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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녀들과 걷는 ‘숨비소리길’ 제주 구좌읍 일대 9일 개통

    제주의 해녀들과 함께 걷는 ‘숨비소리길’이 탄생했다. 제주도는 해녀박물관 인근인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일대에 길이 4.4㎞ 도보여행길을 만들어 오는 9일 개통한다고 3일 밝혔다. 하도 해녀들이 소라, 전복 등을 캐는 물질을 하기 위해 마을과 바다를 오가는 이 길은 밭담과 조간대(만조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는 수면 밖으로 드러나는 해안)가 잘 어우러진 순환 코스다. 하도 해안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고 쌓은 환해장성과 별방진,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쬈던 불턱, 조간대에 돌담을 쌓아 안에 갇힌 물고기를 잡았던 원담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모새달(바닷가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을 비롯해 우묵사스레피나무, 순비기나무, 큰비쑥 등 해안에서 자라는 희귀식물이 분포해 제주의 역사와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하도리 해녀는 350여명으로 마을 단위로는 제주에서 가장 해녀가 많다. 한편 오는 8∼9일 제주시 해녀박물관, 하도리 일대에서 제5회 제주해녀축제를 연다. 해녀 전설을 소재로 만든 숨비소리 뮤지컬 공연, 최고의 물질 왕을 뽑는 해녀 물질대회 등으로 꾸며진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기이한 해안절벽 그 섬에 가고 싶다

    기이한 해안절벽 그 섬에 가고 싶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82개나 된답니다. 국토해양부의 연안포털 사이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몇몇 유명 섬을 제외하면 이름조차 생경한 섬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러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볼 만한 섬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이름값에 견줘 훨씬 빼어난 풍경을 숨겨둔 섬 말입니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전남 여수의 개도 또한 빠지지 않겠습니다. 섬을 둘러싼 해안 절벽의 자태가 빼어난 섬이지요. 개도는 찾아가는 길 자체가 여행입니다. 여수의 아름다운 해안가를 돌아, 연륙교를 타고 백야도로 넘어간 뒤, 철부선에 몸을 싣고 30분가량 들어가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소 힘겹긴 하나, 남녘의 풍경을 샅샅이 살피며 간다고 생각한다면, 더없이 빼어난 여정이 될 겁니다. ●거인이 힘 주어 뽑아 올린 듯한 해안 절벽들 여수 시내에서 해안선을 따라 백야도로 향하는 길. 모퉁이를 한 굽이 돌 때마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풍경들이 차창에 매달린다. 개도에 들면 우선 배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순서다. 개도를 찾고도 섬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개도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채 보지 못한 셈이다. 그만큼 개도는 외관이 빼어나다. 작은 섬이라 유람선은 없다. 주민들의 배를 빌려타고 돌아봐야 한다. 외딴섬답지 않게 주민들이 전복따기 체험 등과 섬 일주를 묶은 ‘패키지 상품’도 만들어 뒀다. 섬을 돌아보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오후가 되면 남풍이 세차게 불기 때문에 자칫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 작은 어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길, 객의 눈에 너른 남쪽 바다가 가득 담긴다. 짭조름한 갯내음은 코를 간질인다. 어찌나 파랗던지, 하늘도 바다도 죄다 쪽물을 들인 듯하다. 멀리 흰 뭉게구름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둘을 분간하지 못했을 게다. 섬 남쪽으로 갈수록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남도에선 해안가 절벽을 ‘비렁’이라고 부른다. 배가 파도를 넘어설 때마다 코바위와 삿갓바위, 거북바위 등 개도 특유의 ‘비렁’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거인이 힘 줘 뽑아올린 듯, 수직으로 깎인 바위절벽이 일품이다. ‘비렁’의 크기와 높이도 대단하지만, 생김새 또한 ‘명품’ 소리를 들을 만하다. 내나라 안 대부분의 섬들이 그렇듯, 으레 이런 해안가 풍경 속엔 질펀한 해학이 하나쯤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곧추 선 해안 절벽 사이에 선녀탕이 보일듯 말듯 서있다. 동행한 섬 사내들이 이 장면에서 머리만 긁적대며 쉬 설명을 잇지 못한다. 이유야 불을 보듯 뻔하다. 남성의 잘생긴 코와 선녀탕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터. 필경 코바위와 선녀탕이 정분에 빠졌다는 등의 내용일 텐데, 밝은 대낮에 남녀상열지사와 관련된 얘기를 하려니 계면쩍은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 이처럼 기골이 장대한 해안 절벽들이 서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주민들이 땅을 치는 것도 바로 이 풍경 때문이다. 개도와 인접한 금오도는 어느날 갑자기 ‘스타 섬’ 반열에 들었다. 금오도의 해안 절벽을 에둘러 돌아가는 ‘비렁길’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덕이다. 그에 견줘 개도는 금오도보다 늠름한 ‘비렁’을 두고도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개도 정보화마을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창규씨는 “조만간 개도의 해안 절벽을 돌아가는 명품 비렁길을 조성해 선을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외딴섬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들 개도는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약 22㎞쯤 떨어져 있다. 사방 9.46㎢의 좁은 섬 안에 약 980명의 주민들이 올망졸망 살아간다. 섬은 적요하다.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랄 정도다. 이름도 독특하다. 한자로 덮을 개(蓋) 자를 쓴다. 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도가 주변의 작은 섬들을 아우르고 있다 해서, 혹은 섬 내 천제봉이 솥뚜껑처럼 섬을 덮고 있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음차(音借) 해서 해석한다. 섬 남쪽에 우뚝 솟은 천제봉과 봉화산이 개의 두 귀를 닮아 개도라 불린다는 것이다. 섬을 찾는 관광객들의 상당수는 섬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주민들이 600년 가까이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천제봉(329m)과 섬 내 최고봉인 봉화산(338m)을 오른다. 주민들은 이 등산로를 ‘소몰이길’이라 부른다. 공식 명칭인 해풍산행로보다 훨씬 정겹다. 운구지 선착장에서 출발해 봉화산과 천제봉을 돌아본 뒤, 정목이나 화산마을로 내려온다. 주민들이 새로 조성하려는 비렁길의 ‘옛 버전’인 셈이다. 산행에 4~5시간쯤 소요되는 만만찮은 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눈부신 풍광을 낱낱이 눈에 담을 수 있다. 차로 섬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에 일주도로는 없다. 섬 남쪽에 높은 ‘비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 내 도로가 잘 닦여 있어 구석구석을 돌아보는데 어려움은 전혀 없다. 선입견 때문인지, 개도의 지도를 보면 정말 개와 닮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개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 월항마을이다. 바다 쪽으로 난 작은 방파제로 담장을 둘렀고, 낮은 언덕 위로 몇 채의 집들이 앉아 있다. 월궁 항아가 내려와 살 것 같은 작고 어여쁜 갯마을이다. 마을을 에두른 돌담길도 정겹다. 한데 마을 주변의 갯바위는 제법 옹골차다. 불퉁하니 솟아오른 갯바위들의 모양새가 한껏 힘 준 거인의 팔뚝을 보는 듯하다. 호령마을은 작은 모래 해변이 인상적인 곳이다. 개의 ‘몸통’인 본섬에 있다. 모래 해변으로는 섬 내 유일하다. 밀가루를 다져놓은 듯한 고운 백사장과 마을 돌담길이 잘 어우러져 있다. 모전마을은 오래전 마을 전체가 띠(茅·모)로 뒤덮여 있었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차르락 소리가 듣기 좋은 몽돌 해변에 앉아 펄쩍펄쩍 뛰노는 숭어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부러 깎아놓은 듯, 갯바위들이 수직 수평으로 눕거나 서있는 청석포, 개의 ‘꼬리’로 드는 길목인 엄랑금 등도 둘러볼 만하다. ●친환경 명품섬으로 새로 태어나 2014년이면 개도가 탈바꿈한다. 행정안전부가 개도를 ‘명품섬 베스트 10’에 선정한 데 이어 개도 주변 4개 섬을 묶어 ‘친환경 명품섬’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행안부와 여수시 등에 따르면 사업의 핵심은 펜션 단지와 어촌체험장 조성, 전통술 체험 판매장 활성화이다. 펜션 단지 조성사업의 경우 벌써 부지 정리작업이 마무리 단계이고, 너른 갯벌엔 조만간 천혜의 어촌체험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개도를 중심으로 둔병도, 적금도, 송여자도를 잇는 클러스터 사업도 추진된다. ‘개도 막걸리’ 생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술 체험 공간도 조성 중이다. 개도 막걸리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특산물로, 섬 내 천제산 자락의 암반수와 개도에서 생산된 쌀로 빚는다. 목마른 한낮, 개도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켜면 풋사과를 깨무는 듯 청량함과 단맛이 입안을 맴돈다. 하지만 정작 개도에서 개도 막걸리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이른 아침이면 생산량 대부분이 여수 등 도회지로 출하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개도 막걸리 체험장이 들어서면 이 같은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 사진 개도(여수)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여수에서 연륙교로 연결된 백야도가 개도 여행의 들머리다. 태평양해운 소속 카페리가 백야도에서 하루 4회 오전 7시(직행)·8시·11시 30분·오후 2시 50분 개도를 오간다. 소요시간은 30분. 686-6655. 여수 중앙동에서도 하루 세 차례 대형 페리가 개도를 오간다. 개도마을 홈페이지(www.gaedo.invil.org) 참조. →잘 곳 7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다. 개도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이창규 정보화마을센터장은 “섬 사람들의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선까지 방값을 깎아 준다.”고 전했다. 690-2288. →맛집 대부분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1인 5000원 선. 음식점 메뉴에는 없지만 홍합탕은 꼭 한 번 맛보시라. 치장하지 않은 자연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정식 메뉴가 아니어서 가격도 정해져 있지 않다. 주민들과 객 간에 얼마나 도타운 대화가 오가느냐에 달렸다. 정태식 어촌계장 010-8826-6074.
  • 제주, 多 알고 있나요?

    제주, 多 알고 있나요?

