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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니, 타블로와의 우정 그리고 힙합이야기

    페니, 타블로와의 우정 그리고 힙합이야기

    “타블로와 저는 집에서 쫓겨나 동거를 시작했죠. 마냥 음악이 좋았거든요.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음악을 했어요. 불쌍한 기억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고마운 시간들이에요. 평생 ‘친구’와 평생 ‘내 음악’ 힙합을 얻었으니까요.” ‘힙합을 제대로 배우자’며 타블로와 언더그라운드와 클럽 공연에 뛰어든지 근 8년. 두 남자의 고된 동거기는 헛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정상급 가수가 됐고 한 사람은 타 가수들의 앨범 제작자로 나서며 손에 꼽히는 힙합 프로듀서로 자리를 굳혔다. 국내 힙합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힙합 프로듀서 페니(27·Pe2ny). 에픽하이의 모든 앨범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힙합 곡들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곡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페니의 첫 번째 정규 앨범 ‘Alive Soul Cuts vol. 1’은 오랜 인고의 세월이 낳은 산물이다. 국내 힙합계를 대표하는 실력파 래퍼들이 페니의 주도 아래 하나로 뭉쳐 사라져가던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Hiphop Compilation, 편집된 모음 음반)부활에 뜻을 모았다. ◆ 끼니 떼우기도 힘들던 시절 “할머니, 외상 값 갚으러 왔어요” 스무살 시절, 페니는 힙합 문화가 활성화 된 홍대 클럽에서 에픽하이와 더블 케이 등 동료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가족의 반대에 무릅쓰고 열정만으로 음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동갑내기 타블로와는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고학력의 타블로가 음악에 빠졌으니 가족의 반대가 심한건 당연했죠. 2000년대만 해도 힙합 음악은 반항적인 문화로 비춰졌거든요. 저는 미술 전공이지만 흑인 음악 동호회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힙합을 시작했어요. 무난히 잘 성장한 누나 셋과 달리 막내가 음악을 하겠다며 나서니 부모님께선 불안하셨을 거예요.” 경제적 뒷받침 없이 집을 나선 페니와 타블로는 언더 그라운드에 들어가 ‘막내’를 자청하며 최대한 많은 음악을 접하고 흡수하는데 주력했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배우자는 일념으로 뛰어들었어요. 아무런 개성 없이 음악을 씹어 삼켰죠. 잔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으며 배웠어요. 지금도 타블로와 옛 이야기를 할 때면 ‘그때가 있었으니까 지금이 있지’라 하면서도 불쌍했던 모습이 떠오르면 웃음부터 나요.(웃음)” 페니는 당시 밥값이 부족해 외상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일화를 꺼냈다. “홍대 근처에 한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옛집이라는 밥집이 있어요. 타블로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는 ‘나중에 내라’며 외상으로 밥을 주셨어요. 훗날 외상 값을 계산하러 갔는데 이미 계산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에픽하이의 미쓰라 진이었죠.” ◆ 힙합 뮤지션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유일 프로듀서, 페니 에픽하이의 타블로, 미쓰라 진을 비롯해 더블케이, 낯선, 넋업샨, 얀키 등 국내 힙합의 큰줄기를 잇고 있는 뮤지션들이 페니의 첫 앨범 소식에 모여 들었다. 이는 지금껏 페니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던 가수들이 그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도의 축적이기도 있다. “돕고 돕는 거죠. 일종의 ‘품앗이’ 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네요. 그간 여러 힙합 뮤지션들의 프로듀싱을 도와 왔어요. 제가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을 준비하자 모두들 자기 일처럼 달려들었어요. 다양한 뮤지션들의 참여로 수록된 20곡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고요.” 이번 앨범은 ’2001 대한민국’ 이후 맥락이 끊겼던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음악사 상에도 큰 의의를 갖는다. 특히 다수의 힙합 뮤지션들이 단 한명의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모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앨범 최종 작업 날까지 여러 동료들이 끝까지 확인하고 도와줬어요. 특히 타블로는 완성본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늘 추구하고 싶었지만 ‘에픽하이’라는 이름 아래는 담을 수 없는 음악였다면서요.” ’힙합’ 앨범이라면 굳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않아도 열정을 쏟아내온 프로듀서 페니. 지난해 12월 타블로와 작업한 프로젝트 앨범 ‘이터널 모닝(Eternal Morning)’은 국내 연주곡 앨범으로는 드물게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30일 오후 5시 홍대 앞 클럽 ‘CATCH LIGHT’ (캐치라이트)에서는 힙합 프로듀서 페니(PE2NY)의 첫 정규 앨범 ‘ALIVE SOUL CUTS Vol 1’ 의 쇼케이스가 페니의 앨범에 참여한 13팀의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 MYK, 림샷, 라임어택, 넋업샨, 마이노스, 키비, 팔로알토, 더콰이엇, 원선, 본킴, 아키라, 티비엔와이)의 참여로 이뤄질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원정화 집은 ‘공작원 가족’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34)의 출신 성분과 구체적인 범죄사실 등이 28일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원정화는 미국 달러화 위조지폐를 바꿔서 공작금을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원정화의 아버지 역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원정화가 태어나던 해에 남한 침투 도중 피살됐다. 이후 어머니 최모(60)씨는 김모(63·구속)씨와 재혼해 남매 둘을 더 낳았다.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김씨는 평양 미술대학을 나와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좌, 만년보건총국 함북도 관리처 계획과장, 청진시 공로자협회 경노동직장 관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엘리트였다. 김씨 역시 2006년 12월 남파됐으며, 원정화의 이부(異父)여동생도 보위부 공작원이었다. 그야말로 ‘공작원 가족’인 셈이다. 원정화 역시 학교를 다니며 최우등 표창을 자주 받았으며, 출신 성분과 학업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89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최룡해 위원장에게 발탁돼 돌격대 간부교육을 마쳤다. 원정화는 수료 직후 특수부대에 입대해 92년 2월 머리를 다쳐 제대하기 전까지 태권도, 독침 뿌리기, 표창 던지기, 사격, 겨울철 얼음물에서 오래 견디기 등의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 뒤 취직한 백화점에서 과자, 사탕 등을 훔치다 적발됐고, 교화소(교도소)에서 93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복역하다 ‘김정일 특사’로 풀려났다. 이어 청진에서 장사를 하다 96년 12월쯤 친구와 함께 아연을 훔치다 단속반에 체포됐고, 친척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중국으로 도피해 2년 정도 친척집 등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 남성과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로 곧 결별했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겼던 아이도 낙태했다. 원정화는 중국에서 가짜 달러를 판매, 외화벌이 업무도 했다.100달러 한 장에 중국돈 200위안(약 3만원)씩 받았다. 이후에도 원정화는 여동생이 하얼빈에 전달하기 위한 가짜 달러를 보위부 직원으로부터 받는 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2001년 9월 원정화는 “미군기지를 카메라로 찍어 오고, 남조선신문에 실리는 조국에 대한 사설을 모아 가져 오라.”는 지령을 받고 조선족 여성으로 위장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원정화는 “장군님의 전사로서 이 한 몸 다바치는 충신이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충성맹세도 했다. 당시 잠시 동거했던 한국인 사업가 조모씨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원정화에게 보위부 요원들은 “고문이 심하면 교도관 생활을 했고, 아이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고 하라. 특수부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고 주의시켰고, 자살용 독약 6알, 공작금 1만 달러 등도 줬다. 원정화는 남한에 온 뒤 조씨를 만나 중국으로 유인하려 했다. 하지만 조씨가 이를 거절하며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원정화는 곧 “조씨의 아이를 가져 남한에 온 탈북자”라고 국가정보원에 위장 자수하기에 이르렀다. 또 대북정보요원들과 친해지는데 성공해 그들로부터 “북한 군사기밀을 파악해 달라. 협조해 주면 매달 500만원씩 주겠다.”는 등의 부탁을 받고 이를 들어 주는 척하면서 홍콩에서 만나 살해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정 때문에 정보요원들을 살해하지 못한 데다 북한 노동당 비서로 귀순한 황장엽씨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면담한 탈북자 김모씨의 거처를 파악하라는 지령 수행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상부의 질책이 시작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어떻게 잡았나

