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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재혼·독신·축첩등 다양… 中 ‘결혼의 재구성’

    중국인들의 결혼관이 급변하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성개방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국의 전통적인 결혼관이 무너지고 있다. 대신 개성과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21세기 결혼 풍속도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샤오황디(小皇帝·외동자녀)들이 결혼 대열에 가세하면서 ‘산훈(閃婚·번개 결혼),‘왕훈(網婚·채팅 결혼)’ 등이 확산되는 등 다원화된 중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지난달 13일 베이징(北京) 젠궈먼(建國門) 부근 화룬(華潤)호텔의 결혼식장. 오전 9시반부터 하객들이 호텔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10시 호텔 결혼식장 입구에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서자 준비됐던 폭죽이 요란스럽게 터졌다. 식장에 신랑·신부가 나란히 서자 사회자는 이들의 간단한 약력을 소개하고 이어 신랑·신부의 간단한 발언이 이어진다.“여러분들의 축복으로 이뤄진 우리 결혼을 영원히 이어가겠습니다.…” 폭죽 소리와 박수 소리가 뒤엉킨 분위기가 정리되면서 웨딩드레스 차림이지만 전통 혼례에 따라 신랑·신부는 하늘과 부모에게 절을 한 뒤 마지막으로 자신들끼리 절을 올리며 백년가약 의식은 막을 내렸다. 빨간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은 신랑·신부는 친구·친지 사이를 돌면서 술을 따라줬다. 짓궂은 농담을 받으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신랑 줘위후이(卓余輝·32)는 “2년간 동거를 끝내고 결혼에 성공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고 신부 저우웨이훙(周偉紅·28)은 “처음 가는 해외여행(동남아)이 기대된다.”고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이들의 결혼은 자유결혼도 중매도 아닌, 결혼소개소를 통해 이뤄졌다. 중국 전역에는 10만여개의 결혼소개소가 성업 중이다. 베이징 푸청먼(阜成門) 인근의 완퉁다싸(万通大厦) 10층에 입주한 루산(芦珊) 결혼소개소는 다양한 사연의 남녀들이 결혼의 문을 두드리는 현장이다. 칸막이로 분리된 상담실로 들어서면 결혼소개소가 성공시킨 커플들의 결혼사진첩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은 자오징(趙晶·30·여)은 “친구들과 친지들의 소개로 여러번 샹친(相親·선)을 봤지만 마음에 맞는 배우자가 없어 전문 소개소를 찾게됐다.”며 “안정적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털어놨다. 상담원 류훙웨(劉紅月)는 “30대 안팎의 미혼 남녀가 가장 많고 최근에는 이혼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며 “남성들은 배우자의 외모가, 여성들은 상대방의 부를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1년전 이혼한 선펑(沈鵬·47·의사)은 지난주 결혼소개소를 찾았다. 주택과 자가용, 골프 회원권 등을 소유한 전형적인 중국의 중산층이다. 선펑은 자신의 이력을 보고 관심을 보인 여성 고객들의 사진과 프로필 등을 컴퓨터 자료방에서 클릭하며 배우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월수입이 1만위안(130만원)이라고 밝힌 그는 “23∼30세의 여성을 찾고 있으며 이해심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이상형을 밝혔다. 결혼소개소측은 “이혼남이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30대 안팎의 초혼 여성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갓 대학을 졸업한 일부 여성들도 만나기를 희망했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에 진출한 화교 남성들과 본토 여자들의 결혼이 급증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라는 설명이다. ●독신주의자들도 확산 샤오황디로 자라난 중국의 젊은 부부들은 이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삶의 질을 추구한다. 결혼ㆍ가정문제 전문가인 중국 전국부녀연합회 연구소 천신신(陳新欣) 박사는 “청춘 남녀는 자신과 취미와 코드가 맞는 배우자를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이상적인 남편감은 부와 유머를 동시에 갖추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즐거움에 충만한 생활을 하는 남성이다. 정치적 관점, 종교 등의 요소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속박으로 여기며 자유로운 삶을 희망하는 젊은 세대들은 자연스레 독신주의를 희망한다. 베이징 등 6개 대도시 결혼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시 여성 중 독신 선호자가 82.79%였고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은 89.94%가 독신을 원했다. 독신주의자 더우더우(豆豆·29)는 지방대 졸업 후 베이징의 정보기술(IT)업체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다.“사랑은 순간적인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녀는 “일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밤에도 넓은 침대를 혼자 쓰면 되지, 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외국인 회사(IBM)의 광고 분야에서 일하는 왕차오메이(王巧梅·24)는 “좋아하는 일을 통해 돈을 많이 벌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기 때문에 가정에 얽매이기 싫다.”며 젊은 여성들의 인생관을 설파한다. 지난달 11일 중국의 ‘독신절(光棍節·광군제)’을 맞아 중국 전역에서 다양한 페스티벌이 열린 것도 독신문화 확산을 반영하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 첩문화 부활 여성들의 성 개방 풍조와 물질 만능주의,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3위일체가 된 것이 중국의 축첩(蓄妾)이다. 중국의 고위관료나 졸부들 사이에서 첩을 서너명 이상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두(成都), 상하이(上海) 등 신흥 도시에는 정부(情婦)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생겨날 지경이다. 하지만 축첩 뒤에는 반드시 부패가 따른다. 산둥성 지닝시 리신(51) 부시장은 40여개 업체로부터 각종 인허가 대가로 받은 뇌물 50만달러로 지닝, 상하이 등지에 4명의 정부를 뒀다가 적발됐다. 비상이 걸린 중국 당국은 축첩 사실이 적발될 경우 직책을 박탈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축첩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번개 결혼, 번개 이혼 ‘패스트 푸드’에 길들여진 중국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첫눈에 반해 일주일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산훈쭈(閃婚族·번개 결혼족)’들도 출현했다. 주로 상하이나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에서 유행한다. 서방식 애정관의 도입과 중국 사회의 다원화가 주요 배경이다. 창사(長沙)의 한 결혼소개소는 지난 10·1절 연휴기간에 맞선을 본 20쌍 중 9쌍이 ‘번개처럼’ 결혼식을 올려 성공률이 40%가 넘었다고 밝혔다. ‘시간과 연애의 원가를 절약하기 위해’ 산훈쭈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결혼문화는 이혼율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대도시의 이혼율은 1980년대 3%에서 최근에는 25%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중국 언론들의 전언이다. 개혁ㆍ개방 이전에는 이혼 자체가 당국의 관리대상이 되는 등 절차가 매우 복잡했지만 최근 결혼·이혼 수속이 간단하게 바뀌면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oilman@seoul.co.kr
  • [데스크시각] 싱가포르는 중국의 미래인가?/ 이석우 국제부차장

    ‘싱가포르는 중국인 깡패 항구도시(rogue Chinese port)?’ 에드워드 휘틀럼 전 호주 총리가 최근 싱가포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2일 베트남계 호주 청년 응웬 투옹 반(25)의 교수형을 강행하려는 싱가포르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휘틀럼은 앞서 “응웬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탄원을 싱가포르 정부에 전했지만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낙담스러운 답변을 들어야 했다. 존 하워드 총리,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 등의 탄원에도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헤로인 396g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 경력없는 20대 외국청년을 목매단다는 것을 서구인들은 ‘깡패국가’나 할 수 있는 ‘야만행위’라며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응웬은 2002년 12월 헤로인 소지 혐의로 싱가포르 공항에서 체포됐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당당하고 결연하다.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서만 질서를 지킬 수 있다는 태도다. 지난 93년 국제적 비난 속에도 마이클 페이란 15세의 미국인 소년을 도로표지판을 훼손하고 승용차 20여대에 스프레이를 뿌렸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까고 곤장을 치는 태형에 처한 유명한 사건도 같은 논리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뒤 개인소득 2만달러의 경제적 번영을 이뤄낸 싱가포르는 아시아적 상황과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나름의 법집행 논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서구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모든 곳에 다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리콴유(李光耀)전 총리의 30년 장기집권, 인민행동당의 1당 지배, 강력한 행정력,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율적이란 발상, 인구당 세계 최고의 사형 건수…. 그러면서도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와 반석 위의 경제. 권위주의 체제의 성취에 자신만만한 이같은 논리는 인권과 민주주의와 관련된 국제사회의 압력을 막아내는 수단으로 일부국가들에 ‘애용’돼 왔다. 지난달 20일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치·종교 자유의 확대 요구에 후진타오 주석은 “나름의 문화·전통과 국가 상황이 있다.”고 응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공산당 1당 통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어색한 ‘동거’속에서 그간의 성취만큼 거대한 후유증과 도전에 직면한 중국 지도부는 싱가포르식 모델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모습이다.‘서구식 민주주의’에 의존치 않더라도 법제도의 확립을 통해 1당 통치의 번영과 안정을 구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중국 지도부가 장쩌민 집권 말기부터 ‘법치국가 건설’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구 435만명의 제주도 절반 크기만한 도시국가가 13억 대국의 발전 모델이 되고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중국의 관심과 열정은 상상외로 높다. 경제특구 등 경제개혁의 아이디어를 홍콩에서 얻어왔다면 정치·사회 운영은 싱가포르에서 배워오겠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효율적인 정부와 경제적 번영, 그러한 모든 것을 감독하고 지도하는 강력한 1당 체제…. 중국 공산당에게는 매력적인 유혹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거대한 중국의 복잡한 문제들을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식으로 명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지난주 헤이룽장성 쑹화강의 오염사건은 감시받지 못한 권력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행정 미숙이라기보다는 권력에 대한 감시·통제의 공백상태에서 사고는 터져나왔다. 고의적인 은폐와 보도 통제, 정부 발표에 대한 만연된 회의…. 독점된 권력에 대한 불신의 깊이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있는 ‘중국위협론’에는 중국의 지향점과 의도에 대한 일부 국가들의 불신과 회의가 짙게 깔려있다. 인류 보편가치에 대한 존중보다 ‘국가적 특수성’을 앞세운다면 이런 불신과 회의를 불식시키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지도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선 특수성보다는 보편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국내문제에서도 그렇지만 탈북자 처리, 고구려사 문제, 무역마찰 등 주변국과의 현안처리에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한 축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이 21세기를 새로운 발상으로 열어 나갔으면 한다. 이석우 국제부차장 jun88@seoul.co.kr
  • 1일개봉 ‘저스트라이크 헤븐’

