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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加 유명 스시집에 트럭 돌진, 한인 사망

    전직 캐나다 횡단 철도 선임 관리자가 한인 운영의 스시집으로 트럭을 몰고 돌진, 저녁 식사로 몰려든 손님들 중 한인 1명을 포함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크게 다쳤다. 사망자는 46세의 한인 오혜심 씨와 19세의 대학신입생 마이야 리사 코벳 양도로 확인됐다. 특히 한인 오혜심 씨는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픽업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사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중상자 6명 중 3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상자 중에는 9세의 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고를 내고 2일 법정에 출두한 51세의 브라이언 어빙은 2건의 2급 살인혐의와 6건의 살해의도 혐의를 받고 있다. 범인 어빙은 캐나다 횡단 CP 철도의 감독관이었으며 특별한 범행 동기가 확인되지 않고 음주한 상태도 아니어서 정신병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당시 사고 현장의 목격자들은 “트럭 운전자는 고속으로 돌진하며 속도를 줄이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고 진술해 고의적인 사고의 가능성이 크다. ‘하루’는 지역에서 이름난 스시집으로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고 있어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명 리 미주 통신원 starlee07@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 신장서 또 유혈사태 공안 2명 사망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북서부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에서 27일 또 유혈사태가 발생, 공안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28일 AP통신은 독일 소재 민간단체인 세계위구르대회(WUC)에 따르면 이번 충돌은 지아쓰(伽師)현의 한 마을에서 발생했으며, 충돌 원인과 위구르족 사상자수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WUC는 현장에서 격렬한 총소리를 들었다는 목격자들의 말을 전했다. 공안은 사건에 개입된 위구르족 남녀 8명 중 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는 최근 위구르족에 의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4일에는 카스(喀什·카슈가르)에서 차량 1대가 무장경찰 부대로 돌진하며 수류탄을 투척해 16명이 숨졌으며,10일에는 남부 쿠처(庫車)현에서 연쇄 폭탄테러로 11명이 숨졌다. 중국 정부는 신장의 위구르족 분리주의자들이 국제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와 손잡고 ‘동(東)투르키스탄’이라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jj@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미녀들의 수다’ 외국인 동장 크리스티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미녀들의 수다’ 외국인 동장 크리스티나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몸이)움직일 수 없잖아요.” 사랑했기에 여러 조건 따져보지 않았다. 마음 가는 대로 ‘님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낯선 한국땅에서 아내로, 며느리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도 많았겠지만 그저 쿨하게 움직였다. 먼 나라가 아닌 ‘내 남자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행복해지는 연습, 사랑하는 연습을 했다. 또 추억하고 고마워했다. 이젠 내일이 더욱 기다려진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28)씨. 한국 생활 딱 2년째,‘크리스티나’라는 이름보다 ‘미수다 동장님’‘여자 앙드레 김’ 등으로 더 유명하다.KBS-2TV 오락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 출연해 ‘앙드레 김’ 스타일의 느린 말과 특유의 억양으로 인기를 얻은 덕분이다. 포털사이트에 팬카페까지 생길 정도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도 근무 또한 지난 4월,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6급대우)으로 뽑혀 화제가 됐다. 서울 역삼동에는 8000여명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는데 이들의 행정편의 등을 도와주는 ‘외국인 동장’이 된 것.‘미수다 동장님’으로 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거침없는 좌충우돌형이다. 최근에 또 하나의 일을 저질렀다.‘크리스티나처럼’이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펴낸 것. 아직은 한국어를 말하고 쓰는데 서툴러 자유기고가 윤종환씨의 도움을 받았다. 어쨌거나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낯선 땅에서 시어머니를 모신 새댁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기가 간단치 않을 텐데 말이다. 다음달부터는 대학강단에도 선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면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한국남자를 만나면서 한국어까지 구사한다. 한국인 남편과는 이탈리아어, 시어머니와는 한국어, 직장에서는 영어, 또 방송에서는 한국어를 쓴다. 하루 일과동안 최소 3개국어 이상을 쓰느라 머리가 복잡하진 않을까. 지난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그를 만났다.‘동장님’이 된 지 4개월 동안 어떻게 얼마나 적응했을지 궁금했다. 그의 명함에는 ‘역삼글로버빌리지센터장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라고 적혀 있었다. ●봉사모임 이끌며 불우이웃돕기에도 솔선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는 외국인 주민들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센터로 전기, 가스, 수도, 의료 등을 상담하고 외국인등록사실증명원, 거주사실증명원 같은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기능도 맡는다. 크리스티나는 여기에서 외국인의 행정편의는 물론 투자상담까지 한다. 또 센터장 자격으로 서울시 정책모임인 ‘서울 타워미팅’이나 ‘글로벌 정책회의’ 등에도 참여해 직접 정책에 관한 의견을 발표한다. 아울러 외국인 부인들의 모임인 SIWA(Seoul International Women Association),AWC(America Women Club) 등에 참여, 센터홍보를 한다. 센터장 취임 이후의 실적을 잠깐 들여다봤다.7월 말 현재까지 투자통상 122건, 생활정보 197건 등 모두 2705건을 상담했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 ‘영화감상의 날’과 매주 2회씩 영어·한국어 강좌를 열어 내외국인의 친목도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외국인 중심의 자원봉사 모임을 만들어 불우이웃 돕기행사에도 나서고 있다. 당초 젊은 외국인이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를 단순한 민원실이 아닌, 인간관계까지 넓히는 외국인들의 사랑방으로 변모시켰다. 하루 30명가량 외국인이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취임한 지 꼭 4개월이 됐는데 그동안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이곳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든가 투자상담을 하러오는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또 역삼동에는 현재 8117명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생활의 불편한 점을 상담하러 오는 경우도 많지요. 예를 들어 집에 가스설치를 하려는데 어떻게 하느냐,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구입하려는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문화가 다른 한국생활에서 적응이 잘 되는지요.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려는 생각, 오픈마인드가 중요하잖아요. 처음에 한국왔을 때 지하철에서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타려면 유니폼을 입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또 빈자리가 생겼을 때 돌진하는 아줌마들을 보고 놀랐지만 이젠 완벽하게 적응했어요.” ●한국문화 익히려 서예·동양화도 공부 그는 한국 문화를 알기 위해 경희대에서 태권도, 서예, 동양화 등을 배우기도 했다. 태권도를 잘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못하지만 ‘미수다’의 동료 비앙카(미국 출신)가 태권도3단으로 격파와 발차기를 잘한다고 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과 이탈리아 축구시합때는 어디를 응원했나요. “이탈리아는 내 나라고 한국은 남편의 나라이기 때문에 양쪽 다 응원했지요. 결승전에서 만났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요. 이탈리아도 일찍 집에 갔어요(웃음)” ▶한국 선수들이 뛰는 경기들을 TV를 통해 많이 봤나요. “이탈리아는 축구나 배구 같은 단체경기를 할 때 응원을 하지만 한국은 역도나 레슬링 등 혼자 하는 경기에도 ‘아자아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한국이 메달 순위에서 처음에 중국 미국 다음으로 3위에 오르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가까이 한국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한국사람들은 친절해요. 그런데 레벨이 많아요. 언니, 오빠, 동생, 형, 아우…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또 있어요. 사무실에는 팀장, 과장, 계장…누구 밑에 누가 있고, 누구 위에 또 누가 있는지 피라미드 구조를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웃음)” ▶시어머니와 살면서 갈등같은 것은 없나요. “시어머니께서 언니처럼 아주 편하게 잘해줘요. 결혼초기에는 시어머니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했지요. 가끔 스파게티나 떡국, 삼겹살 요리를 같이 해먹기도 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도 같이 나가고….‘미수다’의 출연도 시어머니의 권유로 나갔지요. 시어머니는 든든한 지원자입니다.” ●남편은 선생과 제자로 만나 결혼 ▶크리스티나는 가톨릭인데 왜 교회에 나갑니까. “저는 아무 상관없어요. 한국에서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고 대신 이탈리아 갔을 때는 성당에 가기로 약속했지요. 저는 결혼식을 두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회, 밀라노에서는 성당에서 했지요. 지난 6월28일 밀라노에서 이웃과 친척들을 불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저는 대학원에 다닐 때였고 남편은 밀라노에서 성악공부 중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아르바이트로 이탈리아어를 가르쳤지요.” ▶어떤 점이 마음에 끌렸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고 결혼하게 됐습니다.” 선생과 제자로 만난 둘은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할 무렵 크리스티나가 벨기에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이때 서로 결혼약속과 함께 한국행을 다짐했다. 남편은 현재 수원여대와 간호대 등에서 성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센터장 임기는 2년,2010년 3월에 계약기간이 끝난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묻자 “특별한 계획보다는 그냥 움직여지는 대로 사는 것이 좋다.”면서 다음달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일주일에 두번 이탈리아어 강의를 맡게 된다고 귀띔했다. 국적을 한국으로 바꿀 생각은 없느냐고 하자 남편이 성악을 하고, 또 자신의 전공이 국제법이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의 꿈은 일과 사랑,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크리스티나 그는 누구인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는 국제법에 관심이 많아 2005년 10월 밀라노 가톨릭대학원에서 국제법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무렵 밀라노에 유학 중이던 남편 김현준(30)씨를 만났고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 오기 전인 2006년 1월부터 8개월간 벨기에 브뤼셀의 EU본부에서 인턴십을 했다. 이후 한국에서 1년간 주한 이탈리아 무역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외국 바이어들을 위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가이드 북’의 발행 등을 도왔다. 현재는 TV 연예오락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면서 서울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원장 이화석)의 승강기 안전 홍보대사에 임명됐다. 또 ‘크리스티나처럼’이라는 에세이집도 펴냈다. 경기도 안양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
  • 두 얼굴의 경찰

