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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 야생화공원’ 활짝 문열어

    남산 복원의 상징적 장소인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부지가‘남산 야생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착공한 용산구 한남동(하얏트호텔앞 보행육교 건너편) 남산 야생화공원은 조성 공사가 마무리돼 21일 문을 열었다. 3000평 규모로 조성된 야생화공원에는 남산제비꽃·범부채·처녀치마 등 우리 산과 들에서 피는 야생화 180종,8만 4000포기가 심어졌고 생강나무 등 관목 6000그루,대죽나무 등 교목 450그루도 들어섰다. 지금 이 곳을 찾으면 연분홍색의 금낭화와 붓꽃,연보라색의 메발톱 등 야생화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이 공원은 4계절 야생화원,습지식물원,음지식물원,중림원 등 17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연못·원두막·돌담장·야생화꽃마차 등 주변 시설물도 잘 꾸며져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에게 제격이다. 3∼5월에는 처녀치마·긴병꽃풀·깽깽이풀·동의나물,6∼8월은 개미취·곰취·감국·동자꽃·대황,가을철인 9∼10월에는 석잠풀·바위구절초·배초향·무늬쑥부쟁이 등 이름도 생소한 토종 야생화가 철마다 자리매김한다. 또 공원 주변에는 전국 시·도에서 옮겨온 ‘8도 소나무숲’과 야외식물원,남산전시관,맨발공원 등도 함께 자리해 청소년의 학습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에 따라 시는 여름방학기간동안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여름식물교실’을 열고 매월 첫째,셋째주 토요일오후에는 ‘야생화관찰교실’을 개설할 계획이다.운영은식물학을 전공한 주부와 대학생들로 구성된 ‘남산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 모임’(남사모)이 맡는다. 한편 남산외인아파트는 지난 94년 서울시의 ‘남산 제모습찾기’사업에 따라 국내 첫 폭파공법으로 철거됐었다.공원 이용은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5576,2563)로 신청하면 된다. 최용규기자 ykchoi@
  • [씨줄날줄] 덕수궁 옆 ‘8층 아파트’

    덕수궁 옆에 없어야 할 ‘명물’이 하나 생길 모양이다.미국 대사관은 덕수궁 후문 바로 건너에 있는 대사관저 내에 8층 높이의 직원용 아파트를 건립키로 하고 건설교통부에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의 적용 제외를 요청했다. 시행령에는 2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는 일반분양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미 대사관의 직원용 아파트는54가구 규모.일반 분양을 생각할 수 없는 미 대사관은 한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고 건교부는 예외규정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또 건축 예정지가 문화재 보호구역이지만 건축허가권자인 서울시는 “지표조사에서 문화재가발굴되지 않을 경우 문화재보호법을 이유로 건축을 불허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덕수궁 바로 옆에 8층짜리 외국인 아파트가 들어서면 덕수궁의 ‘궁궐 맛’이 예전같을 수는 없다.옛날,왕이 사는 궁궐은 거창한 외양 못지 않게 칼처럼 무서운 ‘접근금지’령으로 신민들을 압도하고 또 끊임없이 매혹시켜 왔다.왕정이 사라지는 순간 궁궐은 전리품처럼 시민들에게 개방됐다.우리뿐 아니라나라마다 옛 궁궐에 관람객이 끊이지않는 것은 웅장하고 호화로운 건물과 집기 때문만은 아니다.금지된 곳에 기어코 들어왔다는 내밀한 흐뭇함이 ‘궁궐 맛’의 큰 요소인 것이다. 8층 아파트가 제 뒷마당이나 된 듯이 떡하니 내려다 보고 있으면,덕수궁의 내밀한 맛은 사실상 사라질 게 뻔하다.도대체 왜 미 대사관측은 주재국의 법률을 무시하면서까지 건물을 지으려는 것이며,‘쓸개 빠진’ 한국관리들은 왜 이를 들어주려 하는가. 왕이 되지 못한 대군(大君)의 사가(私家)를 확장해 만든덕수궁은 5대궁 가운데 일반 시민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고 출입할 수 있는 서민적인 궁궐이다.덕수궁 주변은 이제막 새로운 문화의 요람으로 등장하고 있다.덕수궁 담장과마주하고 있는 옛 대법원 건물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개축돼 지난 주말부터,‘한민족의 빛과 색’이라는 주제로 개관기념전이 열리고 있다.그동안 덕수궁 일대는 정동극장을 비롯,정동이벤트홀,유서깊은 정동교회,덕수궁 돌담길 등으로 서울시민의 새로운 문화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 왔다. 점심시간이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덕수궁을 이리저리 거닐고 서문인 후문으로 나오면 맞은편에 미 대사관저 정문과 마주친다.‘하비브 하우스’란 흰 명패가 붙은 대사관저의 접근금지 벽은 이제 더욱 높아지고,8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한국의 덕수궁은 더욱 낮아지게 됐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역사의 전설’ 영암이 부른다

    아주 오랜 옛날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움직이는 세 개의바위가 있었다.이 바위들은 큰 인물을 만들어낼 신비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들이 바위를 밀어 떨어뜨렸으나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제자리로 올라갔다.그래서 그 지역 일대를 신비스러운 바위라는 뜻의영암(靈岩)으로 불렀다. 서해와 남해가 서로 맞닿아 있는 곳,월출산이 병풍처럼둘러싼 가운데 호남의 젖줄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전남영암은 전설로 전해져오는 지명만큼이나 오래된 고장이다. 선사시대 거주지와 지석묘,백제시대 옹관고분이 산재해있고,왕인박사의 출생지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유약을 바른 시유(施釉)도기 터인 구림마을,풍수지리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고려 초 도선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도갑사 등이역사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드문 역사 기행지다. 월출산이 있어 더욱 정겨운 영암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 월출산. 영암이라는 지명을 탄생시킨 월출산(809m)은 전라남도 남단에 우뚝 서 있으면서 서해에 인접해 있고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이름 그대로 야간산행 때 정상인 천황봉에 걸쳐 있는 달의 모습은 말로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진다.천황봉을 비롯,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매봉 시루봉 주지봉 죽순봉 등 기기묘묘한 암봉으로 거대한 수석 전시장같이 깎아지른 산세가 압권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등산코스는 3가지.천황사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에서 끝나는 가장긴 코스로 6시간이 소요된다.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월출산의 관광명소 중 하나.계곡위 지상 120m 높이에 있으며,길이는 무려 52m로,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이다.산행길이 험하긴 하지만 이 구름다리는 빼놓지 말고 건너 보는 것이 좋다.천황사에서 40∼50분 정도 걸린다.나머지 2개 코스는 5시간이 걸리는 도갑사~억새밭~구정봉~바람재~경포대 코스와 4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경포대~바람재~천황봉~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사 코스다. ● 도갑사. 천황봉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도갑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맑은 기운이 가득하다.사찰의 커다란 가람 여러 동이 조선조까지 유명했지만 계속된 화재로 지금은 규모가 매우 작아졌다.그러나 경내의 소슬한 운치는 예와 다름없다.조선 성종조에 지어진 국보 50호 해탈문과 고려시대석가모니불인 보물 89호 석조여래좌상,드라마 ‘태조 왕건’에 나오듯 후삼국통일의 단초를 제공한 도선국사의 업적을 소상히 기록한 도선수미비(守尾碑)가 옛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 ● 구림마을과 도기가마터. 영남에 안동 하회마을이 있다면 호남엔 영암 구림마을이있다.헤아릴 수 있는 역사만 2200년이나 된다는 이 마을은 인근 선사주거지가 일러주듯 늦게 잡아도 삼국이전 삼한시대부터 삶의 터였다.지금도 700여가구가 자리잡고 있는구림마을은 주민자치 규율 및 조직인 향약 대동계가 40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고 대동계 집회장인 회사정,죽정서원,400년 넘게 보존된 창녕조씨 종택 등 전통사회의 흔적이남아 있다.영암군에서는 돌담길 조성 등을 통해 새롭게 단장,하회마을 못지 않은 전통마을로 복원한다는 계획 아래현재 복원공사를 진행중이다. 구림은 또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이 입혀진 시유도기의 출토지다.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작은 구릉지대 1km에 걸쳐지난 87년부터 발굴된 10여개의 가마터(사적지 338호)는역사교육 현장으로 보존돼 있고 이 도기의 역사와 예술성을 전승하기 위해 도기문화센터가 들어서 있다.구림(鳩林)도기는 일본의 시가라키나 세토의 도기보다 200∼300년 앞선 것으로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왕인문화축제와 왕인유적지. 영암은 옛멋만을 간직한 역사기행지에 머물지 않는다.4월 초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100리 벚꽃길을 배경으로 치러지는 왕인문화축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장엄한 예술제로 옛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전국 5대 축제로 지정된 왕인문화축제는 왕인박사 유적지 일원에서 향토성 짙은 민속예술 공연과 도포제 줄다리기,정동 우물제등을 성대하게 펼친다. 4세기경 일본 응신일왕의 초청으로 도일,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종이와 토기제작 기술을 가르쳐 일본 아스카문화를 일으킨 왕인박사의 유적지는 구림마을을중심으로탄생지와 묘,전시관,박사가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다는책굴 등이 산재해 있다. 영암 곽영완기자 kwyoung@ ●먹거리= 영암은 바다와 육지가 맞붙어 있어 밥상에 오르는 반찬이 어느 곳보다 풍부하다.오랜 숙성을 거쳐 상에 오르는 게장이나 젓갈류는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게 한다.특히 영암 갈낙탕은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히는 낙지가 어울린 별미 중 별미이며,기름진 개펄을 먹고사는 짱뚱어로 만든 탕은 영암을 찾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운다. ●갈낙탕= 영암 갈낙탕은 전라도 한우 갈비와 개펄에서 잡히는 낙지가 엮어낸 별미탕으로 영암 특별음식 가운데 제일로 꼽힌다.갈낙탕은 영양탕(보신탕)을 대신할 만큼 건강식으로 사랑받는다. ●짱뚱어탕= 기름진 개펄을 먹고 사는 짱뚱어를 재료로 만든별미음식으로 맛이 진하고 개운하다. ●낙지구이= 살아있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살짝 구워서 내놓은 낙지구이는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장어구이= 깨끗한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양식한 민물장어 구이는 고단백식품.특히 영암만의 양념 비결이 있어 담백하고 감칠맛이 난다. ● 교통정보=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접근이 훨씬 수월해졌다.서해안고속도 종점인목포에서 영암까지는 40분 정도 소요된다. ◇승용차편. ●서울 출발→호남고속도로→광주→영암●서울 출발→서해안고속도로→목포→영암 ●광주 출발→국도 13호선→지방도819호선●목포 출발→국도 2호선→지방도 819호선 ◇항공편 ●부산↔광주(30분 소요,매일1회 운항)●제주↔광주(30분소요,매일5회 운항)●서울↔목포(50분 소요,매일6회 운항)●목포↔제주(40분 소요,매일1회 운항)◇직행버스편(영암터미널061-473-33570,광주터미널 062-360-8114)●광주↔영암(10분간격,소요시간 1시간 20분) ●목포↔영암(매 20분간격,소요시간 50분)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부문/ 심사평