    이렇게 설명하면 ‘감’이 빨리 잡힐까. 국산 코미디 ‘귀신이 산다’와 할리우드 멜로 ‘사랑과 영혼’을 잘 흔들어 섞은 다음, 전형적 할리우드 스타일의 로맨틱 멜로로 요령껏 다시 주물러낸 영화라면? 1일 개봉한 ‘저스트 라이크 헤븐’(Just Like Heaven)의 외형을 촌평한다면 이쯤되지 않을까 싶다. 매사에 시큰둥한 정원사 데이빗(마크 러팔로)은 어렵게 골라 이사온 아파트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한밤중에 낯선 여자가 나타나서는 ‘주거침입’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여자이다. 스르륵 벽을 통과하질 않나, 사라졌다가 갑자기 불쑥 눈앞에 나타나질 않나…. 성공을 위해 분초를 쪼개 사는 병원 레지던트 엘리자베스(리즈 위더스푼)도 기가 찰 노릇이기는 마찬가지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낯선 남자가 떡하니 버티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으니. 낯선 남녀가 예기치 못한 동거에 들어간 돌발상황에 관객을 가둬놓고 영화는 그물망을 짜나간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여자의 상황을 도입부에서부터 노출시킨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이 어떻게 해피엔딩을 향해 인연의 고리를 걸어가는지를 감상하라고 주문한다. 영화의 구도는 할리우드 로맨틱 드라마의 공식을 무리없이 밟아나간다. 식물인간이 돼버린 엘리자베스의 영혼이 데이빗과 교감하며 사랑을 일궈가는 한편, 엘리자베스의 언니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동생을 배려해 산소호흡기를 떼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달콤하고도 안타까운, 그러나 해피엔딩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스크린에는 낭만적 공기로 가득차 있다. 엘리자베스의 아파트 창 너머로 수시로 펼쳐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은 아찔할 만큼 감미롭다. 감상의 평가가 팽팽히 엇갈릴 작품이다. 팔짱을 끼고 보기로 작정하면 빤한 결말, 울림의 깊이가 없는 감상주의 일변도의 드라마 전개는 지루할 것이다. 반대로,2시간만이라도 현실에서 발을 뺀 나른한 감상에 빠지고 싶은 로맨티시스트에겐 모자람이 없을 영화이다.‘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연출한 마크 S 워터스 감독.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느 인생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느 인생

    『저의 소원은 빨리 완전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성을 가지고 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임(林)양(?)의 말이다. 남자와 함께 있을 때 스스로 여자임을 확인할 수가 있어서 그나마도 한 가닥의 행복을 맛본다는 기이한 성의 미아(迷兒)가 임군(?)이다. 어느 날 동침하던 미군이 2중 성기 가졌다고 진술 이 존재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임(林)양으로 부르기로 한다. 21세의 여인이다. 서울시내 이태원동에 산다. 직업은 위안부. 생업에 충실하려면 어디까지나 여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이 일대에서 그녀를 여성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임양이 4월 10일 밤 위안부가 된 지 처음으로 하룻밤 경찰의 신세를 졌다. 호객(呼客)행위를 지나치게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용산의 모「바」에서「미첼·W·하림」상병이라는 젊은 미군과 어울렸다. 함께 임양의 하숙방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사건이 터졌다.「하림」상병은 임양이 2중 성기를 가진 것에 화가 나서 임양을 마구 때리고 방안에 걸려 있는 임양의「원·피스」와「브래저」등 20여 점(싯가 3만원)을 닥치는 대로 갖고 달아나다 순찰 경찰에 붙잡혔다.「하림」상병이 경찰 진술에서 주장한 임양의 2중 성기설에 제일 놀란 사람이 하숙집 주인 김모(36)씨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우리집에 하숙한지 3개월이 되지만 전혀 몰랐습니다. 가령 사흘에 한 사람 꼴로 양손님을 받았다고 쳐도 3개월이면 30명 아닙니까. 그 사나이들이 거쳐 가면서도 말썽 하나 없었는데요』 그 말투는「하림」상병이 난처해져서 마구 되는대로 지껄였다는 기색이다. 『저는 사건이 있은 다음날, 임양의 젖가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물론「브래저」아래쪽을 말입니다. 그럼요, 여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여자가 좋아, 서커스단서도 소녀역만 임양은 전남의 항구도시에서 막벌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은 돌아간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중1, 국3인 두 동생을 부양, 매달 생활비를 고향에 꼬박꼬박 보내고 있다. 어릴 때는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서울시내에서도 이따금「텐트」를 치고 흥행을 한 일이 있는 동춘「서커스」단에 속해서 또 전국을 흘러 다녔다. 어릴 때부터 그를 남자취급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도 여자가 더 좋았다. 남성이 이성인 여자에 대하는 그러한 류의 그리움이 아니다. 여자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 이러한 엉뚱한 욕망이 자기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는 본인도 분명히는 모른다. 「서커스」단에 뛰어든 것도 빵문제가 컸겠지만 여자역을 시켜준다는 유혹에 이끌린 탓이었다. 무대에서는 여배우 김지미로 분장해서 노래를 불렀다.「트럭」에「텐트」를 싣고 지방도시의 공지를 찾아 헤매는 정처없는「집시」생활도 그녀에게는 즐겁기만 했다. 5색의 조명이 자기 둘레에서 회전한다… 김지미가『검은 장갑』의 노래를 끝낸다…「서커스」구경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요란한 갈채를 보낸다… 이 순간에 임양은 최고의 황홀을 느꼈다. 나는 여자이다, 나는 여자이다 하는 짜릿한 도취감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때마다 그녀는 정신적인「오르가즘」을 맛보았다. 줄타기 연습을 하다가 떨어져서 왼팔을 부러뜨리는 고역도 치렀지만 이 도취감 하나로 버텨왔다. 밴드·맨에 반해 동거생활, 성전환수술도 바로 그때 이윽고「서커스」의「밴드·맨」과의 애정생활에 들어갔다. 성전환수술을 한 것도 이때였다. 남자이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완전한 여성으로 탈바꿈하려는 대담한 시도였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의 두터운 가슴팍 속에서 스스로의 성을 개방시킴으로써 애정을 승화시킨다. 남자인 임양의 경우는 성전환수술이 이것에 해당했다. 동거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부부(夫夫)」도 아니고「부부(夫婦)」도 아닌 결혼생활은 어떠한 범주에 들어가는지가 의문이다. 그녀의 성전환수술이 성공을 했다면 온전한 부부(夫婦) 한 쌍이 탄생했을 것이었다. 그녀의 불완전한「섹스」에 불만을 품었는지「밴드·맨」애인이 도망을 치고 말았다. 먹고 살기 위해 여장을 하고 술집에 나갔지만 몇 주일 못 가서 위장이 탄로났다. 그때마다 번번이 쫓겨나왔다. 1년 전.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복막염을 앓아 입원을 했다. 어린 동생들은 서울에서 좋은 집에 시집간(그녀는 이렇게 속여가면서 돈을 보내주었다) 누나로부터 치료비가 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이태원으로 찾아간 것은 이 까닭이다. 1년 가까이 여기서 살아왔지만「베드」에서도 그녀의 불완전성을 눈치챈 G.I.는 없었다. 하루 수입은, 많을 때는 20「달러」(약 5천 5백원), 적을 때는 1~2천원이고 공을 치는 날도 있다. 고향의 어머니는 성전환한 딸이 부잣집에 시집간 줄로만 알고 있고 동생들은 누나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그 나머지 돈은 모두 저금통장에 들어간다. 집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더 좋은 옷을 사 입기 위해서도 아니다. 성전환수술을 다시 한번 받아서 언젠가는 자기 앞에 나타날 남자애인을 만족시켜주는 완전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진짜 애인을 만날 때까지 머리 안자르고 기를 생각 남자로 되돌아 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태원에 들어온 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있다. 『진짜 애인이 나와 줄 날까지 안자르고 기르겠어요』 임양은 2중 성기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더 자세한 질문에 대해서도 굵은 담배연기를 내뿜을 뿐 말이 없다. 눈을 살며시 내려 감고 웃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으스스 춥거나 색다른 흥분을 느끼게 하는 미태(美態)다. 달의 표면 같은 새까만 적막강산 속, 성의 미로를 표류하는 웃음이다. 이태원 일대에서는 막연히 중성의 여성으로 통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이러한 중성의 여성이 7~8명 있다는 것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국제 범죄조직 한국 문어발 진출

