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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구 길찾기 쉬워진다

    강남구 길찾기 쉬워진다

    지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획기적인 새 주소 체계가 선보인다. 강남구는 24일 올해 말까지 큰 도로(간선도로)를 기준으로 주소를 부여하는 ‘새주소명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남구에는 남·북으로 8개, 동·서로 12개의 큰 도로가 있다. 이 도로가 기준이 되는 셈이다. 또 꽃이름 등을 딴 934개의 길이 있다. 이 길 이름은 사라진다. 다만 ‘돌담길’ 등 이름이 예뻐서 주민들이 계속 사용하기를 원하면 존속시키기로 했다. ●행자부도 강남구 방안 수용 시행 검토중 맹정주 구청장은 “현재 주소체계는 토지 지번을 이용한 주소 체계로, 지번간 연계성이 없어 보통 사람은 지도를 봐도 찾기 어렵다.”면서 “여기에 정부의 새주소 체계도 도로명에 건물번호를 부여한 도로명 주소 체계로, 지도에서 길이름 색인을 찾지 않으면 위치 예측이 되지 않는 애로사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는 행자부의 계획에 맞춰 2011년까지 기존 지번 주소와 새주소를 병행해 사용하고,2012년부터 새주소 체계로 전면 전환할 방침이다. 현행법에 새 주소명을 붙이는 권한은 자치단체장에게 있다. 맹 구청장은 “행자부도 강남구의 새주소 개선 사업이 새주소 시행에 부합되므로 유사한 여건을 가진 시·군·구로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큰 도로 이름에 방위·숫자 부여 새주소 체계는 큰 도로 이름에 방위와 숫자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강남 학동로 남3길(그림)’은 강남 학동로의 길을 따라 가다가 남쪽 방향의 세번째 길이라는 의미다. 현재 주소와 행정자치부의 신주소, 강남구가 추진하는 신주소 체계를 비교하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 29번지 12호’는 현재 주소 체계다. 주소만 보면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논현동만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 행자부가 추진하는 신주소로 바꾸면 ‘서울 강남구 동산말길 74’가 된다. 동산말길이라는 길은 자주 들어보지 않았지만 동산말길을 찾으면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는 체계다. 행자부 새 주소에 따르면 ‘개나리길’은 서울에만 자치구별로 수십개의 길이 있다. 이 길을 모르면 지도의 색인을 통해 찾아야 하지만 이마저 수십개가 검색돼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이를 다시 강남구 신주소 체계로 전환하면 ‘서울 강남구 논현로 서24길 74’가 된다. 논현로를 따라 서쪽 방향의 스물 네번째 길이라는 의미다. 큰 도로 이름에 방위와 숫자를 부여한 만큼 목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체계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 우물가의 사랑

    김홍도의 그림 ‘우물가’다. 길 가던 사내는 더운 날씨에 목이 무척 말랐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양태가 작지 않은 갓을 등 뒤에 매단 것으로 보아, 아주 상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가슴을 풀어헤치고 물 긷는 젊은 아낙에게 물을 달라니 말이다. 게다가 가슴에는 검은 털이 무성하다. 가슴 털은 성적 기호다. 남성의 떡 벌어진 가슴, 그리고 무성한 털이 성적 기호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성적 분위기 맴도는 우물가 두레박을 건네고 줄을 잡고 있는 젊은 아낙을 보라. 상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참으로 곱지 않은가. 내 생각에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로 보인다. 아낙은 수줍어 얼굴을 돌려 사내의 털북숭이 가슴을 보지 않고 두레박만 건넨다. 젊은 아낙 아래쪽의 머리를 위로 틀어 묶은 중년의 아낙 역시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물 속 두레박만 보고 있을 뿐이다. 단원은 우물가에서 남자와 여자가 은밀하게 성적 기호를 주고받는 장면을 작은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림은 신윤복의 ‘우물가의 고민’이다. 그림 위쪽에 둥근 달이 떠 있다. 밤이다. 달이 걸린 나무를 보시라. 붉은 꽃이 피어 있다. 식물에 대해 무지한 나는 저 꽃이 앵두꽃인지, 복사꽃인지 모른다.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그림 아래쪽에는 젊은 여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여자는 우물가에 앉아 두레박 줄을 잡고 있고, 서 있는 여자는 오른손을 턱에 괴고 고민에 빠진 눈치다. 무언가 심각한 사건이 있다. 고민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림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지만, 찾아볼 수 있는 데까지는 찾아보자. 두 여자는 양반집 여자가 아니다. 옷차림을 보라. 둘 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있다. 똬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여자는 흰 민짜 저고리를 입었다. 왼쪽 여인은 녹색 저고리이기는 하지만, 저고리 고름만 자주색일 뿐 다른 장식이 전혀 없다. 또 신은 모두 신이다. 초라한 복색으로 보아 두 여인이 양반집 여자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두 상사람 여인네는 왜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인가. 우물이 있는 장소를 보자.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기와를 얹은 작은 문이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아니다. 큰 양반 가문은 건물이 크고 복잡하며 중간에 무수히 작은 문들이 있다. 이 문 역시 그런 문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담장이다. 담장이 허물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묵은 양반가로 생각되는데, 그 담장에 사내가 하나 서 있다. 사내가 쓰고 있는 양반만이 쓰는 사방관으로 보아, 이 사내는 이 집의 주인 양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내는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꼿꼿이 서서 두 여자를 정시하고 있다. 다만 이 사내의 표정은 음침하다. 주인 양반이 왜 밤중에 집안 여자들이 우물가에 모여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단 말인가. 두 여자는 왜 물을 긷다 말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가, 또 서 있는 여자는 왜 턱까지 괴고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가. 그림은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이 남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혜원이 그림 속에 담은 생각이 무엇인가 늘 궁금하였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으면 상상이다. 담 넘어 서 있는 양반이 서서 고민에 빠져 있는 젊은 여인을 건드렸고, 첩으로 들이려 하자, 그 사실을 여인은 동무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임신을 시켰든지. 이 그림은 바로 그 고민상담의 장면이라는 것이다. 양반은 이런 이유로 서 있는 여성에게 무슨 제안을 하였고, 그 여성에게 하회를 기다리는 중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런 해석이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꼭 그렇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고민에 빠진 여성과 돌담 밖의 남자 사이에 어떤 성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은 그리 근거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유래 오래된 ‘우물과 성의 결합´ 이제까지 본 단원과 혜원 두 그림 모두 우물이 중요한 제재고, 그 우물가에는 성적인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한데 우물은 원래 성적인 것이다. 물이 솟아오르는, 깊고 어두운 곳, 어딘가 ‘여성’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게다가 우물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우물과 성적인 결합의 연관은 역사적으로 그 유래가 퍽 오래된 것이다. 고려가요 ‘쌍화점’은 우물과 성의 결합을 노래한다. 드레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에 나며들면 하면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 드레우물의 ‘드레’가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한데 용두레우물이란 말이 있다. 만주의 지명 용정(龍井)을 풀면 곧 용드레우물이 된다고 한다. 용드레는 용두레일 것이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긴 나무 속을 파서 만드는 물 푸는 도구가 용드레다. 아마도 드레는 용두레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드레는 또 ‘두레박’의 ‘두레’와 같을 것이다. 어쨌거나 물을 푸는 도구임은 분명하다. 여자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로 갔더니, 우물에 사는 용이 여자의 손목을 쥔다. 이후의 구체적인 과정은 생략하자. 여자는 용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 걱정이다. 본 사람, 아니 본 물건은 두레박 밖에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인즉 밖으로 소문이 나면 너 두레박이 한 것이라 말하겠다. 뭐, 이런 뜻이다. 그 뒤의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잔 곳같이 울창한 곳이 없다.’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우물의 용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모른다. 하지만 우물과 용은 긴밀한 관계가 있음은 사실이다.‘삼국사기’를 보면,‘자비마립간’ 4년(461) 여름 4월에 ‘용이 금성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 하였고,‘소지마립간’ 22(500)년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았으며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났고, 서울에 누른 빛깔의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다.’ 하였다. 이것은 어떤 자연현상을 두고 용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자연현상을 추리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는 매일반이다.‘삼국사기’의 기록이야 1000년 하고도 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옛 것이지만, 지금과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 태종 18년(1418) 수군 첨절제사 윤하는 경기도 교동현 수영(水營)의 우물에 황룡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수영 앞에 우물이 있는데, 수군이 물을 길러 갔더니, 허리가 기둥만 한 누런 색 용이 우물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무엇을 보기는 본 모양인데, 그것이 과연 어떤 자연현상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신덕왕후 우물 용을 이야기 하다가 말이 옆으로 샜다. 어쨌거나 우물은 용과 관련이 있고,‘쌍화점’의 여인은 우물의 용과 성관계를 맺는다. 한데 우물의 용은 아니지만, 용과 다름없는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다.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다. 이성계의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랐다. 돌아보니 우물이 있다. 해서 물 길러 온 젊은 아가씨에게 물을 청했더니, 달고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떠 준다. 급한 마음에 입에 쏟아 부으려 하는데, 웬걸 물에 버드나무 잎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잎사귀를 불면서 마실 수밖에. 목을 축인 다음 물었다. 왜 버드나무 잎을 띄웠느냐고? 답인즉 한창 목이 마를 때 물을 급하게 마시면 체한다고, 그러니 잎사귀를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단다. 얼마나 슬기로운가. 그제사 얼굴을 보니, 인물도 곱다. 당연지사 둘은 짝을 지었다. 이 여인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康氏)다. 이성계는 뒷날 강씨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을 사랑하여 왕위에 올리고자 했지만,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건 뒷날 이야기고, 이성계는 용상에 올랐으니, 강씨의 입장에서는 우물가에서 용을 만난 셈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입에 가끔 올리는 대중가요에 ‘앵두나무 처녀’란 노래가 있다.“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로 시작되는 노래 말이다. 우물가에서 처녀들은 서울에 관한 말만 듣고 모두 물동이와 호미자루를 던지고 서울로 달아난다.2절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동네의 총각도 역시 신부감이 달아난 서울로 달아나 버린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우물가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신호가 오가는 곳이다. 우물도 사라진 지금 그럴 일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득하다/유승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득하다/유승도

