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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표 강공발언 미리조율…‘이슈대응회의’ 갖기로

    ‘아니 대표가 왜 저런 말을….’ 최근 한나라당 당직자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다.멀리는 정체성 관련 발언이나 가까이는 과거사 진상에 대한 포괄적 규명 등 박 대표의 잇단 ‘돌출 발언’에 당직자는 물론 지도부까지 그 의중을 몰라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안에 대한 사전 조율이 미흡한 탓에 빚어진 이런 모습은 앞으로 줄어들 전망이다.이번 주부터 대표비서실장과 원내수석부대표 사무부총장 정책위부의장 등 핵심 당직자들이 지도부회의 전날에 모여 현안을 사전에 조율하는 이른바 ‘이슈 대응회의’를 신설,현안 대응력을 강화하는 등 시스템 정비에 나서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당 지도부와 교감의 폭이 깊은 당직자들이 모여 현안을 미리 거른 뒤 국회·정책위 등 파트별로 대응책을 분담하여 대표나 원내대표,정책위의장에 보고해 지도부내 이견을 막고 당론 혹은 당 운영방향에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이런 결정은 박 대표의 ‘독자적 행동’을 둘러싸고 최근 당내 형성된 묘한 ‘틈새 기류’를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비주류 의원들은 물론 친 박 대표계로 불리는 일부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박 대표의 ‘나홀로 강경투쟁’에 대해 “기성 정치인처럼 정쟁에 휘말려 민생 끌어안기라는 박 대표만의 신선한 장점을 흐리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그동안 나왔다. 이런 사전조율 기능의 강화는 박 대표의 정치적 부담을 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최근 정체성·과거사 등 정치 현안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치고 나가기’에만 매달리고 ‘팀플레이’는 미흡한 한계를 드러냈다.특히 각종 회의에서 여권을 공격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대개는 ‘뒷북’을 치거나 원론적 수준의 공허한 비난만 난무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이번 주부터 매주 수요일 최고위원회의를 갖기로 한 것이나 주요 회의에 참가하는 당직자 수를 줄여 논의의 생산성을 높이기로 한 것도 현안 대응력을 더 키우려는 시도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쌍용차매각 사우디 변수

    사우디아라비아 술탄 빈반다르 알파이살 왕자가 최근 쌍용차 인수의사를 뒤늦게 밝히면서 현재 진행중인 쌍용차 매각과정에 새로운 돌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실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술탄 왕자의 강한 인수의욕에도 불구하고 실제 인수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술탄 왕자가 파트너로 참여하는 그룹텍코리아 김진백 사장은 20일 “술탄왕자가 지난 4일부터 18일까지 업무보좌관 2명을 한국에 파견하면서 쌍용차 인수협의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어 “다음주 쌍용차 매각협상 대리인인 삼일회계법인과 채권단과도 만나 공식적으로 인수추진 의사를 공식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측은 “아직까지 술탄왕자측으로부터 어떤 제의도 없었다.”면서 접촉설을 부인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주부터 실사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옆길을 볼 상황이 아니다.”면서 “(술탄 왕자가)돈을 많이 준다고 한마디 던졌다고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알수가 없다.”며 재협상이 쉽지 않음을 내비췄다. 이에 쌍용차측은 “우리는 협상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라면서 향후 협상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면 쌍용차 노조측은 다음주중 회사매각과 관련해 요구안을 마련,채권단에 실질적인 매각 참여를 요구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협상과정에 새로운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채권단과 매각협상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협상 타결을 높이기 위해 이행보증금으로 매각대금의 5%를 걸어둔 상태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자문위원 칼럼] 개혁도 관리의 대상이다/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한국 사회가 역사적 전환점에 있지 않은 적이 없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어떤 고비에 서 있음을 느낀다.고비의 징후는 전례없이 근본을 건드리고 있는 사회 이슈와 논쟁의 색깔에서 읽을 수 있다.정치 논쟁은 국가 정체성과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송두리째 쥐고서 샅바싸움을 하고 있고 불황속에서 치러지는 경제 논쟁은 시장과 반시장,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문제로 비화되고 있다.정치적 수사로 치면 요령부재에다 하도 어설퍼서 설득력이 없고,논쟁의 수준은 현실 민생과 너무나 동떨어져 부질없는 지적 허영의 난무처럼 들린다.상생을 위한 정치적 대화와 합의는커녕 타성까지 붙어버린 당파적 정쟁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감할 뿐이다. 작금의 돌출적이고 현란한 이슈,그리고 가닥을 잡기 힘든 정쟁의 뿌리는 한마디로 소위 진보세력이 해방이후 처음으로 대통령과 국회를 장악한 지배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진보세력이란 표현이 귀에 거슬린다면 그동안의 지배세력과 ‘다른 정치 세력’으로 불러도 좋다.민주사회에서 정권의 교체는 이전 지배세력의 문제점을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나 해결하는 과정이고,거기에서 새로운 정권은 정당성을 찾는다.그래서 지금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지배세력이 안고 있었던 해묵은 문제인 정경유착,과거사 청산,지역 분열,인권피해 등을 중요 의제로 삼고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사안들은 상당부분 누리던 자와 상처를 입은 자가 명백하게 갈라지는 편 가름과 갈등의 이슈일 수밖에 없다.이전의 지배세력이 누리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독재 권력의 시혜가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만큼,새 정치권력의 의제는 과거청산의 성격이 짙게 되고 그만큼 골깊은 사회적 갈등을 담게 된다.다른 정치세력이 되기로 한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어떤 정권보다도 거센 정치공격을 감수해야 할 처지이다.진정한 정권교체의 역사적 경험이 일천한 한국 정치는 새로운 집권세력이 지금까지의 집권세력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존재의 이유까지 부정하고 나선다.정치적 다름은 저쪽의 상승이 이쪽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더욱이 분열과 갈등속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민주주의를 학습하지 못한 한국정치는 상대편 정권을 없신여기고 싶어하고 어디 잘하나 보자식의 뒤틀린 심사도 발동한다. 이같은 현상은 언론에도 그대로 투영된다.역대 정권과 유착,타협 또는 반목을 통해 어느새 ‘정치하는 언론’이 되어 버린 언론은 한번 가버린 정파적 노선으로부터 공정과 균형으로 쉽사리 되돌아오지 못한다.최근 탄핵과 17대 총선에서 보여준 보수 신문의 야당 편들기 보도,공영방송의 여당 편향보도, 방송위원회의 아무런 근거나 설명도 없는 탄핵방송 문제없음 결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독자와의 정치적 교감을 중시하는 일부 언론은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독자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 공격에 나선다.그럴수록 신뢰위기는 더욱 심해지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찾지 못한 언론은 정부와 갈등 관계에서 우선 단기적인 득을 보고자 한다. 해방이후 최초로 ‘다른 정치세력’이 된 노무현 정권에 야당과 보수 언론,수구적 지식인과의 갈등은 거의 필연적이다.그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면 노무현 정권에 갈등은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대결과 말싸움은 갈등 증폭의 부작용만 낳는다.이젠 설득과 대화,자제,관용,정치적 협상 쪽에서 리더십의 미덕을 찾을 때이다.개혁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독재가 되기 때문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기고] 타이완 ‘독립 도박’ 가능성 적다/이영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타이완해협의 먹구름은 양안의 중국과 타이완 그리고 여기에 직간접으로 연루돼 있는 미국 사이의 3각관계가 역동적 변화를 거듭하면서 형성되고 있다.그 역동적 변화의 중심에는 역시 타이완이 자리하고 있다. 재집권에 성공한 천수이볜 총통은 ‘탈중국화’를 가속화하는 한편 2006년 ‘신헌법’ 제정과 2008년 시행을 천명했다.이러한 일정을 중국은 독립 ‘시간표’로 규정,강경한 입장을 밝혔다.지난 5월20일 타이완 총통 취임식 직후 중국 정부는 타이완이 “벼랑에서 말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독립은 평화가 없으며 분열은 안정이 없다.‘하나의 중국’ 원칙은 절대 타협할 수 없으며,타이완 독립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2008년 올림픽 개최를 위해 타이완의 독립행보를 좌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일체의 대가를 마다하지 않고 주권 및 영토 보전을 수호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中, 타이완 독립노력에 최후통첩 중국은 5월17일 타이완에 “벼랑에서 말을 세우거나(懸崖勒馬)”,아니면 “불놀이로 자신을 태우거나(玩火自焚)”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평화통일’ 노력 실패에 대비한 무력사용 의지를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타이완의 ‘도박’에도 대비하기 위한 군사획득 및 군현대화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타이완해협 3각관계의 주축인 미·중관계는 최근 타이완으로 기울고 있는 미국의 태도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미국은 직간접적으로 타이완에 보다 광범위한 정신적 고무 및 암시를 보내고 있다.