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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비, 내친김에 소렌스탐까지 넘어볼까

    내친김에 소렌스탐까지 넘어볼까 박인비가 10일 미국 여자골프 메이저대회인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아니카 소렌스탐의 시즌 최다승 기록을 넘어설 지 주목된다. 메이저대회 2승 포함 시즌 4승째다. ‘골프여제 ’ 소센스탐은 2002년 혼자 11차례나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2008년 결혼을 앞두고 은퇴했다. 이 기록은 50년 전인 미키 라이트(시즌 13승) 이후 시즌 개인 최다승 기록이다. 이후 한국의 박세리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적 선수들이 여러차례 우승했지만 소센스탐의 대기록에는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멕시코 출신의 로레나 오초아가 2007년 7승을, 박세리가 2001년과 2002년 각각 5승을 기록했지만 소센스탐의 기록에는 한참 못미쳤다. 이후에도 신지애, 청야니, 스튜어트 루이스, 최나연 등이 LPGA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시즌 2~4승에 머물렀다. 반면 박인비는 LPGA 대회가 아직 절반도 치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즌 4승을 올려 기록 달성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 지금까지 13차례 경기가 치러졌고, 앞으로 15경기가 남았다. 산술적으로는 9~10승 정도 달성이 예상된다. 그러나 돌부처같은 안정감과 컴퓨터 아이언샷, 재로 잰듯한 퍼팅 능력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다. 한국낭자군단이 LPGA 투어 한 시즌 역대 최다승(12승) 기록을 경신할지도 관심거리다. 한국 선수들이 LPGA 투어에서 한 해 10승 이상을 합작한 것은 2006년(11승), 2009년(12승), 2010년(10승) 세 차례다. 기록 경신의 열쇠는 역시 박인비가 쥐고 있다. 박인비가 지금의 추세대로 한 대회, 한 대회를 정복해 나간다면 12승 기록을 가뿐히 넘길 수 있다. 또 슬럼프에 빠졌다가 올들어 컴퓨터 샷이 살아나고 있는 신지애, 올해 한차례 우승을 포함 경기때마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최운정 등은 언제든지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여기에 세계랭킹 10위권 내에 포진하고 있는 최나연(26·SK텔레콤), 유소연(23) 등이 건재해 한국 낭자군의 역대 최다승 기록 경신 가능성은 그 어느 해보다 높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절집의 재발견

    제주 절집의 재발견

    ‘당 오백 절 오백’이라 했습니다. 한라산은 물론, 제주의 마을마다 신당과 절들이 빼곡했다는 뜻입니다. 요즘엔 절집 찾기가 쉽지 않지요. 관광지 제주에 세월의 흔적이 쌓인 절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흔할 겁니다. 관음사가 대표적입니다. 근대 제주불교의 성지로 꼽히는 절집이지요. 그런데 한라산 등산로 가운데 하나인 ‘관음사 코스’는 알아도 정작 관음사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한라산 ‘아흔 아홉골’ 깊은 골짜기에서 마주한 석굴암의 기억도 여태 선연합니다. 눈 쌓인 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가는 장면은 내 나라 어디서든 흔히 봅니다. 하지만 건천이 허다한 제주에서야 어디 그런가요. 먼저 눈이 와 쌓이고, 그 뒤에 장맛비 같은 겨울비가 쏟아져야 비로소 그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지요. 눈 절반, 물 절반인 계곡에서 석굴암을 만난 건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제주 여행 중에 겨울비를 만나는 건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됐다. 지구가 따뜻해진 탓일까, 한겨울에 장대비가 내릴 때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비바람이 세찬 날 부러 제주를 찾는 이들도 있다.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방파제를 할퀴는 비바람과 파도가 전쟁 같은 치열한 풍경을 내어 주기 때문이다. 하얗게 비산하는 포말과 시커먼 현무암, 이보다 더 극명한 대비가 있을까. 바다를 경외하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에겐 외려 그게 더 제주 풍경의 본질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여우비가 분분히 날리던 날, 관음사를 찾아간다. 한라산 오르는 길에 만난 계곡들이 장관이다. 계곡을 꽉 채운 흙탕물이 우당탕하며 아래를 향해 쏟아져 내려간다. 평소 물이 없어 바싹 쪼그라들었던 계곡들 아닌가. 모처럼 제멋에 겨웠다. 오래전 제주에는 절이 많았다. 하지만 조선 숙종 때 이형상(1653~1733년)이 제주목사로 내려오면서 제주 불교계엔 ‘재앙’이 시작됐다. 숭유억불 정책에 충실했던 이형상은 절집이란 절집은 죄다 부숴버렸다. 이후 마을마다 당집은 조금씩 살아남았지만, 절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만 남게 됐다. 그 가운데 관음사는 제주 근대불교의 발상지쯤 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주 불교를 중흥 시킨 여승 안봉려관이 1908년 재창건했다. 1939년 화재로 대웅전 등을 잃고, 1949년 제주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방화로 전소되는 등 곡절을 겪기도 했다. 도깨비 도로에서 산록 도로를 따라 관음사 야영장 쪽으로 향하다 보면 길 왼편에서 방사탑 두 기가 나온다. 이게 관음사의 들머리다. 일주문에 앞서 제주 특유의 방사탑을 세운 게 제주답다는 느낌이다. 이미지로만 보자면, 관음사를 상징하는 건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세워둔 불상들이다. 저마다 자세와 표정 등이 다르다. 절집 뒤편 만불전에도 약사여래불, 미륵불 등이 수천 개 서 있다. 절집 관계자에게 크고 작은 불상의 숫자가 몇 개나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많다”란다. 만불(萬佛)이라고 꼭 불상이 만 개란 뜻은 아닐 터. 숫자에 연연하는 게 부질없다. 일주문 앞 108불상의 숫자가 정말 108개인지 확인하려던 손길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관음사는 4·3사건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였다. 하루 밤낮에도 절집을 차지한 세력이 바뀔 만큼 격전이 펼쳐지곤 했다. 그 흔적들이 절집 주변과 뒤편의 아미산 자락에 남아 있다. 관음사에서 천왕사 방향으로 10분 정도 차를 몰아가면 충혼묘지 들머리다. 그런데 이 길, 참 인상적이다. 길 양쪽에 삼나무가 도열해 섰다. 제주에 풍경 빼어난 삼나무 도로가 한 두 곳일까만, 이 길에서 만난 삼나무숲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1117번 도로 등의 삼나무숲이 높고 경쾌하다면, 이 숲은 다소 낮고 무겁다. 길 또한 좁은 데다 이리저리 휘었다. 범상치 않은 느낌이다. 한라산이 1만 8000여 신들의 좌정처라더니, 그 무게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길 끝엔 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할 때쯤 갈림길이 나온다. 곧장 가면 천왕사, 왼쪽 길은 충혼묘지 가는 길이다. 석굴암으로 향하는 탐방로는 갈림길의 주차장 가운데쯤에 조성됐다. 예서 석굴암까지는 1.5㎞ 남짓. 안내판은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 시간 이상 걸린다. 석굴암은 태고종 산하의 암자다. 1947년 창건됐다. 경북 경주의 석굴암과 이름은 같지만,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도무지 견줄 바가 못 된다. 제주 석굴암의 미덕은 찾아가는 길에 있다. 석굴암은 한라산 서북 능선, 그러니까 한라산 어승생악에서 제주 시내 쪽으로 뻗어내린 이른바 ‘Y 계곡’의 오른쪽에 터를 잡고 있다. 수많은 계곡이 밀집한 지대로 아흔 아홉골, 또는 ‘구구곡’(九九谷)이라 불린다. 석굴암 탐방로는 이리 굽고 저리 휜 아흔 아홉골짜기를 따라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며 이어진다. 탐방로 양 옆엔 적송들이 늘어서 있다. 주변을 가득 메운 제주조릿대의 푸른 빛과 잘 어울리는 색감이다. 길 바닥엔 수많은 판근들이 핏줄처럼 불거져 있다. 여기에 짙은 안개까지 끼면 딱 판타지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석굴암 가는 길은 멀다. 비 오는 날 오르자면 힘이 곱절은 더 든다. 왜 안 그렇겠나. 예까지 오는 길의 이름이 아흔 아홉골 아니던가. 석굴암의 주지 호철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아흔 아홉굽이냐고. 그랬더니 “당신 마음 속에 있는 게 아흔 아홉굽”이란다. 석굴암 탐방로를 오르다 보면 전망 좋은 곳을 몇 군데 만난다. 현지인들은 맑은 날이면 제주 해협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라 했다. 하지만 안개 닮은 구름이 잔뜩 낀 탓에 그런 복은 없었다. 제주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했다. 롯데호텔제주가 조성한 제주 최대의 야외 온수풀 ‘해온(海溫)’이다. 호텔 관계자는 기존의 야외수영장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하면서 조성 비용에만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고 전했다. 테마는 힐링과 펀(fun)이다. 수영과 온수 스파는 기본이고, 풀바와 카바나, 자쿠지, 바닥분수, 360도 입체 워터슬라이드, 건식사우나, 키즈풀, 샤워실, 탈의실 등 연인과 가족 단위 투숙객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부대시설들이 다양하게 조성됐다. 총 4채의 카바나는 고급 소파베드와 오디오 시스템, 벽난로, 커피 머신 등으로 채웠다. 야외 자쿠지도 기존 1개에서 3개로 늘었다. 자쿠지엔 천연 미네랄과 광물질이 풍부한 사해소금 입욕제를 넣어 기능성을 강조했다. 키즈풀엔 어린이 전용 워터슬라이드를 만들었다. 방수 아이패드와 MP3 이어폰도 무료로 대여받을 수 있다. 온수풀 안에 몸을 담그고 한라산 소주에 한라봉과 유채꿀을 섞은 ‘한라티니’를 마시는 재미도 각별하다. 온수풀을 둘러싼 정원과 산책로도 ‘힐링’으로 꾸며졌다. 롯데호텔제주는 ‘해온’ 오픈기념으로 다음 달 31일까지 디럭스 한라룸과 올레 트레킹 패키지 등 이벤트를 진행한다. 1577-0360. 글 사진 제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64) →가는 길 관음사는 도깨비 도로에서 산록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가면 길 왼쪽에 있다. 724-6830. 석굴암은 관음사에서 산록 도로를 따라 천왕사 방향으로 가다 충혼탑 서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충혼묘지 주차장까지 곧장 간 뒤, 주차장 가운데에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간다. 748-5335. →맛집 제주엔 돌하르방 식당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제주시 일도이동(752-7580)에, 다른 하나는 연동(749-1400)에 있다. 둘 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된장 풀어 끓인 각재기(전갱이의 방언)국과 고등어회로 입소문이 났다. →잘 곳 아일랜드 트리 하우스가 서귀포 화순의 금모래 해변 인근에 문을 열었다. 넓은 창으로는 파란 제주 바다가 가득 차고, 형제섬과 송악산, 산방산 등이 사방을 둘러쳤다. 캐나다 산 가문비나무를 건축자재로 사용해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펜션 바로 앞엔 주민들이 운영하는 야외 풀장도 조성돼 있다. 2인 1실 기준 12만~18만원. 792-8777, 010- 3179-2237.
  • [하프타임] 돌부처 오승환 삼성 잔류