    산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개의 짖음도 흑염소의 울음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돌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날아가는 까치도 까치가 앉았던 살구나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방 밖으로 나서는, 아이의 목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하늘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방금 내린 눈까지 지우며 눈이 내린다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5)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15)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정확한 형성 연대를 알 순 없지만 대략 신라 흥덕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말기 승려 도선이 우연히 이인을 만나 세상사를 물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모래 위에 삼국도(三國圖)를 그려 삼국통일의 징조를 암시해 주더란다. 도선이 이에 크게 깨달아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렸다’란 뜻의 ‘사도리’란 이름을 얻었고, 일제 때는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각각 상사리와 하사리로 구분해 나누었다. 지리산 노고단(1507m) 남녘 기운을 고스란히 받고 선 윗마을 상사는 구례군내는 물론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장수마을로 꼽힌다.1986년 인구통계조사 결과 국내 제1의 장수마을에 선정된 적도 있을 정도다. 상사마을 사람들의 장수비결은 ‘지리산 약초 뿌리가 녹아 있다’는 조그만 샘물 ‘당몰샘’에 있다.1980년대 중반 모 대학 예방의학팀의 수질검사 결과 대장균이 한 마리도 검출되지 않아 최상의 물로 진즉에 판명 받았고,2004년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전국 10대 약수터 중 하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 마을 토박이 의성 김씨 선조가 조선 후기 명당을 찾아 전라도 땅을 헤매다가 당몰샘을 발견, 물을 저울에 달아보았더니 다른 곳보다 무겁고 수량도 풍부해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는데 실제 동량의 수돗물보다 이 샘물의 무게가 더 나간다. 지난해 SBS-TV의 의뢰를 받아 전남보건환경연구원이 시행한 수질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미네랄 성분이 유독 많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100세를 넘긴 분이 계셨고 90대 분들도 여럿 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작고했고 현재는 88세의 황영복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황금숙 할머니가 마을 최고령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들 오환수(65)씨와 살고 있는 황금숙 할머니는 구한말 애국지사 매천 황현의 증손녀이다. 아들 오씨는 하루 종일 담장을 손보는 일로 분주하다. 길가에서도 툇마루에 누운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담을 이어 쌓고 옆으로 새 출입로를 내는 중이다. 상사마을에 뿌리내린 지 57년된 모자의 집은 인근 오미리 시절부터 치자면 무려 300년도 넘는 고택이다. “군에서는 이 마을을 한옥문화촌으로 지정할 모양이에요. 저희 집을 포함,10여호의 한옥이 잘 보존돼 있고요.3월부터는 군 지원 하에 열두 채의 한옥이 더 지어질 예정입니다. 당몰샘 옆의 ‘쌍산재’는 5대가 함께 살았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종손만 거주 중이고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활용 중이지요.” 마산면 일대에서 가장 많은 농지를 갖고 있는 곳이 상사라지만 20여년 전부터는 논농사 외에도 녹차 재배가 한창이다. 아직까진 찻잎을 재배해 타 지역에 판매하는 게 전부인데 상사마을 이름을 건 제품이 출시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당연히 농약은 일절 살포하지 않은 무공해 찻잎이다. 상사마을엔 그 흔한 역병도 없었고,‘산손님’으로 통하던 빨치산과 토벌대 사이에서 시달린 일도 없었으며, 몹쓸 흉년도 없었다. 오환수씨는 그게 다 당몰샘 덕분이라고 믿는다. 돌아가신 백부로부터 그렇게 듣고 자라기도 하였다. 처음 60여호쯤 살았던 곳에 하나 둘 외지인이 들어와 최근엔 13호쯤 가구 수가 늘었으니 그것도 당몰샘의 신기한 기운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을 가득 담아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따라 당몰샘은 오늘도 전국 각지로 지리산 생명력을 고루고루 흩뿌리고 있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부산 사상 서부터미널에 구례까지 가는 버스가 있고, 기차는 전라선 구례구역에서 하차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로 진입한다. 남해고속도로는 하동IC를 경유해 구례로 갈 수 있다. 구례에선 화엄사 방향을 따르다 청천초등학교 옆길로 우회전한다. 중간중간 쌍산재 이정표가 보인다.
  • [문화마당] 서울에 내리는 눈/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극작·연출가

    근년에 눈 내리는 풍경을 보기 힘들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겨울시즌에도 좀체로 눈을 보기 힘들었고, 눈이 온다 하더라도 질척거리는 겨울비를 동반하든지 때 아닌 진눈깨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눈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잊어 버렸다. 지상 위 모든 색상을 압도하는 강렬한 백색,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평화로운 은총이 쏟아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구르몽의 시에 노래를 붙인 샹송을 흥얼거리거나 식민지 시대의 시인 오장환의 시를 떠올릴 수도 있다. 어서 내려라 갈매빛 바다와 짙은 회색의 도시 위에 퍽퍽 내려다오 태양이 또 그 위에 빛나리라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올해 첫달 열흘 밤부터 내린 눈은 열하룻날 새벽에 이르러 서울 시가지 풍경을 완전한 백색으로 지워 버렸다. 게릴라소극장 이층방에서 잠들었던 배우들은 “눈이다!” 소리치며 반갑게 골목길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눈을 맞이하러 극장을 뛰쳐 나간 배우들은 눈밭을 뒹굴지 못하고 변변한 눈사람 하나 만들지 못하고 곧장 극장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오장환의 시처럼 태양이 그 위에 빛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매연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운 세상 기운 탓인지 무척 추웠고 칼바람까지 불었다. 서울 시가지는 오히려 인적이 끊어지고 심하게 질척거렸다. 우리가 눈을 그리워하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다. 지난 시대 깊게 파인 골을 메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영약(靈藥)이기를 바랐다. 구차한 변명, 파렴치한 구설수, 소모적인 불화 따위 온갖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지우면서 희망이란 단어가 눈송이처럼 내려주기를 바랐다. 그 위로 태양이 떠올라 말끔하게 씻긴 서울이 다시 평화로운 풍경으로 회복되기를 바랐다. 현실은 추악하고 인생은 너덜난다. 우리는 매번 개혁이란 이름으로 누각을 짓고 새로운 세계라고 믿으며 부패한다. 명색 세상의 짐을 지겠다고 나선 정치가들이 이것이 시대정의요 살 만한 세상이요 떠들면서 현실을 부분적으로 짜깁기한들 언젠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외로워진다. 그 점에서 정치는 계속되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의 문명사(文明史)다. 정치적 의도나 문명의 힘으로 인간은 결코 인간다운 삶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오히려 저 눈 내리는 풍경이다. 덕수궁 돌담 길 나무 위에서 여전히 재잘대는 새들의 지저귐이다. 이것이 자연의 재생력이다. 우리가 눈 내리는 풍경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현실의 모든 추악함을 견딜 수 있고,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기에 서울은 여전히 살 만한 도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내리는 눈조차 현실의 난기류(亂氣流)에 뒤섞여 질척거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지난 시대를 통과하면서 너무 많은 주장들이 뒤섞이고 악의적인 싸움으로 골이 파이면서 집단적인 트라우마(trauma:우울, 무기력, 환멸 등으로 드러나는 신경증세)에 빠져 있다. 이제 현실로부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서울 하늘에 드리워진 회색 구름을 걷어내고 어떻게 맑은 해를 띄울 수 있을 것인가, 순결한 눈을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눈을 녹이려면 뜨거운 키스 내 마음을 울리려면 이별의 키스…. 시몬, 내 동생 눈은 뜰에 잠들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구르몽의 시에서) 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극작·연출가
  • 덕수궁 등 3곳 ‘도시갤러리’

    덕수궁 등 3곳 ‘도시갤러리’

    덕수궁과 정동사거리, 서울숲 등 3곳에 국내 대표작가 3명의 조형작품이 설치됐다. 도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사업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16일 중구 정동 덕수궁 돌담길 300m에는 목공예가인 홍익대 미대 최병훈 교수의 예술의자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를 놓았다. 화강석, 마천석, 벚나무 등의 천연재료를 소재로 직선을 배제한 유선형 의자 19개를 설치한 것으로,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에서 사색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정동사거리 옆 언덕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인 안규철 교수의 공간조형작품 ‘보이지 않는 문’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도로 확장을 이유로 철거된 돈의문 자리를 표시하고 기념하기 위해 폭 24m, 높이 4m의 벽면을 설치했다. 도로에 화강석 포석을 깔고 옹벽에는 방부목, 유리 등으로 대문의 느낌을 형상화했다. 서울숲 안 바람의 언덕에는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원인종 교수의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란 작품이 설치됐다. 높이 18m, 너비 2m 규모의 이 작품은 역삼각형 몸체 위에 바람에 따라 천천히 돌아가는 파란색 물방울 모양의 머리가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서울숲의 생태적 이정표 역할을 한다. 시 관계자는 “조형물들은 장소의 역사, 생태, 문화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해안서 해맞이 할까 한겨울 봄체험 해볼까