    이번 수사의 시작은 지난 2005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경찰청은 탈북여성인 원정화(34)가 대북무역을 빙자해 수시로 북한에 있는 가족 및 정보원과 접촉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하는 과정에서 간첩 활동의 단서를 발견했다. 원정화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현역 군인과의 만남을 조건으로 여러 명을 소개받았고, 이 가운데 한 명과 동거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국군 기무사령부와 공조 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경기경찰청 등은 장기간 내사 끝에 원정화가 중국에 거점을 확보하고 북한 공작원에게서 지령을 받아 군 강연시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고 몇 명의 국군 장교들과 교제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혐의를 확인했다. 경기경찰청 등은 중국 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을 만나고 돌아온 원정화를 지난 7월 전격 체포, 구속했다. 구속 직전 원정화가 수원지검의 조사를 받으며 자신이 북한 보위부의 남파 지령을 받고 침투한 간첩이라고 자백하면서 수사 범위가 넓어졌다. 이 자백으로 원정화가 단순한 간첩이 아니라 위장탈북한 남파간첩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공안당국은 수원지검, 경기경찰청, 기무사, 국정원 경기지부 등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꾸렸다. 이 과정에서 공안당국은 원정화로부터 2006년 12월 탈북한 의붓아버지 김모(63·구속)씨가 간첩 활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중국 내 북한 보위부 공작원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합수부는 원정화가 조사 과정에서 “임무수행을 잘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시키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 말고도 많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 사업가·탈북자 100여명 납치·북송”

    “한국 사업가·탈북자 100여명 납치·북송”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34)는 대북 정보요원 살해, 북한 노동당 비서로 귀순한 황장엽씨의 소재 파악 등 주요 지령 수행에는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미군기지를 촬영한 사진을 넘기고, 군 장교와 교제하며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장엽 거처 파악 등 주요지령 실패 남한 침투지령을 받은 원정화는 2000년 중국동포 김모씨 명의로 신분을 세탁한 뒤 다음해 10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후 경기 북부 지역 등에서 미군기지 촬영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시 ‘원정화’로 이름을 바꿔 탈북자로 위장귀순하고 한국 남성 최모씨와 결혼했다. 원정화가 받은 주요지령은 ▲2003년 대북정보요원 중국 유인, 남한사업가 포섭 ▲2004년 대북정보요원 2명 살해 ▲2005년 국정원·하나원·대성공사(탈북자 신문 기관) 위치 파악, 군 장교 포섭 뒤 군사기밀 탐지·중국유인 등이다. 또 ▲2006년 황장엽·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 탈북자 김모씨 위치 파악, 비전향 장기수 파악, 안보강연 탈북자 인적사항 파악 등도 임무였다. 하지만 원정화는 황장엽씨 거처 파악 등 대부분의 지령 수행에 실패했다. 대북정보요원 암살 지령과 함께 독침, 독약 등의 살해도구를 받았지만, 시도도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정화는 “원래 알던 사람들인 데다 살인을 해본 적이 없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원정화는 군 기밀을 수집하기 위해 장교들과 교제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결혼정보업체에 “현역군인과의 만남을 원한다.”고 얘기해 여러 명의 군인을 만났으며,2005년 9월에는 김모 소령을 소개받아 동거까지 하게 됐다. 김 소령에게는 “아이를 중국에 유학보내고 싶으니 함께 가서 알아보자.”고 유인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국군 기무사령부의 추천으로 군 안보 강사로 발탁돼 2006년 9월부터 9개월 동안 50여차례에 걸쳐 “북핵은 자위용”이라는 등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의 강연까지 실시했다. 이때는 이미 1년 남짓 기무사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정화를 추천한 부서와 내사부서의 업무가 분리돼 있어 대공혐의점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기무사 쪽은 설명했다. 원정화는 이 과정에서 2006년 11월 정훈장교였던 황모(26·구속기소) 중위(대위 진급 예정)를 처음 만나 사귀게 됐다. 지난해 10월 황 중위에게 “나는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다. 내 임무는 탈북자 출신 안보강연 강사 신원을 확인해 북한에 보고하고 군 간부를 포섭하는 것이다. 너도 포섭했다고 조국에 보고했다.”고 말했지만 황 중위는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기무사 관계자는 “황 중위가 원정화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정경학 사건’ 이후 2년여만 역대 간첩 사건으로는 ▲1995년 10월 충남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1997년 10월 최정남·강정연 부부간첩 ▲2006년 7월 정경학 사건 등이 있다. 정경학은 태국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뒤 울진 원자력발전소, 천안 성거산 공군 레이더기지, 용산 미8군부대, 국방부 청사 등을 촬영해 북한에 보냈다. 원정화가 실제로 북한에 넘긴 정보는 양주와 서울 등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6곳의 사진, 원정화의 하나원 동기 정보, 군 장교들 명함 100여장 및 인적사항과 사진, 군부대 위치와 부대의 지휘관들 인적사항 등이다.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원정화가 넘긴 장교들의 명함에 기재된 이메일 IP를 추적한 결과 중국 방향에서 이메일을 해킹한 흔적을 찾아내 진상을 파악중”이라고 전했다. 원정화는 또 남파되기 전 1999∼2001년 중국 옌지, 훈춘 등에서 탈북자와 남한사업가 등 100여명을 납치했으며, 중국 공안과 협조해 이들을 북송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 7명은 모두 노래방 등에서 일하던 원정화를 만나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려 한 사업가, 회사원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라이프 스타일 맞춤 주택