    오승환(30)이 내년에도 삼성 뒷문을 책임진다. 프로야구 삼성의 송삼봉 단장은 12일 오승환과 면담한 뒤 “해외 진출에 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1년 뒤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5년 데뷔한 오승환은 내년 시즌 뒤 FA 자격을 얻는다. 그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팀을 정상으로 이끈 뒤 구단과 해외 진출에 대해 논의할 텐데 일본에 가고 싶다.”고 밝혔고 일본 언론도 이대호의 소속 팀인 오릭스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 [주말 영화]

    [주말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OBS 일요일 밤 11시 25분) 갱고 최고의 문제아 손태일은 아이큐 148의 수재지만 첫사랑 일매와의 결혼을 요구하며 작정하고 나쁜 짓을 벌인다. 이에 영달과 일매는 사람 한 번 만들어 보겠다면서, 전국 30만등 하는 태일에게 전국 3000등 안에 들면 일매를 주겠다고 공언한다.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더 말도 안 되게 덤벼든 태일은 단 2년 만에 목표를 이루고, 내친 김에 서울대 법대에까지 합격한다. 그러나 눈물, 콧물 다 흘리는 영달의 뛰어난 연기에 마음 약해진 태일은 덜컥 사법고시 합격 때까지 일매를 처녀로 지키겠다고 약속해 버린다. 그렇게 태일에게 남은 미션은 일매에게 접근하는 모든 늑대들을 타도하는 일뿐이다. 그러나 사법고시 공부하랴, 일매가 딴 남자 만나나 감시하랴, 하루 24시간이 짧기만 하다. 한편 연애가 하고 싶은 일매는 만나면 사법고시 공부만 하고 자신의 키스마저 거부하는 돌부처 태일 때문에 속이 상한다. 하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얼른 일매와 결혼할 생각뿐인 태일은 이런 일매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데….
  • 이창호 통산 1600승

    ‘돌부처’ 이창호(37) 9단이 최단 기간, 최연소로 통산 1600승을 달성했다. 이 9단은 13일 제14회 농심신라면배 예선 4회전에서 박진솔 5단과 만나 흑을 잡고 151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1986년 8월 29일 제62회 승단대회에서 조영숙을 상대로 프로 첫 승을 따낸 지 25년 11개월 만이다. 이로써 이 9단은 입단 40년 10개월 만에 1600승(533패)을 올린 조훈현(59) 9단(통산 1873승9무792패)의 기록을 14년 11개월 단축했다. 조훈현의 최연소 기록(50세 5개월)도 13년 5개월이나 낮췄다. 그는 6년 연속 다승 1위(1988년~93년)를 차지하고 통산 8차례 다승왕을 기록한 바 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서울광장] 안철수 원톱의 양면성/최용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철수 원톱의 양면성/최용규 논설위원

    돌부처 같은 안철수 교수가 민주당 대선 주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당 대표를 지낸 손학규, 당내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인 문재인 고문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좀처럼 분위기가 달궈지지 않고 있다. 정세균이 가세했고, ‘리틀 노무현’이라는 김두관도 조만간 이 대열에 합류하겠지만 안 교수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는 한 썰렁한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안철수의 정치적 무게다. 정치를 잘 모른다는 한 중년 여성은 박근혜의 유일한 상대는 안철수라고 단언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안철수란다. 안철수가 안 나오면 기권하겠다는 열성 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안 교수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아도 지지율이 새누리당 박근혜 전 대표와 쌍벽을 이루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출마를 하든 안 하든 안 교수가 확실하게 입장을 밝혀야 민주당 빅4인 ‘손·문·정·김’도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안 교수에 대한 맹목적 ‘사랑’ 이면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 불안은 과연 안 교수가 최고의 선(善)이자, 유일한 답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잔인할 정도로 혹독할 검증과정을 안 교수가 견뎌내고 통과할 수 있느냐가 첫 번째 의문이다. 안 교수가 YS(김영삼)나 DJ(김대중) 등 기성 정치인과 극명하게 갈리는 점은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일 것이다. 이런 매력은 안 교수의 최대 강점이다. 반대로 결정적 약점이라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온갖 의혹과 루머로 공격받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근거 없는 악소문을 부풀려 사실인 양 호도하는 세력이 기승을 부리지 말란 법이 없다. 흠집을 내는 게 목적이라면 진실 따위에 관심이 있겠는가. 사사건건 사법당국에 고발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속시원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선이 끝난 뒤라면 몰라도 대선 전에 진위가 가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던 이회창이 김대업의 병풍에 휘말려 쓴잔을 마셨다. 김대업의 병풍은 훗날 조작사건으로 밝혀졌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안 교수도 단단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시중에 나도는 이런저런 소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하이에나가 득실거리는 험로를 끝까지 헤쳐나갈 배짱과 강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두 번째 드는 의문이다. 더구나 이게 어디 안 교수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겠는가. 상대의 무자비한 공격과 언론의 혹독한 검증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국민의 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안 교수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백지처럼 깨끗한 이미지에 시커먼 먹물이 튀고, 진위가 가려지기는커녕 정치적 공방으로 날을 지새운다고 가정해 보자. 지금과 같은 지지율이 꺾이지 않고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가장 핵심적인 의문이다. 안 교수가 적당히 때가 묻은 정객이라면 이런 불안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안철수 원톱엔 치명적인 독이 내재돼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손·문·정·김’의 승자와 안 교수와의 결승전은 그래서 위험한 도박이다. 나올 거라면 예선부터 뛰어들어 털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민주당이나 안 교수 모두에게 중요하다. 물론 안 교수가 대선 후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손·문·정·김’ 중 누구라도 안 교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본선 경쟁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력 대선 주자들은 개인의 기량을 한껏 뽐낼 것이고, 캠프의 참모들은 지략을 짜내 주군을 옹립하려 할 것이다. 그럼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다 지난 얘기 같지만 4·11총선 패배를 복기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첫째, 편을 갈라선 안 된다. 둘째, 상대방 비방만 해선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 뜬구름 잡는 얘기는 버리고, 구체적인 정책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고, 꼭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지도자가 감동을 줄 것이다. 안 교수가 됐든, ‘손·문·정·김’이 됐든. ykchoi@seoul.co.kr
  • [프로야구] 오! 승환, 최다 구원자 227 세이브 타이

