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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서 음주운전 차량 인도 덮쳐 獨관광객 6명 사망, 11명 부상

    伊서 음주운전 차량 인도 덮쳐 獨관광객 6명 사망, 11명 부상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 접경 지역에서 5일 새벽(현지시간) 음주 운전 차량이 고속으로 인도로 돌진해 6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3명은 중태라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15분쯤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남티롤의 독일어 지명) 자치주 주도 볼차노 근처 루타치(일명 루타고)에서 승용차 한 대가 인도를 덮쳤다. 가해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인도로 달려들어 인명피해가 컸다. 희생자 대부분은 20∼25세 사이 젊은이들로 파악됐으며 클럽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 뒤 도로 가에 정차한 관광버스 주변에 모여있다가 변을 당했다. 부상 정도가 심한 한 여성 등 2명은 헬리콥터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차량 운전자는 사고 지역 근처에 거주하는 28세 남성으로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 수치가 ℓ당 1.97g으로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 법은 혈중알코올 수치가 ℓ당 0.5g 이상의 상태로 운전하다 적발되면 면허 벌점을 부과하고, 0.8g 이상이면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도록 한다. 아르노 콤파처 알토 아디제 주지사는 “새해 벽두부터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이번 일에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경찰은 가해 운전자를 차량에 의한 과실치사·상 혐의로 체포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경찰은 1차 조사를 통해 테러 또는 고의적 살인 가능성은 일단 배제한 상태다. 독일어 사용 주민이 전체 75%에 달하는 알토 아디제는 관광 명소인 돌로미티가 인접한 데다 유명 스키장이 많아 특히 겨울철에 독일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지난 주말에도 한 모녀와 한 소녀가 남티롤의 한 스키장에서 눈사태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 역시 독일인이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北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서 전문 공개-주체혁명 불멸의 대강 1