    라이프 스타일 맞춤 주택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딱 맞는 집을 지어 드립니다.” 전문 디벨로퍼 기업인 피데스개발은 한국형 33가지 라이프 스타일을 분류하고, 여기에 맞는 주거공간을 설계하는 맞춤형 주택을 공급한다고 26일 밝혔다. 맞춤형 주택은 수요자 사전 조사를 통해 연령이나 동거 세대, 입지, 소득을 기준으로 마련됐다. 안정지향 싱글족, 육아기 도심 통근 샐러리 가족 등 한국형 33가지 유형으로 분류돼 있다. 피데스개발은 이들 주택을 올해 말부터 대전과 대구 등에서 공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피데스개발은 주거공간 전문 브랜드 ‘파렌하이트’(Fahrenheit·그림)도 개발했다. 행복한 삶의 온도라는 의미의 파렌하이트는 ‘당신을 위해 최적화된 주거공간을 만들겠다.’는 기업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피데스개발은 설명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파렌하이트는 기존 아파트 브랜드와 달리 주거공간에 대한 실소비자들과의 프로슈머(prosumer) 활동에서 소비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매개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데스개발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서비스 전문브랜드인 ‘바이에프’(byF)도 선보였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파키스탄 연정 사실상 ‘와해’

    파키스탄 집권 연정이 사실상 와해됐다. 연정 파트너이자 제2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 총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연정 탈퇴와 독자 대통령 후보를 지명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6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둔 파키스탄 정국이 혼미에 빠졌다. 샤리프 전 총리는 25일(이하 현지시간)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우리당은 연정에서 철수한다.”며 “해직 판사 사에드 우즈 자만 시디키를 파키스탄무슬림리그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고 말한 것으로 AP와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샤리프 전 총리는 “시디키에게 우리당의 대통령 후보 제안을 수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시다키는 당파성이 없는 훌륭한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제1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의장이자 지난해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대통령선거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집권 연정 탈퇴이유와 관련, 샤리프 전 총리는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해직시킨 판사들을 25일까지 복직시켜달라는 요구를 연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갈등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자르다리 PPP 의장이 대통령 후보 추대라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PPP와 파키스탄무슬림리그 등으로 구성된 파키스탄 집권 연정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사임을 끌어냈다. 하지만 해직 판사 복직과 대통령 후보 선출 문제로 ‘불안한 동거’가 5개월 만에 끝났다. 한편 파키스탄 정가에서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가 연정 탈퇴로 PPP는 지금까지와 같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지역정당의 지지가 있는 만큼 의회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자르다리 PPP 의장을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분석하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28일 개봉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

    [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28일 개봉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정신병원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전에도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뭔가 실수나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프리랜서 작가인 사쿠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마감에 시달리다 술을 먹은 상태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게 잘못돼 자살 기도로 오인된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유건 일단 정신병원의 콰이어트룸에 들어온 이상은, 보호자의 동의와 의사의 결정이 있어야만 퇴원할 수 있다. 사라진 동거인인 데쓰야와 며칠간 자리를 비운 의사 덕에 사쿠라는 꼼짝없이 일주일 이상을 정신병원에 머무르는 상황에 처한다. 28일 개봉하는 일본영화 ‘콰이어트 룸에서 만나요’(감독 마쓰오 스즈키)의 무대는 정신병원이다. 난데없이 정신병원에서의 일상을 시작하게 된 사쿠라는, 어딘가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차츰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정신병원이 나오는 영화의 상당수는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신병에 걸린 ‘비정상인’들이,‘정상’이라고 믿는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정신병원에 들어온 주인공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는 일반적인 스토리에 하나의 트릭을 추가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사쿠라가 정신병원에 오게 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쿠라의 전 남편에 얽힌 스토리와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사쿠라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쿠라가 정상이 아니라면, 사쿠라와 함께 했던 사람들, 사쿠라가 취재했던 모든 이들 역시 정상은 아니다. 역으로 본다면, 우리들 모두가 정상인 동시에 비정상인 것이다. 사쿠라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위태롭게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급류에 휘말렸을 뿐이다. 자신이 왜 정신병원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직시한 후에야, 사쿠라는 다른 환자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거식증이나 우울증 등에 걸린 이웃을 관찰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아픔과 슬픔도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과거까지도. 이야기는 좀 침울하게 들리지만,‘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는 활기찬 영화다. 세상의 시름을 잊고 한껏 즐기는 카니발처럼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는 기발한 캐릭터, 환상과 실재의 현묘한 결합, 도발적인 에피소드 등을 현란하게 활용하며 지그재그로 정신없이 달려간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과장과 개그로 치장된 TV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 것처럼 야릇한 느낌이 든다. 지나치게 깨끗한 ‘콰이어트룸’을 보는 것처럼 작위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콰이어트룸에서 만나요’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코믹 드라마로서 제 역할을 다 한다. 영화평론가
  • 가정불화로 아빠와 별거 중이던 3·6살 자매 죽은 엄마와 한방서 ‘4일간 동거’

    세살, 여섯살의 어린이가 생옥수수로 연명하며 숨진 어머니와 함께 4일 동안 한방에서 지내오다 이웃 주민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22일 강원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4시40분쯤 강릉시 교동의 한 원룸에서 최모(36·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이웃 주민 김모(44)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최씨 옆에는 세살과 여섯살 딸이 함께 있었다. 주민 김씨는 “수원에 사는 최씨의 언니로부터 ‘동생과 연락이 안 되니 확인을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보니 방안에 시체 썩은 냄새가 가득한 채 어린 아이들만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딸들은 발견 당시 삶지 않은 생옥수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었고 방안에는 소주와 맥주병이 널려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체의 부패 상태로 미뤄 최씨가 4일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최씨가 평소 술을 마시고 잠자는 것을 보아온 아이들은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나흘간 시체와 함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 4월 초쯤 남편과 잦은 다툼 등 가정불화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한 뒤 원룸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17일 통닭 배달을 시킨 이후 전화 연락이 끊긴 점,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평소 술을 많이 마셨다는 주변인의 진술 등으로 미뤄 알코올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최씨가 숨지자 두 어린이는 평창에 사는 아버지가 데리고 갔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씨줄날줄] 여간첩 김수임/ 노주석 논설위원