    제주는 진화의 속도가 빠른 여행지입니다. 객들의 발걸음과 변화의 폭이 정비례하지요. 어제와 오늘이 달랐으니 내일도 필경 다른 풍경이 들어설 겁니다. 제주엔 새로 생겨 생경한 여행지도 있지만 낡아서 생경한 느낌을 주는 여행지도 있습니다. 제주 폭포의 맹주 격인 천지연 폭포와 현무암 돌담의 원형이 잘 살아있는 하가리 마을 등이 대표적이지요. 새로 생긴 볼거리라면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를 앞세울 만합니다. 500여종 4만 8000마리의 물고기가 뛰노는 곳입니다. 이들 모두 장마철에 찾기 맞춤한 여행지이기도 하지요.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씨에 외려 잔잔한 감동을 주는 풍경들이기 때문입니다. ●‘명불허전’ 천지연 폭포 쉼없이 쏟아지는 폭포수, 수많은 생명을 품다 서귀포의 천지연(天地淵) 폭포는 오래된 여행지다. 워낙 명성이 떠르르한 곳이라 가 보지 않은 사람조차 알 정도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직접 가 봤냐고 물으면 뜻밖에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현지 관광 안내소에 따르면 내방객의 70~80%가 중국인 관광객이다. 내국인들의 발길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방증이다. 천지연 폭포는 22m 높이 절벽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일품이다.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폭포 주변에 물줄기가 여럿 생기고 내리꽂히는 물살도 한결 힘차다. 제주도 내 폭포 가운데 유일한 천연기념물(27호)이기도 하다. 서귀포시청의 김영관 문화재 담당은 “천지연 폭포 입구에서 폭포까지의 1㎞ 구간 전체가 천지연 난대림 지대(천연기념물 379호)로 지정됐다.”며 “무태장어(천연기념물 제258호)와 담팔수 군락지(제163호) 등을 비롯해 25종의 어류와 447종의 식물이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불과 1㎞의 비좁은 공간에 수없이 많은 생물이 깃들어 사는 셈이다. 천지연 폭포는 들머리부터 운치가 빼어나다. 듣도 보도 못한 난대 식물들이 짙은 숲 그늘을 이루고 사위를 둘러친 벼랑도 제법 장엄한 자태를 뽐낸다. 계곡 주변엔 담팔수(膽八樹)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담팔수는 제주에만 자생하는 희귀 수종이다. 연중 빨간색 잎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것이 특징으로 7월에 흰색 꽃을 피운다. 나뭇잎이 여덟 가지 빛을 낸다 해서 담팔수라 부른다는 말도 전해 온다. 난대성 식물로 천지연 폭포가 북방한계지다. 담팔수 아래 계곡물엔 무태장어가 산다. 역시 천지연 폭포가 북방한계지인 열대성 어류로 길이가 2m 가까이 자란다. 1970년대 초엔 약 150㎝에 이르는 대물이 폭포 초입에서 잡히기도 했다. 야행성인 탓에 낮엔 자취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비로운 건 녀석의 일생이다. 강치균 문화관광해설사는 “무태장어는 치어 때 타이완 근해나 남태평양 등에서 천지연 폭포로 올라온 뒤 5~7년가량 폭포 주변에서 살다 산란을 위해 바다로 돌아간다.”며 “동남아, 뉴기니 등으로 추정되는 산란처에서 산란을 마친 뒤 생을 마감한다.”고 설명했다. 성어가 돼 강원 강릉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와 정반대다. 무태장어 치어는 이맘때 거슬러 올라온다. 강 해설사는 “10㎝ 길이의 실뱀장어만 한 치어들이 장마철에 구로시오 난류를 타고 천지연 폭포까지 올라온다.”고 전했다. 그 작고 어린 생명체가 수백, 수천㎞ 떨어진 바다를 헤엄쳐 건너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천지연 폭포를 찾았다면 새섬까지 둘러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초가지붕을 덮을 때 쓰는 ‘새’(띠의 사투리)가 많았다는 섬으로, 2009년 새연교가 놓이면서 서귀포항과 연결됐다. 새섬에는 1.2㎞ 남짓한 산책로와 경관 조명 등이 조성돼 있다. 섬 끝자락에 서면 문섬과 범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6~9월 성수기엔 밤 11시까지 출입할 수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설을 갖춘 새연교는 연중 밤 11시 30분까지 개방된다. ●돌담길 어여쁜 하가리 마을 올레길 따라 꼬불꼬불 굽이도는 검은빛 수채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돌담은 제주민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초가집의 ‘축담’에서 태어나 가축의 출입을 막고 밭 경계를 구분하는 ‘밭담’에서 일하다 ‘산담’ 둘러쳐진 무덤에 몸을 누인다. 오래전엔 읍성을 둘러싼 ‘성담’이나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환해장성’에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예전 제주에는 돌담이 지천이었다. 제주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깊은 첫인상을 남기는 것도 검은 돌담길이었다. 제주에서 아름다운 돌담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下加里)가 꼽힌다. 제주공항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마을로, 제주올레 15코스(한림항~고내포구)에 속해 있다. 고려시대부터 화전민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하가리는 마을 어디에나 돌담이 있다. 하가리 돌담은 대부분 꼬불꼬불 굽었다. 담장이 세찬 바람에 맞서는 것을 피하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돌담의 축조 시기는 무려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울러 제주 전통 말방아와 초가집도 마을 한편에 잘 보존돼 있다. 하가리 마을에서 놓쳐선 안 될 또 다른 볼거리가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와 연화지다. 더럭분교는 도시에서 유입된 학생 수가 전체의 50%를 웃도는 특이한 학교다. 국내 휴대전화 광고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연화지는 제주에서 가장 큰 연못으로 꼽힌다. 연못 주변에 적수련꽃이 활짝 피어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오픈 亞 최대 아쿠아리움,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지난 14일 서귀포 성산읍 섭지코지에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문을 열었다. 연면적 2만 5600㎡(약 7800평)에 수조 용적량 1만 800t으로 일본 오키나와의 쓰라우미 아쿠아리움(1만 400t)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 아쿠아리움’ 자리를 꿰찼다. 서울 여의도의 ‘63 씨월드’ 등을 운영하는 한화호텔&리조트가 30년간 운영한 뒤 주무 관청에 기부채납한다. 전시 동물은 500여종 4만 8000마리다. 멸종 위기종인 고래상어 두 마리와 자이언트 그루퍼 등 수많은 해양 생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구조다. 아쿠아리움과 공연장인 오션 아레나, 해양과학관인 마린 사이언스, 센트럴코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 공간에는 담장이 없다. 섭지코지를 찾은 관광객들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아쿠아리움 등 시설을 나눠서 둘러볼 수도 있다. 하이라이트는 지하 1층의 메인 수조 ‘제주의 바다’다. 가로 23m, 높이 8.5m인 수조는 아이맥스(IMAX)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바다 풍경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수조에 담긴 물 6000여t은 여의도 63씨월드 전체 수조 6개를 합친 것과 같은 크기다. 강우석 관장은 “약 60㎝ 두께의 수조 아크릴판 제작비만 100억원”이라며 “제주 바닷물을 끌어들인 뒤 수조 위아래 물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가도록 하는 게 필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의 바다’에는 50여종의 대형 해양 생물이 산다. 그중 돋보이는 건 현존하는 어류 가운데 가장 크다는 고래상어다. 온열대 바다에 사는 고래상어는 몸길이 최대 18m, 무게 20~40t까지 자란다. 현재 전시된 고래상어는 5m 크기의 어린 녀석들로 애월읍 앞바다에서 포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크릴새우 등 작은 새우와 플랑크톤 등을 먹는데 한끼에 3~4㎏씩 모두 2회에 걸쳐 7~8㎏을 먹는다. 당연히 고래상어의 취식 장면도 볼거리다. 김우중 홍보팀장은 “수면 위에 크릴새우를 쏟아부으면 고래상어가 물 밑에서 몸을 일직선으로 세운 뒤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과 먹이를 동시에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먹이를 먹는다.”며 “하루 두 차례 이들의 식사 장면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관람료는 어른 3만 7500원, 중고생 3만 5100원,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 3만 2600원이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하가리 마을은 제주공항→노형로터리→1132번 도로→하가리 표지석 좌회전→하가리 순으로 간다. 천지연 폭포는 서귀포항 뒤편에,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섭지코지 바로 앞에 있다. →잘 곳: 럭셔리 캠핑 바람이 불고 있는 제주에 또 하나의 명물이 들어선다. 롯데호텔제주가 오는 8월 1일 호텔 내 300평 규모의 천연 잔디 정원에 최고급 캠핑 트레일러 6대를 도입한다. 차체 길이 11m, 높이 3m, 너비 2.4m에 달하는 대형 캠핑 트레일러로 고급 가구와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갖췄다. 메뉴는 한우 꽃등심과 흑돼지 오겹살, 랍스타 등으로 구성됐다. 점심은 8만원(어른 기준), 저녁은 11만~12만원이다. 어린이 세트 메뉴는 4만~5만원(세금 별도)이다. (064)731-4261.
  • [김문이 만난사람] 559년전 터키를 캐는 이 남자 김형오