    한 두편의 작품으로 작가적 역량을 가리는 것은 어렵고도조심스럽다.그러나 이것이 오랫동안 우리가 용인해온 신춘문예 방식이다. 응모작은 모두 83편이었고 대다수의 작품에서 상당한 수련을 쌓은 흔적을 발견했다.선자들은 응모작 편수의 과다를떠나 아동문학에 모아지는 정성과 관심에 안도와 격려를얻었다. 동화는 본질적으로 생명에 대한 옹호와 연민에서 출발하여 순수함과 따뜻함을 지향한다.생명이 경시되고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반응일까?응모작에 드러나는 진지함이 아동문학의 상대적 발전과 활성을 점치게 했다. 선자들은 이성길의 ‘문제아’ 김송순의 ‘돌담’ 박수정의 ‘꿈꾸는 바람개비’ 김유리의 ‘반달눈’ 김은수의 ‘할아버지의 오동나무’ 등 다섯 편을 주목했다.이들 작품들은 여타의 작품들에 비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과 그것을 담아내는 언어적 능력이 돋보였다. 이성길의 ‘문제아’는 마지막 부분이 작위적이다.한 편의동화를 인상깊게 마무리하려는 의욕이 강했기에 결말 부분을 무리하게 처리했다.김송순의 ‘돌담은 군데군데 세심하지 않은 묘사가 드러나서 아쉬었다.가뭄이 든 메마른 저수지를 설명하며 양탄자 같은 녹색 이끼가 넓게 깔려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김유리의 ‘반달눈’은새엄마를 얻은 소녀의 복잡한 심리가 밀도있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읽은 다음에 마음에 남는 그 무엇이 부족했다.다시 말하자면 신인으로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욕이부족했다.좀더 뚜렷한 주제를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커다란 가능이 보인다.박수정의 ‘꿈꾸는 바람개비’는 심장병을 앓는 아이와 건강한 아이들 간의 우정이 감동 깊다.마지막까지 냉정한 작가적 시선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함께 응모한 ‘먹돌 할아버지’도 일정한 수준을 보이고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당선작의 영예는 김은수의 ‘할아버지의 오동나무’에게돌아갔다.오랜 문학적 수련을 쌓은 듯한 문장이며 탄력있는 이야기의 전개도 눈길을 끌었다.‘탄금대’설화를 오늘날의 방식으로 풀어쓴 수법은 자칫 눈에 익은 모습이나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 여운은 깊다.이 작품이 일반적동화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지적도 있었다.그러나 동화의 독자층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모쪼록정진하여 대성하기 바란다. 조대현·김명수
  • [대한광장] 다시 생각하는 종교간 화해

    새해에는 종교간의 관용과 포용이 더욱 심화될 수 있을까.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연초에 떠올리는 화두중 하나일것이다. 우리의 대표적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를 보자.대한불교 조계종 정대 총무원장은 지난 연말 성탄절 때 기독교계에 “예수님의 탄생을 한국의 모든 불도들과 함께 경축한다”는축하 메시지를 보냈다.이에 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은여러 해 전부터 석가탄신일에 불교계에 경축메시지를 보낸바 있다.세계 곳곳에서 종교간의 알력과 전쟁이 벌어지는판에 양 교계가 주고 받는 친교는 참으로 흐뭇한 경사로서 우리겨레의 화합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양 교계의 학문적 교류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다행히 여러 학자들이 종교대화 강좌에 동참해서 ‘선불교와 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수도생활’ 등의책을 펴냈다.바야흐로 학문적 대화도 시작된 셈이다.앞으로 학문적 대화가 더욱 무르익길 기대한다. 그리스도교는 만상을 신과 인간으로 가르는 이원론에 집착하고,불교는 만사를 연기사상으로 설명하는 일원론을 내세운다.이런 차이점보다 더 유의할 점은 그리스도교는 신과 인간과 우주의 실체를 강조하는 긍정의 논리를 펴는 데비해서,불교는 삼법인에서 보듯이 부정의 논리를 즐겨 구사한다. 그렇지만 곰곰이 살펴 보면 그리스도교에도 부정의 논리가 없지 않다.성서에선 한결같이 인간이 하느님을 볼 수없다고 한다.인간이 하느님의 진면목을 보면 즉사한다고한다.인간은 하느님의 흔적을 볼 수 있을 따름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학계에선 신에 대한 모든 언설은 단의적(單義的)이 아니고 유비적(類比的)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인간의 언어로는 신의실상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신과 관련해서말문이 막히는 어불성의 경지를 가장 깊이 체험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사에 불쑥불쑥 나타나서 언어 유희에 경종을 울린 신비주의자들이다. 바라건대,공(空),무(無)등 부정의 논리를 즐겨 펴는 불자들도 불경과 전승을 면밀히 천착하면 긍정의 논리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대자대비하신 부처님,천수천안을 지니신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는가.인간은 편식하는 동물이 아니고 잡식 동물인지라,부정의 논리를 즐긴다고 해도 가끔은 긍정의 논리를 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1890∼1981)은 있음과 없음의 논리를아우를 줄 아는 대덕이었다.그는 하느님을 일컬어 “없이계시는 분”이라고 했다.하느님은 있음(有)과 없음(無)을넘어서는 초월자라는 뜻이겠다.기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하느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조차 넘어서는 절대초월이라 하겠다.긍정과 부정의 논리는 상극이 아니고 상보적이다.신학자의 견지에서 말하건대 하느님은 부정의 논리보다 더 깊숙이 숨어 계시고,긍정의 논리보다 더 멀리 숨어계신다. 다석 선생은 서양 사상을 다음과 같이 비평했는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꼭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서양 사람은없음(無)을 몰라요.있음(有)만 가지고 제법 효과를 보지만원대한 것을 모르고 그래 보았자 갑갑하기만 하지요.서양문명은 벽돌담 안에서 한 일이에요.없는 것은 가장 있는것입니다.무극이태극 태극이무극(無極而太極 太極而無極)의 요묘는 여기 있어요.시작과 끝점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성경에는 허공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요.아버지 맘이허공이에요.참(眞)은 없음(無)에 가야 있습니다.허공보다큰 것은 없습니다.” 비단 종교만은 아닐 것이다.새해엔 우리 모두가 포용,관용을 앞세우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정양모 천주교 신부성공회대 초빙교수
  • 연인·가족과 도심속 가을 만끽

