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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tro]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설명회

    서울시는 9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제1권역 공모설명회를 연다고 8일 밝혔다.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서울 곳곳에 예술작품을 전시해 서울을 하나의 커다란 미술관으로 만드는 문화사업이다. 서울시는 제1권역 사업으로 9개 분야를 정했다.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대표할 만한 장소로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덕수궁 돌담길, 정동로터리 등 3곳을 선정하고 공공미술 사업을 공모한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Metro]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설명회

    서울시는 9일 오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제1권역 공모설명회를 연다고 8일 밝혔다.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는 서울 곳곳에 예술작품을 전시해 서울을 하나의 커다란 미술관으로 만드는 문화사업이다. 서울시는 제1권역 사업으로 9개 분야를 정했다.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대표할 만한 장소로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덕수궁 돌담길, 정동로터리 등 3곳을 선정하고 공공미술 사업을 공모한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OUR STORY] 봄처녀를 그리다

    꽃을 보면 눈이 즐겁고 마음이 화사해진다.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진다. 어떤 꽃인들 그러지 않을까마는, 차디 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봄꽃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다.3월이라…. 초순을 훌쩍 넘긴 이맘 때라면 청매실 농원이 있는 광양 매화마을로 가야 한다. 바람에 흩날린 하얀 매화꽃이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광경, 생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섬진강 자락에 기댄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 마을에선 노란 산수유가 다투어 피어났다. 해마다 중순을 넘어서야 만개하더니 매화꽃을 시샘하는 까닭인가, 일찌감치 꽃을 피워 냈다. 계곡과 돌담 사이에 흐드러진 산수유가 눈부시고 애절하다. 이맘 때면 또 봄이 깃든 약숫물, 고로쇠가 매화, 산수유와 공명을 다툰다. 삼국시대 병사들이 전투 중 화살에 꽂힌 나무에서 흘러나온 고로쇠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던가.‘나도 예 있소!’하며 목청을 높이는 듯하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휘감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에 봄빛이 완연하다. 주 초반 꽃샘추위가 반짝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서둘러 찾아 온 봄이 개화시기를 앞당겨 놓은 탓에 서두르지 않으면 낙화하는 모습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만화방창 때는 좋아 아니 가지는(?) 못하리라∼. 글 사진 구례 손원천 기자 km@seoul.co.kr ■ 산수유 군락지 전남 구례 산동 상위마을 전주와 임실을 뒤로하고 남원땅에 접어드니 이름도 살가운 춘향터널과 방자교차로가 이방인을 맞았다. 설핏 웃음이 흘러 나왔다. 혹시 몽룡 고가도로나 향단이 삼거리, 변학도 다리는 없을까. 도로시설 이름만으로 가슴 한자락 내려놓게 하는 남도의 해학에 장시간 운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 노란 군무(群舞) 산수유 남원을 지나 20분쯤 달렸을까. 봄물에 방게 기어 나오듯, 고샅길과 개울가 곳곳에서 노오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던 산수유가 어느새 선연한 노랑색 군락을 이루며 눈앞에 펼쳐졌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국내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작가 윤대녕씨가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던 바로 그 꽃.3월로 들어서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가 산동마을 농가 앞마당과 돌담길, 논두렁이며 산기슭에 꽃구름을 피워 놓았다. 마치 마을 전체가 노란 구름에 파묻힌 듯한 느낌. 노랑빛 감도는 이끼가 낀 채 단정하게 서 있는 돌담길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좁은 돌담길을 걷다보면 남녀간 정이 도타워지고, 없던 정도 생긴다 해서 사랑의 길이라 불린다. 그 돌담 위로 산수유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산수유도 돌담도 온통 노랑빛. 때마침 내린 봄비마저 노란 색깔을 머금고 흩뿌려지는 듯하니, 그야말로 꽃처럼 아름다운 봄날이다. 아마 여수·순천 10·19사건 때 ‘산동애가’를 부르며 토벌대에 끌려갔다는 19세 백씨(氏)소녀도 그처럼 아리따웠을 게다.‘잘 있거라 산동아 한을 안고 나는 간다/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고/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발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산수유가 지리산을 노랗게 물들여갈 때면 이곳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산동애가의 한 구절이다. 산수유에서 왠지모를 애절함이 느껴졌던 건 이처럼 가슴아픈 해방공간의 현대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상위마을에서 19번 국도를 가로질러 가면 만날 수 있는 현천마을과 반곡마을 또한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산수유 명소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 가볼 만한 곳 ●사성암 화엄사쌍계사 등 지리산을 대표하는 거찰 외에도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사성암도 놓치면 아쉬운 볼거리. 절 뜨락에 서면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드넓은 토지면 등 구례 들녘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물줄기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다. 문척면 죽마리. ●운조루 1776년 건축된 조선시대 전통 양반가옥.‘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의 이름만큼 아름답다. 남한 3대 길지(吉地)위에 세워져 세인들의 관심을 더한다. 중요 민속자료 8호. 토지면 오미리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해 갈 경우, 산수유마을을 먼저 둘러본 뒤 매화마을로 가는 게 편하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나와 남원 방향 17번 국도를 탄 뒤, 임실을 거쳐 남원시 직전에 있는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19번 국도로 갈아 탄다. 밤재터널을 지나 지리산온천랜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2㎞쯤 가면 산수유 마을에 닿는다. 매화마을은 산수유 마을에서 나와 다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방면으로 가다 화엄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861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직진, 화개장터 지나 남도대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면 된다. 산수유마을에서 40∼50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구례까지 가는 것이 우선. 구례행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차례 운행한다. 기차는 하루 15회. 구례구역에서 내린다. 상위마을까지는 구례공용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061)780-2731. ■ 지리산 피아골 직전마을 고로쇠 ‘여러분은 지금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계십니다.’지리산 피아골로 향하는 섬진강변 861번 지방도로 한쪽에 서있는 입간판 글귀다. 가슴에 여실히 와 닿는 명문. 최소한 이맘때 만큼은 더없이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 봄이 깃든 물 고로쇠 산수유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을 봄비에 씻기운 맑고 깨끗한 섬진강 바람에 날려보내고, 지리산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동네 직전마을로 향했다. 고로쇠 산지로 유명한 곳. 경칩을 막 지난 요즘 이 마을 사람들은 고로쇠 채취로 분주하다. 가을엔 부지깽이도 덤빈다더니, 딱 그 모양. 봄기운이 약동하는 피아골 자락에 나무들의 수액 차오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피아골에서 고로쇠 채취로 40여년을 보낸 손경섭(53)씨의 설명.“고로쇠는 뿌리에서 새순으로 흘려보내는 수액을 뽑아낸 겁니다. 날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이맘때 아니면 채취가 안되지요.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많은 수액이 나오지만, 비가 오고 눈이 오거나 강풍이 불어 날씨가 좋지 않으면 수액 양도 적습니다.”손씨의 자랑이 이어진다.“경칩 전후 한 달 동안 채취하는 직전마을 고로쇠 수액은 야산에서 생산되는 것에 비해 당도와 효능이 뛰어나 그야말로 산중 보약이죠.” 동행한 문화관광 해설가 박미연(35)씨는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고로쇠 수액 한 말(18ℓ)을 서너명이 밤을 도와 마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지리산 자락의 민박집 등에서 관광객들이 밤새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죠.”라며 거들었다. 막 채취한 고로쇠 한잔을 들이켰다. 들척지근한 것이 온몸에 산골의 봄기운이 통째로 전해진다. 미각을 통한 봄맞이처럼 생생한 게 또 있을까. 한화리조트 지리산(www.hanhwaresort.co.kr)은 피아골 직전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택배로 보내준다.18ℓ1통 5만 5000원.(061)782-2171. 글 사진 구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로쇠 수액의 약리효과 단풍과에 속한 활엽수인 고로쇠나무의 껍질을 한방에서는 ‘지금축’이라는 약재로 사용해 왔다. 지금축은 성미가 맵고 따뜻해 풍을 제거하고 습기를 없애며(祛風除濕), 혈액순환을 도와 어혈을 없애는(活血祛瘀) 작용을 한다. 따라서 풍과 습이 원인인 사지마비, 동통은 물론 골절·타박상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해발 600∼1000m의 고지대에 자생하는 고로쇠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는 수액을 인위적으로 채취한 것이다.1m 정도 높이의 나무 몸통에 드릴로 1∼3㎝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소백산, 오대산 등 산이 깊고, 공해가 적은 곳에서 많이 재배하거나 자생하며 ‘고로쇠’란 이름은 관절통 등 관절질환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동안 고로쇠 수액의 성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는데, 당분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B1·B2와 비타민C, 각종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일반 물보다 40배 정도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알칼리성의 이온화된 성분은 인체에 쉽게 흡수된다. 이 가운데 주성분인 당분은 1∼2%가량 함유되어 있으며 사당, 포도당, 과당이 함께 어울려 달콤한 맛을 낸다. 성분이나 맛의 차이는 고로쇠나무가 자라나는 토양, 기후, 채취 시기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고로쇠 수액은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아 평소 물처럼 하루 4∼5회 음용하면 되며, 다른 음식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함유 성분이 풍부하고 체내 흡수도 좋은 고로쇠 수액은 건강음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쇠 수액의 효능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수액에 포함된 당분이 혈당조절을 원활하게 해 당뇨, 고혈압, 피로회복 등에 효능이 있고, 각종 미네랄은 류머티즘 관절염, 통풍, 신경통, 산후 후유증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칼슘성분이 많아 노약자나 골다공증 등이 많은 부녀자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위장병, 피부병, 비뇨기과 질환 등에도 좋은 효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경희대한의대 한방부인과 교수 ■ 전남 광양 섬진강 다압 매화마을 매화(梅花)라 한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줄 뿐만 아니라 그 자태가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봄처녀의 아리따운 모습과 닮아 애간장을 녹인다. 매화는 또 한평생 춥게 살면서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옛 선비들은 매화의 그 고결한 기품을 본받으려 늘 가까이 두고 노래했다. 청빈과 지조, 그리고 올바른 법도를 지키게 하는 절개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래서 병풍이나 족자, 청자·백자 도자기에서도 오롯이 피어나 사시사철 길잡이 역할을 했다. 퇴계 선생은 생전에 매화가 좋아 시 여러 편을 남겼다. 그 중 한 구절이다.‘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밝고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아/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壬子正月二月立春(임자년 정월 초이틀 입춘) 매년 3월 한 달이면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 일대에는 매화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자,‘얼씨구나 매화로다’처럼 춘정이 그립거든 봄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그곳으로 훌쩍 떠나보자. 지리산과 구비진 섬진강을 덮은 매화의 시향(詩香)에 흠뻑 빠져 봄맛을 진하게 느껴 보자. 글 광양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광양시청 제공 매화마을로 유명한 광양 다압면(多鴨面). 지난달 하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는 550리 섬진강, 아름다운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을 배경으로 그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경남 하동 나들목에서 매화마을로 들어섰더니 섬진강 강가 주변에는 대나무와 억새풀숲 또한 그림처럼 쭉 이어진다.‘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그럴듯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나는 차창 밖으로는 ‘섬진강 재첩국’이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입맛을 자극했다. 매화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백운산 자락에 내려앉은 연분홍 구름선녀들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가를 감상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 광경에 ‘와∼’라는 탄성을 연발한다. 또한 연인끼리, 가족끼리 그 추억을 담아내려고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꽃잎 가까이에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볼에 비벼보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 17일부터 25일까지 매화축제 가장 이른 시기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매화꽃을 소재로 한 매화축제는 섬진강변 매화마을 일원에서 해마다 3월에 열리며 전국에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되는 꽃 축제이다. 1997년 시작된 매화축제는 품질 좋은 매실과 매실로 만든 매실식품을 널리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됐으며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섬진나루터와 청매실농원의 전통옹기, 그리고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강변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광양시청에서 주최하는 매화마을 축제는 매화꽃이 만개하는 오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열린다(청매실농원 자체에서는 이미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주제는 ‘달빛 어린 매화, 섬진강 따라 사랑을’이다. 특히 올해는 ‘매화학술대회’‘매화작품전시회’‘매화음악회’ 등의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아울러 ‘나만의 매화만들기’‘봄을 깨워라’‘매화탁본’‘꽃차만들기’‘섬진강변 소달구지여행’ 등의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밖에 전국 매화사진 촬영대회, 매화백일장, 매화사생화대회 등의 부대행사도 이어진다. 광양시청의 한 관계자는 “이 기간 동안 전국에서 5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섬진강의 유래 1385년 고려 우왕 11년 때의 일로 전해 내려온다. 경남 하동에 왜구들이 많이 출몰하면서 양민들을 괴롭혔다. 왜구들이 강을 건너려 할 때 두꺼비 수만마리가 몰려와 울음으로 왜구를 쫓아내자 이를 가상히 여긴 임금님이 강 지명을 한문으로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蟾津江)이라 부르라고 했다. 예부터 두꺼비는 집지킴이, 재복신으로 불리웠다. 액을 물리치고 부귀영화를 불러주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예를 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고 잘 살아라’,‘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등의 동요도 있다. 또한 두꺼비가 절에 나타나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등 불가에서는 큰스님, 또는 실지 금와보살로 지칭되기도 한다. # 교통편 서울에서 갈 경우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다가 산청으로 빠져 국도로 가는 길이 있으나 지리산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아예 진주까지 가서 하동읍내를 통해 다압면으로 가는 편이 좋다고 경험자들이 권한다. ●서울∼대전∼진주∼하동IC∼하동읍∼섬진교∼매화마을.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해 익산을 거쳐가는 방법도 있다. 익산∼전주∼구례∼간전교∼다압면∼매화마을. ●열차편으로는 하동역 또는 진상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 주변 볼거리 ●자연관광 백운산과 4대계곡, 섬진강나루터, 광양만, 망덕포구와 배알도, 희양십경 등.(061)797-2731. ●문화유적 옥룡사지 동백림, 중흥사, 형제의병 유적지, 성불사 등.(061)797-3363. # 먹을거리 재첩국과 고로쇠 등이 풍부하며 그외 식당안내는 (061)797-2607로 하면 된다.
  • [이색거리 탐방] (5) 종로구 피맛길과 순랏길