    경찰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법을 적용해 엄정 사법처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고 시위대로 돌진해 시위대와 의경을 친 뒤 달아나려 했던 피의자를 불구속 입건한 것으로 드러나 이중잣대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7일 혈중알코올농도 0.194% 상태에서 촛불시위 현장으로 승용차를 몰아 시위대 4명과 의경 1명을 들이받은 뒤 도주하려 한 조모(28)씨를 단순 음주 교통사고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경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고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조씨는 이날 오전 1시20분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종로 2가 탑골공원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후 조씨는 30∼50m 정도를 도주하다가 경찰과 시위대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물론 의경 1명도 승용차 바퀴에 오른발이 깔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경찰은 조씨에게 뺑소니 혐의와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1일 조씨의 신병처리가 궁금했던 피해자 진모씨가 종로서에 문의한 결과 드러났으며,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종로경찰서 홈페이지를 찾아 “뺑소니 및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적용시켜 엄하게 사법처리했어야 했다.”며 경찰을 비판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종로서 교통사고조사계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자가 전치 6주 이상의 상해를 입어야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전치 2∼3주의 진단밖에 나오지 않았다.”면서 “가해 운전자도 몸싸움 과정에서 눈밑 골절상을 입었다.”고 해명했다. 또 “판례상 피의자가 사고 이후 피해자 주변 인물들에게 신변의 위험을 느껴 달아난 경우 뺑소니로 보기 어렵고, 조씨가 고의적으로 의경을 친 게 아니라 브레이크 오작동으로 일어난 사고여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경찰이 오히려 피의자를 두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설창일 변호사는 “조씨는 시위대에 돌진한 뒤 시위대 일부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50m 정도 달아나 누가 봐도 명백한 뺑소니였다.”면서 “전·의경과 사소한 몸싸움을 벌인 피의자에게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한 경찰이 의경을 친 피의자에게는 이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중국 포로 상대로 살인훈련” 日교수, 2차대전 경험 고백

    |도쿄 박홍기특파원|“중국인 포로를 총검으로 찌르는 살인훈련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한 명예교수(83)가 13일 아사히신문에 익명을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겪은 참혹한 경험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그는 19세이던 1944년 징병돼 이듬해 1월 중국 산시(山西)성에서 근무하다 평소 훈련장소와는 다른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2개의 통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병사들은 뒤로 손이 묶인 20대와 중년으로 보이는 중국인 포로 2명을 끌고 와 상의를 벗긴 뒤 통나무에 묶었다. 총검을 들고 돌진해 찌르는 이른바 ‘시토쓰(刺突) 훈련’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신병들의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실시했던 훈련이다. 2개 조로 나뉜 신병들은 중대장의 ‘돌격’ 명령에 따라 포로를 총검으로 찔렀다. 그가 속했던 조는 20대 청년이 대상이었다.10여번째로 그에게 명령이 내려지기 전 중국 청년은 이미 총검에 난자당해 무릎이 굽혀진 채 늘어진 상태였다. 그는 돌격 명령을 받고 청년 앞까지 달려갔지만 멈칫했다.‘찔러’라는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총검을 휘둘렀다. 끔찍했다. 당시 감각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다고 했다. 이후 전투에서 단 한발의 총도 쏘지 못했다. 일본이 패전해 귀국한 뒤 거꾸로 포로가 돼 총검에 찔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는 “나는 반인도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면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고백한 배경을 밝혔다.hkpark@seoul.co.kr
  • 원더걸스·소녀시대?… “이제는 카라 시대”

    원더걸스·소녀시대?… “이제는 카라 시대”