    ‘서울 도심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하세요’. 서울시는 4일 시민들이 가까운 생활주변에서 계절의 정취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단풍과 낙엽의 거리’,‘열매가있는 거리’ 등을 선정,발표했다. 단풍과 낙엽의 거리는 덕수궁 돌담길,삼청동길,중랑천 제방,화랑로 등 시내 36개소,총 98㎞.시는 이곳의 단풍과 낙엽을 보고 시민들이 결실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쌓이는 낙엽을 치우지 않고 일정기간 그대로 두기로 했다.우선 경복궁앞 동십자각에서 삼청터널로 이어지는 2.9㎞의 삼청동길은 200여그루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단풍 원초의 자태를 뽐내 가을 정취를 한껏 느끼기에는 그만이다.인근에 경복궁과 삼청공원 뿐만 아니라 화랑 도서관 식당가 등이 한 데 어루러져 휴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는 물론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에게 환상의 코스가 되기에 충분한다.덕수궁 돌담길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단풍과 낙엽의 거리이고 장충단길이나 힐튼호텔에서 하얏트호텔로 이어지는 소월로도 은행나무 단풍의 진수로 꼽혔다. 태릉입구에서 삼육대까지의화랑로는 8.6㎞의 구간에 버즘나무 등 1,200여그루의 가로수가 ‘터널의 장관’을 연출해 ‘걷고싶은 거리’로 선정됐고,남산 순환도로와 관악산,청계산 진입로,석촌호수길,양재 시민의 숲,서울대공원 외곽순환도로 등도 시민들을 유혹한다. 시는 또 시청 서소문별관과 광진구청내 쉼터,목동 중심축도로 및 안양천변로,강동구 성내로 등에 모과나무나 감나무 등 열매가 있는 거리로 정해 시민들이 가을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기고] 퇴계철학은 희망이다

    하회마을의 돌담과 소수서원의 풍광,수많은 서원과 누(樓)와 정(亭),시간도 멈춘 듯한 고가(古家)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을 안겨주는 따뜻한 공간이다.그 사이로 한국인의숨결과 전통문화가 흐르고 있다.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은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보고(寶庫)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퇴계(退溪)의 21세기적 가치에 대해 토론하면서 전통 고택에서 옛 선비들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한다. 이들은 한복 차림에 한국식 이부자리, 반상기에 정갈하게차려진 전통 음식상,고풍스럽게 꾸며진 사랑채에서 한국의전통문화를 즐길 것이다.일반인들도 문화적 정취를 몸으로체험하면서 유교와 퇴계의 향기를 마음껏 느껴 볼 수 있는공간이 마련돼 있다. 퇴계 탄신 500주년을 맞아 세계 유교문화축제가 5일부터개막된다. ‘새천년 퇴계와의 대화’를 주제로,퇴계를 우리 곁에 모셔와 인간적,정신적 숨결을 함께 느껴보는 체험의 장이다. 이는 시대와 나라를 걱정했던 큰 선비 퇴계를 통해 희망의단초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유교문화의 핵심인 선비정신의 원형을 발견해 보고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전통 유교문화를 세계화하려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동방의 빛’이라 했다.유학에 바탕을 둔 우리 정신문화의 위대성을 타고르는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그러나 21세기를 향해 초일류,초현대를꿈꾸며 달려 온 오늘의 한국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산업화에 이어 지식정보화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간의 신뢰가 상실되고 전통적인 도덕성도 약화되었다. 개인 이기주의의 성행으로 남에 대한 배려도 사라지는 부작용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말았다. 첨단 과학의 하이테크 문명이 만들어낸 인간 소외와 정신적 가치 상실의 그늘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윤리도덕의 사회를 강조했던 퇴계철학이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삶과 사상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그가 뛰어난 것은 위대한 사상을 일구었다는 것 이상으로 삶 속에서사상을 직접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지금은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도 21세기의 사상적,실천적 대안으로 퇴계가 연구되고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동과 영주를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은 유교문화와 사람과자연이 한데 어울려 생기를 뿜어내는 곳이다. 가을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유교문화 축제의 현장에서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될 것이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맘껏 감상하고 자부심을 갖는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21세기 우리의 미래가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의근 경북도 지사
  • 2001 길섶에서/ 이슬비

    폭우가 사람들의 마음을 젖게 하고 아프게 했다.예전의비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본다. 이슬비,가랑비,안개비,여우비,소나기는 예쁜 이름처럼 누구에게나 친근했다.시나 소설,동요에서 가요에 이르기까지비는 가슴아픈 사랑이고 낭만이며 추억이었다.덕수궁 돌담길을 연인들이 우산을 쓰고 걷는 모습은 얼마나 멋스러웠던가.하지만 되풀이되는 폭우와 비피해는 낭만을 앗아가버렸다. 장대비,집중호우,기습폭우,게릴라성 폭우 등 이름도 징글맞다.비도 세월에 따라 난폭해지는 것인가.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비오는 날의 수채화).이제 비를 노래하는 시인이나 가수는 드물다.‘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빨간 우산,파란우산,찢어진 우산’(이슬비).더 이상 비오는 날 동요를 부르는 어린이도 드물다. 비는 이제 낭만도 아니고 동심도 아니다.이슬비는 없다?김경홍 논설위원
  • 건대앞 패션거리 민·관합동 설계