    [이색거리 탐방] (5) 종로구 피맛길과 순랏길

    종로구에는 서민의 역사와 구수한 맛이 함께 어우러진 두 길이 있다. 종로를 끼고 도는 피맛길과 순랏길이다. 좁은 골목길이지만 나름의 유래에 따듯한 정감이 자리하고 허름한 음식점이지만 주인장의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이 오면 광화문 피맛길 입구에서 종로3가 순랏길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보심이 어떨지. ●봇짐을 풀고 즐기던 먹자골목 교보문고 후문에서 종각 쪽으로 너비 2m쯤 되는 종로 뒤 골목길에 들어서면 ‘피맛길(일명 피맛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원래 조선시대 평민들이 6전(六廛)이 열리는 종로를 빨리 오가도록 만든 길이란다.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큰 길인 종로를 걷다 보면 ‘길을 비켜라. 대감님이 나가신다.’는 호령에 놀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큰 길 뒤에 편안한 골목을 만들어 말이나 가마를 피한다고 해서 ‘피마(避馬)길’이라고 했다. 자연히 허름한 음식점들이 생기면서 ‘피맛골’이라는 운치있는 별칭도 생겼다. 길은 종로3가 단성사 극장 앞까지 이어진다. 건너편에도 피맛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로확장으로 사라졌다. 피맛길은 ‘먹자 골목’이다. 교보문고 근처에는 ‘열차집’ 등 빈대떡 가게들이 많고 종로구청 근처에는 서린낙지 등 낙지집들이 즐비하다. 생선구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도 한다. 청진동 근처에는 해장국집들이 많다. 오랜 경험에서 배어나는 맛이 잊지 못하고 또 찾게 만든다. 어디를 가나 대체로 5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서민들의 골목이다. ●순랏길을 대신한 종묘 돌담길 피맛길이 종로3가 근처에서 끝나면 그대로 순랏길을 탐방할 수 있다. 종묘공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는 길이 서순랏길이고 오른쪽으로 도는 길이 동순랏길이다. 순랏길은 조선시대에 육모방망이를 든 순라군이 한밤중에 도적 등을 막으려고 순찰을 돌던 골목이다. 길 근처에 순라청이 있었다는 유래에 따라 순랏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덕궁이 가까워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내시들이 많이 살았고, 일제시대에는 일반인들의 종묘접근을 막기 위해 일본 순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돌던 곳이다. 1.5㎞ 일방통행로인 서순랏길은 자동차 한대가 지나가면 그만인 한적한 골목이다. 멋지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가 운치롭다.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종묘의 돌담 앞에는 나무의자도 있다. 동순랏길은 주택가의 작은 골목일 뿐이다. 맛집이 즐비한 피맛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순랏길에도 맛집이 있다. 홍어삼합으로 유명한 ‘순라집’과 소껍질무침을 하는 ‘수구레집’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도 부담이 없는 곳이다. ●옛 정취는 간데없고… 종로구는 피맛길과 순랏길을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하고 보전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실망할 수도 있다. 지저분하게 방치되고 볼거리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종각 근처의 피맛길에는 야릇한 분위기의 모텔들이 야금야금 들어섰고 종로2가에는 어느새 성인오락실들이 자리잡고 있다. 종로3가는 귀금속 골목으로 변모, 옛 정취를 생각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을 실망시킨다. 순랏길도 골목 곳곳에 놓여 있는 노상 적치물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종묘는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 문을 열지만 이벤트가 없어 아쉽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홍탁·수구레… 개성 넘치는 맛집들 피맛길에는 한두 집 꼬집을 수 없을 정도로 맛집이 수두룩하다. ‘열차집’‘전주집’‘대림식당’은 생선구이와 빈대떡 전문집이다. 종로2가 근처의 ‘전봇대집’(일명 고갈비집)도 맛집을 챙기는 연예인들이 종종 찾는다. 제일은행 본점 뒤의 ‘한일관’은 1939년부터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명사들이 드나들던 불고기집이다. 종각역 근처의 ‘신승관’은 화상(華商)이 45년째 운영하는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요리 음식점이다. 순랏길의 ‘순라길’은 순 흑산도 홍어를 열흘 이상 푹 삭힌 20여년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 화백이 홍어삼합 부분을 이곳에서 취재해 더 유명하다. 홍어에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둘둘 말아 막걸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맛이 탄성을 자아낸다. 홍어회, 홍어찜, 홍어탕이 크기에 따라 3만 5000∼6만원이다. ‘수구레집’의 수구레는 소껍질을 돼지껍데기처럼 삶아 고추장으로 양념해 볶았다. 술은 역시 막걸리가 제격. 쫄깃쫄깃한 고기 맛이 서민들의 고단한 시름을 잊게 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HAPPY KOREA] 제주에 있는 마을공동목장 알암수과?