    ‘애정유죄(愛情有罪)’.1950년 6월14일 육군본부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간첩이적행위 등 무려 19가지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여간첩’ 김수임 사건에 대한 당시 신문의 제목이다.6월28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 여간첩은 남한의 실세 중 실세인 미8군사령부 헌병감 베어드 대령의 동거녀이자 북한 초대 외무부장 이강국의 첫사랑이라는 드라마 같은 삼각관계의 여주인공이었다.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에 유창한 영어회화 능력을 갖춰 미 대사관 통역을 지낸 인텔리 여성의 간첩사건은 장안의 최고 화제였다. 당시 재판에 법무사로 배석했던 김태청 전 변협회장은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으며 기꺼이 그 책임을 지겠다고 흐느끼듯 최후 진술했다.”고 회고했다. 김수임의 이화여전 단짝이자 이강국을 소개해 준 장본인인 시인 고 모윤숙은 법정에서 “간첩행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른 것은 이강국에 대한 첫사랑 때문에 피동적으로 저지른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렸던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 조작됐을 수 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AP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1950년대 비밀자료를 분석한 결과 베어드 대령은 북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정보를 가지지 못했다. 또 간첩혐의로 북에서 처형된 이강국이 실제로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강국이 미군방첩대(CIC)요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 조사팀이 2001년 확인한 미 육군정보국의 ‘베어드 보고서’에도 나온다. 이 보고서는 또 베어드가 동거녀를 위해 남한 경찰 및 미군의 1급 비밀을 빼냈다는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 결정을 내리고 있다. 무엇이 김수임 사건의 진실일까. 외국인 권력자에게서 빼낸 정보를 첫사랑 유부남에게 넘긴 애정행각자인가. 아니면 남북대립 상황에서 반공이데올로기의 전파용으로 조작된 희생양인가. 현재로서는 김수임과 이강국 두 사람 모두 좌우 이데올로기와 미군정이라는 삼각파도가 격동치던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정치게임의 희생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여간첩 김수임 사건 조작 의혹”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지며 6·25전쟁 직전 간첩혐의로 처형된 김수임(1911∼1950)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AP통신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1950년대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김수임 사건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16일 밝혔다. 특히 이 문서에는 그동안 김수임이 월북시킨 것으로 알려진 ‘독일유학파 공산주의자’ 이강국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 당국이 ‘미국 간첩’으로 처형한 것으로 나와 있다.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도 이강국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조직인 ‘JACK(한국공동활동위원회·Joint Activities Commission,Korea)’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란 이화여전을 졸업한 미모의 인텔리 김수임이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중요 기밀을 빼내 북측에 넘기는 등 간첩활동을 하다 1950년 3월 붙잡혀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그러나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또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은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이에 따라 김수임은 한국 경찰의 고문을 받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허위자백한 것으로 미군 관계자들이 결론내렸다고 AP는 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꽃미남 父子 vs 유쾌한 父子

    꽃미남 父子 vs 유쾌한 父子

    8월 스크린이 ‘부자 콤비’ 대결로 후끈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끈끈한 정을 코미디에 적절히 섞은 두 편의 영화가 연이어 개봉하는 것.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의 좌충우돌 육아담도 흥미롭지만,‘유명배우’ 아버지를 둔 덕에 덩달아 주목받는 아역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열아홉 초보아빠와 한살배기의 동고동락 ‘꽃미남’ 장근석 주연의 ‘아기와 나’는 열아홉 초보 아빠와 한 살배기 아기의 험난한 동거 생활을 그린 코미디물.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준수(장근석)는 생후 13개월된 아기 우람(문메이슨)이 자신의 아기라며 배달되자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하루아침에 잘 나가는 고등학생에서 미혼부 처지가 된 준수는 고민끝에 아기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기는 인스턴트 분유는 입에 대지도 않고, 자연산 모유만 찾는 등 아빠를 골탕먹인다. 거기에 울어도 제대로 달래지 못하는 초보아빠를 향해 호통을 치는 ‘까칠함’까지 보인다. 이 영화는 폼생폼사 고등학생과 젖동냥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를 오가는 장근석의 코믹 변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장근석과 꼭 닮은 외모로 수천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아기 문메이슨과의 연기 호흡도 관람 포인트다.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이슨은 아기 잡지 모델로 데뷔해 인터넷 팬카페까지 개설된 ‘스타’로서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철든 아버지’ 주성치의 유쾌한 코믹 SF ‘코미디의 제왕’ 주성치가 각본, 주연, 제작을 맡은 영화 ‘CJ7-장강 7호’(21일 개봉)는 부자간의 연기 호흡이 한층 강조된 영화다. 코믹 공상과학물(SF)에 방점이 찍힌 이 작품에서 주성치는 원맨쇼를 방불케 하던 사고뭉치 철부지에서 벗어나 성숙한 부성애 연기를 펼친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자식 교육만큼은 열성적인 아버지로 변신한 것. 가난해도 밝게 살아가던 이들 부자는 장난감 ‘장강 1호’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인다.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들을 혼내고 돌아선 날 밤, 아버지는 쓰레기 더미에서 녹색 공처럼 생긴 물건을 발견한다.‘장강 1호’보다 7배는 더 좋다고 이름 붙여진 장난감 ‘장강 7호’를 받은 샤오디(서교). 알고 보니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말도 알아 듣고 초능력을 구사하는 귀여운 외계생명체였다. 영화 ‘E.T.’에서 영감을 받아 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이 작품을 만든 주성치는 SF라는 장르를 통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자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한다. 그가 선보였던 인생 패배자들이 그들만의 행복을 찾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도 표현된 셈이다. 생각보다 점잖아진 주성치의 연기 변신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지만,‘리틀 주성치’라는 별명을 얻은 아역배우 서교의 깜찍한 코믹 연기는 그 빈자리를 메운다. 주성치는 샤오디 역을 찾아 1년넘게 중국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소년이 아닌 아홉 살 소녀가 주인공의 행운을 안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일가(一家) 권총자살(自殺)로 끝난 명사수(名射手)의 전부