미국의 대타이완 군사판매를 포함한 군사협력은 빌 클린턴 행정부 후기부터 확대돼 왔으며,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통한 대타이완 방위협력을 천명했다.미국은 대타이완 방위협력을 보장할 수 있는 ‘타이완관계법’을 유지하고 있다.중국은 미국이 양국관계의 대국적 틀을 중시함으로써 타이완에 ‘잘못된 신호(錯誤的信)’를 보내지 않도록,그리고 독립을 지지할 것으로 ‘오판’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누차 촉구해 왔다.후진타오 주석은 5월 말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독립세력의 분열활동은 타이완해협의 평화 안정에 대한 최대 위협인바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함으로써,타이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중국에 ‘잘못된 신호’는 미국의 대타이완 첨단군사장비 판매다.이는 타이완의 ‘두려움’을 무디게 함으로써 ‘무력에 의한 통일 거부(以武拒統)’ 노선 강화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거듭된 중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미국은 대타이완 군사관계의 전면적 제고를 의미하는 군사판매를 확대해 왔다. ●美·中·타이완 삼각관계 대전환 미국의 대타이완 군사판매는 미·중관계를 저해하는 돌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타이완의 전역미사일방어(TMD)체계 가입 실현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이는 중국의 타이완 정책에 대한 견제로 작용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수단이 될 것이다.타이완의 TMD 가입은 중국의 ‘한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서,타이완의 보다 넓은 ‘이탈’ 공간 확보를 의미한다.사실상 타이완에 대한 무기판매 및 방위협력을 포함한 미국의 타이완 전략은 미국의 국가이익,동아시아전략 그리고 대중(對中)정책 등에 대한 고려와 연계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중국은 미국의 타이완 전략 중심이 대타이완 방위협력 및 양안 균형유지로부터 중국을 겨냥한 ‘적극적’ 배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다. 타이완해협 정세는 매우 민감하고 복잡하다.우선 중국에 있어 타이완과의 게임은 딜레마이다.반복되는 군사동원 엄포에도 불구하고,‘무력에 의한 통일(以武促統)’ 정책은 현재 주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수반될 위험 및 대가가 엄청나기 때문이다.군사행동은 미국의 개입을 초래하고,군사적 좌절로 인한 국내적 위신 손상은 보다 광범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그러나 독립 지향을 저지하기 위한 중국의 무력위협 사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오판 가능성 완전배제 못해 한편 현실적으로 타이완의 선택 역시 다방면의 고려가 요구될 것이다.그중 하나는 중국과 미국의 반응이다.중국은 독립 저지를 위한 모든 조치들을 강구할 것이며,동시에 평화통일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타이완이 중국이 설정한 ‘임계선’을 넘는다면 중국은 반드시 반응할 것이다.이 경우 미국의 대응은 중국의 최우선 고려요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만약 타이완의 행동이 미국의 동아시아 근본이익에 심각한 손상을 가한다면,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따라서 타이완은 전략적 환경 및 반경이 계속 제한된 가운데,국가안보의 틀 속에서 구사되는 중국의 군사·외교·경제적 압력하에서 그리고 양안의 충돌발생 위험을 바라지 않는 미국의 지속적 압력하에서 독립선포라는 모종의 극단적 행동 선택이 어려운 실정이다.따라서 중국에 대한 보다 현실·실용적 선택이 현명할 것이다. 결국 타이완 혹은 중국에 의한 ‘오판’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하지만 최소한 당분간 양안관계는 상호 충돌 방지의 동기 및 기제들이 작용하는 가운데,상호 ‘대가의 공포’에 의한 ‘현상유지’의 인정과 ‘지위변경’의 시도 사이에서 실용적 평형이 유지됨으로써,중대한 위기 발생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그리고 희망어린 전망을 가져본다. 이영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베이징·샤먼 yglee@kida.re.kr
  • 현정은 회장 연착륙… ‘가신’들 추락

    현정은 회장 연착륙… ‘가신’들 추락

    4일로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1주기를 맞았다.정 전 회장의 타계 이후 현대그룹은 금강고려화학(KCC)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등 숱한 난관을 겪어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가정주부에서 일약 현대그룹의 총수자리에 오른 현정은 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고 계열사의 경영실적이 좋아지면서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 회장은 취임 이후 정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강조해왔다.그러나 경영권 분쟁의 와중에서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이 경영권 분쟁을 겪은 만큼 현대그룹의 임직원들의 부침도 심했다.일부는 퇴진했고,계열사 사장에 대한 신임의 정도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게 현대 안팎의 평가다. ●가신들의 퇴진 현대그룹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 가운데 하나는 ‘가신경영’을 한다는 것이었다.과거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을 보좌하던 측근들을 지칭하는 데서 비롯된 ‘가신’은 현대그룹 성장에 적잖은 기여를 했지만 파벌과 권력암투 등으로 그룹의 분화와 쇠락에 일조했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 가신들 가운데 정 전 회장 타계 때까지 그룹에 남아 있던 임원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김재수 경영전략팀(옛 구조조정본부) 전 사장 등 극히 일부였다.이 가운데 김재수 경영전략팀 사장은 지난해 12월 현대증권 고문으로 물러났다.또 정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불리던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조규욱 현대증권 부회장,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등도 퇴진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불투명한 입장을 보였다는 이유로 고문자리도 맡지 못한 채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몇몇 인사는 ‘오해’라며 지금도 섭섭함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살아남은 것은 신임을 받아서라기보다 대북사업이라는 특성상 내칠 수 없었다는 평가다.요즘에는 새 측근들에게 밀려 힘을 못 쓴다는 소리를 듣는다.최근 현대건설 인수 등의 돌출 발언도 이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누가 떴나 경영권 분쟁의 와중에서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이 새 실세로 부상했다.금융계열사로서 KCC에 정보수집이나 방어논리 제공,대외접촉 등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최용묵 현대경영전략팀장 겸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측근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경영권 분쟁에서도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켰다.현 회장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행보가 좀 이상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해운 호황을 통한 경영실적 호전으로 안정을 되찾았다.현대상선은 올해 1·4분기 매출 1조 1910억원,순이익 1023억원의 순익을 냈다.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은 정몽헌 전 회장의 보성고 동창인데다 경영실적도 무난해 입지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대통령 ‘정체성’싸움 나섰나

    하한기 정국을 달구고 있는 여야간 ‘국가 정체성’ 공방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공방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가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상 ‘싸움’은 어떻게든 결말을 볼때까지 확전이 불가피해졌다.이에 따라 양측의 지리한 대립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고 이런저런 양상으로 돌출하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29일 오전까지만 해도 민생 행보를 강화하며 논쟁에서 한발짝 뒤로 빠지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한나라당도 정체성 문제를 경제살리기 및 국민통합문제와 연결시켜 공격하면서도 수위를 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그런데 그동안 직접적 언급을 자제해온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의 정체성 문제 제기를 ‘유신(維新)회귀 대 미래지향’의 대결 구도로 규정하면서 공방전에 다시 불씨를 댕겼다. 노 대통령은 29일 목포시청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에서 “지금 정치적 전선은 과거 유신으로 돌아갈 것이냐,아니면 미래로 갈 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를 ‘유신 세력’ 내지 ‘반(反)미래세력’으로 몰아세우면서 야당의 정체성 공세에 역공을 취하고 나선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지역감정을 조장하겠다는 의사가 있다.”며“대통령이야말로 미래로부터 후퇴해 구시대를 선택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표는 또“말만 이렇게 과거냐,미래냐고 할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야 한다.”