    [프로야구] 오! 승환, 최다 구원자 227 세이브 타이

    29일 대구 삼성-넥센전. 9회말 2사에서 넥센 유한준의 공을 삼성 중견수 정형식이 깔끔하게 잡으며 경기를 끝냈다. ‘끝판대장’ 오승환은 포수 진갑용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하늘을 향해 검지를 들어 보이며 멋쩍게 웃었다. ‘돌부처’의 얼굴에 잠깐 희미한 미소가 스쳤지만 그 뿐이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오승환은 4-1로 앞선 8회 2사에 마운드에 올라 4타자를 상대하며 경기를 끝냈다.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이 세이브는 특별했다. 김용수(전 LG) 중앙대 감독의 역대 최다세이브(227개)와 어깨를 나란히 했기 때문. 오승환은 368경기 만에 227세이브를 챙겨 김 감독(609경기)보다 두 배는 빠르게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그는 “별 느낌은 없다. 세이브 개수보다 블론세이브를 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초반 부진했던 삼성의 가파른 승수 쌓기가 시작된 만큼 오승환의 기록 행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사실 오승환은 ‘기록 제조기’다. 최소경기 100세이브(180경기), 세계 최연소 200세이브(334경기), 아시아 최다세이브(47세이브·2006, 2011년), 28경기 연속세이브(2011년 7월 5일 문학 SK전~2012년 4월 22일 청주 한화전)가 모두 그의 반짝이는 훈장이다. 알고도 못 친다는 빠른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마무리의 신화로 군림하고 있다. ‘라이언킹’ 이승엽도 최소경기 1000타점 기록을 세웠다. 1회말 2사 1루에서 한현희의 초구를 때려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125m짜리 투런홈런을 그려냈다. 지난 14일 대구 한화전 이후 12경기 만의 아치. 전날까지 999타점을 기록 중이던 이승엽은 역대 8번째 1000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1209경기 만의 대기록으로 심정수(은퇴·1402경기)를 뛰어넘었다. 한·일 통산 500홈런에도 2개를 남겨뒀다. 삼성은 넥센을 5-1로 꺾고, 2위 SK에 승차 없는 3위를 유지했다. 선발 배영수는 6과 3분의1이닝 동안 3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시즌 7승을 올렸지만 7회 넥센 박병호의 강습타구에 발목을 맞아 병원으로 후송, 정밀진단을 받았다. 두산은 7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선발 노경은의 호투 속에 선두 롯데를 6-1로 눌렀다. 롯데는 7연승 마감. KIA는 한화를 11-2로 완파하고 6연승, 공동 4위 두산과 넥센에 한 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장성호가 시즌 5호 겸 프로 통산 네 번째 3000타점이 된 1점포를 터뜨린 한화는 5연패 늪에 빠졌다. 문학 SK-LG전은 2회말 0-0 상황에서 비 때문에 시즌 첫 노게임이 선언됐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6)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사람의 시간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긴 세월을 살아가는 나무의 침묵은 언제나 견고하다. 역사의 침묵을 닮았다. 결코 스스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과거에 대한 관심에 기대어서야 비로소 숱한 사실들이 생명을 얻고 일어난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침묵하는 생명이지만, 그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은 마침내 나무가 세월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지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드러내게 한다. 이 땅의 큰 나무를 찾아보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의 역사를 찾아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현재의 질문들이 긴 역사를 풀어내고, 나무의 견고한 침묵도 깨뜨릴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무를 찾아야 하는 확실한 이유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절집… 오롯이 그 곁을 지키다 남도 끝자락, 진도의 임회면 상만리에는 내력이 정확하지 않은 절터가 있다. 흔히 ‘상만사지’(上萬寺址)라고 부르는 폐사지다. 한때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했을 전각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오로지 오층석탑 한 기뿐이다. 사라진 옛 절집의 이름도, 그 절을 스쳐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곳에 비구니 스님의 절집, ‘구암사’가 있다. “탑이 남아 있어서 절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절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어요. 1950년대 초반에 마을 사람들이 근처의 밭에서 돌부처를 찾았다고 해요. 그때 초가를 지어 절을 일으키고, ‘만흥사’라고 한 게 구암사의 시작이에요.” 아담한 절집 구암사의 용운(庸芸) 스님은 세월 속에 흩어진 구암사의 토막난 역사를 퍼즐 맞추듯 가만가만 꿰어 맞춘다. 그러나 빈 자리는 여전히 크기만 하다. 밭에 나동그라져 있던 돌부처 외에 절집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이 상만리여서 사라진 옛 절을 상만사라고 하는 건데 근거는 없어요. 그보다는 구암사라는 이름이 맞지않나 싶어요. 진도 향토사에는 아주 옛날에 구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 절인지는 모르죠. 그런데 이 뒷산의 바위를 마을에서 ‘비둘기 바위’라고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비둘기바위라는 뜻의 이름인 구암(鳩巖)사는 이곳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절집은 사라졌지만, 그 부침의 역사를 지켜본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비자나무다. 전하는 이야기처럼 옛 절집이 사라지기 전부터 있던 나무라면 필경 절집 앞마당, 최소한 담벼락쯤에 있던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절집의 자취가 없어 지금은 마을 당산나무, 혹은 ‘천연기념물 제111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라고 부른다. #넉넉하지 않은 시절 영양간식으로 비자나무 심어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구암사가 깃든 그 비둘기 바위와 마을 사이의 언덕 길가에 서 있는 큰 나무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옛 절과 이 나무가 일정한 관계를 가졌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절집에 주석(駐錫)한 스님이 직접 심고 키운 나무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절집의 흥망성쇠를 또렷이 지켜본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절집의 흔적인 오층석탑은 대략 고려 후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사라진 사찰의 역사는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오래됐다고 보아야 한다. 1000년쯤 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추측하는 근거다. 오층석탑에서 불과 100m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비자나무는 600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왔다. 적잖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큰 절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에 결코 모자란 세월이 아니다. 누구도 그 시절의 자취를 알 수 없지만, 나무는 필경 이 자리에서 절집의 살림살이를 빤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비자나무는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예전에는 절집의 스님들이 공들여 키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비자 열매는 영양이 풍부해서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좋은 간식거리였을 뿐 아니라, 구충제 성분까지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님들은 비자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둬서 절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장성 백양사, 고흥 금탑사, 화순 개천사 등의 비자나무 숲이 모두 그런 까닭으로 스님들이 조성한 곳이다. “비자나무에 대한 기록도 있을 리가 없지요. 나무가 있는 위치를 절집 마당쯤으로 볼 수도 있다지만, 사실 절집의 위치가 정확한 건 아니거든요. 비자나무와 옛 절과의 관계는 어떤 내용으로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12m 옹골찬 품… 마을의 쉼터이자 수호신으로 상만리 비자나무는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는 6.5m, 밑동 부분의 둘레는 7.5m 가까이 된다. 얼핏 봐서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유난히 옹골찬 수형을 가졌다. 키에 비해 굵직한 줄기는 물론이고 나뭇가지도 매우 촘촘하게 돋았으며,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바늘잎도 무성하다. 사방으로 펼친 품 또한 만만치 않다. 동서 방향으로 12m, 남북으로는 8m를 펼친 품은 무척 넉넉한 모습이다. 절집의 기억을 줄기 안 깊숙이 간직한 채 나무는 이제 마을의 정자나무로 살아간다. 나무 줄기에 바짝 붙여 놓은 평상은 십여 년째 그대로다. 나무는 마을의 쉼터이면서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매달렸다가 떨어져도 별로 다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나무라는 이야기다. 용운 스님도 한마디 덧붙인다. “비자 열매는 마을 사람들이 잘 거둬서 이용하는 모양이에요. 옛날에는 당산제도 지내고 나무 앞에서 줄다리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안 해요.” 종종 세월은 사람살이의 흔적을 송두리째 삼키곤 한다. 그러나 세월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무는 사람살이를 지킨다. 옛 절터에 살아남은 비자나무의 속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글 사진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681-1: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를 건넌 뒤 ‘진도대로’로 불리는 국도 18호선을 이용해 진도군청이 있는 진도읍까지 간다. 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5㎞쯤 가면 임회면으로 들어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2.5㎞ 더 가면 다시 진도대로와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 길을 이용해 6㎞ 가면 송월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1.5㎞ 가면 상만리에 이른다. 나무는 왼편의 마을 안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350m쯤 들어가면 있다.
  • [프로야구 700만 관중을 위하여] (하) 뜨거운 마운드 경쟁

    [프로야구 700만 관중을 위하여] (하) 뜨거운 마운드 경쟁

    지난해는 누가 뭐래도 윤석민(KIA)의 해였다. 그러나 2012년까지 기세가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아성에 도전하는 호적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초부터 윤석민은 등번호를 21번으로 바꾸고 ‘21승 도전’이란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다. 결국 17승에 그치긴 했지만 윤석민은 20년 만에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승률)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다. 일단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올 시즌 제1선발을 노리는 윤석민이 팀 타선의 지원까지 업게 되면 20승은 거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에는 핵심 전력의 줄부상으로 하반기에 연패하며 무너졌지만 KIA는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다. 선동열 감독의 특별 조련까지 더해지면 윤석민의 공끝은 더욱 가공할 위력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무릇 수성(守城)이 더 어려운 법. 에이스 류현진(한화)과 김광현(SK)이 절치부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부상과 컨디션 난조 때문에 2006년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둔 류현진은 일찌감치 개인 훈련에 들어가는 등 칼끝을 벼리고 있다. 대선배 박찬호나 김태균, 송신영 등을 영입한 것도 작지 않은 힘이 된다. 여섯 시즌을 채웠기 때문에 올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 시스템 자격을 얻는 것도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된다. 최연소 1000 탈삼진을 넘은 류현진의 분발이 기대된다. 김광현 역시 지난 시즌 4승 6패 평균 자책점 4.84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지만 올해는 진정한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벼른다. 따라서 ‘투수왕’을 놓고 벌이는 셋의 진짜 승부가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을 것이다. 여기에 ‘외인부대’ 니퍼트(두산)와 주키치(LG)가 얼마나 활약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지난해 낯선 무대에서 각각 15승과 10승을 거둔 둘은 일찌감치 재계약을 마치고 2년 차를 맞는다. 지난 시즌에 적응을 끝낸 만큼 올해는 더 나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겠고 둘 중 하나가 다승왕이 된다면 2009년 로페즈(KIA) 이후 3년 만의 영예를 안게 된다. 지난해 역대 최소 경기 및 최연소 200세이브를 달성했던 ‘돌부처’ 오승환(삼성)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시즌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그쳤던 아시아 최다 세이브(47개)를 스스로 넘어설지도 주목된다. 지난 연말 팀의 전지훈련에 앞서 괌에 도착한 오승환은 새 구종 개발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데스크 시각] 곽노현 ‘법의 정신’/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곽노현 ‘법의 정신’/이기철 사회부 차장

    서울 교육계가 패닉에 빠졌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2억원 선의 지원’ 사건 탓이다. ‘곽 교육감의 사퇴가 최선’이라느니, ‘표적수사이니 물러나서는 안 된다.’느니 갑론을박도 만만찮다. 수도 서울의 공교육을 책임진 교육감 리더십이 큰 타격을 받았다. 2학기 교육행정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법적 매듭 이전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곽 교육감의 2억원 선의 지원 사건에서 큰 줄기의 팩트 두 가지는 이렇다. 지난해 5월 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가 중도 사퇴함으로써 당시 곽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졌다. 또 한 가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국민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한다. 두 후보 단일화 논의가 있었고, 곽 후보의 라이벌이었던 박 후보가 선거 레이스를 중도하차했다. 결과적으로 곽 후보가 건넨 2억원은 석연찮다. 부적절한 처신을 했기에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교육비리를 뿌리 뽑아야 하는 교육감이기에 더욱 그렇다. 곽 교육감은 그러나 “떳떳하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교육감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한다. 사퇴 여론에 돌아앉은 돌부처 격이다. 법학자인 그의 해명은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는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박 교수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두번이나 출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빚을 져 궁박해 모른 척할 수 없었다.”며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 2억원의 돈을 선의로 지원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한마디로 박 교수의 딱한 사정을 인정상 외면할 수 없어 돈을 줬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대가성이 없어 법적 책임을 질 일도,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일도 없다는 항변으로 들린다. 대가성 여부야 사법당국이 판단하겠지만 선의로 돈을 전달한 과정치고는 복잡하다. 곽 교육감은 “드러나게 지원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선거와는 무관한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것과 제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돈 전달과정을 철저히 숨기고 싶어했다. 곽 교육감은 친구 강모 교수를 통해 박 교수의 지인 최모씨에게 현금으로 전달했다. 최씨는 다시 박 교수의 동생에게 인터넷 송금을 했고, 동생은 형인 박 교수에게 이를 전달했다. 곽 교육감은 “법의 특징과 수단은 합법성에 있고, 목적은 인간다운 행복한 삶”이라면서 “인정을 상실하면 몰인정한 사회가 된다. 제가 배우고 가르친 법은 인정이 있는 법이자 도리에 맞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곽 교육감은 “(딱한 사정에 있는 경쟁 후보자에게 선의로 2억원을 전달한 것을) 후보 매수행위로 봐야 하나요.”라고 반문한다. 곽 교육감이 보여준 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실정법과는 배치된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에서 사후에라도 돈이 개입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정법은 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였던 자에게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다시 “개혁 성향인 자신에게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표적수사”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찰에 정치검찰이란 색깔을 덧칠한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더욱 철저하게 사실관계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던 지난달 24일 곽 교육감은 “투표 거부는 정당한 권리행사의 방법”이라며 나쁜 투표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국민들은 국회의원 선거는 나쁜 후보들 가운데 ‘덜 나쁜 후보’를 뽑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나쁜 선거이고, 그래서 투표를 거부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법학자이자 교육자인 곽 교육감에게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느껴진다. chuli@seoul.co.kr
  • [프로야구] ‘돌부처’ 200S

