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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필름 “전액 무상 영화학교 2015년 개교”

    명필름 “전액 무상 영화학교 2015년 개교”

    영화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제작사 명필름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파주출판도시에 영화학교를 만든다. 명필름의 심재명·이은 공동대표는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에 30억원 상당의 개인재산을 내 ‘명필름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영화학교와 미술관 등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2015년 2월 개강 예정인 명필름 영화학교는 숙식이 제공되는 2년 과정 기숙학교로 전액 무상으로 운영된다. 극영화·다큐멘터리 연출, 제작, 연기, 미술, 촬영, 편집, 사운드 등의 세부 전공으로 나눠 해마다 총 1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은 대표는 “한 개인이 영화를 하고 싶을 때 곧바로 충무로로 나올 수 없고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사회가 제도적으로 육성할 필요를 느꼈다.”면서 ”이 학교를 통해 매년 두 편의 극영화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까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 작품은 명필름이 제작하는 다른 영화들과 같은 방식으로 개봉이 이뤄질 것”이라며 “졸업 작품이 곧 감독 데뷔작이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신입생은 나이, 국적, 연령 제한이 없으나, 실제 영화화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얼마나 성실하게 구상해 왔느냐를 평가할 방침이어서 현장 경험이 있는 이들이 선발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학교는 명필름이 파주출판도시 2단계 개발 부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회사 사옥, 미술관, 예술영화전용관과 함께 들어선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전기배선·처마 수리 ‘30년 베테랑’ “내 나이 보지말고 실력만 보시게”

    전기배선·처마 수리 ‘30년 베테랑’ “내 나이 보지말고 실력만 보시게”

    “늙은이가 일하니까 불안하다고? 내가 이 일만 30년을 넘게 했어.” 29일 송파구 석촌동경로당에는 대규모 보수 공사가 벌어졌다. 들이치는 빗물을 막지 못하던 낡은 처마를 손본 뒤 빗물에 부식된 베란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또 계단 난간까지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은 경로당 어르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60~70대 어르신들이었다. 이들은 능숙하게 페인트를 벗겨내고 전기 배선까지 재빠르게 손봤다. 송파구에서 지난 5월부터 활동한 생활 서비스 전문가 ‘송파 시니어 핸디맨(handy man)’들이다. ●시중가 70% 이하로 보수 업무 대행 송파구는 송파시니어클럽과 손잡고 어르신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핸디맨을 육성하고 있다. 이들은 현업에서 수십년 경력을 쌓고 은퇴한 기술자들로, 지역 내 각종 시설과 일반 가정의 설비 보수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주로 전기, 도배, 하수구·욕실 공사, 가구 수리, 가사도우미 등 서비스를 시중가 70% 이하 수준으로 제공한다. 현재 남녀 15명씩 총 30명 어르신이 핸디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 연령은 67세에 달한다. 경로당 작업 현장에는 핸디맨 4명이 투입됐다. 최고령 핸디맨인 김정길(71·마천동)씨를 비롯, 정길환(70·잠실5단지)씨, 방경석(65·잠실2동)씨, 이용준(53) 총괄팀장 등으로 각자가 인테리어, 전기, 도배 등 분야에서 30년씩을 일한 전문가들이다. 이날 투입된 핸디맨들의 경력을 합치면 100년이 훌쩍 넘는다. 김씨는 “처음 핸디맨 소식을 듣고 나도 아직 일할 기회가 있구나 하는 사실에 반가웠다.”며 “지금은 건강만 허락하면 75, 80세까지도 일하며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얻었다.”고 전했다. ●기술 전수 등 학습장 역할도 핸디맨은 전문 인력의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기술 학습장 역할도 하고 있다. 기술 경험이 없는 어르신들은 우선 전문가들의 보조인력 형태로 현장에 참여한다. 이후 200시간 이상 기술 전수를 받으면 단독으로 작업에 나설 수 있다. 구는 핸디맨 사업이 전국적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매뉴얼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판문점, 2012년 10월/이도운 논설위원

    지난 23일 오후 3시, 자유로를 거쳐 통일대교를 지난 뒤 판문점에 도착했다. 전날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싸고 북과 남의 군 당국이 ‘임진각 타격’과 ‘도발원점 격멸’을 공언했기 때문에 저절로 긴장감이 밀려왔다. ‘자유의 집’ 앞에 서서 북측을 바라봤다. 묘한 적막감이 느껴졌다. 군사분계선 위에 세워진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T-2) 주변에는 늘 그렇듯이 우리 측 공동경비구역(JSA) 헌병 5명이 부동자세로 북측을 응시하고 있었다. 북측에서는 통일각 계단 위의 인민군 하나가 짝다리를 짚고 서서 우리 측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한국군 헌병들은 관람객들이 올 때만 부동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그런 자세를 유지하겠는가. 자유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유엔사령부 소속 미군 장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국인 관광단에게 남북 간의 대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명쯤 되어 보이는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이 진지하다. 1년에 판문점을 찾는 관광객은 17만명. 15만명은 남측을 통해, 2만명은 북측을 통해서 온다. 자유의 집에 자리잡은 남북연락사무소는 이날도 오전 9시와 오후 4시에 북한 측과 의례적인 통화를 가졌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회담 없는 연락’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남북 간에 매설된 광케이블을 통해 30만이 넘는 회선이 설치됐지만 현재로서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도라산 전망대에 오르자 판문점을 넘어 개성공단과 개성시 등 북한 쪽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대식 공장과 건물이 들어선 개성공단에서는 오고 가는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5만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와 가족들 때문에 주변 마을도 커지고 있다. 사실상 ‘선전 마을’이었던 기정동과 금왕골에도 거주민이 수백명이나 늘었다고 한다. 개성을 둘러싼 송악산과 그 앞을 흐르는 사천강도 한눈에 들어왔다. 전날 비가 내렸기 때문에 시야가 툭 트이고 사물과 사람이 선명하게 보였다. 문득 눈을 왼쪽으로 돌려 서쪽을 바라봤다. 멀리 인천 송도가 보이고, 김포 신도시의 모습도 잡힐 듯하다. 시선이 남쪽으로 향하자 멀지 않은 곳에 웅장한 산이 보인다. 북한산이라고 한다. 판문점에서 개성까지 12㎞, 북한산까지의 거리도 40㎞. 남북이 충돌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귀가 닳도록 들어온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말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월수 2억’ 아내 이혼요구에 청부살인