    [김문이 만난사람] 559년전 터키를 캐는 이 남자 김형오

    역사를 알면 인생의 재미가 열 배는 더 있다. 교훈이 있고 아픔이 있고 느낌이 있다. 산다는 것은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우러져야 한 인생의 스토리를 얘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콘스탄티노플을 아는가. 대다수는 얼추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그속에 진정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을까. 역사책에는 비잔틴의 최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비잔틴은 동서양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역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스티븐 런치먼이 지은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의 서문을 잠깐 들여다본다. ‘역사가들이 좀 더 단순했던 시절, 그들은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중세가 끝나는 특징적인 사건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끝없이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을 장벽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중세가 근세로 바뀌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탐험가들이 해상로를 개척하여 세계 경제를 바꾸어 놓게 한 것은 비잔티움의 쇠망과 오스만튀르크족의 승리였다. 비잔티움 학문이 르네상스에서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에궁, 뭐든지 설명이 길면 감동이 없는 법이다. 이쯤에서 감칠맛을 그만두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 그가 쓴 ‘길 위에서 쓴 희망편지’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47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대학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기자로 시작했다. 국무총리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공직을 수행했다. 1992년 14대 국회부터 국회의원 직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9년 3월에 발간된 책이니 과거형이다. 이젠 국회의원이 아니다. 기자 출신이고 수필문학가로 등단한 문인이라는 게 오히려 낫겠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이란 옷을 벗어던지고 나서 어떤 생활을 할까 궁금하다. 알고 봤더니 역사를 캐고 있다. 그것도 동서양을 아우르는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사에 대해 열심히 삽질하고 있다. 김 전 국회의장을 지난 4일 오후 서울신문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늘 넥타이를 맨, 꽉 낀 정장 차림의 모습만 보다가 가벼운 옷차림의 그를 보니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정치인이라는 냄새를 빡빡 씻었다고나 할까. 악수를 하면서 그는 “국회의원을 그만두니까 넥타이를 안 매게 됩디다. 아주 편해요.”라고 한다. 또 이어진다. “요새는 신문도 잘 안 보게 되고 정치 뉴스도 안 보고 참 좋다.”며 웃는다. 그를 만난 이유는 19대 국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홀연히 터키로 출국한 것 때문이다. 왜 불출마 선언을 했으며 터키는 또 왜 갔는지 등이다. 요즘 터키에 흠뻑 빠져 있다. 그것도 이스탄불, 다시 말해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다. 2009년 1월 국회의장 신분으로 터키를 방문했다. 우연히 군사 박물관에 잠시 들렀을 때 놀라운 충격을 받은 뒤 콘스탄티노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저를 전율시킨 것은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함대를 이끌고 갈라타 언덕을 넘어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술탄 메흐메트 2세는 해상으로 (콘스탄티노플이 쳐 놓은)쇠사슬을 돌파하지 못하자 배들을 산으로 끌고 천혜의 요새인 성곽으로 진입합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저는 비잔틴의 몰락과 오스만튀르크의 부상 등에 대해 역사적 지식이 부족했던 점을 부끄러워하게 됐고 이후 터키를 다섯 차례 다녀오면서 그 깊이에 매료됐습니다.” 지난 4월 16일 출국했다. 2일 귀국하기까지 47일간 터키에 머물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터키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 보아지치대학교 방문교수로 초빙돼 이 대학 도서관과 연구실에서 지냈다.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과제를 매듭짓기 위해서였다. 무슨 과제? 그것은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를 캐는 작업이다. 그는 여기에서 화해와 공존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을 합성해 ‘이스탄티노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터키에서 머무는 동안 대외 활동, 그러니까 강연이라고 해두지요. 그 대학에서 한국정치의 60년 역사를 강의했습니다. 아주 재미있어하더군요. 처음에는 30분을 약속했지만 나중에 질의응답까지 포함해 1시간 40분가량 됐습니다. 북한 갔던 일, 미국 스탠퍼드에서 강의했던 일 등 동아시아를 비롯한 한국의 정치역사를 얘기했습니다. 반응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그가 열심히 캐는 콘스탄티노플의 역사는 어느정도일까. 현장 방문 수차례, 자료수집 완료, 초고 정리 끝이란다. 올 가을쯤에는 반드시 팩트 위주의 두꺼운 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개봉박두. 현재 이와 관련된 책은 스티븐 런치먼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과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이 있다. 전자가 팩트에 비중을 둔 책이라면 후자는 소설 형식을 빌렸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그 정복전쟁은 지상전, 지하전, 해전, 공중전, 심리전, 첩보전, 외교전 등 모든 전략과 전술이 총동원된 전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사의 물결이 확 바뀌었지요. 오스만튀르크가 그쪽을 장악하자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열어야만 했고 콜럼버스의 항로, 아프리카 희망봉의 항로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저작물에 한 권을 보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인간성과 리더십에 초점을 두려 합니다.” 특히 그는 오스만튀르크가 고구려와 흉노, 그리고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라는 뿌리를 함께 깔면서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동서양 역사에서 관심을 덜 받고 있는지도 밝힐 예정이다. 그에게 술탄 메흐메트 2세가 터키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물었더니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인물로 추앙받는다.”고 했다. 아울러 “14살에 왕이 됐다가 왕좌에서 내려와 19살에 다시 왕이 돼 21살에 철옹성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사실이 매우 흥미진진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 젊은 왕이 아버지의 아버지도 못 이룬 업적을 해냈다는 점은 참으로 역사적인 것이라고 역설한다. “오스만튀르크로 인해 유럽은 200여년 동안 길을 잃어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실크로드의 지점이자 종점이었지요. 그래서 유럽이 항해시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오스만튀르크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다시 서양한테 당하게 됩니다. 이를 거울 삼아 우리는 글로벌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또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아등바등 싸우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면서 질문하고 싶었던 ‘불출마 선언’의 이유를 말한다. “내 나이 65살입니다. 60살이 지나면서 한 달이 다릅니다. 100페이지 되는 책을 읽고 돌아서면 금방 50페이지밖에 생각이 안 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10페이지로 줄어듭니다. 지난해 8월쯤인가 그래요. 국회의장까지 한 제가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면 제 이력에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를 생각했지요. 그러면서 제가 쓰고 싶은 글, 국회의원을 더 하면 영원히 못 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또한 4월 6일부터 5월 29일까지, 술탄 메흐메트 2세하고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대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5월 29일이 비잔틴 최후의 날이지요. 하여 모든 생각을 접고 터키로 갔던 것입니다.” 다시 비잔틴 최후를 얘기한다. 당시 60여일 동안 벌였던 전투에는 세계 전투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됐다는 것이다. 배를 끌고 언덕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헝가리인이 구상한 최대의 대포 등 흥미롭게 들여다볼 대목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는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인간적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면서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집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것은 어떤 것인지도 담을 것이란다. “저는 다시 종군기자가 된 셈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559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가는 기분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날을 온몸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절로 뜁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새누리당 당원이니까 새누리당에서 되겠지요.”라고 답했다. 대선 주자들에 대한 약평을 부탁했더니 “생각 안 해 봤다. 지도자는 뭐든지 겸손하고 당당함의 덕목과 타이밍이 있어야 국민들이 따르지 않겠느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울러 19대 국회에 대한 바람을 물었더니 “폭력이 없어야 한다. 막말도 폭력의 빌미가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he is… 194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 영도에서 자랐다. 1966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1976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75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1982년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1992년 14대 국회의원 당선되면서 이후 15,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9년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위원장(2000), 한나라당 17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2004), 한나라당 사무총장(2004), 한나라당 원내대표(2006), 대한민국 국회의장(2008)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돌담집 파도소리’,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등 다수가 있다.
  • 금강 기운 머금은 옥천 민물고기 요리

    금강 기운 머금은 옥천 민물고기 요리

    ‘향수’ 정지용 시인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충북 옥천군. 예로부터 옥천은 한가운데에 흐르는 금강이 있어 민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고 또한 그 강물 덕분에 토질이 비옥해 각종 농산물이 풍부한 고장이었다. 1980년 대청댐이 생기면서 물길도 변하고 옥천 사람들의 삶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금강은 그들의 삶, 그 자체다. 31일 밤 7시 30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동자개(배가사리), 모래무지(마주), 붕어, 피라미 등의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 생선국수, 도리뱅뱅이 등 비릿한 향기 물씬 풍기는 옥천의 민물고기 밥상을 소개한다. 군북면 환평리는 높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아 대청댐이 생길 당시 수몰을 면할 수 있었던 마을이다. 그 덕분에 골목 어귀마다 쌓인 돌담길이며, 슬레이트 지붕 등 옛집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6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이준설(59)씨는 어머니를 위해 여름철 보양식으로 으뜸인 어죽을 끓인다. 마을 근처 냇가에서 직접 잡은 작은 민물고기와 산중턱 지천에 널린 오가피, 덧나무(접골목) 잎을 따서 함께 끓인 약초어죽. 다른 반찬 하나 없지만, 아들이 직접 끓여준 어죽 한 그릇이 어머니에게는 최고의 성찬이다. 30년 넘게 금강에서 민물고기 조업을 해온 전장식(62)씨. 여태 부인과 함께 고기를 잡다가 2년 전부터는 손승우(42)씨와 함께 매일 아침 배를 타고 금강으로 간다. 오늘도 그물 한가득 동자개와 모래무지, 잉어, 장어 등이 들어 있다. 대청댐으로 인해 옛날보다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도, 양도 많이 줄었지만, 그에게 있어 금강은 삶 자체이자 가족을 지켜준 은인이다. 그런 남편의 몸보신을 위해 부인이 끓여낸 배가사리매운탕과 마주조림 등으로 차린 특별한 밥상을 만나본다. 굽이굽이 경사진 길을 따라 차로 10 여분 가다 보면 옥천의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높은벼루’라고 불리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청성면 고당리다. 이 마을에서 60년 이상을 함께 산 진기석(84), 이소분(80) 부부는 이맘때에 참옻나무에서 새순을 따고 (참)가죽나무에서 잎을 따다 삶아서 무쳐먹기도 하고,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 이곳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알콩달콩하면서도 티격태격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현대오일뱅크 노사 ‘덕수궁 소통’

    현대오일뱅크 노사 ‘덕수궁 소통’

    지난 15일 늦은 오후 서울시청 앞 덕수궁 돌담길. 권오갑 사장과 김태경 노조위원장 등 현대오일뱅크 노사 대표들이 이곳을 찾았다. 최근 단체협상을 마무리한 뒤 ‘덕수궁을 방문하자.’는 권 사장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의미 있는 사람과 한번쯤 거닐고 싶은 곳이고, 사무실에서 형식적으로 악수하는 것보다 서울 시내 고궁에서 이야기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권 사장의 제안에 김 위원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16일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이날 고궁 산책에는 노조 대의원 10여명과 회사 임직원 10여명 등 모두 20여명이 함께했다. 30여분간 덕수궁 경내와 돌담길을 함께 걸으며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했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서로 마음을 열고 허심탄허하게 소통했다. 이후 이들은 덕수궁 입구 찻집에 들러 한과를 곁들여 차를 마셨다. 사측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회사에 임금 결정을 위임한 노조에 고마움을 표시했고,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나가자는 의지도 함께 다졌다. 김 위원장은 “노조는 항상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함께할 것”이라면서 “우리 회사가 지역사회는 물론 협력업체와 어려운 이웃에게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어 “이번 주말에는 우리 회사에서 생산된 제품을 일선에서 판매하고 있는 자영 주유소 사장들을 만나 노조위원장으로서 전 조합원이 힘을 모아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을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청보리섬 가파도에 이야기를 더한다

    ‘섬속의 섬’ 제주 가파도가 이야기가 있는 섬으로 거듭난다. 제주도는 청보리 섬으로 유명한 가파도를 새로운 경관테마 섬으로 만들기 위해 이야깃거리(스토리텔링) 발굴과 건물지붕·벽 도색 등의 경관개선사업을 실시한다고 3일 밝혔다. 가파도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 떨어진 전체면적 87만 4328㎡의 유인도로 현재 135가구 281명이 거주하고 있다. 섬의 최고점이 해발 20.5m에 불과할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고 평평한 섬이다.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가파도 전역에서 넘실대는 56만㎡의 아름다운 청보리 밭과 청보리 밭에서 조망하는 제주 본섬의 아름다운 경관이 가파도의 자랑거리다. 도는 가파도의 청보리 밭은 물론 주민들이 ‘왕돌’이라 부르는 고인돌 추정 군락지, 끊어질 듯 길게 이어진 돌담, 억센 바람, 용천수인 ‘고망물’, 마을신당 ‘할망당’ 등을 소재로 스토리텔링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또 가파도 ‘탄소 제로 섬’ 추진계획에 따라 올해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디젤발전기를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 및 풍력발전기로 모두 대체한다. 도 관계자는 “오는 10월 제주에서 열리는 환경올림픽인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 참가하는 세계 각국 대표단이 가파도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해 ‘탄소 제로 섬’ 가파도의 뛰어난 자연환경을 세계에 알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재능기부 통해 비로소 세상과 소통하게 됐죠”

    “재능기부 통해 비로소 세상과 소통하게 됐죠”