    서해안서 해맞이 할까 한겨울 봄체험 해볼까

    한국관광공사는 ‘08년 1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서쪽에서 해 뜨는 왜목마을(충남 당진)’‘한겨울에도 봄빛이 가득한 남도의 바닷가(전남 장흥)’‘따끈한 온천욕과 다양한 여행 테마 체험(경북 문경)’‘한방(韓方)으로 후끈후끈, 숯가마로 뜨끈뜨끈(경남 산청)’ 등 4곳을 선정했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 왜목마을 일출은 장엄하고 화려한 동해 일출에 비해 짙은 황톳빛으로 물들며 질박한 충청도의 서정을 보여 준다. 서해안임에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땅 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 한 장소에서 해돋이는 물론 해넘이와 달넘이까지 볼 수 있다. 당진전력홍보관, 도비도 농어촌휴양단지, 저항시인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 동양최초 함상공원인 삽교호 함상공원 등 둘러볼 곳도 많다. 안성포구의 박속낙지탕, 성구미포구의 간재미 무침, 삽교호 일대의 조개구이는 여행의 재미를 더해 준다. 당진군청 관광개발사업소 041)350-4792.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는 서울을 기준으로 정남쪽에 위치한 정남진의 바닷가다. 이름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정남진 장흥은 한겨울에도 봄빛이 가득하다. 바닷가 들녘에는 보리싹과 쪽파가 겨우내 파릇하고,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종려나무 가로수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초겨울부터 춘삼월까지 장흥 땅 어딜 가도 붉은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정남진 장흥으로 떠나는 겨울여행은 때 이른 봄 여행이나 다름없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는 두 개의 온천이 있어 겨울여행을 따끈하게 한다. 칼슘, 중탄산천과 알칼리성 등 두 가지 수질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 현지 온천 관계자들은 일본 벳푸온천보다 수질이 낫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문경새재 트레킹과 철로자전거타기 등을 즐긴 다음 온천을 찾아도 좋겠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054)550-6395. 지리산 품에 안긴 경남 산청, 골 깊은 산비탈 바위틈에서 이슬 머금은 야생약초가 옹골차게 자란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약초재배지가 펼쳐지고 한방약초를 이용한 요리와 반찬들이 상에 오르는 걸 보면 산청이 약초의 고장임을 실감케 한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의성(醫聖) 허준과 그의 스승인 류의태의 자취가 곳곳에 전해 온다. 한의학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한의학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여기에 지리산 참숯굴에서 숯가마 찜질을 하고 나면 겨울 추위가 멀리 달아난다.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했던 목면시배유지와 성철 스님 생가, 돌담이 아름다운 남사 예담촌, 밤머리재 너머의 대원사와 내원사 또한 산청 여행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다.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055)970-6421∼3.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구렁이 삼남매’ 부화기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구렁이 삼남매’ 부화기

    구렁이는 옛날이야기에서 늘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온다. 사람을 꿀떡 삼켜버리는 괴물로, 때론 예쁜 각시로, 혹은 은혜는 반드시 갚는 의리 있는 동물로 등장한다.‘호러’부터 ‘에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만큼 구렁이는 흔하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구렁이는 국내 멸종위기종 지난 8월 토종 구렁이 새끼 3마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자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과천에 동물원이 자리잡은 후 토종 구렁이가 태어난 건 처음이었다. 과거 초가집에서 구렁이와 함께 살던 기억을 간직한 세대가 보면 ‘웬 호들갑일까’할 테지만 세월이 변했다. 구렁이는 이미 국내 멸종위기종 중에서도 1급의 귀한 몸이다. 지난 2000년 이후 동물원에는 구렁이 3마리(♂1마리,♀2마리)가 들어왔다. 하지만 녀석들이 작당해 피임을 하는 건지 서식환경이 맞지 않아서인지 새끼는 고사하고 알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2년전 암컷 구렁이 한 마리가 알 무더기를 쏟아냈지만 모두 부화엔 실패했다. 온도와 습도가 안 맞아 알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다로운 어미 탓에 인공적으로 부화를 도와주기도 힘들다. 어미 구렁이는 제가 품던 자리에서 알 위치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귀신같이 알고 다시는 알을 품지 않는다. 고심 끝에 동물원측은 지난 2년간 구렁이 서식지를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뱀이 알을 낳고 품을 수 있도록 속이 빈 고목을 우리에 넣어주는가 하면 나뭇잎을 이용해 응달을 만들어줬다. 난방시설에 가습기까지 동원해 좋아할 만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2년여간의 노력 덕에 새끼 뱀들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그 많던 구렁이 다 어디갔나 생각해보면 구렁이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느 순간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민가의 돌담, 방죽, 밭둑의 돌 틈에 살던 구렁이는 이제 국립공원을 샅샅이 뒤져도 찾기 힘들 정도다. 우리 조상들은 구렁이가 재산을 보호해 준다고 믿어 집안에 들어온 구렁이를 지켜줬다. 보은하듯 구렁이들은 곡식을 축내는 쥐들을 없애 줬다. 하지만 공생의 룰은 쉽게 깨졌다. 초가집이 양옥으로 바뀌고 둑이 포장되면서 녀석들의 보금자리는 차츰 사람들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다량으로 보급한 쥐약은 구렁이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결국 녀석들은 사람을 떠나 산으로 갔지만 이번엔 가장 무섭다는 ‘사람의 입’이 따라왔다. 정력에 좋다는 소문 때문이다. 새끼 티만 벗어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용하다. 결국 구렁이를 잡으면 처벌한다는 야생동물보호법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인터넷 검색창에 ‘구렁이’를 치면 뱀탕집이 나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태안 ‘게르마늄 바지락사업’ 휘청

    지난 7일 발생한 충남 태안 앞바다 대형 유조선 원유유출 사고의 여파로 태안지역 일부 마을에서 펼쳐져온 이색 자립사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태안군은 11일 수년 전부터 야심차게 계획했던 ‘게르마늄 명품 바지락’의 첫 출하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게르마늄 바지락은 바지락 양식장에 게르마늄 모래를 살포한 뒤 우량 바지락 성패(成貝)를 뿌려 키우는 것으로, 군은 지난 10월부터 소원면 파도리 일대 바지락 양식장 20㏊에 게르마늄 모래를 뿌린 뒤 바지락 성패 10t을 심었으며 지난달 20일에는 특허도 획득했으며 크리스마스에 맞춰 첫 생산품을 미국에 수출하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더욱이 일반 바지락의 경우 1㎏당 2000원 안팎인 데 비해 게르마늄 바지락은 7000원선에서 거래가가 형성돼 군은 10t을 출하해 7000만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터지면서 태안산 수산물의 상품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 상품 출하를 포기했다.또 여름 도시민들의 체험관광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던 충남 서해안의 전통어로방식인 ‘독살’도 타격을 입게 됐다. 독살은 길이 150m가량의 돌담을 ‘V’자로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올 여름 1만 2000여명의 관광객이 태안지역 15곳 독살에서 멸치와 광어, 우럭 등 온갖 물고기를 잡는 체험관광을 즐겼으며 이를 통해 태안은 1억원 이상의 관광수익을 올렸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HAPPY KOREA] (31) ‘마을 가꾸기 사업’ 현장 가다