    [HAPPY KOREA] 제주에 있는 마을공동목장 알암수과?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을 알암수과(아십니까)?” 제주도 한라산 서쪽 중산간 지역에 자리잡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마을. 우리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공동 소유·관리·분배 개념을 갖고 있는 마을 공동목장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주민들에게, 지역사회에 미친 유·무형적 영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의미를 들춰봤다. ●공동목장 재발견 마을 공동목장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관리하고, 운영 수익도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형태다. 현재 제주에서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공동목장의 형성 시기를 살피려면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별초 항쟁으로 대표되는 제주에도 몽골인들의 영향력이 미쳤다. 특히 기마병을 앞세웠던 몽골군은 제주 중산간 지역에 말 목장을 운영했다. 몽골군이 떠난 뒤 말 목장이 마을공동목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저지마을에는 5만평 가량의 마을공동목장이 남아 있다. 토지대장에는 마을 대표자 3명이 공동 소유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땅이다.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소와 말 등을 사육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방치되다시피 해 자연림으로 복원 과정에 있다. 마을공동목장의 원형과 취지가 훼손되기는 제주도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지역은 이미 경제수림이나 골프장 등으로 바뀐 상황이다. 황경수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마을공동목장은 소득 증대뿐만 아니라, 분배 문화 형성과 공동체 의식 강화에 톡톡히 기여했다.”면서 “그러나 마을공동목장이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보존 노력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마을 일을 내 일 같이 마을공동목장의 영향 관계를 면밀히 따지기는 어렵지만, 저지마을 주민들 사이에 형성돼 있는 분배 문화와 공동체 의식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998년 인구 감소로 지역내 저청초·중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주민들은 3억원의 성금을 모아 급식비 지원 등을 통해 폐교 위기에서 건져냈다. 이 때 모인 성금은 지금도 장학사업에 쓰이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딸을 두고 있는 좌경진(45)씨는 “중학교 재학생 모두에게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어 지금까지 교육비 부담이 크지 않았다.”면서 “학교는 주민들에게도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구심점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5년 복지센터 건립 당시에도 주민들의 힘은 발휘됐다. 복지센터 건립에는 10억원 정도가 필요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전체 예산의 절반만 지원을 약속해 건립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주민들은 물론, 출향 인사들까지 가세해 6개월 만에 4억 2000만원을 끌어모았다. 제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저지마을 어떻게 바뀌나 제주에서 유일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인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일대는 풍부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출발선’에 선 저지마을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풍부한 지역자원, 남아 있는 ‘옥에 티’ 저지마을의 대표적 자연자원은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용암이 분출되는 과정에서 요철 지형을 이뤄 보온·보습효과가 뛰어나 열대·한대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이다. 특히 이 지역 곶자왈은 희귀한 천연 난대림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을과 채 10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다양한 인문자원도 있다.3만평 부지에 조성된 문화예술인마을은 50가구가 분양돼 21가구가 입주를 마쳤다.1992년 개원한 분재예술원은 10만평으로, 세계 최대 규모 분재공원이다. 수목 100여종과 분재 2000여점이 전시돼 있다.2005년 개장한 야생화 전문 전시시설 ‘방림원’은 양치류 300여종과 수생식물 200여종, 야생화 2500여종 등을 확보하고 있다. 제주현대미술관도 지난달 완공돼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다. 저지리 일대는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역자원과 연계한 소득기반을 갖추지 못해 ‘관광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전체 소득 중 농업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그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저지마을은 400가구 1070명이 거주하는 제법 큰 규모지만, 시내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다니는 게 고작이다. 외지인들이 보유한 토지도 많아 난개발 가능성도 염려되고 있다. 고경화 이장은 “농지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토지이용에 제약이 많아 농업외소득을 늘려야 한다.”면서 “난개발이나 주민 갈등을 차단하기 위해 자치규약도 손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증대와 환경 보전,‘두마리 토끼’ 쫓는다 저지마을은 생태형과 문화형을 혼합한 복합형으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정책이 추진된다. 우선 소득 증대를 위해 사시사철 방문객들과 직거래가 가능한 유통센터 건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연환경 보전과 노후불량주택 정비 등 환경 개선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간 국비 320억원, 지방비 109억원, 주민부담 및 민자유치 52억원 등 모두 481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김영훈 제주시장은 “오는 2010년까지 농업소득 3500만원, 농업외소득 1500만원 등 5000만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면서 “주민들의 참여의지가 높은 만큼 분배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주민 성공경험+전문가 참여=마을발전 원동력 농촌이 정체의 늪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로는 성공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꼽힌다. 성공 경험은 ‘주민들의 참여의식 고취→마을 발전을 위한 추진력 강화’ 등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여기에 주민들의 한계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농촌의 미래가 그다지 암울하지만은 않다. ●저지마을의 장점은 ‘성공 경험’ 조용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제주시 한경면 저지마을은 2004년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정보화마을 지정을 계기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정보화마을 지정 이전까지 2000만원을 밑돌던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지난해 3000만원까지 상승했다. 감귤과 한라봉, 키위 등 특산물 판매로 얻은 농업소득이 2700만원, 관광지원을 활용한 농업외소득이 300만원이다. 주민들의 성공 경험은 가시적인 성과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농림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난달에는 환경부의 자연생태계우수마을로 각각 선정됐다. 마을 인근에는 문화예술인마을이 2004년부터 조성되고 있으며, 지난해 전원마을 대상지역으로도 뽑혀 올해부터 사업이 진행된다. 황경수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저지마을은 발전할 수 있다는 성공 과정을 경험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 “이를 통해 주민들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마을 발전에 대한 추진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경화 이장은 “특산물 생산이 겨울에 한정돼 있어 저온창고 설립을 추진 중”이라면서 “주변지역의 관광인프라와 저지마을의 산업인프라를 연계하면 파급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 참여모델의 ‘모범 답안’ 저지마을 주민들 외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마을 발전을 위해 측면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마을에 입주한 예술인들은 공동발전협약을 체결, 체험프로그램 등을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생태 숲을 가꾸기 위해 사단법인 ‘생명의 숲’과, 체험관광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제주도관광협회와 각각 후원협약도 맺었다. 자연환경 보전에는 지역시민단체인 환경참여연대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을 가꾸기에는 이명규 광주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약재·특산물 재배에는 박진우 동의과학대 약재관리과 교수, 마케팅에는 ㈜우리지역개발연구소 김경희 소장 등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김 소장은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지역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주민들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전문가들은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바꿔주는 게 몫”이라고 강조했다. 제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6) 전남 구례군 유곡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6) 전남 구례군 유곡마을

    오지의 마을이라면 으레 생활의 어려움으로 삶이 팍팍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오지이면서도 가구당 평균 5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 마을이 있다.‘알짜 농가’의 주인공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 유곡마을. 산 비탈을 따라 내려오며 상유, 중유, 하유로 나뉘는 이 마을의 천수답 다랑이 논(계단식 논)에는 벼 대신 감나무, 배나무, 매화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다.“한 번 먹어보랑께, 사과보담도 아삭거리고 달기넌 똑 꿀맛이시.” 마을 어귀서 첫 인사를 나눈 할머니가 단감 자랑을 하며 건네 준다. 지난가을 수확해 저장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겉모습만큼이나 맛도 뛰어나다. 고소득을 올리는 이유다. 과수나무가 40여가구 100여명 주민의 주 수입원이 된 연유도 재미있다. 가뭄이 극심했던 1994년. 섬진강 물을 산 비탈 논에 끌어 들이려고 양수기로 12번을 중계하는 고생을 하다 당시 군수가 “차라리 과수를 심는 것이 낫겠다.”라고 한 말이 변화의 물꼬를 텄다. 긴 경사면의 토양은 배수가 용이한 데다 일조량까지 풍부하고 게다가 일교차까지 커 과실생산의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여기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과수밭을 둘러싸 태풍으로 인한 낙과 피해도 적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95년에 감 낭구를 심었응께, 얼추 10년이 훨 넘어 부렀네. 군에서 배수관이다 뭐다 지원하고 나섬시로 도와주더만 인자 생각헌께 참말로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었지라.” 지난해까지 이장을 맡았던 김영두(70)씨의 말이다. 마을의 젊은 이장인 강대호(33)씨는 오지인 이곳을 이웃처럼 친근한 마을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농사 지으시는 어르신들의 연세가 이제 평균 70입니다. 농촌이 친근해지고 귀농인도 많아져야 발전이 있을 수 있지요.” 지난해 7000만원의 과수 매출을 올린 야심찬 젊은 농군의 말이다. 이를 위해 농촌체험마을에 선정돼 받은 3억원으로 초가집 복원, 민박시설, 식당, 공동화장실 건립 등을 해오고 있다. 친밀감을 느끼도록 이름도 마을의 특징인 돌담을 뜻하는 ‘다무락(담의 전라도 사투리) 마을’로 바꿔 부르고, 호응이 많았던 과실따기 등 재미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겨울은 폴쌔 가뿟구마. 매화꽃 배꽃 피문 천지로 온통 새하얀기라. 무신 소문을 들었는지 화가들도 가끔 오지.”하동이 고향이라는 안종택(76)씨의 말에는 40여년을 이곳에서 살았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다. 섬진강을 사이로 두고 말씨가 다른 지역적 특색 탓이다. “아저씨 이것 함 맛 보실래요?”교육청 통학버스를 타고 읍내 학교에 갔다 온 차미선(10) 성미(9) 자매가 할아버지집 앞마당에서 치는 꿀통에서 꺼낸 천연꿀을 손가락으로 떼어 먹으며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하유마을 맞은편에는 이백리 길을 굽어 흐른다는 섬진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 가는 길목에 노랗게 퇴색한 갈대숲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의 풍광은 풍수지리의 원전격인 ‘택리지’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구례의 이름값을 비로소 실감케 한다. 봄이 오는 길목. 남녘 산골마을이 봄 마중 채비에 분주하다.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돌하르방이 기가막혀

    돌하르방이 기가막혀

    ‘제주여행 2박3일에 19만 9000원’ 제주지역 인터넷 여행사 등이 내놓은 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 가격이다. 제주∼김포 왕복 항공요금이 15만원 수준인데 과연 이 요금에 2박3일 제주 여행이 가능할까? 여행사가 할인항공권(좌석이 남아도는 시간대 주중 40∼50%)을 이용한다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무료관광지나, 여행사에 50% 할인이나 리베이트를 주는 볼 것 없는 사설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수박 겉기식 부실 관광상품이다. 사무실도 없이 컴퓨터 한 대로도 운영이 가능한 인터넷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제주지역 여행사는 모두 600여개. 여행사 난립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작 제주의 문화와 역사, 자연 등 ‘제주다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반쪽짜리 부실상품이 제주관광을 멍들게 하고 있다. #장면 1 16일 제주시 삼양동 선사유적지. 탐라인들의 선사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는 관광객들의 모습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은 제주시가 2001년부터 106억원을 들여 복원한 선사시대 유적지(사적 416호)로 돌담과 쓰레기폐기장, 마을외곽 도랑까지 확인된 기원전 1세기 무렵 국내 최대의 마을유적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복원한 선사시대 원형움막 14채를 비롯, 이곳에서 출토된 철제도끼, 손칼, 콩, 보리 등 유물 등을 발굴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연해 마치 선사시대 탐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제주를 찾는 대부분의 패키지 관광객들은 여행사들의 외면으로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500여만명 가운데 1·4%인 6만 9000여명만이 이곳을 다녀갔다. 100억원을 들인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과 400억원을 들여 제주의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제주 해녀와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돌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제주다운 볼거리’가 있지만, 여행사들은 공짜가 아니라는 이유와 사설관광지와는 달리 여행사 할인이나 리베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기 일쑤다. #장면 2 이날 제주시 연동 한라수목원에는 여행사 단체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제주의 자생식물 등을 한데 모은 이곳은 제주의 대표적인 무료 관광지.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500여만명 가운데 24%인 120여만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볼멘소리다. 관광객 박모(45·대구시 수성구)씨는 “2박3일 빠듯한 일정에 여미지식물원과 비슷한 곳을 두 곳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시간만 떼운다.”고 말했다. 또 한라수목원 인근의 성(性) 테마공원인 러브랜드는 관광객을 데리고 오면 리베이트를 주기 때문에 여행사 관광버스들로 주차장은 늘 북적거린다. 최경달 신라항공여행사 대표는 “공짜 관광지나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는 부실관광은 결국 제주관광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며 “저가의 중국관광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관광객에게 욕을 얻어먹는 무차별 덤핑상품을 자제해야 제주관광이 산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2)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교회 ‘봉화 척곡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2)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교회 ‘봉화 척곡교회’