며 “말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대변인은 논평에서“역사의 발전을 가로막으며 ‘유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은 노 대통령”이라며 “호남 지지율이 폭락하자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인위적인 합당론까지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오 사무총장은 “유신의 망령을 얘기하고 죽은 귀신 불러내는 작업을 한 곳은 청와대”라며 “스스로 말해놓고 또 스스로 그게 문제 있다는 식으로 거둬 치우는 게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냐.”고 반박했다.이한구 정책위의장도 “지금 유신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서 “오히려 열린우리당에서 일제시대나 동학란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앞서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여권이 숱한 실정으로 신의를 잃고 국가 정체성마저 흔들려 비판이 끓어오르니 술수와 공작으로 책임을 돌리겠다는 꾀를 낸 것 같다.”며 대야 공세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이날은 거친 대응을 자제한 채 민생챙기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전국순회 및 현장국회 활동을 계속했다.최근 ‘박근혜 때리기’를 주도해온 김현미 대변인은 “우리 당의 하한기 기조는 민생챙기기”라며 “민생을 돌보는 것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탄탄하게 하는 실천적 자각”이라고 말했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carlos@seoul.co.kr
  • 휴대전화 시장 양극화

    ‘업계는 첨단제품 출시경쟁,판매시장 중심은 중가폰.’ 올 하반기 들어 휴대전화업계에 제조업체와 시장간의 양분화현상이 일고 있다.제조업체들은 게임폰 등 최첨단 제품을 쏟아내는 반면,소비자들은 상반기와는 달리 경기침체 등으로 고가폰에서 중저가폰을 선택하는 경향이다.단말기 시장은 50만∼60만원대에서 최근 들어 카메라 등 기본 기능의 30만∼40만원대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시장 중심은 40만원대 이하 연초부터 시작된 번호이동성과 경기침체가 구매패턴을 고가에서 중가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있다.특히 7월부터 시작된 SK텔레콤의 번호이동이 중가폰 시장을 달구고 있다.번호이동성의 경우 지인들을 통해 업체를 바꾸기 때문에 고가폰보다는 중가폰을 구입하는 경향이 많다. SK텔레콤의 경우 단말기 공급량은 7월 기준으로 20만∼30만원대가 전체의 61.5%,60만원대 이상이 20%대이다.판매량에서도 20만∼30만원대가 74%를 차지하고 있다. SK텔레콤 고객에게 가장 많이 팔리는 중저가 제품은 모토로라의 ‘스타텍-2004’.지난 5월에만 7만 4000여대를 판매한 이후 지속적인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중가 카메라폰인 ‘SCH-X850’도 지난 3월에 출시 이후 6월까지 30만대 이상이 판매됐다.카메라 기능에다가 리모컨,신용카드,교통카드로 활용할 수 있어 실속파들에게 인기다. 팬택&큐리텔의 디카폰 ‘PG-K6500’도 40만원대로 5월 출시이후 한달 만에 5만대 이상 판매돼 시장을 반영하고 있다. LG텔레콤의 30만원 중반대 단말기인 ‘LP8800’은 월 1만 7500대를 판매,중가폰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30만화소 카메라폰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30만원대 폰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20만원대도 카메라 기능이 있는 폰이 있어 기능이 좋아졌다.”고 밝혔다.그는 “요즘 시장은 업체가 소비자 선택을 유도하기보다는 따라가는 양상이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단말기 출시 앞다퉈 시장상황과는 달리 최첨단 제품 출시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올 상반기의 카메라폰,MP3폰에 이어 하반기엔 게임전용폰 등이 가미돼 ‘엔터테인먼트 폰’이 앞다퉈 출시된다.게임전용폰은 하반기 이슈제품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LG전자,팬택계열도 게임전용폰에 집중하고 있다.삼성전자는 이달 초에 국내 첫 출시한 ‘조이스틱’을 채용한 3D 게임폰 ‘SCH-V450’을 내놓은데 이어 기존 모델을 기초로 한 각종 제품을 쏟아낼 참이다. 팬택계열도 올 3·4분기에 타원형의 독특한 디자인에 키 패드가 돌출한 새로운 게임전용폰을 올 3·4분기에 몇개 모델을 선보인다.팬택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는 MP3폰과 200만화소 등 첨단 제품에서 경쟁이 벌어졌지만 하반기에는 게임전용폰 등 기능형과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유족 돌출행동 방송사가 사주”

    지난 26일 유영철을 검찰로 송치하는 과정에서 이문동 사건 피해자 어머니 정모(51)씨가 호송경관에게 발길질을 당한 것과 관련,유에게 뛰어든 정씨의 행동이 일본 방송사의 연출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경찰이 주장하고 나섰다.해당 방송사측은 경찰의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인했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장 강대원 경정은 27일 “오늘 오전 10시쯤 일본 NTV 국내프로덕션 소속 우모씨가 기동수사대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어제 정씨가 포토라인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경쟁사인 일본 후지TV에 방송자료를 제공하는 O프로덕션 소속 직원이 길을 열고 정씨에게 유의 모자와 마스크를 벗길 것을 지시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강 경정은 “어제 정씨가 O프로덕션 소유의 승합차량에서 프로덕션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우씨가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현장에 있던 취재진도 당시 차량 대화 장면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런 제보를 하거나 기동수사대에 간 적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당사자인 후지TV측은 “스태프,카메라맨,코디네이터 등 취재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피해자 모친과 동행취재를 한 것은 사실이나 뛰어드는 행동을 의뢰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野 “관련자 문책” 與 “그만 끝내자”

    사그라지던 정치권의 군(軍) 보고누락 논란이 조영길 국방장관의 돌출발언으로 다시 불 붙기 시작했다.열린우리당은 “그만 매듭짓자.”며 진화에 부심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팔을 걷어붙였다.민주노동당도 26일 논전에 뛰어들었다. 사안의 복잡함만큼이나 보는 시각과 해법은 3당3색이다.한나라당은 ‘상부의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하는 야전의 불신감’에 눈높이를 두고 현 정권을 공격했다.반면 한때 허위보고에 대한 엄중 문책을 주장하던 열린우리당은 경징계로 끝낸 청와대와 보조를 맞춘 채 파문수습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남북 핫라인 합의가 야전에서 무시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軍·靑 고위층이 책임져야”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은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 국군이 정권의 국방의지를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줬다.”면서 “북한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국방시스템을 고장나게 한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합동조사단이 허위발표한 사실을 청와대가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국방부 장관이나 청와대 고위층이 이에 책임을 져야 하고,대통령이 답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군 관계자가 청와대에 허위보고했다며 문책하라고 난리를 쳤는데,국민에게 허위보고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라.”고 압박했다.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들은 이번 사태로 청와대의 미숙한 대응과 군에 대한 갈지자형 대처를 보면서 정권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확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해군작전사령관이 남북 핫라인이 중요한지,북방한계선(NLL) 사수가 중요한지 헷갈린다면 국민은 누굴 믿고 생업에 종사하겠느냐.”면서 “남북대화가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더이상 정치쟁점화 말라” 이에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상황을 종합 판단하고 군의 사기를 고려해 관련자 경징계로 결론 내린 만큼 더 이상 이를 정치쟁점화하지 말라.”고 반박했다.신기남 의장은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매우 중대하고 재발되어서도 안 된다.”면서 “그러나 국군통수권자가 합동조사단 보고를 받고 최종 결단을 내린 이상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군은 평화의 수호자로,우리당은 군의 확고한 안보태세 유지와 사기앙양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군과 여권과의 갈등을 치유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임종석 대변인도 “야당이 정부와 군을 이간질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군통수권자가 이번 일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군 사기를 감안,관대하게 조치하기로 결정한 만큼 더 이상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매서운 회초리로 기강 잡아야”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해군작전사령관이 상부의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해 교신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며 군 내부를 맹비난했다.김배곤 부대변인은 “각 방면에서 남북화해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으나 아직도 우리 군이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번 사건은 일부 군 상층부의 비뚤어진 애국심이 지휘체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로,매서운 회초리로 군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경호 박지연기자 jade@seoul.co.kr