    일본 야쿠자와 러시아 마피아, 중국 삼합회 등 국제범죄조직들이 한국에서 마약 밀매·밀입국, 금융·부동산 및 호텔사업, 수산물 거래 등에 광범위하게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조직들은 이미 한국에 거점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2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주변국 범죄 조직원들은 수시로 우리나라를 드나들면서 연고자를 활용해 국내 활동거점 확보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 33개 조직 8만 7000명 가운데 야마구치구미 등 8개 조직이 칠성파 등 국내 범죄조직과 결탁해 금융·부동산 시장에 진출하려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7월 ‘스미요시카이’ 조직원인 재일교포 이모씨 명의로 국내 한 호텔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마피아는 220개의 극동지역 마피아 중 ‘마가족(族)’‘야쿠트족(族)’ 등 20개 조직이 국내에 수산관련 업체를 설립, 수산물 거래 등에 개입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 가운데 야쿠트족은 2003년 2월 부산에 내국인과 합작으로 자본금 1억원의 수산업체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삼합회’는 현지에 진출한 내국인 범죄조직 및 중국 동포와 연계, 한국을 대상으로 마약 밀매와 밀입국 알선 등을 자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9월 홍콩에서 제작한 위조 신용카드를 이용해 국내에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홍콩 삼합회 일당 4명을 적발했다.”고 공개했다. 마약류 범죄와 관련해선 “국내 유통 마약류는 주로 히로뽕으로 과거 90% 이상이 중국에서 반입됐으나, 최근에는 필리핀과 캐나다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로 다변화하고 있다.”면서 “히로뽕은 중국·필리핀·태국·캐나다를 통해 반입되며, 아편·헤로인은 서남아 및 동남아에서 생산돼 이란·태국·중국을 거쳐 유입되고, 엑스터시·케타민 등 신종 마약은 미국·네덜란드·중국 및 동남아에서 반입된다.”고 밝혔다. 또 “국내 유통 위폐는 대부분 미화 100달러권으로, 위조 엔화·유로화도 적발되는 등 종류가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동남아 범죄조직들이 국내에서 위조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빈도가 증가, 신용카드 부정사용 규모가 연간 미화 500만달러로 세계 2위”라고 보고했다. 한편 국정원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총 407건,2640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범죄 유형별로는 ▲마약범죄 170건,950명 ▲위폐범죄 9건,29명 ▲출입국 범죄 121건,1106명 ▲금융범죄 44건,267명 ▲밀수 등 기타 범죄 63건,288명 등이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임해리의 色色남녀] 사랑하거나 사육하거나

    얼마 전 ‘완전한 사육’이란 비디오를 보았다. 몇 년 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43세의 독신남 이와조노는 평범한 회사 영업사원으로 소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남자이다. 그는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던 17살 여고생 구니코를 납치한다. 그리고 구니코는 수갑과 밧줄에 묶인 채 오래된 다가구 주택인 이와조노의 집에 감금당하고, 퇴근과 함께 귀가하는 그와 기이한 동거를 하게 된다. 이와조노는 그녀에게 헌신적으로 먹을 것과 옷을 사다주면서 옆에 영원히 두고 싶어한다. 구니코는 두려움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와조노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점차 이와조노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지만 구니코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한다. 이와조노가 선물한 옷을 입고 둘이는 여행을 떠났다가 구니코의 납치사건이 언론에 알려진다. 결국 이와조노는 잡히고 현장에서 구니코는 이와조노를 변호한다. 이같이 납치된 인질이 오히려 범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스톡홀름신드롬 stockholm syndrome‘이라고 한다. 처음에 구니코는 이와조노에게 미쳤다고 소리를 쳤었다. 그러나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자라고 그를 이해하면서 또 다른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랑은 늘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결혼과 분명한 경계를 갖고 있는 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전생의 업(業)이 두텁거나 운세가 사나운 시절에는 ‘징한’ 인연을 만나 마음고생을 원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연만 골라서 만나는 남녀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상대에게 기대려고 한다.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는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주부로 한때는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의 사업이 잘될 때는 얼굴조차 보지 못했는데 재작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업을 걷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출판사에서 일을 받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남편의 태도가 변하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창들과 만나 밤 12시에 들어가도 별 말이 없던 남자가 요즘은 해만 떨어지면 집에 안 오고 뭐하냐고 전화를 해댄다고 한다. 남편은 그녀보다 9살이나 많았지만 연애할 때는 자상하게 돌봐주고 생활비도 보태주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에 다니던 그녀에게 그는 물주이자 구세군이었던 셈이다. 시댁에서는 집안이 기운다고 반대하고 친정에서는 나이차가 많다고 반대하던 결혼이었다. 그러자 그 둘은 보란 듯이 ‘사고’를 쳤다. 그리고 임신했다는 통고를 양가에 하자 결혼이 고속으로 이루어졌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녀에게 남편은 든든한 보호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 말에 의하면 그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부모의 넉넉한 재산에 있었던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시댁에서도 돈을 대주지 않으니까 남편이 ‘독’만 올라 자신만 달달 볶는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에게 절절매며 차를 마시다가도 남편전화만 받으면 발딱 일어서곤 하였다.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사랑이 깊은 것 인지 아니면 남편에게 잘 길들여진 것인지? 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샤론 ‘총선 도박’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의회 해산 뒤 신당 창당’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면서 이스라엘 정치권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샤론 총리는 21일 모셰 카차브 대통령을 방문,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카차브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빨리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샤론 총리는 곧 리쿠르당 탈당을 발표하고 신당 창당 작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라고 측근들이 밝혔다. 대통령은 총리로부터 의회 해산 요청을 받으면 21일 안에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의회가 해산되면 90일 안에 총선이 실시된다. 현지 언론들은 내년 3월28일에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번 의회의 임기는 내년 11월까지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40명의 리쿠르당 소속 의원 가운데 12∼16명이 샤론 총리의 신당에 참여할 전망이며, 시몬 페레스 전 노동당 당수도 동참할 것으로 예상했다. 샤론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재무장관 등 리쿠르당내 강경 우파 세력이 가자지구 철수에 강하게 반발하자 탈당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동안 리쿠르당과 함께 연정을 맺어온 노동당이 20일 투표를 통해 현재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장관 8명의 사직을 결정함에 따라 연정이 붕괴됐다. 지난 10일 선출된 아미르 페레츠 신임 노동당 당수는 “샤론 총리가 공공부문에 대한 예산을 줄여 빈민층이 늘어났다.”고 비난해 왔다. 이에 따라 ‘불안한 동거’를 해왔던 이스라엘 정치권은 앞으로 샤론 총리가 이끄는 중도파 신당, 우파인 리쿠르당, 좌파인 노동당으로 삼분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 결과에 따라서 이스라엘 정치권의 지형 변화는 물론 팔레스타인 및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서는 샤론 총리의 신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불임부부 64만쌍