    [프로야구] ‘돌부처’ 200S

    언제나처럼 표정은 덤덤했다. 다소 느린 듯한 걸음걸이도 여전했다. 6-3으로 삼성이 앞선 8회 초 2사 1루 상황. KIA 공격이었다. 세이브 요건은 충족됐고, 삼성 오승환이 천천히 마운드로 올라왔다.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최소경기 200세이브 기록 달성이 걸린 등판이었다. 그런데도 평소와 똑같았다. 오승환의 얼굴에선 긴장도 흥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할 일을 하러 왔다는 표정. 오승환은 그런 투수다.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안치홍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다. 간단히 이닝을 마무리했다. 9회에도 특유의 ‘돌직구’를 묵묵히 뿌려댔다. 김상훈을 삼진, 이종범을 3루 땅볼, 이현곤을 1루 직선타로 막아 냈다. 7-3으로 삼성이 승리했다. 순간 대구구장엔 폭죽이 터졌다. 시즌 35세이브째. 개인 통산 200세이브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12일 대구 KIA-삼성 전에서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최소 경기 200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오승환은 1999년 김용수(전 LG), 2007년 구대성(전 한화)에 이어 통산 세 번째로 200세이브를 기록했다. 만 29세 28일의 나이, 프로 334경기 만에 기록을 달성하면서 구대성이 갖고 있던 최연소(37세 11개월 12일) 최소 경기(432경기) 200세이브 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웠다. 최소 경기 200세이브 세계기록이기도 하다. 일본 프로야구(NPB) 최소 경기 기록은 사사키 가즈히로(전 요코하마)가 가지고 있다. 370경기 만에 달성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조너선 파벨본(보스턴 레드삭스)이 359경기 만에 200세이브를 기록했다. 다만 최연소 200세이브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2008년 9월 2일 세운 26세 7개월 26일에 못 미친다. 지난 2005년 데뷔한 오승환은 그해 10승 1패 16세이브 방어율 1.18로 신인왕이 됐다. 2006년엔 47세이브로 1994년 정명원(전 태평양)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40세이브)을 경신했다. 2005년엔 일본 주니치 이와세 히토키가 세웠던 NPB 한 시즌 최다인 46세이브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후 2007년엔 40세이브로 사상 첫 2년 연속 40세이브를 돌파했고 2008년에도 39세이브로 구원왕 3연패에 성공했다. 2009년과 지난 시즌엔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올 시즌 다시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사상 첫 시즌 50세이브도 꿈은 아니다. 이날 기록 달성 뒤엔 ‘돌부처’ 오승환도 잠깐 흔들렸다. 폭죽이 터지는 동안 살짝 눈시울이 불거졌다. 오승환은 “대기록을 세워 기분이 좋지만 나 때문에 안지만이 2타자만 잡는 등 동료의 희생이 있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300세이브, 400세이브까지 가도록 열심히 하겠다. 마무리도 롱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화-두산(대전), LG-롯데(잠실), SK-넥센(문학)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스타 고릴라 ‘고리롱’ 명복을 빕니다

    스타 고릴라 ‘고리롱’ 명복을 빕니다

    1968년 아프리카 땅에서 머나먼 한국으로 건너왔다. 5살쯤에 과천 서울동물원의 전신인 창경원에 터전을 잡고 외지 생활을 시작했다. ‘꽥, 꽥’ 소리를 지를수록 관람객들은 좋아서 박수를 쳤다. 괴롭히는 관람객이 있으면 불러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다가도, 살며시 다가가 흙을 던지고 도망가는 장난기도 있었다. 그만큼 머리도 좋다. 서울동물원의 스타 ‘고리롱’이 아련한 추억을 남긴 채 지난 17일 오후 8시 10분 결국 눈을 감았다. 향년(?) 49세. 야생 롤런드고릴라의 수명이 30~40년인 점을 감안하면 고리롱은 사람 나이 90~100세의 천수를 누린 셈이다. 동물원 스타로서 특별 대접을 받으며 ‘코리안 드림’을 일궈낸 듯하다. 하지만 남모를 아픔도 많았다. 동물원의 척박한 아스팔트 바닥을 견디지 못해 양쪽 발가락을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2004년 41세의 나이에 아내 ‘고리나’와 뒤늦게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나이 든 탓인지, 성격 차 때문인지 자식을 두지 못했다. 멸종 위기인 롤런드고릴라의 번식을 위해 고리롱 2세는 절실했다. 지난해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고리롱 커플의 짝짓기를 위해 ‘실버 리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고릴라들의 짝짓기 비디오인 ‘고릴라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발기 부전 치료제도 제공했다. 하지만 고리롱은 ‘돌부처’였다. 이따금 고리나가 애정 공세를 해도 끄떡하지 않았다. 사육사들은 꿈을 접었다. 지난달 20일 고리롱의 낌새가 이상했다. 걸음을 비틀거리더니 10일부터는 일어나질 못했다. 사육사와 수의사는 24시간 비상 대기에 들어가며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고리롱의 영욕(榮辱)은 여기까지였다. 서울동물원은 2월 한달을 고리롱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고리롱 2세를 위해 생식기를 따로 떼어내 정자를 확보한 뒤 고리나와의 인공수정도 추진한다. 또 표피와 골격은 박제 처리하고 8월쯤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고리롱은 가죽과 이름을 모두 남기게 된 셈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서울대공원 죽은 고릴라 고환 연구하는 이유는?

    서울대공원 죽은 고릴라 고환 연구하는 이유는?

    서울동물원이 최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로랜드고릴라 ‘고리롱’(♂·1963년생)의 대(代)를 잇겠다고 나섰다. 죽은 고릴라의 생식기에서 정자를 채취해 부인 ‘고리나’(♀·1978년생)에게 인공수정을 하겠다는 것.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같은 일로 들리겠지만, 불가능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대공원의 입장이다.●10억짜리 고릴라 할아버지의 임종  22일 서울동물원에 따르면 국내 최장수 로랜드고릴라인 고리롱은 이달 17일 오후 8시 10분, 만으로 48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의 생체 노화에 대입하면 80∼90세에 이르는 할아버지였다. 나이에는 장사가 없었다.  올들어 고리롱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제대로 걷지도, 좋아하는 과일을 삼키지도 못하는 상태가 됐다. 동물원 측은 지극정성으로 고리롱을 살폈지만 결국 눈을 감았다. 고리롱은 1968년 아프리카에서 창경원 동물원(서울동물원의 전신)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후 40년 넘게 동물원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적인 희귀 동물인데다 마리 당 가격도 10억원에 육박해 수천 마리가 넘는 전시동물 가운데서도 VIP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고리롱에게 후사가 없다는 건 동물원의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로랜드고릴라는 보통 4년에 한 번 새끼를 배는 데다 세계적으로 500여 마리 밖에 없어 짝짓기 상대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동물 포르노 부터 비아그라까지 눈물겨운 사투다행히 우리나라에는 고리나라는 암컷 로랜드고릴라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억지로 맺어 준 인연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2000년 이후 두 마리는 한방 살림을 차렸지만 죽기 전까지 ‘속궁합’을 단 한번도 맞춰보지 못했다. 동물원 관계자는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저 데면데면하기만 했다.”면서 “부부보다는 오누이나 옆집 아저씨로 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사육사들은 원인이 ‘돌부처’ 같은 수컷 고리롱에게 있다고 봤다. 비장의 카드로 동물원 측은 동물 포르노라고 불리는 ‘짝짓기 비디오’를 보여줬다.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는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면 성욕을 느낀다는 학설에 따른 것이었지만 여전히 고리롱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좋다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사료에 섞어줘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들어서는 부부의 서열까지 바뀌었다. 초반에는 고리나가 고리롱에게 다소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고리롱이 나이가 들어 털이 숭숭 빠지는 늙은 고릴라로 변하자 고리나의 애정도 급격히 식었다. 동물원 관계자는 “최근 고리나는 고리롱보다는 남편의 먹이를 더 좋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죽은 고리롱 정자 채취해 체외수정 계획 中  결국 동물원은 고리롱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2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대신에 고리롱이 죽으면 정자를 채취해 암컷 고리나의 난자에 체외수정한 후 자궁에 착상시키기로 했다.  서울동물원과 차병원 측은 현재 고리롱 고환에 정자가 남아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정자가 있다고 확인돼도 워낙 나이 들어 사망했기 때문에 건강성 등 문제가 있어 성공이 쉽진 않을 것”이라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볼 것이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국내 수의학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형욱 서울대공원 홍보팀장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지만 40년 넘게 동물원과 함께 해온 고리롱의 자식을 안아보고 싶은 것이 모든 사육사들의 소원”이라고 했다.  한편 고리롱의 표피와 골격은 박제로 만들어져 오는 8월 일반에 공개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바둑 이창호 22년만에 무관