  • 曺국방 경질 방침 안팎

    “이제 경질할 때가 됐다.” 여권에서 흘러 나오는 조영길 국방부장관 교체론이다.여권의 핵심관계자는 26일 “조 장관은 보고누락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이같은 경질론을 폈다. 조 장관은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장관을 지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만큼 했고,‘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실한 이유가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만큼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이런 교체론은 지난 23일 정부 합동조사단의 ‘서해상 남북 함정간 교신사실 보고누락’ 조사결과 발표에 따라 실무책임자만 경고할 듯한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여권의 분위기가 달라진 데는 대략 두 가지가 작용한 것 같다.첫째는 조 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부주의로 보고를 누락했다.’는 합조단의 발표를 뒤집고 ‘고의로 누락했다.’고 밝힌 돌출 발언이다. 이는 군부 내의 상하간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고,일부에서는 청와대와 군의 갈등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보고누락 파문은 갈수록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조 장관의 돌출 발언으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열린우리당 안영근 제1정조위원장은 “우리 군에 대해 이해하고 감싸려고 했는데,벌써 세 번째 말을 바꾸고 있다.”며 “군은 스스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책임론을 폈다.보고누락 파문을 경고 수준으로 마무리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둘째는 정치권의 이슈로 끝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정치권은 이 날도 논란을 벌였고 한나라당은 조 장관의 보고내용을 들어 ‘상부의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하는 야전의 불신감’이라고 공세를 폈다.이런 논란을 잠재우려면 조 장관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이처럼 여권은 교신사실 보고누락 파문의 조기 차단에 체중을 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각 등이 거론될 때마다 경질설이 나돌았지만 막판에 이름이 빠졌던 조 국방이 이번에 교체될지 주목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曺국방 ‘폭탄선언’ 배경은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느닷없이 폭탄성 발언을 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의도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왜?’라는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한동안 온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보고누락 사건’이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와 청와대측의 ‘경고조치’ 희망으로 마무리돼가는 시점이어서다. 조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은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를 위한 ‘고의적인 돌출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청와대와 군의 대립 양상으로까지 비화되는 듯했던 이번 사건이 ‘근무 태만’으로 축소되고 경징계로 귀결될 경우,노 대통령이 군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줄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제기된다.교체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조 장관이 ‘말년’에 자신의 요람인 군을 위해 봉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격 중지 명령을 우려해 보고를 누락할 만큼 정권에 대한 군의 반발심리나 불신이 뿌리 깊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이다.전날 합조단의 발표대로라면 사건의 본질이 유야무야 묻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섰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단순 사고’ 가능성까지 나온다.조 장관과 합조단장,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지난 22일 조사를 마친 합조단은 23일 오후 대언론 발표를 갖기에 앞서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조 장관은 ‘조사대상’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에 조사 결과만을 ‘통보’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이는 곧 청와대와 합조단의 조율 가능성과도 맥이 통한다. 군 일각에서는 조 장관이 ‘사안이 이렇게 중요한 데도 군의 사기 등을 감안,노 대통령이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국방부는 “합조단의 발표는 ‘실수로 누락된’ 것이고,조 장관은 국회에서 모든 내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해명하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曺국방 ‘폭탄선언’ 배경은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느닷없이 폭탄성 발언을 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의도에 적지않은 사람들이 ‘왜?’라는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한동안 온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보고누락 사건’이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와 청와대측의 ‘경고조치’ 희망으로 마무리돼가는 시점이어서다. 조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은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입지를 위한 ‘고의적인 돌출 행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청와대와 군의 대립 양상으로까지 비화되는 듯했던 이번 사건이 ‘근무 태만’으로 축소되고 경징계로 귀결될 경우,노 대통령이 군에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줄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제기된다.교체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던 조 장관이 ‘말년’에 자신의 요람인 군을 위해 봉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격 중지 명령을 우려해 보고를 누락할 만큼 정권에 대한 군의 반발심리나 불신이 뿌리 깊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이다.전날 합조단의 발표대로라면 사건의 본질이 유야무야 묻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섰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단순 사고’ 가능성까지 나온다.조 장관과 합조단장,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란 주장이다.지난 22일 조사를 마친 합조단은 23일 오후 대언론 발표를 갖기에 앞서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조 장관은 ‘조사대상’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에 조사 결과만을 ‘통보’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이는 곧 청와대와 합조단의 조율 가능성과도 맥이 통한다. 군 일각에서는 조 장관이 ‘사안이 이렇게 중요한 데도 군의 사기 등을 감안,노 대통령이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국방부는 “합조단의 발표는 ‘실수로 누락된’ 것이고,조 장관은 국회에서 모든 내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해명하고 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사설] ‘임기중 韓日과거사 거론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 임기 동안에는 한국 정부가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채택된 뒤 우리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을 비난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이런 기본방침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그러나 외교 최고책임자로서 너무 단정적 언급을 했다.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노 대통령은 우선 민간분야에서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자고 강조했다.어제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교육 등 역사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을 촉구했다.정부 당국자는 “미래지향 차원에서 일본을 압박한 것”이라고 풀이했다.과거사 논란을 극복하지 않고는 진정한 미래지향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 문제다.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계속되고 있다.해결되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잊을 만하면 돌출하는 역사 망언,그리고 교과서왜곡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이를 바탕으로 군사적 팽창 등 보수·우경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가 잘못을 확실하게 인정했을 때 가능하다.친일반민족행위규명특별법 개정이 추진되는 것도 같은 취지다.일부 일본 언론은 노 대통령이 일본기자의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한차례 지칭한 것을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견해를 용인?”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틈만 나면 과거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일본내에 엄존하는 한 감시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심각한 과거사 왜곡이 있으면 한국 정부가 강력대응할 것이라는 여지는 항상 남겨두어야 한다.