    최근 가창력 논란으로 마음앓이를 단단히 했던 여성 그룹 카라(박규리, 한승연, 정니콜, 구하라, 강지영)는 아픈만큼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10월 1집 활동 이후 한 멤버의 갑작스런 탈퇴 소식으로 팬들의 아쉬움을 샀던 카라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멤버 구하라와 강지영을 투입하고 4인조에서 5인조로 거듭나 팬들 앞에 섰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이어 소녀 그룹 열풍을 예고하며 나선 카라는 지난 달 24일 M.net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컴백 무대에 올랐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카라 멤버들은 10개월 간 마음 졸이며 준비했던 컴백 무대에임에도 불구 , 지나친 긴장감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깜찍 발랄한 무대 구성으로 호평을 이끌어 냈지만 ‘첫 무대’라는 부담감에 불안한 음색을 숨기지 못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던 다섯 소녀들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던 무대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라의 리더 규리는 “감격과 설렘, 긴장이 뒤범벅 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당시의 심정을 묻자 멤버들은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승연은 “우여곡절 끝 가진 컴백 무대였어요. 단순히 무대를 못했다는 속상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죠.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오직 이 무대를 위해 기울였던 수많은 노력들이 떠올랐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 컴백 후 일주일간 인터넷 하지 않았어요. 카라는 “첫 무대 후 약 일주일간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가창력 논란’ 기사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긴장한 탓이 있다고 해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하고 있기에 모두들 담담히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주저앉으면 안된다고 느꼈어요.”(규리) # 연습 또 연습, 눈물 어린 우격다짐 카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숱한 연예 기사들이 카라의 부족함을 꼬집는데 급급했지만 다섯 소녀들은 ‘한걸음 더 멀리 내다보자’며 눈물 어린 우격다짐을 했다. “이제 막 다시 첫 발을 내딛었잖아요.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멀기 때문에 멈춰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멤버였던 규리·승연 언니와 저에게는 소중한 컴백 활동이지만 새 멤버 하라, 지영에게는 가수로서 첫 걸음이니까요.”(니콜) “첫 무대 후 지금까지 4번의 음악 프로그램에 더 출연했는데 ‘갈수록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다수의 평이었어요. 너무 기쁘고 고마웠죠.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이제 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승연) # 새멤버 적응 완료, “원걸·소시 게 섰거라, 카라 돌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카라의 새 멤버가 된 하라(18)와 지영(15)은 카라의 가장 큰 승부수 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방송 활동 2주차에 들어섰지만 이들은 “매회 무대의 감회가 다르다.”며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첫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꿈꿔왔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잘 실감나지 않았어요. 지금은 무대와 방송 모두 감 잡았어요.(웃음) 이제부터 진짜 카라가 나갑니다!” (하라) 새 멤버 지영(15)도 막내답지 않은 각오를 전했다. “데뷔를 앞둔 연습 기간에는 그저 이끌어 주시는 대로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무대 위의 주인공이 돼야죠. 원더걸스나 소녀시대에 비해 저희의 강점은 ‘옆집 여자친구’ 같은 친근감이라고 생각해요. ‘제2의 핑클’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카라의 당당한 행보 보여드릴게요!” (지영)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봉천동은 이제 잊어주세요”

    “봉천동은 이제 잊어주세요”

    돌진적 근대화 시기를 지나며 가난과 저개발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봉천’이란 동 이름이 사라지게 됐다. 관악구는 27개 행정동을 21개로 줄이는 동 통폐합과 함께 주민 여론과 지역 특성을 고려한 새 이름을 다음달부터 사용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신림·봉천이란 지명 뒤에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 만들었던 기존의 동 명칭은 보라매·낙성대·난곡·인헌·대학동 등 새 명칭으로 대체된다. 구 관계자는 “당초 봉천본동과 봉천1∼11동 가운데 한 군데만이라도 봉천이란 동 이름을 남겨두려고 했으나 봉천이란 지명에 담긴 ‘낙후’‘빈곤’의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는 주민들 반대가 워낙 완강했다.”고 설명했다. 관악산 근처에 자리잡은 까닭에 산이 험하고 높아 마치 하늘(天)을 받들고(奉)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봉천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다가 1963년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됐고,1966년 신림동과 봉천동으로 나뉘어진 뒤 1973년 신설된 관악구에 편입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봉천’과 달리 ‘신림동’이란 명칭은 신림5동이 이어받게 돼 살아남았다. 구 관계자는 “신림동은 봉천동과 달리 서울대·고시촌 등의 이미지 때문에 선호하는 지역이 많았다.”면서 “지리적 입지와는 상관없이 주소가 봉천동이냐 신림동이냐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달라지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번 행정동 명칭 변경으로 남현동을 제외한 20개 동 이름이 모두 바뀌게 됐다. 하지만 바뀐 동 이름은 행정동에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등기부 등본 등에 기재되는 기존의 법정동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촛불’로 돌진한 만취車

    만취한 운전자가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던 시민들 사이로 차를 몰고 돌진해 5명이 다쳤다.27일 오전 1시20분쯤 조모(28)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94%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에 일행 2명을 태운 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앞 차도에서 집회를 벌이던 시위대를 들이받았다. ●5명 부상… 시위대 42명 연행 이 사고로 진모(42·여)씨 등 시위참가자 5명이 다쳐 국립의료원과 서울백병원으로 나뉘어 후송됐다.119종합상황실 관계자는 “5명 모두 경상이고,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승용차가 시위대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후진하면서 1명이 다칠 뻔해 시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잠시 뒤 운전자가 급발진해 시위대를 들이받았다.”고 전했다. 운전자 조씨는 달아나려 했으나 경찰과 시민들에게 붙잡혀 종로지구대로 넘겨졌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임태훈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은 “비록 시위대가 차도에 있더라도 차를 통행시켜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면서 “경찰도 50%는 사고에 책임이 있으며, 경찰이 집회를 보장하지 않고 시위대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1500여명(경찰추산)의 시민들이 참가한 촛불집회는 26일 오후 7시부터 2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거리행진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거리시위를 계속하자 26일 밤 11시20분쯤 전의경들을 투입, 강제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의경들이 시민들을 방패로 내려치거나 발길질했으며, 시민들도 대열에서 떨어져 고립된 전의경들을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경찰은 시위대 42명을 연행했다. ●민노총 진영옥 부위원장 체포 한편, 민주노총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7일 오후 7시쯤 서울 신촌 부근에 잠복해 있다 가족과 만나는 현장을 덮쳐 진 부위원장을 체포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화성, 소행성에 뒤통수 맞았다?