    보건복지부와 EBS는 9일 서울예술대학에서 ‘제1회 희망나눔 톡톡콘서트’를 열었다. 희망나눔 톡톡콘서트는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을 응원하고, 나눔을 통해 행복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내년 3월까지 매달 한번씩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해 토크콘서트 형태로 진행한다. ●“누구나 사랑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첫 강연자로 나선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꾼다’를 주제로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비롯한 한국적 소재 디자인의 세계적 브랜드 파워와 디자인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와의 소통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7년 전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면서 “그때 다른 이들이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누구나 사랑받은 만큼 당연히 돌려주어야 한다. 나눔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강연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남과 다르게 살아라.’,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가 중요하다.’고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 실천을 강조했다. 이씨는 2006년 파리컬렉션에서 한글문양 의상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래 한글, 산수화, 단청, 돌담 등 한국적 소재를 디자인에 접목시켜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또 에티오피아, 파라과이 등 6개국 문화 요소에 한글을 결합한 코이카(KOICA)봉사단을 이끌며 디자인 기부 및 해외 봉사활동에 주력해 왔다. 그는 지금까지 어린이 환경센터 건립 패션쇼를 비롯해 서울 패션위크 패션 기부릴레이 행사, 아프리카 아동돕기 에코백 디자인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 왔다. ●한비야·김난도·노희경씨 등 강연 예정 이씨 외에도 국제구호 전문가인 한비야씨,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쓴 방송작가 노희경씨 등도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복지부 박금렬 나눔정책추진단장은 “톡톡콘서트는 사회 저명인사와 젊은이들의 희망나눔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더 열정적으로 인생에 도전하고 나눔을 실천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40년 봉인 팔공산 비로봉 자연친화공원으로 풀린다

    40년 봉인 팔공산 비로봉 자연친화공원으로 풀린다

    40여년간 일반인 접근이 금지된 대구·경북의 명산 팔공산 정상부 비로봉(해발1192m) 인근에 생태공원이 조성되면서 전면 개방된다. 경북 군위군은 5일 “군위 부계면 동산리 팔공산 비로봉 인근에 주둔 중인 공군부대의 영내 면적을 축소한 뒤 그 자리에 내년까지 자연친화형 공원과 탐방로를 조성해 일반에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방 조치는 국방부 등 관련 부처와의 협의에 따른 것으로 1960년대 말 팔공산 공산성(고려시대 때 축조) 터에 군부대가 들어서고 방송국의 송신시설이 자리를 잡으면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 40여년 만이다. 비로봉은 행정구역상으로 대구 동구에 속하지만 경북 영천, 경산, 칠곡, 군위 등 4개 시·군이 맞닿는 경계에 있으며 2009년 11월 대구쪽 등산로 일부가 개방됐다. 이에 따라 군은 공원 조성 등을 위해 올 하반기 중 철조망 이설 등 영내 면적 축소와 함께 바닥의 콘크리트를 말끔히 걷어 낼 계획이다. 부대 측은 이들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군에 곧바로 땅을 넘겨줄 예정이다. 군은 이 일대 터 1만여㎡에 생태숲과 전망대, 안전시설, 주차장, 화장실 등을 갖춘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한편 인근의 절경과 숱한 전설을 간직한 오도암(원효의 수행처)~시좌굴(김유신과 연개소문 간의 일화를 간직한 곳)~원효굴~좌선대~공산성~비로봉을 잇는 탐방로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군은 이들 사업에 국비 22억 5000만원 등 총 45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이 사업이 완공되면 팔공산 정상 봉우리는 물론 원효굴 등 묻혀있던 문화유적 및 뛰어난 절경들에 접근할 수 있어 팔공산이 전국적인 명승지로 도약할 전망이다. 또 그동안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팔공산의 온전한 답사가 가능해진다. 입시철 학부모들이 자주 찾는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갓바위)~동봉~비로봉~서봉~파계봉~가산산성 등 팔공산 전체를 오갈 수 있는 종주 코스가 생기기 때문이다. 포항 죽장 지점 낙동정맥(태백산맥)에서 출발해 보현산~화산~팔공산~황학산 등을 거쳐 왜관 자귀산까지 이어지는 ‘팔공기맥’ 종주도 가능해져 등산객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욱 군위군수는 “팔공산 정상부 생태공원 조성 사업을 계기로 이 일대를 전국 최고급 관광명소와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개발함은 물론 삼국유사 산실인 인각사, 군위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마을인 한밤마을 등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하동군으로 산촌체험 가볼까

    경남 하동군은 28일 하동군 북천면 직전마을과 화개면 부춘마을을 도시민들이 휴양하며 산촌을 체험할 수 있는 산촌 생태 마을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지리산 자락 시골마을인 북천면 직전마을은 코스모스·메밀꽃 축제로 유명한 마을이다 화개면 부춘마을은 지리산 깊은 계곡과 야생 녹차밭이 있어 녹색 농촌 체험을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군은 직전마을과 부춘마을에 국비와 도비, 군비 등 14억원씩을 지원해 녹색 체험 및 휴양 시설과 소득 작목 재배 공간 등을 내년 말까지 조성한다. 직전마을에는 꽃천지 체험관과 도시민들이 산촌 체험을 할 수 있는 2층 규모의 산림문화회관 등을 건립하고 쌈지공원 조성, 돌담 정비 등의 사업을 한다. 부춘마을에도 지리산과 산촌마을의 산림 자원을 활용한 산촌 체험관과 2층 규모 산림문화회관을 건립하고 태양광 가로등 등을 설치한다. 군은 두 마을에 산촌 생태 시설이 조성되면 도시민들이 산촌을 체험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족 단위 등으로 많이 찾아와 해당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잦아들고 언 땅을 녹이는 새 봄의 온기가 대지에 스민다. 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바람결에 담긴 봄기운은 또렷하다.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도 스멀스멀 봄이 곧 들이닥칠 기세다. 기름진 논과 밭에 뼈를 묻고 살아가는 늙은 농부들은 자연의 흐름 앞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의 흐름을 벗어나는 법도 없다. 늘 자연의 빠른 걸음걸이에서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난 거리만큼을 유지하며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순리를 따르는 삶이다. 자연에 앞서지도 자연을 거스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자연에 기대 사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사는 농촌에서 누구라도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건 그 안에 자연의 순리가 살아있어서다. ●기와 돌담·솟을삼문과 절묘한 조화 충북 보은 회인면 눌곡리. 너른 들녘을 거느리고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봄기운이 담겼다. 봄의 소리를 가슴에 안고 분주히 오갈 농부들의 발걸음을 맞이할 들녘은 그러나 아직 고요하다. 언 땅이 풀려 축축해진 흙길이 정겹기만 하다. 평안한 마을길을 걷다 보면 길옆으로 이어진 낮은 비탈에 기대어 세워진 한 채의 고택과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발길을 붙잡는다. 보은 풍림정사와 그 집의 솟을삼문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다. 봄을 앞두고 달콤한 정적이 감도는 마을 들녘에 사람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지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번듯한 신작로를 지나는 자동차도 고작해야 한두 대 정도다. 모두가 다가오는 새 봄의 농사일 채비로 한창 웅크리고 있는 중이다. 마음으로만 봄을 재촉하는 참 평화로운 정적이다. 발길을 붙잡는 풍림정사 대문 앞의 은행나무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평범한 나무다. 큰 나무도 아니다. 키가 18m쯤 되고,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4m가 채 안 된다. 지금의 생육 상태로 보아서 나이는 대략 150살 정도로 짐작된다.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은 물론 아니고,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그저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그러나 나무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거느리고 서 있는 풍림정사 은행나무의 자태는 여느 문화재급 은행나무 못지않게 아름답다. 낮은 기와 돌담과 고택의 기와지붕 위로 널찍이 드리운 나뭇가지가 이뤄낸 유장한 곡선은 옛 선비의 기품까지 느끼게 할 만큼 듬직하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 것이지 싶다. ●여성인권 강조한 선비 박문호가 심어 자연의 곡선을 닮은 우리 옛 건축물이 큰 나무와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풍림정사 은행나무는 이런 점에서 유난하다. 아예 처음부터 이 자리에 꼭 이만한 크기로 서 있었던 것처럼 나무와 풍림정사의 조화는 완벽하다. 기와 돌담이 바닥에 이룬 수평선을 디딤돌 삼아 수직으로 일어선 은행나무의 곧은 줄기는 사람의 눈을 가장 즐겁게 하는 황금분할의 비례를 이뤘다. 또 사방으로 고르게 펼치며 기와지붕 위로 살포시 올라선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의 풍성함은 고택의 빈 마당을 빈틈없이 채운다. 그야말로 나무와 사람살이가 이룬 아름다운 조화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하는 나무임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나무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나무의 위치나 주변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그저 풍림정사와 관계 있는 나무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풍림정사의 연륜이 그리 길지 않아 나무의 연륜도 쉽게 짚어볼 수 있다. 풍림정사는 이 마을 출신의 선비 박문호(1846~1918)가 개화파와 수구파의 정쟁으로 혼란스럽던 조선 후기에 손수 지은 서당이다. 정통 성리학의 명맥을 잇고자 한 그는 당장에 자신이 벼슬을 얻는 것보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2년의 일이다. 나무의 나이도 풍림정사를 세운 때와 일치한다. 결국 나무를 심은 것도 박문호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풍림정사를 짓고 대문 앞에 나무를 심었다. 정통 유학자답게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잘 자랄 수 있는 건강한 묘목을 구해 심었을 것이다. 이 땅의 정신세계를 지켜온 유학의 가치, 혹은 공자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떠올리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자연의 순리 그르치는 억압 물리쳐” 선비 박문호는 특히 남녀 차별 극복을 매우 강조했으며 최초의 본격 근대 여성 교육서인 ‘여소학’(女小學)을 펴내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하늘이 주어진 본성대로 혹은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억압된 여성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남녀 모두 순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전히 박문호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눌곡리 마을에서는 풍림정사와 그의 은행나무를 정성껏 지키고 있다. 한때 마을 사람들은 풍림정사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은행을 거두어 판매한 이익금으로 풍림정사와 은행나무를 관리했다고도 한다. 고작 200년도 채 안 된 나무이지만 후손들에게는 천년을 더 살아온 여느 큰 나무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은행나무다. 그건 바로 우리 삶과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는 온갖 억압과 장애를 물리치고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는 옛 사람에 대한 자랑이다. 눌곡리 들녘을 한 바퀴 돌아 풍림정사 은행나무로 스며드는 상큼한 바람에는 옛 선비와 그를 따르는 농촌 사람들이 지켜온 인간 사랑의 큰 뜻이 담겨 있었다. 글 사진 보은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북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 126-3. 청원~상주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보은군을 찾아가는 길이 무척 빠르고 편하다. 보은 풍림정사는 회인톨게이트에서 불과 2㎞ 거리밖에 안 된다. 톨게이트를 나가자마자 나오는 사거리에서 1.3㎞ 직진한다. 개울 건너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 논밭 사이로 800m쯤 가면 왼편 길가에 풍림정사가 있다. 나무는 풍림정사의 솟을대문 앞 조붓한 마당에 서 있다. 풍림정사 주변은 마을이 없어 한적한데 1㎞쯤 직진하면 회인면 소재지인 중앙리 마을이 나온다.
  • [씨줄날줄] 명상 식사법/최광숙 논설위원