    불임부부 64만쌍

    주변에서 불임부부를 한두 쌍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불임은 이제 일부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관별로 불임률을 추산하고는 있지만, 가임연령의 기준 등에 따라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불임부부가 존재하다는 게 전문기관의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불임은 ‘배우자와 동거하면서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진 상태에서 1년 이내에 임신이 되지 않거나 생존아를 출산할 수 있는 임신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된다.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실은 지난 4월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구성한 자료에서 불임부부가 모두 64만쌍에 이른다고 발표했다.10년 전인 25만쌍보다 2.5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며, 배우자가 있는 가임여성(15∼39세)의 14%에 이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03년 출간한 보고서에서는 불임발생률을 13.5%로 추산하고 있다. 전국 표본조사에서 추출된 15∼44세 유배우자 가임여성 6393명 가운데 피임한 경험이 전혀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배우자와 동거한 직후부터 미피임 기간이 1년 이상 경과한 여성 1123명 중 임신을 못한 여성을 백분율로 계산한 것이다. 불임발생 여성 가운데 미피임 기간이 3년 이상 경과했으나 임신을 못한 불임여성 비율은 11.3%였으며, 출산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유산된 경우가 3.3%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자전거로 101개국 여행

    8㎏짜리 자전거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모험가 윤옥환(43)씨가 지난 9일 마침내 101번째 나라로 이집트 땅을 밟았다. 외국 땅에서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 4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어려서 병치레가 잦았던 윤씨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천식, 비염, 만성위궤양, 장염 등에 시달려 직장까지 그만두고 97년말부터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게 됐다.2000년까지 국내를 서너차례 돈 뒤 2001년 7월부터 해외 원정을 시작,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20만㎞를 돌았다.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200㎞ 이상이었다. 윤씨의 여행이야기는 개인 홈페이지(www.cyworld.com//okhwanstory)에서 볼 수 있다.카이로 연합뉴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정조7년(1783) 1월15일,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정감록’을 되뇌이던 역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 사실을 기뻐하며 국왕에게 축하인사를 올렸다. 난리가 토벌되면 되풀이되는 하나의 관습이었다. 이날 정조는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웬만한 죄인은 다 풀어주라는 것으로, 이 역시 뒤숭숭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상투적인 조치였다. 왕은 포고문에서 문제의 정감록 사건을 일으킨 문인방과 이경래 등 주범들의 죄상을 간단히 요약했다. 사면령을 내리는 동시에, 역모사건의 전모를 백성들에게 간단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실록, 정조 7년 1월15일 정미) 먼저 사건의 중심에 있던 문인방의 죄를 성토한다. 문인방은 삿된 술수를 써 백성들을 현혹하였다고 했다. 그가 역모를 꾸민 것은 고대 중국에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비슷하다고 했다. 매우 심한 과장이었다. 그 옛날 장각이 이끈 황건적은 중국 한나라를 기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문인방 사건이 미수에 그친 것과는 천양지차다. 정조는 문인방이 각지를 떠돌며 힘센 장사를 모으려 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명종 때 유명한 도적 임꺽정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역시 과장된 표현이다. 문인방은 백천식, 김훈 등과 짜고 상주의 백학산 아래 만든 소굴에 머물렀다. 이 사건이 발각된 것은 그들과 한통속이던 박서집이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전라도에서 체포된 문인방은 전주 감영에서 취조를 받았고, 곧이어 서울로 붙들려가 본격적인 신문을 받았다. 그는 역모 사실을 모두 실토했다. 군량을 담당할 사람, 난리를 일으킬 때 선봉장을 맡을 사람 등 가담자들의 역할은 이미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는 도원수도 있었고, 대선생(大先生)으로 불리는 선비까지 존재했다. 문인방 사건 때 도원수로 내정된 이는 이경래였다. 이 사건이 뒷날의 여러 정감록 사건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송덕상(宋德相)이란 유학자를 ‘대선생’이라 떠받들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다는 점이다. 정조 즉위 초 산림(山林·재야에 묻혀 있던 큰선비)의 중심인물로 천거돼 조정에서 크게 활약한 송덕상이 정감록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각별히 주목된다. ●산림 송덕상과 권신 홍국영 문인방 사건으로 조정이 한 차례 홍역을 겪기 5년 전이었다. 대대로 충청도 회덕에 살고 있던 성리학자 송덕상은 산림으로 천거되었다. 정조는 송덕상의 학덕(學德)에 크게 감복한 듯, 그의 건의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른바 산림이란 명목으로 향리에 묻혀 지내던 큰선비들이 일시에 높은 벼슬에 등용되곤 했다. 그런데 영조 이후로는 산림이란 카드가 집권세력인 노론에 의해 정국수습용 임시방편으로 활용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 한국의 국무총리 자리가 그러했듯, 산림은 일종의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가끔 예외도 있었다. 효종 때 북벌론(北伐論)을 내세우며 정국을 홀로 이끌던 송시열(宋時烈)의 경우다. 그는 산림으로서 노론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였다. 산림 송덕상은 바로 송시열의 자손이었으나 그 처지는 자기 조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송덕상은 정조 즉위에 공을 세운 홍국영 일파의 추천으로 조정에 등용된 만큼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했다. 정조 3년(1779), 이조참판 송덕상은 홍국영 등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김구주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다.(실록, 정조 3년 6월18일 경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외척이었다. 그는 영조 말기 세손(世孫·정조)의 집권을 반대하던 벽파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을 물리치고 정조를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홍국영은 수년간 반대파를 모두 내쫓는 데 부심하였다. 그는 정조의 신변보호를 구실로 숙위소를 창설해 직접 그 책임을 도맡으면서 더욱더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홍국영의 권력은 날로 비대해졌고, 과거에 그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홍국영을 ‘대후겸(大厚謙)’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홍국영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장차 외척으로 세력을 굳히려 했다. 하지만 일년 만에 누이 원빈이 병사하고 말았다. 홍국영은 꾀를 내어 왕제(王弟) 은언군 인의 아들 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훗날 세자로 정할 생각을 가졌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담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였다. 정조4년(1780)에는 왕비 김씨를 살해하려고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그 일로 홍국영은 실각했고 그 여파는 송덕상에게도 미쳤다. 송덕상은 재빨리 상소를 올려 홍국영과 자기의 사이가 별것 아님을 애써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홍문관 교리 서유성 등 홍국영의 반대파들은 송덕상이 겉으론 산림으로 행세하면서 실제는 홍국영에게 아부를 일삼아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왕세자 책봉 건에 관여하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맹렬히 규탄했다.(실록, 정조 5년 4월28일 신미) 결국 송덕상 역시 조정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로선 억울한 점이 있었을 테지만, 이런 식의 정계 개편은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늘 되풀이되어 온 일이다. ●송덕상의 제자 문인방 뜻하지 않은 스승의 정치적 몰락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스승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미래 역시 어두웠다. 보통 스승이 중벌을 받으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래를 기약하게 된다. 일단 죽림으로 들어간 젊은 선비들은 시서(詩書)를 연마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언젠가 관리로 등용되기만 하면 왕에게 스승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종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개혁정치가 조광조의 복권과정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송덕상의 제자들 가운데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인방 등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정감록’을 빙자해 난리를 꾸몄다. 과연 제자들이 스승 송덕상을 위해 역모를 꾀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송덕상과 역적들 사이에 사제관계가 형성돼 있었던 것인지,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여하튼 송덕상의 몇몇 제자들은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다 발각돼 역적으로 처형되었고, 그 여파로 송덕상 역시 옥에 갇힌 것이 사실이다. 노론들 사이에서 박학다식한 큰선비로 통했던 송덕상은 여러 달 동안 영어(囹圄)의 몸으로 고통을 받다 드디어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실록, 정조 7년 1월7일 기해) 다른 역모사건들도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피의자들이 자기들의 처지를 변호하며 남긴 기록은 찾아볼 길이 없다. 있다면 취조문서가 전부다. 사건을 수사한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왜곡하였을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문인방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겠다. 송덕상의 제자 신형하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며 스승을 변호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한다. 그것이 문제로 부각되어 신형하는 마침내 전라도의 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송덕상을 추종하던 황해도 해주의 선비 박서집은 시를 지어 신형하의 절의를 기렸다. 그 시가 또 문제되어 박서집도 섬으로 귀양을 갔다. 박서집은 유배지에서 우연히 문인방이란 사람과 동거하게 되었다. 평안도 출신인 문인방은 놀랍게도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한 처지를 생각해서 장차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물론 박서집은 그에 찬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박서집은 겁이 났다. 그는 섬에 파견돼 유배자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문인방의 역모사건을 밀고하였다. 그 섬은 전라도 관할이어서 깜짝 놀란 전라관찰사는 급히 영을 내려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였다. 전주와 서울에서 혹독한 신문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인방은 자기가 역모를 꾸민 사실을 시인하였다. 함께 붙들려온 백천식도 반란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들은 밀고자 박서집과 함께 일의 성사를 기원하며 하늘에 축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민지식인으로 술사이기도 했던 문인방은 ‘정감록’의 한 구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때 ‘여섯 글자’의 흉악한 예언이 문제로 부각되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 구절은 문인방이 소지했던 ‘경험록’이란 예언서에도 나와 있다고 하였다. 현재 ‘경험록’이란 책자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사건 당시 문인방은 모두 4종류나 되는 예언서를 소지하고 있었다. 평소 그가 이른바 비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당류 이경래는 강원도 양양 임천리에 살며, 도창국은 평안도 영원 내락림에 있고, 김정언과 오성현은 함경도 안변에 거주하고, 곽종대는 평안도 순안에 살며, 이밖에 김훈과 백천식이 또 있습니다. 만일 난이 성공하게 되면 대선생으로 청계 선생을 모시려 하는데, 이는 송덕상이며 그 손자 송계유는 지금 나이 28세로 저와 마음을 합해 역모를 꾀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문인방처럼 고향이 평안도인 사람도 있지만 함경도 출신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이밖에 강원도 출신도 역모에 참여했다. 아울러 송덕상의 집안사람들도 일부 포섭돼 있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송덕상 일가가 역모사건에 참여하였을지는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회덕에 세거하던 송씨 집안은 조선사회에서 손꼽히는 명문 양반이었다. 설사 그들이 송덕상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조선사회에서 그들이 향유한 특권적인 지위는 이런 정도의 일로는 무너질 리가 없었다. 따라서 송덕상의 손자가 모의에 참여했다는 문인방의 진술은 신문과정에서 억지로 강요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송덕상의 제자는 주로 서울과 충청도에 거주했을 텐데, 하필 조선사회의 변경인 서북지방과 강원도 해안지방의 몇몇 제자들만 스승을 위해 난리를 꾸몄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의 역적모의 사건의 주모자로 분류된 문인방은 힘세고 날랜 평안도 출신의 장사 도창국과 함께 강원도 양양의 선비 이경래와 친했다. 이경래 역시 송덕상의 제자였는데 정조5년(1781) 9월 문인방 등이 이경래를 찾아갔을 때 이경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스승님 송덕상이 조정에 죄를 얻어 뜻밖에 멀리 귀양을 가 계시므로 지금 사태가 급해졌다. 빨리 일을 도모하는 게 좋겠다. 문인방 그대가 인재를 잘만 모집하면 일이 성사된 다음 장수든 정승이든 여하튼 높이 등용하겠다.” 문인방 등은 그 말에 기뻐하며 이경래를 도원수로 삼고, 도창국을 선봉장으로 정했다. 이경래는 양양에 일가친척이 많은 데다가 노복도 숫자가 많으므로, 일단 유사시에 난을 일으켜 양양군수를 잡아 죽이고 무기와 병사를 확보하는 것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이웃 고을인 간성을 공격하고 강릉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 뒤 반란군은 원주를 함락시키고 곧이어 서울로 진격해 동대문을 거쳐 대궐을 점령하기로 하였다. 거사가 성공한 다음 그들은 송덕상을 ‘대선생’으로 책봉하기로 뜻을 모았다. 반란을 일으킬 시기는 갑진년(1784) 7월과 9월 사이로 정해졌다. 이경래의 집안은 강원도 양양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였다. 이경래의 친척 공조참의 이택징은 우선적인 포섭대상으로 떠올랐다. 이택징은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해 규장각 운영을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다.“규장각은 전하의 사적인 관서에 지나지 않고, 규장각의 관리들은 전하의 사사로운 신하일 뿐입니다.” 이처럼 정조의 정책적 고려에 날카롭게 맞선 인물이었다. 문인방 등은 이런 이택징을 서둘러 합류시키고, 그들을 지렛대 삼아 서울의 여러 양반들을 역모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당시 서울에는 몇 해 전에 거세된 홍국영 일파를 비롯해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하며 울분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던 양반들이 많았다. 조선은 양반의 국가라, 양반들이 국가에 반기를 들 거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조 초년 삼남지방에서 일어난 무신란(1728)을 비롯해 몰락한 양반들이 반란을 꾀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정적(政敵)들에 의해 완전히 조작된 역모사건도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17세기 초에 일어난 인조반정(1622)은 양반들이 반란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 본보기였다. 그런 점에서 문인방과 이경래 등이 무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문인방 사건의 경우 역모사건이 새롭게 달라진 측면도 있다. 권좌에서 밀려난 제일급의 양반들이 서북지방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평민지식인들 또는 술객(術客)들과 합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의과정에서 평민지식인들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었다는 점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볼 때 이경래나 이택징과 같은 일급 양반들보다 평민지식인 문인방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한 가지 강조할 사항은 ‘정감록’을 포함한 각종 예언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문인방은 양양과 서울은 일단 이경래에게 부탁해 놓고 자신은 삼남지방으로 내려갔다. 힘이 센 장사들을 다수 모집해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 생각이었다. 그가 관헌에 체포되기 직전 충청도 진천에 머물고 있던 것도 장사를 모으기 위해서였다.(실록, 정조 6년 11월20일 계축) ●평민지식인이 송덕상 같은 양반과 결탁하다니 억울하게 멸시받던 평민지식인들로서야 송덕상과 같은 명문가 출신의 양반과 사귀고 싶어도 도저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짐작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지만,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과는 더 이상 부합되지 않는다. 문인방 사건 때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용케 법망을 빠져나간 평민지식인들 중에 이규운이란 사람이 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훈장노릇을 하던 평민지식인이었다. 그런 이규운이 산림 송덕상과 서로 가까워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비롯되었다. 정조 초년 이규운은 강원도 통천에 있었다. 통천은 송시열이 함경도로 귀양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물던 곳이라 송시열의 기념비가 있었다. 이 비석을 다시 세우는 일로 이규운은 송덕상을 몇 차례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강원도 김화 수령으로 재임하던 송덕상의 아들까지도 사귀게 된다. 어렵게 대갓집과 연줄을 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규운에게 돌아올 몫은 아무 것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벼슬 한 개도 차지할 운이 아니었다. 이규운은 본래 평안도 선천 사람이었고 진짜 이름은 오도하라고 했다. 이규운은 고향을 떠나 강원도를 떠돌았다. 그는 서울 양반 이찬이란 사람을 대신해 과거시험 답안지를 써주었는데 그 덕에 이찬은 진사가 되었다. 제 이름을 걸면 아예 과거시험장 출입이 불가능한 이규운이었으나 그가 대필해준 글로 다른 사람은 진사가 되었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허탈과 공황 속에서 이규운은 ‘정감록’을 읽었고, 반란을 꿈꾸었다. 이규운은 송덕상 같은 양반을 위해 피를 흘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술객에게 송덕상의 명예회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쿼터제 적용 첫해 3만명 혜택