    돈 잘 버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이 사업체를 빼앗기 위해 청부살인을 저질렀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아내를 살해해 달라고 청부업자에게 의뢰한 정모(40)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정씨에게 1억 3000여만원을 받고 살해를 대행한 원모(30)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정씨는 지난 5월 원씨에게 아내 박모(34)씨를 살해해 달라고 부탁했고 원씨는 지난달 박씨를 납치해 목 졸라 살해했다. 정씨는 렌터카 업체를 운영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자 4년 전 아내에게 사업체를 넘기고 강남구에서 노래방과 유흥주점 등 3곳을 운영했다. 가정주부였던 아내는 뜻밖에 사업 수완이 좋아 망해 가던 회사를 살려냈고 결국 회사는 순수익이 월 2억원에 이를 만큼 커졌다. 사업은 번창했지만 부부 사이는 멀어졌다. 1년 전부터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박씨는 남편이 이혼을 해 주면 위자료로 6억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정씨는 이혼을 하기도 전에 4억원을 받아 노래방 등을 차리고 운영하는 데 다 써 버렸다. 정씨는 앞으로 2억원만 더 받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렌터카 사업체를 빼앗기로 결심했다. 정씨는 지난 5월 21일 원씨를 만나 “6000만원을 줄 테니 아내를 죽여 달라.”고 부탁하면서 착수금으로 3000만원을 줬다. 하지만 원씨는 계속 추가 비용을 요구했고 청부살인의 대가는 총 1억 9000만원으로 정해졌다. 원씨는 아홉 차례에 걸쳐 1억 3000만원을 받고 난 뒤 살인을 실행에 옮겼다. 9월 14일 오후 4시쯤 서울 성동구 박씨의 사무실 앞에서 박씨를 납치해 인근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서 살해한 뒤 경기 양주시 부근 야산 계곡에 유기했다. 정씨는 이튿날 태연하게 부인에 대한 가출 신고를 했다. 원씨는 박씨의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이용했다. 범행 9일 후인 23일부터 24일까지 네일숍, 카페, 선글라스 가게 등 여자들이 갈 만한 7개 업소에서 숨진 박씨의 카드로 270여만원을 사용했다. 박씨의 어머니와 친구 등에게 박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잘 있어요. 나중에 들어갈게요.” 등의 문자 16개를 보내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남편 정씨가 실종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을 수상하게 여겼다. 결국 신용카드 사용 업소를 중심으로 폐쇄회로(CC)TV 등을 확인한 끝에 지난 14일 원씨를 붙잡았다. 원씨가 체포되자 불안해진 정씨는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지난 18일 양주의 한 계곡에서 박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에서 정씨는 “헤어지면 자식도 빼앗기고 거지가 될 것 같아서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정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아닐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아내 살해 피의자 이상증세 사망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50대 피의자가 이상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 피의자는 검거되기 직전 농약을 마셨지만 병원 검사 결과 약물 음성반응이 나와 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아 왔다. 18일 충북 영동경찰서에 따르면 대전 충남대병원에서 치료받던 피의자 배모(52)씨가 지난 17일 오후 9시 40분쯤 숨졌다. 배씨는 14일 오전 1시쯤 영동군 영동읍 자신의 집에서 가정불화로 말다툼하다 아내(43)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범행 5시간 만인 이날 오전 6시 20분쯤 집 근처 야산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배씨가 농약을 마셨다고 진술하며 구토까지 해 곧바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병원으로 배씨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검사결과 약물 음성반응이 나오자 경찰은 배씨를 다시 경찰서로 데려왔다. 경찰 관계자는 “배씨를 입원시켜 관찰해 달라고 했지만 병원 측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을 어떻게 입원시키느냐며 거부해 경찰서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치장에 입감된 배씨는 이날 오후 11시 10분쯤 비틀거리며 잘 걷지 못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여 다시 약물반응 검사를 받았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 도중 3일 만에 숨졌다. 부검에서 불상의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족들은 약물반응 검사가 음성으로 나온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병원의 과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 병원은 원인 미상으로 배씨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영동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기관마다 독도 면적표기 제각각