    광진구 노유1동 건국대입구 패션거리가 주민들이 설계하는 산뜻한거리로 새롭게 태어난다. 서울시는 20일 그동안의 관 주도형 도시설계를 주민과 행정이 함께하는 방향으로 전환,설계단계에서 공사 및 유지까지 주민의사를 반영하고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시행하기로 하고 건대앞 패션거리에첫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건대앞 패션거리 폭 8m,길이 400m가 주민주도의 도시설계로 새롭게 꾸며진다. 이 일대는 모든 전선이 지하에 묻히고 공동주차장과 공중화장실이설치된다.또 건물외관을 정비하고 광고물 개보수 등이 이뤄진다. 특히 덕수궁 돌담길처럼 일방통행제가 실시되고 길 양편으로 보도가설치돼 걷고싶은 거리로 꾸며진다. 서울시는 시정개발연구원에 의뢰한 도시설계 용역이 내년 4월까지마무리되는대로 공사에 착공,내년 말까지 공사를 끝내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이대앞과 성신여대앞 패션거리도 내년중에 도시설계 용역을 실시하고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비해나갈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상가번영회 등 주민협의체와협의해 설계함으로써 주민들이 참가하는 도시설계의 새로운 전통을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문화도시 문화거리](18.끝)‘온천도시 명성’ 아산시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한다면 문화도시로서는 안성맞춤이다. 충남 아산시는 그런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다.역사는 있으되 한적하기만 한 시골,여관문화에 물들어 버린 중소도시로부터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된 아산시에는 궁궐이 있었다. ‘온궁(溫宮)’.온양행궁(溫陽行宮)의 준 말로 조선시대 임금들이요양과 온천욕을 하려고 지은 궁궐이다. 온천욕을 목적으로 하는 이 행궁에는 세종,세조,현종,숙종,영조 등조선시대 임금 5명과 사도세자가 이곳 온궁을 다녀갔다.세종은 눈병치료차 이곳을 세차례나 찾았고 사도세자는 다리에 난 종기를 고치려고 왔다 한다. 온궁은 부엌인 수라간,땔감 관리청,옷을 만드는 관청 등이 갖춰져작지만 궁궐의 모습을 갖췄었다. 현재 온천동 온양관광호텔이 그 자리다.온궁이 일제에 의해 헐린 뒤 수차례 변천을 거쳐 호텔이 들어섰다.지금은 사도세자의 화살터인영괴대(靈槐臺) 등만이 호텔정원에 남아 이곳이 온궁터임을 전해주고 있다. 온천이 조상들이 여유를 즐긴 곳이라면 송악면 외암리민속마을은 조상의 숨결이 아직도 느껴지는 곳이다.시내에서 39번 국도를 타고 공주쪽으로 20분쯤 가다 빠져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크고작은 장승 네쌍이 먼저 사람을 맞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밑에 맑은 실개천이 흐르고 교량 끝엔 정자와 수십년은 됨직한 노송(老松)들이 서있다. 60여채의 기와집과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초가지붕때문에 푸근한 느낌을 준다.야트막한 돌담들이 줄지어 정겨운 마을골목길로 들어서자 아궁이에 삭정이를 지피는지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400여년 전 정착,예안 이씨의 집성촌이 된 이 마을 뒤쪽으로는 영암군수를 했던 주인의 호를 따 지은 ‘건제고택(建齊古宅)’이 장관을이루고 있다.학(鶴) 모양의 연못 주변에 노송 등 각종 나무들이 어우러진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종가집 식구들은 “겨울에 눈이 오면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혼자 보기 아깝다”고 말한다. 이 마을을 둘러싼 설화산 너머 배방면 중리에는 조선 초 명정승 맹사성(孟思誠)의 고택이 자리한다.최영 장군이 손녀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주었다는 이 ‘맹씨행단’은 단출한 기와집을 키 큰 노송 서너그루가 둘러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연상시킨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온양은 대표적인 신혼여행지였다. 온양온천역과 버스터미널에는 ‘호텔뽀이’들이 늘어서 호객행위를했고 손님 가방을 나르는 일꾼들로 붐볐다. 여관과 호텔 목욕탕에서 버려지는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던 실개천에선 30∼40여명의 아낙네들이 허드렛 빨래를 했었지만 정겹던 풍경도이제는 볼 수 없다. 토박이인 홍승욱(洪承旭) 아산고 교장은 “고즈넉한 역사의 고장이자 순수하게 온천만을 즐기던 풍토가 퇴폐와 향락으로 바뀌며 온양온천은 명성을 잃어갔다”고 진단했다. ‘아산의 명동’으로 불리는 온양관광호텔 옆 충온로 골목길은 이제 온양여관과 일신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그 자리.두 여관 사이 317m의 골목길이 지난 7월 1일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의 거리’로 지정됐다. 이곳은 주말마다 차량이 통제된다.아산시와 상인들은 대학 동아리와 학원의 전시회 등을 유치해 예전의 영화를 되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주말이면 여관의 낡은 건물과 이 거리의 주 고객인 청소년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산에는 이밖에 현충사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묘,김옥균과 윤보선 전대통령의 묘,온양민속박물관 등이 있다.역사의 두께가 결코 얇지않은 도시가 이곳,아산이다. 구국과 충절의 영원한 상징인 현충사에선 98년부터 오페라 ‘이순신’이 공연되기 시작했다.구국과 충절의 무게가 너무 커서 보통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현충사로 ‘이순신’을 보기 위해 매회 1만5,000여명의 관람객이 쇄도했다. 역사와 문화가 결합될 때 얼마나 커다란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아산을 찾기는 더 쉬워졌다.도로도 넓어져 아산만에서 아산시내까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규명(李奎明) 아산시 관광기획계장은 “아산은 온천이 있어 겨울에도 포근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도시”라며 “아산이야말로 역사와문화,온천 휴양이 공존하는 원조 관광지로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산 이천열기자 sky@. *이렇게 가꿉시다. 제 고장에 묻힌 역사인물을 다룬 오페라를 갖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나아가 관광도시라면 그 오페라를 상설공연하여 ‘문화관광지’로서 입지를 넓히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그런 점에서오페라 ‘이순신’을 가진 아산은 행복한 도시가 아닐 수 없다. 성곡오페라단의 ‘이순신’은 이미 관광도시와 오페라가 결합하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1998년 아산에서 초연한 뒤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큰 성공을 거두었다.아산의 상징인 현충사와 신정호 야외무대에 올린 공연은 매회 1만 5,000명가량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1960년대까지도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끌던 온양온천의 소재지 아산은,묵어가는 관광지에서 최근에는 목욕만 하고 지나가는 관광지가 된것이 사실이다.이런 상황에 토요일 밤 현충사에서 펼치는 야외 스펙터클 오페라는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생각해 보라,오페라 ‘이순신’덕에 주말마다 최소한 수천명이 더 묵어간다면,아산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만 한지를…. 그러나 성곡오페라단은 아산 야외공연의 관객 숫자만 믿고 어이없는오판을 했다.‘이순신’을 들고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을 순회한 것은 그렇다 치고,5∼7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공연한다.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10억원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비·도비·시비가 투입된다는데 정부와 충남도·아산시 모두 이 잘못된 판단에 어울려 춤을 추는 셈이다.공연을 불과 몇달 앞두고 작곡을 다시한 오페라가 어떻게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호기심 끌기 이상의 성공을 거두기를 바랄까. 결국 ‘이순신’은 아산으로 되돌아와야 한다.아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봉사하는 오페라가 되어야 ‘이순신’도 살아나고 아산 경제도살 것이다.그런만큼 아산 상설공연에 투입해야 할 예산이 불필요한로마 공연에 쓰인 것이 더욱 아깝다.역사인물을 대형공연물로 만드는 데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각 지역 오페라단이나 창극단,그리고재정적 도움을 주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순신’에서 교훈을찾지않으면 안된다. 서동철기자 dcsuh@
  • ‘마지막 단풍’만끽하세요

    북으로부터 남하중인 단풍이 마침내 서울 도심에서도 절정을 이루고 있다.주변 산과 공원,고궁은 물론이고 거리의 가로수도 온통 울긋불긋한 차림새로 도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단풍은 전국의 유명산을 찾아 감상하는 것이 제멋이기는 하지만 시간과 경비에 제약을 받는 처지에서는 가까운 도심에서 가을단풍을 만끽하는 것도 알뜰한 지혜다. 서울시는 31일 도심 속에서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단풍길 36곳을선정,발표했다.은행잎이 눈부실 정도로 노랗게 물들어 있는 덕수궁돌담길을 비롯해 창경궁길 삼청동길 장충단길 등 총연장이 98㎞나 된다. 일반 도로는 낙엽이 떨어지면 환경미화원이 바로 청소를 해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없으나 이들 서울시가 선정한 단풍길은 낙엽을 제거하지 않아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한껏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옆 덕수궁 돌담길과 광진구청옆 쉼터,강동구 성내로,중랑천변 등에서는 모과 감 등 과일들이 탐스럽게 영글어 있어 단풍과 함께 계절의 풍요로움도 만끽할 수 있다. 최현실(崔賢實) 서울시 조경팀장은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단풍길을 걷다보면 서울이 삭막한 콘크리트 숲만은 아니라는 것을 절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6.15’이후의 북한] (6)인민예술가 정창모씨