    화성의 남반구와 북반구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인 이유는? 과학 전문지 네이처 최신호에 실린 3개의 보고서는 험준한 산들로 가득 찬 남반부와, 낮은 구릉들로 이어진 비교적 부드러운 지형의 북반부가 생긴 것은 소행성 충돌 때문이란 연구결과를 제시했다.BBC·MSNBC방송 등 외신들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고서는 화성이 생성될 무렵인 약 38억년 전, 지름 1600㎞ 크기의 소행성과 시속 2만㎞ 이상의 속도로 충돌하면서 북반구에 거대한 분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충돌로 가로 8500㎞, 세로 1만 6000㎞ 크기의 분지가 생겼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반면 반대쪽인 남반구는 그 충격으로 수없이 많은 구덩이가 패고 평균 3000m에 이르는 산들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과학계에서는 그동안 1970년대 화성 탐사선 ‘바이킹’이 보내온 사진을 바탕으로 화성이 자체적으로 화산 폭발을 일으켜 그같은 모습을 띠게 됐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왔다. 남반구 화산들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표면을 융기시켰다는 얘기다. 이번 보고서에서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최근 화성 궤도 탐사선 마스 리커니슨스 오비터(MRO)와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MGS)가 보내온 새 자료를 바탕으로 화산 폭발 이전의 화성 표면 표고를 재구성했다. 결국 태양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타원형 운석공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소행성이 행성에 충돌할 때 이런 타원형 분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화성 북반구 분지는 아시아와 유럽, 호주 대륙을 합친 크기다. 연구진은 “두 운석공의 타원 형태와 화성 지표의 외곽선 형태는 일치했다.”면서 대규모 운석 충돌로 생긴 분지의 전형적 특징인 두 번째 외곽 고리 흔적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처럼 큰 타원형 함몰지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메커니즘은 외부 충격”이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연구진도 별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화성의 타원형 분지를 만들 만한 물체는 30∼60도의 각도에서 시속 2만㎞ 이상의 속도로 돌진한 폭 1600㎞ 이상의 소행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이런 물체의 충돌은 TNT 75조∼150조MT(메가톤)의 폭발과 맞먹는 위력을 발휘했다는 계산이다.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의 세 번째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서울광장] ‘오세훈식’ 리더십을 보고 싶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오세훈식’ 리더십을 보고 싶다/노주석 논설위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전임 시장인 이명박 대통령의 ‘CEO 리더십’이 촛불집회로 죽을 쑤다 궤도를 부분적으로 수정했지만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인 오 시장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별반 알려진 게 없는 것 같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물어봤지만 뜸을 들이다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규정짓고, 정의내리기 좋아하는 대학교수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오 시장의 리더십에 대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이유는 뭘까. 일화가 있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한나라당 서울 강북지역 후보들은 너나없이 뉴타운 공약을 내놓고 오 시장의 입만 쳐다봤다.‘철옹성’ 울산을 버리고 동작 을에서 민주당의 거물 정동영 후보와 ‘맞짱’을 뜬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 역시 다급했다. 시장실을 찾아 뉴타운 추가지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역구로 돌아간 정 후보는 오 시장이 추가지정을 확약했다고 알렸다. 얼마전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오찬에서 오 시장은 당시 정 의원과의 면담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손윗분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열심히 들었죠. 그리고 동의의 뜻이라기보다 이해를 했다는 의미에서 머리를 몇 번 끄덕끄덕했습니다. 그게 수용으로 해석된 거예요. 나 원 참…” 설명을 들으면서 오 시장 성격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오 시장은 자신을 서울시장으로 키운 ‘클린 이미지’처럼 반듯하고 차분하다. 하지만 ‘독종’이라고 할 만큼 끈질긴 외유내강형 속내를 감추고 있다. 이런 성격이 4만 8000명에 이르는 서울시 공무원을 적으로 돌리는 내부와의 불화를 감수하면서도 ‘3% 퇴출제’를 결행한 원동력이다.16대 국회 때 돈 안 드는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법, 이른바 ‘오세훈법’을 통과시킨 그 정신이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돌진하는 것이 모토”라는 그의 말마따나 정하면 물러섬이 없다.‘원칙의 리더십’이라 할 만하다. 오 시장은 변호사출신답게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를 즐긴다.‘이게 아닌데’하는 공무원에게 ‘타협은 없다’며 밀어붙인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이 잘못 판단해도 설득할 수 있는 서울시 공무원이 거의 없다는 부정적인 얘기는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오 시장이 재임 후반기도 여전히 ‘창의(創意)시정’에 승부를 건다. 창의시정이란 공무원들의 의식을 창의유전자로 개조시켜 시민고객에게 감동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의식개혁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행정사치’라고 지적하는 시민도 많다. 시민들은 말의 성찬이 아닌 생활밀착형 행정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받길 원할 뿐이다. 오 시장의 다음 행보는 서울시장 재선 혹은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선출되는 것이다. 요즘은 재선쪽에 무게중심이 기울었다. 장갑을 벗어봐야 알겠지만 2년 후 한나라당 서울시장 공천을 따내기란 만만찮아 보인다.4년 후 대권으로 가는 길은 더욱 첩첩산중이다. 다른 정치지도자에게선 찾을 수 없는 오세훈만의 색깔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대목이다. 아직 ‘2년이나’ 남았다. 현재 갖고 있는 ‘끈기’와 ‘원칙’의 리더십에 ‘포용’과 ‘통합’을 조화시킨 새로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2년이나 4년 후 시원한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날릴 수도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오디세이 서울] (1) 세운상가