    정부기관이나 연구단체들조차 독도 면적을 서로 다르게 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수현 의원이 15일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외교통상부·국토해양부·울릉군·해양경찰청·독도박물관 등은 독도 면적을 18만 7554㎡로 표기하고 있다. 반면 경찰청 독도경비대는 독도 면적을 18만 6000㎡, 경북도청 사이버독도와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은 18만 7453㎡로 제각각 기록하고 있다. 민간 독도학회는 18만 6121㎡, 독도의병대는 18만 902㎡,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은 18만 7454㎡로 소개하고 있다. 박 의원은 “해경은 매년 발간하는 백서에 독도 면적을 ㎡가 아닌 부피 단위인 ㎥로 표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2년째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도의 위치에 대해서도 해경 백서는 북위 37도 14분 26.8초, 동경 131도 52분 10.3초로 소개하고 있으나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동경이 131도 52분 10.4초로 나와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새 음반] 英밴드 ‘뮤즈’ 3년만에 정규앨범 6집

    [새 음반] 英밴드 ‘뮤즈’ 3년만에 정규앨범 6집

     ●‘더 세컨드 로’(The 2nd Law) 매튜 벨라미(기타·보컬·키보드) 크리스 볼첸홈(베이스·보컬) 도미닉 하워드(드럼)로 구성된 영국의 국가대표 밴드 뮤즈가 3년 만에 정규 6집 ‘더 세컨드 로’를 들고 나타났다. 고교 물리 시간에 배운 ‘열역학 제2 법칙’을 뜻하는 앨범 타이틀에 대해 벨라미는 “앨범 작업 즈음 뉴스에서 나오던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악화 등 글로벌 재앙들을 보면서 모든 문제들이 과도한 성장에 대한 우리의 집착에서 초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이 앨범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수록곡 13곡 가운데 11곡을 만든 리더 벨라미의 고뇌와 영민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뮤즈의 상징인 록오페라 혹은 심포닉 록 스타일의 곡과 초저음역대의 베이스라인을 강조한 일렉트로닉의 한 부류인 덥스텝을 차용한 노래들이 공존하는 것. 런던올림픽 주제가로 일찌감치 공개된 ‘서바이벌’, ‘슈프리머시’ 등이 전자라면,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이 “뮤즈의 모든 곡들 중 최고”라고 극찬한 ‘매드니스’가 후자에 해당한다. 클래식에 대한 동경과 덥스텝에 대한 끌림을 한데 버무려놓은 연작 ‘더 세컨드 로: 언서스테이너블’, ‘더 세컨드 로: 아이솔레이티드 시스템’에 이르면 록밴드 이상을 지향하는 듯한 벨라미의 야심마저 느껴진다. 워너뮤직.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방은진 감독 “배우는 한마디 칭찬에 날개 다는 사람들 배우 출신 장점 최대한 살려야죠”

    20대에도 그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비련의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냘픈 체구에서 나온 울림 있는 목소리에는 강단과 카리스마가 묻어났다. 남다른 삶의 궤적에서 비롯됐을 터다. 여고 시절 그는 연극배우를 동경했다. 어린 마음에도 연극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울 것 같아 대학은 의상학과를 다녔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도 했지만 사표를 던지고 민중극단을 찾아갔다. 스물네 살 되던 해 ‘처제의 사생활’(1989)로 데뷔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아니었지만 금방 주목받았다. 하지만 “연극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태백산맥’(1994)을 통해 충무로로 움직였다. 이듬해 박철수 감독의 ‘301·302’로 웬만한 여우주연상은 모두 휩쓸었다. “그때 상업 영화 출연 제안이 쏟아졌는데 마다했다. 외려 ‘지하철 1호선’ ‘햄릿’ ‘리어왕’ 등의 연극을 병행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대중의 사랑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고단한 길을 택했다. IMF 외환 위기가 오면서 출연하려던 몇몇 작품이 엎어졌다. 그사이 나이가 들었고 대단히 예쁘지도 않은 내가 여주인공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배우로서의 포지션이 흔들렸다.” 그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낯선 영화 연기를 잘하고 싶어 카메라와 렌즈를 가까이 하다 보니 연출이 눈에 들어왔다. 1999년 김진한 감독의 단편영화 ‘장롱’에서 주연은 물론 조연출을 맡아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박철수 감독이 조경란의 소설 ‘식빵 굽는 시간’을 건네며 각색과 연출을 권유한 것도 그 무렵이다. 또 다른 작품의 각색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상업 영화의 장벽이 이렇게 높은 건가. 의심과 후회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출사표를 던졌는데 물러설 순 없었다. 원칙주의자라 자신과 타협을 못 한다. 한 작품이라도 완성해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정신적 지주인 이창동 감독이 “각색 말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감수해 주며 “급하게 생각하지 마. 넌 마흔이지만 난 마흔셋에 데뷔했다.”고 다독였다. 고진감래라고 2005년 영화 ‘오로라공주’를 내놓았다. 감독을 준비한 지 꼭 6년 만, 불혹의 나이에 바라던 입봉을 했다.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출력은 평단의 지지를 끌어냈다. 또 94만여명의 관객을 모았을 만큼 대중 반응도 괜찮았다. 방은진(47) 감독 얘기다. 그가 7년 만에 ‘용의자X’(오는 18일 개봉)를 들고 관객들과 만난다. ‘용의자X’는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용의자 X의 헌신’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수학 천재였지만 평범한 고교 수학 교사로 사는 석고(류승범)는 이웃집 여자 화선(이요원)을 마음에 품는다. 어느 날 밤, 화선이 자신을 괴롭히던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석고는 화선을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빈틈없는 알리바이 때문에 고민하던 담당 형사 민범(조진웅)은 자신의 고교 동창 석고가 화선의 옆집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범의 후각이 발동하면서 영화는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다. 방 감독은 원작 소설의 팬이었다. “이 소설 죽인다. 누나가 했으면 좋겠다.”는 ‘오로라공주’의 최영환 촬영감독 말을 듣고 책장을 펼친 뒤 단박에 반했다. 얼마 뒤 일본에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시나리오로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명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준비하던 영화가 두 편쯤 투자 단계에서 엎어져 좌절하던 방 감독에게 지난해 봄 CJ엔터테인먼트가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방 감독과 CJ의 기획1팀은 일본판 영화 ‘용의자X의 헌신’과 차별화하기 위해 원작 소설에 메스를 들이댔다.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석고)와 물리학자 유카와의 두뇌 싸움에 초점을 맞춘 원작과 달리 방 감독은 석고의 화선에 대한 헌신적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 7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출산했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영화 초중반 템포가 떨어진다거나 세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 정적으로 흘렀다는 지적도 알고 있다. ‘오로라공주’ 때와는 또 다른 완급 조절의 아쉬움이 있다. 처음 크랭크업 했을 때만 해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관객 반응이 두렵다. 후후후.” 배우 출신, 게다가 손꼽히는 연기파였던 만큼 배우들은 방 감독과 작업하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좀 다른 거 없을까.”, “한번 더 가볼까.”란 뜬구름식 주문이 아니라 딱 꼬집어 지시하기 때문이다. 조진웅은 제작 보고회에서 “선배라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단점은 너무 긁어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대해 방 감독은 “배우들과 충분한 대화와 리허설을 하고 나서 촬영에 들어가면 순간에 나오는 감정을 담으려고 한다. 테이크를 더할수록 감정이 익어버려 기계적으로 나오기 쉽다.”고 설명했다. 배우 출신이라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오로라공주’ 때는 딱 보면 배우가 얼마큼 더 끄집어낼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테이크(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연속 화면)를 더 안 가고 끝내 버렸다. 그땐 연기자 출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감독은 배우들의 최대치 이상을 끌어내야 한다. 당장은 징글징글해도 그래야 배우가 또 작업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 출신이란 꼬리표는 어떻게 해도 뗄 수가 없다. 연출만 했던 사람들의 막연한 디렉션에 비해 디렉션이 구체적이라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역으로 배우의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배우들에게 물어봤다. ‘난 지금 컷이 괜찮은데 어때?’, ‘그럼 오케이한다’라고 배우를 신뢰한다는 걸 끊임없이 보여줬다. 경험상 배우들은 한마디 칭찬에 날개를 달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 출신이란 걸 최대한 장점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활짝 웃었다. 충무로에서 입봉은 하늘에 별따기다. 더 어려운 건 두 번째 영화를 찍는 일이다. 하늘에 별 딴 사람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 통상 감독들의 10~15%만 행운을 쥘 수 있다. 첫 영화까지 6년, 두 번째 영화까지 7년이 걸린 방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은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슈스케4 첫 생방송 미션 공개…”탈락자 1팀 아닐수도”

