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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4) 정동제일교회 ‘벧엘 예배당’

    ‘한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정동제일교회(서울 중구 정동34·사적 제256호). 정동제일교회의 초석이자 신자 수 150만명에 달하는 한국 감리교의 요람이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교를 펴나간 ‘하나님의 집’(벧엘). 이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건물 안에는 교회사에 남을 숱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서울시청 건너편 덕수궁 돌담 길을 따라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정동극장과 이화여고, 시립미술관에 둘러싸인 아담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크지 않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게 벧엘예배당. 지금은 주변의 높은 빌딩들에 가려 왜소해 보이지만 1898년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라틴십자형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을 때만 해도 이 ‘언덕 위의 신식 건물’은 단연 장안의 명물이었다. 하나님 신앙을 상징하는 중앙의 높은 천장지붕과 양측 측랑의 삼랑식(三廊式)에, 출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장방형의 긴 수평선을 갖추고 있다. 중앙의 높은 수직과 장방형 긴 수평방향의 내부공간이 유럽 전통의 고딕양식을 띠고 있지만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천장높이의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전통 고딕양식에서 탈피한 느낌이다. 삼각형의 박공 지붕형태가 고딕 교회에서 흔한 뾰족첨탑을 대신하는 게 독특하다. 기둥은 처음 지어질 땐 없었지만 증축과정에서 생겨난 것.4각 또는 원형의 석조기둥이 중앙 신랑과 양측 측랑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 내부 기둥을 통해 가운데 신랑과 양쪽 측랑이 구분되어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창문의 첨두아치와 격자무늬 장식창은 일반적인 고딕형태보다 단순화된 형태로, 나중에 교회창문의 모형이 됐다. 제단은 내부 전면에 4각의 형태로 외부에 약간 돌출되어 있고 내부의 반원형 아치는 전통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들어 들여온 강단 성구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것으로 이후 모든 교회들이 같은 형태의 성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1885년 부활절에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서울 정동구역에 일군 역사는 곳곳에 스며 있지만 이 벧엘예배당은 그중에서도 핵심. 미국 감리교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의 책임을 부여받아 한국에 파송돼 온 선교사 아펜젤러 일행이 처음 치중했던 것은 선교가 아닌 교육사업이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가 처음부터 선교를 강행하기엔 무리였다. 아펜젤러를 비롯해 당시 선교를 위해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일행이 고종으로부터 허락받은 것도 교육과 의료사업에 국한됐다. 그래서 1887년 시작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그같은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탄생한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은 벧엘예배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펜젤러는 한국에 온 뒤 정동의 조선인 집을 사들여 내실 한 방을 지성소로 꾸며 첫 예배처로 삼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정동예배처’. 한국 감리교와 정동제일교회의 태동지로, 이곳에서 한국선교회가 창시됐으며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남자들은 교회이자 학교인 아펜젤러의 집에서 모였고 여자는 함께 파송된 스크랜튼 여사의 집과 이화학당에서 모였다.1885년 10월11일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한 한국개신교 최초의 성찬예배가 드려졌는데 정동제일교회는 이날을 창립일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전도하는 것은 여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펜젤러는 우선 일본 공관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이 모임이 성장해 서울연합교회로 발전했으며 초대 담임목사로 아펜젤러가 선임됐다. 그러다가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복음선교사업도 본격화되었다. 이같은 흐름을 타고 세워진 게 바로 벧엘예배당이다. 예배당 건립비용(8048.29원, 조선인 모금액 693.03원)은 미국 선교부가 대부분 충당했고 한국의 교인들도 헌금을 했지만 극히 일부분이었다. 건립 당시의 예배당 규모는 길이 70자, 너비 40자, 높이 25자,115평. 지붕은 함석으로 꾸몄고 사방으로 유리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하였다.1897년 6월 거의 완공됐을 무렵 배재학당 방학식을 먼저 치렀고, 헌당예배는 그해 12월26일 성탄절에 드렸지만 실제 건물이 완공된 것은 이듬해인 1898년 10월이었다. 2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세워진 벽돌예배당은 단연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당시만 해도 검은 기와나 초가지붕에 흙으로 쌓은 집 일색이었으므로 당연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이 건물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줄을 이었다. 처음 보는 십자가 모양 예배당 형태 자체는 물론, 남쪽 귀퉁이에 솟은 종탑은 퍽 이색적인 것이었다.“교회당에 지붕을 올린 후 8개월 동안 고종황제를 비롯해 시골에서 온 농부들까지도 교회당의 구조에 대해 경이로움을 갖고 구경하러 왔다. 교인들과 외국인들도 감격에 겨워 교회당 주변을 맴돌았다.”(1897년 아펜젤러 연례보고서) 예배당이 처음 건립됐을 때만 해도 의자 없이 마룻바닥에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았으며 남녀석 가운데에는 휘장을 쳐 남녀를 구분했다. 예배 때면 창문을 통해 예배 모습을 들여다보는 구경꾼들로 혼잡을 빚곤 했다.“주로 이화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성가대와 찬송소리를 듣기 위해 주일마다 교회창문은 구경꾼들로 메워졌고 제단에 나와 남녀 교인들이 나란히 무릎꿇고 예수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마시는 그 거룩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정동제일교회 구십년사).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혼례도 이곳에서 열렸다. 예배당이 건립된 이듬해인 1899년 7월14일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학생 두쌍이 합동결혼식을 가진 것으로 이후 이른바 ‘신식결혼’‘연애결혼’이 확산되었다.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거리는 당시 문학예술인들의 중요 활동처. 나도향 전영택 등이 작품활동을 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창조, 백조 등의 주요 문학동인지가 탄생했는가 하면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일제치하 벧엘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정동교회 역시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감리교 대표가 9명으로 이 가운데 정동교회 교인 2명이 옥고를 치렀다. 특히 2만 5000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이 서울 중심부에 몰려들면서 정동교회 주변에 살던 신자들이 성밖으로 밀려나 예배 참석자가 사뭇 줄었고 1912년 한 해에만도 교인 54명이 상하이, 만주로 망명하거나 이민을 간 것으로 정동교회측은 밝히고 있다. 벧엘예배당은 1916년 북편을 증축한 데 이어 1926년 1500명 수용 규모로 60평을 증축하면서 원래의 라틴십자가형에서 지금의 사각형으로 변해 원형을 잃은 아쉬움이 있다. 6·25전쟁 중엔 폭격을 받아 예배당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렸으며 이때 예배당에 있던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도 부서졌다.1977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 ‘문화재 예배당’으로 불려 왔으며 1987년 화재로 소실된 내부 보수와 1990년 종탑 보수,2001년 건물붕괴 우려에 따른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kimus@seoul.co.kr
  • [새영화] 18일 개봉 ‘가족의 탄생’

    [새영화] 18일 개봉 ‘가족의 탄생’

    “사이다 없으면 목이 막혀서 어떻게 계란을 먹나 몰라요. 으흐흐….” 기찻간 옆자리에 앉은 참한 아가씨한테 계란과 사이다를 건네며 작업하는 왠 총각의 ‘주접’. 영화의 도입부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면 어째 그냥 날린 작업용 멘트같지가 않다. 마치 감독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말 같다. 가족이란 게, 밉든 곱든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가족이란 게, 마치 퍽퍽하니 목 막히게 하는 계란이라면, 그럼 사이다는 뭘까? 탄산가스처럼 알싸한 사랑? 아니면 왠만한 건 그냥 꿀떡꿀떡 삼키게 하는 신산스러운 삶의 생채기들?‘가족의 탄생’(제작 블루스톰)은 제목 그대로 가족을 완전히 분해했다 다시 조립한다는 상상력으로 그려낸 세가지 얘기로 구성됐다. # 에피소드 1 어디를 어떻게 떠돌다 온지 모를 형철(엄태웅)이 어느날 누나 미라(문소리) 집에 나타난다. 그런데 마누라를 데리고 왔단다. 이 마누라가 문간에 들어서는데 미라는 기절할 뻔했다. 자기보다 스무살은 많아 보이는 고두심인 것이다. 여기다 ‘+1’이 있다.‘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도 나타난다. 그래서 시작된 이 4명의 기묘한 동거. 영화는 ‘느닷없이’ 가족이 된 이들이 서로를 더듬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는데, 연기와 연출을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 에피소드 2 선경(공효진)은 모든 게 짜증스럽다. 맨날 사랑타령하며 남자 갈아치우는 엄마 매자(김혜옥) 때문이다. 사랑하면, 잘 살면 그만인데 맨날 돈이나 뜯기는 모양이다. 이번에 만난 남자와는 애도 낳았고, 더 웃긴건 이 남자는 엄연한 가정이 있다. 그런데 이 엄마, 대책없이 덜컥 죽을 병에 걸린다. 언제나 청춘물 주인공 같은 공효진과 TV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주책맞은 막내 할머니로 나온 김혜옥의 앙상블이 눈길을 끈다. 슈렉2 장화 신은 고양이의 해맑은 눈빛연기도 나온다. # 에피소드 3 경석(봉태규)은 채연(정유미)에게 불만이 많다. 너무도 착하고 예쁜데, 만인의 연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저려서, 모두에게 다 친절하다. 왜 나한테 집중하지 않느냐고 투덜대지만, 채연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천성이 그런데 뭘 어쩌라는건가. 이 밀고 당기기를 오버하지 않고도 예쁘게 그려낸다. 잠깐. 그런데 영화는 연애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것 아니었나. 그 무렵 에피소드3는 에피소드1·2를 끌어안는데, 꽤나 절묘하다.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등장인물들마다 속에다 사연 한꾸러미씩 품고 있을 법한데, 그 사연을 이러니 저러니 질질 늘어놓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통해 찔끔 흘리고 말 뿐이다. 여기다 배우들의 호연이 겹치니, 모든 캐릭터들이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영화적 긴장감이 유지된다. 그 덕에 구질구질할 수 있는 가족 얘기가 아주 재밌고 산뜻하게 포장됐다. 만, 한가지 걸리는 점은 형철과 매자라는 인물이다. 조용한 집안에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이들. 대책없는 가족의 파괴자일까. 아니면 가족을 외부와 접속케 하는 창구일까. 콩가루 집안의 코믹스토리인지, 아니면 가족에 대한 성찰인지는 여기서 갈릴 듯하다.18일 개봉.15세 관람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MBC ‘불꽃놀이’ 주연 한채영

