되지 않냐고. 그는 “10시간 넘게 강행군했지만, 꿈이 있어 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 휴일엔 늦잠 잔 후 쇼핑 놀이공원의 특성상 쉬는 날은 다들 제각각이다. 세르게이와 마야 커플은 회사의 배려로 목요일에 함께 쉰다. 마야는 “휴일엔 오후 2시까지 늦잠을 자는 등 한껏 게으름을 떤다.”며 “느지막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휴일에 꼭 해야 할 일은 장보기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걱정없지만, 아침에 먹을 음식 등 생필품들은 일주일치를 미리 사놔야 하기 때문이다. 집 근처 대형할인마트가 이들이 주로 찾는 곳. 간혹 명동이나 동대문 등으로 쇼핑을 나가기도 한다. 특히 동대문은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상품들을 만날 수 있어 자주 찾는 편이다. 고국의 음식을 맛보며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 고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한국인들 간혹 자신들을 이방인으로만 대할 때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세르게이는 “오래 한국에 있다 보니 한국말, 특히 좋지 않은 표현은 잘 알아 듣는다.”며 “한국말을 모른다고 생각해 막말을 서슴없이 할 때 많이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동료인 우크라이나 출신 다축 안드레이는 서울 지리에 꽤 밝은 편이다. 그런데 택시를 타면 아직도 여기저기 빙빙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이다. 그러면서 “잠실에서 이태원까지 1만원이면 충분한데 이리저리 돌다가 1만 5000원이나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보이팀과 공연을 벌일 때 많은 사람들이 ‘왜 우크라이나 사람이 끼어 있느냐.’고 묻곤 한다.”며 “밥을 먹을 때도,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일 때도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털어 놨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서운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르게이는 “한국은 이루고 싶은 꿈에 다가갈 기회를 마련해 준 곳”이라며 “한국에서의 경력은 훗날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또한 “지난해 3개월 동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함께 연습할 기회를 주었던 비보이팀원들의 애정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며 말을 보탰다.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세계최고 비보이 될 터” 다섯번째 방한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기술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비보이들은 단연 한국의 비보이들입니다. 한국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세계 최고의 비보이로 성장하고 싶어 한국에 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다축 안드레이는 한국 생활에 무척이나 만족해 한다. 비보이로 하루하루를 지내며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섯번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체류한 기간만도 3년 가까이 된다. 이젠 거의 매일 삼겹살 안주에 ‘소주 폭탄’을 마실 만큼 한국 사람이 다 됐다. “한국은 나에게 더 큰 꿈과 목표를 선물한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요. 비보이팀 ‘NUFUNK’ 팀원들과 합숙훈련을 할 때도, 롯데월드에서 활동할 때도 한국 친구들은 늘 내게 고마운 동행자가 됐습니다.” 그가 보는 한국의 비보이들은 세계 최고다. 유럽이나 일본 등 공연 문화가 성숙한 나라들 대신 우리나라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에게 ‘세계 최고의 한국 비보이, 현실은 반지하 월세방’이란 서울신문 6월24일자 1면 기사를 보여 주자 머리를 외로 꼰다. 이런 현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일 터. 연습실에서 동료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매가 사냥감을 앞에 둔 맹금류의 그것과 닮았다. 이제 갓 24세. 외동아들로 애지중지 성장한 그이지만, 오랜 객지 생활은 그를 강한 힘이 느껴지는 프로로 바꾸어 놓았다. “여건이 되는 날까지 한국에서 비보이로 지낼 겁니다. 훗날 이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국에 있는 후배들을 양성하고, 또 그들에게 한국에서 더 큰 비보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제 꿈이자 목표지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외국무용수 어떻게 뽑나 서류심사와 오디션 두번 현지서 고용해 한국 파견 대형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연기자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로루시 등의 국가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영진(43) 롯데월드 무대감독은 “임금이나 공연 환경 등에서 우리보다 나은 북유럽 국가들을 선호하는 것이 현지의 대체적인 분위기”라면서도 “그들에 못지않은 조건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여전히 동경의 대상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연기자들은 대부분 최장 11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한 E6 비자를 받아 들어온다. 신분은 한국 회사가 현지에서 외국인을 고용한 후 한국으로 파견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놀이공원 관계자들은 유능한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이상 이들 국가로 출장을 간다. 유 감독은 “서류 접수에만 400∼500명씩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3배수 정도로 줄인 다음, 두 번의 오디션을 거쳐 60명 정도를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또 “연세 지긋한 분들도 찾아와 합격시켜 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몰도바의 경우 우리나라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모이 미에르’(Moy Meer)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인광고나 업체 간 비교 등의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원효의 화엄사상 해설이나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서 주로 사용됐다. 정치적으로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해석해 도입한 개념이다. 요즘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섭이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4년 전 일개 학설로 한국에 소개된 통섭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대접받고 있는 셈이다. 통섭이 왜 국내 지식사회의 주제어로 떠올랐고,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통섭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통섭이 ‘한국적 특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편의상의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것은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 우주,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고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됐고,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수한 학과가 오히려 인기를 끌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통섭을 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령화, 산업 변화의 가속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간상이 필요하다. 