    9월 7일 평양 국제문화회관 2층에서는 ‘인민예술가 정창모 그림전람회’가 개막됐다.주최는 조선미술가협회. 정창모 선생(68)은 지난 8월 15일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의 일원으로서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전주북중 재학중 19세의 나이로 월북한 한의용군 소년이 북의 화가중 최고봉인 ‘인민예술가’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개막식은 오후 4시였다.전람회장 앞홀에는 200∼3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정 선생과 가족들,조선미술가협회 관계자들,북의 대표적 전문미술창작단인 만수대창작사 관계자들,학생들,그리고 일반 관람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막식에선 문화성 부상(차관)의 축사가 있었는데 “장군님께서 정창모 선생의 ‘비봉폭포의 가을’(김주석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에 전시되어 기념촬영 배경으로 사용되던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다”는 언급에서도 북 화단에서 그의 위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개막식이 끝나자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그와 문화성 부상을 선두로 전시회장에 입장했다.서울에서 온 취재기자임을 밝히고 그 옆에 따라붙었다. 문화성 부상은 전시된 그림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았다.황량한군사분계선 위를 철새 떼가 날아가는 그림(‘장벽을 넘는 철새들’)앞에서 그가 물었다. “이 그림은 무슨 생각하면서 그렸소?” “분단의 아픔을 안고… 빨리 통일이 돼야 되겠다는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개성,금강산,임진강 등 군사분계선 일대를 그린 것이많았다.수없이 현지를 답사했다고 했다.설악산을 그린 ‘설악만봉’(1998년)도 있었다.부상은 “고향을 그리는 심경과 통일의 염원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들이구만”하고 감탄했다.백두산,묘향산,압록강등 국내는 물론 일본,폴란드 등을 현지 답사해 그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 서예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낙관의 날짜는 2000년 8월 18일.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쓴 것이었다. “모처럼의 전시회에 그림만 있으면 관람객들이 심심할까봐 써봤다”는 말이었으나 독특하고 힘있는 필치였다.화풍이 조금 다른 그림도보였다.대학생 시절의 습작품이라고옆에 있던 해설강사가 설명했다. ‘분계선의 옛 집터’란 작품 앞에서 모두들 멈춰섰다.대단한 그림이었다.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폐허가 된 집안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돌담은 다 무너지고 우물가에 깨진 장독들이 구르고 있었다.우물은메워져 그 안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자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닥에는 씨가 수북이쌓여 있었다.그가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깨진 독들이 나무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단말입니다. 바닥에 구르던 독들이 나무가지가 자라면서 거기에 걸려나무가지에 열린 거지요.너무 가슴아프고 비참해서 이 모습은 뺐습니다” 그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에 살건 북에 살건 이제는 이런가슴아픈 분단의 상처를 걷어내고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뜻을담고자 했습니다. 신 선생,이 그림 좀 남쪽에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 전시된 그림을 돌아본 후 그와 회견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 전람회는 어떻게 마련되었습니까?” “나는 전라북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세때 의용군으로 북에 들어왔습니다.이번 전람회는 내가 북에 들어온지 50년이 된것을 기념해서 마련되었습니다” “남쪽에 계실 때부터 그림에 뜻을 두셨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북에 들어와 군사하면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서클활동이 있을 때면 무대배경도 그렸습니다.그때 제 재능을 인정해주셨는지 57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그 어려운 시기에 귀한 외화를 들여 화구와 종이,지우개까지 우방국가에서 사다 공급해주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한 후 40년간 만수대창작사에서활동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와 일치하면서도 뭔가 다른 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우리 화가들에게는 조선화의 전통적 기법을 더 풍부히 발전시켜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습니다.옛날 것 그대로 모방해서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예술가로서의 내 몫은 없다고 생각해요.제 나름대로 한 평생을 바쳐서 조선화의 몰골(沒骨)기법을 더욱 현대화하고 화법에서 필치,색깔 문제들을 늙은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시대젊은 사람들의 감정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제 그림은 전통의 바탕에 서 있으면서도 선은 예리하고 질감이나 색채감각이 좀더 부드럽고 선명해서 어딘지 모르게 시적 감흥을 자아내는 면에서 남다른 개성이 있다고들 합니다.물론 모두가 대중이 평가할 문제입니다” “서울에 계신 동생들이 와서 보면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요.아직 한번도 만나지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선생님의 이번 서울방문을 기해서 전람회가 준비됐다가 취소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서울의 경인미술관에서 화첩도 출판하고 준비를 다 했는데 중간에 선 중국미술상이 협잡을 했는지 내가 가서 보니 54점중 대여섯개만내 그림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어요.섭섭하지만 잘되든 못되든 진짜 내 얼굴을 가지고 해야 하니까 전람회를 열 수가 없었지요.마음같아서는 이 그림들 그대로 다 가져가서 서울에 가서 했으면 싶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있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쳤다. 전람회장을 나서면서 기자는 산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군사분계선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새들은 날아가건만’ 남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50년간 찾지 못했던 화가의 아픔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한가위 祝詩/ 추석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자갈들이 일어서서 우는 이 나라의 시골길을 너와 지붕의 돌담길과 깨어진 비석을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서낭당 버려진 무덤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힘있게 흐르는 강물이 천리 강산을 달려와서 몇 평의 모래 밭을 만드는 것을 산에 마음 주며 네 자랐던 곳 서울서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 하늘 가까이 내려오다 멈춘 동네 백로의 날갯짓과도 같이 때에 절고 한숨에 전 동네 오랜만에 저 빈 집 빨랫줄에도 기저귀 널리고 애기똥풀꽃이 피어 웃음소리 화안하구나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말오줌내 엎질러져 이따금 하얀 질경꽃들이 피어 흔들리는 길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 우리들 흙 속에 바람 속에 잠들어 있는 그윽한 숨결을 찾아서 추석에는 교외선을 타자 남끝동 초록저고리 옥색치마의 한 주름에도 서러운 이 나라의 역사와 한숨이 배인 여인아 너와 나는 이슬 묻은 어느 산자락 항아리처럼 누워서 가을볕 아래 질펀히 흘러가는 저 모래톱이며 강물을 보자 추석에는 우리 다 함께 교외선을 타자 저 허공 위에 빗장구름 펄펄 날리며 도라지 풀 초롱꽃 더윗술 걸러 마시고 어느 여울물에 손발을 씻자 손발을 씻어 새 힘으로 뭉쳐서 돌아오자. 송수권. *한가위 祝詩·祝畵 작가. ◆축시 송수권 시인 송수권(宋秀權·60) 시인은 전남 고흥 출생으로순천사범학교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1975년 월간 ‘문학사상’에 ‘산문(山門)에 기대어’외 4편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시집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초록의 감옥’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등을 발간했다.소월시 문학상,정지용 문학상,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대성 화백 소평(小平) 박대성(朴大成·55) 화백은 경북 청도에서 출생했으며 1974년 대만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1979년 ‘상림(霜林)’으로 제2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했다.북한 화문(畵文)기행을 다녀왔으며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열었다.동양회화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혁신적인 감각을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한가위 연휴 가족나들이 명소 5곳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야’한가위 같은 명절을 지내고 돌아온 이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푸념.사람살이가 날로 강퍅해져 고향 인심도 예전같지 않고 무엇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변해버린 고향집과 그주변 풍광이 사람들의 가슴에 찬바람을 일게 한다.길이 뚫리고 산이잘리고 우리네 인정도 뚝뚝 잘라지는 것 같기만 한 것이다. 한가위 연휴,고향가는 길을 서두르거나 귀성길을 바삐 채비해 고향의 모습을 제대로 간직한 전통마을을 둘러보면 어떨까.평소 발품이나시간을 많이 들여야 찾을 수 있던 곳을 가볍게 찾아보자.아이들에겐좋은 교육이 될 것이고 가족들에겐 잃어버리고 헐거워졌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이쯤이면 ‘한가위만 같아라’는 우리네 덕담도 허튼 말은 안될 터. ●송천 떡마을 명절날 떡시루 옆에 괜스레 앉아 코묻은 손으로 밀가루 번을 떼었다 붙였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강원도 양양읍에서서울로 오는 길은 세갈래.강릉으로 내려가 영동고속도로를 타거나 한계령을 넘는 길도 있지만 오색 못미쳐왼쪽 56번국도로 접어들어 구룡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이 길에 접어들어 10여분 달리다보면 큰 길가에 좌판을 벌인 떡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길손들은 시장기나 속여볼 요량으로 한봉지 사들었다가 이내 마을로 들어서고 만다. 도시에서 맛보던 인절미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맛에 매료되기 때문.예전에 굴피집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초가와 기와를 올렸지만 그래도 굴뚝의 까치구멍 등 옛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100년 가까이된 떡판에 직접 찹쌀을 빻은 가루를 쳐내 인절미를 만든다. 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소만 전체 30여가구 중 13가구가 넘는다.관광객들은 직접 떡메를 들고 떡을 쳐보기도 한다.소문난 떡집 (033)673-4316,민속떡집 673-8977여행자클럽 (02-2277-5155)에선 10일과 11일 1박2일 일정으로 정선아우라지와 송천마을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어른 9만,000원,어린이 7만5,000원)을 판매하고,옛돌(02-2266-1233)은 10일 하루 일정(4만원)을 마련한다. ●봉화 닭실마을 우리나라 오지의 몇 손가락안에 꼭 들어가는 경북봉화군.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은 명절때면 할머니들의 즐거운 비명이 그득하다.전국 각지에서 옛날 비법대로 만든 한과를 주문하는 전화가 폭주하기 때문이다.부녀회관 (054)673-9541닭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금계포란형의 명당터로 알려진 닭실마을은 콧대높은 안동 권씨의 집성촌으로도 이름짜하다.150여가구 400여 주민 가운데 대다수가 권씨집안이다.300∼400년 된 종가집이 그대로 남아있고 반달 모양의 월문,종가집 옆에 세워진 청암정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영월로 진입한 뒤 88번 국도를 타고 단양쪽을 버리고 직진하면 곧 봉화에 이른다.청량리역에서 매일 오후11시 출발하는통일호가 춘양역(054-673-7788)까지 직접 연결된다. 우리여행사(02-335-7137)에선 10∼11일 닭실마을과 울진 월송정해변,백암온천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9만5,000원에 판매한다. ●영덕 종가집마을 ‘소안동’으로 불릴 정도로 떵떵거리던 종가집들이 모여있는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고려때 칠보산 줄기에 학처럼 날개를 펼친 형국의 길지로 꼽혀 이태껏 인재의 출현이 심상치않았다.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과 삼은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나옹화상 등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명나라 신종황제의 친필현판을 걸어놓은 재령이씨 집안의 충효당과 사당 사암재,야성 정씨의 고택으로 평산 신씨집안이 사들인 만괴루,효자로 소문난 이시형의 우계종택,병조참의를지낸 김익중의 용암종택 등 각 씨족의 종가집만 해도 8채가 넘는다. 봉화에서 해안 드라이브코스로 이름높은 918번 지방도로를 타고 영해에 이른다.영해면사무소 (054)732-3003●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아산시와 천안시 경계인 광덕산 밑에 자리한 외암리는 500년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의 종가댁을비롯,86채의 고풍스런 옛집들이 포진해있다.이끼낀 돌담 너머로 엿보이는 감,살구,밤,은행나무 등이 살갑고 마을 입구의 장승은 물론 디딜,연자,물레방아 등과 많은 민속유물이 전시돼 있다.국가지정 민속자료 195호인 외암참판댁이 특히 유명하다. 천안을 거쳐 아산시에 이른 뒤 남쪽으로 난 39번 국도를 따라 34㎞를 남하한 뒤 송악외곽도로로 진입하면 된다.아산시청 문화관광과 (041)540-2542●서울 성락원 조선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것을의친왕 이강공이 별궁으로 사용하다 그 아들 이건공이 살았던 곳이다.면적 4,358평의 성락원은 자연 지형을 살려 건물을 배치,도심 속에서 청류를 즐길수 있다. 자연스레 구성된 수풀과 Y자형의 개울 그리고 인공적인 석가산이 절묘한 균형미를 이루고 있고 인공미가 가해진 자연연못,용벽지는 공간미의 극치를 보여준다.건물들 뒤의 후원과 같은 공간인 심원은 지붕을 뚫고 서 있는 노송이 눈길을 끈다.지붕에 나무 그늘이 지는 것을피해왔던 오랜 관습에 파격인 셈. 주변에 양잠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던 선잠단지(先蠶壇址),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지냈던 심우장(尋牛莊),우리나라 최초의사립박물관으로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를 거느린 간송미술관,1세기전별장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재준家,소설가 상허 이태준家가 있다.성북구청 관광정보센터 (02-920-3787)임병선기자 bsni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1)낯선 땅에서