    “오래 사귄 애인, 절대로 놓칠 수 없죠.” ‘신돈’ 후속으로 13일 첫 방송되는 MBC 주말드라마 ‘불꽃놀이’(연출 정세호·김홍선, 극본 김순덕, 제작 초록뱀)에서 여주인공 ‘신나라’역을 맡은 한채영의 당찬 각오다.‘쾌걸 춘향’‘온리유’ 등에서 맡았던, 사랑 앞에서 한없이 마음 약해지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대담하면서도 유쾌한 사랑의 복수극을 펼친다. MBC 드라마는 처음이라는 그는 “시놉시스를 구해 읽고 출연을 자청할 정도로 마음에 든 작품”이라면서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인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불꽃놀이’는 사랑을 찾아 위장취업한 평범한 대졸 ‘백조’ 노처녀가 어떻게 세상과 싸워 성공하는지, 그 과정에서 사랑을 이뤄나가는 ‘패자부활전’을 그린 드라마. 한채영이 맡은 30세 화장품 뷰티플래너 ‘신나라’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지만 ‘백수’ 신세다. 캠퍼스 커플로 7년간 사귄 동거남을 공인회계사로 만들었지만 그에게 어이 없이 차이고 만다. 결국 애인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을 찾아갔다가 그녀가 일하는 화장품 회사에 나이를 속여 고졸 사원으로 위장취업한다. 그곳에서 역시 그녀를 짝사랑하는 재벌 2세 연하남을 만나 지지고 볶으며 사랑을 가꿔 나가는데…. 그는 “지금까지는 주로 맹목적으로 사랑을 따르는 캐릭터였지만 이번에는 질투도 하고 복수도 하는,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맡는 역할도 더 현실적이 되는 것 같고, 실제 제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명랑한 성격에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고 배신한 남자에게 복수도 하는 적극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라서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경험은 없지만 만약 7년간 사귄 남자에게 차인다면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바람둥이여서 그와 계속 사귀지는 않겠지만 당한 만큼 (복수)해주고 보내겠다.”며 웃었다. 8등신 몸매와 서구적인 마스크로 ‘바비인형’이라는 별명도 얻은 그는 “여배우로서 섹시하다는 말은 칭찬으로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섹시함보다는 귀엽고 코믹한 분위기가 강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치어리더 복장 등 원래 나이보다 어린 고졸 사원으로 보이기 위한 깜찍한 패션도 선보인다. ‘불꽃놀이’는 MBC ‘짝’‘M’ 등과 SBS ‘홍길동’‘청춘의 덫’ 등을 연출한 정세호 감독이 10년 만에 MBC로 돌아와 만드는 16부작 미니시리즈다. 한채영과 함께 강지환, 박은혜, 윤상현 등이 호흡을 맞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45세이상 10명중 8명 “자녀와 따로 살고 싶다”

    고령층에 곧 진입하는 45세 이상 장년층 10명 중 8명은 자녀와 같이 살기를 원치 않는다. 9일 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65세 이상 고령자 703명과 45∼64세 고령 진입층 784명을 대상으로 주거 욕구를 조사한 결과, 자녀와 동거하지 않겠다는 고령 진입층의 응답은 도시지역이 79.3%, 농촌지역이 76.6%였다. 반면 고령층의 경우 도시지역 50.6%, 농촌 61%만이 자녀와 가까이 살더라도 따로 생활하겠다고 답했다. 꼭 자녀와 같이 살고 싶다는 답변도 고령 진입층은 도시 9.6%, 농촌 11.7%에 불과해 고령자층(도시 30.8%, 농촌 14.8%)과 대조를 보였다. 주택소유에 대한 의식은 고령 진입층은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답변이 도시와 농촌 모두 86.8%,92.4%에 달해 주택에 대한 강한 소유의식을 보여줬다. 도시 고령 진입층은 5점 만점을 기준으로 노후에 대비해 준비해야 할 사항으로 건강(3.13점), 주택(3.10점), 경제(3.07점), 소득(2.74점)을 꼽았다.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한지붕 밑에 살고 있는’1男 2女’의 종착역은

    ‘한 지붕 아래 1남(男)2녀(女)가 함께 오순도순 동거했다.그러나 사내는 매일 억병으로 취하거나 야바위판을 기웃거리는 그런 양아치와 같은 부류였다.두 여자는 힘을 합해 그 사내를 열명길로 보내려고 했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살인 미수에 그쳤다.’ 중국 대륙에 두 아내가 짜고 합심해 노름하고 술에 취해 괴롭히기만 하는 백수건달 남편을 살해했으나 요행히 살아남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 진탄(金壇)시 진청(金城)진에 살고 있는 20대 중반의 남성은 최근 큰 아내와 작은 아내가 각각 칼로 찌르고 몽둥이를 때리는 것을 그대로 맞아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 신문인 대양(大洋)망이 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두 아내에게 살해당할 뻔한 장(蔣)씨는 올해 25살로 놈팡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백수건달이었다.하지만 여자 낚는 솜씨만은 대단해 한 지붕 아래 두여자와 함께 동거하는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 ‘1남2녀’의 황당한 동거생활을 해온 이들 세 사람이 만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3년 8월,남부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 한 완구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부터. 그당시 ‘큰 아내’로 통하는 장메이(張美)씨는 17살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구이저우(貴州)성을 떠나 이곳에 와 돈을 벌고 있었다.‘작은 아내’로 불린 저우훙(周紅)씨는 16살로 장씨와 같은 구이저우성 출신이다.이들은 고향을 떠나 우연히 기찻간에서 만나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장씨와 그가 먼저 사귀었다.서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곧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얼마되지 않아 장씨는 아이를 가졌다.저우씨는 당시 장씨에게 ‘큰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장씨가 임신을 하자 그는 저우씨에게 눈을 돌렸다.그는 저우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 공세를 폈다.결국 저우씨도 선물 공세에 무너져 동거에 들어갔다.두 지붕 한 남자-두 여자의 동거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조금 지나 장씨는 아이를 낳았다.딸이었다.장씨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저우씨를 친동생처럼 생각해 그와 저우씨의 동거를 눈감아주기로 했다.하지만 장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저우씨가 그의 사랑을 빼앗아버릴 것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한 지붕 아래에 한 남자-두 여자가 동거하는 것.장씨의 제의에 그와 저우씨도 동의를 해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 지붕 아래 한 남자-두 여자’가 동거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저우씨도 아이를 낳았다.아들이었다.아이를 낳은 순서에 따라 장씨는 ‘큰 아내’,저우씨는 ‘작은 아내’로 불리게 된 소종래이다. 이들은 동거를 하면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분담했다.‘큰 아내’ 장씨는 집안에서 두 아이를 맡아 기르고,저우씨는 의류공장에 취업해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데 장씨는 놈팡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마작을 하거나 억병으로 취해 주정을 하거나,야바위판에 끼어들어 돈을 잃어 두 여자를 괴롭혔다. 두 여자는 그가 없을 때마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하고 통곡을 하곤 했다.그를 버리고 집을 떠나려고 여러번 결심을 했지만,재롱을 떠는 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혀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지난 1월 5일 저우씨가 속옷을 사와 장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잔뜩 술에 취한 그가 들어오자마자 저우씨의 귀싸대기를 십수차례나 때렸다.그녀는 그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이때 이들 두 여자는 그를 죽이려고 결심했다. 두 여자는 차에 독을 탄 뒤 먹이려고 생각했으나,겁이 많아 그리 쉽지 않았다.그래서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생각되는 칼과 몽둥이로 해결하려고 기회를 엿봤다.이를 위해 먼저 두 아이를 구이저우 고향으로 보냈다.만일 실패하면 장씨가 모두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저우씨는 남아 두 아이를 맡아 키우기로 하고서…. 1월 11일,그가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돼서 집으로 돌아왔다.이때를 놓치지 않고 장씨는 몽둥이로 때리고 저우씨는 칼로 찔렀다.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중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술에서 깨어난 그는 곧바로 도망을 가 죽음은 모면했다.두 여자는 공안에 붙잡혔다.지난 4월말 장씨는 고의살인죄(미수)로 5년 6개월,저우씨는 5년형을 선고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부적절한 관계는 불행만 자초할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준다. 온라인뉴스부
  • “사랑이란…” 비극적 종말로 끝난 사촌남매