    주체혁명위업승리의 활로를 밝힌 불멸의 대강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에 관한 보도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 인민군장병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가 주체108(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진행되였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령도따라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로운 승리를 앞당겨가는 력사적전환기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는 전대미문의 준엄한 난국을 정면돌파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리익을 끝까지 수호하며 자력부강의 기치높이 주체혁명위업승리의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불멸의 대강을 제시한것으로 하여 우리 당력사와 자주강국건설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된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전원회의를 지도하시였다. 전원회의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들과 당중앙검사위원회 위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성, 중앙기관 일군들, 도인민위원장들, 도농촌경리위원장들, 시, 군당위원장들, 중요부문과 단위, 무력기관 일군들이 방청으로 참가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전원회의를 운영집행하시였다. 전원회의에는 다음과 같은 의정들이 상정되였다. 1.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당면한 투쟁방향에 대하여 2.조직문제에 대하여 3.당중앙위원회 구호집을 수정보충할데 대하여 4.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성대히 기념할데 대하여 전원회의에서는 첫째 의정이 토의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 첫째 의정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전원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지난 8개월간은 대단히 강도높은 투쟁과 과감한 전진의 련속이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이 그 기간 항상 우리 인민의 절실한 요구와 권익, 국가의 자주권과 안전보장을 중심에 두고 정확한 대내외정치로선을 수립하고 견지하며 그를 관철하기 위하여 부단히 투쟁한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기치높이 용진하여온 우리의 전투적로정을 새로운 승리에로 계속해 이어가자면 혁명적진군의 보폭을 더 크게 내짚어야 하며 현정세의 추이와 우리앞에 나선 방대한 과제들은 현실에 대한 랭철한 판단에 기초한 적실하고 과감한 대책을 요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은 우리 혁명의 거창하고도 줄기찬 전진도상에 직면한 주객관적인 장애와 난관들을 전면적으로 심도있게 분석평가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한 결정적대책을 강구할 취지에서 이번 전원회의를 소집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정면돌파전을 벌릴데 대한 혁명적로선을 천명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긴장된 투쟁속에서 자립, 자력을 원동력으로 하는 우리의 주체적힘이 일층 강화되였다고 평가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사회주의건설의 일대 앙양기를 열어나갈데 대한 당의 호소따라 우리 국가와 인민이 난국을 맞받아 도도히 전진비약해나가는 강인한 기상과 막강한 잠재력을 크게 과시한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몇개월동안 우리앞에 봉착한 도전은 남들같으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고 물러앉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이였으나 그 어떤 곤난도 공고한 전일체를 이루고 굴함없이 나아가는 우리 인민의 돌진을 멈춰세울수도 지체시킬수도 없었으며 국가의 힘, 국방력강화에서 거대한 성과들을 끊임없이 비축한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국방과학기술의 선진국들에서만 보유한 첨단무기체계들을 개발하는 방대하고도 복잡한 이 사업은 과학기술적측면에서 혁신적인 해결책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스스로 찾을것을 전제로 하였으며 이 모든 연구과제들은 주체적력량 즉 우리의 믿음직한 과학자, 설계가, 군수로동계급에 의해 완벽하게 수행되였습니다. 이는 위대한 승리로 되며 당에서 구상하던 전망적인 전략무기체계들이 우리의 수중에 하나씩 쥐여지게 된것은 공화국의 무력발전과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보위하고 담보하는데서 커다란 사변으로 됩니다. 첨단국방과학의 이같은 비약은 우리의 군사기술적강세를 불가역적인것으로 만들고 우리 국력의 상승을 더없이 촉진시킬것이며 주변정치정세의 통제력을 제고하고 적들에게는 심대하고도 혹심한 불안과 공포의 타격을 안겨줄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수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게 되여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여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건설분야에서도 일련의 성과들이 이룩된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적대세력들의 악착한 제재로 말미암아 많은 제약을 받고 불리한 기상기후가 계속된 조건에서도 올해 농사에서 최고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없는 대풍이 마련된데 대하여서와 삼지연시꾸리기 2단계 공사가 결속되고 혁명전통교양의 중심지에 산간문화도시의 훌륭한 표준, 리상적인 본보기지방도시가 자랑스럽게 건설되였으며 중평남새온실농장과 양묘장,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이 우리 당의 구상대로 완공됨으로써 우리 인민들에게 선진문명의 창조물을 선물할수 있게 된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순천린비료공장건설, 어랑천발전소와 단천발전소건설을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대상건설들도 면밀히 추진되고 금속, 석탄, 건재공업과 경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거의 모든 부문이 현저한 장성추세를 보인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전국에 자력갱생경쟁을 호소한 강원도에서 당정책관철의 본보기적인 경험들을 계속 창조하고 평안북도를 비롯한 다른 도들도 경쟁적으로 농산과 축산, 교육과 보건, 지방공업발전에서 뚜렷한 실적을 올리고있는데 대하여 평가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이것은 전체 인민이 당의 부름따라 한사람같이 궐기해 견인불발의 증산운동, 창조운동을 과감하게 벌려온 위대한 투쟁의 필연적결과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성된 현정세의 추이를 분석하시면서 미국의 본심은 대화와 협상의 간판을 걸어놓고 흡진갑진하면서 저들의 정치외교적리속을 차리는 동시에 제재를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힘을 점차 소모약화시키자는것이라고 락인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것임을 더 굳게 결심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과 배치되는 요구를 내대고 강도적인 태도를 취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여있다고 하시면서 근간에 미국이 또다시 대화재개문제를 여기저기 들고다니면서 지속적인 대화타령을 횡설수설하고있는데 이것은 애당초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문제를 풀 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면초가의 처지에서 우리가 정한 년말시한부를 무난히 넘겨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수 있는 시간벌이를 해보자는것일뿐이라고, 대화타령을 하면서도 우리 공화국을 완전히 질식시키고 압살하기 위한 도발적인 정치군사적, 경제적흉계를 더욱 로골화하고있는것이 날강도 미국의 이중적행태라고 못박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실현에 악용하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환경이 절실히 필요한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수는 없습니다.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있습니다.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것입니다. 미국과의 장기적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힘을 보다 강화할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적과의 치렬한 대결은 항상 자체의 력량강화를 위한 사업을 동반하며 자기를 강하게 만드는 사업이 선행되여야 주동에 서서 승리를 쟁취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력강화의 견지에서 볼 때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을 비롯한 이여의 분야에서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력갱생, 자급자족하자고 계속 말하고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우리의 사업은 지난날의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자립, 자강의 거창한 위업을 견인하고 추동하기에는 불충분하며 대담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침체되여있는 국가관리사업과 경제사업 등 현 실태에 대하여 분석하시였다. 오직 혁명임무를 스스로 걸머지고 수행하려는 높은 책임감, 오늘과 래일을 다같이 안고 정확히 개척해나가는 지혜와 용기만이 우리 위업을 성공적으로 떠밀어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의 령도체계가 확고히 서있고 전당이 사상정신적으로 통일되여있으며 인민들이 절실히 요구하고있기때문에 문제될것이 없다고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과 모든 일군들이 이번 전원회의를 계기로 자기 부문, 자기 단위에 존재하는 난관을 자기 사업에 내재하고있는 부족점들과 결부하여 심각히 분석해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정세하에서 사회주의강국건설에 기여하고있는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몫을 엄밀히 따져보고 락심하거나 동요함이 없이 무거운 과제를 억척같이 떠메고 완강히 돌진해나갈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고생과 투쟁이 없이는 위대한 승리를 가질수 없으며 혁명의 승리는 필연적이지만 그 어떤 장애도 곤난도 없이 성취되는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합니다.정면돌파전은 우리 혁명의 당면임무로 보나 전망적인 요구로 보나 반드시 수행해야 할 시대적과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제재해제를 기다리며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면 적들의 반동공세는 더욱 거세여질것이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자고 덤벼들것입니다. 우리가 자체의 위력을 강화하고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값진 재부들을 더 많이 창조할수록 적들은 더욱더 커다란 고민에 빠지게 될것이며 사회주의승리의 날은 그만큼 앞당겨질것입니다. 모든 당조직들과 일군들은 시대가 부여한 중대한 임무를 기꺼이 떠메고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적들의 제재봉쇄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에 매진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 이것이 오늘 전당과 전체 인민이 들고나가야 할 투쟁구호입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하시면서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시기 나라의 경제실태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국가경제의 발전동력이 회복되지 못하여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하고있으며 중요한 경제과업들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미약한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준엄한 난국에 부닥친 중대하고도 관건적인 시기에 경제부문의 대응이 기민하고 원만하지 못하고 자력갱생한다고 구호만 웨치면서 실지에 있어서는 인민경제의 자립적토대를 정비보강하는데 힘을 넣지 않고있는 페단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어 세세히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하고 기업체들의 경영관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이 없다보니 국가의 경제조직자적역할이 강화되지 못하였으며 경제전반을 정비보강하고 활성화하여 장성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사업에서 심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정돈할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가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합리적으로 정돈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공화국이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지향하고있는 오늘에 와서까지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림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나라의 경제를 재정비하자면 결정적으로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는 심각한 현 실태를 엄책하시고 국가경제사업체계의 중핵인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도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내각은 현존경제토대를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고 생산단위들도 활성화할수 있게 경제작전을 바로하고 조직사업을 치밀하게 짜고들어야 하며 당면하여 국가경제의 명맥과 전일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에서부터 내각의 통일적지도와 지휘를 보장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혁명적인 사상과 정신은 시대를 앞서나가야 하지만 경제사업은 현실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현실적요구에 맞게 계획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명확한 방안을 찾고 전반적인 생산과 공급의 균형을 맞추며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높이기 위한 관건적문제들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내각사업이자 당중앙위원회사업이고 당중앙위원회의 결정집행이자 내각사업이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전원회의이후부터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관리를 강화하는데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중한 문제들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시였다. 경제발전을 추동하고 일군들의 역할을 높일수 있게 전반적인 기구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신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그에 토대하여 경제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밀고나갈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하여 사회주의상업의 본태를 고수하면서도 국가의 리익과 인민들의 편리를 다같이 보장할수 있게 상업봉사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대책하기 위한 문제, 세계가 분초를 다투며 새 기술, 새 제품개발경쟁을 벌리고있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경제관리를 개선하는데서 불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정리할데 대한 문제, 국가관리와 경제사업에서 생산활동에 제동을 걸고 사업능률을 저하시키는 요소들을 빠짐없이 찾아 바로잡기 위한 문제, 국가적으로 전문건설력량을 확대강화하고 건설장비를 현대화하여 중요대상건설을 맡아 수행하게 하는 방향에로 나갈데 대한 문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현실성있게 실시하는 사업을 잘해나갈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전당적, 전국가적으로 강력히 추진하여야 할 경제장성의 관건적문제들에 대한 해결방향을 명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인민경제 주요공업부문들의 과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였다. 자립경제를 떠받드는 주요공업부문들에서부터 겹쌓인 난관을 정면돌파하고 실제적인 생산적앙양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금속공업, 화학공업, 전력공업, 석탄공업, 기계공업, 건재공업, 철도운수, 경공업부문들에 산적되여있는 페단들과 부진상태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경제사업에서 진일보를 가져오기 위한 과학적이며 실질적인 대책들을 일일이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땜때기식투자, 자체의 잠재력에 의거하지 않는 하루살이식투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며 경제사업에서 그 어떤 진일보도 가져올수 없다고 하시면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망성있게 사업하는것이 혁명을 책임지는 마땅한 태도라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으로, 전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10대전망목표의 지표별계획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여 세우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 나라의 경제토대를 차곡차곡 공고히 다져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망목표가 확정되면 국가적으로 경제조직사업과 지휘를 짜고들고 전인민적인 생산투쟁과 창조투쟁을 맹렬히 벌려 그것을 반드시 점령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일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이라고 하시면서 농업부문에서 과학농법을 틀어쥐고 다수확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킬데 대하여 지적하시고 농업부문의 과학기술력량과 농업과학연구기관들을 튼튼히 꾸릴데 대한 문제, 농업과학기술인재육성사업에 힘을 넣을데 대한 문제, 농촌경리의 수리화를 더욱 완성하여 흉풍을 모르는 농업생산토대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 농산작업의 기계화비중을 높이고 나라의 농업토지를 한선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축산업과 과수업 등 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환을 안아오기 위한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과학, 교육, 보건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오늘 우리가 의거할 무진장한 전략자산은 과학기술이라고 하시면서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지금과 같이 경제사업에서 애로가 많을 때에는 과학기술이 등불이 되여 앞을 밝히고 발전을 선도해나가야 할것이라고 지적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당조직들은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과학전선에서 돌파구를 열어제껴야 사회주의건설의 전 전선이 승리하게 되며 강국의 리상과 목표도 오직 과학의 첨단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고심어린 탐구와 투신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다는 자각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 [서울포토] ‘공수처법’ 반대, 의장석으로 돌진하는 자유한국당