    이 땅의 초기 교회는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10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초기 교회들이 몇몇 남아있지만 그나마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원 형태를 온전히 갖춘 것이 드물다.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청량산 자락의 산골마을 척곡리에 서있는 척곡교회(등록문화재 제257호)는 그래서 도드라진다. 선교사가 아닌 일반신도가 세운 뒤 100년의 풍상을 견뎌내며 옛 모습을 지켜온 흔치 않은 자생 신앙터. 초기 예배당이 대부분 기역(ㄱ)자나 일(一)자 형태로 지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정사각형을 띠고 있고, 예배당과 함께 세워진 교육시설인 서당(명동서숙)이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교회다. 봉화군 법전면 내에서 좁은 산길을 타고 10여분쯤 차를 달리면 오른쪽 산 아래에 십자가를 인 허름한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함석 지붕 한쪽에 아담하게 올린 십자가와 예배당 앞쪽 허술한 철제 종탑에 매달린 종이 아니라면 교회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낯설다. 마을이래야 고작 5채 남짓한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고 휴대전화 통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산골. 좁은 산길에 노선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기대하기도 어려운 만큼 면내까지 가려면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 깊은 산마을에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집’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지었다면 대부분의 초기 교회들처럼 응당 인총 많은 요지나 높은 구릉의 터를 택했을 터. 그런데 하필 이 첩첩산중의 오지에 교회가 세워진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대한제국 탁지부(지금의 재경부) 관리(당시의 주사)를 지낸 김종숙(1956년 소천) 장로. 당시로선 일종의 외교관 양성소인 외국어학원 일본어 과정을 마치고 참의 승진이 예정되어 있던 김 장로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설교에 감흥을 받아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고 한다. “일제의 사슬을 끊고 나라가 독립하기 위해선 야소교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터에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처가가 있던 봉화 유목동으로 낙향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전국 어디서건 기독교 총회는커녕 노회도 조직되기 전.30리 길을 걸어 문촌교회를 다니다가 몇몇 신도들과 기도실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 1907년 5월17일 마침내 척곡교회를 세웠다. 지금의 자리에 예배당이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09년 3월29일.9칸짜리 정방형 기와집 예배당과 6칸짜리 초가 명동서숙이었다. 예배당은 원래 맨 마루바닥에 기와 지붕이었지만 나중에 긴의자들을 놓았고 함석지붕으로 교체했다. 출입문은 지금은 남쪽으로 나있지만 처음엔 동서쪽에 각각 문을 따로 내 남녀의 출입을 구분했다. 남녀석 가운데엔 광목을 쳐서 목사들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북쪽 중심공간인 아치형 강단 장식과 강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방형의 공간이 퍽이나 이채롭다. 궁벽한 산골에서 신자들이 헌금을 내기 어려웠을 것은 뻔한 일. 신자들이 집에서 가져온 쌀을 십시일반으로 교회 살림에 보탰는데 지금도 예배당 양쪽 벽엔 성미(誠米·기도미) 자루가 걸렸던 못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예배당 앞의 명동서숙은 신자들을 교육하던 학교다. 성경과 국어, 산수, 한문을 가르쳤는데 당시 이 지역의 웬만한 주민들은 모두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1칸은 여학생 기숙사, 나머지 5칸은 교실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그 깊은 산골에서 기숙사까지 갖춘 것이 놀랍기만 하다. 명동서숙과 예배당 사이엔 자연석 돌담이 둘러쳐졌는데 지금도 낮은 담장 부분이 남아 옛 모습을 짐작케 한다. 헌신적으로 목회에 나섰던 김 장로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1918년 무렵엔 한꺼번에 120명이나 모여 예배를 보았으며 김 장로는 봉화지역 6개 교회의 시무를 맡을 정도로 척곡교회는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야소교 믿음의 뿌리가 나라 독립에 있었던 때문일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앞장섰던 김 장로가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면서 일경들의 탄압을 받았고 명동서숙이 폐교된 뒤 결국 신자들도 흩어지게 되었다. 해방후 몇몇 목회자의 인도로 부분적인 건물증축과 보수작업이 있었지만 워낙 산골인데다 신자들도 모두 도심으로 이전해 옛 신앙터의 명성은 되찾지 못했다. 척곡교회가 세워진 지 올해로 100년.70∼80대의 촌로 10여명만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스러진 교회가 되었지만 경북 지역에선 또렷하게 남아 있는 ‘믿음의 고향’이다. 김 장로의 장손인 김영성(82) 장로 부부가 교회를 버티고 있는 주인공이다. “척곡교회를 잊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후 지난 2004년 낙향해 여전도사 1명과 함께 교회를 지키고 있다. kimus@seoul.co.kr ■ ‘교장서 교회지킴이로’ 김영성 장로 할아버지 김종숙 장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집안의 모태신앙을 받은 김영성 장로는 신앙보다는 교육에 한평생을 바친 교육자다. 어릴 적 명동서숙에서 공부하면서 할아버지의 신앙과 독립운동을 지켜봤지만 목회보다는 교육을 택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인천 모 여고 교장을 끝으로 평생 몸담았던 교직을 정년퇴직한 뒤 부인 안난희(77)권사와 이곳에 내려왔다.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이민을 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자손들이 “함께 살자.”고 거듭 권유했지만 “척곡교회를 잊지 말라.”는 유언이 귀에 맴돌아 결국 교회 지킴이가 된 것이다. 17년 전부터 가끔씩 내려와 쓰러져가는 예배당이며 명동서숙을 보수하면서 교회 85주년 행사도 치르곤 했지만 지난 2004년 낙향한 뒤부터는 아예 예배당 옆 고택에 살면서 새벽예배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주일예배 찬송 때에는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고 예배가 끝난 뒤엔 인근 법전교회로 달려가 피아노 반주와 가스펠을 하며 신자들과 어울린다. 예배당에 남아 있던 초기의 당회록이며 교적부, 면려회록 같은 문서들을 정리하면서 척곡교회의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한국 교회사엔 척곡교회 창립일이 1908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907년 당시 척곡교회 교적부에 신도 두사람이 학습교인으로 기록된 점을 발견해 교단 총회에 알린 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척곡교회는 총회사적 교회와 영주노회 사적 제1호로 등록됐고 지난해엔 등록문화재 리스트에도 올랐다. “지금이라도 내가 떠나면 교회가 금세 허물어질 것 같아 떠나지 못한다.”는 김 장로. 그의 마지막 바람은 교회 개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와 신앙 선열들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다. 특히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봉화경찰서장 앞에서도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구속됐다가 해방 후에야 풀려났던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이 인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거리 미술관 속으로] 정동 타일벽화

    [거리 미술관 속으로] 정동 타일벽화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노래 ‘광화문 연가’ 중)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뿐 아니라 직장인의 사랑도 한 몸에 받고 있다. 점심시간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돌담길을 걷노라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강남 직장인이 광화문 직장인을 시샘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보도블록 사이로 하얀색 그림판을 만날 수 있다. 타일로 제작한 길바닥 그림이다.15×15㎝의 흰색 타일 9개를 붙여 만들었다. 어떤 것은 2개 붙인 것도 있다. 대리석을 액자처럼 테두리에 둘렀다. 바닥 그림은 덕수궁 주변의 역사와 자연을 품고 있다. 가운데 타일 그림은 서울 옛 지도다. 주위에는 광화문 주변 건물이 그려져 있다. 덕수궁과 서울역, 시청 그리고 교회가 보인다. 돌담길에 노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도 앙증맞게 담겨 있다. 그림의 돌담을 손으로 만져보면 오톨도톨하다. 어린아이의 작품처럼 순박하지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길바닥 그림은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같은 타일을 사용했지만 각기 다른 느낌이다. 중앙에 놓은 서울 지도를 제외하고는 각 타일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그림의 방향도 각기 다르다. 어떤 것은 서울광장쪽을, 다른 것은 정동쪽을 바라본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다. 세월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깨어지기도 하고, 그림이 닳아 없어지기도 했다. 아트컨설팅서울 박삼철 소장은 “길 위의 예술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하는 아름다운 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창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목도 모른다.1998년 서울시가 정동길을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면서 어느 공무원이 길바닥에 그림을 심었단다. 이 사업을 맡았던 서울시 푸른도시국 녹지사업단에 문의했지만 모른다고 했다. 아름다운 작품의 기록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작품은 예술가만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도시를 내집처럼 아름답게 만들려는 마음, 그래서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진정한 예술품을 탄생시킨다. 이 길바닥 벽화가 수억원짜리 작품보다 값진 이유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4)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4)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바뀐 이후 섬 전체는 개발이 가속화되어 민속촌이 아니고선 옛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제주시에서 남서쪽 직선거리로 15㎞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수암 마을. 제주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해안 일주도로에서 멀리 있는 까닭에 개발이 늦어졌다. 돌로 담을 쌓고, 초가를 짓고, 돌하르방을 만들었던 제주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물이 용출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 유수암(流水岩). 마을로 들어서자 샘물이 나오는 공동빨래터에서 동네아낙들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집에 거의 세탁기가 있어 빨래하는 모습을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치 잃어버린 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신기한 광경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기자에게 아흔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카랑카랑한 강위원 할머니의 말이 떨어진다. “늙은이 찍엉 뭣에 쿠꽝?” 며느리를 집에 들여도 시어머니랑 각자 살림을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제주의 여인네들. 허벅(제주방언. 물을 길어 나르는 동이)에 지고온 빨랫감을 물에 헹군 뒤 양손에 잡고 쥐어짜는 손아귀에선 억센 섬여인의 힘이 느껴진다. 예로부터 빨래터는 방망이를 두드리며 삶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곳이자 옹기종기 모여 이웃간의 정을 나누며 동네의 이 소문 저 소문을 전하던 곳이다. 한동안 이방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들만의 진짜 사투리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마을 정중앙을 흐르는 유수암천에서 내려오는 첫물은 받아서 음용으로 쓴다. 그리고 흘러 내려온 다음 물은 몸을 씻는 데 사용하고 세 번째는 빨래를 하는 데 사용하는데 물쓰는 일을 마치 곡식 아끼듯 한단다. 집과 밭의 둘레에 나지막이 둘러쳐진 전통 돌담은 거친 제주바람을 꿋꿋이 이겨내며 주민들과 수십년 동안 정겨운 동거를 해오고 있다. 돌을 다루는 장인 정신과 돌을 이용하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듯 느껴졌다. 대부분의 마을 농가는 감귤을 재배한다. 최근 들어서는 귤값이 폭락해 귤농사를 접고 감자를 재배하거나 목축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조랑말은 제주의 중산간 지역에서 반야생 상태로 서식하며 긴 세월 동안 제주 환경에 적응하여 온 작은 말이다. 자그마한 체격으로 환경에 대한 강한 적응력과 지구력을 갖고 있어 흔히 제주민에 비유되기도 한다. 마을에는 외지인들도 들어와 산다. 전직 은행 간부 출신인 문주용(60)씨는 새삶의 터전을 관광 마을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펜션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채도 같이 재배하고 있다. 기존의 유채에 있던 독성을 없앤 개량 유채품종을 키워 마을 전체가 노란 유채물결로 덮이는 꿈을 꾼단다. 원래 제주도에는 한라산 주변에 주택들이 발달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4·3사건 이후 마을 전체를 중산간 마을 아래로 이주시키는 바람에 위로는 마을이 거의 없다. 유수암리는 해발 300m 정도의 중산간 마을로서 섬 전체가 개발로 인해 점차 원형을 잃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제주도 특유의 풍물과 마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돌이 한데 어우러져 ‘제주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수암 마을. 그곳에선 유구한 ‘탐라 역사’의 숨결과 향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길섶에서] 덕수궁 길/최태환 수석논설위원