    내가 전라도에 내려가서 십 년이나 살았으니 이사 다니기를 동네 마실 다니듯 하던 나로서는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청소년 시절에 전라도의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도시가 답답해지면휘익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곳이 전라도였다. 칠십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전라도의 시골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데가 많았다.정답고 포근해 뵈는 초가집이며 토담과 돌담으로 이어지는 고샅길이며 왕대숲과 남도에서만 자라는 동백,석류,수선화,무화과,오죽,시누대,배롱나무들이 탱자울 넘어 작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그리고 수려한 가지를 늘어뜨린 붉은 소나무들이 늘어선 곳에 이끼 얹은 기와를 올린 옛집이 한 두 채씩 있었다. 대전 논산을 지나 도계를 넘어 벌써 전주에만 가도 이런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아무데나 이를테면 버스 차부 모퉁이에 있는 작은 주막엘 가보아도 서화가 걸려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런 집 뒷간엘 가도 작은 산수화나 사군자가 걸려 있었다.주전자로 막걸리를 파는 장터 앞의 선술집에서도 따로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곁들이 안주로 꼬막무침에 생선토막에 나물에 묵에 술국에다 나중에는 수박 두어 쪽까지 나온다.그러니 남은 안주가 아까워서 한 주전자 더 시키고 그러면 안주가 다시 나온다.꼭 한 잔씩만 하자고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안주 맛에 이끌려 지지벌겋게 거의 만취가 되어서 술집을 나서게만든다. 비빔밥이니 콩나물국밥이니 하는 것들이 진작에 어느 도시에서나 흔해졌지만 옛날 전주 콩나물 해장국은 조금 달랐다.나는 어떻게 된 것이 글쟁이 보다는 그림쟁이들과 잘 어울려 다니던 편이었는데 그들은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술 또한 잘먹는다.그래서 걸핏하면 술잔이 나르고 주먹이 올라가는 자리가 되기 일쑤이건만 술자리 하나는 언제나 질펀하다. 콩나물 해장국은 왕멸치로 국물을 내어 통통하고 실하게 자란 콩나물을 넣어 간을 따로하지 않고 맑은 채로 끓이는데 내오기 직전에 달걀 흰자위를 풀어 넣어 준다.노른 자위가 섞인 채로 덩어리가 된 채로 그릇의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 식은 텁텁해서 맛이 없다.뚝배기에 한 그릇씩 끓인 국이 상에 올라와도 아직 보글보글 끓고 있다.끼끗한 육젓 새우젓이 하얗게 따라 나오는데 이것을 조금 넣고 국물도 넣어 간한다.반찬은 김치와 깍두기인데 어떤 이들은 깍두기 국물을 국에 넣기도 한다.나는 그냥 맑은채로 먹는다.속풀이 한다고 식물성으로만 말갛게 먹기에는 아무래도 슴슴한지 장포를 찢어 내놓는다.요즈음 시중에서 장조림을 성의껏 내는 집도 있지만 장포라야 맞는다.쇠고기 홍두깨살이나 대접살을 삶아 포를 떠서 굽는다.양념장을 고루 발라서 다시 한번 굽고 두들기고 이런 식으로 몇 차례 양념이 속까지 배도록 약한 불에 구워서 잘게 찢은 다음에 잣가루나 깻가루를 뿌린다.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때에 또 한 가지 곁들여야 할 것이 있다.바로 해장술인데 진하게 걸른 막걸리에 흑설탕을 넣어 한소끔 끓여서 뜨거운 채로 사발에 내다 준다.국밥을 먹는 사이 사이로 이 해장술을 마시면 온몸이 후끈해지고 땀이 나면서간밤의 숙취로 무둑하던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진다. 전북 전주 남원 지방의 음식이 다양하고 맛깔스런 것들이 많아서어느 것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모를 정도다.고들빼기나 무소박이 더덕김치 같은 것들은 여러 문인들의 입담에 오르내리거니와 추어탕이며 오리탕이며 용봉탕이며하는 것도 있고,특히 상이 모자라서 겹쳐 놓고 비워지는 순서대로 다시 늘어 놓아야 하는 한정식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까 싶을 만큼그 맛과 인심이 남도다웁다. 어떤 이는 곳곳의 서화와 한정식의 풍요로움이 지주 문화의 잔재라고 약간의 비아냥을 섞어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일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 치레에 치중하는 것은 역시 중인의 것이다.감영이 있던 데나 군영이 있던 곳,또는 상단이 있던 고장에는 먹을만한 음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서울에서도 오래된 전통 여관에서는 아침에 숙박비에 포함된 밥상을 차려 주는 데가 더러 있었다.내가 남도 쪽을 돌아다니던 시절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골 읍내의 여관에서는 아침 밥상을 들여주었다.대개 책상반에다 국과 밥,그리고 조치라고 하는 찌개 한 가지에 생선이나 고기반찬에 마른반찬,나물,간장,고추장,젓갈 등속을 정갈한 사기 그릇이나 유기에 담아 내왔다.정겨운 것 한 가지가 있으니 작은 접시에 날달걀 한 개를 담아내오는 것이다.밥을 반쯤 먹고나서 남은 밥에 달걀을 깨어 넣고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그야말로 집에서 먹던 가정식 백반인 셈이다. 상차림에도 격식이 있어서 칠첩반상이 기본이었다.밥과 국에 김치 한 두가지 찌개나 찜이 나오고 첩에 들지 않는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등이 있고 숙채,생채,조림,구이,전유어,회,마른반찬의 일곱가지가 칠첩이다.구첩반상은 위에다 나물,구이,조림 등의 숫자를 늘린 것이며,교자상은 여러 사람이 연회를할 적에 먹는 겸상이다.한정식 집에서 내던 상이 바로 이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상 다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가짓수가 많았다.구절판과 신선로와 소 닭 돼지 고기와 해물 어패류가 함께 한다.낮것상이라고 하여 점심에 원반에다 간단히 차리는 독상도 있다.그런가 하면 술과 각색 안주를 차려 놓는 주안상이 있다.구절판에 산적에,편육,회,냉채,찜,신선로,전유어,마른 안주 등속이 올랐다. 내가 칠십년대 중반에 어딘가 농촌 지방으로 가야겠다고는 진작에 작심을 하였으나,전라도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데에는 그 해 여름의 여행길 때문이었다.우연히 스케치를 하러 가는 화가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가 처음으로 강진이라는 곳에 이르렀다.물론 정약용의 유배지 만덕산 다산 초당에도 청자 가마터에도 가보고 너른 갯벌과 탐진강 줄기도 바라보았다.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옛날 읍내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대숲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하였다. 그래서 당장에 갯가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맞춤한 집을 찾다가 그만두고 옆고을인 해남으로 가서야 사정에 맞는 집을 구하여 꿩 대신 닭이라고 그 고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아니 해남이 닭이라니,말도 안되는 소리였다.비록 읍내에서 바다가 멀기는 하여도 아늑하고 풍광 좋기로는 해남이 더욱 옛고을다웠다. 식솔들을 버스로 보내고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 앞자리에 앉아 먼지나는비포장 길을 달려서 우슬재를 넘는데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저 아랫편에 업드린 해남 읍내와 들판이 보였다.내가 찾아낸 집은 고래등 같은 고가의 마당안에 무슨 더부살이 집처럼 따로 낮은 돌담을 두른 남도식의 일자집이었는데 어른 셋이서 팔을 둘러야 겨우 닿을 만큼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당 귀퉁이에 서있었고 역시 사람들 말로 삼백년 묵었다는 동백나무가 있었다.동백나무는 전에 살던 이가 너무 잎이 무성하여 잘랐다는데 그 아래 둥치에서 새 순이 돋아나 오히려 분재나무처럼 둥글고 탐스럽게 자라났다.느티나무와 동백은 무슨 부부처럼 사이 좋게 아래 위로 서있었다.
  • [대한시론] 백년전의 세 金씨