    [HAPPY KOREA] (31) ‘마을 가꾸기 사업’ 현장 가다

    주민들끼리 뜻을 모아 마을 환경을 바꾸는 ‘참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사업은 행정자치부와 서울신문 등이 공동 추진하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정책의 일환으로, 올 초 시작됐다. 전국 153개 시·군·구 1198개 마을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지방정부가 마을별로 2000만원 한도 내에서 예산을 지원할 뿐, 계획 수립과 실천은 모두 주민들의 몫이다. 중앙정부 지원은 한 푼도 없었지만, 주민·출향인 모금 등을 통해 지금까지 총 327억원이 투입됐다.60∼70년대 새마을운동이 관 주도로 이뤄졌다면, 참 살기좋은 마을가꾸기는 주민이 직접 실천하는 ‘풀뿌리 새마을운동’인 셈. 그 현장을 들여다봤다. ■ 전남 장흥군 비동마을 “돌담이 이어준 것은 마을길이 아니라, 이웃끼리의 마음입니다.” 주민뿐 아니라, 출향인들까지 가세해 앵두나무와 우물, 돌담길이 어우러진 옛 고향마을의 정취를 되살린 곳이 바로 전남 장흥군 안양면 비동마을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허물어지고 끊어진 돌담을 다시 쌓는 데는 3년이 꼬박 걸렸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60대 이상 노인들까지 모두 내 일처럼 나서 담을 쌓았다. 지금은 집 담장은 물론 논·밭두렁까지 이어진 돌담길이 5∼6㎞에 이른다. 공들여 쌓아올린지라, 길 주변에는 쓰레기 하나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마을 곳곳에 방치된 공동우물터도 말끔하게 복원했다. 또 마을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앵두나무가 20∼30그루로 줄어들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올 초부터는 앵두나무 600그루를 마을 곳곳에 심어 ‘앵두나무골’이란 명성을 되찾았다. 백형만(65) 이장은 “2010년쯤이면 앵두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해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2000그루 정도를 추가로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향우회도 나섰다. 펜션·화단 조성 등을 위해 모금 활동을 펼쳐 3000만원 가까운 돈을 마을에 내놓았다. 정기적으로 마을 기금을 납부해야 하는 향우회에도 100명 이상이 가입했다. 이처럼 마을 환경이 바뀌면서 외지인 4가구가 최근 마을로 이사오기 위해 집을 짓고 있다. 백 이장은 “마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보다는 그 과정에 주민들은 물론, 출향인까지 한마을 한뜻으로 함께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북 고창군 도산마을 동네 어르신들이 허브향 가득한 황토방에 모여앉아 국화차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네가 있다. 바로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마을이다. 과거 도산마을에서는 정부지원사업이 추진됐지만, 사업이 마무리되자 건물 4개동과 부지 2만㎡만 덩그러니 남았다. 주민들은 껍데기뿐인 시설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돼 정부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이금환(38·여)씨는 “농촌이 자연 속에 있다고 주민들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면서 “휴식공간은 도시보다 부족한 상황이라, 올 초부터 공동시설에 대한 재활용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주민들을 위한 원예치료체험실이 문을 열었다. 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인층에게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머지 시설은 방문객들을 위한 테마민박시설·농촌문화체험실·특산물판매장 등으로 변신했다. 심지어 공중화장실까지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황토로 지어졌다. 마을과 채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인돌 유적지가 위치한 이점까지 살려 지금은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외지인들의 방문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출향인의 도움으로 공동시설 인근에 3만㎡ 규모의 공동농장도 마련,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은희(48·여) 이장은 “시설을 정비하는 데 들어간 7000만원 중 주민들이 4000만원을 자발적으로 보탰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보다 만족도가 높다.”면서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 경기 과천시 부림동 경기 과천시 부림동 주공7단지는 과천고·청계초교와 폭 3m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멘토의 거리’라 불리는 이 길은 나무와 그림 등으로 치장돼 시골의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듯한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길은 아파트 주민과 학생, 과천대공원 나들이객 등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이 이용했다. 그럼에도 아파트의 철제 담장과 가시 철조망, 학교의 블록 담장이 각각 500여m가량 이어진 폐쇄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한 주부의 노력과 열정이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인 김영숙(43)씨는 “아이들에게 배려와 나눔의 의미를 가르치고 싶어 길을 가꾸자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재건축을 앞둔 상황에서 왜 쓸 데 없는 일을 벌이냐며 반대가 심했다.”면서 “주민 설명회를 통해 이웃들의 동참을 이끌어냈고, 지금은 집에 있는 그림을 내다 걸 수 있냐고 먼저 묻는 주민들도 상당수”라며 미소지었다. 김씨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이웃들의 아이디어도 꼬리를 물었다. 예컨대 올 초 길을 가꾸는 사업비가 부족하다는 김씨의 푸념에 김씨의 남편은 슬그머니 통장을 놓고 나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아파트 부녀회는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금으로 내놓았다. 또 청계초교는 ‘멘토의 거리’ 조성을 계기로 담장 교체사업도 검토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집값이 크게 올랐지만, 주민 대부분은 월급쟁이라 문화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면서 “지금은 바람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경기 파주시 돌곶이 꽃마을 경기 파주시 출판단지와 맞닿아 있고, 교하신도시 예정지구와 불과 500여m 떨어진 심학산 자락 ‘돌곶이 꽃마을’. 자칫 개발의 ‘사각지대’로 남아 슬럼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교하신도시와 출판단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42가구,234명의 주민들은 올 초부터 예외없이 정원 가꾸기와 담장 허물기에 동참했다. 마을 방문객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정원 내부도 개방했다. 또 쓸모가 사라진 비닐하우스 20여개동을 모두 철거했다. 정원 가꾸기와 비닐하우스 철거 등에 들어간 비용 대부분은 주민 스스로 마련했다. 특히 출판단지를 찾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마을로 유도하기 위해 마을 주변 농경지 12만㎡에 유채 등 경관작물을 심었다. 흉물처럼 방치된 토사적치장 7000㎡도 꽃동산으로 꾸몄다. 지난 5월에는 ‘심학산 돌곶이 꽃마을 축제’를 열어 축제기간에만 35만명 이상이 마을을 다녀갔다. 장흥·고창·과천·파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HAPPY KOREA] (30) 섬진강 기차마을

    [HAPPY KOREA] (30) 섬진강 기차마을

    “독불장군이 설 땅은 더이상 없습니다. 주민끼리 마을끼리 뭉쳐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농촌 인구는 급감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마을 수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이 경우 개별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마을간 경계를 허물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곳이 전남 곡성군 고달면·오곡면 일대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화전민촌에서 테마마을로 변신 중 곡성역을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멈춰서는 가정역 주변 6개 자연마을은 1960∼70년대만 해도 제법 융성했던 화전민촌이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정부의 화전민 이주정책으로 지금은 170가구 380명이 전부이다. 섬진강 기차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김영(58) 송정마을 이장은 “농촌이지만 농사를 지어 돈 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숲가꾸기 등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희망은 싹트고 있다. 송정마을은 70년대 후반 화전민 이주정책에 따라 산 아래로 2㎞쯤 내려와 새로 만들어진 정착촌이다. 당초 거주지는 30년 가까이 방치됐으나, 최근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고증된 실존인물인 심청과 효를 테마로 한 ‘심청이야기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돌담길과 초가, 기와집, 굴피로 엮은 우물, 목욕터 등 옛 모습이 그대로 복원됐다. 내년 상반기 중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김 이장은 “심청이야기마을과 함께 화전 문화를 복원하는 것도 주요한 관심사”라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두계마을 주민들도 2004년부터 ‘외갓집체험마을’을 공동 운영한다. 지금은 연간 5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또 봉조마을은 산촌체험학교, 가정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을 각각 내걸고 연간 1만명,5000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이들 마을에는 2003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20여가구가 이사해 왔을 정도로, 마을 단위로 운영되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안착했다. 방문객이 늘면서 마을 환경 정비 등에 대한 고민도 행동으로 속속 옮겨지고 있다. 예컨대 봉조마을은 자치규약을 통해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도록 자율 규제해 환경 훼손도 최소화했다. 두계마을은 10여채에 이르는 빈 집을 허물거나 전통 민박 등으로 재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연간 5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인근 가정역을 찾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을에 들르는 비율이 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민들 입장에서 넘쳐나는 관광객이 아직은 ‘그림의 떡’인 셈. 또 주민 1인당 연간 방문객은 지금도 50명이 넘는 적지 않은 수다. 하지만 유치원생 등 단체방문객이 많다 보니 민박·펜션 등 숙박료 외에는 별다른 수익원이 없다. 강두옥(58) 두계마을 이장은 “산과 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자랑할 만한 토속 음식, 지역 특산물이 꽤 많지만, 직거래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면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올 수 있는 곳으로 질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각 마을은 채 1∼2㎞도 떨어져 있지 않지만, 마을별로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연계도 아직은 미흡하다. 곡성군 관계자는 “각각의 마을이 갖고 있는 장점을 공유하지 않으면 방문객 유치는 물론, 새 소득원을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마을간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곡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흉물 폐철로가 마을 효자됐네 섬진강변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철로를 60년대식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여유롭게 달린다. 시속 30㎞도 채 안 되는 탓에 풍경 하나하나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연간 50만명이 이 증기기관차에 몸을 실을 만큼 관광명소로 둔갑했다. 흉물이 될 뻔한 폐철로를 지역경제의 효자로 바꾼 곳이 전남 곡성군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지난 1999년 전라선 개량화 사업으로 곡성군에는 곡성역∼가정역 13.2㎞ 구간에 폐철로가 남게 됐다. 이에 곡성군은 2005년 3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폐철로에 증기기관차 모형의 디젤 관광열차와 레일자전거 등 상품을 선보였다. 지금은 주말이면 넘쳐나는 방문객들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열차 운행을 통한 수입만 지난 한 해 동안 8억원에 이른다. 곡성군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계적인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열차신을 찍은 곳으로도 유명한 곡성역 인근 15만㎡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했다. 종착역인 가정역 주변에는 숙박시설인 기차 캐빈과 목조 펜션을 지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곡성군 관계자는 “친환경 농업이 아무리 활성화해도 도시민들이 직접 와서 사지 않으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서 “관광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곡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조형래 곡성군수 “그동안 개발 과정에서 소외됐다는 단점이 지금은 청정 지역이라는 장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조형래 전남 곡성군수는 “잘 보존된 환경은 곡성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조 군수는 지난해 취임 이후 관사를 지역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놓는 대신, 정작 자신은 노부를 모시고 전셋집에서 사는 파격 행보 등으로 유명하다. 그는 “폐철로를 활용한 섬진강 증기기관차가 인기를 모으면서 민간에서 투자하겠다는 문의나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오락·유흥시설 등 환경을 훼손할 수 있는 개발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재정상태가 열악한 곡성군 입장에서는 단 1명의 민간 투자자도 아쉽지만, 섬진강변을 따라 모텔과 같은 숙박업소를 짓겠다는 투자자들에게는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곡성군은 또 섬진강 기차를 매개로 한 지리산권 개발에도 차츰 눈을 돌리고 있다. 조 군수는 “그동안 곡성을 대표할 만한 상품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장점을 연계해 도시민들이 부담없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의 고장’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식이나 펀드 투자자들이 위험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 위해 분산 투자하듯, 농촌도 이제는 농업소득뿐만 아니라 농외소득을 늘려 소득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곡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방시대] 지역문화는 ‘초콜릿 상자’다/송재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것(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인생이란 어떤 (좋은)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영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말했습니다. 초콜릿 원료가 상품으로 나와 소비자들 손에 쥐어지기까지 많은 공정과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더구나 상자 안의 어떤 초콜릿을 고르더라도 만족할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험을 거치고, 실패를 해본 뒤라야 진정한 ‘달콤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지역문화 역시 초콜릿 상자와도 같습니다. 무궁무진하고, 보석과 같은 콘텐츠와 사람이 가득해 어떤 것을 집어들더라도 지역 문화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고품격 초콜릿 상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원과 투자,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등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자치단체의 문화예술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된 시각이었지만 지역 문화와 예술 발전을 위한 열기는 그야말로 ‘후끈’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먼저 털어놓은 ‘애로사항’은 문화의 중앙집중현상 때문에 ‘지역문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푸념이었습니다. 대형 뮤지컬이 지역에서 엄청난 좌석 점유율을 보이며 공연을 하지만, 이것은 서울에서 만든 기획일 뿐이며 서울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만들어놓은 완성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치단체와 더불어 문화 분권을 시도하고 활성화한 지 10년이 지났지만,10년 전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를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역문화를 지역 활성화의 근간으로 삼아 문화도시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지역 혁신의 주요 정책으로 확산시키고 있었습니다. 현재 지역정부의 예산 중 문화예산이 3%를 넘는 지자체는 매우 드물며,1%가 채 되지 않는 곳도 태반입니다. 이것마저 지키고 가꾸는 문화정책이 아닌, 부수고 혹은 새로 세우는 개발비용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발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그래서 당장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경제 발전을 통한 문화적 발전, 사람을 모으는 발전으로 이해되고 실천된다면 살기 좋은 마을(지역) 만들기는 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산업도, 문화도 결국 사람입니다. 정확히 ‘전문 인력’입니다.‘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쳐야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 일은 없듯 어떤 일에 미쳐야, 즉 전문가가 돼야 결국 그 일에 미칩니다(이릅니다). 지역문화가 활성화되려면 지역문화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는 데 미친 자치단체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이치에 맞게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미친 공무원들이 있어야 하며, 이를 적절하게 뒷받침하고 단호하게 평가내릴 줄 아는 미친 활동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지켜가는 미친 시민들, 즉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 꼬불꼬불한 길을 쭉쭉 뻗은 아스팔트길을 내달라 하는 시민보다 정감어린 돌담과 흙먼지 나는 골목길을 지켜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날. 그래서 지역 경제와 문화가 병행 발전해 창조적 인재가 몰려오는 살맛나는 그 날을 위해 지켜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품질좋은 초콜릿 상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집어들더라도 지역의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맛있는 초콜릿이 나오는 그런 초콜릿 상자 말입니다. 송재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 [HAPPY KOREA] (28) 양주시 장흥면 천생연분마을