    겨울 덕수궁 돌담길은 쓸쓸하다. 비탈의 시립미술관 정원이 외롭다. 미국 대사관저 앞 방한복의 경비전경 모습이 살풍경이다. 무심하게 걷는 이도 드물다. 한가하다. 가볍게 포옹하는 연인이 멀리 보인다. 춥게 느껴진다. 가로등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연인들에게 가로등의 온기가 전달될 수 없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정동극장 앞 붕어빵 리어카에 멈췄다. 남녀가 다가온다.“총독관저 앞이 많이 변했네.”사내가 말했다. 대사관저 경비가 별로라는 뜻이리라. 파트너가 시큰둥하다.“지금이 어느 땐데. 시국법정이 코앞이던 시절도 아니고….”‘총독관저’라는 걸 보니, 학창시절 ‘양키 고홈’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사연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던 시절이 떠오른다.80년대만 해도 법조타운이었다. 서초동으로 떠난 뒤 서울시청 별관과 시립미술관이 들어왔다. 대도(大盜)조세형이 탈주했던 골목이 그대로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가 성난 군중으로부터 뺨 맞은 곳도 여기다. 돌담길 추억치곤 좀 살벌하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서울을 ‘도시 갤러리’로 만든다

    서울을 ‘도시 갤러리’로 만든다

    서울이 하나의 커다란 갤러리로 변신한다. 서울시는 서울을 예술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를 위한 기본계획과 시범사업안을 17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미술·건축·디자인·철학·관광 등 분야별 전문가 30명으로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를 구성해 프로젝트 추진방향을 논의하고, 올 연말까지 4개 분야 41개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오는 5월부터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한 ‘도심 역사 권역’과 한강·청계천 주변의 ‘천변·한강 권역’ 등 2개 권역으로 나누어 역사·생태·문화적 의미를 담은 공공미술을 설치하기로 했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 로터리, 남산식물원 철거지, 청계천, 한강 일대 등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장소, 관광명소 24곳이 선정됐다. 장소별로 설치하는 작품은 ‘도시 갤러리 추진센터’를 통해 예술가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모를 거치고, 모든 과정을 공개해 투명하게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광장이나 덕수궁, 정동 등 상징성이 있는 장소에는 유명 외국작가를 초청,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 벤치, 버스정류장, 가로등, 맨홀 뚜껑 등 도시 시설물과 공공기관·시설을 문화친화적으로 개선하는 ‘공공미술 캠페인’도 펼친다.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유·무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서울 상징 포럼’을 연다. 이 포럼을 바탕으로 에펠탑(프랑스 파리), 오줌 누는 소년상(벨기에 브뤼셀), 지혜의 등대(브라질 쿠리치바)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2010년 착공을 추진할 예정이다. 서울시 개발사업에도 공공미술에 대한 제안을 하기로 했다. 뉴타운, 균형발전 촉진지구, 재개발 지역, 시 청사,SH공사의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10개 사업을 선택해 공공미술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한다. 서울시와 공공미술위원회는 시범사업과 대상장소 공모에 들어간다. 3월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 사진, 드로잉 등 개념도를 전시해 일반에 공개한다.4월까지 작품을 선정하고,5월부터는 순차적으로 작품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6월부터는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의 4개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2010년까지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계획을 통해 서울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제주 허파 곶자왈 보호하자”

    “제주 허파 곶자왈 보호하자”

    ‘곶자왈 한평씩 사세요’ 제주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을 사들여 영구 보존하자는 운동이 펼쳐진다. 제주도는 청정제주의 허파인 곶자왈을 난개발에서 보호하기 위해 제주도민은 물론 내·외국인, 기업체 등과 함께 ‘곶자왈 한평 사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고 15일 밝혔다. ●2016년까지 사유지 200만평 대상 제주도는 지난 3월 제정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이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어 곶자왈 사유지의 10%인 6.6㎢(200만평)를 오는 2016년까지 10개년 계획으로 매입키로 하고 ‘곶자왈 한평사기 운동’ 추진 모델을 개발했다. 내년 3월 지역의 기관·단체, 기업체, 주민, 학생이 참여하는 민간 주도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제주 내셔널트러스트사업’법인도 조직, 이 운동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평당 3만 5000원 수준 내셔널 트러스트는 시민들이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영구히 보존·관리하는 환경운동.189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고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광주 무등산공유화 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고고학자 최순우 옛집, 동강 제장마을 등이 이 운동으로 영구보존됐다. 도는 곶자왈 매입 가격을 3.3㎡(1평)당 3만 5000원으로 추정할 경우 10년간 추진할 1단계 운동기간의 매입비가 모두 7000억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사유지 곶자왈의 경우 갈수록 개발압력이 거세져 보전을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면서 “매입한 곶자왈에는 생태체험교육센터 건립과 생태관광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등 수익사업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곶자왈에는 보호종인 천금량을 비롯해 개가시나무, 큰톱지네고사리, 큰우단일엽, 쇠고사리, 나도은조롱, 개톱날고사리, 검정비늘고사리, 숫돌담고사리 등 무수한 휘귀식물이 이곳에서 자란다. 해발 200∼600m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경·안덕곶자왈, 애월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곶자왈 등이 있다. 곶자왈은 제주도 전체면적(1848.2㎢)의 6%인 110㎢를 차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60%(66㎢)가 사유지여서 용암석 및 희귀수목 채취 등의 불법 훼손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개발 압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곶자왈이란 ‘곶자왈’의 ‘곶’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가르키며 ‘자왈’은 크지 않은 돌이나 자갈 따위가 많이 모인곳을 이르는 제주사투리. 곶자왈은 한라산 화산 폭발과 함께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돌무더기 위에 다양한 식물군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나무나 돌에 붙어사는 착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룬 제주 자연생태계의 보고.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근대문화재 등록 희비쌍곡선

    근대문화재 등록 희비쌍곡선

    ‘동산(動産)은 웃고, 부동산(不動産)은 울고.’최근 근대문화재 등록이 활기를 띠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7월 문화재보호법 개정에 따라 근대문화재 등록 대상이 시설물·건축물 등 부동산에서 동산까지 확대되면서, 재산권 침해 우려를 낳고 있는 부동산문화재 등록은 난항을 겪고 있는 반면, 동산문화재 등록은 가치 상승에 따라 더욱 활성화할 전망이다. ●활기 띠는 동산문화재 등록 문화재청은 지난달 20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썼던 어차(御車)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근대동산유산으로서 첫번째로 등록문화재 목록에 오른 것이다. 이어 근대기(1902∼1945년) 국가표준 도량형기 331점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돼 어차에 이어 동산문화재 2호가 될 전망이다. 또 최근 보존처리를 위해 임진각으로 옮긴 파주 비무장지대 경의선 철마는 2004년 2월에 이미 등록된 만큼 철마를 동산 1호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동산문화재 등록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김인규 연구관은 “동산유산 등록과 관련, 내년부터 10개년 전수조사를 통해 교통·통신, 의생활, 주생활 등 분야별로 대상을 선별할 것”이라면서 “연습 비행기, 증기기관차, 자동차 등 최초의 의미를 지닌 동산유산 위주로 등록,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컬처플러스 강민철 대표는 “부동산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면 가치 하락이 우려돼 꺼려하는 면이 있지만 동산유산은 등록되면 오히려 가치가 올라 등록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등록문화재, 실보다 득으로’ 그동안 근대문화재 등록은 사옥·기념관·강당·교회 등 시설·건축물 위주로 이뤄져 왔다. 현재 등록된 278건의 70% 이상은 국가 소유이고, 민간 소유는 재산권 제한 논란 때문에 등록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대구 소재 근대유산에 대한 일괄조사에서 7건이 등록 예고됐으나 소유주의 반발에 부딪혀 화교협회 건물 1곳만 등록됐다. 지난달 등록 예고된 제주도 설촌마을 돌담길 등도 주민들의 반발로 등록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뒤 소유주에 의해 파괴된 비행기 격납고, 자인양조장, 스카라극장, 옛 대한증권거래소 등의 경우도 등록에 따른 사유 재산권 침해를 우려해 벌어진 일이다. 문화재청 이유범 근대문화재과장은 “민간 소유의 경우, 문화재로 등록되면 세제 감면, 공간 활용 등 혜택이 많은데도 지정문화재 기준과 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대부분 등록을 거부한다.”며 부동산유산 등록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근대유산 등록을 활성화하려면 현행 등록제도의 규제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강화하고, 등록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근대문화유산 보존운동 단체인 도코모모코리아 김정신(단국대 건축학과 교수) 회장은 “등록문화재 제도는 보수비 지원, 재산세·양도세 감면, 상속세 유예, 용적률 보상, 공간의 타용도 활용 등 지정문화재와 달리 혜택이 많다.”면서 “행정기관과 기업, 소유자, 시민단체 등이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제도로서 잘 활용하고 가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HAPPY KOREA] 대구·경북 마을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대구·경북 마을 주민활동 탐방