    슈스케4 첫 생방송 미션 공개…”탈락자 1팀 아닐수도”

    12일(오늘) Mnet 슈퍼스타K4(슈스케4)가 대망의 첫 번째 생방송을 앞둔 가운데, 생방송 첫 번째 미션이 공개됐다. Mnet은 “오늘 밤 슈퍼스타K4 생방송의 주제는 바로 ‘첫사랑’”이라며 “생방송 진출팀들의 첫 사랑에 대한 추억이 공개될 예정이며, 첫사랑에 얽힌 노래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것이 오늘 밤의 미션”이라고 밝혔다. 슈퍼스타K4 김태은 PD는 “생방송 무대에서의 최고의 공연을 위해 지난 50여일 간 참가자들이 합숙 생활을 하며 많은 준비를 했다. 기대해도 좋다.”고 당부했다. 실제 생방송 진출자들은 8월 말 부터 합숙 생활을 하며 국내 내로라하는 음악 전문가의 지도하에 노래와 퍼포먼스 연습에 매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래와 퍼포먼스 외에도 이들의 훈훈한 스타일 변신 역시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전망. 이번 생방송 본선에는 김정환, 계범주, 로이킴, 유승우, 정준영(이상 남성 솔로), 안예슬, 이지혜(이상 여성 솔로), 딕펑스, 볼륨, 허니지(이상 그룹) 등 총 10팀이 확정된 상태다. 이번 시즌 생방송 심사 기준은 대국민 문자투표 60%, 심사위원 점수 30%, 사전 온라인투표 10%로 확정됐다. 지난 시즌의 경우 대국민 문자투표 60%, 심사위원 점수 35%, 사전 온라인투표 5%였다. 단 사전 온라인투표는 두 번째 생방송부터 적용된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본인이 지원하는 참가자에게 문자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휴대폰 번호 #0199로 참가자의 이름 또는 무대 순서를 문자전송 하면 된다. 문자 투표는 생방송 시간 동안에만 카운팅 된다. 또 참가자들의 생방송 무대 음원은 매주 월요일 낮 12시 엠넷닷컴, 멜론, 벅스, 올레뮤직 등 각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첫 음원 출시는 15일 월요일 낮 12시가 될 예정. 시즌2에서 강승윤이 부른 ‘본능적으로’, 시즌 3에서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동경소녀’처럼 음원 판도를 뒤흔드는 공전의 히트곡이 생방송 기간 동안 얼마나 등장할 지도 관심사다. 슈퍼스타K4 생방송은 오늘(12일)부터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빌딩에서 2주간 진행되고, 10월 26일부터 4주간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다. 마지막 결승전은 11월 23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2012년 대한민국 국민이 선택할 ‘슈퍼스타’는 과연 누가 될 지, 앞으로 7주간 매주 금요일 밤 11시 Mnet 슈퍼스타K4 생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뉴스 WHO] 40대 대법관 후보자 김소영 대전고법 부장판사