    법무부가 중국 동포와 옛 소련지역 거주 고려인에 대해 검토 중인 방문취업제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의 일부로만 다루던 정부의 동포문제 접근방식의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무부는 ‘외국국적 동포 정책방향 검토 보고서’에서 “‘외국인력 관리대상’에서 ‘포용할 대상’으로 중국동포 등을 바라보는 국민정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히고 있다. 또한 재외동포법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는 동포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측면도 있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의 출·입국 자유와 국내 토지거래 등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출·입국 제한을 받고 있는 중국과 옛 소련 지역 동포들은 사실상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개정요구가 거셌다. 방문취업제가 성사되면 까다롭기 짝이 없는 동포자격의 입증도 쉬워진다. 현재 중국동포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특수 취업정책인 ‘취업관리제’는 국내에 호적이나 친척이 있을 때 방문동거 비자를 받고 입국한 뒤 비자를 바꿔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동거 비자와 취업비자를 합친 방문취업 비자(H-2)는 국내 호적이나 연고가 없는 사람도 발급대상에 포함시킨다. 조선족 거민증 등 국적국 서류와 조선족 소학교·중학교 졸업증서, 족보와 인우 보증서, 유전자 감식결과 만으로도 동포자격을 인정받게 된다. 나아가 법무부는 비자 발급대상자 쿼터를 중·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 등을 감안해 중국의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넘는 2010년쯤에는 취업을 원하는 중국동포수가 현재 50만∼70만명에서 2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쯤에는 쿼터 제한없이 동포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에는 남은 변수들이 있다. 지난 4일 노동부·외교부 등과의 부처간 과장급 회의를 거쳤지만, 국장급 협의가 남아 있다. 특히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변수이다. 법무부는 국제법상 외국인의 입국허용 여부 등은 각국의 재량사항이며,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가 동포들에 대해 국적 또는 비자발급 우대정책을 쓰고 있다고 중국측을 설득할 계획이다. 적절한 비자발급 대상자수나 비자발급의 우선순위를 정할 한국어 능력 평가방법 등 세부사항도 숙제다. 서울대 정인섭 법대 교수는 “그 동안 중국동포를 위한 법적 혜택이 거의 없었지만, 한국말을 잘하는 등의 이점이 있어 자연스럽게 많이 들어온 편”이라면서 “외교적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동포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효섭 홍희경기자 newworld@seoul.co.kr
  •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11일 개봉 ‘소년, 천국에 가다’