  • 경제살리기 주체 ‘실종’…‘심리적 위기론’ 커진다

    경제가 실종됐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군(軍) 갈등설,파업,경제팀 흔들기,불안한 국제유가 등 나라 안팎의 잇단 돌출 악재로 개인과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청와대도,정치권도,정부도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경제는 뒷전인 양상이다.일본식 불황·386음모론 등을 둘러싼 경제수장들의 신중치 못한 ‘입’도 이같은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 4·4분기(10∼12월) 성장률을 4.2%로 전망했다.분기별로 5%대를 이어가던 성장률 추정치가 4분기 들어 뚝 떨어진다는 분석이다.경기회복의 핵심열쇠인 민간소비는 올해 간신히 마이너스(0.7% 증가)를 벗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는 한술 더 떠 한국의 성장률이 내년에 3%대로 급강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잠재성장률(물가상승 등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고 성장률,현재 5%안팎)을 한참 밑도는 비관적 수치다. 이런 가운데 각종 악재들이 잇따라 불거져 불안심리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국제유가가 다시 들썩이고,물가 상승률은 4%대를 넘본다.얼마전 끝난 백화점과 할인점의 대대적인 여름세일 실적도 신통찮다.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동계의 하투(夏鬪)도 LG칼텍스정유·서울지하철 파업 등을 시작으로 본격화돼 기업들의 일할 의욕마저 잃게 한다.여기다 온갖 음모론과 청와대와 군사이의 갈등설 등이 경제흔들기에 가세했다.KDI 우천식 지식경제팀장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5.2%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총투자 증가율이 지금보다 두배가량(3.9%→6.5%) 늘어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잠재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수장들의 가벼운 입·꼬리무는 공방 통화정책 수장인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우리나라가 일본식 불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며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듯 발언을 했다.항간의 우려를 옮긴 것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청와대와 경제부처 장관들이 한목소리로 “일본식 불황은 없다.”고 단언해 왔기에,혼란만 부채질한 꼴이 됐다. 그런가 하면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국민은행 자문료’ 정보유출의 주체가 “여의도(금융감독원)쪽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삼고초려해서 경제를 맡길 때는 언제고,왜 자꾸 뒷다리를 잡느냐.’라는 항변의 산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수그러들던 음모설만 다시 자극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음모설의 주체로 사실상 지목된 여권 386세대들은 21일 “부총리를 바꾸려 한 적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불쾌한 반응이었다.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공무원 주식신탁제도 등에 대한 이 부총리의 비판에 대해서도 열린우리당측의 반박이 이어졌다.정세균(丁世均) 의원은 “오히려 이 부총리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범여권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통령·경제팀·386 신뢰회복돼야”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경제부총리가 여당 경제정책을 비판할 수도 있고,386세대와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 치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1년도 안 돼 꺾이고 있는 경기지표들을 다시 살리자면 경제문제가 전면에 부상해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가 다른 사안에 매달려 소모전만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그 시간에 각종 경제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라는 주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대통령과 경제팀,집권여당이 서로 딴소리를 하는데 경제주체들이 소비나 투자할 마음이 생기겠느냐.”면서 “경제팀 거취,정책방향 등 불확실성 해소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이헌재 경제팀이 정책의 기본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면서 “대통령과 경제팀의 상호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미현 김미경기자 hyun@seoul.co.kr
  • ‘미니 척추유합술’ 4일이면 퇴원

    척추관절 전문 나누리병원의 장일태 박사팀이 신개념 요통 수술법인 ‘미니 척추유합술’을 요통 수술에 적용,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 수술법은 척추수술 때 절개부위를 최소화하는 기존의 ‘최소침습 척추유합술’이나 ‘METRx 시스템’ 등에 비해 절개 부위가 작고 절개 방식의 변화로 요통 개선효과가 뛰어나며,의료보험 적용으로 환자의 부담을 더는 이점이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장 박사팀은 지난해 말부터 올 6월까지 6개월 동안 이 병원을 찾은 환자 12명에게 미니 척추유합술을 적용해 수술한 결과 11명에게서 뚜렷한 요통의 감소와 함께 일상적인 생활의 불편이 크게 줄어든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수술법은 질환 부위를 최소화해 절개한 뒤,미세현미경을 이용해 돌출된 디스크를 제거하고 디스크 대체물(CAGE)을 삽입,특수 고안된 장치로 척추뼈를 고정시키는 방식이다.절개 부위가 2㎝(2곳) 정도로 일반 척추유합술(10㎝)의 5분의1에 불과해 흉터나 근육 손상이 적고,수술 중 수혈도 할 필요가 없다.또 상처가 작아 입원 기간도 4∼5일로 기존 수술의 절반 이하이며,수술 다음날부터 보행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의료팀은 설명했다. 장 박사는 “이 수술법은 허리디스크나 척추 신경통로가 좁아진 척추관협착증,척추뼈의 앞뒤가 서로 떨어진 척추분리증 및 척추불안정성 등에 적용할 수 있으나 척추뼈 2개 이상에 걸쳐 진행된 디스크나 척추뼈 자체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장 박사는 지난 93년 이후 지금까지 8000건의 척추수술을 집도한 척추 전문의로,97년에 국내 최초로 골시멘트 시술을 시작한데 이어 최근에는 통증 완화에 효과적인 ‘신경가지치료술’을 도입,관심을 끌고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5) ‘동해의 강구’ 왕피천의 은어

    봉화에서 불영계곡을 거쳐 울진으로 길을 잡는다.험한 길,붉은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곳이다.백두대간 줄기에서 동해로 내리꽂히는 왕피천이 불어난 장맛비로 급살을 탄다.우르르 쾅꽝,전쟁이라도 났는가 싶다.가파른 계곡을 내려가노라니 불현듯 동해다.깊은 숲이 연속되다가 너무도 급작스럽게 바다가 나타나 당황스러울 정도다.‘바다, 하늘, 계곡, 강이 만나는 곳’ 이란 울진군의 홍보 문구가 너무도 정확히 이를 설명해준다. 버젓한 강은 없어도 백두대간의 골짝,골짝에서 내린 물을 동해로 쏟아붓는다.왕피천도 그 중의 하나.물의 급수를 따질 겨를이 없다.너무도 깨끗하여 아직도 이런 물이 남아있음에 감사,또 감사드릴 뿐이다.동해가 청정해역임은 이런 왕피천류의 청정지수에 힘입는다.국내 최초의 민물고기 전시관인 ‘경북 민물고기연구센터’가 경상도의 수많은 지역을 제치고 왕피천 하류에 자리잡았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기수는 인간삶 엮어낸 가장 중요한 곳 필자가 쏜살같이 내려간 방향과 반대로 봄철의 은어떼는 힘겹게 거슬러 올라왔으리라.백두대간에 쌓인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면 은어는 백두대간 줄기로 향한다.한여름 왕피천 중류 쯤에서 성장한 은어는 거의 고등어만큼 몸피를 불려 가을 무렵에 하류로 내려간다.알을 낳은 은어는 1년생으로 생을 마치기에 일년어(一年魚)란 별칭이 붙었다.치어들은 동해로 내려가서 겨울을 난 뒤 다시 봄이 오면 모천회귀(母川回歸)를 거듭한다.삼척의 오십천,양양의 남대천,강구의 왕피천,그리고 남해안의 섬진강에서도 은어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그렇듯 돌고 도는 윤회의 법을 온몸으로 실천하여 끝내 우리를 감동시키고 만다. 소금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汽水)야말로 바다의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한 곳이며,인간의 삶을 엮어낸 가장 중요한 곳이다.은어뿐 아니라 연어와 숭어,황어,칠성장어 등도 동해에서 기수를 거쳐 민물을 찾아 오르내린다.크고 작은 동해의 읍성과 마을이 기수 근역에 자리잡았으며,울진도 예외가 아니다.그런 까닭에 바다생활사에서는 기수가 반드시 앞자리를 차지함이 마땅하다. 은어떼처럼 필자도 강구(江口)의 기수를 거쳐서 산으로 오른다.계곡물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영역싸움을 벌이는 은어를 보니 ‘물고기 야전사령부’가 왕피천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다.이들의 영역 투쟁은 전투적이다.그러나 다가오는 가을이면 그 힘겨운 투쟁도 막을 내릴 것이다.하구의 산란장으로 줄달음칠 시간이기 때문이다. 은어의 최후를 보자.