    [신복룡 건국대 교수·정치학] 세 김씨라는 말만 들어도 독자들은 넌더리를 내겠지만,나는 지금의 얘기를하려는 것이 아니라 백년 전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그때에도 3김이 있었는데 김옥균(金玉均,1851∼1894),김홍집(金弘集,1842∼1896),그리고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그들이다.하기야 그리 흔치도 않은 허(許)씨 셋이서 나라를 떡 주무르듯 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국 인구의 22%를차지하고 있는 김씨가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이상할 것도 없지만 어쩌면 역사는 이토록 반복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역사는반복한다”고 말한 토인비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세 김씨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너무 다른 길을 갔다.김옥균은늘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과격하여 사상을 의심받았고 결국에는 잔명을 보전하지 못한 채 저자의 주검이 되었다.김홍집은 사람은 진국이었으나 무능하여 한 시대를 위기로 몰아넣고 결국 자신도 덕수궁 돌담길의 시체가 되었다.그리고 재승박덕(才勝薄德)했던 김윤식이다.그런데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바로 세번째 김씨인 김윤식이다.명문청풍 김씨의 후손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스승으로부터 장차 대제학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으며 젊은 날을 보낸 그의 전도는 그야말로 막힐것이 없었다.그는 영선사가 되어 청국으로 들어가 한·미 개국 교섭의 막후실력자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외무대신과 중추원 의장을 거쳐 그의스승의 기대대로 대제학이 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김윤식의 일생은 그 훗날이 문제였다.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긴자(銀座)에서 호강도 했고 한일합방이 되자 자작(子爵)의 칭호와 함께 합방축하금 5만원을 받았으며,시서화에 능해 그의 문집인 ‘운양집(雲養集)’은 1915년에 일본학사원 상을 받았으니,만약 그에게 후손이 없고 이 나라가 영원히 일본의 속방이 되었던들 그의 일생은 누릴 것 모두 누린 셈이요 욕되거나 후회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1922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신문들은 한국의 셰익스피어가 서거했다고 법석을 떨었고,최남선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조사를 썼고,박영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위원회가 구성되어 그를 유월장(踰月葬)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그러나 그때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민중은그를 용서하지 않았고 결국은 사회장이 취소되고 가족장으로 양주 땅에 묻혔다. 필주(筆誅)의 뜻을 아는지? 내가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의 재주이다.그는 너무 오래 살았고,늙어서도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세속을 탐냄으로써(老貪) 그의 살아 생전의 공을 모두 묻어버렸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김옥균인들 허물이 없었을까만 그는 국가를 개혁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허물을 덮었고,김홍집은 한창 일할 쉰 넷에 죽었으니 한이야 없을까만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윤식은 김옥균보다 두 배를 더 살고 욕을 열 배로 더 먹었으니 옛 성현의 말씀대로 ‘오래 산 것이 욕(壽則多辱)’이었다.왜 가장 늦게 태어나 가장 이른 나이에 가장 먼저 죽은 김옥균은 역사의 사면을 받았는데 가장 먼저 태어나 가장 오래 살다가가장 늦게 죽은 김윤식은 그토록 욕을 먹는것일까? 첫번째 김씨는 너무 과격했으나 역사에 공적을 남겼고,두번째 김씨는 다소무능했으나 자신을 탐하지는 않았기에 그나마 역사에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세번째 김씨는 그 경륜이 일세를 풍미했으나 너무 때묻었기 때문에역사의 오명을 벗을 길이 없다.그런데 나는 지금 김윤식을 필주하는데 왜 자꾸 김종필의 생각이 머리에 맴도는지 참으로 이상하다.원내 교섭단체가 뭐기에….
  • 국회의사당 돌담 허문다

    국회가 열린다.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감싼 돌담이 허물어지고,국회의원과 일반인을 가르는 출입문이 하나로 합쳐진다. 국회 사무처 고위관계자는 19일 “열린 국회를 지향하는 뜻에서 국회 주변의 담장을 완전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열린 국회’를 위한 국회 사무처의 계획은 ▲담장 허물기 ▲출입문 구분없애기 ▲엘리베이터 구분 없애기로 요약된다. 현재 국회는 국회의사당 본관과 국회의원 회관,국회도서관,헌정기념관,후생관 등 부속건물이 2m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국회 사무처는 선진국처럼 이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생각이다. 일반인들에게 위화감을 불러 일으켜 온 출입문 구분도 없앨 계획이다. 국회의사당 본관과 의원회관의 출입문은 현재 둘로 나누어져 있다.가운데큰 문은 국회의원만 이용할 수 있고,국회 직원이나 일반인들은 옆 쪽문으로드나들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나 국회 주변에서는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비난이 줄곧 제기돼 왔다. 사무처는 본관과 의원회관의 엘리베이터 역시 의원용과 일반용의 구분을 없앨 방침이다. 사무처는 이달 하순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연내 철거를 목표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그러나 출입문 구분 폐지를 놓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반발할 것으로 예상돼 추진과정에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김병오(金炳午) 사무총장의 한 측근은 “‘국민과함께 하는,국민 속에 있는,국민에게 열린’ 국회를 만드는 것이 김 총장의목표”라며 “담장 철거는 이를 위한 상징적 작업”이라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는 담장 철거로 제기될 보안·경비 문제를 보완하는 방안으로국회 외곽에 전자경비시스템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
  • 영화 ‘서편제’ 촬영지 전남 완도군 청산도