    “그놈의 앞뒤도 가리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중국 대륙에 ‘근친상간’을 해오다 끝내 비극적 종말을 맞은 부적절한 사랑 얘기로 떠들썩하다. 중국 금릉만보(金陵晩報)에 따르면 근친상간의 사랑을 나누며 이혼-동거-감옥생활 등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어오던 사촌 남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말았다. 이들 사촌 남매의 맹목적인 사랑의 시작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지난 1987년 어느날,당시 15살의 꿈많은 소녀 리샤(李霞)양은 심부름으로 자신보다 무려 20여살이나 많은 사촌 오빠 동우(董武)씨의 집에 잠깐 들렀다. 이때 결혼해 아내를 두고 있는 핫아비였던 그는 아리잠직한 리샤의 모습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리양도 키가 껑충하고 시원스런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둥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첫눈에 반한 이들 사촌 남매는 근친상간이라는 부적절한 관계에도 아랑곳 없이 그의 아내 거팡(葛芳)씨를 비롯해 주변의 다른 사람 눈을 피해 몰래 만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리양은 사촌 오빠 부부가 자주 부부싸움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이때를 놓칠세라 곧장 사촌 오빠의 집으로 달려간 그녀는 사촌 오빠의 역성을 받으며 그의 아내 거팡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듯 그녀는 “언젠가 그녀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며 내심 별렀다.그러던 어느날,마침 사촌 오빠의 아내가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알고 사촌 오빠를 찾아갔다.그때 이들 사촌 남매는 그만 빠져 나올 수 없는 아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말았다. 88년 들어서면서 동씨 부부는 자주 부부싸움을 하게 됐고,싸움의 강도는 나날이 세졌다.동씨는 급기야 아내 거팡에게 “죽여버리겠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으며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이런 틈을 타 리양은 1주일에 3∼4일은 사촌 오빠 부부 집에 가서 죽치며 사촌 오빠의 아내 거팡을 할퀴며 괴롭히는 등 ‘안방 주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옆에 있던 동씨도 리양의 편을 들어 그의 아내 거팡을 욕하고 때리기가 일쑤였다. 그해 4월 결국 리양의 집안에서도 그녀가 사촌 오빠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사촌 오빠와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그러나 리양은 오히려 사촌 오빠와 같이 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에 따라 동씨는 아내 거팡과 사촌 여동생과 함께 동거하는 ‘1부 2처’라는 황당한 해프닝까지 벌어졌다.결국 거팡은 남편 동씨와 이혼하게 되고 이들 사촌 남매는 본격적인 동거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씨는 아들을 낳았다.양가 부모들은 할 수 없이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1994년 두 사람은 친척관계라는 사실을 숨기고 혼인신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 사촌 남매의 부적절한 동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2000년 들어서면서 젊은 리씨는 나이·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늙은’남편 동씨가 점점 싫어졌고,끝내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지 4년이 지난 2004년 어느날 갑자기 리씨가 집으로 되돌아왔다.그날 저녁 동씨는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눴으나 그들 사이에 식은 사랑의 감정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이에 화가 난 동씨는 가지고 있던 과도로 그녀를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고의살인 혐의로 붙잡힌 동씨는 3년형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사촌 오빠의 행위에 분노를 느낀 리씨는 곧바로 법원에 결혼 무효소송을 냈고,법원은 이들의 결혼을 무효라고 판결했다.아들은 리씨가 기르기로 하고….이들 근친상간의 맹목적인 부적절한 사랑은 결국 두 사람에게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생채기를 남기며 비극적 파국으로 끝났다. 온라인뉴스부
  • 여성편력 많은 아버지 탓 성도덕 왜곡

    서울 중·서부 일대에서 여성 13명에게 무차별적으로 성폭행한 김모(31·금천구 시흥동)씨는 “동거녀가 떠난 뒤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범행동기를 댔다. 김씨는 1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닥치는 대로 성폭행했다. 김씨는 지난해 1월 동거녀(31)가 집 나갈 무렵부터 범행에 나섰다.1월13일 놀이터에서 13세 초등학생을 빈집으로 유인, 성추행한 것을 시작으로 7월13일엔 15세 여중생, 사흘 뒤에는 18세 여고생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했다.8월7일에는 46세 부녀자를 역시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기도 했다. 범행 대상 연령대가 점점 높아진 것. 경찰 관계자는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어린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행이 하나둘 성공해가자 갈수록 대담해져 성인으로 범행 대상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같은 해 7월22일에는 중구 만리동에서 36세 여성을 성폭행한 뒤, 이 여성을 방치한 채 샤워를 하며 1시간가량 머무르는 등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키 175㎝, 몸무게 70㎏ 정도의 마른 체격에 말쑥하게 생긴 김씨는 어머니(51)와 단 둘이서 살아왔다. 어머니는 네 차례 결혼한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김씨는 평생 아버지를 2∼3차례밖에 만나지 못했다.1994년 경북지역 전문대를 중퇴한 뒤 군에서 하사관으로 5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 하는 일 없이 파출부로 일하는 어머니로부터 용돈을 타썼다. 경찰은 김씨가 차분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수가 적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어릴 적 환경이 김씨의 성 도덕을 왜곡시켰다고 분석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여성 편력이 많은 아버지로부터 여성을 대등한 파트너로 보는 성적 도덕성을 배우지 못해 여성을 성적 도구로 보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동거녀가 떠나면서 여성에 대한 복수심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재훈 윤설영기자 nomad@seoul.co.kr
  • ‘마포 발바리’ 잡혔다

    ‘마포 발바리’ 잡혔다

    서울 중·서부 일대에서 13명의 여성들을 잇달아 성폭행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이른바 ‘마포 발바리’가 마침내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7일 마포구 아현동과 서대문구 충정로, 중구 만리동 등에서 16건의 성폭행과 강도·절도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김모(31·금천구 시흥동)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올 1월10일 오후 마포구 신공덕동 한 주택의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 잠자고 있던 A(20·여)씨를 흉기로 위협, 성폭행하는 등 지난해 1월부터 1년여간 16차례에 걸쳐 강도·강간을 저질러 13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85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확인됐다. 초등학생 1명, 중·고생 4명, 성인 8명이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확인된 16건 외에도 성폭행 1건과 강도 1건, 절도 6건 등 8건의 추가 범행을 자백받았으며 현재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 자백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면 전체 범행건수는 24건으로 늘어난다. ●강·절도 등 8건 추가범행 자백 김씨는 주택가를 배회하다 방범이 허술해 보이는 집을 범행대상으로 찍었다. 성폭행 13건 가운데 8건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간 경우다. 문이 잠겼을 때에는 “복덕방에서 옆집을 보러 왔다.”고 속이고 문을 열게 하거나 외출에서 돌아오는 여성을 뒤따라 들어갔다. 범행을 마친 뒤에는 피해자 집의 현관문 손잡이 등에 남은 지문을 지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왜 저질렀나? 김씨는 “동거녀와 헤어진 뒤 성욕을 충족시키고 동거녀를 찾을 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마포구와 서대문구에서 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은 17세 때부터 이 일대에서 살아 지리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김씨는 지난해 1월 첫 범행 이후 5개월간 동거녀를 찾으러 부산에 다녀왔다. 지난해 9월에도 2개월 동안 동거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훔친 귀금속은 남대문 시장에 내다 팔았고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는 제품번호로 꼬리가 잡힐 것을 우려해 부숴 버렸다.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훔친 수표 뒷면에 가명과 가짜 주민번호를 사용했고 7번째 범행 뒤에는 피해자 앞에서 휴대전화로 “○○야, 올라오지마.”라고 가명을 부르는 등 공범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했다. ●어떻게 잡았나? 경찰은 지난해 12월9일 서대문구 충정로 빈집 절도사건 현장의 깨진 현관문 유리에서 채취한 혈흔이 연쇄 성폭행범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연쇄 성폭행이 처음 일어난 지난해 1월 이후 마포 일대에서 발생한 1762건의 강·절도 사건을 전면 재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올 1월6일 김씨가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70만원 상당의 현금과 수표를 날치기해 이중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한 신발가게에서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김씨가 수표 뒷면에 이서할 때 사용한 이름이 사건현장에서 공범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불렀던 이름과 같은 점에 주목했다. 경찰은 수표를 정밀감식해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김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26일 오전 관악구 신림동의 한 모텔에서 김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일단 27일 새벽 지난해 8월과 올 1월 발생한 강·절도를 적용해 김씨를 구속하고 27일 아침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김씨의 유전자(DNA)가 13건의 성폭행과 1건의 절도사건 용의자의 것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사건 관련 보도가 나간 이후 더 이상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잡힐까봐 불안해 매일 성당에 다니며 기도했는데 홀어머니 때문에 자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김씨 검거에 공을 세운 마포경찰서 이관형 경사와 김양준 경장을 1계급 특진시켰다. 윤설영 이재훈기자 snow0@seoul.co.kr
  • 새달 1일 첫 방송 ‘그 여자의 선택’ 이효춘·이정길