한 예로 평생 직업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직업을 찾기 위해 매번 새로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폭넓은 사고를 갖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면 그만큼 새 길을 모색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통섭형 사고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통섭은 학문의 벽을 허무는 일에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대학사회는 같은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구분은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특히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인간사회를 기본으로 연구하거나, 기계공학자 대신 음악 전공자가 음향기기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분방정식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대신 자기공명영상을 도입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MIT에서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전자기기가 오페라의 막을 올리고 공연을 한다.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원조 통섭은 인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모든 노력을 통섭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종 학문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의 경계가 없던 시절인 만큼 그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수많은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조’로 떠받들어진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등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도 인문사회과학을 배워 자연과학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통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200여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다빈치와 조선의 정약용이 약속이나 한 듯 기중기(거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통섭적 사고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환경과는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통섭은 ‘자연을 흉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현실에 존재하는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은 1985년 ‘함께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됐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으로 발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국내 연구 현주소 2005년 최재천 교수 등 윌슨의 ‘컨실리언스’를 번역 학문적 기반 아직 취약… 대학들 전면도입 움직 통섭의 개념이 국내 학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과학철학자 장대익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2005년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생태학자인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섬 생물지리학과 사회생물학이라는 두 개의 학문을 개척했다. 윌슨이 주창한 컨실리언스는 르네상스 회귀로 집약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이 언젠가는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실리언스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냈다. 라틴어의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컨(con)’은 영어로 ‘함께’라는 뜻을,‘살리에르(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휴얼과 윌슨의 ‘컨실리언스’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 교수와 장 박사는 컨실리언스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통섭은 방법론과 지향점에서 윌슨 것과 다르다. 윌슨이 자연과학으로의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통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통합보다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통섭이 ‘학문간의 벽을 허물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은 취약하다. 올 초 서울대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기계적으로 학과가 통합되는 것을 물리학적 통합, 두 학문이 새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화학적 통합으로 정의한다면 통섭은 생물학적 결합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가설과 학문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외국과 달리, 전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인위적인 벽 허물기가 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통섭의 시대’ 다시 주목받는 다빈치식 사고 통섭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통섭형 인간의 표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다빈치식 사고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증명정신,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 모호한 것까지 포용하는 묘사법, 과학과 예술의 조화, 건강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를 엮어내는 연결 습관 등으로 집약된다.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과연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업적을 쌓게 만들었을까. 다빈치식 사고를 가진 수많은 사람을 키워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탈리아 각지에 숨어 있는 다빈치의 발자취를 찾아, 왜 그가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빈치·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은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앞 광장. 거대한 성당 두오모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꼭 지나야 하는 이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동상 아래에 적혀 있는 ‘과학과 예술의 혁명가(AL Rinnovatore Delle Arti E Delle Scienze)’라는 문구는 다빈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짧은 수식어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다빈치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헌사다. ●거대한 박물관이 된 다빈치 고향 5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는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다. 