    소재 측면에서 볼 때 1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제작 싸이더스FNH 등·감독 윤태용)는 그대로 한국판 ‘빅’이다.13세 주인공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33세 어른으로 건너뛰어, 사랑과 감동이 어우러진 해프닝을 엮어간다. 키치적 냄새를 마구 풍기는 시중의 포스터 앞에서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정체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맨먼저 요약해줄 이 영화의 정보는, 시간에 최면을 걸어 순정한 사랑을 웅변하는 팬터지 멜로라는 사실이겠다. 80년대로 시계바늘이 옮겨간 화면 속 주인공은 시계수리점을 꾸려가는 미혼모 엄마(조민수)와 단둘이 사는 열세살 소년 네모.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는 네모는 장래희망을 “미혼모한테 장가드는 것”이라며 능청 떠는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이다. 영화는, 어딘가에 살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서러운 젊은 엄마와 철부지 네모의 동거를 전반부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넘어간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네모는 시계점에다 새로 만화방을 차린 미혼모(염정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생떼를 쓴다. 나른한 동심의 팬터지에 진중한 무게중심의 추를 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네모가 만화방 여자의 아들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든 이후부터 드라마의 시계는 마법에 걸린다. 저승 문턱에 간 네모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어른(박해일)이 되어 현실로 되돌아온다.‘좋은 세상을 만들려다’ 뇌사상태에 빠져 저승을 넘나드는 네모 아버지의 분열적 존재는 왜곡된 80년대 정치현실을 발언하려 고민한 설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영화는 지나치게 현실감각을 무시했다는 인상이 짙다. 하루를 1년처럼 살며 90대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가는 네모의 순정이 구체적인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어로 부각되는 데는 실패했다. 동화를 뛰어넘은 사려깊은 팬터지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끝내 ‘그냥 동화’로만 주저앉은 빈약한 드라마는 난감하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내용보다는 형식 쪽에 놓였다. 시간을 변주한 과감한 소재적 접근(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만화방이 있는 공간적 배치까지 신경썼다.)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색감 등 어떤 영화보다 강력한 은유 능력을 자랑하는 건 사실이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는 지금 ‘제2의 베이비 붐’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는 지금 ‘제2의 베이비 붐’

    |파리 함혜리특파원|사빈(37)은 셋째 아이를 낳으면서 3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수입은 줄었고, 양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의 회계사였던 사빈은 막내 마농이 유아원에 들어가는 나이가 됐을 때 다시 일을 하려 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 8개월간 실업상태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주고, 나의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졌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8살 된 조아킴과 5살 된 세바스티앙을 둔 소피(39)는 곧 셋째를 출산할 예정이다. 결혼한 지 15년째인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며 “아이는 셋이 이상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토마(8)를 둔 파비엔(36)은 5년전 딸 미리암(9)을 가진 부알렘(38)과 재혼했다. 이들 커플은 곧 태어날 셋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3자녀 이상을 갖길 원하는 프랑스 가정이 점점 늘고 있다. 현재 자녀가 한명, 혹은 둘인 가정에서도 터울을 뒀다 셋째를 갖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제2의 베이비 붐’이 일고 있다. ●젊어지는 프랑스 휴일에 파리의 공원에 나가보면 정말 아이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의 나들이 가족은 1∼2명의 아이들을 동반하고 있다.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공놀이를 하면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젊은 부부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아장아장 걷는 손자와 손녀의 재롱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입을 다물 줄 모른다. 프랑스 국가통계연구소(INSEE)에 따르면 2004년 79만 74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2003년보다 3500명이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사망한 사람은 51만 8100명으로 27만 9300명이 자연증가했다. 전체 인구(6240만명)중 16.2%가 65세 이상으로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노령화가 심각하지만 20세 미만의 인구가 25.2%에 이른다. INSEE의 뤼실 뤼세마스탱 연구원은 “프랑스 인구의 자연증가분은 상당부분 의학의 발달과 평균수명의 연장(남자 76.7세, 여자 83.8세)으로 노인 사망이 줄었기 때문이지만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것도 큰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2004년 현재 프랑스의 출산율은 여성 1명당 1.91명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1.99명) 다음으로 높고,EU전체 평균(1.50명)을 크게 앞선다.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아진 이유는 제도적으로 육아와 보육문제를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사회적으로는 30∼40대의 가치관이 가족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자들과 인구학자들은 분석한다.10∼15년전에는 직업적 성취감과 사회적 성공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단란한 가정과 성공적인 자녀양육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비혼인(동거) 커플 사이의 자녀 출생이 많은 것도 중요 원인으로 꼽힌다.2004년 동거 커플 사이의 자녀 출생 비율은 47.4%나 된다. ●10커플 중 4커플이 3자녀 원해 INSEE의 통계에 따르면 24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프랑스 가정의 경우 1자녀를 가진 경우가 42%로 가장 많고 2자녀 37.8%, 3자녀 14.7%,4자녀 3.6% 순이다. 한편 원하는 자녀수의 경우 2명이 47%,3명이 38%,4명 이상이 12%나 된다. 실제 자녀수에 비해 원하는 자녀수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건 여건만 허락한다면 아이를 더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녀수가 많아지면서 여성들의 출산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평균 출산나이는 1994년 28.8세에서 2004년 29.6세로 높아졌다.2004년의 경우 프랑스 산모 2명 중 1명(49%)은 30세 이상이다.1990년 38%, 1980년 27%에 비해 나이 많은 산모 비율이 크게 늘었다.40세 이상의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경우는 3.4%로 낮은 편이지만 시험관 아기, 유전자 검사 등 의학기술의 발전 덕에 꾸준히 늘고 있다.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자명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과 노력을 요구한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여성들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경우 보육비와 교육비 부담 외에 자신의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실업률이 높고,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선뜻 아이를 갖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최근 3자녀 이상을 갖는 가정에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주는 육아개혁정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이 뒷받침 지난 9월22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연례 가족정책회의에서 인구감소를 막을 수 있는 수준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출산 장려책을 내놓았다.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새 개혁안에 따르면 셋째 아이를 출산할 경우 1년 휴직기간 동안 월 750유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는 최고 3년까지 무급휴가를 쓰며 매달 512유로를 받고 있으나 앞으로 셋째 아이를 낳는 산모는 2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새 조치의 시행으로 약 10만 가구가 셋째 아이를 갖게 되고 이에 따른 추가비용은 연간 1억 4000만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이밖에 6세 이하 아동의 보육비에 대한 세액 공제도 2배로 늘리고, 유아원을 2008년까지 계획된 3만 1000곳 이외에 1만 5000곳을 더 짓겠다고 밝혔다. 또 3자녀 이상 가족에게는 ‘다자녀 가족카드’를 지급해 대중교통요금, 박물관 이용료 등 각종 서비스 이용료 할인혜택을 주기로 했다. 영국도 1.74명에 불과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최근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장기 무급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동법과 가족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지금까지 영국 남성들에게는 15일의 유급 육아휴직이 주어졌었다. 여성들의 육아휴직기간은 6개월에서 9개월로 늘었으며 급여수준에 관계없이 주당 155유로의 육아보조금을 받는다. 아기 엄마가 6개월의 육아휴직 후 복직을 원하면 나머지 3개월은 아빠가 이용할 수 있도록 탄력성을 뒀다. 영국 정부는 오는 2010년에는 여성 육아휴직을 1년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EU집행위가 최근 회원국 정부들에 출산율을 적정 수준으로 높이되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생활을 조화롭게 이뤄나갈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할 것을 권고한 만큼 유럽 각국에서 프랑스 모델과 유사한 출산장려정책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lotus@seoul.co.kr ■ ‘게이비 붐’ 동성애 커플 자녀양육 증가세 |파리 함혜리특파원| 프랑스에서 자녀를 갖는 동성애자 부부가 늘고 있으며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프랑스에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동성애자 부모에 의해 양육되고 있다. 또 그 숫자도 점점 증가세라고 최근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전했다.‘게이비 붐(gayby boom)’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게이 및 레즈비언 부모연합회(APGL)의 프랑크 탕기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개막된 국제심포지엄에서 “프랑스에는 베이비붐과 동시에 게이비붐이 일고 있다. 동성애자 가족의 자녀들도 어엿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추세에 맞춰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생태학자로 ‘그들도 다른 부모와 다르지 않다’는 책을 쓰기도 한 안 카도레는 심포지엄에서 “동성애자 부모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부모로서 이들의 권리와 자녀들의 권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거 중인 여자 친구와 두 딸을 키우고 있다는 카롤린(35·교사)은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 내 여자친구는 우리 딸들에 대해 양육권을 주장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우리가 헤어질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두 딸을 데리고 사라져도 내 여자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법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 부모의 자녀입양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행복한 가정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성장을 하는데 어떤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프랑수아즈 튈켄 판사는 “동성애자 부모의 자녀 입양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누구도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다. 어린이들에게 어떤 환경이 좋은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제도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충격 X세대’ 전통-혁신 잇는 ‘미드필더’되다