    [뉴스 WHO] 40대 대법관 후보자 김소영 대전고법 부장판사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된 김소영(46·사법연수원 19기) 대전고법 부장판사에게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1990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김 후보자는 서울과 지방의 각급 법원에서 민사, 가정, 형사, 행정 등 다양한 재판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02년에는 여성 법관 최초로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에 임명돼 대법원 판결의 체계적 분류 작업, 종합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개선 사업 등을 주도하면서 행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에는 여성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지원장에 임명됐다. 대전지법 공주지원장을 맡으면서 자상함과 통솔력으로 지원 내에서는 물론 유관기관에서도 신망이 두터웠다. 또 2008년에는 여성 첫 법원행정처 정책총괄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양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양형기준제도를 확립하는 초석을 마련했다. 이때 뇌물죄 등 비리 관련 범죄에 대한 양형을 엄정하고 일관성 있게 정립한 공로로 현직 판사로는 처음으로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근정포장을 받았다. 윤성식 대법원 공보관은 김 후보자에 대해 “대법관에게 필요한 덕목을 고루 갖추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헌신해 온 대표적인 여성 법관”이라면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인 2011년 11월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유족회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모씨 등 피해자 30명에게 국가가 모두 27억 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장기 전속계약을 불공정 거래로 판시해 과징금을 물린 판결도 김 후보자의 주요 판결로 꼽힌다. 김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제청 소식에 법조계에서는 ‘기수파괴, 관행 파괴’ 등 파격 인사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초 이 자리는 안대희 대법관의 후임으로,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검찰 몫이었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추천한 한명관(53·15기) 대검찰청 형사부장과 이건리(49·16기) 공판송무부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연수원 19기 후보자를 제청했다. 관행보다는 대법관 다양화와 여성 대법관 임명에 대한 시대적 여론을 더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가 임명되면 역대 여성 대법관 중 최연소 대법관이 된다. 전체 13명인 대법관 가운데 선임인 양창수(6기) 대법관과는 13기 차이가 난다. 박보영(16기) 대법관보다도 3기수 아래로 기수 파괴인 셈이다. 대한변협(회장 신영무) 측은 “여성대법관 후보가 제청된 건 환영할 만하나 재조 출신으로만 제청이 이루어진 건 유감”이라고 밝혔다. 부친이 검사였던 김 후보자는 어릴 때부터 법조인을 동경해 왔다. 김 후보자의 부친은 서울지검 1차장검사를 끝으로 개업한 김영재 변호사이고, 남편은 대검찰청 첨단수사범죄수사과장을 지낸 백승민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불교 신자로 오로지 법리로만 판단해 내리는 기계적 판결과 오류를 피하려고 화두를 통한 참선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이정미 재판관이 유일한 여성이다. 이 재판관은 2003년 임명된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기회 주는 꿈의 언어” “한글 몰라도 한류파”