    농촌 대부분이 인구 및 소득 감소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이같은 구조적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 체험마을, 테마마을 등 관광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돈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하지만 대구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서 돈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전통이다. 전통을 바로세워야 마을이 바로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옻골마을을 들여다봤다. 1 대구 옻골마을 경주최씨 종가 ●가진 것만큼 지킬 것 많은 옻골마을 동대구 도심을 빠져나와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아기자기한 과수원길과 마주한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사이를 지나 졸졸 흐르는 개울과 만나는 순간, 팔공산 자락에 감춰졌던 옻골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도시와 너무 가깝고,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고즈넉한 곳이다. 옻골마을은 1616년 대암(臺巖) 최동집 선생이 마을터를 잡은 이후 400년 가까이 경주 최씨 후손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집성촌이다. 지금은 20여가구 70여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종가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대구시 민속자료 제1호다.14대 종손 최진돈(59)씨와 고3짜리 아들 등 가족 4명이 살고 있다. 종가를 비롯한 20여채의 고가는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이음새의 빈틈조차 자연스러운 마루, 구불구불한 모양이 더 정감있는 기둥, 기둥 아래 높이가 서로 다른 주춧돌 등 어느 것 하나 인공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을 휘감고 도는 2∼3㎞의 돌담길은 지난 6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고시했다.350년 이상 마을을 지켜온 높이 10∼20m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수십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됐다. 문화재로 등록·지정된 소장품도 667점에 이른다. 이쯤되면 민속마을이나 문화마을로 꾸며 보겠다고 나설 법한데 주민들은 손사래부터 친다. 마을을 상품화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최완식(68)씨는 “꾸민 것은 이미 문화가 아니지. 우리 마을은 화장한 아름다움보다 수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어울려. 우리 마을 같은 곳이 전국에 한 곳이라도 있어야 전통이 보존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웃음지었다. ●후손들이 마을에서 출퇴근하는 게 꿈 옻골마을은 인위적으로 꾸민 민속마을도,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이 풍부한 체험마을도 아니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점 투성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전통과 가치를 보존하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 매달 빠짐없이 열리는 마을회의이자 종중회의도 어떻게 해야 마을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외지로 떠난 아이들이 돌아올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데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주민들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초가와 서원을 복원하는데 온통 마음이 쏠려 있다. 과수원을 포함한 종중 소유의 마을 주변 땅을 자연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준다면 무상으로 내놓겠다고도 서슴없이 말한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만 연간 2만∼3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일부러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도 변함이 없다. 그만큼 행정기관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눈치다. 최진돈씨는 “보존·관리에 필요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마을이 많이 훼손된 상황”이라면서 “마을이 되살아나면 대구 도심까지도 20∼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우리 아이들도 이곳에서 출퇴근할 수 있지 않겠나. 바라는 것은 그뿐”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2 군위 한밤마을 출신 명사 귀향 대구 계명대 홍대일(60) 화학과 교수는 수업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향인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을 찾는다. 홍 교수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갈수록 황폐화되는 고향을 보고 있노라면 명절에만 찾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면서 “고향을 되살리는 게 마을을 지키고 계신 어르신들의 몫만은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홍 교수는 마을 출신 교수와 기업인 등 10여명과 뜻을 모아 ‘고향 발전을 위한 향우회’도 결성했다. 분기에 적어도 한번은 모임을 갖고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향우회에는 동국대 경영학과 홍경흠 명예교수, 계명대 철학과 홍원식 교수, 계명대 컴퓨터공학과 홍동권 교수, 영남대 한문학과 홍우흠 교수, 홍기흠 전 대구은행장 등도 참여하고 있다. 한밤마을이 부림 홍씨 집성촌인 터라,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한 집안 사람들이다. 홍진규(47)씨는 아예 20년의 타향살이를 접고 10년전 귀향했다. 바이오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진규씨는 현재 ‘살기 좋은 한밤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 살림까지 맡고 있다. 진규씨는 “마을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지역시민·사회단체 활동이 전무해 체계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손을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6개 자연부락을 합친 한밤마을은 540가구 1200명이 거주할 만큼 제법 규모가 크다. 하지만 한때 아이들로 북적이던 대율초등학교는 올해 입학생이 1명에 불과할 정도로 활기를 잃었다. 사과 재배 등을 통해 군위군 내에서 소득이 상위권에 속하지만, 생활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넋두리도 곁들인다. 홍연소(63) 추진위원장은 “고등학교가 없어 자식들을 일찍 유학시켜야 하기 때문에 도시보다 오히려 교육비 부담이 크다.”면서 “대부분 넉넉한 살림도 아니어서 빚만 늘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따라 마을 출신 인사들과 주민들은 종합발전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다. 제2석굴암(삼존석굴)과 돌담 등 마을 고유의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고, 팔공산 동산계곡과 사과밭 등 자연자원의 이점을 살리겠다는 포부다. 군위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3 구미 양포동 공단배후 고민 지방도시 대부분이 인구 감소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경북 구미시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인구는 39만명으로, 최근 10년간 10만명 가량이 늘었다. 내년에는 4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공단의 힘’이다.753만평에 이르는 구미1∼3공단에는 모두 165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입주업체의 86%는 액정디스플레이(LCD) 등을 생산하는 전자 관련기업이다. 지난 한 해 수출액만 305억달러다. 구미시는 이것도 모자라 64만평 규모의 구미4공단을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 터닦이 등 기반공사가 한창인 4공단 배후지역인 양포동 일대에는 공단 근로자를 위한 아파트와 주택 등 모두 2만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미니 신도시’나 다름없다. ‘만드느냐, 만들어지느냐.’의 갈림길에 선 양포동 주민들의 고민은 일자리가 아닌 다른 데 있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이 31세에 불과하고 전체 인구의 69%가 30대 이하다. 하지만 이들 ‘젊은 세대’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과 고민은 아직 부족하다. 예컨대 남편을 출근시킨 아내들 상당수는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월평균 100만원도 받지 못하는 가내수공업공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이들, 나아가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생활기반시설도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박광석 양포동 청년회장은 “새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에 만족할 게 아니라, 기존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면서 “구획을 나누는 것은 공단이나 농지를 조성할 때 필요한 것이며, 마을은 전체를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공간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란 주부도 “국가나 지역 발전은 기업 못지않게 기업과 더불어 생활을 영위하는 주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면서 “구미에는 외국인 근로자도 많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벽을 허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 사진 구미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늦가을에 떠난 섬 산행-전남 신안 ‘비금도’

    늦가을에 떠난 섬 산행-전남 신안 ‘비금도’