    ‘돌부처’ 이창호가 21년 6개월 만에 무관(無冠)으로 떨어졌다. 국수타이틀 보유자인 이창호 9단은 14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54기 국수전 도전 5번기 제4국에서 도전자 최철한 9단에게 흑으로 98수 만에 불계패했다. 지난달 12일 1국에서 이겼지만 2, 3국에서 연달아 패한 이창호는 배수의 진을 치고 최근 유행하는 중국식 포석을 들고 나왔다. 전투가 강한 상대를 의식해 처음부터 차분하게 실리를 벌어들이며 집에서 우위를 지켜나가는 작전을 펼쳤다. 최철한도 좌상귀를 중심으로 상변일대에 큰 세력을 형성해 나갔고 바둑은 전체적으로 두꺼운 백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상황이 역전되자 이창호는 하변에서 흘러나온 대마사냥에 승부를 걸었다. ‘기다림의 바둑’이라는 이창호가 최철한식 ‘올인 작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직선의 공격은 실패했고 우변이 파괴되는 큰 손해를 입은 이창호는 결국 돌을 던지고 말았다. 이창호는 종합전적 1-3으로 국수타이틀을 최철한에게 넘겼다. 입단 3년을 갓 넘긴 14세인 1989년 8월 8일 제8기 바둑왕전에서 첫 우승하며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을 세운 뒤 35세까지 한번도 왕관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한국 바둑의 상징이었던 이창호에게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등장인물 꾸부정 지금 막 해고된 초보 해고자. 40대 후반. 키 크고 꾸부정하다. 대머리 해고된 지 1년이 넘은 베테랑 해고자. 40대 후반. 키 작고 대머리다. 단발 꾸부정의 아내. 40대 초반 파마 대머리의 아내. 40대 중반 *연출에 따라 남편들이 부인들의 역할을 겸하는 2인극이 가능하다. ●시 간 현대 ●무 대 놀이터. 놀이터를 구체적으로 꾸밀 필요는 없다. 그네 두 개만으로도 연출이 가능하다.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으면 좋다. #1 해가 질 무렵의 저녁, 놀이터. 양복 차림의 남자가 힘없이 놀이터로 걸어 들어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보아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하다. 꾸부정한 이 남자, 그네에 주저앉는다.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어색하게) 여…… 여보… … 나 오늘, 해, 해, 해고……. 고개를 흔들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여보, 훌쩍, 나 오늘 해고당했어. 머리통을 때리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호탕하게 웃으며) 사랑하는 여보! 나! 오늘 짤렸어! 멋지지? 하하하!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는다. 한참을 그렇게 쥐어뜯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히 일어나 열정적인 독백을 시작한다. 꾸부정이 열심히 말하는 동안, 양복 차림의 대머리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자기 상상에 빠진 꾸부정은 대머리를 눈치채지 못한다. 꾸부정 여보. 우리가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었구나. 단칸방으로 시작해서 전세를 거쳐서 우리 집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어. 비록 평수는 작지만 우리 집이라는 게 중요하지. 애들도 건강하게 잘 컸어. 얼마 안 있으면 큰애는 대학에, 작은애는 고등학교에 가겠지. 이 정도면 우린 잘 산 거야 그렇지? 당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니? 뭐라고?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고? 십오 년을 변함없이 회사에 다녀주어서 고맙다고? 때론 가기 싫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을 텐데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아이, 당신도 참 부끄럽게…… 뭐라고? 이제 나이도 먹고 간도 안 좋을 텐데 생각 같아서는 한 몇 년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이럴 수가,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정말 고마워 여보! 하하하하……말이 나와서 말인데 여보……사실……내가……오늘……회사에서. 대머리 (불쑥) 소용없을 겁니다. 꾸부정 (화들짝)네 넷? (돌아본다) 아니, 언제부터 거기? 대머리 죄송하군요.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닙니다만. 꾸부정 괘 괜찮습니다. 그런데 방금……소용없다고……. 대머리 (단호) 네, 소용없습니다. 불쌍하게 말하든 호탕하게 말하든 부드럽게 말하든 소용없습니다. 해고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부인께서는 엄청난 쇼크를 받으실 겁니다. 부인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휘청거리거나 털썩 주저앉거나 뒤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부인이 건강하신가요? 꾸부정 아……아니요, 혈압이 조금. 대머리 혈압이라, 뒤로 넘어가겠군. 꾸부정 새……생각해보니 골다공증도.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겠군. 꾸부정 얼마 전부턴 심장이 답답하다고.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진 다음 호흡 곤란을 일으키겠군. 꾸부정 뭐……뭐라구요! 대머리 집이 몇 층이죠? 꾸부정 시……십오층인데? 대머리 완벽하군요. 해고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선생의 부인은 혈압이 높아져서 뒤로 넘어지고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진 다음, 심장 이상으로 호흡 곤란을 일으킬 겁니다. 놀란 선생은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혈압과 뼈와 심장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거든요. 우물쭈물하다가 선생님은 119에 전화를 하겠죠. 119 요원들은 잽싸게 아파트에 도착하지만 선생님의 집은 십오층입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있군요. 요원들이 계단을 뛰어올라 옵니다. 일층 이층 삼층 사층 선생의 부인은 점점 호흡이 가빠집니다. 오층 육층 칠층 더더욱 가빠집니다. 팔층 구층 부인의 의식이 점점 없어집니다. 십층 십일층 선생이 말합니다. 여보, 조금만 참아. 십이층 십삼층 선생이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여보, 제발 조금만 더 참아. 그렇게 십사층을 지나고 십오층에 도착해 마침내 선생의 집으로 왔을 때 선생의 부인은 이미……. 꾸부정 (이야기에 몰입해 있다가)아……안 돼! 안 돼! 여보오! 꾸부정, 털썩 쓰러진다. 대머리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는 없겠죠. 해고는 해고니까요. 이왕이면 부인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119가 바로 올 수 있는, 뒤로 넘어가도 뼈가 부러지지 않을만한 장소에서 하시죠. 부드러운 모래라든가……이 놀이터가 딱이로군요. (다시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한참의 정적. 꾸부정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죠? 대머리 사실 저도 해고잡니다. 꾸부정 동업자…… 아니…… 동반자셨군요. 대머리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꾸부정 고참…… 이시네요. 혹시……선생님 부인께서도 뒤로? 대머리 아니요. 꾸부정 뼈가? 대머리 전혀. 꾸부정 호흡 곤란이라든가. 대머리 천만에요. 멀쩡합니다. 멀쩡함을 넘어 건강하죠. 김치찌개에다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 다음, 남은 찌개를 밥통에 넣고 비벼먹으니까요. 꾸부정 ……대단하군요. 대체……비결이……. 대머리 간단합니다. 해고됐단 얘기를 안했으니까요. 꾸부정 그, 그럼? 대머리 계속 다니는 줄 압니다. 꾸부정 아니 그게 일 년 넘게 가능한가요? 대머리 보통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하지만 선생님은? 대머리 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영특, 기특,똑똑, 비범이란 말을 달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머리가 좋았죠. 꾸부정 (대머리의 머리를 한참 쳐다본다) 대머리 지금, 대머리 주제에 머리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어쨌든, 저 정도의 두뇌라면 충분히 속이는 게 가능합니다. 분명한 원칙 규칙 법칙만 확립한다면 말이죠. (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도 그런 원칙 중의 하납니다. 퇴근시간 여섯시, 전철 타고 내리면 여섯시 삼십분, 역 앞에서 버스 타고 동네까지 오면 여섯시 오십분, 동네에서 아파트까지 오는 데 여섯시 오십오분, 아파트에서 우리 집까지 오면 딱 일곱시, 그렇지만 시간을 너무 딱 맞춰 오면 이상하니까 적당하게 일곱시 삼분 정도……마침 지금이 일곱시 삼분이군요. 더 늦으면 어색합니다. 그럼 이만. 대머리, 일어나서 가려고 한다. 꾸부정 (벌떡 일어나며) 자……잠시만요. 대머리 ……. 꾸부정 저한테도 그……원칙 규칙 법칙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대머리 (위아래로 훑어보며) 딱 보니 보통 사람이시군요.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앞을 막아서며) 부탁드립니다.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꾸부정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대머리 미안합니다. 늦으면 의심합니다. (가려고 한다) 꾸부정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며) 제발요,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 집사람이 뒤로 넘어가고 뼈가 부러지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사람은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랑……결혼을 해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일분일초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무릎 꿇으며) 허락하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무릎 꿇은 꾸부정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대머리. 꾸부정, 점점 다리가 저려온다. 대머리 다리 저리죠? 꾸부정 ……조금. 대머리 이쯤 되면 좀 봐주지 저 대머리 진짜 독한 놈이다,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요? 대머리 다리 저리면,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아……아닙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대머리 괜찮습니다.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그럼……조금만 꼼지락을. 꾸부정, 슬며시 꼼지락거린다. 대머리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이 꽤 지났군요. 어중간한 시간입니다. 지금 들어가면 뭔가 부조리합니다. 이럴 때는 회식을 한 것처럼 아예 늦게 들어가는 게 좋은 방법이죠. (전화를 건다) 나야, 별일 없지? 부장님이 딱 한잔만 하자고 하시네. 당신도 알잖아 부장님이 회사일 힘들면 나한테 털어놓는 거. 일찍 갈 테니까 밥은 먼저 먹어. (전화 끊자마자 가방에서 반병 정도 남은 소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신다) 회식이라고 했기 때문에 입에서 술 냄새가 나야 됩니다. (오징어 다리를 꺼내 우물우물 씹는다) 술 냄새만 나면 이상하니까요. 자,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볼까요? 꾸부정 (기쁨) 저……정말이십니까? 대머리 시간이 없으니까 3단계로 요약 학습을 하죠.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꾸부정 (차렷 자세로) 옛! 대머리 가장 중요한 1단계는, 변화입니다. 꾸부정 변화? 대머리 많은 해고자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대부분 들킵니다. 왜일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숨을 쉰다든가, 소파에 푹 주저앉는다든가, 밥 먹다가 숟가락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든가, 밤이 깊도록 식탁에서 소주를 마신다든가, 아들한테 사립대 말고 국립대로 가는 건 어떠냐고 한다든가, 잠자리에서 등을 돌린 후 웅크리고 잔다든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흐느낀다든가. 이런 변화들이 해고를 들키는 가장 큰 이유죠. 꾸부정 (감탄) 그렇군요. 대머리 변화되지 않는 것. 일상적인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꾸부정 (감탄의 연속) 으음……. 대머리 이론만 가지고는 감이 안 옵니다. 실전훈련을 해보죠. 이 놀이터가 집이고 제가 부인이라고 설정을 해봅시다. 선생은 회사 일을 마치고 막 퇴근한 상탭니다. 바깥에서 벨을 눌러보세요. (꾸부정이 멍하니 있자) 시간 없습니다. 빨리. 꾸부정 (얼떨결에) 예…… 옛! (바깥으로 달려 나가) 띵동! 대머리 (부인 흉내)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대머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풉……. 대머리 ……. 꾸부정 그게……집사람이 대머리라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웃겨서……. 대머리 ……. 꾸부정 죄……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아, 먹었어. 대머리 (손을 잡으며) 고생 많았지? 꾸부정 …… 흐흑. (흐느낀다) 대머리 뭡니까? 왜 울죠? 꾸부정 (흐느끼며) 집사람이 손을 잡아주니까 갑자기 미안하고, 고생만 시킨 것 같고, 젖은 손이 애처롭고……. 대머리 어허, 이러니까 들키는 겁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세요. 돌부처처럼! 꾸부정 네……넷! 돌부처! 다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과장되게) 밥? 먹었지! 아주 많이! 대머리 (손을 잡으며) 별일은 없었어? 꾸부정 (더더욱 과장되게) 별일은 무슨, 평소랑 또오오옥 같았어 하하하하! 대머리 잠깐, 왜 이렇게 들떠 있죠? 회사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요?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월급날입니까?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부인 생일인가요? 꾸부정 아니요……별일 없었는데 대머리 그런데 왜 그렇게 오버를 합니까? 별일 없었는데 그렇게 오버 하면서 별일 없었다고 하니까 마치 별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꾸부정 아……거기까지는 차마. 대머리 자, 눈을 감으세요. 상상을 해봅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반복적인 회사의 하루,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고 정리해고의 소문이 뒤숭숭하게 들려오고, 선생은 그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퇴근을 합니다. 지하철이 붐빕니다. 버스가 막힙니다. 