    “기회 주는 꿈의 언어” “한글 몰라도 한류파”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14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 속으로 퍼지는 한류의 속도와 기세가 어느 때보다 빠르고 거세다. 한글을 공식 표기문자로 도입한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의 예를 굳이 꺼내 들지 않더라도 외국인이 한글을 접할 기회는 자연스레 많아졌다. 566돌 한글날을 맞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글의 의미를 되짚어 봤다. ●세바라 24시간 한국어공부 “한국말을 배우면 제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인 세바라(24·여)는 늘 한글 교재를 끼고 산다. 그에게 한글은 꿈을 이루는 데 반드시 갖춰야 할 준비물이다. 24시간 영어회화나 토익 책을 끼고 사는 우리 대학생들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세바라의 일과는 한국어 공부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온드림다문화가족교육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비슷한 또래의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한국어로 육아·타향살이·드라마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다. 고급반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쉼 없이 대화하다 보니 한국어가 쑥쑥 늘었다. 대화에 불편함이 없고 경제위기·입사추천·배려·존경 등 외국인에겐 어려운 단어들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틈 나는 대로 TV를 보며 대사를 따라하는 것도 공부다. 아직도 어려운 건 반말이다. 세바라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께서 항상 ‘어른말’을 쓰신다.”면서 “그러다 보니 우리는 친구들끼리도 서로 할머니 대하듯 말한다.”고 웃었다. 세바라는 “지금보다 한국어를 더 유창하게 해서 꼭 한국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는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며 동경하던 한국을 좀 더 알고 싶어 현지 대학 한국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경제가 전공이지만 한글 공부에 더 매진했다. 대학교 2학년이던 2008년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프로그램을 통해 아주대에서 3개월간 유학했다. 1년 전부터 그의 주소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번지다. 과 동기인 산자르(24)와 결혼하고서 GS건설에 입사한 산자르를 따라 한국에 왔다. 세바라는 “한류 열풍이 불어닥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어 능력이 엄청난 경쟁력”이라고 귀띔했다. 교류도 활발해 우즈베키스탄에 지사를 파견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어를 잘하면 취업 기회도 많고 연봉도 잘 받는다.”면서 “한국 기업에 취직해 한국에 사는 게 꿈인데 혹시 안 되더라도 우즈베키스탄의 한국지사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세바라에게 한국어는 희망이고, 기회다. ●마이클 “언어공부는 선택일 뿐”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한국을 사랑해요. 언어공부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잖아요.” 마익흘은 올해로 한국생활 5년차인 미국인이다. 본명인 마이클 아론손(29)을 한국식으로 부른 ‘마익흘’로 자신을 소개할 만큼 한국사랑이 남다르다. 그는 서울 지하철송·김밥송·김연아송 등 한국을 주제로 한 뮤직비디오 280여편을 유튜브에 올린 ‘UCC스타’로도 유명하다. 미국뉴욕대(NYU)에서 동아시아 지역학을 전공하던 그는 2005년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서울에서 보내면서 한국에 푹 빠졌다. 묘한 매력에 2008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강남 대형 영어학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인디밴드 ‘델리스파이스’와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해 인디뮤지션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꾸지만 그는 한국말을 못한다. 대화는 대충 알아듣지만 한국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어순이 다르고 발음도 어려운 한국말을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단다. 직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자발적으로 영어를 쓰려 하는 한국인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쓸 일도 별로 없다. 2년 전 마익흘은 자신의 홈페이지(www.timetorocktheworld.com)에 ‘Hangul Rap’(한글랩)’이란 제목의 뮤직비디오를 올렸다. 4분간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영어랩 가사를 보면 외국인에게 한글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엿볼 수 있다. ‘알파벳이 겨우 24개? 와우! 서점에서 책보고 혼자 배울 만큼 쉬워.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쉽고 논리적인 표음문자야. 하지만 정확하게 발음하는 건 참 어려워. 카메라(CAMERA), 아트(ART)처럼 ‘A’는 ‘ㅏ’인데 핫(HOT)은 ‘O’인데도 ‘ㅏ’로 읽혀. 서울(SEOUL), 버스(BUS), 컴퓨터(COMPUTER)는 다 ‘ㅓ’ 발음인데 스펠링은 다 달라. ‘ㅂ’은 ‘B’도 되고 ‘P’도 되고, ‘ㄲ·ㄸ·ㅃ’ 같은 건 어떻게 읽어야 할지 헷갈려.’ 사실 마익흘은 한국어 관련 질문에는 예민했다.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자신에 대해 한국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는 “한국어를 안 써도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면서 “말을 배우는 것도, 배우지 않는 것도 모두 개인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영화는 모르는 사람과 소통해서 좋아”

    “영화는 모르는 사람과 소통해서 좋아”

    학창 시절 타이완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을 보고 배우의 꿈을 꿨다. 주오대학에선 연극동아리를 직접 만들었고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39)를 동경해 그의 ‘스키비토’(연예인 곁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1년 데뷔 이후 쌓아온 필모그래피만 어느새 50여 편. 또래인 오다기리 조(36), 다다노부와 더불어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로 자리 잡은 가세 료(38)의 얘기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으로 돌아온 가세 료를 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 전당에서 만났다. 오래전부터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팬이었기에 일본에서 촬영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제 발로 찾아가 오디션을 볼 만큼 의욕을 불살랐다. 즉석에서 시나리오를 건넨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15분을 줄 테니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연기해 보라.”고 주문했다. 수많은 영화에서 섬세하고 여린 감성의 캐릭터를 연기했던 가세 료는 이번에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집착하는 들짐승 같은 남자 노리아키 역을 맡았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마주 보고 소통하는 걸 싫어한다. 중요한 얘기도 문자메시지로 대신한다. 하지만 노리아키는 어떻게든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려는 의지가 있다. 아날로그적인 인간일 뿐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나 또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다른 나라 거장들과 작업한 건 처음이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를, 거스 밴 샌트와 ‘레스트리스’(2011)를 찍었다. 그는 “일본 감독들은 현장에서 배우가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감독 지시에 따르기를 원한다. 반면 서구 감독들은 충분히 토론하고 정해진 틀이 아니라 느끼는 대로 연기할 것을 주문한다. 그래서 더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거스 밴 샌트와 작업할 때는 배우와 스태프들이 감독의 집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고 뒹굴뒹굴 놀다가 날씨가 좋으면 슬슬 밖으로 나가 소풍을 가듯 촬영했다. 독립영화스러운 작업 방식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감독 중에는 구로사와 기요시와 한 작업이 가장 편하다. 그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 한국 감독 중에는 봉준호나 홍상수 감독과 꼭 한번 일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불혹을 앞뒀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 같은 외모를 갖고 있다. 유독 여성 팬이 많은 이유를 알 만했다. 그는 “카메라로 찍어 놓으면 더 어려 보인다. 그게 싫으면서도 고맙기도 하다.”면서도 “아이가 있는 아버지처럼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를 하는 가장 큰 즐거움은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촬영 현장은 물론 지금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전혀 모르는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오래, 길게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까닭이다. 인디 영화라든지 다른 나라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밝혔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美의회 한·미 FTA 반대론 ‘꿈틀’

    미국 의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론이 대두되고 있다. 대선 등을 앞두고 자국 산업 보호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연출하는 의회 특유의 제스처로 보이지만 양국 간 무역불균형을 지적, 통상압력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따르면 상원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지난달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확대됐다.”고 지적한 뒤 “10년 이상 한국과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상품 수출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밥 케이시 JEC 위원장도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한·미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제조업 무역 불균형 현상이 더 심화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FTA 체결을 반대했던 마이크 미쇼드(민주당) 의원도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미 FTA는 미국 기업들을 한국의 환율 조작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인사]