    [오디세이 서울] (1) 세운상가

    서울은 ‘관리된 자연’과 ‘방치된 인공’이 공존하는 곳이다. 낡은 것과 새것, 성스런 것과 속된 것이 뒤섞여 소통한다. 전근대와 탈근대, 버려진 것과 선택된 것, 공인된 것과 금지된 것이 병존하는 ‘콜라주’도시다. 왕도의 오랜 역사와 20세기의 돌진적 근대화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불협화음적 하모니가 ‘뉴타운’과 ‘도심재생’으로 상징되는 신개발주의의 토건 프로젝트에 휘말려 언제든지 파괴되고 균질화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이 도시를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이 비록 볼품없이 쌓아올린 콘크리트 덩어리, 비루하고 지지한 도심의 후미진 뒷골목일지라도. 도시경관기록 보존운동을 펼치는 사단법인 ‘문화우리’와 함께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개발시대 서울의 거리와 건축물을 재조명한다. 1967년 서울이라는 슬럼의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낸 세운상가에는 발전과 도약을 갈망하던 동시대인의 소망이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끈적한 욕망의 자취를 남겨놓고 있다. 세운상가라는 이름의 ‘콘크리트 유적’은 서울 종묘 앞에서 청계천로, 을지로를 거쳐 퇴계로로 이어지는 1㎞의 남북축을 따라 네 덩어리의 상자형 건물로 도열해 있다. 쇠진과 몰락의 기운만이 느껴지는 남루한 건축물이지만 녹록잖은 건축사적 무게 덕분에 최근엔 건축학도와 문화운동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실 ‘주상복합건축물의 효시’이자 ‘집합건축(mega) 프로젝트의 원조’라는 평가는 세운상가를 논할 때면 설계자 김수근의 이름과 함께 세트로 따라붙는 단골 구문이다. 대지 1만 6308㎡ 연면적 20만 5898㎡,2000개가 넘는 점포와 호텔객실 177개, 주거용 아파트 851채. 이같은 거대규모의 복합 건물군이 1인당 국민소득이 144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종삼’이라 불린 최대의 유곽지대를 쓸어내고 들어섰다는 것은 왕조시대의 대역사(大役事)에 견줄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형태·구조에서 발견되는 파격성 또한 오늘날의 하이테크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다. 김수근은 이곳에 인공대지, 공중가로, 옥상정원 같은 1950∼60년대 서구건축의 첨단 어휘들을 과감히 도입했다. 이런 까닭에 아직도 이곳엔 건축물이 ‘삶을 위한 기계’라는 기능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유토피아적 기획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전후(戰後) 모더니즘 건축의 이상주의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여의도개발계획이 도시적 차원에서 모더니즘의 이상을 축조하려는 것이었다면, 세운상가는 건축적 맥락에서 그 미망(未忘)을 구현하려는 전위적 공간 프로젝트였다. 지역명이나 건설업체 이름과도 무관한 ‘세운’이란 명칭을 갖는 과정 역시 주목할 만하다. 원로 도시학자 손정목에 따르면 연원은 1966년 9월8일 세운상가 A지구 기공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행사장을 찾은 서울시장 김현옥이 붓으로 세운상가라는 휘호를 써 증정했던 것인데,‘세계(世)의 기운(運)이 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비루한 주변부적 현실로부터 탈출을 욕망하던 당대의 ‘집단 무의식’이 군인 출신 행정가의 직설화법을 통해 민자 건축물의 이름에까지 투영된 것이다. 신경증적인 성장강박의 시대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5)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75)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1636년 12월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이렇다 할 저항이 없었다. 그들은 곽산(郭山)과 정주(定州)에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홍타이지는 투항해 온 곽산과 정주의 군민들을 해치지 말라고 유시하는 한편, 그들의 머리를 깎아 치발(髮)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버일러 두도(杜度)에게 정예병을 뽑아 철산(鐵山)과 가도, 운종도(雲從島) 일대를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5년 동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청을 배후에서 위협했던 가도의 동강진(東江鎭)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동요하는 조선 조정 청군이 이미 안주를 지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김자점의 장계가 조정에 들어온 것은 12월13일이었다. 인조는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김류는 경기 일대의 군사를 빨리 불러모아 어가(御駕)를 호위하여 강화도로 들어가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인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청군이 깊이 들어올 리가 없다며 좀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김류가 다시 재촉하자, 인조는 신하들 가운데 늙고 병든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청군의 철기(鐵騎)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조의 판단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무슨 근거로 적이 깊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우선 청군의 침입 상황을 신속히 보고하지 않은 도원수 김자점의 책임이 컸다. 또 청군 침입 직전, 격렬하고 지루하게 이어졌던 척화·주화 논쟁을 거치면서 인조의 판단력이 흐려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튿날 청군 철기가 이미 개성을 지났다는 보고가 다시 날아들었다. 다급해진 인조는 원임 대신 윤방(尹昉)과 승지 한흥일(韓興一)을 시켜 종묘에 모셔진 역대 선왕들의 신주(神主)를 수습하고, 빈궁(嬪宮)과 왕자들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들어가게 했다. 한성판윤 김경징(金慶徵)을 검찰사(檢察使)로 삼아 강화도의 민정과 방어 문제를 책임지게 했다. 또 이민구(李敏求)를 부검찰사로 삼아 강화도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선박의 관리와 왕실 인척들의 배행(陪行)을 맡도록 조처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던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인조 일행이 숭례문(崇禮門)에 도착했을 때, 청군이 이미 양철평(良鐵坪)까지 왔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양철평은 지금의 은평구 녹번동 부근이다. 인조 일행이 당황하고 있을 때 마부대(馬夫臺)가 이끄는 청군 선봉은 이미 홍제원(弘濟院)을 지나고 있었다. 인조는 숭례문 문루로 올라가고 훈련대장 신경진(申 景 )을 시켜 모화관(慕華館)으로 나아가 적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청군이 코앞에 들이닥치자 도성은 그야말로 공황 상태로 빠져 들었다. 인조 이하 신료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는 와중에 피난하려는 백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최명길의 용기 인조는 결국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했다. 청군 선봉이 시시각각 도성을 향해 옥죄어 오고 있는 데다 강화도로 이어지는 뱃길도 이미 차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광해군 시절부터 유사시의 피난지로 점찍어 준비해 왔던 강화도였다. 상당한 양의 식량과 화약도 비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조는 정작 가장 절실했던 순간,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했다. 허망한 일이었다. 당시 강화도까지 가려면 대략 이틀 정도가 걸렸다. 인조가 김자점의 장계를 받자마자 강화도행을 시도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의 양상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청은 병자호란을 도발하기 전부터 조선을 깊이 연구했다. 그들은 유사시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가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문룡(毛文龍)이 바로 자신들의 코앞에서 약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수군과 전함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정묘호란 당시에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맥이 빠져 버렸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예 인조가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길이 막혔다는 소식에 인조와 조정 신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바로 그때 최명길이 나섰다. 자신이 청군 진영으로 나아가 담판을 벌이겠으니 그 틈을 타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라고 건의했다. 인조는 최명길에게 강화(講和)를 청하면서 시간을 벌어 보라고 지시했다. 절박한 위기의 순간, 인조는 다시 주화론 쪽으로 돌아섰다. 적장을 만나 시간을 벌겠다고 자청했던 최명길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는 분명 전시(戰時) 상황이었다. 막 무악재를 넘어서려 하고 있던 마부대 일행에게 최명길의 출현은 ‘시간 끌기’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았다. 가자마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최명길은 적진으로 나아갔고, 그가 마부대와 담판을 벌이는 사이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화친으로 나라를 망친 자’라고 매도당했던 최명길이지만, 위기의 순간 신하로서 그가 보인 용기와 충성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최명길은 마부대에게 청군이 깊숙이 침입한 까닭을 물었다. 마부대는 ‘조선이 까닭 없이 맹약을 어겼으므로 새로 화약을 맺기 위해 왔다.’고 둘러댔다. 조선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배후에서 홍타이지가 대군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포석인지도 몰랐다. 한편 인조가 도성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처연했다. 도성을 버리고 피난하는 것이 이괄의 난, 정묘호란의 뒤를 이어 벌써 세 번째였다. 구리재(銅峴)를 넘어 수구문(水口門)으로 이어지는 파천 길에는 어가 행렬과 백성들의 피난 행렬이 서로 뒤엉켰다. 인조를 호위하던 군사들부터 갈팡질팡하여 대오가 흩어졌다. 혼란의 와중에 가족과 떨어져버린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넘쳐났다. 빨리 적을 피해야만 하는 황망한 상황에서 말이 제대로 준비될 리 없었다. 신료들 가운데는 말이 없어서 도보로 수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기온은 더 떨어지고 남한산성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강화도로 가자는 논의가 다시 등장하다 인조 일행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남한산성에 도착했다. 산성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영의정 김류는 인조에게 강화도로 가자고 다시 강청했다. 홍서봉(洪瑞鳳)과 이성구(李聖求)도 김류의 의견에 동조했고, 이홍주(李弘胄) 등은 위험하다고 반대했다. 김류는 강화도로 가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산성은 고립되어 양식과 말먹이가 부족하다. 강화도는 우리에게는 편리한 곳이나 저들에게는 침범하기 어려운 곳이다. 또 청의 본래 의도는 명을 치는 데 있으니 우리를 상대로 지구전(持久戰)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강화도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김류는 청군이 공유덕(孔有德) 등의 귀순을 통해 수군과 함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청군이 함선을 갖고 있고, 수군을 지휘했던 경험이 있던 공유덕 등이 이 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화도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조는 김류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인조는 귓속말로 김류에게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김류는 수행 인원을 단촐하게 줄여 과천과 금천(衿川·시흥)을 경유하면 강화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대제학 이식(李植)은 일단 인천까지 가서 배를 타자고 했다. 병력과 군량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의 상황이 불안했던 것일까? 인조는 김류 등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밀실에서 파천론이 다시 논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삼사의 언관들이 격렬히 반대했다. 1636년 12월15일 새벽,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을 나와 강화도로 향했다. 하지만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비탈진 산길은 얼어붙었다. 말들이 미끄러지면서 어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인조는 말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길이 국왕을 알아 볼 리 없었다. 인조도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졌다. 신료들은 놀라 어가를 다시 돌렸다. 날씨마저 철저히 인조를 외면하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막내린 ‘72시간 촛불’… 막판 격렬 몸싸움