    [HAPPY KOREA] (28) 양주시 장흥면 천생연분마을

    하수처리장에서 모텔촌, 또 다른 하수처리장을 잇는 자전거도로를 낸다면 쓸 데 없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은 혐오·기피시설의 변신을 지역발전의 밑거름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족단위 방문객 80% 넘어 장흥은 80∼9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이 즐겨찾은 대표적인 ‘MT촌’이자 ‘젊음의 공간’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모텔들이 들어차면서 ‘향락의 메카’라는 오명을 갖게 됐다. 유원지 안에만 40여개, 인근 지역을 포함하면 100여개의 모텔이 늘어서 있다. 변화의 바람이 또다시 불고 있다. 지난해 6월 복합전시시설인 ‘장흥아트파크’,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인 ‘장흥아뜰리에’가 개장한 게 계기가 됐다. 아트파크는 기존 토털미술관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지만, 아뜰리에는 경매에 나온 6층짜리 모텔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것이다. 지난해 아트파크와 아뜰리에를 찾은 주말 입장객은 평균 300∼400명이었다. 올 상반기에는 400∼500명, 하반기에는 700∼8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17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또 술집·안마시술소 등으로 차있던 아뜰리에 옆 상업건물도 문화예술인들의 작업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배수철 장흥아트파크 대표는 “현지조사를 위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3시간 동안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이 10여명이 고작일 정도로 쇠퇴했던 상황”이라면서 “지금은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행정기관의 뒷받침도 이어지고 있다. 양주시는 아트파크 인근 폐업한 음식점 부지를 매입해 ‘천경자 미술관’을 유치, 시립미술관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올 초 개관한 국내 최대 민간천문시설인 송암천문대,60∼70년대 생활상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청암민속박물관, 산림욕장인 장흥자생수목원 등과 아트파크를 연계한 ‘장흥미술문화축제’를 지난달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자신감도 확보했다. 배 대표는 “모텔을 무조건 없앨 게 아니라, 가족형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지역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 주민간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하수처리장~유원지 자전거도로 조성 양주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은 장흥유원지 일대와 이곳에서 2∼3㎞ 떨어진 삼상1리 ‘천생연분 마을’을 포괄한다. 마을 이름은 이곳에 형성돼 있던 자연부락인 정자·이곡마을 주민 260가구 640여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은 것이다. 특히 마을을 둘러싼 삼상2리와 교현리에는 각각 오는 2009년까지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은 조경·화훼·주말농장 등 근교농업이 발달한 부촌이다. 악취가 진동하는 하수처리장은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꼽힌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천하태평이다. 오히려 하수처리장 2곳과 마을, 장흥유원지를 잇는 12㎞ 구간의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원인은 하수처리시설은 모두 지하화한 뒤 지상공간은 공원 등 편의시설로 채워 혐오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냈다는 데 있다. 한준수(68)씨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시설이나 공간이 있는 이상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면서 “혐오·기피시설은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는 것이 문제이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간의 질과 삶의 질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곡릉천 청소는 물론, 담장 허물기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날 것에 대비, 전통장류 체험장 등 마을 공동생산시설을 갖추기 위한 논의도 벌이고 있다. 한우경(70)씨는 “마을 일을 상의하겠다고 하면 이제는 30명 이상씩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게 가장 뿌듯하다.”면서 “주민들이 더불어 산다는 느낌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행복”이라며 미소지었다. 양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130년 된 한옥 ‘볼거리’ ‘옛 것’은 구닥다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특히 오래된 집은 환경을 좀먹는 ‘퇴출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상1리 ‘천생연분 마을’ 한준수(68)씨는 130년 된 전통 한옥에서 5대째 살고 있다. 세월이 뭍어나는 이끼 낀 기와, 휘어져 더 정감있는 기둥, 한때는 요긴하게 쓰였을 앞마당 우물 등 겉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내부만 현대식으로 개조했다. 한씨의 한옥과 이웃해 있는 ‘ㅁ’자 형태의 슬레이트 지붕집 역시 동화에서나 등장할 법하다. 담장 한 쪽에 쌓아둔 장작, 마당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장독대 등은 굴곡 진 처마와 제격이다. 특히 두 집을 둘러싼 성인 허리 높이의 돌담은 시골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잘 꾸며진 정원을 집주인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돌담길을 따라 걷는 이웃들에게도 볼거리를 안겨주는 넉넉함도 배어나온다. 한씨는 “살기 편하고, 보기 좋은 집이 반드시 새 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을에는 이처럼 ‘헌 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민들을 위한 주말농장 등으로 운영되는 번듯한 ‘새 집’이 오히려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형태와 모양이 제각각인 천생연분 마을의 주택들은 다양성이 공간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양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임충빈 양주시장 “도시에 디자인을 입혀 경기북부 중심도시로”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것, 주민 스스로 실천 가능한 것 위주로 마을 발전계획을 추진하겠습니다.” 임충빈 경기 양주시장은 천생연분 마을’ 지원과 관련,“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시설은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고, 운용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면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은 모두 주민이 아닌 제3자의 차지가 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양주시는 도시계획과 개발사업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지난 9월 한국토지공사와 ‘명품도시 건설’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했으며, 이달 말에는 대한주택공사와도 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임 시장은 “지금은 특색없는 논·밭, 띄엄띄엄 솟아있는 아파트뿐인 볼품없는 지역에 불과하다.”면서 “하지만 이는 디자인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 양주시는 인근 지역 지방자치단체 8곳의 ‘산파’ 역할을 했다.1963년 당시 양주군 노해면이 지금의 서울 도봉·노원·강북·성북구로 흡수됐으며,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떨어져 나왔다.1980년에는 남양주군이 남양주시로, 구리읍이 구리시로 각각 독립했다. 또 1981년에는 동두천읍이 동두천시로 승격됐다. 임 시장은 “서울과 경계가 맞닿아 있고 은평뉴타운과는 자동차로 채 10분도 떨어져 있지 않지만, 수도권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발전이 더뎠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경기 북부지역의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Let’s Go] 전북 고창 돋음볕 마을