    바다 위를 거니는 듯, 발아래 일렁이는 검푸른 파도를 보며 산을 오르는 섬 산행. 육지의 산을 오르는 것과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 내로라 하는 육지의 유명산도 다 못올라 봤는데 등산 한번 하자고 애써 섬까지 가랴? 섬 산행은 가는 길부터가 여행이다. 나그네가 발품을 팔아 갈 수 있는 육지의 막다른 곳에 항구가 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섬 산행지로 알려진 곳들이 대부분 명승지이기도 하다. 산세가 부드러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등산객들의 발길에 치이기 십상인 육지의 유명산들과 달리 한적한 것도 장점. 그뿐 아니다. 말 그대로 산이 해발, 즉 해수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가도 고도감과 경관이 그만이다. 한마디로 여행과 등산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이 섬 산행이다. 제 2회 섬산행 대회가 열린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를 다녀왔다.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좋은 아담한 하트모양의 해변이 있는 곳이다. 가슴에 담아온 그림 한폭을 지면에 풀어 놓는다. 글 사진 신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섬, 비금도(飛禽島). 전라남도 신안군의 무수한 섬 가운데 비교적 큰 18곳 중 하나다. 목포에서 54㎞, 쾌속선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3900여명의 주민이 48㎢ 크기의 섬에서 올망졸망 살아가고 있다. 섬초라 불리는 시금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천일염이 유명하다. 염전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돈이 날아다니는 섬’이라 해서 비금도(飛金島)라 불리기도 했다. 비금도의 주봉 선왕산(255m)산행은 주로 수대선착장에서 차로 5분정도 떨어진 상암주차장을 들머리로 한다. 큰길에서 가까워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산행은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몇년 전만 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에 산길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방문하는 산꾼들이 점차 늘면서 등산로가 잘 관리되고 있다. 등반코스는 상암주차장∼첫 봉우리∼그림산 정상∼죽치우실∼선왕산 정상∼하누넘 해수욕장 등이다. 거리는 5㎞ 남짓. 산행시간은 3시간 가량 소요된다. 들머리에서 첫 봉우리까지 단숨에 내달았다. 꼭대기에 서자 몸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바람과 함께 다도해의 절경이 들이 닥쳤다. 저 멀리 검푸른 바다와 밑둥을 감춘 채 집산연봉처럼 도열해 있는 푸른 섬들. 여기에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염전들을 안은 어촌마을과 싱싱한 바다생명들을 품은 채 진회색으로 빛나는 갯벌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나그네의 눈을 아리게 했다. 등산로 오른쪽으로 펼쳐진 절경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림산 정상으로 향했다. 등산길이 완만하다고는 하나, 암릉사이를 걷다보면 방심한 몸을 바짝 움츠러들게 할 만큼 아찔한 곳도 적지 않다. 바닷바람은 또 얼마나 세찬가. 암릉에 붙은 철제난간을 타고 ‘오른다’기보다는 정상을 향해 ‘날려 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그림산 정상까지는 40여분 정도 소요됐다. 전망대처럼 널찍한 정상에 서자 선왕산 정상 능선은 물론, 사방에 펼쳐진 다도해의 수려한 풍광이 가슴 한가득 채워졌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금도라는 섬이름에 걸맞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이산 저산을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옮겨다니는 직박구리들. 지표면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라도 발견한 것일까. 기류를 타고 제자리 비행을 하며 아래를 쏘아보는 황조롱이의 눈매가 여간 매섭지 않다. 대나무가 숲을 이룬 작은 안부(산의 능선이 낮아져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를 지나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면 죽치우실이 나온다. 우실은 다도해의 생활문화가 담긴 돌담을 일컫는다. 남향에 위치한 마을의 뒤편에서 산을 타고 내려온 골바람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하기도 하고, 온갖 재액과 역신을 막는 역할도 담당한다. 앞쪽으로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하누넘 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하누넘은 바닷가에 서면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모양의 해변이다. 작은 규모지만 여간 아기자기한 모습이 아니다. 하누넘 해수욕장을 지나 억새가 불붙기 시작한 산길을 돌아나가면 어느덧 수대 선착장. 길다란 땅거미만 남긴 해가 도망치듯 사라져 갈 때, 언제나 그렇듯 나그네는 다시 도시를 향해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 가는길 서해안 고속도로 끝자락 목포시(KTX종착역) 여객선 터미널(061-243-0116)에서 비금도행 쾌속선이 하루 세차례 오전 7시50분, 오후 1시20분, 오후 2시30분에 출발한다. 요금은 편도 1만 4900원. 차를 싣고 가는 차도선은 오전 7시와 오후 1시,3시에 각각 출항한다. 신안군 문화관광과 :(061)240-8355 동양고속 쾌속선:(061)243-2111,244-9915. 대흥여객 차도선:(061)244-0005. 비금농협 철부선:(061)244-5251. # 먹을거리 연륙교로 연결된 초도 화도선착장의 보광식당은 간재미 요리로 알려져 있다. 말만 잘하면 ‘장어 창젓’같은 별미도 맛볼 수 있다. 비금도 읍동 창해식당은 겨자를 풀어 녹색빛 나는 국물이 시원한 우럭 매운탕, 한우리 식당은 멸치보다 몸집이 5∼6배 큰 ‘디포리’로 맛을 낸 청국장이 일미다. # 숙박 삼양모텔(061-262-5001), 빨간모텔(061-275-4900) 등이 영업중이다. 비금면사무소 (061)275-5231.
  • [HAPPY KOREA] 경남·울산 마을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경남·울산 마을 주민활동 탐방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지역개발사업에서는 흔히 협력보다는 갈등이 번지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이나 외부단체와 협력을 우려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행정기관과 외부단체는 주민들의 우려를 ‘고집불통’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협력으로 상생의 원리를 배워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산리 맑은내배꽃마을,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사이버타운 등을 찾아 협력의 중요성을 되짚어봤다. 1. 밀양 연극촌 경쟁력 ‘쑥쑥’ 밀양 연극촌은 연극을 테마로 한 ‘국내 유일’의 마을이다. 월산초교가 폐교된 직후인 1999년 밀양시는 연극단체인 연희단거리패에 5000평의 학교 부지와 건물을 무상임대했다. 연희단거리패는 여기에 공연장과 연습실 등을 꾸미고,2000년부터 매주 토요일 ‘주말극장’을 열어 연극 마니아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듬해부터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여는 등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밀양연극촌은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이사장을, 이윤택 전 국립극단 예술총감독이 예술감독을, 밀양백중놀이 기능보유자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68호인 하용부씨가 촌장을 맡는 등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또 50여명의 연극인이 상주하며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말극장을 찾는 관람객만 평균 200여명 수준으로, 웬만한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극장이 부럽지 않다. 연간 방문객은 5만∼6만명에 이른다. 하 촌장은 “방문객이 늘었지만, 아직은 적자를 면치 못해 외부공연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면서 “하지만 연극인으로서 마음껏 재능을 뽐내고, 일반인들에게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로는 서서히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밀양연극촌은 행정기관과 민간단체가 협력으로 일궈낸 성공사례다. 다만 지역주민들과 연계한 프로그램은 빈약하다. 하 촌장은 “지역주민들과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포장을 할 줄 모른다.”면서 “그런 사람이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는데….”라며 아쉬워했다. 2. 맑은내배꽃마을 역할분담 행정기관과 민간단체가 손을 잡고, 주민들까지 끌어들여 꿈을 키워나가는 곳도 있다. 70가구 220명의 아담한 시골동네인 울주 맑은내배꽃마을에는 올초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울주군은 이곳을 농촌체험마을로 꾸미기 위해 ㈜코엑스포라는 기획업체와 협약을 맺었다. 코엑스포는 마을 이름을 화산마을에서 현재 이름으로 바꾸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도시민을 상대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이광복 마을 운영본부장은 “소득 분배의 투명화로 갈등요인을 차단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지난 9월 문을 열자 한달만에 1만2000명이 다녀갔다. 참가비와 생산품 판매로 1억원의 수익도 올렸다. 농산품 판로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마을 주산품인 배의 절반 이상을 체험객들이 구입했다. 올해 말까지는 모두 2만명이 예약되어 있다. 체험마을 안내요원 등으로 13명을 채용해 고용 창출효과도 내고 있다. 이같은 초기 성공은 부산·울산지역의 유일한 체험마을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한몫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주민들은 생산·판매, 외부단체는 프로그램 마련, 행정기관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 분담’이다. 여기에 울주군은 마을과 500m 가량 떨어진 명산초교를 울산지역 유일의 영어학교로 지정하는 한편, 이웃 외고산옹기마을이나 간절곶 등과 연계한 개발계획도 추진한다. 이 본부장은 “지금은 구멍가게, 민박집 하나 없지만 귀농을 유도해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면서 “다만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를 한데 묶어줄 인적·조직적 네트워크는 없는 만큼 정부 차원의 보완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3. 진주 사이버타운 특화 집중 밀양연극촌이나 맑은내배꽃마을처럼 모든 동네가 ‘홀로서기’가 가능할 만큼 자체 경쟁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지닌 것’보다는 여전히 ‘없고 불편한 것’이 많다. 때문에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일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반성면을 비롯, 일반성면, 진성면, 사봉면, 지수면 등 5개 면에서는 1999년부터 정보화 기반 지역개발사업인 ‘사이버타운 프로젝트’가 추진됐다.2001년부터 조성된 정부 주도의 정보화마을에 앞서 행정기관의 도움 없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역단체인 진주농촌정보문화연구회의 주도로 진행된 민간 차원의 농촌정보화운동이다. 이제는 정보화 관련 영농조합까지 운영할 정도로 기반을 다졌다. 황인철 진주농촌정보문화연구회장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고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며,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각각의 마을이나 동네가 갖고 있는 장점을 한데 묶어 특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중”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사봉면은 지방공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고, 진성면은 과학고와 체육고 등이 자리잡고 있어 교육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 또 연간 7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경남수목원과 정수예인촌이 조성된 이반성면과 오일장이 열리는 일반성면은 외지인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투입요소는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돼야 한다.”면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가 자칫 구체적인 성과는 없이 지역간 위화감만 조장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밀양·울주·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남해 가천다랭이마을 성공사례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다랭이마을은 농촌체험마을로 ‘대박’을 터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험마을을 시작한 2002년에 방문객은 20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는 벌써 17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60가구 150명의 주민이 벌어들이는 한해 수입은 모두 합쳐 1억 5000만원이 고작이었으나, 지금은 5억원가량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마을 이웃에 펜션 등을 지으려는 사람들까지 몰리면서 땅값은 50∼100배나 올랐다. 성공 비결은 마을 고유의 다랭이논을 특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랭이논은 비탈지를 계단 형태로 깎아 만든 논(다랑이논)을 일컫는 사투리로, 다락논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다랑이논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거의 유일한 해안가 마을인데다, 다랭이에 대한 상표권까지 확보해놨다. 또 방문객들이 먹고 자기 위해 쓰는 돈 말고도, 방문객들이 현장에서 사갈 수 있는 마늘 등 맞춤형 농작물을 재배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가천다랭이마을은 이제 살기 좋은 지역이 됐을까. 오히려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람냄새 나는 마을이 상혼만 판치는 관광지로 둔갑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싹트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한 문제점도 쏟아냈다. 마을을 들어서면 온통 콘크리트로 덕지덕지 바른 길과 시멘트 담장뿐이다.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정취가 느껴지던 돌담길은 온데간데 없다. 마을터가 경사지에 위치하다 보니 가파른 마을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주민의 상당수는 관절염 환자라고 한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주택의 90% 이상이 불법 건축물일 정도로 주거환경도 열악하다. 또 마을 앞 바다는 해삼·전복·미역·갈치 등 어족자원이 풍부하지만, 배를 댈 방파제와 선착장이 없어 생선은 시장에서 사먹어야 한다. 이웃마을의 선착장을 이용하려 해도 만만치가 않다. 주민들은 ‘달빛에도 논이 마른다.’고 말할 정도로 주민들의 주업인 농사가 잘 될 리도 만무하다. 김주성(50) 이장은 “도시민들이 살고 싶다는 문의전화를 많이 하지만, 텃밭만 가꿔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방문객이 늘기만 기다린다면 마을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공감대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있다. 김학봉(61)씨는 “마을을 가꿔나가려면 상인이 아닌 주민, 그것도 젊은이들이 들어와야 한다.”면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동 생산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구획정리로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주택을 짓는 것은 물론 폐교도 대안학교로 조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대세(70)씨도 “처음에는 소득을 높이는 데만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되지 않도록 상업화를 경계해야 할 시기”라면서 “마을 뒷산인 설흘산과 응봉산 등을 찾는 등산객도 많지만,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 훼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해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0) 경남 함양군 원산 약초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0) 경남 함양군 원산 약초마을

    폐병에 직효라는 산더덕, 간에 좋다는 인진쑥, 항암제인 겨우살이, 정력에 좋다는 청미래 넝쿨... 경남 함양군 병곡면 원산마을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산약(山藥)이 지천으로 널린 ‘약초마을’이다. ●오갈피·산초 등 채취하느라 분주 명약(名藥)은 명산(名山)에서 난다고 했던가. 원산마을은 지리산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예년보다 늦게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 온 단풍이 약초마을 어귀부터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괘관산을 농도 짙게 물들이고 있다. 봄이 산나물의 계절이라면 이곳 지리산 산골마을의 가을은 바야흐로 약초의 계절이다. 각종 약초를 채취하랴, 말리랴, 시장에 내다 파느라 주민들은 분주하다. 경주김씨 사람들 중심으로 30여가구가 약초를 캐며 알콩달콩 살고 있다는 마을에 들어설라치면 고불고불 나 있는 나지막한 돌담장길이 정겨워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가을볕에 말리기 위해 길게 널어 놓은 ‘나락’들 사이로 콩 타작을 끝낸 이야무치(여·56)씨. 물통이며, 도시락을 챙긴 걸망을 메고 허위허위 고샅길을 나선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쁠 때지만 틈틈이 산에 올라 약초를 캐기 위해서란다. “아무리 바빠도 약은 캐야지예. 하무요. 이 달에도 자석들한테 부칠 돈이 있능기라예” 무작정 따라붙은 이방인이 귀찮으련만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곳곳에 자라고 있는 약초 성분이 있는 나무며 풀을 가리키며 잘도 설명해준다.“요건 오갈피 나무, 요건 산초…. 이건 인진쑥이라.”언뜻 보면 그냥 지나칠 풀숲과 잡목더미지만 숨어있는 약초를 기막히게 찾아낸다.50년을 산에서 약초만 캤다는 아낙네의 눈썰미와 해박함에 혀가 내둘린다. “교육은 무신…. 국민학교만 간신히 나왔지예. 일주일에 세 번 가믄 많이 간 기라요.” 못배운게 가슴에 맺혀서 자식들만큼은 약초캔 돈으로 교육을 마쳤단다. ●새콤달콤 오미자차 한잔에 산냄새 물씬 이곳 약초가 입소문으로 유명해지자 함양군이 100만평 규모의 약초작목단지를 조성해 지원에 들어간 것은 2003년이다. 마을 주민들도 공동작목반을 구성해 공동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처음에는 저게 언제 돈이 되겠나 하는 의심과 일손부족으로 서로 협동도 잘 안됐다고 한다.“올 봄 작목지에서 취나물, 고사리 등이 대규모로 소출이 나면서 돈이 되기 시작했습니더.” 마을 작목반의 박숙이(43)씨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한다. 마을 앞 2000평의 밭에는 보라색, 흰색의 도라지 꽃이 만발해 있다. 대규모로 조성된 도라지 작목지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시절에 산에 올라 값이 될 만한 약초를 캐다 팔아 겨우 생계를 이었던 옛날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쌀쌀해진 기온 탓인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던 직후라 그런지 몇 번의 기침을 하는 기자에게 ‘약초 아주머니’가 감기에 좋다는 따뜻한 오미자차 한잔을 권한다. 새콤달콤한 차 한모금이 깔깔한 목구멍을 타고 넘을 때 산냄새가 물씬 느껴지나 싶더니 이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서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맘씨 좋은 산골아낙의 미소처럼.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늦가을 산사에서 보낸 편지