    ■국가인권위원회 ◇과장△운영지원 조영호△장애차별조사1 정혜웅 ■제주도 △기획관리실장 공영민△지식경제국장(골목상권살리기추진단장 겸임) 오태문 ■예금보험공사 ◇신규 임용△이사 정왕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글로벌전략센터장 노태호 ■강릉원주대 △해람문화관장 최옥영◇대학장△문화 이은희△과학기술 이상돈 ■한국방송통신대 △부총장(대학원장·프라임칼리지학장 겸임) 이동국△교무처장(경영대학원장 겸임) 한복연△교무부처장(교양교육원장 겸임) 고성환△학생처장 윤병준△학생부처장 장미경△기획처장(산학협력단장 겸임) 안병국△기획부처장 강상규△중앙도서관장 손미영△DMC원장 김보원△원격교육연구소장 정민승△학보사 주간 문병기△서울지역대학장 이효원 ■MBC △보도국 국제부 도쿄특파원 유상하 ■코리안리 ◇신임△상무대우 강성범△준법감시인(상무대우) 황찬◇승진△특종보험부장 이대우△기획관리실 경영혁신팀장 전현수△동경사무소장 신현호△경리부장 정필원△차세대지원팀장 이기성△손사위험부장 송영흡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전무△경영지원본부 김종환◇상무△기업고객사업본부 박주황 오찬주◇이사△컨슈머사업본부 김진환△경영기획실 유영석△서비스사업본부 김성배△기업고객사업본부 박성혁 조정호△일반고객사업본부 오유열△기술지원본부 송매리
  • [부고]

    ●박계동(전 국회 사무총장)씨 부친상 25일 고려대 구로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857-0444 ●박철원(홍콩대 경영학과 교수)씨 부친상 한광표(전 장기신용은행 이사)김해준(대우조선해양 이사)조정일(화성산업 전무)씨 장인상 2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8일 오전 5시 30분 (02)2227-7580 ●이상민(부산일보 문화부 선임기자)씨 모친상 26일 포항 성모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10-5528-3592 ●최풍근(전 경희대 서울캠퍼스 총장비서실장)씨 별세 경민(구산토건 주임)씨 부친상 홍석민(대성전기 과장)씨 장인상 26일 강동경희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7시 30분 (02)440-8922 ●정인용(대성한의원 원장)창용(아주캐피탈 회계팀장)씨 부친상 26일 한양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5시 (02)2290-9453 ●고희범(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씨 모친상 25일 제주 부민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7시 (064)744-4444 ●주춘렬(세계일보 베이징특파원)씨 장인상 26일 강동경희대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2)440-8923 ●김건태(MBC 교양제작운영팀 부장)씨 모친상 2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8일 오전 9시 (02)2258-5940 ●전혜원(울산 석플란트 원장)승엽(연합뉴스 미디어랩 기자)씨 부친상 26일 울산 굿모닝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52)256-7592 ●이운안(한국보도사진가협회 회장)씨 자녀상 26일 의정부 성모병원, 발인 28일 오전 8시 (031)844-4040
  • 짝퉁장비로 훈련한 대한민국 특전사

    짝퉁장비로 훈련한 대한민국 특전사

    서울 강동경찰서는 26일 중국산 가짜 특수장비를 군부대에 납품한 최모(51)씨 등 3명을 사기 및 상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석모(32)씨 등 8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최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위조 군 장비 8종을 특전사령부와 육해군 군수사령부 등에 납품해 5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기는 등 총 16억원 상당을 가로채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비는 별다른 제지 없이 각 부대에 납품되거나 납품을 앞두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군의 허술한 검수 체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군부대 외에 대학, 병원 등에도 불량 영상분석기와 혈액응고측정기 등을 납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조달청 전자입찰 웹사이트인 ‘나라장터’에 군 물품 입찰 공고가 뜨면 가장 낮은 금액을 써서 무조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온라인 중고사이트를 통해 장비를 시중가보다 20~30% 낮은 가격에 산 뒤 수입필증 등 서류를 조작하고 도금, 코팅을 해 검수관을 속였다. 최씨는 홍콩에 부인 이름으로 유령회사를 차려 정상적인 수입 절차를 밟은 것처럼 꾸몄다. 이렇게 들여온 장비는 공범인 한모(39)씨와 서모(32)씨를 통해 각 군부대에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특수부대 출신인 한씨와 서씨는 최저가가 낙찰되는 전자입찰 단계부터 검수, 납품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들여온 장비들은 ‘비무기체계’에 속하는 일반 품목이라 방위사업청이 아닌 사령부나 각 부대의 검수를 받는 데다 계약 부서와 이원화돼 있어 적발이 어려웠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한씨는 경기도 A소방서에 근무하는 8급 공무원으로 가족 명의로 4개의 유령 납품업체를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과 함께 입건된 인천경찰청 소속 특공대원 김모(34)씨는 수입해 온 가짜 장비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해양경찰청 창고를 몰래 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유통된 물품 중에는 개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매몰자 탐지용 내시경이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잠수용품 등 첨단 장비도 포함돼 있지만 문제없이 검수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초순간진화기나 자전거 등 몇몇 장비는 아직 일선 부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할 것을 각 군부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군 수사기관에 공조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이색사업 눈에 띄네