심신이 지쳐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그 상황에서 초인종을 누릅니다. 띵동! (부인 목소리) 당신 왔어? 별일 없었지? 꾸부정 (상상하다가 정말 지친 듯, 무심하게) 뭐, 똑같지 뭐. 대머리 나이스! 그겁니다! 하니까 되잖아요? 꾸부정 아? 정말? 정말 되네? 환호하는 꾸부정. 대견한 듯 지켜보는 대머리. 대머리 (느닷없이)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재빨리)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능숙하게)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완전 능숙) 뭐, 똑같지 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대머리. 대머리를 부둥켜 안는 꾸부정.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2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초조한 듯 그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상하게도 잠옷 차림. 그의 발밑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들. 대머리가 체육복 가방을 들고 놀이터로 들어온다. 그네에 타고 있는 꾸부정을 의식 못한 채 양복바지와 윗도리를 벗는다. 아아, 그 속에 입고 있는 축구 유니폼. 대머리 (부인에게 전화하는 듯) 나야. 사내 축구대회가 이제 끝났어. 오늘은 두골밖에 못 넣었어. 부장님은 후보였지 뭐. 밥?……부장님이 같이 먹자고는 했는데…… 정 그렇다면 집에서 먹지 뭐.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모래밭에 뒹굴며 유니폼을 더럽히는 대머리.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꾸부정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대머리 뭐……뭡니까? 꾸부정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대머리가 꾸부정을 잡아채어 그네 밑으로 숨는다.(숨어질 리가 없으니 웃기다) 대머리 오랜만?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이라구요? 꾸부정 오랜만은……아니네요. 대머리 이 놀이터는 제가 찜했으니까 다른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꾸부정 그건……알지만. 대머리 대체, 40대의 못생긴 남자 둘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는 게 주민들이 봤을 때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일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방금, 솔직히 이 대머리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는데 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쌓여있는 담배를 본다) 맙소사, 이 아까운 담배. 이 담배값이면 김밥이 두 줄이거늘…… 왜 이런 비행을 일삼는 겁니까? 혹시…… 걸린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세상에, 하루 만에 걸리다니……시키는 대로 안 했죠? 꾸부정 아…… 아닙니다. 배운 그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변수가 있었어요. 대머리 변수라니요? 꾸부정 스승님께 배운 1단계를 계속 되뇌면서,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대머리 순간? 꾸부정 첫째 둘째가 쪼르륵 달려오더라구요. 그러고는 갑자기……. 대머리 갑자기? 꾸부정 아빠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첫째 놈이 어깨를 주무르고 둘째 놈이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러면서 .(갑자기 목이 멘다) 대머리 세상에……본인 생일인지도 몰랐나요? 꾸부정 저는 집사람이랑 애들이랑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랑 부장님 상무님 전무님 사장님 생일밖에 모릅니다. 대머리 ……. 꾸부정 자식들이 생일노래를 불러주는데 어떤 아빠가 목이 안 멥니까. (흐느낀다) 대머리 잠깐, 이상하군요. 선생 말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은 자녀들이 생일을 챙겨줄 때 웁니다. 자녀들의 생일 축하에 감동한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운다. 이건 튀는 게 아닌데? 평범한 건데? 꾸부정 조용히 운 게 아니라……. (갑자기 바닥에 뒹굴며 통곡한다) 대머리 음 ……그렇게 울었군요. 꾸부정 (끄덕이며 계속 통곡) 대머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나 할 법한 울음을 생일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꾸부정 (더 크게 통곡) 대머리 가족들은 가장의 뜬금없는 대성통곡에 당황했을 테고. 꾸부정 (그야말로 대성통곡) 대머리 그래서……그 다음 행동은? 꾸부정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도망치듯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대머리 도망치듯 이라, 이런. 꾸부정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안방 문을 잠그고. 대머리 맙소사. 꾸부정 밖에서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다가 . 대머리 하느님. 꾸부정 눈을 떠보니 아침이더군요. 대머리 ……부인은? 꾸부정 ……거실에서. 대머리 ……. 꾸부정 눈을 뜨자마자 너무 당황스러워서……몰래 집을 나왔습니다. 대머리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더군다나……잠옷 차림. 꾸부정 공원에 계속 숨어 있다가 시간 맞춰서 나온 겁니다. 스승님…… 저 어쩌죠?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했거늘. 꾸부정, 흐느낀다. 대머리,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천천히 축구 유니폼을 벗는다. 속옷 차림으로, 꾸부정에게 축구 유니폼을 건네는 대머리. 대머리 회사원인 남자가,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체육대회를 했다면 알리바이가 생기죠. 입으세요. 꾸부정 ……하지만……스승님도……. 대머리 저는…… 심판 봤다고 하겠습니다. (가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목에 걸며) 이건……다음 달에 쓸 거였는데……. 꾸부정 이 은혜……잊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대머리 들어가자마자 아버님 사진을 꺼내세요. 꺼내자마자 사진 부여잡고 우세요. 어제 선생은, 돌아가신 아버님 때문에 울었던 겁니다. 꾸부정 (경이로움) 과연……스승님은……. 대머리 이제, 뒹구세요! 꾸부정, 열심히 모래바닥에 몸을 뒹군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3 불이 켜지면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놀이터에 서 있다. 그녀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다. 단발 (냉랭하게) 여보, 솔직히 말 안 하면 나, 집 나갈 거야……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울먹이며) 당신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빨리 말해?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화통하게) 호호호호! 괜찮아 여보! 딱 보니까, 짤렸네? 호호호호!! 힘없이 주저앉는 단발머리.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차분하게 독백을 시작한다. 단발머리가 독백을 하는 동안 파마머리를 한 여성이 조용히 들어온다. 그러고는 옆 그네에 앉아 벼룩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단발 (이성적으로) 여보, 나 당신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거야. 당신도 알겠지만 우린 부부야. 부부가 뭔데? 비밀이 없는 게 부부야. 내가 열을 셀 동안 당신이 끝까지 비밀을 말 안 해준다면 나……집 나갈 거야. 이게 당신의 마지막 기회야.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넷……. 파마 (불쑥) 대답 안 할 거예요. 단발 (화들짝) 네 넷? 파마 그쪽 아저씨한테 짤렸냐고 추궁해도 대답 안 할거라구요. 단발 ……. 파마 오히려 추궁하면 추궁할수록 그쪽 아저씨는 위험해질 거예요. 단발 위험해……진다구요? 파마 남편 성격이? 단발 조금……소심해요. 파마 소심하다라……열을 세자마자 바로 집을 뛰쳐나가겠네. 단발 약간 다혈질이기도. 파마 다혈질이라……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릴 수도 있겠네. 단발 조금 고전적인 면도. 파마 고전적이라……고전적으로 약국마다 돌면서 수면제를 살 수도 있겠네. 단발머리, 비틀거리다가 그네에 주저앉는다. 파마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뛰쳐나가면 잡으면 되고 옥상 문은 잠가놓으면 되고 약 먹어도 응급실이 있으니까. 그래도……상처는 남겠죠. 돈 없어도 살지만 자존심 없으면 못사는 게 남자니까. (일어나며)그럼 이만. 단발 저……저기……. 파마 ……. 단발 어떻게……그렇게……잘……. 파마 우리 아저씨도 짤렸거든요. 그것도 1년째. 단발 그쪽 아저씨가 혹시……뛰쳐나가셨나요?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옥상에서?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약을? 파마 전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건조하고, 재미없고, 대머리고. 단발 그게 어떻게 …… 가능하죠? 파마 모르는 척 했거든요, 해고당한 걸. 단발 모르는 척……그게……그렇게 쉽게……. 파마 평범한 주부들은 안 돼요. 어느 정도 비범해야만 가능하죠.(시계 본다)늦었네요. 잠시 후면 우리 아저씨가 이 놀이터로 올 거예요. 항상 여기 들렀다가 시간을 맞춰서 퇴근한 척하거든요. 파마머리, 벼룩시장을 챙겨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단발 사모님! 파마 ……. 단발 저도……저도 비범하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파마 일반 주부가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단발 (무릎 꿇으며) 부탁이에요, 사모님. 저희 남편이 때때로 소심하고 때때로 한심하고 때때로 답답하기는 하지만……좋은 사람이에요. 오로지 집이랑 애들이랑 저밖에 모르는……그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약을 사러 돌아다니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사람이 계속해서 맘 편히 집으로 오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무릎 꿇으며) 부탁드려요! 한동안의 정적. 파마 제자로 받아주면……가끔 소금 설탕 간장 같은 거 빌려줄 수 있어요? 단발 그럼요! 파마 맛있는 반찬 하면 나눠줄 수도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그쪽 애들 통닭이나 피자 시켜주면 우리 애들도 불러 먹일 수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제자님이 그렇게 해주면 나도 제자님한테 그렇게 해주겠어요. 서로 서로 나눔으로써 감소된 경제력을 최대한 이겨내는 거예요. 단발 방금, 제자라고? 파마 그래요. 제자로 받아주겠어요. 단발 (큰절) 스승님! 파마 (대머리에게 전화하는 것일까) 여보, 퇴근하는 중이지? 미안한데 올 때 계란 좀 사다줘요. 동네 슈퍼 말고 꼭 유기농 파는 데로 가서, 그래 큰길가에 있는, 고마워요. (전화 끊는다) 우리 아저씨가 놀이터로 오는 시간을 지연시킨 거예요. 수업을 해야 하니까 단발 그런 깊은 뜻이! 그럼 저도 전화할까요? 파마 비싼 거 말고, 계란이나 당근처럼, 싸면서도 깐깐하게 골라야 하는 걸로, 그래야 남편에게 부담이 안 가면서 시간도 벌어지니까. 단발, 꾸부정에게 열심히 전화한다. 파마, 대견하게 지켜본다. 통화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두 사람. 파마 상태 체크부터 해보죠. 그쪽 아저씨가 해고당했을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된 이유는? 단발 그게……집에 왔을 때만 해도 평소랑 똑같았어요. 별일 없었냐고 물어보니까. 파마 “뭐, 똑같지 뭐.” 라고 했죠? 단발 (놀란다) 그걸 어떻게? 파마 그게 1단계니까요. 단발 그런데 그날이……남편 생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노래를 불러줬어요. 그런데. 파마 그쪽 아저씨가 한참을 가만있다가 대성통곡을 한 거죠? 단발 맞아요! 파마 그러다 울먹이면서 안방으로 뛰쳐들어갔을 테고. 단발 맞아요! 파마 문을 잠가놓고 밤새 안 열어주다가 다음 날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더니 아버님 사진을 꺼내놓고 울지는 않던가요? 단발 맞아요! 그것도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님을……. (흐느낀다) 파마 분석을 해보니, 짤린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오는 증상이네요. 지금이 가장 위험할 때에요. 걸릴까 말까 말할까 말까 집에 들어올까 말까를 가장 고민할 때죠. 단발 그……그러면……어떻게? 파마 제자님이 실력을 발휘할 때인 거예요 일명 ‘모른 척’의 실력을. 단발 모른 척의 실력? 파마 생각해봐요. 남편들이 “아, 걸릴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될까요? 단발 글쎄……. 파마 바로 ‘눈빛’이에요. 단발 눈빛? 파마 가장들이 고달프고 괴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이 뭘까요? 그건 바로 가족들의 눈빛이에요.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눈빛. 그럴 때 가장들은 힘을 얻는 거예요. 단발 아! 그렇다면, 앞으로 그 눈빛을 더 열심히 보내주면 되겠네요? 파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건 그 사람들이 ‘일’을 할 때잖아요. 단발 ……. 파마 지금은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태죠. 일을 못 구해서 미안하고 돈을 못 버니까 미안하고, 그런 가슴 아픈 상태에서 집에 들어왔는데 가족들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겠어요? 단발 (서서히 깨달음을 얻는다) 아아……. 파마 애들이 노래를 불렀을 때 그쪽 아저씨가 왜 대성통곡을 했는지 알겠죠? 단발 (깨달음) 이제야 알겠습니다. 스승님. 파마 그렇기 때문에 그 1단계가 바로 ‘눈빛 돌리기’ 인 거예요. 단발 눈빛 돌리기! 파마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 봐요. 남편이 퇴근한 척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대꾸를 해 보세요. “여보, 나 왔어.” 단발 (눈빛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으……응……별일 없었어? 파마 그렇게 어색하게 눈빛을 돌리면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이 바로 오잖아요. 단발 그렇네요. 파마 다시 한 번 해봐요. “여보, 나 왔어.” 단발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며) 응, 별일 없었지? 파마 그렇게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면서 얘기하면 냉랭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단발 아아…… 어렵네요. 파마 눈빛을 피하되, 의도적이지도 냉랭하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피해야 되는 거예요. 상상을 해봐요.