    스티브 잡스, 리처드 기어, 마이클 조던, 비틀스의 존 레넌. 그들의 공통점은 ‘명상 예찬론자’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애플의 최고 경영자 잡스의 집에 별도의 명상 장소가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달라이 라마의 속가 제자로 불리는 배우 기어는 “명상을 하고 나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명상에 푹 빠져 있다. 요즘 명상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명상은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신체적·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묘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우울증·불면증·고혈압·암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한몫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에서는 명상의 효과를 인정받아 의료계에서도 보완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명상을 꾸준히 하면 부정적 정서가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자율신경을 조절해 자연치유력도 향상시킨다고도 한다. 질병으로 변형된 유전자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런 명상에 대한 의학적 연구에 힘입어서인지 전 세계에 명상 바람이 불었는데, 그중 걷기 명상은 몇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번졌다. 앉아서 하는 기존의 명상과 달리 조용히 걸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걷기 명상은 ‘숲 걷기 명상’ ‘꽃길 따라 걷기 명상’ ‘경복궁 돌담길 따라 걷기 명상’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최근 미국에서 불교식 명상 식사법이 유행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식사법은 음식을 25~30차례씩 꼭꼭 씹고, 입 안의 음식을 다 삼킬 때까지 포크를 잡지 않는다. 식사 중 TV를 보거나 컴퓨터·휴대전화를 하지 않고, 누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 다만 음식이 어디에서, 누구의 손을 거쳐 내게 왔는지, 내가 왜 이 음식을 먹는지 등등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의 안정도, 먹는 즐거움도 얻는다고 한다. 먹으면서 수행하는 셈이다. 구글에서도 지난해 9월 본사로 걷기 명상을 전파했던 주역인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을 초청해 명상 식사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 반응이 좋아 구글에서는 한달에 한번 채식으로 침묵 식사를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은 일찍이 ‘오직 ~할 뿐’이라며 명상 식사법을 설파한 바 있다.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의 스승인 숭산 스님은 “밥 먹을 때는 오직 먹을 뿐, 수행할 때는 오직 수행할 뿐”이라면서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지 않았던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2)해남 녹우당(錄雨堂)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2)해남 녹우당(錄雨堂) 은행나무

    집에는 주인의 이름을 표시한 문패를 건다. 문패에는 단순히 주인의 이름을 적을 뿐 아니라, 몇 가지 장식을 덧붙여 그 집의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옛 선비들은 주인의 삶과 철학을 상징하는 집 이름, 즉 당호(堂號)를 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집을 효과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 집 안팎에 크고 작은 나무를 심었다. 집안에서 즐기는 정원수 외에도 옛 선비들은 대문 앞에 높이 솟구치는 큰 나무를 심어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한 집안의 상징으로 키워지겠지만, 이 나무가 오래 살아남으면 마을 전체를 가리키는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그 나무 안에 집 주인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의 사람살이가 담기는 건 당연한 순서다. ●비자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초록의 빗소리 땅끝마을 해남에는 초록빛 비가 내리는 집이 있다. ‘초록 비의 집’으로 해석되는 ‘녹우당’(雨堂)이라는 당호의 이 집은 조선시대의 시인 윤선도가 머물던 유서 깊은 살림집이다. ‘초록 비’를 느낄 수 있는 열쇠는 이 집의 사랑채에 걸린 편액 ‘정관’(靜觀)에 담겼다. ‘고요하게 바라보라.’는 뜻대로 집 안에 들어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사철 어느 때에라도 싱그러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빗소리는 집 뒤로 이어지는 덕음산 숲의 초록 비자나무들이 바람에 스치며 지어내는 소리다. 그래서 녹우(雨)다. 국어사전에는 ‘녹우’를 “늦봄과 초여름 사이 잎이 우거진 때 내리는 비”라고 풀이하지만, 이 집에서만큼은 사전적 뜻보다 비자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잎새들의 소리를 빗소리에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진다. 송강 정철과 함께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윤선도의 시심(詩心)이 살아있는 집인 까닭이다. “뒷산은 바위 산이에요. 선조들은 이 산에서 바위가 허옇게 드러나면 부락이 융성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바위를 초록 빛으로 덮기 위해 나무를 심으셨죠. 자연히 사철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비자나무를 고르신 겁니다.” 녹우당에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자 이 집을 처음 지은 어초은 윤효정의 18대 종손인 윤형식(80) 노인의 이야기다. 녹우당의 뒷산 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인 해남 연동리 비자나무 숲이다. 이 비자나무 숲은 예전만큼 무성하지 않다. 윤 노인은 나무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라며 아쉬워한다. 센 바람에 맥없이 쓰러지는 나무도 있고, 더러는 저절로 나이가 들어 죽는 나무도 있다고 사정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3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무성한 뒷산은 한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숲이다. ●윤선도 선조, 아들 과거급제에 심은 나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땔감으로 쓰던 옛날에도 선조들은 뒷산의 비자나무만큼은 절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했다는 게 윤 노인의 이야기다. 선조들은 비자나무의 열매를 모아 마을 사람들에게 구충제로 쓰도록 나눠 주기도 했다. 또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비자 열매 강정을 만들어 손님의 다과상에 내놓기도 한다. 녹우당은 원래 조선 효종이 윤선도를 위해 수원 화성 지역에 지어준 살림집이다. 만년의 윤선도가 이곳 해남에 머무르게 되자, 옮겨온 것이다. 그동안 녹우당을 비롯한 주변 유적지 일원을 녹우단이라 했지만,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공식적으로 ‘녹우당’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녹우당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대문 앞에 우뚝 서서 나그네를 반기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주변에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지만 이 집을 대표하는 나무는 단연 대문 앞에 우뚝 서 있는 이 은행나무다. 윤선도의 4대조인 어초은이 이 집에 살던 때, 그의 여러 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걸 기념하며 심었다. ●줄기 둘레만 5m… 나이보다 젊은 나무 나이는 500살, 키는 20m까지 컸다. 줄기 둘레도 5m 가까이 된다. 단아한 기와 돌담으로 이어진 대문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이 나무는 이 집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때 어초은 할아버지는 은행나무를 네 그루 심으셨다고 해요. 그 중 한 그루는 오래전에 불이 나서 수세가 형편 없게 됐어요. 하지만 그 나무들 모두가 여전히 뒷동산에 살아 있어요. 물론 그 중에 제일 튼튼하고 잘생긴 나무가 대문 앞의 이 나무이죠.” 윤 노인은 비자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은 어초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선조들이 대를 이어 집 주위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덧붙인다. 녹우당 주변에서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윤 노인은 대문 앞의 은행나무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나무는 단지 집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였을 뿐 아니라, 지체 높은 가문의 살림집임을 알리는 상징이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 나무가 500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가문의 자랑을 넘어 마을의 랜드마크가 됐다. “누가 따로 돌봐 줄 필요는 없어요. 한눈에 봐도 건강하고 싱그럽잖아요. 그래도 나이가 많으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암나무이지만 열매가 자잘하고 많이 맺지도 않아요. 하지만 해남군에서 때맞춰 영양도 보충해 주고, 병충해도 방제하며 철저히 관리하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아갈 겁니다.” 나무가 아름답게 살아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선조들의 믿음은 확고했다. 나무가 죽고 뒷산이 헐벗어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융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 것도 그래서다. 지금 눈 감고 초록의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옛 선조들의 보살핌에 고개가 숙여진다. 글 사진 해남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번지 녹우당. 서울에서 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해 남도에 들어서서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군청까지 간다. 해남군청에서 남쪽으로 난 지방도로 806호선을 이용해 대흥사 방면으로 간다. 곧게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 4㎞쯤 가면 ‘고산윤선도 유적지’로 들어서는 마을 길과 연결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조붓한 농로를 따라 1.3㎞ 가면 숲 사이로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은행나무는 매표소에서 200m쯤 걸어 들어가면 녹우당 대문 앞에서 만날 수 있다.
  •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2) 문화관광분야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2) 문화관광분야