    [서울포토] ‘공수처법’ 반대, 의장석으로 돌진하는 자유한국당

    30일 국회 본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처리에 앞서 자유한국당 이주영의원이 의장석으로 돌진하고 있다. 2019.12.30.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비난 여론에도 ‘손’ 감싼 모리뉴… 보호일까 불의일까

    비난 여론에도 ‘손’ 감싼 모리뉴… 보호일까 불의일까

    “손흥민 퇴장감 아니다… 뤼디거 경고감” 단순한 두둔 넘어 상대 맹비난해 눈길매든, 4년 전 강정호 태클한 코글란 옹호 팀 내분 막기 위해 외부적으로 편들어승리 지상주의로 페어플레이 훼손 우려손흥민이 지난 23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FC와의 경기에서 안토니오 뤼디거의 가슴을 발로 가격한 반칙에 대해 국내외 팬과 전문가 대다수가 비판을 쏟아냈지만 유일하게 손흥민을 적극 두둔한 사람이 있었다. 토트넘의 조제 모리뉴 감독이었다. 그는 단순히 손흥민을 두둔하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인 뤼디거를 마치 파렴치하다는 듯 맹비난해 눈길을 끌었다. 모리뉴는 “손흥민의 행동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잘라 말한 뒤“오히려 뤼디거가 경고를 받아야 했다. 그는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고 뤼디거의 ‘할리우드 액션’을 비꼬았다. 이런 발언은 뤼디거의 할리우드 액션과는 별개로 손흥민의 플레이가 분명 비신사적인 반칙에 해당한다는 다수 여론과는 동떨어진 반응이었다. 그런데 선수의 위험한 플레이를 옹호하는 감독의 모습은 모리뉴뿐만이 아니다. 2015년 미국 프로야구(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내야수 강정호는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2루로 돌진하는 크리스 코글란의 비신사적인 슬라이딩으로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누가 봐도 더블 플레이를 막기 위해 고의로 강정호의 다리를 노린 ‘살인 태클’이었다. 그러나 조 매든 컵스 감독은 심각한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강정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미안함이나 유감 표명도 없이 “코글란의 플레이는 지난 100년간 야구에서 해 왔던 플레이다. 아무 문제 없다”고 대놓고 옹호해 한국 팬들의 공분을 샀다. 스포츠 세계에서 감독이 과격한 플레이를 범한 선수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최후의 옹호자’로 나서는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작게 보면 선수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고, 크게 보면 리더로서 해당 선수와 팀의 사기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스포츠 감독들의 선수 변호는 일반 사회의 리더들에 비해서는 유별난 측면이 있다. 단순히 수세적으로 두둔하는 것을 넘어 공격적으로 옹호하거나 되레 상대방을 비난하기까지 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24일 몇몇 전·현직 감독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한 듯 “말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내부적으로 주의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도자가 공개석상에서 자기팀 선수를 비판하면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며 “모리뉴 감독의 역성이 정의롭진 않지만 감독이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면 팀이 파탄 난다. 내분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어 외부적으로는 선수를 편드는 지도자들이 많다”고 했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도 “본인들끼리는 혼낼 수 있어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상황에서 감독까지 선수를 비난하면 선수들이 안 따른다”며 “잘못된 플레이를 했어도 감독이 ‘나쁜 플레이다. 선수 자격이 없다’고 대외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론과 동떨어져 자신의 팀과 선수만을 위하는 감독들의 반응은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 나아가 사회 전반의 정의로움에 대한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체육계 인사는 “선수의 잘못된 행동을 감독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길게 보면 그 선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손 퇴장에도 옹호한 모리뉴… 감독들의 딜레마