    이색사업 눈에 띄네

    사병 월급이 내년에 15% 인상된다. 상병 기준으로 올해(9만 7500원)보다 1만 4000원 오른 11만 2100원이다. 이등병도 9만 3700원을 받는다. ‘짬밥’이 돼야 받을 수 있었던 목도리·귀덮개·축구화도 1인당 1켤레씩 지급된다. 한 사람당 한 켤레씩만 지급됐던 운동화·슬리퍼·방한양말도 내년부터는 두 켤레로 늘어난다. 올해 전방부대 일부 장병(8만 6000여명)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된 ‘상병 건강검진’은 27만여명의 모든 상병으로 확대된다. 사병 지원 경비를 올해 1조 1923억원에서 내년 1조 5111억원으로 26.7% 증액하는 등 정부가 25일 내놓은 예산안 가운데는 눈에 띄는 이색 사업이 많다.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성범죄자와 관련해 전자발찌 수신율도 높이기로 했다. 지금은 2세대(2G) 통신망을 기반으로 해 지하 등지에서 수신율이 떨어지지만, 내년에는 3세대(3G) 기반으로 바꿔 사각지대를 없앨 방침이다. 이를 위해 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성범죄자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도 신축된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안에 지어질 예정이다. 대형 관제상황판을 만들어 전국 성범죄자들의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파악한다는 구상이다. 귀농귀촌 사업도 처음으로 나랏돈(112억원)을 지원하는 예산사업으로 정식 채택됐다. 윤동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재정담당관은 “일자리 창출 및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 대비에 귀농귀촌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예산안은 귀농귀촌이 정부의 정책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K팝 등 한류를 활용한 ‘글로벌 K-푸드(FOOD) 프로젝트’도 내년부터 신규사업으로 추진된다. 모두 173억원을 들여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 다문화 가족 지원 사업 가운데 ‘결혼이민자 코디네이터’도 눈길을 끈다. 코디네이터 50명을 뽑아 결혼이민 등에 관한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다. 폭력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작정이다. 내년에 시범사업을 한 뒤 확대할 방침이다. 책정된 예산은 9억 5000만원이다. 골절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홀로 사는 노인)의 집안을 청소해 주고 세탁을 지원해 주는 사업도 내년부터 새로 시작한다.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시켜주는 사업에도 169억원이 배정됐다. 가스 배관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에 1.5~2t 규모의 액화석유가스(LPG) 저장탱크를 설치하는 사업도 신규 추진한다. 기존 LPG 가스를 배달했을 때와 견주면 연간 에너지 조달 비용이 24%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부고]

    ●이배용(국가브랜드위원장)민용(주문진규사 대표)씨 모친상 주학기(전 HK 통상 대표)안기정(전 한국은행 국장)김재건(전 상명대 부총장)김영건(태성메탈 대표)씨 장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631 ●서건석(수도그룹 회장·전 반도라이온스클럽 회장)씨 부인상 철원(수도신역 대표이사)주원(수도SI 대표이사)씨 모친상 김주환(김주환안과 원장)남기수(태원물산 감사)씨 장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65 ●김명섭(동일기술공사 사장)인섭(인테크시스템 대표)씨 모친상 정진태(보성출판사 대표)씨 장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50분 (02)3010-2236 ●김선학(농협사료 총무부장)씨 부친상 심재욱(정병원 영상의학원장)씨 장인상 25일 강동경희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02)440-8912 ●김석순(메리츠종금증권 상무보)씨 부친상 25일 고려대 구로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857-0444 ●김철수(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씨 부친상 25일 부산 남천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051)626-5125 ●박용옥(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평안남도지사, 전 국방부 차관) 장모상 25일 서울 강북삼성병원 영안실 7호, 발인 27일 02-2287-2620
  • [책꽂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책과 함께 펴냄) 요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두고 과거사 인식 논란이 한창인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현대사가 괴뢰국 만주의 경험에 뿌리 박고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2차대전 전범이었으나 전후 일본 자민당 체제의 막후 실력자가 됐고, 박정희는 한국의 근대화를 이룬 인물로 평가받는다. 저자들이 만주국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새로운 국가건설, 그러니까 군부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서 민주주의는 압살한 채 민족개조와 근대화를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그 총기획자가 바로 기시 노부스케이고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를 통해 그것을 동경하고 배웠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한국에서 벌인 근대화 운동이라는 것은 모조리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에서 벌였던 일을 고스란히 베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1만 7000원. ●관절염, 허리병 수술 없이 깔끔하게 치료하기(민도준 지음, 태웅출판사 펴냄) 류머티즘 내과 전문의이자 대한류마티스의사회 부회장인 저자가 관절염과 류머티즘, 허리병을 실제로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이 질병의 핵심인 조직 손상과 과민화를 해결하는 신경펩티드를 소개하고, 관련 이론과 실제 치료 사례를 기술했다. 효과와 안정성이 증명된 치료법을 소개한다. 1만 8000원. ●한권의 책을 위하여(김언호 지음, 한길사 펴냄) 국내 출판계의 대표적 인물인 저자가 책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담았다.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해 출판 운동에 매진하면서 2700여권을 기획한 저자는 책에서 왜 헤이리를 만들었는지, 왜 지금 책과 서예가 필요한지 등 출판 전반에 대한 생각, 강연 내용, 국내외 인사들과 나눈 이야기 등을 전한다. 2만원. ●가장 위험한 책(크리스토퍼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 민음인 펴냄) 하버드대 고전학 교수인 저자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책으로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를 지목했다. 책 자체는 평범한 서술이었건만 나중에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증빙자료로 오독됨으로써 나치즘을 낳았기 때문이다.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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