    새달 1일 첫 방송 ‘그 여자의 선택’ 이효춘·이정길

    요즘 드라마에선 젊은 주인공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지만 이들에 의해서만 작품이 꾸려지는 게 아니다. 중후한 연기로 탄탄하게 뒤를 받치는 중견이나 맛깔스러운 조연이 없다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오래 전 청춘스타였으나 이제는 한 발짝 물러나 자신보다 드라마 전체를 빛내고 있는 베테랑 연기자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1970∼80년대 뭇 청춘 남녀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이정길과 이효춘이 다시 호흡을 맞춘다. 새달 1일 시작하는 KBS 2TV 아침 드라마 ‘그 여자의 선택’(연출 김원용, 극본 홍영희)에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각색한 작품으로 여주인공 안진진(서유정)의 부모로 나온다.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길은 ‘한국의 알랭 들롱’으로, 이효춘은 ‘모든 남성들의 연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멜로 커플하면 이들을 떠올릴 정도였다.‘춘향전’‘제3교실’‘당신’‘청춘의 덫’‘봄비’‘소망’‘대동여지도’‘야상곡’‘착한 남편’ 등에 이어 이번이 11번째 커플 연기. 어느덧 연기를 시작한 지 각각 41년,36년이 된 이들이 최고 작품을 꼽는 것은 1978년 혼전 동거·임신 등으로 윤리 논란을 일으키며 일찍 막을 내렸으나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청춘의 덫’이다.“인기도 있었지만 특히나 열정을 가지고 혼신을 다했던 드라마”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역을 심은하 이종원이 이어받아 99년 리메이크되며 재차 주목받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여느 때보다 편하게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 모두 이전 이미지와는 다른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현장이 더 즐겁다고. 멋지고 매너 좋은 중년 역할에 익숙하던 이정길은 마음씨는 좋지만 생활력과는 담을 쌓았고,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는 가장이 됐다. 그는 “SBS ‘연개소문’에서 을지문덕 장군을 맡게 돼 대비시키려고 했다.”면서 “커다란 변신은 아니지만 새롭게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매번 어렵다. 시청자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지 걱정”이라고 한다. 자다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 운동복 차림에 고무신까지 신은 이정길이 충청도 사투리까지 쓰는 것을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이효춘. 그녀는 그동안 신경질적인 부잣집 사모님으로 굳어졌으나 이번엔 가난하지만 억척스럽게 세상을 헤쳐가는, 그러나 모든 것을 감싸안는 어머니로 나온다. 망가지는 게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녀는 “젊을 때는 가난을 감내하는 청순가련형을 많이 맡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을 괴롭히는 부잣집 마나님 역만 계속 들어왔고, 내 옷이 아닌 것 같아 한때 연기를 접을까 망설일 정도였다.”고 토로한다. 중년의 인생을 그리는 드라마가 드문 것은 정말 섭섭한 점. 이정길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중년 연기자에게 있어서는 역할의 다양성이나 소재에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고 안타까워했다. 연기자가 중·장년에 이르러도 스테레오타입에 빠지지 않고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효춘은 “드라마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결국 가족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어요.”라면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젊은 연기자뿐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견 연기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해주셨으면 해요. 커다란 힘이 되니까요.”라고 당부했다. 이정길-이효춘 커플 역시 시청자들에게 포근하게 다가갈 결심을 다지는 듯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고유가때문에 美전철 ‘콩나물시루’

    ‘고유가’와의 불쾌한 동거가 시작됐다. 자가용이 발인 미국인들이 대중교통으로 눈길을 돌렸고 초소형 자동차, 입석 비행기 등 기름을 아끼는 묘안도 쏟아지고 있다.●미국인들 운전대 놓는다 워싱턴DC의 전철 ‘메트로레일’은 지난 20일 하루 78만 820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개통 30년 만에 최고치라고 유에스에이투데이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날보다 6.2% 늘어난 기록이다. 로스앤젤레스도 올 1분기 전철 승객이 11.4%, 버스 승객은 7%가 각각 증가했다. 석유 산업의 본고장 휴스턴에서도 최근 대중교통 이용자가 10.2% 늘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경전철 이용자가 지난해보다 50% 폭증, 중고 객차 10량을 긴급 투입했다.●천연가스 미니카 타실래요?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아닌 초미니 자동차가 선보였다. 압축 천연가스를 써 연료비를 절약할 뿐 아니라 환경에도 좋다. 연비는 2.5ℓ당 100㎞. 무엇보다 차폭이 겨우 1m여서 혼잡한 도심을 뚫거나 주차하기 편리하다. 영국 바스대학과 독일 BMW 등 9개국이 유럽연합(EU) 지원으로 개발한 2인승 삼륜차의 이름은 ‘클레버(슬기로운)’. 양산될 경우 7200∼1만 4400유로(약 850만∼1700만원)에 팔릴 전망이다.●콩나물시루 같은 비행기 고유가로 가장 타격을 받은 업종은 역시 항공사다. 시름이 깊어가자 급기야 ‘입석 비행기’까지 고안해 승객을 더 태우려 한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프랑스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 관계자는 입석 개발을 마치면 현재 500명이 정원인 A380 모델이 853명까지 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서서 기댈 수 있는 등받이에 팔걸이가 달렸으며 입석 간 거리는 64㎝ 정도. 미국 보잉사는 등받이를 얇게 해 좌석 간격을 1인치 줄이거나, 통로를 좁혀 가로 8개 좌석을 9개로 만드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영국 더타임스 등이 입석 비행기를 “가축 우리 같다.”고 비아냥대자 에어버스측은 나중에 개발 사실을 부인했다.●정유사 폭리, 중간선거 쟁점화 고유가로 모두가 불편한 가운데 정유사들은 제 배만 채운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부랴부랴 전략유 비축 잠정중단과 석유업체 가격담합 조사를 지시했지만 “효과가 미지수”란 시큰둥한 반응이다. 보스턴대 마크 윌리엄스 교수는 로이터 통신에 “5월 비축분 210만배럴은 미국인의 2시간 소비분”이라고 지적했다. 중간선거를 의식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결정한 석유업체 면세 조치를 일부 거둘 정도로 선거에 애가 탄 것 같다. 그러나 의회 일각에서 제기한 ‘횡재세’ 부과는 반대했다. 민주당도 이날 대책을 제시했다. 석유업계 면세 철회로 생긴 재원으로 휘발유 소비세를 60일간 면제하자는 안도 내놨다. 존 케리 상원의원은 “도대체 이라크 석유는 어디 갔기에 이 지경이냐.”고 말해 선거 쟁점화를 시도하는 분위기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똑똑한 사람들이 국악 듣고 배워 기뻐”

    올해 여든다섯된 경기민요의 명인 이은주 명창이 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소리인생 70년을 결산하는 ‘소리연’ 공연을 갖는다.200여명이 한무대에 서는 초대형 무대다. 그래서 보통 민요공연과는 다르다.‘회심곡’은 드라마틱한 연출에 휘모리잡가 같은 빠른 곡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물론 이은주 명창이 곱게 단장하고 앉아 무대를 지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직접 나서 2시간여에 걸친 공연을 이끌 예정이다.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듯.KBS 유애리 아나운서는 올해 초 이은주 명창이 녹음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다 그런 기운을 감춰뒀던지 옛날옛적 목청이 그대로 살아 있더란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은주 명창을 서울 단성사 뒷편 자택에서 만났다. 첫인상은 역시 이런 소문에 어울릴 만했다. 눈빛은 또렷하니 맑았고, 옷매무새나 머리단장 행동거지 하나하나 모두 빈틈없이 반듯했다.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같이 다니면 제자들이 더 헉헉댄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래도 공연 전이라 긴장되는 모양이었다.“예전엔 몸 한 번 안아팠으니, 그냥 일사천리로 공연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잘 될까 걱정이 되네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준비하느라 고생한 제자들이다.●15세때 회초리 맞으며 국악 시작 이은주 명창은 어릴 적 우연히 접했던 국악에 홀딱 반한 경우.“어릴 적 동네에서 틀어주던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냥 뭔지도 모르게 집에서 따라 불렀죠.” 15살 때 서울에 올라가 회초리를 맞아가며 원경태 선생에게서 5년 동안 국악을 배웠다. 그러다 1939년 인천 홍명극장 국악공연에서 ‘수심가’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국악공연은 관객들이 표를 던져 1등을 뽑는, 요즘말로 하면 ‘배틀’ 형식이었다. 이때부터 각종 국악무대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그 뒤 1955년 마침내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열린 국악공연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이은주’라는 이름이 마침내 ‘명창’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때를 전후해 음반도 쏟아져나왔다. 요즘으로 치면 ‘보아’나 ‘이효리’인 셈. 그러나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불법복제도 많았다. 이 음반들은 지금도 일본 수집가들 손에 고이 쥐어져 있다고 한다.●50년전 그 시절에도 팬레터 많이 받아 이런 이은주 명창이었기에 항상 따르는 고정팬이 있다. 대부분 50∼60년대생으로 어릴 적 들었던 ‘이은주의 소리’를 못잊어 한다. 국악치고는 꽤 비싼 가격인데 이번 공연표는 이미 매진될 정도라 한다. 그 시절에 혹시 ‘팬레터’도 받았을까.“정말 많았죠. 공연 한번 나가면 온갖 엽서와 편지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빙긋 웃는다.“노래 잘하고 얼굴 고왔으니, 몇살이냐 시집 갔느냐 뭐 그런 얘기들이었어요.”●`태평가´ 복원… 1975년 인간문화재로 그러나 5·16 쿠데타는 이 분위기를 확 바꾼다.‘구성지고 애절한 가락’은 조국근대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나마 살아남은 쪽은 판소리 같은 남도소리 정도다. 경기민요를 했음에도 이은주 명창은 그래도 많은 복을 누린 편이다.‘태평가’를 복원했고, 그렇게 까다롭다는 ‘이별가’와 ‘긴아리랑’을 잘 불러 1975년 인간문화재가 됐다.91년 KBS국악대상 공로상,9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2005년에는 국악협회가 정한 ‘10대 명인’에 꼽히기도 했다. 이보다 이은주 명창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이제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이다.“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모두 대학 나와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때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 거죠.”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물림 된 ‘불법체류’ 90%가 “학교 안다녀”