수도 로마 공항의 공식 명칭은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의 이름 역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다. 공항 곳곳에 다빈치의 작품을 형성화한 조형물들과 그의 동상을 목격할 수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핵심도시 피렌체를 지나 피사 방향으로 65㎞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빈치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 어느 곳에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만이 가득한 특별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 바로 다빈치의 고향이다. 마을 중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3m가 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다빈치의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이 비례도의 원본은 베니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빈치가 빈치에 살았던 기간은 태어난 이후 피렌체에서 베르키오의 도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16∼17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의 생가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 내부에는 다빈치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빈치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뿐이었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빈치 시청의 알베르토 로카티는 “다빈치는 세르 피에로와 카테리나라는 하층계급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면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빈치의 왕성한 학구열이 어린 시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마을의 중심지 폭이 채 500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빈치지만, 마을 전체가 거대한 다빈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에 자리잡은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빈치 아이디어 박물관은 다빈치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체험관이다. 박물관 학예사인 세르지오 페오네는 “다빈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고가 다방면으로 발달해 있었다.”면서 “이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물도 플라톤의 흉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상점에서는 티셔츠나 엽서 등 흔한 기념품 대신 다빈치가 고안한 시계와 헬리콥터 모형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학문과 예술 꽃피운 피렌체, 밀라노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ㆍ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말년을 제외하면 그의 성과가 대부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이뤄진 셈이다.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473년의 데생이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빈치는 보티첼리, 크레디, 페루지노 등 베로키오 산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도제로 있는 동안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건축, 도형 연구, 광학론, 원근법, 기하학, 자연과학, 음악 등을 폭넓게 익혔다. 이때 배운 원근법의 결실이 바로 1495∼1497년에 다빈치가 완성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이다.15분에 단 25명의 관람객에게만 공개되는 이 불후의 거작은 성당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장엄했다.‘최후의 만찬’ 전문 가이드인 실비아 솜바루는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술사학자, 구조학자, 역사학자, 광학자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지금도 이 그림 연구로 연간 수십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성당 길 건너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기술박물관이 있다. 온통 과학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 박물관 전시물 중 다빈치가 고안한 각종 기계들이 단연 인기다. 피렌체 시내에도 다빈치의 기계를 실물 크기로 재구성해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두 도시의 대형 서점에는 다빈치 관련 서적들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탄생 55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도시 전역이 다빈치 기념물로 꾸며지기도 했다. 빈치시의 다빈치 박물관장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다빈치의 지식은 대부분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빈치가 ‘단순한 천재’였다면 그저 동경의 대상이자 신화적인 존재에 머물렀겠지만, 다빈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닮고 싶은 존재’ ‘배워야 할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다빈치는 어떻게 만능학자가 되었을까 호기심·증명정신 겸비 ‘노력하는 천재’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해학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물리학자, 이야기꾼…. 다빈치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에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고 대부분 진품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소장하고 있다. 평생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탄생한지 5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빈치는 지식인들이 꿈꾸는 ‘만능인’(Universal Man)의 표상으로 꼽힌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천재는 논리·수학(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언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공간·기술(미켈란젤로), 음악(모차르트), 신체·운동감각(무하마드 알리), 사회적 대인관계(엘리자베스1세, 마하트마 간디), 자기 인식적 대인관계(틱낫한, 테레사 수녀) 등 일곱가지 척도 중 하나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곱가지 분야에서 모두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빈치가 다시 각광받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서 특이성을 보인 이유가 단순한 천재여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용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물의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좋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는 비행기 설계로 이어졌고, 노년에는 이 모든 기계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교육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이클 겔브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육서적 목록에 올라 있다. 겔브는 “다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재다능하고 균형잡힌 인간, 예술과 과학 양쪽을 모두 편안하게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빈치식 사고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단독]귀농인구 대졸자 25%·생계형 50%