    ‘충격 X세대’ 전통-혁신 잇는 ‘미드필더’되다

    ‘X세대에서 I세대로’ 90년대 초반 최초의 신세대로 등장해 세대문화에 충격을 던졌던 ‘X세대’가 이제는 전통과 혁신을 잇는 미드필더 같은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제일기획은 지난 5∼7월 26∼35세 남녀 640명과 36∼45세(386) 남녀 16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조사와 심층 그룹 인터뷰를 통해 10년전 X세대였던 ‘2635세대’의 시대적·세대적 특징을 담은 보고서 ‘우리시대의 미드필더,2635세대’를 30일 발표했다. 제일기획은 “2635세대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개방적이지만 과거의 충동적인 소비 대신 실속있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잇는 미드필더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2635세대는 상당수 이미 30대가 됐지만 선배 세대인 ‘386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인식구조를 갖고 있었다. 인구의 17%, 경제활동인구의 24%를 차지하며 ‘허리’로 떠오른 2635세대는 ▲정치적 허무주의와 무관심 ▲IMF 경제위기 ▲PC대중화와 인터넷 ▲입시지옥 ▲문화개방이라는 공통 경험 아래 자기중심적(Individualized), 현실주의적(Into the reality), 개방적(Intercultural), 진보적(Innovative), 유행 추구(Inclined to Fashion) 등으로 표현되는 세대적 특성 ‘5I’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635세대는 또 독재와 투쟁의 정치문화가 민주화와 참여로, 경제적 호황이 외환위기로, 산업사회가 정보화사회로, 폐쇄적 문화가 다양한 문화로 변화하는 정점에 서 있었다. ●자기중심적(Individualized) ‘사회규범보다 내가 원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질문에 54.2%가 긍정했으며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개성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물음에는 52.5%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대해 386세대는 각각 4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자기계발에 열심이고 ‘명품아이’ 키우기 등 내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도 강하다. ●진보적(Innovative)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것에 대해서는 43.9%가 괜찮다고 답했다. 능력만 되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44.4%, 여성이 61.3%에 달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결혼후에도 지속돼야 한다는 생각도 2635세대가 65.9%로 386세대(52.5%)보다 높았다. ●현실주의적(Into the reality) 외환위기 때 경제력의 중요성을 절감해서인지 배우자 선택 기준으로 성격(63.4%) 다음으로 돈·경제력(13.3%)을 택해 성격(68.1%), 외모·키(13.1%), 돈·경제력(7.5%) 순인 386세대와는 달랐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2635세대(53%)가 386세대(45.6%)보다 훨씬 많았다. 평생직장 개념도 많이 희박해졌다. ●유행 추구(Inclined to Fashion) 유행이나 패션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냐는 질문에 386세대의 22.5%,2635세대의 38%가 그렇다고 답했다.2635세대는 또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제품은 신뢰가 가지 않고(42.2%) 값비싼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아본 적이 있었(32.7%)지만 386세대는 각각 36.3%,21.9%만 이에 해당했다. ●개방적(Intercultural) 기회만 되면 해외 여행을 가고 싶고(91.9%), 외국이 멀게 느껴지지 않으며(61.9%), 다른 나라 음식이나 문화에 거부감이 없다(56.9%)고 답했다. 인터넷 1세대인 만큼 온라인 게임(36.7%)과 온라인 쇼핑(38.4%)을 즐기고, 종이가 아닌 인터넷으로 신문을 즐겨본다는 응답자가 45.5%나 됐다.2635세대의 관심도가 경제-사회-스포츠-문화-취미·여가 순인 데 반해 386세대는 경제-사회-정치-스포츠·문화 순으로 정치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제일기획은 “과거 X세대는 이제 ‘I세대’로 부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소비파워가 센 싱글즈를 공략하고, 판매과정에서의 서비스에 중점을 둬 나를 위한 투자임을 강조해야 하는 한편 문화융합상품인 컬트덕(Cult-duct)을 개발하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기철 류길상기자 chuli@seoul.co.kr
  • 미국인 초혼연령 ‘동고남저’

    미국인 초혼연령 ‘동고남저’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을 늦게 하고, 미국서 태어나는 신생아 3명 중 한 사람에 해당하는 29%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인구조사국이 13일(현지시간) 2000∼2003년 300만 가구 이상을 조사, 처음으로 결혼과 출산을 통한 주(州)별 사회·경제적 차이를 밝혀냈다. 미국인들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6.7살, 여성 25.1살이었다. 북동부 주는 다른 주에 비해 결혼이 늦었다. 뉴저지·코네티컷·매사추세츠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29살, 여자가 26∼27살로 아칸소·아이다호·켄터키·오클라호마·유타주보다 4살쯤 늦었다. 유타주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3.9살, 여성 21.9살인 반면 워싱턴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녀 모두 약 30살이었다. 미 전체에서 초혼 연령은 1970년대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늦게 결혼하는 남녀는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북동부와 서부는 남부보다 동거 가구수가 많았다. 메인·뉴햄프셔·버몬트의 동거 가구 비율은 7%로 앨라배마·아칸소·미시시피보다 두배나 많았다. 십대 출산도 북부와 남부의 차이가 뚜렸했다. 미 전체 출산에서 십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7.7%로 뉴저지·매사추세츠 등 북부지역의 십대 출산이 5%인 반면, 아칸소·조지아·루이지애나·미시시피·몬타나·뉴멕시코·텍사스·와이오밍 등에서는 10%가 넘었다. 전체 출산의 29%를 차지하는 미혼모도 남부에서 월등히 많았다. 특히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미혼모 비율이 53.4%로 가장 높았다. 미국 시민이 아닌 여성이 전체 출산의 15%를 기록했으며, 캘리포니아주 산모의 5분의1은 영어를 잘 못하는 이민자였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럿거스대학의 데이비드 포페뇌는 “만혼은 높은 교육 수준과 관련이 있는데 북동부 지역의 교육받은 남성일수록 결혼은 늦게 하고 동거를 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서울광장] 독일 대연정, 그 수준과 다름/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독일 대연정, 그 수준과 다름/진경호 논설위원