    대물림 된 ‘불법체류’ 90%가 “학교 안다녀”

    스리랑카인 슬로우차이나(26·여)는 지난해 가을 두 살배기 아이를 한국에 남겨둔 채 추방됐다.2002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국내에 들어왔지만 남자와 동거하다 임신이 되면서 일을 관뒀다. 결국 고용계약 해지로 불법체류자가 됐다. 일거리를 찾던 중 단속에 걸려 추방된 슬로우차이나의 세살 된 아기는 현재 국내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몽골 출신인 아카는 올해 취학연령인 일곱살이 됐는데도 학교에 갈 엄두를 못낸다. 부모가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쉬워 한국에 오긴 했지만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당장 보따리를 싸고 싶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관련법 제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단체들의 입법방향이 불법체류를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는 국내체류 18세 이하 이주아동을 약 2만 1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1500여명으로 10%에 못 미친다.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실은 7∼18세 이주노동자 자녀 수를 1만 700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156개 시민단체들이 결성한 이주아동 합법체류 보장연대는 최근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마련하고 의원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현행법과 제도가 애꿎은 아동들까지 불법체류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법을 통해 보장해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은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닌 부모를 둔 국내 거주 아동들을 ‘이주아동’로 정의하고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 ▲국내에 입국해 국내에서 3년 이상 체류한 이주아동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국내에 체류 중인 18세 미만 이주아동에 대한 단속·보호 조치를 금하고 이주아동이 학교교육을 받을 경우 강제퇴거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정부는 “부모들이 이주아동의 영주권을 이용해 자신들의 불법체류를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며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자국에서 태어난 타국적 아이들에게 교육·의료 등을 지원하던 기존 이민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제적 흐름도 예로 든다. 법무부 관계자는 “시민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이주아동권리 보장법은 실효성이 없다.”면서 “이주아동에게 무작정 영주권을 허용한다는 것은 불법이민 증가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무너지는 가족

    ■ ”빚 안갚아준다” 어머니 살해 빚 4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수원중부경찰서는 14일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존속살인 등)로 김모(27)씨와 범행을 공모한 김씨 친구 이모(27)씨 등 4명을 긴급 체포했다. 김씨는 지난 10일 오후 2시30분쯤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어머니집에 찾아가 이씨에게 진 빚 400만원을 값아 달라고 요구했으나 어머니 이모(46)씨가 이를 거절하자 준비한 흉기로 어머니 가슴을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이날 오후 10시30분쯤 귀가한 김씨 여동생(25)을 흉기로 위협해 손발을 묶고 현금카드 3장을 빼앗아 달아난 뒤 70만원을 인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2년 전부터 집을 나가 여관 등을 전전하며 살던 김씨는 친구 이씨의 신용카드로 유흥비 400여만원을 쓴 뒤 빚독촉을 받자 친구들을 모아 이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별거아내 납치 7000만원 뜯어 아들과 여동생을 동원해 아내를 납치해 돈을 뜯어낸 5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사는 이모(54·무직)씨는 지난 10일 오후 4시쯤 경기도 남양주의 한 빌라 앞에서 아내(52)를 납치했다. 이씨와 재혼으로 결합한 아내는 지난달부터 이 빌라에서 별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기 친아들(22), 여동생(42), 여동생의 동거남(43)과 함께 아내의 손발을 묶고 승용차로 납치한 이씨는 인근 야산에서 5∼6시간 동안 돈을 내놓으라며 아내를 마구 때렸다. 야산에서 돈을 뜯어내는 데 실패한 이씨 등은 병원으로 아내를 데려가 치료해 주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는 등 회유했다가 다시 친딸을 살해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결국 아내는 통장 비밀번호를 말하게 됐고 이씨는 7000만원을 빼낸 뒤 아내를 납치 53시간 만인 12일 오후 9시쯤 풀어줬다. 이들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낌새를 챈 딸의 신고로 붙잡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불치병 손자 할아버지가 살해 불치병 아기를 키우는 아들 부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할아버지가 친손자를 살해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사는 안모(71·경비원)씨는 12일 오후 2시쯤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둘째아들(40·정보통신회사 직원)의 집을 찾았다.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손자(4)를 돌보고 있는 부인 이모(63)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씨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난치병인 뇌피질이형성증에다 안구근육암까지 앓아오다 최근 치료불가 판정을 받게 된 손자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울컥해졌다. 안씨는 부인 몰래 손자를 작은 방에 데려간 뒤 눈물을 머금고 입과 코를 막아 손자의 숨을 끊었다. 안씨는 범행 뒤 “아이가 잠들었다.”며 아들 집을 떠났고 부인은 30분 뒤 잠든 손자가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지만 이미 아이는 숨진 상태였다. 병원측은 숨진 아이에게 외상이 없고 선천성 불치병을 앓아 왔다는 진료 기록에 따라 병사로 진단하려 했다. 하지만 경찰은 안씨가 30분가량 아이와 함께 머물렀다는 부인의 진술을 듣고 이날 오후 마포구 상암동 경비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안씨를 추궁해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미스·정아물산 김정옥(金靜玉)양 - 5분 데이트(46)

    미스·정아물산 김정옥(金靜玉)양 - 5분 데이트(46)

    저 커다랗고 둥글고 쌍꺼풀 진 눈이 왜 저렇게 동양적일 수가 있을까 하고 쏘아 보는 이 편의 시선을 피해 얼른 숙인다. 동서(東西)의 미(美)와 덕(德)을 모두 갖춘 몸매요, 얼굴이다. 1백 63cm 47kg의「튀기」적 몸매와 갸름하고 작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과 기다란 목덜미와 몹시 부끄럼 타는 다소곳한 행동거지가 아무튼 온갖 미덕의 조화(調和)다. 『첫 월급 타가지고 엄마에게는 한복 한벌 해드리고 나머지 식구들에게 선물 한가지씩 했어요. 그리고 친구들한테 한턱 냈더니 빈봉투가 됐어요』 정말 신나게 썼다는 얼굴이다. 분위기가 다소곳하고 동양적이라고 해서 소심하기만 한 아가씨는 아니라는 증거다. 지금 두번째 월급봉투를 기다리는 중인 정아물산(正亞物産)「타이피스트」초년생. 『홍익대학 상학과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취직했어요. 바빠서 친구들 자주 못만나는 것만이 좀 속상해요』 상업하시는 김현종씨의 1남4녀중 막내. 『문학소녀도 아닌데 국어과목을 참 좋아했어요. 지금도 문학서적, 소설 읽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어렸을 때 감명깊게 읽은 것 중엔「메밀꽃 필 무렵」이 있어요』 『이렇게 말랐어도 몸은 튼튼해요. 등산이 제 취미예요. 뭐「프로」까지 될 생각은 아니지만요. 멀리는 안가요. 작년에 속리산의 제일 높은「코스」를 친구들 하고 갔던 게 제일 먼 데였읍니다』 아마 충실한 직장여성 노릇 하려면 등산은 힘들 것 같아서 금년에는 단념할 생각이지만 내년부터는 1주(週) 한번 서울 근교 등산을 꼭 실천하겠다는 것만이 지금 이 아가씨의 작은 소망. [ 선데이서울 69년 8/17 제2권 33호 통권 제47호 ]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4) 원효의 화쟁사상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4) 원효의 화쟁사상