    천문대와 박물관을 활용한 지역관광 마케팅의 대가, 문화 불모지에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는 공연기획자, 아름다운 섬 속 자연자원 발굴 및 보전의 파수꾼. 제2회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꼽힌 22명 중 문화관광 분야 달인들의 면면이다. 열정과 헌신으로 똘똘 뭉친 이런 공직자들이 있기에 지역은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오는 16일에는 농업분야 4명의 달인들을 소개한다. ■이형수 강원 영월군 도시디자인과장 국내 첫 ‘시민 천문대’ 건립… 관광 영월 자리매김 수훈 갑 강원 영월군 도시디자인과 이형수(56·지방행정5급) 과장은 폐광지 영월을 ‘박물관의 고장’으로 탈바꿈시킨 신지식 공무원이다. 이 과장은 정부 산하 연구용 천문대와 달리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시민 천문대인 별마로천문대를 비롯해 지역 특성을 살린 박물관과 과학관 등 10개의 문화시설을 직접 기획하고 건립했다. 영월이 민간 박물관까지 포함해 모두 19개 박물관을 갖추고 문화관광도시로 변신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내년까지 10여개의 박물관이 추가로 건립되거나 구상되고 있어 시너지 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2001년 별마로천문대가 건립되고 10년동안 해마다 1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등 영월 박물관을 찾는 유료 관람객만 연간 150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군민이 4만여명이니 박물관 관람객만 주민의 38배나 되는 셈이다. 박물관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영월 이미지도 좋아져 래프팅과 패러글라이딩 등 레포츠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까지 몰려 한 해 영월을 찾는 관광객만 500만명에 이른다. 이처럼 영월을 박물관을 포함한 문화관광의 고장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 이 과장이다. 그가 남다른 안목으로 ‘하늘의 별을 상품해 팔자’며 팔을 걷어붙인 것은 1996년 일본 배낭여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광지 영월과 비슷한 여건인 일본의 이와키시를 찾아 도시가 다시 회생된 계기가 석탄박물관과 동굴, 천문대였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천문대는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고 사계절 체류 관광객을 맞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1000여곳의 민간 천문대가 있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만 100여개가 있는 등 사설 천문대가 외국에서는 각광을 받고 있었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된 천문대가 없었다. 이후 7년간의 기획으로 해발 800m 봉래산 정상에 별마로천문대 건립에 들어갔다. 천문대가 들어설 자리를 찾기 위해 3년 동안 500번 이상 산을 올랐다. 고(故) 조경철 박사에게 얻은 중고 망원경을 메고 맑은 날, 흐리고 안개 끼고 눈비가 오는 악천후를 가리지 않고 산 정상을 찾아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며 최적의 입지를 찾았다. 워낙 인적이 드문 산을 주로 밤에 찾다 보니 멧돼지와 고라니떼를 만나 봉변도 당하고 주변 동료들로부터 ‘천문대에 미친 사람’이라는 오해도 샀다. 설립 초기 일부 주민들로부터 ‘영월의 맥을 끊어 놓으려 한다’는 질타도 받고 천체 관측 장비의 국제 입찰 과정에서 비방과 투서가 난무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까지 받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비를 들여와 영월의 랜드마크 천문대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극복했다. 이 과장은 “45억원이 들어가는 천문대가 건립 후 애물단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미친 듯이 산을 찾았고 일본 천문대 도면을 복사해 오고 일본 천문대 주변 주민들의 삶과 경제 효과까지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외롭게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별마로천문대와 연계해 천체 체험과 교육, 휴양을 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또 국내 유일의 공립 사진박물관인 동강사진박물관, 카르스트 지형의 영월 생태자원을 담은 동굴생태 전시관, 방랑시인 김삿갓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감삿갓문학관, 탄광 지역의 애환을 담아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탄광문화촌, 영월 특산품 숯을 웰빙시대에 맞게 관광상품화한 상동숯마을과 참숯역사관까지 이 과장의 기획과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2002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로부터 신지식 공무원으로 선정되고 같은 해 관광공사로부터 아름다운 관광 한국을 만드는 1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 과장은 “늘 공부하는 공무원이 지역을 이끌 수 있다.”면서 “지난 15년 동안 국내외 지역사회 개발 사례 책자와 논문 4000여권을 찾아 소장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영월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송필석 부산 사하구 을숙도 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 사라 장 등 유명인 공연 유치… 국내 최고 수준 극장 탈바꿈 한때 국내 최고 철새 도래지였던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자리 잡은 ´을숙도 문화회관´에서는 요즘 문화예술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불편한 교통과 낙후된 시설 등으로 지역민과 예술인들로부터 외면받던 극장이 부산 서부산권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장소로 떠올랐다. 문화회관의 대변신에는 송필석(51·행정6급) 공연기획팀장의 열정과 노력이 한 몫했다. 송 팀장은 부산 지역 공직사회와 예술계에서 이미 ‘공연 기획의 달인’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을숙도 문화회관 운영에 혁신적인 공연기획 시스템을 도입, 지난해 전국 284개 공연장의 1년 평균 기획 공연의 6배를 갖는 등 을숙도 문화회관을 수준 높은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문예회관 운영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국 284개 공연장의 1년 평균 기획 공연이 23.4회지만, 을숙도 문화회관은 6배 수준인 130여회(2011년 기준)에 달했다. 올해도 100여 차례 공연을 준비 중이다. 2010년에는 한국문예회관 연합회 주관 ‘전국 문예회관 운영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1987년 행정직 9급으로 공직에 뛰어든 그는 부산시 문화예술과, 부산문화회관 등 문화예술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원에 진학,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2007년에는 음악 박사 학위까지 받아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공연기획 전문가로 거듭났다. 시 공연기획 담당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을숙도 문화회관 근무를 자원한 것은 2008년 2월이다. 해운대 등 부산 남부권에 비해 문화 혜택을 누릴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서부산권 시민들에게도 문화예술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2002년 개관한 을숙도 문화회관의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공연이라고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연극이나 인형극이 고작이었다. 월평균 4~5차례 공연이 전부였다. 게다가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과 예산, 동네 피아노 학원 발표회 장소라는 낮은 이미지, 불편한 교통여건, 성능이 낮은 조명과 조악한 음향 시설 등 모든 게 엉망이었다. 직원들도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야만 했다. 결론은 우수 연주자 초청 등 공연장의 브랜드를 향상시킬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나 적은 기획예산과 전문인력도 없는 형편에서 우수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듯 2008년 개관 6주년 특별기념 공연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을 초청, 대박을 터뜨렸다. 문화회관 개관이래 최초로 700여 좌석 표가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초청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라 장이 협연할 만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등을 협연 파트터로 초청하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도움을 달라.”는 호소 끝에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하면 된다’는 직원들의 자신감이었다. 이후 피아니스트 백건우, 국민가수 인순이, 마법의 사운드 필라델피아 챔버 오케스트라, 자연주의 피아니스트인 조지 윈스턴, 명창 박성희 초청 완창 판소리 흥부가, 바이올리스트 강동석 등의 공연을 잇따라 유치했다. 현재 을숙도 문화회관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등 국내외 문화예술 기관 단체와의 공연·교류협약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새로운 개념의 상설 프로젝트형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송 팀장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을숙도 문화회관이 전국 최고 극장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직원들의 혼신을 다한 열정과 노력 때문”이라며 “을숙도 문화회관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고경남 전남 신안군 철새갯벌팀장 섬의 문화·생태적 가치 발굴… 장도습지 람사르 등록 주도 전남 신안군 해양수산과에 근무하는 고경남(47·지방사서6급) 철새갯벌팀장은 1004개의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의 자연자원을 발굴·보전하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고 팀장은 인문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환경과 지역의 자연보호에 앞장서 ‘문화관광 분야’의 행정 달인에 선정됐다. 고 팀장은 1004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의 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지키는 일이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삶을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고 팀장은 섬이 가진 고유의 생태적·문화적 가치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명감으로 1997년부터 틈나는 대로 낯선 섬들을 답사했다. 2003년 흑산도에 딸린 장도에서 산지습지를 발견한 것은 그 첫 사례다. 20여 가구가 사는 장도섬은 산 정상부에 습지가 있어 가뭄에도 늘 부족함 없이 식수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가파르게 험준한 산을 오른 후 갑자기 넓게 펼쳐진 습지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소를 방목하고 식수를 얻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뒷산이었으나, 섬에서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산지 습지의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지정받게 됐다. 이곳은 습지 관리 및 홍보를 위해 매년 수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지역의 대표적 명물이 됐다. 고 팀장은 이러한 경험을 살려 주변에서 늘 보아 왔던 자연이 중요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연을 자세히 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 2009년 흑산도에서 국내 미기록종인 새우란 2종을 발견해 신안새우란과 다도해새우란으로 명명하였고, 압해도에서는 103년 만에 사라진 갯정향풀과 병아리다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가거도에서는 희귀종인 섬천남성의 서식지를, 흑산도 진리에서는 어린 초령목 43주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고 팀장은 문화유산에도 관심이 많아 매주 공휴일에는 문화유산, 민속, 야생화, 조류 등을 관찰한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실력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난 흑산 사리와 비금 내월리 돌담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또 신안군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전남 22개 시·군 내고장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수로서 6개월간 120명 이상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고 팀장은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철새갯벌팀을 만들어 습지에 도래하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도요물떼새의 종 보전을 위해 40여 민관학 단체가 참여하고 국제 네트워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도요물떼새 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전국 도요물떼새 동시센서스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야생식물 및 철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난해부터 전국적인 탐조 단체인 한국야생조류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키워 왔다. 현재 신안의 많은 무인도서(칠발도·구굴도 등)가 바닷새 번식지로 중요한 곳이나 외래종의 도입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어 문화재청, 국립공원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야생조류 서식지 및 철새도래지 모니터링, 센서스 등 연구활동을 통해 신안군에 서식하는 철새 분포현황 보고서 2권과 각종 정책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해 왔다. 고 팀장은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이 가지고 있는 무궁한 자연자원과 작은 섬 문화가 가장 경쟁력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신안군 갯벌 자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지속적인 보전과 이용을 위한 관리 모델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사진 신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열린세상] 덕수궁,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성찰 공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덕수궁,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성찰 공간/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이문세의 대표곡 ‘광화문 연가’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귀와 입에 익숙한 국민가요다. 돌담길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을 만큼 우리들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 속 궁궐의 이름은 덕수궁(德壽宮)이다. 그런데 지난 2일 덕수궁이란 호칭이 일제 잔재이니 경운궁(慶運宮)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문화재청이 명칭 변경 가부를 놓고 공청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덕수궁이란 이름을 쓰는 한 나라를 빼앗긴 황제의 울분, 망국의 역사, 식민지 지배의 흔적, 해방 이후 무원칙하고 무능한 문화유산 관리 정책만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회복하면 대한제국 광무 연간의 역사, 외세에 둘러싸여 압박을 받으며 나름대로 그것을 물리치려 진력하던 고종과 그 시대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명칭 변경의 당위성을 말하는 쪽의 주장이다. 이들은 고종이 영·정조 때 나온 군민(君民)일체의 민국(民國)이념을 계승해 자주적 근대화를 이끈 유능한 개명군주이며, 대한제국은 주체적 산업화를 모색한 근대국민국가로 호평한다. 대한제국의 붕괴 이유도 “무능·무력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광무개혁이 뜻밖의 성과를 올리자 이를 경계한 일본이 러일전쟁이란 비상수단을 동원해 국권을 강제로 앗아갔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맴돈다. 1896년 2월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기 전 고종이 정사를 돌보던 정궁(正宮)은 경복궁이었다. 1년여에 걸친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끝낸 고종은 어떤 이유로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까? 왜 좁디좁은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삼고 강제 퇴위 이후 1919년 승하할 때까지 거처했을까? 담장 하나 사이로 러시아공사관과 미국공사관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성황후 시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에 유사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지하 비밀통로도 뚫어 놓았었다. 덕수궁에 머물며 고종은 러시아 힘에 기대 일본을 견제하는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을 펼치는 한편 제정 러시아를 모델로 대한제국을 세웠다.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에 의하면, 황제는 육해군 통수권·입법권·행정권·관리임명권·조약체결권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한 전제군주였다. 그때 고종은 영조와 정조가 아닌 러시아의 차르가 되고 싶어 했다. 한 나라가 국민국가인지 여부는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의해 판정된다.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일본과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과 영일동맹(1905년 8월)은 ‘광무개혁’을 호평하는 이들이 그리는 자화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종이 거처한 경운궁이 러시아·미국·영국 공사관 옆이었다는 사실도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의심하게 한다. 사실 덕수궁이란 명칭도 일제가 붙인 것이 아니다. “덕수궁이라 이름 붙인 이는 순종황제와 신하들이며, 덕수(德壽)라는 명칭에는 태황제인 고종을 잘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름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쪽의 설명이 합리적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가 앞서 산 이들의 삶을 거울삼아 자신을 가다듬듯이, 국가도 그 진로를 비출 등대가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열강의 이해가 충돌하는 국제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우리의 생존전략은 균세(均勢)와 자강일 수밖에 없다. 한 세기 전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술책만으로 왕조의 생명을 이으려 했던 고종은 쓰라린 실패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남의 힘에 기대어 생존하려 했던 한 세기 전의 슬픈 역사는 다시 돌아온 제국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대한제국의 아픈 역사는 견실한 자강이 결여된 외교적 책략만으로는 다시 돌아온 열강 각축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려움을 잊지 않도록 일깨우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맛을 보아야 할 쓰디쓴 쓸개와 누워 자야만 할 섶나무 더미이다. 그렇기에 치욕의 역사가 쓰인 현장으로 덕수궁은 성찰의 역사공간이지 분칠할 미화의 대상이 아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4) 전북 진안 천황사 전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4) 전북 진안 천황사 전나무