    손 퇴장에도 옹호한 모리뉴… 감독들의 딜레마

    전문가들 “감독 공개적인 선수 비난 어려워”손흥민이 지난 23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FC와의 경기에서 안토니오 뤼디거의 가슴을 발로 가격한 반칙에 대해 국내외 팬과 전문가 대다수가 비판을 쏟아냈지만 유일하게 손흥민을 적극 두둔한 사람이 있었다. 토트넘의 조제 모리뉴 감독이었다. 그는 단순히 손흥민을 두둔하는 수준을 넘어 ‘피해자’인 뤼디거를 마치 파렴치하다는 듯 맹비난해 눈길을 끌었다. 모리뉴는 “손흥민의 행동은 고의성이 없었다”고 잘라 말한 뒤“오히려 뤼디거가 경고를 받아야 했다. 그는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고 뤼디거의 ‘할리우드 액션’을 비꼬았다. 이런 발언은 뤼디거의 할리우드 액션과는 별개로 손흥민의 플레이가 분명 비신사적인 반칙에 해당한다는 다수 여론과는 동떨어진 반응이었다. 그런데 선수의 위험한 플레이를 옹호하는 감독의 모습은 모리뉴뿐만이 아니다. 2015년 미국 프로야구(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내야수 강정호는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2루로 돌진하는 크리스 코글란의 비신사적인 슬라이딩으로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누가 봐도 더블 플레이를 막기 위해 고의로 강정호의 다리를 노린 ‘살인 태클’이었다. 그러나 조 매든 컵스 감독은 심각한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강정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미안함이나 유감 표명도 없이 “코글란의 플레이는 지난 100년간 야구에서 해 왔던 플레이다. 아무 문제 없다”고 대놓고 옹호해 한국 팬들의 공분을 샀다. 스포츠 세계에서 감독이 과격한 플레이를 범한 선수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최후의 옹호자’로 나서는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작게 보면 선수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고, 크게 보면 리더로서 해당 선수와 팀의 사기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스포츠 감독들의 선수 변호는 일반 사회의 리더들에 비해서는 유별난 측면이 있다. 단순히 수세적으로 두둔하는 것을 넘어 공격적으로 옹호하거나 되레 상대방을 비난하기까지 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24일 몇몇 전·현직 감독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한 듯 “말하기 어렵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내부적으로 주의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도자가 공개석상에서 자기팀 선수를 비판하면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며 “모리뉴 감독의 역성이 정의롭진 않지만 감독이 선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하면 팀이 파탄 난다. 내분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어 외부적으로는 선수를 편드는 지도자들이 많다”고 했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도 “본인들끼리는 혼낼 수 있어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상황에서 감독까지 선수를 비난하면 선수들이 안 따른다”며 “잘못된 플레이를 했어도 감독이 ‘나쁜 플레이다. 선수 자격이 없다’고 대외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론과 동떨어져 자신의 팀과 선수만을 위하는 감독들의 반응은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 나아가 사회 전반의 정의로움에 대한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체육계 인사는 “선수의 잘못된 행동을 감독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길게 보면 그 선수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 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42세 미국 여성 지프 몰아 보도로 돌진 “멕시코 애로 보여 그랬다”

    42세 미국 여성 지프 몰아 보도로 돌진 “멕시코 애로 보여 그랬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40대 여성이 멀쩡히 보도를 따라 학교에 등교하던 14세 소녀를 차로 치였는데 멕시코 아이라서 그랬다고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 주도 디모인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클라이브에 사는 니콜 마리 풀 프랭클린(42)은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체로키 지프를 운전하다 도로를 일부러 벗어나 보도를 따라 인디언힐스 고교에 등교하던 소녀를 차로 친 뒤 구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달아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소녀는 뇌진탕과 찰과상을 입고도 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TV 방송 화면을 보면 소녀는 목 보호대를 하고 목발을 짚고 병원 안을 돌아다녔다. 소녀는 디모인의 KCCI 방송 인터뷰를 통해 “사고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차가 날 향해 달려온 것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소녀는 일주일 뒤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당 교육청은 전했다. 프랭클린은 경찰 조사 도중 의도적으로 소녀를 친 사실을 시인하고 멕시코인이라고 믿고서 그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23일 전했다. 클라이브 경찰서의 마이클 베네마 서장은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프랭클린은 라틴계 주민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19일 프랭클린을 살인 기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그녀는 사고 당일 한 편의점 점원과 고객들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퍼붓고 점원에게 뭔가를 던지고 달아난 혐의로 이미 체포돼 폴크 카운티 교도소에 구금돼 있었다. 베네마 서장은 소녀의 가족들이 사생활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소녀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스콧 석세나 클라이브 시장은 20일 성명을 통해 “피해자가 안전하고 가족과 함께 재활 중임에 감사드린다. 이런 증오범죄를 단호히 거부하고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라틴계 주민 단체의 디모인 지부는 프랭클린을 증오범죄로 기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른 히스패닉 인권단체 회원들도 30일로 예정된 프랭클린의 재판을 참관하겠다고 밝혔다. 조 헨리란 이 단체 대표는 “이 나라의 대통령부터 증오를 퍼뜨리니 사회의 취약한 부문에서 라틴계 주민을 타깃으로 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후보였을 때부터 이런 일이 생기고 있었는데 갈수록 더 나빠진다”고 개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게임하듯 디지털차 디자인… 1㎜ 오차까지 감지한다