    일가(一家) 권총자살(自殺)로 끝난 명사수(名射手)의 전부

    돈많고, 매력있고, 세상을 멋지게 살줄 안다고 평판이 자자했던 왕년의 사격선수 예비재벌이 처자를 쏴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 부부간 금슬이 나빠 서로 죽어버린건 그렇다 치고 애매한 자식까지 죽음의 동반자로 목숨을 잃게한 이 비극 - . 지난 10월19일 아침 8시쯤 춘천시 조양동 18 허름한 4간짜리 양철집에서는 부부싸움으로 왁자지껄하더니 세발의 권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30대 젊은나이에 예비재벌「그룹」에 끼였고 사격·수상「스키」·승마등 호화로운 취미와 재주로 강원도를 휩쓸던 김기환(金璂煥)씨(32)가 권총으로 일가자살을 한 것이다. 1주일 이상이나 개점을 앞둔 상점에서 매달려 살던 김씨가 이날 아침 집에 들어가 옷장으로 쓰고있던 「캐비니트」1개를 점포로 내오려하자 아내 공정임(孔貞任)여인(30)이 『딴살림을 차릴 속셈』이라고 대들었다는 것. 성격이 직선적이고 한번 화를 내면 물불못가릴 정도로 급하다는 김씨는 홧김에 결혼기념사진 10여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앞마당에서 천진난만하게 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들 K군(4)을 끌어 들였다. 처자를 방구석에 몰아넣고 연습용으로 가지고 있던 22구경의 권총으로 아들과 처의 이마를 차례로 쏴 죽인 뒤 그대로 선채 자기의 왼쪽 귀밑을 쏴 자살해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살륙극이었다. 사냥땐 으례 아가씨 동반 부부싸움 잦더니 기어이… 김씨의 재산은 알려진 것만도 현재 춘성군 신동면 삼천리 경춘(京春)국도변에 싯가 1천여만원짜리 땅 1만여평과 동산면 조양리 국도변에도 1만2천평에 향나무를 심은 것이 2~3백만원정도. 그리고 지난 20일 개업키로 했던 금은방에 들여놓은 물건이 2~3백만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그가 죽기 하루전까지 빌어쓴 은행돈과 사채가 자그마치 1천여만원선에 이르고 있었다는 것. 춘천 토박이로 6남매중 4째인 김씨는 C농고와 K대학을 거의 고학으로 졸업, 졸업하던 66년 춘천 S양복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채1년도 못있다가 맞은편에 점포를 빌어 시대사란 양품점을 냈다. 자기사업을 벌이면서 사업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은행거래를 튼 김씨는 부동산 투기 「붐」을 타고 적당한 땅을 물색, 그 땅을 은행에 저당잡히고 대부를 받아 땅값을 치른후 이득을 남겨 파는 방식으로 눈덩어리 굴리듯 돈을 늘렸다. 함께죽은 공여인은 그가 가장 고생이 심했던 지난 66년 춘천 S다방의 얼굴「마담」으로 있었다. 서로 눈이 맞아 쉽게 동거를 시작했으나 김씨는 돈을 벌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나아지자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부동산「붐」도 소양「댐」수몰 보상금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매기가 둔화됐고 또 건축업이 활기를 잃었던 것. 그러나 김씨가 사냥떠날때는 그전과는 달리 사냥개와 함께 아가씨가 따르기 시작했다. 사격에 능숙한 김씨는 지난 69년에 있었던 2차 한일수렵대회에서는 1등을 했고 2회 「아시아」선수권 선발대회때도 우수선수로 활약해왔으나 올해는 사격도 「슬럼프」에 빠졌다. 사격협회이사겸 지도위원, 승마협회 이사, 「로터리클럽」회원으로 사회활동을 해온 김씨의 죽음에는 생존시 선망의 화제만큼이나 구설수가 뒤따르고 있다.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0월 30일호 제4권 43호 통권 제 160호]
  • 마음변한 그이를 간첩으로 신고해

    목포경찰서는 18일 김(金)모양(19)을 경범죄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즉심에. 김양은 넉달동안 동거생활을 해온 장(張)모씨(24)가 요즘 마음이 변해 18일 아침 다른 아가씨들과 여행을 떠나버리자 화가나 장씨가 매일밤 이북방송을 듣는 등 간첩용의자라고 경찰에 허위신고했다나. -미운놈은 모두 간첩인줄아나. <목포> [선데이서울 71년 10월 31일호 제4권 43호 통권 제 160호]
  • 연기인생 18년 ‘천의 얼굴’ 이범수

    연기인생 18년 ‘천의 얼굴’ 이범수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범수(39)는 모든 답변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배우인생 18년을 통해 얻어진 당당함이었다.TV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온에어’의 연속 흥행 이후 영화 ‘고死:피의 중간고사’(이하 ‘고사’)로 스크린에 도전한 그를 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뷔 후 첫 공포영화 ‘고死…´ 출연 “이전 작품을 성황리에 마쳤다고 다음 행보를 뜸들이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른바 스타라고 ‘점잖게’ 뒷짐지고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요. 야구에 비유하자면, 전 빨리빨리 타석에 들어서서 더 많은 홈런을 치고 싶은 선수죠.” 20년 가까이 한 길을 걷다 보면 한번쯤 타성에 젖거나 지루한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연기에 목마른 신인 같은 열정을 뿜어낸다. “연기생활에 대해 단 한번도 회의를 느낀 적이 없어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목적지가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요. 색다른 배역을 맡을 때 느껴지는 감정도 신비감, 호기심, 낯섦 등 다양하죠. 제겐 연기 이상의 오락이나 취미가 없어요.” 그동안 ‘오! 브라더스’‘슈퍼스타 감사용’‘짝패’‘싱글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여행을 해온 이범수는 데뷔 후 처음 공포영화에 출연했다. 그가 ‘고사’에서 맡은 창욱은 학생들이 의문의 죽음을 맡는 상황을 해결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선악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다. “어릴 때 누구나 접하는 ‘귀신의 집’은 오싹한 재미를 주죠. 처음엔 온화하던 창욱이 공포 때문에 점차 잔인하게 변해가는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이번 영화는 무엇보다 소재의 현실감이 뛰어나고, 드라마가 살아있어서 공포 마니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은 도전정신 덕분 역설적이게도 1990년에 데뷔해 영화계에만 몸담았던 이범수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는 TV의 힘이 컸다. 그는 MBC 예능프로그램 ‘동거동락’에서 끼를 발산해 주연배우로 올라섰고, 지난해 드라마의 흥행으로 코믹배우 이미지를 벗고 ‘훈남’ 연기파 배우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저, 대학교 때도 밋밋하지 않고 개성적인 얼굴 덕에 ‘훈남’이라는 얘기 종종 들었어요.(웃음) 영화에선 자극적인 역할을 많이 했고,TV에선 좀더 생활과 밀접한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대중들이 더 친근하게 느낀 것 같아요.” 각종 시상식에서 상복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는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상을 주면서 격려하고 다독여왔다. 그런 만큼 현재의 인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물론 인기는 달콤하고 소중하죠. 그런데 바람 같은 인기가 스쳐 지나간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애써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또 다가올 바람을 기다리면 되니까요. 저도 분명 인기가 떨어질 날이 오겠지만, 그때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중요하겠죠.” 실제 성격도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직선적이며,‘온에어’의 장기준처럼 부드러운 면이 있다는 이범수. 이제 그에게 과거처럼 망가진 코믹 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배우로서 저의 차별성은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멜로, 악역, 코믹, 휴먼 연기 등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예상을 깨고 도전했기 때문이죠. 다음번엔 또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면을 보여드릴 거예요.” 글 이은주 사진 안주영기자 erin@seoul.co.kr
  • 영화와 음악의 ‘행복한 동거’