    [단독]귀농인구 대졸자 25%·생계형 50%

    도시인들이 귀농(歸農)하는 데 드는 초기 자본금은 가구 평균 7400만원으로 조사됐다. 순수 도시 출신 귀농인은 6명 중 1명에 불과했으며, 전직은 자영업이 가장 많았다. 40∼5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4명 중 1명은 대졸 이상 학력을 지녔다. 경북으로의 귀농이 가장 많았으나 만족도는 충남이 높았다.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13일 정부 차원의 최초 귀농인 통계 보고서인 ‘농업경영인력 변동실태 조사 결과’를 서울신문에 단독 공개했다. 보고서는 2006년 한 해 동안 도시에서 농촌으로 전입한 ‘신규 귀농인’ 410농가주를 지난해 11월16일부터 한 달간 방문·면접 조사한 뒤 최근 작성됐다. ●‘소액투자·생계형 귀농’특징 조사 결과 귀농 농가는 평균 7400만원의 초기 자본금을 준비했다. 이를 통해 농지 구입에 3420만원(46.1%)을, 주택구입에 3060만원(41.3%)을 썼다. 이 밖에 가축과 농기계 구입에 각각 180만원(2.5%)씩을 지출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2006년 기준) 전국 가구 평균 순자산(자산-부채)이 2억 4164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예상과 달리 소규모 투자나 저소득층의 귀농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귀농 가구 86.8%는 자본금을 스스로 조달했다. 금융기관 대출로 마련한 경우는 7.1%였다. 정부보조를 통해 충당한 경우도 1.7%에 불과했다. 올해 예상 연간 농업소득은 74.2%가 100만∼1000만원을 내다봤다. 반면 채소 농가는 5000만원 이상을 기대했다. 귀농 동기로는 ‘퇴직후 여생을 농촌에서 살기 위해’가 23.2%로 가장 많았다.‘농촌생활을 동경해서’가 18.5%,‘부모의 영농승계를 위해’ 14.6%,‘건강을 위해’ 13.2%,‘사업실패·실직 때문’ 9.8%,‘도시생활 회의’ 5.6% 등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목적은 이익창출(50.2%)이 취미·여가(49.8%)보다 많았다. 농식품부 경영인력과 관계자는 “막상 귀농한 뒤엔 여가·소비 위주가 아닌 ‘생계형’의 특징을 보이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순수 도시출신 귀농 6명 중 1명뿐 귀농 유형도 예상밖이었다.‘순수 도시인 귀농’으로 볼 수 있는 ‘도시에서 출생한 뒤 농촌으로 정착’한 경우는 17.8%에 그쳤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 취업 후 다시 고향으로 ‘U턴’한 경우가 58.5%로 가장 많았다. 농촌에서 출생해 도시취업 후 타향에 정착한 경우는 22.0%였다. 조사 대상 중 경북에 정착한 경우가 18.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남(16.6%), 경남(15.1%), 경기(14.4%), 충북(12.9%)순이었다. 귀농 전 직업은 자영업이 37.1%로 가장 많았다. 이어 건설건축직 13.4%, 사무직 11.2%, 생산직 9.3%, 일용직 등 8.3%, 공무원 6.8%, 주부 7.1%, 영업직 3.2%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35.1%로 가장 많았으나 50대와 40대도 각각 28.5%,24.9%로 비중이 컸다. 학력은 고졸 이상 63.2%, 대졸 20.7%, 대학원졸 2.5% 등으로 나타났다. 귀농 만족도는 비교적 높았다.‘아주 잘한 편 또는 잘한 편’이라는 응답은 43.4%인 반면 ‘약간 잘못한 편 또는 아주 잘못한 편’이라는 부정적 대답은 9.8%에 불과했다. 충남지역에서 긍정적인 응답 비율이 75.0%로 가장 높았다. 부정적 의견은 경남 17.7%, 전남 13.3%로 많았다. 농업 관련 교육 경험이 있는 귀농인은 16.6%에 불과했다. 때문에 애로 요인으로 ‘영농기술 및 경험 부족’(37.8%)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정부자금 지원 어려움’도 19.8%나 됐다. 호당 경영경지면적은 0.7㏊(7043㎡)에 불과했다. 특히 59.4%는 0.5㏊미만의 소규모 경작농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통계 조사를 토대로 농업인력 육성 대책을 수립하겠다.”면서 “정부자금 지원 확대, 귀농교육 강화 등을 우선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205편 영화 뭐부터 볼까?

    205편 영화 뭐부터 볼까?

    경기도 부천에서 ‘영화 한마당’이 펼쳐진다. 제12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iFan 2008)가 18∼27일 부천시민회관과 부천시청을 비롯해 복사골 문화센터,CGV 부천점 등 11개 상영관에서 열린다. 이 기간 동안 39개국에서 출품한 영화 205편(장편 125편, 단편 80편)이 상영된다. 한상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는 관객 입장에서 영화의 성격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장르를 좀 더 세분화한 만큼 마니아와 일반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하이브리드’(혼종).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스라엘 작품 ‘바시르와 왈츠를’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호평받은 영화이다. 이스라엘 작품이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자본 합작으로 제작됐다. 폐막작 곽재용 감독의 ‘사이보그, 그녀’도 한국과 일본의 합작품이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액션에서 멜로까지 아우르며 여기에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요소까지 더한 작품이다. 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섹션에서는 왕따 소년이 뱀파이어 소녀와 친구가 되는 ‘렛 미 인’(스웨덴),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들이 공포·악몽을 주제로 만든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어둠 속의 공포’(프랑스), 초인적 힘을 지닌 슈퍼 영웅들의 전투를 그린 ‘오파파티카’(태국), 정신이상 살인마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소녀의 탈출극인 ‘TBS’(네덜란드) 등이 상영된다. 오는 8월7일 개봉 예정인 한국 공포영화 ‘고死:피의 중간고사’도 관객들을 미리 만난다. 장르영화 신작 30편을 상영하는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섹션은 청소년들의 살인 내기라는 끔찍한 실화를 소재로 한 ‘세븐 데이 선데이’(독일), 남미형 범죄 스릴러물 ‘사타나스:살인자의 초상’(콜롬비아), 살해당한 사람이 연예 스타로 환생해 복수를 한다는 ‘옴 샨티 옴’(인도) 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들로 유쾌한 영화적 체험이 되기에 충분하다. 가족 관객을 위한 ‘패밀리 판타’ 섹션에서는 판타지 어드벤처 ‘다란:하얀 기린의 모험’(네덜란드), 소년과 유령의 가슴 찡한 우정을 그린 ‘유령친구 부트나스’(인도), 유치원생의 줄다리기 대회를 소재로 한 ‘으으 드림팀’(태국)이 있다. 흑백영화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작품들도 상영된다. 한국영화 회고전인 ‘코드네임 도란스’는 한국과 일본,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수용 감독의 첩보극 ‘동경특파원’, 영화배우 박노식이 연출한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영화 8편이 선보인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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