    게임하듯 디지털차 디자인… 1㎜ 오차까지 감지한다

    정의선 150억 투입… 세계 최대 규모 기기 쓰자 ‘넵튠’ 부품 정교하게 재현 실제와 가까운 주행 모습에 ‘움찔’도고글이 달린 헬멧을 쓰자 텅 빈 공간에 갑자기 크고 매끈한 트럭이 나타났다.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현대자동차의 콘셉트 수소트럭 ‘넵튠’이었다. 현대차 직원이 기기를 조작하자 기자와 넵튠이 서 있는 공간은 설원으로, 노을이 지는 평야로, 프랑스 파리의 도심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컴퓨터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한 약간의 이질감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손에 닿을 듯 생생했다. 지난 17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150억원을 들여 경기 화성의 남양기술연구소 안에 만든 세계 최대 VR 디자인 품평장을 방문했다. 정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가 직접 디자인을 점검한다는 품평장은 세 개의 대형 스크린 외에는 별것이 없는 회색 공간이었다.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썼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실망감을 감추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백팩을 멘 채 고글이 달린 헬멧을 썼다. 고글 속 화면에 넵튠과 경쟁사의 트럭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직원이 “넵튠이 기자 여러분 쪽으로 달려갈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래 봤자 진짜가 아닌데 놀랄 일이 있겠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기자를 향해 돌진하는 트럭에 순간 움찔했다. 넵튠 주위를 돌아보면서 구석구석 살폈다. VR은 바퀴의 휠, 헤드라이트 부품까지 실제처럼 정교하게 재현했다. 운전석, 후방석 등 트럭 내부도 확인할 수 있었다. VR 덕분에 실제 자동차 모형을 만들지 않고도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해 볼 수 있으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정과 보완이 자유롭다는 현대차의 설명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토록 실제에 가까운 체험은 품평장 곳곳에 설치한 동작 감지 센서 덕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현대차에 따르면 품평장에는 총 36개의 동작 감지 센서가 있다. 이 센서가 VR 장치 착용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감지해 최대한 실제와 가까운 디자인 품평을 가능하게 한다. 디자인뿐 아니라 설계에도 VR을 적용한다. 방대한 설계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 차를 만들어 VR로 구현한다. 연구원들은 이 가상의 차를 운행하면서 엔진의 움직임, 부품의 작동을 점검한다. 덕분에 극한 환경에서 차에 가해지는 스트레스, 연료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공기의 저항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는 “앞으로 개발하는 모든 신차에 VR 품평을 적용한다. 디자인, 설계를 넘어 생산과 조립에도 VR을 적용할 것”이라면서 “VR을 연구개발 전 과정에 도입하면 신차 개발 기간을 20% 단축하고 비용은 15%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정의선의 ‘150억원짜리 혁신’ VR 디자인… 손에 닿을 듯 생생

    정의선의 ‘150억원짜리 혁신’ VR 디자인… 손에 닿을 듯 생생

    고글이 달린 헬멧을 쓰자 텅 빈 공간에 갑자기 크고 매끈한 트럭이 나타났다.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현대자동차의 콘셉트 수소트럭 ‘넵튠’이었다. 현대차 직원이 기기를 조작하자 기자와 넵튠이 서 있는 공간은 설원으로, 노을이 지는 평야로, 프랑스 파리의 도심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컴퓨터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한 약간의 이질감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손에 닿을 듯 생생했다. 지난 17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150억원을 들여 경기 화성의 남양기술연구소 안에 만든 세계 최대 VR 디자인 품평장을 방문했다. 정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가 직접 디자인을 점검한다는 품평장은 세 개의 대형 스크린 외에는 별것이 없는 회색 공간이었다.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썼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실망감을 감추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백팩을 멘 채 고글이 달린 헬멧을 썼다. 고글 속 화면에 넵튠과 경쟁사의 트럭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직원이 “넵튠이 기자 여러분 쪽으로 달려갈 겁니다.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래 봤자 진짜가 아닌데 놀랄 일이 있겠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기자를 향해 돌진하는 트럭에 순간 움찔했다. 넵튠 주위를 돌아보면서 구석구석 살폈다. VR은 바퀴의 휠, 헤드라이트 부품까지 실제처럼 정교하게 재현했다. 운전석, 후방석 등 트럭 내부도 확인할 수 있었다. VR 덕분에 실제 자동차 모형을 만들지 않고도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해 볼 수 있으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정과 보완이 자유롭다는 현대차의 설명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토록 실제에 가까운 체험은 품평장 곳곳에 설치한 동작 감지 센서 덕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현대차에 따르면 품평장에는 총 36개의 동작 감지 센서가 있다. 이 센서가 VR 장치 착용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감지해 최대한 실제와 가까운 디자인 품평을 가능하게 한다. 디자인뿐 아니라 설계에도 VR을 적용한다. 방대한 설계 데이터를 모아 디지털 차를 만들어 VR로 구현한다. 연구원들은 이 가상의 차를 운행하면서 엔진의 움직임, 부품의 작동을 점검한다. 덕분에 극한 환경에서 차에 가해지는 스트레스, 연료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공기의 저항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는 “앞으로 개발하는 모든 신차에 VR 품평을 적용한다. 디자인, 설계를 넘어 생산과 조립에도 VR을 적용할 것”이라면서 “VR을 연구개발 전 과정에 도입하면 신차 개발 기간을 20% 단축하고 비용은 15%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국방硏 “北, 협상 결렬 땐 다탄두 ICBM 개발”… 정부기관 첫 공식 언급