    [Let’s Go] 전북 고창 돋음볕 마을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누구나가 다 아는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구절. 전라북도 고창군 안현리 ‘돋음볕(처음으로 솟아오르는 햇볕) 마을´은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를 소재로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곳이다. 콘크리트 벽돌담과 슬레이트 지붕 등에 샛노랗고 하얀 국화가 사계절 환하게 피어 있다. 한겨울에도 벌과 나비가 날아 다닌다. 동네 주민을 모델로 ‘누님´을 그리고, 손거울도 크게 넣어 시 ‘국화 옆에서´를 절로 연상케 만들었다. 국화와 누이가 있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마을. 친일행각과 군정에 대한 노골적인 칭송 등으로 눈총받는 미당의 생애와는 별개로 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미당의 스산한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면 시와 국화향을 좇아 나들이 하기에 좋은 곳이다. # 담장에도 지붕에도 국화가 피었네 까치는 어딜 가고 물까치들만 떼를 지어 이방인을 반겼다. 마을 입구부터 담장을 따라 조성된 벽화에 노랗고 하얀 국화들이 만발해 있다. 담장을 타고 가던 벽화가 지붕으로까지 이어지는 집도 있다. 지붕을 덮은 지름 5m의 커다란 들국화에서 엄지손가락만한 황국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누님’의 얼굴도 등장한다. 이 마을에 살면서 동네 애경사를 앞장서 챙겨온 김연순(69), 양옥순(64)씨가 모델이다. 처음엔 두 ‘누이’의 얼굴밖에 없었지만, 금년 여름 서울의 한 대학생들이 내려와 오균열씨 부부와 박향순 부녀회장, 한봉자 할머니 등의 얼굴도 그려 놓았다. 벽화에 그려진 마을 사람들이 모두 6명으로 늘면서 동네 분위기도 덩달아 한결 밝아졌다. 국화 벽화는 농림부가 지원하는 우리동네 문화공간 만들기(문화 해비탯)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미당의 생애와 시를 기리기 위해 마을사람들은 3년전부터 동네 뒷산에서 ‘100억송이 국화축제’를 열었고, 관광객들이 연간 10만명 정도 다녀가는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작년 12월 농림부로부터 녹색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마을 개량사업을 벌이게 된 것. 녹색체험마을 컨설팅을 맡은 송주철 공공디자인연구소와 마을 주민들은 미당의 시 ‘국화옆에서’를 소재로 마을 전체를 국화와 시,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그린 벽화로 단장하기로 결정했다. 담장 보수에서 디자인, 그림까지 꼬박 7개월 걸려 금년 3월 완성했다.‘돋음볕’이라는 예쁜 마을 이름까지 새로 붙였다. # 마을 뒤편엔 100억송이 국화밭 벽화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여느 시골마을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큰누이’ 김연순씨는 남편이 중한 병에 걸려 서울의 대학병원을 오가야 하는 처지고,‘작은 누이’ 양옥순씨도 막내 아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식혜를 만든다며 엿기름을 손질하던 양씨는 “호의호식은 아녀도 밥 빌어먹지 않을 만큼은 사는디, 막내가 장가를 안가서 걱정이랑께. 벌써 40이 다 되었는데 말여. 기자 양반, 참한 아가씨 좀 없으까잉?”이라며 장탄식이다. 누런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팽나무 당산목을 지나 마을 뒤편으로 올라가면 미당의 묘소가 있는 야트막한 야산이 나온다. 해마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 사람들이 많이 찾는 터라 길도 내고, 주차장도 만들어 두었다. 예년보다 적은 양이긴 하지만, 고샅마다 심어 놓은 국화는 늦가을 정취에 젖게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돋음볕 마을과 길 건너 미당 시문학관이 자리한 선운리, 그리고 질마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심원, 하전 등의 갯벌. 미당을 키운 ‘8할의 바람’의 근원이 되었던 서해바다다.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선운리와 안현리 코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돋음볕 마을에서 150m 떨어진 질마재 마을에는 미당의 생가와 시 문학관이 마련돼 있다. 국지호 이장 019-319-1417, 부안면사무소 (063)560-2614. # 손님 반기는 고창국화축제 고창읍 석정온천지구에서는 제17회 국무총리배 전국국화경진대회를 겸한 고창국화축제(gcfestival.com)가 열리고 있다.100만㎡에 심어진 300억 송이 국화로 눈이 부시다. 예년과 달리 불순한 날씨 때문에 현재 30% 정도 개화한 상태. 이번 주말쯤이면 만개할 듯하다. 국화꽃밭 한가운데에는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가 새겨진 시비(詩碑)도 세워졌다. 동춘서커스 등 공연도 마련됐다.(063)564-9779.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선운산나들목→선운사 방면 좌회전→22번 국도→삼인교차로→용선삼거리→상포방면 우회전→734번 지방도→선운리 미당시문학관 # 주변 명소 선운사와 고창읍성, 학원농장, 무장읍성 등은 필수 코스. 시간이 허락한다면 30여분 떨어진 ‘굴비´의 고장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도 둘러볼 만하다. # 맛집 복분자술 한 잔에 장어 한 점, 최강의 맛궁합이다. 고창은 장어의 명산지. 여행고수들이 즐겨 찾는 곳은 ‘등나무 집´으로 불렸던 연기식당(www.yeonki.co.kr)이다. 올해로 아산면 삼인리 한자리에서만 40년 넘게 장어굽는 냄새를 피우고 있는 집.1인분 한 접시(375g)에 1만 5000원. 함께 나오는 부추겉절이가 별미. 오전9시∼오후10시. 연중무휴.562-1537. 글·사진 고창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4)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4)전남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

    노고단에서 성삼재∼고리봉∼만복대로 내려선 지리산 서쪽 능선은 정령치 가기 전 왼쪽으로 가지를 치며 구례를 향해 급선회한다. 백두대간과 작별한 이 산마루는 다름재를 떠나 견두산(774.7m)을 세우게 되는데,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산수유마을 ‘현천’이 그 산 아래 꽃잎처럼 포개져 있다. 현천의 늦가을은 색 붉은 풍경화다. 돌담 옆 나무마다 잘 익은 산수유열매와 주황색 단감이 촘촘하다. 구례군 자료에는 “마을 뒷산인 견두산이 현(玄)자 형으로 되어 있고 뒷내에는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같이 빨래를 하고 선비가 고기를 낚는 어옹수조(魚翁水釣)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형용하여 현천이라 하였다.”고 서술돼 있다. 꽃이 피는 3월을 제외하곤 대체로 조용한 현천엔 민박 간판을 내건 집도,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도 없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지 굴뚝마다 장작 타는 냄새만 송글송글 푸근하다. 최영남(72세) 할머니와 아들 형욱만(48세)씨는 약초 캐는 일을 한다. 족히 30년도 넘는 경력이다.“겨우사리, 더덕, 산도라지, 산수유, 머루, 석장포 등 산에서 나는 건 다 채취하지요.” 약초와 더불어 생활한 덕인지 욱만씨는 슬하에 무려 5남매나 두었다. 요즘의 중년치고는 시골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자녀수다.“예전에는 겁나게 많았지요.100여 호는 됐응께.” 최영남 할머니의 말에 아들 욱만씨도 다시 한마디 거둔다.“면소재지에 장이 설 때 이곳 현천마을 사람들이 안 나가면 장사를 못할 정도”였다고. 지금이야 절반도 안되는 가구가 남았을 뿐이지만 예전 이 마을의 번성함은 길 건너 지리산 온천지구와 견줄 바가 못 되었나 보다. 돌담길을 따라 나서니 마을 골목 반사경 옆에 나란히 선 다섯 분의 할아버지가 보인다. 이 동네 남자 어르신 중에서 가장 연장자는 최석만(80세)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최기태 할아버지다. 그러고 보니 현천은 ‘화순 최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주민의 60%가 같은 성씨라고. 이들은 “견두산은 원래 호두산이었소.‘호랑이 머리’란 뜻이지. 저 견두산에 서면 남원시가 잘 보이는데, 거기서 1년에 한 번씩은 꼭 호환을 당한기라. 그렇게 호랑이헌티 잡혀 먹히니 결국 산 이름을 개견(犬)자로 바꿨고 그 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었다허요.”라고 말한다. 이 마을 역시 1948년도에 일어난 여수·순천사건에선 자유롭지 못하다.100여호에 달하던 민가가 그 사건으로 거의 다 전소됐다. 당시 40여명의 무고한 젊은이들이 죽었다. 아직도 군인과 빨치산이라면 신경이 곤두서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전히 조심스럽다. 당시 살벌한 이념 대립의 아픈 기억은 노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강한 두려움으로 각인된 모양이다 “그렇게 집들이 모두 타고 겨우 두세 채 남았어요. 요즘의 집들은 이듬해(1949년) 봄에 지었으니 50년이 조금 넘은 셈이지.1979년에 78호쯤 되었고 그 후에 도시로 나간 사람이 많아요.” 단순히 소일거리가 없어 농사를 짓는다고 너스레지만 이들에게 농사는 결국 ‘죽으나 사나 꼼짝없이 해야 할 일’이자 ‘못 걸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할 인생의 몫’이기도 하다.“할 수 없어 한다.”는 현천마을의 ‘독수리 5형제’ 할아버지들은 70이 넘고 80이 되도록 여전히 농사일로 정신없다. 다섯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살 위로 산수유 빛을 닮은 붉은 석양이 가지런히 내려앉는다. #교통 전남 구례까지는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용산역을 이용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장수IC,88고속도로 지리산IC 등에서 남원으로 간 다음 19번 국도로 들어선다.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현천은 구례읍내로 들어서기 전에 있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 (31) 에티오피아의 문화발상지 악숨 기행