    가을이 겨울의 무게에 짓눌렸다. 겨울이 짙은 안개를 몰고 전북 진안 운장산에 내려앉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에 밤안개가 짙어지자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 스멀거리는 안개가 산을 넘는 나그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수행처로서보다는 관광지로 더 잘 알려진 운일암 반일암이 자리한 아름다운 산이다. 고개를 넘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전나무가 있다. 나무 앞에는 아늑한 암자, ‘남암’이 있는데,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나무가 걸어온 세월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게다. 그건 그를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겠다. 알싸하게 번지는 초겨울 안개를 거역할 수도 모면할 수도 없는 늦가을이다. 안개는 이른 아침까지 걷히지 않았다. 운장산 기슭에 자리한 천황사도 안개에 묻혀 고요하다. 절집에서 키우는 개 짖는 소리만 정겹다. 천황사 돌담 곁에 커다란 전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 앞에 돌로 새긴 보호수 안내판에는 이 나무의 높이를 35m라고 했지만, 실제 나무의 키는 그만큼 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줄기 윗부분이 큰바람에 부러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 작은 나무는 아니지만, 이 나무가 지금 찾아가는 나무는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495호인 진안 천황사 전나무는 천황사에서 다시 200m쯤 산길을 거슬러 올라 천황사의 산내 암자인 남암까지 가야 만날 수 있다. 먼 길은 아니지만, 길이 좁고 가팔라서, 자동차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걷기에도 제법 숨이 차오르는 산길이다. 나무는 그 길 끝에서 감동으로 만나게 된다. ●높이 35m 국내 최고 수준 나무 앞에는 허름한 암자가 한 채 놓였다. 여느 암자처럼 기와 지붕을 올린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법당도 차려지지 않은 볼품없는 암자다. 여느 시골 집 살림채처럼 보이는 ‘남암’은 1000년 전에 스님들의 수행처로 세운 유서 깊은 암자다.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도 잦지 않아 외롭기 그지없는 작은 집일 뿐이다. 암자로 오르는 조붓한 길 옆의 비탈에 선 전나무는 융융한 기품의 곧은 줄기를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올렸다. 암자 외에는 별다른 건물도, 다른 나무가 곁에 없는 까닭에 존재감이 매우 두드러진다. 겨울의 무게가 실린 안개가 가지 끝에 걸렸다.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2008년의 정밀조사에 의하면 나무의 높이는 무려 35m나 된다. 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도 5m나 된다. 전나무는 원래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다. 나무의 곧은 자람이 마치 불심 깊은 스님의 지조와 절개를 닮았다는 뜻에서다. 천황사의 전나무도 400년 전 이 암자에서 용맹정진하던 스님이 온 땅에 불심이 널리 퍼져 평화로운 세상이 이뤄지기를 발원하며 심어 가꾼 나무라고 전한다. 추운 날씨에 잘 자라는 전나무는 우리나라의 높은 산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 별난 나무가 아니다. 줄지어 숲을 이룬 전나무도 좋지만, 이 나무처럼 홀로 우뚝 섰을 때의 느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무다. 그 많은 전나무 가운데 천황사 전나무는 규모에서나 생김새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전나무를 대표할 만한 나무다. “나무 주위에 있던 작은 나무와 어지럽던 풀을 정리하고 나니, 깔끔하고 더 커 보이지요? 하지만 사람 눈에 들자고 저렇게 꾸밀 필요가 있나요? 누가 돌보지 않은 채 수백 년을 살아온 생명체잖아요. 그냥 놔눠도 잘 사는 게 나무 아니던가요?” 사람 들지 않는 암자에서 홀로 수행 중인 스님이 인기척을 느끼고 차 공양을 권하며 처음 내놓은 이야기다. 사람 눈으로 보기야 좋아진 건 분명하지만, 나무에게도 그게 좋을지는 모르겠다며 스님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진리는 뜻밖에도 쉽고 간단합니다. 사람도 나무도 다 그래요. 주어진 대로 편안하고 쉽게 사는 게 진리에 닿는 방법입니다. 자식 잘 키우겠다고, 지나치게 애면글면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나무도 사람 마음대로 이리저리 매만지면 안 됩니다.”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뒤, 보호구역 정리를 위해 곁에서 자라던 낮은 키의 나무들과 무성한 풀꽃들을 베어낸 게 탐탁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무는 그대로 두고, 주변을 정리하고 울타리를 친 것 외에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스님의 귀에는 작은 생명의 아우성이 아쉬웠던 것이다. ●“사람이 뭐라하든 자신의 생을 살아” “키 작은 나무나 풀도 똑같은 생명체입니다. 함부로 베어내고 뽑아내도 되는 생명은 없어요. 사람 마음이 문제예요. 사람 마음 따라 자연의 뭇 생명을 마음대로 다스리려 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그럴 권리가 있기나 한가 몰라요.” 스님은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직후 이곳 남암에 들어와, 2년 넘게 마음 공부에 정진 중이라고 한다.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나무에 얽힌 어떤 이야기가 전하는지도 아는 게 없단다. 굳이 그걸 헤집어 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제 이름은 알아 뭐 해요? 사람이나 나무나 마찬가지예요. 전나무라고 부르든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르든 나무는 처음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 때처럼 자기의 생을 살아갈 뿐이지요.” 법명을 묻자,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나무처럼 이름보다는 마음으로 남는 게 좋다고만 대답한다. 차 공양을 마치고 앉은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올리고 방을 나섰다. 그 사이 높은 가지 끝에 걸렸던 초겨울 아침 안개가 걷혔다.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가지 끝에 충만한 생명이 안개처럼 습기처럼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글 사진 진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ohkh@solsup.com >>> 가는길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산169-4. 호남고속국도와 통영대전고속국도를 동서로 잇는 익산장수고속국도의 진안나들목을 이용해서 진안군청까지 간다. 군청 동북쪽의 진안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400m쯤 간 뒤 상림천이라는 작은 개울을 건너 지방도로 795호선으로 10㎞ 가면 정천면소재지에 이른다. 정천휴게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6㎞ 가면 천황사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에 ‘진안 천황사 전나무’ 입간판이 있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500m 가면 천황사가 나온다. 천황사 앞 개울을 건너 산길 200m를 오르면 나무가 있다.
  • 함양 황석산을 오르다…꼿꼿한 고봉 따라 흐르는 만추의 파노라마