    국방硏 “北, 협상 결렬 땐 다탄두 ICBM 개발”… 정부기관 첫 공식 언급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이 결렬된다면 다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16일 공개한 ‘2020 국방정책 환경 전망 및 과제’ 보고서는 북한의 군사전망과 관련해 “북미 비핵화 협상 결렬 시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견제하기 위해 대미 보복 능력을 신뢰성 있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다탄두 ICBM 개발 등을 위한 노력을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다탄두 ICBM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7년 발사한 ICBM 화성 15형은 직경이 두껍고 탄두가 둥근 모양을 보여 다탄두를 의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0월 발사한 신형 SLBM인 ‘북극성 3형’도 다탄두 형상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런 모습에도 국방부와 합참은 북한의 다탄두 ICBM 개발 가능성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KIDA가 처음으로 북한의 다탄두 ICBM 개발을 전망한 것은 최근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탄두 ICBM은 목표지점 상공에 도달하면 탄두부에서 3∼10개의 탄두가 분리돼 목표물로 돌진하는 방식이다. 다탄두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핵 소형화 능력이 필수다. 이미 국방부는 지난 1월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서 “핵무기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근 북한이 거듭 엔진시험을 통해 개발하고 있는 신형 ICBM도 다탄두를 의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클러스터링(결합) 등 엔진시험을 거듭해 발사체 추진력을 높여 여러 개의 탄두를 탑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기사 의식 잃은 새 버스 인도 돌진…20대 여성 숨져

    기사 의식 잃은 새 버스 인도 돌진…20대 여성 숨져

    경기 평택시의 한 교차로에서 20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운전기사의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났다. 5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7시 15분쯤 평택시 용이동 기남 교차로에서 A(55) 씨가 운전하던 시내버스가 우회전 중 인도를 침범해 교통섬에 설치된 신호등과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하다 버스에 부딪힌 보행자 B(23)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두부외상으로 결국 숨졌다. 이과정에서 운전기사 A씨와 승객 1명도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사고 당시 A씨가 건강상 이유로 피를 토한 뒤 의식을 잃었던 상황이 시내버스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경찰은 사고에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 A씨를 형사 입건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연애의 맛3’ 천명훈, 조희경과 100일 만 재회했지만 결국 이별 [SSEN컷]

    ‘연애의 맛3’ 천명훈, 조희경과 100일 만 재회했지만 결국 이별 [SSEN컷]

    ‘연애의 맛3’ 천명훈이 조희경과 100일 만에 재회한 와인농장에서 안타까운 이별의 쓴잔을 마주한다. 5일 방송되는 TV조선 ‘연애의 맛’ 시즌3 6회에서는 돌진하는 천명훈과 머뭇거리는 조희경으로 ‘아슬 케미’를 탄생시켰던 시즌2 두 사람이 100일 만에 다시 재회했지만, 그 자리에서 이별하게 되는 깜짝 사연이 공개된다. 천명훈-조희경은 100일 전 함께 만들었던 와인을 찾기 위해 와인 농장에 방문했던 상황. 먼저 도착한 천명훈은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게 테이블을 꾸미며 설레는 마음으로 조희경을 기다렸고, 이윽고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당장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하지만 천명훈이 반가움을 가득 담아 두 팔 벌린 ‘천포옹’을 시전했지만, 조희경이 이를 정중한 악수로 응수하게 되면서 미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생성됐다. 이도 잠시 와인창고로 향하며 그간의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내 친숙한 분위기를 회복했던 터. 두 사람은 와인과 함께 넣어뒀던 편지를 찾았고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100일 만에 천명훈의 편지를 펼쳐본 조희경은 내용을 읽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천명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대 뒤에 숨겨놨던 ‘비장의 무기’를 착용한 후 희경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세레나데’를 열창한 것. 천명훈은 ‘내 여자로 찍었어~’라는 노래로 진심을 내비친 후 “좋은 관계로 이어가고 싶다”는 폭풍 고백을 건넸다. 그렇지만 조희경은 마음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그 자리에서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렇지만 조희경의 거절에도 천명훈이 굽히지 않은 채 “한 번만 더 기회를 줄래요?”라고 매달리게 되면서, 과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증을 끌어내고 있다. 제작진은 “100일 만에 약속한 장소에서 다시 재회한 두 사람에게 느닷없는 헤어짐의 기류가 발발한다”라며 “안타까운 각자의 사정이 5일 공개된다.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예능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연애의 맛’ 시즌3 6회는 5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보좌관2’ 모두가 바라는 이정재 생환 “세상 바꿀순 없어도..“