    (31) 에티오피아의 문화발상지 악숨 기행

    솔로몬과 시바여왕의 로맨스 전설에 따르면 BC 10세기 아라비아 남서부에서 활동하던 시바 왕국의 지배자가 솔로몬이 재위할 때 금, 은, 보석, 향료 등을 실은 낙타 대상을 앞세우고 솔로몬의 궁전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이야기를 두고 당시 고대 이스라엘과 아라비아 사이에 중요한 상업적 관계가 있었다고 파악하기도 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그 해석이 다르다. 당시 솔로몬과 시바여왕 사이에 로맨스가 있었고, 한 아이가 태어났으며, 그 아이가 에티오피아의 단군 할아버지인 메넬리크 1세라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역사서에도 이 내용을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 메넬리크 1세를 시작으로 1974년 군부 쿠테타로 물러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까지 에티오피아에서는 3,000년간 이 왕통이 끊어진 적이 없었다. 악숨에는 시바여왕의 이야기가 전설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로 여겨지는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오벨리스크가 모여 있는 곳을 등지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수지가 하나 나타난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호수라고 생각했는데 시바여왕의 목욕탕이었단다. 폭 30m에 길이만도 100m에 이르니 수영장이라고 해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데 욕조였다니 시바여왕은 대단한 권력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생활용수 저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시내에서 자전거를 빌려 30분쯤 달리면 시바여왕의 왕궁 터에 갈 수 있다. 왕궁은 기원전 4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지금은 규모만 가늠할 뿐 궁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견고하게 쌓은 돌무더기들은 제주도의 돌담을 연상케 한다. 자기들도 신기한지 현지인들이 설명을 해주는데, 무너져서 현대에 와 다시 쌓아 올린 돌 자리는 과거에 있었던 자리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봤더니 정말 그랬다. 돌도 있고 기술도 있는데 궁성의 돌담을 지금은 그 옛날처럼 쌓을 수 없다는 혜곡 최순우 선생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에는 뭘 하나 만들어도 다 장인정신으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에티오피아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St. Mary of Zion) 악숨에는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올드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Old Church of St. Mary of Zion), 또 하나는 뉴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New Church of St. Mary of Zion)이다. 전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17세기에 파실라다스 황제가 건립했으며 현재도 예배를 본다. 양식은 곤다르 성의 축조양식을 따랐다. 뉴 시온의 성 마리아 교회는 1960년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지었다. 영국을 방문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에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교회에 여성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남녀차별이지 않느냐고 충고해 같은 이름의 새 교회를 바로 옆에 짓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여성의 출입이 자유롭다. 외관은 17세기 라스 미카엘의 왕관을 본뜬 돔형으로 지어졌고, 실내가 넓은 편이다. 내부의 스탠드 글라스가 유명하며, 관리인에게 부탁하면 식물, 계란 등을 잉크로 사용해 양피지에 쓴 1,000년 전의 성서를 볼 수 있다. 문자는 전부 Geez로 되어있는데 기에즈는 현재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릭의 모체가 되는 언어이다. 옛 교회와 새로운 교회 사이에는 ‘계약의 상자’를 보관하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이를 지키는 군사와 건물지기도 따로 있다. 무리해서 들어가려고 하면 실탄이 장전된 총기로 제지를 당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상자가 보관된 곳에 들어가면 죽기 전에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윤오순>
  • [HAPPY KOREA] (26)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HAPPY KOREA] (26)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영남에서는 학맥을 이야기 할 때 좌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이라고 한다. 함양이 안동에 버금갈 만큼 학문과 문벌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던 곳이라는 이야기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물레방아골은 선비고을 함양을 대표하는 양반마을로 통한다. 마을 입구부터 늘어선 고색창연한 전통한옥들이 범상하지 않은 고을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줄지어선 노송과 마을을 휘감아 도는 맑은 계곡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 초부터 부자 마을로 거듭나자는 ‘잘 살아보세 운동’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만 150명 배출한 학풍서린 양반고을 개평리는 양반의 가풍을 이어오고 있는 뼈대 있는 마을이다. 103가구 198명이 살고 있는 이 조그만 마을에서 배출한 대학교수만 150여명에 이를 정도로 굳건한 학맥을 자랑한다. 대를 이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의 자긍심도 대단하다. 외부인이 이 곳에 들어와 살고자 해도 집을 내놓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만 봐도 뿌리 깊은 양반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집성촌인 이 곳은 씨족간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전체 주민간 화합은 다소 약한 편이었다. 집안간의 보이지 않는 세대결 때문이었다. 조용한 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올 초부터다. 살기좋은 마을로 지정된 후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통한옥을 보존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오랜 관습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은 총회를 열어 마을 규약을 제정했다. 하나로 뭉쳐 잘사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데 의견 통일을 이루어 흐트러진 마을 공동체를 되살렸다. 개평한옥보존회도 구성했다. 주민간의 친분과 상호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체 조직이다. 보존회는 마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삶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주거환경을 보존하면서 이를 개량해 한옥체험촌을 만드는 사업이 한창이다. 마을 곳곳에서 기와를 새로 이고 담장을 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양옥집을 한옥으로 개량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집집마다 전통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공사도 추진된다. 청년회장 정명상(59)씨는 “모든 주민들이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집단장을 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손님맞이 기와 단장하며 마을공동체도 살아나 한옥문화와 양반체험을 하며 머무르는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30여 동의 한옥민박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부녀회에서는 옛 양반들이 즐겨 먹었던 한정식과 제례상 등 전통음식을 상품화할 계획이다. 전통 디딜방아 체험장도 설치했다. 번듯한 한옥으로 건립된 마을회관 옆에는 전통한과 체험장도 만들었다. 노모회는 명품 전통한과를 만들어 판매한다. 노인회는 전통예절과 민예품 제조기술을 전수해 힘을 보탤 계획이다. 마을 옆을 흐르는 개평천 제방에는 추억의 거리를 만들고 토속 어류를 방류해 고기잡이 체험행사도 갖기로 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이 거닐던 산책로도 복원해 역사 속에 묻혀져 가는 선현의 발자취를 후세에 전할 계획이다. ‘명약을 달이는 샘물’로 알려진 종바위 우물도 관광자원화 한다. 소득기반 확충사업으로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개평두리곶감’ 명품화 사업도 추진한다. 두리곶감은 일반 곶감보다 5∼6배 비싼 접당 30만원에 팔리고 있다. 양반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명주와 장류도 상품화된다. 명주 박물관, 전통장류 명소관도 건립한다. 궁중요리 대회, 선비문화 글짓기 대회 등 문화행사도 개최해 우리 전통의 멋과 맛, 문화를 만끽하는 마을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주민들은 당초 전폭적인 예산지원을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마을의 수백년된 돌담길도 무조건 걷어낼 것이 아니라 전통미를 살려 보존해 주길 바라는 여론도 많다. 이장 강경구(60)씨는 “주민 스스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면서 “주민들이 노력하고 투자하는 만큼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양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자되고 오래사는 100+100 운동 결실” 천사령 함양군수 “함양은 이제 어제의 함양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천사령 함양군수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함양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잘 살아 보자는 도전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청이 새로운 시책을 개발하면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여 알찬 소득작목을 집중 육성하는 발전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전체 면적의 78%가 산지인 지역특색을 살려 곶감과 산삼을 소득원으로 개발했습니다.2003년 연간 3억원이던 곶감 매출이 지난해는 150억원으로 무려 50배가 늘었고, 올해는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천 군수는 곶감으로만 앞으로 3∼4년 내에 1000억원의 소득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200㏊에 조성된 산양삼단지 역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게르마늄이 풍부한 토질에서 생산돼 약효가 뛰어나다. 머지 않아 심마니의 고장으로 발돋움 할 전망이다. 고랭지 사과도 효자 품목이다.100㏊가 조성됐지만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지곡면 개평리 물레방아골을 중심으로 한 양반고을 관광산업도 차별화된 상품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부자 되고 오래 살자가 지역발전 구호입니다. 연간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100명 이상,100세 이상 장수 노인이 100명 이상이라는 뜻으로 100+100 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 군수는 “혁신운동 3년 만에 1억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195명을 돌파했고 5년 내에 500명을 달성할 것”이라며 “이는 생각을 바꾸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준 사례”라고 말했다. 함양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개평리 양반마을은 개평리는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늑한 농촌마을이다. 수백년 된 전통한옥이 잘 보존돼 있어 한옥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에는 양반가의 정갈한 기품이 가득하다. 요사스러운 치장이 없지만 옛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안길은 커다란 호박돌로 포장돼 옛 정취를 잃지 않고 있다. 유구한 세월을 지켜온 돌담길에는 이 곳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오현 중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1450∼1504)선생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두 선생은 우함양(右咸陽)의 기틀을 잡은 조선 전기 문신 겸 성리학의 대가다. 정여창 고택(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은 남도의 대표적인 양반고택이다.1만여㎡의 대지에 사랑채, 안채, 아래채, 별당, 곳간 등 5개 건물이 샛담으로 구분돼 있다. 홍살문을 겸하는 솟을 대문에는 다섯명의 효자와 충신을 배출했음을 알리는 편액이 걸려 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최참판댁 세트장은 이 고택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개평리에는 이 밖에도 풍천 노씨, 하동 정씨 종가댁과 오담 고택 등 문화재급 전통 한옥이 많아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7) 충북 영동 장선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7) 충북 영동 장선마을

    충북의 ‘설악’이라고 불리는 영동군의 천태산. 고려 천태종의 본산인 그 산자락에 폭 안겨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장선마을.10가구 20여명이 살고 있는 초미니 마을이다.10가구 중 네집은 영동쪽에 있고, 중고개라는 작은 재를 넘어 여섯집이 떨어져 있는데 그 여섯집 중 세집은 작은 도랑을 경계로 충남 금산군으로 들어간다. 마을 앞을 휘감아 돌아가는 금강지류는 강원도 정선의 동강 못지않게 청정하다. 강을 건너는 철교가 놓여지기 전까지 장선마을은 외부인들이 감히 들어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요즘은 깨끗한 강물에서 잡히는 피라미, 빠가사리 등을 넣고 끓여내는 어죽이 맛깔스럽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초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당도한 산골마을. 풀냄새 물씬 나는 더 없이 맑은 공기가 불청객을 맞는다. 비탈진 들판에서 한가롭게 소에게 풀을 뜯기고 있던 마을주민 주석수(71)씨가 모처럼 외지인을 보자 반색한다. 주인 따라 나온 풍산개와 진돗개들도 낯선 이를 경계하기는커녕 반갑게 꼬리를 친다. “여가 시방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외졌댜.6·25때는 근동에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죄다 일루다 숨어 들었을 정도였으니께.” “예전에 다리가 워디 있었간디? 배두 없지…. 나갈라고 해도 어렵구 들어올라구 해도 심들었던 동네여.” 산비탈에서 인삼을 캐고 있는 주씨의 부인 강순임(66)씨는 대뜸 인삼자랑부터 한다. 인삼이 언뜻 봐도 뿌리가 크고 잘 생겼다. “여그 삼은 그냥 삼이 아니여. 산삼이나 매한가지여. 삼은 배수가 잘되는 산비탈에서 길러야 제대루지. 시방도 금산서 인삼재배하는 사람덜이 자기들 먹을라고 여그꺼 사러 많이 와. 논에다 약치문서 기르는 것 하고는 질이 다르거든.” 주민들의 생활권은 충남 금산이다.5일장도 금산으로 가고 몸이 아파 병원을 가려고 해도 금산으로 간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나이들고 홀로 돼 살아가기가 빡빡하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남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는 이경자(70)씨.“자석덜한테 뭐 바랠 게 있겄어? 산골서 혼자 벌어 먹고 살아가면 그만이지.” 중고개라는 작은 재를 넘으면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난다. 재를 넘기 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집도 없을 것 같더니 재를 넘자 그림 같은 돌담장의 허름한 옛날 가옥 여섯 채가 들어 앉아 있다. 해질녘 황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황인중(76) 씨를 만났다. 오랜 토박이에게서 풍기는 짙은 흙냄새가 났다. 기자를 만나자 대뜸 농업정책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낸다. “왜정때부텀 여그서 농사 지음스롬 살아왔는디, 앞으로 농사나 지어 먹을란가…. 농업이 걱정이여.”기자가 건네준 담배를 깊게 빨며 한숨부터 짓는다. 농산물 개방에 대한 걱정이다. 농사가 걱정이고 버거우면 자식들하고 같이 사시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봤다. “여그가 내 탯자린디…. 늙어 워디 가야 뭐 하겄어. 그저 고향이 젤루 편하고 좋은 곳이여. 자식들 성화에 서울도 올라가봤음서도 거기는 겁나게 심심허고 더 외로운 곳이여.” 어두워져 마을을 걸어 돌아 내려오는 길에 오전에 만난 강씨 아주머니가 손에 쥐어준 4년생 인삼을 꺼냈다. 한입 베어 물자 찐하면서도 쌉쌀하고 살짝 달달한 수삼이 아작아작 씹힌다. 깊은 산속의 흙맛이자 고향의 맛이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푸른 남도 강진, 맛을 찾아서