    7세기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쟁(和諍)사상이겠다.12세기에 들어와서 고려 숙종은 원효대사를 기려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를 세우도록 왕명을 내렸다고 한다. 원효의 사상을 이미 고려시대부터 화쟁으로 대변하였음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원효의 화쟁사상은 많은 이들이 말하는 만큼 그 사상의 진수가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원효의 사유에는 대중적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기 때문이리라. 원효의 화쟁은 불법을 설명하는 기본 사유의 방식이지만, 이 사유가 우주의 필연적 법칙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므로, 결국 화쟁적 사유는 우주의 필연적 법칙을 말하는 방식을 뜻한다.‘금강경’(17장)에 불법이 우주의 사실적 법칙이라고 암시되어 있다. 단적으로 우주의 필연성은 공(空)과 색(色)의 두 가지 계기의 실이 서로 새끼꼬기나 천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화쟁사상의 기본이다. 불교를 상징하는 卍(만)자가 바로 저 새끼꼬기나 천짜기의 법칙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공은 눈에 안 보이는 진여의 진리요, 색은 눈에 보이는 세속의 진리다. 안 보이는 진리와 보이는 진리가 물론 서로 다르지만 또한 연계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색의 존재는 눈에 안 보이는 허공의 바탕에 의지하여 생긴 무늬에 불과하다. 만약에 허공이라는 배경이 없고 모든 공간이 다 색의 물질들로 빈틈없이 꽉 차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색의 물질들도 구분할 수 없으리라. 허공이 바탕이요, 물질은 무늬에 비유되므로 허공은 물질을 물질로 존재하게끔 해주는 근거이고, 물질은 그 허공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허공의 공과 물질의 색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의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허공과 같은 공을 어떻게 이해할까? 허공은 생사(生死)와 유무(有無)의 모든 변화무쌍한 순환을 다 초탈하고 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죽게 되므로 오직 영원한 것은 불생불멸한 공밖에 없다. 바다를 공에 비유한다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도의 부침은 곧 생멸의 현상과 같다. 따라서 공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이중부정과 같다. 불생불멸은 또 비유비무(非有非無=유도 아니고 무도 아님)의 이중부정과 같다고 하겠다.‘금강삼매경론’에서 원효는 이 이중부정의 공 세계를 홀로 해맑은 초탈의 의미를 지닌 ‘독정(獨淨)’이라고 명명했다. 현상적 존재의 생멸과 유무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해탈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허공이나 바다가 만물의 부침에 의하여 조금도 영향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만물의 부침을 가능케 해주는 근거다. 그래서 공은 불교에서 허무의 상징이 아니라, 고갈되지 않는 무한기(無限氣)의 상징이 된다. 공이 이중부정이라면, 색은 어떠한가? 색은 물질인데, 그 물질은 독존하지 않고 연기(緣起)의 법으로 존재한다. 연기의 법은 서로 다른 만물과의 상호 얽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무는 물과 햇볕과 땅과 바람과의 상호 연관성에 의거해서 존재한다. 이 연관성의 관계가 다르면, 다른 나무가 생긴다. 이것을 연생(緣生)이라 부른다. 이 연생의 관계를 최소한도로 생략하면, 이중긍정이 된다. 나무는 물과 햇볕, 또는 땅의 흙과 하늘의 바람과 각각 이중긍정의 존재양식을 얽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무는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자인 물과 햇볕과 흙과 바람의 흔적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 색의 물질은 고착된 하나의 독립개체가 아니라, 여러 개의 인연으로 다양하게 얽힌 타자들과의 관련성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색의 물질을 차이의 상관성으로 읽는다. 나무는 물과 불(햇볕)과 흙과 바람이라는 차이의 상관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연기법이다. 이 연기법의 존재방식을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에서 차연(差延=difference)이라 부른다. 차연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 또는 연장(延-長)의 두 뜻을 합쳐서 줄인 말인데, 예컨대 나무는 물과 다르면서(차이) 물의 힘이 거기에 시간적으로 약간 연기되어 작용하거나 공간적으로 연장되어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상징한다. 철학적 차연과 불교적 연기는 같은 뜻이다. 연기법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존재방식이 서로 다양하게 차이 속에서 연계돼 있음을 가리킨다. 차이 속의 연계와 같은 존재방식은 허공처럼, 바다처럼 넓고 깊어야 가능하다. 한국의 식자들은 흔히 다양성의 문화를 당위로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다양성의 문화가 연기법처럼 가능하기 위하여 마음과 문화가 깊어져야 한다. 깊지 않은 마음과 문화는 결코 다양한 존재방식을 사실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화쟁사상도 깊어진 사유에서 가능하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이중긍정의 연기법을 담연(湛然=깊고 넉넉함)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다 아는 얄팍한 당위만 역설하지 말고, 깊고 넉넉한 문화를 일구기 위해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중부정인 공의 해탈이나 이중긍정인 색의 존재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상관적으로 얽혀 있어서 새끼꼬기나 천짜기의 상관성을 맺고 있다. 공이 없으면 색의 존재도 성립되지 않는 것을 앞에서 설명했다. 또 색이 없다면 공도 인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늘의 구름과 새들의 비상과 해와 달의 색으로 인하여 우리가 허공을 문득 지각하기 때문이다. 만물도 서로 다른 것과의 차연적(연기적) 관계로서 존재한다. 공사상은 2∼3세기경 인도의 나가르주나(한자명=龍樹)의 중관사상으로 대변되고, 색사상은 역시 3∼4세기경 인도의 마이트레야(한자명=彌勒)의 유식사상에서 개화된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이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불교적 쟁론을 통합시킨 사유라고 보겠다. 그러나 원효의 화쟁사상은 그 이상의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그의 화쟁사상은 이 우주의 법이 일원론도, 이원론도 아닌 이중성의 사실로 존재함을 인식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중성은 모든 사실의 근원적인 존재방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일원적으로 합일되는 것도 아니고 이원적으로 갈라지는 것도 아닌 중도의 법으로서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고, 원효는 이를 또한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둘을 융합하되 하나로 만들지 않음)이라 불렀다. 공과 색이 이미 그런 이중관계로 엮어져 있음을 우리가 앞에서 설명했다. 색의 존재방식도 역시 이중긍정의 방식인데, 그것은 나무의 경우처럼 물과 불(햇볕)이 소 닭 쳐다보듯이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변증법적 투쟁에 의하여 하나로 합일하는 것도 아니다. 나무에서 물과 불이 차이를 유지하면서 서로 상관하고 있다. 화쟁사상은 이런 이중성의 존재방식을 말하기에 변증법적 통일을 부정한다. 차이가 모순투쟁을 초래하지 않고, 차연과 같은 상관적 관계를 부른다. 이것이 화쟁사상이다. 이 화쟁사상은 노자의 도(道)와 유사하다. 선과 악이 다르지만 동시에 동거하고 있고, 약이 독과 다르지만 역시 동거하고 있다(3·4회 글). 노자는 명암의 이중적 동거양식을 밝음(明)에 염하듯(襲) 옷을 입히는 뜻으로서 습명(襲明)이라 비유했다(4회 글). 이런 이중성을 장자는 보광(光=빛을 보자기로 덮음)이라 불렀다. 이것은 다 흑백의 선명성 논리와 택일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말 것을 종용하는 사유다. 이 점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은 노장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며,20세기 서양의 해체주의적 철학자인 독일의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데리다의 차연적 세상읽기와 그 궤도를 같이 한다. 선명성을 좋아하는 택일의 논리는 이 세상의 필연적 사실의 법과 맞지 않고, 자아가 타자를 박살내고 자아의 동일성만이 승리하기를 노리는 투사의 심리와 다르지 않다. 투사는 자기동일성의 승리를 쟁취하는 투쟁의 도사이나, 세상을 경영하는 지혜와 내용이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경영은 배척의 투쟁에서가 아니라, 화쟁과 같은 다양성의 포괄과 그것을 포용하는 깊이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화쟁사상은 투쟁사상이 아니다. 화쟁의 ‘화(和)’자는 불교의 卍(만)자처럼 동일성과 타자성이 서로 새끼꼬기하듯 만나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런 이치를 가리킨다. 거기에 이미 허공의 빈 곳이 사이에 끼어서 둘을 갈라놓고 또 하나로 합치게 하는 배경을 이룬다. 이것은 또 마음이 허공처럼 허심하여 소유론적 집착을 놓지 않으면, 화쟁의 사실을 결코 실천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마음이 이미 자기고집에 편파적으로 집착되어 있으면, 화쟁은 말로만 하고 실제로는 투쟁의 심리로 마음이 꽉 차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약간 어렵겠으나 원효의 화쟁사상을 말하는 한 구절을 ‘대승기신론소’에서 인용한다.“동일함(一)은 동일하지 않음(非一)에 상응하므로 다름에 상관적이어서 다름과 같이 동거하며, 다름(異)은 다르지 않음(非異)에 상응하므로 동일함에 상관적이어서 동일함과 동거한다.” 오른쪽은 왼쪽과 다르지만 왼쪽이 없으면 자기도 존립하지 못하고, 반대로 왼쪽도 오른쪽과 다르지만 오른쪽이 없으면 자기도 성립하지 못한다. 화쟁사상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홀로 생기는 법이 없기에 반드시 어떤 일의 작용과 상대방의 반작용을 동시에 고려함이다. 이것이 이중긍정의 태도다. 이것과 저것은 서로 작용과 반작용의 상관관계를 지니므로 오로지 나는 100% 정당하고, 상대방은 100% 그르다는 생각으로서는 끝없는 투쟁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노장이 말하는 습명과 보광의 중도적 태도가 아니다. 중도는 어중간한 기회주의적 눈치보기나 단물만을 좇는 속물적 출세주의를 더구나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리사욕의 대명사다. 중도는 세상의 필연적 존재방식이 다 이중성의 공존으로 짜여져 있기에 단정적인 막말을 하지 않는 마음가짐에서 핀다. 우리는 세상일에 대하여 너무 흑백논리와 선악심리로 막말을 하고 단죄한다. 그런 풍토에선 같이 참회하고, 같이 손에 손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기가 어려워진다. 빨리 끓고 쉽게 식는 사회는 사유가 얄팍하다. 화쟁은 오직 사회가 깊어지기를 바라는 곳에서 자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女아나키스트