    ‘보좌관2’ 모두가 바라는 이정재 생환 “세상 바꿀순 없어도..“

    ‘보좌관2’에서 이정재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시청자들이 한 마음으로 그의 생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시즌2’(극본 이대일, 연출 곽정환, 제작 스튜디오앤뉴, 이하 보좌관2) 지난 8회 방송에서 성영기(고인범) 회장의 사주로 집단 폭행을 당한 장태준(이정재). 처참하게 구타당하고 구덩이에 떨어졌다가 겨우 빠져나온 그를 향해 성영기 부하의 차량이 무자비하게 돌진했다. 장태준이 죽음의 위기에 처한 긴박한 순간이 엔딩을 차지하면서, “장태준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길”이라는 시청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줄을 이었다. 이 바람엔 단순히 주인공의 생존을 기원하는 것 그 이상의 염원이 담겨있다. 밀어줄 집안도 인맥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 하나로 보좌관에서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장태준. 경찰 시절, 힘을 가진 자들이 공권력까지 움직이며 약자를 억압하는 걸 보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금배지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으로 사법부와 국회, 재계 검은 연결고리의 중심인 송희섭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나 하나 넘어트린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라는 송희섭에게, “적어도 장관님이 그 시작은 될 수 있을 겁니다”라며 꿋꿋하게 달려왔다. 그 시작점을 만들기 위해 장태준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과 고난의 과정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신념을 지키고 정의를 꿈꿔왔던 사람들이 권력 앞에 스러져갔고, 조갑영(김홍파)처럼 국민의 권익이나 민생 안정을 위한 일들은 뒷전이고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급급한 정치인들이 매일같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법 위에 군림하려 하는 송희섭과 성영기의 단단한 연결고리 또한 낯설지 않다. 이 견고하고 거대한 벽에 돌을 던지고 균열을 만드는 장태준에게 시청자들의 지지가 쏟아지는 이유다. “장태준이 끝까지 싸워줬으면 좋겠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며 그가 굳건히 살아 돌아오길 기원하고 있다. 장태준은 끝까지 살아남아 부정과 비리의 고리를 끊어내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정당한 죗값을 받게 할 수 있을까.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겨둔 ‘보좌관2’ 매주 월, 화요일 밤 9시 30분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테러범 제압한 런던 시민 영웅…전과자·이민자도 목숨 걸었다

    테러범 제압한 런던 시민 영웅…전과자·이민자도 목숨 걸었다

    2년 전 차량 돌진 테러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영국 런던브리지에서 이번엔 끔찍한 흉기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한낮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칼부림으로 안타깝게 2명이 숨졌지만, 경찰 출동 전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용의자를 제압해 더 큰 희생을 막았다. 이들 ‘시민 영웅’ 가운데는 전과자와 이민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BBC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목숨을 걸고 타인을 도운 용감한 시민들에게 끝없는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용의자는 폭탄테러 음모로 6년간 복역하다 가석방된 우스만 칸(28). 2010년 12월 런던 증권거래소 테러 기도로 다른 8명과 함께 체포됐다. 당시 19세로 일당 중 가장 어렸던 그는 2012년 테러 혐의로 기소돼 징역 16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향후 30년간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조건으로 지난해 12월 가석방됐다. 칸은 이날 런던브리지 북단에 있는 피시몽거스 홀에서 케임브리지대학이 주최한 출소자 재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 안에서 이미 공격을 시작한 그는 런던브리지로 빠져나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으며, 칸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은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 잭 메릿(25)으로 칸이 참석한 행사를 진행하던 중 변을 당했다. 또 다른 여성 희생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칸은 범행 당시 가짜 폭탄 장치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트위터 등을 통해 10여명의 남성이 런던브리지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며 이들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테러범에게 맞선 시민 영웅 중에는 2003년 지적장애 여성(21)을 살해한 혐의로 200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가석방된 제임스 포드(42)도 포함돼 있다. 가석방 다음날 칸과 같은 재활 프로그램에 참석한 포드는 칼부림 공격을 보고 달려들었다. 범죄학자인 데이비드 윌슨 버밍엄시티대학 교수는 포드가 “(복역하던) 그렌던 교도소에서 정신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다”며 포드의 사례는 재소자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반면 포드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숙모 안젤라 콕스(65)는 “그가 오늘 무슨 일을 했든지 살인자일 뿐 영웅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루커스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의 남성 요리사도 부상을 무릅쓰고 칸을 저지해 브렉시트 찬성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행 가이드 토머스 그레이(24)는 차를 타고 가다 내려서 테러범 제압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레이는 “런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했을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런던 브리지 테러범의 흉기 빼앗은 ‘영웅’, 용의자는 테러 전과자

    런던 브리지 테러범의 흉기 빼앗은 ‘영웅’, 용의자는 테러 전과자

    정장에 넥타이를 맨 이 남성이 29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런던 브리지에서 발생한 흉기 테러 사건의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았다.  용의자 우스만 칸(28)이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 칸은 일단 근처에 있던 10여명의 시민들에게 제압당한 뒤 달려온 경찰관들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는 테러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일년 전 석방돼 전자발찌를 찬 채 당국의 모니터링 감시를 받고 있었다.  런던 브리지 북단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근처 케임브리지 대학 구내 피시몽저스 홀에서는 범죄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는데 칸은 대학생들과 수감 전력자들이 참여한 컨퍼런스에 참석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은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경찰은 시민들의 신고 전화를 받은 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며 가짜 폭탄조끼를 걸친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와 대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12시간이 지나도록 희생된 두 명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다. 부상자 셋 가운데 한 명은 위독하지는 않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둘은 경미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닐 바수 런던 경찰청 대테러대책본부장은 “남성 용의자가 무장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됐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여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바수 본부장은 용의자가 몸에 폭탄장치를 둘렀으나 가짜로 판명됐다고 설명했다. 런던 브리지는 지난 2017년 6월에도 테러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당시 테러범 3명은 런던 브리지에서 승합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 사람들을 쓰러뜨린 뒤 인근 마켓에서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죽고 20여명이 다쳤다. 테러범 셋은 무장경찰에 모두 사살됐다.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의사당 인근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차량 돌진 테러 사고가 발생했고, 5월에는 공연장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콘서트 도중 폭발 테러로 19명이 사망했다.  목격자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10명 가까운 사람들이 테러 용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과 드잡이를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시민들은 이 용의자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용의자가 거칠게 저항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 경찰관이 도로를 가로질러 시민들과 테러 용의자가 드잡이를 벌이는 곳으로 다가왔다.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남성은 용의자의 손에서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 큰 흉기를 들고 뒤로 물러섰다. 세 명의 무장경찰이 시민들을 용의자로부터 떼어놓으려고 시도했다. 한 명의 시민이 여전히 용의자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져 있자 경찰관이 시민의 옷을 잡아당겨 용의자와 떨어뜨렸다.  그 뒤 세 경찰관은 용의자를 향해 총을 겨눠 두 발을 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다쳤지만, 경찰 도착 전 시민들이 테러 용의자를 붙잡아두는 바람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시민들이 “대단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신속하게 대응에 나선 경찰과 긴급구조대에 감사를 표시하는 한편 “다른 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물리적인 개입에 나섰던 용감한 대중의 대단한 용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들이 최고인 이 나라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 역시 “말 그대로 위험에 달려든 일반 대중의 깜짝 놀랄만한 영웅적 행위였다”고 칭찬한 뒤 “우리는 단결한 채 테러의 위협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우리를 공격하고 분열하려는 이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런던 브리지 테러는 영국 정부가 최근 테러 위협 경보 수준을 한 단계 낮춘 가운데 발생했다. 프리피 파텔 내무장관은 이달 초 테러 위협 경보 수준을 ‘심각’(severe)에서 ‘상당’(substantial)으로 한 단계 낮췄다. 2014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영국은 2017년 9월부터 ‘심각’ 수준을 유지해왔다. 칸 시장은 상향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런던 브리지 흉기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 안돼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객들로 북적이는 네덜란드 헤이그 쇼핑가에서도 흉기 사건이 발생, 적어도 셋이 흉기에 찔렸다고 BBC가 전했다. 부상 정도나 범행 동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45~50세 남성을 용의자로 보고 검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홧김에’ 음주차 몰고 아내 금은방 돌진 40대 입건