    푸른 남도 강진, 맛을 찾아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늦여름 열대야 운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그 무엇도 자연의 순환은 거스를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초록이 지쳐가는 계절의 끝자락에 푸름을 좇아 전라남도 강진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색을 그리워하는 길목에서 내년에나 다시 보게 될 초록을 아쉬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영원한 푸름을 간직한 ‘청자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어느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남도 음식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곳 또한 강진입니다. 오가는 길에 만난 강진의 맛집들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글 사진 강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푸름의 결정체 고려 청자 강진은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다. 전국 400여개의 옛 가마터 중 188개소가 밀집돼 있다. 얼마 전 충남 태안에서 주꾸미를 낚던 어민이 발견한 침몰 선박 속의 청자도 강진에서 만든 것으로 확인됐듯, 국내 보물급 이상 청자의 약 80%가 강진산이다. 청자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성과 정밀함을 필요로 한다.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25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하고, 어느 한 과정이라도 잘못되면 전체적인 균형미를 잃고 만다. 작품 하나가 완성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무려 60∼70일 정도. 조유복(45) 청자박물관 조각실장은 “청자를 담은 갑발을 가마에 넣고 고유제를 지낸 후에야 도공들은 비로소 봉통(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합니다.800℃ 남짓한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본벌구이에 들어갑니다. 불꽃의 색깔이 붉은 색에서 노랑색, 밝은 흰색으로 점점 변해 가기 시작합니다. 이때쯤 온도가 1300℃ 가까이 상승하죠.8m에 달하는 가마안의 온도차를 없애기 위해 가마 옆 구멍에서도 장작을 때기 시작합니다. 간간이 가마에서 시편을 꺼내 유약이 잘 녹았는지 확인하죠. 날씨에 따라 48∼56시간 연속으로 불을 지핍니다.”라고 제작과정을 설명했다. 한 도공이 옆불구멍에서 시편을 꺼냈다. 벌겋게 달궈졌던 시편이 식으면서 청자 고유의 빛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명징한 비취빛. 빨간 불이 만들어 낸 푸름의 결정체다. 청자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중국인들조차 이 아름다운 빛깔에 혀를 내두르지 않았던가. ▶청자박물관에서 마량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삼덕수산개발에서는 겨울 한철에만 잠깐 맛볼 수 있는 매생이 등 해산물을 급속 냉동해서 팔고 있다. 매생이 특유의 비릿하고 상큼한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400g 5000원.(061)434-3745. # 강진 차밭의 푸름에 눈을 씻고 월출산 남쪽 자락에 초록빛이 가득하다.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와 무위사를 잇는 2차선 도로변에 드넓게 차밭이 펼쳐져 있다. 차밭 하면 인근의 보성쪽만 생각하기 일쑤일 터. 바다 가까운 3만 358㎡(10만여평)의 구릉지에서 만난 차밭의 푸름에 눈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횡재다. 월출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타고 작은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서리를 방지하기 위해 세워둔 팬이다. 월출산의 단아한 모습과 어우러져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바람개비와 차밭 고랑사이를 빨간색 절삭기가 바삐 오간다. 차의 생육과 경관 관리를 위해 삐죽이 돋아난 찻잎들을 제거하는 중. ▶월남사지 초입의 강당식당은 13년 남짓 멧돼지고기의 명성을 이어온 남도음식명가. 여러번에 걸친 집돼지와의 교배로 탄생한 쫄깃하고 담백한 멧돼지살이 일품이다. 말만 잘하면 집에서 만든 멧돼지 쓸개주와 오디주도 맛볼 수 있다.1인분(200g) 9000원.433-1292. # 푸른 대밭이 감싸안은 영랑 생가 남해를 휩쓴 노을이 강진만(灣)으로 쏟아져 내린다. 반짝이는 황금빛 물비늘처럼 강진을 영롱하게 빛내는 인물이 영랑 김윤식.‘모란이 피기까지’ 등 영랑이 발표한 80여 편의 시 중 60여 편이 남성리 생가에서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이후 강진은 유난히 좌우익의 대립이 심했던 지역. 우익활동을 했던 영랑은 좌익세력의 등쌀에 서울로 거처를 옮겼고, 영랑의 집은 몇 번의 전매를 거친 다음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해 관리하고 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모란과 우물, 동백나무, 장독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요즘 영랑과 함께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인물이 시인 김현구다. 영랑과 같은 곳에서 태어나, 같은 지역에서 같은 동인으로 활약하다, 같은 시기에 사망했지만 한국현대시사에서 그의 발자취는 찾기 어렵다. 목포대 김선태 교수는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영랑과 달리 몰락한 관료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영랑의 그늘에 가려진 시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2인자의 비애만 맛보고 간 불운한 시인이었죠. 그의 시 세계가 영랑과 유사점이 많긴 하지만, 영랑의 아류가 아닌 변별적 특징을 지닌 시인이었기에 그의 시가 재평가되어야 마땅합니다.”라고 말했다. ▶흥진식당은 한정식으로 유명한 강진에서도 첫손꼽는 명가.4인기준 1인 1만 5000∼3만원. 백반은 1만원.434-3031. 남성리 우체국 맞은편의 전복나라는 전복요리 전문식당이다. 맛깔스러운 전복된장찌개가 1만원.433-8155. # 까치내고개 넘어 병영마을 강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까치내(鵲川)고개 좌우의 논마다 벼들이 익어간다. 알곡이 가득찰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에 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쭉정이는 외려 고개를 번쩍 쳐들고 있다. 겸손을 일깨워주는 장면. 이렇듯 자연은 세세한 곳에서도 반면교사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까치내 고개 너머 병영마을은 조선시대 전라도 육군의 총지휘부가 있던 곳. 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한골목’이라고도 부르는 돌담길이다. 근대문화재 제264호로 지정된 이 돌담길은 얇은 돌을 빗살무늬 형식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최초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린 하멜이 7년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담쌓는 방식을 전수했다고 전해진다. ▶병영마을을 찾았다면 반드시 수인관 돼지불고기 백반을 맛봐야 한다.50년전부터 여관을 했던 곳으로, 돼지불고기를 시작한 지 20년쯤 됐단다. 들척지근한 돼지불고기와 맛깔스러운 밑반찬들이 일미다.4인상이 기본.2만원.432-1027.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국도2호선→강진 # 강진 청자문화축제 8∼16일 대구면 청자도요지 일대에서 열린다. 전시·공연, 체험, 부대행사 등 5개 부문 70여개의 다양한 행사를 준비한 매머드급 축제다. 강진군청 관광개발팀 430-3221∼4. # 먹거리 남성리 동해회관(433-1180)은 짱뚱어탕, 병영면 설성식당(433-1282)은 돼지불고기 백반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 [주말탐방] 제주도 무덥가에 쌓은 돌담은

    제주의 무덤가에 쌓은 돌담의 비밀은? 제주를 방문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뭍(육지)의 묘소와 달리 묘소 주위를 둘러친 독특한 돌담을 궁금해 한다. 제주에서는 사각형 또는 원형으로 쌓은 이 돌담을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예부터 제주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분묘의 모습이다. 말이나 소의 방목으로 인한 분묘의 훼손을 막고, 산불이나 병충해 방제 목적의 들불로부터 분묘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흙이 적은 제주이기에 애서 쌓은 봉분의 흙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산담을 설치했다는 설도 있다. 제주에는 돌이 많지만 산담을 쌓기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장례 당일에 쌓는 경우도 있고 장례가 끝난 뒤 따로 날을 잡아 쌓기도 했다. 제주의 산담에는 죽어서도 망자의 혼령이 집으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문(출입문)’을 만들었다. 산담의 출입문은 망자의 성별에 따라 오른쪽은 남자 것, 왼쪽은 여자 것이다. 시문이 없이 산담을 쌓는 경우에는 시문의 위치에 해당하는 곳에 돌계단을 만든다. 미술평론가 김유정씨는 “제주 산담은 단순한 돌담이라는 차원을 넘어 제주사람들의 정신 문화가 담긴 공간이며 전대가 남긴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새로운 장묘문화의 등장으로 제주 산담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제주의 산담 중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선별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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