    그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남도 들녘을 지치도록 달린 끝에 완도항에서 60리 뱃길,멀리 푸른 한 점으로 떠오른 청산도가 다가온다.섬 전체를 두른 푸른 기운이 따사롭다.비경이나절경보다는 그저 사람을 오롯이 받아주는 넉넉함이나 갯내음에 실려오는 사람냄새의 그윽함이 눈에 찬다. 높이 300m에 불과한 대봉산과 매봉산은 바닷길을 헤쳐온 이들을 보듬어 안고그 산아래 돌을 쌓아 바람을 막은 계단식 논밭이 정감을 두드린다. 섬 전체가 여행객의 시간개념을 과거로 돌린다.배에서 조금 지체했더니 섬사람들은 모두 길을 재촉해 사라진 뒤.한적한 도청리 포구를 빠져나와 오르막길을 오르니 격랑을 일순 잠재운 도락포의 고요한 해면에 잇닿아있는 구들장논밭이 눈에 들어온다.논에선 쟁기질하는 우공들의 ‘음메’ 소리가 높고 김매는 할머니들의 ‘이바구’도 정겹다.푸른 하늘을 허리에 인 할머니의 도리깨질도 힘차고 저 아래 깎아지른 듯한 황톳길을 힘들게 올라오는 할머니들의바구니에는 막 따낸 굴의 갯내음이 물씬하다. 낯선 길손에게 할머니들은 ‘뉘집 아들인가’ 관심을 보이고 “이 촌구석에뭐 볼게 있다고 먼 걸음을 했소이” 하며 나무라는 체 한다. 해송이 드리운 아래쪽에는 논이 있고 여기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한참 멀다. 이웃마을에서 노래를 팔고 돌아온 유봉(김명곤)과 의붓딸 송화(오정해),의붓아들 동호(김규철)가 함께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춤으로 내려오던 토담길.영화 ‘서편제’를 이곳에서 찍었다. 길을 되짚어 나와 고개를 넘으면 당리마을.바람을 막고 돌아앉은 마을 한가운데 ‘서편제’에 나왔던 초가집이 약간 빛바랜 얼굴로 서있다.살림 냄새는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 마을 골목길은 사람사는 정내로 가득하다.대문을 달지 않아 골목으로 착각한 길손들은 집안으로 쑥 들어가기 일쑤이다.어두컴컴한 집안 구석에선 흑염소 3∼4마리가 자기 존재를 알린다.무턱대고 들어간 길손에게 “사흘에 한번밖에 물이 안 나오지라” 하면서도 굳이 물을 싸가라고 떠다민다. 다시 당리에서 북동쪽으로 3㎞.마침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 낙조가 도락포에 드리운다.그저 붉은 빛의 일몰이 아니다.오렌지 빛,푸른 빛이 배어있는온갖 색들의 잔치. 일몰의 아름다움에 취해 운전자는 핸들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이 섬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는 지리해수욕장 민박집 뒤 갯바위 동산에 선 나그네들의 탄성이 극성스럽다.그악하다.그네들 가슴엔 불이 붙었다. 밤이 내린 지리해수욕장의 1㎞ 백사장도 일품이다.모래는 설탕가루처럼 곱게날리면서도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견고하기도 하다. 이곳 해송은 동해안의 그것보다 많이 구부러져 있으면서도 키가 크다.낮엔 상큼한 바닷바람과어우러져 그늘을 만들었을 해송 위로 달님이 얼굴을 내민다. 해송 뒤편 논에선 개구리가 합창을 시작한다.코러스는 파도가 넣어준다.‘쏴’하는 소리 사이로 ‘개골개골’. 부드러운 모래밭에 누워 노래를 부른다.‘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잠이 듭니다.바다가 불러주는…’다음날 섬 일주.북동쪽의 비포장 4㎞ 비포장을 포함해 16.5㎞ 남짓.그러나차를 타지 말고 걸을 것을 권한다.걷다 보면 산딸기·비듬이 지천이고 지칠때쯤이면 차가 멈춰선다.함께 타고 가자고.이 섬의 갈대는 키가 작고 보송보송한 잔털이 유난히 푸짐해 나그네를 유혹한다.지리와 도청리 양지바른 곳에있는 초분(草墳)도 나그네를 멈추게 한다. 50㎝ 높이로 돌을 쌓은 위에 죽은자를 넣은 널을 얹고 짚으로 덮어둔 뒤 3년이 지나 뼈만 남으면 묻는다. 섬에 산재(散在)해 있는 고인돌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의 북동쪽 진산리엔 이곳 사람들이 갯돌이라 부르는 자갈밭이 600m 정도펼쳐져 있다.파도에 쓸려 나가며 돌들이 내는 ‘사갈사갈’ 소리가 제법 만세소리를 연상케 한다. 원래 청산도는 보리밭과 갯바위 낚시로 유명하다.4·5월 한창 이삭이 팬 보리를 구경하는 재미와 75㎝짜리 감성돔을 낚는 기쁨도 있지만 이제 막 모내기에 한창인 6월의 청산도를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특히 어린이를 함께 데려간다면 물질문명에 눈이 가린 그네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나그네들은 섬을 떠나며 고개를 끄덕인다.선산(仙山)도 또는 선원(仙源)도라 불렸던 섬의 옛이름이 떠올라서이다. 글·사진 청산도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완도는 광주에서 해남보다 강진쪽으로 가는 편이 빠르다.강진에서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813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완도행 고속버스 첫차는 오전 7시45분,막차 오후 5시30분,하루 4회운행하며 6시간 걸린다. 완도항(0633-554-3294)에서 청산도행 카페리는 하루 4차례(오전 8:20,11:20,오후 2:30,5:40)이고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편도 4차례(오전 6:30,9:50,오후1:00,4:10).어른 왕복 1만1,050원,승용차 도선은 왕복 4만원. 지프 택시(552-8519)를 이용하면 3만원에 섬을 일주할 수 있다. ◆잠잘 곳과 먹거리 지리해수욕장 서쪽 끝에 외롭게 지내는 박달진 할머니(76)의 민박집(552-8891)이 좋다.1m 높이의 돌담 너머로 바다를 오롯이 보며잠자리에 들수 있고 넓은 마당도 있다.근처에 빈집도 상당수 있다. 낚시터로 유명한 권덕리에도 민박집이 많고 선상 낚시도 알선한다.도청항에는 칠성장(552-8507),경일장(554­8517),청운장(552-9988) 등이 있다. 도청리에 자연식당(552-8863)과 경일식당(552-8517) 등이 매운탕,회덮밥,생선회를 내놓는다.그러나 다른 마을과 해수욕장에는 음식점이 없다.
  • 수묵화가 박대성씨 5년만에 개인전

    소평(小平) 박대성(55).수묵의 운필로만 30년의 화력을 쌓아온 그는 대자연을 스승으로 독학,한국 수묵화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입지전적 작가다.활달한 붓놀림과 강인한 필세,청명한 갈필(渴筆)과 은은한 먹빛.소평의 그정갈하고 자유로운 선과 묵향의 세계는 수묵화 본연의 품격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자연의 진리를 먹그림에 담아온 그가 18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울 평창동가나아트센터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해금 일출’‘삼선암’‘향원정’‘묘향산 만폭동’‘평양 연광정’등 99년작과 올들어 완성한 ‘금강전도’‘돌담수화(樹話)’‘정방산 성불사’‘병산서원’‘오견금강산도’,문인화 ‘가지’등 근작 4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묘향에서 인왕까지’라는 제목이 붙었다.그렇듯 조국의 산하가 주된 소재다.작가는 지난 10년동안 묘향산,금강산,백두산,정방산 등 북한지역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북한산,인왕산까지 골골샅샅이 누볐다.그런 다리품 끝에 묘향산의 정기를 담아낼 수 있었고,화가로서 도전하기 쉽지않은 안동의병산서원을 농축된 화법으로 그려 냈다.작가는 북한에서 제일로치는 묘향산을 “백두와 금강을 합친 것”이라고 말한다. 수묵화의 생명은 선(線)이다.선이 살아 있어야 한다.소평 역시 그런 필선을 중시한다.그의 거실에 걸려 있는 마우쩌둥의 시 ‘만강홍(滿江紅)’을 옮겨 쓴 현판은 소평 그림의 수려한 필선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그는 요즘고려불화의 선에 매료돼 있다.“섬세하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고려불화의 선은 거미줄에서 예지를 얻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평은 지난 98년 북한 화문(화文)기행을 포함,수차례에 걸쳐 북녘의 산하를 둘러 봤다.그 때 스케치해둔 북녁의 풍광이 이번에 먹그림으로 온전히 되살아났다.전시작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견금강산도’.가로 11m,세로21㎝의 장축으로 연결된 그림이다.동해의 장전항에서부터 온정리를 지나 외금강,삼선암,괴면암,만물상,삼일포,해금강,명사십리,신계사,그리고 조선 후기부터 대가들이 즐겨 그렸던 옥류동 계곡,비룡폭포,구룡폭포에 이르기까지금강산 절경이 차례로묘사돼 있다.그 풍경 사이사이엔 꽃을 그려넣어 사계절의 경계를 지었다.적재적소에 배치된 산뜻한 색깔의 할미꽃,도라지,금강초롱,해당화,구절초가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산수화의 약점을 거둬낸다.해금강 일출 대목은 해가 뜨는 자리에 ‘양’자의 도장을 찍어 멋을 내기도 했다.동양화에서 흔히 쓰는 ‘유인(遊印)’,즉 문자도장이다.장축의 그림은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채우고 비우는 허허실실이 맞아야하고 음양의 조화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묵산수화는 전통적으로 문인화적인 화풍 일색이었다.실재하는 자연을 그린 실경산수화일지라도 정신성을 중시하는 사의(寫意)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소평의 수묵화 또한 그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하지만 그는 다양한 소재와 표현형식을 통해 문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다.그의 그림에는 현대적인 감각들이 시원스레 배어 있다.문방사보와 함께 옥판선지와 한지를 사용하는 그는 더러는 붓질을 건너뛰고,대담한 간필(簡筆)을 활용하며,망실된 구조물을 복원해 그리기도 한다.그의 화면경영은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다.(02)3217-0233. 김종면기자 jmkim@
  • 자원봉사로 유적지 새 단장

    ‘유적지 정비를 주민과 함께’ 서울 종로구(구청장 鄭興鎭)는 관내 직장인 및 주민,사회단체 회원 등과 함께 관내 유적지 정비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주민 및 직장인들이 함께 손잡고 관내에 있는 유적지를 정비하게 함으로써애향심을 길러주고 유적지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기 위해서다.특히 공공근로인력 대신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행사때마다 500만∼1,000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부대효과도 거두고 있다. 종로구는 지난 4일 관내에 있는 현대건설 직원,주민,학생 자원봉사자 등 1,000여명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인근에 있는 종묘를 말끔히 정비했다. 이들은 고궁 돌담길에 담쟁이덩굴과 능소화 등을 심고 고궁 주변 가옥과 담장 등을 도색했다.또 인근 율곡로와 북촌길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종로구는 또 오는 9일에는 새마을부녀회 환경운동연합 자연보호협의회 등사회단체 회원 300여명과 함께 부암동 세검정을 정비한다김용수기자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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