    막내린 ‘72시간 촛불’… 막판 격렬 몸싸움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8일 밤까지 나흘 동안 연인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켠 촛불로 광화문을 밝히고 막을 내렸다.8일 밤에는 경찰 추산 4000여명(주최측 추산 2만여명), 사흘째인 7일밤에는 경찰 추산 4만 4000명(주최측 추산 2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나흘 동안 연인원으로 경찰 추산 12만여명(주최측 추산 50만여명)이 참여했다. ●방패 휘두르고 소화기 분사 8일 밤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72시간을 정리하는 발언대를 가진 뒤 오후 9시쯤부터 행진했다. 대학생 최진성(27)씨는 “한 달 넘게 촛불을 들었지만 정부가 묵묵부답이기도 하고, 경찰이 폭력 시위를 유발한 측면도 있지만 평화기조는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도 ‘평화집회 호소문’을 발표하고 “우리는 비폭력 평화 원칙을 선언하고 지난 31차례 촛불문화제에서 이를 견지해 왔다.”면서 “경찰의 폭력 유발 책동에 넘어가지 말고 평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선 7일 밤 12시를 넘기면서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차벽으로 동원된 경찰버스를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일부 시민들은 인근 지하철역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쇠파이프와 사다리, 망치 등으로 경찰버스 창문을 부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소화기를 분사하고 플라스틱 물병을 집어 던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이 오물로 추정되는 누런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시위대에 던졌다고 주장했으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경찰의 ‘오물 투척’에 항의하는 글이 잇따랐다. 경찰이 바닥에 쓰러진 시민들을 향해 방패를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소화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경찰은 8일 오전 5시20분쯤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면서 시민 11명을 연행했고, 검찰은 9일 중으로 연행자들의 처리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네티즌 ‘청와대 진출´ 의견 엇갈려 ‘청와대행(行)’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은 분분했다.‘임일규’라는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 등에 “현실적으로 청와대 진출은 어렵다. 폭력진압이 이어질 것이고 사망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촛불을 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반면 아이디 ‘201KEI’는 “청와대로 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라.’라는 것”이라면서 “국민이 원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청와대에 전달되고, 그래서 정부가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면 청와대로 가자는 얘기는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새벽 과격한 행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프락치 논란’도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다가 느닷없이 경찰버스로 돌진해 쇠파이프와 망치를 휘두른 시위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이경주 장형우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日도쿄 도심서 ‘묻지마 칼부림’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박창규기자|휴일인 8일 낮 12시40분쯤 일본 도쿄 도심에서 ‘묻지마 칼부림’에 7명이 숨지고 10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범인 가토 도모히로(25·시즈오카현)는 이날 도쿄 지오다구 JR(일본철도)아키하바라역 부근 네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2t 트럭으로 행인들에게 돌진,5∼6명을 크게 다치게 했다. 이어 트럭에서 내려 행인들을 향해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하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차에 치거나 칼에 찔린 시민은 무려 17명이나 됐다.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7명이 숨졌다. 범행 뒤 달아나다 경찰관 등에게 붙잡힌 범인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키하바라에 왔다. 세상이 싫다. 누구라도 좋다.”라고 진술했다. 범행에 사용된 트럭은 렌터카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을 목격한 남성(20)은 “범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행인들을 쫓아가 찔렀다.”고 진술했다. 때문에 휴일에 전자상가로 밀집된 아키하바라를 찾은 시민들은 한때 공포에 떨었다. 공공장소에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른바 ‘무차별 살인’은 최근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골칫거리다. 앞서 지난 3월23일 도쿄 인근인 이바라키현의 쓰치우라시역 앞길에서도 가나가와 마사히로(24·무직)가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hkpark@seoul.co.kr
  • 사이클 경기중 자동차 충돌사고 ‘순간 포착’

    사이클 경기중 자동차 충돌사고 ‘순간 포착’