    독일과 일본의 조기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의회 해산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끝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화려한 압승을 거둔 반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퇴진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의 대대적인 자민당 내부수리가 시작됐고, 독일은 진통을 거듭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내세운 대연정 체제가 들어섰다. 이들 지도자의 엇갈린 운명과 두 나라의 정국 흐름은 극적인 반전과 복잡한 구성을 담고 있어 보는 재미가 드라마 못지 않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노 대통령의 반응이다. 고이즈미의 압승에는 별 말이 없었건만 독일 대연정에 대해선 “유럽 정치의 수준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것이다. 부럽다던 슈뢰더의 정치생명이 끝장났는 데도 말이다. 중도퇴진 가능성까지도 내비치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할 때의 논거로 이 말을 따지면 아마도 정치 지도자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좌·우 이념의 정당이 경제회생을 위해 손을 맞잡는 정치문화,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구조를 ‘높은 정치수준’으로 보는 듯하다.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실을 찾아 노 대통령의 이 말씀을 전했다는데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의미있다고 판단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통령이 정치의 수준을 언급했다니 짚어야 할 점이 있는 듯싶다. 우선 독일 대연정 자체는 ‘수준’을 논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 동거정부든, 독일 대연정이든, 우리의 대통령 단임제든 다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토양, 정치문화를 배경으로 한 존재 이유를 지닌다.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제도는 없으며,‘수준’보다 ‘다름’의 문제에 가깝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노 대통령이 일본 자민당 개혁은 제쳐 놓고 독일 대연정을 높은 수준으로 평가한 데는 나름의 목적의식이 있어 보인다. 즉 고이즈미식 리모델링, 즉 정치개혁보다는 독일 대연정에 버금가는 리스트럭처링, 즉 정치판 새로짜기에 관심을 두고 있고, 이를 위한 정지작업 차원에서 독일 대연정을 언급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지금 개·보수해야 하느냐, 아니면 재건축 정도로 확 뜯어고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판 새로짜기를 시도할 생각이라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옳다 그르다를 따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무엇이든 당위성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추진동력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대연정에서 평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사 자체가 아니라 이에 이르기까지 좌·우 정파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양보한 과정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 대연정은 노 대통령에게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교훈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3당 합당이나 DJP연합에 대해 국민들의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국민통합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정권 획득의 수단들에 불과했음을 똑똑히 목도한 국민들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다시 국민통합을 앞세워 새판짜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면 과거 YS나 DJ가 했던 몇 배 이상으로 진심을 내보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대통령은 21세기에 있는데 국민들은 여전히 유신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식의 발상이나 대통령직을 끼워 대연정 카드를 불쑥 내밀고는 선택을 강요하는 자세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이왕 정치구조 개편과 관련해 대연정 후속 카드를 제시할 뜻이라면 보다 우리 토양에 맞는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고, 그 당위성을 설명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클릭 이슈] 민주노총 분열 심화

    [클릭 이슈] 민주노총 분열 심화

    시한부인 민주노총 이수호 체제가 벼랑끝에 몰렸다. 지난 11일 ‘하반기 투쟁 후 조기선거’라는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로 위기가 수습되는 듯했으나 강·온파간의 내부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불안한 동거´ 조만간 청산 가능성 특히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를 반대하며 극렬하게 저항했던 중앙파와 현장파 등 민주노총 내 강경세력들은 현 지도부에 대한 공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며칠 동안의 ‘불안한 동거’는 조만간 청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황이 급반전되자 한시적으로 이수호 체제를 인정했던 일부 단위연맹조차 전폭적인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중집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던 금속산업연맹(중앙파) 내부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몸은 몰라도 마음까지 가긴 어려워 보인다. 금속연맹 홍광표 사무처장은 “(중집의 결정이)잘못된 결정일지라도 논란을 벌이지 말고 투쟁하자고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수호 체제의 한시적 인정이 전체 의견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중집결정을 존중하겠지만 하반기 투쟁인 비정규직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처장은 “당분간 노선투쟁은 지양하겠지만 차기 선거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내에서 가장 큰 세력 중의 하나인 공공연맹(중앙파)은 13일 이수호 체제에 대한 파상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성우 사무처장은 “총연맹의 난국수습 노력이 미흡하다.”면서 “현 집행부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공연맹은 이날 발표된 성명서에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를 소집해 사퇴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분열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줬다.”며 “비리를 저지른 개인(강승규 수석부위원장)에 대한 징계 차원을 떠나 집행부로서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합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집행부의 결단만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수위를 높였다. 말이 결단이지 사실상 퇴진 요구다. 중집회의 때 이수호 지도부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이경수 전 충남지역본부장은 “하반기 투쟁을 이끌고 조기선거를 치르겠다는 이 위원장의 발표내용은 중집 결정이 아니다.”면서 “이 위원장이 직무정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법안 등 하반기 투쟁이 올 12월 말에 끝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내년 1월 선거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현장파 “집행부 즉각 사퇴를” 민주노총 내 최강성 세력인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현장파)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하반기 투쟁에 전 조합원들이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도 현 집행부와 함께 투쟁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전노투는 “사업주로부터 돈을 받은 집행부가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냐.”며 “사회적 교섭, 임원의 비리 등으로 노조운동을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을 지고 (이수호 집행부는)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파인 ‘노동자의 힘’도 민주노총 지도부의 하반기 투쟁 후 조기선거 방침을 대중적 기만으로 간주했다. 현 집행부의 즉각적인 총사퇴만이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며 조직혁신의 출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노총 내 강경파가 강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을 계기로 전면에 부상함으로써 시한부 이수호 체제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다큐성장 6년 후-진솔이의 선택(EBS 오후 9시30분) 2살 때 혼자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쳐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피아노 신동 정진솔. 진솔이는 그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에 줄리어드로 유학도 다녀왔다. 하지만 유학은 길지 못했다. 엄청난 유학비를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2년 만에 진솔이를 다시 불러들였는데….   ●유쾌한 두뇌검색(SBS 오후 7시5분) 메뚜기 귀뚜라미 방아깨비 등 곤충들의 올림픽이 열린다. 제일 빨리 날 수 있는 곤충도 알아본다. 맹수의 왕 호랑이와 먹보 돼지의 동거,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를 전담하는 매니저, 죽은 애완견을 위한 공동묘지 중에서 가짜를 찾아본다. 또 마술사 최현우의 예언 마술, 텔레파시 마술을 선보인다.   ●글로벌 코리안-미국 뉴욕, 좌판금지로 동포사회 반발(YTN 오후 1시25분) 상당수 한인 동포들이 좌판을 벌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뉴욕. 뉴욕시는 거리정비 차원에서 좌판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좌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소수 민족이 피해자가 됐고, 좌판의 60% 이상을 운영하는 한인동포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   ●가을 소나기(MBC 오후 9시55분) 연서는 자신을 찾으러 온 윤재에게 먼 곳으로 도망가자고 말한다.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 윤재와 연서는 무작정 차를 몰고 떠난다. 한편, 사무실에서는 윤재와 연서 둘 다 출근하지 않자 난리가 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바닷가에 집을 구한 연서와 윤재는 시장에서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즐거워한다.   ●TV, 책을 말하다-가을, 문학을 만나다(KBS1 오후 10시) 다양해진 매체 영향과 인쇄 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외국 소설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소설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젊은 작가 3명이 있다.21세기 한국 소설의 유망주 정이현 김종광 박성원. 그들의 작품세계 속으로 들어가 한국소설의 미래를 이야기해 본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마패와 장미는 방해에너지를 연구한 끝에 새로운 암흑전사들을 1분 정도 약화시킬 수 있는 마법약을 완성하고, 리틀 마법전사들이 새로운 암흑전사의 몸 안에 들어가 이 마법약을 퍼뜨리기로 한다. 한편, 암흑전사들은 아라가 지배자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인간들을 무차별 공격하겠다고 협박한다.
  • [AL챔피언십시리즈] 에인절스 화이트삭스에 3-2 승리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를 물리치고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십시리즈(7전4선승제)에 합류한 LA 에인절스가 적지에서 먼저 승리를 챙기며 기세를 이어갔다. 에인절스는 12일 US셀룰러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AL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에서 폴 버드-스콧 실즈-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완벽 계투를 앞세워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3-2,1점차의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경기 전만 해도 ‘디펜딩챔프’ 보스턴 레드삭스에 3연승을 거두며 챔피언십에 선착,3일 동안 재충전을 가진 화이트삭스의 우세가 점쳐졌다. 에인절스는 지난 9일 예정된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4차전이 비로 연기된 탓에 10일 동부의 뉴욕에서 4차전,11일 서부의 LA에서 5차전, 그리고 12일 중부의 시카고로 다시 이동하는 등 최근 48시간 동안 이동거리 4800㎞에 달하는 강행군을 했기 때문.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양키스를 3승2패로 물리치며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의 ‘랠리몽키의 기적’을 재연한 에인절스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에인절스는 2회 4번타자 개럿 앤더슨의 우월 솔로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했고,3회에도 올랜도 카브레라의 내야안타와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내야땅볼을 묶어 3-0까지 달아났다. 화이트삭스도 3회말 조 크리디의 홈런과 AJ 피어진스키의 적시타로 2-3까지 쫓아갔지만, 에인절스의 철벽 계투에 막혀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에인절스의 선발 버드는 보스턴과의 디비전시리즈 3경기에서 무려 24점을 폭발시킨 화이트삭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6이닝 동안 5안타 1볼넷 2실점으로 역투하며 부상으로 챔피언십 엔트리에서 제외된 에이스 바톨로 콜론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워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13일 오전 9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2차전에는 화이트삭스가 에이스 마크 벌리, 에인절스는 제로드 와시번을 선발로 내세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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