산란 후,기진맥진하여 마치 소매끝에 메추리 붙듯 너덜거리는 껍질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강물에 떠내려간다.떠내려가는 은어는 물새도 잡아먹지 않는다.누군가 이를 ‘고요한 은어의 수장식(水葬式)’이라고 압축하여 말했다.그 은어에게서 우리 인간을 본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환경에서 적당한 생화학적 밸런스를 보존해야만 이듬해 은어가 돌아올 수 있다.바다에서 곧바로 모천으로 오기 전에 강구(江口)에서 잠시 머물고,반대로 모천에서 바다로 갈 때도 강구에 머무르면서 생체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바닷물과 민물의 변증법적 지평은 바로 기수에서 열린다.바다와 강이 만나는 경계는 성스럽기까지 하다.밀물,썰물이 만나는 조간대의 갯벌이 보여주는 ‘경계의 미학’처럼 강구의 기수도 그 자체가 장엄(莊嚴)이다. 장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시나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 법.왕피천 하구의 끝자락을 지키는 망양정(望洋亭)에 오른다.망양정은 ‘바다를 관망한다.’는 뜻이니 필자의 관해기처럼 수많은 시인묵객들도 일찍이 자신들의 관해기를 이곳에서 쏟아내지 않았겠는가. 두 개의 모래톱이 마주한 틈새를 비집고 왕피천이 동해로 흘러들고,동해는 힘껏 바닷물을 민물로 밀어붙인다.출신이 다른 물들의 싸움은 생각보다 격렬하지만 모래톱의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망양정의 위치는 너무도 절묘하여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의 누(樓)’라는 친필 편액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오죽하면 겸재 정선이 망양정도(望洋亭圖)에서 다소 ‘과격한’ 필치로,‘바다로 솟구치듯 돌출한 누정’이라고 묘사했을까. ●江口 들판은 소금 굽던 이들의 삶터 누정에서 감상에 젖을 수도 있겠지만,좀더 현실적으로 강구를 바라보노라면,온갖 역사와 문화가 누적된 치열한 곳으로 다가오기도 한다.왜구들이 떼지어 몰려들던 침략의 현장.아니면,강구에서 뗏목을 엮거나 배에 실어 멀리 부산까지 가던 포구.그도 아니면,염전터였던 강구의 들판은 소금 굽던 이들이 진저리치며 고난의 삶을 살던 곳이기도 하다.아주 오래 전의 일들인지라 조만간 ‘전설’로 변해갈 것이다. 과거에 민중들의 먹거리에서 민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게 컸다.더군다나 은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는 고기는 대단한 인기 어종이었다.은어튀김의 우아한 맛을 경험한 이들은 그 인기도의 비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은어는 말 그대로 은빛이다.은어에서는 수박 향기가 난다.비린내 대신에 향긋한 수박 향기가 나는 것만으로도 은어의 품격을 알 수 있다.오죽하면 향어(香魚)라 불렸을까.중국의 ‘박물지’에 이르길,‘물고기 회를 먹고 남은 것을 강물에 버리니 그것이 고기로 되살아났다.’고 한 바로 그 물고기다. 왕피천 사람들은 수경을 쓰고 급류 바위틈을 뒤져 작살로 은어를 잡아 올린다.파리 모양의 낚시를 매달아 은어새끼를 낚아내는 ‘파리낚시’,살아있는 은어의 몸통에 바늘을 끼워 다른 은어를 유인하는 ‘놀림낚시’,그 무엇보다 돌멩이로 살을 막고 통발을 놓은 ‘살막기’가 중요했다.왕피천 태생의 주상준 문화원장의 증언에 따르면,현재의 투망질이나 낚시질보다 앞의 어로방식이 보다 보편적이었다고 한다. 은어는 튀겨 먹고,회 쳐 먹고,끓여 먹고,훈제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산에서 잡은 큰 은어를 ‘산치’라 불렀는데,주둥이에 대나무 꼬챙이를 끼워 가지런히 꽂아놓은 뒤 그 위에 두꺼운 종이를 덮어 훈증(熏蒸)으로 구워 말리는 예스러움을 이제는 보기 어렵다. 살아있는 모양 그대로 금빛이 도는 훈증 은어는 왕골 속갱이로 열마리씩 엮어 귀한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였다.문득 지난해 여름,바이칼호로 가는 길목인 슬류디양카에서 먹었던 황금빛 훈증청어 오물(Omul)이 떠오른다.흡사 황금투구와 갑옷을 입은 양 품격있게 줄지어 서 있던 오물의 위엄을 동해의 훈증 은어에서 다시 보는 맛이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은어만이 아니다.동해안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건 백두대간을 넘어야만 서쪽 사람들과 문물을 교류할 수 있었다.서쪽 사람들 또한 산을 넘지 않으면 소금을 구할 수 없었으며,하다못해 산모 미역거리조차 구할 수 없었다.동해에서 올라온 은어가 계곡물에서 진저리치며 전투를 벌이는 동안,사람들은 험준한 고개를 넘고 넘어 봉화나 영주를 오고갔다. 울진군 북면에 가면 도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일명 ‘울진내성행상불망비’란 철비(鐵碑)가 서 있다.내성은 봉화의 옛 이름.울진에서 봉화로 가자면 열두 고개를 넘어야했으나 험준한 산악의 사나운 짐승과 산적은 한사코 이들의 발목을 묶었다.자연히 고개목에는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본디 원(院)이 있던 곳이니 울진의 벼슬아치들이 부임할 때도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소금,미역,문어나 북어 따위를 지게에 진 장사치들은 일사불란한 접(接)을 갖추고 산을 탔다.죽변이나 울진읍내에서는 불과 30여리에 지나지 않으나 봉화 내성장까지는 무려 150리길.오로지 찻길로만 다니는 오늘날은 감둥골고개,돌재,나그네재,바릿재,샛재,술막재,넙재,매재,고치부재 따위의 고개 이름들이 산골사람들 기억 속에 서서히 ‘전설’로 바뀌어가고 있다. ●관동·관서사람들 백두대간 오가 베어진 소나무가 산을 내려와서 바다로 갔다면,사람들은 미역 따위를 짊어지고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갔다.산 너머 동네의 풍문이 전해졌으며,부족한 해산물의 단백질이 이 ‘실크로드’를 통해 공급되었다.은어나 연어 따위 역시 목숨 걸고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갔으며,다시금 목숨걸고 종족 보존이란 장엄을 연출하곤 하였다. 올해 여름 휴가에도 서쪽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산을 넘어 바다로 향할 것이다.관광이란 이름을 쓴 인간들의 고난의 행군 역시 바다를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모천회귀가 아닐까.그러한 즉,망양정에서 바라보는 강구의 유장한 풍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대투쟁을 생각해 보고,우리가 돌아갈 시간을 생각해 봄은 관념 이상의 존재고가 아닐 수 없다.동해의 파도가 저렇듯 성나게 강구의 모래톱을 으깨는 것도 저마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전설로만 남은 바다의 시장 ‘파시’ 왕년에 ‘조기잡이의 메카’였던 연평도는 이제 꽃게잡이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그저 오지의 섬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나,황해도와 매우 가까운 연평도는 분단 이전만 해도 결코 머나먼 낙도가 아니었으며,중국에 이르는 뱃길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연평도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조기잡이로 명성을 날렸다.‘세종실록지리지’에서,‘토산은 석수어(조기)가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이어 그물로 잡는데,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하였다.조선 전기부터 조기떼가 대규모로 잡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광의 파시평(波市坪)과 더불어 황해도 연평평의 조기잡이가 등장한다. 파시 같은 ‘바다의 시장’은 너무 일찍이 사라져 흥청거리던 파시의 풍경은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연평파시는 연평파시평,연평작사라고도 불렸다.지금은 조기의 씨가 말랐지만,불과 30∼40년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파시는 수천 척의 배와 어우러져 성황을 이뤘다.칠산파시와 더불어 최대의 조기어장을 형성하면서 남긴 이야기도 셀 수 없이 많다. 연평어장은 해주만 일대의 잘 발달한 리아시스식 해안과 자잘한 섬들을 포괄한다.미력리도 갈리도 장재도 초마도 같은 자잘한 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연평열도로도 불린다. 인천에서 뱃길로 연평도엘 들어서자면 소연평도가 먼저 나타난다.해주 수양산의 정기를 받아 우뚝 봉우리가 솟은 소연평은 늘 실안개가 감도는 명산이다.그래서 산연평도(山延坪島)란 별칭이 붙었다.섬에 굴이 있고,거기에 용이 살고 있어 하늘로 승천한다고 전해오는 섬으로,사람이 승천하는 용을 보면,용이 그만 바다로 떨어져서 이무기가 되고 만다는 전설의 섬이다.소연평의 높은 봉우리는 뱃사람들의 항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연평도 서쪽 10~15리는 조기잡이 주어장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대연평 소연평 용매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등이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다.오늘날에는 분단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편입되었으며,여러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서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에 속하게 됐다. 조기잡이 중선의 주어장은 연평도 서쪽 10∼15리 인근 해상이었다.어구는 중선,건강망,궁선,어살 등이 쓰였다.중선은 연평도 앞바다보다도 서쪽에 길게 돌출한 황해도 등산곶(登山串 )근역과 구월봉 아래에서 조업을 했는데,수심 20m를 넘는 곳이다.구월봉 아래는 이른바 ‘구월이바다’로 불리는 구월반도가 길게 늘어진 곳이다.구월봉은 조기잡이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가늠잡이 봉우리’다.‘등산이’와 구월이 앞바다는 자잘한 여와 모래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조기에게는 최적의 산란장이었다.옛 만호진이 있던 등산이라고도 부르는 등산포(登山浦)가 자리잡고 있으며,청송백사로 유명한데,바람에 날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어 사냥터로도 유명했다.아마도 황해도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기억 속에 아련히 간직하고 있으리라. 연평파시에는 황해도,경기도,평안도 등 각지의 배가 몰려들었다.연평도 조기는 멀리 남지나해에서 북상한다.이들 중 선발대는 음력 3월 하순에 이미 연평도에 당도하며,후발대도 4월 초파일 무렵에는 모두 연평도 해역에 도착한다.연평도에서 4월 초파일을 ‘조기의 생일’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칠산바다에서 곡하사리가 펼쳐졌다면,인천과 연평바다에서는 소만사리가 펼쳐졌다.조기잡이가 끝나는 5∼6월은 ‘파송사리’로 불렸다.