    함양 황석산을 오르다…꼿꼿한 고봉 따라 흐르는 만추의 파노라마

    선비 고을 경남 함양. 예사롭지 않은 풍경들을 숨겨 두고 있는 곳입니다. 함양의 외관을 결정짓는 건 산세입니다. 사방을 둘러친 30여개의 1000m급 고봉들이 어깨를 맞댄 채 파노라마를 펼칩니다. 그 가운데 함양 사람들의 굄을 듬뿍 받고 있는 게 황석산입니다. 정상부의 칼날 같은 암봉이 압권인 산이지요. 멀리 덕유산에서도 누런 바위가 또렷이 보일 정도랍니다. 여기에 절정의 빛깔을 뽐내는 상림과 운곡리 은행나무를 보탠다면 만추의 함양 여정으로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서수(瑞獸)의 뿔을 딛다 함양은 산청(동), 전북 장수(서), 하동(남), 거창(북)과 인접한 전형적인 산악 소도시다. 기특하게도 조그만 품에 지리산과 남덕유산을 모두 품었다. 명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 또한 어느 산군(群)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함양의 뒷산 괘관산(1252m), 지리산 세석고원과 닮은 월봉산(1279m), 육십령 북쪽 할미봉(1013m) 등 여느 도시에선 한 개도 찾기 힘든 1000m급 고봉들이 ‘발에 차일’ 정도다. 함양 사람 특유의 꼿꼿한 선비 기질 또한 이같은 자연환경에서 잉태되지 않았을까. 그 가운데 독특한 산세를 뽐내는 곳이 용추계곡 일대다. 용추계곡을 가운데 두고 기백산(1331m)~금원산(1353m)~거망산(1184m)~황석산(1190m)이 말발굽 형태로 에워싸고 있다. 산악인들이 비박 산행 황금 코스로 꼽는 이른바 ‘기·금·거·황 코스’다. 호사가들은 1000m가 넘는 네 산을 ‘부부(夫婦)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암수와 음양이 조화를 이뤘다는 게 이유다. 황석과 기백이 바위를 앞세운 근육질의 남성적인 산세인 것에 견줘 거망과 금원은 여성적인 부드러운 육산이다. 이웃한 황석과 거망, 금원과 기백이 각각 한 쌍의 부부로 엮인다. 그래서 산행을 할 때도 ‘부부 일심동체’라며 두 개 산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초보자가 두 산을 묶어 오를 경우 체력적인 부담은 각오해야 한다. 단독 산행 일순위를 꼽자면 단연 황석산이다. 오르는 길이 제법 험하지만, 등산로 주변의 인위적인 구조물이라고는 이정표 몇 개가 전부일 정도로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상의 암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거친 산세… 울퉁불퉁 근육질 자랑하다 황석산을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상 부근 황석산성의 동서남북 네 문을 향해 각각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그 가운데 경사도가 비교적 완만한 접근로가 우전마을 코스다. 마을에서 황석산 정상까지 약 6㎞. 바삐 걸어도 4시간은 족히 걸린다. 26번 국도 변의 거연정 휴게소 바로 왼쪽으로 난 도로가 우전마을 진입로다. 여기서 마을을 지나 3㎞ 정도 오르면 사방댐. 이곳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정표가 세워진 초입부터 너덜지대다. 완만하게 이어진 구간을 20여분 오르면 거대한 피바위와 만난다.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적들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몸을 던져 순절했다는 곳이다. 부녀자들의 피로 바위 벼랑 아래가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피바위 아래를 가로질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붙으면 황석산성 남문이다. 안내판은 황석산성에 대해 ‘2750m에 달하는 포곡식 산성’이라 적고 있다. 포곡식이란 물 확보를 위해 성벽 축조 시 계곡을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안내판 끝자락엔 황석산성 전투 당시 500여명이 순국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정대훈 서하면장은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투 중 사망한 조선인 수는 7000여명에 달했고, 성을 포위하고 공격한 왜구의 수도 2만 7000명이 아닌 7만 5000여명이었다.”며 “이때 사망한 왜구만 2만 5000여명”이라고 지적했다. 정 면장은 또 “왜구들이 조선인을 죽인 근거로 코를 베어 오라는 명을 받았는데, 당시 왜구들이 베어 간 코가 3만개에 달했다. 그중 2만개 정도가 황석산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은 조선인 숫자가 7000여명이었으니, 나머지는 아군의 코였다는 얘기다. 남문에서 황석산 정상을 바라보고 오른쪽 성벽을 따라 이어지던 등산로가 샘터 갈림길에서 성벽과 떨어져 황석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 산세가 어찌나 가파른지 비명 같은 거친 숨소리가 연신 터져 나온다. 정상 바로 아래, 그러니까 안부 주변의 가파른 능선을 따라 산성이 복원돼 있다. 비록 작은 산성이지만, 서수의 뿔처럼 불쑥 솟은 산봉우리를 에두른 자태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투사를 닮았다. 조총을 앞세워 밀려드는 수만의 왜구들에게 지지 않고 창칼과 낫, 그리고 투석전으로 맞섰던 조선인들의 결기가 여태 남아 있는 듯하다. 안부에서 보면 양옆으로 칼날 같은 암봉 두 개가 서있다. 오른쪽은 북봉, 왼쪽은 남봉이다. 그저 향하고 있는 방위에 따라 이름을 정한 것인데, 멋들어진 자태에 견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황석산의 정상은 왼쪽 남봉이다. 정상을 밟기 위해선 로프가 설치된 암릉을 올라야 한다. 로프를 잡고 공룡의 등껍질 같은 암릉을 오를 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정상은 두세 사람이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비좁다. 하지만 굽어보는 풍경만큼은 더없이 넓다. 가까이로는 깎아지른 북봉과 만추에 잠긴 함양 일대, 그리고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줄달음치는 거망산과 기백산, 금원산 등이 한눈에 들어찬다. 멀리 덕유산 자락과 지리산도 아련하다. ●노란 눈폭탄 날리는 운곡리 은행나무 안의면 화림동 계곡은 흔히 ‘8담(潭) 8정(亭)’으로 표현된다. 여덟 개 연못에 여덟 개 정자가 있다는 곳. 깊은 녹음과 한가로운 쉼이 한여름의 매력이었다면 가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려함이다. 수수한 모시 적삼에서 만추의 비단 옷으로 갈아입은 계곡의 정자들이 화려하고 요염하다. 안의면에서 화림동 계곡을 되짚어 올라가면 운곡리 은행마을에 닿는다. 마을에 들면 정말 깜짝 놀랄 풍경과 맞닥뜨린다.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다. 돌담으로 멋을 낸 마을 고샅길 끝자락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작은 시골 마을의 품에서 자란 나무치고는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천연기념물 제406호. 이 계절에 운곡리 은행나무는 딱 ‘크레이지 모드’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잎을 떨구는데, 노란 잎들이 꼭 폭설처럼 흩날린다. 어디서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장관이다. 그 많은 잎을 떨궜는데도 여전히 가지마다 나뭇잎들이 치열하게 매달려 있다. 300여년 전에 생식 능력을 상실한 고목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어느 모로 봐도 융융한 젊은이의 기상 그대로다. 높이는 38m.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39m)에 이어 국내 두 번째다. 나이는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판에 따르면 운곡리는 돛배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은행나무가 돛의 역할을 하고 있단다. 마을 이름을 ‘은행정’(銀杏亭)으로 바꿀 만큼 주민들의 각별한 굄을 받고 있다. 함양 여행길에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이 상림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비밀의 정원이다. 2만여 그루의 수목 사이로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지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글 사진 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서상나들목으로 나와 함양·안의 방면으로 우회전, 7㎞쯤 직진한 뒤 거연정휴게소 직전에서 좌회전해 1㎞쯤 올라가면 우전마을이다. 마을 끝자락 사방댐 뒤편에 승용차 3~4대 주차할 공간이 있다. 용추계곡을 들머리 삼을 경우 지곡나들목으로 빠지는 게 낫다. 장갑과 등산 스틱은 필수다. →맛집 한징기(963-9986)는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어탕국수집이다. 6000원. 민물매운탕 2만 5000원부터. →잘 곳 함양군에서 용추자연휴양림을 운영한다. 숲속의 집 4인용(5평)이 3만 5000원. 963-8702. 읍내에선 엘도라도 모텔(963-9889, 9449)이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 3만 5000원.
  • 버릴수록 행복해진 ‘귀농 검사’

    덕수궁 돌담길 긴 줄을 4시간 기다려 길바닥에 차려진 분향소에 고개를 숙였다. 아내와 함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 막걸리집에 들렀다. 그리곤 말했다. “검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아내는 잠시 침묵하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10년 검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9년 7월의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지 두 달 뒤였다. 문학동네가 최근 펴낸 ‘검사 그만뒀습니다’는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귀농 검사’ 등으로 불리는 오원근(44)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평소 흠모하던 분의 비극에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모욕 수사’가 한몫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고 사표를 던진 이유를 털어놓았다. 검사를 그만둔 뒤 그는 전북 부안의 변산공동체에 들어가 3주간 농사 일을 했다. 검사를 그만둔 궁극적 이유는 “농사짓는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그는 변호사로 개업한 지금도 “평생 소원은 불교 수행과 완전 귀농”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여는 독실한 불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책이 귀농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6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던 국민참여재판에 공판검사로 참여한 이야기, 초임검사 시절 벌금 100만원을 깎아달라는 젊은 구멍가게 주인의 통사정을 “검사가 한번 뱉은 말을 바꾸면 권위가 안 선다.”는 이유로 야멸차게 거절했다가 뒤늦게 ‘정의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임을 깨닫고 두고두고 후회한 이야기, 아내와 함께 경북 문경의 정토수련원에 100일간 출가한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곡물 노점상 어머니를 ‘버린’ 이야기는 코끝이 찡하다. 충북 청원에서 소작 일을 하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한겨울 눈발이 날리는 장터에서 쌀이며 콩을 팔아 ‘고시생’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공부하는 책 위로 자꾸만 쪼그리고 앉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날 무심천 꽃다리(청남교)를 걷다가 불현듯 “그건 어머니의 팔자”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죽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그는 어머니의 잔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뒤에도 그 어머니는 노점을 계속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해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오 변호사는 금강경의 차제걸이(次第乞已)를 인용했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걸식을 할 때 어느 집은 가고 어느 집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 차례로 밥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내 기준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는 “버릴수록 행복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1만 3000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88살 ‘통곡의 쌍둥이 미루나무’ 살려주세요

    88살 ‘통곡의 쌍둥이 미루나무’ 살려주세요

    “그는 오늘 조금이나마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시를 읊어주고, 콘서트를 열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속삭이네요. 그가 이제 길어야 10년도 채 못 산다고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그가 이곳에서 자란 지 88년이나 됩니다.” 쫓아오던 해님이 서쪽 교회당에 걸릴 무렵이던 지난 23일 오후 6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선 조촐하지만 뜻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디케이 소울(본명 김동규)의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멀리서도 처연하게 들렸다. 이곳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립·민주화운동 열사들의 넋을 달래려는 진혼제인 듯했지만 뜻밖이었다. 이름도 낯선 ‘스토리텔링 콘서트’의 주인공은 무대 앞 사형장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묵묵히 서 있는 미루나무 두 그루였다. 콘서트에 귀 기울이던 ‘키다리 아저씨’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가슴아픈 전설을 들려줬다. 옥사에 갇혔던 독립·민주열사들이 간수(看守)들에게 불려나가면서 겪은 얘기다. 역사관 앞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면회실이지만 오른쪽으로 꺾으면 사형장이었다.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형수들은 미루나무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는 사연이었다. 문제는 담벼락 안쪽에 서 있는 나무가 같은 시기에 들어선 바깥 미루나무와 달리 너무 왜소했다는 점이다. 2m가 넘는 담벼락에 가려 햇빛을 받지 못해서이겠지만, 마치 독립·민주화의 한(恨)을 풀지 못한 채 스러진 억울한 혼들의 아픔을 오롯이 목격한 쓰라림 탓인지 먹어도 먹어도 나무는 초췌해져만 갔다. 무성한 잎새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껴안을 수 있는 사형장 밖 나무와 달리 안에 있는 녀석은 삐쩍 마르고 야윈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미루나무의 수명은 최대 100년이랍니다. 생(生)을 얼마 남기지 않았죠.”라는 문 구청장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문 구청장은 ‘상록수’의 저자 심훈(1901~1936년)이 이곳 옥중에서 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풀 한 포기 없는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생지옥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쯤 되자 콘서트에 온 인근 인창고 학생들도, 관람객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이어 한 사람 겨우 누울 곳에 갇혔던 애국지사들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막는 부채꼴 모양 10칸의 격벽장에서 운동을 했던 이야기 등 형무소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구는 희생정신을 증언하는 이 격벽장을 복원 중이다. 아픈 역사도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구청장은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비극이다. 그래서 온라인에 통곡의 미루나무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머리를 숙였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서울플러스]

    유홍준과 함께하는 유적 관람 강남구(구청장 신연희) 24일 충남 부여군에서 ‘유홍준과 함께하는 역사 스페셜’을 갖는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정림사지, 무량사, 성주사지, 외산면 반교리 돌담길 등 백제 도읍지 유적을 관람한다. 참가비는 1인당 2만원으로 선착순 40명을 모집한다. 교육지원과 2104-1693. 마장동 축산물시장 주차장 건립 성동구(구청장 고재득) 소규모 육가공 업체가 밀집한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지하 1층·지상 4층짜리 공영주차장을 사업비 총 89억원(시비 53억, 구비 36억)을 들여 내년까지 건립하기로 했다. 시장 이용자 및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에게 주차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교통지도과 2286-5714. 25일 4개코스 ‘행복마라톤’ 서초구(구청장 진익철) 25일 ’2011 서초 행복마라톤 대회‘를 연다. 하프코스와 10㎞, 5㎞, 3㎞ 부문으로 나뉜다. 하프코스 기준 반포종합운동장~반포천 산책로~한강시민공원 영동대교 앞을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홍보정책과 2155-6243. 몽골 의료진 의료교육과 견학 광진구(구청장 김기동) 23일 몽골 항올구 치과의사·위생사 등 의료진을 보건소로 초청해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의료교육과 견학을 한다. 의료진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구강건강교실‘에도 참여해 검진과 불소 도포 등을 함께한다. 기획공보과 450-7273. 외국인 투자기업 전수조사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 26일부터 10월 31일까지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현장방문 전수조사를 벌인다. 점차 늘어가는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면서 경영상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정책에 반영하고, 투자환경 개선과 투자증액은 물론 고용창출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경제진흥과 2127-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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