    한국인의 아내로 살며 조선을 사랑하다 숨진 일본여인의 묘지가 한국에 있어 일본인의 발길이 늘고 있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 자리잡은 묘의 주인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박열(朴烈·1902∼1974)의사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 일본 요코하마 출생인 가네코는 문경 출신인 박열 의사의 도쿄 유학시절인 1922년에 만나 일제에 항거하는 아나키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가난에 찌든 어린시절, 신문을 팔며 힘든 생활을 했던 이력도 작용했다. 박 의사와 동거하던 1923년 9월1일 간토(關東)대지진 때 가네코는 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로 박 의사와 함께 검거돼 1926년 3월25일 둘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일본 당국은 가네코가 그해 7월 우쓰노미야 형무소 여죄수 독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감생활 중 박열과 가네코가 옥중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옥중에서 임신까지 하게 돼 당국이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낙태수술을 하다가 숨졌다는 설도 있다. 이후 박 의사의 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네코의 시신을 수습해 집안 선영인 문경읍 팔령리에 안장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죽은 일본인이 한국에 묻히게 된 배경에는 조선의 남자를 사랑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는 2003년 11월 마성면 박열 의사의 생가 뒤편으로 가네코의 묘를 이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열 의사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해에 도쿄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친일파에 대한 테러활동도 전개했다. 한국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회장을 지낸 뒤 1974년 1월17일 사망했다. 일본 릿교(立敎)대 교수를 지낸 야마다 쇼지는 2003년 국내에서 발간된 ‘가네코 후미코: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에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네코의 일생을 그렸다. 가네코의 짧지만 극적인 삶은 1972년 일본에서 일대기를 그린 ‘여백의 봄’이 출간된 뒤 일본에서 연구모임까지 결성될 정도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가네코의 고향인 야마나시현(山梨縣) 학습추진센터 회원들로 구성된 문인 14명은 3일 문경을 방문, 그의 삶을 기렸다.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아기 라마와 ‘아름다운 동거’

    낙타과 동물인 라마와 사육사의 ‘아름다운 동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초롱이(오른쪽·1)와 전은구(38) 사육사가 그 주인공이다. 출생 당시 초롱이의 몸무게는 고작 3㎏이었다. 대부분의 라마가 7㎏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초롱이는 ‘미숙아’였던 셈. 전 사육사도 초롱이가 태어날 때까지 어미의 배가 부르지 않아 1년동안 임신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라마는 태어나자마자 뛰어다닐 정도로 활달하지만, 초롱이는 막사 한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지요. 어미조차 초롱이에게 젖을 물려주지 않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꺼져가는 불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 사육사는 이날 꼬박 밤을 새워 ‘어미 노릇’을 하기로 했다.3시간마다 젖병을 물려줬다. 하지만 초롱이는 우유병을 빠는 힘조차 없어서 우유를 억지로 집어넣다시피 했다. 때때로 초롱이와 입을 맞추어 바람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자 이런 정성에 감동을 했는지 초롱이는 조금씩 우유병을 빨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전 사육사와 초롱이의 ‘동고동락’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초롱이는 이제 50㎏의 건강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먼발치에서라도 전 사육사를 볼 때면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재롱을 피운다. “제가 한 것은 초롱이에게 사랑을 불어넣은 일밖에 없는 걸요. 무럭무럭 자라나주는 초롱이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서울대공원은 초롱이를 ‘4월의 자랑스러운 동물’로 선정,4월부터 ‘어린이동물원’에서 방문객들에게 선보인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100쌍중 13쌍 ‘국제결혼’

    100쌍중 13쌍 ‘국제결혼’

    지난해 결혼한 100명 가운데 13명이 외국인과 결혼했고, 특히 농림어업 종사자 중에서는 3명 중 1명이 외국인 아내를 맞는 등 국제결혼이 20% 이상 급증했다. 재혼비율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2년 연속 결혼 건수는 늘고 이혼 건수는 줄어들었다. 30일 통계청의 ‘2005년 혼인·이혼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과의 결혼은 4만 3121건으로 전년 3만 5447건에 비해 7674건(21.6%) 늘었다. 지난해 전체 결혼 건수 31만 6375건(전년 대비 1.7% 증가)의 13.6%다. ●아내 국적 중국, 베트남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 여자의 국적은 중국이 2만 635명으로 전체의 66.2%나 차지했고, 베트남이 5822명(18.7%)으로 뒤를 이었다. 베트남은 전년보다 2.3배,2000년보다는 무려 61배나 늘어나는 등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혼인한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자 가운데 3분의1 정도인 35.9%가 외국 여자와 결혼했다. 전년보다 8.5%포인트 늘어났다. 여성의 국적은 베트남(1535명)이 중국(984명)을 제치고 가장 많았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 남성의 국적은 중국 42.2%, 일본 30.8%, 미국 11.8%로 세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 남성과의 결혼은 2000년보다 17배 가량 늘었다. 국제결혼 증가로 외국인 배우자와의 이혼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부인과의 이혼은 2444건으로 전년보다 51.7%나 늘었고, 한국인 부인과 외국인 남편의 이혼도 1834건으로 2.5% 증가했다. ●‘초혼 남-재혼 여’ 혼인도 크게 늘어 재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결혼한 커플 가운데 한쪽이나 양쪽 모두 재혼인 경우는 25.2%로 전년 대비 0.9%포인트,10년 전에 비해서는 11.8%포인트 늘었다.1995년과 비교해보면 ‘재혼 남성-초혼 여성’의 결혼은 2만건 줄어든 반면,‘초혼 남성-재혼 여성’의 혼인은 5만건 늘었다. 연상의 여성과의 결혼도 늘고 있다. 여성이 연상인 경우가 전체의 12.2%로 전년보다 0.3%포인트 증가했다. 초혼 연령은 남성이 30.9세, 여성이 27.7세로 전년보다 남성은 0.3세, 여성은 0.2세 높아졌다. ●황혼이혼 10년새 5배 늘어 지난해 이혼 건수는 12만 8468건으로 전년보다 1만 897건(7.8%) 줄었다. 이혼 건수를 배우자가 있는 인구로 나눠보면(유배우 이혼률) 지난해 한해 동안 전체 부부 100쌍 가운데 1.06쌍이 이혼,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협의 이혼시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는 이혼숙려기간제도 도입이 이혼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거기간별 이혼 비중을 보면 20년 이상이 전체의 18.7%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늘었다.10년 전에 비하면 20년 이상 동거부부의 이혼 건수는 약 5배, 전체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배 이상 늘어나 ‘황혼 이혼’ 증가추세를 보여줬다. 이혼 원인은 부부간 성격차이가 49.2%로 가장 많았고, 경제문제 14.9%, 가족간 불화 9.5%, 배우자 부정 7.6% 등이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강성 佛노조 ‘시민 지지의 힘’

    강성 佛노조 ‘시민 지지의 힘’