    늦가을 산사에서 보낸 편지

    남쪽 지리산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다.9월 말부터 반도 허리의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의 오색 물결이 백두대간의 봉우리를 징검다리 삼아 지리산까지 내려섰다. 성삼재와 정령치 등 높은 고갯마루를 건넌 단풍은 골 깊고 물 맑은 계곡까지 찾아왔다. 알다시피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에는 천년 사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오색의 파스텔 톤으로 색칠한 산사의 가을을 보고 있노라면 속세의 때에 찌든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산사의 모습에 눈이 시원해지고, 댕그렁 댕그렁 청아하게 울려대는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가슴까지 맑게 흐르는 옥수(玉水) 한 모금에 마음의 때가 씻겨나간다. 자, 깊어가는 이 가을에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지리산의 산사로 훌쩍 떠나보자. 그리고 보고픈 사람에게 편지 한 장을 써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형,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아마 형에게 대학 2학년 때 편지를 써보고 첨이네. 가끔 메일이나 전화로 이야기하다 이렇게 펜을 드니 좀 어색하다. 참, 형이 그렇게 칭찬하던 가을 지리산에 다녀왔어. 생각나? 최루탄 가스로 매콤한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야, 가을 지리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이야기 하지마.”라고 크게 외쳤던 것 말이야. 그래서 지리산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단풍도 보고 천년이 넘는 사찰을 돌아보았지. 너무 좋았어…. # 어머니의 가슴 같은 실상사 지리산 서쪽의 뱀사골 끝자락에 연꽃 모양의 산세가 둘러싸고 있고, 그 연꽃의 밥 즉 ‘연밥’에 해당되는 소중한 자리에 실상사(實相寺)가 위치해 있어. 한국 선문의 발상지인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우리나라 선문의 효시인 ‘구산선문’이 이곳 ‘실상산문’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선풍(禪風)의 발상지이기도 해. 형, 근데 참 재미난 사찰이야. 이렇게 유서 깊고 오래된 절이 울창한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 한가운데 있어. 일주문도 없고 잘 꾸며져 돌담에 마치 오래된 한옥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 천왕문을 지나자 사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담한 목조 건물이 몇 개,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 외갓집에 온 듯 너무 마음이 푸근해져.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여럿 있고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어.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보물33호), 수철화상능가 보월탑비(보물34호), 석등(보물35호), 부도(보물36호), 삼층쌍탑(보물37호) 등 보물이 즐비해. 무심히 바라보면 사방이 터져있는 들판 한가운데에 멋쩍은 듯 엉거주춤 서 있어 볼품없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수 많은 국보와 보물뿐 아니라 지친 우리 마음을 감싸주는 어머니 가슴 같은 곳이야. # 불타버린 뱀사골과 피아골 정말 지리산의 날씨는 ‘여인의 마음’과 같다고 한 말이 실감나더라. 가을 햇살이 아름답던 날씨가 갑자기 흐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더 좋았어. 부슬부슬 비 내리는 사찰의 처마 밑에 잠시 걸터앉아 한적한 경내에 울려 퍼지는 풍경의 아름다운 소리, 그 여운이 가슴 속에서 잔잔히 울려…. 차를 몰고 861번 도로로 노고단을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예술이야. 구불구불 위험하긴 하지만 지리산 봉우리를 타고 넘는 하얀 구름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근데 좀 아쉽게도 올해는 가을 가뭄이 심해서인지 단풍이 좀 별로야. 노고단쪽은 이미 단풍이 들었는데 예년보다 덜하고 7부 능선 아래는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았더라고. 아마 형이 이 편지를 받는 주말쯤이 절정에 달할 것 같아. 수려한 단풍으로 유명한 남원 뱀사골로 들어서니 형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님이 실감나더라. 계곡 들머리의 수려한 바위들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와. 또 맑고 깨끗한 소·담을 물들인 붉은 물결에 지리산의 속살을 느꼈어. 이무기가 용이 됐다는 ‘탁용소’,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았다는 ‘뱀소’, 소금장수가 물에 빠져 이름이 붙은 ‘간장소’, 정진스님이 산신제를 올렸다는 ‘제승대’ 등 이번 주에 가려면 꼭 뱀사골로 가, 알았지? 참, 4일 뱀사골에서 단풍제례가 열려 볼거리를 더한대. 구름 낀 노고단을 넘어 구례 피아골로 향했어. 피아골은 예년에 비해 단풍이 좀 늦데. 아마 11월 초·중순이 절정일 것 같대. 그래서 연곡사에 들렀어. # 가을 길의 저 끝에 19번 국도에서 빠져 양편으로 황홀한 모습의 단풍나무 길을 달렸어. 아직 절정을 맞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길가에 진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서로의 모습을 뽐내는 여인의 자태처럼 농염한 모습이야.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6년(545년)에 연기대사가 창건한 고찰인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어. 그 후 수 차례 증건과 소실을 되풀이하다 지금은 작은 법당이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야. 연곡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두가지가 고려시대에 만든 ‘동부도’와 ‘북부도’란 석탑이야. 자세하게 봐. 그 단단한 재질인 화강암을 한땀 한땀 정으로 쪼아서 그린 운룡과 사자, 사천왕 등 그림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야. 아마 로마에 있는 라오콘 상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그 이상이야. # 반달곰이 살고 있는 천년 고찰 형, 지리산 반달곰이 살고 있는 문수사라고 들어봤어? 나도 신기해서 안내판을 보고 핸들을 꺾어 들어갔어. 세상에 굽이굽이 험한 산길을 한 30분을 달렸나.1단을 놓고도 힘겹게 오른 산의 끝자락에 문수사가 있더라. 무려 해발 700m야.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런 사찰이야. 백제 성왕 25년(547년) 연기조사께서 창건했고 원효, 의상 대사를 비롯해 윤필, 서산, 소요, 부유, 사명대사 등 우리나라의 고승들이 수행 정진한 제일의 문수도량이래. 임진왜란 때 일부가 파괴됐고 6·25때 전소되었다가 1980년대에 새로 지어졌대. 3층 법당 대웅전(목탑)이 멋져. 또 문수사에 정말 반달곰이 있어. 비록 철창에 갇혀있지만 시커먼 곰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하얀 V자가 예쁘더라. 원래 4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방사를 하고 이젠 두 마리만 남았대. 이밖에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지은 화엄사, 녹차의 시배지로 유명한 쌍계사, 작고 아담한 천은사 등도 가을에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은 절이야. 어때, 형. 지리산에 가본 지 오래지. 아이들과 형수님 손잡고 이번 주에 지리산의 고즈넉한 산사에 꼭 한번 다녀와. 마음이 넉넉해질 거야. # 단풍 구경도 식후경이래 참, 내가 맛있는 식당 몇 개 소개할게.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한 거 알지. 광한루옆 옛 육남시장터 천변에 있는 새집(063-625-2443)과 부산집(063-632-7823)이 유명해.6000~7000원선이야. 가족들과 좀 근사한데서 먹고 싶으면 남원 시내 청월장(063-633-7533)의 한정식 한번 먹어봐. 도미회, 대하, 육회, 삼합과 각종 나물 등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와.1인분에 3만원인데 아이들이 어리니까 형수랑 2인분이면 충분히 먹을 거야. 또 뱀사골에는 그때 그 식당(063-625-3329)을 비롯해 산채백반집이 많아.15∼16가지나 되는 산나물이 푸짐해.7000원이야. 구례쪽에서는 화엄사 가는 길의 그 옛날 산채식당(061-782-4439)과 지리산식당(061-782-4054)이 유명해. 고기가 생각나면 이시돌(061-782-4015)의 한방 갈비도 강력추천해. 담백한 육질과 깔끔한 밑반찬에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
  • 안동별궁 돌담 사라지나

    서울 안국동에 있는 조선 후기 궁궐 ‘안동별궁’(安洞別宮)의 돌담 보존작업이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외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18일 문화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 7월부터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화동길 탐방로’ 조성 공사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안동별궁 돌담이 훼손되고 있다. 서울시는 풍문여고 부근에서 탐방로 조성공사를 진행 중인데 이 과정에서 돌담 아래 쪽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예전부터 흙에 덮여 묻혀 있던 돌담 밑의 장대석(長臺石·하부에 가로로 놓는 돌)은 돌담에 맞닿게 새로 설치한 화강암에 갇힌 모양이 됐다. 북촌 가꾸기를 위한 공사가 오히려 소중한 문화재에 상처를 입히고 있는 셈이다. 1881년(고종 18년)에 지어져 왕실 만찬장으로 쓰이던 안동별궁은 지금은 내부 건물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풍문여고가 들어섰다. 풍문여고 담장 자리에 있던 돌담도 3개면은 모두 없어지고 학교 정문에서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한 쪽 면만 남아 학교 담장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노후로 붕괴 위험이 큰 상태다. 이처럼 돌담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화재청이나 서울시가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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