    ‘원스’‘어거스트 러쉬’‘님은 먼곳에’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음악을 소재로 하거나 영화속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음악영화라는 점이다. 최근 스크린에 음악영화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국내 유일의 음악영화 축제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가 14일부터 19일까지 충북 제천시 청풍호반 일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제천영화제의 테마는 ‘도약’. 영화와 음악, 자연이 어우러진 휴양영화제라는 대중성 위에 ‘음악영화의 장르화’라는 장르영화제의 내실을 더해 영화제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물과 바람의 도시’로 유명한 제천의 특색을 살려 앞으로 벨기에의 겐트영화제, 체코 프라하 모폼 영화제 같은 국제적인 음악영화제로 키워간다는 목표다. 총 30개국 82편의 음악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에는 ‘영앳하트-로큰롤 인생’이 선정됐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81세인 밴드 ‘영앳하트 코러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미국의 유명 가수 발굴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열기를 정면으로 비판한 ‘위대한 사운드의 세계’와 자메이카 출신의 대표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음악인생을 조명한 ‘밥 말리-엑소더스 77´도 화제작. 영화 `아버지의 깃발´ 등에 출연했던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톰 매카시가 메가폰을 잡은 폐막작 ‘비지터’는 아프리카 전통악기인 ‘젬베’를 소재로 불법 이민자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한 작품이다. 음악영화제에서 음악회는 빠질 수 없다.‘원 서머 나이트’로 유명한 중국 가수 천추샤(陳秋霞)와 일본의 재즈밴드 마우 프로젝트가 영화제 기간 공연을 갖고 국내에선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DJ DOC, 자우림, 바드, 크라잉넛 등 인기 가수들이 제천을 찾을 예정이다.상세한 상영 및 공연일정은 영화제 홈페이지(www.jimff.org) 참조.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월드이슈-글로벌 경기 침체 원인과 전망] “美경제 저항력 좋아 금융의 유동성위기 곧 극복”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외

    [월드이슈-글로벌 경기 침체 원인과 전망] “美경제 저항력 좋아 금융의 유동성위기 곧 극복”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외

    |글 파리 이종수특파원|세계 경제가 침체 일로에 있다. 미국은 물론 한 동안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던 유로존(유로화를 공동 화폐로 사용하는 15개국) 지역의 경제에도 잇따라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1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총리 산하 경제분석위원회 위원장을 5년째 맡고 있는 크리스티앙 드 부아시외(61)를 만나 세계 경제 및 유로존 경제의 침체 원인과 전망을 들어 보았다. 지난달 25일 파리 8구 아브뉘 프리에드랑 27번지 상공회의소 안의 경제분석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드 부아시외 위원장은 “카타르 회의에 참석하고 오느라 2시간도 채 못 잤다.”면서도 피로한 기색도 없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먼저 경제분석위의 위상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1997년 좌·우 동거(코아비타시옹)정부 때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좌·우를 넘나드는 경제 전문가를 모아서 정부가 정책을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게 보고서를 내도록 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립 멤버로 참여한 뒤 2003년 이후 총리가 세차례나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위원장을 맡고 있다.“총리를 3명이나 갈아 치웠네요?”라고 물으니 웃으면서 ”대통령처럼…”이라고 웃으며 응대했다. 세계 경제의 위기를 진단해 달라고 했더니 해박한 지식으로 막힘없이 설명했다. “현재 경제 위기는 세 가지 ‘충격’과 한 가지 요인이 중첩된 탓이다. 구체적으로 ▲유가 인상(최근 약간 내리기는 했지만) ▲재정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한) ▲식량위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개별 요인이 이전에도 불거진 적은 있었지만 현재처럼 동시에 맞물려 진행된 적은 드물다. 여기에 달러 약세마저 겹치는 바람에 세계가 충격 속에 빠져 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서도 프랑스 최고의 화폐경제학자로서 그의 전망은 낙관적이었다.“비관적 전망이 많지만 경제 재앙으로까지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의 저항력이 커졌기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경제국(BRICs)이 여전히 7∼8%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역동적이다. 또 미국 경제의 저항력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현재 경제 위기의 본질은 은행의 유동성 위기이지 경제 전체의 유동성 위기는 아닌 만큼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제 상황은 “이론적으로 2분기 연속 지수가 후퇴해야 경기 후퇴라고 진단하는데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의 저력은 여전히 크다.”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드 부아시외 위원장의 전망이 ‘장밋빛 일색’은 아니었다. 그는 “두 가지 경고를 하고 싶다.”면서 “앞서 말한 경제위기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세계 경제의 저항력도 줄어들 것이고 현재 경제위기는 국가간 연동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제는 유로화 강세로 넘어 왔다. 그는 “유로화가 강하다기보다는 달러가 약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달러화 약세를 둘러싼 몇가지 원인을 들려 줬다.“미국이 대외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 수입량을 대폭 늘린 데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통화 정책이 맞물려 상승 작용을 했다. 여기에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외화를 다양화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달러화가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유로화 강세와 맞물려 최근 잇따르는 인플레이션으로 고민하는 유로존의 대책이 궁금했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6월 말 이자율을 4.25%로 올렸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자율 인상 정책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ECB가 이자율을 올리면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이자율을 더 큰 폭으로 내려 유로 강세가 지속되기 때문이고, 이 현상이 지속되면 외국 투자가들은 유럽보다 미국에 투자하기를 선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자연스레 그의 대안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이자율을 올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데로 모아졌다. 그는 “상황이 변한 것이 없는데 왜 ECB만 이자율을 올리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유로화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올리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를 위해 장-클로드 트뤼세 ECB총재가 정기적으로 유로화 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출범 10년을 맞은 유로화 체제에 대해서는 매우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는 “매우 긍정적이고 성공적이라고 판단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입 국가들이 유로화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달러와 경쟁하는 통화로서의 애초 목적을 충분히 이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프랑스·유럽연합의 경제협력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낙관한다.”면서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가 일단 좌초됐기 때문에 양자간 협상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과 프랑스가 정치·경제·문화적 경험을 공유할 경우 유익할 것”이라면서 “한국과 프랑스·EU가 경제 협력을 강화해서 윈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프랑스의 경제 협력 강화와 관련해 그는 새달 8일부터 7일 동안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한승수 국무총리와는 ‘25년 지기’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자신이 재직하는 파리1대학에서 주최한 학술회의에 당시 서울대 교수이던 한 총리가 참석했는데 지금까지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vielee@seoul.co.kr ●드 부아시외 위원장은? 프랑스의 대표적 통화학자. 경제분석위원회에 11년 동안 몸담고 있다.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경제학 국가박사를 획득한 뒤 루앙대·파리정치대 교수를 거쳐 파리 1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화폐 유통의 속도’,‘이자율의 구조’,‘경제 정책의 원칙’ 등 20권 남짓한 저서가 있다.
  • ‘전진의 여고생4’, “비교육적” 비난 잇달아