반면에 새우잡이를 포함한 모든 고기잡이가 완전히 끝나는 10월은 ‘막사리’라고 불렸다. ●개성으로 서울로 팔려갔던 연평 조기 1968년,조기잡이가 공식적으로 퇴장할 때까지 수천 척의 배들이 줄지어서 포구에서 당섬까지 배를 디디고 걸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연평파시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뱃사람들은 어로에 쓰일 나무와 쌀,물 따위를 이곳에서 장만하였으니,이런저런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극성을 떨었고,300곳이 넘는 술집이 번성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몸단장하고 뱃길에 지친 사내들을 기다렸다.배들이 몰려오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과 처녀들은 허리께까지 바닷물에 적시며 배 있는 곳까지 다가가 물을 팔았다. 조기가 잡히면 시선배가 몰려왔다.마포나루에서 얼음을 잔뜩 실은 시선배들이 땔깜,식량 따위를 싣고 연평도까지 와서 사로잡은 조기와 맞바꾸었다.이 중 일부는 해주항을 거쳐 개성 부잣집으로 실려가기도 했다.얼음에 차곡차곡 채워진 조기들은 강화도 북단을 지나 곧장 한강으로 들어 마포나루에 물산을 풀었다.경강상인(京江商人)으로 불린 이들은 서울의 생선 공급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중선배 등에 의한 선단어업만이 연평어장의 주업은 아니었다.당연한 결론이지만,고기가 풍부했을 당시에 연평도를 둘러싼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어살을 통한 자연어법이 차지하는 어획고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곳 어살어업의 어획량을 명기한 문헌자료는 없다.그러나 ‘조기떼가 몰려와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이루었다.’는 구전에 비추어 볼 때,만만치 않은 고기들이 어살을 통해 어획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 이 어살은 또 임경업 장군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전해진다.임 장군 굿당이었던 자리에 후대에 충민사란 당을 새로 지은 것.서해안 어부들은 임경업 덕분에 조기를 잡게 되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열성으로 임 장군을 섬겨왔다.임경업은 최영과 더불어 무속신앙의 조종(祖宗)으로 모셔지는 인물.특히 연평도 임경업당은 ‘민간신앙의 메카’로서 수많은 고기잡이배들의 순례지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조선과 청국의 갈등구조에 휘말린 임경업이 마포나루를 출발해 중국 산둥반도 등주로 가던 도중에 잠시 연평도에 들러서 구찌나무가지를 꽂아 만든 어살로 바다를 막았더니 조기가 하얗게 걸려들어 뱃꾼들을 배불리 먹이고 무사히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평도에서 탄생하였다.그로부터 임경업은 ‘조기잡이의 신’으로 군림하면서 황해 어민들의 추앙을 받는 신이 되었다. 연평도의 임 장군 설화는 여러가지 점에서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명말청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한 장군의 고난에 찬 삶,그리고 그가 어살이라는 생업도구를 통하여 조기의 신으로 변신하게 되는 신화탄생의 생생한 장면을 알려준다.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자면 뱃전의 왼쪽 방향,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온다.소연평도와 대연평도가 마주보는 길목인 안목에 유서 깊은 어살이 자리잡고 있는 것.‘임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게 하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연평도의 삶 고스란히 담긴 안목어살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그 물목에 길이 100여 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예전에는 17인이 공동소유했는데,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그나마 지금은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 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동(1000마리)을 거두기도 했다.‘안목은 고기반 물반’이란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간재미나 병어 한 두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인구 수십호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섬에 당대의 풍운아 임경업이 배를 몰고와 정박했다가 중국으로 떠났다면,그의 출현 자체가 대단한 회오리바람이었으리라.모니섬과 당섬 사이의 안목어살을 조사한 결과,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어살이 21세기에도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신화와 어로기술이 결코 따로가 아님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안목어살은 이렇게 연평도의 삶과 신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안목어살을 보지 않고 어찌 연평도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왕년의 조기잡이 메카 ‘연평도’

    ●전설로만 남은 바다의 시장 ‘파시’ 왕년에 ‘조기잡이의 메카’였던 연평도는 이제 꽃게잡이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그저 오지의 섬으로만 알려졌을 뿐이나,황해도와 매우 가까운 연평도는 분단 이전만 해도 결코 머나먼 낙도가 아니었으며,중국에 이르는 뱃길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연평도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조기잡이로 명성을 날렸다.‘세종실록지리지’에서,‘토산은 석수어(조기)가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고깃배가 모두 이곳에 모이어 그물로 잡는데,관에서 그 세금을 거두어 나라 비용에 쓴다.’고 하였다.조선 전기부터 조기떼가 대규모로 잡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영광의 파시평(波市坪)과 더불어 황해도 연평평의 조기잡이가 등장한다. 파시 같은 ‘바다의 시장’은 너무 일찍이 사라져 흥청거리던 파시의 풍경은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연평파시는 연평파시평,연평작사라고도 불렸다.지금은 조기의 씨가 말랐지만,불과 30∼40년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평파시는 수천 척의 배와 어우러져 성황을 이뤘다.칠산파시와 더불어 최대의 조기어장을 형성하면서 남긴 이야기도 셀 수 없이 많다. 연평어장은 해주만 일대의 잘 발달한 리아시스식 해안과 자잘한 섬들을 포괄한다.미력리도 갈리도 장재도 초마도 같은 자잘한 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연평열도로도 불린다. 인천에서 뱃길로 연평도엘 들어서자면 소연평도가 먼저 나타난다.해주 수양산의 정기를 받아 우뚝 봉우리가 솟은 소연평은 늘 실안개가 감도는 명산이다.그래서 산연평도(山延坪島)란 별칭이 붙었다.섬에 굴이 있고,거기에 용이 살고 있어 하늘로 승천한다고 전해오는 섬으로,사람이 승천하는 용을 보면,용이 그만 바다로 떨어져서 이무기가 되고 만다는 전설의 섬이다.소연평의 높은 봉우리는 뱃사람들의 항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연평도 서쪽 10~15리는 조기잡이 주어장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 대연평 소연평 용매도 대수압도 소수압도 등이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다.오늘날에는 분단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편입되었으며,여러차례의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서 인천광역시 옹진군 송림면 연평리에 속하게 됐다. 조기잡이 중선의 주어장은 연평도 서쪽 10∼15리 인근 해상이었다.어구는 중선,건강망,궁선,어살 등이 쓰였다.중선은 연평도 앞바다보다도 서쪽에 길게 돌출한 황해도 등산곶(登山串 )근역과 구월봉 아래에서 조업을 했는데,수심 20m를 넘는 곳이다.구월봉 아래는 이른바 ‘구월이바다’로 불리는 구월반도가 길게 늘어진 곳이다.구월봉은 조기잡이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가늠잡이 봉우리’다.‘등산이’와 구월이 앞바다는 자잘한 여와 모래밭으로 형성되어 있어 조기에게는 최적의 산란장이었다.옛 만호진이 있던 등산이라고도 부르는 등산포(登山浦)가 자리잡고 있으며,청송백사로 유명한데,바람에 날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어 사냥터로도 유명했다.아마도 황해도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기억 속에 아련히 간직하고 있으리라. 연평파시에는 황해도,경기도,평안도 등 각지의 배가 몰려들었다.연평도 조기는 멀리 남지나해에서 북상한다.이들 중 선발대는 음력 3월 하순에 이미 연평도에 당도하며,후발대도 4월 초파일 무렵에는 모두 연평도 해역에 도착한다.연평도에서 4월 초파일을 ‘조기의 생일’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칠산바다에서 곡하사리가 펼쳐졌다면,인천과 연평바다에서는 소만사리가 펼쳐졌다.조기잡이가 끝나는 5∼6월은 ‘파송사리’로 불렸다.반면에 새우잡이를 포함한 모든 고기잡이가 완전히 끝나는 10월은 ‘막사리’라고 불렸다. ●개성으로 서울로 팔려갔던 연평 조기 1968년,조기잡이가 공식적으로 퇴장할 때까지 수천 척의 배들이 줄지어서 포구에서 당섬까지 배를 디디고 걸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연평파시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뱃사람들은 어로에 쓰일 나무와 쌀,물 따위를 이곳에서 장만하였으니,이런저런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극성을 떨었고,300곳이 넘는 술집이 번성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몸단장하고 뱃길에 지친 사내들을 기다렸다.배들이 몰려오면 물동이를 머리에 인 아낙과 처녀들은 허리께까지 바닷물에 적시며 배 있는 곳까지 다가가 물을 팔았다. 조기가 잡히면 시선배가 몰려왔다.마포나루에서 얼음을 잔뜩 실은 시선배들이 땔깜,식량 따위를 싣고 연평도까지 와서 사로잡은 조기와 맞바꾸었다.이 중 일부는 해주항을 거쳐 개성 부잣집으로 실려가기도 했다.얼음에 차곡차곡 채워진 조기들은 강화도 북단을 지나 곧장 한강으로 들어 마포나루에 물산을 풀었다.경강상인(京江商人)으로 불린 이들은 서울의 생선 공급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중선배 등에 의한 선단어업만이 연평어장의 주업은 아니었다.