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눈빛을 돌리고 있을만한 자연스러운 무엇. 단발 자연스러운 무엇이라……. 파마 시범을 보여주죠. 역할을 바꿔 봐요. 단발 (남편 흉내) 여보, 나 왔어. 파마 (뒤돌아 요리하는 척) 왔어? 계란 사왔어? 단발 (계란 건네주는 척) 응, 여기. 파마 (계란 받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며) 빨래가 다 됐나? 당신은 빨리 씻어. 단발 (씻으러 가는 척) 응, 그래. (씻으러 들어갔다 나온 듯) 다 씻었는데? 파마 (식탁을 가리키는 듯) 밥 차려놨어. 단발 당신은? 파마 당신 기다리다 배고파서 먹었어. 아이고, 내 정신? 드라마 녹화해 놨는데. (거실로 달려가는 시늉) 단발 (껄껄 웃는다) 허허 당신도 참! (편하게 밥을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머? 한 번도 안 마주쳤어요! 파마 그리고 자연스럽죠? 단발 남편 입장에서도 정말 자연스럽고 편하겠어요! 파마 이 1단계를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써먹으세요. 요리-빨래-드라마, 드라마-요리-빨래 같은 식으로. 여기서 중요한 건, 요리가 맨 마지막에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밥을 같이 먹게 되고, 같이 먹게 되면 눈이 마주치게 되니까. 단발 (경이로움) 스승님……. 파마 통닭 시키면, 꼭 우리 애들 불러줘요. 단발이 파마를 껴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4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대머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머리가 생일 때 쓰는 고깔모자를 쓰고 천천히 걸어온다. 꾸부정 스승님! 대머리 (고깔모자가 부끄러운 듯) 오늘, 생일이거든요. 오늘 컨셉은 직원들이 해준 생일파티 컨셉입니다. 1년에 한번밖에 못 써먹는 게 아쉽긴 하지만…… (꾸부정의 상태를 보고) 좋아 보이는군요. 꾸부정 그럼요! 집사람이 완전히 속아 넘어갔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빨래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더라구요. 눈이 안 마주치니까 더더욱 마음이 편합니다. 하하하하! 대머리 참으로……대단한 우연의 일치로군요. 꾸부정 네? 대머리 아닙니다. 그런 우연이 겹칠 때가 있죠……저도 그랬으니까. 어쨌든 다행입니다. 꾸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저어……이거……. 대머리 이건? 꾸부정 스승님 생신 선물입니다. 대머리 ……해고자들끼리는……경조사를 모른 척 하는 게 불문율인데……. 꾸부정 그건 알지만, 스승님의 생신이니까요. 자판기 커피를 서울역에서 영등포 쪽으로 옮기니까 50원이 절약되더라구요. 그걸 두 달 동안 모아서 산 겁니다. 대머리, 천천히 봉지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소주 한 병이 들어있다. 꾸부정 한 달 치 회식 아이템입니다. 대머리 ……직원들도……챙겨준 적 없었는데……선물……. 꾸부정 ……약소합니다. 한동안 말없이, 소주병을 만지작거리는 대머리. 대머리 (분위기 전환) 흠흠, 두 달이 지났으니 2단계로 들어갈 차례로군요. 꾸부정 그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려서 잠이 안 왔습니다. 대머리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즐겁지 아니하죠. (선물 받은 소주를 따서 권하며) 일단, 한 모금 하시죠. 꾸부정 하지만……이건 스승님의 대머리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특별히 보름치만 마시죠 (오징어 다리 네 개를 꺼내며) 안주도 사치스럽게 1인당 무려 두 개씩. 소주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맛있게 소주를 마시는 두 남자. 대머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꾸부정 글쎄요, 명함? 대머리 (고개 흔든다) 꾸부정 그럼, 양복이나 작업복? 대머리 이렇게 물어보죠.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자아실현 같은 뻔한 답 말고. 꾸부정 돈을 벌기 위해서죠. 돈을 벌어야 가족들 먹여 살리고 집도 사고. 대머리 그렇습니다. 돈, 바로 월급이죠. 직장을 다닌다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입니다. 꾸부정 (이마를 치며) 아아 그렇구나. 대머리 선생이 그 어떤 실수나 튀는 행동을 하더라도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한 쉽게 의심받지 않습니다. 1단계보다 더 강력한 2단계는 바로 ‘월급’입니다. 꾸부정 월급이라……무슨 수로 월급을……. 대머리 퇴직금과 저축과 비자금을 포함하면 얼마나 됩니까? 꾸부정 한……삼천 정도…….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당겨쓰는 바람에……. 대머리 월급은? 꾸부정 이백이 조금…….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성과급제 인지라……. 대머리 봅시다, 재취업의 목표를 일 년으로 잡았을 때, 총자본 삼천에서 하루 용돈 만원 곱하기 365해서 빼면 2635만원. 중간 중간 부인과 아이들 생일 선물 챙겨주고, 가끔 부모님 외식도 시켜드리고, 아프면 병원 가야되고, 친구 만나면 술 한잔도 해야 되니까 100만원 빼면 2535만원. 이걸 열두 달로 나누면 211. 25만원.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맞아 떨어지다니! 대머리 아직 감탄은 일러요. 변수를 따져봅시다. 올해 안에 큰돈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뭐가 있죠? 꾸부정 음……올해 봄에 어머니 금니를 해드리기로.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임플란트 해드린다고 하세요. 꾸부정 음……올해 여름에 가족들하고 제주도를.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하와이 가자고 하세요. 꾸부정 처제가 연애를 하는데 가을쯤 결혼하고 싶다고. 대머리 어떻게든 둘이 깨지게 만드세요. 꾸부정 겨울에 큰애가 수능을 보는데 그럼 대학 등록금을. 대머리 어떻게든 재수하게 만드세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쉽게 해결되다니! 선생님은 천재예요! 대머리 지금 당장, 은행으로 가서, 입금 하세요. 꾸부정, 대머리를 부둥켜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5 불이 켜지면, 단발과 파마가 그네에 앉아있다. 단발은 통닭을, 파마는 장조림 통을 들고 있다. 그들의 발밑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남자들이 마신)이 남아있다. 단발 다 먹으면 살찐다고 애들한테 강제로 뺏어 온 통닭이에요. 파마 우리 애들 좋아하겠네. 이건 우리 엄마가 보내준 장조림이야. 단발 이 귀한 걸. 파마 미국산일 거야. 단발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죠. 두 여자, 웃는다. 단발 (소주병을 내려다보며) 회식을 보름치나 빠뜨려놓고 갔네요. 불쌍한 그이. 파마 남은 보름은 축구대회로 때우겠지. 모래판에 뒹굴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 단발 이번 달엔 월급을 두 번이나 입금했더라구요. 파마 우리 아저씨는 실수로 우리 딸한테 입금한 적도 있어.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월급날이니까 당당하게 들어오겠네. 오랜만에……하자고 할지도 몰라. 단발 어머, 스승님도. 파마 안 좋아도……좋은 척해 줘야지 뭐. 단발 난 그냥……좋은데. 파마 역시, 젊구나.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소주병 집으며) 이 회식 보름치는, 우리가 마시자구. 곗날이었다고 하지 뭐. 단발 곗날이라……짤린 지 1년 넘은 곗날. 파마 난 2년. 두 여자, 한참을 웃다가, 사이좋게 소주를 나눠 마신다. 파마 그 아저씨들…… 앞으로 1년 버티기도 간당간당할 거야. 퇴직금은 한계가 있지. 단발 우리 남편은…… 당겨썼을 텐데. 파마 중간에 큰돈 들어갈 일 있으면 알아서 짤라줘. 어머니 금니라든가 제주도로 떠나는 가족 여행이라든가 자식들 학자금이라든가 동생 결혼식 같은 것들 있잖아. 단발 어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파마 사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돈 들어가는 것도 비슷비슷하겠지 뭐. 단발 정말이지……스승님은. 파마 대놓고 짜르면 의심하니까 자연스러워야 돼. 나 같은 경우는 뉴스를 많이 활용해. 요즘 뉴스에 경제 어렵다는 얘기 많이 나오잖아. 등록금에 목숨 끊고 효도 못 해 목숨 끊고 결혼 못 시켜줘서 목숨 끊고……그런 뉴스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떠는 거야. “어머머머, 저걸 어떡해? 우리라고 안심하면 안 되겠네. 여보, 경제도 어려운데 당분간 허리띠 좀 졸라맵시다.” 그럼 남편이 그러겠지. “그래도……할 건 해야 되잖아?” 그럼 이러는 거지. “그거 안 한다고 당장 죽어? 다 내년에 합시다. 금니는 임플란트로, 제주도는 하와이로, 그리고 첫째 너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인 서울’ 가능해. 그냥 재수해. 그리고 동생 결혼식은……으이그 나 그 남자 맘에 안 들어!” 두 여자, 배꼽을 잡다가, 다시 기분 좋게 마시는 소주. 파마 자기도…… 빨리 일을 구해야 돼. 단발 ……그래야죠. 파마 일을 구할 때도 튀지 말아야 돼. 집에만 있으니까 갑갑하다, 옆집 엄마들이 마트에 가서 일하니까 돈도 벌어 좋고 심심하지도 않아서 좋지 않느냐, 일도 엄청 편하다더라…… 물론 편하지는 않지……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단발 ……. 파마 그래도 마트를 구하면 다행이야. 술집을 돌면서 전병을 파는 아줌마들도 있어. 단발 ……. 파마 더 심하면……도우미로 나서는 거지. 단발 ……. 파마 남자들도 마찬가지야……일을 도저히 못 구하면 아빠방 같은 데로 가기도 하거든. 알지? 그, 남자 도우미 같은……. 단발 ……. 파마 대단한 거야……그렇게 해서 가족이 유지되니까. 단발 대단하네요……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파마 더 지나면……엄두가 날 거야……. 단발 ……. 파마 ‘뭐든’이라는 단어가 중요해. 뭐든. 단발 ……뭐든. 파마 2단계가 바로 그 ‘뭐든’ 이야. 단발 ……. 파마 (벼룩시장을 건넨다) 생일 축하해. 선물이야. 단발 ……고마워요. 파마 꼼꼼히 읽어 보면 일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소주병을 들고) 마시자고……곗날인데 말없이, 소주를 마시는 여자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6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모래판에 열심히 뒹굴고 있다. 잠시 후,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대머리. 그러나, 대머리가 아니다. 윤기 흐르는 리젠트 헤어스타일에 삐까번쩍한 양복, 광나는 구두. 그러나, 왠지 어색한.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꾸부정 스승님! …… 머리가? 대머리 가발입니다. 꾸부정 결혼식이라도?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이제,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하셨군요. 꾸부정 스승님 덕분이죠……덕분에 집사람이 뒤로 자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네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어머니 금니도 가족들 여행도 다 내년으로 미뤄졌어요. 처제는 결혼 상대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들고 아들놈은 갑자기 ‘인 서울’을 노리겠다더군요. 4년제도 힘든 놈이……. 대머리 그건 정말로……완벽한 행운이군요. 꾸부정 예……그야말로 완벽한……. 대머리 ……. 꾸부정 집사람이 일을 시작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하다면서. 대머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겠군요. 꾸부정 전병을 팔고 있더라구요……술집을 돌아다니면서.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하다고 할 만할 일일까요……전병을 파는 게…….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해서겠죠……분명……. 좋은 건지, 씁쓸한 건지 모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네를 타는 두 남자. 대머리 마지막 3단계를 배울 차례로군요. (양주를 꺼낸다) 양주 한잔 하시죠. 꾸부정 양주가……어디서?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졸업 선물입니다. 어떠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양주를 받아 마시는 꾸부정. 대머리 3단계는 ……시간입니다. 꾸부정 ……시간. 대머리, 그네에서 일어나 놀이터를 천천히 거닌다. 대머리 어릴 때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꾸부정 ……. 대머리 의사도 됐다가 선생님도 됐다가 과학자, 대통령, 경찰관, 소방관, 백화점 사장, 옷가게 사장, 슈퍼마켓 사장……그렇게 소꿉놀이를 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더 많으면 나는 더 많이 놀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죠. 시간이 많다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이제야 깨닫게 되는군요. 꾸부정 ……. 대머리 선생님이 해고된 순간부터 선생님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평범함을 연기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늦잠을 잘 수 없습니다. 출근 하는 척해야 되니까요. 밖에서 시간을 때워야 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야 집에 갈 수 있으니까요. 밥도 혼자 먹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 먹으니까요. 비싼 걸 먹으면 안 됩니다. 돈이 없으니까요. 꾸부정 ……. 대머리 동네 주변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극장도 있고 피씨방도 있고 커피숍도 있지만 갈 수 없습니다. 돈이 드니까요. 아침이 되면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돈 안 드는 방법을 택해서 시간을 죽여야 됩니다. 시간이 많다고 책을 읽어서도 안 됩니다. 취직을 위해서 교차로 벼룩시장 가로수만 죽어라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그런 시간과 싸워야 됩니다. 그게……마지막 3단계입니다. 꾸부정 ……. 대머리 (놀이터를 둘러 본 후) 어릴 때는 이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대머리의 어른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으면 웃기잖아요……어른이니까……. 꾸부정 ……. 대머리 (시계를 본다) 이제 가야겠군요. 저도 오늘은 축구대회라고 한지라 ……. 대머리, 가발을 벗고, 비까번쩍한 양복을 벗으면, 그 안에 입혀져 있는 유니폼. 그 상태로 모래바닥에 사정없이 뒹굴고, 꾸부정도 말없이 뒹굴고. 꾸부정 (뒹굴면서) 스승님……우리…… 소꿉놀이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어릴 때처럼? 대머리 (역시 뒹굴면서) 우리 같은 중년의 가장에겐……조금은 괴로운 소꿉놀이군요. 그런데……어릴 때 소꿉놀이 할 때는 왜 한번도……회사원 역할을 안 했을까요. 꾸부정 ……. 대머리 시시해서였을까요? 꾸부정, 말없이 더욱 열심히 뒹굴고, 대머리도 그런 꾸부정을 보며 더더욱 열심히 뒹굴고……. 암전. 잠시 후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 목소리 나 왔어…… 별일은 무슨…… (심호흡을 한번 하고) 뭐, 똑같지 뭐. 작은 멜로디. -막-
  • [하프타임] 이창호 하이원리조트배서 이세돌에 완승