    ‘전진의 여고생4’, “비교육적” 비난 잇달아

    가수 전진(27·본명 박충재)과 여고생 4명의 동거 생활을 담은 M.net ‘전진의 여고생4’ (연출 김태은)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가족 동거 리얼리티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에서 전진은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여고생 4명의 보호자를 맡아 직접 양육비도 벌고,보살피기도 하는 등 아빠 역할을 하고 있다. ‘전진의 여고생4’는 최근 ‘전스틴’ 등의 별명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전진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첫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방송 전부터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6일 첫 방송 이후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해당 프로그램 시청자소감 게시판에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너무 비교육적이다.” 등의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다. ‘dltkddms77’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한마디로 막나가는 프로그램이다.전진만 불쌍하다.”며 “재밌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고 쓴 소리를 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고생들에 대한 비난도 잇달았다.아이디 ‘mikeblee’는 “택시 운전사에게 영어로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아무리 설정이라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이 외에 “학생들이 방송에서 술·담배·폭행 경험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방송한 것은 정도를 넘어선 것.”(fhfkdfhfkd),“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여고생들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는가.”(nigimi1037),“(여고생들의 행동에)전진도 매우 불쾌해 보였다.”(tjgjswhd)는 등의 의견도 있었다. 프로그램 폐지에 대한 의견 역시 적지 않았다.네티즌들은 “전진 팬들도 이 프로그램 안 본다.차라리 폐지해라.”(hshzzang01),“전진과 출연 학생들 욕 먹이지 말고 빨리 폐지하는 것이 낫다.”(424dbswp),“M.net은 청소년들이 많이 보는데 이 프로그램은 너무 비교육적이다.폐지해야 한다.”(yang0145)고 촉구했다. 반면 “방송이라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재미는 있으니 조금만 이해하고 지켜보자.”(tmznf66),“앞으로 더 흥미로울 것 같다.”(audwn217),“돌발 상황에서 전진이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mj14080) 등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의견도 소수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에이미·바니 “악녀일기 캐스팅 궁금하시죠?”

    에이미·바니 “악녀일기 캐스팅 궁금하시죠?”