    그들은 핫도그와 바게트, 풍선과 플래카드만으로도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를 막다른 길로 압박하고 있다. ‘파업 천국’이라는 프랑스의 노조 조직률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8%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CGT)을 연구해온 역사학자 앙드레 나리츠장은 “노조는 프랑스 시민이 쟁취한 사회적 권리의 원천이며 국가에 의해 부여된 권리”라고 평가한다. 또 지도층과 엘리트층에 대항하는 사회적 엔진의 ‘점화장치’로 여겨진다. 뉴욕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 노조 역사는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면서 “왜 프랑스 노조는 강한가.”라는 의문을 중심으로 분석을 내놓았다. 프랑스 사회에서 우파는 역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와 협력한 전력 때문이다. 좌파가 대중적 힘을 얻는 이유다. 더욱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향수도 존재한다. 노조는 1995년과 1997년의 정치적 승리를 잊지 않고 있다.1995년 우파 정부가 연금 삭감에 나서자 총파업으로 저지했다. 기세를 몰아 2년 뒤 총선에선 좌파가 승리, 역사상 세번째 좌우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를 탄생시켰다.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인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사사건건 대립했다. 2003년 정부의 연금 개혁 저지에 실패한 뒤 주춤거리고 있는 노조가 이번 최초고용계약(CPE)을 노조 내부는 물론, 시민과의 결속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노조는 사업주를 압박하지 않는다. 대신 거리로 나가 정부를 압박하고 임금 등 단체 교섭 상대는 기업이 아닌 정부일 때가 많다. 프랑스 노조는 ‘공공 노조’라는 막강한 화력을 갖고 있다. 지난 28일 부분 파업으로도 국가 기능이 마비됐다. 기차는 60%, 파리 지하철은 10개 노선에서 운행이 중지됐다. 비행기뿐만 아니라 70개 도시의 버스가 멈췄고 학교, 병원, 우체국 등 대다수 공공기관이 문을 닫았다. 신문조차 발행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에서 파업은 소수 세력만으로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비노조원조차 파업 때는 출근하지 않는다. 자발적인 참여로 볼 수도 있지만 ‘파업=휴일’이라는 인식도 작용한다. 신문은 “프랑스에서 파업에 참여해 잃는 건 하루 일당이지만 미국은 직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화려한 노조 역사를 가진 프랑스는 연 2%대 저성장과 9.6%의 실업률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23%에 이르는 상황을 돌파할 묘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3)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지나온 세월동안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인식을 위한 세미나들이 과거에 종종 있었다. 나도 거기에 참석해 본 적이 있었다. 보편성의 실재를 강력히 주장하는 분들은 보편성이 문화적 선진국들에서 전파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반대의견을 개진하면, 특수성을 보호막처럼 고집하는 국수주의자인 양 취급하려는 사고관행을 보았다. 그 경우에 내가 가장 자주 언급한 철학사상이 율곡의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보편적인 理는 특수적인 氣의 제약과 같이 실존함)이었다. 나는 유가적인 율곡의 저 말이 진리를 하나로 회통시키는 본질사상과 다양한 사실들을 살리려는 실존사상을 아울러 융합시킨 이사상자(理事相資=진리와 사실이 서로 의지함)나 이사무애(理事無碍=진리와 사실이 서로 장애없이 교환됨)라는 불가적인 화엄사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나는 사상의 보편성을 늘 선진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사고방식을 관행으로 여기는 한, 우리가 세계사에 우뚝 솟은 좋은 나라의 성공사례를 역사에 결코 남길 수 없고, 늘 아류국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한다. 옛날에 보편성이 중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지금 그것이 서양 선진국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중국 본토와의 교류가 터진 이후 별로 사상적으로 대단찮은 현대 중국의 책들이 번역되어 인기물이 되고, 그 주인공들을 불러 엄청나게 후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옛 사대주의의 업보를 언제 벗게될지 절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율곡의 ‘이통기국론’이나 화엄의 ‘이사무애론’이나 다 보편적인 진리는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여기와 지금’의 특수한 사실이나 기질의 제약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산 정약용이 우리 조선을 늘 동국이라 칭하는 관행을 비웃으면서, 조선입장에서 보면 조선이 중국이고 중국은 서국이라는 말을 개진했다. 이런 생각을 국수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국수주의는 자존망대의 배타적인 사고관행이다. 이것은 황당한 코미디다. 모든 문화는 잡종의 만남이다. 문화적 순종을 찬양하는 일은 근친교배처럼 문화적 허약체질을 만들고 시들어 죽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잡종의 만남에 어떤 중심이 따로 없고, 다양한 기국(氣局)의 사실들이 곧 중심이 될 뿐이다. 보편성의 중심은 사실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기국의 사실에 보편성이 이미 녹아 있다는 것이다. 보편성은 실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본성이 좋아하는 기호일 뿐이다. 그런데 그 본성이 사람들에게 개성과 함께 동거해 있다. 개성과 본성은 이원적인 것이 아니고,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둘도 아님)나 부잡불리(不雜不離=섞인 것도 분리된 것도 아님)의 방식으로 실존할 뿐이다. 원효나 율곡이 다 이 점을 아주 강조했다. 이것을 우리는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 김치나 비빔밥이나 된장찌개는 다 한국음식이다. 이 음식이 동시에 국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맛있는 한국음식을 개발하는 길 이외에 우리가 음식문화에서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얻을 것인가? 누구나 다 외국음식들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보편성이 그들의 특수성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통음식을 수구적으로만 지키려는 순수주의적 자세는 경쟁력에서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氣)의 특수성 속에 이(理)의 보편성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하여도, 그 기의 특수성도 역시 고착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습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습관은 어떤 일정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혀의 미각은 인간의 오감의 느낌 가운데 가장 변화에 둔감하다. 그러나 그것도 불변적인 것은 아니다. 기국의 제약성은 기국의 독자적인 폐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미각의 기가 다른 나라의 미각의 기와의 차이의 변별성에 불과하다. 문화는 본디 잡종의 혼융이므로 순수한 것의 독존은 성립안된다. 한국인의 미각도 다른 나라의 것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섞이는 혼융이다. 그런 한에서 관계의 차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상관적 관계의 함수가 다르면, 자기의 맛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기국은 자기문화의 어떤 습관화된 기호를 말하지만, 그 기호가 다른 문화와 맺는 상관관계의 함수에 따라 늘 변화를 빚는다. 기국도 시대의 인연에 따라 변한다. 김치도 임란 이후에 고추가 들어와서 맵게 변했다 한다. 그러나 기국은 늘 우리가 살아가는 실존적 살(肉)이다. 이 살을 떠나서 한국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살의 의미를 철학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다. 살을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한다. 사실상 살이란 객관적 도구를 통하여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이 느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나의 느낌과 생각이 살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살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살은 주관적인 것인가? 그것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닌 상호주관적인 공통성을 띠고 있다. 살은 물론 내 몸이지만, 그 몸의 영역이 고착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다 살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만 살일 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현상과 사건도 다 살로서 연장된다. 살은 생활세계의 분위기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세계의 분위기와 함께 느끼고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가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속에서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기국으로서의 한국문화는 한국인을 낳고 자라게 하는 집단습관의 태반과 같다. 이 집단습관의 태반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의식의 공동업(共同業)이다. 모든 인간은 다 살로서 생활하고 실존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놀지 않아야 살이 건강하고 행복을 노래한다. 살의 실존과 관념의 사상이 따로 헛도는 경우에, 살은 자신의 공동업이 인간본성의 본질에로 접근되는 해방과 행복의 길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하고싶은 말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로 천대받는다. 그것은 삼국시대의 무속신앙이 외래 관념사상의 권위에 밀려 천대받아 온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살의 실존은 무의식적 공동업의 생활인데, 그 생활이 보편적 의미로 향하여 접목되려는 욕망을 가진다. 그 욕망의 표현이 곧 각 문화권의 관념적 사상이다. 기국이라는 무의식의 공동업은 율곡의 생각처럼 내용을 담는 특수한 기질(氣質)이기도 하고, 또 발현하는 기운(氣運)이기도 하다. 기질과 기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같은 의미를 달리 전하는 것이다. 몸은 제약의 기질이지만, 동시에 그 기질을 통하여 우리가 기운을 낸다. 기질이 머금고 있는 특수한 기운이 보편적 의미의 옷을 입고 솟아야 우리의 마음이 유의미해진다. 보편적 의미의 옷이 바로 율곡이 말한 이통(理通)이겠다. 그 의미의 보편적 옷이 다른 곳에서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인간의 본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율곡의 이통기국론은 보편적 이(理)가 기국의 살밖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의 기질과 기운 속에 함께 동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엄학처럼 해석하면,개성의 사실 속에 진여의 진리가 함께 동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하겠다. 개성이 곧 진여인 것은 아니지만, 개성의 발현을 떠나서 진여의 꽃이 피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은 개성의 업(業) 속에 진여의 출현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좀 더 확대하면, 한국인의 상호주관적 공동업의 살 속에 본성인 보편성의 출현을 방해하는 악업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같다. 한국적 관념의 사상이 한국의 정신문화인데, 이 정신문화가 실존적 살의 분위기와 어긋나 헛돌지 않으려면, 실존의 살이 안고 있는 업장의 병을 고치려는 구원의 사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관념의 사상이 살이 아파하는 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되면, 그 살은 자신의 의미를 말하는 통로를 얻어 세상을 향하여 풍요하고 다양한 삶의 잔치에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음식이 자신의 기국을 통하여 세상이 다 좋아하는 세계적 음식으로 통하게 되는 것과 같겠다. 그러기 위하여 좋은 요리사의 창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의 업은 장애이기도 하고, 동시에 물결이나 나무결과 같은 결이기도 하다. 장애와 결의 차이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활용(11회 글)에 따라 구분된다. 즉 마음의 활용에 따라 우리를 방해하던 그 업이 오히려 우리를 생기나게 하는 결로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신문화는 우리의 공통적인 마음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이치와 다르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속에 깃든 특수성이 본성의 보편성과 접목하여 각자가 자기의 타고난 결대로 꽃을 피워 이타행을 하며 즐거워하는 찬란한 정신문화의 금물결을 세상에 반짝이게 하리라. 보편성은 밖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본성인데, 이것이 특수성과 함께 살아나는 길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왜 외국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외국을 공부해야 한국의 병과 결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 자기를 떠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자기는 타자와의 인연에서 생기지, 홀로 독생(獨生)하는 것이 아니다. 보편성이 선진국에 있는 것이 아니듯, 특수성도 자기 것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독일에서만 나오고, 베르그송도 프랑스에서만 생긴다. 듀이는 미국에서만 탄생되며,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적 신비를 풍긴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이통기국의 비밀이 있겠다. 성철스님, 청화스님, 숭산스님 등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고승들이다. 이 고승들의 실존을 한국문화의 이념형(Ideal type=사회문화의 특수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경험적 현상들을 개념적 준거의 틀로 유형화하는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론)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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