당연한 결론이지만,고기가 풍부했을 당시에 연평도를 둘러싼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어살을 통한 자연어법이 차지하는 어획고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곳 어살어업의 어획량을 명기한 문헌자료는 없다.그러나 ‘조기떼가 몰려와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이루었다.’는 구전에 비추어 볼 때,만만치 않은 고기들이 어살을 통해 어획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 이 어살은 또 임경업 장군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연평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전해진다.임 장군 굿당이었던 자리에 후대에 충민사란 당을 새로 지은 것.서해안 어부들은 임경업 덕분에 조기를 잡게 되었다는 믿음을 지니고 열성으로 임 장군을 섬겨왔다.임경업은 최영과 더불어 무속신앙의 조종(祖宗)으로 모셔지는 인물.특히 연평도 임경업당은 ‘민간신앙의 메카’로서 수많은 고기잡이배들의 순례지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조선과 청국의 갈등구조에 휘말린 임경업이 마포나루를 출발해 중국 산둥반도 등주로 가던 도중에 잠시 연평도에 들러서 구찌나무가지를 꽂아 만든 어살로 바다를 막았더니 조기가 하얗게 걸려들어 뱃꾼들을 배불리 먹이고 무사히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연평도에서 탄생하였다.그로부터 임경업은 ‘조기잡이의 신’으로 군림하면서 황해 어민들의 추앙을 받는 신이 되었다. 연평도의 임 장군 설화는 여러가지 점에서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다.명말청초의 격동기를 살았던 한 장군의 고난에 찬 삶,그리고 그가 어살이라는 생업도구를 통하여 조기의 신으로 변신하게 되는 신화탄생의 생생한 장면을 알려준다. 연평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어살은 당섬과 모니섬 사이 안목이라 부르는 곳에 있다.숲이 우거진 모니섬은 당섬과 연륙되어 이어진다.인천에서 배를 타고 연평항으로 들어서자면 뱃전의 왼쪽 방향,소연평도 쪽으로 거대한 어살이 한눈에 들어온다.소연평도와 대연평도가 마주보는 길목인 안목에 유서 깊은 어살이 자리잡고 있는 것.‘임 장군이 뽀르세나무를 꽂게 하자 가시마다 조기의 눈이 꿰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그 현장이다. ●연평도의 삶 고스란히 담긴 안목어살 안목은 예로부터 연평도 어업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연평도의 물살은 상당히 빠른데 그 중에서 당섬과 모니섬 사이의 길목이 가장 가파르다.그 물목에 길이 100여 m의 어살을 설치하였다.이 어살은 현재 12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예전에는 17인이 공동소유했는데,고기가 들지 않자 차차 소유권을 정리해 지금은 12명으로 줄었다.그나마 지금은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어살의 어획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유권을 사고 파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 탓이다. 안목어살은 조기가 많을 때는 동(1000마리)을 거두기도 했다.‘안목은 고기반 물반’이란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조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어 농어 같은 고기가 워낙 많이 잡혀 등짐으로도 지고 오지 못할 정도였는데,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3∼4일에 광어 한마리도 안 걸린다고 이곳 어부들은 푸념이다.간재미나 병어 한 두마리가 어쩌다 잡히는 정도란다.‘삼마이그물’이 들어와 20년이 넘게 불법으로 바다를 훑어대 고기씨가 마른 탓이다. 인구 수십호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섬에 당대의 풍운아 임경업이 배를 몰고와 정박했다가 중국으로 떠났다면,그의 출현 자체가 대단한 회오리바람이었으리라.모니섬과 당섬 사이의 안목어살을 조사한 결과,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그 어살이 21세기에도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신화와 어로기술이 결코 따로가 아님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안목어살은 이렇게 연평도의 삶과 신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안목어살을 보지 않고 어찌 연평도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세계 일류에서 배운다-佛 아코르그룹] 미소로 일궈낸 ‘호텔제국의 신화’

    ‘우리는 미소를 만들어 갑니다.’프랑스의 호텔전문경영그룹 아코르(www.Accor.com)가 추구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한 문장이다.아코르 그룹은 최고급 호텔부터 편익 위주의 저가 모텔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비스 분야까지 합쳐 전세계 140여개국에 진출해있다.아코르 그룹의 종사자는 15만 8000여명.호텔 및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다. |파리 함혜리특파원|세계적인 경기침체와 9·11테러,이라크전쟁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관광·호텔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아코르 그룹은 호텔 분야에서 유럽의 선두,세계 4위의 자리를 고수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지난 해에만 아코르 그룹은 한국(이비스 앰배서더)을 포함,전세계에 170개의 호텔을 새로 열었다.6월11일에는 클럽 메드의 지분 28.9%를 2억 5200만유로에 인수,최대주주가 됐다. 1967년 호텔 단 하나로 출발해 37년 뒤인 2004년 현재 전세계 85개국에 3894개(객실수 45만 3403개)의 호텔을 거느린 거대 왕국으로 성장한 아코르 그룹의 성공은 세계 호텔업계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받아들여진다. ●호텔체인 건설의 꿈이 현실로 성공신화의 시작은 4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63년 가을 파리의 포르트 드 클리시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두 청년은 처음 인사를 나눴다.한 사람은 미국의 MIT대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재정학을 공부한 뒤 IBM 유럽 파리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던 31세의 제라르 펠리송.또 한 사람은 뉴욕 맨해튼에서 실물 경제학을 공부하고 방금 귀국한 29세의 폴 뒤브릴. 폴은 제라르에게 “유럽은 관광자원이 무한대인 반면 호텔은 전근대적인 수준”이라며 “미국의 홀리데이인 같은 체인식 호텔 개념을 유럽에 도입하면 미래의 관광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도전적인 사업가 기질을 지닌 폴에 비해 계산이 빠르고 신중한 제라르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맞장구쳤다.한발 더 나아가 “다른 호텔의 프랜차이즈로 있느니 아예 독자적인 호텔 체인을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로부터 4년 뒤.투자자를 찾지 못해 폴의 아버지가 사재를 털어 폴의 고향인 릴 교외에 62개의 객실을 가진 첫 호텔이 문을 열었다.‘노보텔(Novotel)’1호다. 별 3개에 해당하는 고급호텔인 노보텔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호텔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 컨셉트로 주목을 끌었다.우선 시내 중심가가 아닌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자동차 운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방 크기도 크려니와 객실마다 욕실을 갖추고,비즈니스맨들의 취향에 맞게 실내도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디자인했다.대성공이었다. 노보텔-SIEH 그룹 공동대표가 된 두 사람은 다른 호텔이 겨우 하나 들어설 때 10곳의 노보텔을 세우는 등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1973년 고속도로와 인접한 파리 동부에 프랑스 최대규모의 객실 600개짜리 노보텔 바뇰레를 세웠다.6년만에 문을 연 35번째 노보텔이었다. ●끝없는 도전 노보텔이 별 3개짜리 고급호텔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위치에 오르자 폴과 제라르는 별 2개짜리 등급의 중저가 호텔시장으로 눈을 돌렸다.규격화된 실내 디자인으로 노보텔에 비해 건설비용을 30% 절감하고,객실가격도 30% 정도 내린 이코노미 클래스의 호텔 이비스(Ibis)가 1974년 보르도에 문을 열었다. 1980년에는 최고 등급의 별 4개짜리 호텔인 소피텔(Sofitel) 체인을 인수,최고급부터 중저가 호텔까지를 갖춘 호텔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노보텔-SIEH는 1982년 단체급식,간이식당체인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자크보렐 인터내셔널의 경영권을 인수했으며 이듬해에는 기업 규모의 확장에 맞춰 조직을 재정비,아코르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프랑스 호텔산업을 부흥시킨 폴 뒤브릴과 제라르 펠리송은 1997년 1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아코르 친선대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코르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된 장마르크 에스팔리우(51)사장은 “아코르 그룹은 장기적인 경영비전과 주도면밀한 시장분석으로 호텔사업을 확장해왔다.”며 “서비스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철저한 품질관리와 안정적인 경영을 통한 기업이윤 창출,기업가치 확립이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에스팔리우 사장은 “지역적 안배와 등급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동시에 각종 외부요인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악재가 돌출하는 시기일수록 최고급보다는 고급 및 중저가 상품의 수요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아코르 그룹의 지난 해 총 매출은 68억 2800만유로(약 9조 7149억원),세전이익은 5억 2300만유로(약 7441억원)에 이른다. lotu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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