    ‘홧김에’ 음주차 몰고 아내 금은방 돌진 40대 입건

    홧김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아내가 운영하는 금은방을 향해 차량을 돌진해 가게를 부순 4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29일 특수손괴 및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A(4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날 오후 11시 14분쯤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서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고 아내가 운영하는 금은방으로 돌진, 가게를 부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시 금은방 영업이 끝나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어 인명피해는 없었다. A씨는 최근 아내와의 불화로 술을 먹다가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금은방을 들이받은 차량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승용차에 타고 있던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검거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08%로 측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혐의를 모두 인정해 일단 귀가 조치했고 조만간 다시 소환해 추가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무면허로 빌린 차 몰고 말다툼한 동창생에 돌진한 10대

    무면허로 빌린 차 몰고 말다툼한 동창생에 돌진한 10대

    경찰, 살인미수 혐의로 17세 입건해 조사중피해자, 생명 지장 없어…“살인 고의 없었다” 빌린 차량을 무면허로 몰아 중학교 동창인 또래를 치어 살해하려 한 혐의로 10대 청소년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살인미수 등 혐의로 A(17)군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A군은 전날 오전 11시 30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 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중학교 동창 사이인 B(17)군을 승용차로 1차례 치어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군은 무면허로 20대 지인에게서 빌린 차량을 몰다가 B군과 전화 통화로 친구 관계 등의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B군이 있는 곳을 찾아간 A군은 B군을 차량으로 1차례 치었다. A군은 범행 직후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B군은 다리 골절상을 입고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또 다른 친구와 B군 사이에 다툼이 있던 상황에서 싸움을 말리려 중재를 하려고 B군과 통화를 하다가 화가 났다”면서도 “B군을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은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지만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지 여부는 수사를 한 뒤에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홍콩 경찰 이공대 진입…반정부 시위대와 충돌

    홍콩 경찰 이공대 진입…반정부 시위대와 충돌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사퇴와 홍콩의 민주화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반정부 집회·시위가 6개월 동안 계속되는 가운데 홍콩 경찰이 시위대가 점거한 홍콩 이공대학에 진입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8일 새벽 홍콩 경찰은 이공대 교정에 진입해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 차량을 동원했다. 시위대를 식별하기 위해 파란색 염료를 섞은 물을 시위대를 향해 쐈다. 홍콩 경찰은 지난 6월 초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음향 대포’로 불리는 장거리음향장치(LARD)도 사용했다. 최대 500m 거리에서 150dB 안팎의 음파를 쏘는데, 이 음파에 노출되면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함께 어지러움 등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시위대는 화염병, 벽돌 등을 던지고 활을 쏘면서 저항하고 있다. 양측의 격렬한 충돌로 이공대 교정 곳곳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폭발음이 들리고 있다.이 현장에는 지난 주 퇴임한 스티븐 로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조만간 경찰청장 직위를 맡을 것으로 보이는 ‘강경파’ 크리스 탕 경찰청 차장이 직접 나와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전날에는 시위대가 차량을 동원해 중국 인민해방군 막사 인근에 설치된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자 홍콩 경찰이 차량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이 실탄 사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고, 차량 운전자는 도주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가 화염병, 활, 차량 등 살상용 무기로 공격을 계속할 경우 실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콩 경찰은 이미 이공대 인근에서 수십 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일부 시위대는 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이 이공대 교정을 전면 봉쇄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경찰은 또 이공대 안에서 폭력 행위를 하는 시위대에게 폭동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해진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해운대에서 대낮 만취운전으로 4명 사상자 낸 60대 구속영장

    해운대에서 대낮 만취운전으로 4명 사상자 낸 60대 구속영장

    대낮에 면허 취소 수준을 크게 웃도는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인도로 돌진해 4명의 사상자를 낸 60대 운전자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보행자 4명을 친 A(60)씨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오전 11시 20분쯤 혈중알코올농도 0.195% 만취 상태에서 코란도 승용차를 운전하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대동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 4명을 덮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인 0.0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 사고로 신호를 기다리던 60대 보행자 1명이 숨지고, 40대와 초등학교 1학년생 모자 등 3명이 다쳤다. 10대 청소년 1명은 발목을 크게 다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날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A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며, 오후 늦게 영장 발부 여부가 결정된다. 한편 해운대구에서는 지난해 9월 25일 혈중알코올농도 0.181% 만취운전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은 박모씨 차량에 치인 윤창호(당시 22세)씨가 50여일간 사경을 헤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마련돼 면허정지는 기존 0.05% 이상에서 0.03% 이상, 면허취소는 기존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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