    부유층 자제의 좌충우돌 동거기를 다룬 케이블TV 올’리브의 ‘악녀일기3’로 스타덤에 오른 두 소녀 에이미(본명 이윤지)와 바니(본명 김바니)를 만났다. 이들에 대한 솔직한 첫인상은 ‘아담해 귀엽다’, ‘웃는 모습이 해맑다’ 정도의 ‘평범함’ 이었다. ‘악녀일기3’의 인기와 함께 화려한 가정환경이 알려지며 연예인 못지 않은 주목을 받고 있는 두 소녀이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미지였다. 인사를 건넨 후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촬영에 임하자 요청 없이도 척척 포즈를 취하는 에이미와 바니. 어느덧 스타가 된걸까. 일명 ‘화보용 포즈’는 아니었지만 꾸밈없는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렌즈 안에 담겼다. 포즈가 심상치 않다는 평에 ‘악녀 일기’ 메인 작가인 허은진 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에이미와 바니가 캐스팅 된 이유가 바로 이거에요.”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제작진에 따르면 ‘악녀일기 2’가 끝날 무렵부터 약 3달에 걸쳐 ‘시즌 3’ 악녀에 꽤 어울릴 거 같다고 거론되는 후보자만 약 1천명을 만났다고 한다. 경쟁률은 자그마치 500:1. 부유한 가정환경을 기본, 오리지널 럭셔리함이 철철 흐르는 미녀들 사이에서 ‘아담하고 수줍음 있는’ 에이미와 바니가 빛을 발하지 못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이미와 바니는 첫 면접 후기를 털어놓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희 둘 모두 탐탁치 않아 하셨어요. 사실 면접 보러 가서 쭉쭉빵빵한 다른 후보들을 보고 기가 확 죽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제가 제일 마지막 후보였는데 인사 드릴 때 심사위원들 표정을 보고 ‘아, 나는 아니구나’ 생각했죠.”(바니) 심사를 맡았던 작가도 부정하지 않았다. “바니의 경우, 1차 탈락했어요. 처음엔 특별한 특징이 없다고 판단해 그냥 넘겼어요. 하지만 얘기를 나눠 볼수록 왠지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죠.”(작가) 작가의 말에 바니가 “그다음 만났을 때엔 30분만에 나한테 반한 거에요!”라고 외쳤다. 작가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요. 바로 이런 점이에요. 다들 자신을 치장하기에 바빴지만 바니에게는 특별한 순수함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에이미 역시 면접시 이목을 끌지 못했다. “제가 조금 낯을 가리는 편이라 수줍음이 있는 편이에요. 바니가 말했듯이 다른 경쟁자를 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구나 싶어 자신감을 잃었었죠.”(에이미) 하지만 에이미가 ‘떨어졌구나’ 생각하고 돌아서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면접장에서 돌아서는 순간,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거에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감독님께 밝게 인사했죠. ‘감독님 안녕~!’하고요.”(웃음) 이 한마디가 ‘악녀일기3’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감독에게 에이미의 마지막 인상은 강하게 각인됐고 자신이 찾던 ‘악녀(樂女)’이미지에 딱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 그 후 다시 진행된 면접에서 에이미와 바니는 자신만의 색을 뚜렷히 드러내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에이미와 바니는 자신들이 캐스팅 된 이유에 대해 ‘부족함’을 꼽았다. “키 크고 예쁘고 빈틈없는 후보들이 많았지만 저희의 부족한 면을 매력으로 헤아려 주신 것 같아요. 실수 투성이라서 여동생 같은 친근감 있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바니) “저희에 대한 선입견이 많다는 걸 알아요. 그럴수록 더욱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이유도 흔히 ‘된장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싶었거든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 알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요.”(에이미) 부유층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이들의 도전은 이미 시동이 걸렸다. 에이미와 바니는 지난 2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자선 바자회와 일일 포차를 진행해 모은 후원금 전액을 ‘사랑의 집짓기’ 재단에 기부해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이제 막 시작”이라며 환하게 웃는 두 악녀는 ”우리의 작은 힘이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싶어요.”라며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김경민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여성&남성] 혼전동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성&남성] 혼전동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혼전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지만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달 28∼31일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미혼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혼전동거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59%가 혼전동거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연인과 함께할 수 있고, 살아보고 결혼해야 안전하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공중파와 케이블TV 드라마에서는 혼전동거 커플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부모 세대가 들으면 깜짤 놀라겠지만 혼전동거에 대해 여성과 남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함께살다 안 맞으면 미련없이 갈라서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이모(32)씨는 ‘동거’ 예찬론자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결혼을 위해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여긴다.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고,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을 거친다면 결혼 생활이 순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긴 연애 끝에 결혼해도 성격이 안 맞는다는 등의 이유로 이혼이 늘고 있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아무래도 함께 살다 보면 서로의 단점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씻는 것, 잠자는 모습, 식성 등 생활 습관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수용할 수 있다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다면 깨끗하게 갈라서자는 것이다.“동거 과정에서 서로에게 실망해 헤어져도 양가 부모가 모르기 때문에 큰 파장이 없습니다. 무턱대고 결혼해 인생을 망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박모(23·여)씨는 남자친구와 동거한 지 4개월째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면 미리 살아보고 결혼하는 게 바람직스럽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외모나 성격 못지않게 속궁합도 중요하게 여긴다. 결혼한 선배들에게서 밤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속궁합은 살을 맞대고 부대껴봐야 확실히 알 수 있기에 먼저 살아본 뒤 결혼 여부를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겉과 속이 동시에 충족돼야 진정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동거 조건이 있다.‘임신을 피한다.’는 것이다. 결혼 전 임신은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혼 후 발생할지도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보험을 든다고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아요. 혼전동거가 제 자신의 삶을 더 책임있게 꾸려나가게 하는 행동이 아닐까요.” 회사원 윤모(32)씨는 혼전동거는 결혼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TV 오락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 프로그램은 남녀 연예인을 출연시켜 실제 결혼 생활을 상정한 뒤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청자들에게는 혼전동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서로 결혼을 하지 않은 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혼전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윤씨에게는 몹시 부러웠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윤씨만의 것이었지, 공유되지는 못한다. 최근 윤씨는 직장 회식 자리에서 “혼전동거를 해봤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큰 낭패를 봤다. 선후배나 동료 직원들이 그를 플레이보이 취급을 하며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결혼은 개인의 만남 못지않게 가족의 얽힘도 중요 반면 결혼 전 동거한 사람과 헤어진 뒤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 때 그 행위는 현 배우자에게 평생 죄의식으로 작용하거나 살아봐도 상대방의 집안 사람은 알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하모(31)씨는 ‘순결론자’이다. 동정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혼 뒤 바쳐야 한다고 믿는다. 젊은 시절 한때의 기분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은 훗날 맞이할 배우자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하씨에게 혼전동거란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결혼 전 함께 지내고서는 서로 맞지 않는다고 헤어진 뒤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같은 결벽증(?) 때문에 하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 세상은 변했는데 사고방식은 여전히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조롱마저 듣는다. 하지만 하씨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떳떳해야 사랑하는 이에게 당당할 수 있고, 결혼 생활의 행복도 지킬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혼전동거는 결혼의 신성함을 깨뜨리는 행위예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날밤에 대한 환상, 가슴 설렘 등 결혼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를 망가뜨리기 때문이죠.” 결혼 3년차인 회사원 윤모(33)씨는 혼전동거를 해도 자신과 맞는 짝을 찾기 힘들다고 믿는다. 윤씨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살면 서로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다른 여성과 동거를 했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같이 지내면 속궁합은 알 수 있을지언정 여자 쪽 집안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이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 못지 않게 가족과 가족의 얽힘도 상당히 중요하더군요. 가족 간의 관계가 안정돼야 결혼 생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점은 혼전동거로는 절대 알 수 없죠.” ●“남녀에 대한 이중잣대 없어져야”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 남자에게는 관용을, 여자에게는 냉대를 보내는 사회적인 모순을 비판하는 견해도 있다. 직장인 장모(27)씨는 혼전동거를 원치 않는다. 대학시절 알고 지내던 동거 커플의 안타까운 말로를 본 뒤 ‘여자를 위해서라도 절대 혼전동거는 하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함께 살던 친구 커플은 2년 전 헤어졌는데 남자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만나며 잘 지냈지만, 여자 쪽은 주위 사람들에게 ‘노는 여자’로 알려져 대학생활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결국 그녀는 휴학을 하고 말았다.“서로 책임질 수 있고 동거하다 헤어져도 주변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는 문화라면 결혼 전 동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여자에게만은 냉혹한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 김모(29·여)씨도 혼전동거에 대해 여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추궁하는 이중 잣대에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김씨는 평생 함께 할 반려자라면 살아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3년 전 사귄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갔다. 지내면서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하고, 위해주며 잘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들의 전형적인 버릇이 나왔다.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별 뒤 찾아왔다. 대학원에 소문이 이상하게 퍼졌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모멸감을 느낀 김씨는 자퇴했다. 자신과 헤어진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를 만나 동거하며 잘 지냈다.“남자와 여자를 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더군요. 혼전동거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전동거, 옳고 그름 판단 사항 아니다” 혼전동거는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 최모(28·여)씨는 혼전동거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즘 대부분의 남녀는 결혼을 염두에 둔다면 혼전에 성관계를 갖더라도 함께 사는 건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최씨도 2년전 남자친구와 3개월간 동거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늘 붙어 있고 싶었고, 결혼도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남자친구의 좋지 않은 면을 알게 되면서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기혼자들의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개인의 판단에 사회적인 잣대를 들이대 ‘옳다, 그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개인 사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거나 관심이 높은지 모르겠어요.” 장형우 김정은 황비웅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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