    자동차와 사이클 경기 선수들의 충돌장면이 찍힌 사진 한 장이 전 세계 네티즌들의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지난 2일 멕시코에서 열린 한 사이클 경기에서 자동차 한대가 선수들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를 관람하던 한 공무원에 의해 찍힌 이 사진 속에는 사이클 경기에 몰두하고 있던 선수들과 이 사이로 돌진한 자동차의 충돌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사진속에는 차와 부딪친 십 여 명의 선수들과 사이클은 공중에 떠 있으며 선수들의 놀란 표정도 생생하다. 이 사고로 37세의 선수 한 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조사 결과 가해자는 28살의 한 청년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이같은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멕시코 뿐 아니라 영국과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과 중국 유명 포털 사이트 163.com의 네티즌들은 “안타깝다.”는 위로와 함께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한 네티즌(124.112.*.*) 은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지만 영화 같은 장면에 눈길이 간다.”고 적었고 또 다른 네티즌(60.216.*.*)은 “스턴트맨이 영화 촬영하는 사진인 줄 알았다. 놀라운 순간 포착”이라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부상자들이 어서 회복되길 바란다.”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인터넷판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16강전 8국] 다카오 신지,본인방전 도전1국 승리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16강전 8국] 다카오 신지,본인방전 도전1국 승리

    제2보(16∼23) 14∼15일 일본 훗카이도에서 열린 제63기 일본 본인방전 도전1국에서 본인방 다카오 신지 9단이 도전자 하네 나오키 9단에게 흑3집반승을 거두었다. 91년 나란히 입단한 두 기사는 그동안 엎치락뒤치락하는 성적을 기록하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지만, 도전무대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 다카오 신지 9단은 현재 본인방전을 3연패 중이며, 하네 나오키 9단은 일본 랭킹 1위 기전인 기성전에서 2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두 기사간의 역대전적에서는 다카오 신지 9단이 8승5패로 우세하지만, 통산 타이틀 획득 수에서는 13회의 하네 나오키 9단이 11회의 다카오 신지 9단을 약간 앞선다. 7번기로 진행되는 본인방전 도전기는 8시간의 제한시간에 60초 초읽기 10회가 주어진다. 흑19까지는 흑백간에 차례대로 큰 자리를 차지해가는 모습. 백이 20으로 우하귀에 돌진한 것은 이런 모양에서 흔히 나오는 삭감의 급소다. 흑이 21로 막았을 때 백22로 올라선 것이 음미할 만한 행마. 가볍게 둔다고 해서 단순히 <참고도1>백1로 두칸 벌리는 것은 오히려 흑2의 젖힘을 당해 백이 부담스러워진다. 백이 3으로 뛰어나가면 흑은 4로 젖혀 공격의 리듬을 탄다. 흑23으로 아래를 젖힌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급소. 백의 손을 따라 <참고도2>흑1로 막는 것은 역으로 백이 2,4로 젖혀잇는 것이 통렬하다. 흑은 끊기는 단점 때문에 5로 보강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 백은 6으로 벌려 가볍게 안정을 취한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내 남편 체 게바라는 ‘돈키호테’

    체 게바라는 이미 신화다. 그는 살아서도 영웅이었으나, 죽어서는 전설이 됐다. 게바라처럼 극단적 상징화가 이뤄진 인물도 드물다. 한편에선 혁명과 저항정신의 표상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간’(사르트르)으로 추앙받고, 다른 한편에선 최상의 상품성을 지닌 콘텐츠 소스로서 다양한 돈벌이 수단으로 변형·가공된다. 사실 게바라에 대한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그를 꼼꼼히 옷 벗겨 전파했다. 게바라의 성장과정과 게릴라 활동,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이야깃거리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아메리카 민중의 현실에 눈뜨게 한 오토바이 여행길은 인기 관광코스가 됐고, 볼리비아 침투 경로인 ‘게바라루트’는 순례코스가 됐으며, 심지어 스타벅스 종이컵과 맥주병에도 그는 부릅뜬 눈으로 등장한다. 천식으로 죽도록 고생했고 똥배마저 나왔던 ‘위험천만한´ 혁명가 게바라는 이제 남성미와 섹시함의 상징이 됐다. 게바라가 맞서 싸웠던 자본주의는 게바라의 혁명성까지 전유해 이윤을 창출한다. 게바라는 그렇게 낱낱이 소비돼 왔다. ●시와 편지 등 토대, 인간적인 면모 부각 2007년 게바라 탄생 80주년이자 사후 40주년에 맞춰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제목이 ‘체, 회상’(알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이다. 그의 부인이 쓴 회고록이란 점에서 이목을 끈다. 교사로 일하던 알레이다 마치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맞서 지하조직에 가담했다가 24세 때 게바라를 만나 비서로 일했다.1959년 결혼했고, 게바라가 죽은 67년까지 8년을 함께 살았다. 부인이 쓴 회고록인 만큼 기존의 게바라 평전에 비해 특히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됐다. 알레이다는 게바라가 남긴 시와 편지, 엽서, 남편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게바라의 면면을 되살렸다. 게바라는 혁명가로서의 외로움과 알레이다에 대한 남자로서의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볼리비아로 숨어들기 전 아바나에서 60대 노인으로 변장해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에선 애타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표현됐다. 알레이다는 남편 게바라를 ‘돈키호테’로 묘사했다.“그는 세르반테스의 인물에 부드러움이 가미된 인물이었고, 비록 다른 상황이긴 해도 같은 목적을 위해 새로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썼다.65∼66년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 콩고와 탄자니아에서 혁명을 준비했던 시기의 일화, 콩고내전 참전 뒤 볼리비아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공개했다. 게바라의 볼리비아행이 피델 카스트로와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항간의 해석과 달리, 카스트로의 지원을 받아 오랫동안 은밀히 준비해온 일이란 사실도 증언했다. ●게바라의 볼리비아행 카스트로가 지원 그 자신 혁명투사이자 국회의원으로 쿠바 사회에서 독립적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이었지만, 알레이다의 회고록은 오직 게바라를 중심으로 읽히고 또 팔린다. 수많은 게바라 상품처럼 알레이다의 회고록 또한 게바라의 매력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구로만 활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바라 사후 40년 만에야 입을 연 알레이다는 정작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저항정신’이 거세된 게바라는 게바라가 아니다. 혁명가 게바라는 살아 돌아올 일 없는데, 우리 앞에 넘쳐나는 저 게바라들은 누군가.1만 2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빚탈출 행복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교통사고 손해배상채무도 면책되나