    ‘돌부처’ 이창호가 이세돌과의 올해 첫 대결에서 완승했다. 이창호 9단은 19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38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A조리그 최종대국에서 이세돌 9단을 맞아 흑으로 185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지난해 3월 열린 제27기 KBS바둑왕전 결승 이후 536일 만에 만난 두 거물은 라이벌답게 끈끈하고 화끈한 승부를 벌였다. 서로 기질대로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이세돌과 쉬운 길로 가려는 이창호의 샅바싸움이 이어졌다. 이창호는 이세돌과의 통산 전적에서 31승21패로 승수를 늘렸다. 이창호와 이세돌은 한국물가정보배 타이틀을 놓고 다음 달 1일부터 3판 양승제의 결승전을 펼친다.
  • 이창호 9단·예비신부 이도윤씨 “프러포즈 안했지만 서로통해”

    이창호 9단·예비신부 이도윤씨 “프러포즈 안했지만 서로통해”

    ‘돌부처’ 이창호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창호(35) 9단은 1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예비신부 이도윤(24)씨와 결혼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갈색 슈트에 노타이 차림을 한 이 9단과 하늘색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이씨에게서 11살의 나이 차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이 9단은 “나이가 많은 편이라 더 늦게 결혼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좋은 짝을 만나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씨는 프러포즈에 대해 “이 국수님(이창호)이 항상 ‘말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말로 프러포즈를 받은 적은 없어 마음으로 알았다.”며 이심전심을 강조했다. 이 9단도 “프러포즈를 안 한 것 같다.”며 쑥스러워했다. 이 9단은 지난 3월쯤 결혼할 마음을 굳혔다면서 “이도윤 기자가 어른스러워서 세대차이 등에 대한 어려움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데이트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이 9단의 집 근처인 서울 일원동 대모산을 올랐다. 이씨는 한국기원 연구생 1조 출신으로 바둑전문지 기자를 지낸 바둑인. 두 사람은 재미삼아 바둑을 한두 번 같이 둔 적이 있는데 승부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집중이 되지 않아 이씨가 돌을 쓸어버렸다고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돌부처’ 이창호9단 장가간다

    ‘돌부처’ 이창호9단 장가간다

    ‘돌부처’ 이창호(왼쪽·35) 9단이 오는 10월28일 결혼한다. 한국기원은 노총각 이창호 9단이 11살 연하의 전 바둑전문 인터넷 사이트 기자 이도윤(24)씨와 결혼한다고 14일 밝혔다. 이창호는 그동안 여자친구와의 결혼 여부에 대해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 왔다. 그러나 이창호는 한국기원 기전 스케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10월 말 스케줄이 비어 있는지를 확인한 뒤 이날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한국기원은 전했다. 돌부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씨는 한국기원 연구생 1조 출신으로 지난해 명지대 바둑학과를 졸업한 후 바둑전문 인터넷 업체인 사이버오로에서 기자로 활약한 바둑인이다. 이씨는 지난 2월 퇴사한 후 본격적으로 신부 수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70㎝의 늘씬한 키에 활달한 성격의 이씨는 2008년 5월 취재원으로 이창호를 처음 만났다. 이씨는 강원 태백에서 열린 ‘제7회 배달바둑한마당 축제’에 참가한 이창호를 취재했고, 이때 서로 호감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창호 농심배 한국우승 견인

    ‘돌부처’ 이창호(사진 35)가 국가 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중국 창하오(常昊· 34)를 꺾고 한국에 우승컵을 선사했다. 12일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제1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에서 한국의 주장 이창호 9단은 중국의 마지막 주자인 창하오 9단에게 23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한국 우승이었다. 애초 상하이 대국은 한국에 불리했다. 한국대표는 이창호 9단 1명만 남고 중국 대표는 류싱(劉星) 7단과 구리(古力) 9단, 창하오 9단 등 3명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대표는 하네 나오키 9단. 최종 라운드 첫판에서 류싱 7단이 일본의 하네 나오키 9단을 물리친 뒤 중국은 아무리 이창호 9단이라도 한 명이 남았기 때문에 우승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10일 류싱 7단을, 11일 구리 9단을 제압한 뒤 12일 마지막 남은 창하오 9단까지 차례로 꺾고 3연승을 거두며 한국 승리를 이끌었다. 이창호 9단은 한판의 드라마와도 같은 역전극을 썼다. 초반 이창호 9단은 창하오 9단의 백42를 간과해 순식간에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흑129 이하의 강력한 역습으로 역전을 이끌어냈다. 사이버오로에서 대국 해설을 맡은 목진석 9단은 “이 9단의 공격력과 끝내기가 빛을 발한 명국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창호 9단의 극적인 3연승으로 11회 우승을 거머쥔 한국은 1∼6회 6연패를 포함해 9차례 우승하며 바둑 최강국을 자랑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창호9단 11개월만에 이세돌9단 꺾어

    이창호9단 11개월만에 이세돌9단 꺾어

    ‘돌부처’ 이창호(왼쪽)가 11개월 만에 만난 ‘쎈돌’ 이세돌(오른쪽)과 난타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이창호 9단은 이세돌 9단과 1999년 이래 대국에서 31승22패의 우세를 보였다. 이창호 9단은 11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내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아이티 난민돕기 이창호 vs 이세돌 특별대국’에서 이세돌 9단에게 백으로 160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지진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이티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 특별대국이었지만 내용은 한국 랭킹 1, 2위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승부였다. 바둑은 백이 착실하게 실리를 벌어가고 흑은 힘을 비축하며 후반을 노리는 양상으로 흘렀다. 포석이 끝난 후 상변 백대마를 추궁해 오는 이세돌의 공격에 이창호가 강력하게 반발하며 시작된 전투는 상변과 좌변, 우변에 얽힌 흑백 간의 수상전으로 이어지면서 전판에 걸쳐 험악하게 전개됐다. 이세돌은 6개월의 공백이 무색하게 날카로운 공격력을 선보였지만, 막판에 상변 백돌의 사활을 착각하면서 허무한 종국을 맞게 됐다. 이창호는 전날 주형욱을 누르고 국수전 결승에 진출한 데 이어 이틀 연속 승리를 거두며 최고의 컨디션을 이어갔다. 이세돌 9단도 비록 패했지만 특유의 번뜩이는 감각을 선보였다. 대국은 바둑전문 케이블TV인 바둑TV에서 오후 8시부터 생방송되었고 ARS를 통해 한 통화당 2000원씩 모은 성금은 전액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해 아이티난민돕기 성금으로 기부됐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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