    Q2004년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를 치는 사고를 냈습니다. 할머니는 깨어나지 못하고 3개월 정도 치료 중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 치료비 5000만원, 손해배상비 3000만원 등 8000만원 정도의 구상금을 청구해 와서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제 사회에 막 나가는 참인데 채무 때문에 답답합니다. 재산이 없는데 파산으로 채무를 면할 수 있는지요. - 이현상(가명·23세) - A모든 법규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일반 원칙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구체적으로 부당한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그 적용을 배제하는 것이지요. 파산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칙은 채무자가 모든 채무를 면하는 것이지만, 공익에 반하는 행위를 장려하게 될 우려가 있는 몇 가지 채무의 면책은 부인하는 예외를 둡니다. 그 전형이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 또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채무입니다. 이것까지 파산 제도로 면책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무도한 범죄행위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꼴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큰 행위를 하는 사람의 부주의를 부추길 위험도 커지기에 당연한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대한 과실이 무엇이냐는 법률이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교통사고에서는 대략 피해자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하는 사유, 즉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음주운전, 횡단보도나 인도돌진 사고와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 사고를 낸 이현상씨의 경우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돌아가신 할머니, 즉 유족에 대해 손해배상채무를 진 것이니 파산 제도로 면책을 받을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보험회사가 대신 변제해 유족 자신의 손해배상채권은 소멸했지만, 일반적으로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한 이후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대위하는 것일 뿐 피해자의 원래 권리의 성격은 변하지 않으므로 면책의 주장은 보험회사에 대해서도 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근거에서 벌금, 과태료는 징벌의 효과를 감퇴시킬 수 있기에 면책에서 제외되고 세금, 근로자의 임금과 퇴직금 채무,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에 관한 채무도 채권자의 강한 보호를 위해 제외됩니다. 이러한 비면책채권에 관해서는 개인회생으로도 전부 면책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파산제도를 통한 채무자의 면책은 채권자에 대해서는 재산권의 수용과도 같은 중대한 침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채무자를 면책하는 것은, 채권자는 채무자가 불가피하게 지급불능에 이르고 또 파산제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고 또는 알았어야 하면서도 스스로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계약에 의해 발생한 채권은 파산, 면책에 적합합니다. 그렇지만 계약 이외의 다른 원인의 채권자는 위험을 평가하고 자발적으로 신용을 준 것이 아니기에 지급불능의 위험을 전담하라는 것이 부당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채권의 실질가치는 채무자의 자력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이현상씨의 재산이 하나도 없다면 보험회사가 인식하는 채권의 가치도 액면 여하에 관계없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이 경우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채권을 보유할 때의 가치보다 더 회수한다면 이 채권을 다른 곳에 매각할 유인이 있습니다. 이런 거래에서는 경우에 따라 매수하는 사람이 채무자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즉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현금으로 상당 부분을 변제하면 나머지 원금을 탕감하여 주겠다고 제의하는 것이지요. 이같은 거래를 위해 일단 여건이 허용되는 대로 어느 정도의 돈을 모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하겠습니다.
  • NASA, 파편 분출하는 태양 이미지 공개

    NASA, 파편 분출하는 태양 이미지 공개

    엄청난 분출력과 함께 파편을 뿜어내는 태양의 새로운 이미지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의해 공개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공개된 이 이미지는 NASA가 2006년 발사한 쌍둥이탐사선 스테레오 A·B호(이하 쌍둥이탐사선)가 포착한 것으로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코로나질량방출(이하 CMEs)현상이 기록돼 있다. 이미지(영상)에는 태양대기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고 있는 코로나와 주위를 향해 끊임없이 방출되는 태양풍 그리고 태양과 반대방향으로 돌진하는 혜성의 꼬리가 촬영돼 있다. CMEs의 원인과 영향 등을 관측하기 위해 발사된 쌍둥이탐사선은 탑재된 16개의 각종 관측장비를 통해 태양의 3차원 이미지를 포착해 왔다. 과학자들은 쌍둥이탐사선이 포착한 이미지들이 CMEs 이해에 폭넓은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있으며 이로써 CMEs로 인해 발생되는 인공위성·항공기 통신·전력체계 마비 등과 같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Rutherford Appleton Laboratory)의 다니엘 뷰셔 (Danielle Bewsher)박사는 “이번 관측으로 전에 볼 수 없었던 태양의 CMEs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며 “태양 주변의 파편들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비엔나(Vienna)에서 열릴 과학·환경컨퍼런스에서(science and environment conference)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태양풍: 코로나 가스의 일부가 태양의 인력을 이겨내고 우주 공간으로 흘러나온 것.양성자와 전자들로 이루어진 입자의 흐름이다. 사진=NASA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알짜 매물’ 대우조선 누구 품에

    신영증권이 15일 대우조선해양의 목표주가를 5만 6000원에서 6만 5000원으로 상향조정했다.“올해 실적개선이 본격화되고 인수·합병(M&A)에 의한 프리미엄과 시너지 효과”를 들어서다. 이 증권사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대우조선은 ‘알짜배기 매물’로 통한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거치면서 부실자산을 대부분 털었고 순현금도 2조원이 넘는다. 누구 품에 안기느냐에 따라 재계 판도가 확 바뀐다. 인수 후보자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대우조선을 ‘먹어야 하는’ 사유가 절박하다. 물밑 인수경쟁이 불꽃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거론되는 인수 후보는 포스코,GS그룹, 두산그룹,STX그룹, 현대중공업, 동국제강 등이다. 이 중 인수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며 돌진 중인 기업은 포스코,GS, 두산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해양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시너지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만 사장은 얼마 전 “컨소시엄 구성이 안 되면 단독으로라도 인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었다. 대우조선의 인수 예상가는 7조원으로 추산된다. 포스코측은 돈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은 단독 인수보다는 컨소시엄 구성을 시도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재원 동양증권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이 짝짓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철강(포스코)과 조선(현대중공업)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도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같은 철강업체간 컨소시엄 구성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포스코의 적극적 행보에 속이 타는 곳은 GS와 두산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은 “대우조선 인수 의사가 있다.”고 일찌감치 각각 공개표명했다. GS그룹은 최근 하이마트, 대한통운 등 M&A 대어(大魚)를 잇따라 놓쳤다.LG그룹에서 분가(分家)한 지 3돌을 맞았지만 이렇다 할 새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대우조선까지 인수에 실패하면 성장 정체에 직면할 수 있다.GS측은 “새 성장동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가격에 관계없이 무모하게 인수전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며 주위의 시선을 경계했다. M&A에 관한 한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두산도 이번만큼은 포스코와 GS라는 강적을 만나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M&A 전담팀 ‘CFP’가 이미 대우조선에 대한 인수 검토를 마치고 세부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두산측은 “종합 중공업그룹으로서의 위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우조선이 꼭 필요하다.”며 “매각절차가 시작되면 (인수 성공을 위한)별동대가 꾸려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사실상 공기업인 포스코가 대우조선 인수에 뛰어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세계적으로 철강회사들간의 M&A가 잇따르고 있고 해외 제철소 건설작업도 지지부진한 마당에 포스코가 왜 딴 데(조선소) 눈 돌리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업종 다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참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또 하나의 대어 현대건설도 욕심내고 있어 변수다. STX와 동국제강은 “욕심은 나지만 너무 (인수 경쟁이)과열돼 있어 무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최용규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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